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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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핫플된 광안리, 임대료도 폭등 ''젠트리피케이션 우려'' 이미지 텍스트 확인 현장출동 광안리도 전트리피켜이선 DL NSPES 현... https://imgtag.co.kr/issue/821758/?feed_id=1887780&_unique_id=674b9eca0eb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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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어제 마르첼로 오보에 협주곡에 관해 쓴 글 올리면서 이대 상권 얘길 잠깐 했더니 문득 젠트리피케이션 생각이 나서.
오늘날 홍대 주변은 원래는 비싼 신촌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있던 곳이었고, 무허가 분식집이 줄지어 늘어서 있던 동네였다.
1990년대 초 TV에서 '에스콰이어 포트폴리오' 광고에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한 '널 원한 내가 바보네(=I'm a fool to want you)'가 대박치며 난데없는 재즈 열풍이 홍대와 압구정동 일대를 휘몰아치자 홍대 '스테레오 파일', 청담동 '카멜롯' 같은 재즈 공연 전문 카페가 들어서는 기현상이 생겨났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시기를 홍대 젠트리피케이션의 시발점으로 기억.
덕분(?)에 갈 곳 잃은 가난한 예술가들은 합정동, 상수동을 전전하다 아예 강 건너 문래동으로 넘어갔다 들음. 지금은 거기도 나름 들썩이는 거 같던데.
연남동은 과거엔 기사 식당과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식당이 늘어서 있던 동네라 순대국이나 돼지불백에 소주 사 먹던 동네로 기억. 여기가 현재처럼 뒤바뀔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집에서 외출할 때 2호선 구의역을 자주 이용한다. 요즘엔 성수역에서 어린 처자들이 상당히 많이 타고 내리더만. 내가 어릴 땐 골목마다 쇳가루, 아크릴 냄새가 진동하던 공장 지대였고 밤에는 상당히 으슥했던 우범 지역이었는데, 서울숲이 들어서면서부터 서서히 바뀌기 시작해 지금은 꽤나 핫플레이스가 됐다.
뭣보다 '경리단길'이라 불렸던 지역의 변화가 가장 극적이었던 것 같다. 가파르게 올라간 임대료로 인해 가장 빨리 흥한 뒤 얼마 안 돼 망했다. 죽음(?)의 거리로 변해버린 이대 앞, 경리단 사례를 보더라도 한 번 올라간 월세는 쉽사리 내려오질 않는 듯.
코로나를 거친 후부터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요즘 밥값�� 만 원이 평균이다.
같은 음식이라도 내가 사는 동네에 비해 상권이 흥한 곳은 적게는 1~2천 원, 많게는 몇천 원씩 비싸다. 이 차액을 가져가는 사람은 식당 주인이 아니라 건물주라고 느낀다. 내 눈엔 식당업 하는 사람이 소비자로부터 돈을 걷어서 건물주에게 갖다 바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불로소득으로 매달 많은 돈을 챙긴다.
일하는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얻어야 하고, 장소를 빌려만 준 사람은 덜 가져가는 게 정상일 거 같은데 지금은 비상식이 상식인 세상이 돼 버렸다.
복잡한 자본주의 구조를 내가 뭘 알겠냐만, 단순한 머리로 궁리해 봤을 때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월세를 건물주가 정하게 하지 말고 입주민의 월 매출에서 일정 비율을 월세로 지불하는 매출연동제로 전환하는 것밖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같은 음식을 임대료 때문에 더 비싸게 먹어야 하는 황당함은 사라지지 않겠냐는. 물론 현 체제에선 사실상 불가능한 꿈같은 얘기.
그럼에도 식당은 값싼 재료로 만든 음식을 비싸게 팔아야 하고, 비싼 돈 내고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소비자는 열받아서 안 가고, 식당은 장사가 안되더라도 월세는 밀리면 안 돼 허덕이는 현대판 소작농의 삶만큼은 어떻게든 개선돼야 하지 않냐는 생각이 몇 주 전 연남동 밤길을 거닐던 중 한창 영업 중이어야 할 시간에 죄다 불이 꺼져 있어 과거 음침했던 곳으로 회귀한 듯한 지역을 지나며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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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연대하는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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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7월 26일부터 파리에서의 세 번째 올림픽이 시작된다. 지난 올림픽의 개최지이자 새로운 올림픽을 맞이하는 파리에서 이 행사의 부정적 영향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이들, 특히 노동자 계급이거나 가난하거나 인종���별에 직면해있거나 이주민이거나 집이 없는 파리 사람들과 우리는 연대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 올림픽 개최지마다 많은 이들이 배제되거나 쫓겨나고, 도시 ‘미화’라는 이름으로 취약계층에 대한 감시와 구금이 반복되는 것을 목격해왔다. 파리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개막이 다가올수록 이주민들의 임시 주거지에 대한 경찰의 강제퇴거는 극심해지고 있다 . 이들 중에 상당수는 버스에 실려 먼 지역으로 쫓겨나서 기존의 관계망이나 사회적 서비스와 단절되었다.
