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예수를
pettyofficial · 4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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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6.~12.9.
동료와 헤어지고 가는길에 아직은 가을씨가 남아 있었다.
뭐 전철역과 거리 곳곳에는 아기 예수를 반기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점멸되어서 환하게 반기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플라타너스 잎이 다 안지고 있었으니까.
5번째 CCM 재인증을 받았다. 2021년, 2023년 두번 다 내가 혼자 해냈다. 덕분에 CCM팀 누나들은 이제 대리님은 차장님이 되셨고 차장님은 팀장님이 되셨다. 이제 소비자에 대한 불만이 생기면 누나들에게 이르면 누나들이 해결 잘 해주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2019년부터 발 담궈서 참 오래도 되었고, 소비자중심경영팀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소비자중심경영 공적기술서는 그래도 쓰기 빡세단 말이지...🥲
다음날 핫한 횟집 '광안리' 를 우연히 알게 되어 오픈런을 뛰어서 가게 되었다. 일단 싱싱하고 가성비는 좋다.
그리고 건너편에, 내 자식은 롯데편이 안 됐으면 한다는 사장님! 하지만 롯데가 10개 구단중 응원은 1등이라고 자부해요!
2023.5.25.
올해의 KPI하나 달성, 행안부 장관 표창을 받게 되었다. 재난관리 유공표창인데 나름 힘들었다. 이번 표창은 나름 뜻깊은 게 100% 다 나의 개인기로 받아낸거라 좀 신기하다.
공적서 5페이지 작성에 행안부를 속이다니, 행안부도 별거 없다란 생각도 들고. 아니면 5페이지를 내가 정말 잘 썼나 싶기도 하고. 쟁쟁한 지자체와 함께 받아낸 게 참 신기했다.
요즘은 산자부-환경부가 함께라는 녹생경영유공의 지속가능발전 보고서를 쓰는데, 이거 참 어렵네... 어려운 만큼 해내고 부딪히고 해내는 성취감도 있으니까 또 해보겠다.
종교를 개종하라는 건 아랍 사람들이 왜 폭탄 테러하는 지 알겠더라. 없던 종교도 생기는 세월이었었어.
나는 상대방 감정을 이해못하는 아니 이해할 생각이 하나도 없은 소시오패스가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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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downtown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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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어제 긴급생계비 710,000원 주었는데 과용 했으니까 앞으로 헝그리다 15만원 과용 했습니다 밥해먹으려면 월세는 첫달만 지원해주고 3개월은 다달이 해주면 얼마나 좋아 돈 통인 예산 얼어서 국제빙상경기연맹 아이스크림 이면서 전자밥통 가스버너 등 필요하니까 썼습니다 그래서 알바좀 찾는데 전부 영업종료 입니다 도대체 뭐가 새출발 입니까
이권인 비닐 카본만 찢으면 된다니까 그럼 유류비 529,820 원 국민재난지원금 200,000 원 나오는데 여기를 헝그리라고 하십시요 경제 좆도 모르면서 무슨 예수를 찾고들 지랄이야
빼주려면 앞으로 똑바로 빼주던가 뒷문이 뭐야 뒷문이 니들 정신 안봐도 훤하다
내가 후견인이 어딨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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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lations2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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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의 마리아, 이브라힘 나스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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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의 마리아
- 이브라힘 나스랄라
- 후다 파크레딘 아랍어에서 영어로 옮김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나의 아들을 위한 것도, 당신의 아들을 위한 것도 아니나이다.
마리아가 마리아에게 말했다 . . .
오 내 고향의 누이여, 이 땅을 함께 밟은 누이여,
내 영혼의 누이여, 나의 기도여,
투명한 새벽의 누이여, 재앙과도 같은 내 죽음의 누이여,
죽음으로터 우리에게 남은 것과 삶으로부터 우리에게 남은 것 안에 있는 누이여.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저 하늘은 우리를 보지 못하나이까 우리 등에 얹힌 십자가가
쓰디쓴 피의 들판에 선 우리를
가리나이까?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평화는 우리의 적을 위한 것이나이다, 오 주여.
적의 비행기를 위한 것이나이다. 그것이 하강할 때의 죽음과
그것이 이륙할 때의 죽음을 위한 것이나이다,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춤을 추는 죽음을 위한 것이나이다.
아무것도 죽음을 만족시키지 못하나이다,
슬픔에 잠긴 우리의 피도, 아름다움에 잠긴 우리의 피도,
바다에 흐르는 우리의 피도, 들판에 흐르는 우리의 피도.
산을 타고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흙 속으로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모래밭에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해답 속에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질문 속에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북쪽에서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남쪽에서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평화 속에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전쟁 속에 우리의 피가 흐르나이다 . . .
그 무엇도 충분치 않나이다.
평화는 우리의 적을 위한 것이나이다, 오 주여,
먼 나라에서 온 적의 경비대를 위한 것이나이다
가까운 나라에서 온 적의 경비대를 위한 것이나이다.
평화는 우리의 적과 같이 우리를 포위하는
모든 형제를 위한 것이나이다
우리의 죽음 위로 지나가는 모든 형제를 위한 것이나이다
우리의 폐허 위로 적의 왕관을 세우기 위해.
이곳에는 두 발을 잃은 소녀 안에 사는 나비를 위한 자리가 없나이다,
사랑에 죽는 연인을 위한 자리가 없나이다, 비행기를 위한 자리가 없나이다,
"내가 죽어야만 한다면, 당신은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살아야만 한다."
라고 쓰는 시인을 기뻐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시를 위한 자리가 없나이다.
바다는 새나 연인을 위한 것이 아니옵고,
하늘은 이국의 땅처럼 우리에게 등을 돌렸나이다.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평화는 다른 이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나의 아이들이 아닌 다른 아이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평화는 우리 학살 이후의 침묵을 위한 것이나이다,
우리 학살 이전의 침묵
우리 학살 중의 침묵.
평화는 우리가 비명지르는 동안의 침묵을 위한 것이나이다,
우리가 침묵당하는 동안의 침묵을 위한 것이나이다.
평화는 이리 명령하는 목소리이나이다: 그들을 죽여라
그리고 침묵으로 우리를 죽이나이다.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폭군을 위한 것이나이다, 멍청한 지도자를 위한 것이나이다,
흙먼지와 같은 군대를 위한 것이나이다.
