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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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티 입고 주체사상 책 읽은 단체… 2년간 세금 5550만원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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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 that wacky Mao.
I've never known anyone else who could so effortlessly turn anything into something that kills tens of millions of people. If I break a shoelace, it's an inconvenience. If Mao broke a shoelace, it had a death toll in the millions.
He was Dunning-Kruger at terraforming.
Modern North Korea is just Mao fanfic.
Obsessed that the military strike on chickens at Cellina happened two years and a half ago, alrea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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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대체정당] 주체사상, 미군철수, 윤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진보당은 해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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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 총선거”(2270)
우리세대는 험한 세상을 살아 온 세대이다. 어렸을 때는 일본 식민지를 직/간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해방 후 나라의 혼란을 겪었다. 6.25 전쟁으로 피난길에서 고생 고생하였다. 1.4후퇴라는 추운 겨울 눈 덮인 산길을 걷고 또 걸은 기억도 있다.
전쟁의 페허속에 가난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4.19가 일어났고 이어서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든 격변을 겪으며 산 세대이다. 그후 군대를 갔고, 월남전에도 참전 했다. 해외건설 현장에서 피땀을 흘리며 도로공사와 댐 건설도 하였다.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하여 우리 세대는 뜨거운 사막의 열기와 싸우며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우리의 젊음은 고군분투 일하다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결과적으로 수출이 점차 늘어났고, 산업이 발달이 되었고, 나라가 부강해져서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모두가 나라를 위하여 일한 공로자들이고 애국자들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고 젊은 세대는 비웃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 시대가 변했고, 태생 부터가 다른데 옛날이야기를 해서 어쩌자는 거냐고 따지고 든다. 우리는 가난하게 태어났고, 지금의 젊은이들은 선진국의 귀공자들로 태어나 격이 다르단다. 우리가 겪은 험난한 인생에 대한 동정이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나간 과거를 보상해 달라는 말도 아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떠한 나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지를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공산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악한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6.25 피난길에 어머니는 나의 손목을 한손으로 잡으시고 무작정 남쪽으로 밤낮없이 걸었다. 피난 가던 중 어머니와 나는 북한군(인민군)에 붙잡혔다. 소나무에 묶여서 취조를 받았다. 옆에 소나무에 묶여 있던 사람들은 하나씩 총에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 왜 무엇 때문에 피난을 왔느냐라는 질문이었다. 군인가족이거나 경찰가족이거나 공무원이 아니면 피난을 올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어머니는 장사를 하다가 피난 왔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를 취조하던 인민군이 나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 토마토를 하나 주면서 아버지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가 하신 말씀대로 장사를 하였다고 하였다. 무슨 장사를 했냐고 묻기에 어머니가 말 한대로 쌀가게를 하였다고 하였다. 내 말을 믿었는지 나와 어머니를 풀어주었다. 하마터면 그곳에서 묶인 채 어머니와 나는 총살을 당하였을 것이다. 9.28 수복이 되어 다시 고향에 오게 되었고, 그 뒤 또 다시 1.4후퇴 피난길에 올랐다.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민간인만 100만에 이른다고 한다.
그래 이것도 지난 이야기이고, ‘꼰대’의 변으로 치자. 지금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나라로 통일이 되었다고 하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북한이 주장하는 대로 무료식량배급, 무료 교육, 무료 의료 복지국가로 지상낙원이 되어 있는가이다.
현재 북한 동포의 굶주림과 헐벗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참혹하기 그지없고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그걸 보면서도 북을 찬양할 수 있단 말인가? 먹을 것, 입을 것, 전기, 수도 공급마저 제 때에 공급이 안되는 열악한 실정이다. 영하 20도가 넘는 북한의 추위를 난방 없이 견디기란 쉽지가 않다. 추운 날씨에 수백 미터를 걸어가 얼어붙은 강물을 깨고 물을 길러 와야 한다. 그 찬 물로 빨래를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먹을 수 있는 풀이란 풀은 다 뜯어먹고, 심지어 나무껍질까지도 베껴 먹으면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고난의 행군 때는 3백만 명이 아사하였다. 지금도 북한 주님들은 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라는 사람이 많다. 개인의 자유가 전혀 없다. 모두가 서로를 감시한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번도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노예로 당과 수령만을 위해 살다 죽어야 한다. 헌신과 충성의 대가는 참혹한 궁핍과 그 고통을 충성심으로 극복하라는 철권통치뿐이다. 이들에 대한 실상은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제는 왜 이런 북한체제를 옹호하고 친북세력를 고수하는지가 문제이다. 김정은이가 “통일만 되게 하라우, 그러면 고급당원으로 한 자리 주갔써”라는 약속을 받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통치 밑에서 살면 지금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일일이 눈치를 봐야 하고, 어디를 가도 허락을 받아야 하고, 전기, 더운물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당이 주면 주는 대로, 명령하면 명령하는 대로 복종만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왜 북을 추종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갖은 재능과 실력을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하여 마음껏 사용하면 그에 따라 누리는 지금의 행복이 복에 겨워서일까? 미군 철수를 외치고, 미군기지를 몰아내자 외치는 자들이 자기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싶어 하거나 미국유학중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왜 미국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자녀들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고 싶어 할까?
내가 대학원을 다닐 때 “주체사상”이라는 책을 읽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성경을 그대로 베껴 놓았을까 싶을 정도로 놀란 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이름을 김일성으로 다 바꿔 놓았다. 김일성주석수령동지는 초능력을 가진 신과 같은 ���대한 지도자로 받들고 숭배하여야 한다는 것이 ‘주체사상’ 이다.
이것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하고 세뇌시키면 사람들은 어떻게 변할까? 당과 수령을 위한 꼭두각시로 변할 수 밖에 없다. 북한 주민들이 무슨 죄가 있어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악마를 만나 생지옥을 살고 있다. 고난 행군 때 3백만명이 굶어 죽어도 눈하나 깜짝하지를 않았다. 이런자를 찬양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다. 내가 ‘꼴통수구’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죽기 전에 내 자식이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절대 공산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서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속이는 짓을 잘한다. 광주 5.18, 광우병 촛불집회, 세월호, 천안함,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다 거짓으로 국민을 속이고 선동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제는 더 이상 속으면 안 된다.
그렇게 많은 속임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한심한 일이다. 이번 4.10 총선은 정말로 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는 중요한 선거이다. 자손만대 자유와 번영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최강, 최선진, 최부강한 자유대한민국을 물려 주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 부강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물려 줄 것인가? 아니면 북한의 통치아래 들어가 신음하면서 우리 후손들이 가난하게 살 것인가?가 나의 한표에 달려 있다. 세계가 우러러 보는 최강국을 물려 줘야 한다.
잘못된 사상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해 먹게 맡겨서는 안 된다. 586 운동권 정치 모리배들은 우리 손으로 이번 선거에서 척결해야 한다. 후세에 빛나고 자랑스런 자유민주주의국가를 물려 줘야 한다. 글로벌 시대를 이끌 자질과 품격을 갖춘 사람을 뽑아야 한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 줄 인물을 뽑아야 한다. 더 이상 우울한 정치, 짜증나게 하는 정치, 우리의 삶을 저질스럽게 하는 사람을 뽑아서는 안된다.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과 새 힘을 줄 수 있는 실력 있고 합리적이고 진취적인 정치인에게 한 표를 주어야 한다.
국회의원이 갖는 모든 혜택 중 특별이 불체포특권 같은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떳떳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민주주의 정신을 가진 자, 그리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애국자를 뽑아 주기를 간절히 부탁한다.3-30-2024/hwanshikkim.tumblr.com/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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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lack | Remedy (Juche Remix) - Sound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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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레닌주의자 조국을 시켜 검찰죽이기에 나선것은 공산화의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의도로 봐야.