이러한 경찰의 행태는 기시감을 불러 일으킨다. 도쿄의 메이지 공원과 미야시타 공원에서, 2022 슈퍼볼을 앞둔 로스엔젤레스의 잉글우드 지역 경기장 인근에서, 리우데자네이루 거리에서, 런던, 밴쿠버, 애틀랜타, 시드니, 그 외 수많은 개최지에서 자행된 강제퇴거를 떠올리게 한다. 생드니(Saint-Denis)와 생투앙(Saint-Ouen) 지역에는 2024 파리올림픽 선수촌 건설과 연계된 그랑파리 개발사업으로 인한 부동산 투기가 집중되며 노동자 계층의 주민들이 점차 더 많은 이주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각각의 커뮤니티마다 올림픽에 영향받는 정도는 다르지만, 올림픽의 약탈적 땅뺏기로 소중한 녹지가 파괴되는 문제는 모든 파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오베르빌리에(Aubervilliers)의 오래된 커뮤니티 텃밭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고, 올림픽 미디어 빌리지가 들어선 에르드방(Aire des Vents) 주립공원은 콘크리트로 뒤덮혔다. 올림픽을 명분삼아 프랑스 정치인들이 기존의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무력화하며 도입한 유럽연합 최초의 인공지능 활용 감시 및 치안 체계는 모든 프랑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근사한 개막식의 ‘보안’을 위해 센 강 부근에는 전례없이 대규모의 보안장벽이 세워지고, 파리 사람들은 자신의 도시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접근할 권리를 침해받는다.
지금도 끄떡없는 프랑스 제국주의 덕분에 올림픽 주최측은 서핑 경기가 열리는 타히티의 테아후푸(Teahupo’o)에서 새로운 심판석 타워 건설을 강행할 수 있었다. 타히티 사람들은 산호 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공사에 명백히 반대 의사를 표명했으나 주최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부자들의 잔치에 불과한 ‘올림픽’을 활용해 우리의 권리와 삶을 짓밟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당당히 명시하는 가치와는 정반대로, 갈등을 심화시키는 국가주의는 엄청난 비용을 소요하는 올림픽이라는 잔치를 통해서 한층 악랄해진다. 이번 올림픽은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영토, 그리고 문화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을 가려주는 스포츠 워싱으로 활용된다. 우리 정부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자금지원 등으로 이러한 폭력에 공모하고 있다. 우리의 투쟁은 강탈, 제국주의, 자본주의, 그리고 경찰국가에 맞서는 이들과 함께한다.
‘더 빠르게, 높게, 강하게’라는 올림픽의 모토는 더 느리고, ‘낮고’, 약한 이들이 무가치하다는 관념을 강화한다. 이는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의 장애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엘리트중심주의 관념을 표명하고 재생산한다.
올림픽 기계는 폭주기관차처럼 비인간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으로 개최지 사회에 작용한다. 우리는 ‘약탈 2024(Saccage 2024)’를 포함하여 파리, 생드니, 마르세유, 타히티 등지에서 올림픽 기계에 맞서는 모든 이들과 연대한다. 당신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이다. 또한 우리는 국경을 넘어 올림픽에 맞서는 국제적 활동을 강고히 이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파리와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강제이주와 젠트리피케이션, 경찰의 억압, 환경파괴, 그리고 노동자 착취를 단호히 거부한다. 올림픽은 어디에도 필요없다. 올림픽을 폐지하라.
7월 26일을 앞두고 파리, 도쿄, 로스앤젤레스, 서울 등지에서 올림픽 반대 행동에 참가하자. 당신이 있는 어느 곳에서도 연대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자. 함께 #NOlympicsAnywhere 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노올림픽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반대모임 (도쿄) 평창올림픽반대연대 와사치 세입자 연합 삿포로 올림픽・패럴림픽 대응 시민 모임 올림픽이 필요없는 사람들 네트워크(나가노) 올림픽 재해를 거절하는 모임(도쿄) 삿포로 올림픽 대책실 지속불가능한 올림픽 위원회 (밀라노) 노올림픽 (알프스 프랑스 권역) 카운터 올림픽 네트워크 (런던) 멸종저항 몽블랑 멸종저항 안시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들(DSA)-로스앤젤레스 Salt Lake Community Mutual 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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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21.09.06 - 21.09.30 작가 : 이주엽, 김형경, 공명성 장소 : 아이테르(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전시 시간 : 10:00 - 18:00 장르 : 회화, 비디오아트, 설치 PS : 관람 후 전시의 여운을 느끼며 바로 옆 #매축지마을 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 작가노트. 부산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문화 소비 공간에 대한 수요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도시 상권이 아닌 새로운 상업 공간들이 형성되었다. 