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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IC BLUE (SA:GAK 5월, 6월 통권 스물다섯번째호)
세계적인 색채연구소 팬톤에서는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여 발표한다. 매년 색채 트렌드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이에 맞는 색을 선정하게 되는데,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해당 컬러는 그 해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쳐왔다. 2020년�� 맞아 팬톤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바로 ‘클래식 블루 Classic blue(팬톤 색상 번호 19-4052)’, 해 질 무렵 하늘을 연상케하는 차분하지만 자신감 있고, 타인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주는 색상이다.
팬톤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그 해 수많은 디자인 계통에서 아이코닉 한 컬러로 쓰이게 되는데, 미술사에서도 이런 아이코닉 한 블루 컬러가 존재한다. 그 컬러의 공식적인 명칭은 인터내셔널 클레인 블루(International Klein Blue)라는 색상이며, 줄여서 IKB라고 불린다. 이 IKB 컬러는 짙은 울트라마린 색의 컬러로써, 프랑스의 화가 이브 클랭이 특허를 받아 작품 활동을 했었던 클랭의 대표적인 블루 컬러이다. 클랭은 이탈리아의 아시시를 여행하던 중 조토의 프레스코화를 보면서 하늘로부터 자신에게 내려준 유일한 색조인 청색의 계시를 받았다고 했는데, 이후 클랭은 젖은 상태이건 마른 상태이건 동일한 밝기와 농도를 지닌 블루 컬러를 만들기 위해 화학자들과 함께 고착액인 에틸알코올과 에틸아세테이트에 건조시킨 로도파엠에이(RhodopasMA)라는 푸른 안료를 섞어 IKB 컬러를 개발하게 되었다.
클랭은 IKB 컬러를 사용한 수많은 회화 연작을 완성하였는데, 그 수는 자그마치 200여 점에 달했다. 한편으론 IKB 회화 작품들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회화화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는데, 그는 파란색을 가장 순수하고 무한하며 사물의 무(無)에 가까운 색이라고 여겨, 푸른 하늘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을 회화화하기 위한 작업들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모노크롬 회화 이론에 대해 1959년 소르본 대학의 초청 강연에서, ‘색채에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그것을 형이상학적인 오브제로 전환시킴으로써 색채를 객관화하는 시도’라고 설명했는데,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작가주의를 철저히 배제하기 위해 작가의 개성이나 감정이 드러날 수 있는 붓의 사용을 지양하고 거대한 롤러나, 타인의 신체 따위를 이용한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클랭의 작품 활동으로는 1960년 5월 파리의 국제현대미술갤러리에서 열린 <청색 시대의 인간측정학>(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이라는 퍼포먼스가 있는데, 그가 ‘과도하게 심리적인 도구’라며 거부하던 붓 대신, 여성 모델의 나체에 IKB 색상의 물감을 묻혀 빈 공간에 회화를 완성함으로써 미술계에 국제적인 파란을 일으켰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클랭의 인간 측정 시리즈는 모델이라는 존재가 그림에 남긴 흔적을 통해 1차원적인 그림에서 주체와 대상, 그리고 매체가 동시에 뒤섞이는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한편 클랭은 ‘우주발생론’에도 관심을 두어 옛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처럼 세상 만물이 불, 물, 공기,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었는데, 그것들을 재료로 하여 회화를 그리는 기행 또한 서슴지 않았다. 비물질인 불을 회화화하기 위해 화염방사기나 산소용접기를 이용해 그림을 불에 태운다거나, 공기를 회화화하기 위해 스프레이를 사용하기도 하며 기발한 예술관을 이어갔고, 그의 활동은 점점 현대의 개념미술 형태로 발전해나갔다. 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정은 그의 기행만큼이나 놀랍게도 짧게 막을 내리게 되었는데, 1962년 5월 피에르 레스타니가 기획한 전시<가시화(Donner à voir)>의 개막식 참여 중 갑작스레 찾아온 심정지로 인해 약 8년간의 짧은 작품 활동을 끝으로 34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한때 ‘미국 팝아트에 대한 프랑스의 화답’이라 불렸던 누보 레알리슴의 막은 이렇게 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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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ANA (SA:GAK 1월, 2월 통권 스물네번째호)
얼마 전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의문의 바나나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는데, 뉴욕포스트 같은 신문 지면에서부터 인터넷 뉴스에 이르기까지 미술 관련뿐만이 아니라 사회면에도 등장하면서 ‘이 바나나는 대체 뭘까…’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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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매년 12월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일어난 모종의 정상적인(전문가를 비롯한 업계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미술품의 거래가 미술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불특정 다수의 오해와 비아냥으로 인해 SNS의 파급력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타고 일련의 가십으로 변질되어버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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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나나의 정체는 이탈리아 파도바 출신의 동시대 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으로써 카텔란이 마이애미의 한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바나나를 은색 테이프로 벽에다 발라 고정한 뒤 ‘코미디언’이라 명명하고 아트 바젤에 전시하도록 한 작품이었다. 코미디언은 총 세 개의 에디션으로 제작되어, VIP를 위한 사전 행사 때 이미 1억 4천만 원이라는 금액으로 첫 판매가 이루어졌고, 세 번째 바나나는 1억 8천만 원가량에 거래가 성사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세 개의 바나나가 모두 판매가 됨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관람객들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를 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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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텔란이 바나나를 사용하게 된 이유는 세계무역을 상징하기 위한 메타포로써 작품을 위해 1년여의 고심 끝에 결정한 핵심 오브제였는데, 이 바나나는 이후 엄청난 파장을 낳으며, 마이애미의 저임금 청소노동자들이 ‘고작 바나나 한 송이가 자신들보다 더 가치 있는가’라는 박탈감으로 인해 바나나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시위를 벌이게 만들었고, 유명 할리우드 배우 브룩 실즈는 이마에 바나나를 붙인 채 셀카를 SNS에 업로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버거킹은 감자튀김을 붙이고, 페리에는 생수병을 붙이는 등 여러 물리적 장소와 웹상에서 카텔란의 바나나는 ‘밈(meme) 화’되어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며, 아트 바젤 마이애미가 끝나기 이틀을 남겨둔 상황에서는 ‘데이비드 다투나’라는 한 행위 예술가가 군중들 속에 섞여 사진을 찍는척하다가 벽에 붙은 바나나를 뜯어내���는 천연덕스럽게 껍질을 까서 먹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관람객들은 모두 경악했지만, 막상 갤러리 관계자는 침착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을지도 모르겠다. 해당 사건에 대해 갤러리 관계자들은 중요한 것은 작품의 개념이지 바나나 그 자체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으며 상황은 일단락됐고, 잠시 후 또 다른 바나나가 벽에 붙어있었다고 한다.(보통 이러한 개념미술의 경우에는 정품 인증서와 같은 서류가 작품 자체를 대변한다.) 덕분에 카텔란의 바나나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 모으며, 으레 작가나 작품이 가져야 할 이슈몰이에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이미 다수의 발칙한 작품들로 전 세계를 경악시켜온 카텔란이기에 종사자나 전문가들에겐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지만, 고질병과 같은 미술계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이해 부족과 현시대를 대표하는 거대한 소통 창구인 SNS가 만들어낸 재미난 에피소드로 길이 남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제도권 밖에서 미술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들을 새로운 유형의 미술로써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는 것, 과거 뒤샹의 변기가 처음 나왔을 때 SNS가 존재했었더라면 아마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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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술 (SA:GAK 11월, 12월 통권 스물세번째호)
