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했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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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라고 특별히 평소와 다를 건 없다. 오늘도 역시 아침에는 청소를 해야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어제 청소기가 고장났기 때문. 청소를 하면서 종종 모터가 꺼지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다시 버튼을 누르면 다시 동작했기에 꺼져도 그냥 사용했었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한 번 꺼진 청소기는 에러표시가 사라질 때까지는 다시 동작하지 않았고, 급기야 어제는 5분 청소기 돌리다가 10분을 기다리고 나서야 다시 동작하여 청소하다 말다 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꺼지는 동작이 언제 일어날 지 몰라 발생했을 때 동영상으로 촬영을 한 후, 엘지 서비스센터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갔다. 한국에서는 제품 구입할 때 아예 주지도 않는 인보이스를 달라고 해서, 집에 돌아와 한참을 뒤지다가 결국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구입처 어플을 통해 찾아 보낼 수 있었다. 암튼 어제 그렇게 청소기를 맡기고 왔다. 청소기를 맡기며 청소기를 다시 찾기까지 난 청소를 못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말았다. 한국이었으면 대체품을 빌려주었을 것이다. 아니면 한국사람들은 청소비용 달라고 했을 테니까.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친절하고 미안한 표정의 답변에 그냥 돌아왔다.(설마 수리비 받는 것은 아니겠지.) 그래서 오늘 청소는 청소포를 찾아 대충 먼지를 훔쳐내고, 커다란 빗자루로 냥이 화장실 모래등을 주워 담는 식으로 간단히 하고 말았다. 모레 또 출장 가는데 내일 연락을 받고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구입한지 넉달도 되지 않았고, 고장이 난 데다가 모터든 와이어 결선이든 바꾸는 건 아무래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으니 더 답답하다. 여튼 열대 우림 기후 지역에 살면서 배터리를 사용한 제품이 느닷없이 고장난 경우가 한 건 늘어 넉달만에 총 4건이 되었다. 이번 주에는 지난 출장 때 빼앗긴 배터리 때문에 보조배터리를 하나 더 사긴 했는데 그것마저 고장날까 조금 겁이 났다.
오늘 점심은 아내 회사 동료를 포함하여 넷이 멕시코 음식점에서 먹었다. 그 분은 결혼하여 아이도 있는데 11월부터 일해야 해서 홀로 이 동네로 급하게 이사왔다. 아이가 이달에 오기로 했는데 여권 이름과 이곳 유학관련 서류 이름이 달라 3주 째 연락 없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고. 여튼 그런저런 사연으로 한국에 가족을 두고 홀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 같아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아침에 아내를 회사에 데려다 줄 때 같이 가는 분인데 항상 뒤에 타니까 얼굴 못보고 목소리만 듣다가 처음 얼굴을 보게 되니 조금 처음 뵙는 분 같고 재���있었다. 식당은 원래 바로 운영하는 곳이긴 한데 처음 가봤고, 직원들이 산타 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많아 집에서 느끼지 못했던 연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소스가 4병 나왔는데 한국에선 못보았던 초록색 타바스코 소스와 하바네로, 초록색 할리피뇨 소스가 새로웠다. 하바네로는 엑스가 3개인 엑스트라 핫인만큼 엄청 매웠다. 집에서 이런저런 조리를 하다보니 소스에 관심이 많아진다. 음식 사진도 조금씩 찍고 있는데 맛을 기억하려고 혹은 플레이팅이나 보이는 재료를 기억하려는 목적이기는 하다. 저녁엔 아이가 고기 구워먹고 싶다고해서 나가 먹으려고 식사 준비를 안했는데 달리기 몇 분하더니 밥 맛이 없다고 집에서 먹는다고 해서 저녁 차리는라 조금 힘들었다.
오늘은 수영하면서 수영장 주변에 떨어진 플루메리아를 보았다. 이게 이제서야 꽃을 피우는 나무인 걸 알았네. 작년에 놀러왔을 때는 향을 거의 못 맡았는데 이번에는 은은한 향이 좋았다. 물론 필리핀의 하얀 플루메리아가 향이 제일 좋긴 했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마음챙기기 하기 전에 하늘을 보니 별이 많이 별자리를 좀 찾아봤다. 북쪽 하늘의 작은곰자리는 이곳이 남국이라는 걸 증명하듯 수평선 아래에 걸쳐 있고, 아는 건 오직 오리온 하나뿐이었다. 한국에서 보던 오리온이 왼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니 유럽인이 이곳에서 오리온을 보았다면 거인이 쓰러졌다고 말했을 것이다. 카시오페이아의 위치를 찾았으나 밝은 별 하나 밖에 보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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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3시에 집을 나섰다. 차를 끌고 공항으로 가던 중 옛날 생각이 난다. 공항버스 첫차로 어둠을 뚫고 다닐 때. 이렇게 일찍 공항에 가도 사람들이 있을까 걱정하던 시절. 이제는 세계 어느 공항이든 아무 데나 누워 잠만 잘 잔다. 격세지감에 혼자 피식 웃었다. 연인은 이틀 먼저 출국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일정을 소화한 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외국의 한 지하철역에서 만���기로 했다. 너는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산다. 우리는 구속하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는 지난한 과정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을 때 오히려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임질 게 많은 어른일수록 그랬다. 붙잡는다고 붙잡을 수 없고 놓아준다고 놓을 수 없는 게 관계다. 우리는 약 일주일 만에 만나 떨어져 있던 동안의 삶을 공유했다. 처음 와본 도시에서 술에 취해 인파 속을 걸었다. 유명하다는 음식을 끼니 상관없이 차례로 사 먹고 상점들을 지났다. 아침이면 공원에서 러닝을 했고 저녁에는 취할 때까지 마셨다. 연인이 술에 취해 잠들면 호텔 밖으로 나와 유명한 길거리 음식들을 포장했다. 빈티지 샵을 다니며 비싼 걸 어떻게든 싸게 사려고 노력했다. 수년간 가지고 싶었던 피규어 앞에선 이성과 감성과 감성이 충돌했다. 여행을 마친 연인은 하루 먼저 귀국했다. 배웅하고 역을 나오는 길에 처음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기분이 다시 들었다. 소중한 사람과도 함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혼자서도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혼자인 만큼 삶의 중심을 내 안에 세워야 한다. 이건 사랑과는 별개다. 벌써 몇 번째 함께하는 여행인데도 계속 새로운 감정을 배운다.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마음이 무뎌져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서로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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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성”
*사교성
어릴땐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누가 말걸라 치면
대답하기 싫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선생님이 지목해내고야 마는
발표시간에는 눈물이 코끝까지 오르곤 했다.
그렇다보니 이렇다할 친구도 별로 없었다.
나는 어릴때 친구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랄 것은
그때엔 내가 그렇게 조용한 친구로
남아도 왕따라던가
집요한 괴롭힘이 없었다.
사교성이 뭔지도 모르는 채
교복을 입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영부영 졸업하니
대학에서는 조금 달랐다.
자꾸 나이도,전공도 다른 사람들과
끝없이 뒤섞여야 했다.
그때가 아마 나의 첫 사회생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모임도 나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래도 나는 그걸 이어갈 방법을 몰랐다.
애정이 없었거든, 그런 얕은 관계에.
그렇게 모래성같은 사이를
오랜시간 하나둘 포기하고 나니
결국 사교성이 짙은 친구들이
나를 오래 봐줌으로서
지금의 나로 산다.
