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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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sseh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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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생활 // company culture
공채(公採) 공개적인 방법으로 직원을 뽑음, open recruitment 올 하반기에는 대기업의 신입 사원 공채가 있다.
다양성(多樣性) [다양썽] 특성이 여러 가지로 많음, diversity 오랜 이민 역사를 지닌 미국은 인종의 다양성을 가진 나라다.
충돌(衝突) 서로 부딪치거나 대립함, collision 부장님과 과장님은 성격이 너무 달라서 회의 때마다 의견 충돌이 심하다.
반목(反目)하다 [반모카다] 서로 미워해서 사이가 좋지 않다. to hate each other, to be at odds 감독과 선수들이 의견 차이로 반목하다가 결국 감독이 팀을 그만두 었다.
조화(調和) 서로 잘 어울림, harmony, balance 그의 얼굴과 옷차림, 목소리는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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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2alpaca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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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온은 여전히 봉투를 좋아한다. 저 종이봉투 찢어질때까지 들락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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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게 먹고 햇빛쬐는 뮤온 보면 이게 행복이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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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출근 길은 에캐 비행기 못타서 급하게 웨젯 다시 북해서 시큐리티 나갔다 들어옴. 저 라벤더 마차 라떼는 다들 먹길래 나도 따라 사봤는데 달달하니 맛있다😋. 간만에 웨젯, 그것도 날개 좌석 타서 날개 구경 실컷 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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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몬드 집 앞 꽃나무에도 꽃이 만개하고 시청 앞 튤립도 예쁘다. 요즘 리치몬드는 어디에나 꽃이 활짝피어 어딜가나 다 예쁘다. 🌹🌸
2주 앞으로 다가온 나의 작고 소중한 휴가. 싱가포르로 방향을 틀 듯하다. 싱가포르는 덥고 습하대서 전혀 고려치 않았는데 마침 내 휴가 기간에 싱가포르 심포니가 브람스 레퀴엠을 연주한대서 “어머 이건 가야해” 모드로 뭔가에 홀린 듯 일단 콘서트 표를 지른 상태. 싱가포르 알면 알수록굉장히 흥미로운 나라다. 나는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본 거 말고 아는 게 없는데😅 리콴유 총리 시절도 흥미롭고 이 나라가 지금의 아시아 부국으로 떠오르기까지 이야기를 듣고있자면 진짜 흥미진진. 만다린 문화권+ 영어 문화권이 섞인 나라라니! 내가 지금 지내고 있는 리치몬드랑 비슷 한 것 같기도(리치몬드는 칸토니즈가 더 우세). 뭔가 직장만 해결 되었다면 난 여기서 적�� 해 살았을 듯한 ��낌이 뽝!! 오는데 이건 뭐 다 가봐야 아는 거지 ㅎㅎ 교토 가려고 계획짜다가 급 싱가프로르로 선회했는데 아주 기대가 된다. 크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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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jetorasakana · 6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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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다 모모치 해변에서 원없이 보고 왔다. 봐도봐도 좋다
일본은 나에게 애증의 나라다 더 나이를 먹고 여유가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어 하진 않았을까 라고 다시 살까 할 정도로 잠깐 고민도 했다 한국에 아쉬운 게 없는 지 모든 이를 두고 와도 되는 지 라며
도망치고 외면해 온 나이지만, 가끔은 이렇게나 볼품없는 나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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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yup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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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봐도 헐벗은 옷을 입고선 성적인 뉘앙스를 노골적으로 풍기면서 춤을 춰대는 영상은 초등학생도 아무 제한 없이 볼 수 있게 하고, 심지어 그런 사람을 인플루언서/크리에이터라고 띄워주지만, 멀쩡한 성인들에게 야동은 죽어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상한 나라다. 도대체 누구를 또는 무엇을 위한 도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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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35824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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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까지 파고들었다…약 안듣는
치명적 ‘곰팡이 돌연변이’
中서 등장
毒舌🗣📢
참 더럽고
지저분한 나라다.🤬🤢
도로에
똥누고 전봇대
코딱지 번질 거리고
군데 군데 지릉내 나는 국가
시진핑이 신네 난다고 늘 불평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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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nch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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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을 봤다. 일본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에도 이런 인재들이 넘쳐나는 걸 보면 한국은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콘텐츠의 나라.
그리고 슬램덩크에서도, 스문단에서도 여과없이 표현됐던 일본의 여름.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을 가진 나라가 또 있을까. 자연재해가 많아 항상 신과 재해를 연관지은 소재가 많은 일본이다. 만약 신이 정말 있다면 일본에게 여름을 준 대가로 재앙을 떠넘긴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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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shikkim · 18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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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공과 실패, 미래의 자리는?(2377)
한국은 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모로 특이한 나라다. 산업화, 민주화에서 모두 세계사에 전례 없는 압축적 발전을 이뤄냈다. 지금 한국의 노장층 세대는 최빈국, 중진국, 선진국의 삶을 모두 살아본 세계 유일의 존재들이다. 해방 후 분단, 전쟁, 혁명, 재건, 산업화, 민주화, 촛불시위, 탄핵의 길을 질주해 오며 한때 재정의 절반 이상을 원조에 의존했던 나라가 이제 제조업 5대 강국, AI 6대 강국, G10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초고속 질주, 발전이었으며 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기구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성공신화를 써왔다. 대학진학률 세계 1위로 국민 개개인들이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곳곳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성공의 높이만큼 실패의 구렁도 깊다. 초저출산율, 초고속 인구고령화, 빈부격차, 갈등사회, 분노사회, 불신사회…. 세계적·세기적 성공을 이룬 대한민국은 지금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의 무게도 가히 세계적·세기적으로 심각하다. 환경오염, 탄소중립이 지구촌의 과제가 되어있는 지금 1인당 탄소배출량 세계 2위,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 세계 3위에 올라있다. 사회적 갈등과 불신은 OECD 최고수준이며, 출산율은 일찍이 인류사에 없던 최저수준이다. 초고령화 국가인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는 더 빠르다. 수도권 인구집중률, 자살률 역시 OECD 최고다.
한국은 또한 지금 일고 있는 세계질서 변화의 풍랑 한가운데에 놓여있다. 미·중 갈등 심화와 신냉전시대의 대두, 다자주의 질서의 퇴조는 어느 나라보다 우리에게 큰 위협을 주고 있다. 인류를 공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가 미, 중,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국들에 집중되어 있으며, 북한의 핵개발은 이 지역의 연쇄적 핵무장화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제국주의와 냉전의 유��인 남북분단과 대립, 극렬한 상호비방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으며, 휴전선은 세계에서 중화기가 가장 집중된 지역이다. 한국의 오늘이 있게 한 자유주의 무역질서, 생산공급망의 글로벌화, 중국의 고속성장은 이제 퇴조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가 민주화와 시장경제의 길을 걸어오며 번영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막강한 동맹의 후원이 있었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문제를 돌보기에도 힘겨운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의 청교도적 시민정신, 국제평화와 질서유지 능력은 쇠퇴하고, 빈부격차 및 이민으로 인한 갈등, 월가와 산업의 이해관계가 미국정치와 대외정책을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동맹을 줄 세우며 양극 대립체제로 몰아가는 세계질서는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이 심각하게 앓고 있는 이 병들은 우리만의 병은 아니다. 여기에 우리의 기회와 희망이 있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게 앓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맞서서 스스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면 우리는 자연히 오늘날 세계가 당면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며 세계의 중심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명의 길을 열어갈 수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의 여러 상황을 보면 결코 낙관적이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인들이 보여준 성공유전자를 보면 불가능하다고만 할 수 없다.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는 이를 해낼 수 있는 좋은 입지에 서 있기도 하다. 동양의 유교 전통을 가진 나라 중 한국처럼 서양식 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도, 한국만큼 서양종교인 기독교도가 많고, 유교·불교·기독교가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해외 기독교 ���교활동을 많이 하는 나라도 없다. 우리가 알건 모르건 우리는 동서양 문화의 융합으로 새로운 문명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입지에 놓여있다. K컬처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문화가 아니라 글로벌 문화가 농축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이 이 도전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뛰어넘어야 할 높은 장애물들이 많다. 비방과 배타의 문화에서 포용과 협력의 문화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의 성공은 국민들이 과소비보다 절제를 늘려가야 거둘 수 있다. 민족주의보다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보고 그 역할에 무게를 두어야 가능할 수 있다. 국가 리더십의 시계가 지금보다 훨씬 길어져야 하며 국제정세 통찰력, 타협과 갈등조정 능력, 정밀한 추진력을 갖춘 지도자가 부상해 국민들의 에너지와 역량을 결집해 나가야 한다. 당면한 과제들을 일관성 있게 추진, 해결해 나가야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헌을 통한 국가지배구조 개편, 국가시스템 운영방식 혁신, 그리고 정치의 세대교체가 일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갈등과 정체에서 화해와 타협, 디지털시대의 리더십으로 넘어가야 우리가 당면한 심각한 도전을 극복하고 미래세계의 중심적 역할을 꾀해 볼 수 있다. 10/26/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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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collectiongiver · 2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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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최초로 한방에 23억을 벌어들인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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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ent-archive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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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출근하다 문득 깨달았다. 집 밖을 나서기 전에 미세먼지를 확인하지 않게된지 꽤 오래됐다는 걸. 미세먼지만 없어도 한국은 사람 살기에 꽤 괜찮은 나라다. / 강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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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han2580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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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철 분노 1000%! 백해령 좌천!, 김건희 무혐의! 개떡 같은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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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usoul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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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망한 나라다.
한국은 민주적인 자본주의 국가 같지만, 실상은 전체주의 국가와 유사하다. 특이한 점은 독재권력에 의한 전체주의가 아닌 일본, 미국,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 사상에 철저하게 속박되어 있는 전체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일본이 일제강점기 때부터 우리 뇌 속에 심어놓은 ���민사관과 미국이 우리 목에 걸어놓은 개목걸이에 100여년 동안 종속되어 있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스스로 일어나서 걸어다니지 못하는 국가가 되어 버린 것이 이제 조금씩 기형적인 사건사고로 터져 나오는 것 같다.
현재,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수의 사건사고들을 보면 “한국은 망했다.”라는 느낌이 크게 들 정도로 너무 비인간적이고, 비인륜적이고, 비도덕적으로 비정하다. 우리나라에서만 쓰고 있는 위대한 단어인 “우리”라는 말의 개념과 의미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졌고, 근본 없는 개인주의가 자리잡으면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내 생각에는 개인주의도 일반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개인주의가 아니라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만연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 또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현상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가 아무런 철학 없이 망조가 되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이다. 한국 안에 주류, 기득권 세력으로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친일파들과 토착 왜구들에 의한 식민사관에 지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정상적인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 기득권 세력을 반드시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아내야 가능하다.
그런 다음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인간다운 사상.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고, 친척을 소중하게 여기고, 친구를 소중하게 여기고,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고, 나라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일본과 같은 적대국가는 철저하게 경계할 줄 알아야 비로소 정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상식적인 이야기를 이렇게 비장하게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구제불가능한 국가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서글퍼진다.
