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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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이데올로기를 운반하는 <택시운전사>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는 종종 재현의 방식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된다. 해당 영화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가, 그 과정에 왜곡과 과장은 없는가, 궁극적으로 영화가 사실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러한 질문에는 상반된 답변이 존재한다. 하나는 극적 각색을 거친 역사가 관객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을 수 있다는 견해고, 다른 하나는 극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전자의 입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각색된 역사는 새로이 창시된 하나의 세계관일 뿐, 이를 두고 원래의 역사를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없다. 다만 그러한 영화가 가치 없는 것이냐 묻는다면 생각이 다르다. 작품이 과거를 해석하는 방식에서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가 묻어날 수밖에 없고, 이를 통해 현재에 메시지를 던져 고민거리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의 사실성 논쟁에서 끊임없이 거론되는 역사적 사건 중 하나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이하 광주항쟁)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폭력은 한국 사회의 트라우마다. 잊는다고 극복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전체에 깊숙이 흡수되고, 그 슬픔이 끊임없이 표현되어야 겨우 버텨낼 만한 기억이 된다. 슬픔을 제때 표출하지 않으면 반드시 무너진다. 개인이든 사회든 마찬가지다. 슬퍼하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광주의 기억은 우리가 떠안아야 할 과제이자, 다음 세대로 넘겨줘야 할 숙제다. 이 과정에 끝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트라우마는 애초에 완치되지 않는 상처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는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작품 중 비교적 최근 영화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큰 배경으로, 이를 취재하려는 외신기자와 택시운전사 사이에 일어난 실화를 구체적 배경으로 활용한다. 독일 공영방송사 ARD 기자 위르켄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가 서울에서 광주로 가기 위해 택시운전사를 물색하고, 김만섭(송강호)은 식당에서 우연히 엿들은 대화를 통해 동료 기사가 맡기로 했던 그 일을 가로챈다.
만섭은 오로지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운전대를 잡지만 힌츠페터와 나눈 대화에서, 독재에 항거하는 광장 속에서 점차 투사적 존재로 각성한다. 그는 총탄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서 부상자를 병원으로 실어 나르고, 현장을 촬영하려는 힌츠페터의 취재를 지원한다. 이 과정에서 만섭과 힌츠페터가 광주 시민과 라포를 형성하는 장면이 여럿 제시되는데, 이는 소재가 가진 비극성으로 말미암아 여느 광주 영화와 마찬가지로 다소 신파적 측면이 있다.
여러 영화가 계속해서 광주를 그려왔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오! 꿈의 나라>(1989)에서 <택시운전사>에 이르기까지 수년의 간격으로 작품이 개봉했다. 그 가운데 광주항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난 시기에 제작된 <화려한 휴가>(2007)와 <26년>(2012)은 비교적 흥행에도 성공한 바 있다. 광주의 비극을 되새기고 기억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결코 영화의 공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택시운전사> 속 만섭은 수없이 봐왔던 캐릭터라는 느낌이 짙고, 힌츠페터의 전사는 지나치게 생략되어 그 행위와 감정의 동기를 헤아리기 쉽지 않���. 이 영화가 광주를 그리는 방식은 <화려한 휴가>의 그것과 유사하고, 소시민이 각성한다는 흐름은 <효자동 이발사>(2004)나 <변호인>(2013) 등과 닮아있다. 특히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대부분 영화가 비판받는 지점을 이 작품 또한 빗겨갈 수 없는데, 바로 계엄군에 의한 학살의 재연이다.
여기서 <택시운전사>의 사실성 논쟁이 시작된다. 전남도청 앞 계엄군에 의한 시민 학살 광경은 반드시 제시되어야 하는가. 만약 그래야만 한다면 의도는 무엇인가. 분노의 축적인가, 애도의 표현인가.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그럼에도 안타까운 것은 그림이 또렷해야만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영화가 과연 그러한 장면으로 표현의 사실성을 획득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뚜렷한 답이 제시되지 않는다.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그릴 수 있는 학살의 범주는 제한적이다. 광주항쟁이라는 역사적 상황에 존재하지 않은 우리는 지근거리에서 M16 소총에 맞았을 때 신체가 어떻게 파괴, 분해, 해체되는지 알지 못한다. 대다수 영화는 이러한 관객의 무지에 기대어 사격하는 군인과 쓰러지는 군중, 그리고 혈흔 정도로 학살을 재연하려 한다. 때로는 한층 자극적인 부상자의 모습이 등장하는 사례도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이들은 현실을 대체할 수 없다.
