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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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iceman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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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장비 시운전 개념정리
commissioning (시운전)
장비를 실제로 테스트하는 게 엄밀한 의미의 ‘커미셔닝’이고 조선소에서 건조과정에 임시로 물이나 혹은 대체 장비를 사용하여 시범적인 테스트를 하고 설치의 안전성과 완전성(mechanical completion)을 확인하는 과정을 ‘프리 커미셔닝(pre-commissioning)’이라 한다. 
커미셔닝(프리 커미셔닝 포함) 전체과정을 짧은 지면에서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먼저 커미셔닝의 공종(discipline)을 크게 나누면 전기, 계장, 기계로 대별되고,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전기, 계 장, 기계, 프로세스, 유틸리티, 텔레콤, HVAC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는 파워 시스템, 즉 케이블,Power TR, 스위치보드(switchboard), 모터(motors), 전기(lighting), 히터(heaters), 배���리(batteries), 
Earthing 등이고, 계장은 흔히 instrument라고 하여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I/O point와 관련된 것을 통칭한다.  
기계는 장비자체(펌프, 크레인, 리프트, 터빈, 콤프레서, 엔진, 연료 시스템 등)에 대한 기계적인성능 테스트(장비별 테스트), 그리고 프로세스는 장비와 장비의 전체적인 운용에 대한 테스트, 즉 개별 
장비에 대한 테스트 완료 후 시스템 전체를 테스트하는 개념이고, 유틸리티는 각종 에어나, 유압, 해수,청수 등의 공급시스템에 대한 테스트, 텔레콤은 항해통신 설비, HVAC는 에어컨디션 및 히터, 통풍 
(ventilation)시스템을 말한다. 
전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프리 커미셔닝(pre-commissioning)과 커미셔닝(commissioning)으로 구분하는데, 프리 커미셔닝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비를 실제로 운전하기 전 안전성 확보 
둘째, 설치 작업이 설계대로 되었는지 확인 
셋째, 커미셔닝 및 실제 운전까지 소요되는 시간 절감 
넷째, 장비나 시스템의 품질 보증 
다섯째, 장비에 대한 사전 숙지(familization)로 후공정인 start-up시 효율 증대 
여섯째, 오퍼레이션팀에 원활한 장비 인수 인계 등 
구체적인 프리 커미셔닝 작업의 실례는 전․계장의 경우 준비 단계에서 각종 케이블 결선 상태와 Tag확인 및 도면상에 시스템 혹은 구획별로 커미셔닝할 수 있는 단위로 구분하고, 중대한 결함(‘A’ Punch)이 있는지 확인하고(있으면 사전에 선행부서에 통보해서 완결되도록 해야 함), 실제로 캘리브레이터나 메가테스터와 같은 공구를 사용하여 절연저항 테스트, continuity 테스트, 어스테스트, Instrumentcalibration 등의 정적 테스트(static test)를 수행한다. 
기계의 경우(mechanical pre-commissioning)도 마찬가지로 사전에 도면상에 시운전 단위별 구획을확인하고 각종 document를 준비하여 장비설치, 배관연결, 장비 클리닝, 테그, 라벨 등을 확인하고 배관 flushing이나 hydro-test 등(조선소에 따라서 업무분장이 의장 부서에서 하기도 하고 시운전 부서에서하기도 함)이 완료되었는지 확인한다.__ 
커미셔닝은 원유나 불활성 유체를 실제로 사용하여 동적 테스트, 즉 장비에 파워(전기, 유압,pneumatic)를 넣어 실제 운전하며 장비가 설계치대로 정상적인 컨디션(장비의 제 성능)이 나올 때까지 
테스트하여 오퍼레이션 시 안전성과 완전성을 확보하는 것을 커미셔닝이라 한다. 한마디로 “dynamic &energized”라 할 수 있다.  
주요 작업 내용은 파이프 N2/He leak test와 loop & logic test, motor 
running test, pump operation test 등이 있다. 
커미셔닝을 전체적으로 요약해 보면, 먼저 설계 준비단계에서 시스템별로 구분하는 단계(project equipment breakdown), 즉 프로젝트를 시스템, 서브 시스템, 장비, 세부항목 순으로 나누어 커미셔닝 목록을 작성하고 마크 업 도면(MD drawing)에 마킹된 커미셔닝 패키지별(혹은 시스템이나 구획별)로 커미셔닝 절차서를 만든다.  
이렇게 커미셔닝 전략이 세워지면 절차서(commissioning procedure; CP)에 의거해서 사전 체크 및 작동 검사(전력공급, 모터 운전, 루프 테스트, 항통장비 테스트 등)를 하고, 정상적인 상태에서 실제 오퍼레이션 테스트를 한다. 이후에 프로젝트를 정상 운전하기 위해 한 번 더 캐미컬 클리닝을 비롯한 Leak test 등을 실시하고 순차적으로 시스템 별로 정상 작동을 시켜 전체 프로젝트 를 정상 운영상태로 전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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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zzang99-blo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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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시연대 #전담 #전자담배 #충남 #천안 #동남구 #신방 #통정 #액상 #기성 #모드 #MOD #불당 #아산 #쌍용 #청당 #청수 #풍세 #광덕 #배방 #탕정 #e-liquid #vape https://www.instagram.com/p/BrPlhU4BozY/?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h93pt9w20u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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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beart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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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건설 #청수 #어울림 #디자인비아트 #건축모형 #Architectural #scale #model https://www.instagram.com/p/CCKZFUepfgV/?igshid=v5oyr7lwwp2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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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lpha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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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염전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부당한 소송비 청구를 중지시켜야 합니다.
http://beminor.com/detail.php?number=12113&thread=04r03
(관련 기사)
2014년에 한국의 한 지방에서는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참담한 인권유린이 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데려다가 노예로 부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지방 경찰들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제대로 신고하지도, 탈출하지도 못하였습니다. 또한 이슈가 되어 사회로 돌아온 이후에도 제대로된 보상을 받기는 커녕, 그 지역의 관습이란 명목 하에 그 피해마저도 축소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비극입니다. 하지만 피해자들에게 비극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지자체와 국가에 손해배상청구를 하였습니다. 사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사안이 맞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패소했습니다. 힘이 없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신안군은 피해자들에게 소송에 대한 비용을 청구했습니다. 7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을요. 사회로 제대로 복귀하지도 못하고 여전히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700만원이란 마련하지 못할 거금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국가와 지자체가 외면하여 몇년동안이나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이들에게 보상은 커녕 소송비용을 청구하다니요. 이것은 인권의 유린입니다. 노예제의 인정입니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이에 저는 청원합니다. 신안군 염전노예 피해자들에 대한 소송비 청구를 중지할 것, 그들을 외면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사과할 것, 그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지원할 것. 이것들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 국가에 무슨 정의가 있을 것이며, 무슨 인권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국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인권을 지키라고, 부당한 피해를 입어야만 했던 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신안군 염전노예 피해자들의 비극을 이제는 끝내야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226331?navigation=petitions
청와대 청원 진행중에 있습니다. 서명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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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holee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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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Nov - Dinner
청수 비빔냉면
설로인 스테이크
