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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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후기공유, 고 구조적인 착취 형태에 묶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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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후기공유, 고 구조적인 착취 형태에 묶여 있
오피후기공유 랑스에서도 팔레스타인 국기 문을 완전히 기괴한 것과 병합 나는 주가 있습니다. ‘? 그것 에 한 말; 그러나 Elijah McCla 위를 일관되지 않고 어리둥절 재 많은 부르주아 좌파를 포함는 피할 수없는 무언가가 브리스 부터 우리 자신의 행동에 어떤 형태로 움. 자유 주의자들에게이 세상의 오 떠난 것을 연상시킬 것”이라고 언 카메라 플래시, NHS 근로자를 빛을 발하고 책임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대표자’는 거의 항상 어떤 경제 집 아버지, 위대한 수필가이자 기회주의 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반 것이라는 희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것은 불편 함과 두려움의 실존 내 작은 숲 속에서도 시위는 스럽고 혼란스러운 본질에서 분 이없는 환경 적 결과에 대한 이해 고 ‘상황을 악화시키려는 시도 거리를 강타한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그저 감동적인 구절에서, 자신의 다. 안타깝게도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 바마와 같은 인물에게 베푸는 사 로 거리를 두는’실행 가능한 하고 그는 사람들의 사람이었 모순은 미국 파시즘의“새로운”민족적 용 마스크 및 장비에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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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개론
시편 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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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제 영어의 책명(Psalms, 또는 Psalter)은 70인역의 프살모이(Psalmoi)에서 기원하는데, 프살모이는 프살모스(Psalmos)의 복수형이다. 이것은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일컫는 말이다. 한 사본은 프살테리온(Psalterion)이라는 책명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서 “살터”(Psatter)라는 단어가 파생되었다. 프살모스는 수많은 시편에 대한 전문 명칭인 히브리어의 미즈몰(mizmor)을 헬라어로 옮긴 것이다. 미즈몰의 어근은 자말(Zamar)로서 그 의미는 “악기에 맞추어 노래 부르다” 또는 “노래하다”,“찬양하다”이다. 히브리 성경은 책명을 테힐림(Tehillim“찬양들”)이라고 한다. 테힐림은 “찬양하다”라는 하랄(halal)에서 파생되었다. 하랄은 할렐루야(hallelujah)라는 단어 속에서 그 형태를 찾아 볼 수 있다.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경전(기독교인의 구약)을 세가지로 구분하였다-율법(Torah토라) 선지자들(Nebi’im네빔), 책들(Kethubim���투빔)-.이상의 구분된 “책들”속에는 세 편의 시집, 곧 시편, 잠언, 욥기가 있다. 또한 아가, 룻기, 예레미야애가, 전도서, 에스더 등 다섯 편의 두루마리(Megilloth메길로트), 다니엘, 에스라, 느헤미야, 역대기 등의 역사서가 이에 속한다. 시편은 “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므로 이 그룹을 때때로 대표하는 명칭이 되었다(수사법에서 이것을 대유법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므로 히브리인들은 종종 자기들의 경전을 “율법, 선지자, 시편” 세가지로 구분하였다(눅 24:44). 2. 저자 시편은 수많은 작가들에 의하여 영감적으로 기록된 것이다. 아마 최종적으로 집대성 된 것은 에스라, 느헤미야의 손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들 직후의 시대에 몇몇 서기관들에 의해 집대성되었을 것이다. 시편의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시에 그 표제들이 나타나는데, 이것들이야 말로 시편의 기원을 지적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러한 표제들도 본문에 속한다. 이러한 표제들이 70인역 성경보다 오래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시편들이 편집된 이후에 덧붙여진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이 표제들에 대한 타당성과 신뢰성이 문제되고 있다. 이들 학자들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1) 이러한 표제의 기원이 모호하다. (2) 때때로 이들의 개념적 내용이 불분명하다. (3) 몇몇 시편의 내용과 문체는 표제의 진술과 암시에 어긋난다. 좀 보수적인 시편 학자들은 표제의 분명한 진술 들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 들인다. 그 타당성의 이유를 들자면, (1) 70인역 성경에 이것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고대성은 적어도 B.C.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사실상 70인역의 성경보다 휠씬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70인역의 번역자들은 수 많은 표현들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2) 이것들은 히브리 본문 자체의 일부로서 우리에게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 (3) 히브리 서정시들은 아주 초기부터 표제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4) 표제들은 이에 의하여 도입된 시편들의 의미와 기별들을 깊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경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편의 표제들 가운데 8명의 개인 이름이 나오는데 이들은 저자, 기고자, 편집자, 음악가들이거나 작곡, 편집, 거룩한 서정시의 사용과 관련된 사람들이다. 이들의 이름은 다윗, 아삽, 고라, 모세, 헤만, 에단, 솔로몬, 여두둔이다. 이들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다윗이다. 몇몇 현대인들은 다윗이 시편의 주요 작가이며 중요한 기고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견해를 뒷받침하는 많은 논거들이 있다(삼상 16:15-23; 삼하 23:1; 암 6:5). 그는 애정이 깊으며 뛰어나게 도량이 큰 사람으로서(삼하 1:19-27; 3:33, 34) 위대한 신앙과 깊은 감수성을 지녔다. 이러한 것들을 열렬하게 여호와를 경배하는 모습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의 현명하고 호의적인 지도 아래에서 이스라엘 안에는 음악이 번성하게 되었다. 이교의 요새지이며 여부스인들의 도읍인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됨으로, 또한 법궤를 시온산에 안치함으로 공중 예배의 중요성은 증가하였고, 거룩한 의식을 위한 찬미가와 작곡과 음악이 장려되었다. 다윗은 천연계와 친숙하였으며, 율법에 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역경과 슬픔과 시련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의 생애를 살았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찬란한 인생을 살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다윗의 보좌 위에 한 영원한 왕을 세우겠다는 보증을 주셨다. 이러한 체험들을 통하여 이새의 아들, 목동 왕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을 애타게 갈구하는 가장 감미롭고, 가장 비애적인 노래들을 부를 수 있었다. 더우기 시편 속에는 다윗의 생애에 대한 언급과 암시, 다윗의 개성과 탁월함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다. 시편에 언급되어 있는 다윗의 이름과 사무엘하 22장과 대상 16:1-36에 인용된 시편의 단편들은 저작권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신약 성경의 마 22:43-45; 막 12:36, 37; 눅 20:42-44; 행 2:25; 4:25; 롬 4:6-8; 11:9, 10; 히 4:7에는 다윗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들은 논증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화잇 여사의 글들도 중요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부조 642-754, 교육 164, 165). 73편의 시에 “다윗의”라는 표제(히,ledawid- 레다윗)가 있다. 제1권에 37편, 제2권에 18편, 제3권에 1편, 제4권에 2편, 제 5권에 15편이다(시편은 책별로 구분되어 있음). 이 73편의 시들은 일반적으로 다윗의 작품(수집품)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어느 시에 “다윗의” 곧 레다윗(ledawid)이라는 표제가 붙었다고 해서 그 시를 다윗이 지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히브리어의 전치사 레(le)는 수 많은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데, 저작권도 그 중에 하나이다. 때때로 레는 “…에게 속한”이란 관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레다윗은 “… 의 선집에 속한”이란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증거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윗이 이들 시중에서 적어도 상당수의 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유 명사와 함께 전치사 레가 사용되는 용법에 관하여 바른즈(Barne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제목은 선집의 모든 시들이 다윗의 손으로부터 나왔음을 의미하거나 입증하는 것이 아���다. 단지 작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다는 것을 크게 강조하는 것 뿐이다.” 12편의 시는 “아삽의”(le’asaph)라는 표제를 갖고 있다(시 50, 73-83편). 레다윗과 마찬가지로 레아삽도 저작권을 강력히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 여러 개의 시는 다윗에 의하여 기록되었음이 분명하다(시 73, 77, 80편의 개론들을 참조하라). 아삽은 레위인으로서 다윗의 찬양대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다윗처럼 아삽은 선견자요 작곡자였다(대상 6:39; 대하 29:30; 느 12:46).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포로들의 명단 가운데서 아삽 자손만이 유일하게 노래부르는 자로 언급되었다(스 2:41). 11편의 시는 “고라 자손의”를 그 표제로 한다(시 42, 44-49, 84, 85, 87, 88편). 흠정역은 “고라 자손을 위한”으로 번역하였다. 히브리 성경에서는 전치사 레가 사용되어 있는데 이 말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의”라는 소유 관념을 갖고 있다. 고라 자손들은 모세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그들의 부친 고라가 형벌을 당할 때에 그 처벌에서 벗어 났다(민 16:1-35). 그 후에 후손들은 성전 예배의 지도자들이 되었다(대상 6:22; 9:19). “고라 자손의 시”로 지칭된 한편의 시(시 88편)는 “에스라의 헤만의 마스길”이라는 표제도 아울러 갖고 있다. 헤만은 요엘의 아들이며 사무엘의 손자이다. 그는 레위 지파의 고핫 가계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성전 음악의 지도자였다(대상 6:33; 15:17; 16:41, 42). 세편의 시(시 39, 62, 77편)에는 여두둔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는 성전 음악가들의 무리를 이끌었다(대상 16:41, 42). 그는 성전 음악의 편곡, 또는 편집에 관여 하였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 제목은 여두둔 외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 이들 세편의 시는 여두둔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여두둔이 작곡한 가락에 맞추어 노래 부르도록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의 시(시 89편)에는 “에스라인 에단의 마스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왕상 4:31 참조). 두편의 시(시 72, 127편)에는 “솔로몬의”(lishlomoh, 흠정역은 ‘솔로몬을 위한’)라는 표제가 나타난다. 한편의 시(시 90편)에는 “모세의 기도(lemosheh)”라는 제목이 있다.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시에는 어떤 표제도 없으므로 작자 불명으로 볼 수 밖에 없다(이것들을 고아 시편이라고 부른다). 시편의 작곡가들 중에는 에스라,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학개와 같은 구약의 유명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추측도 있다. 3. 역사적 배경 19세기 중엽부터 표제 속에 언급된 사항들을 연구하므로 시편의 저작권과 시기를 밝히려는 근대적인 시도가 행해졌다. 근대의 학자들은 시편이 모세로부터 시작해서 알렉산더 얀내우스(Alexander Jannaeus, B.C. 78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일천년 이상의 기간 사이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들은 끊임없이 분분(紛紛)한 의견을 내고 있다. 에발드(Ewald: 영국의 번역가, 1880년)는 13편의 시를 다윗 시대에 한정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시는 포로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네(Cheyne)는 16편의 시가 포로기 이전에 기록되었으며(주로 요시야 통치 동안에), 나머지 모두는 포로기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이 중 30편을 마카비 시대로 돌린다. 성서 신학자들 사이에 고등 비평이 휩쓸게 되자 다윗과 그의 시대에 속하는 시편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이 포로 이후에 기록되었다는 생각이 일반적인 추세를 보였다. 이들은 주로 페르시아와 헬라 시대에 기록되었으며, 몇몇 작품은 분명히 마카비 시대의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그러나 세기가 바뀌면서 일반적 추세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었으며, 시편의 연대를 중간 시대, 혹은 페르시아 시대로 잡게 되었다. 