파괴를 위한 것이나이다,
젊은이와 늙은이를 죽이는 이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병사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지평선에 족쇄를 채우는 이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피 튀기는 자들, 순교자를 증오하는 자들,
목격자를 죽이는 자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평화는 이곳의 폭군과 저곳의 폭군을 위한 것이나이다,
여기, 또 여기서 짖는 끄나플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온 사방에 야유하는 무기들을 위한 것이나이다,
내가 당신을 보지 못하도록,
지금 나의 눈을 파내는 이를 위한 것이나이다, 오 주여.
모든 것을 가져가소서, 오 주여, 그리고 우리를 여기에 남기소서,
우리의 바다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무덤 가까이에,
우리의 집 가까이에, 여기에.
우리는 사라지지 않겠나이다. 가까이 남겠나이다.
원하시는대로 우리를 데려가거나 남겨두소서,
언제든, 어떤 식으로든 원하시는대로 하소서. 가까이
당신 심장의 눈 가까이 우리가 남겠나이다.
혹은, 오 주여, 우리의 성벽이 되어주소서.
밤이 오면, 우리 죽음을 피하지 않겠나이다.
우리는, 오 주여, 당신 영혼의 문가에 남겠나이다:
성당, 모스크, 바다,
땅, 야자나무, 그리고 생
혹은 생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들 중 살아남을 작은 무언가.
혹은, 주여, 우리를 데려가시되 우리 영혼 조금을 여기에 남기소서,
우리의 일부를, 여기에, 우리 집 문턱에
집의 폐허 속에. 이 땅의 평화는
우리의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그리워하고, 꿈꾸고, 사랑하는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기쁨이나 슬픔 속
어머니의 눈물과 같이 단순한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날개처럼 나는 평화,
날개처럼 내려앉는 평화,
노래와 같이 아름다운 평화,
웃음과 같이 부드러운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그들이 죽이기 이전의
우리 고양이와 같이 길들여지는 평화는 우리의 것이 아니나이다
고양이는 죽었기에, 여전히 배고프고,
신음하고, 가르랑거리고, 우리가 이동할 때
북쪽의 방에서
남쪽의 텐트로,
우리 고양이가 아직 우리를 따라오나이다.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어린 아이들 처럼 봄을 만끽하는 가자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천년 동안 깨어 할머니처럼 우리를 지켜주는
아카를 위한 것도 아니나이다,
아름다운 자파를 위한 것도 아니나이다,
우리의 피에서 나온,
그 다음에는 우리의 살에서 나온,
그 다음에는 우리의 땅에서 나오고 우리의 끝없는 부활에서 나온
예수를 위한 것도 아니나이다.
이 땅의 평화는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당신의 거룩한 예루살렘을 위한 것이 아니나이다, 오 주여,
당신의 예언자와 우리의 꾸란과 승천하는 거룩한 예루살렘.
오 주여, 이 땅의 평화는 나의 것이 되고, 그런 후에야 당신의 것이 될 것이나이다.
내 영혼의 아이들이 하늘로 당신께 승천하였으니,
평화는 그들 손가락 사이를 파닥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었나이다.
나를 위한 것은 여기 아무것도 남지 않았나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신음하는 긴 하루와, 폐허가 된 문턱, 이름들이나이다
땅에 떨어진 비둘기의 깃털로 덮여버렸나이다.
그들 손가락 사이로 나비의 태양이 지고
지평선의 상처가 지나이다.
나는 나비에게 아무 말��� 건네지 않았나이다.
그 작은 날개가 나의 영혼처럼 파닥이게 두었나이다
그들 손가락 사이를 파닥이고 여행하게 두었나이다
재와 이슬 사이로.
이만... 삼만명의 이름으로 노래하겠나이다,
우리의 땅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천한 삼만명의 이들을 위해.
이리 말하지 않겠나이다: 평화는 죽이고, 뿌리뽑고, 불태우는 자들의 것이다.
이 땅의 평화는 그들이 여기로 오기 전 우리의 것이었나이다,
이 땅의 평화는 그들 다음 우리의 것이 될 것이나이다.
평화는 우리의 것이나이다. 평화는 우리의 것이나이다.
*순교자 시인 레파트 알라레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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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Of Gaza
By Ibrahim Nasrallah
Translated from the Arabic by Huda Fakhreddine
Peace on earth is not for us, not for my son, not for yours, Mary said to Mary . . . O sister of my land, sister of my footsteps on this land, sister of my soul, my prayers, sister of dawn in its clarity, sister of my death in its calamity, here in what remains for us of death and what remains of life.
Peace on earth is not for us. Does the sky above not see us or do the crosses on our backs in the fields of bitter blood obscure us?
Peace on earth is not for us. It is for our enemies, O God, for their planes. It is for death as it descends and death as it ascends, for death as it speaks, lies, and dances. Nothing satisfies it, neither our blood in sorrow, nor our blood in beauty, neither our blood in the seas, nor our blood in the fields. Our blood in the mountains, our blood in the soil, our blood in the sands, our blood in the answer, our blood in the question, our blood in the north, our blood in the south, our blood in peace, our blood in war . . . None of it satisfies.
Peace is for our enemies, O God, for their guards in distant lands and their guards in nearby lands. Peace is for every brother who like an enemy besieges us and every brother who passes over our death to build his throne on our ruins. There is no place here for a butterfly in a girl who lost her feet, no place for a lover to be killed by love, no place for planes, no place for the poem exulting its poet who writes, “If I must die, you must live to tell my story.”* The sea is not for the bird or the beloved, and the sky has turned its back on us like a foreign land.
Peace on this earth is not for us. Peace is for others. It is for children other than mine. Peace is for silence after our massacres, before our massacres amid our massacres.
Peace is for silence when we scream and silence when we are silenced. Peace is the voice that orders: kill them and then kills us with silence.
Peace on earth is not for us. It is for tyrants, cock-headed leaders, and all the armies of dust. It is for destruction, for those who kill the young and old, for soldiers and those who shackle the horizon. It is for the ones who shed blood, hate the martyr, and kill the witnesses.
Peace is for a tyrant here and a tyrant there, for tails barking here and here, and for weapons hissing everywhere. It is for the one now gouging my eyes so I don’t see you, O God.
