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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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 개쩔어. 이 드라마가 진짜 어른들의 세계다!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는 에피소드 하나도 제대로 안 봤지만 그 드라마랑 비교되더라.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넷이 정기적으로 만나 브런치를 먹으며 연애 얘기를 한다는 ��용은, 음. '그게 어른들 이야기의 전부일까?' 싶은. 근데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는 진짜 현실이다.
여기서 여러 의미로 인생 망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고. 사랑에 실패하고, 사경을 헤매고, 헤어지고, 다시 붙잡고, 마약 해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갱생하고, 부모님한테 외면 당하고,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신문 기사에 나고, 배신 당하고, 화해하고, 실망하고, 뭐 그렇습니다. 보는 재미 쏠쏠하다. 설정이 그렇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청소년 관람 불가'다운(?) 장면이 막 나와서 미성년자에겐 당연히 추천을 못하겠는데 성인이라면 꽤 낄낄거리며 볼 만하다. 게다가 어른들 입장에선 그 드라마에 나오는 짠한 일상들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브라이언 키니'는 진짜 개쓰레기로 나오는데. 본인도 자기가 개쓰레기란 걸 알아서 훈수 둘 수 없는 캐릭터. 어쨌든 내 올타임 인생 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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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김희정 "대통령-
당대표 독대 필요…
제안·갈등 노출이 아쉽다"
毒舌🗣🔊
여당
김희정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훈수
두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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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틀딱 선배님들의 훈수
육군 틀딱 선배님들의 훈수
육군 틀딱 선배님들의 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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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갈비 - #manufact - #카카오장기 . . . #얄굳 #yalgood #youallgood . #설 #구정 #훈수 (at Manufact Coffee Roasters) https://www.instagram.com/p/Btc7kj3jkh-/?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ea0qixavml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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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친구라고 해서 사귀라고 몰아가지 않았으면 좋겠고, 머리가 짧으면 길으라고, 길면 자르라고 훈수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에 있으면 나가서 사람이라도 만나라고, 밖에 나가면 집에 좀 붙어 있으라고. 당신의 주관이 존재하듯 나에게도 주관이란 것이 있다고. 내 선택에는 이유가 있고 어련히 알아서 할 나이인데. 제발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있었으면. 당신이 겪고 본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든 일에는 다양한 경우가 있다는 것을 염두 해 두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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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팍팍 티 내던 친구 놈 내가 이해해 줘야지 했는데, 이젠 이해할 이유가 없다. 네가 잘하는 거 들먹이며 남한테 잘난 척, 훈수 두지 마라 존나 추해. 오랜 친구라고 웃고 넘어가는 것도 이젠 토 나온다. 너 같은 게 친구면 그냥 혼자 사는 게 나을듯싶다. 네까짓 게 뭔데 남을 통제하려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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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 KINTEX Hall Fan Footage Compilation
난 남자 덕후 분들이 왜 이렇게 웃기냐. 노엘에 대한 그 특유의 '죽고 못 사는 앓음'이 있음. 내한 할 때나 다른 콘서트 영상에서나 노엘 옷 (대충) 입고 나오는 거 보면 늘 놀란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옷을 입어본 적 없는 게. 겁나 멋있어.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저작권료만 얼마여. 저 스탠딩 석에 내가 있었다. 황홀(했는데 나와서 버스 기다리는 순간부터 욕 나옴).
나는 특정 연예인을 정해서 덕질(사생 말하는 거 아님) 하는 게 굉장히 유익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열광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건 정말 다행인 일. 일상 지치다가도 이렇게 콘서트 한 번씩 가면 충전하고, 좋은 노래 듣고, 좋은 목표 생기고, 설레면서 다가올 날을 기다릴 수 있고, 닮고 싶은 사람이 있고, 울고, 웃고. 평생 내 우상들. 내 청춘의 전부.
