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lye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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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행에서 얻은 것
내가 한 여행들은 언제나 나에게 피로를 남겼다. 여행지를 마냥 걷다 육체적 피로를 얻기도 했고,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소화하려 두뇌를 풀로 가동하다 정신적 피로를 얻기도 했다. 피로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의 나는 늘 기진맥진했다. 얼른 집에 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지난 주에 다녀온 제주도 여행은 달랐다. 여행을 마치고 김포공항 출구를 나서는데, 전혀 피로하지 않은 것이다. 도리어 산뜻한 기분을 느꼈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도 내 안에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이런 기분은 느껴 본 적이 없어 나도 내가 신기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산문 <여행의 이유>에서 여행기는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 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나 또한 얻고자 했던 것은 반쯤만 얻고, 예상치 못했던 것을 얻어온 여행을 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내가 얻고자 한 것은 단 두 가지, 철저한 쉼과 무한한 영감이었다. 그래서 숙소도 관광지와는 거리가 있는, 서쪽의 조용한 시골 마을 판포리에서 구했다. 일몰 시간 이후엔 가로등 불빛 하나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번화하지 않은 곳이었다. 더 많이 구경하고 더 많은 사진을 찍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잘 자고, 잘 먹고, 깊이 생각하고 싶었다.
참 잘 쉬었다. 판포리의 내 방은 고요했다. 밤에 불을 끄고 누우면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강변북로를 접하고 있는 서울의 내 방에서 매일같이 소음에 시달리다 맞이한, 꿀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잘 잤다. 매일 밤 여덟 시간씩은 꼭 잔 것 같다. 또, 어딜 갔다 왔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 판포리 동네(에 있는 바다 주변)를 걷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북카페에 가서 책을 읽고, 노래를 들으며 걷고,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오랜만에 제주도민 친구들도 만났다.
영감은 못 얻었다. 제주도의 돌담, 즐비한 선인장��� 그 끝에 피어난 백년초, 끝간 데를 모르고 펼쳐진 바다, 여유로운 사람들…. 이런 제주의 환경에 처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쓸 온갖 영감이 피어날 줄 알았다. 그런데 영감을 얻어야지 하고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면 오히려 생각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었다. 점점 더 멍해졌다. 눈 앞의 풍경에 눈과 생각과 마음을 모두 빼앗겨서 그 외의 새로운 생각이나 영감 따위는 낄 새가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것도 있었다. 하나는 생활 습관. 나는 스스로 충분히 납득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다. 예컨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좋다는 말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나는 그저 하나의 교조적 명제로 여겼다. 어떤 이에게만 좋은 것을 과도하게 일반화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대로' '자발적으로' 행해본 적도 없었다.
내가 묵은 게스트하우스는 밤 11시에 공용 공간을 소등하고 욕실 사용도 자제시켰다. 자연스럽게 나는 11시 이전에 씻어야 했고, 같이 묵던 게스트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11시에는 내 방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일기도 쓰고, 그 날 찍은 풍경 사진도 포고, 책도 읽다 보면 자정이 지나기 전에 시나브로 잠기가 왔다. 푹 자고 일어나면 알람 없이도 8시에 깼고, 9시에 조식을 먹었다. (이 시간이 과연 ‘일찍’인지는 차치하자.)
그렇게 사흘을 지내 보니 너무 좋은 것이다. 완전히 납득됐다. 푹 자서 컨디션도 좋고, 아침에 일과를 시작하니 하루도 길게 느껴지고, 긴 수면시간을 확보하려니 하루 일과의 집중도도 높아지고,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침대에 누워 잘 준비를 시작하니 잠의 질도 높아졌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비슷한 생활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고, 소기의 성과를 달성했다.
예상치 못하게 얻은 또 다른 하나는 이소호 시인이다. 작지만 알차게 큐레이팅된 고산리의 작은 서점에서, 이전엔 존재도 몰랐던 이소호 시인을 발견한 것이다. 그녀의 시집 ‘캣콜링’에서 고작 몇 개의 시를 훑었을 뿐인데 나는 순식간에 매료됐다. 시를 어렵게 생각했고, 오래된 것이라 생각해 왔다. 젊은 황인찬 시인의 시집을 선물받은 적이 있었지만, 재미를 붙이진 못했다. 이소호 시인의 시는 대단히 현대적이고, 충격적이고, 충격적일 정도로 좋다. 요즘 밤마다 그녀의 시를 한두 개씩 읽고 자는 재미가 있다.