Take everything, O God, and keep us here, close to our sea and the graves of our loved ones and our homes, here. We will not disappear. Close we will remain. Take us or keep us if you wish, whenever or however you want. Close to your heart’s eye we will remain.
Or, O God, be our fortress. We will not escape our death, if night falls. We will remain, O God, at the doors of your soul: the church, the mosque, the sea, the soil, the palm trees, and life or what little of it survives.
Or, O God, take us but keep a little of our souls here, some of our remains, here, on the thresholds of our homes and their ruins. For peace on this earth is not for us.
The peace we long for, dream of, and love is not for us. The peace that is as simple as my mother’s tears in joy and sorrow is not for us. Peace that flies like a wing, lands like a wing, peace as beautiful as a song, as gentle as laughter, is not for us. Not for us is a peace as tame as our cat before they killed her. And since she died, she still hungers, moans, and purrs, and as we move from a room in the north to a tent in the south, our cat still follows behind.
Peace on this earth is not for us, not for Gaza when it rejoices in the spring like children, not for Akka, awake for a thousand years, guarding us like our grandmothers, not for the beautiful Jaffa, not for Jesus who rose from our blood, then from our flesh, then from our land and our endless resurrections. Peace on this earth is not for us, not for your holy Jerusalem, O God, ascending with your Prophet and our Quran.
O God, peace on this earth will be mine, mine then yours. Since the children of my soul ascended the sky to you, peace has become the butterflies fluttering between their fingers. Nothing remains for me here but their remains, a long day that moans, ruined thresholds, and names covered with feathers of fallen doves. Between their fingers the butterfly’s sun sets and the wound of the horizon.
I said nothing to the butterfly. I let the little wings flutter like my soul between their fingers and travel between ashes and dew. I will sing in the name of twenty . . . thirty thousand, killed and risen on this land of ours.
I will not say: peace is for those who kill, uproot, and burn. Peace on this earth was ours before them here, and peace on this earth will be ours after them. Peace is ours. Peace is ours.
*A line by martyred poet Refaat Alar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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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sta-kirby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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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퀘)디디디의 희생 끝
Dedede's sacrific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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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그림은 다빈치 [최후의 만찬] 패러디입니다. 
아무도안물어봤지만... 반다나-요한 / 메타-유다 /  커비-도마 입니다 
The first pic is a parody of [The Last Supper], Da Vinci. 
No one asked but... Bandana-John / Meta-Judas / Kirby-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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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비와 디디디 대화에서 디디디 대사 일부는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너/의 꿈/속에서의 대사와 가사를 인용하였습니다.
In Kirby&Dedede's conversation, some of Dedede's lines are quoted lines and lyrics from the musical Frankenstein-In Your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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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 이야기가 거기서 끝이 아니라 커비메타반다나 셋이서 대왕님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 실마리를 메타가 떠올려내서 디디디와 팝스타 모두 살리게 되었다는 엔딩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모티브입니다.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대왕님의 뜻을 배신함으로써 대왕님을 구하게 되었다는 것이 예수를 배신해서 죽게 만들었던 성경 유다와의 차이점이네요. 결국 다른 엔딩으로 끝나긴 했지만..
다른 분들도 역습 때문에 그런거냐는 말을 했었는데 재밌는 점은 전 역습과 유다는 한번도 연관시켜 볼 생각을 못했다는 것…! 근데 생각해 보니 잘 맞아떨어져서 재미있네요..!! 그리고 뮤지컬 지/크//슈 에 나오는 유다 캐릭터도 참고하였습니다. 특히 이 넘버를…(맨 하단 영상 참고)
커비는 왜 토마스인가요?-> 메타는 유다(배신자), 반다나는 요한(애제자)을 모티브로 했으니까 커비도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도마(질문자)로 했습니다. 도마는 예수가 하는 말마다 사사건건 질문을 던지는 제자였는데, 커비도 충분히 디디디에게 거리낌없이 질문 할 것 같다는 해석에서였습니다.
In fact, the original story didn't end there. Kirby&Meta&Bandana think about how to save Dedede, and the ending was that Meta comes up with the clue that saves Dedede and popstar both.
So Meta is based on Judas. The difference from Judas who betrayed Jesus and made him die, Meta betrays Dedede's will to sacrifice himself, and Meta saves him. but it ended in a different way, in the end…
Others also said it was because of the revenge of MK, but fun fact is I never thought assosiating revenge of MK with Judas...! But it's very interesting because it fits well..! I also referred to Judas in JCS the musical. Especially with this number...(link below)
Why is Kirby Thomas?-> Meta is inspired by Judas (the traitor), and Bandana is John (the favorite disciple), so I also tried to find motif in twelve disciples, and Kirby is Thomas(the questioner).
Thomas used to ask questions whenever Jesus said, and I thought that Kirby also would ask questions to Dedede without any hes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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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manlanvincat · 10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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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이 기독교를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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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하여 적기를 지젝은 알랭 바디우가 논한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기독교에서의 새로운 주체성으로의 재탄생과 부활을 지지한다.
그들에 의하면 '사건'이란 새로운 주체성을 생성한다.
그리스도 역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용서 등의 상징으로 '부활'하였다. 이러한 부분에서 Z와 바디우는 의견을 함께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의 신이 생육신으로 다시 부활한다는 단순한 의견에는 반대한다. 이는 바디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신학적인 기독교가 아닌 정치 철학적인 기독교로 이들의 해석을 바라볼 필요가 있음이다.
Z와 바디우의 공통점 : 공산주의자이자 라캉주의자
Z와 바디우의 차이점 :
1.Badiou는 고전적인 마오 주의자에 가까우며 Z는 마르크르 주의자에 가깝다.
2. Z는 헤겔주의자이며 바디우는 플라톤주의자이다. (바디우는 플라톤-데카르트-칸트-헤겔 이론과 사상의 전통적인 노선을 따른다. 이는 그가 스피노자-니체-들뢰즈 라인과 대치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하다.)
지젝은 GK Chesterto에 대해 말하며 그가 천주교의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있음에 존경한다. 그들이 말하는 그것, 은 선과 악을 모두 통제하면서 "양쪽"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이다.