최근 환경 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면서 이에 맞는 적절한 조치와 새로운 방안들이 곳곳에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환경문제가 예술계에서도 논쟁거리로 종종 다뤄지곤 하는데, 일례로 일본에서 활동 중인 ‘Hal’이라는 사진작가는 사람, 집, 자동차 등의 피사체를 비닐로 포장하고 공기를 최대한 빼서 진공에 가까운 상태까지 만든 뒤 피사체를 마치 거대한 진공포장상품처럼 보이게끔 연출한 사진들을 찍는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자동차나 집과 같은 거대한 물체를 덮기 위해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비닐 쓰레기를 만들어내는데, 작가의 이러한 작품 특성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지구의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와 첨예한 대립을 이루며 환경보호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고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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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마다 본인의 예술 관념이 존재하고 그 모든 활동들에 각자의 의미가 있겠지만, 기왕이면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본인의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욱 인간에 의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작품으로써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물음에 답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은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미국의 유명한 대지미술가 로버트 스미스슨이 바로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대표작 ‘나선형의 방파제(1970)’는 돌과 흙으로 메워진 길이 457m, 나선 넓이 4.6m의 거대한 나선 모양 방파제이다. 이 작품의 제작운반을 위해서만 중장비를 비롯한 트럭 몇천 대 분량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이러한 거대한 스케일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미술관에서의 전시는 불가능했고, 현장을 찍은 사진과 ��상들이 그 작품을 대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열린 공간에서의 조각으로 미술 작품을 갤러리 밖으로 끌어내고 해방시켰다는 평과 함께 소위 대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갤러리 밖 외부 환경과 유기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의 재앙을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이 현대 문명의 내리막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생각하여 만들었다는 ‘나선형의 방파제’는 그 작품의 의도와 함께 작품의 특성까지도 현대 문명을 위한 올바른 흔적으로써 선진적인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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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도 소위 대지미술가로 분류되는 동시대 미술 작가인 리처드 롱이 있다.리처드 롱은 1989년에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저명한 대지미술가이다. 주로 ‘걷기’라는 활동을 통해 대표되는 리처드 롱의 작업들은 본인을 자연에 속한 하나의 존재로써 자신이 움직이는 신체의 행동과 시간의 흐름, 그리고 장소가 가지는 특성들을 통해 자기 자신과 자연만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느끼는 생각과 그 의미들을 돌아보는데 집중한다. 리처드 롱은 1968년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자신의 첫 개인전에서 나무의 잔가지를 나열시킨 작품을 통해 대지미술에 입문하게 되었는데, 돌멩이나 진흙, 나뭇가지 같은 자연에 속한 오브제를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작품을 구성하거나 산이나 들 같은 외부 환경에서 풀을 베거나 꽃을 꺾는 등의 일정한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에 관여하며 약간의 연출을 통해 본인의 흔적들을 작품으로 만드는 방식을 이용한다.리처드 롱 역시 대개 비영구적인 작품 활동에 한해서는 사진기록에 많이 의존하는 형식을 취하기도한다.
이외에도 조형예술을 자연으로 확장시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비단 이러한 현상이 미술계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들의 이러한 관념은 어쩌면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우리가 늘 망각하고 사는 가장 단���한 진리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한 번쯤 고민해볼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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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적 문자 (SA:GAK 9월, 10월 통권 스물두번째호)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그림보다는 글이 더 구체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미술가라 하더라도 굳이 그림과 조각 등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시기는 지나갔고, 개념과 아이디어가 중요한 시대가 되면서 간결한 텍스트만을 이용해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도 많이 생겨났다. 텍스트는 형태에 따라 이미지보다 대다수의 관념 속에서 객관적인 의미를 가지며, 구체적이고 정확한 묘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의미를 더욱 깊고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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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용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는 미국의 현대미술가 바바라 크루거의 전시 FOREVER가 열리고 있는데, 매표가 진행되는 입구에서부터 전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
’충분하면 만족하라’
키를 훌쩍 넘어 천장높이까지 꽉 찬 글씨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바바라 크루거의 첫 한글 작품이라는데, 한글이지만 ���가 어색함이 묻어나고 강압적인 어투에 의미는 알겠지만 무언가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지는 문장이다. 크루거는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 약 10여 년의 잡지사 디자이너 경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경력들은 본인의 작품 스타일을 이루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가 있다.그녀의 대부분 작품들은 붉은색이나 검은색 테두리를 작품에 둘러 시각적인 집중을 유도시키고 그 안에 주로 흑백 사진과 같은 색 대비가 강렬한 이미지를 가공하여, 그 위에 매우 직설적이거나 혹은 재치 있는 언어유희 등을 사용해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병치시킨다. 잡지 광고 면과 같은 이러한 작업 방식을 통해 그녀는 계급, 젠더, 정치와 같은 이슈를 다루며 사회문제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러한 메시지는 광고와 같은 그녀의 작업 스타일과 함께 시너지를 만들어 보는 이로 하여금 메시지에 집중시키고 사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낸다.
명동에 위치한 ‘대신 파이낸스 금융그룹 신사옥’으로 가면 지난해 작고한 미국의 현대 미술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를 만날 수가 있다. 인디애나도 텍스트 아트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 중 한명 인데,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들은 특히나 다른 작가들보다도 더 간결하고 상징적인 문자를 사용한다. 한 단어만을 사용해 색대비가 극적인 거대한 조각 작품을 주로 제작하는데, 그의 작품은 극단적으로 간결한 단어와 강렬한 색대비, 그리고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적인 안정감과 거대한 스케일 때문에 랜드마크로서의 기능도 심심찮게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로버트 인디애나가 얼마큼이나 현대의 시각디자인과 상업디자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인디애나는 주로 LOVE와 같이 EAT, DIE처럼 극단적으로 간결하지만,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들을 작품으로 제작함으로써 평소엔 잘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의 근본적인 행위나 모습들에 대해 연상 작용을 유도하고 심도 있는 고찰을 이끌어낸다. 그의 LOVE 시리즈는 현재 서울은 물론이고 가장 유명한 <LOVE>가 있는 뉴욕과 필라델피아, 도쿄, 타이베이 등 세계 곳곳에서 만나볼 수가 있다.
![Tumblr media](https://64.media.tumblr.com/be867f9716079f55e80e33241df1c22e/f9b7c42d88293dee-e7/s540x810/1f2a99a33ab9372c1dcbbb2795352b5ea6665a9f.jpg)
로버트 인디애나와 함께 미국에는 또 한 명의 텍스트 아트로 잘 알려진 현대미술가 크리스토퍼 울이 있다. 울은 넓게 펼쳐진 흰 캔버스 위에 ‘RUN DOG RUN’, ‘FOOL’, ‘RIOT’와 같은 짧은 단어부터 시작해 1987년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 이후에 발표했던 ‘SELL THE HOUSE, SELL THE CAR, SELL THE KIDS’와 같은 문장 단위의 텍스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문자들을 차용해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검은색 글자를 스텐실로 찍어낸다. 이러한 작업들은 크리스토퍼 울이 어느 날 우연히 새하얀 트럭 위에 ‘SEX’나 ‘LUV’와 같은 단어들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더럽혀진 것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그와 같은 작업 스타일을 선보이게 되었다. 울의 문자들은 바바라 크루거나 로버트 인디애나처럼깔끔하고 정갈한 느낌을 갖진 않는다. 오히려 글자 주변엔 물감 자욱이 덕지 덕지 붙어있고, 색료가 군데군데 번져있으며, 일부러 글자를 지우고 덧입혀 씌우기도 한다. 이러한 울의 거친 텍스트들은 울이 선택한 특이한 뉘앙스의 텍스트들과 만나면서 그라피티와 같은 생동감과 함께 다잉 메시지 같은 심오함 또한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트레이시 에민, 브루스 나우만, 제니 홀져와 같은 다수의 아티스트들도 텍스트를 이용한 유수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는데, 텍스트 아트는 문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미지 위주의 그림 작품보다 해석의 여지가 부족하고 가벼운 작품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표현 방식일 뿐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난해한 현���와 동시대의 미술 작품들 사이에서, 오히려 텍스트로 표현된 작품들이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개념의 본질에 더 가까운 작품들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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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의 시간 (SA:GAK 7월, 8월 통권 스물한번째호)
2008년 '마르셀 뒤샹 상'의 수상자인 프랑스 미술가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는 "요즘 예술가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소재는 시간"이라 단언한 바 있다.
