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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72번째 주제 "연말 계획"
"연말 계획"
*연말 계획
연말이 온다.
나의 울퉁불퉁했던 2024년이 지나간다. 온통 길을 헤매이던 날이었다.
끝에 다다랐을 때 많은 것이 부서지고 쏟아지며 사라졌다.
나의 한 해는 잔뜩 눈밭에 구른 토끼마냥 어지러워졌다.
방향을 모르고 나자빠지며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 겨우 도착한 올해의 끝.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끝을 마주한다.
마주한 모든 것들이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하염없이 기도할 뿐이다.
연말은 반짝이고 차갑고 그런 붕뜬 기분으로 보낼줄 알았는데 나의 이번 연말은 좀 더 얼음장이다.
나는 그래도 사랑받는 순간을 즐겨본다.
엄마의 사랑도 친구의 애정도 덧없을 줄 알았던 관심도 다 겨우 끌어안아본다.
얼음장같은 연말을 여러번 숨결로 호호 불어가며 헤쳐가야지.
나의 어수선하고 애틋한 날들이여.
-Ram
*연말 계획
금세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지나가지 말라고 붙잡고 붙잡던 여름이 지났다. 어렸을 때부터 가을이 되면 1년이 다 지나간 느낌이 들었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그렇다. 내가 가을이 왔다고 느끼는 지점과 연말 중간에 어설프게 낀 추석 때문인가. 추석 달이 지나면 1년이 두 달 정도, 추석이 빠르면 세 달 정도 남는 건데 그 남은 기간들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10일도 채 남지 않은 올해가 어느 정도 실감이 나자 내가 올해 많이 하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봤다. 독서. 독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종종 집 옆에 있는 도서관을 다녔지만 약속이 많은 달엔 아예 책을 열지 못했었지 않았는가. 올해 가기 전 책을 두어 권 정도 읽어 치울 생각이다. 두 권을 읽으려면 읽기 쉬운 책들로 골라야겠지? 아직 책장에 안 읽은 책들이 몇 권 있으니 오늘부터 시작이다. 요이 땅!
-Hee
*연말 계획
연차를 이렇게까지 남김없이 소진해 본 해가 있었던가. 짧지만 ��거웠던 여행을 가장 많이 했던 해였다. 그렇지만 연말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닫는 중이다. 새집으로 이사를 했으나 하자 보수 탓에 제대로 풀어놓지도 못한 짐 때문에 난민같이 살고 있고, 차는 고장 나 한 달이 넘도록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부부의 관계도 딱히 원만하질 못해서 연말에 무얼 해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 모든 일들의 이유가 경기 탓도 아니고 나라의 꼬락서니 탓도 아니고 모두 내 탓같이 느껴져서 더 서글프다.
마지막 남은 연차 두 개는 30, 31일에 사용했다. 주말부터 새해의 첫날까지 연이어 쉴 텐데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집을 정리하면서 소박하게나마 음식을 만들면서 새해를 기다리고 여유가 된다면 짜증과 다툼에 대한 저항성을 잃어버린, 너무나 예민해져버린 나 자신의 내면을 다시 되돌아볼 시간을 갖고 싶다.
-Ho
*연말 계획
드디어 종강을 했다. 중간고사때 너무 힘들게 공부를 했어서 기말고사때는 힘을 좀 빼자 생각하고 한게 도움이 많이 됐다.
공부는 진짜 고통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모르는 게 당연한데 모르는 걸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한 것 같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남편한테 말하면 남편은 늘 “You should give more credit yourself.” 라고 한다. 나는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내자신에게 칭찬을 더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에 하나만 하라고 너무 먼 미래까지 걱정하지 마라고 한다. 하나하나 하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시부모님은 이미 한달전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셨다. 작년엔 멜번에서 다같이 보냈는데 남편이 집이 그립지 않을까 싶어서 크리스마스인데 집 안 그리워? 하니까 “You’re my home.” 이란다.. 너무 남편 자랑 글이 되어버렸나 싶은데…
종강도 했고 올 한해 너무너무 수고한 내자신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옆에서 잘 서포트해준 남편과 가족들에게도 정말 감사하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다 갚고 살고 싶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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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71번째 주제 "희비교차"
"희비교차"
*희비교차
많은 순간에 기쁨도 슬픔도 열심히 오간다.
어디가 바닥인지 모르고 떨어지는 절망의 시간 동안 단 한줌의 기쁨도 드나들지 않더라도.
그래도 언젠가 그것이 또렷이 뒤집히면서 바뀐다.
나의 희(喜) 나의 비(悲) 모든 것들이 분명하게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그중에 지금은 슬픔으로 맞아내는 시기인가보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슬픔을 열심히 버텨내다보면
기어코 조금씩 좋은 시간이 오리라 그런 걸 기대하게 된다.
기어이 내가 이것을 가장 기쁜 것으로 되돌려 두리라.
지금보다 더 나쁠 것 없는 그 순간으로 파안대소하며 안심해보리라.
-Ram
*희비교차
1. 좋지 않은 일들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하던데. 야금야금 일어나는 것보단 낫지 뭐. 크게 한 방 맞고 나면 그제야 정신 차리기 마련이니까. 열감기 실컷 앓고 나서 땀 뻘뻘 흘린 뒤 개운하게 툭툭 털고 일어나 땀 흘린 이불과 베갯잇 빨고 난 뒤 한숨 돌리는 그런 마음이 있듯이. 하루에도 '이게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의심하고 의심하는 날이 잦았던 순간들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나의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자. 엉뚱한 데에 마음 쏟지 말고.
2. 매일 아침마다 테니스 클럽 부회장님이 글귀와 함께 코트장 예약 현황을 보내주신다. 처음엔 엄마가 보내주는 어디서 만든 것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요란한 글귀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그분이 보내주시는 건 나름 인사이트가 있는 글귀들이라 가끔 오후에도 그 글귀를 다시 찾아서 읽는다. 그중 '번뇌에 머물 이유는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요즘 내 마음에 가장 많이 남는다.
3.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있어도 주변에 있는 다수가 그 방향이 옳은 건지 모른다면 그 공동체에선 정답이 아닌 것이 되는 사실. 같은 상식 선에 있어야 옳은 것은 함께 옳다고 생각하는 것.
-Hee
*희비교차
1. 해마다 이맘때 승진자 명단이 발표된다. 게시판 공지가 올라오면 희비가 즉각적으로 교차된다. 축하 전화를 받느라 종일 핸드폰을 귀 옆에 붙인 채 복도를 서성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망감에 근로의욕을 상실해 급히 월차 쓰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친분이 있는 몇몇에게는 굳이 전화를 걸어 짧은 축하를 전했고 실의에 빠져있을 몇몇에게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했다. 희와 비는 양으로 따지면 비등비등한데 어째선지 사무실 분위기는 어제보다 훨씬 우울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지나고 보면 사실 별일도 아닌 걸 알면서도 당장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감정이입하며 나도 모르게 연민을 가졌을까. 아마도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 같은 이 분위기가 얼른 환기되면 좋겠다. 내 것도 아닌 남의 희비에 왜 이렇게까지 휘둘려야만 하는지. 손해가 막심한 기분이다.
2. 여의도 환호. 광화문 탄식. 절대 다수의 희와 소수의 비가 교차했다. 지지부진했던 일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엉뚱한 상황을 통해 이뤄져 조금 얼떨떨하다.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아 있지만 희든 비든 지금보다 더 크게 번져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희비 교차는 자업자득, 사필귀정 같은 뜻을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부담이 적다.
-Ho
*희비교차
어제는 역사적 희비교차의 날이었다. 누구는 무척 관심 있었고, 누구는 무관심 했던 날이다.
앞으로도 많은 희비가 교차하겠지만, 희가 우리에게 더 많았으면 좋겠다싶으면서도 성취는 언제나 어느정도의 고통을 동반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잘 견디고 이겨내고 유연하게 잘 넘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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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70번째 주제 "놀이"
"놀이"
*놀이
지독하게 길었던 놀이는 끝이 났다.
이 놀이에서 승자는 나일줄 알았는데, 막상 돌아보니 내가 완전히 진 패였다.