얻고자 했던 것은 반쯤 얻고, 예상치 못했던 것도 조금 얻은, 어떤, 피로하지 않았던 여행. 처음으로 해 본 피로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일상을 다시 살아갈 힘을 준 여행이었다. 이런 여행이 있어야만 살 힘을 얻는다는 것이 조금 슬프고 ���기지만, 앞으로 피로한 여행과 피로하지 않은 여행을 적당히 버무려가며 써 나갈 나의 새 여행기들이 기대된다. 이렇게 기대할 에너지도 이번 여행에서 얻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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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권위주의에 대한 생각
권위
(1) 남을 지휘∙감독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
(2)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 또는, 그런 사람.
권위주의
어떤 일을 권위에 의지하여 해결하려는 태도. 또는, 귄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한 가족 옆에 서게 됐다. 아빠, 엄마, 그리고 초등학생 쯤 돼 보이는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그들에게 우연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들이 아빠에게 칭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사정이 궁금해 은근슬쩍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는데, 사정은 이런 듯 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아들이 보도의 가장 바깥, 차도의 가까이에 가서 선 모양이다. 그래서 아빠는 안쪽으로 들어와서 기다리라고 했고, 아들이 그 말을 듣지 않자, 아빠가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들을 나무란 것 같았다.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다.)
거기서 아들의 칭얼거림, 혹은 정당한 자기주장,이 시작된 거다. 왜 말로 하지 않고 자신에게 그랬냐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 중 어느 누구도 아들의 이야기를 진중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아빠는 아주 덤덤한 말투로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지."하고 말했다. 아들의 성에 차지 않는 대답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내내 아들의 항의는 계속됐다. 엄마는 짜증이 났다. "아, 그만해. 네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랬잖아. 말을 들었어야지."
'말로 해서 안 들으니까 그렇다.'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이다.
아들은 자신이 겪은 불합리한 상황에 얼마나 울화통이 터졌을까. 아이의 잘못, 혹은 아이의 위험한 행동에 대해서는 혼내고 지적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렇듯 담담하고 무심하게, 아이의 항변을 듣지도 않은 채로 폭력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을 지나치면서, 아들에게 공감하며, 마음속으로 격하게 화를 낸 것은 나 또한 수 차례 비슷한 레파토리에 처해봤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기 전, 내가 혼나던 상황들을 나는 패턴화할 수 있다.
주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엄마와 말다툼을 시작한다. 말도 꽤 잘하는 편인 데다 고집도 세고 감정적인 나는 ���마가 싸움에 지치고 엄마를 감정적으로 바꿔놓을 때까지 몰아친다. 그러��� 갑자기 가족 씬에 잘 등장하지 않는 아빠가 어디선가 나타나 나를 혼낸다. 효자손 같은 것을 한 손에 들고는 한 번만 더 엄마에게 대들면 말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빠와 친하지 않고, 말이 아닌 다른 방식을 무서워하는 나는 더 항변하고 싶은 마음과 억울한 마음을 꾹 참고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걸어잠근다. 엄마와 나, 둘 사이의 문제를 아빠에게 넘겨 해결하려는 엄마에게 분노하는 나는 한동안 엄마와 말을 섞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항변을 이어간다.
권위주의적 해결은 간단하고, 신속하며, 편리하다. 부모의 감정소모를 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횡단보도의 그 아들이 부모에 대한 이성적 평가를 내리기 시작할 때, 아들은 자신의 권위주의적 부모를 어떻게 평가하게 될까?
나는 청소년기 내내 "권위주의적인 우리 아빠는 불합리해. 어떤 말도 통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대화하자는 제안은 모두 허울뿐이야."하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가득 채웠었다.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아빠에 대한 강력한 편견은 내게서 아빠의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면모를 발견할 기회를 빼앗아갔다. 그럴 마음의 구석을 남겨두지 않았다.
부모에게 부모로서의 권위가 있는 것과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다른 것이다. 권위와 권위주의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꼰대’다. 지금의 편리한 권위주의는 횡단보도의 그 ‘꼰대’ 부모에게 장기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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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친구
여러분에게 동네 친구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없기 때문에 여러분이 있다고 답한다면 약간의 부러움을 느낄 예정이다.
여기서 동네 친구란 좁은 의미와 넓은 의미에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는 전통적 의미의 동네 친구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학교나 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는, 내가 만들어낸 것인데, 시장 단골 떡볶이집이나 단골 가츠동집, 단골 토스트집, 도서관, 매주 가는 한의원 등이 포함된다. 예시에 먹을 것이 많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없어서 사무치게 슬프고 헛헛한 사람이다.
어느 날은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따뜻한 노란 불이 켜진 이자카야를 지나치게 됐다. 이자카야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대화가 어찌나 정다워 보이던지! 아, 내게도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가 있었더라면… 나의 과거 동네 친구들은 대부분 강 건너편에 산다. 아파트 이웃의 정이 사라진 요즘 간간이 귤과 떡을 서로 나누던 이웃집도 이사간 지 오래다.
