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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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할머니 시리즈 연작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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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유럽 편 Flow in Europe>
"손 끝으로 전해지는 따스함과 아련함이 머무는 공간에 서 있는다.
나의 시선은 그 곳을 향한다"
2023년 한 달간 유럽을 여행하며 길 위의 흐름에 따라 몸을 맡기며 촬영했던 흑백 필름 사진집
98 페이지 / 140×200 mm / 한국어,영어 / 내지 : 프런티어 터프 80g, 플로라 130g, 표지 : 크리에이티브 보드 270g , 퍼스트 빈티지 157g
*이 책의 제작은 인쇄(잉크젯 프린팅)와 제본, 재단을 직접 수작업(Handmade)으로 만들었다
-
“I am standing in a space where the warmth and vagueness transmitted through my fingertips reside.
“My gaze is directed towards that place.”
A collection of black and white film photos taken while traveling in Europe for a month in 2023 and following the flow of the road.
* 98 Pages / 140×200 / Korean,English / In : Prontier Tough 80g, Flora 130g, Cover : Creative Board 270g , First Vintage 157g
D.I.Y Inkjet Printed and Handmade Bi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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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기는 지난해(2023) 12월 31일이다.
[제국 일본이 본 동아시아 만주.조선편] I, II, III(민속원) 도합 20만원이 넘는 고가의 책이다.
1920~40년대 만주 조선지역의 사진 1,600여매를 모아 설명을 달고, 자료해제와 지역해제를 부기하였다. 지난한 과정을 겪어 정리하고 드디어 책으로 출간되었지만, 노력 만큼 쉬이 구해지는 책이 아닌 것이 아쉬울 따름.. ㅠㅠ
그래도 출판사에 누가 되지 않을 만큼 좀 팔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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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just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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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정부 존엄사라는 것은 과거 흑백사진 필름에서 지내시다 지금처럼 칼라인 세상으로 나타나 직업적인 공무 잭임에 업무를 배당 받아서 일하는시는 높은 수준의 보수를 받는 분들 입니다
그걸 못받아 드리면 그동안 세상을 헛 사신 겁니다
최초로 전자사회에 저처럼 개인정보동의서 공개처우개선 하면 주택조사에서 이루어지는데 자꾸 술마시고 잠이들면 필름이 거꾸로 돌아버리는데 거기는 군사배후지 입니다
명의걱정을 하시는데 그 아집에 욕심은 자신을 오히려 가두고 말죠 흔히들 물질적인 벽이라고 하죠 이를 정보공개 처우신탁 개념 인데 정보가 부동산 입니다 이를 다시 부동산정보공개 공개처우개선 이라고 하는 겁니다
자신의 지리적 정보와 통신위치를 알려서 구조를 요청하는 겁니다 예시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무근성7길 12-6 삼도2동 주민센터 206호통신 010 5825 7706 항상 최종적인 주소와 위치를P 이를 TOP 에 걸렸다 입니다
국제법 표준에 의해 일당이 60만원 입니다 KBS 돈에 욕심은 이미 다 버셨는데 그걸 재생산 하지 못하니까 힘든 겁니다 법만 이해하면 세상 단순합니다
저는 지금 진행중인데 몸에서 석청과 청산가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 경우를 국회의사록 의사결정1호에 의거 사망 하였다 합니다 그동안 먹고 마신 부동산에 그만 내장이 막히거나 굳어버리는 현상이죠
그래야 몸인 땅에서 일을 해주시는 겁니다 어느시대나 층이 있고 사회가 있으며 나라와 정부가 존재하지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겁니다 신탁하는 겁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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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번을 읽어도 신나는 이 글을 아침에 또 읽고 이렇게 위대하신 분들과 한 세대를 살았음에 감사합니다
💚정주영(鄭周永)과 거북선
1970년
5월초 어느날 밤 정주영은 청와대 뒤뜰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오랜시간 흘렀지요.
박 대통령이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더니 정주영에게도 한대를 권했습니다.
정주영은
원래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요.
그러나 그날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원래 과묵한
박 대통령
이지만 이날은 더욱 말이 없이 시간만 흘렀습니다.