문화와 관련된 예술가, 소규모 자영업자 등의 유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이 새롭게 부여된 상업 공간이 늘어났고 변화하는 젊은 세대와 중산층의 소비 패턴과 맞물려 성공적인 지역 재생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끝을 모르는 개발은 영세상인, 그들 스스로 만든 상권에서 내몰리게 하였고, 공간의 정체성을 가져다 주었던 예술가와 원주민의 전출을 야기하는 부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 1. 전포카페거리(부산진구) - ’09년 이후 대우버스의 울산 이전으로 발생한 빈 점포에 바리스타, 쉐프 등 유입 - ’17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세계명소 48위 선정되면서 급부상 2. 광복로(중구) -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로 방문객 증가 시작 - 최근 국제시장, 부평깡통 야시장 활성화 등을 기점으로 임대료가 급상승 3. 중앙동 40계단 일대 예술공간 (중구) - 시청사의 이전으로 급격히 쇄락함에 따라 문화지대로 ’10년 또따또가를 조성 - 40계단 일대 예술공간 주변 음식점과 사무실 등 입점과 맞물려 매년 매매가, 임대료 상승 4. 감천문화마을 (사하구) - 이국적인 정취와 독특한 장소성을 가진 마을로 지역 예술가 주축으로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 유치 - 방문객 급증 및 주택 공시지가 상승 <젠트리피케이션 예상지역> 1. 온천천카페거리 - 온천천이라는 도심하천과 카페거리가 만들어내는 ��특함으로 휴식공간 조성, ’13년부터 본격적으로 상권이 형성 - 주택개조와 신축이 진행 중 2. 흰여울문화마을 - ’14년부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지역으로 선정 - 주택공시평균 상승, 거주인구 감소 이러한 현상은 지역 개발이 완성된 시점에서 새로운 상업 지구의 개발보다 낙후 지역에 대한 재개발을 통한 재활성화를 통하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 때문에 일어나며 결국 초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던 주택지 기반의 재생과 문화적 재생 지역 역시 의미를 잃게 만든다. 저소득층의 원주민 퇴출과 영세한 소규모 자영업자로 이루어진 동네 상권이 붕괴되는 등 부정적 외부 효과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부산은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즉 작은 역사를 잃어간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지역주민들과 예술가들이 간절하게 만들어낸 공간에 로컬과는 상관없는 기업이 들어온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 아래로 묻히게 되고 지역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숨을 불어넣은 공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목숨을 건 염원들은 오늘도 돈 몇 푼으로 물거품이 되어간다. - 작품설명 제목 : 비디오1 설명 : 시간이 지나며 환경이 바뀐다. 자연스레 환경도 바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모우기 위해 사람이 물러난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은 돌고 돈다. 지금은 번화가인 이곳 또한 훗날 돌고 돌아 초심으로 돌아갈 때가 있을 것이다. 영상에서는 내몰린 지역 주민들 혹은 예술인들의 터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곳 또한 누군가의 아늑한 집이었으며 작업 공간이었을 것이다. 허나 자본이 들어오고 지역인들의 둥지 내몰림 현상이 대두되며 이슈를 만든다. 사람을 모우기 위해 사람이 떠나가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에 호기심을 가졌다. 영상에서 어떤게 좋고 나쁘다를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관찰하고 궁금해할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목숨”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 환경 또한 이 “목숨”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또한 사회의 일부이며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든다. (중략)(범일동 진시장에서) https://www.instagram.com/p/CUY0WyIpvVi/?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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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펭귄] 07. 왜 '뜨는 동네'가 되면 가게들은 떠나야 하는 걸까?
[퍼스트 펭귄] 07. 왜 ‘뜨는 동네’가 되면 가게들은 떠나야 하는 걸까?
2018.11.01
https://together.kakao.com/magazines/978
‘퍼스트 펭귄 캠페인’은 펭귄 무리 중에서 제일 먼저 검은 바다로 뛰어들어 다른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는 ‘퍼스트 펭귄’과 같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과 제도에 대해 처음 목소리를 낸 시민들과 ‘공익단��’들을 알리는 캠페인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퍼스트 펭귄’들의 스토리가 연재됩니다. 함께 응원해주세요! 본 기획연재는 카카오같이가치와 서울시NPO지원센터가 함께 합니다.😀
어느 날, 나만의 단골집이 사라졌다?!
