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작은 한 칸짜리 종이에
너에게 고마운 마음과,
아른거리던 그리움을 묻혀 보낸 것을 알까.
네게 말하고 싶어
온 손가락이 옴싹거렸던 것을
너는 알까.
내 엽서가 오길 기다리던 너와
무사히 네게 가길 바라던 내가
온통 즐거운 주말을 보내게 되리라
그땐 몰랐지.
나는 그때 우체국에서 나던
냄새,
그때의 빛,
그 곳의 느낌,
그런 것들이 선명하다.
나의 인생이 조금
방향을 틀어가던 그 순간이
소중해서.
-Ram
*우체국
1.
엄마와 아빠는 성격이 서로 많이 다르다고 느끼는데, 그래도 서로 사랑하나 봐. 엄마는 맨날 해외여행을 가면 집에 혼자 있는 아빠를 생각해서 그 나라에서 흔히 파는 관광 엽서를 산 후 편지를 써서 굳이 우체국을 찾아 간 다음 아빠한테 부치고, 아빠는 맨날 투털대면서 엄마를 아침에 직장에 데려다주러 주말에도 새벽 6시에 꾸역꾸역 몸을 일으킨다. 근데 있잖아. 서로 사랑하면 더 다정하게 대해줄 순 없는 거야? 굳이 틱틱거리고, 서로의 안좋은 점을 콕 집어 말해야만 하는 거야? 배려는 어디 간 걸까. 근데 또 생각해 보면, 30년을 넘게 같이 산 엄마아빠도 저러는데 친구나 연인 사이에 일어나는 것들은 당연한 건가? 아니, 근데 서로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조금은 덜 하지 않을까 싶은데. 배려는 남과 남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건 배려가 아니라 가식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2.
꼭 좋지 않은 꿈은 들어맞아. 빌어먹을 꿈. 앞으론 꿈에서라면 더더욱 꿈틀댈 꺼야. 빌어먹을 꿈.
-Hee
*우체국
부상으로 달리지 못할 때는 달리기 용품을 사며 뛰쳐나가 달리고 싶은 마음을 달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몰라서 우스운 소리라고 치부했는데 요즘 그게 어떤 의미인지를 여실히 깨닫고 있다. 장경인대염과 후경골건염이 동시에 찾아왔다. 목표했던 대회에서 몸을 혹사시킨 직후도 아니고 보름 정도나 더 지난 뒤에야 갑작스레 찾아온 부상. 평소에 등한시하던 보강운동이나 스트레칭 습관을 익힐 럭키비키한 상황이라 생각하려고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은 초조해지기만 했다.
괜히 뛰었다가 부상 기간이 더 길어질까 봐 애써 참았지만 마음은 꾸준히 울적해졌다. 그 사이에 신발, 의류, 장비 따위를 잔뜩 사버렸다. 한 달에 2-300km는 뛰니까 신발을 못해도 두세 달에 한 번은 바꿔줘야 한다거나, 어떤 신발이 저렴한 금액에 나왔으니 무조건 구매부터 하고 봐야 한다거나, 포디움에 많이 올라가는 나이키나 아식스의 대단한 신발은 요즘 제값 주고는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거나 하는 이유들이 매번 있었지만 사실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질러대긴 했다.
당장은 신고 나가지도 못할 것들인데도 방 한구석에 잔뜩 쌓이니 마음이 어째선지 든든해진다. 돈이야 많이 썼지만 이 신발들도 결국 다 닳아서 못 쓰게 될 때까지 신게 될 테니 무의미한 소비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 내 유일한 낙은 우체국에 들러 주문한 물건을 찾아오는 일이다. 우리 동네 우체부 아저씨의 배송 순서에 우리 집이 하루의 마지막쯤에 놓여있어서 그걸 못 기다리고 퇴근길에 직접 들려 찾아오는 것이다. 새 신발을 신고 달릴 생각을 하면 울적한 마음이 놀랍게도 쉽게 다그쳐진다.
약간 우울했던 퇴근 길에 한 조각에 9,600원하는 두바이 초콜릿 케이크를 사먹었다. 맛있었고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사치의 효용 💸
#2.
📚 <여름문구사>를 재미있게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제주에 가고 싶었고 그림도 그리고 싶었다. 손으로 그리고 쓴 이야기는 대체로 좋아하게 된다 💘
#3.
광복절에 연차를 붙여 쉬며 가족들 다 같이 모였는데 수영장가고 만화책 보고 떡볶이 먹으며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나 여름방학 같았다. 무척 즐거웠던 날들 ❤️
#4.
조카들이 제주도 여행에서 엽서를 써 주었다. 너무 좋아서 읽고 읽고 또 읽고! 책갈피로 쓰면서 자주 보고 있다.