나는 너의 허상과 싸웠고, 너는 나의 껍데기와 놀며 시간을 그렇게 어긋나게 보낸 것이다.
바라보는 곳이 다른 승리는 아무데도 쓸 곳이 없다.
끝날 줄 몰랐던 놀이의 최후의 패는 완전히 도망친 너에게 있었던 것이다.
부딪혀보는 것보다 묵묵히 지켜보는 걸 택했던 너와 불같이 자지러지던 나의 지독한 놀이는 끝났다.
우리는 이제 한줌 재도, 무엇도 아닌 것이 되어 그대로 흩어져야만 한다.
날아갈 곳이 필요했던 너와 발 붙이고 설 곳이 필요했던 나의 어긋난 시간들을 고쳐잡을 시간 없이 말이다.
즐거웠을까, 화가 났을까, 원망일까,
여러 감정이 뒤섞여 판을 흔든다.
이 판은 이미 뒤집힌 후인데도 나는 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이만큼이나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기적인 사람, 비겁한 사람.
-Ram
*놀이
1. 가끔 놀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는 그런 상황들이 있다. 짜증 나고 힘든 순간에 '이건 놀이야. 이건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하는 그런 놀이야'라고 생각한다면 내 마음이 조금 덜 다친다.
2. 같이 무언가를 하다 보면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신나게 노는 것처럼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청소를 해도 그렇고, 운동을 해도 그렇고, 시장에서 장을 봐도 그렇고, 이사를 해도 그렇다. 앞으로의 인생도지금처럼 신나게 살아보자고.
3.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은 거센 비가 내리는 여름, 우리는 발가락으로 제로를 했다. 발가락 제로는 처음인데 생각보다 즐거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그때를 잊지 말자며 추억으로 남겨둔 발가락 20개 중 4개의 엄지발가락들을 치켜 올린 사진이 있는데 보면 볼수록 귀엽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놀이
놀이터에서 놀기만 해도 좋았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가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에 갔을 때, 너의 취미가 뭐야? 넌 뭘 하는 걸 제일 좋아하니?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을 못했다. 미국 사람들은 그걸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지루한 사람이라 매력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나 자신을 어느 정도 파악했고, 내가 뭘 좋아하고 편안해하는지 안다.
사람들은 편안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계절에 그곳에 가서 외치는 건 뭘까? 무슨 마음일까?
외신에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자신들이 프��트 수리기사를 불러 프린트가 수리되는 시간보다 빠르게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고 한다. 우스우면서 슬프다.
내년 봄에 서울에 놀러 간다면, 지금보다는 편안함에 이르길.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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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9번째 주제 "겨울 코트"
"겨울 코트"
*겨울 코트
꽁꽁 얼 것만 같은 겨울이 왔다.
엊그제인가 잔뜩 눈이 내렸다
겨울이 눈동자 속까지 시리게 몰려온 것이다.
이런 날은 아무리 꽁꽁 싸매도 숨결조차 차갑게 언다.
추워질수록 한 해가 끝을 향해 내달린다.
모든 것이 그렇게 잔뜩 얼면서 지저분하게 부서진다.
도로 가득 까만 패딩도 까만 코트도 여기저기 여미어 입은 사람들만 가득하다.
얄팍한 코트 주머니 사이에 보풀처럼 일어나는 그런 작고 쓰잘데기 없는 것처럼,
눈발에 하염없이 잠식당하는 잔디밭 어딘가의 잡초처럼,
익숙했던 것들이 줄곧 하릴없이 작아진다.
그렇게 사부작거리는 겨울이 왔다.
-Ram
*겨울 코트
1. 올겨울 아직 입지 않은 코트가 입은 코트보다 더 많다. 언제 다 입지. 한 코트를 입다 보면 계속 손이 가서 다른 코트에 손이 안 간다. 그래도 아끼면 다 똥이 된다는 말처럼 있는데 입지 않으면 그 가치가 사라지니 열심히 일부러 의식적으로 다 입어야겠다. 이러다 롱패딩 한 번 입으면 코트는 끝인데.. 겨울에 입을 코트들이 적당히 색 별로 있지만 요즘엔 밝은 파스텔톤 코트를 사고 싶어서 쇼핑몰에만 가면 괜히 눈길이 간다. 예쁜 색깔에 혹해서 지갑을 열까 싶다가도 아직 지난봄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후 비닐에 그대로 쌓여 행거에 걸려있는 코트들을 한 번 더 생각하며 다시 내려놓았다.
2. 지난 일 년 동안 입지 않는 옷은 모두 버려도 된다는 말이 있던데 아직 그 말을 실천하진 못했다. 버리면 아쉬운 옷들이 아직 많네. 미련을 버려볼까. 옷은 쉽지 않아.
-Hee
*겨울 코트
이사 준비를 하면서 주말 동안 안 입는 옷을 한가득 버렸다. 코트도 네 벌은 버렸고 한 벌은 남겼다. 그 한 벌도 실은 최근 1년 내에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물건 버리기의 대원칙에 따르자면 버리는 게 맞는데, 고민 끝에 옷걸이에 다시 걸어뒀다. 겨울에 입을 포멀한 외투가 그래도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서.
겨울에 코트를 안 입은 게 언제부터였나 생각해 봤더니 등산을 하면서부터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나 비싼 겨울용 등산복을 사고서부터, 그리고 또 고프코어니 뭐니 그게 유행처럼 번지면서부터 거추장스러운 코트를 멀리하게 됐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심 언짢게 생각했던 등산복 원툴 어르신 패션을 따르고 있었다. 조금의 차이라곤 컬러가 비교적 얌전하고 기능성이 조금 더 좋을 뿐.
어제 지하철에서, 저녁 먹으러 들어간 횟집에서 잔뜩 본, 등산용 패딩을 입고 계시던 어르신들 패션과 내 착장을 비교하다가 왠지 내가 정말 별로인 사람같이 느껴져서 자존감에 위기 경보가 울렸다. 그렇다고 당장 내일부터 코트를 입고 다니지는 않겠지만 일과 일상을 분리하듯 취미와 일상의 영역도 서로 구분이 필요하겠다는 경각심을 갖게 됐다. 멋부릴 일도 잘 없지만 너무 내려놓고 지내는 것도 할 일이 아닌 것 같다.
-Ho
*겨울 코트
12월이 코앞인데 생각보다 춥지 않다. 윗지방은 첫눈이 왔다던데, 단풍 위의 폭설이라니.. 날씨마저 갈길을 잃어 보인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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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8번째 주제 "코스트코"
"코스트코"
*코스트코
아주 예전에 가본 적이 있다. 친구 따라.
사실 요즘 시대의 여느 사람들처럼 1인가구로서는 회원제 창고형 할인매장에 갈 일이 없다.
나는 배달된 1인분을 두끼에 나눠 먹는 사람이니까.
잔뜩 사두고 먹는사람이 아니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이곳에도 저곳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자식을 낳아 기르는 사람도 아니거니와 열심히 밥 해먹는 사람도 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어떻게든 조금의 자극을 찾아내 곱씹고 그렇게 무던한 돌멩이 같은 사람
언제 복작거리며 지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코스트코는 앞으로도 몇년이나 갈 일이 없겠지.
-Ram
*코스트코
1.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특정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했었다. 근데 그 말을 기억하고 어느 날 코스트코 갔다 온 김에 그 초콜릿 제일 큰 한 봉지를 내 앞에 턱 내놓은 예쁜 마음을 기억한다. 지금은 그 초콜릿이 거�� 바닥을 보이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서 아껴먹고 있다.
2. 어제 우리 집에 처음으로 놀러 온 친구들이 있었다. 웰컴드링크로 복숭아 맛과 향이 나는 와인을 얼음에 칠링해서 줬고, 같이 먹을 안주로 코스트코에서 산 체리페퍼를 반 자른 후 참크래커 위에 올렸다. 처음 먹었을 땐 은근 크림치즈와 페퍼의 비율이 애매한 것 같으면서도 또 맛이 매력적인 것 같이 느껴져서 안 살 수가 없게 된 놈이다. 벌써 두 번째 산 친군데, 바닥에 3-4알 밖에 안 남았다. 다 먹으면 또 코스트코가서 사야 하는데, 내년에 코스트코가 집 근처에 생긴다고 하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지.