당시 힌츠페터가 실제로 촬영한 영상 속 희생자의 모습은 참혹함 그 자체다. 특정 경우에는 문장으로 묘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시신이 형체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진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극장에서 공개적으로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한다면 심의 단계에서 검열되고 말 것이다. 모든 사례에 대입할 수는 없겠으나, 대체로 비극적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하다.
영화 산업의 특성상 불가능하니 각색으로라도 사실성을 재연해야 하는 것일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액트 오브 킬링>(2012)과 <침묵의 시선>(2014)을 떠올리게 된다. 두 작품은 1965년 인도네시아 반공쿠데타 당시의 학살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2부작이다. 장르적 특성상 사실성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영화는 결코 사진이나 영상 등 학살 자료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사실성을 획득하려 하지 않는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가해자를 찾아가 학살의 이유를 묻는 피해자의 담담한 자세, 학살을 재연하며 웃다가 주변에서 쏟아지는 침묵의 시선에 굳어가는 가해자의 표정을 통해 비극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리고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과거가 현재의 시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역사적 평가가 어느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짐작케 한다. 참혹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과거를 통해 현실을 직시하며 사실성을 얻은 것이다.
다만 <택시운전사>의 극적 각색이 영화 제작자의 역사 해석 방식을 드러내고,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정 이데올로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일련의 광주 영화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과 역사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실성의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지만, 장훈 감독은 해방구로서 광주의 민주성과 시민의 저항의식을 제시하며 광주항쟁의 '진실'을 전달하고 있다.
광주의 진실을 운반하려는 영화의 사명은 특히 무겁다. 사건이 발생한지 40여 년이 지나고 학술적 평가가 마무리되었음에도, 끊임없이 허위사실로 인해 왜곡되고 마는 것이 광주항쟁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급격히 우경화하면서, 이제는 단단히 굳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피해자의 고통과 국가의 사죄가 일부 집단의 망언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이에 <택시운전사>의 극적 각색은 피상적이고 게으르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진실에 관한 기억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요컨대 이 영화는 사실의 측면에서는 사료와 구술에 지고 말았으나, 진실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효용가치를 지닌 채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파발로 복무하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장치는 이 영화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장훈 감독은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장치로 <택시운전사>만의 차별성을 만들어낸다. 다른 광주영화 주인공과 달리 만섭과 힌츠페터는 광주에 연고를 둔 인물이 아니다. 이에 외부자로서 우연히 광주항쟁을 목격한 만섭과 힌츠페터는 그날 함께하지 못한 모든 시민의 분신이자, 광주에 대한 우리의 부채감을 대변하는 상징이 된다.
영화는 결말에 이르러 만섭의 택시를 통해 금남로와 광화문을 연결한다. 오늘의 변화가 광주와 맞닿아 있다는 암시일 것이다. 이로써 <택시운전사>는 이름 없이 스러진 광주 시민에 바치는 슬픈 찬사가 된다.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에게는 아직 발포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실을 확고히 다져야 하는 사회적 의무가 남아있다.
광주의 비극은 이후의 모든 삶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었다. 죽어간 이와 그 유족을 위해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뜻밖에 살아남은 자의 사명이다. 40여 년이 흘렀다. 여전히 밝히지 못한 진실이 많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명백한 진실 위에 황당한 거짓을 덧대려 한다.
폭력을 기억하고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을 감싸 안는 일이다. 왜곡된 주장은 역사가 끝내 바로잡지만, 체제에 짓밟힌 개인의 아픔은 그의 삶과 함께 소멸하기 때문이다. 죽음 뒤에 달랠 수 있는 한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손님을 두고 왔노라 울부짖던 만섭의 얼굴을 기억한다. 마침내 차를 되돌리던 그의 양심을 떠올린다. 지금 우리 곁에 필요한 존재는 망가진 내비��이션이 뭐라고 떠들든 묵묵히 자신의 방식으로 진실의 이데올로기를 전달할 영화가 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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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
나는 1992년 12월 겨울,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났다.