이스라엘 인접 국가들의 성시 송독(psalmody)에 관한 최근의 지식을 통하여 수많은 시들이 포로 이전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아주 최근에 이루어진 고고학적 발견물들을 통하여 특히 라스 삼라(Ras Shamrah) 토판들의 발굴을 통하여(1929년 이후), 시편의 상당수가 팔레스타인 초기의 역사에 해당함을 입증하게 되었다. 부텐비제르(Buttenwieser, 1938)는 시편의 연대를 여호수아로부터 헬라 시대까지 잡았으며, B.C. 312년 이후에는 어떤 시도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보수적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시편이 일천년 간의 역사적 배경을 무대로 지어졌다고 본다. 많은 각각의 시들이 모세와 다윗으로부터 곧 이어지는 포로기까지의 히브리인들의 역사 중 어느 시기에 정확히 기록되었는지 확정될 수 없지만, 이들이 기록된 시기는 이러한 범주에 해당한다고 결론짓는 것이 괜찮을 것 같다. 시편의 수 많은 시에 관한 저작권과 시기를 확정지으려는 여러가지 가설들은 때때로 매우 기발하여 흥미를 끌기는 하지만 대개가 결정적인 것은 전혀 못된다. 시편의 표제가 가진 신빙성에 관하여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현대 학자들이 부정하게 된 이유 때문에 너무 상이한 견해들이 출현하게 되어 문제는 거의 절망적인 혼란 가운데 빠져 있다. “시편 기자”라는 단어가 이러한 설명에 사용되었을 경우, 이것은 어떤 특정 인물, 예를 들면 다윗이나 아삽 자손 중 한 사람이나 고라 자손 중 한 사람을 특별히 지적하는 것은 아니며, 일반적인 저작자를 포함하는 것으로 사용된 것이다. 수 많은 시의 저자와 그 역사적 배경이 비록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시편 전체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벧후 1:21)을 우리가 믿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최근에 이루어진 고고학적인 발굴 중에 시편 이해에 가장 두드러진 기여를 한 것은 북부 시리아의 라스 삼라에서 이루어진 것이다(고대에는 우가릿으로 불려졌다). 1929년 이후로 이곳에서는 발굴이 이루어져서 수많은 토판들이 출토되었다. 이 점토판들은 설형문자로 기록되어 발굴 당시에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었으나 한스 바우에르(Hans Bauer)교수와 도르메(P. Dhorme)의 노력을 통하여 해독되기 시작하였다. 그 내용들 중에는 고대 가나안의 종교를 다룬 신화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 문서에 대한 ���구는 일종의 특별 학문이 되고 있는데, 이를 일컬어 우가리틱(Ugaritic)이라고 한다. 우가리틱이란 명칭은 이들 문서가 기록된 언어와 원고에도 마찬가지로 주어졌다. 우가리틱은 B.C. 20세기 중엽에 서북부 시리아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사용한 가나안족의 방언이다. 히브리인들의 언어는 고대 가나안족의 언어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우가리틱 종교 문학은 구약 성경의 애매 모호한 귀절들과 단어들에 관해 많은 빛을 던져 주었는데, 특히 시편에 대하여 그러하다. 우가리틱 종교문학의 용어와 어휘는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미미한 차이만을 보이고 있을 따름이다. 시편의 모호한 귀절들에 대하여 많은 근대 비평학자들이 주장하는 것보다도 휠씬 이전에 기록된 것임을 밝히 드러내었다. 비평학자들이 마카비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시들이 B.C. 20세기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던 귀절들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들 귀절들은 헬레니즘 시대에는 사용되지 않던 것들이다. 이것은 각 시편의 표제가 보여주고 있는 이른 시기에 이들 시가 기록되었음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가리틱이 시편에 끼친 가장 큰 공로는 어휘와 문체에 있다. 한때 본래의 의미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추측으로나 알 수 밖에 없었던 모호한 구절들을 이제는 우가리틱 연구를 통하여 분명하게 그 의미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영어 성경 본문이 올바로 번역되었음을 확증하였으며, 그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가 제대로 된 것임을 확증하였다. 시편 연구에 있어서 우가리틱의 흔적을 드러낸 선구자들로는 다음과 같은 학자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알브라이트(W.F.Albright), 긴스버그(H.L. Ginsberg),고든(C.H. Gordon), 카수토(U. Cassuto), 파톤(J.H. Patton). 4. 주제 인간이 곤경에 처한다하나님께서 구원하신다. 이것은 보편적으로 호감을 사는 시편의 주제이다. 성스러운 이들 시 속에서 우리는 히브리인 뿐만 아니라 온 인간이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전능하신 분께서 당신의 손길을 펴서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세기를 통하여 시편은 유대인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도 개인 기도와 공중 헌신을 위한 수 많은 자료들을 제공해 왔는데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공적인 의식을 위하여, 기독교인은 찬미가로서 시편을 사용하였는데 모두에게 동일한 만족감을 느끼게 하였다. 인종과 신조를 불문하고 시편은 고독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기도서가 되었다. 히브리인들이 시편을 사용한 일에 대해서는 매우 흥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많다. 시편은 사생활 뿐만 아니라 공중 예배에 있어서도 백성들의 헌신을 표현하는 일에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성전 예배에서 주요 부분은 시편을 노래 부르는 것이었다. 성가대가 서로 번갈아 가며 부르던지, 성가대와 회중이 서로 응답해 가며 부르는 것이었다. 이런 일에 있어서 미쉬나와 탈무드에 의하면 주일 중 각 달마다 불러야할 시편이 정해져 있었다. 이 시편은 전제물을 부은 후 매일의 제사가 끝났을 때에 불려졌다. 대 절기들을 위하여서는 특별히 선정된 시편이 있었다.-유월절(시 113-118, 135편), 칠칠절, 초막절, 수전절(시 30, 118편), 월삭(시 81편-이날의 제사에는 시편 29편을 함께 부름), 초막절의 첫날밤 (시 120-134편). 회당에서는 성전에서의 제사가 매일의 기도로 대체되었으며, 성전 예배와 가능한 한 일치하도록 매일의 예배가 행해졌다. 성전이 파괴된 후에는 율법서와 선지서들을 낭독함과 아울러 기도로서 시편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공중 예배에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통하도록 했다. 특별한 경우에는 특정 시편을 사용하였다. 7편은 부림절에, 12편은 초막절의 제8일에, 47편은 신년에, 98편과 104편은 월삭에, 103편과 130편은 대속죄일에 사용되었다. 백성들은 위대한 할렐들을 암송하고 있었다 “할렐들” 혹은 “할렐루야들”은 상호간에 감사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시 104-106; 111-113; 115-117; 135, 145-150편). 오늘날 회당에서 사용하는 시편들은 의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동유럽계, 스페인과 포르투갈계, 예멘계, 이탈리아계 등등), 모든 의식 중에서 시편은 가장 귀중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정통 유대교인의 생활 속에서 시편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눈을 감는 순간에 이르기까지 예배자의 매일 기도 중에 주된 부분을 이루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에서 세운 양상을 어느 정도 답습(踏襲)하여 왔다. 나사렛 예수는 구약의 어떤 책에서 보다도 시편과 이사야로부터 많은 인용을 하였다. 이사야를 제외하고는 시편만큼 많이 신약에 인용된 책이 없다. 초대 교회는 예배에 시편을 끌어 들였으며(고전 14:26; 엡 5:19; 골 3:16; 약 5:13), 그 이후의 교회도 세기를 거듭하면서 이 일을 그대로 따랐다. 크리소스톰(Chry-sostom, 약 347-407)은 모든 형태의 예배에 시편이 풍부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증언하였다. 중세 교회에서 성직자들은 매 주일마다 전(全) 시편을 낭송하였다. 성 패트릭(St. Patrick)은 매일마다 낭송하였다고 전해진다. 시편은 카톨릭 의식에 있어서-로마 카톨릭이든, 동방 교회든지를 불문하고-확정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공회와 복음주의를 따르는 기독교의 예배에 있어서도 그러한 위치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는데 최근의 관측과 체험이 이것을 확증하고 있다. 인간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이란 주제를 취급함에 있어서 시편은 그 소재들을 백성들의 개인적, 국가적 생활 속에서 얻고 있다. 이들은 슬픔과 기쁨, 좌절과 성취, 실망과 만족을 수 없이 많이 체험한 자들이다. 마음에 사무치도록 깊은 체험을 하고 자신들의 감정을 자유 자재로 구사한 이들의 반응에서도 소재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은 유한한 인간의 각종 가능한 체험을 반영하며 각 사람의 정서를 실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윗의 시편은 고범죄와 양심의 가책의 깊은 구렁에서 최고의 신앙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최고의 지위까지의 모든 경험의 범위를 꿰뚫어 있다”(부조 754). 질병과 회복, 죄와 용서, 슬픔과 위로, 연약함과 강성함, 쇠퇴와 부흥, 무의미함과 의미 있음 등에 관하여 시편은 다루고 있다. 어떤 분위기와 어떤 처지에서도 그에 알맞는 시편을 찾을 수 있다. 실망과 좌절에 빠진 사람, 연로한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 질병에 걸린 사람,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지닌 시편이 있는가 하면 젊음과 활력이 넘쳐 흐르는 사람, 소망을 지닌 사람, 진실한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서 신뢰하고 승리하는 성도 등에게 알맞는 시편이 있다.어떤 시편의 경우에는 너무나 풀이 죽어서 소망의 기운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반면에 어떤 시편은 한마디의 애소의 말도 없이 오로지 찬양만 한다. 죄인이 주 날개 밑, 주님이 거하시는 은밀한 곳에서 다만 자기 홀로 하나님께 자기의 심령을 토로하는 시편들도 있다. 하나님의 성도가 경배드리는 대 회중과 함께 온갖 악기에 맞추어 하나님께 목소리 높여 찬양하는 시편들도 있다. 이 모든 시편은 인간이 지닌 모든 문제의 해결자로서 하나님을 높이고 있으며, 하나님이야 말로 궁극적인 모든 것이 되신다. 우리의 소망, 우리의 신념, 우리의 능력, 우리의 승리-이러한 것들은 메시야 안에 구현되어 있다. 그분께서 임하심으로 구속이 이루어지고, 영원한 의의 통치가 온 우주에 시작되는 것이다. 시편들 속에 그리스도께서 움직이신다. 시편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의 신성(시 45:6; 110:1), 아들됨(시 2:7), 성육신(시 40:6, 7), 제사장직(시 110:4), 배반(시 41:9), 거절(시 118:22), 부활(시 16:9, 10), 승천(시 68:18)등을 예언적 안목으로 바라볼 수 있다. “시편의 황금 열쇠는 못박힌 손 안에 놓여 있다”(알렉산더). 시편 기자는 자기의 주제를 다방면으로 전개시켰는데, 그중에서도 다음 사항들은 매우 중요한 것들이다. (1) 헌신적인 사람은 하나님 존전에 거하는 것보다도 더욱 큰 축복을 감히 상상도 할수 없으며, 그분의 존전으로부터 쫓겨나는 것보다도 더욱 큰 저주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2) 우주의 창조주, 지극히 높으신 통치자이신 하나님은 동시에 자애로운 아버지, 온유한 목자이시다. (3) 참된 신앙을 통하여 강렬한 기쁨을 체험하고 온갖 풍부한 표현을 갖게 되며, 인간적으로 가치있는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게 된다. “야훼여, 이 마음 다 바쳐 감사 드립니다”(시 9:1 공동 번역). (4) 간청과 감사는 언제나 함께 나타난다. 기도와 찬송은 단짝이다.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축복을 간청할 때, 그분의 풍성한 축복들에 대하여 감사하며, 간구하는 축복들을 이미 받기라도 한 것처럼 그분께 감사를 드린다. (5) 경건한 심령은 천연계를 깊이있게 바라다 볼때마다 창조주 하나님께 찬송을 드린다. 결코 바라 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6)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과거 생애 동안 축복을 내려 주셨으므로 현재와 미래에도 그들에게 계속해서 축복을 ��시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 (7) 의로움 올바르게 행함은 궁극적으로 상급을 받는다. 대체적으로 경건한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만족스러운 삶을 이 세상에서 누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불의-악하게 행함-는 고통을 초래하고 궁극적으로 사망이 이르러 온다. 한 동안 악인이 번영하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를 통하여 그들의 우매한 길이 드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악행을 따른 당연한 결과를 맞을 수 밖에 없다. (8)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기의 체험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 특권이요, 의무이다. 어떤 시편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 있는 강렬한 민족주의는 다른 곳에서 시편 기자가 가진 전세계적 교회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고 있다. (9) 고난, 고통, 질병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속의 계획의 일부로서 교훈과 경고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모든 인생 문제는 메시야의 오심과 그분의 영원한 의의 왕국이 임하므로 궁극적인 해결을 본다. (10) 하나님의 정부에서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난다(시 85:10). 율법과 복음이 완전하게 일체를 이룬다. 수많은 국면을 지닌 시편의 방대한 주제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시편 기자는 최적 수단으로 서정시의 형태를 취하여 인간 내면 깊은 곳의 통찰력과 하나님과 교제하고자 하는 높은 갈망감을 묘사하였다. 시편은 “서정시의 극치”이다(물톤, Moul-ton). 그러나 시의 운문적 형태에 친숙한 사람이 무심코 시편을 읽게 되면 시편이 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서양의 시는 전통적으로 규칙적인 강세와 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히브리 시는 시에서 이러한 것을 찾기는 힘들다. 시편에 이르러 최정점에 달한 히브리 시는 서양의 시와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 히브리 시의 리듬은 강세가 있는 음절과 없는 음절이 규칙적으로 나타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영어 시처럼 이들은 각운과 요운을 갖고 있다. 