패션 브랜드와 미술 작가의 콜라보가 심심찮게 성행하는 요즘, 파리 아랍 문화원에서 열린 디자이너 킴 존스의 2020s/s 디올멘 컬렉션에서는 작년에 이어 또 한 번 현역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를 선뵈어 세간의 주목을 이끌어냈다.(작년에는 KAWS와의 협업으로 화제가 된 바 있음.) 디올멘을 이끄는 수장 킴 존스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Daniel Arsham)'과의 협업으로 색다른 런웨이를 선보였는데, 아샴은 디올이 여태껏 탄탄히 다져온 아카이브를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해 디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혼합한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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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색의 런웨이 위에는 디올의 이니셜이 풍화, 침식된 모습으로 거대하게 재현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 현재에 다다른 것만 같은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고, 디올이 2000년도 봄, 여름 오뜨꾸띄르에서 선보였던 뉴스 페이퍼 프린팅이 새��게 부활하여 런웨이를 수놓음과 동시에, 현재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애플의 에어팟 케이스까지 액세서리로 디자인되어 과거와 현재, 미래가 융화된 신비로운 컬렉션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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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기반 아티스트 다니엘 아샴의 작업은 <허구적 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현시대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문화를 석고나 대리석과 같은 고형물을 이용해 시간이 흘러 자연 풍화되고 침식된 모습으로 연출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가령 테디베어 인형이나, 레이카의 카메라, 아디다스의 운동화 등이 마치 아득한 시간이 흐른 뒤 발견된 고대의 유물처럼 풍화, 침식된 형태로 새롭게 재현되는 것이다. 관객은 이를 통해 먼미래로 시간 여행을 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현재의 모든 사물과 문화는 어느덧 과거의 유물로 변이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됨으로써 현재를 더욱 강렬히 마주하게 된다. 이외에도 다니엘 아샴은 오브제가 들어있는 모래시계를 일정한 주기마다 반복 회전 시킨 작품으로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한다든지, 화산재로 만들어진 구식 전화기와 카메라가 등장하는, 인류 문명이 멸망한 아포칼립스 이후의 시대 배경을 영화로 제작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거대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자신의 고찰을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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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현재가 가장 중요함을 상기시키는 다니엘 아샴의 작품 이면에는 긍정적인 미래보다는 디스토피아적 상상의 미래가 늘 전제돼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인간은 어쩌면 예견된 밝은 미래보다는 어둡고 불확실한 미래를 통해 나태함과 안일함에서 구원받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니엘 아샴은 현재 <허구적 고고학>이라는 주제를 통해 디올 외에도 리모와, 코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를 비롯하여 퍼렐 윌리엄스와 같은 거물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몇 년 새에 세계가 주목하는 동시대 미술가로 급부상하게 됐고, 미술 외에도 건축과 디자인의 영역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이 젊은 예술가가 앞으로 만들어갈 시간은 어떤 모습이고 그 시간을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선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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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트로스(Albatross) (SA:GAK 5월, 6월 통권 스무번째호)
‘알바트로스’라는 새를 아는지? 내가 어릴 때는 꾸러기 수비대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들이 탑승하는 유니콘 로봇의 이름으로 유명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태평양에 서식하는 슴새 목 알바트로스과 조류의 이름이며,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보호종이기도 하다. 나는 이 새의 존재를 너무나도 늦게 그리고 참담한 심정으로 알게 되었다.
SNS에서 우연히 본 사진에는 언뜻 새의 일부분 같아 보이는 것들을 중심으로 형형 색색의 플라스틱 조각들이 방사형태로 놓여있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엔 어린아이가 놀이터에서 소꿉장난을 치다가 간 흔적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름 모를 어느 작가의 동시대 미술 작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은 새의 시체와 주변에 버려진 폐 플라스틱 조각들로 만들어진 광경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본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첫 모습이었고 몇 장의 사진을 더 본 뒤엔 참담한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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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Jordan Albatross mandala, Midway Island, 2010>
미국 출신의 작가 크리스 조던은 사진과 개념미술, 영화와 비디오 아트 등 장르를 넘나들며 현대 세계의 주요 담론과 이슈를 작품으로 보여준다. 조던은 원래 변호사였지만, 미국 텍사스대 로스쿨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시애틀에서 10년간 변호사로 일하다가 2003년경에 작가로 돌아섰다. 나는 조던의 이러한 이력이 조던 자신의 작품 활동에서 다루는 주제가 작가 개인보다도 주로 공익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의 예술 활동을 하도록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조던은 평소 해양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던 중, 죽은 알바트로스의 시체가 자주 발견된다는 미드웨이 섬을 알게 된 후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태평양으로 향했고, 약 8년 동안 미드웨이 섬에서 알바트로스와 함께 생활하며 작업을 해나갔다. 알바트로스는 주로 먼바다에서 생활하며 2년마다 단 하나의 알을 낳아키우는데, 새끼에게 고작 한입의 먹이를 먹이기 위해 착지 없이 약 1600km를 날며 먹이를 구하러 다닌다. 알바트로스는 수면 위를 낮게 날거나 잠수를 해서 바다에 있는 먹잇감을 포착해 그것을 뱃속 가득 삼킨 뒤 둥지로 돌아간다. 단지 바다가 제공하는 것을 믿고 새끼에게 먹일 뿐인 알바트로스들은 자기가 삼킨 것이 먹이인지 플라스틱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새끼에게 줄 먹이를 뱃속 가득히 채운 후에 알바트로스는 둥지로 돌아와 자신의 뱃속에 있는 먹이 혹은 플라스틱을 게워내어 새끼에게 먹인다. 그렇게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찬 알바트로스들은 결국 이를 소화하지 못해 영양부족으로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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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Jordan Albatross mandala, Midway Island, 2010>
조던은 미드웨이 섬에서 8년간 생활하며 촬영한 영상들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알바트로스<albatross, 2017>’를 제작했고 이듬해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영화제(Gloval health film festival)에서 대상을 타며 플라스틱 과소비와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다. 참고로 영화는 지금도 알바트로스 필름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시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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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날로 증가함에 따라, 각 나라 혹은 각 기업마다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제도 마련이나 제재가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지만 내가 체감하기에는 플라스틱 사용 감소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나는 보통 주변에 전시를 추천하거나 권유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전시만큼은 열렬히 주변에 추천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더 내가 본 것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들을 느꼈으면 해서였다. 내가 본 것을 이렇게 알리는 것만으로 이 문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 하나쯤’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부터’라고 생각을 해본다면 누구든 거대한 변화의 한 발자국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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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숲 (SA:GAK 3월, 4월 통권 열아홉번째호)
봄이구나라고 체감이 들 만큼 추위가 많이 가신 최근이었다. 봄이 오면 개나리나 민들레같이 많은 꽃이 필 텐데 일찍이 가을부터 겨울까지 이미 MMCA 서울관에서는 민들레 꽃이 피고 숲도 무성해있었다. 먼젓번부터 서울관에서는 최정화의 ‘꽃, 숲’ 전시가 진행 중에 있었는데, 서울관에서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연계해 최초로 열리는 뒤샹의 전시 열이 워낙 뜨겁다 보니 현재도 같은 장소에서 전시 중인 최정화의 전시는 비교적 언급이 적다. 내가 MMCA 서울관을 방문했을 때 최정화의 전시를 본건 도합 10회가량은 될진대, 그만큼 전시 기간이 길기도 했고 많이도 봤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이 이야기를 쓰는 게 조금은 겸연쩍기도 하다.