> 배고픈 마음에 버섯을 덜 익힌채로 후라이팬에서 꺼냈지만 스테이크는 만족스럽게 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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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bitious-zombie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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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질 - talent, aptitude, come naturally
눈부심 - dazzling, glare
야근 - working overtime, night duty
전등 - light, light bulb
복고풍 - retro style
소형 - being small, mini version
소형 냉장고 - minibar, mini fridge
청수 탱크 - water tank
상하수도 - water supply and drainage
냉수 - cold water 온수 - warm water
전선 - electric wire
공구 - tools
수월하다 - to be easily done, effortless
직선거리로 - as the crow flies, in a straight line
설치하다 - to install
시행착오 - trial and error
낫 - sickle, scythe
휘두르다 - to swing, brandish, wield
최소한 - the minimum, the very least
이래 봬도 - appearances aside, may not seem like it
~에 관한 - to be concerning, be about
주의하다 - to practice caution, keep something in mind
역효과 - adverse ef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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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ntdiary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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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비스 중에 '상호대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까운 도서관에 책이 없을 경우 책을 보유한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보내줘 가까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볼 수 있습니다. 집 근처 청수 도서관은 영어전문 도서관이라서 일반도서가 많이 부족해 비교적 규모가 큰 신방 도서관에서 상호대차를 이용하고는 합니다. '리브로피아'라는 도서관 앱을 주로 사용하는데, 사용도 간편하고 책이 도착하면 알림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과 거리가 멀거나 몸이 불편하다면 택배비를 내고 집에서 책을 받아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 지역마다 좀 상황이 다른가 봅니다. 큰 도서관도 좋지만 아이들과 사람들이 자주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작은 도서관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서관 만한 복지도 드물지요.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몽상을 해 봅니다. Thu, 17 Feb 2022  - 소담스토리/일상의기록 中 -
Posting by [소담글씨 & 소담스토리]
#소담스토리 #소담 #소담글씨 #소담캘리 #소담일기 #일상의기록 #하루한컷 #calligraphy #sodamstory #so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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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culture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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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zzang99-blog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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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쥬스 버블베리 입고 라즈베리 블루베리 스트로베리 믹스 #전담 #전자담배 #충남 #천안 #동남구 #신방 #통정 #액상 #추천 #순위 #기성 #모드 #MOD #입호흡 #폐호흡 #불당 #아산 #쌍용 #청당 #청수 #풍세 #광덕 #배방 #탕정 https://www.instagram.com/p/BxPZRPulOVc/?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la0e5yqzf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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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chkim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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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정식 #판메밀 #유부초밥 #여의도청수메밀우동 #은평뉴타운 #맛집 #은평뉴타운맛집 #먹부림 #먹방 #먹스타그램 #맛스타그램 #Instafood #Foodgram - - #Japanese_Food @여의도청수메밀우동 w/Unknown People Date-20170606TUE - - ✔️ 출근전에시간많이남나서판메밀먹으러고고. 분명아침을먹었는데신기하네. 내뱃속의지우개. 내년현충일엔부디나도쉴수있기를... 🇰🇷(여의도 청수 메밀국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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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draw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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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gmi4f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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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아파트사거리 섹시한 마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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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holee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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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Oct - Lunch
청수 비빔냉면 + 골뱅이 + 리크leek 채
> 오늘도 감사히 맛나게 먹었습니다 🙌🙏
생선 슈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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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amstar658-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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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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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s://aboutisangyun.weebly.com/ )
이 곡은 윤이상이 외손녀 리나 첸을 위해 작곡한 바이올린 독주곡이었다. 초기 작품에 비해 훨씬 쉬운 이 곡에서는 마치 만년의 추사가 동체의 경지에 도달한 것과 같은 극도의 단순미가 느껴졌다. 그때, 마침 대웅전 안으로 한 떼의 참새들이 날아 들어와 울어댔다. 청아하고 귀여운 바이올린의 선율에 새들의 맑고 고운 노래가 실리자, 신비롭고 영성 깊은 천상의 음악이 펼쳐졌다. 1.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65907253467042 베를린의 축제 주간이었던 그해 9월 26일,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현악 4중주단은 윤이상이 작곡한 <클라리넷과 현악 4중주를 위한 5중주 2>를 초연했다. 이 곡은 20대 청년 시절의 윤이상이 오사카 음악학원에 다닐 때의 기억을 더듬어 쓴 곡이다. 기타쿠슈의 철길을 따라 울긋불긋 늘어선 단풍을 떠올리며 작곡한 곡이기에 초연은 기타쿠슈의 페스티벌에서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시벨리우스 현악 4중주단은 베를린 초연을 열망했다. 클라리넷 주자인 에두아르트 브루너Eduard Brunner가 이 뜻을 전하자 주최 측에서는 크게 기뻐하며 베를린 초연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곡의 초연 장소가 바뀌게 되었다. 2.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65916406799460 음악은 감동이다. 감동에서 출발해야 한다. 창작의 감동이 없다면 그 누구의 마음을 울리겠는가. 최초의 악상, 최초로 시작되는 곡의 마디, 최초로 꿈틀대는 음표에 감동이 스며들지 않는다면 결코 단 한 사람의 마음도 얻지 못할 것이다. 윤이상은 작곡에 임하는 순간마다 이러한 다짐을 마음속으로 늘 되뇌곤 했다. 수없이 일렁이는 마음의 결마다 똑같은 생각들�� 새겨 넣곤 했다. 이 같은  다짐은 시시가각 수면위로 올라와 이마를 서늘하게 했다. 누구를 위한 감동이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한 감동이어야 하는가? 어떤 내용의 감동이어야 하는가? 다짐 한편에는 무수한 의문이 늘 죽순처럼 솟아나왔다. 관객의 갈채를 받는 순간에도 그 생각은 끝없이 맴돌고 회오리를 일으켰다. 기분 좋은 어지럼증이 온몸을 휘감았다.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적 분신인 첼로를 통해 끝없이 A음에 도달하려 했다. 윤이상이 추구한 세계는 A음 속에 담겨 있었다. 중저음부를 벗어난 음은 점차 가늘어지며 현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글리산도, 가쁜 숨결을 토하는 선율 사이를 목탁 소리가 가로질렀다. 글리산도로 활주하던 첼로는 끝내 A음에 다다르지 못한 채 G음에 머무르고 만다 (...) 첼로가 다다르고자 했던 곳은 트럼펫의 깨끗한 A음의 세계였다. 첼로의 G음이 두 발 붙이고 사는 현실이라면 트럼펫의 A음은 탈속의 경지였다. 반음계 하나 차이일 뿐인데 이쪽은 홍진紅塵이고 저쪽은 이슬에 매달린 선계였다. 미세한 현의 경계 너머에 자신의 지친 영혼을 쉬게 해줄 푸른 언덕이 숨어 있었다. 무당굿은 한번 시작하면 대개 사흘 동안 계속되었다 이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소년의 눈과 귀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샤머니즘 의식을 모두 빨아들일 것 같았다. 