-Hee
*코스트코
삶의 형태가 코스트코에 닿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거리가 너무 멀고, 회원권에 돈 쓰는 게 아깝고, 집이 좁고 식구가 적다. 그럼에도 다녀오고 싶을 때가 있는데, 저렴한 미국식 피자가 먹고 싶어질 때, 사무실에 자리 잡은 고양이들 먹일 사료 살 때, 술 살 때, 가끔 커클랜드 제품 어떤 게 좋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상품권으로라도 한 번 사러 가볼까 싶다가도 그 절차를 떠올리며 동시에 마음을 접게 된다. 코스트코의 오묘한 미국 맛.(사실 미국엔 가본 적도 없지만 미국을 코스트코로 배운다.) 생각해 보면 그 오묘하다는 느낌과 코스트코에 가기 싫은 이유가 미국에는 굳이 가보고 싶지 않은 마음과도 이어져있는 것 같다.
-Ho
*코스트코
내가 사는 동네에 코스트코가 생겼다. 코스트코는 처음에 미국에서 가봤는데 피자 한 판을 사서 친구들이랑 해변에서 맥주랑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랑 코스트코에 가서 장을 볼 때 필요없는 것도 사고 싶어서 참느라 힘들다. 남편이 치즈를 좋아해서 치즈는 꼭 사온다.
코스트코 갈때마다 생각나는게, 한여름에 코스트코 주차장에서 일하던 청년이 열사병 때문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날씨를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요즘 일이란 뭘까 라는 생각을 가끔한다. 우리는 살아가기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내 시간과 노동력을 주고 돈을 번다. 돈을 버는 일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 있다.
돈이 많다면.. 이라는 가정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거라 생각한다. 요즘은 학교에서 청소하시는 여사님, 피크시간의 카페 종업원이나 마트에서 계산해 주시는 캐셔들을 볼때 노동이란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들의 피곤한 표정과 지친 모습때문일까? 이런 나의 생각은 오만함이 아닌가?
최소한 일 하다가 죽지 않고, 내 노동과 시간을 주고 정당하게 그 만큼 돈을 버는 세상이 됬으면 좋겠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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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7번째 주제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1.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감정이 슬픔의 척도라면 최소 아파트 몇 채는 무너지는 찰나였다. 그건 슬픔이라고 명명하기 어려운 그런 것이었다.
걱정과 각오와 슬픔을 뭉쳐서 꼿꼿하게 받아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2. 아파트에 살아본 적은 없다.
그래도 살아내보고 싶은 현대식 건물, 요즘의 욕심, 지척에 널려도 내것이 아닌 그런거,
뻗으면 쥐어낼 줄 알았는데 아득히 먼 줄 알고, 그런데도 다분히 가까이에 있는거.
3. 행복으로 층층이 쌓인 줄 알았던 그런게 와르르 무너진다.
정말 와르르.
단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대로 무너지고야 만다.
-Ram
*아파트
아침에 일어나서 맑은 공기 마시며 기지개 펴고, 여름이면 눈 비비고 요가 매트 들고 밖으로 나가 스트레칭도 하고, 겨울에도 담요 둘둘 걸치고 따뜻한 커피 들고 하늘 보면서 마시고, 동그란 보름달이 뜨는 밤엔 바깥에 나가 별구경, 달구경 하고, 눈이 오면 블루투스 스피커로 좋아하는 째즈나 캐롤 틀어두고 눈 구경하고, 이불 빨래는 쨍쨍한 햇볕 아래 뽀송하게 말리고. 아파트보다 내 기준 더 살기 좋은 환경을 찾고 있다. 난방비, 전기세가 얼마나 나올지는 아직 가늠이 안되지만, 벌레들이랑 얼마나 많이 마주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근차근 해보자고.
-Hee
*아파트
곧 입주할 아파트 사전 점검을 다녀온 뒤로 첫 집, 새 집에 대한 기대와 환상은 길바닥을 나뒹구는 낙엽처럼 떨어졌고, 짓밟혔고, 가루처럼 으스러져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변해버렸다. 하자 표시 스티커를 집안 곳곳에 수백 장 붙이면서 열이 끝도 없이 차올랐다.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끊임없이 짜증을 냈고 욕을 했다. 거지근성으로 똘똘 뭉친 조합원들, 날림으로 공사한 시공사, 배 째라는 시행사, 우리 집은 조금 더 신경 써달라고 말해 주겠다던(시공사 본사 근무한다는) 지영이친구, 어느 아파트든 하자는 다 있다고, 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거라고 남 일처럼 말하는 건설업 종사자 친형까지도.
장작을 열심히 넣은 만큼 활활 타오르는 열기에 결국 나 자신도 타버렸다. 이제 입주까지는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대출, 이사, 청소, 줄눈, 코팅 등 신경 써야 할 일은 한가득인데 거의 방치 상태다. 차라리 그냥 없었던 일이었으면 좋겠다.
-Ho
*아파트
브루노마스랑 로제가 아파트라는 노래를 내서 인기가 많다던데, 들어보지도 않았다. 점점 그런것들에 관심이 줄어든다.
날이 추워지고 수능이 끝났고 벌써 연말 분위기다. 가끔 그런생각을 한다.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사람들 나와 연결된 사람들의 집을 상상해본다. 누구나 다 집이 있고 돌아갈 곳이 있겠지. 그 사람들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떤 물건이 있고 어떤 냄새가 날까?
친구집에 놀러가는 일도 매우 드물어진 요즘이다. 나는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좋은데, 나중에 난 어떤 집에 살게될까?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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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6번째 주제 "빈칸"
"빈칸"
*빈칸
하루끝, 그림자가 드리우면 갖가지 생각이 든다.
아직 내 인생에 빈칸이 많다는 뜻이다.
남들은 잘 해내는 어떤 코스에서 나는 멈춰있다.
대학도 가고 연애도 하고 직장도 잡고 독립도 하였지만 그 다음은 모르겠다.
결혼도 하고 아이낳는 일, 그런 일들을 내가 아직 채우질 못했다.
문득 돌아보면 다들 부지런히 인생을 채우고 있다.
행복의 기준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들이 먼저 나아가고 있음은 분명하다.
나는 여기서 머무르며 바라볼 뿐이다.
어떻게 채워야 할 지 늘 하던대로 공부해서 될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미루고 있다.
이 공허한 공간들을 나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별안간 멋진 척, 어른인 척 나아가는 사람을 보면서 나만큼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해본다.
그렇게 여전히 철없는 소리를 해대는 나의 어느 순간들.
-Ram
*빈칸
인생에 있어서 빈칸을 의식적으로라도 만들어놔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더욱. 새로운 사람들을 사귈 수 있는 빈칸,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빈칸, 마음속 수많은 갈래로 뻗어나가는 생각들 중 유턴이 가능한 빈칸, 무언가를 다시 쌓아나갈 수 있는 빈칸,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는 빈칸,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빈칸, 좋은 취미와 난생처음 듣는 음악을 넣을 수 있는 빈칸 따위들 말이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빈칸
빈칸이라고 하니 채우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잇몸이 아프더니 치실을 해도 낫지를 않아서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은데 잇몸이 왜 아프지 생각하고 엄마한테 말하니까 사랑니 자리 갔다면서 치과에 가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치과에서는 사랑니를 빼야 한다 했다. 오래전부터 다니던 치과라 의사를 믿고 입을 벌렸다. 몇초 만에 내 일부였던 사랑니 두개가 빠져나갔다. 매우 속이 시원했고 얼른 잇몸이 낫길 바랬다.
빈칸이 있어도 괜찮고, 때로는 빈칸이 필요해. 다 채우려고 하지 말자.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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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5번째 주제 "척추"
"척추"
*척추
기어이 사달이 나는구나. 한달음에 달려간 날을 잊지 못한다.
낙엽이 산산이 부서지던 가을의 마지막 문턱 즈음이었다.
