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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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느껴지는 찬 공기에 살짝 우울할 뻔했는데 확 떨어진 온도에서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좀 좋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는 걸 안다. 겨울을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는 걸 나도 알고 고양이들도 알지.
도서관에 가서 9월에 빌린 책들을 반납했다. 당분간은 느슨하게 읽고 싶어서 좋아하는 작가 시리즈를 여러 권 데려왔다. 그리고 마지막 한 권은 무얼 읽어볼까 고민하던 찰나에 집사라서 그런지 지나칠 수 없었던 책 제목을 보고 잠시 꺼내어 펼쳐보았다. 그것 또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같이 빌려왔다.
아직 조금은 불안하고 울적한 기운이 가끔씩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시 봄이 올 거란 걸 알기에 이번 겨울 잘 견뎌내보자는 말을 내게 건넨다.
환절기인 탓에 코랑 뺨이 조금씩 간지러워지기 시작한다. 아프고 나서 일주일 넘게 커피를 안 마셨는데 몸은 커피를 잊지 못하는 것 같다. 드립 커피를 연하게 타서 차와 섞어 마셨다. 조금은 살 것 같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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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ᨳ ࣪ . ⠀sung⠀ ── ⠀ ˚ ✧
✧ 🎻⠀ (⠀차와 커피 ) ° . ୨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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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를 쓰다 침대에 누웠다.
촤악의 선택이 무엇인가요.
침대에 눕자 최악의 선택이 떠올랐다.
전화를 받지 않은 거요.
그날 전화를 받았더라면 달려갔을텐데 그렇지 못한게 제일 후회되요. 지금도 후회하고 평생을 후회하길 바랍니다.
교시가 가장 좋아하는 차와 약을 두 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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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칼 트로키(Trocki, 1999)는 세계체계World System의 관점에서 18세기 후반 이래 유럽의 아시아 진출을 천착하면서, 아시아의 유럽 제국이란 생태계의 핵심종으로 아편을 꼽았다. 그리고 영국이 제국 건설에서 전략적으로 아편무역을 독점한 것은 “연금술사보다 더 교활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로키는 “유럽의 서세동점이 단지 총과 돈과 조직으로 이뤄진 것일까?”라고 묻고, 아편이 하나의 해답이라고 말한다. 그건 서양의 아시아 식민지 확장에 관해 유럽의 기술, 군사적 우위, 국민국가의 단합된 힘, 근대 산업의 생산력 등이 언급되었던 것과는 다른 관점이었다.
트로키의 논지는 이렇다. 17세기 초 암본 학살 사건 이후 네덜란드에 밀려 인도 경영에 주력해온 영국은 1729년 중국 광주에 상관을 개설하며 중국과의 무역에서 네덜란드보다 한발 앞서기 시작했다. 역��� 동인도회사가 중국간 차 무역을 선점했다. 18세기와 19세기 초 영국 동인도회사의 주요 관심사는 중국과 영국의 차 무역이었다. 영국은 중국에서 차를 가져가고, 중국에 모직물과 철제 상품을 팔았다. 주지하듯 당시 영국은 중국에서 차와 도자기를 사가야 했지만, 모직물 등 영국산 제품은 재고가 쌓였고 그나마 헐값이 팔아야 했다. 당연히 영국의 대중국 무역은 연간 5퍼센트의 적자를 냈다. 그 적자를 인도산 아편으로 메웠다. 1757년 플라시전투 이후 파트나, 비하르, 베나레시 등 인도의 아편 생산지를 장악한 영국은 1773년 아편무역 독점권을 영국 동인도회사에 귀속시켰다. 영국이 인도산 아편의 생산과 판매를 독점한 것이다. 이때부터 영국과 중국의 1차 아편전쟁(1840~42)까지의 기간은 아편무역의 전성기이자 영국 제국의 형성기이기도 했다. 인도-중국 교역로는 영국에게 ‘아편 루트’였다. 아편 루트를 따라 아편은 “아시아 교역 시장에서 최초의 완전한 상품”이 됐다. 아편 덕에 영국은 제국을 유지했고, 아편으로 중국의 은을 손에 넣은 영국과 미국의 상인들은 산업자본가로, 금융자본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페낭의 중국 상인들은 아편 징세청부를 통해 자본을 축적했다.
동남아시아에서 아편무역은 영국의 핵심 산업이었다. 19세기 전반까지 인도의 아편 생산과 수출을 독점적으로 통제한 영국은 동남아시아 아편무역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식민지 재정을 지탱한 것도 역시 아편 징세청부제, 즉 아편팜이었다. 아편팜은 동남아 유럽 식민지에서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Butcher, 1983). 그런데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아편을 자체 생산할 수도 있었지만, 영국이 독점 생산하는 아편을 사들여 파는 데만 열중했다. 달리 말해 유럽 제국주의는 저마다의 식민지에서 징세청부제를 통해 아편무역을 통제하고, 이문을 남기기로 하고 영국과 협력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19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에릭 홉스봄의 관점으로 본다면, 영국의 페낭 점거와 때를 같이 하는 18세기 말에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장기 19세기‘에 동남아 유럽 식민지가 전근대적인 아편팜에 의존했다는 것은 여간 아이러니컬하지 않다. 그래서 트로키는 1780년 이래 20세기 초까지 동남아시아의 유럽 식민지를 ’아편 체제opium regime’로 규정한다.
