#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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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echingdragonnerd · 3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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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식이 있는 유부녀의 황금비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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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thepenguin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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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etition
There are spoilers ahead for BG3's romance with Astar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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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uldn't wrote a translated scripts this time, so I'll attach the Korean script below! sorry!)
<<1Page>> 타브: … 내 사랑 아스타리온. 나는 너의 그 이기심마저 사랑했고, 지금도 여전히 널 사랑하지만 타브: 이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아. 타브: 넌… 변했어. 타브: 하지만 그럼에도… 타브: 넌 네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진 않아.
<<2Page>> 아스타리온: … 네가 아스타리온: 네가 내 약점이야. 아스타리온: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할 기적같은 힘을 고작 널 내 곁에 붙잡아놓는데 낭비하고 있는 바로 지금같은 상황이 날 강해질 수 없게 만드는거야. 아스타리온: 그런데도 나는 아직 너를 포기하지 않았잖아? 아스타리온: 그게 내 사랑이고, 너의 사랑에 대한 보은이며, 헤아릴 수 없을 헌신이지.
<<3Page>> 아스타리온: 너는 아스타리온: 나의 타브: 커헉! 아스타리온: 가장 아끼는 자식이라고!
<<4Page>> 타브: 쿨럭 타브: 그래… 타브: 가장 아끼는 자식… 타브: '이제 넌 더이상… 배우자라는 말조차도 쓰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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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of-seoul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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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시영어머니, 아버지셨어. 그 집에도 자녀가 셋이 있었는데, 나와 친자식간 차별이 생기지 않게 엄청 애써주셨어.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밥을 차릴 때 친자식들이 돕지 않으면 혼을 내시기도 했어. 근데도 내 꿈은 독립이었어. 아무리 좋은 분들이어도 내 집 같을 순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게 미용 일이었어. ‘내 살 길은 이 길뿐이다.’ 생각하고 죽도록 했어. 그때는 고데기 이런게 없어서 무거운 쇳덩이를 머리에 대고 미용 연습을 해야 했는데 연습을 하도 하니까 나중엔 팔이 잘 들리지가 않어. 쇳덩이라 이게 처음엔 반짝거리는 은색인데 내가 거기에 머리카락을 하도 많이 대고 연습을 하니까 나중엔 다른 학생들 건 다 은색이고 내 것만 새까맣고 만질만질했어. 이제는 나도 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고 어디가서 자식 자랑도 하지만, 나는 평생을 그 쇳덩이처럼 살아왔어.”
“My foster mom and dad were just the best. They had three kids of their own, but they always did their best to treat me just the same as them. If I was up early making breakfast and their own kids didn't help, they'd tell them off. But you know, my dream was to be independent. No matter how kind they were, it just didn't feel like it was really my home. So, I got into hairstyling. I worked my fingers to the bone, telling myself, 'This is it. This is my path.' Back in those days, we didn't have curling irons like today. So, I had to use this heavy old iron, practicing over and over to the point I could barely lift my arms. The iron was all shiny and silver at first, but from all the hair I practiced on, it turned pitch black and got all smooth. All the other students’ irons were still silver, though. Now, I have three kids myself, and I brag about them every chance I get. But in a way, I've lived my life just like that old ir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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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fifi08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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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정도 남았다는 의사 말에 
나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점점 변해가는 엄마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 엄마 물건을 하나씩 정리를 했다. 무너진다 마음이 무너진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엄마 메모에는 온통 우리 이야기, 
자식 이야기.
당신이 우리에게 준 사랑이 너무나 커서 
이 사랑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 벅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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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nproject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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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사과"
*노란 사과
시나노골드라는 품종 사과는 노란색이다.
어떻게 알았냐면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의 복지 중 하나가 바로 저 사과가 수확될 때 한 박스씩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과박스를 본가로 보내고 사진으로 인증샷을 받았는데 샛노란 사과들이 줄지어져 있어 익지도 않은 사과를 보내곤 생색인가 하였더랬다.
새콤한 걸 좋아하는 엄마 입맛에 딱 맞아서였는지, 두 박스나 받은 후에 올해는 먼저 물어온다.
노란 사과 언제 오니?
하하, 고향집 언제 오느냔 말보다 사과가 먼저일 줄 몰랐지.
그만큼 애틋함이 줄었나, 이제 나간 자식 어련히 잘 살겠거니 싶은가, 한편으로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은
고작 노란 사과에 밀린 감정이 얄궂어서 라기보단 엄마가 이제 원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얘기하는게 좋아서 그렇다.
웃겨 정말.
그나저나 노란 사과 언제 줄까? 하하.
-Ram
*노란 사과
겉모습만 봐선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언뜻 보면 배인 줄 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과 향과 맛이 나고, ��간 연둣빛을 띄는 멜론을 생각하고 반으로 가르자 안이 오렌지색으로 가득 차 있어 당황스러운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봤을 땐 너무 동안이어서 당연히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고, 흥미로운 경험과 아픈 과거들이 그 사람을 꽁꽁 둘러싸고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겉모습이 풍겨오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사람의 성격도 유추하게 되는데 겉과는 달리 의외의 마음 씀씀이와 생각지도 못한 언행으로 또 한 번 날 혼란에 빠지게 했다. 당연하다는 생각이 때때로 날 오만에 빠뜨린다. 다시 한번 되새기자. 당연한 건 없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노란 사과
노란 사과도 있어 찾아보니, 기후변화의 대체재로 나온다는 것 같다. 이번 여름은 정말 유난히도 더웠는데, 이 더위가 제일 시원한 여름이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더워질 거란 소리다. 기후학자들은 자녀를 낳는 걸 망설인다 한다. 기후 위기가 전혀 좋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견디지만 나중에 더위도 소득의 격차에 따라 누구는 몸으로 맞닥뜨려야 하고 누구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어쩌지? 아이를 한 명은 낳고 싶은데, 내가 여러 방면에서 그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안 낳는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아침으로 사과를 꼭 먹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지낼 때 뉴질랜드 사과가 8알 정도에 7천원 정도 했었다. 한국에 오니 도저히 사 먹을 수 없는 가격이라 사과를 포기했었고 최근에서야 그것도 엄마가 사줘서 사과를 맛봤다. 노란 사과가 나와서 맘껏 사과를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꿀이 가득 든 아삭하고 딱딱한 빨간 사과가 풍작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슬프지만 큰 기대는 안된다. 9월에 들어섰는데도 이렇게 더우니 말이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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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teuryouth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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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생일은 처음이라
엄마 안녕.
잘 지내? 아픈 데는 없고?