억지로는 안될 것들이었다.
그런 것 좀 없으면 어떤가
그래도 지금 잘 지내는 걸.
-Ram
*사교성
1.
말레이시아에 있었을 때 한국인을 만나면 무지 반가웠다. 그래서 더 진심으로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잘해주고 싶었고,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게 아니었나 봐. 더 이상 ‘아는 사람’에서 ‘친한 사람’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매번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먼저 대화를 걸고, 내가 먼저 웃었던 것 같다.
2.
먼저 말을 거는 편이 훨씬 많았다. 낯을 가리지 않으며, 어색한 공기도 싫어하는 편이니 꽤나 누군가들에게 말을 시켰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었다. 같은 공기 흐름 속에서 함께 웃고 있으면 순진하게도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겐 “밥 한 번 먹자”가 진심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모양새에 실망이 컸다. 사실 기대를 안 했으면 그만일텐데. 근데 그냥 그 시간(만)을 때우기 위해 사람을 사귀는 (척 하는)건 더 별로다.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진심을 다할래.
-Hee
*사교성
1.
새로 등록한 저녁 수영 강습에서 나는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 영법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마다 호흡의 타이밍, 팔꿈치와 머리의 각도, 리듬의 변화 따위를 나보다 수영을 잘 하는 분들과 강사님께 쉴 새 없이 물어본다. 수영을 얼마나 해왔는지, 연세는 얼마인지도 물어보며 너스레를 놓았다. 전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궁금한 게 생겨도 쭈뼛거리다 말고 수영 강사가 가끔 한 번 보고는 잘못된 부분을 짚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렸던 스무 살 초반의 나로서는 요즘 나를 스스로의 미래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렇다고 내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냐 하면 여전히 그렇지는 않은데, 뭐랄까 살아가는 스킬이, 넉살이 늘었다고 하면 맞을까. 어쩌면 수영장에 가기 싫을 때마다 십수 년째 새벽 수영 다니는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같은 반 어른들이 편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다 적막이 찾아오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여전히 만만한 MBTI 이야기를 꺼내든다. 얼마 전 샤모니에서부터 트레킹 내내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부부가 그랬고, 지난 주말 안동에서 오랜만에 만난 산친구와 그의 다른 산친구들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내가 스스로를 지독한 I 성향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놀라워하며 내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성 넘치는 모습은 내가 늘 선망하던 모습이라 그 말들이 괜히 칭찬처럼 들렸다. 심지어는 이상하리만치 반짝거리며 선명하게 마음 위로 떠��랐다. 이참에 더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이라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Ho
*사교성
사교성이 좋은 편이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이랑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엔 여행이 제격인데..
요즘엔 현생의 농도가 너무 진해서
내가 갔던 여행들이 다 전생같다.
지금의 인내가 나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 만은 진실이니 그것만 보고 가야겠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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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유럽내에서는 비행기로 이동했다. 처음 프라하에서 바르샤바 도착 했을 때, 난 입국심사 대비해서 여권 준비하고 있었는데 왠걸, 세관신고 할 게 없음 그냥 출구로 바로 나가면 되는 것이였다! 오호라!! 이건 마치 우리 동네에서 국내선 타는 거랑 같은 개념이잖아!! 이것이 유럽연합의 힘인가 *_* 혼자서 우와!! 이거 너무 편하고 좋은데 했다.
베를린에서 2밤을 보내고 이제는 진짜 집에 가야지 하며 루트 보고있는데 아무래도 코펜하겐-토론토-캘거리 이 루트가 괜찮아보여서 비행기 북하고 코펜하겐까지는 잘 갔다. 갈때는 스칸디나비안 에어를 탔는데 비행기 요금이 sek로 부과되길래 이건 또 무슨 화폐단위인가 하고 봤더니 스웨덴 크��나였다.
코펜하겐에 11:10 도착, 토론토 출발 비행기는 12:15 출발. 처음 북 하면서도 이거 타이트하겠는데 싶었지만 에이 뭐 eu 국가끼린데 뭐 빨리빨리 되더만 생각했는데 이것이 나의 큰 오산이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행기 놓칠뻔했고 앞으로 이렇게 타이트한 북은 절대 하지말것!! 이다.
코펜하겐 도착해서 시큐리티 나갔다 다시 들어왔고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근데 유럽연합 국가 나갈 때 커스텀 해야한다는 걸 잊은 것이다. 이런;;; 출국심사 줄은 엄청 길었고 전광판에 내가 탈 비행기는 이미 게이트 닫힘으로 뜨고. 아아;; 집에 갈 다른 루트 찾아봐야겠군 하는 순간 공항 직원이 “토론토 가시는 분-” 하고 찾고 있는 게 아닌가!! 보통 스탠바이들은 비행기 못타면 가차없이 바로 문닫고 출발하는데 이렇게 승객 찾는단 소리는 일반 승객 못 탄 사람이 15명 이상은 된다는 소리! 무슨 연결편 지연이라도 됐나보다 싶었고 다행히 앞줄로 빠져 무사히 토론토행 비행기 탈 수 있었다. 이번 코펜하겐 공항에선 처음부터 끝까지 냅다 달린 기억밖엔 없다 😅
비행기에서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바람이 잘 불었는지 토론토엔 예정보다 40분 일찍 도착했다. 토론토에서 몽롱-하게 있다가 밤이 되어서야 캘거리 집으로 왔다. 오랜만에 봐서 더 반가운건지 그릉그릉하는 뮤온 껴안고 푹 자고 일어나 집 청소하고 빨래 돌리고 가득찬 우편함 확인하고 뒷마당 잡초까지 뽑고나니 개운한것이 이제 집에 왔구나- 싶은 것이다. 프라하 수퍼에서 고양이 간식 사왔는데 뮤온이 저거 엄청 좋아한다. 이럴 줄 알았음 더 사올 껄.
아, 그리고 비행기에서 “ inside” 란 영화를 봤는데 아주 괜찮았다. 베를린에서 미술관 돌아다니며 아직 정리되지 못한 정보가 머리속에서 둥둥 떠나니는 와중에 이런 영화를 보게 되다니!! 이런 우연 참 좋은데!! 헤어질 결심, perfect day 이후로 괜찮게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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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예고편은 엄청 역동적으로 편집되었는데 실제 영화는 그렇지는 않다. 영화가 아주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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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8
하루도 빠짐 없이 이렇게 길고 긴 무엇인가를 해내는 기분이 드는 건 오랜만이다.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하는 기분이다. 아니, 한다기보단 갈구하는 기분인데,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그저 견뎌내는 일로 대신하는 기분이라고 말해야 좀 더 명확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 견딤이 아니듯 나는 견디는 것에 익숙하지도 가벼웁지도 않다.
견디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나는 조금만 내 쪽으로 무게가 쏠린다 싶으면 어깨를 빼냈다. 팔을 제꼈고, 주저 앉아 울었다. 아니, 차라리 울었으면 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을 테지만, 난 그저 스윽 발을 빼고 말았다. 견디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 왜냐면 나는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도 그저 미친듯 견디고 있는 것이기에.