2024. 7. 1.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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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inside ·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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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강 수질 문제와 파리 올림픽, '똥 캠페인'으로 불거진 시민 불만에서) 유럽이 프랑스 파리가 성 많고 유명한 화가 유명한 향수 명품 있다고아름답고 깨끗한 나라인줄 착각하는데 전세계 제일 드러운 잭슨 하는 나라고 소매치기 득실거리는 나라고 인신매매 성매매 득실거리고 특히 공중화장실 문화가 밑바닥 수준이다 성만 만들줄 알지 화장실을 못만들어 밖에 대변소변 싸고 살던 나라다 위생이 바닥 수준이다 그래서 전염병도 돌앗고 그결과 힐 향수가 최고가 되긴했지만 https://epedia.tistory.com/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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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readings-and-thoughts ·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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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0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하지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 않을 직업을 위해 매일 15시간씩이나 낭비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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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까지 구구단을 외우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기계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보다 구구단을 못 외운 상태에서 곱하기를 할 때 다양한 방법을 스스로 찾는 과정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은 세계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소위 문과에 속하는 과목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학문인데, 그것이 수학, 데이터 등과 만나 융합할 때 큰 폭발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미분이 무엇인지 통계가 무엇인지 싹 다 잊어버리는 교육이 아니라, 원리를 알아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자기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명견만리, 285-287 중)
그러고보니 지난 시절, 아니 지금도.. 한국 교육은 노력하는 바보들을 만들어내고 있었고(있고), 나도 그 전형적인 피해자 중 하나다.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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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downtown ·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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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United States of America 🇺🇸
성경에 명시된 이스라엘이 왜 핍박을 받는지 아는가 저사원은 거짓 선지자들의 처형터 묘지로 코란에서는 금기로 되어있다
그대들의 로마 하나님의 성전 공항은 어디 갔으며 그대들의 십자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스라엘 은 유대지파중 다웟과 요나단때 잠시 성장하나 가자 팔레스티나 공항을 주기적으로 폭격 했다 그 죄로 1948에 패망한 나라다
수많은 랍비들이 통곡의 벽에서 울지만 지금은 예멘에서 아랍에미리트 항공으로 하나님의 십자가를 높이 들고있다
KBS Down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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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nabe-honest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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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등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안네의 일기'를 읽는다. 나도 초등학생 때 이 책을 읽었는데 가슴이 막 뛰었던 기억이 있다. 설렘의 심장박동이 아니고, 나치를 피해 숨어, 언제 들킬지 모르는 은둔 생활을 지켜봐야하는 고통의 심장박동이다. 영화 '피아니스트(애드리언 브로디 주연), 인생은 아름다워, 우먼 인 골드'를 볼 때, 우리는 누구나 유대인이 된다.
학살을 당했던 민족의 피가 흐르는 나는, 그래서 일제강점기 관련 콘텐츠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후자의 의미로) 나는 유대인들에게 쉽게 이입한다.
그리고 대학생 때. 거지 같은 '교원 임용 시험' 공부가 싫어서, 도서관 자습실보다 도서관 자료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중국 연수 이후로 여행에 빠졌고, 각종 여행서를 훑기 시작했고, 다 마친 후에는 역사 분류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때 처음 본 책이 중동 역사책이었다. 각종 분쟁의 역사에 대해 쓴 책인데, 처음 알게된 그들의 역사에 놀랐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문제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는 망국의 슬픔을 품고 있는 민족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라를 잃는다는 기분이 어떤 건지 이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세워, 식민 통치를 주도하던 주요 인물의 암살 계획을 세우던(일본에선 테러라고 불리는) 우리 독립 운동가들이 자랑스러워 눈물이 날 것 같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되었을 때도, 지금 전쟁이 일어나는 이 순간에도 팔레스타인은 힘이 없다. 전세계 많은 유대인들이 돈과 힘이 있지만, 팔레스타인은 강대국들이 손을 들어주기엔 취할 이득이 적은 나라다.
월가의 부유한 유대인과 기업들은 전쟁이 일어나자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던 하버드 대학생 명단을 블랙 리스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치사한 압박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아직 경제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위협,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돈의 힘으로. 놀랍다 미국. 정부는 이런 불공정 행위는 눈을 감고, '공정'을 추구하는가?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과거에도 지금도 유효한 힘의 원리.
1907년 대한제국의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 주권을 강탈한 일제를 규탄하고, 도움을 호소했다. 하지만 애초 열강 간의 유대를 위해 열린 친교 모임에 약소국의 편을 들 바보는 없었다. 미국, 프랑스, 중국, 독일 등이 외면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일제는 고종을 폐위시켰다.
팔레스타인인의 아픔에 대해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유대인의 홀로코스트에만 애도를 표하는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저는 무고하게 희생된 이 세상의 모든 이를 기억하겠습니다.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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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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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Chip-War-Dominate-Critical-Technology/dp/1797147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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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의 글로벌 확장은 곧 발이 묶이고 말았다. 제품 라인 전체가 생산이 불가능해졌던 것이다. 매출이 곤두박질쳤다. 거대 기업이 기술적 질식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은 모두 현실을 깨달았다. 모든 현대 전자 기기가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는 외국��이 만들고 있고, 중국의 목숨이 반도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미국은 여전히 실리콘 반도체를 꽉 틀어쥐고 있다. 비록 그 입지가 위험할 정도로 취약해져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을 가진 곳을 보유한 나라다. 오늘날 중국은 반도체 수입에 석유보다 많은 돈을 쓴다. 그 반도체는 스마트폰에서 냉장고까지, 중국 국내에서 소비되거나 해외로 수출되는 그야말로 모든 기기에 꽂혀 있다. 책상물림 전략가들은 중국이 "말라카 딜레마 Malacca Dilemma"에 빠져 있다고 보곤 했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주요 항해로인 말라카해협의 이름을 딴 그 이론에 따르면, 중국은 석유 및 다른 원자재 확보로 인해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은 석유 수입 항로가 막히는 것보다 반도체 회로가 막히는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중국은 최고의 지적 자원과 수 십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자체 반도체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칩으로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chip choke 미국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p29)
중국의 반도체 독립이 성공한다면 세계 경제를 다시 만들고 군사력의 균형을 재설정하게 될 것이다. 강철과 알루미늄은 2차 세계대전의 승부를 갈랐다. 그 뒤를 이은 냉전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핵무기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은 아마도 컴퓨터의 힘computing power(컴퓨터가 주어진 시간과 자원으로 얼마나 많은 연산을 처리할 수 있느냐를 논할 때 사용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저자는 computing power라는 단어를 기술적 차원을 넘어 반도체를 개발, 생산, 유통할 수 있는 국가적 역량이라는 중의적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 computing power의 기술적 의미가 중요할 때는 '연산력'으로, 그렇지 않을 때는 맥락에 따라 적절하게 옮긴다.-옮긴이)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베이징과 워싱턴의 전략가들은 이제 안다. 머신러닝에서 미사일까지, 자율 주행 차량부터 군사용 드론까지 모든 고급 기술은 최첨단의 칩, 좀 더 격식 있게 말하자면 반도체나 집적회로를 필요로 한다. 게다가 그 생산은 극소수의 기업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p30)
우리는 칩에 대해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도체는 현대 세계를 만들어 왔다. 여러 나라의 운명은 컴퓨터의 힘에 따라 좌우되어 왔다. 우리가 아는 세계화는 반도체 및 반도체로 만들어내는 전자 제품의 교역이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군사 우위는 칩을 군사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크게 빚지고 있다. 아시아는 실리콘을 발판 삼아 지난 20세기의 절반 동안 무섭게 부상할 수 있었다. ���시아 국가는 경제가 성장하면서 칩을 찍어 내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조립하는 일에 특화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집적회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p30)
이러한 반도체 생산 절차 중 단 한 단계라도 삐끗하게 되면 세계를 향한 새로운 연산력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시대와 함께 데이터를 새로운 석유로 비유하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마주하고 있는 제약은 데이터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연산력 부족이 진짜 문제다. 반도체가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수는 유한하다. 반도체 생산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하며 끔찍할 정도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여러 나라에서 구입할 수 있는 석유와 달리 연산력의 생산과정에는 근본적으로 몇 개의 병목 지점이 존재한다. 장비, 화학물질, 소프트웨어 등의 요소가 단지 몇 개. 때로는 오직 하나의 회사에 의해 좌우되고 있는 것이다. 이토록 적은 수의 기업에 이렇게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 영역은 오직 반도체뿐이다. 대만에서 생산하는 칩은 매년 세계가 소비하는 새로운 연산력의 37퍼센트를 제공한다. 한국의 두 기업은 세계 메모리 칩의 44퍼센트를 생산한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머신 공급은 네덜란드 기업 ASML에 100퍼센트 의존하고 있는데, 그 장비가 없다면 최첨단 반도체의 제작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불가능해진다. 세계 석유 공급의 40 퍼센트를 점하고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마저 이 회사들과 비교해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아 보일 지경이다. (p38-39)
벨연구소는 1948년 기자회견을 통해 과학자들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전선이 연결된 게르마늄 덩어리가 왜 특별 발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그 소식을 46면에 처박아 버렸다. <타임> 지는 그나마 좀 나아서 트랜지스터의 발명에 "작은 뇌 세포"라는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엄청나게 작은 크기의 트랜지스터가 수천, 수백만, 수십억 개씩 모여서 인간 두뇌가 수행하던 계산 업무를 대체하는 미래가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라는 점만큼은, 본인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일이 없었던 쇼클리마저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p61)
여름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연구원들은 새 동료가 혁명적인 발상을 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리콘 혹은 게르마늄 조각 하나 위에 여러 개의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킬비는 자신의 발명에 "집적회로integrated circuit"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대체로 "칩chip"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원형의 실리콘 웨이퍼에서 "잘라 낸chipped" 실리콘 조각에 집적회로가 구성되기 때문이었다. (p66)
노이스는 나사를 위해 칩 생산을 늘리면서 다른 고객들에게는 가격을 대폭 낮췄다. 1961년 12월 120달러에 팔리던 집적회로는 이듬해 10월 15달러까지 가격을 인하했다. 나사가 우주 비행사를 달에 보내는 데 집적회로를 사용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신뢰의 상징이나 다를 바 없었다. 페어차일드의 마이크로로직 칩은 더 이상 검증되지 않은 테크놀로지가 아니었다. 가장 가혹하고 험난한 환경, 바로 대기권 밖에서도 작동했으니 말이다.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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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물리학상은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쇼클리, 바딘, 브래튼에게 수여되었다. 잭 킬비는 훗날 최초의 집적회로 발명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밥 노이스가 62세로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아마 그도 킬비와 함께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다. 이러한 발명은 결정적인 것이었지만 반도체 산업을 만들어 나가기에는 과학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이론물리학만큼이나 영리한 제조 기술이 있었기에 반도체가 확산될 수 있었다. MIT나 스탠퍼드 같은 대학은 반도체와 관련된 지식을 개발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지만, 그러한 대학을 나온 이들이 몇 년에 걸쳐 제조 공정을 뜯어고치고 개선해 오지 않았다면 대량 생산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벨연구소의 특허가 세계를 바꾸는 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과학 이론 뿐 아니라 엔지니어링과 직감에 힘입은 것이었다. (p85)
90, 1
