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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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lyenchantingturtle · 2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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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한국문화 촌스럽다는 평에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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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iiusmkt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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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15223208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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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운전면허학원 마포운전면허학원 은평구운전면허학원 연신내운전면허학원 마포구운전면허학원 서대문운전면허학원 서대문구운전면허학원 강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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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sinspring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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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상 은 나 를 평 가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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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entysnoir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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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cial KRP — Sobrenomes Coreanos
Cansado de Lee? Kim? Seo? Song? Choi? Hwang? Park? Abaixo do "Read More" você vai encontrar alguns sobrenomes mais incomuns que pode usar em seus personagens corea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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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 A (아 - A)
Ae (애 - É)
Ban, Bahn, Van, Vahn, Pan, Pahn (반 - Ban)
Beon, Bun, Buhn, Veon, Vun, Vuhn (번 - Bón)
Beom, Bum, Buhm, Veom, Vum, Vuhm (범 - Bóm)
Bo, Vo (보 - Bô)
Bok, Vok (복 - Bôc)
Bong, Vong (봉 - Bông)
Boo, Bu, Voo, Vu (부 - Bú)
Bi, Vi, Bee, Vee (비 - Bi)
Bin, Been, Bean, Vin, Veen, Vean (빈 - Bin)
Bing, Beeng, Ving, Veeng (빙 - Bing)
Da (다 - Dá)
Dam (담 - Dam)
Dan (단 - Dan)
Dang (당 - Dang)
Dae, Dai (대 - Dé)
Dok, Dock (독 - Dôc)
Dokgo, Dokko (독고 - Docô)
Don (돈 - Dôn)
Dong (동 - Dông)
Dongbang (동방 - Dôngbâng)
Deung (등 - Dûng)
Deungjeong, Deungjung (등정 - Dûngdjóng)
Eogeum, Uhgeum, Ugeum (어금 - Ógûm)
Eun (은 - Ûn)
Eum (음 - Ûm)
Hak, Hahk (학 - Rác)
Hae (해 - Ré)
Hyeong, Hyung, Hyoung (형 - Rióng)
Ho, Hoh (호 - Rô)
Hwa, Hwah (화 - Ruá)
Hwangmok (황목 - Ruangmôk)
Hwangbo (황보 - Ruangbô)
Hoo, Hu (후 - Ru)
Ja, Jah (자 - Já)
Jeom, Jum (점 - Djóm)
Je, Jeh (제 - Djê)
Jegal, Jekal (제갈 - Djegál)
Jeo, Juh (저 - Djó)
Jong (종 - Djông)
Jwa, Joa, Jua (좌 - Djuá)
Jeung (증 - Jûng)
Kangjeon, Kangjun, Gangjeon, Gangjun (강전 - Gangdjón)
Ka, Ga (가 - Ga)
Kal, Gal (갈 - Gal)
Kam, Gam (감)
Kan, Gan (간 - Gan)
Kae, Gae (개 - Gué)
Kyun, Kyeon, Kyoun, Gyun, Gyeon, Gyoun (견 - Guión)
Kyung, Kyeong, Kyoung, Gyung, Gyeong, Gyoung (경 - Guióng)
Kye, Gye (계 - Guiê)
Kok, Gok (곡 - Gôc)
Kwan, Gwan (관 - Guân)
Kwok, Gwok (궉 - Guóc)
Kyo, Gyo (교 - Guiô)
Kuk, Guk, Kook, Gook, Kuck, Guck (국 - Guc)
Kung, Koong, Gung, Goong (궁 - Gung)
Kwok, Gwok, Kweok, Gweok (궉 - Guóc)
Keun, Geun (근 - Gûn)
Keum, Geum (금 - Gûm)
Ki, Gi, Kee, Gee (기 - Gui)
Kil, Gil (길 - Guil)
Lin, In, Rin, Leen, Een, Reen (인 - In)
Man, Mahn (만 - Man)
Mangjeol, Mangjul (망절 - Mangdjól)
Mae (매 - Mé)
Maeng (맹 - Méng)
Myung, Myeong, Myoung (명 - Mióng)
Mo, Moh (모 - Mô)
Mok, Mock (목 - Môc)
Myo (묘 - Miô)
Moo, Mu (��� - Mu)
Mubon, Moobon (무본 - Mubôn)
Muk, Muck, Mook, Moock (묵 - Muc)
Mi, Mee (미 - Mi)
Nan (난 - Nan)
Namgoong, Namgung, Namkoong, Namkung (남궁 - Namgung)
Nang (낭 - Nang)
Nae (내 - Né)
Noi, Nwe (뇌 - Nê)
Ok, Ock (옥 - Ôc)
On, Ohn (온 - Ôn)
Ong (옹 - Ông)
Pan, Pahn (판 - Pan)
Paeng (팽 - Péng)
Pyeon, Pyun, Pyuhn (편 - Pión)
Pyeong, Pyung, Pyuhng (평 - Pióng)
Po, Poh (포 - Pô)
Pyo (표 - Piô)
Pung, Poong (풍 - Pung)
Pi, Pee (피 - Pi)
Pil, Fil, Peel, Feel (필 - Pil)
Ra, La, Rah, Lah (라 - Lá)
Ran, Lan (란 - Lan)
Rang, Lang (랑 - Lang)
Ryeo, Ryuh, Lyeo, Lyuh (려 - Lió)
Roe, Loe, Roi, Loi, Rwe, Lwe (뢰 - Lê)
Sa, Sah (사 - Sá)
Sakong, Sagong (사공 - Sagông)
San, Sahn (산 - San)
Sam, Sahm (삼 - Sam)
Sang, Sahng (상 - Sang)
Seomun, Seomoon, Suhmun, Suhmoon, Sumun, Sumoon (서문 - Sómún)
Seonu, Seonwu, Seonwoo, Seonoo, Sunu, Sunwu, Sunwoo, Sunoo (선우 - Sónú)
Seob, Sub, Seop, Sup, Suhb, Suhp (섭 - Sób)
Sobong (소봉 - Sobông)
Soo, Su (수 - Su)
Sun, Soon (순 - Sun)
Seung (승 - Sûng)
Si, Shi, Xi, See, Shee, Xee (시 - Xi)
Tak, Tahk (탁 - Tác)
Tan, Tahn (탄 - Tan)
Tang, Tahng (탕 - Táng)
Tae (태 - Té)
Uh, Eo, Eoh (어 - Ó)
Wan, Wahn (완 - Uán)
Wang, Wahng (왕 - Uáng)
Wun, Un, Woon, Oon (운 - Un)