나보다 레벨이 높은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마음으로 ���가갈 수 있나. 아마 나는 아직 해보지 않은 것들에 너무 많은 사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내면화하기 위해서, 나는 경험에 대한 사유를 적어두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대처를 어떻게 할지 오백팔십육만가지의 상상도를 그릴 것이 아니라, 이미 겪은 일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처했고, 그 대처가 옳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일테면, 나는 일곱명의 아이들 중 다섯을 잃었다. 그리고 두명의 아이들과 오롯이 반년동안의 시간을 보냈다. 두 아이들 모두, 모든 것이 끝나고 나와 식사를 할 때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유구무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때 깨달았다. 내 열정이 지나쳐서, 아이들을 괴롭힌 것은 처음이 아닐 테고, 나는 그걸 잘하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10년전 이 일을 할 ���도 마찬가지고, 지금까지도, 나는 제대로 된 방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충고랍시고 공격성을 내뿜었던 그녀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고 믿게 된 것도, 그리고 그녀가 그런식으로 사람을 갈라치기하고 결국 레이블을 달기 시작할 거라는 것도, (사실 이제는 그녀가 뭘 하든 별 상관이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일인데도 그녀의 그런식으로의 공격은 나를 반나절간, 혹은 그 이상 벙찌게 만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도,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도 온전치 못하게 이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리고 뚜렷한 것은, 나는 미미하고 아주 세세하게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왠 별볼일없는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했고, 잘 되지 않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해보아야 한다는 어떤 마음을 계속 심어주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맞을까? 나는 나의 길을 자주 의심한다. 한 아이가 나를 보고는 처음 온 다른 친구에게 속닥거렸던 일을 나는 종종, 자주, 아주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아이들의 평가시간이 없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을 쓰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민감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나의 행동과 말은 어떤 영향을 끼치려나.
여기까지 생각의 날개를 펼치다 보니 또 깨달았다. 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만 상상의 나래를 맘껏 풀어헤친다는 걸.
사실만을 생각하면 오늘의 사실은 그렇다.
속상해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달래주려 노력했지만, 조금씩 화를 낼 수 밖에 없었던 것.
꽁꽁 싸매고 귀여운 공룡 바라클라바까지 준비한 걸 후회하지 않는 것.
맛있는 꿀떡을 사먹은 것. (맛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날이 많이 추웠던 것.
아주 뜨뜻한 가디건을 패딩안에 입고 니싹스를 챙겨신은 것
라떼는 사먹지 않은 것
지우의 생일을 챙겨준 것
희쌤의 안부를 물어봐 준 것
아침에 사��와 달걀과 아몬드를 챙겨 먹은 것
카레를 챙겨서 먹은 것
좋아하는 영상을 본 것
다비치의 음악을 실컷 들은 것
나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퇴근 후의 나를 위해 설거지를 해 놓고 출근한 것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나누어 준 것
그리고 이건 별 다섯개 해두고 싶은데 진심 문제가 있는 것처럼 절대로 정리되지 않은 책상을 다이소에서 사온 서류정리함으로 조금이라도 정리한 것.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한 것
만들어둔 붕어빵 키링을 아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준 것
그리고 또 새로운 주문을 받은 것,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된 것,
대하는 태도를 다르게 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에게 관대할 수 있게 된 것,
남들이야 어떻든 나만의 하루를 마무리했으면 됐다고 믿게 된 것,
소중한 무엇인가를 계속 떠올리게 된 것,
결과야 어쨌든 하루를 무사히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잘 보낸 것.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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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PSTARNEWS: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 7년 만 컴백에 오열…끈끈한 사랑 담은 앨범 (종합)[현장] BANG&JUNG&YOO&MOON, sobbing during comeback after 7 years... An album made with love
(톱스타뉴스 정은영 기자) 그룹 B.A.P 출신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이 오랜만에 가요계에 컴백하는 소감을 전했다.
8일 오후 2시 서울시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그룹 B.A.P 출신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의 첫 번째 EP 앨범 '커튼 콜'(CURTAIN CALL)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가 개���됐다.
'커튼 콜'은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이 지난 2017년 B.A.P 여덟 번째 싱글앨범 'EGO' 이후 약 6년 반 만에 발매하는 앨범이다. MA엔터테인먼트 MA엔터테인먼트 이날 멤버들은 "오랜만에 쇼케이스를 하게 됐다. 감개무량하다"라며 컴백 소감을 전했다.
타이틀곡 '곤' 무대를 펼친 이후 유영재는 "무대가 오랜만이라 기분이 남달랐다. 사실 조금 아쉬운 점은 안무 팀, 댄서 여러분들이 원래 20분 정도 함께 무대를 해주신다. 오늘은 무대 여건상 6분밖에 못 모셔서 그게 조금 아쉽다. 음악방송 무대를 찾아봐 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밝혔다.
리니지2M 신서버 에덴 컴백 전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을 묻자 문종업은 "최근에 아무래도, 작년 활동 이후로 형들이랑 모이는 거, 컴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 같다. 컴백을 위한 준비를 계속 하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유영재는 "5월에 전역해서, 종업이랑 저희 멤버들이랑 같이 앨범 준비를 열심히 했다"라고 덧붙였다.
정대현은 "저는 3년 정도 공백기가 있었다. 많은 고민들을 하고 있던 와중에 종업이와 같은 회사 식구가 되면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방용국은 "저도 연초에 새 앨범을 내고 미주투어를 성공적으로 잘 마치고 멤버들과 함께 뭉쳐서 새 앨범 준비를 오랫동안 했다"라고 밝혔다.
타이틀곡 '곤' 뮤직비디오에 대해서 문종업은 "굉장히 신선했다. 영재 형이 숟가락을 들면서 노래가 시작되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무대에서 멋있는 모습 보다는 저희의 평소 모습들이 많이 담겨있던 것 같다. 마지막 군무 신이 나오는데, 저희가 공백기 후 다시 무대에 선 느낌이 잘 담겨진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정대현 역시 "저희 네 명의 끈끈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영재는 "오랜만에 다 같이 촬영하니까 즐거웠다"라며 "군무 신은 저희가 뮤직비디오 회의를 진행했을 때 넣지 않기로 했었다가, 안무 시안을 보고 너무 잘나와서 급하게 안무를 배워서 넣었다"라는 비하인드를 전했다.
앨범명 '커튼 콜'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와 관련해 방용국은 "'커튼 콜' 앨범은 의미 그대로 무대 뒤로 퇴장한 저희를 많은 팬분들이 환호로 저희를 찾아주셔서 저희가 거기에 화답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는 의미를 담은 앨범이다"라고 밝혔다.
방용국은 타이틀곡 '곤'에 대해 "따뜻한 밴드 사운드가 주가 되는 곡이다. 끝이 아닌 이별이라는 의미로 아름다운 가삿말들을 많이 담은 곡이다"라고 전했다.
해당 곡을 타이틀로 선택한 이유에 관해서는 "일단 저희가 앨범을 준비할 때 많은 곡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타이틀스러운 음악이었다. 그리고 저희의 새로운 컴백 무드와 가장 잘 어울렸다"라고 밝혔다.