당신은 내내 허리가 아프다고 말했고 나이를 먹으면 더러 그런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탓일까,
별 것 아니라는 의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말걸.
잘 지내면 돌아오겠노라 말하던 그 말을 믿지 말고 의심할 걸.
마지막인 것처럼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울어줄 걸.
후회는 늘 이미 늦은 때에야 온다.
굽은 허리로 밥반찬을 내어주던 시간을 곱씹으면 자꾸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나서야 길에 온통 굽은 허리로 걷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당신을 본다.
척추라는 고상한 표현도 웃기다던 허리짝을 붙잡고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내닫던 당신의 걸음폭을 흉내내본다.
그렇게 나는 당신을 멋없게 추억한다.
무엇하나 고상하게 추억하지 못하고 애닲게 그리워하게 되었다. 나는.
-Ram
*척추
회사에 척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내 면접을 봤었던 면접관이었다. 그 면접에서 나는 불안과 긴장보단 위안을 얻었고, 여러 조건들이 잘 맞아 입사를 했다. 입사 초반에 여러 업무를 배우기 위해 그분과 가까운 자리에 앉았었는데 인상 깊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 처리는 당연히 완벽했고, 상황에 따라 팀원들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해야 할 때에도 감정 하나 섞이지 않고 원인과 결과,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들을 깔끔하게 설명하다 보니 모든 팀원들이 다 그 분을 따르고 좋아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나는 다른 부서로 옮겨갔기 때문에 그 분과 업무적으로 거의 겹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리더의 모습은 딱 저런 느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서, 멀리서 지켜봤다. 낯선 지역, 낯선 환경, 어쩌면 낯선 업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즈음, 내가 참석하지 않았던 어떤 회의에선 그분이 나를 칭찬했다는 소리를 건너 건너 듣고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상승했고, 아주 가끔 함께 마주칠 때가 있으면 나보고 '연희씨는 늘 멋있어요'라며 뜻밖의 이야기를 건네 내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했다. 나 역시 '과장님도 늘 멋있어요! 정말이에요!'라며 마음을 전했다. (뒤에 붙인 '정말이에요'는 예의상 그런 대답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런저런 인터렉션 덕분에 내면의 자존감도 더 공고해졌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조금씩 업무 스킬이 향상되고 있을 무렵, 그분의 퇴사 소식이 들렸다. 그분에게 의지하고 다니던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그 분의 마지막 날 회식 땐 대표도 눈물을 보였다. 창업 초기 멤버여서 더욱 애틋했겠지. 회식 자리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모두들 아쉬워서 쉽사리 집에 안 가고 서성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과장이 내게 와서 손을 잡으며 '잘 지내요'라고 하자 나 역시 '과장님도 잘 지내세요'라고 하며 눈물이 터졌다. 의아했다. 내가 왜 눈물을 흘리지. 딱히 저 분과는 많은 역사가 없었는데. 그렇다고 내가 이 회사를 오래 다닌 것도 아닌데. 집에 돌아와 뭔가 요상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계속 눈물의 원인에 대해 스스로 캐물었다. 입사 초, 나는 원인을 알듯 말 듯한 자존감과 자신감 하락의 상황에서 마음이 힘들어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그 과장과 함께한 몇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내가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정말 큰 힘을 얻었기에 그 사람이 내게 크게 와닿았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인생에서 그렇게 짧은 시간 내 힘이 되어 준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내 삶 속에서 임팩트가 컸던 사람이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무쪼록 그분이 앞으로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Hee
이번 주는 휴재입니다.
-Ho
*척추
척추뼈는 중간에 큰 구멍이 있고 그 구멍으로 척추신경이 지나간다. 그래서 척추뼈를 다치면 신경이 손상될 수 있다. 우리 몸에 대해 배우다보면 우리몸이 컴퓨터 못지 않게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알게 모르게 우리몸은 우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 노력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살자.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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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4번째 주제 "시험"
"시험"
*시험
그런 날이 있다.
왠지 모르게 계속 하늘이 나를 시험하는 것만 같은 그런날.
나는 왠지 나의 오늘이 그랬다.
조금 빨리 눈을 뜨고 이른 햇살을 받을 때 기분이 묘했다.
속이 좀 더부룩한 느낌이 들어서 괜스레 따뜻한 물도 끓였다.
안하던 습관에 온 신경이 놀란 것처럼 괜히 찌뿌둥한 느낌이 들었다.
해가 뜨는 시간을 만끽하면서 어제 개켜둔 옷을 입고 잔뜩 어지른 자리를 정리했다.
이따금 울컥거리며 목 언저리에 어떤 것들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토악질인지 울분인지 모를 그런거.
온데간데 없이 삭막한 공기 그래서 나는 또 시험에 든다.
네가 없는 어떤 날을 어떻게 이겨낼지 이렇게도 이른 시각부터 나를 시험한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Ram
*시험
1. 불가피한 학교 시험, 자의에 의한 시험 모두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시험 보기 직전, 시험 준비가 어느 정도 다 되었다고 생각해서 자신감 70%, 혹시 모를 (내가 공부하지 않은 범위가 나온다든지, 공부를 한 부분이지만 너무 심화로 변형되어 나온다든지 등등) 일에 대한 불안함 15%, 떨림과 긴장감 15%가 내 몸의 전체를 짜릿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오는 짜릿함을 느끼는 내가 변태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2. 아무 걱정 없이 학교 시험을 대비한 공부만 했던 때가 좋았던 때였을 지도 모른다.
3. 대학교 시험 기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종종 과거에 도서관도 못 가게 한 사람이 생각난다. 나를 꽁꽁 숨기고 싶어 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었던 것인지, 도무지 지금도 그 심정은 알 수 없고, 이해도 안 된다. 근데 그때 바로 이상한 낌새를 애써 외면하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제일 이상했다.
-Hee
*시험
가장 최근에 치른 시험이라 할 만한 일이 뭐였었나 생각해 보다 기억이 몇 년 전에 취득했던 전공 자격증 시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20대에 해두자고 점찍어둔 일들 중 몇 가지는 여전히 숙제처럼 해치우질 못 하고 남아있는데, 그 시험 이후 몇 년 간은 정말이지 나태하게 살아버렸구나 하는 실망감을 느낄 뻔했다. 실의에 빠지지 않고 태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 숙제들이란 것들이 이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인데다가, 지금은 다른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을 늘리는 일. 가족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삶의 기반을 밀도 있게 다져놓는 일에 더 집중하며 시간을 쏟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을 쪼개고 집중하면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긴 한데, 요즘은 현상 유지(집, 금전, 가족문제 등) 그 자체가 시험이랑 다를 바 없어서 무언가에 아등바등 매달릴 여력이 없다고 느껴진다. 이렇게 또 스스로의 한계를 낮춰버리면서도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마주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그저 외면하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우선순위대로 몇 가지씩은 늘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Ho
*시험
나는 대학을 다시 들어간 만학도이다. 이번 주에 중간고사가 끝났는데 진짜 너무 너무 힘들었다.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고 공부에 치여서 마음이 복잡하니까 계속 조급함 때문에 서두르게 되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면서 보는 사람이 숨이 막힌다면서 졸업만 하고 면허만 딸정도만 하라는데 그게 잘 안됐다. 학교가 친정이랑 더 가까워서 친정에서 지내며 남편이랑은 3주동안 주말만 만났다. 하필이면 이 시기에 남편도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해서 나는 이중으로 너무 힘들었다. 남편이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건 바로 내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씩 학교 심리센터에서 하는 심리상담으로 버텼다.
한날은 지친 체력과 복잡한 마음속에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겁게 다가와서 스카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근데 이 울음도 빨리 끝내야 했다.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눈물샘과 내 마음 끄트러미 어디쯤에 눈물을 달고 공부했다. 그렇게 한 공부 치고 시험에서 다 맞지 못했지만, 이번 중간고사를 계기로 오히려 공부에 대한 내 생각과 태도를 정리할 수 있었다.
