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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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cohouse15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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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에도 웨이팅은 기본!
속초 맛집 대청마루 산채비빔밥&황태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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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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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너의 하루가 시원하길 바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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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grida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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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동 부영아파트 거실 #디자인스튜디오그리다 #그리다_다산동부영아파트 #아파트인테리어 #아파트리모델링 #아파트스타그램 #집스타그램 #아파트인테리어예쁜집 #원목마루 #홈스타일링 #홈인테리어 #무늬목 #대청마루 #거실스타그램 #무몰딩 #무문선 #한식디자인 #한식중문 #한식간살 #간접등 #라인조명 #거실인테리어 #거실꾸미기 #남양주인테리어 #구리인테리어 #의정부인테리어 #송도인테리어 #원목마루한식시공 #광폭원목마루 (도농동 부영아파트에서) https://www.instagram.com/p/CPPzvHnsIiC/?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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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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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마루 #전통가옥 #영릉 #재실 #traditionalhouse https://www.instagram.com/p/CIaMMFnsN6O/?igshid=1ei778yww5o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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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ungi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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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2
대학 때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 중 하나가 삼청동의 자연체험학습 교구를 파는 곳에서의 경험이다. 지금은 멋없는 현대식 건물로 변해버렸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때만 해도 석가래 지붕의 대청마루까지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 자연체험학습장이자 관련 교구를 파는 곳이었다. 대기업을 다니시다 퇴직한 점잖은 어른이 나름 뜻을 가지고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나는 친구의 소개로 주말에 나가 판매를 도왔다. 가게는 바깥에서보면 도대체 뭘하는 곳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서 거리에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해도 가게는 한적하거나, 한 두 명 용기낸 손님을 따라 들어온 가족 단위 사람들로 가득하거나, 늘 둘 중 하나였다. 대청마루 안쪽에는 사장님의 개인소장품이던 음악 cd가 가득했는데 우연히 집은 앨범에서 베토벤의 비창을 듣게 되었다. 클래식이 뭔지 당최 몰라도 나를 참 평온하게 했고 사람이 없을 때면 대청마루 끝에 앉아 음악을 틀고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없으면 사장 아저씨의 배려로 삼청동 거리 곳곳을 삼선 슬리퍼를 신고 나가 누볐다. 왜 그때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떠올랐느냐하면, 며칠 전 또 한번의 퇴근길에 백건우 아저씨가 연주한 비창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때의 나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삶을 지금 살고 있는 것, 동시에 또 그때의 나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두 생각 사이에서 뭔지 모를 감격이 있었다. 감사하며,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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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apesblog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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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삿짐 쓰레기로 버려지기 직전 기적처럼 발견된 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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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happyrhino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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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_허왕후_신행길_축제 연계 프로그램 안내 국립김해박물관과 인제대학교LINC+사업단이 함께 준비한 허왕후 신행길 축제 연계 프로그램에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 프로그램 개요 일정 : 10.8(금) ~ 10.9(토) 시간 : 교육별 상이함 장소 : #김해한옥체험관 거안당 또는 담경헌 대청마루 ★ 프로그램 내용 ① 우리 할머니는 허왕후( #가야사_인형극 ) - 5~9세 어린이 가족 ② #김수로왕 탄생설화(팝업카드) - 10~13세 어린이 개인 ③ 가야에는 어떤 보물이 있을까?(가야유물) - 10~13세 어린이 개인 ★ 참여방법 신청기간 : 9.23(목) 오전 9시 ~ 10.6(수) 오후 5시/선착순 마감 신청방법 : 국립김해박물관 홈페이지-회원가입-로그인-교육·행사-교육신청 #허황후 #신행길 #축제 #김해시 #김해 #김해축제 #허황후축제 #허황후신행길 #허황후신행길축제 #김수로 #국립김해박물관 #박물관스타그램 #문화행사 #공연 #인제대학교 Reposted from @gimhaenm (Gimhae Hanok Experience Hall에서) https://www.instagram.com/p/CTxRGW3hh9o/?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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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kerjang-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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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의 모습- 괴산 어느한옥집- 대청마루 모퉁이에 자리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금새 집주인 할머님은 삶은 감자며 자두등 먹을걸 내오셨다 "한옥을 그린다메 별거아닌 담벼락을 왜 그린댜" 하긴 멋진 대문과 한옥건물을 가진 집이니 할머님 말씀이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었다 #괴산군 #불정면 #시골집 #먹물 #길드로잉 #추억 #한옥 #옛날집 #풍경 #시골풍경 #수채화 #스케치 #드로잉 #펜드로잉 #만년필 #펜화 #Jar of traditional Korean houses #urbansketch #sketch #watercolor +#fountainpen #landscape #Hanok #pendrawing #Brushpen #Orientalink #waterbrush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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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ofmalov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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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이상형
옌이
센터마크호텔
두번말하지 않는것, 아맞나 금지
섬섬옥수
노른자 x
계란넣은빵 엑스 하지만 에그타르트 쥬아요
지방시, 베르사체, 향수
입생로랑 림밥 x, 틴트, 립스틱은 다맞다, 연한핑크
서브웨인ㄴ 로스트치킹 허니오트, 머스타드, 할라피뇨추가
복숭아, 자두, 망고, 파인애플 새콤한맛
신김치
한남동, 인사동 뽕신, 꽈베기, 공도넛
52.4
로스트치킨 서브웨이, 머스타드, 허니오트
오다이바-조용한 동네 최애, 자유의여신상
에이비형
문화복장학원
회화 프리그룹클래스 하다가 친해져서 음식으로 공감대형성 번호교환도하고 말하는게 너무 재밌어서 메밀소바먹고 커피도 먹고 쭈꾸미 먹으면서 술과함께 고백 영화도보고 저번주삼일동안은 같이 있고 ��본가고 정기적으로오고
홍대에서 살았다, 3개월영어다님
네팔인들에게 불렸던 애칭
딱새우회
양파드레싱
미역샐러드
바질,발사믹,마요네즈,참깨 절대 x
새콤 담백 깔끔 매콤
삿포로맥주
