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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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4 붓질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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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shstroke #이배 @studioleebae . 죽은 것처럼 보이는 숯의 생명력을 표현한거라고. 부산 갔을 때, ‘무리해서라도 조현화랑 들렸어야 했는데 아쉽다.’ 고 생각했다. . @1964building 장소는 조금 거부감 들지만, 작품은 역시🖤 #붓질 #oblique #LEEBAE (1964빌딩에서) https://www.instagram.com/p/CkGdMHxpBqu/?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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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 케
머리를 다시 폈음 둥둥둥
생각 또 많아지고 있습니다 별로 좋지 않은 타이밍이므니다..
이럴땐 투들리스 ..ㅜ
삭 햇다료 랫만에 붓질 착착착
알렉산더 왕 ㅋㅋㅋㅋㅋㅋ
카이아 일상사진 보다가 사고 싶은게 생겨버렸다
쇼핑통장 잠시 재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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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래~ #꽃 피었넹 ㅋ #붓질 하면 #참외 달리려나? ㅋㅋ #참외꽃 #꽃스타그램 #방구석농장 #방구석가드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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εHeart-Shaped Box ┟ 화파 ε
화파 정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어떤 특정한 회화 표현 방식을 사용하는 미술유파. 화풍·화파 개설 화파의 이름은 사승(師承) 관계나 지역적 연관성으로 붙여지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화풍과 화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중국에서 전래된 것도 있고 우리 화가들에 의��� 새롭게 발전한 것도 있다. 화파는 중국에서는 대개 오대(五代) 이래 계속 형성되어 수많은 화파가 존재하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화파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화파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조선시대에 나타난 화파는 안견파(安堅派), 절파(浙派), 정선파(鄭敾派), 추사파(秋史派) 등을 꼽을 수 있다. 중국의 경우는 동거파(董巨派), 이곽파(李郭派), 마하파(馬夏派), 황산파(黃山派), 송강파(松江派), 정통파(正統派), 개성화파(個性畵派), 금릉화파(金陵畵派), 양주화파(揚州畵派), 해상화파(海上畵派) 등 보다 많은 화파가 있다. 연원 및 변천 1) 중국중국의 화파를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먼저 오대에 등장하는 화파로 동거파(董巨派)가 있다. 동원(董源)과 거연(巨然)의 화풍을 말하는데, 주로 강남의 경치를 그리며, 기법상으로는 피마준(披麻皴)을 사용했다. 이 화풍은 원대(元代)에 들어와 원사대가(元四大家)가 많이 사용함으로써 중요한 화파가 되었다. 원사대가는 모두 피마준을 사용하여 각자의 화풍을 형성한 공통점을 갖고 있으며, 이로부터 절대준(折帶皴), 우모준(牛毛皴), 장피마준(長披麻皴)과 같은 변형이 생겨났다.송대(宋代)의 화파로는 이곽파(李郭派)와 마하파(馬夏派)를 들 수 있다. 북송(北宋) 때는 이성(李成)과 곽희(郭熙)를 중심으로 이곽파가, 남송 때는 마원(馬遠)과 하규(夏珪)를 중심으로 마하파가 성립했다. 이곽파는 화북 지방의 경치를 그리는데 게 발톱 같은 나뭇가지 처리가 특징이며, 중앙에 높은 산을 배치하고 우점준(雨點皴)을 즐겨 썼다. 마하파의 경우 강남의 경치를 강한 부벽준(斧劈皴)을 이용해 그리는 것이 특징이고 변각구도(邊角構圖)를 선호하여 자연의 일부를 그리는 소경산수화(小景山水畵)가 많다. 이 두 화파는 명대(明代) 절파의 모태가 되었다. 조선시대 전반기에 이 화파에 영향을 받은 그림이 그려져 우리와도 연관이 깊다.명대(明代)에 등장하는 화파는 절파와 오파 그리고 송강파이다. 오파와 송강파는 문인화풍이며 절파는 직업화가풍이다. 절파는 명초(明初)에 대진(戴進)이 시작하고 오위(吳偉), 장로(張路) 등이 발전시킨 것이다. 이곽파와 마하파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여 원대 문인화의 장점을 결합시킨 것으로 강렬한 붓질, 복잡한 구성, 후경의 중시 등을 특징으로 한다.오파는 심주(沈周)와 문징명(文徵明)이 대표인데, 원사대가의 화풍을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이다. 그림이 철학적이고 담백하며 고대 특정화가의 화풍을 모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송강파는 오파가 점차 감각적이고 기교적으로 흐르는 데 반발해 나타난 것으로 보다 복고풍을 지향했다. 준법을 중시하고 고화(古畵)의 품격을 살리고자 했는데, 원사대가뿐 아니라 동원, 거연, 미불(米芾), 미우인(米友仁) 등의 화풍을 살리고자 하였다. 절파와 오파는 조선 중기와 후기에 각각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청대(淸代)의 화파로는 정통파, 개성화파, 양주화파, 해상화파 등을 꼽을 수 있다. 정통파는 동기창(董其昌)의 복고주의 이론을 신봉하며 방작(倣作)을 주로 했던 화파이다. 사왕오운(四王吳惲)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너무 모방에 치우쳐 창의성이 결여된 그림을 그렸는데, 방작의 대상으로는 황공망(黃公望)을 특히 선호하였다.개성화파는 정통파의 복고주의에 반발하면서 개성을 존중한 화가들인데, 팔대산인(八大山人), 석도(石濤) 등이 대표적인 화가이다. 이들은 참신한 소재의 발굴과 새로운 표현법으로 양주의 화가들에게 강한 자극을 주어 이후 양주화파와 해상화파가 출현하는 바탕이 되었다.청대 중기에 등장하는 양주화파는 상업의 중심지인 양주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는데, 대중들의 기호에 맞는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금농(金農), 정섭(鄭燮), 이선(李鱓), 화암(華嵒), 나빙(羅聘) 등이 대표적인 화가들인데 양주팔괴(揚州八怪)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방작보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화조화를 많이 그렸으며 강렬한 채색을 즐겨 사용하였다.양주화파의 상업적인 경향은 해상화파에서 더욱 심해지는데, 상해를 중심으로 하는 해상화파는 아편전쟁 이후 새로운 국제도시인 상해에 모여든 화가들로 이루어졌다. 조지겸(趙之謙), 오창석(吳昌碩), 임백년(任伯年) 등이 유명하며 이들은 상해에 망명하고 있던 조선 화가 민영익(閔泳翊)과 교유한 바 있다. 두 화파의 인물들은 조선의 화가들에 이름이 잘 알려져 있었으며 사행원들에 의해 이들의 그림이 국내로 반입되기도 하였다.2) 한국조선시대에 먼저 등장하는 화파로는 안견파를 들 수 있다. 조선 전기의 가장 뛰어난 화가인 안견의 화풍을 따르는 화가들이 이후 많이 나타나 붙여진 이름이다. 화풍은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나 전칭작인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와 같은 작품에 보이는 화풍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한쪽으로 치우치게 그리는 편파구도(偏頗構圖)와 경물이 흩어진 듯 조화를 이루는 것이 화풍상의 특징인데, 양팽손(梁彭孫), 이정근(李正根), 이흥효(李興孝), 이징(李澄) 등이 이러한 표현을 나름대로 변형시키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국화의 유기적이고 치밀한 산수 표현과 대비되는 한국적 분위기의 조선 전기 산수화의 특징은 대개 안견파 화풍에서 찾아볼 수 있다.조선 중기에는 절파 화풍이 성행하는데 이것은 중국의 절파 화풍이 소개되어 한국화된 것이다. 강희안(姜希顔), 김시(金禔), 이경윤(李慶胤), 김명국(金命國) 등을 꼽을 수 있��데 해학적인 표현, 한국적 소재 발굴 등에서 중국과는 다른 취향을 느낄 수 있다.조선 후기에는 한국의 산수를 그리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가 등장하는데, 여기에는 정선(鄭敾)의 선구적인 업적이 크다. 그의 표현은 강렬하고 독특한데, 그의 화풍을 따르는 이들을 정선파 또는 겸재파라고 한다. 수직준(垂直皴)과 미점(米點)을 기초로 한 정형화된 금강산의 표현, 거칠게 그리는 소나무와 바위의 표현, 강력한 부벽준 등이 특징이다. 대표적 화가로는 강희언(姜希彦), 김윤겸(金允謙), 최북(崔北), 김응환(金應煥), 정수영(鄭遂榮) 등을 꼽을 수 있다.후기에는 중국 황산파의 영향도 나타난다. 황산파는 안휘파(安徽派)라고도 하는데, 황산을 중심으로 한 실경산수화를 주로 그리는 화파이다. 산을 기하학적인 윤곽선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며, 홍인(弘仁)과 소운종(蕭雲從)이 대표적인 중국 화가이다. 이들의 화법이 목판화집 등을 통하여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인상(李麟祥), 강세황(姜世晃), 이윤영(李胤永), 정수영(鄭遂榮) 등의 작품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바위 처리가 각지고 윤곽선 위주이며 전체적으로 정갈한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조선 말기에는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를 따르는 화가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들을 추사파라 부른다. 