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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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해 줄 사람이 없어서 힘들다
가끔 그럴 때 있잖아 우울한데 이유를 모르겠는
가끔 그럴 때 있잖아 슬픈데 눈물이 안 나는
이때 억지로라도 이유를 찾자마자 달려드는 허무함, 자괴감이 너무 힘들어
그럼 나는 더 깊고 더 어두운 어딘가로 피해버리면 나는 또 허무하고 자괴감이 드는 늪에서 허우적대는 거야
벗어나고 싶어 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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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ardians of the Galaxy Vol. 3 Soundtrack>
마블(MARVEL)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모두 챙겨 보는 열성팬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이하 ‘가오갤’)> 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도 이 시리즈 특유의 개성을 인정하며 좋아하는 작품으로 손꼽은 바 있는 ‘가오갤’ 시리즈는 마블이 제작한 슈퍼히어로 영화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저예산 영화에 속한다.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비주류 정서로 가득 채운 점도 매력 요소지만 무엇보다 가오갤 멤버들을 ‘히어로’로 여길 수가 없고 오히려 그 반대라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범죄자, 전과자, 수배범 출신 주인공들의 인격은 하나같이 불완전하며 제멋대로다. 그런 멤버들이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라는 팀을 이루게 되고, 겉으로는 서로 티격태격하지만 마음 깊이는 가족과도 같은 정을 나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엔터테인먼트적 속성을 폭넓게 발산하는 코미디물인 만큼 사운드트랙은 액티브한 올드 팝과 록 음악들이 주를 이룬다. 대개 70년대에 발표되어 차트 순위권에 올랐던 인기 곡들이다. 장르적으로는 과하지 않은 노멀한 록 음악들. 그래서, 가오갤 사운드트랙을 플레이하면 기분이 고양되고, 휴머니티가 느껴지면서도 유쾌했던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즉각적으로 긍정의 무드에 빠져들게 된다. 사운드트랙을 구성하는 믹스테이프가 피터의 어머니 매러디스 퀄이 손수 추려낸 음악이라는 설정��� 비주류 정서와 코믹한 상황이 주도하는 이 영화의 정체성과 잘 어울리고 작품의 개성을 더욱 견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1편에서 피터가 오브를 얻기 위해 도착한 모라그 행성의 황폐한 공간에 이르렀을 때 불현듯 플레이되는 레드본(Redbone)의 Come and Get Your Love를 떠올려 보자. 외계의 신전에라도 이른 듯 장엄함이 흐르고 그러한 사건이 기대되는 가운데 엉뚱하게도 카메라는 피터의 워크맨을 부각시킨다. 지구의 디스코 음악이 울리는 순간 이것이 장면과의 완벽한 미스매치처럼 느껴지는데, 그와 동시에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개성임을 이해하게 된다. 피터의 워크맨은 어머니와도 연결되어 있기에, 그의 발길이 아무리 먼 우주에 닿는다 해도 지구와의 끈끈함을 소생시킬 수 있는 직관적인 매개체로 작용한다.
시리즈의 마지막 장인 3편 오프닝 시퀀스를 장악한 인물은 로켓이다. 실험실의 철창 안에서 노웨어로 순식간에 장면이 이동하고 카메라는 로켓을 줌인한다. 피터의 영향으로 지구 음악을 즐기게 된 로켓. 그가 재생하는 음악은 라디오헤드의 Creep이다. 오리지널이 아닌 어쿠스틱 버전으로 슬프고 처량한 분위기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Creep은 라디오헤드 활동 초창기에 만들어진 곡으로, 그룹이 커리어를 쌓아 가며 선보인 얼터너티브 록, 아트 록 성향의 심오한 곡들에 비하면 정말 캐주얼하고 풋풋한 느낌이 난다. 단순한 코드 진행을 이어가며 자기 자신을 비하하고 싶을 만큼 처참한 지경에 이른 심리를 표현해 루저 같은 마음을 비추며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여기서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지능을 가진 ‘라쿤’ 한 마리와 함께 들려오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속하지 않는 것’ 같은(I don’t belong here), 소외감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90년대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호그(Spacehog)의 In the Meantime은 1995년 발표된 <Resident Alien>에 수록된 곡인데, 이 데뷔 앨범이 그룹의 대표작이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 같은 글램 록과 사이키델릭한 색채감이 인상적인 곡. 이 노래가 나오던 장면은 원색의 우주복을 입고 오르고를 향해 유영하던 가오갤 멤버들과 함께 뮤직비디오처럼 연출되어 유독 기억에 선명히 남았다.