12:30 복용
스타벅스 텀블러
립-연한색 x, 오렌지색 x 빨간색,핑크색,
에스티로더 파운데이션 더블웨어- 쿨바닐라
향수만들기 반지만들기
꼼데가르송 지갑, 프라이탁
우울증에좋은 디푸져, 캔들+워머
매트
이케부쿠로, 요츠야
새그런과일-키위
9/22 옌이의 첫 모닝콜 세상행복해,,❣️
9/25 일주일 쉬고 21일치 이틀뒤
남자친구가 술자리 가있다고 하면 괜히 카톡이나 시간이 예민해진다
찹쌀아이스 , 모나카, => 모찌모찌한 아이스크림
미역국에 넣은 소고기는 오케이
육개장, 만둣국 소고기 노옵
톰포드 (각종)립
입생로랑 에스로더 쿠션
에스티로더 파데
알로에 배쥬스
후라후라
카누커피
삼청동 아날로그 키친
비타민C(챙겨갈것)
멜킨 요가메트, 폼롤러
에탐 속옷
빨간 자주 연보라 (색조)
파데 거의다 떨어져간다(18.10.13)(사버리기!)(망해쬬)
SK2 세트 너무좋아
몽셀(챙겨갈것)
운동230mm
구두235mm
감기약 사기
슈슈하나 슈비하나
찹쌀도너츠 , 꽈배기
세리펙엑스(0)
다이아 1캐럿짜리 반지
목감기약
주소: Chiyoda-ku, Niban-cho 2, 102-0084,Tokyo,Japan
간장새우
계절밥상
맛있는떡보끼집
곱(마포,신도림)
짜장짬뽕
교촌
하리보회사 ㅎ
동파육
해물칼국수
다이나믹듀오 루피 나플라 팔로알토
피피걸 쇼핑몰
고치돈,미컨
내수동 대청마루 전통 손짜장
옌이와 관련된일은 무조건 옌이를 중점으로
친구들 만날때 연락 조심
아이소이 아벤느
발렌티노지갑
입생로랑반지갑
마카롱
도미노는 직화구이 치킨
스파게티는 미트볼
대흥동 족발욘구소
디올
부츠,
따뜻한 ���폴라 니트 아이보리 또는 하얀색
삼겹에 물냉, 된찌에 밥 한공기
아재개그 금지
유니버셜 후에 삼겹살
“매일같이 옌이와 함께 부유한 삶을 누리는 미래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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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issuecollector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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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가즈아 ⑦] 사시사철 좋은 송시열 유적지
[대전가즈아 ⑦] 사시사철 좋은 송시열 유적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학문을 닦았던 곳. 우암의 시문집 목판인 ‘송자대전판’을 보관하는 장판각을 비롯해 유물관, 서원, 남간정사에는 선생의 삶과 신념이 담겨 있다.
특히 남간정사(대전시 유형문화재 제4호)는 연못가 암반 위에 세워져 대청마루 아래로 개울물이 흐른다. 유학자의 정신과 기개, 봄꽃과 여름 녹음,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을 만끽하고 싶다면 꼭 들려야 할 곳이다.
♣ 2019년은 대전 방문의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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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grida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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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동 부영아파트 거실 #디자인스튜디오그리다 #그리다_다산동부영아파트 #아파트인테리어 #아파트리모델링 #아파트스타그램 #집스타그램 #홈스타그램 #집꾸미기 #거실인테리어 #거실스타그램 #무문선인테리어 #무몰딩인테리어 #무몰딩인테리어 #무늬목가구 #한식마루 #대청마루 #무늬목 #남양주인테리어 #다산동인테리어 #다산신도시인테리어 #라인조명 #의정부인테리어 #간접조명 #다산동부영아파트(도농동 부영아파트에서) https://www.instagram.com/p/COYw-NnrVxA/?igshid=16hqjy2l64a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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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i1004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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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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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ckhoons-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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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여행 VLOG 2일차 맛집 탐방 - 분노주의 / 솔직 평가 (가을동화 아바이마을 신다신 대청마루 만석닭강정 서민갑부 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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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산 콩 100% 속초 #학사평순두부 마을에 #초당순두부 맛집은 #대청마루 맛 좋아요 #강원도가볼만한곳 #강원도 #강원도래요 #속초순두부맛집 #속초초당순두부 #윤중의맛멋 #강원phm 더보기 http://blog.daum.net/p7777877/698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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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ll5kim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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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할 것”
http://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theologry&wr_id=564&main_visual_page=gisang
존 레논의 이매진(John Lenon-Imagine) 
https://youtu.be/VOgFZfRVaww
답답함과 우울 참으로 아프고 답답한 한 해입니다. 개인적 일로 격정과 분노의 폭풍에 휘말려 가슴 답답하기도 했고, 자살 공화국으로서의 진면모를 보며 아파했고, 용산참사 및 경제위기 때문에 더욱 암울하게 느껴지는 올해입니다. 그러나 제게 가장 가슴 저리고 답답했던 것은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세 분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분들의 죽음이 올 한해를 너무도 깊은 우울로 채색하게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좀 더 밝고 희망적인 빛으로 장식해보려고 합니다. 엊그제 같은데 참 오래되었습니다. 이미 30년이 다 되어가니 말입니다. 1980년 12월 8일 제가 매주일 심방을 가기 위해 드나들었던 맨해튼의 센트럴 파크 근방 한 고급 아파트 앞에서 5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한 유명인을 쏜 후 태연스럽게 길에서 책을 읽는 미친 사내 앞에 쓰러져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존 레논(John Lennon)이었습니다.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넉 달이 지났습니다. 2009년 5월 23일 아침, 늦잠을 자던 저에게 아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습니다. 비몽사몽간 들은 “여보, 노무현이 죽었대”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저는 꿈인 줄 알았습니다. 자신의 저택 뒷산 바위에서 뛰어 내린 사람은 엊그제만 해도 티브이에서 보았던 전 대통령 노무현이었습니다. 굳이 두 사람의 죽음을 대비시킨 이유는 별것 아닙니다. 한 사람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노래를 쓰고 부른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그 노래를 가장 사랑해서 자신의 선거운동에 사용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존 레논이라는 사람 너무도 유명한 비틀즈의 멤버 중 한명이었던 존 레논. 음악과 외모에 관한한 폴 메카트니가 수장이고 잘생긴 훈남의 유명세에 관한한 조지 해리슨이 최고였다는데 미술학도였다는 것 외에 다른 멤버들에 비하여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존 레논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추모의 물결을 일렁이는 하는 것은 단지 그가 극적인 죽음을 맞이해서일까요? 존 레논은 1940년 10월 영국의 리버풀에서 가난한 아일랜드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이혼으로 이모 손에서 성장했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 생모의 죽음을 겪으며 술과 각성제에 빠져들던 레논은 1957년 폴 메카트니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록음악에 자신의 아픔을 담아내기 시작합니다. 잘 알다시피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가 합류하여 결성한 비틀즈는 그들의 발언대로 “예수보다 더 유명”할 정도로 한 시대를 지배했습니다. 이들의 노래뿐만 아니라 의상, 몸짓, 언어, 태도 이 모든 것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단지 음악만을 통해 대중들에게 주목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 특히 1968년의 거대한 물결에 비틀즈만이 비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비틀즈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베트남전 반대선언을 하게 됩니다. 반 베트남전, 흑인 인권운동, 체 게바라를 위시한 좌파투쟁, 일본학생운동 등 세계 각국에서 번졌던 젊은이들의 융기에 다른 멤버들에 비하여 정치적 성향이 강했던 존 레논은 직접적으로 응답합니다. 