김환식 장로 어제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했다. 조국이, 헌법상 근거가 없는 불법수사기관인 공수처 설치와 검찰개혁으로 위장한 정치경찰 만들기 및 검찰 힘빼기의 주모자였다는 실토였다. (언론보도 요약) *김웅 부장검사는 사표를 던지면서 조국의 개혁이란 것이 "국민에게는 검찰개혁이라고 속이고 결국 도착한 곳은 중국 공안이자 경찰공화국"이라고 규정하였다. 아래 글을 참고로 하면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레닌주의자 조국을 시켜 공산전체주의로 가는 길의 걸림돌인 검찰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검찰개혁이란 미명하에 불법수사기관을 만들고 경찰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문재인의 일련의 수상한 행동, 즉 선거법 날치기 통과, 청와대를 수사하는 검찰 조직 와해 공작, 현역 장성까지 수사할 수 있도록 한 불법 수사기관 공수처 설치가 공산독재로 가기 위한 친위쿠데타라는 의심을 자초하는 것이다. *조국은 지난 해 법무장관 지명자로서 국회인사청문회에 나와 한국당 김진태 의원의 추궁에도 끝내 사회주의혁명조직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하 사노맹) 활동에 대하여 사과나 전향 표시를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존중하지만 그 틀 안에서 사회주의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욕을 먹어가면서도 그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데는 사회주의로 가는 중간단계인 인민민주주의 체제로 한국의 국체(國體)를 변형시키고 그 길의 장애물을 법적으로 제거하라는 밀명(密命)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국가반역에 해당하더라도 권력의 창과 방패로 저항세력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요컨대 조국의 이해할 수 없는 ‘조국스러움’은 그가 권력 쟁취 및 유지를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계급투쟁론자라는 점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를 임명 강행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그 또한 같은 신념의 소유자라는 사실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 계급투쟁론은 정교한 이론체계를 보여주고 인간해방을 외치지만 권력 쟁취를 위한 수단에 불구하며 이들 좌익집단의 유일한 목표는 한번 잡은 권력을 절대로 놓지 않는 것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말했듯이 이들은 ‘권력을 양도하기 위하여 권력을 잡는 바보’가 아닌 것이다. 조국류(類)의 좌익엔 양심이 없다. 증오의 과학인 계급투쟁론은 양심을 마비시킨다. 양심 있는 우파의 눈으로는 이 부분이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조국은 레닌주의자였고 지금도 그럴 것이다 조국은 사회주의자이다. 그는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준비하였던 사노맹 사건과 연루되어 구속기소되었고, 1995년 5월12일 대법원에 의하여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되었다. 죄목은 국가보안법 제7조 3항 이적단체 구성가입 및 국가보안법 제7조 5항 이적표현물 제작, 판매이다. 대법원 판결문(1995. 5.12.)은 조국이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하기 위하여 국가전복을 꾀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사노맹의 이론가인 조국의 이념체계는 ‘우리사상’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을 분석하면 정확하게 드러난다. 조국은 ‘우리사상’에 실은 ‘PDR론–민주주의혁명에서의 좌편향, 사회주의혁명에서의 우편향’에서 레닌주의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시 이 문건을 분석하였던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조국을 레닌주의자로 분류한다. 그는 고 정리하였다. 레닌이 산모(産母)인 소련 공산체제가 무너져내리는 그 순간에도 레닌을 신주단지처럼 붙들고 있었으니 좋게 말하면 시대착오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공산사교집단의 신도였다는 이야기이다. 유동열 원장은 고 단정하였다. 류선종 이름으로 되어 있는 '강령의 실천적 이해를 위하여'라는 논문은 제목 아래 뽑음말로서 레닌의 어록을 선택하였다. 이론가는 전향하기 어렵다 ‘우리사상’ 2호에 류선종이란 가명으로 조국이 쓴 글-‘강령의 실천적 이해를 위하여’-은 레닌의 혁명노선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심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는 사회주의가 위기를 만나게 되었지만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새롭게 규명해야 한다면서 레닌의 말을 금과옥조처럼 인용,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한다. 소련 사회주의가 무너지는 불리한 시기에도 변함없는 레닌주의자의 면모를 보인 그가 권력을 잡고 법무부장관까지 된 유리한 시기에 과연 전향할까? 청문회에서 김진태 한국당 의원의 추궁에 유달리 강한 소신표명으로 전향 의사 표명을 거부한 것은 그가 지금도 레닌주의자임을 확인해준 대목이다. 조국의 논문을 읽어보면 공산주의 세상을 지향하는 전망 속에서 우선 민중을 선동,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일으켜 권력을 잡은 뒤 자본주의 세력을 일소하는 계급혁명을 다시 일으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체제를 구축, 사회주의를 완성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이론틀에서 본다면 이른바 촛불혁명은 1단계의 민중혁명이고 문재인 정권은 인민민주주의 정권이 된다. 이 정권의 힘을 이용,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진정한 사회주의 체제로 가기 위하여는 우선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 기관인 국군, 국정원, 검찰, 경찰, 법원, 언론 등을 장악해야 하는데 법무부장관 자리는 그런 일을 하기에 좋다(문재인은 연설에서 ‘자유’라는 말을 고의로 기피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겠다는 소신의 표현으로 봐야 한다). 공수처라는 별도의 대통령 직속 수사기관은 혁명세력의 명령에 불복하는 다른 수사 및 행정기관을 감시, 통제하는 보위부 같은 역할을 한다. 조국이 말하는 검찰개혁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검찰이 아니라 정권에 봉사하는 정치검찰을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조국처럼 공산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 주체사상, 사회주의 등을 통칭하는 용어)에 이론적으로 빠져든 이는 전향(轉向)이 어렵다. 박정희 같은 감정적 좌익은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면 쉽게 빠져나오지만, 이론가들은 자신을 부정해야 하므로 참회와 번민의 시간을 갖지 않는 한 자기합리화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사상적 전향은 전향 후의 태도가 중요하다. 공산주의를 버린 자는 반드시 고발자가 되어야 한다. 아니 공산주의를 고발하기 위하여 전향하는 것이다. 황장엽, 김문수, 그리고 미국의 휘테커 챔버스 같은 이들이 그런 고발자가 되었다. 챔버스는 미 국무부의 고관이었던 소련간첩 엘저 히스를 고발한 사람이다. 문재인은 깃털, 김정은이 몸통 계급투쟁론의 한계는 권력의지는 강한데 무능하고 무모하다는 점이다. 조국과 문재인의 판단 착오는 이승만-박정희 세력이 쌓아 올린, 대한민국이란 거대한 문명(文明)의 반격을 예상하지 못한 점일 것이다. 조국게이트를 주도한 이들은 기자, 검사, 야당 의원들이고, 의사, 교육자, 학생들도 가세하였다. 문명의 핵심은 법치와 제도이고, 그 작동원리는 사실·법·과학이다. 계급투쟁론의 포로가 되어 국제사회에서 외톨이가 된 문재인 정권은 골목대장처럼 국내에선 권력으로 이들 문명의 원리를 무시하고 탈원전, 정치보복, 패거리 인사를 밀어붙이는 데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이번에 역풍(逆風)을 맞았다. 사실을 앞세운 언론, 법을 앞세운 검사, 복수정당제와 비판의 자유를 앞세운 야당이 연대하니 “법과 원칙의 소신가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법학자”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소개하였던 조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이른바 진보진영의 상징적 인물이 가진 부패상과 특권의식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불공정에 대한 인간 본연의 분노가 폭발하는데도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 제2의 4·19까지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한 것은 두 사람이 이념공동체임을 증명하였다. 신원식 전 합참의장은 “조국은 깃털, 문재인은 몸통/문재인은 깃털, 김정은이 몸통”이라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의 중요 조문들을 상시적으로, 전면적으로 위반, 대한민국의 헌정(憲政)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있는데 이런 의문이 든다. 그는 누구의 명령을 따르는 자인가? 주권자인 국민과 헌법인가, 아니면 다른 그 누구인가? ‘다른 그 누구’엔 당연히 김정은이 포함된다. 