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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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seungkeon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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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 나쁜 죽음
좋은 죽음 나쁜 죽음
요즘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웰다잉’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잘 죽는다’는 뜻이다. 아직 그 정의가 명확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품위 있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라고 하면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웰다잉’이란 말이 아직 낯설어도, ‘웰빙Well-being’이란 말은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쾌적한 환경에서 즐겁게 사는 걸 ‘웰빙’이라고 한다. “이렇게 살아보니 좋다더라”, “아니, 내가 직접 해보니 그건 별로던데.” 같은 대화를 통해 찾아가는 더 나은 삶의 방식이 곧 ‘웰빙’이다.
‘웰다잉’은 그것을 죽음에 적용한 것이다. ‘웰빙’의 죽음 버전이 곧 ‘웰다잉’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웰다잉’이란 저마다 꿈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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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gnoon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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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우리의 믿음이 무너진 세계 - 믿음의 녹슨 고리를 끊어내자
세계는 세계를 향한 나의 믿음과 타자의 믿음 위에 세워져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가 믿는다는 것을 믿는다. 세월호 사건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세계의 면면을 드러냈다. 세월호 이후 세계는 더 이상 우리가 ‘온전히 누빌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됐다.
세월호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더 있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두 개의 사건이 서로 연상 관계를 맺으면서 ���너지 효과가 생긴다”(43p)는 말처럼, 1993년, 그러니까 약 20년 전 서해페리호 침몰 등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이미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이미 세계에 대한 신뢰가 깨지는 사건을 겪었다는 것,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도 세계를 제대로 재구축하지 못했다는 점이 고통스러웠다. 그 덕분에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맞닥뜨려야 했다.
두려움과 공포만큼 삶을 갉아먹는 것은 없다. 저자는 이를 “수수께끼의 전수"라고 표현, 수수께끼가 세대를 거쳐 전수되는 과정을 지적한다.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한 사건은 삶에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들고, 그림자를 드리운다. 곧 세계 안에서의 활동을 위축시킨다. 결국 우리는 삶에서 주변부에 머무르게 되고, 넘나들면 안 되는 금기의 영역이 생긴다.
우린 이제 허구적인 세계를 그럴듯하게 그려두고, 안심하며 지낼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통의 피상적인 환상이 아니라, 치밀한 의심이다. 믿음이 깨진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고, 우리에게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 보기 좋게 얼기설기 이어진 믿음의 고리를 끊어내고, 점검해야 한다. 그렇게 체계를 다시 만든 후 재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장면의 흔적을 다른 기억들의 연쇄 속에 위치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다른 표상 속에 묻혀 망각될 수 있다. (142p)”
참사는 엉성하게 엮인 언어들 사이에서 야기됐다. 안전에 대한 우리의 언어는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 언어의 간극을 치밀하게 메워야 한다. 언어의 빈틈을 채울 뿐 아니라, 가장 정확한 언어를 찾아줘야 한다. 그렇게 찾아낸 언어는 우리에게 '믿을 수 있는’ 현실을 구축해줄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한낱 해프닝이 아닌 '역사'가 되길 바란다. 언젠가 돌아간 이의 묘소를 찾아 인사를 하듯 일상 속에서 사건을 되새기고 싶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언어 속에서 그를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맹정현, 「트라우마 이후의 삶」, 책담(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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