발표 후 신좌파에게 유약한 엘리트주의란 극렬한 비판을 받긴 하였지만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그의 응답은 바로 <Revolution>이란 곡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미 레논의 삶은 사회 속으로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 와중에 또 하나 존 레논의 생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온 사건은 오노 요코(Ono Yoco)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이미 결혼하여 아들까지 있었던 그는 전위 예술가였던 요코와 만나 부인 신시아와 아들을 버리고 1969년 요코와 결혼하게 됩니다. 존 레논-오노 요코 부부가 결혼생활을 통하여 대중에게 보여주었던 파격적인 퍼포먼스는 찬반의 극단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노 요코의 말처럼 이들은 우리에게 상식으로 굳어진 사고들을 반항아들처럼 과감하게 파괴하곤 했습니다. 1971년 뉴욕에 갔던 레논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반전 운동가들과 좌파 지식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이주합니다. 세계 최강대국인 거대한 미국이 한낱 가수와 그의 몇몇 친구들에 의하여 흔들릴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으나 이런 생각은 오판이었습니다. 제리 루빈(Jerry Rubin), 애비 호프만(Abbie Hoffman), 스튜 앨버트(Stew Albert), 바비 씰(Bobby Seale) 같은 맹렬한 운동가들과 연합한 레논은 좌파운동가 존 싱클레어(John Sinclair)의 구명운동에 뛰어 들어 그를 석방시키는데 일조를 하였습니다. 반전운동과 좌파운동에 최전방에 있던 존 레논은 대통령 닉슨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닉슨의 정적이었던 민주당 맥거번 지지운동도 역시 닉슨을 분노하게 하였습니다. 비록 닉슨이 재선에 성공하였지만 그를 대통령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존 레논이었습니다. 닉슨은 존 레논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했고 보지 말아야 할 문서들을 들쳐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후 오랫동안 가정에 칩거하며 아들을 키웠던 존 레논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려고 하는 시기에 그는 살해당했습니다. 레이건 행정부의 출범을 바로 앞둔 시점이었고 살해 동기나 수사는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존 레논 살해사건은 지금까지도 의구심에 쌓여있습니다. 최근 개봉된 <존 레논 컨피덴셜>에서 그의 동지이자 아내인 오노 요코의 말이 머리에 맴돕니다. “그들은 존을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존의 뜻은 지금도 살아있기 때문입니다.(They tried to kill John, but they couldn,t because his message is still alive)” 그럼 이제 그가 쓰고 불렀던 노래를 들으며 그의 메시지를 한 번 되새겨서 들어볼까 합니다. 천국이 없다는 상상? Imagine there’s no heaven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t's easy if you try  노력하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어요 No hell below us  땅 밑에 지옥도 없고 Above us only sky  머리 위엔 파란 하늘만 있겠지요.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Living for today  오늘을 위해 살고 있는 모습을 천국도 지옥도 없다고 말하고 오늘만을 위해 살라고 노래하는 존 레논을 기독교인들은 이단자나 서구문명의 반항아 정도로 비난할지 모릅니다. 아니면 내세와 관련된 신비스러운 지혜는 모른 채 오늘에만 집착해서 살았던 천박한 현실주의자라고 비난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존 레논이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사람의 생각에 없다고 상상하고 살아야할 천국과 지옥은 지극히 ‘의미화’된 천국, ‘교조화’된 천국과 지옥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천국과 지옥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설명합니다. 지극히 인간화된 천국의 모습,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고 희로애락을 초월한 기쁨만을 누리는 천국도 문제겠지만 더 문제는 천국과 지옥의 신학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도 부정적인 지배 말입니다. 가령 이런 역사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1095년 11월 프랑스 동부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교회의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에서 교황 우르반 2세는 십자군 참여를 선언했고 여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완전한 죄 사함을 선포했습니다. 이 선포로 인하여 성직자들은 일반대중들에게 십자군에 참가하는 것이 곧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역설하였고 이런 설교를 들은 수많은 군중들이 자발적으로 십자군에 참여해 이듬해 가을 투르크에게 전멸당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사건을 소위 민중 십자군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최근에는 전쟁은 그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되지 않고 악으로 규정되지만 중세사회에서는 전쟁에 참여하는 자체가 천국으로 가는 길로 여겨졌습니다. 결국 중세 대중들의 천국신학은 이웃 민족을 침범하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결과로 끝이 납니다. 아마도 존 레논이 노래한 천국과 지옥이 없는 사회는 내세를 완전히 부정하는 교리적인 선포가 아니라 이처럼 교조화된 천국신학이 배태한 반기독교적인 사회를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하늘나라에 쌓는 보물’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기 위하여 가진 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얼마나 많이 방기하고 무시하는지 모릅니다. 하늘나라의 보화를 쌓아 둔다는 신념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자연을 얼마나 많이 쑤셔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늘나라에 집착하고 있는 순간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아픈 현실은 수없이 무시되고 맙니다. 그래서 존 레논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Above us only sky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것은 단지 하늘 뿐 우리 머리 위엔 교조화된 천국이 아니라 그저 파란 하늘만이 있습니다. 천국이나 내세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으로 해석되어 의미화된 천국이 없다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보라는 뜻일 겁니다. 그렇습니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우리 욕심으로 그려진 천국보다 지하철 바로 옆 좌석에 앉은 피부가 다른 외국인 노동자, 점심을 거르는 우리 아이들, 인생의 겨울을 더 춥게 보내는 노령자들, 사회적인 차별에 숨어사는 소수자들, 그리고 사회적 차별로 인하여 고통 받는 장애우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일 겁니다. 그리고 레논은 ‘오늘’을 위해 살자고 권유합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한 십여 년 전 이야기입니다. 막 개척을 시작해서 동분서주하면서 공부까지 겸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참 선배 목사님이 제게 전화를 해서 여름에 가족나들이를 가자고 권하셨습니다. 늘 바쁜 저는 완곡하게 그 제안을 거절하였더니 선배 목사님 하시는 말씀이, “내가 살아보니까 인생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아지겠지… 이러고선 평생 속아 사는 것이 인생이야. 그냥 오늘을 즐겨.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미루지 말고 다 즐겨, 그게 현명한 거야” 대선배님의 말씀을 듣고 옳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새록새록 그 말씀이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예수께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마 6:34) 우리가 저 멀리 다가올 그 날의 영광을 대망하는 것이 오늘의 책임을 회피하거나 바로 이곳의 산재한 문제를 무책임하게 방기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 역시 바로 오늘 이곳의 현실에 우리가 집중해주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때를 묻는 제자에게 “너희가 알 바 아니다.”라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것(행 1: 7-8)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존 레논의 노래가 꿈꾸는 세상은 더욱 명백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며 모든 사람들이 단지 오늘의 문제해결과 자기 책임의 감당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 바로 그 모습이 레논이 노래한 세상의 모습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을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 바로 그 모습입니다. 