엄마가 나에게 잘 지내냐고 묻는다면 난 그렇지 못한다고 대답할 것 같아. 실제로 그렇지 않거든. 엄마가 떠난 날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 생각이 떠올라. 근데 있잖아. 아프지 않고 건강했던 엄마의 모습이 잘 기억이 안 나.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엄마를 떠올리면, 엄마가 떠나기 전, 호스피스에 있던 모습만 떠올라. 건강했던 엄마를 생각하지 못해 미안해. 
난 아직도 엄마가 호스피스에 있던 때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말했듯이 온통 그때만 생각이 나고 어느 날 집에 혼자 있으면 엄마가 어디 놀러 갔거나 장 보러 간 것만 같은 느낌이야. 언제든지 현관문 열고 들어올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이따 집 가서 엄마한테 얘기해야지.’, ‘엄마한테 카톡으로 저녁 뭐 먹냐고 물어봐야지.’ 정도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 금세 정신 차리지. 아, 엄마 이제 없지. 엄마한테 연락할 수가 없지.
얼마 전엔 내 생일이었어. 엄마 없는 생일은 처음이라 슬프기만 하더라.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도 엄마가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어. 엄마가 힘겹게 낳아서 기쁜 날일 텐데 슬퍼하기만 해서 미안해. 그래도 모두가 축하해줘서 괜찮았던 것 같아. 
생일 전날에 엄마를 보러 갔는데 날이 너무 덥더라. 가만히 서 있는데도 땀이 흐르더라고. 그래서 얼마 못 있다 왔어. 미안해. 곧 또 갈 테니까 그때는 오래 있다 갈게. 그래도 햇빛은 잘 들어오더라. 겨울엔 엄마가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어쩐지 엄마가 끓여주던 미역국 생각이 났어. 원체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인지라 아침에 끓여주면 저녁에 와서 먹곤 했는데 이번 생일은 어쩐 일인지 아침이 먹고 싶더라고. 아마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 거겠지. 
생일이라고 엄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이번 생일은 엄마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 어쩌면 그동안 엄마에게 전하지 못한 고마움에 대한 후회인 것만 같아. 유독 더 많이 생각나는 날이었어. 
자꾸 쓰다 보니 ‘~같아.’로 끝내게 되네. 그건 더 이상 엄마한테 직접 얘기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겠지. 엄마, 우리를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늘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 늘 후회와 미안함으로 가득한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여러 가지를 더 해보지 못한 후회일 거야. 엄마가 우리랑 살면서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부디 행복했다고, 일찍 떠나지만 잘 살았다고 생각하기를 바라. 나는, 우리는 엄마랑 살면서, 엄마의 자식, 가족으로서 너무 행복했어. 영원히 사랑해.
엄마 없는 생일은 처음이라 어색하네. 앞으로 매년 글 남길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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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nuni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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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하시고 수술 을 기다리는 중이다 . 아버님 문병을 가서 옆쪽에 계시는 분 이 눈에 들어왔다 . 얼굴 빛도 너무 안좋고 계속 식구 들이 옆에서 지켜보시다가 정신도 놓아버리시고 하는 모습에 잠깐 멀리서 커튼 사이로 보이는 환자분의 모습을 봤다 .너무 젊으신 분인데 어쩌다 …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옆에서 생과사를 넘나들고 있을 시간에 아버지는 열도 정상적이고 진통제가 들어가는 동안이라 곤히 잠 들어 계신다 . 다행이다란 생각도 하지만 과연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시간이 멈춘듯이 사시는 아버님의 모습이 과연 행복하실까 ? 신랑과 나 둘 은 생각이 많아졌다 . 과연 우리는 ?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있으면서 살아 있는것 마저도 행복 이라고 생각하며 살까 ? 과연 그게 나중 자식 들에게 즐거운 모습을 남겨 줄 수 있을까 ? 아버님의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 신랑은 계속 아버님 옆에 남겨 두고 나만 집으로 돌아왔다 .
다음날 의 쓸쓸함 .
아침에 전화벨 울리고 신랑 목소리가 들렸다 . “어제 옆에 분 돌아가셨어 . 어제 밤에 너무 끙끙 얋으셔서 내가 간호원 한테 말���서 옆에 분 너무 힘들어 하시는데 좀 와서 봐달라 했는데 . 진통제 놓아줄때 그분이 간호원이 진통제 하나 놔드려요 하니, 환자가 얼마예요 ? 라 물어보셨단다 . 그말 듣는데 너무 아팠다 . 차라리 그분 얼굴을 안보았더라면 내가 덜 감정적으로 슬프지 않을텐데 . 아픈 몸으로 그 진통제 가격을 물어보셨다고 하니 너무 맘 아팠다 . 신랑 한테 나도 모르게 아 .. 너무 맘 아파 . 우리 그분 명복 빌어드리고 다음 생에는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빌어드리자 . 라고 했다
우리도 잘 모른다 . 채식 , 운동 , 현미밥 .. 뭐 여러가지 좋다는거 다 먹고 챙겨도 얼마나 좋은 효과가 나서 살지는 ? 그냥 주어진 시간에 충실하며 챙겨보며 산다 . 어차피 모든이의 끝은 다 똑같으니까 .
발버둥 치며 살아보겠다보다는 그냥 지금 내 몸 잘 아끼고 다스리며 살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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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ajinnnn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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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hey were translated: Korean SIX
Brought some lines and lyrics from Korean Production of SIX. Take a look at how they were translated! * notes: the lines and lyrics may not be fully accurate, 'cause I wrote them only depending from my memory.
[Ex-wives]
Remember us from PBS/GCSEs? ▶ Remember us from History Special? 우리 역사 스페셜에서 봤지? (note: History Special is one of the most popular TV show in Korea, broadcasted during 1998-2012. They mada a right localization!)
You're gonna find out how he got unfriended ▶ You're gonna find out the reason I blocked him. 알게 될 걸 그를 차단한 이유
But I didn't look as good as I did in my pic Funny how we all discuss that But never Henry's little- ▶ So he's disappointed with my actual look Do you think you're the only one who's disappointed? Your tiny and little- 근데 실물 보고 달라서 실망했대 지만 실망한 줄 아나 작고 작은 너의 소중이 (OK so Korean Cleves didn't just 'unfriended' but 'blocked' Henry… and she slays 🤣)
[No way]
Well daddy weren't you there When I gave birth to Mary? (spoken) Aw, hi baby Daughters are so easy to forget ▶ What was the word Mary calls you? (spoken) Daddy So daughters are not enough to be your children 우리 딸 메리가 뭐라고 부르지 널 아빠 딸은 자식 아닌가보지
+ and Korean Aragon says 'Hola' instead of 'Muy Bien' at the beginning.
