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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용기2
trexboy76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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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이 나오고 나서 3년이 지나#아들러 철학에 모순을 발견한 청년이 철학자를 논파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1편보다는 더 어려운 내용이 될 거라고는 직감했다 1編が出てから3年が過ぎて#アドラー の哲学に矛盾を発見した青年が哲学者を論破するためにまた訪ねてきたという設定で話が進むから1編よりはもっと難しい内容になるとは直感した。 현재의 행동에는 과거의 어떤 심리적 원인이 있을 거라는 #프로이트 와 결별한 아들러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으로 #자립 한다는, 사람들은 모두 내 친구라는 의식으로 사회 속에서 산다는 현재의 목적만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現在の行動には、過去の何らかの心理的原因があるだろうというフロイトと決別したアドラーは、能力があるという意識で#自立 すると、人々はみんな私の友人という意識で社会の中に住むという現在の#目的 だけが重要だと話す #허무주의 , #이상주의 ,#낙관주의 등으로 아들러의 #철학 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1차 대전 중 군의관으로 사기가 떨어진 군인을 다시 전쟁으로 보내는 경험을 했던 그였기에 모든 것을 개인의 선함을 #신뢰 하고 간섭과 개입을 배제하는 심리학을 주창한 것이 아닌가 싶다 #虚無主義 、#理想主義 、#楽観主義 などでアドラーの哲学を批判する人々がいるが、第一次大戦中に軍官として戦意が落ちた兵士を再び戦争に送る経験をした彼だったので、すべてを個人の善を#信頼 し、干渉と介入を排除 する心理学を唱えたのではないかと思う 2022년에 읽은 5번째의 책 2022年に読んだ5番目の本 3rd book I read in 2022 3ta libro que leo en 2022 22/4/20-24 #幸せになる勇気 #岸見一郎 #古賀文建 #translated #미움받을용기2 # 인플루엔셜 #전경아 #세줄평 #life #教育 #賞罰 #콤플렉스 #trauma #사랑 #결혼 (矢田川에서) https://www.instagram.com/p/CcwMc0Svuyc/?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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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butlegible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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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º°゚゜✧ What’s the meaning of the coummunication? It’s not about the sending. The last goal of it is ‘agreement’. When understand someone’s own saying and have a some agreement from it communication gets have a real meaning. Here must take a long time. However, that’s why communication bring to us many priceless things. . . . . . . . . . . #reading #read #bookstagram #readbook #readbooks #quoteodtheday #quotestoliveby #instaquote #lifequotes #lifequote #dailyquotes #communication #meaningoflife #meaning #책스타그램 #책읽는여자 #독서 #책읽기 #독서그램 #추천도서 #미움받을용기 #미움받을용기2 #글스타그램감성스타그램 #인생글귀 #좋은글귀 #글귀스타그램 (at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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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번째 이야기, 사랑하는 인생을 선택하라
2016. 10. 12.
인생의 '주어'를 바꾸라
청년 주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이거죠?
철학자 그래, 즉 우리는 '나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분업의 관계를 맺고, '너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교우의 관계를 맺는다네. 그렇다면 사랑의 관계는 어떤 걸 추구한 결과로 성립되는 걸까?
청년 ……그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숭고한 '너의 행복'이겠지요.
철학자 아닐세.
청년 어? ……그러면 사라으이 정체는 이기주의(egoism), 다시 말해 '나의 행복'이라는 건가요?
철학자 그것도 아닐세.
청년 그러면 뭡니까?!
철학자 이기적으로 '나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이타적으로 '너의 행복'을 바라는 것도 아닐세. 나눌 수 없는 '우리의 행복'을 쌓아올리는 것. 그것이 사랑이네.
청년 ……나눌 수 없는, 우리요?
철학자 그래. '나'와 '너'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우리'라네. 인생의 모든 선택에 있어서 이 순서는 꼭 지켜진다네. '나'의 행복을 우선하지 않고, '너'의 행복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이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두 사람이 달성하는 과제'란 그런 걸세.
청년 이기적이면서도 이타적이기도 하다……. 그런 건가요?