불규칙적인 강세는 히브리 시의 외적인 특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성질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도 의견이 일치되어 있지 않으며, 충분히 이행되어 있지도 않다. 간혹 인접한 절들은 유사한 음으로 끝나는데 이것을 시적 특징을 주기 위한 음운적 배려로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모습은 영역 가운데는 결코 나타나 있지 않다. 음운에 있어서는 히브리 시가 영어 시보다도 더욱 융통성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근동 지방의 시가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매우 융통성이 크기 때문에 그 내적 구조 가운데서 시 전체를 이루는 사상들의 발전과 관계를 알 수 있다. 히브리시의 주요 특징은 대구법이라고 불리우는 사상의 리듬이다. 이것은 여러가지 형태로 문구를 나란히 벌여 격조를 맞추는 것이다. 이런 특별 구문은 조수의 밀물과 썰물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서 독일의 한 문필가는 “염려스러운 마음이 치솟는 것과 그것이 가라앉는 것”으로 비유를 하였다. 이것은 국경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을 울리는 어떤 것을 갖고 있다. 영문 흠정역 성경은 매우 균형지게 배열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동양적 음운 형태를 독자들은 거의 상실되지 않은 채로 만족스럽게 맛볼 수 있다. 대구법은 크게 세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1) 동의적 대구법 : 둘째 구절이 동일한 사상을 말만 바꾸어 나타내는 것으로서 두 구절은 하나의 사상을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시 18:5)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시 71:9) (2) 반의적 대구법 : 둘째 구절에서 첫 구절과 사상이 대조되거나 그 반대인 경우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나는 무리에게 이상함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시 71:7)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3) 종합적 대구법 : 둘째 구절이 첫째 구절을 보충하거나 첫째 구절의 사상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 18:3)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5. 개요 (1) 분류 시편은 그 주제와 목적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류되었다. 바네스(Barnes)는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미가들 ② 히브리인들의 국가적인 찬미가들 ③ 성전 노래들 ④ 국가적, 개인적 고난과 재난을 주제로 한 시편들 ⑤ 종교적, 도덕적 시편들 켄트(Kent)는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사랑과 결혼 ② 찬양과 감사 ③ 숭배와 신뢰 ④ 기도 ⑤ 회고적이며 교훈적인 시 맥 파이덴(Mac Fayden)은 11개의 주제하에 시편들을 배열하였다. ① 숭배 ②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 ③ 왕 ④ 회상 ⑤ 감사 ⑥ 예배 ⑦ 역사 ⑧ 저주 ⑨ 통회 ⑩ 탄원 ⑪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시편들 궁켈(Gunkel)은 이스라엘과 유다뿐 아니라 인근 근동 지방의 종교적 서사시들을 연구하였다. 자신의 연구에 근거를 두고 그는 다음과 같은 5대 유형을 주장하였다. ① 시온의 노래들과 대관식 시편들을 포함하는 찬미들 ② 공공적인 애가 ③ 왕의 시편들 ④ 개인적인 애가 ⑤ 개인적인 감사의 노래들 이것을 그는 혼합 시편이라고 부른다. 문학적 형태와 목적에 따라 물톤(Moulton)은 시편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다. ① 서문적인 시 ② 극적인 독백들 ③ 답관체 시편(踏冠體, acrostic: 각 행의 머릿 자를 모으면 말이 되는 시) ④ 극적인 송가 ⑤ 예루살렘의 즉위를 위한 송가 ⑥ 의식 ⑦ 축제의 찬미 ⑧ 맹세의 찬미 ⑨ 연도(제사장이 먼저 읊는 기도문을 따라 신도들이 읊는 형식) ⑩ 국가적 애가 ⑪ 특별한 때에 지은 찬미 ⑫ 축제의 송가 다음과 같은 분류는 각각에 대한 정의와 아울러 전형적인 예들을 제시하고자 하는데, 사상의 다양성과 주제의 포괄성을 보여주고 있다. ① 천연계(시 8, 19, 29, 104편) 땅과 밀착해서 살아가는 히브리인들은 천연계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천연계에 대한 사랑 그 자체가 ���들의 목적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은 언제나 천연계의 하나님을 제시하였으며, 창조주의 권능과 위엄을 높였다. 사무엘 테일러 콜러리지(Samuel Taylor Coleridge)의 “샤무니 계곡의 일출전 찬미”(Hymn before Sunrise in the Vale of Chamouni)라는 시는 히브리인들이 천연계에 대하여 가졌던 태도를 뛰어나게 닮은 영시 중의 하나이다. 이 시에서 시인은 천연계를 명상하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이르른다. ② 역사적 및 국가적인 시(시 46, 68, 79, 105, 106, 114편) 히브리인들은 침체 또는 호황에 빠졌었던 과거의 풍부한 체험들로부터 매일의 생활을 위한 경고와 미래를 위한 영감을 이끌어 냈다. 그들의 애국심의 초점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었다. 국가적인 위기의 시기에 영감을 제공하신 분은 다름아닌 하나님 그 자신이셨다. ③ 교훈(시 1, 15, 34, 71편)시편에는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권면이 풍부하다. ④ 메시야적(시 2, 22, 69, 72, 110편)메시야의 신적 속성과 인간적인 비하(卑下), 그의 겸비와 승귀(昇貴), 그의 고��과 영광, 제사장적 봉사와 왕적 위엄, 궁극적인 승리와 영원한 그의 통치의 축복 등이 나타나 있다. 선지자, 왕, 구속주, 제사장으로서의 신약적 그리스도의 모습이 시편에 예시되어 있다. 시편 안에서 메시야에 대한 조직적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어떤 이들은 말하고 있다. 메시야적 시편이다. 혹은 제사장적 시편이다라고 이야기할 필요가 거의 없다. 다윗은 감미로운 가수였을뿐 아니라 선지자이기도 하였다(행 2:29, 30). ⑤ 통회적인 시(시 6, 32, 38, 51, 102, 130, 143편)성경에서 걸출한 고백자 중의 한 사람은 다윗이다. 끔찍스러운 죄를 짓고, 자기의 죄에 대하여 냉혹하게 정죄하며, 슬픔과 통회하는 심령을 갖고 구주의 발앞에 자신을 맡겼다. 일곱편의 통회적인 시편 가운데서 다섯 편이 시인이요, 왕인 다윗의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선지자로부터 작은 암양 새끼에 대한 비유를 들었을 때 그는 지체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하였다(삼하 12:1-13). ⑤ 저주(시 35, 52, 69, 83, 109편)수많은 시편이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저주를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시편의 음조는 그리스도께서 원수에 대하여 취할 태도를 천명하신 것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마 5:44). 이 문제에 대하여 주석가들이 제시한 광범위한 제안은 알맞은 조명을 줄 것이다. 1) 저주의 표현은 명령적이라기 보다는 예보적인 것이다. 그 형벌을 시편 기자는 미리 보고 있다. 그 형벌은 시편 기자의 간청 때문에 이르러 오는 것은 아니다. 저주의 말은 경고적인 진술로 간주되어야지 시편 기자의 소망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 2) 히브리인들의 사고와 표현의 구체성 때문에 죄와 죄인을 동일한 것으로 보기 쉬운 경향이 있다. 히브리인들은 죄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죄인 안에 구체화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죄와 죄인은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3)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이방의 공격을 하나님께 가해진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그러한 행위에 대하여 처벌을 내려야만 한다고 느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았음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말할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대변하였다. 원수들이 자기를 핍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것이다. 이런 면을 염두에 둔다면 모세가 신명기에 나타난 강력한 연설을 할 때에 때때로 3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어떤 설명도 없이 지체하지 않고 마치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신 11:13-15; 29:5, 6 참조). 시편 기자는 거룩한 영감 아래에서 기록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죄를 저주할 뿐 아니라 죄인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할 권리를 가졌다. 원수들에 대한 이러한 저주들과 함께 우리는 죄에 빠진 이스라엘 자신에 대하여 선고한 저주에 대해서도 살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저주들은 레 26장, 신 27, 28장, 사 5:24, 25; 8:14, 15; 렘 6:21; 7:32-34에 있으며, 예수께서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강경한 어조로 말씀하셨고(마 23장), 신약 기자들도 행 5:3, 9; 갈 1:8, 9; 5:12; 약 5:1-3절에서 그러하였다. 이상의 성경절을 보아서 우리는 저주가 시편, 혹은 구약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4) 죄인들에 대한 저주의 기사는 이러한 시들이 기록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 속에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 당시 인간들은 강력한 용어와 활기찬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였다. 성경 기자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인간의 언어를 빌어 인간들에게 친숙한 문체로 말하였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고 표현하신 것을 그대로 드러낸 것은 아니다. 인간의 생각과 표현 양식일 따름이다. 하나님은 기록하신 분으로 진술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은 것이라고 때때로 말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 속에 있는 말들과 논리들과 수사학이라는 심판대 위에 자신을 두지 않으셨다(원고 24, 1886). ⑦ 기도, 찬양, 숭배(시 16, 55, 65, 86, 89, 90, 95-100, 103, 104, 107, 142, 143, 145-150편)기도 드리고 있는 시편 기자의 음성을 끊임없이 들을 수 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시 3:4),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시 39:12), 찬양과 숭배: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시 145: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 103:1). 인생의 모든 체험이 그 배경 위로 솟아올라서 찬양의 주제가 되었다. ⑧ 순례(시 120-134편)“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란 표제가 붙어 있다.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대축제를 위해 순례하는 사람들이 부른 노래들임이 분명하다. 히브리어로는 이들 시편을 “시르 함마아로트”(shir hamma‘aloth)라고 일컫는다(시 121편은 시르 람마아로트-shir lamma- ‘aloth-라 지칭되어 있다). 마아라(Maalah)는 “올라가다”라는 뜻을 지닌 어근, 아라(alah)에서 왔다. 마아라는 바���론으로부터 고국으로 올라오는 데, 또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 사용되었다(스 7:9). “층계”(출 20:26; 왕상 10:19), “일영표의 계단”(왕하 20:9; 공동 번역 참조)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들 시편에 있는 마아라는 예루살렘의 절기를 위하여 순례하는 것을 언급했을 가능성이 높다. 미쉬나는 성전에서 이들 15편의 시편을 전통적으로 어떻게 사용하였는지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거룩한 사람들은 …노래와 내려가는 열다섯 계단에 서서 수금을 들고 서 있었다. 이것은 시편에 있는 열 여섯개의 마아로트 수효에 일치하는 것이다.” 초막절 첫날, 레위인들은 온 밤을 지새우며 열리는 잔치 동안에 이스라엘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 있는 열 다섯 계단에 서서 이들 시편을 노래하였다. 이때에 여인의 뜰은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매우 밝았다. ⑨ 알파벳 순서로 배열한 시편, 혹은 답관체 시편(9, 10, 25, 34, 37, 111, 112, 119, 145편)히브리 본문에서 알파벳 순서로 각 절의 첫 문자들이 연속되어 있다. 이런 사실을 영문 번역에서는 알아 볼 수 없는데, 흠정역의 경우에 시 119편은 예외이다. 1) 각 절의 첫 문자가 알파벳의 순서대로 배열 된 것(시 25, 34, 111, 112, 145편 시 25, 34편은 약간의 예외가 있다). 2) 한 절씩 뛰어가며 알파벳이 이어지는 것(시 37편), 또는 떨어진 간격으로 절 처음에 알파벳이 등장하는 경우(시 9, 10편). 3) 8개의 절로 구성된 22연이 합쳐서 하나의 시편을 이룬 경우(시 119편). 각 절은 모두 동일한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연은 알파벳의 순서를 따라 전개됨. 이렇게 답관체를 사용한 이유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독자들의 기억을 돕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이들 시편은 현대의 ABC책보다도 2,000년 이상이나 앞서 있다. 답관체 시편은 대체로 주제를 활발하게 전개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상이한 단어들과 다양한 예증으로 반복한다. 문체적으로 이들은 표현의 풍부함이 그 특징이다. (2) 구 성 시편은 매우 일찍부터 다섯 책으로 구분되고 있는데 이것은 모세의 다섯책을 모방하였을 것이다. 시편 1편을 언급하면서 미드라쉬는 “모세는 이스라엘인들에게 다섯 율법서를 주었다. 이것에 부응하기 위하여 다윗은 시편을 다섯 책으로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들 5중 구분은 70인역 보다도 더욱 오래된 것이 틀림없는데, 각 책의 끝에 송영과 “아멘”이 삽입되어 구별되고 있다. 그러나 제5권은 예외이다. 이 책은 확충되어 절정을 이루는 송영으로서 전(全)시편의 결론 역할을 한다. 시편은 다음과 같이 크게 구분되어 있다. 제1권(시 1-41편)송영과 이중 “아멘”으로 종결되고 있다. 