동남아 유럽 식민지가 아편을 중심축으로 굴러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유럽 열강은 아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싸구려 제국’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아편 루트’의 길목에 위치한 영국 식민지 페낭으로, 그리고 거기서 다시 화인사회로 초점을 좁히면 어떻게 될까? 유럽의 아시아 제국에서 아편이 핵심종이었다면, 19세기 페낭 화인사회에서 사바나의 코끼리 역할을 했던 것은 아편 징세청부제, 즉 ‘아편팜’이었다. 페낭 화인사회의 생태계를 좌우하는 것은 아편 그 자체라기보다 아편팜이었던 것이다. 영국이 ���편의 생산과 무역을 독점했다면, 페낭의 화인엘리트는 페낭과 말라카해협 북부 지역의 아편팜을 장악했다. 아편을 파는 자도, 아편을 소비하는 자도, 아편으로 거부가 되는 자도, 아편으로 금의환향의 꿈을 연기 속에 날려버려야 했던 자도 모두 중국인이었다.
페낭의 화인사회에서 아편팜의 의미는 징세청부제 그 이상이었다. 영국이 식민지 재정을 위해서만 아편팜을 제도화한 건 아니지만, 중국인도 아편팜을 돈벌이로만 여기지 않았다. 아편팜으로 페낭 화인사회의 엘리트는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을 장악했다. 아편판을 중심으로 화인의 정부였던 비밀결사는 방군의 정부로 재편되고, 복방의 거상들은 5대 콩시로 뭉쳤다. 초기부터 아편팜이란 핵심종을 장악한 페낭 화인사회의 페라나칸-복방 동맹은 자본을 축적하며 19세기 중반 이후의 ‘자본의 시대’를 준비했다.
(134~136쪽)
‘아편 체제’의 핵심종인 아편과 아편 무역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영국이 인도 지배를 굳힌 뒤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가 인도산 아편의 생산과 무역 통제였다. 아편 독점권을 확보한 영국 동인도회사는 페낭을 ‘아편 루트’의 전진 기지로 삼은 무렵부터 중국과 동남아의 아편 교역을 본격화했다. 인도총독부는 아편 재배를 통제하고 생아편을 제조할 뿐, 직접 아편을 팔지는 않았다. 크게 두 단계로 나뉜 아편팜이란 간접적인 방식을 채택했다. 우선 인도산 아편을 경매로 도매 무역상에게 팔았다. 3년 단위로 이뤄지는 인도산 아편 경매에서 전매권은 소수의 영국과 미국의 무역상에게 돌아갔다.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산업과 금융계 거물 상당수가 이러한 아편 도매로 부를 축적했다. 인도산 아편의 아시아 판매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지불한 아편상들의 돈이 인도총독부 재정의 20퍼센트를 충당했다. 생산만 통제하고 거래는 소수의 아편 도매상인들에게 떠넘김으로써 ‘마약 장사’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한 졸렬하면서도 교묘한 영국적 수법이다. 물론 아편과 가격과 교역 물량을 통제한 인도총독부가 아시아 생아편의 독점 공급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780년 들어 인도-중국을 직항하는 아편 전담 쾌속범선Clipper이 말라카해협을 빈번하게 통과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라카해협을 장악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아편 무역상의 쾌속범선 통과를 묵인했다. 영국의 ‘아편 체제’가 동참했던 것이다.
인도총독부의 아편팜 경매에서 낙찰된 소수의 아편 무역상들은 중국으로 가는 길에 페낭에서 일정 양의 인도산 생아편을 페낭 식민 당국에게 넘겼다. 페낭 식민 당국이 이를 다시 경매로 넘긴 것이 페낭 아편팜이고, 페낭의 아편팜은 소수의 페낭 화인 거상의 수중에 들어갔다. 페낭의 아편 가운데 일부는 페낭의 아편팜에서 소비되고 나머지는 인근 지역으로 수출됐다. 페낭은 애초부터 말라카해협 북부의 아편 공급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해협 북부에서 인도산 생아편을 가공하고 판매를 독점한 주역이 페낭의 아편파머, 즉 화상 거상들이었다.