그 시절 평범한 가정들이 그렇듯이 IMF를 견뎌내지 못한 부모 아래 7살 무렵인 1999년 어느 추운 밤(날씨가 추웠는지 정서적인 부분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나는 이혼가정의 맡아들이 되었다.
내향적이지만 음악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호기심 많은 미취학 아동이었던 나에게, 몇 푼 안되는 월급 절반이상을 술 값으로 탕진했던 무능하고 책임감 없는 아버지라는 인간 때문에 푼돈으로 아등바등 살림을 이어갔던 어머니에게, 아직 말조차 떼지못한 젖먹이 동생에게,
매우 급진적이고 가혹한 변화였고, 낫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그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아버지라는 인간에게는 눈을 씻고 찾아보기 힘든 '책임감'을 가졌던 어머니는 핏덩이같은 자식 둘을 키워내기 위해 밤 낮을 고생하여 푼돈을 모아갔다. 당대 전업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경력 단절과 여성 임금 차별을 피부로 겪어낸 사람이다.
내 기억에는 어머니는 전북대 영문학과 전공을 살려 스테레오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외국 방송이나 교육 ���송을 밤에 자는 우리가 깰까봐 숨죽이고 시청하며 낡아빠진 사전을 뒤적이며 공부하여 낮에 영어 학원 일을 하셨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나날이었을 것이다. 당신의 전남편의 폭력에 미처 회복하지도 못한 여리고 부실한 몸으로 두 아들을 키워내겠다는 일념하나로 견디어 왔을 것이다. 어스룸한 밤이었을까. 집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던 어머니 모습이 가끔 외할머니집에 가면 생각이 난다. 그 무렵 나도 원인모를 병에 오래 앓으며 누워 지냈던 것 같다.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 이후에도 술에 잔뜩 취해 우리가 지내는 샛방, 정확히는 자신의 장모, 장인어른이 있는 집에 새벽이 되면 찾아와서는 자는 우리들을 깨우고, 알아들을 수 없는 알콜 중독자 같은 말들을 내뱉으며, 자신의 신세를 탓했다.
매번 당신의 장인과 장모가 겨우내 타일러서 보내고 나면, 악몽같은 밤을 지나 고요한 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고요함이 아까웠는지 나는 할머니가 일어나는 시간인 6~7시에 같이 일어나는 습관이 생겼었다.(기립성 저혈압도 있어서 바로 일어나면 다시 잠깐 기절하곤 했는데.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나의 관심사는 외부보다는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잠식되지 않게 도와주신 건 할머니 덕분이라는 것을 안다.
중학시절을 지나, 고등학교 1학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여느 때와 같이 머리 꼭대기까지 술에 절여진 당신은 집 현관문을 두드려, 잠귀가 예민한 외할머니를 깨웠고, 꿀물이라도 한 잔 맥여 보내려는 선한 마음을 짓밟기라도 하듯, 우리들을 깨워 역겨운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견뎌냈겠지만, 사춘기가 오고, 불만이 많아진 고등학생인 나는 그 날 따라 차오르는 분노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마 양아치 소굴이었던 전주예고에서의 학교 폭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 표정이 아니꼬았는지 당신은 빰을 치기 시작했고, 지켜보던 외할머니께서 말리다가 넘어지셨다.
처음으로 이성의 끊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당신은 울고 있고, 작게 이마가 터져 있었다. 내 주먹도 부어 있었고, 밖에는 경찰이 와 있었다. 아마 내 얼굴도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으리라.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른 자식을 패륜아라고 말한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를 심각하게 어그러지는 행동인 '패륜을 저지른 자'를 뜻하는 한자어라고 한다. 좀 더 쉬운말은 '후레자식'이 있다.
그 무렵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에서 패륜아가 되어 있었다.
훗날 효자동 어느 자그마한 카페에서 당신의 회고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밤 당신은 경찰의 연행을 거부하고 귀가 조치되어 효자동에서 중화산동까지 '울면서' 걸어갔다고 했었다. 이미 성인이 된 나에게 연민이라도 바란 건지 뭔지는 의도 따위는 알 생각조차 없지만, 뭔가 가해자 취급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더러웠다. 나는 나의 패륜을 단 한순간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제대로 '패륜'하지 못해서 아쉬울 지경이다.