그리하여 Z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통찰력을 지닌 학자인 GK의 신학적 사상과 다르게, 퇴보하여 이도교적 지혜로 되돌아간 로마 카톨릭을 강력히 비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이도교적 지혜란, 기도하면 이루어진다, 신은 들어주신다 등의 시크릿 이론과 다를 것이 없는, 단순한, 생육신을 믿는, 즉, 부활할 예수를 믿는, 포이에르바흐적인 원시적 믿음을 뜻한다. 대한민국에서 행해지고 있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나를 위해 뭔가를 바라는 것이' 바로 이도교적 신앙이며 지혜이다. 이것은 민간 신앙과도 전혀 구분되지 않는 것이며, 한국 개신교에서는 로마 카톨릭과 다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행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젝은 변질된 카톨릭을 비판한며 루터가 말하는 '자연선의 질서를 통해서는 하나님께 “세울” 수도, “올라갈” 수도 없다는' 이론에서 개신교의 본질적 핵심을 이야기한다.
즉, 복음의 본질적인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당혹감과 약함 속에서만 하나님을 먼저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젝의 담론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은 (이도교/가톨릭의 승천이나 불교의 열반에 의한이 아닌) "위"가 아니라 약하고 우발적인 특수성 속으로 "아래"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정신분석학 수업에서 민승기 교수님이 말한 지젝의 미친신/예수 의 예와 같은 것이다. 그가 신의 세계에서 인간의 세계로 반인반신의 모습으로 내려와서 미친신이 되었듯이(아래), 우리 역시 위가 아닌 '아래'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지젝은 진정한 유물론자와 무신론자("변증법적 유물론", 일반적인 "저속한" 단순한 유물론과는 다른)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란 실제로 기독교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젝의 말이 의미하는 바란, 위의 언급한 복음의 본질을 채택하는 과정이 반드시 사유에서 필요하다는 뜻이다.
욥기에 관하여...
이거는 다음에 하겠습니다... 이정도도 충분하지 않나요?
욥기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겠지
욥을 이데올로기에 굴하지 않은 인물로 지젝은 나름대로의 굴절을 통해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 이데올로기에 굴하지 않음이 즉 무신론과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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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덕분에 습도는 상승해서 그리 높은 온도가 아님에도 땀이 솟는다.
뭔가 팔것도 사기치거나 유혹할 것도 없는 사람은 목줄 매고 살아간다.얼굴이 잘나고 몸매가 좋아도 그걸 쓸줄 모르면 아무소용이 없다.
간혹 원하지 않았다는 거짓말로 대답하는 탑 딴따라들을 본다. 운에 맡겨서 운좋게 얼굴이며 몸을 팔아 가성비높게 된 것들,수없는 천재들속에서 천재적 재능을 운좋게 잘판 것들이 으스대는 꼴을 본다.
세상엔 자신의재능을 드러내지도 팔지도 못하는사람들이 많다.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보면 ���들이 얼마나 운이 좋고 욕심으로 덕지덕지 치장을 했는지 더 느낄수있다.
장미는 장미대로 피고 하이에나는 하이에나를 낳듯 보이지는않는 운이라는 것에 이미 정해져 있는 장미이고 하이에나 인거다.
바보천치들은 말한다.
노력하면 이룬다고 , 문이라도 두드려보라고. 그래서 많은이들이 목숨걸고 노력하지만 목숨만 잃어버린다. 수십억대일이라는 확률임에도 도박을 못끊는 것같이 수십억분의일인 "희망"이라는 본보기 앞에 미친듯이 날아드는거다.
"탑딴따라 되려고한건 아니었어요.평범한직업을 가지려했죠."
공용택시나 버스로 불리는 가쉽속에서도 그들이 탑이 될수 있었던것은 그저 운이다.그리고 주변이들의 욕심덕이다.
약자에게서 빼앗아서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누구보다 제일 위에서서 모두를 발밑에 두려는 욕심.
목줄 매달린 약자들의 지지리 운도없는 것들의 욕심을 이용하여 서로싸우게 하곤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벼룩이 간도 빼먹겠다는 욕심.
바보천치들은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으로 운좋고 욕심많은 것들에게 모두 모아주는줄도 모른다.
부처가 오고 예수가 오고 알라가 온지 수천년이 지났지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하는 사회로 한발을 살짝 떼기나 했다고 생각하나?
부처를 팔아먹고 예수를 팔아먹으며 알라도 팔아치우는 일들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수백년전에 노예제가 폐지되어서 노예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평등한사회가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나?
다수의 약자들은 자신의재능을 알지도 못하고 사라진다.시키는대로 할수밖에 없는 이유조차 생각해보지 못하고 빵하나혹은 가족에 목메어서 부품으로 살다가기때문이고 부품으로 살도록 짜여진 카르텔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생각조차 없다.내일혹은 모레 먹을것을 구해야하기때문이다.
모든것은 90%이상인 약자의 피와땀에서 나온다. 운은 항상 10%의 얼굴을 바꾸고 더 교묘하고 촘촘하게 약자를 옥죈다.
"잭팟이 터졌습니다."
넓은 카지노 한귀퉁이에서 직원들과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헝거게임의 최후승자처럼.
세상이 변할것같나?
90%바보천치들덕에 수천억년이 지나도 수천억년전 그대로 카지노는 열리고 닫히듯이 무한반복될뿐이다.
칭송받거나 저주받은 왕들처럼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리는 운좋은 10%들을보며 90%바보천치들은 "희망"이라는 꿈을 꾸게 될거다. 그리곤 피라미드먹이사슬 맨윗자리로 오르기위해 칼날같은 각도위로 기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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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fgomes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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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거가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저희는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낸 자라 25 또 물어 가로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주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의 다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좇는 것을 보시고 물어 가라사대 무엇을 구하느냐 가로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 보라 그러므로 저희가 가서 계신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제 십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https://www.wordproject.org/bibles/kr/43/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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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topiabooks · 1 mon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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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은 오랫동안 성장하지 못했다. 간혹 꽃처럼 피어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는 혼자이고 다수의 군중은 그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의 현존 자체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잠재력과 가능성에 대해 눈을 뜨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일종의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의식의 성장을 위해서 아무 일도 해오지 않았다고 간파당하는 것은 그들의 에고에 상처를 준다.