중국의 전형적인 문인화풍에 보다 가깝게 그리고자 노력한 김정희의 뜻을 따랐으며, 그의 독특한 서체도 모방하는 것이 특색이다. 조희룡(趙熙龍), 전기(田琦), 허유(許維) 등의 중인계급(中人階級) 화가들이 대표적이며, 허유의 뒤를 이어서 근대기에 허백련(許百鍊), 허건(許楗) 등이 그 정신을 계승하였다.이상에서 살펴본 중국과 한국의 화파 외에도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화파들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화파는 고대뿐 아니라 근, 현대기에도 계속 형성되고 또 사라지고 있다. Heart-Shaped Box - Amber Mark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ooh She eyes me like a Pisces, when— I am weak I've been locked inside your heart-shaped box For weeks I've been drawn into your magnet, tar— Pit trap, uh right I wish I could eat your Cancer when— You turn back But— Hey! Wait! I've a got a new complaint Forever in debt to your priceless advice Hey! Wait! I've a got a new complaint Forever in debt to your priceless advice Yeah Forever and ever And ever, yeah, yeah Meat-eating orchids, forgive no one Just yet, oh, right Cut myself on angel's hair And baby's breath, woah, oh-oh Hey! Wait! (Wait) I've a got a new complaint (Complaint) Forever in debt to your priceless advice Hey! Wait! (Wait) I've a got a new complaint (Ooh) Forever in debt to your priceless advice Yeah Forever and ever And ever, hmm Forever and ever Hmm, h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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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서초구, 올 들어 53명 상담 대부분 여성, 3040 가장 많아 연 6회까지 무료로 서비스 “코로나로 취업 못해 무기력 상담 후 다시 일어설 힘 생겨” 정모씨(36)는 현재 서울 서초구의 ‘1인 가구 마음··· 카렐 아펠 네덜란드 미술가 카렐 아펠은 암스테르담과 파리, 뉴욕에서 살았다. 그는 비트(beat) 시인 앨런 긴즈버그 같은 작가들과 미술가와 공동 작업을 하며, 각 도시에서 아방가르드 인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강한 색채와 힘이 넘치는 붓질, 그리고 아이들과 괴물, 환상적 동물들의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특징적인 그림들로 명성을 얻었다.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그의 회화 작품들은 장 뒤뷔페의 소박파 미술을 닮았다. 그러나 사실 아펠은 영향력 있는 전후 유럽 미술 운동인 코브라(CoBrA) 그룹의 설립인이다.아펠은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암스테르담의 왕립미술 칼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는 1948년에 파리에서 코브라 그룹을 창설했다. 코브라라는 명칭은 그룹에 속한 화가들의 고향 이름 - 아스거 요른(코펜하겐 Copenhagen), 크리스티앙 도트르몽과 조제 누아레(브뤼셀 Brussels), 콘스탄트, 코르네유, 카렐 아펠(암스테르담 Amsterdem) - 에서 첫 글자들을 따서 지은 것이다. 코브라 그룹은 1951년까지 활동했으며, 이 그룹의 상징은 이름에서 연상되듯이 똬리를 튼 뱀이다. 코브라 그룹의 회원들은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고 아이들의 드로잉에서 영감을 얻은 환상적인 이미지를 통합함으로써, 당시 유행하던 초현실주의 양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썼다. 그들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 실험하고 공동 작업을 했다. 코브라 그룹은 1949년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는데, 전시 작품들은 "서툴게 마구 칠한 얼룩" 같다는 ��담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미술관에서는 이 작품들을 구입했다. 아펠은 암스테르담 시청의 식당을 장식할 벽화를 주문받아 [질문하는 아이들](1949)을 제작했다. 이 벽화는 그가 동일한 제목으로 그렸던 일련의 그림들 가운데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그리고 전후에 네덜란드 아이들의 빈곤을 주제로 다룬 것이다."내가 미개인처럼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내가 미개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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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장 속에서 해체된 자연_고충환/미술평론가(2003)
흔히 예술은 자연을 모방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술은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예술은 자연의 무엇을 어떻게 모방하고 배운다는 것인가. 그 일차적인 의미는 아마도 바깥으로 드러나 보이는 자연의 질료적인 표면을 흉내내고 모사하고 재현하는 것을 만할 것이다. 플라톤의 미메시스론(모방론)에 그 젓줄을 대고 있는 자연주의 또는 사실주의(시대정신과 당대적 문제의식으로 무장한, 현실참여적인 현실주의와는 다른)의 방법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또 다른 의미는 자연성을 자연의 근원적인 형상(에이도스)을 모방하고 배운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론에 기인한 이 방법에서는 자연성이나 형상은 자연의 질료적 표면보다는 그 질료를 가능하게 한 자연의 원인, 자연의 원동력에 가깝다. 일종의 동력이란 점에서 기와도 통하며, 그리고 그 자연의 기는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기와도 통한다. 이러한 사실은 자연을 테마로 하면서도 자연을 소재제적이고 모사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이를 회화적이고 조형적인 원리 속에서 풀어헤친 추경의 회화에 대해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고 있다. 즉, 작가에게서 자연은 자기가 대면하고 있는 자연의 표면을 자기의 안쪽으로 불러들여 재편한 연후에 재차 뱉어내는 식의 심의적 자연, 심상적 자연에 가깝다. 말하자면 작가의 캔버스는 자연의 기와 하나로 통하는 작가 자신의 기가 표출된 심상적이고 심의적인 자연의 흔적이고 궤적인 것이다. 마치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보는 듯한 손에 잡힐 듯 생생한 붓질에서 이런 기의 운동성이 느껴진다. 작가의 붓질은 모사나 묘사보다는 행위에 가깝고, 그 행위의 표출이 기의 운동성과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이로써 추경의 그림은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도 현저하게 모더니즘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여기서 모더니즘적이란 말은 회화의 본질과 그 원리에 천착한다는 의미이다. 보기에 따라서 자연은 이런 회화적 원리를 실현하기위한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비쳐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는 소재로서의 자연과 회화적 원리를 실현하는 과정이 서로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긴밀하게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야지, 그렇다고 해서 작가에게 있어서 자연이 덜 중요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회화적인 인상에 일조를 하는 것이 청색 계통의 모노톤의 화면이다. 청색 이외의 다른 색채들, 이를테면 황색이나 갈색 또는 적색 계열의 그림들이 더러 있지만, 이 역시 단색조의 화면으로 처리도고 있음을 볼 때, 아마도 모노톤의 색 감각이야말로 근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일 것이다. 엄밀하게 말해 모노톤의 화면은 여타의 색채를 동원했을 때조차도 사실은 색채를 절제하는 경우��� 보아야 하며, 이는 일말의 금욕주의와도, 그리고 일종의 상징주의와도 통한다. 이는 사물의 자연색에 구속받지 않는 색채의 자율성과 임의성을 인정하는 것이며, 색채보다는 색조가 상기시키는 특유의 분위기 또는 일종의 정조(정서적인 환기력)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그 정조는 다소간 차가우면서도 지적인 느낌에 가까운 것이며, 그 지적인 느낌의 작가의 그림에 일말의 추상성(추상성의 논리)을 보탠다.