철학자 아니.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이타적인 것도 '아니'네. 사랑은 이기심과 이타심이 모두 있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물리치는 것이라네.
청년 왜죠?
철학자 ……'인생의 주어'가 변하기 때문이지.
청년 인생의 주어요?!
철학자 우리는 ���어나서 줄곧 '나'의 눈으로 세계를 보고, '나'의 귀로 소리를 듣고, '나'의 행복을 바라며 인생을 걸어가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꺠달았을 때, '나'였던 인생의 주어는 '우리'로 변하네. 이기심도 아니고 이타심도 아닌 전혀 새로운 지침 아래 다시 태어나는 것이지.
청년 하지만 그건 '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잖아요?
철학자 바로 그걸세.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서 '나'는 사라져야 하네.
 그 사랑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철학자 그래. '사랑받기 위한 생활양식'이란 어떻게 하면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어떻게 하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어디까지나 자기중심적 생활양식이라네.
청년 ……겨우 이야기가 연결되는군요. 그러니까,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여러 문제행동을 하는 것도 그 자기중심성에 기초한다. 아이들의 문제행동은 '사랑받기 위한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 그런 말씀이시죠?
철학자 그뿐 아닐세. 아마 지금 자네가 선택한 생활양식도 어린 시절의 생존전략에 뿌리를 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가 기준이 되겠지.
청년 뭐라고요?!
철학자 자네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자립을 이루지 못했어. 자네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이'라고 하는 생활양식에 머물고 있지. 학생들의 자립을 지원하고 진정한 교육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네가 먼저 자립하지 않으면 안 되네.
청년 왜, 어떤 근거로 그렇게 단정하시는 겁니가? 저는 이렇게 교사가 되어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어요. 제 의사로 일을 선택하고 제 힘으로 벌어먹고 살면서 부모님께 손 한 번 벌린 적이 없다고요. 저는 이미 자립했습니다!
철학자 하지만 자네는 여전히 누구도 사랑하지 않지.
청년 ……헉!
철학자 자립이란 경제상의 문제도, 취업상의 문제도 아닐세. 인생에 대한 태도, 생활양식의 문제라네. ……자네도 누군가를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때가 바로 어린 시절의 생활양식과 결별하고 진정한 자립을 이룰 때라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어른이 되니까.
청년 사랑을 함으로써 어른이 된다고요……?!
철학자 그래. 사랑은 진정한 자립이네. 어른이 되는 거지. 그래서 사랑이 힘든 거라네.
인간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철학자 사랑과 용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네. 자네는 아직 사랑을 몰라. 사랑을 두려워하고, 사랑하기를 주저하고 있어. 그런 까닭에 어린 시절의 생활양식에 머물러 있지. 사랑에 뛰어들 용기가 모자라는 걸세.
청년 사랑을 두려워한다고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네. "우리는 의식적으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사실은 무의식중에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라고.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했지.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런 보증 없이 행동에 나서고, 이쪽이 사랑을 하면 사랑을 받는 상대의 마음에도 사랑이 싹트리라는 희망에 완전히 몸을 맡기는 것이다"라고. 예를 들면 상대의 호의를 무심코 눈치챈 순간, 그 사람이 신경 쓰이고 차츰 좋아지게 되네. 흔한 일 아닌가?
청년 네, 그렇죠. 대부분의 연애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철학자 이는 비록 이쪽의 착각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사랑받는다는 보증'이 확보된 상태라네.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해", "내 호의를 거절하지는 않을 거야"라는 보장 같은 걸 느끼네. 이 보장을 바탕으로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지. 한편 프롬이 말하는 '사랑한다는 것'에는 이러한 보장이 전혀 없네. 상대가 이쪽을 어떻게 생각하든 관계없이, 그냥 사랑하는 것이라네. 사랑에 몸을 던지는 거지.
청년 ……사랑에 보장을 바라서는 안 된다.
철학자 그래. 왜 인간이 사랑에 보장을 바라는지 알고 있나?
청년 상처받고 싶지 않다, 비참한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 그런 거겠죠.