혹시, 나만의 단골집을 잃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느 날, 즐겨 찾던 작은 커피숍이나 식당이 있던 자리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서는 경험을 해보셨나요? 주목받지 못하던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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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trification #젠트리피케이션 (at 자양동 어딘가) https://www.instagram.com/p/B56U3gMFjJf/?igshid=ebfgf0me2i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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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_libre 의 원두를 내 도구로 처음 내려봄. 맛이 좋았음. First coffee brewing of coffee libre's beans by my tools. #snap #coffee #café #coffeehouse #cafeteria #bw #bnw #monochrome #gray #noirblanc #seúl #seoul #korea #corea #스냅 #커피리브레 #석달둥지 #맥파이 #꽃밭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커피 #흑백 #흑백사진 #달의뒷편 #스튜디오달의뒷편 #예술집단달의뒷편 #brewing
#café#bnw#snap#스튜디오달의뒷편#seoul#석달둥지#커피#korea#맥파이#cafeteria#gray#스냅#coffeehouse#noirblanc#monochrome#젠트리피케이션#달의뒷편#꽃밭#예술집단달의뒷편#흑백사진#gentrification#seúl#커피리브레#coffee#brewing#corea#bw#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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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입구 남문 가학루 옆, 120년 역사를 안은 울산우체국에 갔어요. 옛날 그대로 남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도심 문화의거리를 걸으며 늘어난 빈 점포를 보며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임대인과 협상이 잘 안 돼 가게를 포기한 이웃이 또 있습니다. #동헌 #가학루 #울산우체국 #원도심 #문화의거리 #도시재생 #젠트리피케이션 #임대인 #협상 #빈점포 #120년역사 #울산우편국 #울산중구 #울산중구골목 #울산골목안 #중구여행 #중구뉴스기자단 #중구뉴스 #큰애기SNS서포터즈 #울산읍성길 (울산업사이클체험카페에서) https://www.instagram.com/p/Bs7lSNRF2BQ/?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2xg8p3bar730
#동헌#가학루#울산우체국#원도심#문화의거리#도시재생#젠트리피케이션#임대인#협상#빈점포#120년역사#울산우편국#울산중구#울산중구골목#울산골목안#중구여행#중구뉴스기자단#중구뉴스#큰애기sns서포터즈#울산읍성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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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가 되고-안되고를 떠나 팔첩병풍 같은 글쓰기가 재밌. 머릿 속에 잊혀졌던 이름 하나가 나타났고. 즐찾.
https://colleague.co.kr/forum/view/458235
힙스터리즘, 우리의 취향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을 때
by. gkd
힙스터라고? 이제 진부한 말처럼 들리는 자기고백이긴 하지만 굳이 힘주어 말해보자면, 나는 힙스터가 아니다. 구태여 이 자리에서 내가 내 모습을 일일히 열거하며 힙스터의 라이프 스타일 혹은 나의 삶에 대한 흉을 볼 필요는 없으니, 이에 대해선 알아서 양해했으면 좋겠다(문신도 하지 않았고, 전염병처럼 번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의해 인스타그래머들을 유입시키는 공간에 잘 가지도 않고, 등등). 이 글에선 힙스터의 라이프스타일보다도 대중음악 안에서의 힙스터리즘에 대해서 다루고 싶다. 특히 나 자신이 00년대 피치포크가 하이프한 인디록 밴드들을 듣고 자란 세대로서 10년대 이후, 인디록이 어떤 방식으로 종언을 맞게 되었는지를 회고할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벌어진 인디음악의 파산은 한국의 힙스터 의미 수용에도 변화를 일으켰는데, 나는 10년대를 기점으로 힙스터의 의미가 한국에서 점점 변화하는 걸 마주했다. 이를테면 내가 ‘힙스터’라는 낱말을 접한 건 듀나게시판에서 읽었던 김사과가 프레시안에 투고한 서평이었고, 이후 (김사과의 서평이 제재로 삼았던) ‘n+1’에서 나온[힙스터에 주의하라] 국역본을 통해 의미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책이 주장하는 젠트리피케이션-힙스터라는 도식은 힙스터에 담긴 뱀파이리즘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강조했다. 이는 곧 힙스터-헤이팅의 근간을 이루는 힙스터 자체의 유독성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6년이 지난 이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힙스터 핸드북’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후 이즈 힙스터]라는 책에선 마주한 힙스터는 내가 알고 있던 힙스터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국에 정착된 힙스터의 의미는 서구보다도 훨씬 범위가 넓고 유독성도 옅어졌다. 힙스터라는 낱말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그것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것일까? 물론 ‘힙스터’가 본토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번역으로 인한 본래 의미에 탈각이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힙스터의 의미가 보다 근본적으로 변한 탓에 일어난 현상에 가깝다고 주장하고 싶다.
질문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왜 이 단어의 의미는 이런 방식으로 변했을까?
먼저, 타자를 착취하는 악독한 힙스터를 봐야 한다.
힙스터라는 단어에 포함된 유독성은 그들이 활용하는 전유라는 방법론 때문이다. 노먼 메일��는 [하얀 흑인 : 힙스터에 관한 피상적인 성찰]에서 2차 세계 대전 이후, 서구세계와 자아, 실존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던 백인들이 흑인 문화에 의태해 ‘흑인 문화’의 소수자성과 윤리성을 제 삶에 이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백인과 흑인 간의 인종간 위계관계에서 발휘되는 역학이 힙스터리즘의 주요한 에너지원이었다. 백인이 ‘흑인 문화’를 전유한다는 데 힙스터 본래의 성격이 담겨있던 것이다. 이를테면 XL레코딩스의 리처드 러셀은 은둔한 길 스콧 헤런의 앨범을 제작했고, 데이먼 알반은 펠라 쿠티의 드러머인 토니 알렌과 앨범을 만들었다. 이 같은 사례를 보면, 힙스터와 문화적 타자 간의 역학관계는 조금 더 분명히 보인다(찰스 브래들리의 뒤늦은 부상도 있지 않은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 역학관계는 실상 문화적 발굴행위, ‘디깅’으로 일반화됐다. 00년대 블로거스피어의 시대에 디깅은 'zip'과 '소울식' 같은 불법 음원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더 용이해지고, 더 드라마틱해졌다. 원오트릭스포인트네버가 무명음악가인 루이스(lewis)를 굿타임 사운드트랙 보컬로 초빙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결국 이 곡은 이기팝에게 갔다).