In the Meantime과 함께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의 Do You Realize?도 영화와 궁합이 잘 맞는 곡이었다. ‘당신은 깨닫나요? 당신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하고 물으며 시작하는 이 곡은 코스믹 분위기로 어필하면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의 주된 테마였던 인간의 죽음, 허무함 등이 깃든 질문들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플레이밍 립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동물이 등장하거나 동물 코스튬을 입은 사람이 등장하는 등 몽상적 장면이 연출되어 있는데, 영화에서 지구를 모방해 만든 카운터어스에 거주하던 휴매니멀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었다.
Ehamic–일본어로 ‘에하미쿠’라 읽는 것 같다–는 일본 뮤지션의 프로젝트 네임이고, 보컬 합성 음악 작업을 주로 해온 것으로 보인다. Koinu no Carnival은 가디언즈 멤버들이 휴매니멀의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집 안에 흐르던 곡이었다. 프레데릭 쇼팽의 ‘강아지 왈츠’로 잘 알려져 있는 Minute Waltz를 미래적인 분위기로 풀어냈다. 조금 생소하지만 야마하의 보컬로이드(Vocaloid)라는 프로그램으로 보컬 소스들을 미디 음원처럼 활용해 만들어낸 그런 음악이라고 한다.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의 No Sleep Till Brooklyn도 눈여겨볼 포인트였다. 하이 에볼루셔너리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해 있는 로켓이 가장 먼저 결투를 위해 돌아선다. 비스티 보이즈라는 그룹의 특이성–백인 유대인 2세 출신의 래퍼들–과 이 노래 자체가 가진 날것 같은 분위기가 분노의 결투 장면에 잘 어우러졌다. 비스티 보이즈는 이 곡의 제목을 헤비메탈 그룹 모터헤드(Motörhead)의 No Sleep ‘Til Hammersmith에서 따와 자신들만의 콜라주를 완성했다.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성이 비교적 덜 무르익은–적어도 <Paul’s Boutique>를 내놓기 전까지는– 초창기 랩 메탈 곡을 이 결투 장면에 매치시킨 것은, 그러니까 오락성을 증대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첫 시퀀스와 같은 자리인 노웨어의 계단으로 돌아온 로켓. 철창에 갇혀 있던 금발 아이들과 실험용으로 수집된 동물들을 모두 구출한 이후다. 로켓은 플레이어에서 2000년대 음악을 고른다. 노웨어가 거대한 변화를 수용한 만큼 음악을 통해서도 시대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었다. 플로렌스 앤 더 ���신(Florence and the Machine)의 Dog Days Are Over가 울려 퍼지며 노웨어는 화기애애한 축제 분위기에 접어든다. 이 곡은 부모, 아이들, 형제자매들을 위해 뛴 당신에게 애정과 열망을 뒤로하고 떠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우고 있다. ‘Dog Days’는 한여름 가장 더운 삼복더위를 뜻하는데, 마치 요즘 같은 더위를 말하겠지만, 그만큼 힘든 시기를 지나면 행복이 선로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우리를 들이 받을지(Happiness hit her like a train on a track)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행복이 내 것인지, 내가 누려도 되는 기쁨인지 의심하지만 이 노래는 그래도 ‘된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 마블의 다른 영화들보다도 가오갤 시리즈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마이너 정서를 유쾌하게 풀어낸 연출과 캐릭터들이 개성 있게 그려졌기 때문인 것 같다. 피터, 로켓, 가모라와 네뷸라, 맨티스, 드랙스, 그루트 등 하나같이 결함이 있고 성격도 제각각인 존재들이기에 이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진다. 'a bunch of a-holes'라는 비아냥을 들을 만큼 잘난 구석 하나 없이 우스워 보이는 조합이지만, 마음 깊은 곳의 커다란 결핍만큼이나 따뜻함과 선함을 가지고 그것을 베푸는 것도 이들이다.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이 ‘아이 엠 그루트’인 그루트를 떠올리면 어쩌면 그렇게도 많은 말들은 제각각 자기만의 우주를 향해 낙하하는 잔해처럼 부질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좋다. 어썸 믹스 Vol. 1-3은 영화를 더 애지중지할 수 있는 방법이다. 피터가 워크맨에 대��� 늘 그런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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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각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것만이 의미잇는것같다 진실추구는 너무 허무함
뭘하며 살던지 약간의 취하는 선택을 해야한다 너무 또렷이 보면 결국 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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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위해 며칠 동안 웹 안을 헤매였다.
‘깊은 병이 든 독일 작곡가’의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예술가가 살아가는 삶에서의 집요함, 광기, 허무함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다.