그렇다고 해서 모노톤의 화면이 회화적이거나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신, 그것은 실재 곧 사방천지가 눈으로 덮인 한겨울의 자연을 그린 것이다. 하얗게 드러난 부분이 눈이라고 한다면, 그 흰색과 하나의 결로 스미는 청색은 대기의(특히 시간상으로 어스름한 새벽녘의)기운이 반사된 자연의 색채이거나 혹은 겨울의 인상에 대응하는 작가의 심상적 이미지가 표출된 것이다. 작가의 그림에 붙여진 겨울숲이나 설중화(雪中)라는 제목이 이런 실재에 근거한 그림을 뒷받침하고 있다. 말하자면, 겨울숲과 설중화는 실재와 심상적 이미지를 하나로 넘나드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예컨대 세로로 길게 뻗은 잣나무 숲을 배경으로 한 실재의 자연을 그린 것이면서, 이와 동시에 자연에 대한 작가의 관념이나 인상을 기록한 것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의 그림이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회화적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중성의 원리를 감각적으로 채득해내고 있는 탓으로 보여진다. 그런가하면 작가의 대기의 기운 또는 새벽녘의 정기뿐만 아니라 한겨울의 칼바람마저도 놓치지 않고 있는데, 화면에서 바람은 속도감이 실린 생생한 붓질과 하나로 어울려 어떤 울림 같은 것, 자연의 내재율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추경의 그림에서는 회화적인 화면과 함께 물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물질감은 회화적 효과를 위한 특유의 바탕처리에 기인한 것으로서, 이를 위해 작가는 석분(石粉)을 썩어 만든 안료로 일정한 두께가 되도록 비정형의 바탕층을 구축한다. 여기서 석분은 물감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세하게 반짝거리는 효과로 인해 눈의 결정체를 표출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축된 바탕층에서는 물질감과 함께 특유의 마티엘 효과가 두드러지는데, 말하자면 손으로 그 표면을 만지면 마치 사포와도 같은 미세하면서도 우둘투둘한 요철이 감지되는 것이다. 그런 연후에 미처 바탕층의 안료가 굳기 전에 그 표면에 채식과 이미지를 부가하며, 이때 두 안료층이 하나로 썩여들게 하는 것에서 마치 전통 벽화기법서의 프레스코 방식을 연상시킨다(건조한 벽면에 채색과 이미지를 부가하는 세코 방식과 비교된다).
이로써 바탕재의 표면에 안료가 얹혀지는 식이 아닌, 마치 수묵화에서처럼 바탕재의 배면으로부터 표면 위로 안료가 배어 나온 듯한 특유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런 수묵화의 방법은 나뭇잎이나 꽃잎 등의 소재를 세부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한번에 대상의 형태를 정학하게 포착하고 표현하는 방식을 취한다. 단 한��례의 붓질 속에 농담의 변화나 질감 같은 대상의 모든 특징을 함축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면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수정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신을 집중시켜 순간적으로 작업해야 하는 탓에 화면에서는 생생한 현실감과 함께 마치 일회적이고 즉흥적인 이미지를 보는 듯한 일말의 긴장감마저 감돈다.
이렇듯 추경의 그림은 자연을 소재로 하면서도 정작 화면 자체에서 이런 자연 소재는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관심이 자연 자체보다는 자연이 상기시키는 어떤 분위기에 정조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회화적 이미지는 그려지지 않은 어떤 다른 것의 표상이며, 이 표상이 그림을 그림 외적인 것으로까지 증대시키는 관건임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이는 추상과 구상을 하나로 넘나드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실현된다. 그리고 추상적 과정은 일종의 이중화면을 하나로 결합시킨 화면분할기법으로, 화면에 규칙적으로나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기하학적인 점들로, 그리고 유기적인 형상이나 얼룩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특히 유기적인 형상이나 얼룩은 그 자체 이중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하나의 샘을 상기시키는 특정의 이미지는 실재의 샘을 모티브로 한 것이면서, 이와 동시에 작가의 관념 속에 살아 있는 어떤 근원적인 형상 곧 원형적 실체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_고충환(미술평론가), 2003
Nature dissolved in the field of paintings
Chooghwan Kho, Art critic
It is said that art is the imitation of nature and involves learning form nature.
What aspect of the nature does art imitate and learn from? An answer to this question is that art imitates, copies, and replicates the superficial features of nature, which are the features of the material of nature. In this answer art takes the methodologies of naturalism or realism based on mimesis, Platon imitation theory. Naturalism and realism in this context are not those that reflect contemporary issues or actively participate in realistic matters. Another answer is that art imitates and learns from the eidos of nature, which is the core characteristic of nature. This answer has more significance than the first.
The aspect of nature art imitates in these methodologies is the natural cause of the motive power of nature that causes materials to exist, rather than the superficial features of the material. The motive power of nature is similar to the spirit of nature in the sense that both have dynamic characteristics. The motive power of nature is also similar to the spirit of people because people are part of nature.
The second answer, that is based on Aristotles mimesis theory, plays a critical role in the interpretation of Choogyoungs paintings. Choogyoung does not replicate nature realistically, even though nature is a main theme of her painting. Instead, Choogyoung disassembles of dissolves nature and recreates is in her paintings according to artistic principles. Therefore, nature in Choogyoungs art is very emotional and spiritual. His canvas is a trace of his emotional and spiritual nature, where the spirit of nature and the spirit of the artist meet each other. We con feel the movement of spirit in the dynamic brush stokes on her paintings.
Choogyoungs brush strokes are actions rather than static imitation or depiction, and this action is based on the movement of spirit. As a result, Choogyoungs paintings lean towards modernism, even though nature is the subject.
Modernism in this context means that the artist focuses on the core of and the principle of painting. Therefore, form a certain viewpoint, nature might seem to bo a mere means of the realization of the principle of painting. However, it does not mean that nature is not as critical as the principle of painting to the artist.
To the contrary, nature and the process of the realization of painting should be combined as one.
A monotone background in a blue hue plays an important role in making Choogyoungs paintings realize the principle of painting. Choogyoung sometimes uses other colors such ay yellow, brown, or red hues in his paintings, but they also have a single color background. A common tendency in his recent paintings is the use of a single hue. A monotone background restricts the use of various colors and the controlled use of colors can be related to stoicism or symbolism. The controlled use of colors enables the artist to focus on the autonomy and randomness of colors that are independent of the actual color of natural materials. The controlled use of colors also makes the audience focus on the feelings or emotions that are created by the colors, rather than on the actual colors. Choogyoungs paintings have cool and intelligent emotions and they add abstract characteristics to the paintings.
However, the monotone background in Choogyoungs paintings is not always abstract of pictorial. For example, the white background in Choogyoungs paintings depicts a real subject, the nature of winter, where everything is covered with snow. When the area is painted in white it means snow. The area where blue is gradually mixed with white means either the natural color of daybreak or is an emotional image of the artists that corresponds with the image of winter. The titles of Choogyoungs paintings, such as <Winter forest> of <Flowers in snow>, show that the paintings are based on reality. However, the two paintings have a dual character in which reality and emotional images are harmonized. For example, they depict a cone pine forest that is a real subject in nature and also express the impression and emotion of the artist about nature. The reason why Choogyoungs paintings still maintain pictorial features without being restricted by the subjects is that Choogyoung instinctively understands the principle of the dual character. Choogyoung also expresses sharp winter wind as well as the spirit of the air of daybreak in his paintings. The wind is expressed by dynamic brush strokes and we can feel a kind of vibration or the rhythm of nature from them.