이때 보았던 무당굿은 나중에 그가 쓴 세 명의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나모(南無)>를 통해 되살아났다. 불교의 전통음악인 범패의 세계를 펼쳐 보인 이 곳은 1971년 5월 4일 베를린 방송국 대연주홀에서 베를린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3.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69676573090110 윤이상의 음악은 동에서 정으로 전환하거나, 정에서 동으로 도약하며 극적인 악절(pharse)을 펼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윤이상의 음악은 움직임과 고요함이 하나로 맞물려 있다. 그 유기적 공존은 곧 정중동靜中動의 세계다. 그러므로 동은 무조건 뛰어넘어야 하는 질곡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인간의 애환이 깃들어 있는 연민의 세계다. 동은 그러므로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감싸 안아야 할 존재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교차하는 지점에 윤이상 음악의 비경秘境이 숨겨져 있다. 정이라 할지라도 세상과 유리된 채 독립적으로 ���재하는 절대적인 영역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동과 정은 상보적인 관계다. 태극의 음과 양처럼 서로 같이 있음으로써 하나를 이루는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동이 있음으로써 정의 청정함이 더욱 빛난다. 정이 있음으로써 동의 고뇌가 깊어진다. 그 둘은 제각기 하나이면서 둘이 모이면 전체가 된다. 4.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69691913088576 윤이상은 훗날 강서대묘의 고분벽화를 보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다. (...) 여기서 받은 영감은 강렬한 것이었다. 윤이상은 뒷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신도에서 영감을 떠올린 두 개의 곡을 썼다.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 플루트와 오보에와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영상>이 그것이다. 5.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69692999755134 남도창 특유의 길게 이어지는 노래에는 슬픔과 한이 서려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꾸밈없이 토해져 나오는 가락이었다. 유려하게 흐르다가 절절하게 휘어지는 대목에 이르면 청중은 "얼쑤!"하며 장단을 맞췄다. 음의 흐름이 오르막을 향해 치달아가거나 급격히 꺾일 때마다 사람들은 어깨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좋다!"를 연발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청중들은 이화중선의 노래에 추임새를 넣으며 온통 하나가 되어갔다. 윤이상은 이때의 기억을 더듬어 <<한양>>지에 <명창 이화중선>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 목소리는 만들어내는 소리가 아니라 저절로 울려 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조금도 과장이 없이 마치 계곡의 청수淸水가 바윗둑을 넘쳐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6.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3642679360166 "황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에케르트 선생에게 애국가 작곡을 의뢰했어. 1902년 7월 1일, 에케르트 선생은 민영환 대신이 작사한 <대한제국 애국가>를 작곡했지. 그해 8월 15일 애국가는 <대한제국 애국가>로 공식 공포되었다네. 에케르트 선생은 많은 악보와 악기를 서양에서 도입한 뒤 여러 제자에게 음악이론과 악기 연주법 등을 가르쳤지. 그분이 길러낸 제자들은 서양음악을 배운 조선의 1세대 음악가야. 나는 에케르트 선생이 가르친 직계 제자로부터 정통 서양 음악이론과 대위법 및 화성학을 배운 2대 제자인 셈이지." 7.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3649329359501 "커다란 용이, 상처 입은 커다란 용이 지리산 위로 날아오르려 했는데...., 하늘 높이 날아오르려 했는데...." 훗날 고희를 맞은 윤이상은 어머리를 그리며 2악장으로 된 교향곡 4번 <암흑속에서 노래하다>를 작곡했다. 이 곡은 1986년 11월 13일 ���쿄 산토리 홀에서 메트로폴리탄 관현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조선의 어머니들은 전쟁과 역병이 휩쓸고 간 뒤 허리도 한 번 펴지 못한 채 일을 해야 했다. 따개비처럼 웅크린 채 밭두렁과 논두렁에서 일을 하다 보면 곱던 손은 갈퀴손이 되었고, 발은 부르트기 일쑤였다. 식민지의 하늘 아래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 자체가 암흑이자 질곡이었다. 시집 식구들을 위하고 남편을 보필하며 자식들을 키우다 보면 느는것은 흰머리와 주름살이요 얻는 것은 심화心火와 요통이었다. 길쌈을 하고, 채소를 씻고, 물레를 돌리고, 빨래를 하며 살아가는 삶 자체가 어찌 보면 암흑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암흑 속에서 노래하다>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생모에 대한 헌사이자 이 땅의 수 많은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가슴 뭉클한 노래였던 것이다. 8.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3709926020108 '하지만 결코 서둘러서는 안 돼.' 윤이상은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음표는 높은 것이든, 낮은 것이든, 중간 것이든 할 것 없이 내버려두면 저절로 제자리를 찾는 법이었다. 그것을 꽃처럼 꺾으려 들거나 섣불리 낚아채려 해서는 안 된다. 잡으로 허둥대면 음률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안달이 날수록 그것은 운무를 짙게 흩뿌리며 아스라이 사라져갔다. 눈앞에 음률이 있어도,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어도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조바심친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다. 느긋해야 한다. 차가운 이성으로 생각을 다스려도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언제나 허방을 짚는 수가 많다. 그런 일들을 많이 겪었던 터였다. 윤이상은, 작곡의 순간에는 그저 몰입하는 게 최고라는 결론을 내렸다. 몰입하되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음률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최상이다. (...) 솜씨 좋은 목수가 나무를 다듬어 멋진 장롱을 만들듯이, 하나하나 정성 들여 곡을 써가던 윤이상은 1937년 첫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출간했다. 김상옥은 이미 1941년 '동아일보' 신촌문예 시조부에 '낙엽'이라는 시가 당선될 만큼 주목받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재는 특출했다. 고아한 언어로써 전통의 멋과 혼을 격조 높게 표현하는 데 견줄 이가 없을 정도였다. 윤이상은 그해 김상옥의 시조 '봉선화'에 곡을 붙여 <편지>로 제목을 바꾼 가곡을 썼다. 윤이상은 해방 직후를 '비문화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보다는 눈 앞에 당면한 현실 문제를 타개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여겼다. 음악가들과의 교류, 그리고 그들과의 연대를 통해 조국의 재건에 기여하는 것도 뜻있는 일임은 틀림이 ���었다. 하지만 윤이상은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여러 정파 간의 이전투구와 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윤이상에게는 거창한 명분과 이념보다는 상처 투성이인 민족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더 다급하고 중요한 문제라 생각했다. 윤이상이 어떤 음악인 단체에도 가담하지 않고 고향 통영에서 일거리를 찾아 팔 걷어붙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통영여자고등학교에 근무하게 된 윤이상은 그곳에서 국어 교사로 있던 유치환과 자주 어울렸다. 9년 선배인 유치환과는 호흡이 잘 맞았다. 이 무렵 윤이상은 통영 일대의 학교에 새로운 교가를 만들어주는 운동을 벌였다. 일제 잔재를 청상하는 차원에서 출발한 '교가 지어주기 운동'은 통영뿐만 아니라 부산에까지 번져나갔다. 이 같은 일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각 학교마다 일본말로 된 교가 대신 한들로 된 교가로 교체하는 운동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것이다. 윤이상은 김상옥이 쓴 가사에 맞춰 욕지중학교 교가를 작곡했다. 하지만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치환이 지은 노랫말에 곡을 붙였다. 통영보통학교, 충렬보통학교, 욕지중학교, 통영여자중학교, 통영고등학교, 원평보통학교, 진남보통학교, 두룡보통학교, 용남보통학교 등 윤이상은 도합 아홉 개 학교의 교가를 작곡했다. 9.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7963978928036 가곡집을 출판하기까지 남몰래 고민했던 흔적은 그의 글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1955년 윤이상이 쓴 수필 '나와 음악'에 나오는 "과거 창작 중에 각혈하고 출판의 빚을 위해 결혼반지를 팔아도 이 길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가곡집에는 <고풍의상>(조지훈 작사, 1948), <달무리>(박목월 작사, 1948), <추천>(김상옥 작사, 1947), <편지>(김상옥 작사, 1941), <나그네>(박목월 작사, 1948)까지 모두 다섯 곡이 수록되어 있다. 10.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7972295593871 <편지>의 경우, 요즘 맞춤법과 다른 1930년대 후반의 표기법이 눈에 띈다. 옛 말맛이 주는 운치가 각별한 이 시조는 초장과 중장, 종장에서 음수율의 미세한 변동이 눈길을 끈다. 윤이상은 이 곡을 쓰면서 피아노 반주와 노래가 마치 화답하는 듯한 아름다운 가락을 짜넣어 고향의 아련한 정경을 담았다. 멜로디 중간에 농현 기법을 연상케 하는 꾸밈음을 넣었고, 글리산도와 같이 미끄러지는 대목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특히, 곡 후반의 피아노 반주부에 나타나는 장식음은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마치, 작고 은은한 종소리처럼 맑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목이다. 가곡 <편지>에는 봉선화의 어여쁜 꽃망울을 매개로 누님께 편지를 보내는 남동생의 애틋한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김상옥이 쓴 시 <추천>이다. '추천鞦韆'은 민��놀이 중 하나인 '그네'의 한자말이다. 