아나키즘? Imagine there’s no countries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t isn’t hard to do  그 정도 상상이야 어려울게 없죠 Nothing to kill or die for  나라가 없다면 타인을 죽일 일도 없고 목숨 바칠 일도 없지요. And no religion too  종교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Living life in peace  평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을 며칠 전 공중파에서 방송된 광복절 특집 <카운트다운 히로시마>를 보며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저는 중학교 시절 독실한 신자이셨던 국어선생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선생님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우리들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들이 인해전술을 써서 총알이 모자라 중공군들에 대항하지 못했다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정작 제대로 된 총도 없이 총알을 몸으로 막아서는 곳에 끌려나와 총알받이로 개죽음을 당한 그들과 그들 부모들의 아픔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저는 그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을 보면서 내내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 일본은 이래도 저래도 미운 나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원폭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나쁜 짓 하다가 벌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폭탄 두 방에 21만 명의 귀한 생명들이 재로 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생명들이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고통 받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 그 책임은 일본에게도 미국에게도 있습니다. 그러나 존 레논의 노래처럼 국가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런 대규모의 학살은 없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왕을 원했습니다. 사무엘은 주께서 하신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연설합니다. 너희를 다스릴 왕의 권한은 이러하다.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다루는 일을 시키고, … 그는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으로 임명하기도 하고 왕의 밭을 갈게도 하고, 곡식을 거두어들이게도 하고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다. 그들은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유도 만들게 하고 요리도 시키고 빵도 굽게 할 것이다. … 그는 너희의 남종들과 여종들과 가장 뛰어난 젊은이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왕의 일을 시킬 것이다. …마침내 너희들까지 왕의 종이 될 것이다. 그때에야 너희가 스스로 택한 왕 때문에 울부짖을 터이지만 그 때에 주께서는 너희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것이다.(삼상 8:11-18) 우리는 습관적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도 단순한 원시부족에서 초구조적인 국가장치로 발전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는 고대국가탄생 이전에 살던 사람들이 이미 국가장치에 대한 폐해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국가장치의 탄생을 저지하는 메커니즘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무엘과 모세는 고대국가의 탄생이 갖는 위험성을 너무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탄생하면 차별과 억압이 더욱 구조화된다고 믿었습니다. 국가가 존립하는 한 국가와 국가 사이에 발생하는 필연적인 전쟁도 피할 수 없고 이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점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1) 그래서 레논은 노래합니다. 국가가 없다면 남을 죽일 일도 없고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할 필요도 없다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성자 중에 한 분인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는 사하라 사막에 살면서 단 한명의 모슬렘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나 그의 제자 카레토(Carlo Caretto)는 단지 모든 아랍인들을 섬겼을 뿐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지 않았습니다. 20여 년 전 복음청년이었던 저는 이 말을 듣고 참으로 의아했습니다만 감사하게도 곧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평화로운 원시마을에 선교사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람들을 개종시켰더니 그 후 평화로운 마을에 분쟁과 싸움이 생겼다는 일화 말입니다. 물론 분쟁의 원인은 전해들은 복음의 해석에 관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현재 국제사회를 보면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모슬렘과 기독교의 대립으로 전쟁과 테러가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비단 현재 뿐 아니라 인류역사는 종교 간의 전쟁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새뮤얼 헌팅턴의 예언에 따르면 미래도 그러할 것이라는 겁니다. 종교 간의 분쟁은 차치하고라도 같은 기독교 안에서 또 얼마나 많은 분쟁이 있어 왔습니까. 가톨릭과 신교의 대립은 고사하고 개신교 교단만 해도 같은 간판을 달고 있는 개신교 교단과 그 파벌들이 수백 개가 된다고 하니 놀람을 넘어서 두려움으로 다가 옵니다. 이럴 바에야, 이렇게 사람들이 종교를 이유로 서로 죽이고 싸울 바에야, 같은 종교 안에서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 서로 갈라지고 찢겨질 바에야, 오히려 종교를 다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수많은 종교와 종파를 허락하고, 그 중 한 두 종파를 은근히 지원하면서, 그들이 이기는 싸움을 즐기고 계시리라는 상상이야 말로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종교 없는 세상, 이젠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몽상가의 외로움과 꿈 You may say I’m a dreamer  당신은 나를 이상주의자 몽상가라고 할지 몰라요 But I’m not the only one  그러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 하길 바라요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그럼 세상이 하나 되어 살 수 있겠죠 저는 아주 어린 시절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님 댁에 가서 대청마루 뒤 창문에 매직으로 “세계의 태양, 이충범”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사춘기 때는 그렇게 써 놓은 것이 부끄러워 지우려고 했는데 할머님의 고집스러운 사수(?)로 인해 유성매직으로 써 놓은 그 낙서는 제 나이 서른이 되도록 자리보존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드니 그것을 지우지 못하게 하신 할머님의 마음이 읽혀집니다. 그 낙서를 한 시점에 저는 어린이용 위인전을 통해 앨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zer)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위인전의 제목은 『아프리카 별 슈바이처 박사』였습니다. 그 위인전의 감동이 초등학교 2학년인 저를 사로잡았고 마음속에 나는 아프리카의 별이 아니라 세계의 태양이 되겠다는 불량한(?) 생각과 창문에 낙서를 하는 만행(?)을 저지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쉽게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다 이론적인 이야기고 원칙적인 이야기다, 현실은 그렇지 않고 이상적인 생각만으로는 현실을 살 수 없다고. 어쩌다 보니 어릴 때 순수한 꿈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세상이 아니라 이상주의자가 비난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완벽하게 이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공자와 마르크스의 이상주의는 단 한 번도 이 땅에 완벽하게 실현되지 못하였습니다. 마르크스 뿐 아니라 아담 스미스(Adam Smith)나 하이에크(F. Hayek)나 폴라니(K. Polani) 같은 우파 경제학자들이 그려낸 세상의 지도들도 단 한 번도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서 실천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들 역시 몽상가들인 셈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꿈들을 잃어 버렸을 때 이 세상은 이상향으로부터 자꾸만 더 멀어져 갔던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꿈을 미래의 설계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꿈이 없다면 우리는 미래가 없는 죽음으로 달려가는 급행열차에 탄 자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꿈이 있다면 우리는 영원 속에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며 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 레논의 말처럼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몽상가들의 생각은 마치 신종 바이러스처럼 금방 증식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어떤 네티즌이 올린 한 마디의 댓글이 뇌리에 박혀버렸습니다. “독재자가 죽으면 독재는 끝이 나지만 순교자가 죽으면 그 때부터 죽은 자의 정치가 시작된다.” 