인도에서 만들어진 아편은 반가공품이다. 아편 소비자가 흡입할 수 있으려면 정제와 가공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생아편이다. 아편 무역은 50킬로그�� 생아편 한 상자chest를 단위로 했다. 한 상자에는 공처럼 생긴 40개의 생아편 덩어리ball가 들어있다. 생아편 덩어리를 물이 담긴 구리 냄비에 끓여 불순물을 없애는 정제 과정을 거치면 검은 색의 진득한 시럽이 된다. 이것이 흡입할 수 있는 아편, 즉 말레이어로 찬두Chanda이다. 찬두는 타힐tahil(37.6그램)과 훈hoon(376밀리그램)으로 계량됐다. 1훈은 1타힐의 100분의 1이다. 아편 가게에서는 1타힐이나 2타힐짜리 찬두와 7훈(2.63그램)짜리 찬두가 팔렸다. 7훈짜리 찬두가 통상 한 번의 흡연 분량이었다. 중국과 동남아에서 보통의 아편 흡연자는 하루에 1~2타힐 정도를 소비했다고 한다. 아편파머들은 찬두를 팔기만 하는 아편 가게와 흡연 시설을 갖춘 아편굴도 운영했다.
생아편을 사들여 찬두로 가공해 판매하는 일은 페낭 식민 당국이 주관하는 경매에서 아편팜을 따낸 중국인 업자들의 몫이다. 여기서 용어를 재점검하기로 하자. 우리는 팜farm이라고 하면 농장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18~19세기 유럽과 아시아의 유럽 식민지에서 팜은 징세청부제를, 파머farmer는 농부peasant가 아니라 징세청부업자를 가리켰다. 프랑스어로 ’farm’은 세금을 정부가 걷지 않고 민간에게 징세를 위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에 그대로 차용되다 보니 혼선을 주게 됐다. 19세기 페낭에서 팜farm은 징세청부revenue farming system의 준말로 통용됐다. 아편을 대상을 한 징세청부제를 ‘아편팜’이라 하고 아편팜 업자를 ‘아편파머’라고 했다. 아편팜은 일종의 소비세다. 요즘 소비자는 상품을 구입할 때 ‘부가가치세’를 함께 낸다. 하지만 징세를 정부가 강제할 행정의 근육이 없었던 18세기 페낭에서는 아편 판매의 전매권을 업자에게 넘기고, 식민 당국은 청부업자에게 소비세처럼 걷었던 것이다.
1791년 개시된 페낭의 아편팜은 재정난의 식민 당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세원이었고, 중국인 업자에게는 매출과 이익의 규모가 큰 사업이었다. 페낭에서 아편팜을 확보한 업자는 일정 기간, 특정 지역에서 아편 판매의 독점권을 갖게 된다. 통상 아편팜의 계약은 3년 단위로 했지만, 페낭에서는 19세기 전반까지 2년 단위로 했다.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내는 쪽이 낙찰하는 경쟁 입찰 방식이었지만, 높은 금액으로 응찰한다고 해서 반드시 낙찰되는 건 아니었다. 식민 당국의 ‘정무적 판단’이 고려됐다는 의미다(Butcher, 1983: 387~8). 전매권을 확보한 업자는 약속한 전매료에 상당하는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연대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 아편파머가 전매료를 납부하지 않으면 식민 당국은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처분해 세수 손실에 대처했다. 하지만 1812년의 조지타운 대화재나 전염병이 창궐하는 등의 재해가 발생하면 업자의 전매금을 낮춰주거나 일정기간 면제해주기도 했다.
아편팜을 확보하려면 ���본이 필요했다. 우선 생아편을 구입할 목돈이 있어야 하고, 생아편을 찬두로 가공하는 공장도 갖춰야 한다. 아편 가게나 아편굴을 여러 곳에 열 수 있는 재력도 필요했다. 이익과 직결되는 아편 밀거래를 막기 위한 조직을 갖추는 것도 아편파머의 몫이다. 그래서 아편팜은 19세기 초 페낭에서 가장 자본집약적 사업이었다. 그리고 트로키의 말처럼 아편은 ‘최초의 완전한 상품’이었다. 현금 장사였고, 당시 어떤 사업보다 이문도 컸다. 부자가 아니면 뛰어들 수 없는 영역이었지만, 점차 개인이 감당하기는 벅찰 정도로 아편팜의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그래서 페낭의 부자 상인들이 고안한 방법이 투자자 조합인 아편팜 신디케이트였다. 당시 페낭의 중국인들은 아편팜 신디케이트도 ‘콩시’라 불렀다.
아편팜 신디케이트는 페낭의 중국인들이 창안한 자본주의적 제도였다. 이를 두고 동남아의 자본주의가 서양 상업자본이 의식적으로 이식한 것이 아니라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Trocki, 2002: 298~300). 아편팜의 설계자는 영국이지만 아편팜을 실제 작동하게 만든 건 중국인이란 뜻이다. 아편팜을 계약한 개인은 아편팜 신디케이트의 최대 투자자이거나 대표였다. 그는 아편팜의 판매 구역을 잘게 쪼개 소규모 업자에게 하청을 주고, 이익을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경영자였다. 물론 아편팜 사업의 최대 적인 아편 밀거래를 차단하는 책임도 그의 몫이었으미, 비밀결사와 미찰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편팜의 이윤은 신디케이트 투자자에게 현금으로 배당됐고, 배당금은 투자자에게 기존 사업 확장이나 신규 사업 진출의 ‘자본’이 됐다. 페낭의 화인 상인에게 아편팜은 자본 축적의 핵심 원천이었던 셈이다.