그대는 더 의식적으로 깨어있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더 많은 사랑과 창조적인 삶을 위하여, 그대 주변의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했던가? 아무 일도 한 적이 없다! 그대는 세상에 기여한 바가 없다.
그대는 이 세상에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었다. 그대는 세상 속에 더 많은 분노와 폭력, 질투와 경쟁심, 탐욕을 끌어들인다. 그대는 세상을 전쟁터로 만든다. 그대는 피에 굶주려 있고 다른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그대는 인류로부터 인간성을 박탈하는데 일조한다. 그대는 인류를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때로는 동물보다 못한 수준으로 끌어 내리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고타마 붓다, 카비르, 장자와 같은 사람들은 그대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다. 그들은 활짝 꽃피었는데 그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봄이 오고 가는데 그대 안에는 아무것도 꽃피지 않는다. 그대에게는 새가 날아와 둥지를 틀지도 않고 그대에게는 새가 찾아와 노래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대 입장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소크라테스를 독살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들을 제거해 버리면 최소한 정신적인 열등감은 느낄 필요가 없을 테니 ���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진 내적 혁명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되었다. 인류가 많은 수의 혁명가를 배출할 수 있다면 21세기는 우리의 무덤이 되고 곧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 오쇼의 <조르바 붓다의 혁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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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우리장로교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0문답 우리의 완전한 구주인 예수 김인식목사
엘에이우리장로교회
 LA WOORI PRESBYTERIAN CHURCH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0문답 
 제30문: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聖人)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답: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예수가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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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yongchul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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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잘 지내셨쥬..?
저도 은혜로 충만한 주일 이었습니다
특히나 교구에서 받은 금화 쵸코렛이 맘에 들더라구요 ..
우리에게 달달한 것은 몸에 안좋듯이 우리에게 달달하게 다가오는 것은 마님 빼고는 별로 좋은게 없어요
우리가 가장 익숙하고 가장 친근한것은 바로 음부의 권세입니다
뭔소리냐 하겠지만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교인들과 아예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분들은 영적 각성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기에
사단이 경영하는 음부의 권세에 속해 있는것 이구요 이건 이미 태어날때부터 였기 때문에 가장 익숙하고 달달한게 음부의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이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나로 살아가려는 분들은 모든것이 새롭고 생소하고 힘들어요 ..( 스리스도 안에서 거듭났기 때문에 그래요 )
남들 다 잘때 새벽예배도 가야 하구요
남들 놀러갈때 교회에 나아가 충성헌신도 해야 하구요
수요예배에 금요철야에 토요예배를 거쳐 중간중간 성회도 있구요 ..
거기에 구역예배에 지역예배등등 모임이 끊이없이 이어지고 대표기도나 헌금기도 찬양인도 또는 말씀을 전하기도 하는 이전에 상상도 못하던 일들을 많이 해야하쥬.
이런 일들이 당연히 힘들지만 음부의.권세에서 벗어나 주님의 자녀로 새로운 삶을 실아가려면 힘든것이 오히려 기쁨이 되겠죠 ..
그래서 주일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다리고 주중 봉사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행할수 있는거죠
낮선 길은 힘들지만 새로움으로 즐거운 길 입니다 ^ ^
주님안에 이번주도 화이팅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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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terandcookiesand · 2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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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pray that we may always receive the care of the Holy Spirit in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hat God (God) sends to us through the Lord Jesus Christ. We are always thankful to God (God).
[성경 聖經 :성서 聖書 : The Bible : Scripture:The Holy book ]
Philippians 4
[4] Rejoice in the Lord alway: and again I say, Rejoice. [5] Let your moderation be known unto all men. The Lord is at hand. [6] Be careful for nothing; but in every thing by prayer and supplication with thanksgiving let your requests be made known unto God. [7] And the peace of God, which passeth all understanding, shall keep your hearts and minds through Christ Jesus.
Philippians 4
[4] Rejoice in the Lord always. I will say it again: Rejoice! [5] Let your gentleness be evident to all. The Lord is near. [6] Do not be anxious about anything, but in every situation, by prayer and petition, with thanksgiving, present your requests to God. [7] And the peace of God, which transcends all understanding, 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in Christ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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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하느님)께서 저희에게 보내주시는 성령의 힘  가운데 늘 저희가  성령의 돌봄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늘 저희는 하나님(하느님)께 고맙습니다.
[성경 聖經 :성서 聖書 : The Bible : Scripture:The Holy book ]
빌립보서 4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공동번역]
[4]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6]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7]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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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ehooh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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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9일 화요일
요한복음 8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요8:1-11, 개역한글]
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요한이 필요하다 했던 생각. 상당히 독특한 본문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를 구원하어 오셨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이 상황에서 예수님은 유일하게 여자를 정죄할 수 있는 분이시지만 그러시지 않으시고 사랑하신다.
모든 죄는 주님께 상처가 되고, 주님께 용서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진실함을 원하신다.
하나님 앞에 진실함을 설 때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질을 깨닫게 하신다.
사람은 상대적인 죄인이다.
이사야는 대단한 사역자였다. 성전에서 나라와 민족을 기도하다가 하나님과 천사들을 보고 자신의 부족한 입술을 책망하였다.
[사6:5, 개역한글]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자기 삶을 들여보고 주님앞에 나아가야 한다.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 받지 못한 사람보다 분별을 잘한다.
용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가 진실된 마음으로 회개 할 때.
Self-회개
진실된 회개는 관계를 회복시킨다.
용서 받은 것이 사명이다.
자기의 쓴뿌리가 사명이다.
진실된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진심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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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eokwoo · 3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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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무일도 | 독서기도
2024 / 06.29 / Saturday
[성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 대축일]
독서기도
+ 하느님, 날 구하소서.
◎ 주님, 어서 오사 나를 도우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알렐루야.
찬미가
베드로와 바오로의 복된축제일
온세상 어디서나 경축하나니
두사도 주의피로 축성되시어
교회의 으뜸으로 임명되셨네
주앞에 두그루의 올리브나무
두개의 쌍벽이룬 밝은별이니
죄악의 장한사슬 풀어주시고
하늘문 우리에게 열어주시네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드리세
성자께 나라권세 영예드리세
위로자 성령께도 찬미드리며
영원히 성삼위께 흠숭드리���. 아멘.