[Don't Lose Ur Head]
L-O-L, say "oh well" Or go to hell ▶ Ha-ha-ha, just laugh at it Or just shut up 하하하 웃든지 아님 닥쳐줘
Your comment went viral / Wow Anne, way to make the country hate you ▶ You've got so many mean tweets / You've got million haters 너 악플 쩔더라 / 백만 안티 (especially loved this one😂 gives bit of K-POP industry vibe)
[Haus of Holbein]
Ignore the fear and you'll be fine We'll turn this vier into a nine So just say "ja" and don't say "nein" ▶ It's okay don't worry We're photoshop them das is gut Never doubt them das is gut 괜찮아 걱정하지마 뽀샵해줄게 das is gut 의심하지마 das is gut
[Get Down]
Get down, you dirty rascal ▶ Get down and bow to me 엎드려 절하여라 (and when Korean Cleves says this her tone is like a character from historical drama👍)
[Howard Intro]
Nice neck by the way ▶ What a pretty neck you've got! By the way you still have it! 너 목 정말 예쁘다! 그나저나 아직까지 달려있구나 (so Korean Boleyn's got Regina George vibe love them)
[All You Wanna Do]
But my dad's got this amazing job at the palace ▶ My dad's got me amazing internship at the palace 근데 아빠가 궁전에 끝내주는 인턴 자릴 잡아준거야 (they translated it as 'internship' and I wonder why🤔 Maybe to emphasize how young Howard is?)
[Parr Intro]
Ooh, “I’m Catherine Parr, I draw lines in arbitrary places.” Blah-blah! ▶ "Hello, I'm Catherine Parr, came to draw lines in your conscience." ZIP! 안녕 난 캐서린 파야 양심에 선을 긋겠어 찍- (and Ryeowon's Howard was damn cute when she says ZIP!)
[Six]
His mates were super arty But I showed them how to party ▶ My friends are Artistic My Parties are Fantastic 내 친구는 아티스틱 내 파티는 판타스틱 (Cleves says the word 'Aristic' and 'Fantastic' in English 😆)
…and for the last, I bring you how my favorite lyrics from SIX were translated into Korean!
We're one of a kind No category Too many years Lost in history We're free to take Our crowning glory ▶ No one can make category on us Our own history that was forgotten Taking back my freedom and glory 우릴 하나로 묶을 순 없어 잊혀졌던 우리의 역사 내 자유 영광 이제 되찾아
It's the end of the show, of the histo-remix We switched up the flow and we changed the prefix Everybody knows that we used to be six wives But we wanna say before we drop the curtain Nothing is for sure, nothing is for certain All that we know is that we used to be six wives ▶ Our show is about to end re-writing the history Our own lyrics we changed and singing Everyone knows we were that six wives We wanna say before the show ends Do not be certain for anything you know We are not that six wives everyone used to know 이제 끝나가는 쇼 다시 쓰는 역사 바꿔 부르는 우리만의 가사 모두가 알지 우리가 바로 식스 와이프 쇼가 끝나기 전에 얘기할래 니가 아는걸 확신하지마 모두가 알던 우리가 아냐 식스 와이프
I know there are lots of negative comments among Korean theater fans, about how poor the Korean translations are. But I did like some parts. I won't say I'm fully satisfied with the translations but some parts were really touching just like the original ones. Hope they make progress in the futu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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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2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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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톈테익은 1860년부터 1890년 비밀결사가 해체되기 전까지 페낭의 복건 출신 거상들이 주도한 비밀결사 건덕당을 이끌었다. 그의 집권 30년은 건덕당이 페낭 화인사회를 넘어 해협 북부 지역을 관할하던 ‘페낭 화인권’의 황금기였다. 1867년 페낭 폭동의 주범으로 몰려 사형선고를 받기도 하며, 서양 상인들로부터 ‘깡패 두목’이란 말을 들었지만, 쿠는 농원주이자 해운업자였고, 페락의 주석광산에 투자한 자본가였다. 페낭의 쿨리무역을 장악한 것도 그였다. 무엇보다 그는 건덕당을 통해 페낭 복방 거상의 이권을 물리적으로 지켜낸 인물이었다. 쿠톈테익은 1818년 페낭에서 태어났다(張少寛, 2002: 19). 그는 페낭의 부잣집 셋째 도련님이었다. 그의 아버지 쿠궥차오는 페낭의 초기 이주자로, 1835년 쿠콩시 창립 회원이자 무역업자이고 농원주였다. 쿠톈테익은 1860년 건덕당의 영수에 올랐고, 열다섯 살 어린 동생 쿠톈포를 건덕당의 2인자로 뒀다.
건덕당의 토아코가 되기 이전부터 쿠톈테익은 상당한 사업가였다. 그가 소유한 정크선은 1850~60년대 페낭-몰러먀잉-아체-타쿠아파-싱가포르를 운항했다. 기항하는 항구에서 지역 산물을 사들여 페낭으로 가져온 뒤 다시 이를 역내에 되파는 방식이었다. 해운업자이자 교역상이었던 것이다. 농원 개발에도 적���적이었다. 그는 부친이 운영하던 프라이의 코코넛농원 200에이커와 사탕수수농원 및 설탕공장도 물려받았다. 1874년 페낭과 프라이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던 코코넛농원이 1만 7,000에이커에 달했는데, 쿠톈테익도 그 농원주의 하나였다. 당시 추산으로 코코넛농장 132에이커에서 연간 40만 개의 코코넛이 생산되었고, 이는 4,000~8,000 달러어치였다. 쿠의 200에이커 코코넛 농원에서 발생하는 연간 코코넛 판매 수익만 8,000~1만 6,000달러에 달했던 셈이다(Wong, 2007: 31).
부친의 사업을 승계한 쿠는 친비콩시Chin Bee Kongsi振美公司를 통해 사탕수수와 코코넛농원(프라이), 아편팜(홍콩과 페낭), 주석광산 개발(페락)을 이끌었다. 해상교역과 쿨리무역, 해운, 농원, 아편팜, 주석 무역 등 부문별 사업은 형제나 자식 혹은 종친에게 경영을 맡기고 자신은 건덕당을 통해 사업을 총괄했다.
1881년 화인보호관서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쿠톈테익이 소유한 쿤호콩시는 쿨리 300명을 수용할 페낭 최대의 쿨리수용소였으며, 식민 당국에서 면허를 받은 합법적인 회사였다. 종친 해운업자인 쿠툥포는 페낭, 푸켓, 홍콩, 하문에 지사를 두고 쿠톈테익의 쿨리무역을 도왔다. 중국 광동성과 복건성의 쿨리 중개업자들은 해마다 쿠톈테익에게 수천 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그는 페낭 아편팜 신디케이트의 일원이었다. 페낭 화인권의 지휘부 중심에 쿠톈테익이 있었던 셈이다. 그는 말년에 청켕퀴와 함께 페락의 주석광산 개발과 아편팜에 힘을 쏟았다.