철학자 아니, 그게 아니라 '상처받을 게 빤해', '틀림없이 비참한 기분을 느낄 거야'라고 절반은 확신하기 때문일세.
청년 뭐라고요?!
철학자 자네는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 존경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지. 그래서 사랑의 관계에서 '상처받을 게 빤해', '틀림없이 비참한 기분을 느낄 거야'라고 단정하는 거라네. 그런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면서.
청년 ……하지만, 하지만 그게 사실이지 않습니까!
철학자 나는 잘난 데가 없는 인간이다. 그래서 누구와도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보장 없는 사랑은 시작하고 싶지도 않다. ……이건 전형적인 열등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발상이네. 과제를 해결하지 않는 핑계로 자신의 열등감을 들고 있으니까.
청년 하, 하지만…….
철학자 과제를 분리하게. 사랑하는 것은 자네의 과제야. 상대가 그 사랑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는 타인의 과제라네. 자네가 제어할 수 없지. 자네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제를 분리하고, 자신이 먼저 사랑하는 것. 그것뿐일세.
운명의 상대란 없다
철학자 왜 많은 사람이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일까? 왜 결혼 상대에게 낭만적인 환상을 품는 거지? 그 이유에 대해 아들러는 "모든 후보자를 배제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네.
청년 후보자를 배제한다고요?
철학자 자네처럼 "만날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사람도, 실은 날마다 누군가와 만나고 있네.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서야, 요 1년 사이에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자네도 많은 사람을 마났을 텐데?
청년 같은 자리에 공교롭게도 함께 있었다, 하는 정도도 포함된다고 하면요.
철학자 하지만 그 의미 없는 '만남'을 특별한 '관계'로 발전시키려면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하네. 말을 걸든 편지를 보내든.
청년 네, 그렇고말고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상당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철학자 그런데 '관계'를 맺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운명의 사람'이라는 환상에 매달린다네. ……지금 자네가 그러는 것처럼. 눈앞에 사랑할 누군가가 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이 사람은 안 돼"라고 거부하고 "더 이상적이고 더 완벽하고 더 운명적인 상대가 있을 거야"라고 시선을 덜구지. 그 이상의 관계에 발을 들이려 하지 않고 모든 후보자를 나의 손으로 제외하는 거라네.
청년 ……아, 아니.
철학자 그렇게 지나치다 싶을, 있지도 않은 이상형을 들먹이면서 살아 있는 인간과 관계 맺는 걸 회피하네. 그것이 "만날 사람이 없다"라고 한탄하는 사람의 청체라고 생각하게.
청년 제가 '관계'에서 도망치고 있다는……?
철학자 그리고 가능성 속에 살고 있지. 행복은 저편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아직 행복이 오지 않았지만, 운명의 사람과 만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잘될 거야"라고.
사랑이란 '결단'이다
철학자 허무주의가 아니라 현실주의(realism)라네. 아들러 심리학은 모든 결정론을 부정하고 운명론을 거부하네. 우리에게 '운명의 사람'은 없거니와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려서도 안 되네. 기나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이 원칙을 양보할 생각은 없네. 하지만 배우자와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을 돌아봤을 때, 거기에서 '운명적인 무언가'를 느낄 수는 있겠지. 그런 경우에 운명이란 사전에 정해진 것이 아니네. 우연히 일어난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것이겠지.
청년 ……무슨 뜻입니까?
철학자 이미 눈치챘을 거야. ……운명이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청년 ……!!
철학자 우리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되네. 운명의 주인이어야 하지. 운명의 상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네.
청년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철학자 춤을 추는 걸세. 알 수도 없는 미래의 일일랑 생각하지 말고, 존재하지도 않는 운명일랑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눈앞에 있는 짝과 '지금'을 춤추는 거지. 아들러는 춤을 '두 사람이 함께 참가하는 놀이'라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널리 권장했네. 사랑과 결혼은 바로 둘리서 추는 춤과 같은 거라네. 어디로 갈지 생각하지 말고, 서로 손을 잡고 오늘이라는 날에 행복을 느끼며, 지금이라는 순간만을 직시하고, 빙글빙글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걸세. 두 사람이 오래 춤을 추며 그려낸 궤적을 사람들은 '운명'이라 부르겠지.