Wi (위 - Uí)
Ya, Yah (야 - Iá)
Yeop, Yeob, Yup, Yub, Yuhp, Yuhb (엽 - Iób)
Yeong, Young, Yung (영 - Ióng)
Ye, Yeh (예 - Iê)
Yo (요 - Iô)
Yong (용 - Iông)
Yook, Yuk (육 - Iú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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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0luvs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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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ㅤׂㅤㅤㅤㅤ𓈒ㅤㅤ𝟢𝟣ㅤ
❛ ︵ b⍺𝙗ⴘ 𝗂'𝗺 𝗆𝙤𝗇𝗌𝘁ə𝗿 . 평
ᶻ 𝘇⠀⠀⠀ִ • 𝄞⠀ 💥 ᅟ ‎ ‎ֹ ‎ִ
@ 𝐘𝐯𝐞𝐥𝐮𝐯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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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𝗦e 𝘂s𝗮r 𝗺e 𝗱ê 𝗼s 𝗰r𝗲d𝗶t𝗼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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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jnim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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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가는 아이 짐을 내려놓고 목발 하나 지고서 (먹는거 구경하는게 제일 재미나다는) 니니와 산책. 오랜만에 먼길 나온 니니가 고른 삼각김밥은 아주 맛나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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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agerdurd · 20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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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떨어져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살아있다는 것은 일종의 숨이 붙어 있는 표식, 내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공기가 흐르는 듯한 소리는 나의 이명, 발 붙일 수 없는 불안의 평 수. 우거져 있는 나의 울타리는 너만 들어올 수 있다고 말도 안되는 우스갯소리. 이 말을 이해하기 전 까지도 너는 나를 찾는다. 힘겹게 눈꺼풀을 맞물리 듯 붙이면, 너는 나를 헤엄치 듯 발견한다. 반가웠다는 미소를 붙이지도 못한 체, 우리는 다시 소멸하는 밤을 증명했다. 적어내지 못한 텍스트문자, 알아보기 힘든 받침이 들쑥날쑥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도 언젠가는 읽히길 바라는 나의 고백들. 아무렴 너는 돌아올거라는 확신없는 믿음, 빙그르르 몸을 굴린다. 떨어지는 것이 있다면 이 모든 시간의 모순, 꿈에 다시 꿈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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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un143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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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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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언니가 한 명 있다. 언니는 가끔 재밌는 책 뭐 없냐면서 내 방에 들어와서는 책장 앞에 가만히 서서 열심히 책 구경을 하는데 나는 그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추천해 준 책을 읽을 때면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는데 이미 베스트셀러에다가 추천이 자자한 책을 추천하면 언니도 재밌었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나 혼자 재밌게 읽은 그러니깐 조금 특이하고 낭만적인 책을 추천하면 언니는 어김없이 혼란스러워한다. 그게 너무 재밌다. 언니는 가끔 서점에 가서 책을 사 오는데 사람들의 평 같은 건 전혀 찾아보지 않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아마도 출판사가 많은 돈을 지불하고 마련한 꽤 좋은 자리에 진열된 책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이미 그런 책들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걸 알기에 아니 왜 이런 책을 사 왔냐고 한마디 한다. 그러고는 사실 저렇게 남들의 평 따위 신경 안 쓰고 그저 내가 읽고 싶어서 산 책이야말로 진짜 행복한 소비가 아닐까 싶어져서 혼란스러웠다. 가끔 언니는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게 참 신기하다.
어제는 내가 몇 년 동안 쓴 원고를 언니에게 처음으로 보여줬다. 나의 첫 번째 독자로 언니만 한 사람이 없었기에. 이건 내가 글을 쓰기도 전에 암묵적으로 정해둔 것이었다. 언니는 내 글을 휴대전화 한번 들여다보지 않은 채로 빠르게 읽어나갔다. 그러다가 내가 제일 자��� 있고 잘 썼다고 생각한 시를 읽을 차례가 오자 옆에서 보고 있다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그거 내가 이번 책에서 쓴 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야." 그러자 언니가 "이건 앞에 글하고 뭐가 다른 건데?"라고 물어봤다. 시가 무엇이냐니. 올 것이 온 것이다.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시 쓰기 책들과 나의 온라인 시인 선생님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조금 떨면서 그러나 티를 안 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시는 생략과 은유가 담긴 글이지." 라고 대답했다. 아직도 후회스럽다. 조금 더 멋지게 시를 소개할 수도 있는 거였는데. 항상 나는 힘을 줘야 할 때 최악이 되고 전혀 힘을 줄 필요도 없는 상황일 때 최고가 되어 버려서 문제다.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언니는 언제나 그랬듯 내 말에 "아 그렇구나" 하고 원고��� 마저 읽어나갔고 시간이 흐른 뒤 내 방문을 조금만 열어 고개만 내민 채 "제법 쓴다?"라며 언니식 칭찬을 해주고는 나갔다. 그때 확신을 얻었다. 내 글이 어쩌면 나쁘지 않다는 확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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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22 ·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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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포드 래플스가 싱가포르를 점령한 지 4년 되던 해인 1823년 5월 1일자로 ‘중국인 노동자 이민에 관한 법’을 공표했다. 이는 ‘외상 뱃삯 방식credit-ticket-system’을 규제한 법령이었다(Blythe, 1947: 68). 가난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여객선 운임 등 여행 경비를 마련할 수 없어 빚을 지고 이주해서 일정 기간 노동을 해서 갚는 일은 흔했다. 이를 외상 뱃삯 방식이라 했는데, 이주노동자를 ’채무 노예‘로 만드는 악랄한 수법이었다. 그래서 래플스는 이 문제에 관해 뱃삯의 빚을 갚아야 한 의무노동 기간을 2년 이내로 할 것과 이주노동자의 뱃삯이 20달러를 넘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했던 것이다.