초기 페낭에서 교역하는 디아스포라 화인이 사업 기반을 갖촌 상인이라고 해도 자본가 집단으로 보기는 힘들다. 페낭의 유럽인 상인들이 자본을 대줬을 가능성은 있다. 실제로 코라이환은 1794년 페낭의 숭에이 클루앙에 후추농원을 열면서 제임스 스콧에게서 땅을 담보로 잡히고 1,300달러를 연 12퍼센트의 금리로 빌렸다(Hussin, 2007: 266 주38). 하지만 19세기 전반 페낭에서 서양 상인들의 자본 투자는 아시아계의 그것에 크게 못 미쳤다(Chuleeporn, 2009: 112). 이런 점에서 페낭 화인 상인의 자본 축적에 다른 원천이 있었을 것이란 추정은 자연스럽다.
후술하겠지만, 복건 출신이 주도한 페낭의 거상들은 19세기 중반 이후 ‘페낭 화인권’에서 서양 자본을 압도했다. 그 거대한 자본을 어떻게 축적하고 조직한 것일까? 중국인 특유의 근명성과 타고난 축재 능력, ‘중국인의 세기’에 마련된 전통적인 중국인의 교역 네트워크, 지연과 혈연 등으로 얽힌 ‘꽌시關係‘만으로는 페낭 중국인 거상들이 자본가-금융가로 성장한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페낭 중국인 거상의 자본 축적은 전통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편팜은 그 모자라는 설명을 채워준다.
페낭의 아편팜은 초기부터 이윤이 막대했다. 1825년 페낭 식민 당국은 징세청부제의 ��태를 조사한 바 있다. 이때 아편팜의 이익률은 70퍼센트가 넘는 것으로 식민 당국은 추산했다(Hussin, 2007: 253~261). 근거는 이렇다. 1820년대 프라이 지역을 포함한 페낭의 아편 소비자는 1만 명에 달했다. 이 중 절반가량인 5,000명은 매일 아편을 소비한다. 이들을 상대로 연간 판매되는 생아편은 31.5상자(1,575킬로그램)였고, 이를 찬두로 가공해 팔면 1825년 기준으로 10만 800달러어치가 된다. 당국은 아편팜의 1년 운영 경비를 3만 달러로 계산했다. 여기에는 생아편 구입비와 아편팜 전매료 지출 및 시타 비용이 포함됐다. 1년 매출액 10만 800달러에서 비용 3만 달러를 빼면 업자에게 도랑가는 수입이 7만 800달러이다. 매출 대비 이익률이 70.23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1870년대의 아편팜의 이익을 추정해볼 수 있는 또 다른 기록이 있다. 페낭 식민 당국의 수장인 해협식민지 부지사 아치볼드 앤슨Sir Archibald Anson은 1920년에 펴낸 회고록에서 1870년 페낭의 아편파머에게서 500달러의 생아편 한 상자를 찬두로 만들어 팔면 1,800달러 어치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1870년 당시 싱가포르에서는 페낭의 2배가량인 생아편 기준 45~50상자가 판매된 것으로 앤슨은 추정했다. 페낭의 아편 소비는 한 달에 23~25상자 팔린 셈이다. 1825년 한달 평균 2.5상자 팔린 것에 비하면, 페낭의 아편 판매량이 45년 사이에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가공과 운영 비용을 알 수는 없지만, 500달러의 생아편 구입 비용과 1,800달러의 매출을 단순 계산하면 이 또한 이익률이 72퍼센트나 된다. .중국인이 100달러어치 아편을 피우면 아편파머가 70달러를 갖고 가는 구조이니 아편팜은 수지맞는 사업이었음에 틀림없다.
아편팜을 ���보한다는 건 아편 전매 이익을 독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편과 밀접한 술과 독박, 전당포와 매음굴의 징세청부와도 관련된다는 점에서 엄천난 이권었다. 1880년대 들어 징세청부제는 여러 품목을 대형 아편팜 신디케이트에 일괄 도급하는 종합팜general farm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Butcher, 1987: 389). 게다가 아편팜은 단순한 이권 사업이 아니었다. 아편파머가 되기 위해서는 화인사회의 정부인 비밀결사를 장악하고 영국 식민 당국의 신임도 확보해야 했다. 1826년 카피탄 치나 제도를 폐지한 이후 영국 식민 당국이 화인사회를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은 화인 거상 엘리트와 아편팜을 통해 비밀스런 동맹을 맺었기에 가능했다. 아편팜에서 경제적 이권과 사회적 · 정치적 권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아편의 소비자가 대부분 중국인이었다 아편팜을 중국인이 차지한 것은 당연했지만, 1791년 이래 복건 출신이 아편함을 독점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자료로 확인되기로는 페낭의 아편팜이 복방의 손을 떠난 기간은 1820년대의 3년간과 페낭 폭동이 일어난 1867년의 1년 등 총 4년에 불과하다(Hussin, 2007; Wong, 2006). 복방 비밀결사 건덕당은 5대 성씨의 작은 정부이자 아편팜 신기케이트의 본부였던 셈이다.