나는 만약 내가 시력을 잃어 컴퓨터 화면을 보지 못한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바다를 바라 볼 수 없다거나, 요리를 하지 못한다거나,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때 가지 못한다거나, 귀여운 동물들을 볼 수 없다거나…
또 너무나 컴퓨터를 많이하여 마우스를 잡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이 세상을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5년전까지만 해도 갑작스런 사고로 혹은 예정된 사건으로 인해 두 눈과 한쪽 팔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빠지면 나는 불안감에 휩쌓여 더더더 빠른 시간 내에 어떤 결과물을 쫓기듯 만들어냈다.
지금은 덤덤하다. 만약 그런 상황이 된다면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하지만 영화는 작곡을 더 이상 하지 못하는 작곡가의 슬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창작이라는 것에 대한 규칙이 있었나? 가이드 라인이 있나?
표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허공에 화살을 쏘아대는 것.
미와 순수의 창조는 오로지 정신으로써 하는 행위인가? 모든 예민한 감각을 지배 했을 때 장인과 같은 정신에서 나오는 것인가?
오로지 예민한 감각만이 주는 타고낸 재능인가? 악은 필수 요소인가?
마지막이 되면 그 무엇도 소용이 없어진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가는 것
50살이 넘은 작곡가가 만난 소년을 바라보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그 마음은 숭고하다.
어떠한 것을 하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본능적이다.
무엇을 만들지, 어떻게 완벽할지 평생을 고민하다가 이 모든 행위들은 필요가 없어지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잃어가는 감각들은 오히려 비장하게 만들어준다.
씁쓸함, 허무함, 황홀감, 평범함, 아름다움, 공포감, 순수함, 집착, 욕심, 도취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과 감각들을 사랑한다. 이렇게 다양한 감각들을 사랑한 이후
모두 비워냈을때, 비소로 볼 수 있는 숭고함이다.
그는 사랑하는 소년을 보면서 죽었다. 사랑 안에서의 죽음.
나는 잃고 싶지 않았기에 가지고 싶지 않았다. 육체와 섹스, 변하는 것들에 대한 자극을 동물처럼 탐구하는 원초적인 모습에서 이제는 비신체적 모습 역시도 중요해졌다.
사랑은 육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후 이성으로 정신을 포착해, 신체 결합 뿐만 아니라 서로의 성숙을 돕는 정신 결합, 정신의 승리로 승화되도록 이끌어야 한다는 플라톤적 사랑의 이야기가 약간 담긴 영화 내용이다.
이성적 판단으로 만들어내는 것들과, 이성적 판단을 잃게 하는 사랑의 감각으로 만들어내는 것.
나도 지금까지, 앞으로도 이 두가지의 반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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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집전화 쓰는 사람 있어요?
중학교 때, 교회 수련회에서 만난 다른 중학교의 여자의 삐삐 번호를 따는 데 성공했다. 정말 유감이지만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 엄청 건강한 까만 단발 머리를 머리띠로 뒤로 넘기고 중학생 치고는 엄청나게 몸매가 좋았던 걸 기억한다. 굉장히 발랄했고 호기심이 풍성했다. 나는 교회 수련회 때 그때 한창 유행하던 헐렁하고 큰 바지를 입고 머리에 젤을 바르고 가서 가급적 많은 여자애들의 눈에 띄려고 노력했는데 그 여자애는 나랑 말을 할 찬스가 생기자 마자 '바지가 널 입은거 같다' 고 하면서 웃으며 말을 걸어줬다. 뭐, 효과는 있었으니 됐지. 요번 교회 수련회에서는 얘한테 집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학교에 있을때나 일중에는 삐삐로 음성을 주고 받고, 평일 저녁 시간이나 쉬는 날에는 전화를 걸어서 길게 통화를 하곤 했다. 정말 우스울 정도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지금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그 당시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내용들만 얘기를 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에구 예쁜 여자애들하고 말을 하고 싶어서 살면서 얼마나 관심없는 얘기를 관심이 있는 척을 했는지. 근데 잘 생각해보면, 살아오면서 예쁜 여자 상대 뿐만이 아닌 모든 관계에 관해 그런 접근 방법 -관심 없는 걸 관심있는 척 하며 호감을 얻으려 하기- 을 취하지 않았나 싶다. 막상 내가 진짜로 관심이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들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난 억지로라도 관심을 끊었다. 어렸을 땐 그게 멋있는 거 같았고, 나이를 먹으니 버릇이나 습관 같은게 되어서 고칠 수가 없어졌다.