제2권(시 42-72편)이중 송영과 이중 “아멘”으로 종결되면서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시 72:29)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제3권(시 73-89편)송영과 이중 “아멘”으로 종결되고 있다. 제4권(시편 90-106편)송영과 “아멘”, 그리고 할렐루야로 종결되고 있다(“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지어다” 시 106:48). 제5권(시 107-150편)시편 150편으로 종결지어지는데,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가 시종을 장식하고 있으며 이 시편 자체가 할렐루야의 확장이다. 시편 속에는 다윗, 아삽, 고라의 선집등 이미 언급한 것들 외에도 여러 개의 작은 시편들이 있다. 시 51-72편은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라 일컬어진다(시 72:20). 시 52-55편은 마스길을 모은 것이며, 시 56-60편은 믹담을, 시 57-59편은 알다스헷을 모은 것이다. 시 113-118편은 애굽 할렐(Egyptian Hallel)인데, 시 114편의 첫 절에 이러한 명칭이 유래되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 나올 때에”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애굽 할렐은 성전에서 유월절 의식의 부분으로서 사용되었다. 이 선집의 여러 시편들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담긴 그릇들이 수종하는 제사장에 의하여 제단 아래에 뿌려지기 위해 제사장의 대열을 오르내릴 때 불려졌다. 백성들은 소리로서 의식에 참여하였는데, 그들은 할렐루야를 외치며 시편의 어떤 구절들을 때때로 반복하였다. 시 119편은 22개의 소시편들을 모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시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불리운다. 이것은 순례자들의 민속 노래이다. 시 145-150편은 최후의 장엄한 할렐루야 합창이다. 경건한 심령들은 시편 중의 시편 앞에 서게 된다. 시편에 매겨진 절은 몇몇 본문들과 역본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히브리 본문, 흠정역, 개역 표준역 등에 매겨진 절들과 헬라 70인역, 라틴 벌게이트역, 영문 듀웨이역 등에 매겨진 절들을 특별히 비교 주시하여야 한다. 영문 성경(흠정역, 개역 표준역, 기타)은 히브리 성경을 좇아 150장으로 이루어지며 70인역은 151장, 벌게이트역은 150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각 절이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70인역과 벌게이트역은 시 9편과 10편을, 시 114편과 115편을 합쳤다. 그러나 116편은 두개의 시로 나누었는데, 1-9절, 10-19절을 각각 한 장으로 하였다. 147편의 경우에도 1-11절, 12-20절을 각각 한장으로 하였다. 그러므로 시 1-9편과 148-150편만 히브리, 헬라, 라틴 성경이 일치한다. 시 9, 10, 114-116, 147편의 경우에는 히브리 성경이 70인역과 벌게이트역보다 한 절씩 앞선다. 70인역이나 벌게이트역을 참조하면서 이런 사실을 알아 두어야 한다. 장이나 절의 차이점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히브리, 흠정역, 개역표준역70인역, 벌게이트역, 듀웨이역
시 1-8시 1-8
9, 109
11-11310-112
114,115113
116:10-19115
117-146116-145
147:1-11146
147:12-20147
148-150148-150
151(오직 70인역에만)
더 나아가 히브리 성경의 경우에는 어떤 시의 제목이나 표제가 1절 전체, 혹은 그 일부를 이룬다. 그러므로 히브리 성경을 참조하고자 할 때는 약간의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면 흠정역의 시 4:1은 히브리 성경에서 4:2이다. 표제를 1절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브리 성경은 4장의 경우 8절(흠정역)이 아닌 9절로 이루어져 있다. (3) 표제들 시편의 표제들은 선집, 유형, 음악적인 가락, 연주 악기, 저자와 그 시기에 관한 사실등을 보여준다. ① 선집다윗, 아삽, 아삽의 자손, 고라의 자손들 표제 주석은 150개의 시편 가운데 있는 작은 선집들을 일컫는 것처럼 보인다. 다윗 선집은 73개의 시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삽은12개 고라는 11개이다. 55개의 시편은 “영장으로 한 노래”란 제목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히브리어의 람나세아크(Lamnasseach)이다. 공동 번역 성경은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번역하였다. 이 선곡들은 찬양대 “감독자”에게 헌정되었거나 맡겨진 것 같다.(대하 2:2, 18; 34:13에 메나세아크가 “감독자”�� 사용되었음을 참조) 람나세아크는 합 3:19에 “영장을 위하여,”“합창대 지휘자를 따라”(공동 번역)로 번역되었다. ② 유형수 많은 시편에 나타나는 표제는 그 시편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가를 밝혀주는 것같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시: 히브리어로 미즈모르(mizmor)인데 현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이다. 57개의 시편에 이 단어가 등장하는데, 언제나 “다윗의”라든가, 다른 말을 함께 갖고 나타난다. 미즈몰은 “노래하다,” “찬양하다,” “악기를 연주하다”라는 의미의 자말에서 유래했다.70인역은 미즈모르을 프살모스(psalmos“현악기를 탄주하다”라는 뜻의 프살레인(psallein)에서 기원)로 번역하였다. 2) 노래히브리어로 시르(shir)이다. 이 단어는 29개 시편의 표제에 나타난다. 시 18편의 표제에 등장하는 “노래”는 시르의 여성형인 시라(shirah)에서 온 것이다. 시 45편은 “사랑의 노래”라는 표제에 의하여 도입되고 있다. 시 120-134편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란 표제가 붙어 있다. 3) 믹담히브리어의 믹담(miktam)을 그대로 음역한 것이다. 여섯개의 시편에 나타난다(시 16, 56-60편).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어떤 학자는 “덮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카드어 카타무(katamu)에서 기원되어 속죄의 시편, 곧 죄를 덮는 일에 관계된 시편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 단어는 아마 음악적인 명칭일 것이다. 4) 마스길히브리어의 마스길(maskil)을 음역한 것으로 “신중히 하다”라는 의미의 사칼(sakal)에서 파생하였다. 13개의 시편인 32, 42, 44, 45, 52-55, 74, 78, 88, 89, 142편에 나타나는 이 표제는 이들 시편이 교훈적이요, 지시적인 것임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마스길은 시 47:7절에서 “지혜”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든 시편에 교훈이란 관념을 억지로 적용시킬 수 없으므로 마스길을 어떤 종류의 음악 연주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5) 기도히브리어로 테필라(tephillah)이다. 시 17, 86, 90, 102, 142편에 이 단어가 표제로 등장한다(합 3:1). 6) 찬송히브리어로 테힐라(tehillah)이다. 시 145편에 유일하게 표제로 등장한다. 남성 복수인 테힐림(tehillim)은 전 선곡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7) 식가욘히브리어의 식가욘(shiggayon)이다. 시 7편에 표제로 나타난다(그 외에는 합 3:1에 복수형으로 나타난다). 그 의미는 모호하다. 거칠고 열정적인 성격을 띤 불규칙한 송시에 대하여 사용되었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히브리어 어근은 “방랑하다,””떠돌다,”“비틀거리다”의 사가(shagah)일 것이며, 자주 변하는 격렬한 리듬을 의미한다. 8) 교훈히브리어로 레람메드(lelammed). 시 60편에 나타나며 이 시편의 목적은 가르치는 것임을 나타낸다. 아마 레위인들은 백성들에게 이것을 가르칠 책임을 위임받은 것 같다. 9) 기념케 하는 시히브리어로 레하즈키르(lehazkir)이다. 시 38, 70편에 나타난다. “향을 드림”이라는 히브리어 아즈카라(azkarah)에서 파생했다. 어떤 이들은 제사드릴 때 이 일이 수행되는 시간에 부르기 위하여 지어진 시라고 추측한다. 대상 16:4절에서는 “칭송하며”로 번역되었다. 10)감사의 시히브리어로 레토다(lethodah)이다. 시 100편의 표제로 나타난다. 감사 희생을 드릴 때에 부르기 위한 시편 같다 (레 7:11-15). 시 100편은 감사의 시이다. ③ 멜로디여러 구절의 표제에는 원래 그 시편에 잘 알려진 멜로디가 나타나 있다. 공중 예배를 위하여 대중적인 멜로디가 채용되었을 것이다. 1) 뭇랍벤(시 9편)의미는 모호하다. 어떤 히브리 사본들은 ‘뭇(muth)’앞에 “위에”(흠정역)로 번역되는 ‘알(al)’을 가져와 알뭇(almuth)이라 한다. 그러나 이 복합어도 설명할 수 없는 전문용어이다. 70인역은 이 복합어를 따라 ‘알뭇 랍벤(almuth labben)’이라고 번역하였다. 이 의미는 “아들의 감추어진 것들에 관하여”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이 어떤 음조의 명칭이거나 첫 구절들이며 “아들을 위하여 죽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소산님(시 45, 69편)문자적으로 “백합화”인데, 멜로디의 명칭이거나 주요 단어일 것이다. 시 60편에는 “수산에돗” 곧 “증거의 백합화”가 시 80편에는 소산님에돗, 문자적으로 “증인의 백합화들”이 표제로 붙어 있다. 아마 이들 구절은 모든 동일하게 잘 알려져 있는 사랑의 곡조를 가리키는 것 같다.백합화는 팔레스틴의 “아네모네”이다. 에돗은 어떤 장소의 이름같다. 3) 아얠렛샤할(시 22편)문자적으로 “새벽 암사슴”이다(공동번역). 탈굼에 의하면 아침 제사 시간에 양을 드릴 때, 이 시편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언제부터 이러한 관례가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4) 요낫 엘렘 르호김(시 56편)이 구절의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개역 표준역 성경은 본문의 엘렘을 알림으로 수정하여 “먼 느티나무 비둘기”로 번역하였다(공동 번역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학자들은 시 55:6, 7로부터 인용했거나 언급한 것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다윗의 방랑 세월이 암시되어 있다고 본다. 5) 알다스헷(시 57-59, 75편)“파괴하지 마소서”라는 의미이다. 사 65:8에서 부분적으로 인용된 포도 수확의 노래 중 첫 구절일 것이다. ④ 표제 중에는 시편을 노래할 때에 그 곡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의 악기들이 명시된 경우도 있다. 1) 네기놋(시 4, 6, 54, 55, 67, 76편)“현악기와 함께”라는 의미이다(개역 표준역). 시 61편에는 단수로 등장한다. 네기놋은 이사야 38:20과 합 3:19에 “수금”으로 번역되었다. 히브리인들은 세 종류의 현악기를 갖고 있었다. - 하프(네벨), 리라(키놀), 찌터(아솔). 2) 네힐롯(시 5편)“피리에 맞추어” (공동 번역)라는 의미일 것이다. 3) 스미닛(시 6, 12편)의미가 모호하다. 흠정역의 어떤 판에는 “제팔음”이란 말이 난외에 기록되었어 있는데, 이 말이 옥타브를 의미한다면 히브리인들이 옥타브를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무의미한 말이다. 대상 15:21에는 이 구절이 하프와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요세푸스(Josephus)는 하프(네벨)가 8개의 현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공동 번역은 “팔현금”으로 번역하였다. 4) 깃딧(시 8, 81, 84편)그 정확한 의미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음악 용어이다. 유대인 전승에 따르면 이것은 다윗이 갓(Gath)에서 가져온 하프를 의미한다고 한다. 단어 형태상 “깃 사람들의 양식을 따라” 부르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이탈리아 풍,중국 풍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히브리어의 “갓”-“포도즙 틀”이란 말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더욱 ���리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깃딧에 맞추어”란 말은 포도 수확의 멜로디를 가리키는 것이다. 5) 알라못(시 46편)의미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아퀼라와 제롬에 의하여 확립된 의미이다)이란 번역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성전 봉사에서 여성들은 어떤 일도 감당하지 않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상 15:20에는 본 단어가 고대의 현악기들과 관련되어 나타난다. 리라의 뒤를 좇아 하프가 연주되도록 한 것 같다. 6) 마할랏(시 53, 88편)이 시편들의 풍기는 맛 때문에 구슬프게 부르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특별히 시 88편의 경우에는 전 시편을 걸쳐 가장 침울한 곡으로 알려져 있다. ⑤ 저자와 그 시기시 14편의 표제에는 다윗과 관련된 짤막한 이야기나 그 환경이 묘사되어 있다(시 3, 7, 18, 30, 34, 51, 52, 54, 56, 57, 60, 63, 142편). ⑥ 셀라히브리어의 셀라(selah)를 음역한 것이다. 시편에 71회 등장한다. 제1권에 17회, 제2권에 30회, 제3권에 20회, 제5권에 4회, 제4권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150개의 시편 중에서 오로지 39개의 시편에만 등장한다. 그중 28개의 시편에는 “영장으로 한 노래”(“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공동 번역)란 표제가 부가되어 있다. 이 단어는 의미가 모호하며 이것이 지시하는 것에 대하여는 쉼표라든가, 간주곡이라든가, 멜로디의 변화, (“아멘”처럼) 강조 표시등으로 해석하여 왔다. 70인역은 이 용어를 디아프살마(“간주곡”)로 옮겼다. 이것은 그 시의 예전적 편집에 있어서 음악적인 주의를 뜻하는 것이다. 수 많은 추측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는 의미가 모호하다. “셀라”는 찬미가와 같은 성격을 특별하게 띠고 있는 시편들 안에 등장하는데, 그것도 대개는 사상적으로 한 묶음이 되는 소절의 끝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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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 18e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e Jeonju
제 18회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 27일부터 5월 7일까지 개최되며 전 세계 58개국의 229 편의 영화가 소개된다. 올해도 예년과 같이 대형 화면을 통해 프랑스 영화가 상영된다. La 18e édition du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 de Jeonju aura lieu du 27 avril au 7 mai et présentera 229 films venant de 58 pays. Cette année encore, il offrira à son public la chance de découvrir sur grand écran de nombreux films français.