조국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계급투쟁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문재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그가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한다고 고백한 점으로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에 들어가 대통령의 정책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세력 속에 김일성주의자(주사파)와 레닌주의자가 있고 대통령이 이들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면 우리는 지금 정권이 주도하는 국가변란의 한가운데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지르는 전면적이고 일상적인 헌법위반 사태는 정권이 바뀌면(또는 그의 임기 중에도) 헌법적 단죄를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데, 미래의 법정에 제1호 증거물로 올라올 것은 작년 9월19일 평양에서 한 연설문이 될 것이다. 이 연설문은 그의 사상 고백서이기 때문이다. *결론: 우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할 근거가 있다. *2019년 10월25일 채택 국민혁명공약 대한민국 국민은 오늘 주권자 자격으로 헌법수호를 위한 救國(구국) 행동에 나서면서 우리의 뜻을 밝힌다. 문재인 정권은, 북한노동당의 핵무장을 도우면서 국민보호를 위한 방어망 건설은 포기하고, 핵우산을 제공하는 한·미·일 동맹을 훼손, 주권자인 국민을 김정은에게 갖다 바쳐 종 노릇시키려 한다. 이에 우리는 헌법의 칼을 빼어 들고, 한반도의 반역세력을 일소, 자유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열기 위한 국민혁명의 행동에 나선다. 1. 우리는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 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한다. 2. 우리는 북한노동당 정권과 소위 촛불혁명 세력을 헌법의 敵으로 규정한다. 3. 우리는 문재인 정권의 헌법유린 행위를 정권에 의한 반역으로 간주, 헌법의 권능으로 단죄할 것을 다짐한다. 4. 우리는 국민이 헌법수호 행동에 나설 때 정권이 이를 탄압하는 것을 國憲(국헌) 문란의 내란죄로 규정한다. 5. 우리는 국군이 헌법 제5조의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다할 것을 요구하며 이를 방해하는 세력을 대한민국의 敵으로 간주한다. 6. 우리는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국민혁명으로 우리의 생명·재산·자유를 지켜내고, 자유통일을 이룩하여 세계 평화에 이바지함으로써 헌법 제1조의 명령인 한반도 전체의 민주공화국을 완성한다. 7. 태극기로 뭉치고, 헌법으로 싸우고, 진실로 이기자!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 자유통일 만세! (끝) 2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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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수 전 의원의 글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학생운동, 노동운동, 좌익정당을 하면서, 대학교에서 2번 제적되고 25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7년 동안 공장생활하면서, 노동조합 위원장을 2년 동안 했습니다. 감옥에 두 번 가서 2년 5개월 동안 살았습니다. 감옥에서 김일성주의자, 주사파 학생들 수백 명과 만나서 토론도 많이 하고 함께 생활도 했습니다. 광주교도소에서 남파간첩, 공작원, 국내간첩, 재일교포 간첩 100여명과 함께 1년 동안 살았습니다. 저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주의에 심취하여 공부하고, 공산혁명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저는 공산혁명을 꿈꾸는 선배들의 지도를 받으면서, 비밀지하혁명조직 생활도 10여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집권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운동권 출신 대부분과 함께 활동하고 같은 시대를 꿈꾸고 투쟁해왔습니다. 제가 50년 간 겪어왔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종북 주사파와 좌파 연합에 넘어 갔다고 판단됩니다. Ⅰ. 주사파 집권 지금은 주사파가 대한민국의 권력을 잡았습니다. 1. 체험적 반공 6·25전쟁 휴전 이후 우리 국민 대부분은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해왔습니다. 해방 직후부터 공산치하에서 살아봤던 이북 피난민의 체험과 해방 이후 빨갱이들의 폭동과 6.25전쟁기의 만행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나 친지 가운데 해방 직후 좌익 경험이 있었던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통혁당, 인혁당, 남민전 등 김일성의 남조선혁명노선을 따르는 지하혁명당 활동이 끊임 없이 계속 시도됐습니다. 2. 반미 친북운동의 확산 실패를 반복하던 중, 1980년 광주사태를 겪으며, 학생운동과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민들은 피의 학살과 전두환의 집권이 미국의 묵인 아래 ��행됐다며, 미국문화원에 방화하는 사건이 터지기도 하며, 급속히 반미 친북운동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대남방송을 들으며 정리한 김영환의 “강철서신”이 대표적인 주사파 운동권 문건입니다. 신군부의 12.12쿠데타와 광주사태, 그리고 민주화의 좌절을 겪으며 종북 주사파는 대학가로 급속하게 확산됐습니다. 3. 종북주사파 학생운동 종북 주사파가 학생운동을 급속하게 장악하게 된 원인은 첫째, 전두환의 12.12쿠데타와 광주학살로 민주화의 꿈이 갑자기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김일성의 주체사상 혁명론은 체계적이고 쉽고, 대한민국 현실에 잘 맞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론 보다 한국적이며 쉽습니다. 북한이라는 조선공산혁명기지에서 권력을 가진 김일성집단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매일매일 대남방송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대중성, 민족성, 적합성, 신속성은 기존 마르크스·레닌 공산혁명이론 보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아서 급속히 확산됐습니다. 4. 전대협•한총련 20년 전대협(1987-1992), 한총련(1992-2007)이 20년간 전국대학 학생회 조직과 학생운동을 신속하고 완벽하게 장악하였습니다. 이들은 표면 대중조직인 전대협, 한총련과 지하비밀 지도조직인 혁명정당을 나누어서 조직·운용합니다. 학생운동을 마친 운동권은 사회로 나와서, 사회대중운동으로 투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수십만의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자연스럽고도 필연적으로 사회 각계각층으로 투신합니다. 공장으로, 직장으로 들어갑니다. 이들이 민주노총입니다. 정계로 진출합니다. 민주당, 정의당, 민중당은 물론이고, 바른미래당, 자유한국당에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언론계로 들어간 기자들도 학생운동의 경험으로 민주화를 계속한다며, 언론노조를 결성하여, 지금 KBS, MBC, SBS, 한겨레신문, 경향신문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고시에 합격하여 민변,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결성하여,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와 법원, 검찰, 청와대, 서울시와 각급 지방자치단체까지 모두 장악했습니다. 운동권 학생들이 교사가 되어 전교조를 결성하여, 어린 학생들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영화계로 진출하여 운동권 영화를 만들어 천만 관객을 울립니다. 문화 예술계를 석권했습니다. 사업에도 투신하여 사업가로 성공하여 부르죠아가 되었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종북 주사파로 남아있습니다. 입법, 사법, 행정, 교육, 문화, 방송, 예술, 경제계, 기업, 동네 구멍가게까지 완벽하게 붉은 혁명사상으로 물들였습니다. 5. 주체사상의 힘 주체사상은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첫째, ... https://www.instagram.com/p/B7rX_BVFngSq-S5xCqjAIBsiDqPmHFyunYs2Uw0/?igshid=oziuhctqyrv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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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만일 내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안악희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상수로서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위협이다. 또한 트라우마이기도 하다. 일본인들에게는 지진의 공포가, 미국 남부 주민들에게는 태풍의 공포가 존재하듯 한국인들에게 전쟁은 경험하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 경험할 것 같은 공포의 대상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쉽지 않다. 대체 무슨 근거로 도입하게 되었는지 모를 사드 문제도 복잡한데, 트럼프는 연일 위협적인 발언을 쏟아내고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은 또 미사일을 발사했고, 새 정부는 여러모로 골치아픈 상황을 마주할 듯 하다.