게다가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없다. 나는 건대입구역 근처에 산다. 그러면 친구들은 내게 종종 건대입구 맛집을 물어본다. 미안하지만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왔는데, 노는 것은 대학교 주변에서 모두 마치고 귀가하기 때문에 집 근처의 맛있는 곳이나 놀 만한 곳을 진짜 모른다. 아, 나는 이방인 같아… 내가 10년을 산 대치동 일대는 나름대로 빠삭한데. 나의 최애 떡볶이집은 도곡시장에 있었다. 거기서 먹는 떡볶이와 김치만두의 조합이 정말 일품이었다. 이사오고도 종종 찾아갔던 곳인데, 이젠 아예 문을 닫으셨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도 있는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제일 부럽다. 그렇지만 둘 다 없는 나라고 해서 영원히 시무룩하게 지낼 순 없다. (좁은 의미의) 동네 친구를 만들긴 글렀다. 그러니 (넓은 의미의) 동네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지금까지 건대입구 근처에서 쌓은 데이터는 과제하기 좋은 카페들에 불과했다. 건대입구역 2번 출구 나오자마자 있는 엔젤리너스와 뚝섬유원지역 1번 출구에서 조금 걸어가면 나오는 ���이프온마스. 그러나 이제는 혼자서라도 꿋꿋이 맛집도, 걷기 좋은 곳도, 예쁜 카페도 찾아다닐 테다.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최근 발견한 맛집은 건대입구 CGV 건물에 있는 후쿠오카 모츠나베다. 프랜차이즈지만 다른 지점과 달리 혼자 가서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 친한 언니와 우연히 처음 가서 맛과 가성비에 반한 이후, 혼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다녀오기도 했고, 엄마를 모시고 가 먹기도 했다. 조만간 또 갈 것이다. 이 정도면 단골집 동네 친구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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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란 무엇인가
2018년 10월 27일. 나에겐 나른한 토요일이었고, 유대인에겐 안식일이었다. 피츠버그의 트리 오브 라이프 유대교 예배당에선 한 아기의 이름 명명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도 트리 오브 라이프 예배당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범인의 총에 맞은 유대인 11명이 사망했다. 범인은 반유대주의자. 명백한 혐오 범죄였다.
내가 한국에 있었다면 ‘미국에서 또 총격 사건이 일어났구나’ 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었다. 미국의 거리를 오가고, 미국인과 일하며, 미국의 신문을 구독하고 있었다. 유대인 친구가 있었고, 유대인 기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었다. 깊은 상처를 입었을 유대인들에게 반유대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작은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난생 처음 유대교 예배당으로 향했다.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도착한 예배당은 이미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비가 오는 궂은 날이었는데도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저만치까지 줄을 서 있었다. 예배당의 1층과 2층이 사람들로 빽빽히 들어찼다.
혐오란 무엇인가.
예배 내내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었다. 혐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도대체 누가 누구를 혐오하는 것인가. 내 주변엔 유대인의 표식을 단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도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혹은 그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나 또한 유대교 예배당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험할 수 있었다. 소름이 끼쳤다.
혐오는 도처에 존재한다. 곳곳에, 미세하게, 때론 명백하게, 만연하게.
나는 예배당으로 향하던 길에도 혐오를 목격했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 안. 내 앞에 서 있던 아줌마가 나에게 거친 언행을 사용하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요지는 한 번만 더 자신의 몸을 건들이면 나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것. 나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몸이 밀리던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녀를 더 자극하다 위험에 처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여자가 내 편을 들었다. “아주머니, 지금 여기서 서로를 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 아줌마에게 사과하지 말아요.” 쭈구리같이 사과하던 내게서 우월감을 맛보고 있었을 아줌마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더 큰 분노에 휩싸였다. 아줌마는 분노의 방향을 나에게서 내 편을 든 여자로 변경했다.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
아줌마는 정말이지 ‘혐오 표현의 정석’ 책이라도 읽은 것 같았다. 전형적인 혐오 표현을 이어가는 아줌마를 보며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관심을 받기 위해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진짜로 저렇게 생각하는 걸까. 그리고 씁쓸했다. 혐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예배당으로 가던 길에 또 다른 혐오를 마주해 버린 것이. 게다가 힘이 없다고 느낀 내가 그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
혐오란 무엇인가. 혐오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생겨난 혐오는 반드시 표출되어야 하는가. 혐오는 반드시 사람을 죽여야 하는가. 왜 한 번 사는 인생을 그렇게 보내는가. 우리는 혐오를 멈출 수 있는가.
해결되지 못한 질문이 남았고, 혐오도 함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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