각자의 학교에서 매일매일 접하는 자극 탓에 서로에 대한 관심이 미미해져 전부 지워진 뒤에 누가 먼저랄 것 도 없이 연락이 끊기기 전 까지, 우리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실제로 만난 건 교회 수련회와 그 외 1번 정도였는데, 그 외에는 전부 삐삐랑 전화로 소통을 했다. 전화비가 엄청나게 나와서 엄마 아빠한테 혼나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애와 갖는 둘만의 시간이 내가 이 세상에서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다른 학교의 존나 예쁜 여자애랑 항상 연결되어있다는 우월감. 정말로 자기가 남들보다 위에 있다고 자기 자신이 인지를 하고 있다면, 누구한테 특히 자랑을 안 해도 마음이 편한 그런 부류의 감정이었다. 정말 유감이지만 지금이 되서는 결코 느낄 수가 없는 그런 부류의 감정. 그립다.
다만 한 가지 그 당시에 도무지 어찌 할 수가 없는 한 가지가 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고,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는다던지, 아예 전화를 안 받는다던지, 운 좋게 본인이 받아도 통화하기 좋은 타이밍이 아닐 때의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남의 집으로 전화를 거는 순간의 그 긴장과 두려움과 조급함을 지금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모두가 개인 단말을 들고 있고 그 안에서 연결이 되었고, 필요가 없으면 무시도 가능하고.... 그런 상황에서 얻은 인연들이나 관계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가능이나 할까? 한 번은 그 애와 얘기를 하다가 남녀가 섹스를 하는 화제가 나왔다. '선배들이 그러는데, 섹스하면 처음엔 진짜 엄청나게 아프데' '그래?' '근데 계속 하다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데더라' '오....' '너 야동 본 적 있어?' '아니 나 그런거 안 봐(*물론 거짓말이다)' '진짜? 우리학교에선...' 이런 얘기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전화가 뚝 끊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집에 부모님이 귀가하셔서, 이야기 하고 있던 화제도 화제였어서 깜짝 놀라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는 얘기를 들을 때 까지, 섹스 얘기는 역시 하는 게 아녔어... 내가 역시 싫어졌겠지? 아닌가? 먼저 얘길 꺼낸 건 저쪽이잖아? 내가 남자니까 먼저 연락해서 물어봐야하나? 기타등등 그 뒷맛 지저분한 감정을 가지고 그 애가 다시 삐삐나 전화를 해 줄 때까지 안절부절 못 하는 그 마음을 지금의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고보면 젊은 애들이 '전화 대응 무서워서 못하겠어요' 라고 아주 당연하게 말을 하던 게 떠오른다. 전화 저��의 랜덤한 상황은 익숙해지기 전 까지는 공포 그 자체일것이다. 나도 그랬다(지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 공포를 감당 하면서까지 전화 저편에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그 아이의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긴장을 머리 끝까지 하고 '00이 친구인데 00이 있나요?' 라고 말을 꺼내야 하는 용기, '00이 지금 학원 갔는데' 라고 들었을 때의 절망감. '미안 나 지금 통화 못하니까 (삐삐)음성 남길게' 라고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을 때의 허무함. 그런걸 전~부 감당하며 어느 ��은 통화가 연결이 되어, (30년 후에는 한 톨도 기억 못할 내용을) 소통할 때 느껴지는 기쁨.
지금의 아이들은, 싫은 걸 받아들이고 그 뒤에 오는 기쁨을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있을까? 나중에 커서 경험해야 할 나쁘고 좋은 일들에 비하면 싫은 것도 사소한 것이고 그 뒤에 오는 기쁨도 사소한 것이니, 그닥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쓴것도 단것도 쳐 먹어보라고 가르쳐주고 싶은데, 그런 얘기를 할 어린 애들이 없네 주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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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ITAS : FLEUR
바니타스 : 꽃 -꽃의 영원함을 담은 조각집-
김지영
김지영 작가의 세 번째 신간, 《바니타스 : 꽃》.
"사람은 누구나 영원함을 갈구하고 쫓아간다.”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속에서, 찬란히 피어난 꽃을 통해 담은 찰나의 아름다움.
사진집 《바니타스 : 꽃》을 소개합니다.
꽃의 영원함을 모은 조각집 《바니타스 : 꽃》은, 회화의 전통적 개념인 바니타스 정물화를 사진으로 재해석한 시도를 담아냅니다. 전작 《빛의 실루엣 : 영원의 정원》에서 일본의 풍경만을 담았다면, 이번 바니타스 꽃에서는 작가의 방에서 소재로서 관찰한 꽃의 다양한 표정과 모습에 대해, 정물화로써 접근합니다. 방 안에서 영원할 것만 같은 생명력을 찰나에 뿜어내는 꽃들은, 찰나의 순간만을 살기에 더욱 영원한 모순적 아름다움을 지닙니다.
은은한 분홍빛에 푸른 글씨로 새겨진 산문은 작가의 일기이기도 하며, 과거를 ���돌아보기 위한 글 작업을 위해 쌓아둔 글감을 엮었습니다. 죽음과 삶의 간극을 인식하는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덧없음과 허무함,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 글들로, 과거의 기억과 생명의 조각을 모아 바니타스 사진 작품집을 완성하였습니다.