19세기 후반기 독점과 폭력으로 격동하던 페낭 화인권에서 화인사회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자라는 조건만으론 부족했다. 주석과 광산과 쿨리와 아편팜을 꿰뚫고, 비밀결사를 통솔하고, 영국 식민 당국은 물론 현지 정치권력과도 동맹을 맺을 수 있는 리더십이 요구됐다. 쿠톈테익의 장기 집권은 그가 페낭 화인권에서 지도력을 입증했고, 인정받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쿠톈테익이 토아코가 된 1860년 이래 페낭 건덕당은 해협 북부 주요 지역의 화인 비밀결사들을 총괄하는 ’비밀결사의 본부’로 기능했다. 태국 푸켓에선 건덕당 푸켓지부를 통해, 페락에선 개까의 비밀결사인 해산회와의 동맹을 통해, 수마트라 메단에서는 화승과 연합함으로써 페낭 건덕당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심지어 버마 남부 주석광산 개발에서 의흥회와 손잡을 정도로 실리적이고 전략적 유연성도 갖췄다.
페낭에서 태어난 페라나칸이었지만, 쿠톈테익은 중국식 교육을 받았다. 그는 영국 식민 당국이 1890년 비밀결사를 금지한 지 1년 뒤 세상을 떴다. 자신의 이름을 딴 쿠톈테익의 직계 가족묘지 천덕원天德園에 묻혔다. 천덕원은 이후 쿠 씨의 종친 공동묘지 쿠���가총邱氏家冢으로 바뀌었다. 쿠톈테익은 조지타운 쿠콩시에 있는 건덕당의 본부에서 페낭 화인권의 독점과 폭력의 시대를 지휘했다. 그리고 건덕당이란 이름과 페낭 복방 거상의 ‘정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며 세상을 떴다. 이 때문에 쿠톈테익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깡패’의 이미지가 강하다. 페낭에서 그의 이름은 쿠콩시의 구석과 그의 농원이 있는 변두리 지역 도로명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깡패’에서 ‘신사’로 변신할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던 탓인지 모른다. ‘신사’로의 변신은 그의 30년 비밀결사 동맹자인 청켕퀴가 대신했다.
역사적으로 저평가된 쿠톈테익과 달리 청켕퀴에게는 ‘라룻 주석광산의 선구자’, ‘타이핑의 건설자’, ‘19세기 말 페낭과 페락을 대표하는 큰손 자선가’ 등의 수식어가 ‘비밀결사 해산회의 토아코’라는 설명보다 앞선다. 쿠톈테익에겐 인색했던 영국 식민 당국도 청켕퀴를 페락의 번영을 일군 선구자로 대접했다.
청켕퀴는 1821년 광동서 증성현 신촌新村에서 태어난 객가이다. 그가 페락으로 이주한 것은 1841년 무렵이라고 한다.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형의 소식을 알아보라고 그를 페낭으로 보냈다. 청켕퀴의 아버지 청싱파Chung Hsing Fah鄭興發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양으로 떠났다. 남편의 소식이 없자 둘째 아들 청켕셍Chung Keng Seng鄭景勝을 보냈는데, 그 또한 함흥차사였다. 청켕퀴가 중국에 아내를 남겨두고 말라야로 떠난 건 스무 살 전후였다. 청켕퀴는 애초 페낭에 도착해 수소문을 하다 페락으로 갔고, 라룻의 클리안 바우에서 이미 사업 기반을 다진 그의 아버지와 형을 만났다. 당시 청싱파는 증성 객가의 회관인 증용회관增龍會館의 지도자가 되어 있었다. 그의 형 청켕셍은 페락 화인사회에서 ‘뤼콩셍Lui Kong Seng雷公勝’으로 불렸다. ’번개의 신 청켕셍‘이란 의미인데, 비밀결사와 무술을 연상케 한다(Chan, 2011: 5).
아버지의 장사를 돕던 청켕퀴가 독립해 광산업에 뛰어든 것은 1858년 무렵으로 알려졌다. 그는 곧바로 광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1860년 라룻 해산회의 ’토아코‘가 됐다. 당시 해산회의 회원은 페낭과 라룻에서 1만 명에 달했다. 청켕퀴와 쿠톈테익이 각각 ’토아코‘에 오른 시점이 1860년이란 건 예사롭지 않은 우연이다. 이때부터 아편팜과 주석광산의 독점을 둘러싼 폭력이 가시화했기 때문이다.
1879년 라룻의 주석광산 80개 가운데 절반이 청켕퀴의 소유였다. 당시 광산 한 곳당 평균 쿨리의 수는 86명이었는데, 카문팅의 콩룬콩시Kong Loon Kongsi는 광부가 300명이나 됐다. 이 또한 청켕퀴의 광산이었다. 앞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1879년 카문팅에서 400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형 주석광산을 봤다고 한 것이 콩룬콩시일 가능성이 높다. 1887년까지 청켕퀴가 소유한 광산의 ���간 주석 생산량은 1,700톤으로, 페락 전체 연간 주석 생산량 1만 3,000톤의 13퍼센트에 달했다. 청켕퀴는 1889~1895년 킨타계곡에서 1,000에이커(4평방킬로미터)의 주석광산 부지를 무상으로 임차했고, 1880~1897년 쿠톈테익을 비롯한 페낭의 복방 5대 성씨 엘리트와 신디케이트를 결성해 280만 달러를 투자하며 페락 전역에 걸친 일괄 징세청부권도 장악했다.
쿠톈테익과 청켕퀴는 라룻전쟁에서는 물론, 이후에 영국 식민지의 징세청부제 개편을 저지한 동지였다. 1875년 주석광산의 이권을 노린 싱가포르 거상과 영국인 주재관이 구역과 품목으로 나뉘었던 페락의 징세청부권을 통합하려 할 때였따. 페낭 건덕당의 자본가는 광산 운영자금 지원을 끊고, 라룻의 해산회는 광부 3,000~5,000명을 철수시켰다. 결국 식민 당국은 계획을 철회했고, 1876년 중반 라룻의 주석광산은 재개됐다. 1879년 9월 일괄 징세청부제를 둘러싸고 2차전이 벌어졌다. 다시 건덕당-해산회 동맹은 광부 파업과 광산촌 상점 철시로 맞섰다. 페락 최대 도시인 타이핑이 다시 마비됐다. 1879년 10월 3일 300~400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아침부터 영국인 주재관 휴 로의 관저를 에워싸고 개혁 철회를 촉구했다. 무장경찰이 동원되어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인 노동자 27명이 숨지고 23명이 다쳤다. 휴 로는 10월 4일 페낭 건덕당의 쿠톈테익과 해산회의 청켕퀴를 협상 테이블로 불러야 했고, 건덕당-해산회 동맹의 이권을 인정하고서야 분쟁을 마감할 수 있었다(Wong, 2007: 73~77).