루이스는 앨범을 사비로 내고는 여느 무명 가수들이 그렇듯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지하 속에 묻혀있던 루이스의 이름은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존 머피라는 음반 수집가가 벼룩시장에서 루이스의 앨범을 그야말로 우연히 구입, 앨범을 듣고는 위어드 캐나다(Weird canada)라는 음악 블로그를 운영하는 친구에게 소개했다. 루이스의 앨범은 위어드 캐나다(Weird canada)에서 소개되며 큰 호응을 얻게 됐다. 이런 스토리는 힙스터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이다. 이에 대한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질 수 있을텐데, 짐 오루크가 주디 씰 앨범을 프로듀싱한다거나, 스톤 쓰로우에서 개리 윌슨의 앨범을 내는 것도 위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를 발굴해 현재에 근사한 상품으로 재가공하는 힙스터리즘의 역학관계는 ‘서칭 포 슈가맨’을 통해서 보다 극적인 형태로 대중의 눈 앞에 나타나게 됐다.
이처럼 대중음악과 영화는 리스트를 통해 취향을 갱신하는 소비자의 내성과 함께 움직였다. 그 소비자는 제 인격을 디거, 시네필이라는 특수한 자의식의 거푸집으로 진화시켰다. 그런 주체형이란 결국 자아 내면의 지도에 예술작품을 배열하는 것과 동의어다(2004년 서울 극장에서 나는 이 영화를… 어디서 나는 이 앨범을 샀는데…). 동시에 이것�� 자신의 자아를 애정하는 나르시시즘의 일환이지만, 타자에 대한 애착이 온전히 자아에 애착 대신에, 즉 자신의 자아가 외부의 위대한 예술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획득한 나르시시즘이기도 하다. 이것은 불완전한 자아가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위대한 예술을 찾아 나서는 교양소설의 서사를 연상시킨다. 자아와 예술 작품을 중개하는 인터 존이 저널리즘이다. 대중음악/영화 저널리즘은 작품에 별점을 부여하여 위계를 가르고, 작품을 위한 성전을 꾸린다. 시공간을 통합하며 1~100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저널리즘의 리스트는 작품의 자율성을 보전했다(이는 그린버그 식의 형식적인 자율성만으로 볼 순 없다). 이때의 자율성이란, 크라우트 락 밑에 프리재즈 음반이 자리하는 풍경을 가리킨다. 음반이 놓인 역사적 맥락과는 무관히, 한 음반은 다른 음반과 동등한 위치에 선다. 이런 자율성 아래 저널리즘이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인 디깅, 작품 발굴이 가능한 것이다.
한때 우스개소리로, 백인 힙스터는 흑인들이 듣지 않는 흑인음악, 동아시아인들이 듣지 않는 동아시아 음악을 듣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러한 플레이리스트란 월드뮤직, 제3세계 음악이라는 다소 역겨운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로 인해 팝음악의 공진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이 공진화를 가능케 했던 자율성, 혹은 전유의 토대가 바로 유독성의 배출구다. 유독성은 전유로부터 비롯된다. 전유는 타자의 문화적 발언권을 교묘히 왜곡해 제 몫으로 만든다고 간주되기 때문에 모두에게 비난받는다. 백인이 앉아있는 보편의 자리에서 타자성을 에너지원으로 길어올리기 때문이다. 보편과 특수 사이의 이 간극은 취향의 아카이브를 작동시키는 허구적 장치다. 이 장치는 때로 타자의 이미지와 언어를, 무자비하게 착취하고는 내던지고,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힙스터리즘은 맹렬한 비난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00년대의 실험적 인디음악은 보편과 특수 간의 낙차를 영리하게 활용했다. 피치포크 하이프의 대상으로 거론되던 밴드들은 대체로 인종 간의 낙차, 과거와 현재의 낙차를 활용했다. 애니멀 콜렉티브가 노골적으로 참고하는 선 시티 걸스의 경우, 민속음악의 사이키델리아를 실험적으로 번역하고 있다. 선 시티 걸스의 리더인 앨런 비숍은 아예 중동 및 아프리카 음악을 배급하는 서브라임 프리퀀시스라는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에이리얼 핑크는 과거와 현재의 낙차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케이스로, 그는 대중음악의 쓰레기통에서 악취 나는 음악을 골라 부활시키는 영매였다. 반짝 스타로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바비 제임슨에게 헌정하는 “Dedicated to Bobby Jameson” 만 봐도 그렇다. 에이리얼 핑크의 히트곡인 “Baby”는 대중음악의 저수지 저 밑에 가라앉아있던 에머슨 형제의 원곡을 커버했다. 다만, 그들이 문화적 아카이브에서 레트로한 과거를 평균적 태도로 재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현재 시공간의 외부와 과거, 다시 말해 라가나 아프로 훵크 같은 민속음악과 음악사 밑바닥에 매장되어 있던 팝음악의 유물을 인디록의 실험으로 치환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이를 통해 그들은 취향을 통한 실재로의 진입을 꿈꿨고, 일정 부분은 성공을 거뒀다. 다만 그것의 대가는 시간이 갖고 오는 잔혹성이었고, 이를 버텨내기 위해선 인디록은 진정성(혹은 그것의 짝패로서 유희적 자아)를 드러내야만 했다. 이것들이 부서지면서, 인디록은 파산을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 인디록의 자아, 진정성에 대해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취향과 자아의 파국적 관계를 그린 modern_kbox의 <짐 오루크-기능?>을 참고해도 좋다.