그렇다면 과연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모두 어떻게 될까? 필자는 이 글에서 전쟁 그 자체의 숭고함이나 어느쪽이 정의로운지를 논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런것은 어차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앞에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쟁이 얼마나 멋있었는지, 얼마나 정의롭게 상대방을 잘 죽였는지는 후대의 역사가 평가하는 일이고, 정작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이 글은 막상 전쟁이 벌어졌을때 우리의 삶은 어떻게 될지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일단 전쟁이 나면, 남한은 반드시 이긴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성인 남성들은 군복무를 통해 군대를 경험하지만, 사실 그들 중 대다수는 군대와 전쟁의 본질에 대해 무지하다. 대부분 그들은 실전 경험이 없고, 주로 군 시설의 유지와 보수를 위한 작업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군필자들은 대부분 야전 훈련에서 ‘가라'를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물자들이 부족하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275214 ) 군필자들은 실제 상황 발생시 과연 내가 가진 장비가 제대로 작동할 지 걱정해 본 경험이 한두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엉터리 탐지기가 달린 군함이나 총알에 뚫리는 방탄복 ( http://www.fnnews.com/news/201705231515249754 )은 이러한 불안을 더 가중시킨다.
또한 대부분의 징집병들은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사실상 허비하고 전역한다. 비슷한 군비를 지출하고 있는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의 경우, 이미 상당부분 복무 환경이 효율화 되었기 때문에 같은 기간을 복무한 한국군보다 월등히 높은 숙련도를 보인다. 이것은 단순히 징병제와 모병제의 차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일단 전면전이 발발하면 대량의 인명피해는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초급 간부들과 징집된 병사들의 손실이 막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말인 즉슨, 당신의 동생이, 당신의 후배가, 당신의 친구가, 당신의 형/누나가 제일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군은 휴전선을 따라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 http://bemil.chosun.com/nbrd/gallery/view.html?b_bbs_id=10044&num=151429 ) 이러한 배치는 두 가지 이유에 근거한다. 첫째로, 한국군은 아직 군의 첨단화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두 번째로는 사실상 한국군에서 인력은 공짜이기 때문이다. 한국군은 병력 충원을 걱정 할 필요가 없다. 현대��� 전쟁에 있어 대부분의 국가들이 첨단화를 통해 자국의 병력 손실을 최소화 하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방부에게는 병력 동원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휴전선 전면전은 이제 역사속으로 흘러간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을 재현하게 될 수 있다. ( http://www.historylearningsite.co.uk/world-war-one/world-war-one-and-casualties/first-world-war-casualties/ )
동원령 선포 후, 젊은 예비역 남성들도 속속들이 휴전선 인근 부대로 배치 될 것이다. 전쟁이 1달 이내로 끝나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장기화 된다면 이들의 생사 또한 불분명해진다. 이들 또한 구식 참호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인원들은 페바(FEBA) 이하의 부대들이 북진할 때 까지 전투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남한은 반드시 이긴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에 열거한 단점들이 있다 한들, 한국군의 수준은 북한에 비해 압도적이고,( http://www.globalfirepower.com/countries-listing.asp ) 동맹군 미국도 존재한다. 한국군과 북한군의 군의 화력 규모를 보거나 장비의 수준을 비교해 보아도, 병참 체계와 군자금 수준을 보아도 한국군은 분명히 이길 수 밖에 없다. 이곳은 남베트남도 70년대 캄보디아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인명들이 희생될지는 알 수 없다. 한국군의 후진적인 의료 후송체계와 인명경시 풍조로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쟁이 끝나도 한국이 북한을 점령한다는 보장이 없다.
남한이 전쟁에서 이긴 후, 한반도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 올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 둘 필요가 있다.
남한의 헌법이 어떻게 규정하고 있건, 북한은 일단 유엔에 등록되어 있고 160개국과 수교한 국가다. ( http://nkinfo.unikorea.go.kr/nkp/overview/nkOverview.do?sumryMenuId=PO017 ) 외교력이나 국력이 남한에 비해 한참 낮고,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위신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엄연하게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국가"를 한국이 무력으로 점령한다고 할 때, 과연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은, 국제사회는 이것을 묵인할 것인지 의문이다. 한 국가를 병합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도 통일을 하기 위해 남베트남 임시정부를 내세워서 합의 하에 흡수하는 방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남한군이 북진한다고 해서 모두가 박수를 쳐 줄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설령 점령했다 하더라도 주변국의 간섭으로 후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예는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많았다. (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_%EA%B0%84%EC%84%AD ) 북한을 함락시킨다 해도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로 인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휴전선 이북 지역에서 돌아올 수도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최���의 시나리오는 김정은도, 북한 군부도 쓰러트리지 못하고 단순히 힘의 우위만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상처뿐인 영광을 얻는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코 앞에 친미 국가가 세력을 확장하는 것을 용인할 것인가?
한국은 국제 정치에서, 동아시아에서 어느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까? 물론 예전에 비해 국가의 위상도 높아졌고 경제력도 막강해 졌기 때문에 한국이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지난 9년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 http://www.huffingtonpost.kr/2017/01/09/story_n_14046650.html ) 다른 패권국가들이 국제 정세를 자기들 입맛대로 휘젓는 동안, 한국은 별 다른 제스쳐를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 붕괴 후 한국이 단독으로 북한 지역에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언론계에서 나도는 “북한 분할통치설"이 근거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본다. (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6&news_seq_no=2479602 ) 전쟁은 한국이 하고, 희생도 한국인이 한 뒤, 통치는 4개국이 나눠서 할 수도 있다.
과연 북한 주민들은 우호적일 것인가?
설령 북한을 남한이 점령했다 하더라도, 2천5백만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정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전쟁보다 더 중요한 작업은 전쟁 이후다. 무력으로 한 지역을 점령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지역을 완전히 국민 국가의 일원으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과 동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2000년대부터 탈북자들이 남한 정착에 실패하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남한 사람도 살기 힘든 환경에서 북한 사람들이라고 잘 적응 하겠냐마는, 탈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남한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 http://www.nocutnews.co.kr/news/4652756 ) 사실 한국은 규모상으로는 훌륭한 경제 대국이지만 아직 평등에 대한 개념과 인권에 대한 개념이 지체되어 있는 형편이다. 사람을 출신과 성별로 차등을 두고, 그러한 대우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풍조가 여전하다. 사회적 변화의 속도는 경제적 변화의 속도를 여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은 또 하나의 2등 국민으로 취급당할 위험이 있다. 한국은 이미 오랜기간 특정 지역을 차별한 사례가 있다. 심지어 전라도 차별 이전에 서북 차별이 있었다. ( https://ko.wikipedia.org/wiki/%EA%B4%80%EC%84%9C_%EC%A7%80%EB%B0%A9#.EA.B4.80.EC.84.9C_.EC.A7.80.EB.B0.A9_.EC.B6.9C.EC.8B.A0.EC.9D.98_.EC.97.AD.EC.82.AC.EC.97.90.EC.84.9C.EC.9D.98_.EC.B0.A8.EB.B3.84 ) 21세기 한국에서 서북 차별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 이렇게 되면 사회는 더욱 심한 분열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허울뿐인 국가 안에서 소모적인 분쟁과 적대 행위가 끊이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북한에는 오랫동안 “남조선 군정"에 대한 가설이 있다. 한국군이 60만 대군을 유지하는 이유는 북진통일 후 북한 지역에 군정을 실시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물론 이것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감군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유사시 북한지역 안정화에 필요한 병력"이므로 60만 대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독일이 통일 된 이후, 마냥 좋은 일 만 있으리라고 예상했건만, 독일인들에게 있어 현실은 달랐다. 특히 동독 주민들에게는 서독인들이 “점령군 행세"를 한다며 불만이 많았다.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32 ) 설령 자신들이 사회주의 통일당 독재하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동독 사람들이 미개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동독이 과거의 세월까지 모두 삭제당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서독은 과거의 잔재는 도매금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여 전부 일소하기 시작했다. 비록 주체사상의 아래에서 살아왔고, 외부 정보와 차단된 국가에서 살아왔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세월이 송두리째 박살나는 것을 본 북한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마냥 좋아할까? 아니면 북한의 “좋았던 날들"과 일부 좋았던 제도들을 상기하며 남쪽에서 온 “서울 깍쟁이"들에게 적대감을 가질까? 이것을 단순히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들의 우매함으로 볼 수 있을까?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자세를 남한 정부는 가질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갈등이 길어지고, 통합에 실패하게 되면 어디서든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특히 전쟁이라는 환경은 일반인들이 무기를 입수하기 너무 좋은 환경이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북한군이 소지하고 있던 많은 숫자의 개인화기는 ‘망실' 될 것이다. 이 낡은 무기들이 북한군에 존재할 때는 북한군의 후진성을 상징하겠지만, 민간인들이 입수하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심지어 이들은 10대 시절부터 군사훈련을 받아 왔으며 사실상 군사화된 사회에서 살아왔다. 이들 중 일부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괄시는 받지 않은" 시대를 그리워 하며 개마고원을 무대로 주체사상 유격대를 조직한다면, 한국은 오랫동안 골치아픈 상황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생각보다 오랜 시간동안 유격전이 지속되었음을 기억 할 필요가 있다.