하지만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여전히 동부 해안의 한 억만장자의 소유였다. 그 억만장자 투자자는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주었지만 스톡옵션 지급만은 한사코 거절했다. 지분을 나눠 주는 발상을 일종의 "소름 돋는 사회주의"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직원들은 이 회사에 자신의 미래가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는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노이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머잖아 모두가 탈출을 모색하게 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과학 발전과 새로운 제조 공정뿐 아니라 재정��으로 한 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능성 역시 무어의 법칙을 이끄는 근본 동력이었던 것이다. 페어차일드 직원 중 한 사람은 퇴사 설문지에 퇴사의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p92)
112, 4 121
상호 협력 관계가 늘 원활하게 작동한 것은 아니었다. 1959년 미국전자산업협회Electronics Industries Association는 일본산 수입 가전 제품이 "국가 안보" 및 미국 가전 업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취지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이 ���자 산업을 일으켜 세우게끔 하는 것은 미국의 냉전 전략의 일부였으므로, 1960년대 내내 ���싱턴이 그 문제로 도쿄를 강하게 압박하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관련 업계 매체라 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스>는 미국 회사 편을 들어줄 법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정책의 핵심이다. ... 만약 일본이 서구 및 유럽과 건강한 상업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일본은 경제적 필요에 따라 다른 곳을 찾게 될 것이다." 즉 공산 중국이나 소련에 눈을 돌리게 될 수 있다는 것 이었다. 미국의 전략에 따라 일본은 더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이고 최신 사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었다. 훗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일본을 이렇게 바라보았다. “그런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드는 것으로 만족할 리 없다." 미국은 일본이 더 발전된 기술을 개발하도록 허용하고 더 나아가 장려해야 했다. (p122)
칩 회사가 여성을 고용한 이유는 더 낮은 임금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여자는 남자보다 노동 조건 개선 요구가 심하지 않았다. 생산 관리자들은 남자에 비해 손이 작은 여자가 반도체 조립 및 완성된 반도체를 테스트하기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기도 했다. 1960년대, 플라스틱 기판에 실리콘 칩을 부착하는 과정은 이러했다. 칩이 올라가야 하는 위치를 노동자가 현미경으로 확인한다. 조립 노동자가 두 부품을 고정시키면 기계에서 열과 압력, 초음파 진동이 가해져 실리콘이 플라스틱 기판과 결합하게 된다. 칩에 전력을 공급하는 얇은 골드와이어 역시 손으로 붙여야 했다. 마지막으로 칩을 테스트하려면 일종의 미터기에 꽂아야 했는데 그 역시 손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칩의 수요가 하늘 높이 치솟음에 따라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사람 손의 수요 역시 급등했다. (p128)
반도체 공급망이 경제 성장과 정치 안정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 나라는 대만뿐이 아니었다. 1973년, 싱가포르의 지도자 리콴유는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을 만난 자리에서 싱가포르의 "실업을 일소하기 위해" 수출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의 협조 아래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내셔널세미컨덕터 National Semiconductors는 도시국가 싱가포르에 조립 설비를 건설했다. 다른 칩 제조사도 그 뒤를 따랐다. 1970년대 말, 미국의 반도체 기업은 해외에서 수만 명을 고용했는데 그 대부분이 한국, 대만, 동남아시아에 있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칩 제조사들과 아시아의 독재자들, 그리고 많은 경우 아시아 반도체 조립 설비를 채우고 있던 화교 노동자들 사이에 새로운 국제 동맹이 형성된 것이다. 반도체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 동반국들의 경제와 정치를 재구성했다. 정치적 극단주의의 온상이었던 도시는 근면한 조립 라인 노동자들이 완전히 바꿔 놓았다. 실업 상태였거나 보조금에 의존하는 농부였던 이들이 행복하게도 보다 나은 월급을 받으며 공장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1980년대 초, 전자 산업은 싱가포르의 국민총생산GNP 중 7퍼센트, 제조업 일자리의 4분의 1을 담당했다. 전자 제품 생산을 놓고 보면 60퍼센트가 반도체 소자였고, 나머지도 반도체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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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는 컴퓨터 혁명이 사회와 정치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연산력을 생산할 수 있는 사람, 소프트웨어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는 사람은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었다.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엔지니어들은 그 미래의 규칙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전문 지식, 네트워크, 그리고 스톡옵션까지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그들이 만들어 낼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산업 사회는 디지털 세계에 길을 내주고 있었고, 0과 1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실리콘 판에 저장되고 처리되었다. 기술이 지배하는 세상이 밝아오는 중이었다. 카버 미드는 이렇게 선포했다. "우리 사회의 운명은 결정적인 기로에 서 있다. 점점 더 작은 면적에 점점 더 많은 부품을 담을 수 있는 마이크로 전자 기술이 그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업계 외부자들은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막연하게 짐작만 할 뿐이었으나, 인텔의 지도자 그룹은 알고 있었다. 다방면에서 광범위하게 연산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근본적 변화가 뒤따를 것이다. 1973년 고든 무어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몇 년 전 학교를 때려 부순 장발에 턱수염을 기른 꼬마들이 아니라, 우리야말로 오늘날 이 세상의 진정한 혁명가다." (p153-154)
1960년대 초였다면 펜타곤이 실리콘밸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했지만 반도체 산업은 평화를 이끌었다. 싱가포르에서 대만과 일본까지, 베트남을 제외한 아시아 전체를 늘어난 투자와 길고 단단해진 공급망을 통해 미국과 더욱 밀접하게 엮어 냈던 것이다. 미국이 제공하는 혁신을 기반으로 삼아 전 세계가 단단히 연결되고 있었다. 심지어 소련 같은 적국마저 미국의 반도체 및 반도체 생산 수단을 베끼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편 반도체 산업은 미군이 미래의 전쟁에서 싸우는 방법을 바꿀 새로운 무기 체계가 등장하는 촉매 역할을 해냈다. 미국의 힘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실리콘밸리의 성공에 의존하게 되었다. (p162-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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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 샌더스가 선언했다. 반도체는 "1980년대의 원유와 같은 것이며, 그 원유를 통제하는 자가 전자 산업을 통제하게 된다." 샌더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칩 제조사 중 하나인 AMD의 CEO였으니, 그가 자기 회사의 주 제품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자기 이익의 차원에서 충분히 그럴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샌더스가 틀렸을까? 1980년대 내내 미국의 컴퓨터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해서 PC는 이제 개인의 가정이나 사무실에 놓일 만큼 저렴해지고 소형화되었다. 모든 사업 영역이 PC에 의존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런데 집적회로가 없다면 컴퓨터는 작동할 수 없다. 1980년대 기준으로 보더라도 비행기, 자동차, 캠코더, 전자레인지, 소니 워크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모든 미국인의 집과 자동차에 반도체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매일 수십 개의 칩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치 석유처럼 반도체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데도 "전략적 중요성을 인정할 수 없단 말인가? 일본이 "반도체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되는 것을 미국이 걱정할 이유가 없단 말인가? (p194)
결국 모든 이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극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한때 트랜지스터 세일즈맨이라고 조롱당하던 나라 일본이 이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 대국이 되었다. 일본은 미국 군사력의 사활이 걸린 미국의 산업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었다. 미국은 공산권을 상대로 경제 봉쇄를 하고 있었으므로 일본이 대외 교역을 늘리는 것을 크게 개의치 않고 내버려 두는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분업은 미국 쪽에서 더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경제는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도쿄의 첨단 제조업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마저 위협할 지경이었다. 앞서가는 일본의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TV나 카메라 산업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일이 반도체에서도 벌어지는 것을 원치는 않으실 겁니다." 스포크는 국방부를 상대로 말했다. "반도체가 없다면 군사력의 미래는 오리무중입니다." (p199)
203-4 (214)
미국의 공급망 전략은 공산주의자를 몰아내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지만, 1980년대에 이르자 그 전략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건 일본으로 드러났다. 일본의 무역량과 해외 투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던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와 정치에서 도쿄가 차지하는 위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졌다. 만약 일본이 반도체 산업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지배할 수 있다면, 그들이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빼앗고자 할 때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p220)
마이크론의 직원들에게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실리콘밸리라면 회사가 망해도 101번로를 따라 내려가서 다른 반도체 회사나 컴퓨터 제조사에 취직하면 그만이었다. 그에 비해 마이크론은 보이시에 있었다. 한 직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달리 할 일이 없었어요. D램을 만들지 못하면 게임 오버인 거죠." 다른 직원의 회상에 따르면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육체노동자의 근로 윤리, 공돌이 정신"이 있었다. 고통스러운 D램 시장 암흑기를 몇 번이나 거쳐 왔던 초기 직원 한 사람은 이렇게 회상한다. "메모리 칩은 잔인한, 잔인한 비즈니스입니다." (p231)
236, 7 239
그는 IBM의 컴퓨터 공장도 방문했는데,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사실에 또 한 차례 놀랐다. "당신들 공장에는 비밀이 많이 있을 텐데요." 공장 안내를 해 주는 IBM 직원에게 이병철이 묻자, 그 직원은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런 비밀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따라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이병철은 실리콘밸리의 성공을 정확히 모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백만 달러 이상의 자본 확충이 필요한데 다 아직 제대로 될지 확신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병철에게도 그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그는 몇 달을 고심했다. 실패하면 그가 이룬 비즈니스 제국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흔쾌히 재정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정부는 반도체 산업에 4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은행은 정부 방침을 따라 더 많은 돈을 빌려줄 것이었다. 그러니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은 차고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은행에서 저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던 거대 재벌의 산물이었다. 1983년 2월, 신경이 곤두선 불면의 밤을 보내던 이병철은 전화기를 들었다. 삼성전자 사업부를 총괄하던 수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선포했다. "삼성은 반도체를 만들 걸세." 삼성은 적어도 1억 달러를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선언과 함께 그는 회사의 미래를 건 반도체 도박을 시작했다. 이병철은 노련한 경영자였고, 한국 정부는 그의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해 주었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도움이 없었다면 반도체에 모든 것을 걸었던 삼성의 도박은 성공으로 이어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메모리 칩 분야에서 일본의 국제적 경쟁에 맞서는 최선의 방법은 한국에서 훨씬 더 저렴한 공급원을 찾아내는 동시에 미국의 연구개발 에너지를 이미 상품화된 범용 D램보다 더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발상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밥 노이스가 앤디 그로브에게 말했듯이. "한국인들과 함께하면" 그들이 일본 생산자들보다 더 저가로 판매할 테니, 일본이 "비용에 상관하지 않고 덤핑을 하는" 전략을 쓰더라도 세계 D램 시장을 독점하는 일은 불가능해진다. 결국 일본의 칩 제조사들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게 될 것이라고 노이스는 예측했다. 그리하여 인텔은 떠오르는 한국의 D램 생산자들을 환영했다. 인텔은 1980년대에 삼성과 함께 합작 투자에 합의한 여러 실리콘밸리 기업 중 하나다. 삼성이 제조한 칩을 인텔의 브랜드로 판매하면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를 향한 일본의 위협에 대응한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생산 비용과 임금은 일본에 비해 확연히 낮았다. 삼성 같은 한국 기업들의 제조 공정은 일본처럼 완벽에 가깝지도 극도로 효율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일본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오는 일에는 문제가 없었다. 미국과 일본 간의 무역 갈등 역시 한국 기업들에게 호재로 작용했다. 워싱턴은 일본이 미국 시장에 D램 칩을 저가로 풀어놓는 행위, 이른바 "덤핑"을 중단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결국 1986년 도쿄는 D램의 대미 수출량을 제한하며 낮은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한국 기업으로서는 더 많은 D램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미국이 일본과의 협상으로 한국에 이익을 주자고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칩을 생산하는 것이 일본을 제외한 다른 누구여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것은 D램 시장만이 아니었다. 기술도 함께 제공했다. 실리콘밸리의 D램 생산은 거의 파탄 나 있었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한국에 전���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병철은 현금이 부족한 메모리 칩 스타트업인 마이크론에 64K D램용 설계 라이센스 계약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위드 파킨슨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아이다호의 칩 제조사는 그 계약으로 얻을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따져 본 후 기꺼이 삼성의 제안을 수용했다. 설령 그 과정에서 삼성이 마이크론의 생산 공정 중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우리가 했던 것이라면 삼성도 했다"라고 파킨슨은 떠올렸다. 그는 삼성이 제공했던 "결정적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도움이 되는 돈을 받아 마이크론을 살려 놓아야 했던 것이다. 고든 무어 같은 반도체 산업 선도자들은 몇몇 반도체 회사가 절박한 상황에서 "가치 있는 기술을 쉽게 넘겨준다"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모리 칩을 만드는 대부분의 미국 기업이 파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D램 기술을 가��� 있는 것이라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대부분은 즐거운 마음으로 한국 기업과 협업했다. 한국이 세계 메모리 칩 시장의 선두 주자로 떠오르도록 도우면서 일본 경쟁자들의 공격을 무력화했던 것이다. 제리 샌더스가 한 설명을 빌리자면, 단순한 논리였다. "적의 적은 친구다." (p244-246)