윤이상은 1947년에 이 시조에 곡을 붙였다. 일부 문헌에는 이 가곡의 제목이 <그네>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이 곡들은 1945년 전후에 자곡되었으며 우리 민족의 그 시기의 작곡적인 소재지를 모색 검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곡들을 다시 냄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성악가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태적인 묘미를 연구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1994년 '초기 가곡과 심청 아리아 음반'에 대한 윤이상의 기대와 감회의 글 '음반을 내면서' 중에서) "이 곡들을 다시 냄에 있어서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가수가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가미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며 이 가곡들은 우리 민족이 작곡한 다른 가곡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으며, 또 서양의 적당한 가곡과 같이 불러도 좋다. 가능하면 반주는 가야금, 거문고와 북 같은 우리 전통악기들이 피아노에 대신 할 수 있다."(금강산 윤이상 음악회 팸플릿 윤이상의 간곡한 어조가 담긴 당부의 말) 1950년 1월 30일, 부산 철도호텔에서 윤이상과 이수자의 결혼식이 열렸다. 식장에는 400명이 넘는 하객들로 붐볐다. 윤이상의 기획으로 결혼식의 모든 순서와 내용은 마치 멋진 음악회처럼 기발하게 꾸며졌다. 테너 김호민이 강수범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축가를 불렀다. 조지훈 시, 윤이상 작곡의 <고풍의상古風衣裳>이었다. 조지훈은 1939년 '문장'지에 이 시를 발표한 바 있었다. 윤이상은 휴일 저녁이면 아내와 함께 자주 산책을 하곤 했다. 집에서 언덕 위로 걸어가면 고즈넉한 골짜기가 나왔다. 그 길에서 듣는 산새들의 노랫소리는 마음을 늘 깨끗하게 해주어서 좋았다. 이 무렵 이수자의 작은오빠 내외가 성복동 집에 함께 살게 되었다. 서울에서 친정붙이랑 함께 살게 되자 이수자는 마음이 푸근해짐을 느꼈다. (...) 이 같은 안온한 날들이 창작의 의욕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여기서 힘입은 윤이상은 가곡과 실내악곡을 꾸준히 썼고, <첼로 소나타 1번>의 초연까지 마쳤다. 어느 깊은 밤, 성북동 집에는 유난히 삭풍이 불어닥쳤다. 윤이상은 곡을 쓰기 위해 건너방으로 갔다. 싸늘한 기운을 떨치려 내복을 껴입었다. 그래도 추위가 여전했다. 이번에는 어깨 위로 외투를 둘러썼다. 조금 나았다. 책상 앞에 앉은 윤이상은 머릿속과 가슴속에 자맥질하는 음표들을 가지런히 정리해나갔다. 이수자는 작곡에 몰두하는 남편을 위해 과일을 깎아주고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날따라 문풍지를 울리는 찬바람이 건넌방을 온통 점령했다. 한기가 몰아치자 윤이상은 솜이불까지 뒤집어쓰고는 추위에 맞섰다. 한결 든든했다. 그때부터 집중하고 또 집중하면서 영혼을 울리는 가락과 하나가 되어갔다. 오선지에 한 마디, 두 마디 음표가 그려질 때마다 악보는 금세 도약이라도 할 것처럼 꿈틀거렸다. 긴 겨울의 끝자락에 윤이상은 <현악 4중주 1번>을 완성했다. 11.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79884878735946 "그 시대의 사회 조직의 일원인 예술가는 그 민중에 대해 시대 계발의 책임을 지고 있다. 무릇 예술은 어느 시대고 간에 그 시대의 산물이요, 민중은 자기 세대의 감수력과 사고력을 타고나는 것인데, 민중에게 어느 한 시대의 예술을 편식시키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한군데 고이게 하는 것과 같이 교착과 부패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1954년 "문예" 신춘호 제 5권 제1호에 발표하게 된 '안계구상의 제문제' 중에서) 이 거대한 혼돈의 끝에서 또 다른 양식과 규범이 태어난다 해도, 자신은 그 늪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한히 팽창하는 혼돈 위로 홀로 솟구칠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는 전위파 음악가들과 다른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우주에 떠도는 음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호명해야 할 것이다. 거기에 이름을 붙이고 나만의 색채를 입혀 음악으로 빚어내야 한다. 나에게는 동아시아적인 유구한 철학과 음악언어가 있다. 나의 피 속을 흐르는 조선의 혼이 있다. 그것을 서양의 음악언어로 재창조해야 한다.'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과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은 12음기법으로 작곡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에서 윤이상은 '주요음(Hauptton)' 개념을 조금 버무려 넣었다. 서양 음악은 화성을 통해 주제를 표현하는 데 비해, 한국의 전통음악은 하나의 음이 고유한 주제를 형성하며 끝까지 이어진다. 윤이상이 창안한 주요음은 여러 음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주제의식을 밀고 나아가게 된다. 이 같은 면에서 윤이상의 주요음은 서양의 음악 어법과도 다르며, 한국 전통음악과도 구별된다. 주제의식을 지닌 음의 무리가 주요음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선 음향이 아닌 복합 음향으로 존재한다. 13.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0683911989376 윤이상은 자신의 작품이 정신과 기법 면에서 어떤 작품과 비교하더라도 뒤지지 않을 뚜렷한 개성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컨대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의 제1악장에서는 12음 음악의 기본에 충실했지만, 제2악장에서는 첼로의 글리산도를 통해 조선 궁중음악에서 악기들이 내는 유장하고 사색적인 소리를 구현하도록 했다. 서양 악기를 통해 소리를 떨리게 하는 궁중 악기의 비브라토vibrato와, 빠르게 미끄러지듯 소리 내는 글리산도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결합으로써 동양의 음양 사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할 때는 극적인 효과를 발휘했다. 제3악장에서는 다름슈타트에 다녀온 이후 줄곧 구상해 자신만의 색깔로 창안해낸 '주요 음향 기법'이 12음기법과 잘 어우러지도록 표현했다. 당시 청중들은 윤이상이 한국의 민요 같은 것을 무대에 올��� 것으로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윤이상이 들고 나온것은 12음기법으로 쓴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이었다. 그들은 이 작품이 동양음악의 전통을 12음기법으로 구사한 세련된 음악이라는 것을 알고는 혀를 내둘렀다. 신문 평도 "윤이상이 그들의 음악을 들고 나오지 않고 음악의 에스페란토인 현대 작곡기술을 구사한 것은 우리들에게 경이였다"는 식의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음악'이란 한국 전통음악과 같은 민요조의 곡을 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을 인공적으로 만든 조어인 에스페란토어에 비유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만국 공통어라는 기능적 측면 이외에 민족 언어로서의 살가움이나 정서적 풍부함이 거세된 에스페란토어는 자신의 음악과 근본이 다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한국 땅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해왔기에 고향 통영의 정서와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전보다 느긋해진 마음 때문인지 작곡에도 속도가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35회 국제 현대음악제에 출품할 목적으로 초고를 잡아놨던 <현악 4중주 3번>을 평온한 마음으로 완성했다. 윤이상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앞서 작곡한 <현악 4중주 1번>과 <현악 4중주 2번>을 모두 폐기했다. 한국에서 작곡한 것 전부를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지워버리는 모진 결단을 한 것이다. 그 이전에 작곡한 작품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전부 마음속으로 삭제한 결과였다. <현악 4중주 3번>의 제2악장은 보수적인 교수들을 염두에 두면서 썼던 졸업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국제현대음악제에 출품하기 위해 다시 손을 보게 되자, 전부터 마음에 걸렸던 문제점들이 두드러져 보였다.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과는 동떨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진 애를 쓴 끝에 제3악장 전부를 새로 썼다. 이 작품은 12음기법에 의해 작곡한 윤이상의 초기 작품에 해당되엇다. 이 곡에는 훗날 윤이상이 추구하던 동양의 음이 벌써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었다. 높낮이가 뚜렷한 가운데 길게 뻗어나가는 소리의 형태, 불협화음에 가까운 소리의 충돌 현상을 드러내는 윤이상 음악의 무늬가 거칠게나마 찍혀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공들여 만든 <현악 4중주 3번>을 자신의 작품세계가 구현된 첫 번째 작품이라고 여겼다. 이 때문에 윤이상은 훗날 제자들에게도 <현악 4중주 3번>이 진정한 자신의 작품 목록 1번이라고 부르곤 했다. 그해 11월, 윤이상은 국제현대음악제에서 요구하는 지정곡으로 <현악 4중주 3번>을 출품했고, 이 작품으로 당당히 입선되었다. 12.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0223395368761 "리게티와 윤이상의 근본적인 차이는 개별 음의 본질에 있다. 리게티는 개별 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반면에, 윤이상에게 그것은 바로 음악 형성의 출발점이었다. 음향의 진행 방향, 작곡 구상, 그리고 이에 따른 음향 효과의 차이는 바로 개별 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리게티의 클러스터는 수직 차원에 향방을 두는 반면, 윤이상의 클러스터는 수평 차원에 향방을 둔다."(윤신향 '윤이상 경계선상의 음악' 중에서) 윤이상이 악보상에서 요구하는 것은 독특했다. 여러 갈래에서 뻗어 나온 매우 작음 음향의 단위들이 한 물줄기를 이루게 될 때까지 ���각의 자리에서 흘러나오도록 음을 구성하고 조직한다. 이 물줄기는 어느 순간 하나로 합쳐지되, 합쳐진 순간 또다시 숱한 가지로 나뉘다가 다시 합쳐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것들이 모인 뒤에도 다시 또 작은 지류로 뻗어 나가 갈래를 치다가 궁극적으로 거대한 합일을 이룬다. 분화와 합일이 계속된다. 