래플스가 이 법을 공표하던 당시 싱가포르의 지위는 여전히 어수선했다. 1819년 래플스의 싱가포르 점령을 두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무력만 동원하지 않았을 뿐, ‘서류 전쟁’ 상태였다. 네덜란드가 싱가포르와 말라카해협의 관할권을 영국에 넘긴 영국-네덜란드의 런던조약은 1824년에야 체결되었다. 래플스의 외상 뱃삯 규제법은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물론 래플스의 싱가포르도 프랜시스 라이트의 페낭처럼 ‘해골 정부’였고, 법을 강제할 행정의 근육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현지 무역상이었던 라이트와 달리 행정관이었던 래플스가 싱가포르 건설 초기부터 외상 뱃삯 방식의 규제를 중요한 정책 과제로 여겼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해플스의 규제법이 알려주는 바는 ‘쿨리 무역‘이 중국인의 해외 도항 금지가 풀린 1860년 북경조약 이후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47쪽)
초기부터 페낭에는 후추농원이 개��됐다. 프랜시스 라이트가 페낭을 후추 재배 기지로 만들 생각을 하고 카피탄 치나 코라이환을 수마트라의 아체로 보내 후추 묘목을 가져오게 한 게 1790년의 일이다. 그리고 그 이듬해 페낭에서 아편팜이 개시됐다. 이는 후추농원 개발과 중국인 아편 소비자의 상관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1794년에 페낭의 중국인 인구는 3,000명을 넘어섰다. 1798년 페낭의 후추농원은 700에이커(약 86만 평)에 달했고, 50만 그루의 후추가 재배됐다(Joseph, 2008: 8).
영국 식민 당국이 후추 재배를 포기한 1825년까지 후추는 페낭에서 생산된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이었다. 후추를 시작으로 육두구와 정향[*페낭의 후추가 수마트라의 아체에서 들여온 것과 달리 육두구와 정향은 향료군도에서 들여왔다. 나폴레옹전쟁으로 영국은 1796년 몰루카제도를 점령하고 1802년까지 육두구 묘목 7만 1,000그루와 정향 묘목 5만 5,000그루를 페낭으로 이식했다. 1840년대 육두구 재배가 페낭 전체로 확산됐다. Joseph(2008: 8~9)], 사탕수수, 코코넛 등 농원 개발은 프라이를 포함한 페낭에서 19세기 말까지 대규모 노동자를 고용하는 유일한 생산 부분이었다. 물론 1788년 8월 이미 조지타운에 71개의 점포가 문을 열었을 정도로 페낭은 교역과 성업의 도시였다(Hussin, 2006: 186). 중국인 해운사와 무역회사에 선원과 점원 등의 노동력이 필요했고, 인구가 늘어나는 도시에서 각종 일손도 덩달아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페낭의 인구를 급속히 늘리고, 중국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끌어들인 것은 후추에서 시작된 페낭의 농원 개발이었다.
1840년대 들어 중국인의 농원 개발이 확대되었지만, 초기의 대규모 농원 소유주는 대부분 유럽 상인들이었다. 이들이 무상불하된 토지를 대거 독식했다. 하지만 초기 유럽인 농원의 노동자는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중국 광동성 일대의 가난한 농부들이 뱃삯을 외상으로 한 채 페낭으로 왔다. 그중에서도 조주潮州 출신이 일찍부터 농원 노동자로 각광을 받았다. 내지 못한 뱃삯을 후추농원주가 대신 갚는 조건으로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은 3년간 부채 노동을 해야 했다. 노동자들은 3년 뒤 후추 작황이 좋으면 농원주와 성과를 나눠 갖는 방식으로 일했다. 1820년에 출간된 중국의 여행문학서인 《해록海錄》에는 “(18세기 말) 페낭에서 후추를 재배하는 자가 1만 명이 넘는다”란 기록도 나온다.[*《해록》은 중국 청나라의 상인 사청고謝淸高(1765~1821)가 1783년부터 1797년까지 14년간 해상교역을 하며 페낭을 비롯해 인도양 일대 97개국에 관해 언급한 여행문학서이다. 이 책은 시력을 잃은 사청고가 구술하고 다른 이가 글로 옮긴 것으로 인도양 일대에 관한 중국인 최초의 기록으로 꼽힌다.] 과장된 표현이기는 해도 1790년대 이미 페낭에는 많은 수의 중국인 이주노동자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페낭 건설 초기 후추농원 노동자의 대다수가 바로 ‘새끼돼지猪仔‘ 혹은 ’쿨리coolie‘였다.