"이것이 미래입니다" 앤디 그로브의 편집증, 제리 샌더스의 저돌적 투쟁, 잭 심플롯의 카우보이식 경쟁심이 없었다면 일본의 D램 맹공을 견뎌 내고 미국 반도체 산업이 되살아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남성 호르몬과 스톡옵션의 힘으로 굴러가는 실리콘밸리는 때로 교과서에서 묘사하는 메마른 경제학보다는 오히려 적자생존의 투쟁이 벌어지는 다윈주의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다. 수많은 기업이 실패했고, 재산이 날아갔고,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인텔이나 마이크론 같은 회사가 극도로 경쟁적이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업계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그들이 지닌 기술력이 중요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적합한 기술을 자본화하여 돈으로 만드는 능력 덕분이었다. (p247)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부활을 온전히 영웅적 기업가와 창조적 파괴의 공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 새로운 산업의 거인들이 부상하는 동안 새로운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은 칩 제조의 도약을 준비하고 처리 능력 processing power을 이용한 혁신적인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그러한 기술 발전 중 많은 부분이 정부와 협력 아래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의회나 백악관처럼 크고 무거운 손이 움직인 경우보다는 국방부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같은 작고 기민한 조직이 미래를 향한 큰 도박에 힘을 실어 줄 때가 많았다. 또 정부는 이러한 도박에 필요한 교육과 연구개발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p248)
253-4
이라크의 건물, 탱크, 공군 기지가 정밀 무기에 폭격당해 파괴되는 영상을 본 이들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전쟁의 성격이 달라졌다. 진공관으로 작동하던 사이드와인더 sidewinder 공대공 미사일은 베트남전에서 표적을 대부분 놓치고 말았지만, 이제는 훨씬 강력한 반도체 기반의 유도 시스템을 장착하고 업그레이드 되었다. 걸프전의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은 베트남전보다 여섯 배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페리가 펜타곤을 압박해 1970년대 후반부터 발전시킨 새로운 기술은 페리 자신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성과를 보였다. 최고의 장비라고 해 봐야 소련의 군산 복합체가 만든 것들로 무장하고 있었던 이라크 군대는 미국의 공격 앞에 힘없이 무너졌다. "첨단 기술이 답이다." 페리가 선언했다. "이 모든 일은 무기가 화력의 양이 아니라 정보에 기반해 작동하고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 군사 분석가가 언론에서 한 말이다. "강철을 이긴 실리콘", <뉴 욕타임스>의 헤드라인 문구다. "컴퓨터 칩이 영웅의 자리에 오를 수도"라는 또 다른 헤드라인도 신문에 실렸다. 페이브웨이 폭탄과 토마호크 미사일의 폭발음은 바그다드만큼이나 모스크바에서도 강력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기술 작전"이 되었다고 소련의 군사 분석가가 발표했다. "전파를 타고 벌이는 싸움"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걸프전의 결과는 이라크가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오르가코프의 예측 그대로였다. 소련 국방장관 드미트리 야조프 Dmitri Yazoy는 걸프전이 소련의 방공 능력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왔다고 인정했다. 세르게이 아흐로메예프Sergey Akhromeyer 원수는 장기전을 예측했지만 이라크가 순식간에 항복해 버리자 크게 당혹스러운 처지가 되고 말았다. 미국의 폭탄이 이라크 하늘을 뚫고 스스로의 항로를 찾아 이라크의 건물 벽을 부수는 영상이 CNN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전쟁의 미래에 대한 오르가코프의 예측이 옳았다는 게 입증되었다. (p275-276)
278-9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PC 시대가 오는 것을 놓쳤다는 데 있다. 일본의 반도체 공룡 중 인텔이 메모리 칩에서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전환하고 PC 생태계의 지배자가 된 경로를 따라간 회사는 없었다. NEC 단 한 곳만 유의미한 시도를 했으나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가져갔을 뿐이다. 앤디 그로브와 인텔에게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죽고 사는 문제였다. 반면에 일본의 D램 기업들은 이미 높은 시장 점유율을 누리고 있었고 금융 비용마저 낮았던 탓에,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을 무시했고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너무 늦었다. 결과적으로 PC 혁명의 혜택은 대부분 미국 기업에게 돌아갔다. 일본의 주식 시장이 폭락했을 때 그들의 반도체 지배력은 이미 잠식되고 있었다. 1993년부터 미국은 반도체를 다시 수출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한국 기업이 일본을 제치고 D램의 최대 생산자 자리를 차지했다. 1980년대 말 90퍼센트에 달하던 일본의 시장 점유율은 1998년이 되자 20퍼센트까지 내려앉았다. (p280)
"현대의 군사력은 모두 경제적 혁신, 기술, 경제력에 따라 결정됩니다. 군사 기술은 컴퓨터에 기반을 두고 있소. 당신들은 컴퓨터에서 우리를 훨씬, 아주 멀리 앞서고 있고... 댁의 나라에서는 모든 아이가 다섯 살부터 컴퓨터를 갖고 놀지 않습니까." 이제는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손쉽게 격퇴해 버린 미국의 새로운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소련의 군부와 KGB는 위기에 빠졌다. 자신들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인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만 것이다. 안보 분야 고위직들이 고르바초프를 겨냥해 맥빠지는 쿠데타를 벌였지만 사흘만에 진압 되었다. 통상적인 군사력만 보자면 그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닌데, 한때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국가가 비참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90년대 러시아 반도체 산업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몰락했다. 러시아의 반도체 생산 설비는 맥도날드의 해피밀 장난감에 들어갈 작은 칩을 만들고 있었다. 냉전은 끝났고 실리 콘밸리가 이겼다. (p283)
291-2
1976년 3월, 창은 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동료 임원진에게 던져 보았다. "연산력이 저렴해지고 있으니 지금까지 반도체가 들어가지 않았던 수많은 기기를 위한 반도체 시장이 열릴 걸세." 그가 동료들에게 했던 말이다. 이렇게 전화기에서 자동차, 식기세척기까지 모든 제품에서 칩의 새로운 수요가 발생할 것이다. 창의 논리에 따르면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은 반도체 생산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니, 반도체 제조에 특화된 전문 기업에 아웃소싱할 것이다. 게다가 기술이 발전하고 트랜지스터가 작아지면 제조 설비의 가격과 연구개발 비용도 상승할 수밖에 없다. 칩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기업만이 가격 경쟁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p293)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경영진은 설득되지 않았다. 1976년 당시, 반도체를 설계하지만 자체 제조 시설을 갖추고 있지는 않은 "팹리스tabless" 기업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모리스 창은 그런 회사가 곧 나올 것이라 했지만 어디까지나 예상이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이미 충분한 돈을 잘 벌고 있었고, 그러니 존재하지도 않는 시장에 승부를 거는 건 너무 위험한 일로 보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조용히 폐기되었다. 창은 파운드리 foundry라는 개념을 절대 잊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때가 무르익을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반도체 설계에서 린 콘웨이와 카버 미드가 이룬 혁명이 칩 설계가 제조와 훨씬 더 쉽게 분리되도록 만들었다. 미드의 비유에 따르면 반도체 설계와 제조를 나눈 것은 인쇄술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사건이었다. (p294)
반도체 산업에서 모리스 창의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은 새로운 "저자", 즉 팹리스 칩 설계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로인해 모든 종류의 기기에 칩이 탑재되고 연산력을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게 한 이 디지털 시대의 인쇄 기술은 인쇄업의 독점과 맞물려 있었다. 반도체 제조의 경제학은 무자비한 합병을 불러왔던 것이다. 가장 많은 칩을 생산하는 기업은 이미 그만 한 강점을 누리고 있으며, 그 위에서 수율을 끌어 올리고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며 자본을 동원할 수 있다. TSMC의 사업은 1990년대 내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제조 공정은 쉼 없이 개선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구텐베르크가 되고자 했던 모리스 창의 계획은 그에게 훨씬 더 큰 힘을 실어주었다. 당시에는 이 사실을 깨달은 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모리스 창과 TSMC 그리고 대만은 세계 최신 반도체 생산을 독점하는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p297-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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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의 공산정권은 소련과 같은 종류의 실수를 저질렀다. 단, 이번에는 훨씬 더 극단적인 형태로 그 실수를 반복했다. 1950년대 초 베이징은 반도체 소자를 과학 연구 우선순위로 확정지었다. 곧 그들은 베이징대학교를 비롯해 공산혁명 이전에 버클리, MIT, 하버드, 퍼듀 등의 대학교에서 연구했던 학자들을 불러 모았다. 그렇게 중국은 1960년에 최초의 반도체 연구 기관을 설립했다. 중국이 단순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첫 생산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1965년 중국 엔지니어들은 스스로 중국산 집적회로를 만들었다. 밥 노이스와 잭 킬비가 그 일을 해낸 지 5 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극단주의로 인해 해외 투자뿐 아니라 진지한 과학 연구마저도 불가능해졌다. 중국이 최초의 집적회로를 생산한 그해 마오쩌둥은 온 나라를 문화혁명의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문 지식은 특권의 원천이며 사회주의적 평등을 침해한다는 것이 마오쩌둥의 주장이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자기 나라 교육 체계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수많은 과학자와 전문가가 지정된 마을에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했다. 그냥 살해당한 사람들도 많았다. 마오 주석이 내린 "1968년 7월 21일 교지"는 이렇게 주장했다. "교육 기간을 줄이고, 교육을 혁명하고, 프롤레타리아 정치를 실행하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다. ... 학생들은 실제적인 경험이 있는 노동자와 농민 중에서 선발해야 하며, 몇 년의 학습을 마치고 생산 현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p301)
마오쩌둥은 중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정치적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면서 외국과의 기술적 연결도 끊어 버렸다. 중국 과학자 대부분은 그들의 연구와 인생을 파괴해 버린 주석을 향한 증오심을 품었다. 반도체 연구를 해야 할 사람들을 시골로 내려보내 농민으로 살게 하며 프롤레타리아 정치 사상을 학습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학을 전공하던 한 유망한 전문가는 시골로 보내져 거친 곡식과 삶은 양배추로 연명하며 때로 뱀을 잡아 구워 먹으면서, 마오가 부추긴 극단주의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이 가지고 있던 자그마한 반도체 인력이 들판으로 내몰려 돌아다니고 있을 때, 마오주의자들은 중국의 노동자들을 향해 "모든 인민은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권하고 있었다. 마치 중국의 프롤레타리아라면 누구나 집에서 반도체를 만들 수 있다는 듯한 투였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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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중국에 반도체 산업을 이룩해 낼 수 있다면 그 장본인은 리처드 창이었다. 그는 연줄이나 외국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았다. 세계 수준의 생산 설비에 필요한 모든 지식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설비를 만드는 게 텍사스인스트루먼트에서 그가 해 왔던 일이었다. 상하이에서 그걸 또 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골드만삭스, 모토로라, 도시바 같은 국제투자자들로부터 끌어온 15억 달러를 밑천 삼아, 창은 2000 SMIC 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oration를 창업했다. 한 분석가는 SMIC의 창업 자본 중 절반이 미국 투자자로부터 나왔다고 보았다. 창은 그 돈으로 수백여 명의 외국인을 고용해 SMIC의 팹을 운영했는데, 그 중 적어도 400명은 대만 사람이었다. 창의 전략은 단순명료했다. 바로 TSMC가 한 대로 하는 것이었다. 대만에서 TSMC는 눈에 띄는 족족 최고의 엔지니어들을 고용했다. 특히 미국이나 다른 첨단 반도체 기업에서 일한 사람이 우선이었다. TSMC는 동원 가능한 최선의 장비를 갖추었다. 반도체 산업의 최고가 되기 위해 TSMC는 직원 교육에 혼신을 다했다. 그러면서 대만 정부가 제공하는 모든 세제 혜택 및 보조금을 누렸다. (p314)
318, 9 320-1 323 330-1