정주영은
박 대통령이 불을 붙여준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었는데, 드디어 박 대통령이 입을 열었어요
“한 나라의 대통령과 경제 총수 부총리가 적극 지원하겠다는데 그거 하나 못하겠다고 여기서 체념하고 포기를 해요?
어떻게 하든 해내야지 ..!!
임자는 하면된다는 불굴의 투사 아니오?”
실은 정주영도 조선소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제반 여건상 지금은 아니고 나중 일이었어요.
하지만 대통령은 그에게 시간을 주지않고 압박 아닌 압박을 하고 있었지요.
이유는 있었습니다.
곧 포항제철이 완공되는 때였지요.
그러니까 포항제철에서 생산되는 철을 대량으로 소비해줄 산업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당시 김학렬 경제부총리는 먼저 삼성 이병철에게 조선 사업을 권유했어요.
정주영은
삼성 이병철에게 거절당한 뒤 자신에게 화살이 날아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은 그날 박대통령에게 승낙을 하고 말았어요
"각하의 뜻에 따라 제가 한번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심 했어요
“그래 한번 해보는 거야 !!
못할 것도 없지!!
그까짓 철판으로 만든 큰 탱크를 바다에 띠우고 동력으로 달리는게 배지!!
뭐, 배가 별건가? ”
어렵고 힘든 일에 부딪치면 쉽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정주영의 특기가 발휘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조선업자로 조선소 건설을 생각한게 아니라 건설업자로서 조선소 건설을 생각한 것입니다.
배를 큰
탱크로 생각하고 정유공장 세울 때처럼 도면대로 철판을 잘라서 용접을 하면 되고 배의 내부 기계는 건물에 장치를 설계대로 앉히듯이 도면대로 제자리에 설치하면 된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조선소를 지을만한 돈이 없었습니다.
대형
조선소를 지으려면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와야 하는데 해외에서 차관 얻기란 하늘에 별따기였지요.
그래서 일본에도 가고 미국에서 갔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정주영을 상대해주지 않았지요.
오히려 미친놈 취급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너희같은 후진국에서 무슨 몇십만톤의 배를 만들고 조선소를 지을수 있느냐? ”는 식이었습니다
좀처럼 화를 내지않는 정주영이었지만 속으로 울화가 치밀면서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그때부터 '하면된다'는 모험심이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안 된다고?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는거야!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데 ..."
당장 필요한건 돈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차관을 얻으려면 3번에 걸친 관문을 뛰어넘어야 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외면당한 정주영은 영국 은행의 문을 두드리기��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행 버클레이즈와 협상을 벌였으나 신통한 반응을 얻을수 없었습니다.
우선 돈을 빌리기 위해선 영국식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정주영은 1971년 영국 선박 컨설턴트 기업인 A&P 애플도어에 사업계획서와 추천서를 의뢰했습니다.
타당성 있는 사업계획서와 추천서가 있어야 은행에서 돈을 빌릴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얼마 후 사업계획서는 만들어졌지만 추천서는 해줄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정주영은 영국의 유명한 조선회사 A&P애플도어 회장의 추천서를 받기 위해 직접 런던으로 날아갔습니다.
그에게는 조선소를 지을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모래사장을 찍은 흑백사진 한장이 전부였습니다.
런던에 도착하여 일주일만에 A&P 애플도어의 찰스 롱바톰 회장을 어렵사리 만났습니다.
그러나
롱바톰 회장은 비관적인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배를 사려는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고 또 현대건설의 상환능력과 잠재력도 믿음직스럽지 않아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럼 "한국 정부가 보증을 서도 안 됩니까?"
그러자 그는 "한국정부도 그 많은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걸로 알고있다" 고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지요.
이때 궁하면 통한다는 정주영식 기지(奇智)가 발동했습니다.
정주영은 문득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500원짜리 지폐가 생각났지요.
지폐 그림은 바로 거북선이었습니다.
정주영은 주머니에서 거북선 그림의 지폐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펴놓으며,
"회장님!!
이걸 잘 보시오!!
이 지폐는 자랑스런 우리나라 역사를 그려낸 지폐인데, 이 그림은 거북선이라는 철로 만든 함선이지요.