포인트 안무에 대해 문종업은 "댄서 분들이 20명 정도 같이 해주시는데, 아무래도 저희 각자 개성에 맞게 댄서분들이 표현해주신다. 후렴구에 저희가 다시 뭉쳐지는 재밌는 구성이다"라고 말했다. 유영재는 수록곡 '웨이 백' 작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해당 곡과 관련해 "기타 루프가 좋은 밴드 셋 곡이다. 저희 이야기를 팬분들에게 온전히 전달해드릴 수 있는 곡"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 곡이 사실 작사를 하면서 저희가 팬분들에게 할 수 있는, 저희가 이 앨범을 만들기까지 심경을 고민하며 많이 썼던 곡이다. 그것들이 잘 담겨있다. 많이 사랑해주시면 감사하겠다"라고 밝혔다.
해당 앨범에는 'LAST'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 팀으로 활동하는 게 마지막인지에 대한 질문에 리더 방용국은 "이번 앨범의 콘셉트 자체가 저희가 B.A.P 활동을 할 때 마지막으로 만들고 싶었던 앨범의 연장선이다. 그 앨범의 기획안이 7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오게 돼서 그런 단어들이 사용된 것 같다. 저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낸 앨범이라기 보다는 저희 세계관의 콘셉트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저희는 언제든지 또 새로운 활동으로 팬 여러분들께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라며 미래를 기약했다.
또한 그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20대를 함께 보냈다. 저희의 청춘 자체가 정말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저희가 열심히 활동하면서 수많은 팬분들과 함께 만나오면서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고, 그러면서 저희들이 어린 나이부터 성장해오는 과정을 전부 다 함께 겪다 보니까 저희의 청춘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비슷해져있었다. 이번 활동을 통해서 저희는 지난 추억들을 좀 공유하고 회상할 수 있는 앨범이 됐으면 좋겠다. 그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는 앨범 활동이 됐으면 좋겠다"라는 심경을 전했다. 이들이 7년 만에 재결합하게 된 것은 문종업의 공이 컸다. 문종업은 "저희가 모이는 걸 계속 얘기했다. 작년 말쯤에 영재 형이 전역하는 시기를 보고, 영재 형이 나오자마자 다같이 모이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영재형이 제대하자마자 바로 (활동을) 해야 하니까 조금 힘들 거 아니냐. 그래서 휴가 나왔을 때 '괜찮겠냐, 준비를 미리 할 수 있으면 하겠다' 했을 때 좋다고 했다. 다 같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MA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형들을 모으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좀 당연하게 언젠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시기가 언제냐가 중요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현재 군 복무 중인 젤로(본명 최준홍)는 이번 앨범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게 됐다. 이와 관련해 문종업은 "작년 말에 준홍이한테도 얘기했었다. 준홍이도 멀리서 응원하고 있다. 다음엔 같이 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으며, 유영재는 "곡 받을 때도 준홍이가 많은 도움을 줬다"라고 끈끈한 우애를 자랑했다. 유영재는 "(젤로에게) 군 생활 열심히 해라 하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저희도 이번 활동을 통해서 좋은 모습을 잘 보여드리고, 준홍이가 전역을 하면 준홍이와도 함께 앨범을 내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유영재는 질의응답 중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대현은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안 됐고, 상황 상 가장 많이 기다렸을 순간이다. 감정이 많이 북받치는 것 같다"라며 동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오늘(8일) 컴백하는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은 현재 팬콘서트를 준비 중이다. 또한 여러 콘텐츠들을 통해 팬들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방용국&정대현&유영재&문종업의 첫 번째 EP 앨범 '커튼 콜'은 오후 6시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발매된다.
출처 : 톱스타뉴스(https://www.topstar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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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적 벨리 댄스
내후년을 목표로 삽질 ���인 '그 남자의 벨리 댄스' 책 기초 다지기 작업 중 하나. 과거에 이미 쓴 내용이 일부 있음… -=-=-=-=-=-=-=-=-=-=-=-=-=-=-=-=-=-=-
위키 백과에서 벨리 댄스는 다산을 기원하는 고대 제사 의식에서 기원했을 거로 추측한다고 나온다. 또한 하렘 여성들이 술탄에게 왕비나 후궁으로 간택되고자하는 과정에서 관능적인 몸짓으로 변했다고도 한다.
이렇게 보면 벨리 댄스는 '여성 전용'으로서 남자에겐 접근 불가 영역이어야 한다. 더구나 나처럼 '운 + 동'의 출발점이 무술인 데다 여성성이 거의 없는 캐릭터라면 더더욱 멀리해야 했을 텐데, 매주 1회 1년간 수업 참여 후 만 2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홀로 수련을 이어가는 중. 이는 (댄서로서가 아닌 몸공부 수련자로서) 이걸 해야만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나는 자칭 타칭 몸치로서 보이지 않는 벽을 넘어가 보려고 아등바등하다 수련 짬밥이 십 년을 갓 넘긴 시점에 드디어 최초 각성을 경험했다고, 이미 책에 여러 번 밝힌 바다. 그때 제대로 알았는지, 헛다리 짚은 건지 검증해야 해 춤 관련 서적과 영상을 힘닿는 대로 구해 살펴봄. 춤 자체를 본 게 아니고 그런 동작을 가능케 한 운동법과 이론을 다년간 비교 연구 끝에 마침내 자기 확신을 얻었다.
이 시기에 당연히 벨리 댄스도 살펴봤었고, 씨디롬 영상을 보고 허접하게나마 따라 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관능미를 보여주기 위한 목적치고는 말도 안 되게 힘든 내공을 오래 쌓아야 한다는 건 앎. 땅고판에서 알게 된 지인 한 분이 벨리 댄스 선생이고 초보자를 위한 수업을 개설했고 남자도 참여 가능하단 소식을 접했을 때 바로 신청할 수밖에.
일반적으로 "무술"하면 대개 쌈박질(=격투기)만을 떠올리는 듯하나 스포츠화한 맨손 무술은 여러 콘텐츠 중 일부에 불과하다. 여러 무술 분야 중에는 공부(=쿵푸)도 있다. 아마도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는 첫째, 목적이 쌈박질 아닌 다른 걸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둘째, 각성에 다다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단 의미라고 봄.
모든 몸공부의 궁극은 결국 명상일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해 명상적 요소가 없는 운동법은 저급한 것이다.
명상은 冥(=어두울 명) + 想(=생각 상)을 쓴다. 그래서 '어두운 생각'으로 착각하기 쉽다.
"어둡다"라는 것은 빛이 없기 때문이다. 또는 빛이 도달하지 못할 만큼 깊단 의미이기도 하다.
빛이 닿을 수 없으므로 눈(=目)으로 볼 수 없다. 마음(=心) 눈으로만 보인다. 그래서 상(���)을 쓴 것이다.
마음 눈을 뜨기 전까지 빛 없는 어둠 속을 오래도록 헤맬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보인다. 그럼 방황을 멈추고 그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때부터 비로소 내공이란 게 쌓이기 시작한다.
사색과 명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사색은 생각의 흐름일 뿐이다. 명상은 깨어있는 채로 의식과 심층의식이 교차하는 트랜스 상태가 핵심이다. 그 결과 저절로 몰입이 일어난다.
이 단계로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몸을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서 몸속 깊은 곳(=冥)에서부터 일어나는 변화를 관찰한다.(=想) 둘째, 단순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동안 부지불식간 트랜스로 진입한다.