(news.karts.ac.kr/?p=7884)
젠트리피케이션이 사악한 것처럼, 전유라는 방법론이 악독한 것처럼 힙스터는 문화적 타자를 규정하고, 그들을 착취하는 사악한 인간이다. 환언하자면 교양소설의 주인공으로서 향유자는 음반점을 들락날락 거리고 영화관에 쥐새끼(다네)처럼 숨은 독신기계에 불과하다. 그 탓에 겉으로 보면 교양소설적 자아처��� 보이는 힙스터적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문화적 타자를 착취하는 채굴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독성이 베어있을 수밖에 없다.
붕괴하는 힙스터리즘, 힙스터가 주류가 됐을 때
그러나 근래에 들어서 유독한 주체형, 힙스터,시네필, 디거, 뭐라 불러도 좋으니 스노비즘의 시대가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징후들이 눈에 보이고 있다. 최근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한국 인디 음악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인류의 최전성기에 어린 사람들이 이룩했던 유쓰 컬쳐를 모방하는 무드. 적당히 우울하고, 적당히 지루하고, 적당히 과격한 음악. 적당히 무국적이고 적당히 센티멘탈한 음악. 야망 없이 소박한 음악. (…) 맥 드마르코와 킹 크룰을 듣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와 테임 임팔라를 듣는, 마일드 하이 클럽과 원색의 옷을 입고 맥 드마르코와 시티팝, AOR을 섞은 음악들, KPOP과 존잘님, 파스텔빛 조명과 흰색 도배, 그리고 신해경과 새소년을 듣는 힙스터들”
(통곡맨의 블로그에서 인용)
누가 뭐래도 인디음악은 끝났다. 전세계의 유행에 동기화하여 아류의 아류를 무한히 재생산하는 모습을 유튜브의 재생목록과 알고리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구촌이 손쉽게 동기화한 덕분에, 시공간적으로 노이즈가 생길 여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음악 창작에선 시공간의 차이로 발생하는 노이즈는 ���요한데, 이것은 음악에 접근하는 방법을 음악 시장의 시공간 차이를 지정학적으로 공략하는 전략가의 모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의 인디 음악가는 다이궁-모델로, 중국인 관광객처럼 전지구적으로 생상된 다량으로 스타일과 양식을 소비할 뿐이다. 음악가는 소비자가 됐다. (바르트의 표현으로라면) 스스로의 취향을 예술로 시뮬레이션하는 디거도 애호가도 아니라, 그저 스타일을 구매하는 소비자이자 중간 판매자로 전락한 예술가. 우리는 이들을 중산층-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다. 중산층 예술가, 힙스터는 주류가 됐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색감과 리버브 걸린 인디음악이 들려주는 지루한 풍경이 우리를 질식하게 만든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부터 [제국]까지 지겹도록 반복된 글로벌리즘의 폭력성은 문화-지리에서 발생하는 노이즈 자체를 일정 부분 상쇄시키고, 이는 노이즈로 인한 전략적 가능성을 틀어먹는다.
문화상대주의는 힙스터리즘이 붕괴하는 것을 가속하고, 또 역설적으로 이를 주류화시킨다. 지금은 맥락이 작품을 대신한다. 역사적 맥락을 들추는 기술에 투덜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자율성이 보전되는 시대라면 심층기술은 작품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위한 근거가 된다. 문화상대주의의 시대가 도래하자, 다양성 자체가 윤리와 동의어가 됐다. 이를테면 특정 정체성을 기반한 작품을 만들었으므로, 특정 정체성이 출연하므로, 특정 정체성을 다뤘으므로,와 같은 사실이 평가를 대신한다. 맥락의 타율성이 자율성이 기능하는 기반(문화 저널리즘, 힙스터미학, 시네필리아)의 숨통을 조르고 있다. 그것의 결과는 관객에게 작품의 자율성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백인-남성의 보편성을 흉내내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이를테면 아프리카 트랜스 퀴어를 다룬 작품에 대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의 비평적 판단은 무의미해진다. 아프리카 출신의 LGBT 퀴어의 작품과 백인 남성 사회주의자의 작품을 나란히 놓고 별자리를 짜는 일은 힘들어졌다. 이는 힙스터리즘 붕괴의 전조현상일 뿐이다. 작가주의도, 저자성, 정전도, 그들의 가치체계는 흔들리고 있지만, 우리는 문화적 타자를 ‘올바르게’ 묘사하는 데만 치중하며 여전히 똑같은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다. 힙과 취향이 이미 규정되어 있는 안전한 프로토타입에만 매달린다면, 이 문화에서 어떤 변화가 가능할 수 있을까?