결국은 이 모든 건 내가 그리고 우리가 더 나아지기 위함이고, 인생에 있어서 이런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한다. 남은 내 여정을 잘 마치고 남편이랑 더 안정적인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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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3번째 주제 “사교성”
“사교성”
*사교성
어릴땐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누가 말걸라 치면
대답하기 싫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선생님이 지목해내고야 마는
발표시간에는 눈물이 코끝까지 오르곤 했다.
그렇다보니 이렇다할 친구도 별로 없었다.
나는 어릴때 친구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랄 것은
그때엔 내가 그렇게 조용한 친구로
남아도 왕따라던가
집요한 괴롭힘이 없었다.
사교성이 뭔지도 모르는 채
교복을 입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영부영 졸업하니
대학에서는 조금 ��랐다.
자꾸 나이도,전공도 다른 사람들과
끝없이 뒤섞여야 했다.
그때가 아마 나의 첫 사회생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모임도 나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래도 나는 그걸 이어갈 방법을 몰랐다.
애정이 없었거든, 그런 얕은 관계에.
그렇게 모래성같은 사이를
오랜시간 하나둘 포기하고 나니
결국 사교성이 짙은 친구들이
나를 오래 봐줌으로서
지금의 나로 산다.
억지로는 안될 것들이었다.
그런 것 좀 없으면 어떤가
그래도 지금 잘 지내는 걸.
-Ram
*사교성
1.
말레이시아에 있었을 때 한국인을 만나면 무지 반가웠다. 그래서 더 진심으로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잘해주고 싶었고,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게 아니었나 봐. 더 이상 ‘아는 사람’에서 ‘친한 사람’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매번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먼저 대화를 걸고, 내가 먼저 웃었던 것 같다.
2.
먼저 말을 거는 편이 훨씬 많았다. 낯을 가리지 않으며, 어색한 공기도 싫어하는 편이니 꽤나 누군가들에게 말을 시켰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었다. 같은 공기 흐름 속에서 함께 웃고 있으면 순진하게도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겐 “밥 한 번 먹자”가 진심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모양새에 실망이 컸다. 사실 기대를 안 했으면 그만일텐데. 근데 그냥 그 시간(만)을 때우기 위해 사람을 사귀는 (척 하는)건 더 별로다.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진심을 다할래.
-Hee
*사교성
1.
새로 등록한 저녁 수영 강습에서 나는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 영법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마다 호흡의 타이밍, 팔꿈치와 머리의 각도, 리듬의 변화 따위를 나보다 수영을 잘 하는 분들과 강사님께 쉴 새 없이 물어본다. 수영을 얼마나 해왔는지, 연세는 얼마인지도 물어보며 너스레를 놓았다. 전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궁금한 게 생겨도 쭈뼛거리다 말고 수영 강사가 가끔 한 번 보고는 잘못된 부분을 짚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렸던 스무 살 초반의 나로서는 요즘 나를 스스로의 미래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렇다고 내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냐 하면 여전히 그렇지는 않은데, 뭐랄까 살아가는 스킬이, 넉살이 늘었다고 하면 맞을까. 어쩌면 수영장에 가기 싫을 때마다 십수 년째 새벽 수영 다니는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같은 반 어른들이 편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다 적막이 찾아오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여전히 만만한 MBTI 이야기를 꺼내든다. 얼마 전 샤모니에서부터 트레킹 내내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부부가 그랬고, 지난 주말 안동에서 오랜만에 만난 산친구와 그의 다른 산친구들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내가 스스로를 지독한 I 성향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놀라워하며 내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성 넘치는 모습은 내가 늘 선망하던 모습이라 그 말들이 괜히 칭찬처럼 들렸다. 심지어는 이상하리만치 반짝거리며 선명하게 마음 위로 떠올랐다. 이참에 더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이라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Ho
*사교성
사교성이 좋은 편이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이랑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엔 여행이 제격인데..
요즘엔 현생의 농도가 너무 진해서
내가 갔던 여행들이 다 전생같다.
지금의 인내가 나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 만은 진실이니 그것만 보고 가야겠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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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62번째 주제 "백날 해봐라"
"백날 해봐라"
*백날 해봐라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되겠어.
삽질하면서 허송세월하면서 네가 뭘 이룰 수 있겠어.
시간 버리지 말고 귀중하게 뜻깊게 써라.
어영부영 하면 되려다가도 미끄러진다.
이런 말 들은 끝없이 쏟아진다.
내가 그들의 기준에 명확히 들어가지 못해서 그렇다.
좋은 대학 나와서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기를 기르는 보통의 길을 가지 못해서 그렇다.
그렇게 고집부려 백날 해봐라 입에 풀칠이나 하겠냐는 말에 뭐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러게요.
그럼에도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걸 당신도 백날 잔소리 해봐야 본인 입만 아픈 것을.
네 고집도 내 고집도 쉬이 꺾이지 않으니 어쩌겠어.
그냥 이렇게 살아내고 버텨내는 것이지 늘 반짝이는 청춘이 어디있겠어, 조용한 중년의 시간을 기다릴 뿐이지.
뭐, 어쩌겠어.
-Ram
*백날 해봐라
1. 어떻게 보면 마음이 다치지 않으려고 늘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한 것 같은데, 오늘 읽은 책에서 인생엔 비관이 꼭 필요하다는 글을 읽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오히려 매사 밝은 면만 보면 실망감이 크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등 살짝 뼈가 있는 문장들이 계속 서술됐다. 새로운 시각이라 관련된 글을 더 읽고 싶어서 구글링을 해봤는데 같은 맥락을 가진 글 중 '면역력'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면역력을 조금 더 키울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선 앞뒤 맥락 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으니. 내 마음대로만 돌아가진 않으니. 나의 상식 밖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2. "너무 흠만 잡지 마. 너도 이제 좋은 점도 이야기해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봐. 조금만 더 좋게 생각하고, 안 좋은 점만 보려고 하지 말고." (오늘 오후의 대화 중)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온 것은 알겠지만, 앞으로 더 살 날이 남아있으니 달라져 볼 수도 있잖아'
-Hee
*백날 해봐라
며칠 전부터 발목이 시큰거리는 게 오늘이 대회랍시고 무리했다가는 요절이 날 것이라 말하는 듯해서 천천히 걸었는데, 중간 cp에서 생각보다 입상권에서 멀지 않다는 말을 듣고서는 마음이 다급해져서 뛰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를 숨이 넘어갈 듯 오르고 달렸다. 체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발을 디딜 때마다 느껴지던 통증이 점점 옅어지기 시작했고 마침 남은길은 내리막과 평지가 대부분이라 신나게 달렸다. 그렇게 몇 사람을 제치고 피니쉬 라인에 도착하긴 했는데,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던 사람들이 환호해 주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왔다. 그게 왠지 ‘네가 백날 해봐라, 입상이 가당키나 하겠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방에서 하는 영세한 대회였고, 날씨가 대단히 좋은 시기라 같은 날 열리는 더 큰 대회, 행사에 사람들이 몰리는 바람에 이번 대회에 참가한 사람도 적었지만 순위에는 아쉽게도 못 들었다. ‘비싼 돈 내고 대회까지 왔으면 진통제를 먹고서라도 뛰었어야지. 부상에 연연하는 것도, 컨디션 관리를 못 하는 것도 결국 다 실력일 테지.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대체 뭘 하겠니.’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자책이 이어졌다. 미리부터 포기하지만 않았더라면 3위와의 몇 분 차이 정도는 충분히 줄일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운 마음때문에. 아~ 그냥 시간 차이 많이 나지… 그럼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이 질척질척한 여운이 적어도 며칠은 갈 것 같다.
-Ho
*백날 해봐라
주로 이런말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비꼬는 말인 것 같다.
일단, 백날을 무엇을 해서 못이룰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백날동안 꾸준히 뭔가를 한다면 그것만으로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를 보고 판단하고 그게쉽지만 여러번을 백날이 있다면 충분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히 상상도 못하는 작가의 백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오는 놀랍고 멋진 일이 생긴거 아닐까?
누가 뭐래도 내가 하고 싶은걸 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 것이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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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예순 번째 주제 "오늘 하루 감사한 일 3가지"
"오늘 하루 감사한 일 3가지"
*오늘 하루 감사한 일 3가지
곱씹어보아야 한다.