페낭에 이주한 중국인 노동자가 모두 외상 뱃삯 방식에 의존한 쿨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유이민’을 표방하는 영국 식민 당국은 이주노동자를 확보하는 데 골몰했지, 그들이 노예 혹은 돼지처럼 팔리는 존재인지는 안중에 없었다. 영국 식민 당국이 중국인 이주노동자가 페낭행 뱃삯을 지불했는지 외상으로 했는지를 조사하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은 페낭을 점거한 지 한 세기 뒤인 1880년대의 일이다. 1891년 해협식민지 노동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뱃삯을 외상으로 한 ‘새끼 돼지’는 1880년 페낭에 입국한 중국인 이주자 3만 886명 가운데 1만 3,444명(44퍼센트)이었고, 1881년에는 전체 이주자 4만 2,056명 가운데 2만 794명으로 절반에 달했다. 페낭의 전체 이주자 가운데 저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1880년대 전반의 40~50퍼센트에서 후반엔 30퍼센트로 낮아졌다(Tang, 1970: 85). 1880년대 들어 쿨리무역이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1790년 페낭에 후추농원이 개발되기 시작한 이래 뱃삯을 빚진 페낭의 이주노동자 비중은 19세기 후반보다 결코 낮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 중국인 노동자를 통상 쿨리coolie苦力라 한다. 식민지 개발을 위한 노동력 수요가 높은 영국 등 유럽 제국주의국들은 주로 중국 남부의 연안 지역에서 노동자를 모집해 식민지로 송출했다. 이른바 쿨리무역이다. 쿨리무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마디가 바로 ‘무역’이다. 중국인 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했다는 뜻이다.
영어의 쿨리coolie는 힌두어 ‘kuli’에서 왔고, 이것이 한자로 ‘고력苦力‘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쿨리란 말이 쓰이기 이전부터 중국에서는 팔려나가는 노동자를 ‘저자猪仔‘라고 했고, 18세기 말부터 페낭에서는 ‘저자’를 광동 방언으로 ‘추이차이Chue Tsai’라 불렀다. 저자는 새끼돼지를 가리킨다. 쿨리무역을 ’돼지무역pig trade’이라 하는 건 저자에서 비롯됐다. 저자라는 이름은 앞머리를 밀어내고 뒷머리만 길러 뒤로 땋는 중국 남자의 변발이 돼지 꼬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도 한다. 사람을 돼지에 비유해 모멸감을 주는 용어가 저자무역 혹은 쿨리무역의 열악한 조건과 성격을 대변한다 하겠다.
세계적으로 보자면 쿨리무역이 19세기 들어 노예제가 잇달아 폐지되면서 확산된 것은 사실이다. 영국은 1833년, 프랑스는 1848년, 미국은 1860년, 네덜란드는 1863년, 스페인은 1870년 각각 노예해방령을 시행했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흑인노예를 대체할 ��동력이 급했다. 중국에서는 1860년 북경조약 이후 ‘대진율례大津律例‘의 해외 도항 금지가 풀리면서 중국인의 이주가 자유화됐다. 도항 금지의 족쇄가 풀린 중국인이 영국 등 유럽의 식민지에서 흑인노예를 대체할 노동력으로 주목받으면서, 중국인 노동자가 상품처럼 팔리는 쿨리무역이 성행했다. 18세기 후반 페낭 후추농원에 ’추이차이’란 이름으로 팔려간 중국인은 쿨리무역이란 말이 생기기 이전의 쿨리였다. 단지 중국 정부의 관점에서 보자면, 쿨리무역은 합법이고, 페낭에 팔려간 추이차이는 불법이었다는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쿨리의 또 다른 이름은 ‘계약노동자indentured labour’이다. 임금노동자이지 노예는 아니라는 뜻이다. 이 말은 중세 잉글랜드의 계약하인indentured servant에서 나왔다. 영국은 미국 개척 초기 이 방식으로 하인을 미국으로 보냈다. 영국인 주인에게서 뱃삯 등 여행 경비와 숙소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미국에서 일정 기간 하인으로 일하던 이들을 가리켜 계약하인이라 했다. 적어도 외상 뱃삯 방식으로 이주한 19세기 페낭과 말라야의 쿨리는 계약노동자보다 계약하인에 가까웠고, 내용상으로는 빚 때문에 노예로 살아야 했던 ’부채노예‘와 다를 바 없는 ’저자‘였다. 1880년대까지 페낭의 농원과 페락의 주석광산에서 중국인 노동자를 쿨리라 지칭하는 건 너무 점잔빼는 표현인지 모른다. 강제 노동과 아편 중독이란 이중의 착취를 감안한다면 말이다.