비단 음악에서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예술의 자율성이 붕괴하면, 익스페리멘탈 뮤직과 과감한 실험 영화의 존재 이유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영화제나 저널리즘이 갖는 기존의 기능이 무화하는 것이다. 이제 플랫폼이나 대형영화사가 만든 '아트'해 보이는 작품이 예술의 자율성을 수행하고 있음을 표지하는 일종의 생색을 수행한다. 기존의 주체형을 고수하는 힙스터-디거-스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나르시시즘의 근거 조항을 상실하고 있다. 그는 정체성 정치에 기회주의적으로 빌붙어 ‘다양성 영화’, 즉 인종적으로나 젠더적으로나 다양한 주체가 나오는 작품을 ‘다양성’의 관점에서 비평하거나, 집에 포스터로 붙이기 좋은 예술 영화를 보면서 왓챠에 평을 다는 게 전부이다. 자율성의 영역이 완전히 쪼그라들고 있고, 힙스터의 주관성은 갈 곳을 잃고 중산층의 뱃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모두의 말처럼 문화적 타자를 규정하고, 착취하는 백인 보편성은 역겹다. 이들은 역겨운 인간이다. 이 사실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그러나 이같은 보편성이 몰락한 이후에 우리의 취향을 형성했던 동역학이 어떤 지지체에 몸을 의탁해야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복마전 같은 상황 속에서 ‘주류와 보통’의 의미를 재고해야한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결국 우리는 문화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숙고할 수밖에 없다.
(2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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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수#우리동네안팔아요#젠트리피케이션#이스트빌리지#뉴욕#저항문화(서울시립미술관 Seoul Museum of Art에서) https://www.instagram.com/p/BrZUaEog3U0/?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5pgt74y60m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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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커피상점"
십수 년 전 연남동 '커피 리브레'가 있는 작은 골목길에 '이심'이란 카페가 있었다. 첫 인상부터가 커피 덕후 집이였고, 맛 또한 좋았기 때문에 오며 가며 사 먹곤 했는데 젠트리피케이션 광풍이 몰아닥치며 사라진 지 어느새 십 년이 넘은 것 같다.
최근 몸공부 일환으로 배우는 중인 벨리댄스를 홍대입구역 - 합정역 사이에 있는 댄스홀을 빌려서 하고 있다. 수업 끝나고 글이나 쓰려고 합정역 방향으로 걸어가던 중 반지하에 자리 잡은, 간판에 낯���은 폰트로 '이심'이라 써 있는 카페를 봤다.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7길 18) 그때 그곳이 여기에 다시 문 열었나보다 짐작했지만 혼자 들어가 있기엔 실내가 좁아 보여 위치만 기억해 놨다가, 어제(2023년 3월 3일, 금요일) 지인과 함께 가봄.
개인적으로 에스프레소가 유독 맛있을 때는 짜장면 먹고 난 직후다. 이날도 마침 중국집에서 짜장면, 고추잡채를 안주 삼아 이과두주 마셨더니 커피가 땡기길래 여기 가보자고 한 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일단 사장님께 연남동에 있던 그 '이심' 맞냐부터 물어보니 그렇다고 함. (마스크 쓰고 있어서 긴가민가했음.) 실내는 사방을 갖가지 소품으로 장식해 놨다. (=연남동 때와 비슷) 좌석은 4인석 2개, 2인석 2개뿐.