서평
회화 작업을 할 때 어느 순간부터 꽃시장에서 꽃을 샀다. 직접 관찰해야만 그리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바니타스 화는 17세기 무렵,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해 탄생한 정물화의 한 장르이지만, 메멘토 모리부터 바니, 다스 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언제나 영원함을 갈구하면서 유한한 인생에 대해 고찰하고, 희로애락을 느끼며 그것을 처절히, 그림으로 그렸으나 오로지 정제한 에센스만 남기는 것이었다. 그러한 일련의 무거운 소재들을 고뇌하며 꽃을 관찰했을 때. 내가 생활하는 작업실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잠시 바깥을 다녀와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내가 없어도 꽃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생명력을 내뿜어 향기가 가득해서 미약하기도, 진하기도 한 그 향을, 꽃이 살아있는 며칠 동안 맡았던 것이다.
가냘프면서도 동시에 매우 강하고,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지만 꽃만은 계속해서 피고 지고, 다시 태어나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항상 도달하고 싶었던, 죽어야만 갈 수 있는 천국에 대한 조그마한 조각을 발견한 것만 같다는 것.
《빛의 실루엣》 화집을 시작하면서, 앞으로 새로운 책을 만들 때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제작 방식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번엔 네덜란드에서 공수한 북클로스로 하드커버를 씌운 양장본을 제작하게 되었다. 리넨 천은 화가인 나의 뿌리이자 바탕이다.
전작 《빛의 실루엣》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선명한 잉크의 색감을 표현했다면, 이번 《바니타스》에서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물먹은 투명감 있는 수채화 같은 표면이 완성되었다. 사라진 것들의 모습을 드러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가장 오래되고 튼튼한 제본 방식인 양장에, 그림자만으로 표현되는 타이틀, 그리고 산문의 일부분을 표지에 담았다.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한 이 책은, 소품집이면서 가장 튼튼하고 견고한 새로운 시도와 가장 옛것을 느낄 수 있는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또 하나의 꽃의 조각이 완성된 것이다.
서지정보
Date of issue 2023.06.06. ISBN 979-11-976029-6-2 [03660] 40,000KRW L’ATELIER DE JIYOUNG publis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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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고생했다며 어머니께서 사주신 #축하케이크 9년 4개월간의 첫 직장생활... 끝나면 사람들은 아쉽고 회사는 시원할 줄 알았는데,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허무함 이 엄청 몰려온다. #고생했어 #나자신 이제 #또다른시작 👍👍👍💪💪💪 A #cake from my #mom for #celebrating #my #1st #resignation 🙃🙂😉😊 It feels really #odd.(Uijeongbu에서) https://www.instagram.com/p/CdDu93MPse5/?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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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AS 하러 송정 왔다가 바다만 보고 가네요... . . . #윈드서핑 #송정 #지프 #체로키 #허무함 #가을바다 #가을하늘 #데일리 #일상 #맞팔 #소통 #친구 #소통해요 #맞팔해요 #친구해요 #선팔맞팔 #선팔 #부산 #센텀 #해운대 #부산대 #부경대 #서면 #경성대 #광안리 #뉴스킨 #뉴스킨함께해요 #뉴스킨같이해요 #뉴스킨사업가손광희(송정해수욕장에서) https://www.instagram.com/p/BoQS3gnA-p7/?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voafwy8ir1k2
#윈드서핑#송정#지프#체로키#허무함#가을바다#가을하늘#데일리#일상#맞팔#소통#친구#소통해요#맞팔해요#친구해요#선팔맞팔#선팔#부산#센텀#해운대#부산대#부경대#서면#경성대#광안리#뉴스킨#뉴스킨함께해요#뉴스킨같이해요#뉴스킨사업가손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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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1시 20분. 나는 요즘 매일같이 강변북로 위에 있다. 머릿속엔 ‘빨리 퇴근하자’밖에 없어 보이는 매니저 형 덕에 창밖 풍경은 고장 난 모니터 속 화면처럼 흩날렸다. 그래도 서울은 예쁘다. 원효대교인가 마포대교를 지나며 보는 한강은 특히 아름다운데, 높은 솟은 빌딩들이 강에 비쳐 흐물흐물 액체가 된 듯한 장면은 매일 봐도 장관이다. 서울스러운, 지나치게 밝은 LED 빛들도 강에 묻혀 있으면 부드러운 오색실 같았다.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키운 반주의 노래와 이때다 싶어 피우는 담배는 하루의 피로를 녹여준다. 그러다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저 강물 속 풍경이 내가 인지하는 내 주변 현실의 모습에 더 가깝다는 걸 느낀 후였다. 저 또렷이 보이는 63빌딩이 아니라.