청켕퀴는 1895년 자신의 75세 생일을 페낭의 새로운 거처에서 맞았다. 그는 라룻전쟁의 상대였던 의흥회의 페낭 본부 건물을 사들여 해기잔海記棧Hai Keep Chan이란 현판을 내걸고 자신의 거소이자 사무실로 삼았다. 페락에서 주석광산으로 거부가 되어 페낭으로 은퇴한 셈이다. 물론 청켕퀴와 페낭의 인연이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1860년대 후반부터 번 돈으로 페낭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조지타운 상가 밀집 지역의 주요 건물과 땅은 19세기 초 만해도 대부분 유럽인 소유였는데, 19세기 중반 이후 중국인 거부들로 주인이 바뀌었다. 청켕퀴는 그중에서도 큰손이었다. 비숍가의 상가엔 그의 이름을 딴 ‘아퀴빌딩Ah Quee’s building’이 큰 자리를 차지할 정도였다(GTWHI, 2015: 44).
청켕퀴는 20세 청년으로 처음 밟았던 페낭에 75세 노인으로 돌아왔다. 주석과 쿨리와 아편과 폭력으로 점철된 55년을 페락에서 보낸 그는 비밀결사도 불법이 되고, 30년 토아코 동지 쿠톈테익도 없는 변화한 페낭에서 ‘신사紳士‘로 거듭났다. 1850~1910년의 60년간 페낭 화인사회의 고액 기부자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Mak, 1987: 258~9), 복건 출신 거상 15명이 모두 4만 5,489달러를 기부했고, 객가와 광동성 출신 4명의 기부액은 1만 5,816달러였다. 페낭 화인사회의 특성상 복건 출신의 기부액이 많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객가와 광동 출신 고액 기부자 4명의 기부 총액 가운데 청켕퀴의 기부액이 92퍼센트(1만 4,516달러)를 차지했다. 방파를 막론하고 개인별 기부액 순위에서 청켕퀴가 단연 1위였다. 흥미로운 점은 복건 출신 고액 기부자 1위는 쿠톈테익이 아들 쿠훈양(8,480달러)이고, 2위는 쿠톈테익(6,854달러)이었다. 쿠 씨 부자의 기부액을 합하면 1만 5,334달러로 청켕퀴의 기부액보다 많다. 페낭 5대 성씨 가운데에서도 쿠씨 일족의 기부액이 가장 많다. 쿠톈테익은 페낭 화인사회의 통큰 자선가였지만 깡패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고, 청켕퀴는 신사로 우대됐다.
청켕퀴는 1901년 페낭의 저택 해기잔에서 숨을 거뒀다(ST. 1901. 12. 16). 그는 주석광산 부지는 물론 페낭, 페락, 홍콩, 중국의 많은 부동산 등을 유산으로 남겼다. 그의 넷째 아들 청타이핀이 가업을 이었다.
(270~276쪽)
아편과 깡통의 궁전 - 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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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isexperienc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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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만 잠귀가 밝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엄마가 곤히 주무시는 걸 확인한 뒤 양치를 하고 조용히 엄마 옆에 누웠는데 내가 옆에 누운 걸 어떻게 바로 알아 차리신 건지 매트에 불 키는 '딸깍'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매트에 불 넣었어."라고 말씀해 주신 뒤 바로 잠드신다. 잠드시기 전까지 내가 옆에 누우면 따뜻하게 해주시려고 내내 생각하시다 잠드셨으니 내가 눕는 인기척에 자동반사로 반응하시는 게 아닌가. 항상 자식 생각���인 어머니. 이게 어머니의 사랑인가 보다.
이번 구정 연휴엔 친구도 만나지 않고 집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이번엔 어쩐 일로 심심하지도 않고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나도 듬뿍 드렸던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시간을 더 많이 보내려고 노력해야겠다. 올해도 앞으로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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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s-of-seoul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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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서울역 오니까 젊은 시절 생각이 나. 나 젊었을 때만 해도 해태제과가 지금 삼성전자만큼 이름있는 회사였어. 그 회사에 들어가려고 인천에서 몇 시간 걸려 면접보러 온 게 기억이 나네. 게시판에 붙은 모집 공고를 보고 207명이 지원했는데 내가 1차를 통과한 10명 안에 들었어. 면접 보러 가는 길에 학창 시절에 인천 시장에게 받은 상이랑 3년 개근해서 받은 상장을 가져갔지. 그 전략이 통했는지 내가 합격했어! 207명 중 3명 안에 든 거지. 회사 생활이 재밌었어. 당시는 먹을게 궁해서 건빵 하나만 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거든. 그런데 나는 해태제과 사람이니까 초콜렛이고 비스킷이고 엄청나게 먹었지. 또 과자 제조 회사다보니 여성 직원이 많았어. 전형적인 여초 회사였지. 여자가 3천 명이면 남자는 수십, 기껏해야 백명 쯤 됐으려나. 당연히 많은 일이 있었어. 남녀가 한 공간에 있으면 꼭 그런 일이 생기지…” “(왼쪽) 아이고 이 양반아 거기까지만 해. 자식 자랑이나 한번 하고 끝내!” “(오른쪽) 아내? 해태제과에서 만났지. 나에게 여러 행운을 가져다 준 회사였어.”
* 이번 Humans of Seoul의 인터뷰는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 대체됩니다.
“(Right) Visiting Seoul Station brings back memories of my youth. Back then, Haitai was just as prominent as Samsung Electronics is now. I remember coming all the way from Incheon, which took a few hours, for an interview with Haitai. I saw the recruitment announcement posted on a bulletin board and applied to Haitai. Later I found that out of 207 applicants, I was among the top ten who passed the first round. I brought along an award I received from the mayor of Incheon when I was a student, as well as a certificate for my perfect school attendance three years straight. My strategy must have worked, because I made it! I was in the top three out of 207 candidates. Work was fun. I was so cash-strapped back then, a single dry biscuit brought me happiness. But as a Haitai employee, I could eat tons of chocolates and biscuits. As a snack manufacturer, the company had a predominately female workforce. For every 3,000 women, there were only a few dozen men–at most a hundred. Naturally, things that might occur when men and women are in the same space like that did…” “(Left) Goodness, enough. Just say something nice about your kids and wrap it up!” “(Right) My wife? I met her at Haitai. That company brought me lots of luck.”