당신네
영국의 조선역사는 1800년대 부터이지만 한국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이 거북선으로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의 함선을 괴멸시킨 역사적인 철선입니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바로 이 돈 안에 담겨있으니 다시한번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롱바톰
회장은 의자를 당겨앉으며 지폐를 들고 꼼꼼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앞 면에는 한국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있고 뒷면에는 바다에 떠있는 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거북이와 많이 닮았어요.
"정말 당신네 선조들이 실제로 이 배를 만들어 전쟁에서 사용했다는 말입니까?"
"그렇구
말구요 우리나라 이순신 장군이 만든 배입니다.
한국은 그런 대단한 역사와 두뇌를 가진 나라입니다.
불행히도 산업화가 늦어졌고 그로 인해 좋은 아이디어가 묻혀 있었지만 잠재력 만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
현대도 자금만 확보된다면 훌��한 조선소와 최고의 배를 만들어낼 것입니다.
회장님!!
버클레이 은행에 추천서를 보내주십시오 "
정주영은 조금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롱바톰 회장을 설득했어요.
롱바톰 회장은 잠시 생각한 뒤 지폐를 내려놓으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훌륭한 조상을 두었소.
당신은 당신네 조상들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롱바톰 회장의 얼굴에 어느새 환한 미소가 번졌스비다.
"거북선도 대단하지만 당신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오.
당신이 정말 좋은 배를 만들기를 응원하겠소!!"
그러면서 롱바톰 회장은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축하 악수를 청하고 있었습니다.
수 많은 프레젠테이션과 완벽하게 만든 보고서에도 'NO'를 외쳤던 롱바톰 회장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500원짜리 지폐 한장이었으며 이는 정주영의 번뜩이는 기지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날 롱바톰 회장은 현대건설이 고리원자력 발전소를 시공하고 있고 발전계통이나 정유공장 건설에 풍부한 경험도 있어 대형조선소를 지어 큰 배를 만들 능력이 충분하다는 추천서를 버클레이즈 은행에 보내주었습니다.
정주영의 기지(奇智)로 첫 번째 관문이 통과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며칠 뒤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 담당 부총재가 점심을 같이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점심
약속 하루전 정주영은 호텔에서 초조와 불안 속에서 시간을 보내느니 만사 제쳐놓고 관광이나 하는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현대건설 수행원들과 셰익스피어 생가와 옥스퍼드대를 둘러보고 낙조 무렵에는 윈저궁을 관광했습니다.
이튿날 정주영은 우아한 영국 은행의 중역 식당으로 안내되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버클레이즈 은행의 해외담당 부총재가 물었습니다.
“정 회장의 전공은 경영학입니까? 공학입니까?”
소학교만을 졸업한 정주영은 짧은 순간 아찔했지요.
그러나 태연하게 되물었습니다.
“아 ~ 제 전공이오? 그 이전에 우리가 당신네 은행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는 보셨는지요?”
“아! 네 잘 봤습니다!!”
정주영은 순간적으로 전날 관광하다가 옥스퍼드대에 들렀을 때 졸업식 광경을 본 생각이 났습니다.
“어제 내가 그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옥스퍼드대에 갔더니 한번 척 펼쳐보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 하면서 태연하게 농담을 했습니다.
정주영은 구질구질하게 자신이 학력은 짧지만 사업경험은 누구보다 많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큰 배포를 보여주는 유머를 내던졌습니다.
그러자 부총재가 껄껄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옥스퍼드대 경영학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그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겁니다.
당신은 그들보다 더 훌륭하군요.
당신의 전공은 유머 이시군요?.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당신의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낼테니 행운을 빌겠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일입니까?
정주영의
유머 한마디가 그 어려운 차관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부총재가 정주영을 만나��고 한 건 자신들이 빌려줄 돈으로 조선소를 만들려는 CEO의 됨됨이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총재는
이런 식의 만만한 자신감을 갖고 있는 CEO라면 대출을 해 주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최종적인 확인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정주영이 은행 쪽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은 건 사전에 치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치밀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었고 그 치밀함을 인정한 은행이 대출을 해주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은행쪽은 사전에 현대가 건설한 화력 발전소, 비료 공장, 시멘트 공장을 치밀하게 조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확신은 정주영의 배포가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번째 관문도 무사히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가장 어렵고 힘든 관문이었습니다.