항상 내가 맞다고 해주는 노엘. 한참 어른인데 훈수 둔 적도 없고 조언해준 적도 없고 앞뒤 사정 안 따지면서 무조건 남 탓 해주고 무조건 내가 맞다고 해주고 무조건 내가 힘들었을 거라고 말하고 조른 적도 없는데 내 꿈 이뤄준다고 해주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바로 핏줄이어야만 줄 수 있는 애정 아니냐며;;; 근데 나도 노엘이나 리암한테 덕후로서 좋은 말만 해주지 않고 객관적으로 피드백 해주고 그러니까 빈정 상할 법도 한데, 둘 다 왜 이렇게 친딸 대하듯 날 쉴드 쳐주는지 모르겠음;; 김씨 집안 막내로 온갖 풍파를 다 겪으며 자라서 웃어른들의 이런 관심이 낯설고;; 피 안 섞인 가족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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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수대통│EP.1】 NCT 사시는 분들 아니세요..? 제노X정우X천러와 함께하는 첫 훈수🏎️│FULL- knowing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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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신TV]이해찬, 이재명도 울고 갈 황당한 총선 훈수/'쌍특검 밀어붙여 대통령 거부권 유도하라'(출연: 서정욱 변호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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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커피를 주문하려고 줄을 서 있었는데 바로 앞에 한 백인 할머니가 눈길을 끌었다.형광 티셔츠, 형광 레깅스, 형광 스니커즈, 형광 백팩에, 형광 모자까지 쓰고 있는 게 아닌가! 마음속으로만 분홍색을 깊이 사랑한 나와 달리, 할머니는 백발이 되도록 형광 연두색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 할머니뿐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그간 보지 못했던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한국에는 출시조차 되지 않는 파란색 립스틱을 아무렇지 않게 바른달까. 게다가 사람들은 남의 입술이 파랗든 노랗든, 형광 연두색을 온몸에 둘렀든 말든,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거나 훈수 두지 않는다. 서로의 취향에 관대한 사회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 안락한 울타리가 이방인인 내 숨통까지 틔어 준다.
또 모른다.그 할머니도 어쩌면 살다가 한두 번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을, 무례한 밀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다. 다만 눈치 보고 살기에는 형광 연두색을 너무나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특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지만, 할머니는 취향을 고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관대한 사회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용감하지도 않지만, 나에게도 그 할머니 못지않은 취향이 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누구든 '형광 연두색 취향'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눈치 보여서 미처 꺼내지 못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분명히 존재하는 취향 말이다.
(...)서로 눈치를 주지도 보지도 않는다면, 취향을 드러내는 게 두려운 일일리 없다. 각자의 색깔을 존중하는, 그래서 누구든 자기 색깔을 표현할 수 있는 알록달록한 세상에서는 모두가 그만큼 더 즐거울 것이다.
지수 <그럴 땐 바로 토끼시죠> 60p.
+ 내 취향 에세이 발견!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당장 모두에게 '여기 겁나 쩌는 책이 있다!!' 라고 소리치고 싶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았고, 뒷부분은 별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당장 알리지 않고는 못 버티겠다. 작가님은 분홍색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맘껏 즐기지 못하신다. 사실 나에게도 이런 '형광 연두색 취향'이 있는데 그건 바로 '비니'다. 옛날부터 나는 비니를 쓰는 것에 로망이 있었다. 누군가의 세계에서는 비니를 쓰는 게 어색하지 않을 수 있고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나는 아니다. 주위에 쓰는 사람이 없다 보니깐 자연스레 나도 비니를 쓰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다. 사실 저번에 용기를 내서 사고선 장롱에 박아두었던 비니를 꺼내 쓰고 나갔는데 묘한 해방감과 함께 어색함이 몰려와서 괜히 썼다 벗었다 했다. 친구에게 나 어떠냐고 물어보니 친구는 당연히 잘 어울린다고 했다. 모든 사람이 내가 쓴 비니만 보고 있는 기분에 하루 종일 불편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 세상 누구도 내가 비니를 썼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할게 뻔한데 왜 그렇게 힘들어했는지.나만 해도 어제 카페 옆에 앉은 사람이 쓴 비니 색깔이 기억이 안 난다. 검정이었는지 형광 연두색이었는지.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말아라.' 말은 쉽다. 막상 용기를 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 "죽기 전에, 아니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 삶을 되돌아볼 때 비니를 쓴 걸 후회할까 안 쓴 걸 후회할까." 100% 안 쓴 걸 후회할 거다. 아니 그게 뭐라고, 그거 쓰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든 거라고. 할머니가 돼있을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거다. "아무도 네가 비니를 썼는지 수영모를 뒤집어쓰고 있는지 관심 없으니깐 오버하지 말고 쓰렴." 갑자기 궁금해졌다.당신의 '형광 연두색 취향'�� 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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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듀오 유튜브 채팅 규칙 v. 1
퍼플듀오 유튜브 채팅 규칙 v. 1입니다.
반드시 지켜주세요.
1. 아래의 규칙 반드시 지키기
2. 타 유튜버/스트리머 언급 금지 (멤버는 가능합니다)
3. ~게임 해주세요 식의 댓글 금지
4. 욕설 / 비속어 / 성적 발언 / 정치적 발언 금지
5. 댓글 쓴 사람끼리 친목 금지
6. 다른 사람 비하 금지
7. 훈수 절대 금지
위 규칙을 모두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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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인 서울
부러운 마음
목요일 밤 술자리의 대화 주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스타트업과 창업이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데 주제가 몇 시간째 계속 고정인 이유는 멤버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6개월 차 초보 스타트업 대표 A, 대기업 사내 벤처팀의 리더 B, 개발자이자 예비창업자 C, 그리고 전직 창업가 현직 백수 프리랜서 나. 4명의 멤버 모두 사고의 결? 관심사? 직업 정서? 어쨌든 그런 비스무리한게 유사한 사람들이라, 누가 ‘영화 엑시트 제목만 보고 스타트업 피인수되는 이야긴 줄 알았다'는 끔찍한 드립을 쳐도, 다 같이 ��� 터져서 웃을 수 있을 만큼의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래서 술자리의 분위기는 꽤 끈끈했다.