김호기 교수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이제 노무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가 되었다.”라고.2)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도 몽상가셨고 오지도 않을 것 같은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선포한 이상주의자였습니다. 2천 년 전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시는 분들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부르짖은 예수님의 행위가 참으로 허무맹랑한 행위였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비록 십자가에서 갖은 치욕을 다 견디며 죽었지만 그의 정치는 죽음 이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작은 예수들은 온 땅덩어리에 가득 차도록 증식했습니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작은 예수들이 온 지구별 방방곡곡을 누비며 예수님의 가치의 실현을 위하여 자신을 바쳐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몽상가들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존 레논의 노래처럼 “당신도 언젠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은 몽상가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꿈도 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삶을 처세술로 채워가며 사는, 아니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의 지도자들은 꿈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꿈으로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꿈은 희망이자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공동체 Imagine no possessions  자기 것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I wonder if you can  그럴 수 있을까요? No need for greed or hunger  그렇게만 된다면 욕심 낼 일도, 굶주림도 없겠죠 A brotherhood of man  모두 형제처럼 살게 되겠죠 Imagine all the people  상상해 보세요. 모든 사람들이 Sharing all the world  이 세상을 함께 나누는 모습을 존 레논은 소유가 없는 세상을 가정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모든 것을 나누는 그야말로 이상향의 세상을 노래합니다. 어디 가능이나 하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존 레논은 모세와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꿈 꿨던 세상은 우리가 친숙하게 접하였던 사도행전의 그리스도 공동체(행 2: 43-47)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만나를 많이 거둔 사람도 적게 거둔 사람도 남거나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절대 만나를 남겨 두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만나를 몰래 남겨둔 사람들에게 몹시 화를 냅니다.(출 16:17-21) 모세는 확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알았던 것입니다. 종에서 탈출한 히브리들이 광야생활이 지속되면서 다시 그들 사이에 계급과 차별이 생겨나고 있음을 모세는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계급발생은 결국 재화의 축적을 통한 권력생산이 원인이었다고 진단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보기엔 이것은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던 것이었습니다. 존 레논이 상상하자고 하는 세상은 바로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살던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도, 만나도, 메추리도 집에 쌓아두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의 것만을 소비해야만 하기 때문에 욕심을 낼 수도 없는 환경, 그래서 자신이 먹고 마시고 남은 것이 있다면 모자란 그 누구에게 베풀어야만 하는 그런 환경 말입니다. 아마 존 레논이 최종적으로 꿈꾸는 세상은 이런 이상향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며 저는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애국가를 들을 때도, 우리 축구팀이 골을 넣고 골 세리머니를 할 때도, 우리 야구팀이 일본을 이기고 환호할 때도, 비빔밥을 대할 때도, 그리고 저 시리도록 아름다운 산을 바라볼 때도 가끔 코가 찡해집니다. 그러나 제 길지 않은 일생에서 깊이 울어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예수의 외로움, 그의 인간적인 고뇌, 그리고 그의 결연한 삶에 대한 포기, 저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읽으며 한없이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또 나의 가�� 친한 친구이자 선배이자 스승이셨던 내 아버지 때문에 저는 많이 웁니다. 그런데 올해엔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세 분 때문에 서럽게 세 번이나 울었습니다. 아마도 저는 이 분들 때문이 아니라 저의 존재기반과 희망이 사라져감이 서러워 울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존 레논의 노래를 듣고 읽으며 또 다시 희망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지도 않고 또 그런 세상을 꿈꾼다고 해서 외롭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혹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합니다. 포퓰리즘이라고요? 저는 오히려 민중들의 외침을 한낮 조작된 자기 피알(PR)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기득권에 대하여 웃음이 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기득권들은 문제의 핵심을 전혀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포퓰리즘이면 또 어떻습니까? 그로 인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더 밝아온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오히려 기득권을 위한 정책만을 내놓으면서 시장골목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농촌 트랙터 몰고, 장애우 어린이 안으면서도 사진 찍기에 골몰하는 것이 포퓰리즘이 아닐까요. 분명한 것은 존 레논의 이 노래를 자신의 선거캠페인용 음악으로 사용했던 전임 대통령도 분명히 레논과 비슷한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희망을 가지고 예수께서 이루실 그 날이 속히 오리라(계 22:20) 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충범 l 교수는 감리교회를 섬기는 목사로 연세대학교(B.A.)와 감리교 신학대학(B.TH.)을 거처 미국 드류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석사(M. Div.)를, 대학원에서 중세신비주의 연구로 철학박사(Ph.D.)를 받았다. 현재 협성대학교 역사신학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세미시문화사, 문화신학, 일상신비주의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눙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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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forlovexyz-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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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복아]지나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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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설복아]지나가는 것들
  * 웹툰 ㄱ ㅏ담항설 기반 패러디입니다.
* 한설x복아 요소 있습니다.
* 기니님 생일 축전.
  새벽의 공기는 청명했다.
잠에서 깬 새 몇 마리가 날갯짓을 하며 허공으로 비상했다. 이윽고 산등성이로 노오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풀잎 위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이슬이 제각기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그리고 그 수풀 사이로, 거침없는 맨발이 걸어나가고 있었다. 한 걸음마다 발가락에 채인 물방울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무지개를 그렸다.
“복아는 파란 색 꽃을 좋아해.”