최정화_꽃, 숲 Blooming Matrix, 2016-2018, 혼합재료 Mixed materials, 가변설치 Dimension variable 출처 : MMCA
최정화의 전시는 플라스틱 바구니, 빗자루, 풍선 등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지만 그 용도를 다했거나 버려진 소모품들을 반복적이고 불규칙적인 조합을 통해 다채로운 설치작품들을 선보인다. 폐품과 쓰레기라는 소재로 만들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꽃이나 숲, 씨앗 같은 제목의 작품들을 선보이는데 이러한 최정화의 작품들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모품들을 이용하여 친숙한 외관을 띄면서도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폐품과 꽃을 재료와 작품이라는 관계로 병치시킴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준다.
서울관의 지하에 마련된 공간에 최정화의 전시명이자 작품명 <꽃, 숲> 전시는 펼쳐져 있다.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폐품과 공산품들로 만든 꽃탑 146개를 관람객의 동선에 맞추어 늘어놓고 마치 산책길을 걷는 듯 숲을 형상화해놓은 공간 설치 작품이다. 작품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스토리텔링을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로 귀뚜라미 소리 나 바람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스피커를 통해 흘려보내기도 하고 그와 동시에 은은한 조명 빛이 밝기를 조절하며 강하게 혹은 약하게 쬐기를 반복한다. 최정화가 폐품들로 만든 이 가상의 숲에서 관람객들은 어느새 이것들이 폐품임을 잊고 잠시나마 짧은 산책을 즐길 수가 있는데, 최정화가 의도했듯이 쓸모 없어진 물건에 꽃과 식물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고 이것을 공간형 체험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최정화_민들레 Dandelion, 2018, 생활그릇, 철 구조물 Used Kitchenware, Steel structure, 9MØ 출처 : MMCA
서울관 마당으로 나가보면 최정화의 초대형 설치작품인 <민들레>가 우두커니 서있다. 이 작품을 위해 최정화는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부산, 대구 등지를 돌며 <모이자 모으자> 프로젝트를 통해 약 7천 점의 생활용품을 시민들에게 기증받았다. 그 결과 높이 9미터 무게 3.5톤의 초대형 고철 설치작품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시민들이 기증한 생활용품을 사용해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시민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용도를 다하고 버려진 소모품들로 시작과 생명의 상징인 민들레와 그 씨앗을 형상한 작품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었다. 그야말로 공공에 의한 공공을 위한 공공의 미술에 딱 들어맞는 작품이다.
언젠가 최정화의 민들레 앞에서 약속 시간을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민들레를 둘러싼 그 공간에는 가족과 연인 단위의 사람들이 많이도 모여있었다. 이 작품의 향후 행방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으나 나에겐 이 광경이 퍽이나 기억에 남아 괜스레 아쉬움이 남는다. 주말을 끝으로 마지막 겨울 산책을 나가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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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on snow (SA:GAK 1월, 2월 통권 열여덟번째호)
어느덧 겨울이 되었고 한 해가 저��어간다. 한파가 들이닥치고 지역 곳곳에서는 새하얀 눈이 내리기도 했다. 내가 있는 서울에서도 엄청난 추위와 함께 첫눈이 내렸었는데, 일정에 치이다 밖으로 나갔을 때는 첫눈에 대한 낭만적 감상은 느낄새도 없이 새하얀 눈밭은 온데간데없고 회색 구정물로 물들고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외진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 덕에 귀갓길에나마 하얗고 소복이 쌓인 첫눈의 모습을 감상할 수가있었다.
나는 계절 중에 겨울을 가장 좋아하는데, 살짝 몸에 긴장감이 드는 알싸한 추위가 좋기도 하고, 그러면서 가끔 내리는 하얀 눈은 내가 느끼는 추위와는 반대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눈이 내려 하얗고 소복이 쌓인 모습을 볼 때면 괜스레 그 위에 내 발자국을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개념미술가 루돌프 슈팅겔은 마치 첫눈이 내린 대지 위에 새하얀 발자국이 찍힌 모습을 연상케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는데, 사실 그 작품은 흰색 스티로폼 위에 래커 칠을 한 신발을 신고 올라가 그 위를 이리저리 걸어 다녀 화학 작용을 일으키게 함으로써 스티로폼이 녹아서 생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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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팅겔은 작가와 관객의 관계, 작품의 생산방식과 그 과정에 대해 주목했는데, 작가는 종종 자신의 창작 과정에 관객들이 개입하기를 의도적으로 유도하며, 관객들이 남기고 간 물리적인 흔적들을 베이스로 많은 작품들을 제작했다. 대부분의 작품 제목들이 ‘Untitled’라는 것을 보면 작품을 이루는 근간은 관객들이 만들어낸 우연한 흔적들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다. 슈팅겔은 여러 가지 창작활동을 통해 본인이 미술작가로써 미술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문과 회의들을 끊임없이 표출해냈는데, 1989년도에 자신이 제작한 ‘instructions’라는 아트워크북에는 자신이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과정들을 사진과 함께 낱낱이 기록해 두었고, 작가는 이를 통해 미술계에 만연해 있는 지나친 낭만주의와 허세를 지양하고 예술에 대한 현실적인 자각을 이끌어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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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미술계에서 본인이 느끼는 이런 의문들을 비꼬고 타파하기 위한 노력들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줬는데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관객들에게 낙서와 같은 물리적 흔적들을 스티로폼��� 마음껏 남기도록 한 뒤, 이후에 충분한 흔적이 남겨지면 그 위를 금속공예기법 중 하나인 ‘전해 주조(Electroforming)’방식을 통해 금과 아연을 비롯한 여러 가지 금속 재질을 코팅하여 입혀낸 작업물들을 제작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작품은 관객과 작가의 협력으로 태어난 공공 창작물이 되며, 관객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대부분의 물리적 작업을 도맡아 했고 작가는 개념적인 측면으로만 존재하게 된다.이때 작품을 만들어낸 진정한 주체를 누구로 봐야 할까? 슈팅겔의 이러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작가가 되기도 하고 다시 관객으로 돌아갈 수도 있으며, 작가와 관객의 경계란 어디에 있는지 또 그 경계라는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발생한다.
개념미술이라는 것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지고 관객을 창작활동에 개입시키는 등의 시도도 흔해졌지만 그 당시 슈팅겔의 시도는 참신하고 도전적인 시도였음이 분명했다. 어쩌면 작가는 새하얀 스티로폼 위에 발자국을 남기는 순간에도 자신의 행위를 당시 미술계에 대한 회의가 담긴 파괴적 퍼포먼스로 여기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늘 회의를 가지고 살며 의문을 가지고 산다는 건 예술가가 가져야 할 당연한 미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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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보는 미술 (SA:GAK 11월, 12월 통권 열일곱번째호)
음식은 누가 뭐래도 맛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비주얼을 포함한 분위기 등의 감성적인 측면들을 빼놓고서는 더 이상 요식업계를 논할 수가 없게 되었다. 사진이 주를 이루는 소셜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요즘 요식업계들은 맛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있는 게 아닌가라고도 생각이 든다.
<진라면과 호안미로의 컬래버레이션>
나 또한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비자 중 한 사람인데,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본 광고에 오뚝이 진라면과 호안 미로의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다소 괴상한 조합을 보고 호기심이 생긴 탓에, 평소에 라면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편의점에 들러 진라면을 구입해서 부엌 한편에 놓아두게 되었다. 물론 라면을 그다지 ���아하지 않아서 아예 뜯지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긴 하지만.
이런 비슷한 시류가 요즘 들어 하나 더 있는 게 바로 롯데주류의 캔맥주 피츠와 미국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컬래버레이션이 그것이다. 내 생각에 이건 롯데 뮤지엄에서의 케니 샤프 전시에 관련된 계약의 연장선 상중하나라고 보는데, 맥주는 내가 평소에도 매우 좋아하고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대표적인 소비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 또한 흥미 반 필요 반으로 인해 출시 이후 거의 먹어본 적이 없는 피츠 맥주를 구매하게 됐다.