쿨리무역은 ’무역‘이란 말에서도 드러나듯, 복잡한 교역 네트워크로 이뤄졌다. 중국 남부에 쿨리를 모집해 송출하는 조직, 쿨리 운송을 전담할 해운, 현지의 쿨리 수용소 등이 사업으로 얽혔다. 여기에 비밀결사가 개입했다. 1799년 페낭에서 열린 비밀결사 의흥회의 회합에 광동성 마카오澳門의 쿨리무역업자가 참석했다(李恩涵, 2002:186). 페낭의 비밀결사는 애초부터 쿨리무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외상 뱃삯 방식의 쿨리무역 과정은 이렇다. 중국 남부에서 쿨리를 모집하고 목적지까지 운송 책임을 지는 쿨리 중개인을 저자두猪仔頭, 혹은 객두客頭, 고력두苦力頭라 했다. 이들이 쿨리의 뱃삯을 대신 내주고, 숙박과 승선 수속을 대행하며, 이주지에서 고용까지 알선한다. 19세기 중국 남부 일대에 저자두가 2,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저자두는 수하에 모집인을 둔다. 모집인은 쿨리 1명당 1달러의 수수료를 받았다. 이 때문에 유괴와 납치가 끊이지 않았다. 중국 남부 연안의 농민과 어부를 강제로 붙잡아오기도 하고, 도박판에서 빚을 지게 한 뒤 빚 독촉을 하거나, 미인계로 유혹해 약이나 술을 먹여 배에 태우기도 한다. 이렇게 모집되는 순간 가난한 농민은 ‘빚을 진 새끼돼지’ 신세가 된다. 모집인은 사람 사냥꾼이었던 셈이다. 모집된 쿨리는 목적지로 떠날 때까지 숙소에 감금된다. 이 숙소를 저자관猪仔館 또는 객잔客棧, 초공관招工館이라 했다. 저자두는 쿨리와 함께 목적지로 가서 고용주와 가격을 흥정한 뒤 쿨리를 판다. 고용주에게서 쿨리를 넘기고 받은 돈에서 여비를 제하고 남은 돈이 저자두의 이문이다. 고용되지 못한, 그러니까 팔리지 않은 쿨리는 페낭의 저자관에 감금된다.
1880년 이전 쿨리 실태를 보여주는 해협식민지 정부의 공식 자료는 드물다. 1877년에 개설된 화인보호관서의 초대 화인보호관을 맡은 윌리엄 피커링은 1872년 싱가포르에 부임했을 때 “싱가포르 해협식민지 정부에서 중국어를 말할 수 있는 유럽인 관리가 나 말고는 없었다”며 “매주 수많은쿨리가 드나들지만 영국 정부와 경찰은 이들에 관해 아무런 정보와 자려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Jackson, 1965: 18, 59). 중국인 쿨리를 관리하는 건 식민 당국이 아니라 전적으로 화인 비밀결사의 소관이었던 것이다. 화인보호간과 해협식민지 화인정무장관을 지낸 W. L. 블라이드는 19세기 쿨리 실태에 관한 귀한 자료를 남겼다.[*해협식민지 정부는 ‘화인보호관’의 직무를 흡수해 중국인 문제 전반을 장관이 관할하는 ‘화인정무부Secretary of Chinese Affairs’로 승격했다.]
블라이드가 정리한 1854년 자료(Blythe, 1947: 72)에 따르면, “뱃삯을 외상으로 하고 이주해 1년간 계약노동을 통해 빚을 갚아야 하는 쿨리를 복건 방언으로 ‘신케Sinkeh新客’라 하고, 광동 방언으로는 ‘신학Sinhak新客’이라 했다. 신케는 1년 의무노동으로 빚을 다 갚으면 자유쿨리가 되며, 이때부터 ‘콩시’ 가입 자격을 얻는다.“[*여기서 콩시는 앞서 보았던 쿠콩시와 같은 친족회관이 아니라 농원이나 광산에서 고용주와 노동자가 성과를 공유하는 일종의 조합을 가리킨다.] 이는 앞서 스탬포드 래플스의 노동자 이민법에서 확인된 바, 1820년대 2년이던 쿨리의 계약노동기간이 1850년대에 1년으로 단축되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식민 당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이어서 현장에서 실제 계약 기간 1년의 준수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쿨리와 관련해 ‘신케’는 외상 뱃삯 방식으로 이주해 1년간 빚을 갚아야 하는 계약노동자를 가리켰고, 빚을 갚은 노동자를 ‘라오케’라고 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울러 블라이드는 당시 페낭에 연간 2,000~3,000명의 쿨리가 들어와 프라이, 태국, 말라야 등지로 나간다고 했다. 페낭이 이 지역의 쿨리 공급 기지였다는 의미다.
1876년 자료(Blythe, 1947: 73~74)에서 눈길을 끄는 점으로는 첫째, 뱃삯을 외상으로 하는 이주자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복건성 하문廈門이나 홍콩의 이주자들은 거의가 뱃삯을 자비로 부담한다. 해남海南 사람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외상으로 배에 오른다. 광동성 조주 사람은 대부분 농원 노동자로 이주하는데, 뱃삯을 자부담하는 이와 외상으로 하는 이가 반반”이라는 것이다. 뱃삯을 빚지지 않은 이주자는 현지에 상륙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골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농원 노동을 자원하더라도 ‘저자’로서의 신케는 아니었다. 복건성 출신 이주자는 대체로 ‘저자’로 팔려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불로 낼 때와 외상으로 할 때 뱃삯이 달리 계산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1인당 자부담 뱃삯이 7~8달러인데 반해 외상일 경우 12달러로 4~5달러의 웃돈을 물린다는 것이다. 중개인이 부담하는 뱃삯 이외의 여행 경비가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 외상 뱃삯을 높이 책정한다는 건 쿨리의 빚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뜻이다 이는 동시에 쿨리무역업자와 현지의 고용주가 쿨리의 빚을 늘리는 게 이득이 된다고 여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뱃삯을 빚지고 페낭 땅을 밝은 신케는 어떻게 살았을까? 화인보호관서의 페낭 주재 보보호관 라이Wray는 1890년 페낭 사탕수수농원의 실태를 조사하며 이런 보고서를 남겼다.