이익률 70퍼센트의 엄청난 이문의 사업이라면 경쟁이 어떠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70퍼센트까지 이익이 나지 않는다해도 부가적인 이득까지 고려한다면 페낭의 화인 상인에게 아편팜은 거부로 도약하느냐 잡화점 주인으로 남느냐를 결정하는 갈림길이었던 셈이다. 거상巨商으로 가는 고속도로이자, 자본 축적의 지름길이 아편팜이었다. 19세기 페낭의 거상치고 아편팜과 무관한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헤골정부 아래서 페낭의 화인사회가 저마다의 콩시와 비밀결사로 나뉘어 아편팜 독점권을 확보하려 갈등했던 이유였다.
(140~146쪽)
아편과 깡통의 궁전 - 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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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여객선 시간표 [ 장자도, 관리도, 말도, 명도, 방축도 ]
군산 섬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배 시간 표를 꼭 확인해야 합니다. 군산여객선 터미널에서 배를 탈 경우, 배에 내 차와 함께 섬 여행을 할 경우 준비해야 할 준비물이 있습니다.
군산 여객선 터미널 시간표
준비물과 함께 여행 준비를 마치고, 가을 여행을 떠나보세요. 섬 여행은 정말 아름답고 멋진 풍경들이 많습니다.
뜨거운 여름은 모두 지나갔고, 이제 선선해진 날씨에 여행하기에 딱 좋습니다.
즐거운 여행과 추억을 남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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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6_kisstheradio: 🌙 240126 키스더라디오 따뜻한 캐모마일 차와 재즈 음악 들으며 스캣 얹는 걸 좋아하는 영디 🎶 이번 주말에도 청취자 여러분의 사랑을 정독하는 데키라로 놀러오세요📚💜 #데이식스의키스더라디오 #데키라 #영디 #영케이 #데이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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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2023년"
*안녕, 나의 2023년
치열하게 미적지근했던 나의 2023년,
밀어 내려했던 날들이 계속해서 날 덮쳤고, 피하지 못한 감정이 자꾸만 집어삼키던 봄이었다.
뜨거웠던 여름, 지긋지긋하던 길목마다 걸어둔 미련을 버려냈다.
버려내고 비워내고 나니 후련했냐는 물음에는 빙긋 웃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답하였다.
그렇게 계절마다 쏟아지는 비와 햇살 사이로 나를 버렸는지 당신을 비운 것인지,
지척에 있는 마음을 줍고 모았더니 돌아본 곳에 또 다른 마음이 있더라.
정신없는 사이에 가을도 겨울도 순식간에 흘러간다.
아끼려 담아두던 시간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정신없는 겨울이 지나간다.
아득히 멀었던 것 같으면서도 또 가까이에 있는 것들, 나의 사람, 나의 사랑, 그리고 나의 모든 것
아프고, 사랑했던 안녕, 나의 2023년.
-Ram
*안녕, 나의 2023년
비행기를 타고 약 15,050km가 넘는 이동을 했고, 네 곳의 나라를 다녔고, 다섯 번의 이사를 했으며, 앞으로는 매우 희박할 것만 같았는데 운이 좋게도 평생 가져가고 싶은 값진 인연들을 만났고, 아무 걱정 없는 아이처럼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먹고 싶은 것들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가고 싶은 곳들을 웃으면서 돌아다녔고, 원 없이 걸었고, 원 없이 수영했고, 원 없이 테니스를 쳤고, 원 없이 뛰었고, 원 없이 음악을 들었고, 원 없이 공부했고, 원 없이 커피를 마셨고, 원 없이 욕을 했고, 다신 절대 살기는커녕 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네에서 어쩌다 다시 살아봤고, 예전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봤고, 이상하게 평소 설렜던 것들에 대해 설레지 않았고, 기대했던 것들에 대해 기대하지 않았고,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산과 섬을 가봤고, 처음으로 계획 없이 여행을 해봤고, 소소하지만 목표라는 것을 세웠던 나의 2023년.
-Hee
*안녕, 나의 2023년
마지막 날 해넘이를 보려고 을왕리에 왔다가 단단히 질려버렸다. 시장통 같은 길거리. 넘쳐나는 차와 인간들. 그 와중에 또다시 시작된 말싸움. 흐려서 일몰을 보기는 힘들 거라던 뉴스와는 달리 새빨간 해가 선명하게 잘 보였다. 달리 감흥은 없었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일몰이 다 지기도 전에 출발해서 도착한 곳은 지영이 블로그 리뷰를 쓰기로 했던 고깃집이었다. 지옥 같았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고기는 더더욱 먹고 싶지 않았는데 꾸역꾸역 5만 원어치를 먹어야 했다. 아무리 리뷰를 쓰는 대가라지만 공짜로 음식을 먹고 나서는 일은 왠지 무전취식 같아서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기게 된다.