시편기도
후렴1 시몬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시편 18(19),2-7
2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얘기하고 *
창공은 그 손수 하신 일을 알려 주도다.
3 낮은 낮에게 말을 전하고 *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도다.
4 그 말도 이야기도 비록 소리 없어도 +
5 그 소리 온 땅으로 퍼져 나가고 *
그 말은 땅 끝까지 번져 가도다.
6 거기 태양에게 장막을 마련해 주시니 +
태양은 마치 신방을 나오는 신랑인 양 *
한길을 치닫는 거인인 양 뛰놀도다.
7 저 하늘 끝에서 솟아 나와 +
하늘 끝으로 돌아가니 *
그 열을 아니 받는 아무것도 없도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1 시몬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
후렴2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요,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되리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시편 63(64)
2 하느님 탄원하는 내 소리 들어주시고 *
무서운 원수에게서 내 생명을 지켜 주소서.
3 악한 자들 음모에서 나를 구하시고 *
무도한 자들 폭동에서 나를 보호하소서.
4 칼날처럼 그들은 혀를 벼리고 *
화살처럼 독한 말을 쏘아 대며,
5 죄 없는 사람을 숨어서 치고자 *
꺼림 없이 느닷없이 치고자 하나이다.
6 그들은 악한 꾀에 뜻을 굳히고 +
감쪽같이 올가미를 쳐놓자 하며 *
“어느 누가 우리를 볼소냐” 하나이다.
7 삿된 것을 속으로 꾸며 내고 +
꾸민 것을 숨기는 그들이오니 *
저마다의 생각과 그 마음은 도무지 알아낼 길 없나이다.
8 그러나 하느님이 한번 활을 쏘시자 *
당장 그들은 상처를 입어,
9 바로 그 혀 때문에 망하게 되고 *
그들을 보는 이마다 머리를 흔드오리다.
10 이에 모든 사람은 무서워 하며 +
하느님의 하신 일을 널리 알리며 *
이룩하신 일들을 깊이 생각하리이다.
11 의인은 주 안에서 기뻐하고 +
그 소망을 당신께 둘 것이오며 *
마음 바른 모든 이는 보람을 느끼리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2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요,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되리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리라.
후렴3 주여, 당신이시라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 주님께로 가게 하소서.
시편 96(97)
1 주께서 다스리시니 땅이여 춤을 추라 *
하고많은 섬들도 기꺼워하라.
2 안개와 구름이 당신을 에워 있고 *
정의와 법강이 그 어좌의 바탕.
3 당신 앞을 서서 가는 한 불이 있어 *
둘러 있는 원수들을 살라 버리고,
4 그 번개 온 누리를 번쩍 비출 때 *
땅은 보자 오들오들 몸을 떨도다.
5 온 누리의 주재이신 하느님 앞에 *
산들도 밀과 같이 녹아 버리도다.
6 하늘은 당신 정의를 두루 알리고 *
만백성은 그 영광을 우러러보도다.
7 우상을 섬기는 자 망신을 당하고 +
헛것으로 으쓱대는 자 얼굴 붉어지도다 *
신들이 모두 다 주님 앞에 부복하니,
8 시온이 듣자마자 기꺼워하며 +
유다의 고을들이 날뛰나이다 *
주여 당신 판단하심 때문이외다.
9 주님 당신은 온 누리에 뛰어나시고 *
모든 신들 위에 아득히 높으시니이다.
10 악을 미워하는 자들을 주는 사랑하시고 +
성도들의 영혼을 지켜 주시며 *
악인들 손에서 구하여 주시나이다.
11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오르고 *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
12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들 하라 *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양들 하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후렴3 주여, 당신이시라면 저더러 물위로 걸어 주님께로 가게 하소서.
○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도다.
◎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이 말씀이로다.
제1독서
사도 바오로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의한 독서     1,15-2,10
형제 여러분, 1,15 하느님께서는 내가 나기 전에 이미 은총으로 나를 택하셔서 불러주셨고 16 당신의 아들을 이방인들에게 널리 알리게
하시려고 기꺼이 그 아들을 나에게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 때 나는 어떤 사람과도 상의하지 않았고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사람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18 그리고 삼 년 후에 나는 베드로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보름 동안을 지냈습니다. 19 그 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는 만나지 않았습니다. 20 내가 여러분에게 써 보내는 이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21 그 뒤에 나는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22 그래서 유다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나를 직접 대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23 그들은 다만 전에
���기네를 박해하고 그 교를 없애버리려고 하던 사람이 이제는 그 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소문만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24 내가 하는
일을 두고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십사 년 뒤에 나는 디도를 데리고 바르나바와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2 나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올라갔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나는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과 따로 만나 내가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해놓은 일이 허사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3 나와 동행했던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었는데도 그들은 할례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4 그런데 가짜 신도들이 우리를 노예로 만들려고 몰래 들어와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엿보고 있었으므로 실상
디도가 할례를 강요당할 위험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5 그러나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의 진리를 보존하려고 우리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6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보지 않으시므로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었든 간에 나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지만 그들도
나에게 어떤 새로운 제언을 한 일은 없습니다. 7 도리어 그들은 마치 베드로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듯이 내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8 곧 하느님께서 할례 받은 사람들을 위한 사도직을
베드로에게 주신 것같이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직을 나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9 그뿐만 아니라 기둥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던
야고보와 게파와 요한도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이 은총을 인정하고, 나와 바르나바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친교의 악수를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은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10 한 가지 그들이 우리에게 요구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전부터 열심히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응송     마태 16,18-19
◎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하리라. *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노라.
○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 나는.