창업 6개월 차 스타트업 대표 A는 최근에 진행한 소비자 조사 결과가 별로라서, 과감하게 아이템을 바꿔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 A는 6개월 만에 벌써 아이템을 2번이나 바꾼 이력이 있다. 나는 그래서 '소비자 조사 결과를 더 자세히 분석하고 부족하면 더 해라. 남이 떡이 커 보인다고 맨날 방향만 바꾸는 게 무슨 스타트업이냐. 일단 최대한 가볍게 제품을 만들어서 시장 반응을 봐라. 대표의 감정보다 논리와 숫자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B는 대기업 사내 벤처팀의 리더이다. 10개월째 제품 개발 중인데 최근에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자 내부에서 사내 벤처팀에 대한 압박과 견제가 늘어나서 큰 고민이라고 한다. 듣기만 해도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래서 ‘사내 벤처의 장점이 낮은 리스크라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그 반대급부다.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10개월이 사실 운이 좋았던 거고, 앞으로는 더 힘들어질 거다. 최대한 제품 출시까지 버텨라’라는 위로를 건넸다.
예비창업자 C는 아직 뚜렷한 창업 아이디어도 없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만, 최근에 회사에서 받은 부당한 대우와 주변 지인의 창업 성공 소식 때문에 당장이라도 창업을 해야 하나 고민이라고 한다. C에게는 ‘스타트업을 불행한 직장생활의 도피처쯤으로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이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다는 베르세르크 가츠의 말을 명심하라. 창업 우습게 보지 말고 제대로 준비해라.’라고 좀 다그쳤다.
술자리가 파하고 택시와 타다를 불러보았지만 잡히질 않는다. 아무래도 좀 기다려야 될 것 같다. 자정이 갓 넘은 신논현역이니 당연한 일이다. 문득 가슴이 조금 답답해졌다. 오늘도 결국, 술자리에서 조언해주고 상담하는 역할을 또 해버렸다. 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에게 자꾸 뭘 물어본다. 나는 또 좋다고 X도 모르면서 꾸역꾸역 답을 한다. 남의 일에 훈수 두는 일, 하다 보니 참 쉽고 재밌다. 내 일 아니니까 부담도 없고.
문득 오늘 낮에 넷플릭스로 다시 봤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생각났다. 파리로 여행 간 미국 소설가가 1920년대와 189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해�� 당시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서 벌어지는 몽환적이고 유쾌한 스토리의 영화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변태 영감,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길 펜더는 그야말로 너무 부러운 놈이다. 물론 약혼녀 레이첼 맥아담스(!)와 내연녀 마리옹 꼬띠아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레아 세이두(!!!)와 잘 되는 그의 엄청난 여성 편력도 엄청 부럽긴 하다. 와, 써놓고 보니 진짜 나쁜 놈이네. 뭐 어쨌든 그것보다 더 부러운 것은 그가 자신이 동경하는 젊은 시절의 예술가들을 직접 만나서 조언도 얻고 도움도 받았다는 것이다. 소설가가 꿈인 사람이 젊은 시절의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거스루트 스테인에게 피드백을 받다니!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아닌가? 하아, 나도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젊은 시절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만나서 조언도 얻고 자극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내 앞에 오래된 차 한 대가 섰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차에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훈훈한 차 내부 온도에 쌀쌀한 날씨에 얼었던 몸이 스르르 녹았다. 술기운이 더 확 도는 느낌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차는 나를 한 건물 앞에 내려주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중소기업청 주관, 한국 벤처 네트워킹 파티 - 1997년 11월 7일
두둥
1997년 11월 7일
나는 이 농담 같은 상황을 당연한 일인 것처럼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디 앨런이 나의 기도를 들었나 보다. 속으로 그에게 변태 영감이라고 한 걸 사과하며 행사장에 들어갔다. 준비된 발표가 막 끝나서 뒤풀이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다들 앉아 있는 와중에 뒤늦게 행사장에 들어온 나에게 이목이 쏠렸다. 헐퀴.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소개해야 했다. "���녕하세요. 저는 스타ㅌ… 아니 벤처 경력 10년 차인 프리랜서입니다. 오늘 많이 배우겠습니다.”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이쿠야. 나는 빠르게 나의 실수를 깨달았다. 1997년에 10년 차면 업계 최고 경력이다. 나는 의도치 않게 졸지에 업계의 큰 선배급;;이 되었다. 행사 진행 요원이 와서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저쪽 상석 테이블로 가시죠. 자리를 하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앗 잠시만요. 제가 해외(?)에 있다가 귀국한 지 얼마 안 돼서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네요. 상석 테이블에는 누가 계신가요?” “뭐,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쟁쟁하신 분들이죠. 저기 가운데 저분이 휴맥스의 변대규 대표님입니다. 올해 4월에 코스닥에 상장한 휴맥스 아시죠? 