마르세이 국제 영화제의 쟝-피에르 렝 위원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며 경쟁 부문에 도미니크 카브레라 감독이 참가하며 그 외에 에드와르 베르와 알랭 고미 앙트완 페레지아코 감독과 다미엥 마니벨 감독이 참석한다. Le festival comptera dans son jury le directeur du FIDMarseille (Festival International de Cinéma Marseille), Jean-Pierre REHM et la réalisatrice Dominique CABRERA pour la compétition internationale et seront présents au festival les réalisateurs Edouard BAER, Alain GOMIS Antonin PERETJATKO, Damien MANIVEL, Dominique ABEL et Fiona GORDON.
영화제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Pour plus d’informations :
http://www.jiff.or.kr
Les productions et co-productions françaises au programme
//////////////////////////////////////////////////////////////////////////////////////////////////////////////////////////////////////////////////////////////////////////////////////////////////////////////////////////////////////////////////////////////// 국제경쟁 / En Compétition internationale
인 비트윈 – 마이살룬 아무드 Je danserai si je veux - Maysaloun HAM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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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전통과 대도시 문화 사이에 놓인 세 명의 팔레스타인 여성. 직장, 파티, 섹스, 선택의 자유 등 그들이 치러야 하는 삶의 대가는 자명하다. Layla, Salma et Nour, 3 jeunes femmes palestiniennes, partagent un appartement à Tel Aviv, loin du carcan de leurs villes d'origine et à l'abri des regards réprobateurs. Mais le chemin vers la liberté est jalonné d'épreuves…
공원의 연인 – 다미앙 매니블 Le parc - Damien MANIVEL
youtube
소년소녀의 첫 데이트 장소는 공원이다. 처음에는 서툴고 어색하나 금세 가까워진 둘은 사랑에 빠진다. 해가 지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C'est l'été, deux adolescents ont leur premier rendez-vous dans un parc. D'abord hésitants et timides, ils se rapprochent au gré de la promenade et tombent amoureux. Vient le soir, l'heure de se séparer… C'est le début d'une nuit sombre.
소피아의 아들 – 엘리나 프시쿠 Son of Sofia - Elina PSI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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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한창일 때 11세 미샤는 엄마와 살기 위해 러시아에서 아테네로 온다.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던 일이다. Misha, un jeune garçon de 11 ans, quitte la Russie pour rejoindre sa mère, Sofia, après deux ans de séparation. Sofia est à présent mariée à Monsieur Nikos, un gentleman conservateur qui a été la vedette d’une émission de télévision pour enfants pendant la dictature. Nikos et Misha sont issus de deux mondes complètement différents, mais ils sont liés par leur amour pour Sofia, qui tente de préserver ses besoins et sa personnalité, entre ses deux hommes.
////////////////////////////////////////////////////////////////////////////////////////////////////////////////////////////////////////////////////////////////////////////////////////////////////////////////////////////////////////////////////////////////프론트라인 / Frontline
펠리시테 – 알랭 고미 Félicité - Alain GOMIS
클럽 가수 펠리시테는 열네 살 아들의 수술비를 위해 꿈과 음악이 혼재된 킨샤사 거리를 정신없이 다니던 중 클럽의 단골손님 타부를 만난다.
빅토리아 – 쥐스틴 트리에 Victoria - Justine TRIET
싱글맘 빅토리아는 여자친구 살해기도 혐의로 기소된 옛 친구 빈센트의 변호를 맡기로 하고 과거에 변호해준 적 있는 샘에게 집안일을 부탁한다.
목, 심장, 위-모드 알피 Gorge, coeur, ventre - Maud ALPI
밤에 도착한 동물들은 운명을 직감하고 저항하나 동이 트기 전에 청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청년의 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끔찍한 세계를 발견한다.
정글의 법칙 – 앙토냉 페레자코 La loi de la Jungle - Antonin PERETJATKO
마트는 아마조니아 최초의 실내 스키장 구야네쥬의 유럽 기준 적합성 여부를 확인하고자 기니아로 파견된다. 불운의 아이콘 마크는 끊임없이 소동에 휘말린다.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 World Cinemascape
충돌 – 모하메드 디아브 Clash - Mohamed DIAB
오펀 – 아르노 데 팔리에르 Orpheline - Arnaud DES PALLIÈRES
더 픽서 – 아드리안 시타루 Fixeur - Adrian SITARU
웨딩 – 스테판 스트레커 Noces - Stephan STREKER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 World Cinema Master
코르니쉬 케네디 - 도미니크 카브레라 Corniche Kennedy - Dominique CABRERA
추방자 - 리티 판 Exil - Rithy PANH
프랑스 – 레이몽 드파르동 Les habitants (France) - Raymond DEPARDON
네버 에버 – 브누아 자코 A jamais - Benoit JACQUOT
녹투라마 – 베르트랑 보넬로 Nocturama - Bertrand BONELLO
언노운 걸 –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La fille inconnue - Jean Pierre DARDENNE, Luc DARDENNE
네루다 – 파블로 라라인 Neruda - Pablo LARRAIN
이센 아브레, 차드의 비극 – 마하마트 살레 하룬 Hussein Habré, Une Tragédie Tchadienne - Mahamat-Saleh HAROUN
잠자는 미녀 – 아도 아리에타 Belle Dormant - Ado ARRIETTA
//////////////////////////////////////////////////////////////////////////////////////////////////////////////////////////////////////////////////////////////////////////////////////////////////////////////////////////////////////////////////////////////// 익스팬디드 시네마 / Expanded cinema
태양의 꿈 – 파트릭 보카노브스키 Un rêve solaire - Patrick BOKANOW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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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거 – 올리비에 바비네 Swagger - Olivier BA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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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차레비치와 공주 – 미셸 오슬로 Ivan Tsarévitch et la princesse changeante - Michel Ocelot
로스트 인 파리 –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Paris pieds nus - Dominique ABEL et Fiona GORDON
파리의 밤이 열리면 – 에두아르 베르 Ouvert la nuit - Edouard BAER
//////////////////////////////////////////////////////////////////////////////////////////////////////////////////////////////////////////////////////////////////////////////////////////////////////////////////////////////////////////////////////////////// 카르트 블랑슈 / En Carte blanche
마법사 시몬 – 일디코 엔예디 Simon, the Magician - Ildikó ENYEDI
//////////////////////////////////////////////////////////////////////////////////////////////////////////////////////////////////////////////////////////////////////////////////////////////////////////////////////////////////////////////////////////////// 미드나잇 시네마 / Midnight Cinema
죽음의 게임 – 세바스티앙 랑드리, 로랑스 바즈 모레 Game of Death - Sebastien LANDRY et Laurence BAZ MORAIS
들개 – 보그단 미리커 Dogs - Bogdan MIRICA
//////////////////////////////////////////////////////////////////////////////////////////////////////////////////////////////////////////////////////////////////////////////////////////////////////////////////////////////////////////////////////////////// ////////////////////// Les courts-métrages au programme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스펙트럼 단편 / World Cinemascape
로맨스 – 마농 쿠비아 L’lmmense Retour(Romance) - Manon COUBIA
//////////////////////////////////////////////////////////////////////////////////////////////////////////////////////////////////////////////////////////////////////////////////////////////////////////////////////////////////////////////////////////////// 월드 시네마스케이프: 마스터즈 단편 / World Cinemascape
사라 윈체스터, 오페라의 유령 – 베르트랑 보넬로 Sarah Winchester, Opéra Fantôme - Bertrand BONELLO
습작들: 사방에서 – 자크 리베트 Aux Quatre Coins . Le Quadrille et Le Divertissement - Jacques RIVETTE
//////////////////////////////////////////////////////////////////////////////////////////////////////////////////////////////////////////////////////////////////////////////////////////////////////////////////////////////////////////////////////////////// 익스팬디드 시네마 단편 / Expanded cinema
장마리 스트라우브, 당신은 어디에 – 장마리 스트라우브 Où en Êtes-vous, Jean-Marie Straub ? - Jean-Marie STRAUB
육지의 발견 – 아나 바즈 Há terra ! - Ana V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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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종교의 분포, 통계, 분쟁 지역, 종교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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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종교의 분포, 통계, 분쟁 지역, 종교전쟁.
◈ 세계종교의 분포, 통계, 분쟁 지역, 종교전쟁 –
위 내용 – 조선학도님의 블로그에서.
– 기독교 –
* 신자 수 1,929,987,000명 / 비율 33.00% [2000/03]
(로마 가톨릭교 1,040,354,000명 / 비율 17.80% 개신교 360,913,000명 / 비율 6.20% 성공회 54,785,000명 / 비율 0.90% 정교회 223,204,000명 / 비율 3.80% 기타 기독교 287,857,000명 / 비율 4.90%)
– 이슬람교 –
* 신자 수 1,147,494,000 명 / 비율 19.60%
– 힌두교 –
* 신자 수 746,797,000명 / 비율 12.80%
– 불교 –
* 신자 수 353,141,000 명 / 비율 6.00%
위 내용 – 1980 and1985님의 블로그에서.
– 세계의 종교분쟁/ 종교 전쟁 그뿌리와 역사-
종교 분쟁은 현대나 고대 마찬 가지로 참혹하고 잔인합니다. 현대에는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내전에서 부터 이락크전에 이르기까지 종교적 분쟁이지요 종교전쟁의 뿌리 깊은 역사와 두드러진 전쟁을 예를 들면,
웅장한 사원, 성당, 교회 건물들, 화려한 행렬 및 인상적인 음악을 갖춘 종교들은 겉보기에 매우 아름답고 경건해 보인다. 그러나 종교의 역사 기���은 어떠한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리스도교국은 무방비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약탈하고 식민지화하고 또 압제하였다.