* This week's interviews are presented as illust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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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kra35824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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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중학생 30명 공개 처형…
한국 드라마 본 죄
毒舌🗣📢
종북
좌빨 세력들은
이런 뉴스를 보고 뭘 느낄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30명이
좌빨 너들의 자식 이라도 느끼는
것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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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zzan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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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우리 엄마와 같은 상황이였더라면
내 자식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른아이라고 생각하고 자식 곁을 떠나간게 맞았을까? 돈이 아까워서 내 자식이 대학 안가기를 원했을까?
13년이 흐른 지금 요즘 자꾸 내 부모 탓하게 된다. 솔직히 원망스럽다.
이번에 추석에 내려가면 원망스러운 마음 꾹꾹 담으며 엄마 옆에서 추석 음식 해주고 있는 내 모습이 상상 된다.
초등학생 4학년을 코피 흘리게 싸대기를 때리던 아빠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먹는 내 조카의 모습을 보고 내 어릴 때가 생각이 나서 친언니한테 그런말 한 적이 있다.
“이런 애기를 우리 아빠가 때렸다는 게 이해를 못하겠어.”
내가 생각하는 우리 부모는, 아무리 생각해도 원망스럽다.
그래서 가끔 내 어릴 때, 그리고 지금의 나.
불쌍해서 울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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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case-blog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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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 게이트 엔딩 보고
엄청 기분 좋아서 온갖 소감과 상상 마구 써봄
두서 없지만 꼭 기록해보고 싶었음....
전투:
-지하에 숨은 엘더 브레인 찾을 때부터 윗도시 진입, 네더 브레인 전투 모두 아무 공략도 보지 않고 플레이함.
이미 스포당한 요소가 몇개 있었기 때문에 최대한 리얼 타임 긴장을 느끼고 싶었음.
그 결과 세이브 로드 몇 번 하긴 했지만 정말 내가 준비한 아이템과 스킬만으로 위기상황 전부 해결��서 굉장히 기뻤다
엄청 뿌듯했던 순간 두 개:
오르페우��가 카사스의 왕관 조종 마법 쓰는 동안 마법 구체 스크롤 써서 완벽하게 보호해줬을 때 - 오르페우스까지 5명 전원 무적 구체 안에 들어감. 정말 준비물 잘 챙겼다고 스스로를 칭찬함
네더 브레인 정신 속으로 침입했을 때 - 네더 브레인의 공격에 플랫폼이 무너지는 줄 전혀 몰랐어서 신속물약 부작용 때문에 탈진된 타브와 카를라크가 꼼짝없이 다음 턴에 부정한 구체 폭발 때문에 낙사할 상황이었다. 그 때 마침 염력 장갑 낀 레이젤이 미리 준비해둔 신속 물약 마셔서 염력 2번 사용해 두 명을 폭발 범위 밖으로 집어던짐… 짱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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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최종전에 와서야 보조행동과 그냥 행동
그러니까 동그라미 아이콘이랑 세모 아이콘 구분하는 방법 이제 와서 깨달음
지금까지 파란색 원형 게이지만 보고 판단했음
-아군 소환 제때제때 부르기가 어려웠음…
롤란과 키스라크의 도움을 쓰지 못한 게 아쉬움 마지막에 쓰려고 엄청 아꼈는데
네더브레인 위에 올라가니까 하필 화염 저항 있는 드래곤이 나와서 쏘질 못했음
게다가 피아구분 없는 폭격 같아서 잘못 겨냥했다 아군 죽을까 봐. 제블로어 불렀거든
그는 그래도 전사했지만
헬라이더 3인방 중에 제블로어만 전사한게 말이 되냐
손이 벌벌 떨렸음…
바로 전에 나 오늘 전사해도 괜찮다고 말한 사람이 진짜 전사해서 "플래그 회수한거냐고!!!" 비명지름
황제:
난 황제랑 잤음.
그리고 그 경험 때문에 배신하기로 결정함
몸 함부로 굴리는 타브 컨셉 플레이로 동맹으로서 호감을 표현한다는 기분으로 같이 잤는데 널 이만큼 믿는다는 의미로
이 자식이 그 일 목격한 동료들 기억을 싹 지우길래 굉장히 실망
이것까지 해줘도 너는 동료들 기억 주무르는 것은 양보할 생각이 없구나 싶어서.
와 쓰다보니 새삼 나 정말 과몰입해서 플레이했구나 깨닫는다.
그 전까진 목소리 멋있어서 두근두근♡했었는데 자고난 뒤로 감정 차분- 해져서 뭔 짓을 해도 별 감흥 못 느낌
예전에 발더란이었던거 깨닫고도 좀 놀라고 말았고…
그래서 마지막 컷신과 전투들 중에도 얘한텐 별 느낌 없었다. 모든 대사 ㅇㅋㅂㅇ~하고 넘긴 듯
오르페우스:
-이 분과 같은 편이 되기 위해 엄청난 설득과정을 거쳐야 할 줄 알았음. 그래서 레이젤도 데려감.
풀려나자마자 "이 일리시드랑 붙어먹은 놈!!!"이라고 극대노하셔서(fornicate라는 단어 분명히 들었음…) 아군되긴 글렀나 싶었는데 예상보다 엄청 쿨하시더라
심지어 타브가 일리시드 되기 싫다니까 본인이 일리시드 되심.
당신 일리시드 폼의 블랙홀 능력과 폭팔 스킬 정말 유용하게 잘 썼습니다.
이 분이 엘더브레인 막타도 치셨어요!
-모든 일 끝나고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지만
본인 자아 잘 유지하고 ��길래 살려주려고 "넌 죽을 자격 없다"(아마 원문은 you do not deserve~이려나)고 한 번 거절했는데
"이 몸에 갇히고 싶지 않아" "날 자유롭게 해줘" 라는 대사에 울컥해서 부탁 들어줌
"또 갇히고 싶지 않아"로 들려서… 그는 정말 오랫동안 감옥 살이한 사람이잖아…
레이젤:
-차마 곁에 계속 남아달라고 하지 못했음
오르페우스 일 때문도 있고… 기스양키의 해방이 레이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아니까…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타브를 해방자라��� 불러줘서 고맙고
야영지에서 실물로 만나지 못한 건 아쉽지만 평생 친구로 남을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야
-대부분의 장비를 기스양키 장비로 입혀줬었는데, 레이젤이 바알 신전 포로에서 풀려난 뒤로 타브가 입던 아다만틴 갑옷을 줬거든.
얼마 없는 중갑 착용 가능 친구에게 주는 선물로. 치명타 맞지 말고 너를 건드는 모든 사람 비틀거리게 만들라고…
드래곤에 올라탈 때 그 갑옷 입고 타브랑 찐하게 아이컨택해서 과몰입 오타쿠 감동 먹음
그 갑옷 다시 착용하지 않아도 우리 모험의 기념품으로 간직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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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라크:
약속대로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함.