생명을 희생한 젊은이들은 보상 받을 수 있을까?
한국군에는 슬프게도 이중배상 금지규정이 있다. 국가배상법에 따르면 군인, 군무원과 경찰은 직무 중 죽거나 다쳐도 국가에 손해배상을 할 수 없다. (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4%91%EB%B0%B0%EC%83%81%EA%B8%88%EC%A7%80 ) 이들은 오로지 법정 배상금만 받을 수 있다. 이 법은 황당하게도 보수 우익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박정희 정권 시기에 생겼다. 앞서 이야기 했듯,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엄청난 병력이 소모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법정 배상금만 받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거리에는 수많은 상이용사들이 넘쳐날 것이고, 이들은 국가로부터 충분한 배상을 받지 못한 상태로 계속 남을 것이다.
또한 한국군은 참전 용사들에 대해 배상을 할 만한 시스템도, 자금도 없다. 법률상으로는 작전시 부상을 입거나 희생당한 장병들에게 배상을 하도록 되어있지만, 만 단위의 희생자가 발생하면 한국 정부는 이들에게 전부 배상을 할 수 있을까? 1차대전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보너스 아미" 사건이 한국에서 재발할 수 있다. ( https://en.wikipedia.org/wiki/Bonus_Army ) 당시 1차대전 참전용사들에게 제대로 미국 정부가 배상을 하지 않았고, 결국 불만이 누적되어 대규모 시위로 발전했다. 미국 정부는 이들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대신 폭력 진압으로 답했다. 과연 한국 정부는 대규모 전쟁 후 배상금을 지급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결론적으로, 한국은 절대로 전쟁을 해서는 안된다. 또한 한국 정부는 지금 전쟁을 할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다. 또한 전쟁을 한다 해도 제살 깎아먹는 행동이 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키고 수도권을 쑥대밭으로 만든 뒤 대한민국이 어디까지 재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국제정치다. 가장 성공적인 정치는 상대방을 회유하고 설득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피를 피로 씻는 행동은 언젠가는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더이상 자신의 주장이 타인과 다르다 해서 물리적 고통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력을 이용한 정치를 복원하자고 하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기초로 다진 민주주의를 완전히 전복시키자는 이야기와 다름이 없다.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닥쳐올 때, 종종 호전적인 언론인들이나 소수의 별스러운 정치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http://news.joins.com/article/4190806 ) 하지만 전쟁이 나면 사람이 죽게 되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제일 먼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는 전쟁을 먼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도망쳤다는 사실도 상기 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도 새 정부는 대화와 타협으로 남북관계를 재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모두 함께 군사주의적 모험을 일삼으려는 자들을 사회에서 일소하자. 그리고 새 정부는 평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더이상 사람들이 대량으로 소모되는 사회가 재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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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23일 (목) JTBC 뉴스룸 다시보기 - "11% 상승" vs "52% 올라"…집값 공방
2020년 7월 23일 (목) JTBC 뉴스룸 다시보기 – “11% 상승” vs “52% 올라”…집값 공방
1. "11% 상승" vs "52% 올라"…집값 공방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부와 야당이 부동산 정책을 놓고 공방을 벌였습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번 정부 들어 서울 집값이 11% 올랐다"고 하자, 야당은 "50% 넘게 올랐다"고 반박했습니다. 김 장관은 "유동���이 넘쳐 부동산 상승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2. "남북관계 위해 평양특사 주저 않겠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남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특사로 직접 평양에 가는 걸 주저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주체사상 신봉자’인지 묻는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을 향해선 "과거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라면서 "남쪽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질문"이라고 반박했습니다.
3. "100건에 60만원"…배달앱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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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김일성,김정일 비교분석
아래 내용은 황장엽의 글로써,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교분석한 것이다. 북한 역사에서 북한권력자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지켜보면서 직접 겪은 황장엽이 쓴 이 글은 60년 북한사 권력내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귀중한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황장엽의 시각도 전혀 문제 없는 것은 아니나, 북한정권의 성격과 내막을 알 수 있는 글이기에 옮겨 왔다. (1) 독재자로서의 김일성과 김정일 수령의 개인독재 체제에서는 수령개인의 자질과 성격도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나는 1958년 1월초부터 1965년 4월까지는 김일성의 이론서기로 일하였고 그 후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으로서 그의(김일성) 자녀들의 교육을 책임진 관계로 그와 자주 접촉하고 연계를 가졌다 그리고 1972년 부터는 최고인민회의 의장으로서, 그리고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문제 때문에 그와(김일성) 자주 만나 사업을 같이 하였다. 1979년 부터는 당중앙위원회의 주체사상 담당비서, 과학교육 담당비서, 국제사업 담당비서로서 김일성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의 이론서기를 할 때 받았던 인상은 매우 좋았다. 김일성은 근면하고 지혜롭고 위신 있게 행동하였다. 매주 한번씩 거진 빠짐없이 정치국 회의를 자기 집무실 옆에 있는 소회의실에서 진행하였는데 우리 서기들은 꼭 참가시켰다. 김일성은 먼저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자기가 설명하였으며 그에 대한 대책도 말하였다. 그의 특징은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지 않도록 쉬운 말로 철저히 해설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이 다 정당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자기 의견을 충분히 말한 다음 참가한 간부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여기서도 부자연스러운 점이 없었다. 그는 제기된 의견에 대하여 모두 정확하게 해명하여 주었다. 나는 이 정치국 회의에 참가하여 김일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우리 서기들을 매우 사랑하였으며 자기가 공장이나 농촌을 현지지도 할 때에는 꼭 따라다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이 해야 할 사업이 많기 때문에 항상참석이 어려울때도 있었다. 어떤 때에는 그가 먼저 나가 현지지도를 하다가 우리를 부를 때도 있었다. 그는 공장과 농촌에 대한 현지지도 때에도 구체적으로 잘하였다. 노동자, 농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으며 공장과 농촌지도 일군들에게 조금도 압박감을 주지 않고 지도하였다. 몇가지 실례를 들어보기로 하자. 1958년에 김일성은 지방에 있는 자체의 유휴자재와 원료를 이용하여 지방에서 생활필수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들을 대대적으로 건설할 데 대한 방침을 내놓으면서 여성들이 직장에 나와 일할 데 대한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였다. 이 시기에 공장 기업소들과 기관책임자들의 회의가 있었다. 김일성은 지배인들에게 가정부인들을 직장에 진출시킬 데 대한 당의 방침을 설명해 주고 각 직장에서 여성들을 대담하게 채용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많은 지배인들이 반대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여성들을 채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동력이 부족하여도 남자들끼리만 일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어느 지배인은 "여성을 채용하는 것은 국가의 손해가 됩니다. 