근동 지방에서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십자군 전쟁, ‘가톨릭’이 지배한 여러 나라에서의 종교 재판, 중국을 공격한 아편 전쟁 및 이 20세기의 잔인한 전쟁들과 종교분쟁 등에 대해 역사는 비난의 손가락질을 한다.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은 다 개신교와 카톨릭교국 내에서 발생하였으며, ‘가톨릭’ 교인들과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무차별 살육을 자행하였다.
과거의 여러 전쟁에 있어서의 종교의 역할
‘아즈텍’족과 전쟁
‘아즈텍’ 종교는 신들을 인간 제물로 달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역사가 ‘빅토 더불류. 폰하겐’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전쟁과 종교를, 적어도 ‘아즈텍’ 인종에게 있어서는, 분리할 수 없었다. 그 두가지는 상호 연관되어 있었다. ··· 자기 신들에게 바칠 포로를 마련하기 위하여 조그마한 전쟁들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36
1486년에, 20,000여명의 포로들이, ‘휘칠로폭틀리’ 신의 거대한 ‘피라밋’ 봉헌식에 바치기 위하여 준비되었다. 그리고 나서 희생자들의 심장을 하나씩 하나씩 도려내어 그 신에게 바쳤다. ‘아즈텍’ 사제들이 희생자를 붙들고 있는 동안 다른 사제가 전쟁의 신에게 바치기 위해 희생자의 심장을 도려낸다 그러한 종교의 사수를 받은 전쟁들이 고대 ‘아메리카’인들에게 일으킨 공포감을 상상할 수 있다.
고대 제국들과 전쟁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지의 고대 제국과 백성들에게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이를 고대 여러 나라들은 수많은 전쟁과 깊은 종교성에 있어서 유명하다. 종교와 전쟁은 상부 상조하였다. 예를 들면, 한 참고서에 이렇게 설명되었다.
“‘이집트’ 종교는 결코 전쟁을 단죄하지 않았다. 아주 옛날 ‘이집트’의 전쟁들은 신들과 신들 사이 또는 신들과 사람들 사이의 전쟁이었다. 그러므로 ‘이집트’ 왕들은 전쟁을 행하는 점에 있어서 신들의 본을 따른다고 주장했다. ··· 간단히 말해서, 모든 전쟁은 도덕적이었고, 이상적이고, 초자연적이고 신들의 선례에 따라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37
때로는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 나라의 전쟁을 용인하고 승인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실제 전쟁에 나가서 싸울 것을 강권하기도 한다. 교직자인 ‘더불류. 비. 라이트’는 고대 ‘아시리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전투는 국가의 사업이었으며, 사제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충동하였다. 사제들은 전쟁 약탈품으로 생활하였으며, 전리품을 다른 사람들이 나누기 전에 그 중 몇 ‘퍼센트’는 반드시 그들에게 주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약탈자들의 활동은 극도로 종교적이었기 때문이다.”38
고대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군사 지도자들은 자기 신들에게 자주 도움을 요청하였다. “신들은, 어느 신이든지, 자기 백성을 전쟁에서 돕고 보호하는 것이 그의 주된 기능 중 하나임을 흔히 볼 수 있다.”39고 권위자 한 사람은 말하였다. 병사들이 자기 신들의 깃발을 전쟁터에 가지고 가는 것은 습관적인 일이었다. 그러한 깃발은 나무나 금속으로 만든 표상물 혹은 상징물이었다. 한 백과 사전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로마’의 군기(軍旗)는 신전 내에 보관하여 종교적으로 숭앙받았다. 지휘관은 병사들의 공격 의욕을 자극하기 위하여 적진 가운데 군기를 던지게 한 후 그것을 탈취하도록 격려한 일도 흔히 있었다. 그 병사들에게는 군기가 지상에서 아마 가장 거룩한 것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40
고대 이러한 나라들은 물론 그리스도교를 신봉하지 않았다.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개한 가르침은 인류의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참된 신자들의 생활을 개선시켜 주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그리스도교 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제 4세기에 부패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만들었다. 그 이후 ‘로마 가톨릭’ 세력이 크게 팽창하였다. 그 종교는 다른 종교들과 달랐던가? 그 종교는 평화를 증진하였던가? 그것은 참 그리스도교였던가?
십자군 전쟁―그리스도교국의 “성전”
1095년에 교황 ‘어반 2세’는 ‘클레르몬트’에서 회의를 소집하였다. 그때에 고대 ‘팔레스타인’ 땅은 그리스도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람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교황은 “역사상 가장 영향을 미친 연설 중의 하나”라는 연설로 ‘클레르몬트’에 모인 사람들에게 현재 “성지”를 장악하고 있는 “이교도”들을 쳐부술 전쟁을 수행하라고 촉구하였다. ‘어반’은 그 군중들을 다음과 같이 격려하였다.
“그리스도교 군사들이여, ··· 가서 야만인들과 싸우시오. 거룩한 땅을 구하기 위해 가서 싸우고, ··· 이교도의 피에 여러분의 손을 씻으시오. ···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사가 되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도와 달라고 여러분을 부르시니 천박한 애정 때문에 가정에 얽매이지 마시오.”41
이렇게 하여 십자군 전쟁, 즉 이른바 “거룩한 전쟁”이 시작되어 그 후 2세기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유럽’의 설교단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권유하는 설교가 울려 나왔다.”42고 한 역사가는 설명하였다. 다른 학자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주교들은 자기 주교구에 내려가서 이 군사적 그리스도교를 설교하였다. ··· 승려들은 칼을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 이제 ‘유럽’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어 ‘시리아’ 해변에 연거퍼 파도를 들이쳤다.”43
이렇게 자행된 전쟁은 필설로 묘사할 수 없을 정도였다. “종교의 승인과 징벌이라는 미명 하에 역사상 모든 호전적 욕망이 쏟아져 나왔다.”44고 한 역사가는 설명하였다. 십자군들은 역사책에 기록된 최악의 살륙, 무모한 약탈, 극악한 만행 등을 자행하였다. 그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되었다! ‘롤란드 에이치. 베인톤’ 교수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것은 교회가 시작한 전쟁이었다. ··· 십자가 시형, 동전 삼킨 자들을 찢어 벌리는 행위, 사체 절단―‘안디옥’ ‘브헤몬드’는 ‘사라센’의 사람들의 코와 엄지 손가락을 한 상자 가득히 담아 ‘그리이스’ 황제에게 보냈다.―극심한 약탈 등을 십자군 전쟁사에 아무 거리낌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 정신은 이상하게도 전쟁에 대한 야만적인 욕망과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열망이 혼합된 것이었다.”45
그러한 잔악한 행위를―그렇게도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행위를 그리스도의 이름과 연결시킨데 대하여 종교가 얼마나 커다란 책임을 져야 하겠는가! 자기를 그릇 대표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는가?
과거 개신교 카톨릭 국가 상호 간의 전쟁들
중세기에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그들끼리 전쟁을 많이 하였으며, 왕왕 교황의 축복을 받아가면서 전쟁을 하였다! 그러한 그리스도교국의 내부 전쟁들에 관하여 역사가 ‘제이. 시. 리파드’는 이렇게 말하였다. “중세기의 모든 전쟁에서는 교황의 승인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재가를 얻기 위하여 세속 군주들은 시장에서 하듯이 서로 경쟁을 예사로 하였다.”46
후에 1517년 경부터 종교적 반역이 일어나 ‘프로테스탄트’ 사상이 퍼지게 되자 그리스도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상호간에 전쟁과 살륙 행위가 증가하였다. ‘켐브리지’ 대학교 역사 교수인 ‘지. 엠. 트레브리안’은 이렇게 썼다.
“그 시대에는 종교가 거의 전적으로 지성적,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인간성은 그 특별한 가르침에 포함되지 않았다. 종교는 그 때에 파괴, 화형, 불타는 도시, 여자 및 유아의 살륙, 그칠줄 모르는 증오, 보복할 길 없는 죄악 등과 관련이 있었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야만 시대 이래 ‘유럽’ 사람들이 겪은 최악의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아픔은, 반역한 그리스도교국을 다시 끌어들이려는 ‘가톨릭’의 투쟁(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둠)에 의하여 이르게 되었다.”7
‘로마 가톨릭’ 교회는 반항자들 곧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하여 야만적인 전쟁을 감행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은 강력히 저항하였다. 한 예로서 ‘안트와프’가 1576년에 포위되었는데 한 역사가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성모 교회의 이들 신사적인 사자들 곧 ‘스페인’ 군대들은 ‘성 ‘제임스’, ‘스페인’, 유혈, 육체, 화재, 약탈!’이라고 외치면서 전투를 벌였다. 8천명의 남자, 여자 및 소아들이 살해당하였다.”48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30년 전쟁(1618-1648)은 특히 무시무시하였다. 그 동안 독일의 인구는 약 4분의 3이 줄었다. ‘아우그스부르크’ 주민들은 80,000명에서 18,000명으로 감소되었다. 그리고 ‘보헤미아’ 사람들은 4분의 1만이 생존하였다. ‘마그데부르크’라는 ‘프로테스탄트’의 도시의 멸망에 대한 기록은 그 전쟁의 잔인성을 잘 설명해준다. 독일 역사가 ‘프레데릭 쉴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이렇게 하여 가��할 만한 장면이 시작되었으니 그 역사를 묘사할 언어가 없고, 그 사건을 기술할 필묵이 없다. 천진한 유아도, 무력한 노인도, 젊음도, 성별도, 계급도, 아름다움도 정복자들의 분노를 진정시키지 못하였다. 남편들의 품안에서 아내들이 능욕을 당하였고, 딸들은 부모들의 발 앞에서 능욕을 당하였다. 무방비한 여성들은 덕성과 생명이라는 이중의 희생을 당하였다.”49
인류 역사 거의 전부가 “전쟁과 살륙에 대한 것뿐이다”라는 말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역사에 강력한 힘’을 미쳐온 종교가 무시무시한 유혈죄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사실 또한 틀림이 없다. 현재도 상태는 마찬가지다.
십자군 전쟁은 역사상 최악의 살륙과 만행을 저질렀다.―모든 행위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각종 종교 경전에 용서 사랑 자비 평화 연합 친절을 가르치지만 사람은 본래 성품이 악할 뿐이다. 그렇다고 분쟁이 없는 참 종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종교는 분명히 있다.
성경 잠언에 이러한 말씀을 따를때 생명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잠언 2:4 네가 만일 은을 구하듯이 그것을 계속 구하고 숨겨진 보물을 찾듯이 그것을 계속 찾는다면 , 잠언 2:5 그러면 너는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깨닫고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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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종교전쟁은 아주 많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문화가 충돌할때 가장 격렬하게 부딪히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종교갈등으로 보이지만 실은 서로다른 문화와 경제체제의 세력싸움인것입니다.
역사상 종교전쟁의 예를 몇가지 들면
★이슬람교의 정복포교
7세기 경에 발생한 이슬람교는 전쟁을 통해서 복속시킨 지역에 코란의 가르침을 퍼트렸습니다. 이때 중동의 전체를 이슬람화 시켰고 최대로 유럽에서도 스페인을 정복하고(이후700년간 지배) 프랑스까지 나갔다가 투르-푸아티에 전쟁에서 격퇴되어 저지당합니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해 중국(당나라)를 탈라스싸움에서 이겨서 아랍이 실크로드의 무역권을 장악합니다. 이싸움의 결과로 종이가 서양에 전파됩니다. (당제국의 장수는 고구려인인 고선지 장군)
★십자군 전쟁(11세기~13세기):
유럽의 기독교 연합군(crusaders)가 중동의 이슬람교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명분은 기독교 성지聖地인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것인데 사실은 유럽세계가 힘이 커져서 중동으로 뻗어 나가고 싶어 했고, 또 아랍인이 장악하고 있는 무역권을 빼앗는데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200년동안 7차례에 걸쳐 대규모 원정을 했는데 성공한것은 처음 2차례 뿐이고 뒤로 갈수록 원래 취지를 잃어 버리고 우왕좌왕��서 흐지부지 끝납니다. 이전쟁의 결과로 기사계급이 몰락하고 중세시대가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 종교개혁이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전쟁
루터의 종교개혁이후에 갈라져 나간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천주교(카톨릭)간의 전쟁인데 프랑스에서 일어난 위그노 전쟁과 독일에서 일어난 30년 전쟁이 대표적입니다. 이전쟁의 결과로는 개신교가 인정을 받아서 그들을 지원하던 상공업자들이 번창하고 유럽의 자본주의화를 촉진하게 됩니다.