이처럼 고도의 지적인 음향 구조로 이루어진 <교향악적 정경>과 <교차적 음향>은 뒷날 청중과 연주자들의 항의를 들을 만큼 까다롭고 어려운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이태 동안 살면서 윤이상은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이 무렵 작곡한 작품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이었다. 두 곡 모두 연주 시간이 10분가량 되는 짤막한 작품이었다. 14.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0726151985152 윤이상은 이보다 앞서 작품 하나를 써놓은 상태였다. 베를린 라디오방송국의 위촉을 받아 관현악곡으로 작곡한 <바라>가 그것이다. 불교의 승무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유럽에 건너와서 쓴 첫 번째 대작이었다. (...) <바라>의 첫 소절은 바이올린 독주가 이끌어가는 고요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고즈넉한 절 마당, 사람들이 탑을 돌며 손을 모아 발원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소절이다. 이 소절에서는 모든 번뇌 망상이 사라진 부드럽고 편안한 명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윽고, 바이올린 독주에 이어 관악기의 화음이 뒤따라 나온다. 스님들과 비구니들이 한데 어울려 악귀를 쫓아 보내는 춤을 추며 기도를 통해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장면이다. 관악기의 높은 화음이 역동적으로 뿜어져 나왔다가 차츰 사라져간다. 파도가 벼랑에 거세게 부딪히듯이, 팽팽한 긴장과 대렬의 기운이 곤두서 있다. 그것은 또한 오묘한 경지에 이르는 법열의 순간이기도 하다. 세필細筆로 그린 선이 산수화의 화폭을 이루듯, 마침내 미세한 선율과 음향이 모여 거대한 교향악적 전체를 이루어 나간다. 곡의 후반부에 이르면, 세차게 쏟아지는 소낙비와 같은 소음이 극도의 어수선함과 마주하며 서서히 잦아들어 간다. 15.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0730755318025 윤이상은 서양음악이 펜글씨와 같은 직선이라면 동아시아의 음악, 그중에서도 한국의 음악은 붓글씨의 획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그의 음악관을 집약적으로 설명해주는 상징이 된다. 윤이상의 음악관은 또한 그의 음악 기법을 알게 해주는 지도와 같다. 펜글씨에 비해 붓글씨는 곡선이며, 변화무쌍하다. 수묵화의 농담濃淡은 도약과 사라짐을 자유자재로 표현하기에 적합하다. 가녀린 흘림과 굵은 획은 둥근 원형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 자체는 원형도 직선도 아니다. 점인가 하면 선이고, 선인가 하면 면이다. 평면인가 하면 입체이고, 입체인가 하면 무한히 확장하는 공간 속으로 흩어져 버리는 먹물 덩어리다. 그것은 음괴, 즉 음의 거대한 덩어리와도 닮았다. 가느다란 붓으로 쓴 글씨가 모여 전체를 이루듯, 개별 글자들�� 모여 하나의 뜻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윤이상의 개별 음 개념을 유추할 수 있다. "유럽 음악에서는 개별 음이라는 것이 음과 음을 연결해줌으로써 생명력을 갖기 때문에 단음은 비교적 추상적인 기능에 머무른 반면, 동양의 음 개념에서는 개별 음이 바로 그 자체로 고유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모든 음은 시작부터 사라질 때까지 변화를 거듭하며 장식, 앞꾸밈음, 피상적 미끄러짐, 글리산도와 음량의 변화를 거치는 데 무엇보다 개별 음의 자연스러운 비브라토가 형상화의 수단으로서 의식적으로 사용된다."(윤이상, 1965) 도교의 원리에 의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은 음과 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에도 음양의 원리가 존재한다. 도교철학의 우주관이 중심축을 이룬 이 작품에는 당송대의 수준 높은 궁중음악에 대한 음악적 예찬이 담겨 있었다. 그가 매만진 작품은 네 개의 목관악기, 두 개의 관현악기, 네 개의 타악기와 하프를 위한 실내악이었다. 전체 3악장으로 이루어진 이 실내악곡의 제목은 <로양>이라고 붙였다. 음악학자 김용환은 "이 작품의 이름은 국악 <낙양춘>에서 딴 것이지만, 음악적으로는 <낙양춘>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고, 오히려 <영산회상> 중에서 <상영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라고 분석하고 있다. 16.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2601195130981 강서대묘의 서쪽 널방 벽에 그려진 백호. 윤이상은 <사신도> 중에서도 흰 갈기로 공기를 가르며 튀어나올 듯한 장중함과 역동성을 지닌 백호 그림을 제일 좋아했다. 동백림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백호 그림을 직접 보면서 받았던 영감을 떠올리며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영상>을 썼다. 윤이상은 이보다 며칠 전, 쾰른 시에서 열린 교포들의 박정희 환영회에서 환영사를 읽었고, 뭔헨에서도 박정희 환영 음악회를 열어주었다. 이때 쾰른에서 첼로를 전공한 한 여성이 아무런 악보도 준비하지 않은 상태로 왔다. 윤이상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밤새워 곡을 썼다. 세 시간 동안 집중한 결과,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 <노래>가 완성되었다. 그 여성은 새벽녘에 이 곡을 연습했으나 연주는 불발로 그쳤다. 군사반란의 주역이자 만주 관동군 장교로서 일제에 충성했던 박정희. 그의 방독을 맞아 윤이상이 환영사를 읽고, 한인 음악인을 모두 동원해 음악회를 준비했던 것은 아이러니다. 윤이상은 그 일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꾹 참고 모든 일을 주관했다. 그는 음악인이었고, 서독 교포사회의 연장자이자 재독 한인회 회장이었기 때문이다. 17.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2606918463742 <오, 연꽃 속의 진주여!>의 제목은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나타내는 육자진언六字眞言 주문인 '옴 마니반메훔'에서 따왔다. '천수경'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의 진언인 이 여섯 자 주문을 외우면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입어 온갖 죄악과 번뇌가 소멸되고, 지혜와 공덕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이 곡은 제1악장 '연꽃', 제2악장 '고타마에게 묻는다', 제3악장 '갈증'. 제4악장 '해탈', 제5악장 '열반' 이렇게 5악장으로 된 26분 길이의 곡으로 각각의 주제별로 표현을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제1악장과 제3악장은 관현악만으로, 제2악장은 소프라노 독창과 관현악 연주로, 제4악장은 바리톤 독창과 관현악으로, 제5악장은 독창과 합창, 관현악으로 각 주제에 걸맞은 다양한 표현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윤이상은 작품을 쓰는 동안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음악 속에 불교적 색채를 표현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명상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사찰의 탱화, 범종, 사천왕상, 뜰에 세워진 탑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해 질 무렵의 붉은 기운 등등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짓곤 했다. 음악으로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어렸을 때부터 익숙하게 봐왔던 정경들이었다. 고승과 제자의 묻고 답하는 소리 속에 인간의 번뇌 망상을 새겨 넣었고, 혼성 합창으로 이루어진 기도와 더불어 해탈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면서 법열의 세계로 나아가는 5악장의 구성은 역동적이었다. 이처럼 행복한 마음으로 완성한 <오, 연꽃 속의 진주여!>는 1965년 1월 30일 하노버에서 초연되었다. 이 작품을 감상한 청중들은 열띤 환호를 보냈다. 평론가들에게도 극찬을 받았다. 18.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2646175126483 슈프렝겔 콩쿠르에 응모하기 직전 구상 단계에서 접어두었다가 완성한 <유동>은 1965년 2월 10일 베를린 라디오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면서 빛을 보았다. 이 곡은 처음도 없고 나중도 없는 우주의 끝없는 흐름, 잔잔함과 격렬한 파랑波浪이 부단하게 이어지는 삶의 한 단면을 그리고 있다. 매우 여린 음, 들릴락 말락 한 음에서 시작된 음악은 점차 크고 강한 음으로 옮겨가면서 바위라도 들부술 거대한 음의 폭포로 터져 나온다. 특수한 주법을 사용해 한바탕 격랑이 휩쓸고 가는 듯한 흐름을 조성한 뒤, 갑자기 금관악기의 드넓은 강이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흘러간다. 상상을 뛰어넘는 음향의 파도가 몰려오는 곳에서 절정을 맞이한다. 만물이 유전하는 것은 스스로(自) 그러한 것(然), 즉 자연의 법척이다. 모든 특별한 것, 기발한 것, 슬픔과 원통함과 분노조차도 언젠가는 소멸한다. 가장 빛나는 기억도, 찬란한 영광의 한때도 지나가고 만다. 그것이 인생살이다. 이 도교적 관점을 윤이상의 독특한 실험적인 음향 어법과 버무려 빚은 것이 관현악곡 <유동>이다. 19.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2647928459641 1966년 9월 25일, 1막 4장으로 된 오페라 <류퉁의 꿈>이 베를린예술제에서 초연되었다. 한 해 전, 베를린 오페라극장의 극장장인 구스타프 루돌프 젤너Gustav Rudolf Sellner에게서 위촉받아 쓴 윤이상의 첫 번째 오페라 작품이다. 14세기경 중국의 시인 마치원馬致遠이 쓴 <류퉁의 꿈>을 줄거리로 삼은 이 작품은 겉으로 보면 도교의 단순한 교훈극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참된 진리를 찾아 나서는 한 젊은이의 구도의 여정이 그려져 있다. <<장자>>의 <나비의 꿈>에는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는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는 것인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이야기의 주제는 삶이 부질없다는 허무주의가 아닌, 진리 혹은 도를 찾아 나서는 인간 본연의 자세에 대한 성찰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즈음에 윤이상이 쓴 빛나는 곡은 대관현악을 위한 <예악>이다. 1966년 10월 23일, <예악>은 에르네스트 부어Ernest Bour의 지휘와 남서독일방송국 교향악단의 연주로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초연되었다. 이 곡은 <유동>에서 한 차례 실험했던 파격적인 음향 어법을 한층 강화하여 더욱 세련된 윤이상 음악의 특징을 보여주었다는 커다란 특징을 지닌다. 그 까닭은 "그때까지의 그 어떤 작품보다도 자신의 작곡 어법을 즉각적으로 알아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극히 섬세하게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윤이상이 이 작품에서 구현한 것은 그가 오랫동안 갖가지 실험 끝에 다듬어 내놓은 '주요음 기법' 또는 '주요 음향 기법'이다. 