In Choogyoungs paintings, the material features of the paint are emphasized, as well as the pictorial features of the background. The material features of the paint result from a particular treatment of the canvas that creates a pictorial effect. Choogyoung creates an uneven surface on the canvas by coating it with paint mixed with stone powder. The stone powder is also used to create the twinkling effect of snow. The canvas then has a matiere effect of a sand paper, a fine but rough surface. Before the coat of a paint mixed with stone powder dries, colors and images are added to the top of the undried layer to let the both painting layers naturally combine. This method is similar to the fresco painting method and contrasts with the secco painting method. In the secco method, colors and images are added after the bottom layer on the canvas completely dries.
Through the process mentioned above, Choogyoung creates an image similar to oriental ink paintings. In oriental ink painting, the paint does not appear to be on the surface of the background, rather the paint appears to be projected through the background. In the oriental ink painting method, subjects such as leaves or flower petals are not individually and delicately depicted, but art experssed as a whole body while still accurately capturing the features of the shape. The features of subjects, including a change in the shade of color or the superficial features of the material, can be expressed in a single brush movement. In order to gain the image an artist wants, the artist should not miss the right time to apply the paint as the painting process has a very short timeframe and once done it is impossible to correct. As this method requires the artist to work quickly and with intense concentration, the audience can feel the vivid reality and tension of the creation of the painting, as if they were watching a one-off and impromptu image.
Even though Choogyoungs paintings have nature as the main subject, the natural subjects do not seem to appear distinctively in her paintings. This is because Choogyoung focuses on the atmosphere of emotion the nature creates rather than focusing on nature itself. Choogyoung understands that her pictorial image is a symbol of something that is not explicitly expressed in her painting and that this symbol has a critical role in taking her painting beyond painting. She expressed his understanding by adopting a process which includes both abstract and representational paintings. The abstract painting process Choogyoung uses is a screen division method which combines dual layers of a screen into one. Her paintings include geometrical doth that appear irregularly, and organic shapes or stains. The organic shapes and stains have a dual meaning. For example, in Choogyoungs painting, the specific image of a water spring has a real spring as its basis and at the same time, it represents a fundamental form of an object that only exists in the artist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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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불솔라 썰들
1.
둔둔한 무거운 구르기 솔라 갑옷 입고도 빠른 구르기로 폴짝폴짝 뛰어댕기는 선불자 보고 신기해하면 좋겠다. 문득 자기 뱃살 쿡 찔러보는 솔라 시무룩해지면 좋겠네 넘모 커여웟 ㅠ 그런 솔라 뒤에서 끌어안아서 살짝 말랑한 가슴을 만지고 싶다. 선불자 솔라 가슴이랑 배 만지는거 엄청 좋아해서 존심 좀 회복하는 솔라.
2.
솔라 땡볕 아래에 둬서 뜨끈뜨끈해진거 보고 싶다. 너무 오래 있어서 살짝 어지러워 못 움직이는중인데 선불자가 솔라? 하고 말거는거. 너무 더워서... 못움직이겠네... 라고 속삭이니까 아니; 하고 당황하면서 서늘한 그늘으로 들어옮기는 선불자. 갑옷 한꺼풀 벗기니 좀 나은데 그래도 헥헥대니 선불자가 서늘한 손 이마에 얹어주면 좋겠어. 거기에 눈감은채 얼굴 부비작거리며 빨개진 얼굴로 땀 흘리며 고맙네... 하고 속삭이는 솔라.
3.
네크로필리아 주의!
선불솔라로 찌통물 보고 싶다.
선불자가 태양충에 감염된 솔라를 보고 당황해서 태양충을 직접 손으로 잡아뜯었다가 그때문에 솔라가 망가져서 그거 고치려하는 찌통물이 보고 싶다. 초점이 안맞춰지는 눈과 반응이 없는 몸뚱아리를 들고 아직 따뜻하다고, 그러니 안죽었다고 웃으면 좋겠어. 솔라의 반응없는 몸뚱아리를 들고 다니며 빨리 네가 일어나서 내 말에 대답하면 좋겠다며 웃는 선불자. 솔라 잃고 단단히 망가진 선불자 주시오.
그리고 머리가 훼까닥한 선불자가 안 죽었다며 동공이 풀린눈으로 솔라 거칠게 키스하는것 보고 싶다. 솔라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며 아직 손도 ��대로 못잡아봤는데 죽는게 어딨냐며 솔라 갑옷을 벗기고... (검열삭제)
4.
선불솔라로 선불자가 솔라를 좋아하는 이유가 솔라가 탁 트인 하늘같은 사람이여서인거면 좋겠다. 솔라가 마치 태양같다고들 하는데 그거 외에도 뭐라 해야할까, 보고 있으면 확 트인 풍경을 보는것처럼 벅차오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무언가가 있는거 같아.
5.
솔라 갑옷 손만 나온거 바람직해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잖아? 솔라 따듯한 손 항상 만지작거리는 선불자 보고싶다. 굳은살 잔뜩 박혀서 거친 손 뭐가 좋냐 부끄러워하는 솔라에게 태양이 손에 잡을수있는거라면 너 손같지 않을까 라며 플러팅하는 선불자. 솔라 죽으면 진짜 망연자실하게 무릎꿇은채 차가워지는 손 만지작거리지 않을까. 자기 태양이 식어가는걸 느끼며 정신 못차리고 덜덜 떨기만 하는 선불자. 뒤늦게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나왔으면.
6.
전 털있는 캐도 좋고 없는 캐도 좋지만 어찌됬든 제모썰은 아주 섻스하기에 좋아합니다 그러니 솔라 제모시키고 싶다. 처음엔 수염 깎는 솔라 도와주겠다는 선불자로... 그래도 목에 칼대는 일인데 흔쾌히 허락하진 않겠지 싶은데 솔라 선량하게 '그래주겠나?(선샤인미소)' 해서 선불자 심장 부여잡으며 내가 못된 맘이라도 가졌으면 어쩔려구... 라 중얼거리면서 살살 솔라 턱 면도날로 쓸어주기 시작하면 좋겠다. 그러면 솔라 한쪽 입꼬리만 슬쩍 올리면서 내가 그대를 깊이 믿으니까 이러는거네 라며 목소리 살짝 낮추며 말해줘
7.
예전에 선불자 혼자 레벨업 가능, 소울 속에 무한한 인간성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부활가능, 등등 이유로 선불자가 화방녀라는 프롬뇌를 봤는데 그런의미에서 자기가 화방녀라는거 안 선불자 솔라 레벨업해주려 하는거 보고싶다.
목 큼큼 가다듬고 솔라한테 손 내밀며 이제 내 안의 어둠을 만져달라 하는거지... 솔라 진짴ㅋㅋㅋㅋ 엄청 놀랄것 같다곸ㅋㅋㅋㅋㅋ 대사 너무ㅋㅋㅋ 너뭌ㅋㅋ!!! 그리고 투구 밑으로 얼굴 빨개진 솔라 레벨업시켜주고 엄청 뿌듯해하는 선불자 보고싶다. 시나몬롤들 ㅅㅂ 너무 귀여워 로드란 뿌신닷!
솔라가 선불한테 기적 가르쳐주는거 보고 싶다. 성서 하나 펼치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윈 첫아들님 기적 알려주기. 그러다 좋아하는 부분 가면 살짝 흥분해서 목소리 살짝 빨라지고 주먹 꽉 쥐면서 신나하지 않을까. 솔라 선불자가 슬슬 몸을 붙여도 상관않고 얼굴 살짝 발갛게 물들이고 좋아하는 부분 이야기 하기. 그런 솔라 손 슬며시 잡고 열심히 경청하는 선불자. 그윈이든 뭐든 ��� 모르겠고 신앙도 그닥 부족해 잘 믿지도 않지만 솔라가 좋아하는거니까 덩달아 좋은거라 생각하는 선불자. 어찌됬든 선불솔라 손잡고 평화로운 시간 보내는게 보고 싶다.
8.