<피츠맥주와 케니샤프의 컬래버레이션>
사실 진라면도 그렇고 피츠 맥주도 그렇고 평소 내가 선호하고 소비하던 브랜드의 제품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재화들을 소비하게 만든 것들은 호안 미로와 케니 샤프라는 브랜드들 때문이다. 나는 단돈 몇천 원으로 에스파냐 출신의 초현실주의 거장 호안 미로와 현재 세계적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팝 아티스트 케니 샤프의 예술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소비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미술이라는 게 예로부터 귀족들이나 부유한 사람들의 문화이며 대중과는 다소 관계가 없지 않나라는 인식이 통상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도 전시문화가 활발해짐에 따라 미술이라는 장르가 많이 보편화되었고, 미술이라는 콘텐츠에 대한 진입장벽이 많이 허물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대중성을 대표하는 소비재들 중 하나인 캔맥주와 봉지 라면에서도 초현실주의 거장의 감성과 잘 나가는 뉴욕 출신 팝 아티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미술이라는 게 소수의 누군가를 위한 문화가 아니게 된 것이다.
나는 대체적으로 이러한 흐름에 대해 기분 좋은 변화로 인지하고 있다. 미술을 포함한 예술적인 가치들이 대중화가 되고 그에 따라 우리 국민들의 사유가 늘어갈 테니까. 그리고 그런 과정들이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니까.
예술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을 감히 누가 틀렸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누구나 가슴속엔 한 편의 시가 살고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앞으로는 봉지 라면, 캔맥주. 그리고 생수, 화장지에서까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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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 : 침대 <My bed> (SA:GAK 9월, 10월 통권 열여섯번째호)
얼마 전 나는 이사를 하는 바람에, 새로운 침대를 구입해야만 했다. 침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시간 이외에도 많은 시간을 위에서 보내는 공간이다. 더군다나 나 같은 1인 가구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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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침대는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침대에서 잠을 자며 꿈을 꾸기도 하고 노트북을 배에 얹은 채로 슬픈 영화를 보기도 하며, 연인과 함께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 이처럼 침대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며 비밀스러운 공간이기도 하다. YBA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미술 작가들 중 한 명인 트레이시 에민은 여성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런 은밀한 사정들을 <My bed>(1998)라는 제목의 작품으로써 만인의 앞에서 공개를 했다. 트레이시 에민은 어린 시절부터 불온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왔는데, 13세 때 엄마의 애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이후 가출을 해서 낙태와 유산을 겪고, 우울증과 트라우마 등으로 극단적인 시도 또한 서슴지 않았다. 이후에 그녀는 예술로써 자신의 고통을 승화시키기를 택했고, ‘나의 삶이 곧 예술이고, 예술이 곧 나의 삶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이 작품에서 자신이 평소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침대의 모습을 사실적이고 노골적인 연출을 통해 설치작품으로 재현해냈다.
이 침대 위에는 어지럽혀진 이불과 담배, 술병, 여성의 속옷, 스타킹, 콘돔 등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었고, 그 모습은 사실 너무나 불온하고 보는 사람의 낯을 부끄럽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지만, 그 누구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은밀한 개인사를 만천하에 작품으로 낱낱이 드러낸 것이다. 처음 작품이 발표된 1998년도에는 이런 작가의 의도에 코웃음을 치며 조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지만, 이내 1999년도에 영국 최고의 미술 시상식 터너 프라이즈(Turner prize)에서 최종 우승후보 4인에 이름을 올리며 미술작품으로써의 가치와 그 시도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트레이시 에민의 대표격인 작품이 될 정도로 유명해진 큰 이유가 또 한가지 있는데, 99년도 터너 프라이즈의 후보 전시회 기간 중, 중국인 청년 2명이 난입해 에민의 작품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놀아 작품을 모두 헤집어놓는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후에 알고 보니 이 둘은 ‘Mad for real’이라는 퍼포먼스 예술가라며 자신들을 소개했고, 그날의 사건도 자신들의 퍼포먼스 아트임을 밝히며 그해의 우승작보다도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던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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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에민의 작품은 자신의 개인사를 주로 많이 다루는데, 자신과 함께 잠을 잤던 102명의 사람들, 할머니, 낙태로 잃어버린 아이의 이름 등을 텐트 속에 새겨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1995)라는 설치작품으로 전시를 하기도 하였고,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자신에게 마지막 이별을 고했던 어느 해변의 오두막을 그대로 가져와 <The last thing I said to you is don’t leave me here the hut>(1999)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런 에민의 행보를 두고 혹자들은 고백의 미술, 고백의 여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고백에는 커다란 용기가 동반된다. 트레이시 에민의 미술작품들은 모두 에민의 용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용기로 태어난 미술작품들은 보이기 위한 예술이 아니고 오롯이 자신의 치유를 위한 미술이다. 그녀의 몇몇 작품들은 동시대의 미술작가들이 으레 가져야 하는 스타성과 비즈니스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에민의 용기와 자유로움이 그녀의 작품을 더욱 가치 있고 빛나게 만드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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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 : KAWS (SA:GAK 7월, 8월 통권 열다섯번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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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서울 용산에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이 개관하였는데, 본격 개관전에 임시전시를 진행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인스타그램에서도 많은 인증샷을 볼수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온것은 브루클린 출신의 팝 아티스트 KAWS의 설치작품 앞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종로에 위치한 페로탕서울의 개관전 이후로 KAWS의 작품을 서울의 미술관에서 발견한건 이번이 두번째인데, 이 글은 그떄의 기억을 기반으로하여 현재까지 내 시야에 가장 많이 들어온 아티스트 KAWS(Brian Donnelly)를 대상으로 두고 쓰는 글이라는걸 재차 밝힌다.
페로탕서울에서 개관전을 할 당시만하더라도 한국에서 KAWS의 인지도나 전시에대한 반응은 미지근했던걸로 기억한다. 겨우 몇년전만해도 우리나라는 미술전시에 대한 이해가 지금보다도 한참 모자란 상태였다. 그렇기에 페로탕서울의 개관전이라는 이슈에 대한 대중의 분위기 자체도 냉소적이었고, 페로탕 서울의 작은 규모 자체도 으리으리하고 볼거리가 많은 전시를 기대한 몇안되는 ���국의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수있는 요소로 작용했던것이다.
![Tumblr media](https://64.media.tumblr.com/891cd1f8dca08e48ac7c9a4643680dd6/tumblr_inline_pcrgm7IEVI1tay8hq_540.jpg)
시간이 흘러 소셜네트워크는 전보다 더욱 활성화 되었고, KAWS는 유니클로와 메디콤토이 등 젊은 세대의 문화와의 협업을 계속 이어왔다. 그런 과정에서 KAWS 는 수많은 팬과 인지도를 쌓아올리며 이제는 세계 각국의 수많은 셀러브리티들과 아티스트들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통하는 그야말로 지금 이 시대가 낳은 진정한 동시대 아티스트로써 거듭난 것이다.