그 이유로 첫째는 여성들에게 선전산후에 유급휴가를 주어야 하며(처음에는 90일이었으나 그 후 150일로 늘어났다.), 둘째는 어린아이가 조금 감기만 걸려도 직장에 나오지 않으며, 셋째는 말만 많이 하고 일은 안하며 특히 뒤에서 간부들의 흉을 보는 것을 일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김일성은 그 지배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우리가 여성들을 직장에 내보내자는 것은 단순히 노동력이 부족 되어서가 아니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이 집에서 부엌일만 하고 있으면 사회생활에서 뒤떨어진다. 사회생활에서 뒤떨어지면 자연히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여 방해하게 된다. 사실상 부엌일만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여성들을 부엌에서 해방하고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부터 여성들이 아이들을 기르는데 걱정 없이 마음놓고 직장에 나갈 수 있도록 모든 곳에 탁아소, 유치원, 진료소를 건설해 주도록 하여야 한다." 그 후 도시와 농촌 곳곳에 탁아소, 유치원, 진료소가 운영되었고 여성들이 대대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게 되었다. 1959년이었다. 그 해에는 공업은 발전되었지만 농사가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양식을 사오는 문제가 정치국 회의에서 논의되었다. 쌀은 비싸기 때문에 잡곡을 사와야 하겠는데 잡곡 가운데서도 무슨 잡곡이 좋겠는가 하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논의되는 것을 한참 듣고 있던 김일성은 "나는 여러 가지 잡곡을 다 먹어보았지만 그 중 제일 좋은 것이 고량(수수)같이 생각되었다. 고량을 사오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모든 어려운 생활을 다 겪어 본 분이 다르구나"하고 속으로 감탄하였다. 어느해 평안북도 창성군의 농촌을 현지지도 했을 때의 일이다. 리(理)당 비서가 김일성을 안내하였는데 리당비서의 집이 지주집을 몰수한 것으로서 좋은 기와집이었다. 리당비서는 해방 전에 그 지주집에서 머슴을 살았다고 한다. 김일성은 집을 돌아보고 부엌에 들어가 살림형편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옆집에도 들렀다. 그 옆집은 작은 집이었는데 깨끗이 꾸려져 있었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가마 안에 점심 밥그릇을 넣어 두었기 때문에 밥이 식지 않고 따끈따끈 하였다. 또 장 단지와 채소절임단지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김일성은 "이 집주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하고 물었다. 리당비서는 "그는 해방 전부터 목수일(목공)을 해온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의 월수입은 리당비서의 절반도 안되었다. 그러나 살림은 오히려 훨씬 문화적이었다. 김일성은 리당비서에게 이 목수집 같이 집을 잘 거두고 문화적으로 규모 있게 살라고 충고를 주었다. 그리고 수행원들에게 "수입이 많다고 반드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문화수준이 문제이다. 해방 전 목수는 해방 전 머슴보다 문화수준이 높기 때문에 수입은 리당비서보다 절반밖에 안되지만 살림은 오히려 리당비서보다 낫다"고 하였다. 우리는 김일성의 높은 식견에 감탄하였다. 김일성은 손님들을 접견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는 정치대표단들 뿐 아니라 학자대표단, 예술인 등 외국인대표단을 많이 만났다. 김일성은 대중집회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였다. ���부들과 협의회도 많이 하였고 협의회 참가자들의 의견도 열심히 들었다. 정적(政敵)에 대해서는 무자비하였으나 동료들과 아랫사람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였다. 그는 공식적인 회합 이외에 측근자들만 모아놓고 술파티같은 것을 조직하는 일이 없었다. 김일성은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참작하여 정책을 결정하였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에는 반드시 간부들을 모아놓고 자기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서기들이 이론적으로 정리하여 아래 당 조직에 내려보냈다. 아래기관에 지시할 때에는 직접 책임간부들을 부르든가 전화로 하였다. 자기가 방향을 준 다음에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보좌하는 간부들이 자체로 결심하여 처리하도록 맡겨두었다. 김일성은 현지지도를 많이 하였으며 현지실정에서 많은 것을 착안하였다. 또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실천에 옮길 때도 한 단위에서 먼저 실험 삼아 해보고 경험을 쌓은 다음 그것을 더욱 일반화하였다. 남의 것을 기계적으로 모방하지 않고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해나가도록 노력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큰 나라들의 나쁜 영향을 거진 받지 않았다. 이는 내가 1958년부터 1965년 초까지 김일성의 이론서기를 할 때에 느낀 인상이다. 다만 내가 그의 작풍(作風)에서 굳이 부정적인 면을 찾는다면..이라고 생각하였다. 김일성이 점점 교만하게 되고 일을 잘못 처리하게 된 것은 1974년에 당시 제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동생(김영주)을 내쫓고 자기 아들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정한 다음부터라고 생각된다. 1945년부터 1974년까지는 김일성의 독재정권이 수립되고 공고화되는 였다. 1974년부터 1994년까지는 김일성·김정일의 2중 정권시기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김정일은 제2인자가 아니었다. 이 점에서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와는 지위가 달랐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김정일이 제2인자의 자리에 있었으나 그는 처음부터 실권자였다. 그가 실권을 장악하면서 자기의 정치강령으로 내놓은 에는 "수령(김일성)의 유일적 영도는 후계자(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에 의하여서만 담보된다."는 것이 명기되었다. 이는 김정일의 영도적 지위를 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와 라고 표현은 좀 달리 하였지만 진의도는 는 것이다. 따라서 이때부터는 김정일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소한 보고도 김일성에게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고 김일성의 지시는 김정일을 통하지 않고는 아래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실현될 수도 없게 되었다. 첫 시기에는 김일성이 자기의 권력을 김정일에게 자진하여 넘겨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이 모든 부분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되자 김일성도 김정일을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었으며 1990년대에 들어서서는 김일성은 김정일의 이 되고 말았다. 물론 김일성과 김정일은 부자지간이고, 또 김일성은 자기 아들에게 권력을 넘겨주는데 이해관계를 가졌고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위를 이용하는데 이해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양자간의 모순이 표면화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1974년부터 1985년경까지는 2중 정권시대였다고 볼 수 있고 1985년부터 1994년까지는 의 2중 정권시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85년경부터 김정일은 사실상 모든 부문의 사업을 완전히 장악하였으며 대외적으로도 자기의 부하들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지도자라는 사실을 선전하도록 하였다. 특히 1991년 그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된 다음부터는 정식으로 최고 권력의 승계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는 전당과 전국가가 무조건 복종하기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보니 김일성이 오히려 김정일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1992년 김정일의 생일 50돐에 즈음하여 김일성은 동서고금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으로 부왕이 왕세자를 칭송하는 송시를 써 올렸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이 모든 것을 규정한다는 정치논리의 냉혹성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 된다. 