꿈에서 깨면 현실이 다가온다. 그건 너무나 당연했고, 따로 생각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둘의 차이를 묻는다면 그 누가 쉽게 답할 수 있을까. 결국 내게 꿈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졌다. 문제 삼았기에 문제가 되는 상황 같은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제가 내게 다가왔다. 문제가 다가온 그다음 날부터 이유 모를 허무함에 빠졌다. 여러 감정의 변화에 익숙하고, 나름 갱생에 능숙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이건 결코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주변 누구에게 이 얘기를 한다면 당황 섞인 표정과 마주치고 처세술에 가까운 문장만 들을 것을 알기에 구글을 켰다. 나는 차이를 알고 싶었다. 뭐가 다른 걸까. 다르지 ���다면 과연 그것들은 무엇일까. 다행인 건 세상의 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고, 나는 손쉽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찾아보다 보니,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단어들이 잔뜩 적힌 물리학 논문 같은 걸 보고 있더라. 뭐, 대충 30% 정도 알아 들은 것 같은데, 결론은 귀찮게도 ‘다를 것이 없다’ 였다. 정확히는 꿈이 아니라 가상현실과 현실에는 차이가 없다는 어떤 교수의 말이었다. 뭐가 됐건 허무한 건 마찬가지였다. 음,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 앞서 말한 대처법을 모두 해보는 중에 결국 난 술에 빠졌다. 몇 잔의 술만으로 잔뜻 취한 채 꿈 없는 잠을 청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반복되는 술자리 속에서 우연히 친한 누나를 만났다. 세상을 통달한 듯한 그는 내가 이런 상태임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뜬금없이 요가를 권했다.
나의 어릴 적 기억 중 가장 인상적인 건 이거다. 열 살 즈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석양이 졌고, 태양은 하늘에 빨간 천막을 씌웠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으로 정체 모를 무력감이 들어왔다. 그 누구도 힘이 되지 않을 거란 걸 확신했다. 집에 도착한 난 전화기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대체 사람은 왜 살고 왜 죽어야 하냐고. 엄마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할 뿐 끝내 날 위로하지 못했다. 중학생 때까지는 주기적으로 그런 대적할 수 없는 허무를 느꼈다. 해가 쨍쨍한 낮에 잠이 들어 컴컴한 밤에 깨어났을 때도, 할머니의 어릴 적 사진을 처음 봤을 때도, 자주 따 먹던 오디나무 세 그루가 아스팔트 주차장이 되었을 때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변화에 차이는 없음을 알게 됐을 때도.
세상 대부분의 것이 모호하다. 경계를 찾기 힘든 구름처럼 어쩌면 당연하고 또 어쩌면 공허하다. 꿈과 현실은 물론, 여러 이분법적 정의 모두가 마찬가지다. 난 무슨 무슨 주의자의 모습을 띠는 건 딱 질색이라 항상 내 발을 시소의 정중앙에 올려놓지만, 사람의 척추가 다 어느 정도 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해 명명되고 정의된 것은 절대 전체를 담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통용되어온 상식과 객관성이란 말은 요즘 시대와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사회란 것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큰 구조에 불과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만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은 대상이 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내게 찾아온 모든 정보를 여과 없이 받아들여 오직 나에게만 해당되어도 되는 진리를 만들고, 내 친구들이 만든 그들만의 진리가 무엇인지도 어린아이처럼 궁금해진다. 노란 개나리와 영춘화 사이의 차이는 지식이 만든다. 다 같은 개나리로 본다 한들 상관없다. 아름다움에 기뻐한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저 허무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상태는 다행히 변화 없이 변했다. 엉엉 울던 초등학생이 어른이 되었고, 세상이 정하지 않은 죽음에 대한 나만의 진리를 만든 것처럼. 그 과정은 그저 나를 돌보는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마치 그늘에 뿌리를 박게 된 사철나무가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듯이. 구석 어딘가에서 불교 음악이 흘러나올 것 같은 느리고도 미지근한 공간 속에서, 이 과정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의 권유가 새삼 와닿는 부분이다. 꿈에서 현실로 왔다 치고 시작한 아침, 그리고 새벽 1시 즈음 강변북로 위에 있기까지. 난 거푸집의 태도로 수많은 용강을 경험한다. 나만의 단단한 잉곳ingot을 만들기 위해.