그리고 저분은 작년에 인기 탤런트 김희애 씨와 결혼해서 화제가 된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 대표입니다." 쿨럭… 지금이 1997년이라는 실감이 슬슬 들기 시작했다. 휴맥스에 한글과 컴퓨터라니! “혹시 좀 편한, 아니 상대적으로 젊은 창업가들이 있는 테이블은 어디인가요?“ “그러면 저기 앞쪽 테이블은 어떠신가요? '바람의 나라’로 대박 난 넥슨의 김정주 대표도 있고 팩스맨과 새롬 데이터맨으로 유명한 새롬기술의 오상수 대표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젊은 피, 다음커뮤니케이션즈의 이재웅 대표도 있군요. 또 광고를 보면 돈을 준다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창업한 골드 뱅크의 김진호 대표님도 있고요. 저쪽으로 가시겠습니까?” … 뭔가 여러 가지 의미로 전설적인 이름들이 마구 쏟아진다. 그런데 문득 내가 지금의 시대 상황을 너무 모르고, 또 자칫 큰 말실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분들 다 만나보고 싶긴 한데… 결심했다. 우선은 1997년의 상황에 좀 익숙해진 다음에 저분들은 천천히 만나야겠다. “아… 저는 일단 여기 입구 쪽 구석 자리에 앉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실내가 다 보이는 구석 자리에 앉아 상황을 좀 관찰하기로 했다.
바보 같은 인수 합병
구석 자리에 앉아 물 한잔을 마시며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에서 앉아 있던 처진 눈을 가진 선량한 인상의 젊은이가 말을 걸었다. "저기 업계 선배님이라고 하셨죠.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나는 1997년의 분위기도 알아갈 겸,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편하게 이야기하시라고 했다. "저는 올해 3월에 창업해서 이제 반년 남짓 회사를 운영한 초보 창업가입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대기업 프로젝트도 잘 끝내고 첫 매출도 엊그제 입금되어서 행복한 상황입니다.” “오, 그래도 빠르게 잘 자리를 잡으셨네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데 요새 제가 고민이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저랑 친한 후배 놈이 지금 다른 회사에서 열심히 게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IMF가 터진 후에 그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개발 중인 프로젝트를 올 스탑해야 한다고 합니다. 출시가 코 앞인데 날벼락을 맞은 거죠. 참 안타까운 사정이라, 제가 그 후배네 개발팀을 거둬들여서 개발을 마무리할 수 있게 할까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가 앞으로 B2B 사업을 하면서 게임 쪽도 동시에 도전하게 되는 거라, 둘 다 잘 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됩니다." 휴, 일단 이 젊은 대표 덕분에 1997년 11년이면 한창 IMF 때문에 대한민국이 떠들썩했다는 귀중한 정보를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일단 머릿속에 이 정보를 잘 갈무리하고, 동시에 이 한심한 작자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따끔하게 충고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표님, 혹시 이 회사 하시기 전에는 무슨 일 하셨습니까?” “아, 저는 개발자였죠. 한글과 컴퓨터나 한메소프트 같은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습니다.” “혹시 그럼 게임 개발 경험이나 운영 경험은요?“ “그… 없습니다." “그럼 제가 무슨 말 할지 대충 감 잡으셨을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전혀 경험이 없는 분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리고 한 가지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창업한 지 반년 좀 넘었는데 벌써 두 가지, 그것도 전혀 시너지가 나지 않는 다른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게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울까요? 후배분 사정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감정적인 대응보다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IMF 시대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회사가 도산할지, 그리고 경영 상황이 얼마나 악화될 지 누가 알겠습니까. 부디 신중하게 결정하시길 바랍니다” 그는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너무 세게 이야기한 것 같아 좀 미안해졌다. 부드러운 말로 그를 만류하려던 찰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아 선배님 마침 그 후배 놈이 일루 오네요. 어이~ 재경이~! 송재경! 여기야~!” 나는 마시던 물을 도로 뱉어냈다. “푸흡.. 뭐라고요? 그 후배가 그 바람의 나라를 만든 바로 그 송재경 씨라고요?" “아니… 저 친구 이름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김정주 대표는 알아도 재경이는 알기 힘든데..." “그.. 그러면 잠깐만요. 혹시 그럼 송재경 씨를 데려갈까 고민하는 당신이 바로?" “아이고 다짜고짜 제 고민부터 이야기하느라 정식으로 소개도 못 했네요. 저는 엔씨소프트라는 자그마한 B2B 회사의 김택진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맙소사. 지금 내 앞에서 방금 온 후배에게 헤드락을 걸고 있는 사람이 바로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라니, 그리고 그에게 헤드락이 걸려있는 사람이 XL게임즈의 송재경 대표라니… 분명히 아까 사정을 들었을 때는 말리는 게 당연한 상황인데, 등장인물을 알고 나니 이것 참 황당하기 그지없다. 만약 김택진 대표가 내 조언 대로한다면, 아마 한 달 뒤에 송재경 대표는 엔씨소프트에 합류하지 않을 거고 내년에 ‘리니지’라는 게임은 출시되지 않겠지.