힙써클, 카멜, 마야 같은 동작엔 이미 느리게 움직이는 명상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 단, 다른 분야 운동법과 마찬가지로 하단전 + 중단전 무게중심 각성이 선결돼야 한다. 또한 남이 보기엔 거의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훨씬 더 느리게 움직여야 하며 이 부분에서 명상과 춤이 충돌한다. 명상적 움직임은 외부 시선을 단철한 채 '몸 나'와 '마음 나'의 소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하지만 느리게 움직임으로써 트랜스로 들어가는 건 태극권으로도 가능하다. 반면에 쉬미는 내 몸공부 과목엔 없던 것이라 특별하다. 단순 동작을 반복하는 방편으로서 개인적으로 향후 몸공부에 큰 진전을 이룰 중요한 도구를 손에 넣은 듯한 확신이 있다.
유튜브에서 "belly dance meditation"으로 검색해봤으나 주목할만한 영상을 찾지 못해 조금 뜻밖이었다. 각자 하고는 있으나 대중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돈이 안 돼 콘텐츠를 안 만들었을 뿐이라면 이해할 순 있다.
'젊음'은 화무십일홍이다. 젊은 무술가라면 당연히 격투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나이 먹으면 그 안에서 명상적 요소를 찾아 공부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잘 늙을 수 있다.
춤도 그렇지 않을까? 젊을 때 그렇게 노력한 것을 세월이 흘러 사람들 앞에서 춤출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고 그냥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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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에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나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 경계를 구분 짓는 게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때 나를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라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오해하지 않게 얘기하면 누굴 저격해서 쓴 것이 아니기에 '누굴 얘기하는 거지?'라고 추측할 필요 없다. 그냥 전체적인 인간관계를 얘기하는 거. 며칠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론을 내려서 메모해봤다. 내 말이 정답이란 것도 아니고, 예외도 있고. 내 말의 요지는, 과거에 진심이었을지도 모를 배려마저 가짜라고 의심하는 건 너무 슬퍼진다는 거다.
덧.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들이 꽤 있다.
1) 오늘 새벽까지 '하우 투 비 굿'을 다 읽었다. 부제는 '좋은 사람 되는 법.
2) 최근에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 역시 저격 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어떤 에피소드에 대해 잘못 해석한 거지. 그처럼 내가 확신해 마지 않던 결론은 내가 빙빙 꼬아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해프닝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분명 오해가 있었을 거야.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뭘 했어야 하지?' 이런 거.
3) 어제 다큐멘터리에서 킴 카다시안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케이틀린이 우리 가족에 대해 아무리 나쁜 얘기를 했어도 나에게 좋은 양아버지였고 그 추억과 사실은 변함없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나였다�� '그렇게 좋은 양아버지였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통수를 쳐?!' 했을 것 같거든. 킴은 배신감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좋은 걸 믿는 것 같다. 난 행동으로 판단하지만 킴은 '원래는 좋은 사람이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훨씬 마음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고 '왜 난 그러지 못했지?'라는 생각도 들고, 킴이 역시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
4) 사람마다 고치고 싶은데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건 본인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요즘 느낀다. 나로 치면 남에게 무관심한 거. 절대 좋은 면은 아니거든. 하지만 남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순간 내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하니까 그걸 포기하는 거다. 또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 아빠. 늘 그 순간에 불같이 화내다가 화가 가라앉고 나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거여. 난 아빠가 아빠가 한 행동으로 후회하고 당신 스스로 상처 받는 걸 평생을 봤다. 친구한테 "그런데 아빠 같은 성격은 안 바뀌는 건가?" 하니까 친구도 "50 넘게 사셨는데도 안 바뀌는데 바뀌겠니?" 하더라.
5) 자기의 실수를 조심하려는 사람들을 늘 본다. 자신의 말버릇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걸 이미 인지하는 사람. 그럼 그 사람들은 그걸 서둘러 정정하더라. "아냐, 내가 잘못 말했어."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기분 나쁜 건 그 사람이 고의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단점을 최대한 고치려고 하는 중일지 모르는데. 그걸 이해해준다면 서로의 마음이 편해질 거란 말.
6) 설령 그들이 정말 악의가 있었다고 해도 어떨 때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넘기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다.
7) '이렇게 평온하다 어떤 또라이가 걸려서 내 일상이 또 무너질까' 하는 걱정도 때때로 들거든. 그 생각 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아는데도. 걱정했던 일이 진짜 닥치면 그때 해결책을 찾아도 상관 없는데 말이다. 주변에 또 어떤 또라이가 숨겨져 있을지를 조심하며, 안 발견하길 바라며 살고 있는 내가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어제 들었다.
/그리고 '하우 투 비 굿'이란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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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年 1月 6日 星期一
밤을 새고 새벽 네시 반에 공항버스 첫차를 탔다. 피곤하지만 잠을 잘 수는 없는 흥분된 상태였다. 더 빠르게 공항에 갈 수는 없었지만 체크인과 환전과 출국 과정을 거치니 탑승 시간이 되어버렸다. 배가 고파서 S가 사서 나눠준 샌드위치 한 쪽을 입에 욱여넣고 J가 마시던 아이스 커피를 한 입 뺏어물어 겨우 목 뒤로 넘기며 탑승을 완료했다. 맨 뒷좌석에 앉게 되어서 뒤쪽 승무원이 바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 참사때문에 뒤쪽 좌석이 생존율이 높다고 했었지 하는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비행기에서도 자지는 못하고 챙겨온 셰쟈신謝嘉心의 <아버지의 용접 인생我的黑手父親>을 읽었다. 책의 도입부에서 기름때 묻은 검은 손을 씻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자식에게 공부 안 하면 자기 같은 일 한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는 모습 같은 것들이 자꾸 어릴 때 보았던 내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서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참기위해 입술을 꽉 물었다.
책을 반 정도 읽었고 나리타에 도착했다. 얼마 전 일 때문에 착륙할 때 조금 긴장되었지만 다행히 순조로운 착륙이었다. 가족 단체카톡방에 비행기를 탄다는 말을 올려야 할까, 해외여행을 간 줄도 몰랐는데 사고가 나게 되면 더 황당스럽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조금 했지만 결국 카톡방에 말하지는 않았다. 도쿄의 공기는 맑고 차가웠지만 서울보다는 따뜻했다. 핸드폰으로 하는 입국심사 질문란에 전과가 있느냐 하는 항목이 있었다. 얼마 전 일본 입국을 금지 당했다는 전장연 박경석 대표가 떠올랐다. 나도 곧 전과가 생기면 다시 못 오려나, 그냥 없다고 거짓말로 체크하면 입국은 할 수 있으려나, 같은 생각을 했다.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까지 무정차로 날라주는 스카이라이너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 승차권을 발권하고, 개찰구를 통과하고, 탑승해야 할 플랫폼이 어딘지 찾고, 일반열차로 환승하고, 모든 것들이 어수선하고 버거웠지만 다행히 잘못되지는 않았다. 한국어 안내가 꽤나 친절해서 도움이 되었다. 이동하는 내내 모든 것이 이상했다. 사람들이 일본인처럼 생긴 것도 이상했고, 사람들의 입에서 진짜 미디어로만 듣던 일본어가 나오는 것도 이상했고, 차들이 왼쪽으로 다니는 것도 이상했고, 건물들의 모양도 너무 일본 건물 같아서 이상했다. 진짜 일본에 온 거다. 12시가 다되어 숙소에 도착했다. 예약했던 에어비앤비는 생각보다 좋았고, 숙박업소가 아니라 정말 일본 가정집을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다. 니혼즈츠미 니초메日本堤2丁目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동네가 무척 조용하고 길에 사람과 차가 많지 않아서 신기했다. 내가 묵을 방에 창밖 풍경이 가장 예쁘다고 다른 두 명이 질투했다.