선량한 기사 솔라 뒤에서 끌어안고 싶다. 대놓고 안아봐도 되냐 물어보면 '음? 원한다면 그러게!'라 말하며 선샤인미소 짓는 솔라 목에 얼굴 묻고 체취 맡아보고 싶다. 부끄러워하는 솔라에게 목에 마약 바른거 아니냐 물으면 새빨개진 솔라 허벅지 주물거리고 싶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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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그 갑옷에 태양 그림 직접 그린거라는데 솔라 솔직히 그림 잘그리지 않나요? 선이 예술적이야. 짜릿해. 그런 의미에서 선불자 몸에 그림 그려주는 솔라 필요. 솔라가 그거 그렸다는 얘기 듣고 소울 주면서 혹시 자기 팔에도 살짝 그려줄 수 있냐 하기... 솔라 선불자가 태양 표식 몸에 새기고 싶어하는거에 간질간질해져서 기꺼이! 하고 붓 잡아줘. 솔라의 손길에 따라 팔을 간지럽히는 붓에 선불자 살짝 흥분하지 않을까. 솔라 미간 살짝 찡그리고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 너무 섻스하겠지. 하아...
당연히 솔라가 그림 그리는 도중에 서버려서 끙끙거리는 선불자... 유난히도 그 붓질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다가오겠지. 솔라 선불자가 손 계속 움찔움찔거리니까 선불자 손 붙잡으면서 괜찮나? 많이 간지러운가, 미안하네. 그만하겠나...? 하면서 눈꼬리 내린채 슬쩍 올려다보면 좋겠다.
귀여운 솔라가 미안해하니까 급히 아니라며 계속 해달라 외치는 선불자... 왜 이렇게 엄하게 들리지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솔라가 너무 섻스하기도 하고 선불자 너무도 변태 마조라서 결국 솔라가 마지막 붓길 삭 그리는 순간 참지 못하고 움찔움찔 떨면서 바지 안으로 싸버리지 않을까. 솔라 아무것도 모르는듯 완성이네! 하면서 웃고있겠지. 선불자 조심히 숨고르며 드디어 끝이라 안심하지만 그 순간 솔라가 이거 참 멋지게 잘된거 같다며 팡팡 등을 두드려서 허으윽 하고 야한 신음 내버리는것 보고 싶다. 수치사 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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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충 감염된 솔라 쓰러뜨려서 억지로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에 들어가는 선불자가 보고 싶다. 하아... 아아아... 흐으웃... 무슨... 하면서 야한 신음 내는 솔라를 범하고 싶다. 나는 태양... 태양을... 나의 태양... 중얼거리며 바르작거리는 솔라의 허벅지를 벌려 멍이 들도록 꽉 붙잡고 그대로 솔라 엉덩이 안으로 자지를 꾸우욱 눌러넣는 선불자.
하, 아, 아아. 기다려... 기다려, 주게...! 무슨...! 하고 이성이 살짝 돌아오기라도 한듯 말해도 그저 그대로 뻑뻑한 그의 안을 꿰뚫는 선불자. 아프다고 살짝 울먹이는 솔라의 입을 무심코 맞추었다 물릴까봐 급하게 얼굴을 물리면 좋겠다. 솔라는 경황없이 아프다고 울먹이기만 하고... 그에 상관않고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선불자.
솔라는 처음엔 아팠는데 서서히 선불자가 움직일때마다 전립선이 건드려져서 아, 으, 하고 서서히 고통스런 신음이 다시 야하게 변하면 좋겠어. 그 반응을 알고 눅진할 정도로 느린 페이스로 그의 예민한곳을 더욱 공략하는 선불자. 솔라는 선불자의 굵고 기다란 자지에 전립선이 계속 짓이겨지자 머리가 새하얘져서 달뜬 신음만 뱉으며 어느새 선불자 어깨에 팔을 두른채 손끝만 움찔움찔 떨면 좋겠다. 아, 아 나의 태양, 아... 너무... 좋아. 좋네. 더, 더 해주게... 하고 속삭이는 솔라. 그에 더욱 페이스를 올리는 선불자가 보고 싶어. 철썩철썩 솔라의 엉덩이가 올려붙여지는 소리와 솔라의 달뜬 신음소리가 몇분이고 계속되다 어느 순간 발끝 움찔움찔 떨며 귀엽게 선불자랑 자기 사이에 싸면 좋겠다...
그리고 어느새 태양충은 떼어져있고 절정에 들뜬 솔라의 맨얼굴이 드러나있는거지. 하아하아 숨 몰아쉬는 솔라의 눈에 촉하고 키스하는 선불자. 그렇다 태양충을 떼내는 방법은 섹스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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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혈주의!
닼소1에서는 인간성 시스템이 있잖아요? 간단히 말해서 상대방의 인간성을 뺏을수있단말인데 이게 무제한 회복에 아이템 드롭량 증가에 조오오온나 좋은템이란 말이지???
그래서 변태 선불자가 솔라한테 인간성 좀 가질래? 하고 물어보면 좋겠다. 솔라는 암것도 모르고 ‘아하하, 괜찮네. 하지만 준다면 사양하지 않겠어.’ 하고 눈 찡긋하면 좋겠다. 선불자 풀발기하며 칼 꺼내들어라. 솔라 화들짝 놀라면서도 선불자가 자길 다치게할리 없다며 가만히 있겠지.
그 순간 선불자 자기 가슴에 콱하고 칼 찔러넣는거다. ‘대체 무슨...!’ 솔라 완전 당황하겠지. 그리고 피로 물들은 선불자 앞섬 꾹 누르면서 탈리스만 꺼내들어서 회복 쓰려할거다. 선불자는 걱정하지 말라며 솔라 손 잡아줘라. 그리고 자기 피로 물들어가는 솔라 손과 투구 너머로 걱정과 슬픔에 물들어 잘게 떨리는 솔라 눈을 보고 제가 이 순수한것을 더럽혔다는 배덕감에 몸을 떨겠지. 그렇게 죽은 선불자는 인간성 떨어뜨리고 다시 화톳불에 태어날것. 그리고 솔라에게 돌아와보니 솔라 아직도 선불자 피 못닦고 선불자가 떨어뜨린 인간성을 멍하니 보며 몸을 떨며 눈물 주륵주륵 흘리고 있어라. 선불자가 다가오니 솔라 벌떡 일어나서 그 피투성이 손으로 선불자 꽉 끌어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다신 그런짓 하지말라 어눌한 발음으로 애원했으면... 자기가 그런 말해서 선불자가 그런거라고 자책했으면 좋겠다. 귀엽게 달라붙는 솔라... 더욱더 망가뜨려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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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논콘 주의!
밝은 대낮에 태양빛 아래에서 가고일들에게 몸이 잡아벌려지는 선불자.
선불자 개딸피인채 인질 잡혀서 어쩔수없이 발만 동동 구르는 솔라. 그렇게 솔라 앞에서 엉망진창 범해지면서 수치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솔라... 하고 중얼거리면 좋겠네요. 허리에 피날 정도로 붙잡힌채 돌과 같은 그것이 안을 쓸어대는 느낌에 고통스러워 눈물을 투구 사이로 뚝뚝 흘리는 선불자.
가고일 두마리니까 두마리 모두에게 범해지는 선불자. 앞쪽 뒤쪽 둘다 자지 물리고 샌드위치된 상태에서 그 두곳만을 중심으로 몸이 붕 떠진채 박혔으면 좋겠어요. 온몸에 생채기가 나고 뒤랑 앞이 너무 아픈데도 마조끼가 있는 선불자라서 그것도 다 느껴버리면 좋겠네요. 그렇게 가고일 자지에 양쪽으로 꿰인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다 잔뜩 사정해버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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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주의!
모브에게 박히며 눈물을 투구 사이로 뚝뚝 흘리는 선불자와 그 모습에 살짝 발기해버리는 솔라.
선불자의 이런 모습을 보며 흥분하는 자신을 속으로 매도하는 솔라쿤이 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솔라도 선불자 속살 궁금해했음 좋겠다.
그 후에 풀려나면 선불자 뒤쪽도 치료해주는 솔라 보고 싶네요. '그건...' 하고 말을 흘리는 솔라에게 얼굴 붉히며 '이런거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그러다 문득 부끄러운듯 미안하다며 도망가려니까 선불자에게 괜찮다며 약 손에 묻히는 솔라.