도대체 이 무슨 코미디란 말인가. 나는 일단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날아간 멘탈을 좀 추스를 필요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가까이 다가와 “저 빠른 67, 32살이니 말씀 편하게 하세요…형님이시죠?” 어쩌고 하는 김택진 대표를 제대로 쳐다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심경
다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와중에 몇 명만 앉아있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테이블이 보여서 일단 그곳으로 피신했다. 리니지 사건(?)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멘탈을 다잡고 보니, 반대편에 혼자 차분하게 앉아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통성명부터 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실례지만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는 아직 정식으로 창업을 한 사람은 아닙니다. 대기업 사내 벤처팀에서 서비스를 준비 중인 사람입니다.” 절대 방심할 수 없다. 아까 김택진 대표와 송재경 대표에게 했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나는 재차 캐물었다.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현재 소속, 준비하시는 서비스, 그리고 당신의 이름까지 빠짐없이 소상히 말씀해주세요” 나의 조금 무례한 요구에도 그는 눈만 살짝 크게 떴을 뿐이다. 그러고는 이내 아까와 똑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저는 삼성 SDS 사내벤처 웹글라이드 팀 소속입니다. 온라인 검색기술을 개발 중이고요, 이름은 이해진입니다.”
…천만다행이다. 물어보길 정말 잘했다. 지금은 그저 삼성 SDS 직원에 불과한 이 남자는, 훗날 네이버와 LINE의 이해진 의장이 된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에게 말을 더 붙여본다. “이해진 팀장(!)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고 계시는 사내 벤처 분위기는 어떤가요? 출시 준비는 잘 되시나요?" “사실은 안 그래도 고민이 많습니다. 계속 제품 개발에 매진 중인데, 최근에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자 내부에서 압박과 견제가 늘어나서 큰 고민입니다.” 나는 그가 말한 내용에서, 그리고 내가 하는 맞장구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사내 벤처의 장점이 낮은 리스크라면 지금 겪고 있는 일은 그 반대급부겠지요. 그래도 한동안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을 테니까요. 내부의 압박과 견제는 어쩔 수 없는 거니 지금은 그저 제품 출시까지 최대한 버티시는 게 최선 아닐까요?”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IMF 때문에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져 더 힘들어졌습니다. 경쟁상황도 너무 치열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한국에 코시크과 심마니 같은 업체들이 잘하고 있고, 최근에 검색에 뛰어든 다음은 올해 5월에 무료 이메일을 오픈에서 유저들을 긁어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해외 업체들도 있습니다. 작년에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야후라는 세계 최대의 검색 서비스가 있습니다. 조만간에 일본 소프트뱅크와 합작해서 한국에 진출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리고 지난달에 최초로 흑자를 넘긴 괴물 신인 라이코스라는 곳도 있는데, 아시아 시장도 관심이 있다고 진출 계획을 차근차근 준비 중이랍니다. 이런 와중에 저희 팀이 서비스를 다 개발하고 출시하려면 아직 좀 남은 상황인데, 그때까지 팀과 제가 버틸 수 있을까요? 시장에 기회라는 게 남아있을까요? 그때 저희가 파고들어 갈 틈바구니가 있을까요?" 그는 물을 한잔 마시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저희가 하는 일이 아무래도 규모가 작은 사업이다 보니 삼성 SDS에서 직접 사업화를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십중팔구 제가 직접 회사를 차려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에 대해서 걱정이 앞섭니다. 제 주변에 성공한 친구들과 저를 비교하면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낍니다. 저의 절친인 다음의 이재웅 대표나, 대학원 시절 룸메였던 넥슨의 김정주 대표 같은 친구들이 사업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사람들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전 내성적이��� 조용한 성격입니다. 이런 제가 앞으로 사업을 잘 할 수 있을지도 걱정입니다. 요즘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저 자신에 대한 고민이 겹쳐 매일 밤잠을 설칩니다."