모바일 기기가 컴퓨터 시장을 뒤흔들 것이라는 발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칼텍의 선지자였던 카버 미드가 이미 1970년대 초에 예견한 일이었다. 인텔 역시 PC가 컴퓨터의 최종 진화형이 아닐 것임은 알고 있었다. 인텔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내내 일련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투자했다. 그 중에는 무려 20년을 앞서 나온 줌 Zoom 같은 화상 회의 시스템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신제품 중 자리 잡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기술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인텔의 핵심 사업인 PC용 칩 제조와 비교할 때 너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새로운 기기와 분야는 인텔내에서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모바일 기기는 1990년대 초 앤디 그로브가 아직 CEO이던 시절부터 인텔 내에서 주기적으로 논의 대상이 되곤 했다. 1990년대 초 인텔의 산타클라라 본사에서 열린 회의, 윌 스워프 Will Swope라는 한 임원이 자신의 팜 파일럿Palm Pilot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이런 기기들이 성장해서 PC를 대체할 겁니다." 하지만 PC용 프로세서를 만들어서 벌 수 있는 돈이 엄청났던 당시, 모바일 기기에 돈을 퍼붓는다는 것은 과격한 도박으로 보였다. 그래서 인텔은 모바일 비즈니스에 뛰어들지 않기로 했고, 오판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한때 앤디 그로브에게 조언을 건넸던 하버드 경영대학 교수의 눈으로 보자면, 인텔의 딜레마는 쉽게 진단 가��한 것이었다. 인텔 직원이라면 클레이턴 크리스텐슨과 그가 제시한 개념인 "혁신가의 딜레마"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텔은 사실상 돈을 찍어 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PC용 프로세서 비즈니스에 너무 오래 안주해 있었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을 D램 제조 회사에서 프로세서 제조사로 탈바꿈시켰던 1980년대와는 사정이 달랐다. 당시 인텔은 돈을 피처럼 흘리고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이윤을 창출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인텔이 새로운 제품을 물색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너무도 달콤했다는 것이다. 인텔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지닌 두 개의 성채인 PC와 서버용 칩에 틀어박혀, x86이라는 깊은 해자로 보호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p334-335) 맥 컴퓨터에 인텔 칩을 도입하기로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잡스는 오텔리니를 찾아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애플이 신제품으로 컴퓨터와 핸드폰을 결합하려 하는데, 인텔이 그 목적의 칩을 만들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모든 휴대전화에는 그에 맞는 운영 체제가 있고 휴대전화 네트워크와의 통신을 관리하는 반도체가 들어갔다. 하지만 애플은 새로운 전화기가 컴퓨터처럼 작동하기를 원했다. 그러자면 컴퓨터에 들어가는 것처럼 강력한 칩이 필요할 터였다. 오텔리니는 훗날 기자 알렉시스 마드리갈Ale Madrigal을 만난 자리에서 당시 벌어진 일을 털어놓았다. "애플은 정해진 가격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푼도 더 주려 하지 않았죠.... 그때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들어오는 주문량을 더 늘리는 식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나중에 돌이켜 보면 당시 예측했던 비용은 잘못됐고 소비된 칩의 물량도 모든 사람의 생각보다 100배나 더 늘어났습니다." 결국 인텔은 아이폰용 칩 공급 계약을 거절했다. 애플은 휴대전화에 들어갈 칩을 공급해 줄 다른 업체를 물색했다. 잡스는 암의 아키텍처에 주목했다. x86과 달리 모바일 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전력을 효율적으로 소비했다. 초기 아이폰의 프로세서는 TSMC의 뒤를 이어 파운드리에 뛰어든 삼성이 제작했다. 아이폰이 틈새시장 상품이 될 것이라는 오텔리니의 예측은 처참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그 실패를 깨달았을 무렵에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훗날 인텔은 스마트폰 산업에서 지분을 가져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스마트폰용 제품을 만드는 데 수십억 달러를 투입하고서도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낼 수 없었다. 오텔리니와 인텔이 사태를 파악하기 전, 애플은 깊숙한 해자를 파고 거대한 이윤의 성채를 쌓아 버린 것이다. (p336)
세상에 이윤이 낮은 영역에서 제품 만들기를 원할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것은 합리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단기간에 높은 이윤을 내는 일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니 장기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일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사내 권력이 엔지니어에서 경영자로 넘어간 것 또한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다.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인텔의 CEO였던 오텔리니가 인정한 것처럼, 재무와 실적에 영향을 줄까 두려운 나머지 아이폰용 칩 공급 계약을 거절했다. 이윤율에만 집중하는 경향은 회사 내부에 깊숙이 퍼져 채용, 제품 개발 로드맵, 연구개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인텔의 경영자들은 트랜지스터가 아니라 재무재표를 갈고닦는 일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인텔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한 임원이 이렇게 회고했다. "인텔에는 기술이 있었고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윤율이 떨어질 짓을 하고 싶어 하지 않았죠. " (p338)
많은 이들은 그로브를 지나간 시대의 전형으로 취급했다. 그가 인텔을 만든 것은 한 세대도 더 된, 인터넷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로브가 만든 회사는 모바일 폰의 흐름을 놓쳤고 컴퓨터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제품을 생산하는 대신 x86 독점의 과실을 따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2010년대 초 인텔은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더 작은 트랜지스터가 탑재된 칩을 발매하는 반도체 산업의 선두 주자였다. 고든 무어 시대 이래 꾸준히 같은 호흡을 유지하며 달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텔과 TSMC나 삼성같은 경쟁자의 격차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p340)
"빨리 달리기"는 단 하나 있는 단점을 제외하고 나면 우아한 전략이었다. 몇몇 핵심 지표를 놓고 볼 때 미국은 빨리 달리는 나라가 아니었고, 입지를 잃어 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정부 안에서는 그의 분석에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생산 시설 해외 이전에 대한 앤디 그로브의 우울한 예측은 점점 사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2007년, 국방부는 전직 펜타곤 장교였던 리처드 반 아타Richard Van Atta와 몇몇 동료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반도체 산업의 "세계화"가 군의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었다. 반 아타는 수십 년간 국방용 마이크로 전자 기술을 다룬 사람으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몰락을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했다. 그의 보고서는 경계하며 과잉 대응하는 쪽이 아니었다. 다국적 공급망 덕분에 반도체 산업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평화로운 시기라면 매끄럽게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펜타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민해야 하는 조직이었다. 반 아타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방부가 첨단 칩을 얻기 위해서는 머지않아 외국에 의존할 것이라고 보았다. 너무나 많은 고도화된 제조 시설이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오만에 빠져 있던 단극 시대에서 이런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워싱턴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사실 관계를 알아볼 생각조차 없이 미국이 "더 빨리 달린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역사를 볼 때 미국의 우위가 늘 유지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일본을 앞서지 못했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역전했다. 리소그래피 분야에서 GCA는 니콘과 ASML을 능가할 수 없었다. 마이크론은 동아시아 경쟁 업체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D램 생산자였고, 다른 미국 D램 생산자들은 모두 파산해 버렸다. 2000년대 말까지도 인텔은 트랜지스터 소형화에서 삼성과 TSMC를 능가하는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 인텔의 속도는 느려지고 있었지만, 아직 앞서갈 수 있는 건 처음부터 먼저 뛰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미국은 대부분의 반도체 설계에서 선두를 지키고 있었지만 대만의 미디어텍 MediaTek은 다른 나라에서도 반도체 설계 회사가 등장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반 아타가 볼 때 미국이 자신을 할 이유는 많지 않았고 안심할 근거는 단 하나도 없었다. 2007년 그가 남긴 경고는 다음과 같았다.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선두 자리는 이후 10년간 심각하게 침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귀 기울지 않았다. (p346-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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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엔비디아는 고속 병렬 계산이 컴퓨터 그래픽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놓은 소프트웨어가 CUDA였다. 표준적인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 그래픽과는 전혀 무관한 방향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GPU를 활용할 수 있게끔 한 것이다. 엔비디아가 최고 성능의 그래픽 칩을 찍어 내고 있는 와중에 황은 CUDA라는 소프트웨어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 2017년 한 회사의 추산에 따르면 그때 투입된 돈은 최소 100억 달러였는데, 이렇게 만든 프로그램은 그래픽 전문가뿐 아니라 엔비디아의 칩을 보유한 어떤 프로그래머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황이 CUDA를 무료로 공개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프트웨어는 엔비디아 칩에서만 작동했다. 그래픽 업계 밖에서도 쓸 수 있는 칩을 ���드는 것은 엔비디아에게 엄청나게 큰 새로운 시장을 열어 주었다. 계산화학 computational chemistry부터 기상 예측에 이르기까지 병렬 처리를 원하는 수요를 발굴해 낸 것이다. 그 무렵 황은 어렴풋하게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병렬 처리의 가장 큰 수요처가 될 수 있는 무언가가 떠오르고 있었다. 바로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Al이었다. (p362)
파운드리에서 TSMC의 경쟁 상대 중 비중 있는 존재는 삼성뿐이었다. 삼성의 파운드리 기술력은 TSMC와 어느 정도 견주어 볼 만한 수준이었지만, 생산력에서 TSMC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삼성의 사업 영역 중에는 반도체 설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TSMC는 그저 수십여 고객들을 상대로 칩을 만들며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 외에 다른 목표가 없었지만, 삼성은 자체적으로 스마트폰과 소비자용 가전을 생산하고 있었으니 결국 고객 중 다수와 경쟁하고 있는 셈이었다. 경쟁사들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에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담긴 설계도를 보내면 그것이 결국 삼성 제품에 반영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TSMC와 글로벌 파운드리즈는 그런 이해관계 상충을 겪을 일이 없었다. (p372)
TSMC 같은 파운드리 업체가 부상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은 따로 있었다. 대부분은 그 회사를 반도체 설계 회사로 생각하지도 않는 곳, 바로 애플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은 언제나 하드웨어에 특화된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들이 만드는 기기에 탑재되는 실리콘 칩까지 통제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애플을 처음 창업했을 때부터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1980년, 어깨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기르고 윗입술을 덮을 정도로 수염을 기르던 시절, 잡스는 한 강연에서 청중을 향해 질문했다. "소프트웨어란 무엇일까요?" 그는 스스로 답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소프트웨어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고 있거나, 아직 원하는 것이 뭔지 정확히 알지 못하거나, 원하는 걸 하드웨어에 넣을 시간이 없었거나 하는 그런 것들 뿐입니다." (p377)
반도체 제작 역량이 대만과 한국에 쏠리면서 이들 칩 중 다수의 제작 역량 역시 두 나라에 집중되었다. 스마트폰의 전자두뇌라 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거의 대부분 대만과 한국에서 제조해 중국으로 보낸 다음 스마트폰의 플라스틱 케이스 속에 담겨 유리로 된 스크린을 덮는다. 애플 아이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는 오직 대만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오늘날 애플이 요구하는 제작 역량과 기술을 가진 회사는 TSMC뿐이다. 그러니 모든 아이폰의 뒷면에 새겨져 있는 "캘리포니아의 애플 설계. 중국에서 조립"은 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이다. 아이폰에서 가장 대체 불가능한 부품이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고 중국에서 조립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오직 대만뿐이다. (p381)
2013년부터 ASML의 극자외선 장비 사업을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인 프리츠 반 하우트에게 있어서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투입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떤 개별 부품이 아니라 ASML의 공급망 유지 기술이었다. 반 하우트는 ASML이 그러한 비즈니스 관계망을 "마치 기계처럼" 갈고닦았다고 설명했다. 수천여 회사가 ASML의 정확한 요구 사항에 맞는 정교한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하도록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 하우트의 추산에 따르면 극자외선 장비의 부품 중 ASML이 직접 만드는 것은 1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는 다른 회사의 제품을 구입했다. 이 덕분에 ASML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게 가공된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반대로 공급망 관리와 타 회사의 동향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다. ASML은 극자외선 장비의 핵심 부품에서는 단 하나의 회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 위험 관리를 위해 ASML은 부품 공급사의 공급사까지 샅샅이 찾아다녀야 했다. ASML은 몇몇 부품 공급사에게 투자하는 식으로 보상을 제공하기도 했다. 가령 2016년에는 자이스의 연구개발 과정에 10억 달러를 제공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ASML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출 수 있느냐에 달린 문제였다. "제대로 안 하면 댁의 회사를 인수해 버리겠소" ASML의 CEO인 피터 베닝크 Peter Wennink가 한 협력사에게 한 말이었다. 이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ASML은 여러 협력사를 합병한 바 있고, 심지어 그중에는 사이머도 들어 있었다. 사이머의 경영이 좀 더 개선되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내린 결론이었다. (p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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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이 극자외선 시대에 돌입하면서 인텔은 다시 한번 우위를 차지하는 듯했다. 앤디 그로브가 1990년대 초 최초의 2억 달러를 투입했을 때부터 인텔은 극자외선 기술의 출현에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 끝에 ASML이 그 기술을 현실화할 날이 다가왔고, 인텔에 상당한 몫의 지분이 생겼다. 하지만 인텔은 트랜지스터가 축소되는 이 새로운 시대를 기회로 삼기보다는 주도권을 낭비해 버렸고, 인공지능에 필요한 반도체 아키텍처의 거대한 변화를 놓쳤으며, 그 후 제조 공정을 엉망으로 만들고 무어의 법칙을 지켜 나가는 것도 실패했다. 지금도 인텔은 막대한 수익을 내는 회사로 남아 있다. 인텔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첨단의 반도체를 만들어 내는 기업이다. 하지만 인텔의 미래는 앤디 그로브가 메모리 칩을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모든 것을 걸기로 했던 1980년대 이래 가장 불투명하다. 다가올 5년 동안 선두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만한 실탄이 남아 있지만 불발탄으로 끝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이것은 단지 한 회사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산업의 미래가 걸린 일이다. 인텔이 없다면 첨단 프로세서를 제조할 역량을 가진 미국 기업은 단 하나도 남지 않고, 오직 대만이나 한국만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p400)
통합 모델에도 일부 장점이 있을 테니 인텔의 판단이 어느 정도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통합 모델에는 분명한 단점이 존재했다. 다양한 여러 회사의 칩을 제작하고 있던 TSMC는 인텔에 비해 매년 거의 세 배 많은 실리콘 웨이퍼를 찍어 내고 있었는데, 그 말은 제조 공정을 갈고닦을 기회가 그만큼 더 많다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인텔은 신생 반도체 설계 업체를 위협으로 보고 있었던 반면에 TSMC는 제조 서비스를 위한 잠재 고객으로 인식했다. TSMC의 기업 가치는 단 하나의 분야 즉 효율적인 반도체 제조에서 나왔기에 TSMC 경영진은 낮은 가격으로 더 많은 최신 반도체를 생산해 내는 일에만 온 신경을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에 인텔 지도부는 반도체 설계와 반도체 제조 양쪽에 신경을 써야 했다. 그러다가 둘 다 죽을 쑤고 말았다. (p401)