그리고 솔라한테 만져지면서 야한 신음 흘려서 솔라 홀리는 선불자 좋아요. 솔라 발기된 자지 일부러 건드리면서 너라면 해도 괜찮다며 솔라 벗기는 선불자. 분명히 박는건 솔라인데 '이러면 안된다네...' 하면서 더 느끼고 울먹이고 배덕감에 몸을 뒤트는건 솔라인게 개꼴포일것 같습니다.
그렇게 솔라 정액 잔뜩 받아먹고 이것도 긁어내달라며 솔라 손으로 자위한번 더 하는 선불자 보고 싶네요. 솔라 정기 쪽쪽 빨아먹힘 좋겠는 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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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guage #입문 #티와이#engelus 오랜만에 붓질 옛날 생각나네 #서류가방 #briefcases #goyard #오마주 #남자의격 #vegatable #가죽공예 #leathercraft #style #fashoin #작품활동 #데일리 #일상 #daily #맞춤제작 #custommade #vogue #가방 #bags #designer#tailormeTY#강남 #(역삼동 우리집에서에서)
#vegatable#맞춤제작#tailormety#일상#서류가방#남자의격#engelus#style#가방#입문#티와이#강남#marguage#bags#briefcases#가죽공예#fashoin#designer#leathercraft#오마주#goyard#작품활동#데일리#vogue#daily#custom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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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고 싶다 조각품을 보면 조각하고 싶고 유화를 보면 그림그리고 싶고 캘리를 보면 붓질 하고 싶고 판화보면 판화하고 싶고 노래들으면 노래하고 싶고 피아노 소리 들으면 피아노 치고 싶고 사진보면 사진찍고 싶고 보는 것마다 다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할 수 있다는 마음보다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설랜다. 보는 사람들에게 설래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2019. 1. 27 무등. 비움갤러리 선물전 중에서 https://www.instagram.com/p/BtHdtR0lRMI/?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7agzeqxwi8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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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이거 그리는데 자꾸 떠오르는 노래ㅋㅋㅋ 방황하는 붓질 ㅠㅠ #wip #drawing #painting #blackandwhite #acrylic #illustration #picture #그림 #페인팅 #아크릴 #그림스타그램 #손그림(Seoul, South Kore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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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하는 것에 대해 써본 글들 _ 2019년 3월부터 6월말까지의 글
3월부터 시작한 그림들과 관련된 작가 노트 中
지금을 분명히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많은 대화와 사건, 다양한 관계와 경험들이 두서없이 나에게 쓸려온다. 지금을 바라보고 설명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정확히 지금을 난 모르겠다. 현재가 조각나있다. 지금 내 감정과 생각을 불러내는 것들을 찾고 싶다. 순간을 기억하고자 한다. 현재의 내 의식은 과거의 경험이 구성하고 있다. 지금을 위해 나에게 쓸려온 과거의 것들을 다시 바라본다. 조각나있는 과거의 순간적 감정을 지금 이 순간 맞이하기 위해, 이를 붙이기 위한 행위의 결과. 덧칠, 빠른 붓질, 빠른 완성. 연필의 남아있는 선 자국. 순간의 반응은 다양한 변화가 동반되기에 그림의 스타일은 일관될 수 없었다. 찍은 기억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핸드폰 속 지난 일상의 사진들. 감정적으로 공감하며 내가 동경하고 섣부르게 나와 동일시했던 옛 문학가들. 힘들어서 술을 마신 나의 감정을 증폭시키고 눈물 흘리게 만들어준 인터넷 동영상 속 가수. 그리는 것들은 감정과 기억이 제일 선명하게 현재에도 살아나는 과거의 이미지들. 현재의 나와 붙어있는 것들. 언어로 구체화하기 힘들지만 분명하다고는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들. 당시의 상황. 빛, 대화. 분위기. 감정. 생각들을 지금의 붓질을 통해 그림 속에 담고 싶다. 일상적인 감정들과 순간의 반응에서 나온 감정들, 생각까지 그림에 표현하고 싶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기억과 거리 덕분에 지금 난 창작한다. 빠르게 나온 이 결과물들은 지금 그 무엇도 잡거나 기댈 수 없는 혼란함을 드러내고 동시에 안정시켜준다. 쓸려와 쌓인 방대한 과거의 조각들을 지금 앞에 붙이고 나열함으로 조각난 현재인 나를 선명히 붙이려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시도를 앞으로 다가올 생경한 지금을 맞이하며 지속적으로, 새로 시도하고자 한다.
작업하지 않을 때 문득 들던 생각을 적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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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는 것을 경험했다. 잊지 못할 감명 깊은 생각이 났던 때가 있었다. 시선이 고였던 아름다운 시간과 풍경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나에게 머물러있지 않았다. 사라지고, 잊혀지고, 지나갔다. 지금에야 그때를 회상한다. 왜 그때는 모르고 지났을까. 아무리 생생하게 기억해 내 앞에 두고자 해도 언제나 부서진 조각에 불과했다. 머물던 것은 다시 내게 오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여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해도 항상 미끄러지고 후회한다. 지금 나를 미끄러지게 하는 것은 지나간 것들 때문이다. 완전히 앞에 둘 수 없는 머물다 간 것들. 부서진 조각으로 현재의 나에게 존재하는 순간들. 지금은 어찌 보면 머물다 간 흔적들을 바탕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 지난 조각을 지금 붙여서 살아나게 할 수 있다는 미련. 지금 순간적으로 감각하거나 경험하는 것들은 머물다 떠난 그때를 불러낸다. 혹은 떠난 것들을 통해 지금을 바라본다. 떠나가고 사라진 것들이 모두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라고 생각할 때 영원히 머물길 바라게 된다. 뒤늦게 깨닫게 된 후에 이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그림을 그린다. 다시는 그 순간이 머물길 나중에 깨닫지 않도록 지금 그때를 그린다. 시간이 지나면 이 그림들이 조금이나마 내게 머물다 간 것이 아니라 흔적이라도 남기고 간 듯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조각들을 찾길 바란다. 그림을 그리고 난 후 다음날엔 언어로 표현 못 할 상실감과 허무함이 드는 것은 그림이 그때를 완벽히 내 앞에 불러낸 것이 아닌 한계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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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거나 일련의 작업을 하는 이유는 위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히 머물도록 하고 싶은 내 이뤄질 수 없는 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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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 모르겠다. 과거의 나를 난 희미하게 알 수 있다. 이 행위들은 지금 알 수 없는 지금의 나를 알기 위한 불가능한 반복이다. 알 수 있는 과거를 바라보는 것 또한 그럴 것이다. 지나감이 없으면 지금의 나를 내가 알 수 있을 텐데. 그때가 머물러있다면 난 나를 지금보단 스스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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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도 포함되는 세대는 문제없이 무난하고 평화롭게 자란 세대라는 말을 들었다. 앞선 세대들이 남긴 여러 굵직한 정의들에 무감각하게 지배당하고 눈에 띄지도 않는 문제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도록 되어졌단 이야기. 뒤통수를 맞은 듯 했다. 분명한 의식을 가질 바탕조차 없는 이 세대는 역사가 되어가는 앞선 세대들의 부산물을 자신들의 바탕으로 바라보며 답습하고자 한다. 문제의식이나 분명한 주제와 신념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적 작가상은 아직도 유효하게 심지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지금 한결 자유로워져 부유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세대는 문제의식이라 삼을 것도 없고 시대라 말할 정확한 것도 없다. 과거의 문제의식을 자꾸 호명해 과거의 작가상을 불러낸다. 그렇게 작가가 된다. 난 그러고 싶지 않다. 