나는 한창 Web 2.0이 유행하던 2008년이 떠올랐다. 나는 그때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복학생이었고, 소프트뱅크 리트머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한 대학생 스타트업에 막 합류했을 때였다. 그 당시의 나는 스타트업이 먹을 만한 것들을 절대로 흘리지 않고, 모든 분야에서 꼼꼼하게 트래픽을 싹쓸이하는 네이버가 너무 얄미웠다. 주변 동료 스타트업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네이버를 욕하는 게 일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밉기도 했지만 사실 네이버가 너무 무서웠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게 이해진 대표는 항상 피도 눈물도 없는 악당 같은 이미지였다. 그리고 나는 그가 앞으로 몇 년 동안 잘 안 풀려서 계속 고생하지만 결국에는 검색 전쟁의 최종승자가 될 것이며, 또 몇 년 뒤에는 일본에서 LINE이 대박을 터트릴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내리는 결정과 행보에 대해 사람들은 욕도 하고, 부러워도 할 거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다. 그가 무려 '대기업 총수’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살면서 내가 이해진 대표를 안쓰럽게 생각할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지금, 내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번민하고 있는 이 서른한 살의 젊은 대기업 직원은, 그저 불확실한 미래에 흔들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고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내가 자주 만나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안타까운 한 명의 예비 창업자의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안쓰러운 마음에,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진 팀장님, 아무리 힘들더라도 중간에 포기하지 마세요. 끝까지 버티고 최선을 다하면 무조건 잘 되실 겁니다.”
지금의 기분을 ��정신에 설명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무래도 술을 좀 더 마셔야겠다.
희미한 기억들
본격적인 술자리가 시작되었고, 나는 1997년 11월의 밤에 푹 빠져들었다. 나는 이 테이블, 저 테이블 다니면서 파티를 즐겼다. 다양한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30대 초중반의 대표들이다 보니 주량, 에너지, 자신감 그리고 입담까지 장난이 아니었다. 신나게 같이 어울려서 놀다 보니 술에 거나하게 취하게 되었다.
뭔가 이방인 느낌이 나는 친구도 만났다. 와튼 MBA였던가? 하여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된 Kevin이라는 미국물 덜 빠진 동생인데, 이 친구도 한국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처지라 왠지 동질감이 느껴져서 의기투합해서 신나게 마셨다. 여기 있는 벤처 회사 대표들 대부분이 정말 재미있고 입담도 좋은데 왜 방송국에서 안 데리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 명씩 개인 방송국을 차려주고 싶다는 실없는 이야기를 한참 동안 한 것 같다.
우습게도 중간에 투자자 한 명이 따로 한번 보자고 하면서 명함을 주고 갔다. 하버드 출신에 Chales라는 아주 젊은 투자자였는데, 회사 이름이 리타워 뭐시기 였던것 같은데… 흠 잘 기억이 안 난다.
이런 어려운 자리에 학생 자격으로 참여한 기특한 대학생 친구들도 있었다. 게임 쪽으로 창업하고 싶다는 22살의 서울대 응용화학과 95학번 친구와 25살 서강대 전자공학과 92학번 친구였는데, 눈빛도 초롱초롱하고 아주 똘똘한 친구들이었다. 옛날 생각도 나고 기특하기도 해서 지갑에서 용돈도 꺼내서 줬다. “너희들이 커서 사업하게 될 때쯤에는 말이야 중국이 시장을 개방해서 큰 기회가 올 거야. 혹시 알아? 너희 같은 애들이 열심히 하면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한국 게임이 1, 2위 할 수도 있을지? 꿈을 크게 가지렴!”