티 없이 맑은 목소리로 흥얼거리며, 흰 머리의 청년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주의 깊은 시선이 쓰러진 고목나무 언저리를 더듬었다. 이미 그의 손에는 갓 따다 엮은 들꽃 줄기들이 한 움큼이나 들려있었다. 한설은 이 꽃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을 가져다 보여주면 다정한 어조로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의 그런 면을 더없이 사랑했다.
낮게 흐르는 계곡을 건너뛰자 익숙한 바위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개를 한껏 젖혀 바라보아도 꼭대기를 눈에 담기 쉽지 않은, 거대한 크기의 바위였다. 처음 이 곳에 터를 잡았을 적에 두 손을 모아 깊게 머리를 숙이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왜 그렇게 해? 곧바로 물어오는 한설에게, 복아는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먼저 이곳에 살던 분들께 인사를 드리는거야. 신세 지게 되었습니다, 나쁜 짓 하지 않고 조용하게 살 터이니 부디 노하지 말아 주세요, 이렇게. 왜 움직이지도 않는 바위에게 그런 식으로 비는 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한설은 순순히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후 몇 번이고 이 바위의 옆을 지날 때마다 한설은 복아의 말을 떠올리며 인사를 올렸다.
“나 한설인데 또 왔어. 복아가 건강하게 해주세요.”
매일 아침마다 반복해 온 말이 다시금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간다.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갈댓잎을 흔들고 바위를 스쳤다. 공기의 흐름이 빈 구멍을 채워 넣으며 깊숙한 산울림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설은 만족한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복아만 있으면 다 좋아. 나는 단단하고 강하니까 괜찮아.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가슴에 나무 화살 하나만 잘못 맞아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피부는 물렁물렁하고, 입에 뭔가를 넣어 삼키지 않으면 얼마 가지 못해 쓰러져. 그래서 한설은 복아가 건강하기만을 빌어왔다.
사람이 천 일을 간절히 기도하면 천지신명이 감동하여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데……, 바위가 기도해도 들어주는걸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한설은 잠시 그 자리에 우뚝 서서 고민에 빠졌으나 아쉽게도 그 곳에는 질문에 답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 빨리 돌아가서 물어봐야지. 복아는 똑똑하니까 알고 있을거야. 이끼와 토끼풀이 폭신하게 덮은 자리를 밟는 걸음이 가볍다. 달을 스치우는 구름처럼 가벼운 걸음에, 손에 쥐인 꽃들도 일제히 허리를 흔들거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한 폭의 그림같은 두메 마을이 있다. 사방이 울창한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연고 없는 객들은 우연히 찾아들 수도 없는 곳. 나름대로 방앗간이나, 푸줏간, 대장간 등의 필수적인 시설들은 존재했지만, 다 합쳐봐야 60가구도 되지 않을 이 작은 마을이 복아와 한설이의 집이었다.
“거, 장사 청년! 잠시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주게!”
초입에 들어서기도 전에 벌써 한설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한설은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희게 새고 등허리는 늙수구레한 노인이 팔을 흔들고 있었다. 나이 든 분들께는 정중하게 대해야 해, 알았지? 복아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한설은 그에게 다가갔다.
“왜 불러?”
“어이구, 말투는 여전하구먼. 딴 건 필요없고 거기 창고 밖에 있는 쌀가마니 두 개만 안으로 날라다 줄 수 있겠나? 이 나이 먹고 다섯 개나 날랐더니 뼈가 다 우두둑거리네 그려.”
전신이 돌덩어리인 한설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손에 하나씩 들고 ��털처럼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 노인이 손뼉을 치며 감탄했다. 쌀 뜯어지지 않게 조심해서 옮기라는 분부대로 조심스레 가마니를 옮겼다. 고맙다며 노인이 삶은 감자 두개를 건네었다. 한설은 그것을 슥슥 닦아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복아는 감자 좋아하니까, 있다가 가져다 줘야지. 한설은 감자를 복스럽게 베어 물던 복아를 기억해냈다. 물론 그는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아 뭐든 투정 않고 잘 먹지만 좋아하는 걸 먹을 때엔 눈에 띄게 안색이 바뀐다. 다른 건 몰라도 복아에 관해서만은 예민한 감각을 지닌 한설이었다. 뭔가를 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역시, 이 마을엔 좋은 사람들만 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장사는 늙지도 않나보군. 이 마을에 자네가 온 지도 십 년이 넘었는데, 하나도 바뀐 게 없이 그대로야.”
잠시 내려놓았던 들꽃더미를 주워들던 한설이 갑작스레 들린 노인의 말에 시선을 던졌다. 마당 구석에 서있던 노인이 허리를 젖히며 크게 숨을 내뱉었다. 아이고오, 허리야, 하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설은 그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하다가 문득 질문했다.
“나이가 들면 뼈가 아파?”
“두말 하면 잔소리지. 장사인 자넨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반 백살만 되어도 뼈마디가 쑤시지.”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해?”
“의술사한테 가거나, 도가니를 많이 먹거나……골짜기 깊숙한 곳에 좋은 약초 뿌리를 캐서 달여먹으면 좋다던데, 구할 수도 없고, 진짜인지도 모르니 그냥 이대로 살아야지.”
“약초? 어떻게 생긴 풀이래?”
갑자기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한설에게 의아한 표정을 짓던 노인은, 허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소문만 얼핏 들었지만, 높은 바위 꼭대기에 자란다고 하더군. 불타는 황금색 꽃잎과 홍매색 뿌리를 가졌다고들 하는데 한번도 본 적이 없으이.”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듯 바닥을 내려다보던 한설이 느닷없이 결의가 깃든 얼굴을 빳빳하게 세웠다.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었다. 괜히 이 철 없는 사내가 사고나 치지 않을까,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하고 탓하던 노인은 그러나 한설이 장사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시름을 덜었다. 장사는 찌를듯한 바위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한설은 복아에게 배웠던 대로 복부에 손을 얹고 꾸벅 허리 숙여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곧장, 복아와 자신이 살고 있는 초가집으로 향했다.
마을의 우물 근처에 버드나무가 무성한 공터가 있었다. 그 오른편에 자리한 집이 바로 그들의 집이었다. 크기는 아담했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마을 아낙들도 와서 구경하고 ��를 내둘렀는데, 이는 물론 복아의 솜씨였다. 나름대로 깔끔한 마루도 있는 집이라, 뙤양볕이 내리��는 여름에는 단 둘이 그 위에 드러누워 오수에 빠져들곤 하지. 즐거운 기억들을 떠올리던 한설은 잘 닦인 마루의 한 구석에 꽃들을 내려놓았다.