영국은행이 외국에 차관을 주려면 영국 수출신용보증국(ECGD)의 보증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수출신용보증국 총재는 배를 살 사람의 계약서를 가지고 와야 승인해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만약 내가
배를구입한다고 가정했을 때 작은 배도 아니고, 4~5천만달러 짜리 배를 세계 유수의 조선소들을 다 제쳐놓고 선박 건조 경험도 전혀 없고 또 조선소도 없는 당신에게 배를 주문
하겠습니까?
설사
당신네가 배를 만들 수 있다해도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원리금을 갚을 수 있겠소?
입장을
바꾸어 당신이 나라면 배를 주문할 사람이 없는데 보증을 해주겠소?
그러니까
배를 살 사람이 있다는 확실한 증명을 내놓지 않는이상 나는 이 차관을 승인할 수 없소!!”
정말 난감했지만 정확한 지적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도 가난한 나라였어요.
그런 가난한 나라에서 배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배를
만든다고 해도 그 배를 믿고 사갈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정주영은
다시 울산 미포만의 황량한 바닷가의 사진을 꺼내놓고 깊은 시름에 잠겼습니다.
"정말
내가 봐도 한심한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자신처럼 정신나간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냐?
천하의 정주영 아니냐?
여기서 무너질 내가 아니지 !!"
그날부터 마음을 다잡아 먹고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에서 만들 배를 사줄 선주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허허 벌판 모래사장 사진 한장을 내밀며 “당신이 내 배를 사주겠다고 계약만하면 내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이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들어주겠소!!”
미친놈 취급당하기 딱 맡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 만나고 두번 만나고 세번 만나니까 그런 정신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다름아닌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리바노스"였습니다.
리바노스가 정주영의 배포를 믿고 미포만 백사장 사진만 보고 계약을 했어요.
선박에는 세계적인 리바노스지만정주영의 사람 됨됨이에 밀려 파격적으로 정주영과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하지만 정주영 역시 그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배를 만들어주겠다.
대신 배값을 싸게 해주겠다.
만약 약속을 못 지키면 계약금에 이자를 얹어주겠다.
그래서 계약금��� 조금만 받겠다.
우리가
배를 만드는 진척상황을 보고 조금씩 배값을 내라 우리가 만든 배에 하자가 있으면 인수를 안 해도 좋고 원금은 몽땅 되돌려주겠다!!”
정주영은 리바노스가 보낸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있는 그의 별장에 가서 유조선 2척을 주문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지막 관문을 넘어섰다 합니다.
정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신화적인 이야기지요.
그 뒤부터 정주영은 부하직원이 어렵다고 하면
"해보기나 했어?" 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정주영은 귀국하여 곧바로 박정희 대통령께 보고를 드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정문 앞까지 달려나와 그를 맞았습니다.
그때 지도를 놓고 볼펜으로 그리며 본인의 구상을 설명하자 박정희 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비서들에게 정회장이 볼펜으로 그리는 대로 공장을 짓게해주고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지원하라고 지시를 했다고 합니다.
훗날 박대통령은 울산현장에 자주 들러 막걸리를 같이 나누며 정주영을 격려했다 합니다.
하지만 그건 준비 작업에 불과 했습니다.
먼저 배를 만드는 조선소를 짓고 그 조선소에서 다시 배를 만들어야 했지요.
그러나 정주영은 이때 그의 특기인 역발상 창의력을 발휘했습니다.
조선소를 짓고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선소와 배를 동시에 만들기로 한 것입니다.
“조선소는 조선소이고, 선박건조는 선박건조다.
반드시 다 지어진 조선소에서 선박을 만들어야 된다는 법이라도 있는 것이냐?”
그러면서 정주영은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를 병행해서 진행시켰습니다.
제일 먼저 스웨덴에서 배 만드는 설계사를 데려왔습니다.
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
배 만드는 공장도 없으면서 모래사장의 모래를 포크레인으로 퍼내고 웅덩이를 파놓고 거기에 올라오는 물을 펌프로 퍼내 가면서 그 웅덩이 속에서 최초의 배를 만들었습니다.