그리고 마지막에 꽤 특이한 사람도 만났는데, 재작년에 창업한 의사 출신의 사업가라더라. 뭐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분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국판 카스퍼스키 같은 건가 봉가. 나이가 나랑 동갑인 36살이라고 해서 친구 먹고 러브샷도 했다. 취해서 이름이 잘 생각이 안 난다. 주위 사람들이 별난 의사라고 부르던데…
후… 아무래도 술에 많이 취한 것 같다. 파티의 뒷부분은 기억이 희미하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누가 붙잡는다. 뒤돌아보니 제일 처음 이야기를 나누었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였다. “아 선배님 벌써 가시게요? 그럼 이거 주차 쿠폰 받아 가세요. 쿠폰이 어디 있더라…" 품을 뒤지는 그를 만류하며 “아 저 차 안 가지고 왔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가 깜빡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후배분 게임 있잖아요. 그거 꼭 인수하세요! 할 수 있습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승리의 NC!! 질주의 다이노스!! 워워워워워워~~" 나는 1997년의 그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응원을 외치며, 황당해하는 그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최종 보스
건물 밖에 나와 벤치에 궁둥이를 붙였다. 시원하다기보다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지만, 오히려 정신이 좀 드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아까 행사장에서 뵈었던 선배님인 것 같은데, 술 많이 드셨나 보네요." 옆 벤치에 앉아 있던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이가 말을 건다. “네 안녕하세요. 술 좀 깨고 이제 돌아가야지요.” 마지막에 ‘미래로’라는 말을 겨우 삼켰다. “아까 다른 분들이랑 계속 같이 계셔서 좀 아쉬웠습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아무리 봐도 그가 오늘의 마지막 상담인가 보다. 그는 과연 뭐가 고민일까? 그리고 그는 누구일까? 내가 아는 사람일까? “아휴 그럼요. 혹시 어떤 일 하시는 분이신가요?" “네, 저는 대기업 6년 차 직장인입니다. 요새 미래도 안 보이고 재미도 없습니다. 주변에서 다들 창업하는데 까짓거 저도 창업하려고요. 내년에는 무조건 창업하기로 했습니다.” 하아… 2019년이나 1997년이나, 겉멋만 잔뜩 들어 창업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그래도 무슨 생각이 있는지 궁금해서 물어본다. “그러면 혹시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하실 생각입니까?” “아… 아직 뭐 확실한 건 없고요. 일단 내년에 목 좋은 대학교 하나 골라서 PC방 차리고 그다음에 돈 벌면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고요.” 살짝 부아가 치민다. “아니, 창업을 불행한 직장생활의 도피처쯤으로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안일한 생각입니다. 창업이 장난인 줄 아십니까? 일단 PC방 하면서 천천히 생각할 일이 아니라 제대로 준비하셔야죠.” 그런데 그의 반응이 희한하다. 오히려 씩 웃으면서 너스레를 떠는 게 아닌가? “어이쿠 뭘 그렇게 흥분하십니까. 헤헤 저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제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한 건데, 선배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저는 넥슨의 바람의 나라나, 최근에 런칭한 울티마 온라인 같은 게임 말고 좀 다른 형태의 게임에 관심이 많습니다. 훨씬 더 많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가볍고 친숙한 게임 말이죠. 예를 들어 고스톱이나, 포커, 당구 같은 쉽고 부담 없는 게임요. 이런 가벼운 게임을 온라인에서 할 수 있게 만들면 전 국민이 짬이 날 때마다 가볍게 즐기지 않을까요? 막 친구끼리 공강 시간에 '한게임 할까?’ 하면서 당구 하러 가는 것처럼 말이죠.”.
싸늘하다. 몇 가지 요소들이 조합되어 비수가 되어 날라와 꽂힌다. 겉으로는 허술해 보이는 이 사람의 인상과 목소리가 생각보다 낯이 익다고 생각하는 찰나 “흠, 한 게임? 뭔가 느낌이 오는 이름 아닌가요? 하하하” 라고 그가 웃었다. 순간 나의 의심은 곧바로 경악이 되었다. 나는 이 유쾌한 젊은이가 내년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한양대 앞 PC방 사장님이 될 것이고, 또 이어서 한게임을 창업할 것이며 그리고 더 나중에는 콧수염을 기르고 카카오톡이라는 앱을 출시하게 되리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았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 뭐 하나 맞추는 게 없구나. 하하하. 나는 32살의 삼성 SDS 6년 차 직원 김범수 씨(!)를 따라 웃었다. 정말 멋진 마무리 펀치구나.
차갑고 소심한 영혼
IMF가 휩쓸고 간 서울의 밤은 분위기와 날씨 모두 쌀쌀했지만 나는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나는 서울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분명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과 유사한 경험을 하긴 했는데, 바로 전에까지 한국 스타트업계의 헤밍웨이, 피카소, 달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왔는데, 예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경험이었다. 선배 창업가들의 조언을 받아 뭔가 더 발전하고 싶었는데 내가 오히려 오지랖 넘게 조언도 하고 주제넘게 위로도 하고 쿠사리도 먹다니. 하지만 또 즐겁다. 왜일까? 2019년의 그들을 보면 절대 상상할 수 없었던, 1997년의 그들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왜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일까?
2019년 시점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성공으로 그어진 한 줄의 선명한 선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이 그어지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면 완전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꺾여 있는 마디 하나하나가 전부 의사결정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부의 두려움과 불안과 싸우고 외부의 회의와 냉소를 버티며 겨우겨우 선을 그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에 비법 따위는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또 깨닫는다. 고뇌한 만큼, 공부하는 만큼, 고생하는 만큼 된다. 모든 노력하는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스타트업 중에서 노력하지 않은 스타트업이 없는 것처럼.