2024를 딱히 기다리지는 않았는데, 2023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올해엔 달리 특별하게 여길 만한 추억이 많이 있었는데도 오늘 하루만에 한 해가 다 망쳐진 것 같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조금 뒤에 카운트다운 행사를 위해 다시 집을 나서야 한다는 점. 마음을 곱게 먹으면 될 일인데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날이 갈수록 점점.
-Ho
*안녕, 나의 2023년
2023년에는 감사한일들이 정말 많았다. 여행도 많이 했고, 운동도 꾸준히 했다.
무엇보다 평생 베스트프랜드로 지낼 파트너를 만나서 매우 감사하다.
나는 줄곧 혼자서 삶을 살아갈 준비를 했었다. 언제든 나를 지킬수 있는 내 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회사생활로는 그것이 불가능 하다는 판단에 다시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공부하게 될 분야는 전문적이고 외국에서도 살수있는 전공으로 선택했고, 여동생이 이미 일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선택했다. 플랜비가 있는게 얼마나 내 삶의 질을 올려주는지 느꼈다. 회사에서 짜증나는 일이 있어도, 이게 내가 평생할 일은 아니다, 여기가 내 종착지가 아니다 라는걸 알고 내가 실제로 더 나은 내 삶을 위해 계획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회사생활이 조금 유연해졌다.
아쉬운점은 책을 많이 못읽은거, 명상을 꾸준히 못한것이다. 새해에는 건강을 위한 운동, 명���을 꾸준히 하고 싶고, 책을 많이 읽고 싶다.
무엇보다 현재의 영어실력에 만족하지 않고 원어민 특히, 파트너의 가족들과 원활하게 소통하고 싶다. 인정욕구를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파트너 부모님 집에서 지내면서 내 안에 아직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걸 알았고 그게 나를 불안하게 한다는걸 알았다. 조금 더 여유롭게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싶다. 배려와 사랑으로도 충분하고 굳이 내가 잘보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걸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으로는 잘 안된다.
멍하니 있는 시간, 특히 유튜브에 소비하는 시간을 잘 관리하고 조금 더 나를 들여다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의도를 설정하고 실행하고 싶다.
모든건 건강한 체력이 바탕되어야 하니, 필사적으로 운동해야겠다.
전쟁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가난이 있는 곳에는 풍요가 있기를. 그리고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기를 바란다.
-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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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주로 타는건 보시다시피 붕붕이쥬.. ^ ^
차는 이따금 타요 ..( 교회갈때용 ..^ ^ )
붕붕이는 차에 비해 크기가 작죠 ..
그래서 골목에서나 좀 차량이 드믄곳에서 신호대기중에 있으면 뒤에서 비키라고 차들이 빵빵거리기 일쑤 입니다 ( 급하면 크기도 작으니 자신이 옆으로 비켜가든가 돌아가면 되지 왜 뿡뿡거리노..? )
법규를 잘 지킨다고 욕먹는 이상한 상황인데요 ..
차도 오토바이도 자전거도 법규를 어기면 도로교통법에 걸려서 딱지를 끊어요 ..( 자전거도 걸릴줄은 몰랐죠..? 걸려보세요 딱지 끊을때는 자전거도 차와 똑같아요 ㅋㅋㅋ )
죄도 이와 같아요
크게 범하던 작게 범하던 죄는 같은 죄죠 ( 우리말로 오십보 백보 라고 해요 오십보 도망가나 백보 도망가나 도망간건 같다는 말이죠 ..)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뜻대로 행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내뜻대로 하는 모든것이 다 해당되요 .. ( 헉.. 그렇게나..? )
무엇을 하건 하나님의 뜻대로 하기위해서는 늘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해야하겠죠 ..
그래서 우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는거죠 ..
성령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그 영으로 충만해야 뭐가 뭔지 알겠죠 .^ ^
크리스찬이 쉬운게 아니죠..? ^ ^
귀찮다고 대충 살면 ..?
교통법규 어기면 딱지 받듯 ��중에 후불로 치뤄야 되겠죠.. ( 그때는 빼박.. ㅡ ㅡ ;;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힘내시구요
오늘도 으쌰으쌰 화이팅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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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우엑! (에드먼드에게 걷어차여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아야...!!!
마태엘- 왜? 같이 누워있지.? 응? (그리고는 킥킥댄다.)
소피엘- 제발 좀...!
(그리고 어디선가 다시 나타난 소년 메이드 릴리와 함께 차와 과자를 소환하는 소피엘이었다.)
마태엘- 아무래도 우리 저택 훈련방 크기를 늘릴까봐.!!