그저 내가 바라보고 반응한 것을 나열, 배출하고 싶을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강요된 정의들과 생각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싶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하나로 묶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의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바라보던 것을 다시 바라보고 싶다. 지금의 미술계가 싫다. 전유물이자 오래된 재판소, 회사 같다. 한 목표와 문제의식이 뚜렷한 사람만을 원하는 이들이 싫다. 가식적이고 멍청하다. 나무만 보는 것이 아닌 나무에 있는 벌레와 흙에 난 잡초, 나무의 냄새, 흙의 냄새, 잡초의 다양함 등을 당연하지만 허접하고 의미 없다 생각하는 것들 까지 모두 다 같이 보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지금 시대 위의 ‘나’라는 작업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쩔 때는 쓰레기 같은 정치문제에, 어쩔 때는 차가워진 커피에, 어쩔 때는 무기력함에 이런 저런 이야길 두서없이 배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소비되는 샐러리맨 같은 뚜렷한 작가들의 시대 요청 적 죽음들에 비해 더 질길 것이라 생각하기에 나는 작업으로 이런 저런 이야길 난잡하게 말하고 싶다. 그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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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현재에 살아있지만 과거에 박제된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기에 빠르게 그들을 정의내리고, 그로 안도하고, 지금에 존재하고자 한다. 일부의 사람은 현재라는 선후 관계에서의 시간적 우월함에 과거를 섣부르게 동기화하거나 현재를 위해 과거를 무분별하게 가져온다. 타자가 아닌 동일존재로 현재는 과거를 녹여 형태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와 다르게 과거를 맞닿을 수 없는 완전한 타자로 인식하며 나에게 쓸려오거나 줍게 된 것으로 인식한다. 이를 바라보고 불완전한 공감을 하며 이러한 일련의 분투의 과정을 통해 지금의 파편들을 발견하고 현재를 선명히 하고자 한다. 내 작업이 현재와 과거의 타자들을 바꾸거나 지금을 계몽시키고자 하는 그런 강인한 힘을 가진 물건들은 아니다. 그를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지금을 나 나름의 솔직함과 발버둥으로 드러낼 뿐이다. 타인들은 동화되어 공감할 수 없는 이 작업들을 무심하게, 가볍게 넘겨 봐줬으면 좋겠다. 현재를 찾고 있는 나의 다양한 조각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부분을 떠올리는데 일부분으로 쓸려가길, 주워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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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이나 내가 감명 받았던 것들, 이미지뿐만 아니라 여러 대상들을 주로 그린다. 감동 받았던 것은 추상적으로 그리지 않고 감동받았던 그 대상을 그리고자 한다. 감정적인 이미지라기 보단 감정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껍데기라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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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것들을 현재에 반응할 때는 한가지의 감정만 드는 것이 아니다. 동어 반복적이지도 않다. 다만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내가 찍거나 받은 사진들의 경우 순간의 포착에 가깝기에 이를 현재에 반응할 땐 여유롭게 붓질을 할 수 없다. 각 사진들의 힘이 강해지는 것도 순간적이고 현재의 감정이 생겨나는 것도 한 순간에 가깝기에 붓질의 흔적이 눈에 보일 정도로 붓이 빠르게 움직이며 양감이나 조색의 고려가 거의 되지 않는다. 그들을 호명하고 불러오는 것은 순간의 붓질들과 순간의 집중이 필요하다. 스케치도 할 겨를이 없다. 우선 붓이 앞서나간다. 이 과정을 거친 후 현재에 남겨졌던 감정들을 다시금 그림에서 찾는다. 그 후 시선이 맺히거나 감정이 고이게 되는 부분이나 상황에 마감재를 발라서 정착시킨다. 정착된 부분들은 매끈하고 빛이 난다. 광택이 나는 부분 마감으로 그림은 완성된다. 조각들을 붙이듯 과거로부터 온 조각들이 현재에 감정으로 선명히 드러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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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이 없어지고 그림에 감정이 선명해서 찾을 필요가 없어졌을 때 붓질이 멈춘다. 조형적인 완성도를 우선적으로 신경을 쓰진 않아서 미완성 같은 것도 있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은 감정이 없어지면 그림을 멈춘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공허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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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럴 나이트: 발굴의 현장에서
<Plural Nights> 전시 리뷰
김나현
때때로 나는 우리의 시야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하여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시야 안에 넣을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없었던 것들, 보지 않았던 것들은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린다.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도식schema은 어떤 식으로도 우리에게 남지 않는다.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에서는 이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미술은, 그 표면 아래에 보여질 수도 있었던 것들, 보이지 않았던 것들, 앞으로 누군가 볼 수도 있는 것들을 담지한다. 작가가 구축한 맥락들을 발굴하는 것은 분명 보는 사람의 몫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술 작업을 하거나 본다는 것은 이제 ‘고고학’이라고 불려도 될 듯하다. 이 글은 고고학자로써의 내가 2/W의 2018년 마지막 전시 <Plural Nights(11.24-12.16)>에서 본 것들의 아래에서, 뒤에서, 측면에서 발굴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다.
공간 속에서 평면을
이러한 맥락에서 김나하늬의 <Bermuda Rhapsody>(이하 B.R)는 고고학자의 천국이다. 작업 자체가 공간 속에서 평면을 발굴하고 있기 때문이다. <B.R 01.>에서, 2차원 평면 색종이의 ‘속’에 3차원 공간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처음에 종이를 매만지는 것처럼 보이던 손가락들은 그것을 접어 비행기를 만든다. 비행기를 만드는 손가락들은 서로를 쓰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눈이 2차원 스크린의 뒤에 하나의 통일된 3차원 공간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며, 그곳에 존재하는 것이 평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색종이-공간(이 얼마나 이상한 말인가. 종이라는 물질 속에는 공간이 존재할 수 없다.)이 ��혀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으로, 그것은 우리 눈의 무의식적 공간감 전제를 접으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하나의 공간은 하나의 평면으로 전환되고 “하나의 영상은 하나의 회화 작품”으로 다뤄진다.
<B.R 07.>에서, 화면은 여러 개의 조각으로 분할되어 있다. 그러나 파편화된 이미지들의 단순 병치는 아니다. 화면의 모서리에 배치된 노란 오브제들은 하나의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부터 완전히 분절되는 것을 저지한다. 여기서 제각각의 화면은 개별적인 공간감을 가지나,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평면, 단일 스크린을 구성하고 있다. 화면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지자, <B.R 01.>에 등장했던 중첩이 변주되는 형태가 다시 제시된다. 처음에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볼 수 있는지 명확하게 전달받는다. 그러나 화면과 시야가 추가되면서, 우리의 눈동자는 오브제와 인물들의 궤도를 추적하게 되지만 결코 그것을 정확히 인식하지는 못한다. 화면 속 공간을 파악하려는 눈의 시도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이다.
스크린의 평면성 고발은 <B.R 03>에서도 이어진다. 여기에 가시화된 두 개의 회전축은 화면 안의 입체감, 공간감 등을 암시하나 색상 변화와 함께 화면 위에서 튕겨지는 탁구공은 카메라가 유도하는 그러한 성질들의 절대성을 깨트리고 스크린 표면의 평면성을 들춰낸다. 마찬가지로 <B.R 05>에서, 카트의 그리드는 스크린의 분신이다. 이 그리드의 Z축 공간은 그 안에 다른 오브제들을 담거나 그 너머에 담음으로써, 비춤으로써 스크린의 안과 밖이 맺는 관계를 스크린 안에 복제한다. 카트의 그리드와 스크린은 사실 같은 것으로, 복제된 스크린인 카트의 그리드는 스크린으로부터 자가 분열한 것으로 취급된다. <B.R> 시리즈는 중첩된 스크린 안에서 비가시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거의 자동적으로 발굴하고 있는 공간의 심도를 레이어의 중첩을 통하여 스크린 밖으로 꺼내오고 평평하게 만들어 회화와 무빙 이미지 사이 대척점을 무너트린다.