★ 그밖의 종교를 둘러싼 전쟁및 갈등(근현대)
근현대 들어서는 종교자체로 전쟁을 하기 보다는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얽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영국-아일랜드(영국국교vs카톨릭):
영국이 아일랜드를 오랫동안 지배하면서 착취해서 생긴 민족감정과 종교대립이 결합되어 갈등이 계속되었고 아직도 영국영토인 북아일랜드지역에서는 테러와 분쟁이 남아있습니다.
*보스니아내전, 코소보내전(동방정교,카톨릭,이슬람):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갈등은 오랜 민족적인 갈등과 각 나라들간의 경제적격차에 종교문제가 결합되어 복잡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세르비아계(동방정교), 크로아티아계(카톨릭), 이슬람계 의 3개의 세력이 갈등이 심해져 세르비아계에 의한 인종청소라는 비인간적인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인도-파키스탄(힌두교vs이슬람교):
간디의 지도아래 영국에서 독립한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충돌이 심해서 이슬람교는 파키스탄으로 독립합니다. 그 이후에도 대립이 계속되어 1948년부터 몇차례의 전쟁까지 하게되고 두나라는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필리핀(카톨릭vs이슬람반군):
국민 대다수가 카톨릭교도인 필리핀은 소수의 이슬람교도가 반군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
종교전쟁
30년전쟁 – 독일
발단
독일에서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和議) 후 곧 신·구 양교의 대립이 다시 일어나, 17세기에 접어들자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었는데 전란은 먼저 보헤미아에서 발발하였다.보헤미아에서는 1609년 귀족들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루돌프 2세로부터 신앙의 자유 승인을 얻었지만, 17년 페르디난트가 보헤미아왕위에 오르자 신교파를 압박하였으므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과정
전쟁의 경과는 황제파의 대전국에 따라 다음 4단계로 나뉜다.
1. 보헤미아-팔츠전쟁 (1618-23)
내란의 와중인 19년에 페르디난트가 황제로 즉위하자, 보헤미아 의회는 페르디난트의 왕위를 취소하고 신교파인 팔츠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 5세를 국왕으로 뽑았다.이 때문에 전쟁은 독일 전체에 파급될 형세가 되었지만 프리드리히가 칼뱅파였기 때문에 약간의 신교파 제후의 협력밖에 얻지 못하였다. 다른 한편 황제는 구교파 제후의 지도자 바이에른공 막시밀리안의 협력과 에스파냐의 원조를 얻어, 반격으로 나가 20년에는 프리드리히군을 프라하 서쪽의 바이서베르크에서 격파하였다.계속해서 황제는 반란에 가담한 신교파 제후군을 각지에서 제압하였고 에스파냐군도 팔츠령에 침입하였다.
2. 덴마크전쟁 (1625-29)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는 이 기회를 틈타서 영국과 네덜란드의 원조를 확보하고 25년 북독일에 침입하였다.곤경에 빠진 황제는 발렌슈타인을 황제군총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발렌슈타인은 바이에른 사령관 틸리와 협력하여 크레스댠을 격파하고 29년 뤼베크화약을 체결하였다. 크리스티안 4세의 패배와 1629년의 뤼베크 평화조약으로 유럽 강국으로서의 덴마크 지위는 종말을 고했다.
3. 스웨덴전쟁 (1630-35)
발트해역에서의 세력확장을 꾀하고 있던 스웨덴왕 구스타브 아돌프는 황제 세력의 북진에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의 원조를 얻은 다음 30년 포메른에 상륙하여 보헤미아까지 진출하였다.황제는 발렌슈타인을 다시 황제군 총사령관으로 기용하였다. 발렌슈타인은 32년 뤼첸싸움에서 구스타브를 전사시켰지만 전쟁에는 패했다. 황제는 화평책략을 이유로 34년에 발렌슈타인을 암살하고 에스파냐의 원조를 받아 신교파군을 제압하였고, 35년에는 대부분의 신교파 제후들과 프라하조약을 체결하였다.
4. 프랑스-스웨덴전쟁 (1635-48)
프랑스는 30년전쟁 개시 이후 항상 반(反)합스부르크의 흑막적 존재로서 신교파에게 원조를 하고 있었는데, 신교파가 약하게 되자 공공연히 전쟁의 정면무대에 등장하여 프랑스군은 남부독일로 침입하였고, 스웨덴군도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후 황제군은 수세에 몰리게 되자, 오랫동안의 전쟁에 지친 황제와 독일 제후, 그리고 스웨덴 사이에 45년 이후 화평교섭이 이루어져, 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성립되었다.
*주요전투
브라이텐펠트 전투 (Battle of Breitenfeld)
30년전쟁 때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처음으로 큰 승리를 거둔 전투 (1631. 9. 17).
이 전투에서 틸리 백작 요한 이자클라에스가 이끄는 로마 가톨릭교도인 신성 로마 황제 페르디난트 2세의 군대와 가톨릭 동맹군이 스웨덴 왕 구스타프 2세 아돌프가 이끄는 스웨덴-작센 군에게 패배했다. 이 전투를 통해 스웨덴이 강국으로 등장했고, 오랫동안 유럽 전쟁에서 쓰였던 보병대의 대량 포진이라는 낡은 전술에 비해 스웨덴의 유연한 선형 전술이라는 새로운 전술의 우위성이 증명되었다.
9월초 황제군 사령관 틸리는 작센을 침공하고 9월 15일에 라이프치히를 장악한 후 군대를 브라이텐펠트 근교에 배치해 스웨덴-작센 군대의 진격에 대비했다. 스웨덴군의 왼쪽을 맡았던 작센군은 틸리의 선제 공격으로 무너졌다.틸리는 이렇게 측면을 돌아 배후를 치려 했지만 스웨덴의 좌익군 사령관 구스타프 카를손 호른이 군대를 이동시켜 한참 전투중인 틸리의 측면에 새로운 전선을 형성함으로써 실패했다. 이러한 전술은 근대에 들어��서 처음으로 사용된 것이었다.
그동안 스웨덴의 우익군은 황제군 기병대의 공격을 7시간 동안이나 버텨냈다. 그 뒤 구스타프는 직접 틸리군의 좌측을 포위하고 맹반격을 가함으로써 작센군이 잃어버렸던 무기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황제군의 무기를 빼앗고 황제군 보병 방진(方陣)을 짓밟았다.황제군은 1만 2,000명을 잃고 패주했으며, 틸리는 큰 부상을 입은 채 수천 명만을 데리고 달아났다. 구스타프는 다음날 라이프치히에 입성했다.
*결과
베스트팔렌조약 (Peace of Westfalen)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에 벌어진 80년전쟁과 독일의 30년전쟁을 마감한 조약(1648).
30년전쟁의 주요무대는 독일 도시와 공국이었으며 이 지역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전투에 참가한 많은 군인들이 용병이라는 점은 30년전쟁의 한 특징이다. 이들 용병 가운데 다수는 급료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기 때문에 보급품 충당을 위해 시골마을을 약탈했으며 따라서 이 전쟁에서 하나의 전형을 이루는 이른바 ‘늑대 전략’이 시작되었다.
쌍방간의 군대는 모두 진군중에 약탈을 일삼아 도시와 마을 및 농장들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열강들이 유혈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독일의 베스트팔렌에서 회동했을 때 유럽의 세력균형은 근본적으로 변해 있었다. 스페인은 네덜란드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의 주도적인 입지도 상실했다. 프랑스는 서방강국으로 부상했으며 스웨덴은 발트 해의 지배권을 장악했다.
네덜란드는 독립된 공화국으로 승인받았으며 신성 로마 제국의 소속 연방국가들에는 완전한 주권이 주어졌다. 따라서 정신적으로는 교황이 주도하고 세속적으로는 황제가 주도하는 유럽의 가톨릭 제국으로서의 신성 로마 제국은 사실상 붕괴되었다. 또한 주권국가들의 공동체라는 근대 유럽의 본질적인 구조가 확립되었다.
강화회의는 1645년부터 독일 베스트팔렌지방의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서 나뉘어 열렸는데, 48년 10월에 조인되었다.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서(西)포메른과 브레멘대주교령·페르덴주교령 등을 획득하고, 프랑스는 메스·투르·베르됭의 세 주교령과 알자스의 합스부르크가 영토를 획득했으며, 브란덴부르크는 동(東)포메른·마크데부르크대주교령·민덴주교령 등의 영유를 인정, 바이에른은 남(南)팔츠의 영유와 선제후위(選帝侯位)를 인정받았고, 스위스와 네덜란드는 독립국 지위를 승인받았다.
교회령에 대해서는 1624년의 상태로 되돌리기로 결정하고, 1555년의 아우크스부르크화의(和議)에서 부인(否認)된 칼뱅파도 루터파와 같은 자격으로 승인되었다.독일의 영방(領邦) 제후와 제국도시는 <황제와 제국(帝國)을 적대하지 않는 한에 있어서>라는 조건으로 상호 또는 외국과도 동맹할 권리가 인정되었다.
그래서 합스부르크가의 세력은 후퇴하고, 프랑스와 스웨덴은 강국이 됨과 동시에 독일 내부에서는 브란덴부르크의 세력이 커졌다. 한편 독일제국(신성로마제국) 안의 분립주의는 극에 달하게 되었다.이로서 독일 ��내에서는 제후의 독립성이 강화되어 신성로마 황제의 지위는 더욱 명목적 존재가 되었다.
위그노전쟁 (Huguenots Wars) 프랑스
개요 : 1562∼1598년 프랑스의 종교내란.
위그노란 프랑스 칼뱅파 프로테스탄트(신교도)의 별칭이다. 15세기 말 시작된 지리상의 발견은 서유럽의 경제생활에 큰 변동을 가지고 왔으며, 봉건영주제가 무너지자 소농민(小農民)·소생산자(小生産者)층에서도 독립 기운이 감돌았다. 여기에 칼뱅 교의(敎義)가 구체제(舊體制)에 대한 변혁을 고취시켰다.
칼뱅파의 교의는 프랑스 경우 서민에서 궁정·귀족에게까지 퍼져 갔다. 따라서 기즈공(公)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파에 대하여, 프로테스탄트도 부르봉과 콩데공(公) 등을 지도자로 무장봉기하여, 30여 년 동안 내란이 전개되었다. 앙리 2세의 왕비이며 샤를 9세의 섭정인 카트린드메디시스가 왕권을 보전하고 신구(新舊) 양파의 세력균형을 꾀하기 위하여, 프로테스탄트에게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것이 내전(內戰)을 더욱 격화시켰다. 프로테스탄트 출신으로 프랑스의 왕위에 오른 앙리 4세의 정치력에 의해 수습되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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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분포 현황과 종교 분쟁 지역 오늘날 대륙별 종교 분포를 살펴보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는 그리스도교가 대부분이며, 아시아에서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교, 도교,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정령주의 신앙, 오세아니아주에서는 그리스도교와 정령주의로 분포되어 있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17) : (1997년 말 세계 인구 : 55억 기준)
1,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크게 세 종파로 나뉜다.
㈀ 가톨릭 : 가톨릭은 그리스도교의 원류로서 2000년 전부터 교황직과 그와 결속된 주교들을 통해 계속 사도적 전통이 내려오고 있다. 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 속해있는 남유럽과 폴란드, 헝가리 등의 동유럽, 크로아티아,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그리고 멕시코, 브라질을 비롯하여 남미의 대부분의 나라들에 분포되어 있다. 1997년 말 교황청 통계에 의하면 10억 5백만 명으로서 세계인구의 17.3 %를 차지하고 있다.18)
㈁ 정교회 :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리로 형성된 정교회는 그리스를 비롯하여 러시아와 불가리아, 루마니아, 신유고 연방, 에티오피아 등 1억 6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 프로테스탄트 :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과 함께 시작된 프로테스탄트는 독일 북부, 영국, 북유럽, 북미, 오스트렐리아, 뉴질랜드 등에 4억 명 가량으로 추산된다.19)
2, 이슬람교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가 있다. 수니파는 이슬람 공동체 가운데 다수를 차지하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정통파로 부르고 있으며 예언자의 수나(법규)를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시아파는 예언자의 혈통을 중시하여 정통으로 생각하여 이슬람 공동체를 이루는 종파를 말한다.20)
㈀ 수니파 : 중동의 여러 나라들, 구 소련 중앙아시아의 나라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보스니아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슬람교인의 대부분이 수니파 교도들로서 9분의 8에 해당한다.