차이 없이 다른 초연함과 허무함, 그리고 수천억의 빌딩과 한강 위의 수채화 서울. 여전히 난 그 사이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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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초입, 갑작스레 아프기 시작해서 일을 그만두었고 건강해지기 위한 시간을 보내기로 했었다. 두 달이 더 넘은 지금, 여전히 팔이 조금씩 불편하지만 가끔씩 완벽하게 나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도 생겼다. 운동을 꾸준히 했더니 피부 아래로 만져지는 근육들이 생겨서 신기하고, 매일 천천히 요리를 해서 천천히 먹는, 다 먹으면 곧바로 설거지 하는 스스로가 놀랍다. 퍽하면 날아오던 속도 위반 고지서에서도 해방되었다. 급한 일이 없어도 운전에 집중하지 못 하고 딴 생각하다가 제한속도를 조금씩 어기는 일이 다반사였는데, 지금은 마냥 천천히 달린다. 물론 핸들 잡는 게 팔이 아프니 대중교통을 더 자주 이용하게 된 덕분이기도 하다. 소비를 할 때 백 원 단위까지 비교한다. 언제부터인가 물건을 고를 때 가격을 보지 않고,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면 과감한 소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 작은 돈을 점점 우습게 생각하게 되었었다. 지금은 수입이 없는 백수이므로 시간을 들여서 돈을 아끼고, 작은 돈도 소중히 하고, 그런 내 모습도 왠지 소중하다.(?) 자주 청소해서 집안이 항상 깨끗하다. 어느 자리에서도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 오랜 친구들을 오래, 많이 만났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여름이 싫지 않아졌다.
이 많은 변화들을 결국 한 마디로 하자면, 여유가 생겼다는 거다. 여유가 생겨보니 이전의 내가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돈을 벌기 위해 나는 귀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던 걸까. 물론 돈이 주��� 기쁨, 일을 하면서 얻는 기쁨이 있지만. 그런 것들은 어찌 그리 쉽게 다른 것들을 집어 삼키는 걸까... 가을이 왔다. 돈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 계절이다. 이제는 가을이 주는 것들을 만끽할 차례다. 높은 하늘, 쌀쌀한 바람, 제철음식, 사무친 인간들의 노래, 풍경의 변화무쌍함, 허무함, 그 모든 것들을... 나의 통장잔고를 아끼고, 몸과 마음을 아끼고, 시간은 펑펑 쓰고, 여유도 펑펑 부리며, 이 계절에도 사랑할 것이다. 펑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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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맞고 틀린지 이제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내가 예상했던 서른에 가까운 나의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내 직성대로 풀리지 않을 때, 내가 원했던 것에 도달하지 못하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일어나는 좌절과 어떻게든 이 순간을 넘겨보기위한 고민, 그리고 자기 위로는 나에게 득일까 실일까. 그것을 이겨내고 소위 말하는 ‘성장’따위를 한다고 쳤을 때, 그 후 일어나는 일들은 나에게 일시적인게 아닌 ‘지속적인’ 만족감을 줄 것인가 허무함 또는 또다른 좌절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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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유난히 ���적이는 사내 카페를 보곤, 월요일 같기도 하고 또 금요일 같기도 하다고 생각했다. 주초의 활기라고도, 주말의 흥분이라고도 부를 만했다. 그나저나 사람은 처음이랑 끝 중에 무얼 더 좋아할까? 금요일은 시작일까, 아니면 마무리일까? 졸업식은?
졸업식? 대학 다닐 땐 한 거라곤 음주와 연애 뿐. 그러다 보니 5학년. 허약한 학점으로 취업이 될리가 없었으므로 어찌어찌 기어들어간 대학원. 남들 다 2년 다니고 훌훌 떠나는 걸 재학 연한 꽉꽉 채워가며 쫓겨나듯 받은 학위. 비실비실한 성적표. 학위 도장 받은 뒤로 한번도 펴보지 않은 석사 논문. 졸업식? 학사 석사 두 번 다 안 갔다. 엄빠는 내가 어딜 언제 졸업했는지 아직도 모르시고.
대부분의 일들이 끝이 좋지 않았다고 기억하는 건, 진심이 무뎌진 시간들을 오래 보냈기 때문일 거다.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끊어냈어야 했는데, 내가 그다지 학문에 흥미가 없다는 걸 좀 더 일찍 인정하고 때려쳤어야 했는데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관두면 지는 것 같아서. 관두고 나면 더욱 더 처절하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있을 내가 두려워서. 가진 게 고작 학생이라는 이름 뿐이었어서. 진짜로 원하는 게 무언지 찾을 자신이 없어서. 나를 제대로 들여다볼 줄 몰라서. 그렇게 꾸역꾸역 버티고 버티다 졸업은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좋게 생각해보면 그래도, 학창 시절은 졸업이라는, 새로운 시작이라고도 치켜세워주는 마지막이 있는 게 어디야? 사랑은 그딴 거 없다. 항상 직접 끝을 선택해야 한다.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은 고통 그 자체다. 그러니 애시당초 나는 내가 항상 백 퍼센트 사랑을 한다고 믿어버리기로 했다. 헤어질 가능성은 0이라고 못을 박아 버렸다. 결과는? 예상치 못한 이별 통보? 그런 건 상처 축에도 못 낀다. 최악은,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이 0이 될 때까지 알아채지 못하고, 무작정 애쓰기만 했던 긴 시간과 마주해야 했던 일.