원래는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하지만 터키식 커피를 팔길래 이걸로 주문. 예전에 이태원에서 딱 한 번 마셔 본 적이 있긴 하나 오래돼 어떤 맛인지 까먹었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때 경험한 흙탕물 맛 기억이 되살아났다. 호불호 강한 커피다. 한 번 마셔봤으니 향후 10년간은 안 찾을 듯. 대신 다른 커피 마시러 이따금 찾아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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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21.09.06 - 21.09.30 작가 : 이주엽, 김형경, 공명성 장소 : 아이테르(부산 동구 범일로 65번길 21) 전시 시간 : 10:00 - 18:00 장르 : 회화, 비디오아트, 설치 PS : 관람 후 전시의 여운을 느끼며 바로 옆 #매축지마을 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 - 작가노트. 부산은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문화 소비 공간에 대한 수요 증가함에 따라, 기존의 도시 상권이 아닌 새로운 상업 공간들이 형성되었다. 문화와 관련된 예술가, 소규모 자영업자 등의 유입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이 새롭게 부여된 상업 공간이 늘어났고 변화하는 젊은 세대와 중산층의 소비 패턴과 맞물려 성공적인 지역 재생 사례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끝을 모르는 개발은 영세상인, 그들 스스로 만든 상권에서 내몰리게 하였고, 공간의 정체성을 가져다 주었던 예술가와 원주민의 전출을 야기하는 부정적 효과로 나타났다.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역> 1. 전포카페거리(부산진구) - ’09년 이후 대우버스의 울산 이전으로 발생한 빈 점포에 바리스타, 쉐프 등 유입 - ’17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세계명소 48위 선정되면서 급부상 2. 광복로(중구) -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로 방문객 증가 시작 - 최근 국제시장, 부평깡통 야시장 활성화 등을 기점으로 임대료가 급상승 3. 중앙동 40계단 일대 예술공간 (중구) - 시청사의 이전으로 급격히 쇄락함에 따라 문화지대로 ’10년 또따또가를 조성 - 40계단 일대 예술공간 주변 음식점과 사무실 등 입점과 맞물려 매년 매매가, 임대료 상승 4. 감천문화마을 (사하구) - 이국적인 정취와 독특한 장소성을 가진 마을로 지역 예술가 주축으로 마을미술 프로젝트 사업 유치 - 방문객 급증 및 주택 공시지가 상승 <젠트리피케이션 예상지역> 1. 온천천카페거리 - 온천천이라는 도심하천과 카페거리가 만들어내는 독특함으로 휴식공간 조성, ’13년부터 본격적으로 상권이 형성 - 주택개조와 신축이 진행 중 2. 흰여울문화마을 - ’14년부터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지역으로 선정 - 주택공시평균 상승, 거주인구 감소 이러한 현상은 지역 개발이 완성된 시점에서 새로운 상업 지구의 개발보다 낙후 지역에 대한 재개발을 통한 재활성화를 통하여 금전적 이익을 취하려는 태도 때문에 일어나며 결국 초기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던 주택지 기반의 재생과 문화적 재생 지역 역시 의미를 잃게 만든다. 저소득층의 원주민 퇴출과 영세한 소규모 자영업자로 이루어진 동네 상권이 붕괴되는 등 부정적 외부 효과가 심각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부산은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 즉 작은 역사를 잃어간다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지역주민들과 예술가들이 간절하게 만들어낸 공간에 로컬과는 상관없는 기업이 들어온다면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 아래로 묻히게 되고 지역의 이야기를 이어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숨을 불어넣은 공간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목숨을 건 염원들은 오늘도 돈 몇 푼으로 물거품이 되어간다. - 작품설명 제목 : 비디오1 설명 : 시간이 지나며 환경이 바뀐다. 자연스레 환경도 바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모우기 위해 사람이 물러난다. 아이러니한 이 상황은 돌고 돈다. 지금은 번화가인 이곳 또한 훗날 돌고 돌아 초심으로 돌아갈 때가 있을 것이다. 영상에서는 내몰린 지역 주민들 혹은 예술인들의 터전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곳 또한 누군가의 아늑한 집이었으며 작업 공간이었을 것이다. 허나 자본이 들어오고 지역인들의 둥지 내몰림 현상이 대두되며 이슈를 만든다. 사람을 모우기 위해 사람이 떠나가는 이 자연스러운 현상에 호기심을 가졌다. 영상에서 어떤게 좋고 나쁘다를 표현하지 않는다. 단지 이 자연스러운 현상을 관찰하고 궁금해할 뿐이다. 사람은 태어나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목숨”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 환경 또한 이 “목숨”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 또한 사회의 일부이며 우리들의 삶 속에 녹아든다. (중략)(범일동 진시장에서) https://www.instagram.com/p/CUWQZCep-mz/?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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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작가 분한테 자료가 도착해서 오늘 추가로 하나 더! 역시 #책방소소한전시 및 #입체적책읽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업 중인 영상으로... @sah00247 박지현 작가의 #나의포근했던아현동 입니다~ _ 이미 특유의 에디셔널한 포장 솜씨로 장안의 화제(화제 맞....죠? ㅋ)인 너무 갖고싶은 소장 1순위 책이랍니다~ 작가 당신! 포장장인!! 👍 _ 책 내용은 포장만큼이나 대단해요~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 마을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자극을 합니다. 어쩌면 빠르게 빠르게 살고 있는 세상에서 돌아보고 느리게하고 생각해보게하는 그럼 놀라운 감성을 담고있는 굉장한 책이라고 말하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될까요? ㅋ (오늘 감성 폭발 중!) _ 이 책은 현재 준비 중인 전시의 #젠트리피케이션 의 아주 중요한 화두가 될 책이랍니다. 오늘 꼭 #올오어낫싱 이 아니더라도 근처 동네책방에서 이 책을 만나시거든 꼭 마을시간여행 떠나시는 셈 치시고 바로 겟!!! 🙀😽😸 . . . . #독산책방 #올오어낫싱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서점스타그램 #책방스타그램 #내마을 #독립서점 #독립책방 #책좀읽으시죠(올오어낫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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