분명 복아는 지금 시간에 마을 반대편에 자리한 작은 서당에서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터였다. 이 곳에 정착하자마자 복아가 맡게 된 일자리였다.
한설은 ‘글’이라는 것을 잘 알진 못했다. 그래도 복아가 글 읽는 소리만큼은 너무나 낭랑해서, 그는 할 일이 없을 때면 언제나 창호문 앞에 앉아 복아의 낭독 소리를 감상하곤 했다. 오늘도 꽃을 들고 가서 한 아름 안겨준 후에 그렇게 시간을 보내려 했건만. 허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높은 바위 절벽 위에만 자란다는 약초를 찾아 헤매려면 한두시진으로는 턱도 없었다. 한설은 노인이 설명해준 약초의 외양을 떠올리곤 의지를 다졌다.
사실, 이렇다 하게 쑤실 뼈마디 자체가 없는 한설로서는 흔히 사람들이 하는 ‘뼈가 쑤신다’, ‘뇌가 울린다’등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복아와 관련된 것이라면 한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인간은 약하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늙고 노쇠해져간다. 바위에게 100년은 고작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지나갈 순식간이지만 인간에게 그것은 천수를 누린 나이라고 불리운다,
죽음이 뭘까? 아픈 것이 뭘까? 한설은 자신이 알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이상한 것 투성이었다.
그렇다고 할 지라도.
“나는 복아가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복아가 행복하면 나도 좋아. 그러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거야.”
알지 못해도 된다. 나이를 먹는 고통을, 굳이 공감하고 함께 아파할 수 없어도 괜찮았다.
대신에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것이다.
*
복아는 옷을 여미고 길을 걸었다. 슬슬 기온이 떨어지는 것이 곧 가을에 접어들 모양이었다. 언제부턴가 이 정도 한기에도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정신도 또렷했고 특별히 아픈 구석도 없었지만, 확실히 시간의 흐름이 전보다 생생하게 와 닿았다. 하루 종일 목청내어 글을 가르치느라 얼얼한 목을 문질렀다. 살짝 꺾자 심상치 않은 뚜둑 소리가 났다. 히끅. 잠시 눈만 동그랗게 떴던 복아는 조심스레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설이는 왜 오늘 안 왔을까? 어디 가서 일이라도 도와주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보통 이 시간쯤이면 데리러 서당까지 오는데. 먼저 집에 들어와 있으려나. 갖가지 생각을 하며 그는 싸리문을 조심스레 열어 젖혔다.
“한설아?”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작은 마당이다. 한설이가 좋아하던 암탉과 병아리들이 꼬꼬 소리와 함께 발치에 따라붙었다. 그러나 한설이는 뵈지 않는다. 그저 마른 풀잎만 바람에 날릴 뿐, 한설의 흔적은 눈 씻고 뒤져봐도 보이지가 않았다. 오직, 대청마루 구석에 쌓인 파란 들꽃만이 그��� 들렀다 갔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복아는 덜컥 겁이 났다. 대관절 이게 무슨 일인지. 아무리 쉽게 다칠 염려 없는 돌덩이라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어디 가서 놀다가 떨어져서 부서졌나? 관아에 끌려갔나? 아이고. 두야. 복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다가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단 해가 지고 있으니, 마을 밖으로라도 나가봐야 할 것 같았다. 완전히 캄캄해지면 더 찾기 힘들어진다. 사정이 닿는 대로 가까운 곳이라도 한 바퀴 돌아야지 마음이 편할 것이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봇짐에 붓을 챙겨넣었다. 등불도 하나 챙겨들고 그는 문을 열고 나왔다. 끼익, 텅, 하고 문이 닫혔다. 마을 입구까지 쭈욱 뻗은 돌담길을 따라 복아는 잰걸음을 옮겼다. 대체 어디로 가서 또 속을 썩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함께 한 세월이 스무 해가 넘어갔지만 그의 눈에 한설은 여전히 챙겨야 할 존재였다.
간간히 마주친 사람들에게 한설의 행방을 물었지만 다들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해가 지기도 전에 잠자리에 드는 주민들이 많은 터라, 그나마도 얼마 되지 않는 수였다. 복아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동구 밖까지 걸어 나갔다. 멧돼지, 노루와 같은 야생동물은 있어도 다행히 호랑이는 살지 않는 숲이다. 그렇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혼자 숲길을 걷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한설을 처음 만난 이후, 거의 모든 곳에 그가 동행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한설이의 존재가 크게 다가왔다.
얼마나 산길을 걸어 올라갔을까,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기척에 그는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등불을 휘휘 들어 사방을 밝혔지만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냥 기분 탓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발길을 옮기려던 그는, 길게 뻗은 산길 저 멀리 시선을 주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기에.
길죽하고 희여멀건한 형체가 괴상한 몸놀림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혹시 사람인가 생각해보았지만, 강시처럼 쿵, 쿵, 뛰어오는 것이, 인간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복아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봇짐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대로 버티고 서서 싸움 자세를 잡았다. 힘은 이전보다 떨어졌겠지만 그동안 갈고 닦은 기술로 승부하면 된다. 귀신이든, 도깨비든……호락호락하게 당할 자신이 아니었다. 이래봬도 나, 험하게 자랐으니까.
주먹을 세게 말아쥐고 자세를 유지하며 얼마나 지났을까. 점차 가까워지던 흰 그림자가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눈, 코, 입, 그리고, 진한 반달모양 눈썹?
그 순간, 복아는 온 몸의 긴장이 탁 풀리는 것을 느끼며 익숙한 이름을 외쳤다.
“한설아?!”
“어! 복아다! 복아야!”
한 다리로 쿵쿵 바닥을 찍으며 뛰어오던 한설이 명랑하게 외쳤다. 와아아, 복아야! 너무 보고 싶었어! 반가워하기도 잠시, 복아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한설의 왼손에 들린 게 무엇인지 파��한 것이다.
“그런데 나, 다리가 부러졌어.”
어메! 아이고오! 괴상한 감탄사 두개를 연이어 내지른 복아는 서둘러 봇짐을 풀어 붓을 들었다. 다리 한 짝을 들고 콩콩 뛰어 돌아오다니, 남이 보면 경기하면서 뒤로 넘어갈 광경이다. 부디 심신 미약한 사람들 그 누구도 이 모습을 보지 못했기를 간절히 빌며, 그는 먹물을 붓 끝에 가득 찍었다.