나는 농원에서 신케로 시작해 원치 않는데도 계속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중 일부는 애초에 의무계약 기간을 3~4년 전에 끝냈지만 빚 때문에 계속 일한다. 이들은 여전히 고용주에게 속박되어 있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한 노동자는 원치 않는데도 9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조사할 당시에도 그는 여전히 빚이 있었다. ······ 노동자들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페낭섬을 벗어날 수 없다고 이구동성이었따. 부두에는 감시원이 있어 허가증을 갖지 않고서는 배를 탈 수 없다고 했다. ······ 빚이 있다고 해서 페낭을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내가 알려주자, 그들 중 30명이 당장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시는 농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두려워, 내가 탄 마차 뒤를 2마일이나 따라 달려 농원을 벗어났다. 30명 가운데 3명만 그 농원에 남았다(Blythe, 1947: 81).
페낭에서 빚진 뱃삯을 일해서 갚아야 하는 신케의 의무노동 계약 기간은 1790년대 3년에서 1820~30년대 2년으로 줄었고, 1850년대 다시 1년으로 줄었다. 그런데 페낭의 쿨리무역이 개신된 지 한 세기가 흐른 1890년대에도 어떤 쿨리는 9년째 농원을 벗어나지 못했고, 어떤 쿨리는 1년 의무노동을 했지만 빚이 남았다고 했다. 페낭 농원의 쿨리들은 중국에서 같은 일을 했을 때보다 임금을 세 배나 많이 받았다. 그래서 금의환향을 꿈꾸며 새끼돼지 취급을 감수했다. 계약서상으로는 신케가 1년 일하면 뱃삯 빚을 갚고, 단 몇 달러라도 손에 쥘 수 있었다.[* 1890년 해협식민지가 페락의 주석광산에서 쿨리 계약의 기준으로 마련한 지침에 따르면, 계약기간은 1년, 1년 임금은 42달러, 외상 뱃삯은 22달러를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Blythe, 1947: 75). 이론상으로는 쿨리는 1년 계약노동 기간 뱃삯으로 진 빚 22달러를 갚고 최대 20달러를 수중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일할수록 빚이 늘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가난한 신케들이 페낭에 가지고 온 것이라곤 몸뚱이와 낡은 옷 두어벌이 든 봇짐과 여행 가방에 해당하는 작은 나무상자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고 했지만, 신케는 빈손이 아니었다. 빚이 들려 있었다. 뱃삯을 갚을 때까지는 농원을 떠날 수 없다는 계약서가 그들의 노예문서였다. 하지만 빚쟁이로 만드는 외상 뱃삯 방식은 신케가 직면할 불행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블라이드(Blythe, 1947: 70)는 “신케가 몸서리를 ��,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악마는 고용되고 나서 맞닥뜨리게 된다”고 했다. 악마는 동족인 중국인이자, 중국인이 중국인에게 가하는 착취를 가리킨다. 블라이드는 그 악마적인 착취의 실례로 ‘루마 커칠 방식rumah kecil system’을 꼽았다. 루마 커칠은 말레이어로 ’작은 집‘이란 뜻이다. 블라드의 설명은 이렇다.
프라이의 사탕수수농원주는 유럽인이든 중국인이든 루마 커칠 방식을 활용했다. 농원주는 농원을 여러 개 구역으로 분할해서 중국인 업자에게 하청을 주었다. 농원주는 저자두에게 신케의 뱃삯 외상을 갚고 고용계약을 맺는다. 고용된 쿨리는 농원의 중국인 하청업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이때 농원주는 지불할 뱃삯에 얼마간의 돈을 더해 신케의 1년 임금 명목으로 지급했다는 장부도 함께 넘긴다. 장부에 기장된 임금은 고스란히 신케의 부채로 잡히고, 이후 신케의 운명은 전적으로 중국인 농원 하청업자의 수중에 들어간다. 업자가 신케의 임금과 음식을 주고, 숙소도 제공한다. 농원 노동자가 묵는 숙소가 바로 ‘루마 커칠’이다. 신케는 노동을 마치면 루마 커칠을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다. 구타와 욕설은 보통이고 제공되는 음식도 부실하다. 의료 시설이 없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신케를 아편에 중독시키는 것도 중국인 하청업자들이다. 이들은 페낭 조지타운의 시세보다 비싸게 아편을 팔아 이문을 남긴다. 신케는 마땅히 아편에 중독되어야만 한다. 이들은 도박장도 운영한다. 신케에게 지급되는 임금을 탈탈 털어가는 것도 모자라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이다.
뱃삯을 빚지고 페낭에 내리는 순간부터 신케는 ‘아편 권하는 사회’와 마주한다. 아편에 의지해 노동하게 하고, 일할수록 빚도 늘리는 ‘빚 권하는 화인사회’를 말이다. 신케는 배에서 내려서부터 페낭 화인사회의 정부인 비밀결사의 통제를 받는다. 농원주와 아편파머는 비밀결사의 지도부였다. 루마 커칠 방식은 비단 프라이 사탕수수농원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18세기 말 코라이환이 페낭에서 후추농원을 열 때도 농원으로 팔려온 중국인 ‘새끼돼지’의 처지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페락의 주석광산에서도 악마적인 착취는 이어졌다.
(150~159쪽)
페낭 식민 당국이 아편팜을 유지한 것은 단순히 세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식민 당국이 세금을 걷는 데 따른 행정 비용이 전혀 들지 않기도 했지만, 재산도 없고 주거지도 고정되지 않은 화인 노동자에게 아편과 도박장, 술, 전당포 등을 통해 소비세 형식으로 과세하는 것이 수월하다고 봤다. 그러나 식민 당국이 특히 중국인의 아편팜을 장려한 데에는 더 큰 목적이 숨겨져 있다. 19세기 후반까지 대형 농원과 주석광산 개발은 중국인 자본과 중국인 노동만으로만 가능했다. 이를 위해 영국 식민 당국으로서는 협력자인 화인 거상 엘리트가 자본과 노동을 통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Butcher, 1983: 395).