마지막까지 타브에게 동료에게 사랑한다(I adore you)고 말해주더라… 정말 한결 같고 강한 마음가짐의 친구…
마지막엔 내가 엉엉 울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엄청 침착했음.
미리 이 이야기를 비극이라 부르지 말자고 마음 먹어서 그런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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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하트:
재회의 야영지에서 제일 먼저 대화한 친구. 냅다 껴안음.
어떻게 게임 그래픽인데 표정이 밝아진게 이렇게 잘 보일까? 감탄했어
셀루네 신전을 방문하기도 하지만 꼭 어떤 종교에 헌신하고 있는 것 같진 않더라. 이 점 굉장히 마음에 들었음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샤 신도들이 노린대도 섀도하트는 어떻게든 이겨낼 친구 같아서 별로 걱정 안 됨.
신나서 이거 정기 모임 만들자는 대사랑 Don't be a stranger! 대사 덕분에 빵끗 웃었다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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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일:
-최종전 준비하면서 엄청 걱정한 친구. 혹시 자살하려 들거나 왕관 먹겠다고 도중에 뛰어나오는 컷신 나올까봐 …
근데? 엔딩서 왕관은 걍 강 어딘가에 냅두는게 어때, 한마디 했더니 바로 신 될 생각 버리겠다네??
정말 기뻤음!!!
근데 왜…?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린거지…?
타브와의 호감도나 그간 대사 선택지에 따라 달라지나…? 최종 전투에 안 데려가서…? 뭐가 트리거였는지 전혀 모르겠음
하여간 정말 잘 됐음!!!
-이제 교수래! 환영학파 교수래! 난 너 방출학파로 써서 환영학 전혀 모르는데 하여간 잘 됐어!!
초청강연 제안하길래 파이터 특수 대사로 학생들 보고 신체 포기 각서 쓰면 간다고 함. 그랬더니 ㅇㅋㅇㅋ이러네
역시 웃수저 친구.
타라한테도 인정 받았으니까 타브 나중에 반드시 게일 집에 놀러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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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신:
고백받은 뒤로 할신 안 써서 우리 야영지 동료들 중에 할신 혼자 레벨 1이었거든
혹시 이거 때문에 다른 친구들 다들 뜨는 호칭이 안 떴나 스크래치도 뜨던데
혹시 미련 남은 건 아니겠지 싶을 정도로 칭찬하고 말 많이 해서 살짝 부담스러웠음…
하지만 오리 받고 그런 마음은 사라짐
나중에 저주 사라진 땅 꼭 확인하러 가고 싶어졌어 인겜에서 못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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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타리온:
정말 행복해보여서 다행이야…
말 이렇게 많이 하는거 처음 봄.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 특히 "나는 나야!" 말할 때.
너무너무 안아주고 싶었는데 옵션 안 떠서 아쉬웠음
예의 그 느���한 ""달링"" 인사로 대화가 끝났지만 전혀 억지 대사 같지 않아서 기뻤어. 너보다 화면 밖의 내가 더 환하게 웃었다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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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헤이라:
집은 찾았나? <<라는 질문에 깜짝 놀람.
계속해서 발더스 게이트는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npc 한테 집 소리를 듣다니!
그리고 엄청 툴툴거리지만 열심히 도시 재건에 힘쓰셔서 역시 츤데레… 중얼거림
여행 중에 "사랑했던 사람" 이야기는 하기 싫다고 해서 못 들었지만 자식 이야기는 더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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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스크:
파티에 길드 멤버 하나 잡아왔더라
길드랑 한 단어로 정의하기 어려운 아주 신기한… 관계가 되었나 보더라고 역시 마지막까지 예측불가의 사나이…
여행 중에 그랬듯 모든 야영지 동료들을 위해 한 줄 코멘트를 남겨줌…
민스크처럼 영원불멸할 것 같은 이미지의 친구는 또 없을 거다
���더스:
-나는 지하던전에서 위더스를 만나지 못해서 그가 직접 야영지로 찾아왔고, 위더스 능력도 거의 안 써서 서먹했음…
동료 소환 해본 적 없고, 직업 변경도 안 했고, 위더스가 누구 부활시킨 적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걸
그런데 야영지 파티에서 말 거니까 카를라크를 먼저 언급해주더라
농담도 해주고… 카를라크의 영혼은 누구보다 밝게 빛날 거라고 말해줘서 감동 받음… 이런 성격이었어???
앞날에 부와 행운 등등 그리고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만이 있기를 바란다는 축사까지… 마지막에 의외의 감동을 선물해줘서 고마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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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데드라서 우리보고 필멸자라 부르는 줄 알았더니
데려온 바드가 뭔가… 신? 이랑 관련된 사람 같고(나도 타브도 종교 굴림 실패함. 시어릭이랑 방랑계가 어쩌고 그랬는데)
삼악신 벽화 보고 의미심장한 코멘트 남기는 것을 보니 얘도 쵸즌이거나 신의 그릇일지도??
이런건 이미 많은 팬들이 추측글 써줬겠지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대사보고 혹시 당신이 발더란의 노래(엘프의 노래 여관의 배경음악) 작사가임?? 하고 물어보고 싶어졌어
윌:
세이브 파일 3일차의 남자. 로맨스 상대. 대공 윌…
대공 루트가 윌의 승천인줄 알고 걱정 많이 했음. 이게 일종의 타락이 아닌가 싶어서
그런데 엔딩 끝나자마자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선 [1. 장례식&추모식. / 2. 도시 건물 재건(판잣집 말고 제대로 된 집들로)] 읊고
그리고 내 마음은 언제나 ��경frontier을 향한다고 말해줘서 당분간은 걱정 안해도 되겠다 싶었다…
젊을 때 개혁 팍팍해놓자 윌.
나중에 네가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정치인은 그런 존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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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브:
-재회의 야영지에 엄청 멋진 복장을 입고 나타나서 내가 다 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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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이 재회의 야영지에 의회 의원 자리 제안해줬는데 고맙지만 사양한다고 했음.
매력8 능력치로 정치인은 무리이거니와
부부가 둘 다 정치하면 애는 누가 키워!!!
-캐릭터 만들 때 별 생각 없이 부랑자 출신을 골랐는데 엔딩 보고나니 그 출신 설정에 맞게 각종 캐릭터 설정 상상한 나를 발견함.
이런 경험 처음이야! 엄청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지금 엔딩 봐서 엄청 흥분한 김에 타브 미래 상상 몇 개 적어놔야겠다 싶음.
-마지막 전투 이후 6개월 동안은 윌의 [1. 장례식&추모식. / 2. 도시 건물 재건]과 살림 마련에 집중,
이후 결혼식 없이 신전에서 소식 받은 뒤로 바로 아이 입양…
프러포즈를 도토리로 한 남편 둔 사람이다. 우리 타브 성대한 잔치에 욕심 없어.