숙소에 도착만 했을 뿐인데 이른 비행시간과 촉박했던 출국 수속과정 때문인지 다들 지쳐있었다. 편의점에서 니꾸망을 사먹고 잠깐 쉬었다가 J가 찾아두었던 작은 경양식집에 갔다. 지긋한 나이의 사장님 내외가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아주 오래된 가게 같았다. 너무나 일본스러웠다. 주로 홀을 보는 아드님은 웃는 상의 두툼한 일본 곰이어서 게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았다. 매일 런치 메뉴가 바뀌는 가게였다. J는 오므라이스와 클램차우더가 나오는 런치 A를, S는 치킨카츠와 야채볶음과 베이컨 에그가 나오는 런치 B를 주문했다. 나는 A를 주문하려다 벽을 가득 메운 메뉴 소개에 홀려 비싼 함박을 주문했다. 바쁜 점심시간에 런치메뉴를 시키지 않은 죄로 J와 S가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가 되어서야 함박이 나왔다. 아마 J의 오므라이스가 서빙되기 직전이 되어서야 사장님 아드님이 함박 고깃덩어리를 양손 사이에서 던져가며 치대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일행과 음식이 나오는 시간이 맞지 않아 분위기가 애매해졌지만, 가게의 공기와 함박의 맛으로 모두 용서가 됐다. 고기 알갱이가 두꺼웠고 질감이 투박했고 데미글라스는 와인의 시큼한 향이 도드라지는 깊은 맛이었다. 가게의 세월이 느껴지는 맛,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다. 한국에서 이런 맛을 내는 가게를 찾는 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비가 많이 오기 시작했다. 아사쿠사까지 20분을 걸어갔다. 걷는 게 힘들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가는 길에 오른발에 한번, 왼발에 한번, 두번이나 쥐가 났다. 비오는데 길을 가다가 우산을 들고 멈춰서서 다리 스트레칭을 하는 우스운 장면이 만들어졌다. S와 J는 내가 길에서 스트레칭하는 웃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고, 내가 너무 환하게 웃고 있어서 그냥 쥐가 난 괴로움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냥 갑자기 즐겁게 길 한가운데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사��처럼 나왔다며 아쉬워했다. S가 알아둔 아사쿠사의 유명한 말차 아이스크림을 먹고 센소지를 구경했다. 새해가 와서 그런 건지 월요일 오후였는데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주변의 일본인이 하는 걸 보고 그대로 따라서 50엔 동전 한 개를 던져넣고 소원을 빠르게 빌었다. 건강, 송사, 졸업, 미래 같은 것들을 민첩하게 생각했다. 약수터처럼 물이 흘러나오는 샘과 작은 바가지가 있었는데, 안내에 따르면 오른손으로 바가지를 들어 물을 떠서 왼손을 먼저 씻고, 그다음 오른손도 씻고, 다시 왼손으로 물을 떠서 한 모금을 마시면 된다고 했다. 그림과 일본어로 설명되어 있는 안내를 읽으며 겨우 따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걸 하면 뭐가 좋은 건지는 안 읽고 따라하기만 했다. 뭔가 좋아지긴 하겠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100엔을 넣고 나무 막대기를 뽑아 운을 시험하는 것도 해보았다. 나는 길吉, J는 말길末吉, S는 흉凶이 나왔다. 나는 작년 한 해는 좋은 것이 많았던 만큼 나쁜 것도 많았던 해여서, 나쁜 것이 씻겨 나갈 것이라는 말이 기분이 좋았다. J는 점괘를 읽는데 나쁘지만 좋아질 것이다, 별로지만 견디면 괜찮아진다 같은 말들만 쓰여 있다며, 이게 무슨 길이냐며 깔깔 웃었다. S는 센소지가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며 읽지도 않고 점괘를 쇠꼬챙이에 묶어버렸다. 흉한 점괘들은 이렇게 쇠꼬챙이에 모아 태워버린다고 했다. 어쨌든 흉한 것들은 불에 타버릴테니 괜찮아질 거라고 웃으며 위로했다.
센소지를 나와서 숙소에서 즉석으로 찾은 일본 전통 디저트집을 갔다. 나는 안즈미츠마메라는 걸 시켰는데, 흑당 시럽, 한천, 팥콩, 살구가 함께 나와서 정말 맛있었다. 내 것은 앙금이 없었고 다른 친구들이 시킨 것들은 앙금이 있었는데, 둘 다 맛은 있지만 앙금이 너무 달아서 많이 먹을 수는 없는 맛이라고 했다. J는 속이 니글니글해졌다며, 빨리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저녁은 아사쿠사바시에서 여행 전에 미리 말했던 징기스칸을 먹으러 갔다. 아사쿠사바시역 출구를 나오자 커다란 은행나무가 아직 노란 은행잎에 가득 붙어있는 채로 우리를 맞이했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가는 사이로 비에 젖은 은행잎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도쿄의 1월은 은행잎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고 예뻤다. 징기스칸은 고기가 불판에 자꾸 달라붙어서 굽기 쉽지 않았지만 양고기가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어깨살이라고 적혀있던 부위가 참 도톰하고 맛있었다. 나와 J는 하이볼 60분 무제한으로 알딸딸하게 취했다. 5인분에 곁가지를 여럿 추가해서 먹었는데 팔천 엔도 나오지 않아서 뿌듯했다. 가게의 프론트맨(S가 그렇게 지칭함)이 참 자그맣고 귀여운 인상의 일본 청년이었다. S는 그 청년의 허리가 너무 아름다워서 팔로 안기 좋아보인다고 했다. 나갈 때 프론트맨이 다른 테이블의 내역으로 계산을 잘못 하는 바람에 그의 앞에 오래 서 있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양고기 냄새를 풀풀 풍기는 채로 지하철을 타고 ���카이트리로 이동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본 도쿄 사람들은 옷이 모조리 새카맸다. 지하철 문이 열리면 타는 사람들이 내리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기다려주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J의 목표는 스카이트리에 있는 포켓몬 센터였다. J는 흥분된 상태로 쇼핑을 마쳤고, 이후 전망대를 올라가보려 했지만 비가 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앞 로손에서 맥주와 먹을거리를 사천 엔을 넘게 가득 사 왔다. 편의점에 먹고싶은 음식이 너무 많았다. 나는 맥주 한 캔과 함께 욕심을 부려 시오야끼소바, 돈지루, 톳 두부 샐러드, 그리고 노자와나라는 처음 보는 갓과 비슷한 야채를 와사비에 버무린 샐러드를 사왔다. 노자와나는 맛있었지만 와사비 맛이 너무 강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소바는 예상했던 맛으로 맛있었다.