네덜란드의 동인도나 프랑스의 인도차이나에서보다 영국의 페낭과 말라야에서 아편팜을 통한 노동자 통제는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영국은 인도산 아편의 생산과 공급을 독점했을 뿐더러 아편팜의 아편가격도 상대적으로 낮게 유지했다. 예컨대 1890년 프랑스는 코친차이나에서 아편팜의 ���간 전매료로 200만 달러를 물렸다. 당시 코친차이나에서 아편의 핵심 소비자인 중국인 인구는 5만 6,000명이었다. 같은 기간 중국인 인구가 거의 두 배인 10만 명의 싱가포르에서 아편팜의 연간 전매료는 20만 달러에 불과했다(Trocki, 2002: 306). 단순 비교로 영국은 아편 소비자 수가 2배인 싱가포르에서 코친차이나 아편팜 전매료의 10분의 1만 부과한 것이다. 이는 영국이 아편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는 증거이다.
영국이 아편을 제국 경영의 전략으로 활용했다면, 중국인 거상들에겐 자본과 노동을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 아편팜이었다. 페낭의 중국인 농장주들은 쿨리를 임금노동자로 고용하고 아편팜과 비밀결사를 이용해 이들에게 비싼 값에 아편을 팔아 지급한 임금을 되가져가는 수법으로 노동을 통제하고 자본을 키웠다. 19세기 초 페낭의 쿨리를 온전히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로 간주하기는 힘들 것이다. 임금노동자의 탄생에는 두 가지 ‘자유‘가 필요하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고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와 자유의지에 따른 ’계약의 자유‘가 그것이다. 페낭의 쿨리들은 첫 번째 자유는 있었지만, 빚을 지고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점에서 반쪽의 ’자유‘ 노동자였다.
1790년부터 시작된 후추농원 개발로 초기부터 페낭의 화인사회는 대량으로 유입되는 ’신케‘라는 이름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를 위해 비밀결사라는 화인사회의 자치정부가 요구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앞서 살펴봤다. 이와 관련해 1800년 페낭에서 광방과 복방의 엘리트가 공동 사원으로 광복궁을 설립한 취지가 쿨리와의 계급 갈등을 종교적으로 완충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광복궁의 다른 이름은 관음보살을 신앙한다고 해서 관음정觀音亭이다. 중생의 재난 구제를 굽어 살피는 관음보살 앞에서 신케는 당면한 불행이 전생의 악업惡業 탓임을, 페낭 화인사회의 기득권자인 엘리트는 현생의 부귀가 전생의 선업先業 덕임을 서로 인정하자는 것이 광복궁 창건의 심리적 동기라는 설명이다(駱精山, 2002: 6).
1794년 페낭 인구는 3,000명을 넘어섰고 그중 상당수는 돼지처럼 팔려온 저자였다. 이들은 열병과 각종 질병으로 죽어갔다. 앞서 봤듯이 초기 페낭의 도시 환경은 열악했고, 치안 행정조차 갖춰지지 않은 양육강식의 사회였다. 금의환향의 꿈은 시들어갔고, 오로지 보살과 신령의 보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페낭의 부자들은 고난에 찬 저자들에게 영혼의 안식처부터 마련해주어야 했던 것이다. 농원 개발로 인한 자본제적 임노동과 아편팜으로 인한 상품경제가 확대되면서 페낭의 화인사회는 초기부터 자본과 노동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페낭 화인사회에서 광복궁 혹은 관음정이 신테 노동자를 규율하는 심리적 기제였다면, 심리적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이며 물리적인 수단이 아편팜이었다.
(162~165쪽)
신케 쿨리를 비롯해 계층화된 페낭 화인사회 피라미드의 밑바닥 계층에게 아편은 ‘노동 마약work drug’이었다고 한다. 아편이 열대의 페낭에 ��연하던 콜레라, 이질, 말라리아, 신경쇠약 등의 환자에게 고통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점은 일찍부터 알려졌다. 하지만 아편은 진통제일 뿐 치료제는 아니었다. 앞서 보았듯이 19세기 초반부터 중국인의 아편 흡입과 아편팜으로 아편 판매를 합법화한 영국 식민 당국의 비도덕성을 탓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한 해 아편으로 소비되는 돈이 사회 복지에 쓰인다면 중국인 노동자들의 삶은 한결 나아졌을 것이라는 비난도 제기됐다.
이런 비난을 두고, 역사가 칼 트로키(Trocki, 2002: 304)는 순진naive하다고 했다. 영국 식민 당국의 부도덕성을 탓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단지 19세기 아편팜과 영국 식민지의 아편 체제, 그리고 그 구조를 들여다본다면 도덕적 비난은 물색 모르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인 토카이도, 유럽인 상인과 농원주도, 영국 식민 당국도 중국인 노동자들이 아편을 피우지 않는 상황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아편이 없다면 페낭의 토카이가 페낭 화인권을 호령할 만큼 자본을 축적하는 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예컨대 페낭 후추농원에서 생산된 후추는 국제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농원 자본가에게는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출한 돈이 다시 회수되는 구조가 필요했다. 그 구조의 핵심이 아편팜이었다. 아편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한 ‘노동 마약’이었고, 중국인 노동자는 반드시 아편을 피워야만 했다. 그것이 19세기 영국 식민지 페낭의 구조였고, 페낭 화인사회의 논리였다. 영국 식민지 페낭과 페낭의 화인사회는 ‘아편 권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동남아 화인 거상의 성공 스토리는 한결같다. 맨주먹으로 남양南洋 땅을 밟아 열심히 일하고, 좋은 동향사람이나 주인을 만나 사업으로 거부가 된다는 줄거리다. 19세기의 페낭에는 이른바 ‘페낭 드림’이 끊이지 않고 재생산됐다. 그러나 빈손으로 이주했더라도 페낭행 뱃삯을 외상으로 했다면 ‘페낭 드림’이 가능했을지는 미지수다. 적어도 성공 신화의 주인공 가운데 뱃삯을 빚진 신케의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페낭행 배에 오를 때부터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자와 꿈도 꾸지 못할 자가 결정됐다.