완전히 없어지고 나면 완전히 차가워졌다. 이별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람이 됐다. 그 상태로도 한없이 울었던 건, 존재하지 않는 걸 믿어왔다는 허무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내 마음을 솔직히 관찰하며 연앨 했더라면, 잔인한 이별의 장면 같은 건 없었을 텐데. 이어질 것은 이어지고, 끊어질 것은 끊어지고, 자연스러운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게 가능했을 텐데. 나와 상대에게 덜 상처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헤어지면 가끔 연락도 해보고, 그랬다가 후회도 해봤을 텐데.
같은 이유로, 내가 솔직할 줄 모르는 멍청이라서, 학교 생활도 그저 극단적이고 ��순적으로만 받아들였던 거다. 공부는 하기 싫은데 관두지도 못하는 삶이라고 단정했다. 근데 정말 모든 공부가 다 그렇게 싫었나. ���물게 나를 아껴주시는 철학 교수님도 있었고, 그래서 동양철학 수업 전에는 책도 읽고 했었는데. 교양으로 들은 논리학 재밌다보니 전공이었던 집합론은 학기 초까지나마 열심히 했던 거 같고. 곰곰히 뜯어보면 내가 좋아했던 부분들 이렇게 하나 둘 기억나기도 하는데. 좋은 건 하면서 재밌어하고, 싫어서 하지 않은 건 그저 흘려보내고, 그렇게만 살았어도 졸업이 그렇게까지 부끄럽진 않았을 텐데. 그랬음 엄마 아빠랑 꽃다발 들고 사진도 찍었을 텐데. 시작 같기도 하고 끝 같기도 하다며 빙구같이 웃기도 하고 그러다 갑자기 눈물 몇 방울 떨구기도 했을 텐데.
그러니까 요즘은, 컨디션 좋은 날은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좀 해가면서 일도 열심히 하고, 아닌 날은 내일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좀 일찍 침대에 눕기도 하고. 어떤 비오는 날엔 글도 좀 적고, 그러다 잘 안되면 핸드폰 게임이나 하고. 어제 회식했으면 오늘은 굶기도 하고. 그냥 이러나 저러나 다 내 마음이 뭐라는지가 제일 중요한 거고. 어떤 날이나 월요일 같으면서도 금요일 같을 수도 있는 거라고, 그것도 다 내 맘대로 정하는 거라고 생각해보는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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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
잃는 것과 지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상실감과 허무함 중 어떤 쪽을 더 견뎌낼 수 있느냐는 질문과 같겠다. 그리고 나는 둘 중 하나를 택하지 못해 후회만 하는 제삼자가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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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 맞아. 허무함. . . . #기록#허무함#그것조차#남지않은#텅빈#껍데기#다시#채워야하는데#그래야#또#사랑을#줄수있고#받을수있텐데#바닥까지#퍼줘서#뭘로#차있었는지#기억나지#않는다#일단은#하느님사랑으로#채워보자(대전 유성구 전민동에서)
#하느님사랑으로#바닥까지#일단은#허무함#기억나지#그래야#사랑을#않는다#그것조차#받을수있텐데#텅빈#채워야하는데#채워보자#기록#차있었는지#뭘로#퍼줘��#남지않은#또#다시#껍데기#줄수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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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시 반
쓰레기를 버리러 나오는 김에 내킬 때까지 걷기로 했다
비온 뒤 공기는 쾌활하고 서늘하다
36번째 페가수스가 나왔어도 33은 아직 현역이다
당촌초등학교 운동장을 밟아본지 얼마나 됐을까
20년 전의 내가 떠올라 웃었다
어떤 형태로든 작업을 하는 인간이 되어있을 줄
그 꼬맹이는 상상도 못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하늘과 대화를 했다
이 길이 맞냐고 물어본 건 7년 만이다
LA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리 못지 않게 장소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내면의 변화를 감지한다
확실히 덜 아프고 무던하다
그��에도 가끔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
완전하다는 건 애초에 환상같은 것일까
그렇다면 길게 살고 싶지 않다
30년 쯤 남았으면 좋겠다
무엇에든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다
10년 전 찾아왔던 것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허무함
무형에서 유형으로
유형에서 무형을 거쳐 다시 유형으로, 그리고는 영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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