돌아다니는 동안 계속 비가 와서 꽤나 추웠다. S와 J는 숙소에 있는 작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욕조가 엄청 작아서 무릎을 끌어 안고 앉아야 욕조에 몸을 넣을 수 있는 정도였지만, 둘다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바닥난방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지만, 히터를 켜니 춥지 않게는 잘 수 있었다. 거실에 있는 테이블에 셋이 모여 각자의 음료와 먹을거리를 나눠 먹으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내일의 일정을 계획하고, 오늘 쓴 돈을 정산했다. 대체로 S가 모두의 의견을 모아 큰 틀에서의 동선을 기획하고, J는 주로 식당이나 목적지를 정하고, 나는 길 찾기와 정산을 담당했다. 꽤나 유려하게 여행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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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빈이랑 일본여행。
예빈이랑은 열 다섯살 때부터 친구인데 맨날 스무살 되면 여행가자가자 한 걸 올 봄에 갔다.
시모노세키에서 스시도 맛보고, 저녁엔 야끼니쿠도 먹고, 호텔에선 복숭아맛나는 스파클링 알콜음료도 한 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그냥 그런 소소한 시간이 좋았다.
쇼후엔에 가서 말차 한 잔 마시면서 아직은 꽤 쌀쌀한, 곧 벚꽃이 필락 말락한 선선한 공기를 느끼는 시간도 좋았다.
먹고, 마시고, 하늘보고, 산책하고, 사색하고.
사실, 서울에서 하던 것들을 그대로 장소만 바꿔서 했을 뿐인데
낯선 장소에서 환기되는 ‘그 분위기’라는 것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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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을 쓴다는 말은 왠지 그럴듯하게 들려서, 결핍이나 불안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을 멋지게 이름 붙였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이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식이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평온할 때는 아무런 글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기쁨이 되는 것들을 적을 때조차도 그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기쁨이었던 것은 몰랐다. 어딘가 세상에 자취를 남기듯 글이 남는 것이 좋았다. 그런데 아무리 글이 좋아도, 몇 문장 적기 위해 불안정한 것보단 안정적이고 소재가 없는 편이 이롭겠다. 여태 이게 평온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는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지는 걸 보니 무사히 평안을 누리고 있었구나. 소강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피어오르는 문장들을 누르고 미루다가 이기지 못했다.
2. 낭만이 고갈되었다고 했을 때는 새로움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어여쁜 성장이었다가 애처로운 성숙이었다가 반갑지 않은 노화가 되어버린 이 변화의 단계 속에서 몸도 마음도 닳고 소모된다. 새로움이 없다는 것은 평온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 내게 더이상 가슴 떨리고 두려운 처음이 없고, 반가운 두 번째와 익숙한 세 번째, 지루한 네 번째, 지겨운 다섯 번째만 남았다는 것이 내 삶을 얄팍하고 단조롭게 만들었다. 무거워지는 몸과 함께 감정과 정신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방법만 알 수 있다면, 무게 추를 전부 제거하고서 튀어 오르는 발걸음과 붕 뜨는 마음을 회복하고 싶다가도 어지러운 새로움 속에서 위태로울 자아를 생각하자니 겁이 나서 고개를 젓고 말아버린다.
3. 드디어 나를 멀뚱히 쳐다보던 현실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은 것보다는 슬픈 것에 가깝다. 요즘에는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도 사그라들었다.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도 전만큼 크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고 싶기도 하다. 변덕스러운 사람이라 이러다가 또 내일 아침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말처럼 평범한 것도 어렵다는 것을 이제야 인정할 수 있다. 그동안 내 그릇에 맞지 않는 허황된 꿈을 꿨던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고 하나씩 소거하며 방향을 잡아보려고 하고 있다. 슬픔이 찾아와도, 현실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오롯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까 후회도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이따금씩 아주 조금만 아쉬워하다가 말고 지내기로 하는 거다.
4. 지금 현재는 사랑의 부재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 어쩌면 내게는 사랑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유치한 체념을 할 때쯤 들려오는 좋은 소식에 그나마 정신을 바로잡았지만, 여전히 내 곁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힘들다. 주변에서 열심히 연애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그냥 사랑 말고 연애를 할까 흔들리기도 한다. 분명 나에게 맞지 않는 처방인데, 사랑이 없는 연애 속에서 내 결핍은 불어날 걸 알면서도 올해가 지나기 전에는 규칙적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만나는 대상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을 쉬이 떨칠 수가 없다.
5. 개운하고 맛있는 대화를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싶지만 답답한 건 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아직은 오만을 버리는 연습이 더 많이 필요하다. 나의 만족을 내려놓으니 간지러운 부위를 긁어볼 시도마저 좌절되어도 괜찮았다. 나도 이제는 듣기 좋은 말을 제법 자연스럽게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한 점 거짓 없이 솔직한 것보다는 나를 속여서라도 상대를 무안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렇게 나를 속이는 훈련이 쌓이다 보니 실제로도 제법 단순해졌다. 융통성이라고는 없던 나에게 새롭게 생긴 단순함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데, 이대로 고유의 색을 잃게 될까 멈칫하게 된다. 보편적인 선호에 나를 맞추고 싶은 건지 나를 지키고 싶은 건지 갈팡질팡이다. 무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잠깐 보류하기로 했다.
6. 유년기부터 마음속에 품었던 욕구가 있다. 한때는 당연히 올 미래였고, 그러다가는 간절한 꿈이었고, 지금은 철없는 환상이 되었다. 완벽한 짝은 있을 수 없다고, 그냥 세상이 그렇게 설계된 것이라고 위안 삼으며 기대치를 아무리 낮추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실망이 뿌리를 내리면 이 마음을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안되었나 보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도 죄책감이 든다. 너를 그냥 이대로 사랑하고 싶다. 다른 것들에 앞서 부족함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 않도록 애를 쓰면서도 맥을 못 추리고 힘없이 무너지는 나라서 미안하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는 데 시간이 필요한 나라서 미안하다. 이렇게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 미안하다.
7.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입맛에 맞지 않는 사담을 늘어놓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 궁금하지도 않은 각자의 얘기만 나누는 영양가 없는 사이가 되었을지 모르겠다. 가끔 내가 용기 내 하는 질문은 그대로 튕겨져 나와 허공에 어색하게 둥둥 떠다닌다.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 옆에서 나는 매번 작아진다.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나누지 못한 사연을 한가득 안은 귀갓길 공기는 나를 외롭게 만든다.
8. 서로 삶의 속도가 다르게 흘러가다 보니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 몇 가닥에 의존해 관계를 연명한다. 어느 날에는 가늘게 붙어있는 숨마저 툭 하고 끊기게 되는데, 그걸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저만치 멀어져 남이 된 후였을 것이다. 우리에게 없는 건 마음이 아니라 시간뿐이니까 괜찮다고 말했었다. 실상은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시간과 거리가 허락하는 근접성이 부재하면 그 관계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도무지 적응하기 어렵다. 미룰 수도 없는 일이라면 차라리 선수쳐 마음속에서 정리하는 방법도 깔끔할 테다. 이미 자발적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도 없는 지경의 그 관계를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까지 완전히 숨이 사그라져 소멸되기를 기다린다.