근데, 사실 나의 정의에서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데(옳아야 한다고 믿는데) 무언가가 가슴에 응어리지는 것처럼, 후련하지는 않다. 더럽게 찝찝하고 복잡한 기분이다. 지금도 그 때의 기억과 감정이 이리도 선명한 것을 보면.
스무살을 넘겨낸 나는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나는 나의 부모와는 반대로 살겠노라고.
그 말이 입밖으로 나와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을 때는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고생조차도 결국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아니꼽게만 보는 나는 진짜 패륜아같은 생각을 키워내고 있었다.
만으로 서른이 된 나는 나를 구성하는 병적인 생각들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내향적이지만 음악 감상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꼬마에서 멈춰버린 내 유년기 시절을 '아직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짓은 나의 미련함이고 부질없음이다.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허덕이고 있다면 철저하게 나의 잘못이고 나의 책임이다.
나는 당신과 철저히 반대로 살겠다고 결심한 마음가짐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책임감'이다.
근데 웃기게도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의 근본적인 원인도 '책임감'에 있음을 깨닫는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외래 교수의 입사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취업한 더럽게 작고 담배냄새나는 지하 사무실을 거점으로한 거지같은 회사에서 정부 사업 한 번 따보겠다고, 그 의욕만 있고 멍청한 사회초년생을 온갖 더러운 접대 문화에 데리고 다니며, 애가 있고, 피부가 까만 50살은 되보이는 주무관 아줌마한테 잘보이겠다고 옆에 앉히고는 허벅지고 목덜미고 쓰다듬어지는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박차고 나오지 못한 나의 '책임감'으로 말미암아 결국엔 감당하지도 못할 거면서 객기처럼 버티다가 2년도 안된 채 '번아웃'을 겪고, 지독하게 꼬여버린 나의 커리어가 그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임감이라는 방향성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난 지독히도 인복이 없을 뿐이다. 멀리서 보면 다 배움의 과정이었으리라.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창현'이라는 인성이 부족한 통통하고 친구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던 기억도, 그리고 그녀석이 어머니가 학습지 선생을 하며 가르치던 학생이 이었던 개같은 운명의 장난질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조두현'이라는 사이코패스같은 애새끼한테(조씨는 과학이다) 이가 흔들리고 피가 날 정도로 맞고도 '덩치가 큰' 네가 왜 이기지 못했냐며, 되려 나를 탓했던 담임 선생도,
수업 도중에 내 얼굴이 너무 크다며, 손으로 얼굴을 가려보라며 깔깔 거리며 웃으며 모멸감을 주었던 국어 선생도,
음악 시간에 당신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며 제 기분대로 폭력을 휘두르던 미친 노인네 선생도,
'장인철'이라는 인간을 겪어내며 밤낮으로 몸이 부셔져라 일하며 학교를 보내셨을 어머니에게 이런 상황을 말하지 않고 미련하게 견뎌내준 나의 내성적인 성격이 고맙게 느껴지게 한다.
이미 한계였을 당신에게 이런 상황을 직면하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알았음에도 외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줌의 원망도 없다. 그냥 파란만장한 어린날의 시절이었을 뿐이다.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드릴 뿐이다.
다만, 생각해보건대 이런 상황을 견뎌내가며 나의 언어적, 정서적 발달은 좀 늦춰졌던 것 같다.(어쩌면 아직도 온전치 않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외갓집 사촌들은 나를 '경계선 지능 장애' 쯤의 딱한 조카 쯤으로 여겼을것이다. 정서적으로 온전치 못하니,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잘 안됐었던 것 같다. 감정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틀어 막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좀 더 늦게 태어난 동생들의 평범한 발달�� 두드러져 보였을 것이다.(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이뻐하니 말이다.) 지금은 사람 구실을 겨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만. 우리 집을 제외하곤 결과적으로 크게 어긋난 가족은 없는 것 같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기적처럼 경찰이 되신 우리 어머니도, 방황했지만 제 살길을 찾은 내 동생도, 이제서야 내 어린날을 객관적으로 받아드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다짐한 나에게도. 이제서야 사람 구실 하는 것처럼 인정해주는 외갓집 사촌들도. 평생 자식 수발들 들고 사셨던 외할머니,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친할머니. 모두 조금은 평안에 이르셨기를. 나만큼이나 지독한 운명의 장난질에 허우적 댔을 작은 아버지, 준혁이, 민혁이형. 모두. 이제는 볕이드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파도와 악연만 있었던 내 인생에도 빛이 들어설 날이 올거라고 믿는다. 오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
이렇게 토해내듯 술회하니 뭔가 후련하기도 하다. 이제는 새로운 것들만 채워야겠다. 나는 내가 겪어낸 파란만장한 인생들을 탓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 선택은 나의 책임이다. 나의 책임감으로 내 인생을 새롭게 써야겠다.