![Tumblr media](https://64.media.tumblr.com/916860a9bbfb6e09a9c3668683495d22/tumblr_inline_pcrgmoEVsZ1tay8hq_540.jpg)
내가 KAWS(Brian Donnelly)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건 얼마 되지도 않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임시개관에 이어 광교신도시에서 호수공원을 바라보는 광교아이파크와 앨리웨이 스트릿몰에 KAWS의 ‘Claen slate’가 설치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고난 다음인데, 이런 부분에서 나는 KAWS가 동시대에 세계적으로 대세의 반열에 올라있는 가장 핫한 아티스트임을 방증하는 요소라고 느꼈고, 광교에 KAWS의 작품이 설치되는 이유 또한 트렌드에 민감한 서울의 20대들을 유도하기위한 효과를 기대하는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글을 쓰는동안에는 석촌호수에서도 KAWS가 7/19부터 8/19까지 한달간 이벤트성으로 거대 조형물을 호수에 띄운다는 소식을 인스타그램에서 접하였다. 이렇게나 시의성이 날카롭게 맞아떨어지다니 어쩌면 KAWS는 2018년 6월 현재 동시대 미술의 가장 정확한 현주소가 아닐까. 집에 놓아둔 KAWS 피규어를 조금 앞에 꺼내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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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 : 미술관을 벗어난 미술들 (SA:GAK 5월, 6월 통권 열네네번째호)
주변에서 뉴욕에 가본 사람이있거나 혹은 본인이 뉴욕에 가본적이 있다면 한번쯤은 꼭 빨간 사각형의 LOVE 조형물앞에서 사진을 찍어봤을것이다. 이 조형물은 미국의 팝아트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인데, 문자를 이용한 상업적인 그래픽 디자인으로 논리적이고 강력한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한다.
![Tumblr media](https://64.media.tumblr.com/344f5e34f27593ae18f1612067608f22/tumblr_inline_p941zzH8ko1tay8hq_540.jpg)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들은 뉴욕 외에도 필라델피아, 싱가폴, 신주쿠, 타이페이 등에서도 랜드마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있으며, 심지어 예루살렘에서는 히브리어로 특수 제작된 LOVE조형물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있다. 이처럼 몇몇 작품들은 미술관을 벗어나 의도되었건 의도되지 않았던간에 특정 장소, 특정 건물을 상징하는 랜드마크 역할을 수행하고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어찌됬든 성공적인 입지를 다진 몇몇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통념속에서 그작품을 생각하면 그 장소가 자연스레 떠올릴수있을정도로 훌륭한 입지를 구축했는데,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때로는 포토스팟이 되어주고, 때로는 여행의 길잡이가 되어주면서 도시와 미술작품이 훌륭한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어낸다. 도시에는 조경으로써 훌륭한 심미적 장치가 되어주고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주며, 도시와 더불어 해당 미술 작가에게도 유명세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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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밀레니엄 파크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Cloud gate’가 있다. 생긴것이 꼭 콩모양 같이 생겨서 Bean이라고도 많이 불리는데, 이 작품 또한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훌륭한 랜드마크라고 볼수있다. 수직으로 솟아있는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유려한 라인을 가진 이 작품이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있다. 반짝거리는 실버 메탈 소재의 표면은 푸른하늘과 고층 빌딩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담아낸다. 이 작품은 무언가 단순 유명한 미술작품 그 이상의 느낌을 준다. 그냥 원래 이자리의 주인인것만 같은 느낌을 주면서 주변 경관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룬다. 여기에 카푸어의 작품을 놓기로한건 누구의 생각인건지 정말 잘한 아이디어라고 말씀드리고싶을 정도.
우리나라도 위에서 말한 미술작품들을 미술관 밖에서도 볼수가있다. 미술관 밖이라고도 말하기 참 뭐하지만, 이태원에 위치한 삼성미술관 리움을 가보면, 입구에 들어가기전 옆 산책로 같은곳에 메탈로 된 ‘구’들을 합쳐놓아 높게 솟아있는 카푸어의 ‘Tall tree’를 볼수가있다. 그리고 그옆에는 마치 하늘을 담는 접시를 연상케하는 오목거울 형태의 ‘The eye’ 또한 함께 볼수가있다. 위에서 언급한 작가들의 작품을 볼수있다는것을 말씀드리고싶었기에 약간의 억지를 부린점 양해를 구하며, 또 하나 말씀드렸던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조형물 또한 한국에서 볼수있게되었다. 바로 대신 파이낸스 금융그룹의 신사옥이 여의도에서 명동으로 이전하면서 소유중이던 LOVE조형물을 사옥의 앞에 배치하기로 결정한것이다. 아��� 배치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때문에, 과연 이 작품이 위에 언급 했던 많은 인디애나의 작품들 처럼 랜드마크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수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명동을 지나며 앞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몇번 본적이있는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 역할을 앞으로 얼마나 훌륭히 수행할지 눈여겨 볼만한것 같다.
늘 하는말이지만, 미술관이 아닌 곳에서 미술을 만나는것은 반갑고 즐겁다. 설치 조형물에 대한것들을 위주로 다뤘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지역과 건물 등에서 미술을 찾아볼수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들을 한국에서 만나봤으면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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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 : 미술과 콜라보레이션 (SA:GAK 3월, 4월 통권 열세번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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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수있고 또 재미있게 다가갈수있는 현재 ‘미술’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해를 거듭 할수록 주변에서 쉽게 ‘미술’을 발견할수있게 되었고 어떠한 모습, 어떠한 형태로든 일찍이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명목을 통해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아마 패션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공으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던 때에, 지면에선 종종 대형 패션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소식을 접할수가 있었다. 그 협업 중에는 패션브랜드와 패션브랜드, 패션브랜드와 타 유명패션디자이너, 패션브랜드와 가수, 패션브랜드와 미술작가 등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이 시도되어져 왔고, 이 중 미술과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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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콜라보레이션이라는 단어가 패션에 국한된 단어가아니라,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어지면서 현재에 이르러서는 너무나 익숙해지고 흔한 말이 되었지만, 그 단어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보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패션계가 그 시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유명한 콜라보레이션이 여럿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이브생로랑과 몬드리안의 협업도 패션과 미술의 대표적인 협업 케이스이지만, 동시대 흐름과는 조금 동떨어져있다고 생각하여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을 대표적인 예로 들려한다. 루이비통에서는 당시 마크���이콥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써 일하고 있었고 무슨 연유인지 그는 한창 주가를 올리고있던 일본의 네오팝 아티스트인 무라카미 타카시에게 협업을 제의하게 되었다. 그렇게 무라카미 타카시와의 협업이 무리없이 성사되었고, 당시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기존의 고급스럽지만 단조로운 이미지에 키치하고 감각적인 무드를 가미하며 루이비통에서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브랜드로 이미지를 탈피할수있는 계기를 만들수가 있었다.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기시작한 무라카미 타카시에겐 대대적인 인지도를 쌓을수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며, 이 협업은 결과적으로 둘 모두에게 장점만을 가져다준 대표적인 콜라보레이션 케이스로 기록이 되었다. 그리고 마크제이콥스는 또 한번 미술작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우연찮게도 또 일본인 아티스트인 쿠사마 야요이였다. 그도 쿠사마의 땡땡이 도트무늬에 홀린것인지 지대한 공을 들여 결국엔 쿠사마 ��요이와의 협업을 성사시켜냈고, 루이비통에서는 한동안 땡땡이 무늬의 아이템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루이비통에서는 최근 제프쿤스와의 협업을 계속 이어가며 두번쨰 마스터즈 콜렉션을 진행중에있다. 제프쿤스는 세계적인 명화들을 루이비통의 아이템들과 믹스시켜 자신만의 키치함과 루이비통의 품격이 균형잡힌 아이템들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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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패션 디자이너들과 미술작가들의 다양한 협업이 존재하는데, 라프시몬스와 스털링루비, 죽음과 해골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있던 지금은 고인이 된 알렉산더 맥퀸과 데미안 허스트, 까스텔바작과 앤디워홀, 이세이미야케와 앵그르 등 수많은 콜라보레이션이 존재한다. 이처럼 자주 패션디자이너가 미술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하는 이유가뭘까? 먼저 예술가로써 서로에대한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할것이다. 그다음은 상업적인 실리일것이다. 아티스트가 기부천사도아니고 아무런 댓가없이 재능기부만의 형태로 나서진 않을것이고, 단지 돈을 위해서도 자신의 장기적인 커리어에 흠을 남기고싶진 않을것이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굳건히 지킬수있으면서도 상업적 측면의 이익까지 얻어갈수있다면 그다지 마다할 이유가 없는것아닐까? 현재 미술은 패션외에도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있다. 자동차, 아이티 부터 시작해 건축, 그리고 심지어 사옥의 벽면에 그림을 그려주는 것까지.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미술과 우연히 가까운곳에서 만날수있다면 이얼마나 반가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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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 : 영화속 미술 (SA:GAK 1월, 2월 통권 열두번째호)