우선 나와 내 가족들의 건강을 우려할 일이 없다는 사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크게, 특별하게 신경쓰지 않고 건강에 유념하는 수준에서의 삶이 얼마나 윤택한지 모른다.
조건 없는 건강함은 어느 것보다 기쁜 일이다.
내가 온전히 나로 살고 있다는 것,
스스로 직장에서 돈을 벌고 나 자체로 인정 받으면서 사회의 일원 혹은 도구로써 내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
안정감이 주는 기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른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감정과 생각이 지속되는 것.
나의 생각과 의견을 돌아볼 줄 알게 되고 또 그걸 기반으로 설득할 줄 알게 되고 또 그런 경험으로 나라는 존재를 깎았다가, 키우다가 그렇게 다듬어가는 건강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
그런 것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의 온전함에 사실은 귀기울여 왔어야 했다.
구름도, 공기도, 다 온전히 흘러감에 오롯이 감사할 뿐이다.
그걸 곱씹어야 한다. 우리는.
-Ram
*오늘 하루 감사한 일 3가지
나이에 상관없이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빠르진 않지만 꾸준히) 달리기를 해도, (급하게 제동을 걸거나 방향을 트는 일은 없지만) 테니스를 쳐도, (한국은 주로 등산로가 잘 되어 있어서 비교적 편안한 길이 많은) 등산을 해도 아직 멀쩡한 무릎에 감사함.
집 바로 건너편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도서관 문 여는 시간을 확인한 뒤 바로 에코백 하나 어깨에 메고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다. 지금 살고있는 이 집을 선택할 때 바로 옆 도서관만 보고 바로 선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비슷한 식성과 취미를 즐길 수 있고, 나의 어떠한 생각들을 늘어놓아도 공감할 수 있고, 가끔 맥락 없이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척하면 척 반응이 오는 사람이 오늘도 옆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오늘 하루 감사한 일 3가지
비행기 타고 무사히 집에온 것
좋아하는 다큐를 볼 수 있는 랩탑이 있다는 것과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
내 손과 내 두발 로 어디든 갈수 있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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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59번째 주제 "의심"
"의심"
*의심
꿈을 꾸었다.
나의 과거와 나의 현재가 함께 내게 지금이 무엇인지 되묻는 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무엇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과거를 온전히 놓았다고도 못하였고 현재에 충실한 것이라고도 못했다.
과거는 날 붙잡고 캐물었다. 어째서 너는 끝맺지 못하였느냐고,
나는 답하지 못했다.
현재도 날 붙잡고 반문했다. 그럼 너에게 중요한것은 어느쪽이냐고,
나는 고르지 못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의뭉스러운 생각이 일었다.
나는 어디에 누군가에게 속해있나, 나는 누구를 종속하고 있나, 나라는 존재는 나로써 충분한가.
의문 뿐인 꿈이었다.
-Ram
*의심
1. 지난여름 한창 잎사귀가 가득하고 몇 개의 꽃대가 창문 앞에서 하늘하늘 흔들렸었는데 겨울이 되자 꽃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많던 잎사귀들도 모두 갈색으로 변해 시들어버렸다. 이제 이 스파티필름이 죽어버린 걸까, 이 화분의 생명이 정말 끝난 걸까, 발만 동동 구르고 어찌할 줄 모르던 찰나에 갑자기 집에 놀러 온 엄마가 멋지게 다크호스처럼 가위를 들고 와 시든 잎의 줄기들을 몽땅 잘라내버렸다. 푸르던 스파티필름은 어느새 줄기의 아랫부분만 삐죽삐죽 남아 볼품이 없어져 버렸다. 엄마는 그런 날 보며 괜찮다며 그냥 일주일에 한 번씩 원래대로 물을 주면 금세 큰다고 하고 쿨하게 돌아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따뜻해지니 어느 날 갑자기 그 삐쭉이 같던 스파티필름이 초록색 줄기들을 마구 뿜어냈다. 정말 말 그대로 줄기들을 뿜어냈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줄기들의 키가 커지고, 끝에 돌돌 말이(그냥 내 표현이다)의 형태를 띠더니 그게 펴지면서 잎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거실로 뛰어나와 오늘은 얼마나 자랐나 보는 게 즐거웠던 순간들이 반복되자 작년 여름처럼 어느새 다시 잎이 무성해지고 기특하게 꽃대까지 생겨 꽃 한 송이를 만들어냈다. 역시 엄마의 행동은 의심할 것 하나 없다.
2. 삶에서 무엇이 행복이고 만족감인지 명확하게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결국 먹구름 속에만 갇히게 될 것만 같다. 언제 해가 뜰까 고민만 하고 걱정만 하는 나날들만 가득하다면 현재에 살고 있는 '나'의 행복은 모두 어디로 숨어버리거나 잃어버려 결국 영영 찾지 못하는 행복들도 ���을 것 같다.
-Hee
*의심
1. 샤모니라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자일, 피켈, 크램폰 따위를 가방에 매단 채 각자의 산을 오르고 있었다. 걸어 올라가기도 힘들었던 고개를 자전거를 탄 채 올라온 사람들도 많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뛰어서 나를 지나쳐간 사람들은 그보다 더 많았다. 나처럼 비박을 하며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만났다. 그런 광경은 과연 내가 성지에 오긴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감동은 걸으면서부터 금세 무너지기 시작했다.
걷는 동안 아주 많은 일을 겪었다. 오랜 시간 이 취미를 즐기면서도 몇 번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을 단시간에 모두 경험했다. 텐트 심실링이 다 떨어진 걸 모른 채 챙겨왔다가 쏟아지는 폭우에 침낭을 포함한 짐들이 죄다 젖어버렸고, 며칠을 연이어 쏟아지는 폭우에 시야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길을 속옷까지 다 젖은 채로 종일 걷다가 저체온증에 걸렸고, 영하로 떨어지는 예상치 못한 기온 탓에 추위에 벌벌 떨며 잠을 설쳤고, 이런 상황들에 마음에 여유가 사라진 동반자의 저열한 인성에 질려버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고, 이 길에 어떠한 의미도 없을 거라 단정 짓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대단치 않았던 힘겨움인데도 걷는 내내 나약하고 초라하게 느껴지는 스스로를 자꾸만 돌아보게 됐었다. 삶이 산에 아주 바짝 닿아있는 듯 거창했던 말과 달리 산을 마음 아주 깊숙한 곳에 두지는 않았던 걸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마음이 목을 옥죄었다.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이곳에 왔던 걸까. 이 길을 끝까지 다 걸을 수는 있을까. 의심과 의심이 걷는내내 지독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비구름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비온 뒤 땅 굳는다고, 중간중간 맑게 갠 날씨와 함께 드러나는 굉장한 산군의 아름다움을 간헐적으로 맞이하며 지루할 틈 없이 감격했고, 걸으며 내내 마주치는 사람들과 감격을 나누면서 내 믿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하지는 않았다는 확신을 얻었다. 지영과 힘을 합치고 배려해가며 환경을 극복해 내는 방법을 깨달았고, 끝끝내 나만의 길을 꾸준히 걷기만하면 된다는 진리도 다시금 되새겼다.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거나 얻기 위해 떠나온 길은 아니었으나 필요한 모든 것을 얻은 기분이다. 종교인이 성지를 순례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도 같다.
2. 사실 그곳 역시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냥 사람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터전일 뿐이었다. 지독하리만치 상업적인 요소들이 군데군데 깊이 자리 잡아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고, 광활한 자연은 변화무쌍한 날씨 속에서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지만 그마저도 며칠이 지나고 몸과 마음이 지쳐버린 뒤부터는 그리 대단치도 않게 느껴졌다. ���지만 그 역시도 결국은 체력과 장비를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던 내 실력과 오만한 마음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것을 다 지나서야 알게 됐다. 어쩌면 다시 한번 그곳에 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 같아 다행인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Ho
*의심
의심을 언제 하나 생각해보니 주로 어떤 정보를 볼때 이게 사실인가?를 생각 하게 된다. 이해관계가 섞이게 되면 진실하기 힘드니까.