제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5,1-2. 4. 7-8: PL 38,1348-1352)
복된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의 순교는 이날을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여기서 어떤 알려지지 않은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퍼져 나가고, 그들의 말은 땅 끝으로 번져 갔습니다.” 이 순교자들은 자신들이 전한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들은 정의의 길을 좇아 진리를 고백하고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이요 그리스도를 열렬히 사랑한 복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이 말씀은 이보다 앞서 베드로가 “주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신
말씀입니다.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즉, 네가 고백하는 신앙을 내가 이 반석위에 세우리라. 네가
나더러 “주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했으니 내가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너는 베드로 즉 반석이다.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서 나오지 않고 반대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리스도라는 이름에서 나오는 것처럼,
베드로라는 이름도 ‘베드라’(반석)라는 말에서 연유하지 베드라가 베드로라는 이름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주 예수께서는 수난 당하시기 전 제자들을 선택하시어 그들을 사도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만이 거의
어디서나 온 교회를 대표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를 대표할 책임을 맡은 베드로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쇠는 한 사람만 받은 것이 아니고 온 교회가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탁월함의
근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의 표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는 너에게 열쇠를 주겠다.”라고 하실 때, 모든 이에게
주실 것을 베드로에게 위탁하시는 것입니다. 원래 하늘 나라의 열쇠는 그리스도께서 온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곳에서 모든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역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칠 과업을 맡겨 주셨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베드로 혼자서만 주님의 양 떼를 쳐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일치를 강조하시기 위해 이 말씀을 베드로 한 사람에게만 하십니다. 사도들 중 으뜸인 베드로에게
먼저 말씀 하십니다. “베드로여, 실망하지 마십시오. 한번, 두번, 세번까지 대답하십시오. 당신의 경솔한 자신감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세
번이나 땅에 떨어지고 말았으니 당신은 사랑의 고백도 세 번 해야 합니다. 세 번 묶은 것은 역시 세 번 풀려져야 합니다. 두려움으로 묶은 것을
사랑으로 푸십시오.”
그래서 주님께서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번, 세번까지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맡기셨습니다. 이 두 사도들의 순교는 같은 날에 기념합니다.
이 두 분은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두 분은 서로 다른 날에 순교했지만 그들은 하나였습니다. 베드로가 먼저 가고 바오로가 뒤따랐습니다. 사도들의
피로 우리에게 거룩하게 된 이 축일을 경건히 지내고 그들의 신앙과 생활, 그들의 수고와 고난, 그리고 그들의 증거와 복음 전파를 공경하도록
합시다.
응송     
◎ 진리의 전파자요 이방인들의 스승이신 사도 바오로여, * 당신은 참으로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 이방인들이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알게 되었도다.
◎ 당신은.
사은찬미가
찬미하나이다 우리 천주여 *
주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영원하신 아버지를 *
온 세상이 삼가 받들어 모시나이다.
모든 천사 하늘들과 그 모든 능한 이들 +
케루빔과 세라핌이 *
끊임없이 목청을 높이어 노래부르오니,
거룩하셔라 거룩하셔라 *
온 누리의 주 천주 거룩도 하시어라.
엄위로운 당신의 영광 *
하늘과 땅에 가득도 하시어라.
영광에 빛나는 사도들의 대열 *
그 보람 뛰어나신 선지자의 대열,
눈부시게 무리진 순교자들이 *
아버지를 높이 기려 받드나이다.
땅에서는 어디서나 거룩한 교회가 *
그 엄위 한량없는 아버지를,
뫼셔야 할 친아드님 당신 외아드님을 *
아울러 위로자 성령을 찬미하나이다.
영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여 *
당신은 아버지의 영원하신 아드님,
인간을 구하시려 몸소 인간이 되시고자 *
동정녀의 품안을 꺼리지 않으셨나이다.
죽음의 가시를 쳐버리시고 *
믿는 이들에게 천국을 열어 주셨나이다.
지금은 천주의 오른편 아버지의 영광 안에 계시어도 *
심판하러 오시리라 우리는 믿나이다.
보배로운 피로써 구속받은 당신 종들 *
우리를 구하시기 비옵나니,
우리도 성인들과 한몫에 끼어 *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게 하소서.
¶ 주여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고 *
당신의 기업을 강복하소서.
그 백성 당신이 다스리시고 *
영원까지 그들을 이끌어 주소서.
나날이 주님을 기리는 우리 *
세세 대대 당신 이름 기리오리다.
비오니 주여 우리를 지키시어 *
이날에 죄 없도록 하여 주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당신 자비를 우리에게 내리시어 *
당신께 바란 대로 되게 하소서.
주여 우리 당신께 바랐사오니 *
영원토록 부끄럼이 없으리이다.
¶ 이 부분은 생략할 수도 있다.
마침기도
기도합시다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의 축제로 오늘의 거룩한 기쁨을 허락하신 천주여, 당신 교회로 하여금 모든 일에 있어서 교회의 기초를 놓아 준
그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그 뒤에 특히 공동으로 바칠 때에는 다음의 환호를 덧붙인다.
+ 주님을 찬미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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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kenlee-blog · 6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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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래아의 예수"
얼마 전에 읽은 '선천댁'의 강렬했던 여운이 사라지질 않아 같은 분이 쓴 또 다른 책을 빌림.
저자가 독일에서 불트만 계열 신학을 전공 후 귀국했고, 배워 온 걸 단순히 복사 & 붙여넣기 하신 게 아니라 독자적인 민중 신학 및 사회 운동을 전개했던 분이라 평소에 관심이 있기도 했고.
'갈릴래아의 예수'는 1990년에 초판이 나왔고, 내가 읽은 거는 2020년에 다시 발행한 개정판이다. 서울에 있는 도서관 검색 결과 초판은 정독 도서관에만, 개정판은 개포, 남산 도서관 두 군데에 있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관용 표현에 등장하는 부처는 대승 불교 전통에서 만들어진 '법신불'이라는 신화적 존재로서 아함경에 나오는 '인간' 싯다르타와는 전혀 다르다.
마찬가지로 '사도신경'에 나오는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쳤던 인간 예수를 동일하게 보느냐 다르게 보느냐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기독교가 나온 거라고 개인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는 신약 성서를 최소 세 번 이상 읽었고, 인간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이 다카스커스에서 환상으로 본 바울의 관점, 유다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정치 지도자로 인식했다가 쓸모없음을 알자 즉시 팔아넘긴 가리옷 유다의 관점, 그리고 세례 요한의 제자, 광야에서의 시험, 산상수훈에 몇 가지 흔적만 남아 있는 예수 자신의 메시지가 혼재해 있는 문서로 이해했다.
길가는 무사(=도사) 입장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만 전할 뿐 원수마저 사랑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구체적인 수련법이 나와 있질 않아 딱히 참고가 되질 않았다.