주요음은 낱낱의 단음으로 이루어진 작은 음 다발이다. (...) 윤이상은 한 음, 한 음뿐만 아니라 그 음들이 모인 음 다발 혹은 음군音群이 그 주변의 음들을 꾸미도록 하는 기법을 구사했다. 음 다발이 주변 음들을 장식하는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이 작품의 중핵을 이루게 하는 것이 윤이상이 독창적으로 열어젖힌 현대음악의 새로운 차원이다. "유럽의 음악에서는 음이 연결되면서 비로소 그 생명력을 얻게 된다. 이때 각 개별 음은 비교적 추상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음악에서는 각 개별 음이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한국 음악에서의 이러한 음들을 연필로 그려진(경직된) 선과 대비시켜 붓으로 그린 운필과 비교하곤 한다. 각 음은 그것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울림이 사라질 때까지 변화를 하게 된다."(<예악>에 대해 윤이상이 쓴 글) 20.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2652371792530 윤이상은 희극 오페라 <나비의 꿈>을 쓰고 있었다. 이 오페라는 14세기에 활동했던 중국 시인 마치원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서 중층적인 은유가 담겨 있었다. "장자" 제1편의 제목은 '소요유消遙遊', 즉 '자유롭게 노닐다'라는 뜻이다. 뭇 인간이 누려야 할 지고지순한 자유에 대한 염원을 담은 구절이다. 하지만 변화와 초월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장자"의 핵심이다. 제 2편 '제물론齊物論'은 '사물을 고르게 하다'라는 뜻으로, 제2편 서른두 번째 항목에 나오는 '나비의 꿈'은 윤이상을 옥창 밖으로 훨훨 날아가게 한 상상력의 근원이 되었다.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내가 옥중에서 오페라를 쓴다는 소식을 국내외의 신문들이 다투어 보도할 때, 나는 이 제목이 그때 이남 당국이 보여준 우리 사건에 대한 과잉 흥분상태에 일종의 경고와 반격의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국가 반역, 간첩, 국가 전복의 음모, 이런 ���마어마한 정치적 조작극에 대해서 "허튼소리 말라! 모두가 한 마리 나비의 꿈과 같이 허무한 것이다." 하고 마치 스스로 한 마리 나비가 된 것처럼 은유로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의 두 주역, 즉 박정희, 김형욱의 인생의 말로를 보건대 어찌 꿈과 같이 허무하고 무상하지 않으리...."(이수자, '내 남편 윤이상' 중에서) "당신에게 정말 감동했어요. 자기 자신과 이렇게 거리를 둘 수 있다니... 게다가 희극 오페라를 쓰다니요. 그것은 도교의 승리입니다. 인생을 한낱 꿈이라고 보는 의식, 모든 존재와 일체화하고 그런 까닭에 더욱 힘든 시련도 견딜 수 있는 의식입니다. 그것은 또 당신의 일을 방해한 모든 불쾌한 것에 대한 당신 창조력의 승리이기도 합니다."(루이제 린저 '윤이상, 상처 입은 용' 중에서, 옥중에서 작품을 완성한 것을 두고 윤이상에게) 4중주곡 <영상>은 사신도의 구도가 음악적으로 재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백호는 첼로로써 표현되고, 현무는 플루트, 청룡은 오보에, 주작은 바이올린으로써 표현된다. 도교의 네 가지 방위를 담당하는 수호신이 각각 네 개의 악기로써 작품의 중요한 주제를 표현하는 것이다. 네 개의 상징 동물이 개별적인 방위를 맡고 있음에도, 전체적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지향하는 것은 윤이상의 주요음 개념과 잘 맞아떨어진다. 거대한 연대의 압권은 음악회였다. 이 연대의 결정판은 1969년 2월 23일 마련되었다. 이날, 윤이상이 옥중에서 작곡한 오페라가 세계에 초연되었다. 맨 처음 <나비의 꿈>으로 붙였던 제목을 윤이상이 <나비의 미망인>으로 바꾸었다. <나비의 미망인>이 독일 뉘른베르크 오페라 극장에서 한스 기어스터Hans Girster의 지휘로 초연된 날, 서울의 윤이상은 병원에서 감옥으로 재수감되었다. (...) '백년 세월도 한 마리 나비의 꿈과 같아라 지난 일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덧없도다 오늘 봄이 오면 내일은 벌써 꽃이 지노라 어여 잔을 기울이자 저 등불이 잦아들기 전에' '윤의 신곡은 그의 음향언어의 활력과 극적인 악센트의 간결함이라는 점에서, 또 인간의 소리의 표현 능력 취급법의 유연성이라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다. (...) 이 음악의 매력은 이국풍의 음향 매력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무지갯빛 매혹적인 음색에 의해서 연한 빛을 발하는 표면의 뒤에, 또 말하자면 식물적으로 증식하면서 장대하게 선회하는 선율 곡���의 장식법의 그늘에 강렬한 내적 긴장이, 정력적인 극적 긴장이 느껴지며, 그것이 때로는 놀랄 만큼 갑자기 악마적인 빛을 발하는 악기의 음향이 되어 폭발한다.'(하인츠 요아힘 '디 벨트'지에 주목할 만한 평) 킬 시에서 개최하는 연주회에는 <율>이 연주될 예정이었다.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은 윤이상이 당뇨병 합병증으로 쓰러진 뒤 병보석을 얻어 병원에서 작곡한 것이었다. 큰 고통 속에서 이 작품을 썼기에, 기쁜 마음으로 연주회에 참석했다. 하지만 고문 후유증뿐만 아니라 감옥 안에서 얻은 병 때문에 몹시 쇠약해진 그는 음악회가 끝난 뒤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오페라를 쓰는 일은 즐거웠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청나라 초의 작가 포송령蒲松齡이 쓴 괴담소설 '요재지이聊齋志異'에서 추려낸 암여우 이야기를 토대로 하랄트 쿤츠가 대본을 썼다 윤이상은 여기에 곡을 붙여 2막짜리 오페라로 만들어나갔다. 오페라 <요정의 사랑>은 이듬해 완성되었다. 1971년 뉘른베르크 시에서는 이 무렵 독일 화가 뒤러의 탄생 5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었다. 시 당국은 이를 기념하는 가을 음악행사를 위해 여러 음악가에게 작곡을 청탁했다. 윤이상에게도 작곡 의뢰가 왔다. 윤이상은 <심청전>을 잠시 밀쳐두고 신작 작곡에 몰두해, 기한 내에 작품을 완성해주었다. 그해 10월 22일, 뉘른베르크 필하모니는 대관현악을 위한 <차원>을 연주해 세계 초연 무대로 꾸몄다. 21.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4165104974590 1972년 8월 1일,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뮌헨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모든 문화의 결합!' 올림픽의 주제정신을 구현하는 문화행사는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단의 국립극장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미 전 세계에 예고된 바와 같이, 개막식 서막을 여는 축전은 개막 오페라 <심청전>이었다. 이 역사적인 오페라는 세계적인 지휘자 볼프강 자발리슈Wolfgang Sawallisch가 지휘를 맡았다. 서주와 간주로 이루어진 2막짜리 오페라 <심청전>은 우리의 고전 문학 작품 속의 이야기 그대로였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단순화하면, 장님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스스로 팔려 나간 딸의 고귀한 희생으로 줄거리가 집약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물신주의에 사로잡힌 서구 문명이 진정 회복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거꾸로 되묻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세기말의 풍조가 지배하던 당시 상황 속에서 전쟁과 침략으로 인한 황폐함, 개인주의에 의해 파괴된 인간성의 불모지를 가슴 절절한 효심과 사랑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도교와 불교, 민간신앙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이 이야기는 하늘과 땅, 바다의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윤이상은 이 세 차원의 공간을 서로 다른 관현악으로써 표현했다. 천상의 세계는 밝은 노래와 함께 트롬본과 튜바를 통해 구현했고, 인간 세상과 용궁은 현악기 플래절렛의 중간  영역으로 구별했다. 땅 밑 세산은 낮은 음의 베이스와 미세하고 여린 대사와 노래로 나타냈다. 심청은 플루트와 하프, 첼로로 표현했고, 용왕은 현악기 플래절렛으로, 뺑덕어멈은 잉글리시 호른으로 표현했다.
윤이상의 이 같은 변화는 음악에도 나타났다. 이전에는 자신이 홀로 추구하는 세계를 위해 작품을 썼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기부터는 '여럿이 함께'라는 의미망을 확산하기 위해 작곡을 했다.윤이상의 음악은 전에 비해 조금은 편안해졌다. 심오한 도교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고심하다 보면 자칫 어려운 음악이 되곤 했는데, 이제는 연주하는 이와 듣는 이의 입장을 더 고려하는 편이었다. 여러 정치적인 박해 사건들과 접하는 동안, 그의 내부에서는 휴머니즘의 강물이 어느 때보다 강폭을 넓혀갔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그는 "70년대 중반 이래 일련의 기악 협주곡들을 작곡했다. 바리톤, 여성 합창, 오르간, 기타 악기들을 위한 칸타타 <사선에서>는 윤이상의 여러 곡 중에서 인간애가 두드러진 작품으로 꼽힌다. 교성곡은 17세기에서 18세기까지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의 한 형식을 뜻한다. <사선에서>는 동백림 사건 이후 내부에서 응축해왔던 윤이상의 정치적 관심을 악곡에 반영한 첫 번째 시도였다. 윤이상이 58세 되던 해인 1975년 4월 5일, <사선에서>는 서독 카셀의 성 마르틴 교회에서 초연되었다. 클라우스 마르틴 지글러Klaus Martin Ziegler의 지휘와 페터 슈바르츠Peter Schwarz의 오르간 반주에 맞춰 바리톤 윌리엄 피어슨William Pearson이 곡 중 솔로를 했다. 알브레히트가 쓴 시에는 아우슈비츠의 슬픔이 자욱히 깔려 있다. 그 시를 토대로 곡을 쓴 윤이상의 내면에는 동백림 사건의 고통과 상처가 짙게 배어 있다. 이 모든 것이 뭉뚱그려진 <사선에서>가 연주되는 장소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 위에 세워진 교회다. 이 같은 연유로, <사선에서>의 초연은 여러 의미가 중층적으로 겹쳐진 음악회가 되었다. 윤이상은 1980년에 나치스의 전체주의적 학정을 고발한 또 다른 작품을 썼다. 소프라노와 실내 앙상블을 위한 <밤이여 나뉘어라>가 그것이다. 1981년 4월 26일, <밤이여 나뉘어라>는 서독 비텐의 현대음악제에서 도로시 도로우Dorothy Dorow의 독창과 한스 첸더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밤이여 나뉘어라>는 아우슈비츠 학살에 대한 잔학상을 고발하는 세편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이다. 이 시를 넬리 작스Nelly Sachs는 시인이자 극작가로서, 유태인 대검거령이 내려졌을 때 어머니와 단둘이서 스웨덴의 스톡홀름으로 망명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나치스의 끔찍한 만행과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넬리 작스는 이전까지의 낭만주의적 시적 경향과 결별을 고했다. 