#5.
어느 금요일 한 책이 궁금해졌고 그 마음을 참을 수 없어 퇴근길에 교보문고에 들러 책을 사왔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 세상이라 서점에 가서 책을 둘러보고 살지 말지 결정하고 책을 사서 집에 오자마자 읽는 게 무지 오랫만이었다. 그래서 특별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어떤 공간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점이라든가 꽃집 같은 곳.
새해가 밝았고 두 번째 31가 되었다. 고로 올해의 다짐은 “내가 몇 년만 젊었어도" 싶었던 거 다 해보기.
1.1 일
준수와 함께하는 첫 번째 1월. 생애 첫 번째 떡국을 끓여봤다. 요즘 ‘우리집의 전통' 만들기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데, 앞으로 우리집 새해 메뉴는 매생이 떡국. “맛있는데? 진짜 맛있는데?”를 무려 열 번이나 들었다. 물론 다섯번째 부터는 내가 먼저 “맛있어?”라고 물어보긴 했다.
(이렇게 잘라서 올리면 맛있어보이려나?)
어제 당진에서 마지막 일몰을 못 봐 아쉬웠는데, 스크린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어마어마한 일몰을 정면으��� 마주했다. 태양의 새해 첫 퇴근길에 나와 준수의 소원 두 개 더 실려보냈다. 어제 포기한 일몰을 오늘 생각치도 못하게 마주하다니. 역시 사람 인생 오르막길 내리막길!
1.2 월
새해 첫 출근답게 회사가 조금 어수선했다. 자리가 바뀐 사람들의 평소보다 조금 높은 인사소리와 들뜬 얼굴들이 귀여워 둘러보는데 위전이 눈앞에 보였다. 나와 같은 줄로 이사를 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사이가 전부 빈 자리라 꽤나 가까워진 기분.
회사 밖의 친구와 같은 사무실에 있다는 건, 이 곳에 나만 아는 작은 대나무숲이 있는 기분이다. 존재만으로 묘한 위로가 된다.
밤. 시리우스가 시리도록 밝았다. 새롭게 별을 알아보게 될 때면 어떤 과학자는 이 별의 이름을 짓기 위해 평생을 들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인류애가 충전된다.
1.3 화
수잔이 떠나기 전, 신사에서 지영언니와 셋이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야근. 부랴부랴 한껏 상기된 얼굴로 카페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하나야!”라고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세상에 지영카피님과 동석아트님 (구 아트님, 현 대표님)이 계셨다.
얼결에 합석해 HSAd 이야기를 나눴다.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부터 요즘엔 모하니까지. 유일하게 현HSAd 재직자인 지영언니 덕분에 공덕 근황을 업데이트 했다. 늘 똑같고 별 거 없다고 하면서, 툭 다른 주제를 던지면 탁 하고 이야기가 나왔다. 키워드만 업데이트 해두자면 할리데이비슨, 15층 파전, 3층 초밥집…
지영 카피님은 수잔 결혼식 이후 2년만에, 동석 아트님은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만나서 얘기하니 어색함이 없고 이야기가 술술이었다. 같은 시절, 같은 이야기 속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여서일까. 같은 반 친구를 만나 고등학교 이야기를 하는 기분. 세상은 좁고 우연은 다반사.
1.5 목
하프파운드 푸딩들. 내 자제력을 믿지 말자. 후회-하고 있지만 내일부터 다시 해내야지.
1.8 일
생애 첫 타투. 준수는 토요일에 사넬을, 나는 오늘 두나를 데려왔다. 아프다는 후기도 봤었는데 작가님 기술이 좋으신지 둘 다 잠만 쿨쿨 자다 나왔다. 어제 샤넬을 먼저 보고는 두나도 전신을 그리기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음을 바꿨는데, 막상 몸에 그려보니 너무너무 마음에 든다. 벌써 또 하고싶고 왜 다들 처음이 어렵지 계속 하게 된다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랄까.
준수 장염 완쾌 기념으로 파스타468에서 파스타.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름만 바꿔도 468배는 잘 될 것 같은데. 손님이 적당히 있어 우리는 오히려 좋아. 포모도로는 상태가 좋지 않고 바질페스토는 다 떨어져 새우알리오올리오와 냉이페스토 파스타. 맛있었지만 다음엔 포모도로와 바질페스토 파스타.
1.10 화
주연이와 급만남. 교보문고 갈 일이 있다고 했는데 나도 마침 진짜, 딱, 퇴근하고 가려고 했었던 것. 야 너도?하며 만났다. 교보문고와 샐러드와 커피. 아직도 나는 마음이 어린지 친구 사이에서도 괜시리 서운한 일이 있는데, 그럴 땐 서운한 일 없는 친구가 또 약이 된다. 주연이에게 왼쪽 팔뚝에 자리잡은 두나를 자랑하고, 연말 휴가로 스페인에 다녀온 여행기를 들으며 어딘가 꼬여버린 마음을 풀었다.