혹자는 "기도가 있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는데 내가 보기에 인간의 언어로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기복 신앙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고, 언어를 초월한 기도는 결국 '명상'과 구별할 수 없다고 봄.
로마가 카톨릭을 공인한 이후부턴 바울의 관점이 표준으로 굳어진 채 이천 년을 이어왔기 때문에 '역사적 예수 = 인간 예수'에 관한 연구는 사실상 불트만이 시초라고 주워 들음.
하지만 불트만 연구가 용두사미처럼 결론이 너무 허탈해서 (=역사적 예수의 자취는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반발도 꽤 거셌다 들었다. 이 책 또한 이 맥락을 따르고 있는 거로 보이고, 나아가 한국이라는 사회에 적용하고자 '민중'이란 개념을 재정의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긴 거구나…로 이해했다.
124쪽에 흥미로운 글이 있었다. 다윗 왕을 이스라엘 공동체를 파괴한 주범으로 묘사해 놓은 것.
"…그런데 이같은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다윗에 의해 파괴되었다. 군주파들이 날로 득세하여 사무엘이 마지못해 사울을 왕으로 세우지만(삼상 8장) 그것은 본격적인 군주체제가 아니었는데 반디트의 괴수였던 다윗(삼상 22,1-2;27,8)이 무력으로 유다 지파에 군림하여 왕이 되고(삼하 2,3-4.11), 블레셋 (Philister)의 침공에 탈진한 북이스라엘의 사울을 협공하여 이스라엘을 뺏고 그것을 유다와 병합하여 이스라엘 왕국을 수립한 것이다(삼하 5장). 이때부터 본격적인 다윗왕조가 시작된다. 그는 권력의 독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야훼의 상징인 법궤를 예루살렘에 안치하고 다윗왕조의 수호신으로 삼았는 데(삼하 6장), 그의 아들 솔로몬에 와서 그 위에 성전을 짓고 스스로 대사제를 겸하고 야훼가 성전에만 임재한다는 강제된 신학을 세우고, 야훼를 '감금'하여(열상 8,12-13) 다윗 왕조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이다…"
아마도 예수와 대립했던 헤롯, 바리새, 사두개 같은 (민중을 억압해 온) 지배층의 시초를 다윗의 건국이라 보신 듯.
한편 그리스도를 다윗의 혈통에 갖다 붙이려고 애쓴 공관복음서 저자들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야훼를 감금했다"는 주장에 관해선 야훼의 본질이 유목신이란 의미도 될 듯. 근거는 카인의 농산물은 거부하고 새끼양을 바친 아벨의 ��만을 받아들였단 점, 나아가 카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농경 민족이 유목 민족 나와바리를 자꾸 침범하는 것에 대한 메타포일지도 모른다는 개인 생각. 이런 대척 관계는 (농경신) 바알을 향한 극도의 적대감으로 나타났으리라고 봄.
또 모세가 "누구세요?" 물었을 때 "나는 나다(=I am who I am)"라고 대답한 것 역시 애당초 지성소에 모시는 신이라기엔 너무 자유로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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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 · 6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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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Passion Week) 예수님의 행적(2267)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24)
-고난주간 (HOLY WEEK OR PASSION WEEK)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말한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Palm Sunday)로부터 시작된다.
금년 종려주일은 3월 24일이다.
- 종려주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21:1-11,막11:1-10, 눅19:28-40, 요12:12-19)이며,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며 ‘호산나 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날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다.
-일요일(개선의 날)
예수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 입성(마 21 : 1 - 11, 막 11 : 1 - 11).
-월요일(권위의 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마 21. 18 - 19, 막 11 : 12 - 14).(세금의 질문에 설명) 성전 청결케 함(마 21 : 12 - 13, 막 11 : 15 - 19).
-화요일(논쟁의 날)
무화과나무 마름(마 21 : 19 - 22, 막 11 : 20 - 25).
제사장 바리새인의 질문(막 11 : 27 - 33, 눅 20 : 1 - 8).경고의 세 가지 비유, 포도원 비유(마 21 : 28 - 22 : 14, 막 12 : 1 - 12).
바리새인과 헤롯 왕이 예수께 질문(마 22 : 15 - 40).
메시야에 대한 예수의 질문(눅 20 : 41 - 44).
예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 책망(막 12 : 38 - 40).
과부연보에 대하여 칭찬함(막 12 : 41 - 44, 눅 21 : 1 - 4)
유대인이 예수를 배척함. 예루살렘 멸망과 말세를 예언함(눅 21 : 5 - 38, 요 12 : 37 - 50).
-수요일(음모의 날)
예수가 밤마다 베다니에 나가시니 이 날은 거기서 기도했을 것임(마가복음 14:1~11)
유다가 배반하다(마26:14-16,막14:41-45,눅22:1-6,요18:1-11)
 -목요일(최후성찬의 날, Maundy Thursday)
최후 성만찬, 예수 그리스도의 고별사(마 26 : 31 - 35, 막 14 : 12 - 26, 눅 22 : 31 - 38).
 예수님이 로마병정에게 체포되어 가야바의 법정으로 가고 있는 모습(베드로 통곡교회에 있는 부조)
-금요일(고난의 날, Holy Friday)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반역과 예수의 포박(마 26 : 36 - 47, 막 14 : 32 - 52).
안나스와 가야바의 심문(막 14 : 53 - 72, 요 18 : 13 - 27).
빌라도의 심문(마 27 : 2 - 11, 31, 요 18 : 13 - 29).
십자가의 고난(마 27 : 32 - 56, 눅 23 : 26 - 45).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를 장사함(마27 : 57 - 61, 막 15 : 43-47). 무덤을 파수꾼이 굳게 지킴(마 27 : 62 - 66).
-일요일(부활의 날, Ressurection Sunday)
부활의 새벽(마 28 : 1 - 10, 막 16 : 1 - 17).
파수군이 부활의 사건을 제사장에게 보고(마 28 : 11 - 15, 눅 24 : 13 - 35).
엠마오 도상의 예수(눅 24 : 13 - 35).
도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 나타남(막 16 : 14, 요 20 : 19 - 25).
3-29-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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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aasilveira ·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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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순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예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며 그의 성령을 드리시니라. 그러자 보라,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다. 그러자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며 무덤들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 무덤에서 나오사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총독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마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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