관중석에 앉아 비판이나 하고 훈수나 두는 사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인한 사람이 어떻게 실수하는지, 어떻게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에 대해 지적질이나 하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중요한 사람은 경기장에 서 있는, 먼지와 피땀으로 범벅된 얼굴로 용맹하게 싸우는 사람입니다. 거듭해서 실수도 하고 곤경에도 처하지만 계속 행동하려 나서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열정과 헌신을 의미를 알고 가치 있는 일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공하면 거대한 성취를 얻고, 비록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대담하게 맞서다가 실패할 사람, 그러므로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차갑고 소심한 영혼들과는 결코 한자리에 놓이지 않을 사람입니다. -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1910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 연설 “Citizenship in a Republic(공화국에서의 시민권)” 중
예전에 갈무리해둔 글인데, 다시 한번 꺼내서 읽어본다. 남의 일에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전체 사정을 알지도 못하면서, 적당히 냉정한 소리를 내뱉는 것은 얼마나 안일하고 무례한 태도인가. 그리고 나는 왜 이렇게 평소에 혐오하던 자들처럼, 차갑고 소심한 영혼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벨에포크?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1997년의 서울 밤거리를 걷고 있는데, 눈앞에 뜬금없이 마차(!)가 와서 선다. 그렇다! 까먹고 있었다. 나는 지금 우디 앨런 유니버스;; 속 아닌가? 한 번의 시간 여행 기회가 더 있다. 과연 대한민국 창업의 벨에포크 시대는 몇 년도일까? 그곳에는 누가 있을까? 기대에 부풀어 마차에 탄다.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친구 한 명이 타고 있어서 그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혹시 올해가 몇 년인가요. 그리고 이 마차의 목적지는 어딘가요?" "아이고 술 냄새야. 어르신, 약주를 거하게 하셨군요. 올해는 당연히 서기 1956년입니다. 그리고 이 마차는 한국 기업가 모임으로 가는 마차입니다.” 1956년이라… 배경은 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난, 아직 폐허 속의 한국. 과연 나는 이 시대에서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저기… 학생. 거기 가면 누구랑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요? 지금 유명한 사업가는 누구인가요?" “최근에는 이병철 사장이라는 분이 유명합니다.” “오! 그런가요?” “네. 그분은 원래 부산에서 고철 장사하시던 분인데 전후에 상경하신 다음 최근 식품업과 섬유업을 창업했는데 이게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 흠. 1956년의 이병철 회장은 삼성물산을 경영하면서 식품 스타트업(제일제당)과 패션 스타트업(제일모직)을 창업한 상황이구나, 지금으로 치면 마켓 컬리랑 스타일쉐어를 동시에 경영하는 창업가 정도로 봐야 하나? “혹시 또 누가 있을까요?” “그 외에도 아주 특이한 분이 있습니다. 건설회사 하시는 40대 초반의 젊고 추진력 넘치는 호걸인데요, 성함은 정주영 대표입니다. 꼭 한번 이야기 나누어 보세요. 그리고 재작년부터 없어서 못 파는 거로 유명한 럭키 치약 아시죠? 이승만 박사님도 사용하신다는 그 제품을 만든 락희화학 공업사의 구인회 사장님도 계십니다. 아주 인품이 훌륭한 분이시죠. 게다가 제가 이야기 듣기로 오늘 많은 분이 존경하는 유한양행의 유일한 박사님도 참석하실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크으…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람들이다. 전쟁 직후 폐허나 다름없던 한국 땅에서 사업을 막 시작한 그들을 만나서 이야기해보고 싶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엄청난 자극과 배움이 될 것 같다.
한편, 나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 똘똘한 젊은이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런데 혹시 우리 약관의 젊은 친구분은 딱 봐도 학생인데, 고등학생? 대학생? 어떻게 이런 내용을 다 아시나요?" “네 어르신, 저는 연희대학교의 경제학과 신입생입니다. 저도 사업가가 꿈이라 미리 이런 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많이 배우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커... 역시 젊은 친구의 순수한 열정과 당찬 포부는 시대를 막론하고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 같다. 나는 그가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가 다음 말을 하기 전까지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저는 ���계에 진출하는 국제적인 사업가가 될 겁니다.”
마차는 충격에 휩싸인 36살의 시간 여행��와 20세 김우중 군(!)을 태운 채,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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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허허허~ 아버지 일 하는데 아들램 스물스물 올라와서 #훈수 두고 계신다.👶🏻 어디서 봤나 #어깨동무(송도 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 깨볶는 신혼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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