1.11 수
오랜만에 소고기무국. 양지 300g이 필요했는데 마트 축산코너에서 360g을 담아주었다. 고기가 더 들어간만큼 무를 듬뿍 넣었더니 물도 덩달아 많이 들어가 조금 싱거웠다. 언제나 정해진 레시피만큼의 재료가 주어지지는 않으니, 시와 때에 따라 변주하는 법을 알아야지.
1.13 금
만포막국수. 성시경도 축축한 날씨는 이기지 못했는지, 오픈 웨이팅을 각오했지만 다행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찜닭은 닭을 맛있게 찐 게 전부라 특별할 것 없었지만, 양념이 진짜였다. 톡-쏘게 탁-맵고 슥-시큼한 게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너무 맛있네.
가정적인 내가 만두를 포장해왔는데 회사 냉장고에 두고왔다. 결국 덤벙대는 내가 모든 나를 다 이김.
1.14 토
소정언니 브라이덜 샤워. 이제 잔치상 준비는 한 시간 반이면 싹가능.
1.15 일
하이모 감독님 미팅. 끝나고 집에 오는 길은 내가 운전대를 잡았는데, 진짜로 부산 갈 뻔. 한남대교에서 올림픽대로 진입 실패. 중간에 나가기도 실패. 어쩌다 경부고속도로를 탔는데, 눈 앞에는 부산으로 가는 표지판이 있고, 내 뒤에는 버스가 있었다. 알고보니 내 차가 버스전용차선 위에… 울고 욕하면서 겨우 집에 왔다.
그리고 더 퍼스트 슬램덩크. 진짜로 다섯 번 울었다.
1.19 목
천용성 / 보리차
1.20 금
한국인이 만들고 미국인이 감탄하고 일본인이 시기하고 중국인이 분노하는
1.21 토
그렇다면 나도 한 줄로 정의하지 못한 나의 세대를 기성새대가 정의하도록 두어도 괜찮은가? / mz오피스 관련 기사
눈이 많이 오는 날 형경이와 점심. 약속을 잡고 나면 늘 취소되거나 밀리면 좋겠다는 심보가 마음 한 켠에 숨어있는데, 아침에 내린 대설주의보로 그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지만 한국의 성실한 기사님들 덕에 형경이는 택시를 잡을 수 있었고, 늘 그렇듯 막상 나가면 너무 좋아하는 나.
오월의 종에서 웰컴브레드, 루트에서 포케, 테라로사까지 내가 아는 (그리고 블로거들도 너무 잘 아는) 이태원 스페셜코스 투어 완료.
퇴근길에 얼마전에 생긴 동네 스테이크하우스에 왔다. 터키식 안심 스테이크와 볶음밥을 먹고 맥주 두 잔을 마셨다. 와인은 갖춰져있지 않고, 음식에 비해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편안한 곳이었다. 금요일 저녁인데, 8시에 들어와 9시 10분이 넘어가도록 나 말고 다른 손님이 한 명도 들지 않는다. 유튜브를 틀어놓고 고슬고슬한 밥알을 씹으며, 모두가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세 잔째의 맥주를 주문한다.
어제 금요일에 퇴근할 때 원래 타던 버스를 타지 않았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주말이니까 사람이 많다는 걸 내가 깜빡했다. 그래서 갈아타려고 버스 정류장에 내려왔는데 30분 이상 기다렸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기로 했다.
타면서 길을 봤는데 사람들은 행복해 보였다. 내 얼굴에 요즘 안 보이는 표정. 길에서 커피 마시면서 수다 떠는 사람들. 자전거를 좋아하며 모이는 사람들. 저녁을 같이 먹는 사람들. 그리고 어딘가로 가고 있는 사람들. 그때 든 생각은.. 내가 재미없게 살았구나 싶다. 뭐하면서 살아 왔지.. 싶다.
근데 또 든 생각은.. 아니다. 나는 나름대로 잘 살고 있지. 생각했다. 그래도 한 구석 마음이 좀 걸렸다.
그래 지금 나름대로 살고는 있지만 아주 가끔은 새로운 것을 해 봐야 이야깃거리가 생기지 않을까?
경험 좀 많이 하고 아는 게 많아지잖아...
근데 그러할 사람은 없다. 가자고 할 사람은 없다. 혼자 가면 무슨 소용인데? 머리가 하나라서 생각은 바꾸지 않을 거잖아. 새로운 관점은 없을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