402-3
2010년대 초, 그래픽 칩 설계 회사 엔비디아의 귀에 흥미로운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스탠퍼드의 박사후과정 학생들이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 장치 GPU를 그래픽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GPU는 인텔이나 AMD의 표준 CPU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다. CPU는 무한히 많은 용도로 사용 가능하지만 하나의 계산이 끝난 다음에야 다른 계산을 할 수 있다. 반면에 GPU는 많은 계산을 동시에 처리하도록 설계된다. 이러한 구조를 "병렬 처리 parallel processing"라 하는데, 병렬 처리가 컴퓨터 게임의 이미지 픽셀 처리 말고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곧 드러난 것이다. GPU는 AI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훈련시킬 수 있다. CPU가 알고리즘에 다수의 데이터를 입력하려면 하나의 처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GPU는 여러 데이터를 동시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이 이미지를 학습한다면 CPU는 픽셀 하나하나를 처리하는 데 비해 GPU는 많은 픽셀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컴퓨터가 고양이를 알아볼 수 있도록 훈련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놀랍게 단축되었다. 그 후 엔비디아는 인공지능에 미래를 걸었다. 창업 초기부터 엔비디아는 칩 제작의 큰 부분을 TSMC에 위탁했다. 대신에 차세대 GPU를 개발하고 엔비디아 칩을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CUDA를 개선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투자자들이 데이터센터에 힘을 실어주면서 더 많은 GPU가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엔비디아 역시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회사로 떠올랐다.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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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명하려는 노력조차 크게 기울이지 않았다. 지난 5년여 시간 내내 그저 "일시적인" 제작 지연이라고 발표했을 뿐이다. 기술적 세부 사항은 비밀 유지 서약을 한 직원들 속에 묻혀 버렸다.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이들은 인텔의 문제가 극자외선 장비의 도입이 늦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여긴다." 인텔은 극자외선 장비를 개발하는 데 돈과 시간과 노력을 퍼부었지만, 정작 2020년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 중 절반은 TSMC에 설치되어 있다. 반면에 같은 시기 인텔은 겨우 극자외선 장비를 제조 공정에 도입하기 시작한 수준이다. 2020년대 말, 최첨단 프로세서를 제조할 수 있는 회사는 단 둘, TSMC와 삼성뿐이다. 여기서 미국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같은 지역에 있고, 따라서 같은 이유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첨단 프로세서 생산은 모두 대만과 한국에서 이루어지며 전 세계의 반도체 수요가 두 나라에 달려 있는데, 이 두 나라는 최근 급부상한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와 지척에 있다. 바로 좁은 바다 건너편에 있는 중화인민공화국이다. (p407)
시진핑의 첫 집권 이후 그를 다룬 기사에서 <뉴요커>는 그가 "중국이 반드시 진정한 정치 개혁을 감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지도자"라고 밝혔다. 분명한 사실은 단 하나, 시진핑이 정치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그의 진심은 꾹 다문 입술과 만들어 낸 미소 아래에 감춰져 있었다. 그 미소 뒤에는 정신을 갉아먹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중국 공산당을 지배한 10년간 시진핑의 정치를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가장 큰 위험은 디지털 세계라고 시진핑은 믿었다. 대다수 관측통들은 시진핑이 자신의 디지털 보안을 보장하는 데 있어서는 두려워할 게 별로 없다고 여겼다. 중국 지도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인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수천여 명의 검열관을 고용해 인터넷의 잡담까지 감시하고 있다. 중국의 방화벽은 거대한 인터넷 세상에서 중국 인민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는데, 이는 서구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가 자유로운 곳이 되리라고 예상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결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시진핑은 인터넷이 민주적 가치를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서구인들의 믿음을 조롱할 수 있을 정도로 온라인을 잘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국민들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웹사이트인 구글이나 페이스북에 접속하지도 못하게 막아놓은 채, "인터넷은 세계를 지구촌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시진핑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글로벌 네트워크는 인터넷 초창기 이상주의자들이 꿈꾸었던 것과는 다른 유형이었다. 그는 중국 정부의 힘을 보여 주는 데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원했던 것이다. "우리는 국경 밖으로 나아가 국제적으로 인터넷 교류와 협력을 심화하고, '일대일로'의 건설에 열성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다른 곳에서 그가 한 말이다. 여기서 시진핑은 중국이 건설한 사회 기반 시설을 통해 세계를 끌어들이려는 계획을 밝히고 있는데, 그 기반 시설에는 도로나 교량뿐 아니라 통신 장비와 검열 장비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디지털 세계에 재갈을 물리는 일을 중국보다 성공적으로 해낸 나라는 없다. 중국은 미국의 빅 테크 기업들마저 굴복시켰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접속 차단되었고 대신에 중국에서 자체 육성한 바이두와 텐센트로 대체되었는데, 이들 기업은 기술적으로 보면 미국 경쟁사에 바싹 따라붙고 있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중국 시장 진출을 허가받은 기업은 베이징의 검열에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중국 시장에 들어갔다. 중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인터넷을 지도자의 뜻에 영합하도록 만들었다. 외국의 인터넷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공산당이 요구하는 검열 규칙에 순응하거나 중국이라는 광대한 시장을 포기하거나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다. (p4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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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도체 산업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베이징에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2014년, "빅 펀드"가 시작될 무렵 첨단 팹의 가격은 100억 달러를 호가했다. SMIC는 2010년대 내내 한 해 수익이 수십억 달러에 지나지 않아서 TSMC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민간 영역의 투자만으로는 TSMC의 투자 계획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터였다. 이런 도박을 하기 위해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지출의 대부분이 지방 정부와 국영 은행의 불투명한 장막 뒤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중국이 반도체 보조금으로 얼마를 "투자"했는지 정확히 추산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수백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중국은 약점을 안고 있었다. 중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와 관계를 형성하는 대신에 끊어 버려야 한다는 의지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한국, 네덜란드, 대만이 반도체 생산 공정의 중요 단계를 독점하는 결과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반도체 산업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던 덕분이다. 대만의 파운드리 산업은 미국의 팹리스 기업이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성장할 수 있었고, ASML의 첨단 리소그래피 장비는 샌디에이고에서 보조금을 받는 기업이 만들어 내는 전문적인 광원 생성 장비가 아니면 작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종종 무역 분쟁이 발생하지만 이들 나라는 모두 유사한 이해관계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으므로, 반도체 설계, 장비, 제조에서 서로 의존하는 것은 세계화된 생산의 효율을 누리기 위해 치러야 할 합리적 대가로 볼 수 있었다. (p424)
만약 중국이 이 생태계에 참여해 더 큰 몫을 가져가고자 했다면 중국의 야망은 아주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의 목표는 미국과 그 우방이 만들어 낸 시스템 속에서 더 나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진핑은 "성채를 공격하라"고 외쳤고, 이것은 시장 점유율을 조금 더 끌어올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반도체 산업에 통합되는 게 아니라 반도체 산업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어쩌면 중국에도 세계 반도체 시장에 좀 더 깊숙이 통합되는 쪽을 선호한 경제 전략가나 반도체 산업 전문가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효율보다 안보를 중요시하는 베이징의 지도자들은 상호 의존 관계를 위협으로 간주했다. '중국제조 2025' 계획은 경제적 상호 의존이 아닌 그 반대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수입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요구였다. '중국제조 2025' 계획의 우선 목표는 중국에서 사용되는 외국산 반도체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었다. 이것은 무역의 이동과 세계 경제를 탈바꿈시키려는 위협적인 경제관이었다. 페어차일드가 홍콩에 첫 설비를 차린 이후, 반도체는 세계화 경제에 일조하고 있었다. 반도체 공급망을 다시 만들겠다는 중국의 구상을 돈으로 환산해 보면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다. 2017년, 시진핑이 다보스 포럼에 등장했던 그해, 중국은 2600억 달러어치의 반도체를 수입했는데,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수출액이나 독일의 자동차 수출을 훨씬 뛰어넘는 규모였다. 중국이 반도체 수입에 쓰는 돈은 전 세계의 비행기 판매액보다 컸다. 세계 무역에서 반도체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제품은 존재하지 않았다. (p425)
중국의 반도체 구상이 실현된다면 실리콘밸리의 이익만 무너지는 게 아니었다. 중국의 반도체 내수화 계획이 성공한다면 중국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수출 주도형 국가들은 더 심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2017년 현재 집적회로는 한국의 수출 총액 중 15퍼센트, 싱가포르의 수출 총액 중 17퍼센트, 말레이시아의 수출 총액 중 19퍼센트, 필리핀의 수출 총액 중 21퍼센트, 대만의 수출 총액 중에서는 36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제조 2025'는 이 모든 현실에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치밀하고 촘촘한 공급망과 무역 이동이 걸려 있었다. 전자 제품 공급망은 지난 50년간 아시아의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떠받쳐 왔던 것이다. 물론 '중국제조 2025'는 계획에 지나지 않았다. 정부가 세운 계획이라 해도 때로는 처참하게 실패한다. 첨단 반도체 제조라는 목표를 두고 중국이 거둔 성적은 인상적이라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엄청난 정부 보조금, 국가 도움을 받아 수행되는 외국 산업 기밀 유출, 외국 기업을 마음대로 굴복시킬 수 있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소비 시장 등, 중국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바꿔 놓을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두루 갖추었다. 세계의 무역 이동을 뒤바꾸는 이 엄청난 전환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나라가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이어야 할 터였다. 중국과 가까운 나라 중에는 베이징이 실제로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왔다. 대만의 테크 업계에서는 한때 대만이 지배하고 있던 고부가가치 전자 부품 산업을 중국 기업이 비집고 들어올지 모른다며, "붉은 공급망red supply chain"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반도체가 그다음이 되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p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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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차이나를 분리해 버린 결정의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소프트뱅크가 중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아 암 중국 지사를 매각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암의 경영진은 매각의 논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니케이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암의 임원중 한 사람이 말한 바에 따르면, "중국 군대나 중국의 감시기구를 위해 [시스템 온 칩] 반도체를 만들 때, 중국은 그런 과정이 중국 내에서만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이런 새로운 합작 회사는 그런걸 만들 수 있죠. 과거에는 우리가 할 수 없던 일입니다." 그의 설명이 계속됐다. "중국은 보안과 통제 가능성을 원합니다. 궁극적으로 중국은 자신들의 기술을 통제하고 싶어 하지요. ... 우리가 가져간 기술을 기반으로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도 혜택을 볼 겁니다." 이 설명에 깔린 상업적 논리는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지만 국가 안보 차원에서 보자면 소름 끼치는 말이다. 소프트뱅크를 규제하는 일본 관료든, 암을 규제하는 영국 관료든, 암의 지식재산 중 상당 부분을 관할하는 미국의 관료든, 이 사안에 대해 더 파고들어 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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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는 스스로를 열성적인 기업가로 여기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큰 기업 사이 합병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자오는 이렇게 밝혔다. "국가주의나 정치적 맥락이 아니라 사업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지만 칭화유니그룹의 활동 내역을 비즈니스 논리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반도체 회사를 사겠다고 달려드는 중국 정부 소유의, 혹은 중국 정부가 자금을 대고 있는 "사모펀드" 회사들이 너무도 많았다. 해외 반도체 기업을 집어삼키려는 중국 정부의 활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이 "돌격 앞으로"를 외치지 않았던가. 자오와 칭화유니그룹, 그 밖에 중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투자" 회사들은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밝힌 방침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p447)