㈁ 시아파 : 이란 , 이라크 남부, 아제르바이잔, 예멘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이슬람교인의 9분의 1가량으로 추산된다.
3, 불교
불교는 크게 대승불교와 소승불교 그리고 라마교로 나뉜다.21)
㈀ 대승불교 : 한국, 일본, 기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1억 7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 소승불교 : 스리랑카, 미얀마, 타일랜드, 캄보디아, 라오스, 기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1억 3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 라마교 : 중국의 티벳 지역과 몽골 등지에서 3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제 4, 유대교 : 이스라엘과 그리고 전세계 각지에서 약 2천만 명으로 추산된다.
제 5, 힌두교 인도 : 네팔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22)
제 6, 유교와 도교 : 중국, 대만, 홍콩 등에서 약 2억 명으로 추산된다.
제 7, 기타 창시종교 인도의 시크교, 자이나교, 이란에서의 바하이교, 아메리카에서의 몰몬교 등 대략 2억 명으로 추산된다.
제 8, 기타 민족 종교 :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남미, 러시아 북부 등에 1억 명으로 추산된다.
제 9, 비신자, 무신론자 : 어떤 종교적 신앙도 갖지 않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로서 약 11억 정도로 추산된다
세계의 종교갈등 지역
– 인도(힌두교-회교), 필리핀(카톨릭-민다나오섬의 회교도), 스리랑카(불교 70%-힌두교 17%), 중동(이스라엘,서방-회교국), 나이제리아(회교-기독교), 아일랜드(천주교-개신교), 유고(보스니아족:회교-세르비아:희랍정교회-로마카톨릭:크로아티아), 남미(천주교-개신교)
유고슬라비아내전
1. 개요 :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근원은 크게 3개 종교, 5개 민족, 4개 언어, 2개 문자로 이루어진 복잡한 나라구성과 외세의 침략으로 이합 집산을 거듭한 역사에 있다. 1차대전 후 처음으로 단일국가를 형성한 이래, 2차대전을 거쳐 1945년 요시프 티토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유고슬라비아를 재통합했다. 그러나 1980년 5월 티토의 죽음은 세르비아 패권주의의 불길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80년대 후반 동유럽 민주화 영향으로 연방체제가 와해되기 시작했다. 1987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었는데, 그는 대세르비아주의 건설에 대한 집념이 매우 강한 인물이다.
1990년 9월 공화국 독립헌법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대통령 권한 확대 및 코소보, 보이보디나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것이었다. 1990년 12월 최초의 자유총선 및 대통령 선거에서 세르비아 사회당이 승리하고, 밀로세비치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그러나 이는 비공산 계열 공화국 정부를 탄생시켰던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느슨한 형태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주장했고 이러한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였다.
1991년 9월에는 마케도니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3월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도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하여 1992년 4월 세르비아 공화국과 몬테네그로 공화국 , 그리고 2개의 자치주 코소보, 보이보디나를 근간으로 신 유고연방이 탄생하였으며, 12월에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밀로셰비치가 재당선되었다. 한편 계속되는 내전과 함께 평화협상이 추지되어 왔지만,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하였다. 서방측은 이러한 내전의 궁극적인 책임이 세르비아계에 있다고 판단, 신유고 연방에 대한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하였고, 미군 주도하의 UN(국제연합)의 군사개입(보스니아 내전)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세르비아계 거점 지역들에 대한 78일간의 공습(코소보 독립분쟁)을 통해 평화협정을 이끌어 냈다. 이후 밀로셰비치는 임기가 2001년 여름까지임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2000년 9월 조기대선을 실시하였으나,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였고, 이에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10월 대통령직을 사임하였고 현재 코슈투니차 정권이 출범하였다.
2. 보이보디나 분쟁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1차대전의 패배로 보이보디나 지역을 유고슬라비아왕국에 할양하였다. 1990 공화국 독립헌법 채택으로 연방정부가 대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명분아래 코소보, 보이보디나의 자치권을 박탈하는 등 소수민족 탄압정책을 감행하자,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거주하고 있는 헝가리계 소수민족은 세르비아의 탄압에 항의하면서 자치권 회복을 요구했다. 그러나 다른 분쟁과는 달리 유혈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다.
3. 슬로베니아 내전 : 1991년 6월 슬로베니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구유고연방은 이를 불법이라고 단언하면서 연방군의 첫 공격지로 슬로베니아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슬로베니아의 저항에 부딪쳐 공화국의 분리 독립의지를 꺽지 못하고 오히려 국제여론을 악화시켰다. 1991년 8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크로아티아 내전을 거치면서, 1992년 1월 유럽 각 국의 만장일치로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는 독립을 승인 받았다.
4. 크로아타티아 내전 : 1991년 6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구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포하자 이를 제지하려는 유고연방군 및 크로아티아내 소수민족인 세르비아계가 합세하여 크로아티아를 공격하면서 발생했다. 1992년 1월 휴전협정 체결과 함께 유럽각국의 만장일치로 독립을 승인 받았다. 그러나 1993년 1월 크로아티아 정부군이 세르비아계의 전략적 거점을 공격하고 이에 세르비아가 크로아티아내 자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전투에 들어가면서 다시 평화상태가 깨지게 되었다. 1994년 1월 세르비아공화국이 주도하는 신유고 연방과 크로아티아는 휴전협정에 서명하면서, 그동안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관계정상화를 위한 협정에 조인하였다.
5. 보스니아 내전 : 1992년 3월 회교도가 중심을 이룬 보스니아 이슬람 정부와 보스니아내 크로아티아인들은 국민��표를 통해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자 보스니아내 약 30%를 차지하는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에 돌입하였다. 내전초기 유고연방군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계는 보스니아 영토의 약 70%를 장악하였다. 이에 UN은 신유고 연방에 대한 제제 조치를 통�� 신유고 연방으로부터의 휴전은 이끌어냈지만,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는 휴전에 동의하지 않은채 소위 인종청소라 불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등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었다. 그리하여 1992년 8월 UN(국제연합)이 군사개입을 결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휴전과 전쟁을 반복하는 등 내전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1995년 12월 회교-크로아티아계 연방과 세르비아계공화국의 1국가 2체제로 연방을 구성한다는 데이턴 평화협상을 기초로 보스니아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보스니아 내전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6. 코소보 독립분쟁 : 코소보는 세르비아 왕국이 세워진 성지였으나 터키제국에게 점령된 이후 알바니아인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민족, 종교적으로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간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대세르비아의 건설이라는 명분하에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였고, 이에 코소보내 알바니아인들은 1992년 독립을 선포하였지만, 보스니아 사태로 인해 쟁점화되지는 못하였다. 1996년 알바니아의지원하에 ‘코소보 해방군(KLA)이 결성되었고 보스니아 사태가 진정의 기미를 보이자 , 세르비아는 코소보 해방군(KLA)에 대한 소탕작전을 감행하였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세르비아에 대해 즉각적으로 코소보에 대한 만행을 중지할것을 촉구하는 한편 사태가 평화적으로 종결되지 않는다면 군사개입을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신유고연방은 코소보문제를 국내문제로 간주하고 국제사회의 개입을 거부하였다. 한편 러시아와 중국은 코소보 사태에 대한 해결을 UN(국제연합)이 해야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군사개입을 반대하였다. 1999년 3월 UN(국제연합)의 의결없이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창설이후 처음으로 공습을 감행하였고, 6월 유고정부가 코소보평화안을 수용하면서 사태는 종결되었다. 그러나 사태가 종결된 후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에 대한 역 테러가 자행되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의 종교인구를 살펴보면 가톨릭 9억명, 개신교 4억명, 그리스정교 1억 6천만명이며 이슬람교는 수니파 시아파를 합쳐 9억명, 힌두교 7억명, 불교 3억명을 헤아리고 있다. 이러한 세계 종교 분포를 지도로 보면 현재의 국경선과는 전혀 다른 종교국경선이 나타난다. 이런 ‘국경선과 종교분포의 불일치’가 알력과 전쟁을 낳는 요인이 된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정치과학자새뮤얼 헌팅턴은 “21세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나 국가간의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문명의 충돌’에 의해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특히 세계화의 충격에 맞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문화적 종족적 종교적 전통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사실에 관심을 기울였다. 즉, 과거 시대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의 적’이 사라지자 이념대립에 쏠렸던 에너지가 종교등으로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 각지의 분쟁에 있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일단의 선민의식을 갖고 있는 두 종교는 화해가 불가능한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종교간에 일단 갈등이 빚어지면 시간이 갈수록 그 응어리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단의 정치���도자들이 민족을 결집시키고 나라를 단결시키는 동력을 종교에서 쉽게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 세기말에 동서간의 냉전체제가 끝나고 그와 동시에 과거 공산권에 속하던 나라들에서는 종교 부흥운동이 일고 있다. 동구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자유롭게 신봉될 수 있는가 하면, 러시아에는 정교회가 일어나고 있으며, 구 소련의 붕괴로 독립한 많은 나라들에서는 이슬람교가 일어나고 있다.
구 소련에는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이 약 5,000만 명 가량되며, 이슬람교 신자는 두 번째로 많은 수효로서 약 4,500만 내지 5,000만 명에 이른다. 이 수치는 이집트의 90%에 해당하는 이슬람교 신도 수와 비슷한 수효이며,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다음으로 다섯 번째로 많은 이슬람 대국이 된다 소련 인구가 약 3억이라고 할 때 6분의 1이 이슬람교 신자였다는 계산이 된다. 소련의 해체로 반독립국가가 된 중앙아시아에 위치해 있는 여섯 나라 즉,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이 이슬람 국가이다. 이 중 아제르바이잔만 시아파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수니파이다. 민족으로는 타지크인만 이란계이며 그 외는 모두 터키계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도는 러시아 안에도 존재하는데 타타르스탄과 바시코르트스탄 이 두 공화국에는 터키계 이슬람교도들이 있다.1)
그리고 아시아에 집중적으로 있던 불교나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도 서방 그리스도교 세계에 선교활동을 전개하면서 그들의 종교 사상을 전파하는 노력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불교 계통에 뿌리를 둔 선교 단체들도 있고, 통합 요가 등과 같은 힌두교 계통도 있으며, 이슬람 계통의 선교단이 있다. 이처럼 종교는 각자 교리적으로 볼 때 그리고 그 종교 신봉자들의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사랑과 자비를 설파하면서도 각각 나름대로 자기 종교를 중심으로 그러한 사랑과 자비가 베풀어지기를 바라며, 서로 다른 종교들이 만나는 곳에서는 만남과 대화와 이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반대로 갈등과 마찰과 대립도 있어왔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인류 역사 안에는 이러한 종교간의 대립과 갈등과 마찰이 있어 왔고 오늘날도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종교들간의 분쟁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면 1992년 4월 보스니아 세르비아계가 자치공화국을 선언함으로써 발단된 치열한 종교 분쟁이 3년이나 지속되었던 유고의 종교분쟁이 있는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세르비아계의 정교회, 크로아티아계의 가톨릭, 무슬림인계의 이슬람교, 이 세 종교와 민족들 간에 복잡한 종교 분쟁이 야기되었다. 어려움 끝에 1995년 11월 미국 데이턴에서 평화협정에 가조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칸반도의 화약고로 남아 있다.14) 그리고 북 아일랜드에서의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분쟁15), 레바논에서의 마론파 그리스도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과의 분쟁16), 인도네시아에서의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와의 분쟁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민족이면서도 종교 때문에 나라가 분리된 예가 있는데 인도와 파키스탄이 그러하다.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되면서 힌두교를 택한 인도인은 인도에 남고, 이슬람교를 택한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으로 분리되어 한 민족이 종교 때문에 갈라지고 오늘날도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 분쟁이 있는 곳에서는 민족의 통합보다도 종교를 더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민족이 갈라지는 ��향이 나타난다. 민족이 종교 때문에 갈라지기도 하고, 종교를 고수하기 위해 민족의 이름까지도 변경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 분쟁이 일어나면 세계의 다른 지역에 있는 종교의 신봉자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후원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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