그녀는 이후 전쟁의 참상과 히틀러에 의한 나치스의 폭정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현실 참여적인 작품을 썼으며, 196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2.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4188521638915 이같은 의식상의 변화 속에서 작곡된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윤이상이 쓴 종래의 작품들과 비교되는 매우 다른 작풍을 보이고 있다. 종래의 전통적인 협주곡에서는 각 독주 악기들과 오케스트라 사이에 조화와 균형을 내세운다. 반면, 이 곡에서는 첼로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갈등하는 대립요소일 뿐이다. 둘 사이에는 주제와 동기에 의해 교환되는 안정적 구도가 없다. 무대를 찢을 듯한 높은 음으로 맞섬으로써 마찰과 충돌이 빚어진다. 첼로의 카덴짜에서는 현을 활주하지 않고 거문고를 연주할 때처럼 술대로 피치카토를 표현한다. 이 같은 첼로와 오케스트라의 갈등과 긴장은 3악장 내내 고조된다. 윤이상은 이 작품에 이르러 음렬주의나 12음기법의 정교한 틀에서 벗어나 더욱 자유로운 형식미를 추구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을 옭아맨 현실 세계의 부당함, 그 자신이 겪은 공포와 암흑 체험을 비로서 악곡상에 구현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런 면에서 "첼로는 바로 나 자신을 상징한다."던 윤이상의 첫 번째 기악 협주곡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그의 '작곡적 결단'을 보여주는 이정표임이 분명하다. (...) 이 모든 일련의 변화는 자신의 일생에 비추어볼 때, 분명 새로운 것이었다. 이제 이 모든 변화된 사유와 행동이 음악의 악상과 가락, 음향과 마디와 악절 속으로 스며들어야 한다.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을 쓰면서, 윤이상은 평생의 분신으로 여겨온 첼로를 의인화했다. 첼로는 윤이상을 표현하는 악기로서 곡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오케스트라는 첼로를 겹겹으로 둘러싸고 있는 현실 상황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시때때로 선과 악을 넘나들면서 변화를 거듭한다. 좋든 싫든 간에 현실은 늘 인간과 대립하거나 화합한다. 오케스트라도 우리 사회와 세계 전체의 상황적 진실을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것이 악이든 선이든, 인간을 둘러싼 거대한 환경으로서 폭풍을 몰아오고 봄볕을 내리쬐는 것을 담담히 표현해야 한다. 23.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4207504970350 "알토 플루트를 위한 이 소곡 <무악>(1978)은 나의 교성곡 <현자賢者>(1977)에 나오는 짧은 알토 플루트 독주 대목을 따로 빼내어 독주곡으로 만든 것이다. 칸타타 중에서 "현자의 말은 고독하다"의 뜻을 여기서 표현하려 했으며 연주는 이에 상응하여 고고하고 고차원적인 표현 효과를 나타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흔히 좋은 독주자는 앙상블과 협연하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서베를린의 우수한 플루트 주자 베아테 가브리엘라 슈미트Beate Gabriella Schmitt를 칸타타의 연주에 참여시키기 위해 일부러 칸타타 <현자>의 중간에 그녀가 좋아할 만한 알토 플루트 대목을 집어넣은 것이 이 곡이 만들어지게 된 시초다."(윤이상 10주기 추모 음악회 <윤이상의 귀환> 팸플릿 중에서) 24.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4770028247431 "<광주여 영원히!> 너의 이름은 모든 민중의 심장에 새겨져 영원히 남을 것이다. 너희 선량한 의지에 의해 용감하게 싸웠다는 것을 양심 있는 모든 동족뿐만 아니라 양심 있는 인류의 가슴에 따뜻하고 뜨거운 기억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너를 범한 하수인들의 광기어린 피눈도, 거꾸로 매달려 피를 토한 젊은 여성의 시체도, 한 줄에 묶이어서 장갑차에 까려 죽은 학생들의 시체도, 우리들의 뇌리에서 비참한 지옥의 장면으로 영원히 지워지지 못할 것이다. 광주여! 너의 선량한 아들들을 죽인 '고급' 군인들의 피 묻은 두 손은 씻고 씨어도 자기 생애에 다는 씻을 수 없을 것이며 그들이 죽은 두에도 핏자국은 영원히 씻을 수 없을 것이다."(윤이상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행되는 '신한민보'에 기고한 글) 25.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4780588246375 이 교향곡들은 비탄과 절망으로 얼룩진 동백림 사건을 뚫고 일어선 뒤 최고의 완성미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윤이상 음악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 음악들은 다름슈타트와 빌토벤에서의 화려한 데뷔 이후, 무조음악과 음렬주의에서 출발한 12음기법의 탄탄한 구축 위에서 자신만의 음악 어법인 주요음 개념을 통해 활짝 열어젖힌 윤이상 음악의 특질을 성곡적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빼어난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동양 고전의 미학적 토대에서 출발하여 서양 현대 음악과의 절묘한 만남을 통해 동양과 서양을 잇는 지적이며 철학적인 교류를 자신의 음악 속에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도저한 사상적인 깊이에 도달하고 있다. 이 중량감 있는 교향곡들이 이룬 성취는 곧 윤이상 음악이 어느 한 지역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성의 영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 다섯 편의 교향곡은 윤이상의 후반부 인생 혹은 그의 후기 음악에 매우 중대한 분수령이 된다. 전 4악장으로 된 교향곡 제1번은 1983년에 작곡을 시작, 1984녀에 완성했다. 이 곡은 1984년 5월 15일, 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교향곡 1번의 주제는 핵폭탄으로 인한 인류 파멸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다. 그런 만큼 매우 큰 규모의 곡이다. 베를린 비교음악연구소 소장이자 음악학자인 볼프강 부르데Wolfgang Burde는 "윤이상의 교향곡 1번은 공자 사상의 근엄함을 반영한다. (...) 윤이상은 이러한 모든 전통, 심지어는 민속음악이 지니는 거칠고, 폭발적이며 감정적으로 체념하는 전통마저도 그의 교향곡의 대우주(마크로 코스모스)에 용해시켰다."고 평했다. 26.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216421336125 전 3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 제2번은 1984년에 완성했다. 이 곡은 그해 12월 9일 베를린 라디오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교향곡 2번의 주제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나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대자아의 인식론에 맞춰졌다. 음악학자 크리스티안 마틴 슈미트는 '제2번 교향곡 연구'라는 글에서 윤이상 교향곡 2번의 제3악장에 대해 언급하며 "1970년대까지 그의 음악을 특징지었던 주요음, 음복합체 내지는 음향복합체의 구성 법칙에서 벗어난 것"으로 파악했다. (...) 그는 여러 다층적인 차원의 경계에 서서 어떤 합일 혹은 융합과 상호 보완의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고심하는 개척자인 셈이다. 이 같��� 점에 비추어봤을 때, 윤이상을 "다원적 세계주의자"라고 명명한 슈미트의 견해는 수긍할 만한 점이 매우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더욱 유념해야 할 대목은 윤이상이 일련의 기악 협주곡에서 나아가 다섯 편의 교향곡을 쓰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유파를 창조한 개조開祖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7.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222904668810 "1981년 바이올린 협주곡과 1984년에 초연된 두 개의 교향곡은 그의 작품의 최정수를 보여준다. 윤이상 씨의 특수한 업적은 동아시아와 유럽의 음악문화를 그 자신 특유의 방법으로 연결시킨 데에 있다. 많은 다른 작가들이 동양악기를 사용함으로써 서양음악에 새로운 색채감을 시도한 데 반하여, 그는 한국음악을 서구 악기에 맞추어 사용하는 동서 작곡기법의 실질적인 개조를 시도했다. 동양음악의 특수성은 개체음의 의미가 서양음악에서보다 훨씬 더 부각된다는 것이다. 개체음은 하나의 확고한 핵으로 그의 시작과 끝을 살려나감으로써 양과 음의 일원원칙을 실현한다. 윤이상 씨는 자신의 민족음악 문화의 이러한 특수성을 다음악적 체계를 연결시켰다. (...) 우리 문화학부는 이러한 지적인 업적을 낳고, 또한 양대 문화 상호간의 이해를 가능케 한 중요한 업적을 실천한 이러한 정신을 위해 이 작곡가에 영예를 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문화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것이 이 학부의 특수한 관심사이기도 하고 또한 음악학과 한국학이 여기에 동시에 대표되고 있으므로 튀빙겐대학 문화학부가 윤이상 씨의 공적을 인정하기 위해 명예박사를 수여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처사이기 때문이다."('윤이상 교수에 대한 명예 박사 학위 수여에 관하여'라는 제목이 붙은 튀빙겐 대학의 공표문 중에서) 28.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240608000373 5공 구사정부의 폭압이 계속되는 동안 한국에서는 민주화의 열기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윤이상은 꿈에서도 조국의 민주화가 달성되기를 염원했다. 1987년 2월, 그는 이 같은 마음으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를 써내려 갔다. 작곡이 본궤도에 오르는 동안 윤이상은 문익환 목사의 시집을 읽으며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이수자가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속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려주자 그는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윤이상은 교성곡을 쓰기에 앞서 김남주, 문익환, 고은, 정희성, 백기완, 박봉우, 박두진, 문병란, 양성우 등의 시집 48권을 꼼꼼히 읽어 나갔다. 대부분은 군사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거나 투옥된 경험이 있는 시인들이 쓴 시였다. 윤이상은 여기서 시 열한 편을 선택해 한 편의 거대한 장시를 구성, 교성곡의 흐름에 맞도록 재편성했다. 전 4악장으로 구성된 교성곡은 '민족의 역사', '현실1', '현실2', '미래'라는 네 개의 주제가 합창과 독창, 관현악과 어우러졌다. 29.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722974618803 1987년 9월 17일 베를린 탄생 7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 작품 <바리톤 독창과 대관현악을 위한 교향곡 5번>을 초연했다. 1983년부터 꼬박 4년 동안 한 해에 한 편씩 쓰기 시작한 교향곡은 이번 작품까지 모두 다섯 편에 이르렀다. 