* 문화,예술 잡지 SA:GAK 1월, 2월 통권 열 두번째 호에 실렸다. 평소 집에서 시간이 생기면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언젠가 톰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영화에선 낯익은 유수의 미술 작품들이 미장센으로써 곳곳에 배치된것을 볼수가 있었다. 그리고 녹터널 애니멀스를 제외한 수많은 영화들에서도 여러 유명 작가들의 유명 작품들이 각자의 역할로써 영화에 등장하는것들을 심심찮게 봐왔다. 주로 유명 작가들의 생애를 영화로 다룬 전기 영화들이 많은데, 해당 작품들에서는 당연하게도 해당 작가의 작품들을 수도없이 볼수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제작이 되왔는데 그 중에는 잭슨 폴락, 폴 세잔,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장 미셸 바스키아, 파블로 피카소 등 이 외에도 수많은 화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들이 제작되어 왔다. 한때 이런 화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을 여럿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해당 화가에 대해 좀더 쉽고 재미있게 정보를 습득할수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상 다소 드라마틱한 전개와 연출들때문에 사실관계와는 조금 거리감이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해당 화가에 대해 평소 접근이 어려웠던 사람들이라면 영화를 통해서 해당 화가를 보다 쉽게 알아 갈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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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터널 애니멀스 (Nocturnal Animals, 2016), 감독 톰포드
녹터널 애니멀스에서는 여주인공으로 나오는 에이미 애덤스가 미술관의 아트디렉터 수잔 역을 연기한다. 덕분에 영화속에서 전달하고자하는 감정이나 분위기 그리고 특정 상황들을 비유하는 장치로써 여러 미술작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있다. 수잔의 호화로운 대저택 옆에는 제프쿤스의 거대한 벌룬독이 공허한 안개속에서 홀연히 자리잡고 있는데, 겉으로는 호화롭고 행복하게만 보이지만, 그 속에는 남편과의 불화나 자신의 일에 대한 권태같은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는 ���잔의 상황들을, 겉으로 보기엔 귀엽고 사랑스러운 풍선 인형이지만 그 실체는 차갑고 딱딱한 스틸로 만들어진 제프 쿤스의 벌룬독으로 비유하며, 겉으로 보이는것과 그 본질이 다를수가있음을 시사하고있다. 그리고 영화 중반부에서는 데미언 허스트의 성 세바스찬을 모티브로 작업한 작품이 나오는데, 본 작품은 성인 세바스찬의 희생을 패러디한 작품으로써 로마 제국의 크리스트교 박해에 희생당한 성인 세바스찬을 데미안 허스트의 자연사 시리즈로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장면에서는 로마 제국의 부당한 박해에 희생된 세바스찬이 에드워드로 묘사되고, 상대편 가해자를 수잔으로 비유함으로써 과거 수잔의 잔인함과 남겨졌을 에드워드의 상처와 비통함을 비유하는 장면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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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 Woogie) 피에트 몬드리안,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27cm x 127cm 뉴욕 현대미술관
이외에도 수많은 영화들에서 종종 미술작품들이 등장하곤하는데, 던칸 워드 감독의 부기우기라는 작품에서도 수많은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구경할수가있다. 우리나라에서 배급될때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배급이 되버렸기 때문에 성인영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다소 엉뚱한 제목이 되어버린 작품이지만 그 내용자체는 런던 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들을 냉소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연출하여 예술계의 뒷면을 현실적으로 풍자한 블랙코메디 작품이다. 이렇게 이 영화 또한 배경이나 배역들이 미술계와 관련되있는 설정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연출로써 보여주고있다. 이 영화는 일단 제목 부터가 차가운 추상화가로써 잘 알려져있는 거장 피에트 몬드리안의 부기우기 시리즈의 그 최초 작품 부기우기를 말한다. 영화속에서 이 작품은 탐욕을 상징하는것으로 보여지는데, 부기우기를 향한 수많은 사람들의 갈망과 시기들이 영화 전반에 두루두루 깔려 나타나기때문이다. 또 하나 재밌게 봤던 장면은 채프먼 형제의 ‘얼굴에 성기가 달린 작품’이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작품은 본래 모든 인간들이 본능으론 지니고있지만 외적으로 숨기고있는 성욕구에 대한 반감을 나타낸 작품이지만, 영화에서는 노골적으로 성욕구를 드러내게 하는 하나의 연출 도구로 사용되어진다. 끝으로 빠지면 섭섭할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도 극중에서 차용되어 나타나는데, 유리관안에 동물의 사체를 넣어 유명한 자연사 시리즈를 차용하여, 극중에서는 데미안 허스트가 직접 만들어줬다며 유리관안에 죽은 쌍둥이의 기형종을 담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게 죽은 쌍둥이 기형종은 그 존재 가치가 본래 가지고있던 ‘차갑게 식어버린 시체’에서 ‘예술 작품’으로써 그 가치가 변모하는것을 보여주며 현재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예술과 생명 윤리에 대한 ��레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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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 우기 (Boogie Woogie, 2013), 감독 던칸 워드
익숙한 작품들을 영화속에서 적재적소에 만나는 순간은 절로 감탄이 나오게된다. 영화의 연출을 더욱 풍성하고 분명하게 만들어줘서 시각적으로도 즐겁고 전하고자하는 메시지도 더욱 확실하게 느껴지게한다. 앞으로도 또 어떤 좋은 영화에서 우연히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되는 그 순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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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하고 놀기:#전시다그램 (SA:GAK 11월, 12월 통권 열한번째호)
* 문화,예술 잡지 SA:GAK 11월, 12월 통권 열 한번째 호에 실렸다.
우리는 요즘 SNS를 통해서 세계 각국의 남녀노소 할것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볼 수있고, 소통도 할 수 있게되었다. 21세기부터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됨에 따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발전이 시작 되었는데, 현재에 이르러서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실시간형 SNS가 발달하면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빠르게 공유 할수있게 된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SNS에 대한 얘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요즈음 이런 SNS에서 과거에는 볼수 없었지만 이제는 빈번히 볼수있게 된 사진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여러 전시회의 사진들인데, 과거에 사진을 찍지 못하게하던 전시회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제는 되려 사진 촬영을 반기는 전시가 많아지게 되면서 관람객들이 찍어 올리는 각종 전시 사진들을 SNS를 통해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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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R.E.D. (2012) – Ai Wei wei)
전시회에서 이제와서 이렇게 사진 촬영을 반기는 이윤 즉슨, SNS의 파급력이 날로 극대화 되감에 따라, 전시장에서 찍어 업데이트 되어지는 사진들이 전시의 흥행과 수입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SNS에 금방 올려진 화려한 전시 사진들은 실시간으로 SNS에서 빠르게 퍼지게 되면서 이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그것이 곧 전시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흔한 공식은 사진 촬영이 금기시 되던 예술 전시회의 풍조에 한해서는 분명히 새로운 모습이라고 볼수있다. 이제는 여러 전시회에서 애초에 전시를 기획하는 시점부터 SNS에서 화제가 될수있는 포토 스팟이나 동선 등을 고의적으로 조성하는 ���계에 까지 이르렀으니 더이상 사진을 찍지 못하게하는 전시회의 분위기는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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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port Street Gallery의 Jeff Koons 전시)
나는 미술에서도 비즈니스가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시회에서 SNS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굳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SNS의 발달과 함께 많은 사람들 사이에 전시회를 가는것이 라이프스타일에서 일종의 붐을 일으키게 되었고, 다양한 부류의 관람객들을 유입시키게 되었다. 나는 그중 상당 수의 관람객들 에게서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 받아야 할 예술의 본질은 외면한채, 작품 앞에서 SNS업데이트에 필요한 사진만 남기고 옷깃만 휙하고 스쳐지나가버리는 그러한 참상을 수도없이 목격하게 되었다. 그들의 옷깃은 마치 전시장을 돌며 작품들을 차례로 하나씩 도살해나가듯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있었다.