공장도 없이, 독크도 없이, 모래를 퍼내 놓고 그 속에서 리바노스가 주문한 배 한 척을 만들면서 동시에 방파제를 쌓고, 바다를 준설하고 안벽을 만들고, 도크를 파고, 14만평의 공장을 지었습니다.
거의 모든 직원들이 새벽 4시면 일어나 여기저기 고인 웅덩이 물에 대충 얼굴을 씻고 일터로 나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숙소에 돌아와 구두끈도 못 푼 채 잠을 자며 배를 만들었습니다.
정주영도
거의 울산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어쩌다 서울에 오면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서울에서 울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른 새벽 남대문 근처를 지날 때면 부부가 그날 팔 물건을 리어카에 싣고 남편은 앞에서 끌고 아내는 뒤에서 밀며 길을 지나는 장사꾼들을 보곤 했지요.
그럴 때마다 정주영은 자신도 모르게 목젖이 뜨거워졌습니다.
저렇게 새벽부터 열심히 일을 해야만 생계를 꾸려갈 수 있고 자식을 키울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임이 너무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래!! 모든 이들의 삶은 다 그 자리에서 나름대로 진지하고 엄숙한 것이다.
얼마 안 되는 하루벌이를 위해서도 저토록 필사적으로 열심인데…….”
훗날
정주영은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유대감과 존경심을 많이 느꼈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래 다 같이 노력해서 하루빨리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야지"하는 생각으로 주먹에 불끈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최초의 배가 완성되던 날, 막아 놓았던 바닷물을 딱 텃습니다.
물이 웅덩이로 쏴 들어오면서 배가 붕 떴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붕 뜬 배가 바다 쪽으로 쑥 밀려 나갔습니다.
세상이 온통 뒤집어졌어요.
직원들은 서로 부둥켜 앉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단 한척의 배도 만들지 못했던 우리가 세계적인 대형 선박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세계 제1의 조선국가로 성장하게 된 바탕이 되었습니다.
건조 능력 70만톤, 부지 60만평, 70만톤급 드라이 도크 2기를 갖춘 국제 규모의 조선소 준공을 본 것은 1974년 6월.
기공식을 한 1972부터 2년 3개월 만이었습니다.
이날 박정희 대통령은 준공식에 참석���여 조선입국
(造船立國)’ 이라는 휘호를 써 주었습니다.
현대조선은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한창 잘나가는 듯 하던 조선사업에 위기가 닦쳐왔습니다.
이는 바로 1973년에 불어 닥친 오일쇼크 때문이었습니다.
오일쇼크로 인해 유조선을 주문했던 사람들이 배를 가져가지 않겠다는 취소가 잇따랐습니다.
현대조선이 만든 배가운데 3척이 울산 앞바다에 그냥 떠 있었습니다.
그 중 1척은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그리스의 리바노스가 주문한 유조선이었지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인 현대조선으로선 휘청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역발상을 생각했습니다.
“만들어 놓은 배를 가져가지 않으면 우리가 그 배를 가지고 새로운 사업을 하면 되는 것 아니냐?”
정주영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지요.
1976년 3월 인도하지 않은 초대형 유조선 3척을 가지고 아세아상선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해 오는 기름을 우리가 우리 유조선으로 운반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나라에 기름을 실어 나르던 외국 선박회사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만무했지요.
아세아 상선에 수송권을 넘겨주는 댓가로 1400만달러를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정주영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도 안되는 억지지.
내가
택시를 타다가 자가용을 구입했는데 택시회사에 돈을 주어야 하나?
그 동안은 우리한테 유조선이 없어서 자기네 배를 택시처럼 돈주고 빌려쓴 것인데 우리가 배를 만들고 우리 배로 우리 기름을 운반하겠다는데 돈을 달라?
말도 안 되는소리!! 그런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였습니다.
정주영은 뚝심으로 버텄습니다.
8개월을 버텼더니 3백만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그���도 옴싹달싹 안하고 버텼지요.
결국에는 10원도 안 주고 우리 기름을 현대 아세아상선에서 운송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뚝심도 큰 힘이 되었다 합니다.
그렇게 출발했던 아세아상선은 지금은 현대상선이 되었습니다.