김일성은 자기 아들에게 정권을 넘겨줌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하였으며 자기 아들의 "권력"앞에 아부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마지막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만일 김일성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활동하고 한 생을 끝마쳤더라면 가짜 김일성이건, 진짜 김일성이건 관계없이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도 살아났을 것이며 해방후 북한의 지도자로서의 역사도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정권을 자기 아들에게 넘겨줌으로써 김정일과 더불어 수치스러운 길을 걷게 되었으며 그의 한 생의 전반부까지도 다 망쳐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김일성의 한 생을 그르치게 한 데에는 김일성 자신보다도 김정일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애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의 하나는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한 것이다. 이 문제에서 두 사람 가운데서 누가 더 큰 책임이 있겠는가? 일반적으로는 김일성에게 더 큰 책임이 있는 것처럼 보고 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도 절반 이상의 책임이 김정일에게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부족점을 극복한 가장 철저한 민주주의자로 자처하고 있는 만큼 비록 계급적 독재는 불가피한 것으로 인정하여도 정권을 세습적으로 승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문제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고 북한에서는 현실적으로 정권의 세습적 승계가 실현되었다. 점에서 김일성이나 김정일이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김일성은 소련 땅에서 군정훈련도 받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 기본에 대한 상식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권을 세습적으로 물려주는 문제를 처음부터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때때로 "공산주의자에게도 자기 자식이 더 귀여운 것만은 어떻게 할 수 없거든"하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김일성은 공산주의자로서 자기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려는 민주주의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의 개인 독재기간이 장기화되고 정치적 기반이 강화되면서 그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권을 자기 개인의 소유물과 같이 여기는 사상이 자라나게 되었다. 김정일은 절대적인 독재자의 가정에서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자라났다. 1949년에 생모인 김정숙이 사망한 후에는 그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자라났다. 김일성의 후처(김성애)는 김일성에게 복무하던 여성이었으므로 처음부터 김정일에 대하여 계모의 입장에서 대한 것이 아니라 받들어 주는 입장에서 대하였다. 또한 김정일 스스로가 아버지에게 자기는 계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로 부르겠다고 제기하여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김정일은 어릴 때부터 왕자와 같이 행세하였으며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늘 자기를 최고 권력자인 김일성의 대리인으로서 제멋대로 방자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커가면서 자기 밸대로만 행동하는 품성이 더욱 자라나게 되었으며 이것이 아버지의 권력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으로 굳어지게 된 것 같다. 1959년에 내가 김일성을 따라 모스크바에 갔을 때 김정일도 같이 갔다. 그는 나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그와 같이 생활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가 17세의 소년답지 않게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침에 김일성이 공식행사를 위하여 숙소를 떠날 때 자기가 직접 아버지의 몸을 부축하여 현관까지 모시고 나와 구두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겨주었다. 그때 김일성은 47세였는데 청년들도 따를 수 없을 정도로 원기왕성하였으나 김정일이 몸을 부축해 주고 신발을 신겨주는데 대해 매우 만족해하였다. 그리고 김정일은 저녁에 아버지가 숙소로 돌아올 때 반갑게 마중하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김일성을 따라다니며 가까이에서 모시는 주치의사와 간호원, 부관들을 자기 방으로 불러 그들이 김일성을 어떻게 모셨는가를 물어보고 다음날 계획과 주의사항을 이야기하여 주었다. 김일성을 수행한 고위급 간부들이 많았으나 김정일은 아버지의 활동에 대하여 자기가 책임지는 입장에서 하나하나 간섭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나는 김정일이 앞으로 반드시 자기 삼촌을 내쫓고 자리에 앉게 될 것이며 혹 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예감을 가졌다. 이란 권력의 세습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때는 설마 그렇게 까지야 되지 않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그때는 세습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니깐.. 나는 김정일에게 모스크바 종합대학에 유학할 것을 권고하였으나 그는 정치는 아버지에게서 배워야 하며 아버지의 일을 돕기 위해서는 유학하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당시 김정일의 모든 언행으로 보아 권력을 세습적으로 승계 하는데 있어서는 김일성보다 김정일이 더 주동적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업적의 면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교해보면 김일성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수 있지만 김정일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면을 찾기 어렵다. 김일성의 혁명활동 즉 일제때 항일무장투쟁은 사실이지만, 역사의 곳곳 왜곡 날조하고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를 터무니없이 강화하여 정권을 김일성 일가의 세습정권으로 만든 주되는 책임도 김정일에게 있다. 또 김일성의 영도 밑에 축성해 놓았던 자립적인 민족경제를 다 망쳐먹고 북한을 기아와 빈궁의 땅으로 전변시킨 주되는 책임도 김정일에게 있다. 그리고 북한의 문화를 수령절대주의 문화로 전환시킨 것도 김정일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북한 사회에 변형된 형태로나마 남아 있던 사회주의적 요소를 일소하고 북한 사회를 전체주의와 봉건주의를 결합시킨 전대미문의 개인독재체제로 전변시킨 책임이 바로 김정일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적의 면에서 평가한다면 김정일은 (0)도 못되고 ()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사업방법과 작풍의 면에서 김정일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독재자로서의 성격 면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교해 보면 김일성은 너그럽고 포용력이 있는 독재자라는 인상을 주지만 김정일은 성격상 타고난 독재자 같이 보인다. 김일성이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독재를 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김정일은 독재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나는 1958년부터 1965년 4월까지 김일성의 이론서기로서 당중앙에서 당생활을 하였다. 그때에는 김일성의 동생인 김영주가 당사업을 주관하였다. 그러나 내가 1979년에 당중앙의 비서로 다시 중앙당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김정일이 당사업을 주관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중앙당으로 다시 돌아와서 너무 많은 것이 달라진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전의 중앙당 생활이 국가의 최고 수뇌부에서 사는 기쁨과 긍지를 주는 생활이었다면 다시 체험하게 된 중앙당 생활은 바로 옆에 서 다칠세라 걱정하면서 잠시도 긴장성을 풀지 못하고 있는 불안한 생활이었다. 이전에는 중앙당 일군들의 당생활만 통제하는 본부 당위원회라는 상설적인 조직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시대에 와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본부당 위원회가 신설되었으며 여기에는 중앙당 일군들의 조직생활을 지도하는 과와 사상생활을 지도하는 과 그리고 비밀정보사업을 지도하는 과 등을 두고 중앙당 일군들의 생활을 2중, 3중으로 감시하고 통제하였다. 김정일은 사람들이 화목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싸우도록 하고 오직 자기 한사람에게만 의존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당조직 생활을 강화한다고 할 때에는 자기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규율을 엄격히 세우는 한편 회의를 열고 당원들이 서로 비판하게 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삼고 있다. 상호비판에서는 김정일의 사상과 지시에 충실하였는가, 충실하지 못하였는가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상호비판이 강화되고 당원들이 격렬하게 싸울수록 김정일의 권위는 높아지게 된다. 