또, 내 미래를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 노력하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 줄까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열심히 했는데 내가 계획한 대로 안되거나 변수가 생기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들이다. 그래도 분명한건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고 경험상 무엇이라도 시도하고 열심히 하다보면 길이 생긴다는 것이다.
요즘 자주 생각나는 말이 위로가 된다. 우리는 과거의 숨을 지금 다시 쉴수없고, 미래의 숨을 당겨 쉴수 없다. 지금 순간 순간의 이 숨만이 들어왔다가 나간다. 현재에 집중하고 정신을 여기에 두자.
의심은 날숨에, 행운은 들숨에.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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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58번째 주제 "불필요한 것들"
"불필요한 것들"
*불필요한 것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모아두고 쟁여두는 사람이 되었다.
불안했거든.
필요해지는 순간이 올까봐 나는 늘 불안했다.
화장품이며 생필품, 수건 양말 같은 것들도 동나기 전에 애써 채워두어야 마음이 편안했다.
눈을 돌려 이제 필요해질 것 같은 것들도 쟁여둔다.
냄비도 신발도 다 그렇게 새것이 쌓인다.
사실 불필요한 것은 내 불안함이다.
내 불안 속에 날 가두지만 않으면 어떤 것도 불필요하지 않아진다.
그럼에도 결핍뿐인 내가 어떤 허전함을 채우는 방법이 딱 그정도인 것이다
-Ram
*불필요한 것들
다음날 남는 것도 없고 별 시답지 않은 것들을 하며 새벽을 지새우는 것 -그 시간에 잠을 자고 더 퀄리티 있는 다음날(아침)을 즐기자고 생각하는 요즘.
선택을 미루게 하는 많은 망설임 -할까 말까 망설일 땐 그냥 해버리자는 마인드로 살고 있다. 표현도, 행동도, 생각의 꼬리를 잡는 것도, 누군가에 대한 안부도, 마음속 깊이 담겨있던 말들도.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남의 걱정 -누군가의 하소연을 듣고, 같이 공감해 주다 보면 갑자기 깊게 감정 이입이 되어 헤어지더라도 나 혼자 있을 때 '그녀의 상태가 괜찮을까.', '그의 하루가 괜찮을까' 등의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기에 오로지 해답은 그녀 또는 그의 마음에 달렸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면 걱정들을 놓아주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느끼는 요즘. 게다가 당사자는 두 발 뻗고 잘 잔다. 행복하겠지. 행복해라.
이유 없는 예민함과 사나움 -사실 이유가 없다기보단 당사자만 아는 이유로 인해 사나워져도 타인에게 짜증과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러면 안 되지. 나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는 요즘. 굳이 따지자면 다정한 사람이 더 좋잖아?
신념도 아닌, 소신도 아닌 아집 -자신의 아집으로 인해 결국 손해 보는 결정을 하는 경우를 봤다. 아집은 나 '아'와 잡을 '집'이라는 무시무시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 정말 스스로의 아집을 내세우다 본인의 발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 아닌, 해로운 방향으로 가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인해 물음표가 난무했던 요즘.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불필요한 것들
1.나의 뱃살 내 배는 한번은 납작해질 수 있을까?
2.서로를 탓하는 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를 탓하는 말들
3.있는대 또 사는거 에코백이 있는데 또 사고 텀블러가 있는데 또 사는 것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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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57번째 주제 "노란 사과"
"노란 사과"
*노란 사과
시나노골드라는 품종 사과는 노란색이다.
어떻게 알았냐면 지금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의 복지 중 하나가 바로 저 사과가 수확될 때 한 박스씩 보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과박스를 본가로 보내고 사진으로 인증샷을 받았는데 샛노란 사과들이 줄지어져 있어 익지도 않은 사과를 보내곤 생색인가 하였더랬다.
새콤한 걸 좋아하는 엄마 입맛에 딱 맞아서였는지, 두 박스나 받은 후에 올해는 먼저 물어온다.
노란 사과 언제 오니?
하하, 고향집 언제 오느냔 말보다 사과가 먼저일 줄 몰랐지.
그만큼 애틋함이 줄었나, 이제 나간 자식 어련히 잘 살겠거니 싶은가, 한편으로 괘씸한 마음이 드는 것은
고작 노란 사과에 밀린 감정이 얄궂어서 라기보단 엄마가 이제 원하는 것들을 솔직하게 얘기하는게 좋아서 그렇다.
웃겨 정말.
그나저나 노란 사과 언제 줄까? 하하.
-Ram
*노란 사과
겉모습만 봐선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언뜻 보면 배인 줄 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과 향과 맛이 나고, 약간 연둣빛을 띄는 멜론을 생각하고 반으로 가르자 안이 오렌지색으로 가득 차 있어 당황스러운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봤을 땐 너무 동안이어서 당연히 어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생각보다 나이가 많고, 흥미로운 경험과 아픈 과거들이 그 사람을 꽁꽁 둘러싸고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겉모습이 풍겨오는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사람의 성격도 유추하게 되는데 겉과는 달리 의외의 마음 씀씀이와 생각지도 못한 언행으로 또 한 번 날 혼란에 빠지게 했다. 당연하다다는 생각이 때때로 날 오만에 빠뜨린다. 다시 한번 되새기자. 당연한 건 없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노란 사과
노란 사과도 있어 찾아보니, 기후변화의 대체재로 나온다는 것 같다. 이번 여름은 정말 유난히도 더웠는데, 이 더위가 제일 시원한 여름이라 한다. 앞으로 점점 더 더워질 거란 소리다. 기후학자들은 자녀를 낳는 걸 망설인다 한다. 기후 위기가 전혀 좋아질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어떻게든 견디지만 나중에 더위도 소득의 격차에 따라 누구는 몸으로 맞닥뜨려야 하고 누구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어쩌지? 아이를 한 명은 낳고 싶은데, 내가 여러 방면에서 그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되면 안 낳는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은 아침으로 사과를 꼭 먹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지낼 때 뉴질랜드 사과가 8알 정도에 7천원 정도 했었다. 한국에 오니 도저히 사 먹을 수 없는 가격이라 사과를 포기했었고 최근에서야 그것도 엄마가 사줘서 사과를 맛봤다. 노란 사과가 나와서 맘껏 사과를 먹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보다 꿀이 가득 든 아삭하고 딱딱한 빨간 사과가 풍작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슬프지만 큰 기대는 안된다. 9월에 들어섰는데도 이렇게 더우니 말이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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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 프로젝트 - 556번째 주제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1. 건조기. 귀에 딱지가 앉도록 쓰던 사람들이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해서 구비하게 된 건조기.
정말이다.
내 인생은 건조기가 있기 전후로 나뉘어도 과언이 아니다.
실내건조 하는 번거로움이 싹 사라졌다.
인간의 발명품 중 위대한 것 중에 손에 꼽을 수 있다.
다들 꼭..사길.
2. 쓰리잘비. 이렇게 명명하는게 맞는지 모르지만, 고무모양 날?로 빗자루 역할을 하는 것인데,
머리 말리고 나서 머리카락 및 먼지 쓸기에 아주 안성맞춤이다.
기존에는 밀대를 썼는데 이게 훨씬 잘 쓸리고 좋다. 대단한 게 아닌데도 아주 좋다.
3. 아직이다.
아직 3번째를 찾지 못했다.
맘에 쏙 드는 것이 없는걸.
4. 나는 되게 팔랑귀에 뒤늦은 유행을 쫓는 사람이다.
얼리어답터는 아니고 더욱이 귀찮음도 많아서 그렇다.
좋다고 하는 것들 덜컥덜컥 사곤 했는데 전부 창고행이다.
인생은 딱히 타인의 기준을 들이댈 수 있는 건 아닌가보다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분을 놓을 수가 없다.
뭘 사야 잘 샀다는 소문이 나려나.