신문 제목을 보면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러니 많은 이들이 화웨이를 처음부터 중국 안보 당국의 비호 아래 큰 회사로 단정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화웨이와 중국 정부가 관련된 부분은 문서로 잘 정리되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떻게 화웨이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사업적 성공을 이룰 수 있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기술에 초점을 맞춘 또 다른 거대 기업인 한국의 삼성과 화웨이의 궤적을 비교해 보는 편이 화웨이의 성장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런은 삼성의 이병철보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났지만 두 거물은 유사한 방식으로 사업을 굴렸다. 이병철이 건어물상이었던 삼성을 세계 최고의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만드는 테크 기업으로 키워 낸 방법은 세 가지였다. 첫째, 정부 규제를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 값싼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적 관계에 계속 공을 들였다. 둘째, 서구와 일본이 개척한 제품군을 특정해서 그것을 같은 품질에 낮은 가격으로 만들어 내는 방법을 모색했다. 셋째, 새로운 고객을 찾기 위해서뿐 아니라 세계 최고의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주저 없이 세계화를 선택했다. 이러한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삼성은 한국의 전체 GDP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익을 달성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 중 하나로 성장했다. 중국 기업이 비슷한 전략을 실행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중국기업은 세계 시장에 비중을 덜 두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중국은 수출 강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터넷 기업은 대부분의 돈을 규제와 검열로 보호받는 자국 시장 내에서 벌어들였다. 텐센트, 알리바바, 핀둬둬Pinduoduo (중국의 인터넷 쇼핑 회사), 메이투안Meituan (중국의 음식 배달 회사)은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고 나면 초라한 회사가 될 정도였다. 해외로 발을 디딘 중국 테크 기업은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수난을 겪기 일쑤였다. 반면에 화웨이는 초창기부터 외국과의 경쟁을 받아들였다. 런정페이의 사업 모델은 알리바바나 텐센트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그는 해외에서 선구적인 개념을 받아들여 가성비 좋은 버전을 만들어 냈고, 그것을 다시 세계 시장에 팔아서 다른 나라 경쟁사들이 차지하고 있던 세계 시장 점유율을 가져왔다. 이 사업 모델은 삼성의 창업가를 부자로 만들어 주면서 삼성을 세계 기술 산업의 핵심으로 올려놓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주 최근까지 화웨이는 삼성의 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p45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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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 통신을 통한 연결과 연산력의 성능이 구세대 제품을 디지털 기기로 바꿔 놓은 경우를 보려면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자동차 회사 테슬라 Tesla 만큼 좋은 사례는 없다. 테슬라는 그 숭배자와 주가 상승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사실이있다. 테슬라 역시 반도체 설계 분야의 주요 회사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테슬라는 짐 켈러Jim Keller 같은 반도체 설계 분야의 스타를 고용해 자율 주행의 필요에 부합하는 특화된 반도체 설계를 맡겼다. 오늘날의 첨단 기술이 녹아들어 있음은 물론이다. 2014년 초부터 몇몇 분석가는 테슬라의 자동차가 "스마트폰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자체 반도체를 스스로 설계하고 있기에 테슬라는 종종 애플과 비교되곤 한다. 테슬라는 애플 제품과 마찬가지로 사용자 경험을 섬세하게 조율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제품인 자동차에 고도의 컴퓨터 기술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융합시켰다. 이 모든 일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 덕분이다. 1970년대부터 자동차에는 단순한 반도체가 도입되어 왔지만 전기차가 확산되면서 특화된 반도체의 필요성이 커졌다. 전력 공급을 관리하고 자율 주행 기능에 필요한 연산력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일반 자동차에 필요한 반도체 개수와 비용 역시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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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상쇄 전략 자동화된 드론 군단부터 사이버 공간과 전자기파 스펙트럼 속에서 펼쳐지는 보이지 않는 전투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미래는 연산력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미군은 이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선두 자리에 있지 못했다. 정교한 미사일과 모든 것을 감지하는 센서 덕분에 전 세계의 바다와 하늘에서 어느 누구도 미군에 필적할 수 없던 시절은 끝난 지 오래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전 세계의 국방부를 전율시켰던 충격파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사담 후세인의 군대를 무력화했던 정밀 폭격은 세계 어느 군대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점은 베이징에 "심리적 핵 공격"과 다를 바 없는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걸프전 이후 30년이 흘렀다. 중국은 첨단 기술 무기 체계에 막대한 자금을 퍼부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인민을 동원한 군대, 기술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군대에 대한 교조적 집착이 있었으나 그것을 버렸다. 미래의 싸움은 첨단 센서, 통신, 컴퓨터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지금 중국은 첨단 전투 부대가 필요로 하는 컴퓨팅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p469)
베이징의 목표는 단순히 미국과 맞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정도가 아니었다. 미국의 우위를 "상쇄otset "할 수 있는 역량을 개발하기를 원했다. 1970년대 미국이 소련에 맞서기 위해 창안했던 "상쇄 전략"을 중국이 미국에 맞서 구사하고자 한 것이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구조적으로 우위에 있는 무기류를 현장 배치했다. 중국의 정밀한 대함 미사일은 잠수함을 제외한 미국의 군함이 유사시 대만해협에 진입할 때 극도로 위험한 공격 수단이며, 미국의 해양력을 항구에 묶어 놓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새로운 방공 시스템air defense systems은 군사 분쟁 시 제공권을 장악하는 미국의 능력에 맞설 수 있다. 장거리 지상 공격용 미사일은 일본에서 괌까지 이어지는 미군 기지를 위협한다. 중국의 위성요격 무기는 미국의 통신과 GPS 네트워크를 작동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중국의 사이버전 역량이 아직 전장에서 확인된 적은 없으나, 중국은 미군 전체 시스템을 무너뜨리고자 할 것이다. 전자기파 스펙트럼마저도 미래의 전장이다. 그곳에서 중국은 미국의 통신을 교란하고 감청 시스템을 속이면서 미군이 적군을 볼 수 없게 만들고 동맹과 소통하는 것도 차단하고자 할 것이다. (p470)
중국군이 이런 능력을 키워 나가게 된 것은 중국 군부 고위층이 품고 있던 생각 때문이었다. 그들은 앞으로의 전쟁이 단순히 "정보화 informationized"되는 차원을 넘어 "지능화 intelligentized" 할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을 무기 시스템에 적용한다는 뜻이 담긴 그다지 정제되지 않은 군사 용어다. 물론 연산력은 지난 50년 동안에도 군사력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군사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다루어야 하는 1과 0의 양은 수십 년 전과 비교하면 수백만 배 넘게 늘어났다. 게다가 오늘날 미국은 확실한 도전자와 맞닥뜨리고 있다는 점 또한 달랐다. 미사일 대 미사일의 숫자만 따지면 소련은 미국의 상대가 되었지만 소련의 컴퓨터는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중국은 양쪽 모두에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운명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었다. 1과 0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는 국가가 결정적인 군사적 우위를 갖게 될 터였다. (p471)
군사용 인공지능이라는 말은 살인 로봇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지만, 군사 체계에서 머신러닝을 이용해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은 실로 광범위하다. 언제 어떤 기기를 수리해야 할지 AI를 통해 예상하고 미리 정비하는 예측 유지 보수Predictive maintenance는 이미 현장에서 비행기와 배를 수리하는 데 사용되는 기술이다. 잠수함의 수중 음파 탐지, 인공위성이 보내는 영상 등을 AI로 식별하면 적의 위협을 더 정확하게 판별할 수 있다. 새로운 무기 체계는 보다 빨리 설계할 수 있다. 특히 움직이는 목표를 대상으로 하는 폭탄과 미사일의 정확도가 이전에 비해 향상될 것이다. 자동 운항 수단이 하늘과 수면 아래, 육상을 누비며 수색하고 적을 식별하여 파괴할 것이다. "인공지능 무기" 같은 말을 들으면 대단한 혁명적 변화가 벌어질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미 수십 년 동안 발사 후 알아서 표적을 추적하는 자동유도 미사 일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무기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스스로 움직이게 되면 무기가 요구하는 연산력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p472)
중국이 인공지능으로 강화된 무기 체계를 개발하고 배치하는 싸움에서 이길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그 "경쟁"은 단일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이 대목에서 냉전의 군사 경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최초로 인공위성을 우주로 보낸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떠 올려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그러나 AI 시스템에 대해 중국이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상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조지타운대학교의 벤 부캐넌Ben Buchanan은 AI를 제대로 다루려면, 데이터, 알고리즘, 연산력의 '세 기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중국은 그중 두 영역에서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고, 부족한 것은 오직 연산력뿐이다. (p472-473)
냉전의 승부는 미국 미사일의 유도 컴퓨터 주위를 도는 전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싸움은 전자기파 스펙트럼 속에서 결판이 날 수 있다. 전자 센서와 통신 장비에 온 세상의 군대가 더욱 의존할수록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적을 탐지하고 추적하는 데 필요한 스펙트럼 공간에 접근하기 위한 싸움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전시에 전자기파 스펙트럼이 어떻게 작동할지 단지 얼핏 보았을 뿐이다. 가령 2007년 이스라엘이 시리아의 핵 시설을 공습했을 때,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레이더를 교란하거나 해킹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던 시리아의 방공 시스템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다양한 레이더와 신호 교란기를 동원하고 있다. 또 러시아 정부는 보안을 고려하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있을 때 방문지의 GPS 신호를 차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DARPA는 GPS 신호나 인공위성에 의존하지 않는 대안 항법 체계를 연구 중이다. GPS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미국의 미사일이 목표물을 맞힐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p478)
워싱턴과 반도체 업계의 거의 모든 사람이 세계화라는 꿀단지를 끌어안고 단물을 마셔 왔다. 언론과 학자들 역시 세계화를 진짜로 "글로벌"한 것처럼 전달해 왔다. 기술 확산은 막을 수 없고, 다른 나라의 기술 역량이 발전하면 미국에 이익이 되며, 설령 미국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술의 진보를 막을 수는 없다는 식이었다. "반도체 산업이 세계화된 세상에서 일방적인 행위는 점점 더 무의미한 것이 된다"라고 오바마 정권의 반도체 보고서는 주장하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정책은 기술의 확산 속도를 지연시킬 수는 있으나 그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는 없었다. 그냥 그럴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은 "세계화"가 아니라 "대만화"였다. 기술은 확산되지 않았다. 대체 불가능한 한 줌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만 살펴봐도 세계화의 불가피성이란 틀린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미국의 기술 정책은 그 흔한 상투적 어구에 인질로 잡혀 버리고 말았다. 미국은 제조, 리소그래피, 그 외 다른 영역에서 기술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우위를 헛되이 흘려보냈다. 경쟁의 주체는 기업이며 정부는 그저 평평한 운동장을 깔아 주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워싱턴이 빠져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경제학 교과서와 신문 칼럼에서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그런 주장은 특히 아시아의 반도체 산업에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 있다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미국의 관료들은 다른 나라가 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부분을 움켜쥐고 있는 현실을 그저 무시해 버렸고, 그러는 사이 미국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p490-491)
실리콘밸리 사람들 중 다수가 트럼프를 미워하고 있었던 것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인텔의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대통령 후보로 나온 트럼프에게 후원금을 약속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역풍을 감수해야 했다. "그 후 백악관 보좌관으로 영입된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업계의 경영진은 트럼프의 국내 정책을 못 본 척하려 했지만 트럼프는 조변석개하는 사람이었고 동맹으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트위터로 관세 정책을 발표하는 이가 CEO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의 메시지는 트럼프 백악관에서 새어 나오는 이야기들과 너무도 상충되는 것이었다. 공개 석상에서 반도체 업계 CEO와 로비스트들은 새 정부가 중국을 설득하여 무역 협정에 순응하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석에서 그들은 그런 접근법이 통할 리 없다고 인정하면서 국가 보조를 받는 중국의 경쟁 기업이 실리콘밸리가 가지고 있는 시장을 빼앗을 것이라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중국 시장 판매에 대한 반도체 업계 전반의 의존도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인텔 같은 칩 제조사, 퀄컴 같은 팹리스 설계 업체, 혹은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 같은 장비 제조 업체 모두 마찬가지였다. 미국 반도체 기업의 어떤 경영자는 한 백악관 관료에게 이 상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전달했다. "우리의 근본 문제는 우리의 최대 고객이 우리의 최대 경쟁자라는 겁니다." (p496)