청년 사랑과 결혼은 두 사람이 추는 춤이다…….
철학자 자네는 지금 인생이라는 무도회장의 벽 앞에 서서, 그저 춤추는 사람들을 보고만 있네 "이런 나와 춤을 출 사람이 있을 리 없어"라고 단정 짓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운명의 상대'가 손을 내밀어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지. 더 이상 미참한 기분을 느끼지 않도록,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보호하면서.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겠지.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온 힘을 다해 춤을 추게. 운명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네.
생활양식을 다시 선택하라
청년 ……아니, 아니,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사랑, 사랑뿐인가요? 우리가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 사랑밖에는 방법이 없는 겁니까?
철학자 사랑밖에 없네. '편하고 싶다', '편해지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잠까의 쾌락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얻을 수 없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할 떄만 자기중심성에서 해방될 수 있지. 오직 타인을 사랑할 때만 자립할 수 있다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때만 공동체 감각에 도달하네.
청년 하지만 행복이란 공헌감이며, "공헌감이 있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라고 3년 전에 말씀하셨잖습니까! 그 말은 거짓이었나요?
철학자 거짓말은 아니네. 문제는 공헌감을 얻기 위한 방법. 혹은 삶의 방식이라네. 본래 인간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공헌할 수 있어. 눈에 보이는 '행위'가 아니라 그 '존재'를 통해서 이미 공헌하고 있지.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할 필요 없이.
청년 거짓말! 그런 거 한 번도 실감한 적 없어요!
철학자 그건 자네가 '나'를 주어로 살고 있기 때문일세. 사랑을 알고 '우리'를 주어로 살면 달라질 걸세. 산다는 것, 단지 그것만으로도 인류는 서로 공헌할 수있고, 인류 전체를 포괄한 '우리'를 실감할 수 있지.
청년 ……연인, 배우자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괄한 '우리'를 실감할 수 있다고요?
철학자 그것이 공동체 감각일세. ……자, 나는 이 이상 자네의 과제에 개입할 수 없다네. 하지만 만약 자네가 조언을 구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네.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청년 사랑하고 자립하고 인생을 선택하라!
철학자 ……보게나. 동쪽 하늘이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는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갈 친구들에게
청년 ……선생님은, 선생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철학자 또 바람결에 소문을 들은 젊은이가 찾아오겠지. 아무리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의 고민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기억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유한한 이상 모든 인간관계는 '이별'을 전제로 성립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허무주의에 입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우리는 헤어지지 위해서 만나는 거라네.
청년 ……네, 그렇죠.
철학자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겠지. 모든 만남과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오직 '최선의 이별'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그것뿐이네.
청년 최선의 이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요?!
철학자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왔을 때 "이 사람과 만나서 함께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라고 납득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걸세. 학새읃ㄹ과의 관계에서도,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예를 들어 지금 당장 부모와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학생들과의 관계 및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자네는 그것을 '최선의 이별'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청년 아, 아니요. 그건…….
철학자 그러면 앞으로는 그런 생각이 드는 관계를 맺는 수밖에 없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산다'는 건 그런 의미일세.
청년 늦지 않았을까요? 이제부터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철학자 늦지 않았네.
청년 하지만 아들러의 사상을 실천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생님도 말씀하셨잖습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절반이 필요하다"라고.
철학자 그래. 단 그건 아들러 연구자의 견해일세. 아들러 자신은 전혀 다르게 말했지.
청년 어떻게요?
철학자 "인간이 바뀌는데 기한이 있을까요?"라고 누군가 아들러에게 묻자, 아들러는 분명 기한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네. 그리고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지. "숨을 거두는 전날까지랍니다."
청년 ……하하! 재미있는 양반이네!
철학자 사랑을 시작하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최선의 이별;을 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게. 기한 따위는 신경 쓰지 말고.
청년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런 끊임없는 노력을?