자기 어렸을 때 자기 옆에 오래 있어준 어른은 없었기에 완전 딸바보 아빠될 듯.
애 사춘기 때 되면 좀 싸우겠네
애 다 클 때까진 윌이랑 주말부부처럼 살 것 같다.
직접 지은 집에서 딸이랑 함께 살 것 같아…
딸 일단은 타브 집에서 살다가 좀 크면 윌 집이랑 타브 집 왔다갔다 하며 지낼 듯.
-본격 정치는 안 하는데 가끔 귀족 사교 무도회나 각종 사회 행사에 참여는 할 듯…
정계에는 없는데 발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사람 되어있을 듯…
-나이가 더 들면 종교가 생길지도 모르겠어. 열린 손 신전 가지 않을까.
머리는 길러서 묶을 것 같고, 백반증이 심해져서 손 말고 얼굴에도 반점이 더 생길지도.
그리고 근력 능력치는 20이하로 내려가고 npc 기본 매력 능력치 10까지는 오를 것 같다
-딸이 자라 독립하면 윌이랑 살림 합치고… 여행을 자주 다닐 것 같네
혼자 갈 때도 있고, 딸이랑 같이 다녀올 때도 있고, 윌이랑 다녀올 때도 있고…
주로 친구들이 있는 지역으로 다녀올 듯
하지만 항상 발더스 게이트로 돌아올 거야 이 친구 드디어 자기만의 집을 꾸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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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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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리아 Mandria"
로베르또 삐르뽀는(Roberto Firpo)는 마토스 로드리게스가 작곡한 '라 꿈빠르씨따'를 초연한 사람으로 역사에 남았지만, 땅고 태동기(=과르디아 비에하)에 쁘란씨꼬 까나로와 함께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기도 하다.
가장 큰 공헌은 플룻, 클라리넷, 기타, 바이올린의 초기 악기 구성에서 기타를 대신해 피아노를 도입하고 베이스를 추가해 이른바 '오르께스따 띠삐까' 확립에 일조했단 점을 들 수 있을 듯.
근데 이 과정에서 꽤 살벌한 사건이 모 땅고 연주 대회에서 있었다고 '탱고 스토리 : 우리를 춤추게 한 악단' 143쪽에 나옴.
"….피르뽀는 바이올리니스트인 띠또 로까따리아파(Tito Roccatagliata), 자칭 반도 네온계의 호랑이라는 젊은 반도네온 연주자 에두아르도 아롤라스(Eduardo Arolas)와 함께 임시로 트리오를 결성해 대회에 참가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결과는 기타리스트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이 곧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르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해나로 그룹의 한 기타리스트는 화를 참지 못하고 피르뽀를 향해 무대 위로 올라갔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척하며 다가가 뒤에서 칼로 피르뽀를 찔렀다. 피르뽀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미국 서부에서 소 키우는 사람을 카우보이라고 하듯, 알젠틴 팜파스에는 가우초(Gaucho)가 있었다. 서부가 총잡이의 시대였다면, 가우초는 채찍과 단검을 소지했다고 함. 마초적인 가우초 전통을 계승한 도시 건달을 꼼빠드레(=Compadre=Godfather=대부)라 불렀고, 이들을 따라 하던 동네 날라리를 꼼빠드리또(Compadrito)라 했다. 이들이 한껏 멋을 내고 밤거리를 배회하며 술집 여성과 창녀를 꼬셔서 땅고를 춘 것. 그래서 채찍은 무리지만 단검을 들고 다니는 놈들이 많았기 때문에 종종 이런 사고가 일어났던 것 같다.
땅고 음악 중 1926년에 후안 로드리게스(Juan Rodríguez)가 작곡한 '만드리아(mandria)' 가사를 번역기 돌리면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Tome mi poncho… No se aflija… ¡Si hasta el cuchillo se lo presto! 내 판초를 가져가… 걱정 마 칼도 빌려줄게!"
스페인어 사전에서 'mandria'를 검색하면 "게으름뱅이"라고 나오지만, 룬빠르도(구식 알젠틴 속어)로 "나쁜 자식(=Mal Compañero)"이라고 함. 즉 제목 자체가 결투 상대를 의미하는 듯. 왜 싸우러 가야하는지 확실하게 나와 있진 않지만, 아무튼 "네가 죽던가, 내가 죽던가"라는 살벌한 내용.
최초 녹음은 역설적이게도 삐르뽀가 1927년에 했고, 밀롱가에선 다리엔쏘 악단이 1939년 녹음한 것이 최고 인기.
삐르뽀 이분은 칼에 찔린 거 외에도 인생 더럽게 꼬인 뒷얘기가 두개 더 있다. 우선 거의 전재산을 투자해 목장주가 됐는데 이듬해 홍수가 나서 쫄딱 망함. 그리고 남은 재산 긁어 모아 주식 투자했다가 또 실패. 하는 수 없이 다시 땅고 연주자 생활 시작. -_-a
https://youtu.be/lLKoAS_9O5Y "Roberto Firpo - Mandria"
https://youtu.be/AlXbMbK-j1g "Juan D'Arienzo - Mand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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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le2nd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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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콜라를 먹으면서
야, 사람 만나는 거, 그것도 알고리즘이야, 좋은 사람 만나는 사람은 계속 좋은 사람 만나고 나쁜 사람 만나는 사람은 계속 나쁜 사람 만난다. 그러니까 너는 좋은 사람 만나면 깽판 치지 말고 오래 만나라. 그래서 좋은 사람 만나는 사람 되도록 해. 씨부럴, 내가 지금 누구한테 뭐래, 난 어떻게 감정의 대표가 분노냐. 뻑하면 열받고 뻑하면 꼭지 돌아. 근데 여긴 나무가 다 크리스마스트리 같다. 다 초록이고 다 눈이 쌓였어. 멀리서 보면 나도 나무 같겠다. 초록 목도리 둘렀잖아. 솔직히 내가 그 자식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치? 그 자식이랑 헤어지고 누굴 안 만나서 좋아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야. 그치? 야, 그리고 네 말대로 긴 인생 놓고 보면 이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나중엔 기억도 안 날걸. 근데 그 인간이 웃기긴 했어. 신이 외계인이란다. 뭔 또라이 개소린가 했는데 요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생각해봐. 나타나질 않잖아. 근데 그러려면 외계인이어야지. 눈에 안 띄기 어디 쉽냐. 신도 SNS는 할 거 아냐. 뭐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고, 외계인이��� 뭐든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히 못생겼을 거야. 그만 가자. 나 이제 정신 돌아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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