확실히 전시의 흥행과 성공은 축하할 일이지만, 관람객들에겐 우선 작가의 예술 관념과 깊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전시에 참여한 관람객을 포함해 작가에게도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부분이며, 그 다음이 전시의 상업적 성공이다. 이러한 부분들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관람은 작가와 관람객간 소통의 부재를 만들고 관람이 아닌 관광을 하게만든다. 결국 관람객은 그날의 전시에서 아무런 지적 소득이 없이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작가는 자신의 상업적 이윤은 채울수 있겠지만 자신의 예술 관념이나 소신에 대해서는 전혀 드러내지 못하게된다. 이것이 과연 예술 전시로써 기능을 제대로 하고있다고 말할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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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Tate Modern의 Jean Debuffet를 감상하는 관람객.)
대한민국은 현재에 와서야 빠르게 전시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성장통을 겪고있으며, 이런 관람 행태 또한 그 부작용이라고 생각된다. 애초에 예술이란건 준비된 사람을 위한 미식이기 때문에 한순간 날로먹을 수가 없고, 이제 막 전시 문화가 대중적으로 자리잡게 된 우리들에게는 전시를 관람하는 일종의 연습과 적응기가 필요한것이다. 관람전 약간의 준비는 당신의 전시회를 더욱 풍요롭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며, 때로는 기묘한 만족감과 재미를 선사할수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차차 늘어남에 따라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의 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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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프리츠/페로탕 서울 (Bernard Frize/Perrotin Seoul)
종로구 팔판동에 위치한 페로탱 갤러리 서울을 갔다왔다. 마침 내가 갔을때는 베르나르 프리츠의 추상회화 전시가 진행되고있었고, 요 근래 추상화에 빠져있던 나는 들뜬 마음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베르나르 프리츠는 파리와 베를린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프랑스 태생의 대표적인 추상회화 작가이며, 이름을 읽는 방법에는 나라마다 조금 다른것 같지만, 우리나라에선 '베르나르 프리츠'로 읽히고 불리우는듯 하다.
추상화란 말그대로 형태를 쫓아낸다는 뜻이다. 일명 형태를 구축하기를 의도적으로 거부한다는 것인데, 이러한 추상화의 특징으로 인해 추상화는 다른 회화들 보다 더욱 많은것이 담길수 있다고 본다. 적절한 예 일진 모르겠으나, 본인이 문신을 할때에 레터링을 하지않았고 문신을 하려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을 하지않는 이유는 레터링은 글에 담긴 그 문장, 단어자체로써 의미가 한정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사람의 인생은 시시때때로 변하며 가치관도 함께 변해가지만, 문신은 그럴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림이나 무늬를 문신으로 새긴다고해서 대단히 무한한 의미를 지니진 않겠지만, 문장,단어 자체 보다는 덜 한정적인 의미를 지닐수 있기에, 사담이 길어졌지만 레터링은 정말 가슴에 사무치거나 사연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피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본 추상화의 가능성은 이런 맥락으로 보는 부분이있는데, 물론 상대적일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기에 추상화가 관람자에게 다가갈때는 좀더 많은 해석의 여지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개인적인 추억이 될수도있는 그림이고, 그와 상반되게 누군가에겐 상상속에서만 존재하던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 될수도있다.
이런 추상화의 특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 본인의 인터뷰에서도 잘드러난다. 대부분의 물음에대해 "No Meaning."이라는 그의 쿨한 태도는 그의 그림에는 답이 없으면서, 또한 그 답은 무궁무진할수 있다는 패러독스를 가진다.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무한한 관계속에서, 한정되고 비슷한 해석들이 아닌 무한한 해석으로 각 관람자들의 해석에 맞춰진 무한한 주관적 작품들을 생성해 나가는것이다.
베르나르 프리츠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특징은 잭슨폴록이나 마크로스코가 표현주의를 거쳐 자신의 내면을 붓으로 표출하기위한 창구로써 추상화 작품 제작에 임했다면, 그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철저히 배제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작품의 주제나 방향등을 정해놓은 뒤, 수동적이고 반복적인 작업을 진행한다는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추상회화 작가이지만 작품제작에 임하는 모습으로써의 그는 미니멀리스트들과 그 궤를 함께한다고 볼수있다.
모든 예술에는 답이없겠지만, 추상화에는 많은 가능성이 담겨있다. 누군가에겐 귀걸이가 될수있고 누군가에겐 코걸이가될수도 있다. 베르나르 프리츠의 추상화는 나에게는 역동적인 에너지와 멀리에 있는 너른 지평선을 보여줬지만, 당신에겐 쓸쓸한 고독과 잔잔한 바다가 될수도있는것이다.
답을 찾으려고하지말고, 답을 만드는것이 추상화를 감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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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창동감독은 내가 아주 어릴적에 초록물고기라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 내가 이영화를 알수도 볼수도 없는 나이였기에 얼마전에야 어렵게 영화를 구해서 볼수있었다. 초록물고기는 느와르 영화로 조폭들이 떼거지로 등장하고 피가낭자하며 욕이 사정없이 쏟아진다. 영화에선 송강호의 데뷔 시절을 함께 볼수있었고, 한석규의 수수하고 젊었던 시절 또한 감상할수있다. 이후 제작 및 감독으로 간간히 활동해오던 그가 신예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이란 영화의 기획총괄을 맡았다 전해졌고, 좋은 평들을 여럿 들을수있었기에 영화'우리들'을 볼 계기를 맞게됬다. 윤가은 감독은 82년생의 젊은 신예 여류감독으로 한예종 영화과를 졸업 한뒤, 몇편의 좋은 영화들을 거친뒤에, 이번 우리들이라는 작품의 메가폰을 잡게됬고, 아이들의 시선에서 아주 유쾌하고 귀엽지만, 현실적이고 무게감있는 또 한편의 좋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게 제목이 우리들이 맞나? 너희들이 아니고?'
사람은 누구나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관계라는것은 일상에서 늘 한계를 보인다.간간히 함께 밥을 먹을사람이 없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갈사람이 없으며, 함께 감옥에 가줄수도없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함께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하기도 한다. 나 또한 많은 관계속에서 살아가지만 이런 관계들은 오히려 개인적인 삶이 더욱 성숙해지도록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관계속에서 느끼는 관계의 한계들이 개인성의 중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하는것이다. 개개인은 모두가 강해야하며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하고 스스로 모든것을 해결할수 있어야한다. 믿었던 사람의 배신, 가까운 사람의 죽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 이런 관계의 한계 들은 삶속에서 오히려 개인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라는 말보다는 '너희'라는 표현이 현실적인 것이다.
이창동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우리'는 선이와 지아 였을까? 아니면 '너희'를 반어적으로 표현하여 강조하기 위함이었을까?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부정하지않는 관계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이다. 선이의 학교 생활과 전반적인 영화의 내용은 '너희들'이라는 제목이 어울림에도 불구하고, 선이의 결정적인 고민해결과 돌파구를 제시함은 모두 가족을 통해 얻어졌고, 그 힘든 상황에서 가족만은 모두 선이의 '우리들'이었기때문이다. 나이를 한살 두살 먹어가면서 당연한것에 소홀해지고, 당연한 것을 소홀하게 여기는 이 생각마저 당연하게 여기게된다. 곧 설이 다가오는데 그에 알맞는 영화가 우연히 이번에 얻어걸린게 아닌가 싶다. 다가올 설날에는 '우리들'과 함께 하는것이 어떨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임이 분명하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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