오일
쇼크로 몹시도 정주영을 힘들게 했던 현대조선은 요즘 세계적인 현대중공업이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구실을 붙여 다 만들어진 유조선을 안 찾아가려고 떼를 썼던 리바노스!
그러나 정주영은 그를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했다 합니다.
어쨌든
황량한 모래벌판 사진 한장을 보고 배를 주문해주었던 지난 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2007년 5월 25일 현대중공업 도크에서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이 진수됐습니다.
정주영이
처음 조선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우리 해군은 미군이 폐기처리한 구축함을 가져다 페인트 칠을 해서 쓰고 있었습니다.
천지개벽이란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이날 진수식에서 정몽준 회장은 500원 짜리 거북선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 정주영 회장을 그리워했다 합니다.
지금 전세계 바다에 새로 나오는 배 5척중 1척이 현대중공업 제품이고 10척중 4척이 한국산이라 합니다.
한국 조선소들은 중국에 싼가격으로 수주를 맞긴 배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문이 너무 밀려 배를 만들 도크가 없다고 합니다.
길이 200m에 15층 높이의 배를 땅위에서 조립해 바다로 끌고가 띄우는데 이런 신 공법은 한국 조선소에서만 하고 있으며 선박 엔진 또한 세계최고라 합니다.
엔진을 만드는 공장의 상무는 이 기술자들을 “나라의 보물”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세계 선박 엔진시장의 45%를 싹쓸이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2014년부터 불어닥친 불황의 여파로 몇년간 고전은 했지만 지금 세계의 선주
(船主)들이 다시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모래바람이 휘날리던 미포만은 이제 배 조립품을 놓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비좁아졌습니다.
그곳에선 3일마다 1억 달러짜리 거대한 배가 한척씩 쏟아지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람들은 “배를 찍어낸다”고 합니다.
세계 조선역사에 이런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한척의
배를 만든 이익금으로 오늘날의 현대중공업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정주영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사람이라 했나봐요.
그리고 또 1984년 "정주영 유조선 공법"이라는 내용으로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당시 충남 서산간척사업 A지구 매립공사는 6.4㎞를 연결함으로써 완공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으로 생기는 육지는 여의도 면적의 43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땅이었습니다.
바다를 막아 옥토를 만드는 국가사업에 마지막 물막이 공사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곳은 조석간만의 차가 크고 드나드는 물의 양이 3억 4천만톤, 밀물시의 유속은 초당 8미터에 ���해 20톤에 달하는 돌망태를 넣어도 그대로 물에 휩쓸려갔습니다.
흔히 최종 물막이 공법은 케이블과 바지선 등 해상장비로 물막이 구간의 바닥을 점차 높여가는 점고식(漸高式) 또 덤프트럭등 육상장비를 이용해 점차 구간을 좁혀가며 축조하는 점축식(漸縮式) 그리고 이들 두 방법을 같이 쓰는 병행식 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산 간척지 공사는 빠른 유속으로 인하여 통상적인 공사방법으로는 엄청난 비용과 작업기간이 오래동안 소요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지요.
이때
정주영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대형 유조선으로 조수를 막아 놓고 물막이 공사를 하면 시간과 비용이 크게 절감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이 획기적인 공법의 사용으로 계획공기 45개월 가운데 36개월을 단축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방조제를 쌓는 성과를 올렸으며 280억원의 경비도 절약함으로써 전세계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정말 정주영 다운 배포요, 정주영 다운 공법이었습니다.
이 기술은 학계에서도 주목을 받아 "유조선공법"으로 명명되어 지금 세계 여러나라에서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계의 큰 별은 가고 없습니다.
2001년 3월 21일 당신이 설립한 서울아산병원에서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을 때 미국 CNN 방송이 한시간 이상을 특집으로 방송했는데 이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호는 아산
(峨山)이며 1915년 11월 25일에 농부인 아버지 정봉식
(鄭捧植)과 어머니 한성실
(韓成實)의 6남 2녀중 장남으로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습니다.
8세에 통천송전소학교(通川松田
小學敎)에 입학하여 13세에 졸업하였으며 그와 함께 졸업한 동창생은 27명 그의 정식 최종학력은 소학교 졸업이 유일합니다.