철학자 물론이지. 우리는 3년 전에 만난 이후로 줄곧 그 노력을 해왔어. 그리고 지금 이렇게 '최선의 이별'을 맞이하고 있지. 우리가 보낸 시간에 한 점 후회라도 있나?
청년 아니,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철학자 이렇게 아무런 미련도 없이 후련한 마음으로 헤어지게 되어 나는 정말로 뿌듯하네. 자네는 내게 가장 좋은 친구야. 고마우이.
(1)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게, 『미움받을 용기 2』, 서울: 인플루엔션, 2016, 260-262쪽.
(2) 위의 글, 271-273쪽.
(3) 위의 글, 280-282쪽.
(4) 위의 글, 286-287쪽.
(5) 위의 글, 290-291쪽.
(6) 위의 글, 296-297쪽.
(7) 위의 글, 300-3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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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라는 용기
2016. 10. 10.
청년 하, 하지만 열등감과 공동체 감각이 왜 인정욕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이어지나요? 오히려 서로를 인정함으로써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을 텐데요.
철학자 그러면 여기서 다시 ‘문제행동의 5단계'를 떠올려보게.
청년 ……네. 수첩에 잘 적어놓았습니다.
철학자 학생들이 '칭찬을 요구'하고, '주목 끌기'나 '권력투쟁'에 나서는 목적이 뭘까? 기억하고 있나?
청년 인정받고 싶다, 반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고 싶다. 그거 아닙니까?
철학자 맞아. 그러면 특별한 지위를 얻는다는 것은 뭐지? 왜 그것을 요구할까? 자네 의견은 어떤가?
청년 존경받고 싶다든가 돋보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겠죠.
철학자 엄밀하게는 아닐세.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가진 가장 기본적 욕구를 '소속감'이라고 생각하네. 즉 고립되고 싶지 않다, '여기에 있어도 좋다'고 실감하기를 바라지. 고립은 사회적인 죽음을 뜻하고, 결국에는 생물학적 죽음과도 연결되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소속감을 가질 수 있을까?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지위를 얻는 걸세. '그 외 다수'가 되지 않는 거지.
청년 '그 외 다수'가 되지 않는 거라고요?
철학자 그렇다네. 둘도 없이 소중한 이 '나'는 '그 외 다수'로 있으면 안 되네. 언제, 어느 때라도 나만의 있을 곳이 확보되어 있어야 하지. '여기에 있어도 좋다'하는 소속감이 흔들려서는 안 되네.
청년 그렇다면 점점 제 주장이 맞는 거잖아요. 칭찬을 통해 그 절실한 인정욕구를 채워주면 되잖아요. “너는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야”, “너는 가치가 있어"라고 알려주면서. 그 외에는 길이 없어요!
철학자 아니. 그러면 안타깝게도 그 너머에 있는 진정한 '가치'를 실감하지 못하게 된다네.
청년 왜요?
철학자 인정받는 것에는 끝이 없네. 남에게 칭찬받고 인정 받는 것. 그로 인해 잠깐은 '가치'를 실감할 수 있겠지. 하지만 거기서 얻는 기쁨은 어차피 외부에서 주어진 것에 불과해. 마치 사람이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태엽장치 인형처럼.
청년 그, 그럴지도 모르지만…….
철학자 칭찬받는 것을 통해서만 행복을 실감하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더 칭찬받기'를 바라네. 그 사람은 '의존'의 위체에 놓인 채로 영원히 갈구하는 삶을,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삶을 살게 되겠지.
청년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요?
철학자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지 말고, 자신의 의사로 스스로를 인정해야 하네.
청년 스스로를 인정하라고요?
철학자 '나'의 가치를 남들이 정하는 것. 그것은 의존일세. 반면 '나'의 가치를 내가 결정하는 것. 이것은 '자립'이지. 행복한 삶이 어디에 있는지 답은 명확하겠지. 자네의 가치를 정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네.
청년 그런 �� 불가능해요!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없어서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거라고요!