2018년 4월, 트럼프와 중국의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서 미국 정부는 ZTE가 형량 거래를 어겼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 관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한 보좌관의 전언에 따르면 트럼프의 상무부 장관인 윌버 로스Wilbur Ross는 이 사안을 "매우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 로스는 2017년에 타결된 ZTE의 형량 거래에서 일익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상무부는 미국 기업과 ZTE의 거래에 새로운 제약을 가하기 시작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결정은 "거의 아무도 모르게" 상무부 내에서 전달되었다. 이 규제가 회복된다면 ZTE는 미국산 반도체를 비롯한 다른 물품을 구입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이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ZTE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본인은 기술보다 무역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는 ZTE의 목을 졸라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시진핑과의 협상 카드로 바라보았다. 중국 지도자들이 그런 방향의 거래를 제안하자 트럼프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그 소식을 트위터로 알렸다. ZTE가 "중국에서 너무 많은 일자리 손실을 가져올" 것을 고려하여 ZTE를 살려둘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었다. 곧 ZTE는 다시 한 번 벌금을 내고 미국의 부품 공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무역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 워싱턴의 대중국 강경파는 재무부 장관인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같은 관료에게 트럼프가 놀아났다고 생각했다. 므누신은 트럼프에게 베이징과 화해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촉구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ZTE 대소동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크 기업들 모두가 미국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한 관료의 표현처럼 그저 "우리가 경쟁하는 모든 것"의 "주춧돌" 정도가 아니었다. 그 자체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p49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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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헨리 패럴Henry Farrell과 에이브러햄 뉴먼Abraham Newman 이라는 두 미국인 학자가 "무기화된 상호 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e" 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국제 정치와 경제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적한 바에 따르면 세계 각국이 전에 없이 얽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갈등이 해소되고 화합이 증진되기는커녕 상호 의존은 새로운 경쟁의 장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여러 나라를 하나로 엮어 주는 네트워크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금융 분야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가 미국의 은행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무기로 삼아 이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들 학자가 볼 때 미국 정부가 무역과 자본 이동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세계화를 위협하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트럼프 정부는 같은 사실을 보며 다른 결론에 도달해, 반도체 공급망에서 미국이 가진 특별한 힘을 기꺼이 무기화하기로 했다. (p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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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기술 경쟁이 과열되면서 중국 정부가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를 맞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흔히 제기되었다.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니크호를 발사한 후 미국은 경쟁자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혔고 워싱턴이 과학과 기술에 돈을 쏟아붓게 된 일련의 사건들처럼, 이번에는 중국에서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미국이 화웨이 같은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도체 수출을 금지하면서 중국이 스푸트니크급 충격을 받은 것은 분명해 보였다. 중국의 기술 정책에 대한 가장 똑똑한 분석가 가운데 하나인 댄 왕Dan Wang은 미국의 규제가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새로운 정책을 촉진함으로써, "기술 지배를 향한 베이징의 추구를 가속화"했다고 주장한다. 왕이 볼 때 미국의 새로운 수출 규제가 없었다면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지금까지 해 왔던 산업 정책과 같은 결말을 맞이했을 터였다. 정부가 상당한 액수의 헛돈만 쓰고 끝났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미국의 압력 덕분에 중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그보다 훨씬 큰 지원을 제공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p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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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반도체 부족을 공급망의 문제로 해석했다. 백악관은 250쪽에 달하는 연구 용역을 통해 반도체에 초점을 맞춘 공급망 취약성을 다루었다. 하지만 반도체 부족이 발생하게 된 주된 원인은 반도체 공급망 때문이 아니었다. 가령 말레이시아의 코로나 락다운으로 인해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 타격이 왔던 것처럼. 공급 측면의 혼란이 일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21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칩을 생산하고 있었다. 반도체 시장조사 기관인 IC 인사이트IC Insights에 따르면 2021년 출고된 반도체는 총 1조1000억 개를 넘겼고, 이는 2020년 대비 13퍼센트 증가한 것이다. 반도체 부족의 주요 원인은 공급 측면보다 수요 증가를 살펴보아야 할 일이었다. 새로운 PC, 5G 스마트폰,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등, 결국에는 우리가 연산력을 엄청나게 사용하고 있기에 벌어진 일이다. 이는 전 세계 정치인들이 반도체 공급망의 딜레마를 잘못 진단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도체 업계가 코로나와 그로 인한 락다운에 잘못 대처했고, 그래서 생산이 지연되었다는 식으로 문제를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반도체 업계만큼 큰 탈 없이 코로나 기간을 통과한 업계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특히 자동차용 반도체에서 도드라진 문제는 자동차 회사들 스스로가 겁에 질려 내린 잘못된 판단 때문이었다. 코로나 초기 반도체 주문을 너무 일찌감치 취소해 버린 그들은 적시공급생산방식 just-in-time을 택하고 있던 터라 보유 재고가 충분치 않았고 주문 실수를 무마할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없었다. 자동차 산업은 코로나 기간 동안 수 천억 달러가 넘는 매출 손실을 겪었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공급망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재고해 볼 이유가 충분했다. 반면에 반도체 산업은 풍년을 맞았다.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전제했을 때,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0이라고 할 수는 없을 엄청난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2020년대 초부터 벌어진 코로나 충격에 비할 만한 일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 와중에도 반도체 생산은 2020년과 2021년 확연히 상승했다. 이는 다국가적 공급망이 망가진 상태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공급망은 잘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p53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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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최근 <포어페어스>를 통해 대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은 "대만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실리콘 방패'이며 국제 공급망을 교란하려는 독재 정권의 공격적 시도에 맞설 수 있게 해 준다"라는 것이다. 이것은 현 상황을 대단히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아닐 수 없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이 미국으로 하여금 대만의 방위를 보다 진지하게 고려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반도체 생산이 대만에 집중되는 것은 세계 경제에 위험 요소가 되고 있으며, "실리콘 방패"가 중국을 막지 못한다면 그 위험은 현실이 될 것이다. 2021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대만인이 중국과 대만 사이의 전쟁 가능성이 낮다(45퍼센트) 혹은 불가능하다(17퍼센트)고 보고 있었다. 전쟁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지난 50년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하다. (p553-554)
연산력을 만들어 내는 일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복잡한 과제다. 이는 실리콘밸리의 성공이 단지 과학이나 엔지니어링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장을 만났을 때에만 발전 가능하다. 반도체의 역사는 반도체 판매, 마케팅, 공급망 관리, 원가 절감의 역사이기도 하다. 실리콘밸리는 사업가들이 아니었다면 탄생할 수도 없었다. 밥 노이스는 MIT에서 공부한 물리학자였지만 사업가로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때까지 존재하지도 않았던 제품을 만들고 시장까지 개척해 냈던 것이다. 고든 무어가 그 유명한 1965년 기고문에서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페어차일드반도체는 "집적회로에 더 많은 부품을 우겨넣는" 능력을 지닌 회사였지만, 그것은 그 회사가 보유한 물리학자나 화학자들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의 효율을 추구하며 몰아붙이는 찰리 스포크 같은 이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도체 팹은 노조 없이 운영되었고 대신에 ��원에게 스톡 옵션을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거침없이 끌어올릴 수 있었다. 오늘날 트랜지스터의 개당 가격은 1958년과 비교해 볼 때 100만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 안타깝게도 이름이 남아 있지 않은 한 페어차일드 직원이 퇴사 설문조사에 남긴 말에서 우리는 그런 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를 더듬어 볼 수 있다. "나는 ・・・ 부자가・・・ 되고 ・・・ 싶다." (p559-560)
무어의 법칙의 종말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서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에 들어오는 돈의 액수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AI 알고리즘에 특화된 칩을 설계하는 스타트업들은 지난 몇 년간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모두가 차세대 엔비디아가 되는 꿈을 품고 있는 것이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알리바바, 그 외 많은 빅테크 기업은 이제 엄청난 돈을 들여 반도체를 자체 설계하고 있다. 혁신을 이루려는 시도가 부족하다는 증거는 단연컨대 찾아볼 수가 없다. 무어의 법칙을 옹호하는 최고의 주장은 이렇다. 무어의 법칙은 특화된 목적의 칩이 나오면서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은 개별 기업이 칩을 설계하고 있는데, 이는 인텔이 "범용 목적"의 연산력을 제공하기 위한 칩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회사는 그 칩의 성능 향상에 기대야만 했던 지난 반세기의 경향과 분명히 다른 것이다. 닐 톰슨Neil Thompson과 스벤야 스파누스svenja Spanuth라는 MIT의 두 연구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범용 목적 컴퓨터 기술의 끝"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컴퓨터 사용이 "강력한 전용 칩에서 작동하는 '추월차선' 애플리케이션과 더 이상 발전하지 않는 범용 목적 칩을 사용하는 '일반 차선' 애플리케이션"의 두 가지 종류로 양분될 것이라 보고 있다. (p563)
또 서로 다른 종류의 칩을 혼용해서 사용하는 일이 더욱 쉬워졌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는 하나의 기기에 단일한 프로세서 칩이 탑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개의 프로세서가 들어간다. 어떤 칩은 전반적인 용도로 사용되지만, 카메라 같은 특수 목적을 위해 최적화된 프로세서도 존재한다. 새로운 반도체 패키징 공정이 출현하면서 칩을 보다 효율적으로 연결하는 일이 가능해졌고, 전자 기기를 만드는 회사들은 기기에서 요구되는 연산에 따라 혹은 비용에 맞춰 특정 칩을 넣거나 빼는 일 또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대형 칩 제조사들은 그들이 만든 칩이 어떤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어디에 쓰일지 이전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니 고든 무어가 처음 예상했던 바로 그 방식 그대로 무어의 법칙이 한계에 도달했느냐 여부는 우리가 진짜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칩 하나에 올라가는 트랜지스터 수가 말 그대로 지수함수적으로 늘어나는지 여부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대신에 우리는 하나의 칩에 담길 수 있는 연산력이 늘어나고 있는지, 그러면서 비용 효율성을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한계에 도달했을까? 수백억 달러의 연구비를 쓰는 수천여 엔지니어들은 여전히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다. (p565)
<'마법'의 기술,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그려 보려면_노정태>
21세기, 우리 인류는 어쩌다 이런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되었을까? 너 나 할 것 없이 손에 쥐고 다닐 만큼 첨단 반도체가 흔한 세상에 살게 된 건 대체 어떤 이유 때문일까? 나무에서 내려와 사바나 평원에 선 유인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끝없이 전쟁을 해 왔다. 그 모든 전쟁은 결국 단 하나의 실력으로 판가름 났다. 누가 상대보다 더 빨리, 더 강하게, 더 정확하게 무언가를 던져서 목표를 맞출 수 있는가다. 선사 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규칙이다. 상대보다 나은 투척 능력을 가진 자는 적이 다가오기 전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다. 날카로운 이빨도 강한 근육도 없는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들보다 큰 거의 모든 대평 포유류를 멸종시킬 수 있었던 것은 돌과 창을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p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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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만의 TSMC가 필요하다. 네덜란드 기업 ASML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장비가 없으면 TSMC는 애플의 최신 칩을 만들 수 없다. ASML은 미국의 사이머, 독일의 트럼프와 자이스의 핵심 부품에 의존한다. 이토록 촘촘하고 정교한 글로벌 공급사슬 덕분에 우리는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기술을 영위하며 살 수 있다. 반도체 국수주의는 위험천만할 뿐 아니라 어리석은 발상이다.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 외 수많은 반도체 기업 또한 글로벌 공급사슬의 일부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죽창가'를 부르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고 해서 '소재, 부품, 장비 독립'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러한 시도가 무망하다는 것은 기술 수준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낮았던 1970년대, 마오쩌둥의 권력욕이 빚어낸 문화혁명을 겪은 중국이 이미 처참한 실패로 증명한 바 있다. 우리는 미국이 우리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갈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잘못된 산업, 외교, 안보 정책 등으로 인해 스스로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망가뜨리고, 그렇게 생긴 시장의 빈틈을 일본, 미국, 대만, 중국 등 경쟁국이 가져갈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칩 워>가 다양한 각도로 촘촘하게 서술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현재, 미래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한 걸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p578)
- 크리스 밀러 , ' 칩워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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