이로써 윤이상의 후기 작품 가운데 기념비적인 작품 목록에 해당하는 교향곡이 최종 5번으로 마무리되었다. (...) 5번 교향곡은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Dietrich Fischer-Dieskau의 독창, 한스 첸더의 지휘, 베를린 필하모니 교향악단의 연주로 세계에 초연됐다. 30.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727414618359 다섯 편의 교향곡은 윤이상의 음악 인생의 집대성된 대작이다 이 교향곡 한 편 한 편마다에는 인류에 대한 각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3번 교향곡은 환경과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를 담았고, 4번 교향곡은 불행한 삶을 지닌 동양의 모든 여인들을, 그리고 그들이 품어야 할 희망을 노래했다. (...) 5번 교향곡은 독재의 폭압을 비판함과 동시에 무기 대신 농기구를 들자는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31.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7729767951457 "이 다섯 곡은 바이올린 연주 기술의 숙달을 위해, 그러니까 연주자가 꽤 높은 수준까지 점차적으로 연습 과정을 통해 도달하도록 씌어졌다. 제1곡이 가장 쉬운 것은 사실이나 난이도를 보자면 그 다음이 제5곡, 다음이 제3, 제4, 제2곡의 순서가 된다고 보면 되겠다. 이 곡은 반드시 소년 소녀들뿐만 아니라 성인도 연주할 수 있다. (...) 나의 외손녀 리나 첸은 1974년 서베를린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부모를 떠나 외조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리나가 9살 때 '청소년음악콩쿠르'에 바이올린으로서 참석할 때 콩쿠르의 규칙상 20세기의 작품 하나를 연주해야만 했다. 나는 여러모로 적당한 곡을 찾아보았으나 내가 결국 한 곡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제1곡 '배고픈 고양이'를 썼다. 그런데 2년 뒤 같은 문제가 생겼다. 리나가 좀 더 컸다. 그래서 나는 이때에 소년, 소녀들을 위한 적당한 곡이 흔하지 않다는 것을 통감하고 이 기회에 아예 본격적인 곡을 하나 쓸 생각을 하고 다시 네 곡을 더 썼다. 그래서 모두 다섯 곡을 묶어 이 작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윤이상 10주기 추모 음악회 <윤이상의 귀환> 팸플릿 중에서) 1986년에 쓴 관악기, 타악기,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무궁동>의 작곡 동기는 매우 특이했다. 6월에 열릴 함부르크 국제펜클럽대회를 앞두고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으로부터 작품 위촉을 받은 윤이상은 처음에는 매우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그때, 친구인 한스 첸더의 말 한마디가 귀를 자극했다. "윤 선생, 이번 함부르크 국제펜클럽대회에는 한국 문인들이 많이 온대요." 그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1986년 내내 한국에서 격렬하게 진행된 학생운동을 상징하는 음악으로 <무궁동>을 작곡했다. "당신과 나는 1974년부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해왔소. 그 덕분에 우리는 국내 사정에도 밝은 편이오. 한국의 지식인들이 그러더군. 한국펜클럽 회원 가운데엔 보수적인 어용 문인들이 상당수 있다고 말이오. 나는 <무궁동>을 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소." 32.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9804281077339 "이 곡은 한국의 학생들이 독재에 반대하여 뿌리 깊게 투쟁하여 새로운 민주사회를 건설하려고 노력하고 노력하는 그 움직임을 묘사한다. 해방 후부터 오늘날까지 학생들은 독재정권이 생겨나면 타도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탄압받으면 또 다시 일어선다. 그러한 움직임은 대해大海의 파도와 같이 끊임없이 싸워 정의의 사회를 세우려한다. 그러한 학생운동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윤이상의 곡 해설) 윤이상은 하르츠에서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악보를 쓸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블록 플루트Blockflote,(또는 리코더) 독주를 위한 <중국의 그림>을 작곡했다. 이 곡은 그해 여름 노르웨이 스테방에르에서 개최될 국제실내악축제에서 연주될 예정이었다. (...) 그는 아픈 몸을 정신력으로 버티며, 작품을 기어이 완성했다. 33.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9810764410024 윤이상의 병상에서의 작곡 행진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윤이상은 1993년을 맞아 70세가 된 친구 프로이덴베르크 교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첼로와 하프, 오보에를 위한 <공간 2>를 작곡했다. 그는 이 곡을 오랜 친구 프로이덴베르크에게 헌정했다. 34.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9823631075404 윤이상은 조금만 기력이 회복되면 곧장 병원 침대의 간이 탁자에 오선지를 펼쳐놓고 작곡을 시작했다. 이수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작곡이 그의 전부인 것을 잘 알기에,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만 볼 뿐 곡을 써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병상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오보에와 현악 3중주를 위한 4중주, 클라니넷과 현악 4중주를 위한 5중주를 썼다. 그는 이 곡들을 완성한 뒤에도 계속해서 오보에와 첼로를 위한 <동서의 단편 1~2>, <목관 8중주>를 썼다. 35.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89840377740396 생애의 마지막 작품은 교향시곡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였다. 민주화와 민족 통일을 위한 그들의 마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그 젊은이들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을 결코 찬성하는 바는 아니지만, 조국을 사랑하는 그들의 순결한 마음만큼은 위로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윤이상은 젊은이들의 넋을 달래는 마음으로 <화염 속의 천사>를 썼다. 그는 "나의 염원은 그들의 행동을 나의 음악을 통하여 기념하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것의 나의 양심을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나의 동포를 위하여 쓴 최후의 관현악곡이다."라고 작곡 동기를 밝혔다. 36.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92198014171299 소프라노 3성부의 여성 합창과 플루트, 오보에, 첼레스타,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에필로그>는 <화염 속의 천사>와 더불어 윤이상이 쓴 생애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에필로그>는  <화염 속의 천사>로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암시했다. 윤이상의 작품은 자신의 생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윤이상 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불멸의 곡조로 굽이칠 것이다. <에필로그>를 작곡한 의도는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영속성에 대한 희구를 담아놓기 위함이었다. 37. https://www.facebook.com/lemon2sang/posts/1592202984170802 '처염상정處染常淨' 독일 베를린 공동묘지에 있는 윤이상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늘 깨끗하다'는 뜻이다. 윤이상이 파란만장한 이 세상의 삶을 끝낸 뒤,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설정스님이 써준 글귀다. 영면에 들기 한 해 전인 1994년, 윤이상은 인천 용화사 송담스님에게서 '청공靑空'이란 법명을 받았다. "내가 죽거든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러주시오." -윤이상 평전(박선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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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uciferjpg-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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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山西) ㅅ서남에 위치한 천하제일동천(天下第一洞天)으로 불리는 이 산은 세겹의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집을 이룬 듯하다고 하여 집중의 집 왕옥이라 불리운다. 소액결제현금화
왕옥의 가을은 만산홍엽이 핏빛처럼 불타오르는 가운데, 수려한 삭금절옥(削金切玉)의 기암절벽이 절묘로 자리한다.
땅거미가 짙게 깔리고 이따금 한두 잎씩 낙엽이 바람에 뒹굴고 있을 무렵, 왕옥산 깊은 곳을 날랜 걸음으로 가로지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람을 휘몰듯 시내를 건너뛰고 절벽을 타는 그들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당도한 곳은 은밀한 한 계곡의 입구.
이 산곡(山谷)은 사방에 깎아지른 절벽이 솟아 있고, 천혜의 원시림으로 가리워져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듯, 심히 은밀하여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 힘든 곳이었다.
하지만, 산곡 앞에 선 두 사람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곳에 이르렀음을 볼 때 초행이 아닌 듯하였다.
소액결제 현금화앞선 사람은 하늘빛 장포에 얼굴이 청수(淸秀)한 사십대 중년유생(中年儒生), 또 그 뒤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사람은 염소수염에 단춧구멍처럼 조그만 눈을 가진 작달막한 체구의 오십대 중늙은이였다.
소액결제 현금화 염소수염의 늙은이가 나지막한 헛기침을 발하더니 입을 열었다.
"공형! 길을 잘못 들은 것 아니오? 광명곡(光明谷)은 천하절경이라더니, 이거야 원 삭막하기만 하구려!"
곡구(谷口)를 응시하던 중년유생이 빙긋 웃어 보였다.
"비록 삼 년의 세월이 흘렀다지만 나 소요거사 공량(逍遙居士 孔亮)이 길조차 잊어 버릴 사람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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