9. 더운 게 싫다. 더운 건 싫지만, 여름을 싫어하기에 여름은 너무 청춘이다. 지나치게 청춘이다. 여름에는 모든 것이 청춘이라는 단어로 용서된다. 내 청춘이 아무리 힘없고 약해도 여름에 속아서 지나친 청춘인 척을 한다. 내 청춘이 낭비되는 것 같아서 불안할 때쯤 여름이 온다. 닳아날 것처럼 멀어지다가도 기특하게 나를 찾아주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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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과대표를 했었어요. 이전에는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 위주로 진행 돼서 제가 직접적으로 이렇다할 역할을 직접 하지는 못했죠. 최선으로 뭔가를 하더라도 활동에 제약이 크다보니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코로나가 해제 되면서 과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새내기 맞이하는 프로그램들을 현장에서 직접 담당하게 됐어요. 일정에 차질 없이 끝내거나 큰 사건 없이 잘 마무리 됐을 때 성취감을 느꼈죠. 코로나가 모든 걸 나쁘게 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제게 있어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현실의 작은 일에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는 거죠. 예전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들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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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ght) “I was the class president. I hadn’t been able to play such a hands-on role before, since classes weren’t held in person due to COVID. I think I’d been limited before, no matter how hard I tried, because activities were so heavily restricted. But as the pandemic eased, I personally took on the responsibility of leading class events and programs for welcoming new students. When a program went just as planned or ended without a big incident, I felt such a sense of accomplishment. COVID might’ve made everything awful. But for me, the silver lining is that I’ve come to feel real satisfaction about even the little things in life. Because there was a time when I couldn’t do them even if I wante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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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movie review #1
<나나>
"인생은 내가 바꾸는 거야"
영화 <나나>를 봤다. 내가 이 영화를 전혀 몰랐을 때도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 신은 오며 가며 봤던 기억이 난다. 이 영화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내가 <나나>를 학생 때 보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히 나나가 되고 싶어 했을 테니 말이다. 아니 오히려 그때부터 나나가 되려고 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고 있으려나.
음악영화를 좋아한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영화에 음악영화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올해 들어서 영화를 더 자주 보겠다는 다짐을 했고 볼 만한 영화를 찾아봤으나 보고 싶은 영화가 딱히 없었다. 음악영화는 뭐가 있나 찾아보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다. 일본 영화를 안 본 지 오래된 건 둘째치고 틀자마자 나오는 다소 과장된 연기에 영화를 당장에 꺼버리고 싶었으나 바로 이어지는 눈 내리는 장면에서 나는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옛날 영화인데 오히려 미래 영화 같은 건 왜일까. 마스크를 안 쓰고 다들 자유분방한 패션으로 한곳에 모여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마치 꿈속 같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겪은 일도 아니면서 나나의 내레이션이 나올 때마다 마치 내가 겪은 일인 것 마냥 추억에 잠겼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대사 하나하나가 소설의 구절같이 마음을 울렸다. 이 영화는 청춘과 닮았다. 미치도록 아름답고 사랑하고 울고 방황하는 20살 같았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게 오로지 연애만을 뜻하지 않는다. 언제나 제일 중요한 건 나다. 그래 나는 육아보다 음악을 하고 싶다.
"정말 행복했던 첫사랑 같은 시절이었어"
"도망친다고 해결되지 않아"
"잊지 못할 밤으로 만들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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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겨울에 만나 봄에 헤어졌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린 참 많은 걸 했었다.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널 좋은 추억으로만 남길 수 있을까.
지인들이 우리 둘이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할 때면 난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내가 생각 했을 때 너의 분위기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였기에, 비슷하다고만 해줘도 기분이 좋아졌다.
너의 우울은 깊었고 진했다. 나의 우울을 너의 우울이 집어 삼킬 만큼. 그래도 넌 여전히 너였고, 난 그런 널 사랑했다.
이 노래를 들으면 코 끝이 시렸던 12월에 널 만나고 집으로 가는 기차에서 보던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눈에 담기에도 벅찼던 노을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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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온 사진을 추리다보니 뒤죽박죽이긴 하다. 아무튼 29살을 이 사진들마냥 뒤죽박죽하고 아주 파란만장하게 살았다.
그렇게 30살이 되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다. 뭔가를 얻으려면 쥐고있는 것을 내려놓고 얻고자 하는 걸 움켜쥐어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결코 잃은 것은 없다. 다른 phase 로 Move-on 했을 뿐
최근에 깨달은 것은 인생은 무성영화라는 것. 사람과의 관계는 특히나 더. 말보다는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 일이 많다.
친절과 다정은 큰 노력이 들지 않지만 필승법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상처 받기야 하겠지만 항상 승리하는 자는 다정한 사람.
나만 생각하자. 남을 통제하거나 움직일 수 없다. 나�� 통제적 성향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래도 저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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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는 마음
요 며칠 마음이 정처없이 붕붕 떠다니는 기분이다. 업무 스트레스가 역대급으로 심해서인지 금요일부터 내리 술을 마셔서인지 모르겠다. 사실 둘 다겠지만.
열심히 했다고 (여전히) 생각하는데 자꾸만 일이 뜻대로 돌아가지 않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난 최선을 다 했어! 라고 외치며 고개를 들었더니 내 의견에 동의든 반박이든 그 무엇도 함께 해줄 사람이 없고, 당연히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다고 느껴지고. 업무에 대한 주인의식은 당연히 없고. 평소같았으면 야근을 해서라도 이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놓친 건 없는지, 뭘 더 챙겨야 할지 봤을텐데 지난 금요일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돌발적으로 들어온 업무 때문에 오후에 손꼽아 기다렸던 강연도 못 들었고, 팀장님한테 쳐내야할 업무 때문에 강연 못 들을 것 같다고 했는데 평소같았으면 '급한 거 아니면 그냥 보고 와~'라고 했을 텐데 어쩔 수 없다며 도와주시지도 못하는 걸 보고 진짜 이 상황이...끝까지 가는구나 한계에 다다르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금요일 오후를 날리고 나니 금요일까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일들도 다 하기 싫어지고 챙기기 싫어져서 원래 뭐 대세에 지장은 없지만 그래도 금요일까지 해놔야지 라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일을 내팽겨치고 퇴근해버렸더니, 그 순간엔 홀가분한가 싶더니 주말 내내 꿈속에서 그 일을 했다. 자꾸 혼자서 되뇌이다보니 처음엔 내 연차에 이정도 업무량이 과다하다(객관적으로 많은 건 맞지만)라는 생각의 비중이 커서 뭐가 잘 안 풀려도 그냥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잘 챙기고 캠페인을 끝까지 잘 마무리하려는 내 의도와 행동과 다르게 일이 전개되는 걸 보면서 이게 진짜 상황 탓이 맞는지, 내가 뭘 잘못 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업무를 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피드백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착잡하기도 하고. 이게 맞나 싶으면 아니라는 객관적 판단의 불이 켜지면서도 나의 엄살은 아닌지, 나라는 사람에게 잣대가 너무 후했던 건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거 가스라이팅 같은데 ㅋ...
아무튼 그렇게 금요일에 던져놓고 퇴근하고 난 후의 주말 이틀간을 돌아보고 있다. 평일이 지옥이면 주말이라도 즐거웠으면 좋겠는데, 내가 만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각하는 건 다음이 기대되는가, 혹은 편안함을 주는가 인데 둘 다 충족하지 못하는 시간을 내리 보냈더니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도 마음이 허해지고 만족스럽지 못하게 느껴진다. 날씨 탓도 한몫 했을 거고 업무 스트레스가 심해진 내 심리상태도 영향을 끼쳤지만... 주말동안 내가 뭘 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색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무언가 불만족스러운데 그게 주말 내내 해결되지 않은 기분이다. 분명 좋은 일도 있었는데,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일지도 모르고.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서 그냥 쭉쭉 써봤다. 아~ 출근하기 싫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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