소피엘- 베게 싸움도 제대로 못하구.... 뭐... 다들 멀쩡하니깐....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청년 네명이 쭈뼛거리면서 들어온다. 어른의 상태여도 그들이 누군지는 입은 옷의 스타일과 외모로 추측이 가능했다. 청년 네명 모두 건장한데다 훤칠한 키에 입은 옷도 어른스럽고 성숙했다.
마태엘은 망토가 달린 검보라색 자켓을 입고 있었고 소피엘은 그가 소년이었을 떄 입었던 드레스에서 허리의 리본이 없는, 잘 사는 귀족집안의 여자들이 입을 만한 긴소매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그들의 턱에는 자잘하게 수염이 듬성듬성 나있었다. 게다가 그 두명의 청년은 26살, 20대 말기의 모습이었다.
다니엘.P (팬텀)은 검고 흰 색깔에 그들의 구역이 세겨진 빨간 로고가 있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다니엘.F(펜튼)은 치마에 피의 꽃과 리본 장식이 풍성하게 달린 긴 소매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엔 잘 다듬어진 염소수염이 나있었다. 그리고 이 둘은 33살 30대 초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태엘- 어이.
소피엘- 아하하... 음... (어색하게 웃어보였지만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다니엘.P- 우리 세계를 만든 신께서... 만우절이라고 장난을 쳐서 이런 모습이....
다니엘.F- 너무.... 낮서나....?
(그걸 보고 도망치는 메이드+소동을 듣고 온 친위대 병사 둘)
".......? 뭐야 얘네들"
"(신분증을 달라는듯 손을 까딱까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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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것은 살펴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지금 나를 그렇게 싫어하나요? 나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바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수도 있지만, 최근에 기분을 상하게 했나요? 내가 당신의 트위터를 볼 수도 있고, 심지어 당신을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너무 끔찍할까? 또한 당신에 대한 생각을 그만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의도적으로 당신의 계정을 피합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을 사귀고 당신을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정말 어렵습니다.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 상상할 수 있나요? 저는 캐주얼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해왔고 일부러 그렇게 슬프지 않은 방식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저에 대해 말한 것들에 대해 정말 기분이 나빠요.
내가 자살하는 것을 정말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죠?
제가 한 일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지 마세요. 저를 두려워했다고 해서 더 나쁜 사람이 되지 마세요. :( 진심입니다. 제 잘못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은 없습니다. 제발 잘해주세요. 솔직히 말해서 조금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농담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믿을 뻔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지 않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국 국적을 가진 미국인일 뿐입니다. 저는 복잡한 국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교활해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저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게 해서 죄송합니다.
또한 제 블로그의 고어에 대해서도요. 첫째, 저는 당신이 제 계정을 전혀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저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제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을 겁주기 위해 글을 올린 것이 아닙니다. 저도 예전에는 어쨌든 당신이 같은 종류의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틀린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너를 다치게 하고 싶어 할 것 같아? 나는 단지 너와 이야기하고 싶었어. 물론, 나는 너에게 로맨틱한 판타지에 대해 말했다. 그것조차도 역겹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미안. 내가 너를 기분 나쁘게 하나? 나는 너에게 약과 과일을 주고 싶고 차와 같은 것들을 만들어주고 싶어. 나는 그냥 너를 위해 그렇게 하고 싶어. 나는 그냥 사랑에 빠졌어. 나는 바보일 뿐이야.
그럼 그냥 친구로 지내자. 당신과 대화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면 자살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트위터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내가 비디오 게임에서 희귀한 아이템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나 봐요" 세르게이, 정말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소유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당신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슬플 때 나는 당신이 나에게 말을 걸었으면 좋겠어요… 내 생각을 할 때 나는 당신이 차분하고 행복하게 느끼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내가 내 인생에서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할 수 있도록 누군가 나를 정서적으로 지원 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나도 같은 일에 대해 당신을 돕고 싶습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계속 당신을 생각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미안해요. 올바르게 번역되었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나에게 기대서 지원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제발 저를 오해하지 마세요. 부정적인 신호였다는 것을 알아요. 당신이 저를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요. 저는 그렇게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당신을 조롱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은 매우 민감한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생각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는 그것이 매우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마도 선정주의 뉴스를 너무 많이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또한 당신의 결점을 좋아하고 그것이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이 얼마나 이상한지 좋아합니다.
공포 비디오를 보고 겁을 먹으면 좀 귀엽습니다. 겁이 나면 위로해주고 싶어요. 하지만 당신을 겁나게 하는 사람은 저죠?