2000년 5월에 현대명예회장직에서 물려났고 1987년 제1회 한국경영대상, 1988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8년 IOC훈장과 노르웨이 왕실훈장을 수상하였으며 사후에는 2001년 5월 제5회 만해상 평화상이 추서되었지요
이후 5년 뒤인 2006년 11월에 미국 타임(TIME)지 선정 아시아의 영웅에 선정되었으며, 2008년 DMZ 평화상 대상이 특별 추서되었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하면된다는 신화를 창조하신 거인 정주영 !! 대한민국 근대사에 큰 획을 그은 경제대인이었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될 때까지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우리는 그를 잊지 말아야 하고 위인중에 위인 거인중에 거인으로 칭송받아 마땅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스러운 대한민국의 어디에선가 ���2, 제3의 정주영이 존재하고 그 험란한 길을 굳굳히 걸어가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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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근용/孫欣龍
이이공구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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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 Breakdown: KCM - “An Old Love Story (흑백사진)”
안녕하세요! Hey everyone! I got a request for another K-pop breakdown, so here it is! It’s another long one, so get ready for a lot of lyric dissection lmao. If you have a song you’d like me to break down, let me know and I’ll do my best to fulfill your request!
Listen to “An Old Love Story” here! I translated some of the lyrics myself, but I also used some of Musixmatch’s translations as well. Let’s start!
아주 오래전 눈이 커다란 소녀를 봤어 / 긴 생머리에 예쁜 교복이 너무 잘 어울렸어 / 너의 그림자를 따라 걸었지 / 두근대는 가슴 몰래 감추며
A very long time ago I saw girl with big eyes / Your long straight hair and pretty school uniform suited you so well / I followed your shadow / While secretly hiding my pounding heart
아주 = very
오래전 = a long time ago; a distant time in the past
눈이 커다란 소녀 = girl with big eyes
눈 = eyes
커다랗다 = huge; large
This seems to be an irregular adjective, so it becomes 커다란 when paired with a noun. More about adjectives here!
소녀 = girl
-를 is an object particle. More about the particles in this song here!
보다 = to see
Add -았/었다 to a noun to make it past tense --> 봤어 = saw
긴 = long
Comes from the verb 길다, which is another irregular adjective.
생머리 can mean either “straight hair” or “natural hair.”
예쁜 = pretty (from 예쁘다)
교복 = school uniform
너무 = so; too
잘 어울리다 = to suit [someone] well
너의 = your --> 너 (you) with the possessive marker -의 attached
그림자 = shadow
따라 걷다 = to walk along (smth); to follow by walking
걷다 is an irregular verb, so it becomes 걸어요 in the present tense.
Adding -지(요) to the end of this sentence gives it the nuance of “of course I followed your shadow,” as if assuming the listener would agree.
두근대다 = to beat; to pound (usually refers to the heart)
가슴 = heart; chest
Adding -는 to a verb stem lets you use it to describe a noun. So here, 두근대는 가슴 means “pounding heart” or “heart that pounds.”
몰래 = secretly
감추다 = to hide
Adding -(으)며 (or -(으)면서) to a stem means “while” and is used to show that two actions happen simultaneously. So 두근대는 가슴 감추며 means “while I hide my pounding heart.”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까? / 조금 더 기다려볼까? / 그렇게 멀리서 널 사랑해왔어 / 내겐 너무나 소중한 너 / 다가설 수도 없었던 나 / 그래도 나 이렇게 행복한 걸
Should I boldly tell you I love you? / Should I wait a little longer? / I loved you from so far away / You who is so precious to me / I couldn’t even approach you / But I’m still happy like this
감히 = boldly; daringly
사랑한다고 말하다 = to say that you love [someone/something]
[verb stem] + ㄴ/는다고 is one way to indirectly quote something.
[verb stem] + 을/ㄹ까? means “should I [verb]?” or “shall we [verb]?”
조금 = a little bit
더 = more
기다리다 = to wait
[verb stem] + 아/어보다 has the nuance of trying or attempting that verb. Here, the singer is asking if he should try waiting a bit longer.
그렇게 멀리서 = from so far away
그렇게 means “like that,” but in some contexts, it can emphasize the degree of something -- in this case, he’s pointing out the far distance from which he loved this person.