다시 <B.R 01.>로 돌아가면, 색종이의 가장자리에 빨강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무빙 이미지의 잔여물들은 발굴 작업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먼저 <B.R 01.>의 은색은 <B.R 07.>에서 다시 등장한다. 은색 옷을 입은 인물들을 따라 가다 보면 상기 언급한 노랑들로 시선이 옮겨 간다. 인물들을 따라 화면의 왼쪽 상단으로 사라진 노랑은 <B.R 03>에서 탁구공으로 다시 등장한다. 한편 색종이 가장자리에만 남아 있던 빨강은 <REDDOGWHITEFLOWER>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인물이 입은 옷의 꽃에서, 장갑에서, 모기에게서, 잘린 손가락에서, 오징어의 세포 위에서 잔여물이었던 빨강을 볼 수 있다.
<REDDIGWHITEFLOWER>의 경우 앞의 <B.R>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니고 있으나,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스크린이 그 안에 공간감을 선천적으로 내재한 것으로 여겨졌듯, 이미지 또한 기의가 내재된 것으로 여겨졌었다. ��� 작업들은 이러한 명제들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가시화한다. 이러한 가시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은 물론 오래된 실천이나, 이미지-기���가 가지는 유사성을 다음 장면의 재료로 사용할 때, 작가만의 고유한 감각을 기조로 시간을 뒤엎어 과거의 것을 끌어와 다시 미래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 작업만의 것이 스크린 위로 떠오른다. 작은 휴대폰 화면으로 재생되는 이 무빙 이미지는 보는 사람의 감상 리듬을 사운드와 이미지로 조절한다. 누군가 이 작업을 보면서 신체를 떠올린다면, 물론 그것은 작업에 등장하는 손가락과 피를 연상시키는 빨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작업의 리듬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진동, 펄스, 맥박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 표현인 리듬은 화면 내에서 수축과 팽창, 좌우로의 움직임, 이미지화된 텍스트를 반복적으로 인쇄하는 프린터의 소리 등으로 치환되어 드러나고 있다.
다시 처음의 맥락으로 돌아와서, 스크린 안의 공간감을 전제로 통용되던 공간 감각이 사라지는 스크린 위의 평면을 김나하늬는 ‘버뮤다’라고 지칭한다. 이 작업에서 보이는 구체적인 시도들, 보이는 것들의 표면을 깨트리고 그 안의 보이지 않는 것들은 발굴하는 시도들은 무빙 이미지의 매체적 경계 탐색과 그 확장에 유의미한 실천이 될 것이다.
평면 속에서 공간을 (Far side of the Moon)
우리가 회화를 볼 때, 우리는 회화의 안을 보는 것일까, 회화의 표면을 보는 것일까. 미니멀리즘 이후 회화의 표면은 더이상 미술의 프론티어가 될 수 없는가. 김다정의 이번 회화 작업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대답으로, 회화에 있어 우리가 쉽게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발굴하여 캔버스 위에 열거한다. 김다정은 김나하늬가 자신의 작업 안에서 수행한 것을 반대로 이행한다. 얇은 평면을 더 얇은 레이어로 분해하여 그곳에서 공간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한 김다정의 붓질은 회화의 이면裏面, 캔버스의 이면까지 다다른다.
특히 <Glancing blow> 시리즈를 고려할 때, 나는 이 작업의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싶다. 회화에서 물감의 최종적인 목적지는 회화의 표면뿐만은 아니다. 마치 우리가 지구에서 달의 뒷면을 보지 못하듯이, 미술관 벽에 걸린 회화를 보는 사람은 캔버스의 뒷면을 볼 수도 없으며 사실 작가의 서명이나 제작 연도가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김다정이 평면 속에서 공간을 발굴하는 방법은 회화와 캔버스라는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업에서 붓질과 붓질 사이에 도포된 레진은 붓질 사이에 존재하는 틈을 가시화하며, 가능한 한 얇게 압축되었던 평면을 레이어로 분해하고 그것을 길게 늘어트려 회화의 표면을 연장 가능한 벡터 공간으로 만든다. 두 개의 색면과 그 위의 화살표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붓질들 사이의 거리감은 회화의 표면을 깨트리고 북아트의 한 종류인 ‘터널북tunnel book’을 연상시키는 공간감을 평면 위에 소환한다.
한편 <T>와 <M>에서, 그 표면은 짧고 넓은 붓질들, 혹은 길고 넓은 붓질들로 구성되어 있다. 두 개의 대형 캔버스를 사용한 이 작업들은 보는 사람의 눈을 횡으로 또 종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하는데, 두 작업 모두에서 둘 중 하나의 캔버스는 조금 더 역동적인 색채와 짧은 움직임을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T>의 경우에는 우측 캔버스가, <M>의 경우에는 상단의 캔버스가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김다정은 이를 “스크롤이 가능한 슬라이드쇼”를 염두에 두었다고 설명한다. 디지털 매체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에게 횡스크롤이나 종스크롤은 가장 익숙한, 가장 무의식적인 눈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김다정은 이러한 시대적 시각성을 캔버스 위에 구현하고 있다. 또한 긴 붓질들은 캔버스 내 배경의 방향에 대해, 짧은 붓질들은 캔버스 내 형상의 움직임에 대해 암시를 주고 있는데, 우리의 눈은 자동적으로 이것이 반대편의 캔버스와 어떤 형태로든지 링크를 가진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작업이 가진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우리 시대만이 공유하는 새로운 시각적 유대성. 이러한 것들, 새로운 시각성을 발굴하여 증언한다는 점이 젊은 작가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충분할 것이다.
계속해서, 두 개로 나뉘어진 캔버스는 스크롤 이후 시야에 남아 있는 잔상을 포착한다. 그런 잔상들은 두 캔버스를 연결하는 색채의 반복됨에서, 혹은 붓질의 끊고 맺음이 하나의 마디로 작용하며 만드는 리듬에서 유래되는 특정한 음악적 테마들에서 발견된다. 특별히 재미있는 점은 김다정의 작업에 존재하는 위장된 붓질들이다. 전시된 다른 캔버스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배경과 아주 유사한 색상값을 가져서 눈에 띄는 구별점을 지니지 않는 붓질들이나 투명에 가까운 색상값을 가져 거의 붓질의 테두리만 남아 있는 색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회화의 기본은 색의 병치이다. 색과 색 사이의 구분이 바로 형상과 배경의 구분을 가능하게 하는 회화적 토대를 세우는 것인데, 이렇게 위장된 붓질들의 투명함은 그 토대를 공격한다. 또한 이 투명함은 자신의 아래에 존재하는 또 다른 색의 층을 보는 사람의 시야 안으로 포섭한다. 위장된 붓질은 회화의 조형적 공간감을 발굴하는 일의 선두 지휘를 맡는다.
그러나 김다정의 위장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Ticker tape parade>나 <Bundle buggy>에서, 그리고 다른 작업들에서 보는 사람은 캔버스의 표면 위에 볼록하고 울퉁불퉁한 부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요소들은 색상값을 가지지 않거나 다른 색에게 가려져 있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색으로만 칠해져 있다면 보는 사람은 같은 색으로 추가된 어떤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나, 그 위를 감싸고 있는 두세 개의 색이 마치 원래부터 볼록하게, 혹은 물감과 붓질이 지나간 자리처럼 울퉁불퉁하게 생긴 캔버스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시지각적 요소들이 캔버스 표면 위 레이어와 레이어 사이, 붓질과 붓질 사이에 솟아오른 회화의 피부들, 회화의 이면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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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현
역사철학과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다 전시와 비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있다. 동시대 시각 문화를 형식과 매체의 관점에서 독해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예술 안에서 사용되는 예술 언어들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에 관심이 있으며, 비평은 그것의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전시 <최소한의 바닥>을 기획했으며 청소년 예술 비영리 단체 공공예술협동체(PACO)에서 미술이론 튜터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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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호展(미광화랑)_20210927
신성호 작가는 '붓질-흔적-내재성'이란 주제로 미광화랑에서 11번째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붓질과 지움을 통해 '생명의 양태(樣態)를 가시화하고, 화면의 긴장 속에 내재된 기운과 호흡, 소리, 생명에의 의지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직접 작품을 감상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10월 3일, 미광화랑), http://www.artv.kr/?p=7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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