(167~168쪽)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79년 춘절 기간 말라카를 방문해 중국인 부자의 어린 자식들을 보고 “화려함 중에서도 백미는 기품과 거드름을 겸비한 중국인 아이들이다. 동양의 모든 부가 그들에게 퍼부어진 듯하다”고 했다. 이어 “내가 과장법으로 허풍을 떤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묘사하고 있는 그 중국인 소녀의 목에는 하나같이 아름다운 목걸이가 7개나 걸려 있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이 어린 소녀가 치장한 보석과 금붙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4만 달러는 된다.“(비숍, 2017: 162~163)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해협식민지 정부의 고용계약 지침에 따르면 1876년 페락 주석광산에세 신케의 연봉은 42달러였다(Blythe, 1947: 79). 이는 정부가 권장한 하한선이니 실제 임금은 이보다 더 낮았을 수 있다. 앞서 본 사탕수수 농원의 루마 커칠 방식처럼 노동자의 임금을 고스란히 털어가는 수법이 주석광산 쿨리에게 더 광범하고 교묘하게 작동했으니 그나마도 빚지지 않으면 다행일 터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말라카 중국인 토카이의 솜털 뽀송한 딸아이 목에 신케 광부 1,000명의 명목상 1년 연봉이 걸려 있었던 셈이다. 토카이와 쿨리 사이에 ‘불균不均의 골‘은 이렇게 깊었다. 아편팜을 중심으로 아편 권하는 자와 악마의 연기에 꿈을 날려 보내는 자로 틀이 짜인 페낭의 화인사회는 1850년대 주석광산 개발 붐을 타고 본격적인 ’자본의 시대‘로 진입했다.
(169쪽)
아편과 깡통의 궁전 - 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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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hyuppy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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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lected Book Vol. 1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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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fahr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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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그 여름의 끝’,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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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hedeepthatsea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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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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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 끝나고 수영장 다녀왔다. 접영을 무슨 200m나 시켜서 숨넘어가는 줄 알았네 ㅠㅠㅜ 팔이 안올라가 살려주세요(+자유형+평/배는 덤이고...)
今日お仕事終わってプール行ってきた。先生がバタフライを200mをさせたため腕が上に上がらない😂助けてくださ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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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motors010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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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United States of America 🇺🇸
AFAIK America Europe in JEJU
Korea language services
시장이 공석인 관계로 제주특별자치도시로 승격
시장님 당선을 축하합니다- 한라일보사
공약
이번에 반드시 숙원인 제 2공항 활주로 정비사업과
도심지 및 우회도로 교통사고 다발구역에 톨게이트
설치 하시겠답니다
이는 시의 자립도 및 재정확충에도 영향을 미칠것으로
이미 도내 거주중인 기장님들 사이에 다음 대권주자는
확실하다는게 평 입니다-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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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ssj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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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Uphill Road) - 윤종신 (Yoon Jong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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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English Translation
[Verse 1]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 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Our smiles are going to disappear from this point forward
Just look at this steep path
Yes, before we begin to climb, let's remember our smiles
We may not see them for a while
The gentle path we had traveled
Smelled sweetly of love
Now the sticky sweat and our rough breathing
May be our only conversation
[Hook]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One step – Now it's just a step
Don't look at that distant finish line (lit. end)
If you keep looking at me, just like during that peaceful road,
If you do that, I may overcome this
[Refrain]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I love you, you who travels with me on this road
You, who insisted upon choosing the difficult me
Only when the wind occasionally blows
Look at that far-off view
Our path, which is as beautiful as the length we've come.
Remember, if ever we lose each other's hands
Don't ever get flustered or roam around
When we reach the point where we can't climb any further
That place isn't very large
So we will eventually meet, if we go up
[Hook]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마 평
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난 견디겠어
One step – Now it's just a step
Don't look at that distant finish line (lit. end)
If you keep looking at me, just like during that peaceful road,
If you do that, I may overcome this
[Refrain]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 쳐 사랑해요 저 끝까지
I love you, you who travels with me on this road
You, who insisted upon choosing the difficult me
Only when the wind occasionally blows
Look at that far-off view
Our path, which is as beautiful as the length we've come.
Remember, if ever we lose each other's hands
Don't ever get flustered or roam around
When we reach the point where we can't climb any further
That place isn't very large
So we will eventually meet, if we go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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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gewashingtonwc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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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바디프랜드 안마의좌의료기
써 보신분들은 압니다 얼마나 편안하고 시원한지를
이걸 침대 메트리스에 결합해보면 완벽한수면 잠자리
이죠
쉽게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만 올라와 줘도 등과 허리는
물론 목은 베게가 잡아주는 기술을 고안해 보죠
중국 논다하는 기술 손 자본 이렇게 만들면 어떨까요
아이디어는 특허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기술로 연구 개발에 착수 수많은 실패와 도전 끝에
나왔을때 그 때 품 평 이나 받겠죠
기술과 자본 능력되시는 분들께 무상으로 양도 합니다
사실 세상에 무상은 없습니다
그게 무상에 이점이죠
장사꾼 이라는 소리는 여기서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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