사랑해오다 --> This is the first time I’m seeing this verb, but it seems to mean “have loved.”
내겐 = 내게는 = to me
너무나 = so; extremely
소중하다 = precious
다가서다 = to approach; to draw nearer
[verb stem] + 을/ㄹ 수 없다 means you cannot do that verb
The -도 here adds the nuance of “even.”
나 = I
[verb stem] + 았/었던 + [noun] is another way to describe nouns with verbs, but this one of the ways to do so in the past tense. So literally, 다가설 수도 없었던 나 means “I who could not even approach you.”
그래도 = But still
이렇게 = like this
행복하다 = happy
Not quite sure if adding -ㄴ 걸 to the stem of 행복하다 changes the nuance at all, but I think it just means “But still, I’m happy like this.”
아직도 나는 너의 뒤에서 애태우지만 / 시간이 흘러 아주 먼 훗날 그땐 얘기해 줄게 / 네가 얼마나 날 웃게 했는지 / 설레게 했는지 / 감사해
I’m still worried behind you / But as time goes on, I’ll tell you about that time in the distant future / How much you made me smile / How you made my heart flutter / I’m thankful for you
아직도 = still
뒤에서 = from behind
애태우다 = to worry (about)
[stem] + 지만 means “but.” So 애태우지만 means “I’m worried, but...”
시간이 흐르다 = time goes on (literally “time flows”)
먼 훗날 = the distant future
그땐 = 그때는 = then; that time
얘기하다 = to tell
[verb stem] + 아/어주다 means that the subject is doing that action for somebody. In this case, the speaker will tell something to this girl.
-ㄹ/을게(요) is a type of future tense ending and is used when you’re saying that you will do something that concerns the person you’re talking to. In this case, the speaker confessing his feelings concerns the girl, the person he’s singing this song for.
네가 = you
웃다 = to smile; to laugh
[verb stem] + 게 하다 means to make someone do that verb.
얼마나 = how much
얼마나 [verb/adjective stem] + 는지 means “how much [someone/something] [does verb/is adjective]”
설레다 = to be excited; to flutter in excitement
감사하다 = to be thankful
가끔은 두려운 거야 / 혹시라도 내가 널 잊을까 봐
Sometimes I’m afraid / That I’ll forget you
까끔 = sometimes
두렵다 = to be afraid
Adding -ㄴ/은 것이다 to a verb stem is another way to conjugate it into the present tense. Sometimes it is used to emphasize the verb.
두렵다's stem ends in ㅂ, so it becomes 두려운
혹시라도 = by any chance
잊다 = to forget
-ㄹ/을까 보다 means that you’re worried that something will happen. It can mean “lest” in a lot of cases, as in you’ll do something lest something happens.
크게 소리쳐 이름 부를까? / 그럼 내 사랑 들릴까? / 그렇게 멀리서 나 망설여왔어 / 내게 세상을 선물한 너 / 무엇도 줄 수 없었던 나 / 그래서 나 웃어도 눈물인 걸
Should I shout your name out loud? / Will you hear my love then? / I hesitated from so far away / You who gifted me the world / I couldn’t give you anything / So even if I smile I’ll cry
크다 means “big,” but when using it to describe sound, it means “loud.”
-게 at the end of an adjective stem turns it into an adverb, so 크게 means “loudly” here.
소리치다 = to shout; to yell; to scream
이름 = name
부르다 = to call (as in to call out someone’s name)
그럼 = 그러면 = then; in that case
내 = my
사랑 = love
들리다 is a passive verb that means “to be heard,” but can mean that something is able to be heard.
망설이다 = to hesitate
세상 = world
선물하다 = to gift [smth]
[verb stem] + ㄴ/은 is another way to describe nouns with verbs in the past tense.
무엇도 = nothing
주다 = to give
Notice how this looks like a double negative -- 무엇도 줄 수 없다. In Korean, however, this is the correct way to say “cannot give anything.” Think of 무엇도 as a negative version of “anything,” if that makes sense.
그래서 = so; therefore
눈물 = tears
Wow, you made it through this super long breakdown! Hope you enjoyed it! See you in the next lesson! 다음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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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y back-up
fomapan 400
ma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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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평촌중앙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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