-Ram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1.등산화 작년에 노스페이스 수유점가서 등산복을 보려다가 생각지도 못한 등산화를 득템했다. 두꺼운 양말을 신을 생각으로 등산화 사이즈도 크게 구매했는데 그 이후로 너무 잘 신고 다닌다. 발 한 번 까진 곳 없고, 물집이 잡힌 적도 없다. 보아 다이얼로 편하게 신발을 벗고, 신고 하니 끈을 꽉 조여맬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보아 다이얼은 겨울에 보드 타러 갔을 당시 부츠 신을 때나 탁 눌러서 돌리고 돌려서 사이즈를 조절할 때 사용했는데, 등산화에도 달렸을 줄이야. 등산화가 있으니 어떤 산이든 일단 가기가 수월해졌고, 실제로 접지력도 좋아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방수 기능도 좋아서 물이 고인 산길에서도 천하무적이 된다. (예전에 러닝화 신고 어떻게 등산을 했을까) 잘 산 등산화가 어디든 날 데려다준다!
2.노란색 유리도어 철제 수납장 우리 집엔 티비가 없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티비가 나오는 모니터가 방안에 있긴 하다. 하지만 거실엔 커다란 티비를 놓지 않았고 책장을 놓을까, 수납장을 놓을까 고민하다가 먼지가 무서운 나는 도어가 달린 수납장을 샀다. 수납장이든 책장이든 검색하면 흰색과 나무로 된 것이 많이 나왔는데 보다 보니 그냥 내가 그 색들에 질려버렸다. 그래서 뜬금없이 노란색 철제로 만들어진 유리도어 수납장을 주문했다. 철제가 생각보다 무거워서 조립할 때 살짝 애를 먹긴 했지만 결과는 대만족. 일단 수납장 안에 책, 공책, 자주 사용하지 않는 노트북, 아직 뜯지 않은 화장품, 코드들, 스티커들, 파우치들, 보드게임 박스들 등 잡다구니까지 바구니들을 이용해 다 넣으니 속이 후련했다. 수납장 위엔 새빨간�� JBL 블루투스 스피커와 전자시계, 선인장, 커다란 산세베리아 화분에서 어쩌다 보니 자른 잎을 심은 화분, 몇몇 위스키들과 선물 받은 술까지 올려놓으니 그 쓰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인트는 색상. 집에 들어오면 바로 노란색 수납장이 보이는데 옆에 있는 커다란 몬스테라와 그 외 식물들과 색조합이 너무 완벽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딱히 인테리어에 욕심이 없었는데 노란색 수납장을 산 후 보는 족족 만족감이 상승하니 사람들이 왜 집 인테리어에 투자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기운을 몰아 집 다이닝룸을 새로 꾸미고 싶어 시간나는 대로 열심히 이것저것 검색하고 있다.
3.멕시코66 태국에 있었을 때 주구장창 신고 다녔던 멕시코66. 내 기준 무지퍼셀보다 편하고 예쁜 신발이 또 있을 줄 몰랐다. 신다 보면 더욱 내 발에 맞아 편해지고 신 자체가 가벼운 건 두말하면 입 아프지. 신발이 가벼운 만큼 밑창이 얇긴 해서 겨울엔 살짝 넣어두지만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손이 가고 발이 가는 운동화다. 20대 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cm가 넘는 힐만 신고 다니다 30대가 되어서야 운동화에 아주 조금씩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도 계속 힐을 쇼핑하긴 하지만 운동화가 그 시간들을 비집고 들어오다보니 힐 신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불쌍한 내 발한테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을에 나고야를 갈 예정인데 거긴 오니츠카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길래 또 다른 멕시코66을 들고 와야겠다.
-Hee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1.리코 Gr3x 카메라
dslr과 미러리스 카메라를 전전하다 다시 안착한 필름 카메라의 세계는 일순간에 붕괴됐다. 한 롤에 삼천 원 하던 싸구려 필름이 이만 원도 넘어서버리니 내가 가진 썩 괜찮은 필름 카메라도 렌즈도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셔터 한 번 한 번을 신중하게 누르게 되고 그 결과물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감각을 지금도 너무 좋아하지만 와인딩 한 번 할 때마다 드는 금전적 압박이 내게는 꽤 커다랗게 다가왔다. 이러다가는 기록 그 자체를 멈추게 될까 봐 새로운 카메라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구매한 새 카메라는 리코의 Gr3x였다. 일단은 작고 가벼워서 좋다. 카메라로서의 성능은 무지성으로 HDR을 남발하는 스마트폰 카메라보다 훨씬 사진다워서 좋다. sd카드에 있는 사진을 핸드폰으로 꺼내 오는 과정은 새 필름을 몇 개씩 챙겨서 다니고, 32컷을 모두 촬영한 다음에는 매거진을 갈아줘야 하고,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현상소에 필름을 맡긴 뒤 며칠을 기다려야만 하는 과정보다 훨씬 훨씬 간소하다. 컷 수에 제약이 없는 데다가 화각까지 내 마음에 쏙 든다. 아마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접해서 사용해 본 사람은 전혀 실감할 수 없는 장점이겠지만.
2. 티타늄 플라스크
백패킹을 갈 때마다 소주든 와인이든 그날 마실 술 한두 병 정도야 거뜬히 배낭에 넣고 다녔지만 이제는 가벼운 티타늄 플라스크에 그날 마실 위스키를 골라서 넣어 다닌다. 무게가 가벼워서 좋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져갈 수 있는 양이 제한적이라 딱 적당하게만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플라스크의 뚜껑을 여닫는 느낌. 작은 구멍으로 위스키가 쫄쫄 흘러나오는 소리. 제한을 걸어둔다는 것만으로도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소중해지는 느낌. 고립을 즐기러 굳이 배낭을 메고 산속에 들어가는 일과 결이 맞아서 한 층 더 좋다.
3. 빅 아그네스 가드 스테이션8 쉘터 돌고 도는 유행을 바짝 따라붙어 다니다가 결혼을 한 뒤 메인 스트림에서부터 한참 멀어지고 나서부터 나의 캠핑 스타일을 정립할 수 있었다. 내가 캠핑이라는 취미를 지속하기 위해서 펼치고 접을 때마다 두 시간씩이나 걸리고, 전기를 끌어다 써야 하는 맥시멀한 캠핑은 할 수가 없고, 그렇다고 오토캠핑을 하면서까지 불편하게 쭈그린 채 지내다가 허리 부서지는 미니멀한 캠핑은 하고 싶지 않다. 가드 스테이션8은 적당히 넓고 적당히 안락하고 설치와 철수에 적당한 시간이 드는 쉘터다. 만듦새는 적당히를 넘어서면서 적당히 인기 없는 바람에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 시즌에 본래 가격의 절반 값에 구할 수 있었다. 아마 스킨이 삭아서 가루가 될 때까지도 처분하지 않고 만족하며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느낌이 든다.
-Ho
*잘 샀다고 생각하는 아이템 3가지
물건을 잘 안사는 편이고 심사숙고해서 사는편이라 고르는데 힘들진 않았다.
1.호카 호파라 샌달 작년에 남편이 남자친구인 시절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줬는데 진짜 편하다. 맨발에 신어도 되고 양말신고 신어도 되고 바다갈때 그냥 신고가서 물에 닿아도 되서 좋다. 이거 사고 남편이 니가 물건사고 그렇게 웃는거 첨본다 했었다.
2.스텐리 레거시 쿼드백 500미리 텀블러 이건 한 4년전에 사서 아직 잘쓰고 있는데, 찬거든 따뜻한거든 유지가 잘되고 튼튼하다. 요새 나오는거는 빨대형식이 유행인거 같은데 나는 무조건 밀폐되는걸 선호해서 가방에 넣고 다녀도되서 좋다.
3.살로몬 운동화 또 신발인데.. 살로몬은 진짜 너무 편하고 심지어 이뻐서 한국와서 또 사고 싶어봤더니 28만원이라.. 운동화에 28만원은 좀 아닌거 같아서 다음에 운동화를 산다면 호카를 살것같다.
이제는 물건을 살때 최소한 60살이되도 내가 이걸쓸것인가 생각하고 사게된다. 쓸데없는 소비를 하지말자 해도, 다이아몬드 반지는 하나 가지고 싶은거보면 ���니멀리스트는 멀었지 싶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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