첫 번째로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이 모든 운명의 장난질도 우습게 느껴질만큼 경제적 자유를 획득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경험들을 만끽해야겠다.
사업을 해야겠다. 사실 냉랭한 현실은 전문학사 무스펙으로 실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절실히 깨닫는다. 최대한 악랄하게 배우고 내것으로 만들어야겠다. 작년에는 막연했지만 이제는 데드라인을 정해서 닥치는 대로 읽고, 쓰고, 이해하고, 체화하고, 발휘해 내 영향력을 키워야겠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기보다 이뤘을 미래가 기대되서 시작한 일이기에. 이 답답함을 해소할 유일한 방법은, 빛이 드리워진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꿈꾸는 자유를 위해서는 이 길 밖에 없다고 믿어야겠다.
나의 착각은 나에게 용기를 줄 것이고, 그게 나의 정신건강에 유리한 방법임을 안다. 제대로 시작하자. 가지지 못한 나의 과거에 대한 집착은 오늘부로 종결을 선언한다.
2024.1.23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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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내가 따돌림당하는 걸 알게 되니 당황스럽고 힘들어.
대구대구고속도로가 인접해있어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췄다. 여기에다 단지 바로 앞에 위치한 북구 고성동 일대에 개발 호재가 예정돼 있어 더욱 눈길을 끈다. 또한 ‘안심무한책임보험’과 ‘고객감동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도 주목할 만하다 대구 바로가기: 대구에 대해 더 알아보기 안심할 수 있는 보험서비스로는 입주민을 대상으로 각종 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고 ���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입주 후 2년 동안 동탄1신도시의 수준 높은 커뮤니티 시설 이용 혜택도 제공할 예정이다. “정부, 4대강 사업 즉각 중단하라” 정부가 보(洑) 개방을 통해 농업용수를 확보하려는 계획을 강행하려 하자 농민들이 강력 반발하는 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지역본부는 18일 춘천시 효자동 강원대 실사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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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스타먼 (near Seoul Forest): 8/10
Dumpling from dumpling uncle and Seolleongtang from 효자동 설렁탕 (Yeomchang): 9/10
대장장이화덕피자 (Anguk): 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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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무렵 잠실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목격하고 제목을 메모해 놨다가, 얼마 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나는 영화 '비정성시', '효자동 이발사'처럼 굴곡진 근현대사를 살아온 무명인의 개인사에 애정이 있다. 나 자신 무명인 + 피지배층이란 분명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2016년 개인 출판했던 '세운상가 키드와 재즈'도 같은 부류에 속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수년 전 나 역시 모친 자서전을 대신 써 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올라 인터뷰를 요청했다가 단호하게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고 나니 솔직히 말해 맘 속에서 아쉬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일어났다. 아쉬움은 구술 자료가 모친 사후 나에게 굉장한 추억이 될 거 같은데 거부당해서이고, 안도감은 책으로 나오기까지 내가 감내해야만 하는 인고의 과정이 하나하나 상상돼서. 그래서 이런 책을 출판한 저자가 굉장히 부럽다. 내 또래 남자 중 열에 아홉은 아버지와 사이가 엄청 안 좋고(거의 웬수지간), 엄마를 좋아하는 편인데 왜 아버지를 인터뷰했을까 궁금했다. 유튜브에서 저자 인터뷰 영상을 보고 전부 다는 아니지만 조금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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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슬픔이후의슬픔 #광화문 #구정연휴 #효자동 #내수동 #최성아의그림작업실 #tikva #책추천 #다신북스 . . . 인문학 박사 지인에게 추천받아 @hope_edelman 의 #슬픔이후의슬픔 사서 추천의 글을 읽는데 충분히 그리고 깊이 슬퍼하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https://www.instagram.com/p/CZYzM-wl1Sx/?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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