이 마을의 종이는 이전 자신이 살던 마을의 것보다는 한참 질이 떨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복아의 필력은 상당히 발전했고, 그저 그런 종이에 붓을 놀려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이젠 너무 익숙해진 문구를 일필휘지로 휘갈긴 그는 조심스럽게 종이를 접어 한설의 환부에 감았다. 잠시 은은한 빛이 감돈 이후, 종이가 떨어져나간 자리엔 한 줄의 깨진 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한설은 새롭게 붙은 다리를 확인하듯 총총 뛰더니 해맑은 표정으로 복아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 복아야. 마냥 어린 아이처럼 안기는 이 돌덩어리에게, 화를 내지도 못한 복아는 결국 한숨만 쉬었다. 글을 안 배우고 말썽만 피는 아이들에겐 엄하게 혼을 내던 그였지만ㅡ사실 복아는 마을에서 엄격한 호랑이 훈장으로 통했다ㅡ한설이의 앞에선 이리도 물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무얼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다리는 또 어디서 깨부순 거야?”
“으응. 이거.”
한설이 품 속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집어 건넸다. 이게 뭐지? 복아는 등불을 가까이 했고, 이내 황금색 꽃망울을 보았다.
“꽃이잖아? 이걸 따느라 다친거니? 잘못해서 다리 두 개 다 부서졌으면 어쩔 뻔 했어.”
“복아 주려고 갖고 왔어.”
그게 무슨 말이야. 복아는 멈칫하며 자신의 손에 쥐여진 풀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손톱만한 꽃과 실처럼 가는 줄기 아래에 범상치 않은 모양의 뿌리가 보였다. 산삼같이 생긴 홍매색 뿌리.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아픈 몸에는 즉효약이라는 귀한 약재, ‘금복삼’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을만큼 높고 위험한 곳에만 자라는 풀이 왜 ……복��의 시선이 흔들렸다.
“마을에 할아버지가 가르쳐주셨는데 인간은 나이가 먹으면 뼈가 아프다며. 너도 비 올 때마다 무릎 아프다고 했잖아? 이거 먹으면 안 아프대, 복아야.”
어둠 속에서도 주먹만한 등불은 빛을 뿌렸다. 그 빛에 비추어,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는 얼굴이 환하게 웃음 지었다. 말문이 막힌 복아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멈춰있자 한설은 그의 손을 덥썩 잡아 끌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달여서 먹자. 응? 복아는 순순히 몇 발짝 이끌려 가다가 자신의 의지로 멈춰섰다. 한설이 왜 그러냐는 듯 뒤돌아보았다.
복아는,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왜 그러지? 한설이 다가와 복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디 또 아파? 내가 고쳐줄게. 뭐든 구해다 줄 수 있어.
복아는 그러나 도리질을 쳤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사이로, 먹먹하게 막힌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나는. 한설아. 네 말대로 인간이야. 아직은 괜찮지만 언제 죽어버릴지도 몰라. 그러니까…….”
말꼬리를 길게 흐리면서, 복아는 문득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았다.
나의 찬란하던 봄과, 태양같은 여름과, 빛나는 가을에는 늘 네가 함께했다.
언젠가는 겨울의 문턱이 성큼 앞으로 다가설 테지.
살아있는 존재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혹한의 종착역에서, 나는 너를 결국 떠나야만 할 텐데. 그날까지 함께 있는 것이 과연 널 위하는 일일까.
복아는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자신은 한설의 맹목적인 애정을 당연하게 받아온 것인지 몰랐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로 옳은 일인지, 갑작스레 불안해진 것이었다.
“난 늙고 병들어 버릴거야. 너랑은 다르게. 피부도 다 주름이 져버릴거고, 검버섯도 올라오겠지. 나중엔 몸도 가누지 못할텐데.”
손 안에 쥐여진 한 포기 꽃이, 천근의 무게로 그를 짓눌렀다.
세월을 따라 늙어간다. 시간이라는 모래알은 끊임없이 손가락 틈으로 흘러 내린다. 마지막 모래알이 반짝 빛을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복아는 자신의 생이 다할 것을 알았다.
늙어간다는 과정은 마냥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그것이 두려웠다.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 한설에게 쇠약해져가는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지 않을까? 봄날처럼 아름다웠던 기억으로만 남아도 족할텐데, 이 마른 낙엽같은 몸뚱이가 혹여나 젊은 시절의 찬란을 바래게 하는 것은 아닐까.
털어놓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복아는 입술만 꾹 물었다. 어둠 속의 등불이 밤바람에 흔들렸다. 갑자기 그 불빛에 비친 자신의 손가락이 너무나 앙상해보여서, 복아는 다시금 속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더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전에 단단한 손이 그의 손을 쥐어왔다. 복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복아야. 그래도 너는 내가 처음 만났던 복아잖아.”
언젠가의 그날처럼. 봄꽃이 활짝 개화하던 그날, 너를 속였음을 자책하며 울음을 터뜨리던 내 앞에서, ‘네가 깨어나서 기뻤다’고 활짝 웃어주던 그 얼굴 그대로. 한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괜찮아, 하는 속삭임이 들렸다.
봄과 여름이 가고, 낙엽이 모조리 떨어진다고 해도, 너가 복아라는 사실이 변하진 않잖아.
“네가 처음의 모습을 잃어버려도 괜찮아, 나에게 넌 언제나 봄의 중턱에 머물러 있으니까.”
거짓을 말하지 못하는 한설은 있는 그대로의 진심만을 털어놓았다. 인간이 아닌 그에게 있어 외모의 변화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나무에 새순이 돋고, 자라고, 떨어져 벌거숭이가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이다. 그것이 어째서 흉하고 보기 싫은 것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괜찮았다.
“이런 걸로 울면 어떡해. 어서 집에 가야지.”
자신도 모르게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설이 옷소매로 닦아냈다. 아까까지 혼란스럽게 뒤틀리던 마음이 흔적도 없이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 언제나 한결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부신 봄날에 의해, 복아의 가을 또한 찬란한 색채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고마워, 라는 말은 사랑해, 라는 말로 바뀌어 나온다. 한설이 눈꼬리를 길게 휘며 예쁜 웃음을 지었다. 나도 사랑해. 사랑해, 복아야.
“이제 돌아가자.”
으응. 고개를 끄덕인 복아가 봇짐을 짊어졌다. 한설은 등잔을 나뭇가지 끝에 걸고 높이 치켜들었다.
어둡고 음침해보이던 숲길이 밝디 밝은 불빛 아래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드러운 밤새의 울음을 밟으며 두 사람의 인영은 조금씩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마악 초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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