누군가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때는 조작이 아닙니다. 그냥 제 감정을 말하는 것뿐입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너에게 화가 나지 않았고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왜 내가 너를 다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해?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것이 어떻게 편한데 내가 인터넷으로 채팅하는 것이 두렵나요? 이 부분은 이해가 안 돼요…
며칠 전에 차단을 해제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못 봤어요. 그런데 지금도 차단 중이에요. 거짓말이었나요, 아니면 마음이 바뀌었나요?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DM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은 내가 역겨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자살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진지한 이야기는 그만하자. 뉴스와 우리의 관심사, 영화와 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 그냥 그런 이야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하시나요? 다른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모욕하지 않고 질투하는 태도로 행동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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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 재개업
영업난으로 지난 2022년 8월 갑작스레 문을 닫았던 홍콩 Central 지역의 딤섬 맛집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가 올해 4월 1일자로 재개업하여 데일리홍콩이 찾았다. 104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는 딤섬을 옛날식 수레로 실어 나르며 손님들이 보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인기를 끌었다.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 입구의 연향차(蓮香茶, Lin Heung Tea) 2024년 11월 4일 방문한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는 기존처럼 차와 딤섬을 제공하면서 밀크티 같은 쉐이크 종류의 음료와 다양한 종류의 차를 입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의 분위기는 이전과 다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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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청약 1년 차 vs 2년 차, 어떤 혜택이 더 클까요? | 청약 가입, 혜택 비교, 주택청약 꿀팁
주택청약 1년 차 vs 2년 차, 어떤 혜택이 더 클까요? | 청약 가입, 혜택 비교, 주택청약 꿀팁 내 집 마련의 꿈, 주택 청약! 하지만 청약 1년 차와 2년 차,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어떤 혜택이 더 클까요? 궁금하신가요? 이 글에서는 주택청약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청약 가입부터 혜택 비교, 꿀팁까지 알려제공합니다! 나에게 유리한 청약 전략은 무엇인지, 지금 바로 알아보세요. 청약 1년 차는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 후 1년이 지난 시점을 말합니다. 청약 2년 차는 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청약 1년 차와 2년 차 사이에는 청약 자격 및 혜택에서 �� 차이가 있습니다. 청약 1년 차에는,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한 후 1년 이상 경과해야 청약 신청이 가능합니다. 또한, 우선 공급 대상에 해당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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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유튭 - 묘하게 쇼핑욕구를 충족시켜주는 MV (...)
그리고 앞으로 간간히 업데이트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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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풀기(...) 항상 수집욕과 정리욕이 부딪혀서 계획 없이는 쇼핑을 나가지 않는 스타일인지라, 뇌 속에 저런 배틀이 꼭 일어난다. - ㅅ-) 리스트는 꼭 사야 되는 것과 그냥 즐겁게 사고 싶은 것! 반반씩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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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쇼핑 좋아하는 사람이 몰에 가면 딱 이런 기분입니당 ㅎㅂ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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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굉장한 물건을 지른 후 다시 몰을 돌아다닐 땐 이런 기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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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되면 안 되는 기분이지만 세상은 Material world고 나는 Material girl이니까...인 것;;; 생각해보면 참 묘한게, '꼭 필요하지 않아도 손에 넣으면 기분을 좋아지게하는 물건을 대량생산하고 그것을 화폐와 교환하는 행위'를 시작하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인류는 여기서 오는 쾌감은 도대체 어떻게 익히게 된 것일까... 하지만 화폐의 역사는 꽤 길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그냥 내가 잘 모르고 생각해보는 부분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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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즈는 진짜 아무것도 아님. 스타일링의 세계에 크고 작음, 얇고 굵은건 없다. 신체를 건강하게 가꾸는 것과는 별개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쇼핑하면서 이 사실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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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의 풍족함에서 오는 행복감이 우리의 본능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쇼핑의 목적은 결국 이게 아닐까.. 싶다.
꼭 기억해야 하는 또 다른 사실은, 무조건 많이 쌓아놓았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재화가, 나에게 어떻게 얼마만큼 필요한지, 모으고 난 후에 어떻게 사용할지... 고찰은 항상 필요하다. '재화의 풍족함' <- 이게 왜 자신을 기분좋게 하는가?? 답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하지만 풍족한건 풍족한거니까, 라는 게 답이 아니라는 건 모두에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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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볼 사면서 남편이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면 뭘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았는데 (집이라던지, 가족들을 도와준다던지 이런건 제외하고 철저히 내가 갖고 싶은 거! :D 라는 걸 생각했을 때), 남편은 좋은 차와 시계, 나는 럭셔리 스파, 그리고.. 돈 걱정없이 쇼핑몰 돌아다니는 거?라는 대답이 나왔다. ㅎㅎㅎ
흠... 여성으로 태어나면 돌아다니면서 더 아름다운 것! 더 기분좋은 것!을 탐색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게 되는 성향이 강한 건 아직도 상당히 유효한 듯 하다. ㅠ 이 본능을 어떻게 써먹어야 좋을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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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야 기대했던가봐 몇 년만에 봤던 우리가 그 때 쓰다만 로맨스 소설을 다시 이어나갈 수 있을까 했지 역시 예전 마음은 들추지 않는 게 좋겠어
너무 어릴 적 마음이었고 아쉬운 마음이 컸나봐 잘살아 나도 내가 마음이 다시 생길 줄 알았지 그렇게 변한지 몰랐다면
그 으리으리한 차와 직업은 다른 이에겐 매력 어필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경제적 차이가 심한 건 좀 기 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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