철학자 아마도 그건 '평범해질 용기'가 부족해서겠지. 있는 그대로 있으면 되네. '특별'한 존재가 아니어도, 특별히 뛰어나지 않아도 자네가 있을 곳은 거기에 있어. 평범한 자신을, '그 외 다수'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청년 ……저는 조금도 뛰어난 데가 없는, 평범한 '그 외 다수'라는 겁니까?
철학자 아닌가?
청년 …… 후후, 태연한 얼굴로 그런 모욕적인 말씀을 하시다니. ……지금 저는 인생 최대의 모욕을 당했습니다.
철학자 모욕이 아닐세. 나도 평범한 인간이야. 그리고 '평범한 것'은 전혀 부끄러울 게 없는 하나의 개성이라네.
청년 웃기는 소리 마세요, 이 사디스트 같으니. "너는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인간이다"라는 말을 듣고 모욕을 느끼지 않을 현대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도 개성이다"라는 위로를 진정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요!
철학자 만약 내 말을 모욕이라고 느낀다면, 자네는 여전히 '특별한 나'로 있으려고 하는 걸세. 그러니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고, 그러니 칭찬받기 위해서 '주목 끌기'를 하면서 여전히 문제행동의 테두리 안에서 사는 거야.
청년 노, 놀리지 마세요!
철학자 알겠나. '남과 다른 것'에 가치를 두지 말고, '나는 나'라는 것에 가치를 두게나. 그것이 진정한 개성이라네. '나는 나'임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과 비교하고 그 '차이'에만 주목하려는 것은, 타인을 속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삶의 방식이나 다름없네.
청년 타인과의 '차이'를 강조하지 말고, 비록 평범할지언정 '나는 나'라는 것에 가치를 두어라……?
철학자 그래. 자네의 개성이란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것이니까.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미움받을 용기2』, 전경아 옮김, 서울: 인플루엔셜, 2016, 166-170쪽.
 언젠가 내가 자주 글로써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부끄럽다 생각될 때가 있었다. 나의 사소한 고민들부터 심각한 고찰을 동반하는 의문들까지 모두에게 까발리는게, 과연 내가 상대방의 입장이라면 고깝게 보일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스스로 내 자신을 '애늙은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보다 수없이 생각이 많고, 수없이 궁금증이 많고, 수없이 '제 나이'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살아왔다 생각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러다 정말 남들보다 2배는 빨리 늙어버려 요절하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남들은 이런 나를 '멋있다'고 말해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그게 나의 유별난 특성인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그 특질이 더더욱이 부끄러워져만 갔다. 벌거벗은 채로 사람들 앞에 선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는 건 그렇게 해야지만 내 내면의 물음표가 해결돼서, 그런 이유 때문이랄까.
 사실은 '누가 이 글 좀 봐줘요!’ 하는 마음도 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너는 어때?’ 여기서 대부분 후자는 생략된다. 보여줌의 목적이 더 크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피드백을 원하기보다는 지금의 내 감정을 누가 알아줬음 좋겠다. 이런 생각을 다들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들이 더 컸다.
 그러다 어느날, 평소 관심있어 했던 나와 동갑인 아티스트의 새 앨범이 나와 습관처럼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연이어 들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그저 듣기만 하면 가사에 집중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가사를 함께 틀어놓고 노래를 듣는데, 소재나 내용면에 있어서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나와 동갑인 스무살의 '다른’ 아티스트도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그 때, 머릿속을 관통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아, 나는 유별난게 아니구나. 이건 그냥 평범한 20살들이 다 하는 고민들이었구나’. 이는 더 나아가 '사람마다 표현의 방법이 다른 것뿐이다. 나는 글로, 쟤들은 음악으로, 다른 아이들은 수다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생의 과업을 지나고 있구나'라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이로써 나는 '개성'을 지닌 하나의 '평범'한 개인이 된 것이다. '나다움'을 지닌 '평범'한 개인. 그러므로 나는 나의 표현 방식에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게 '나'고, 나는 나다울 때 가장 평범하니까.
 나의 결론을 논리적으로 구사하지 못하여 생각을 전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는데, 때마침 나의 깨달음과 100% 일치하는 구절을 발견한 것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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