그는 당생활에서 무풍지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어떤 자그마한 결함이 나타나도 그것을 큰 사건과 같이 만들어(이것을 과 를 빈번히 벌이도록 하였다. 한마디로 말하여 그는 당원들의 생활을 잔잔한 상태에 두는 것을 반대하고 늘 풍파를 일으키고 들볶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 김일성은 회의에서도 긍정적인 예를 많이 들어 사람들을 고무해주고 부정적인 것은 적게 비판하였다. 그는 늘 "긍정으로 감화하는 방법으로 부정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김정일은 부정을 비판하는 것을 위주로 할 것을 요구하며 강한 상호비판의 분위기 속에서 회의가 진행되었을 때 회의가 분위기 속에서 잘 되었다고 높이 평가한다. 또 회의에서 비판에 잘 참가하지 않는 사람을 혁명성이 없다고 배격하며 남의 결함을 목청을 돋구어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을 혁명성이 강하고 수령에게 충실한 당원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 투쟁하는 것을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바라본다. 그러므로 본부 당위원회에서 중앙당적인 나 을 조직하도록 지시한 다음에는 자기 집무실에 앉아서 (폐쇄회로 화면)을 통하여 회의 정형을 자세히 살펴본다. 김정일은 정치적 지도에서는 각 부서들이 정책안을 제의서 형식으로 올려 비준(결재)받는 것을 제도화하였다. 그는 새로운 문제와 원칙적인 문제는 예외 없이 제의서를 제출하여 비준받도록 엄격한 제도를 세웠다. 이것은 김일성때에는 거진 없었던 현상이다. 당중앙위원회 안에는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위시하여 여러 부서들이 있다. 부서에는 여러 개의 과가 있으며 몇 개과를 지도하는 부부장이 있다. 부서 책임자인 부장이 있고 몇 개 부서 ���는 한 개 부서를 담당하여 지도하는 비서가 있다. 비서가 한 개 부서만 지도할 때에는 부장을 겸하게 되는데 대체로 큰 부서인 경우에 비서가 부장을 겸한다. 큰 부서에는 자기 부문 사업에서 독자적으로 책임지는 제1부부장이 몇 명되기 때문에 부장이 여러명 있는 것과 같다. 제1부부장은 부부장과 동격이 아니라 부장과 동격이라고 볼 수 있다. 매개 과에서는 정책과 관련된 제의서 또는 정세자료보고를 작성하여 부부장, 부장을 거쳐 비서에게까지 올라와 통과되면 매주 한번씩 부서별로 문건을 김정일에게 올린다. 현재는 그가 당총비서이지만 그 전에는 총비서대리인으로서 사실상 총비서나 다름 없었다. 당중앙 각 부서들에서 올리는 제의서들과 보고서들의 양은 방대하다. 내가 사업한 국제부만 해도 매주 30건40건이 되었다. 중앙당 외에도 내각과 외무성, 군대, 사회안전성, 국가안전보위부 등 직접 제의서를 올리는 단위들이 있다. 김정일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제의서는 모두 자기가 직접 보고 결론을 준다. 심지어 비서들이 직접 올린 문건인 경우 내용이 중요하다고 인정될 때는 비준한 문건을 직접 자신이 특수한 봉투에 넣어서 친필로 비서이름을 쓰고 봉인하여 내려 보내준다. 이 모든 것은 방대한 작업량이지만 김정일은 이 사업을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처리한다. 김정일의 중앙당 부서와의 사업은 기본적으로 를 통한 사업이다. 그런데 제의서를 비준해 주는 형식에서 차이가 있다. 김정일이 자기 이름과 날짜를 친필로 써 준 것은 무조건 집행해야 할 법적 문건으로 된다. 날자만 써준 것은 제의서를 올린 부서가 책임지고 집행할 수 있다. 줄만 두 개 써준 것은 집행해도 좋고 안해도 좋으니 부서결심에 따라 하라는 뜻이다. 중요한 부서들에서는 1주에 한번 제의서를 올리는 것 이외에 매일 수시로 모사전송기를 통하여 김정일에게 보고 올려 결론을 받는다. 이와 같이 김정일은 직접 사람을 대상(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라는 문건을 통하여 사업한다. 이런 점에서 김정일의 정치는 라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김일성은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정치를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일의 정치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다. 김정일은 를 자주 조직하는데 여기에는 예술인들이 참가하여 공연을 한다. 원래 이 파티는 김정일이 자기의 을 꾸리기 위하여 마련한 것으로 추측된다. 여기에 자기가 신임하는 일군들을 참가시켜 술을 먹여놓고 그 성품도 검열하며 특히 측근자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충성을 다하도록 만들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술파티인만큼 술을 잘 먹고 잘 놀 줄 아는 사람들이 자주 참가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자리에서 이것저것 이야기도 듣고 말하게 되면 그것이 곧 정책으로 될 때가 있다. 술파티에서 술이 좀 취한 후에는 김정일 한 사람에 대하여서만 절대적 경의를 표할 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직위고하를 따지지 않는다. 술파티에서는 김정일 한사람밖에는 그 누구도 인정하지 말라는 김정일의 유일적 지도체제의 요구가 철저히 집행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일은 이런 자리에서 집행하기 어려운 지시를 즉흥적으로 내렸다가 조령모해(朝令暮解)로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래 김정일은 이해타산을 빨리 잘하지만 성격이 너무 급하고 변덕스러워 즉흥적으로 불합리한 명령과 지시를 내릴 때가 적지 않다. 예를 ���어 그는 한때 외국에 출장을 나가는 사람은 평양시계공장에서 생산한 국산품 시계를 차라고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평양시계공장에서 생산되는 시계는 매우 낙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시계를 차고 외국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또 여성들이 흰 저고리에 까만색 치마를 입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으나 중앙당의 여직원 이외에는 이 지시에 잘 따르지 않고 있다. 그는 겨울에는 눈이 있어야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중앙당 구내에서는 눈을 치지 말라는 쓸데없는 지시까지 하였다. 김정일은 자기가 친필로 비준하여 준 제의서도 그 후에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제의서를 올린 사람을 비판하고 처벌한다. 중앙당 조직지도부 교시편찬 과장은 김정일이 학생 때부터 비범한 사상이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하여 김일성종합 대학 교수들을 동원하여 15권에 달하는 방대한 김정일 문헌집을 만들었다.(물론 이것은 100%조작한 것이다.) 과장은 하나하나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 출판하였다. 그러나 후에 그 내용이 어느 개인의 권위를 높여주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제기되자 과장과 문헌집필에 동원된 교수들을 처벌하고 문헌집을 전면 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김일성은 쓸데없는 형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일은 사람들을 수령에게 절대 복종시키기 위한 형식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중요한 모임이 있을 때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맹세문과 축하문 같은 것을 최상의 정중성을 다하여 올리도록 하였으며 김일성의 동상과 열사능에 화환을 증정하는 의식을 진행하게 하였다. 명절 때마다 각 직장들에서는 수령께 충성을 맹세하는 선서모임을 하게 된다. 이때에는 먼저 김일성을 칭송하는 노래와 김정일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선서가 끝날 때는 김일성의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와 김정일의 만수무강 축원의 노래를 부르게 한다. 김일성 때는 아래 사람들한테 선물을 보내거나 자기가 차리는 연회에 초청할 때 별다른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명절에 선물을 받을 때도 선물명세서를 책임간부들이 나가서 전달하고 배려에 보답하겠다는 을 5명 정도에게 시킨다. 연회초대장도 책임간부들 이 나가서 일정한 의식을 진행한 다음 초대장을 수여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수령의 배려로 느끼도록 하기 위한 의식이 많다 보니 김일성, 김정일에게 맹세문과 감사문을 올리는 모임도 자주 가지게 된다. 연말인 12월 31일 밤에는 국가적인 송년회 또는 신년맞이 모임이 진행된다. 이런 경우에 김정일은 공식모임에는 참가하지 않고 측근자들, 파티멤버들을 모아놓고 따로 논다. 그러다가 밤 12시나 새벽에 중앙당 부서 책임자들에게 "지난해에 모두 일을 잘했다. 새해에 더욱 분발하여 큰 승리를 이룩하자"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을 모사전송기로 보내준다. 그러면 정월초하루인 명절날에도 부서 책임자들이 비상소집을 하여 김정일의 신년 축하 편지를 받드는 의식을 하고 결의문이나 맹세문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김정일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김정일은 늘 모임이 있을 때마다 두 가지 주의사항을 강조하게 한다. 그 하나는 당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개별적 간부들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공개적인 것보다도 비밀리에 무엇을 하기 좋아하며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질투하는 것은 김정일의 성격상 특징 같이도 생각된다. 김정일은 공개적���로 사람들을 만나거나 대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공개적으로 연회를 차리는 것보다 자기 측근자들을 모아 놓고 놀기를 좋아한다. 그는 낮에 일하는 것보다 밤에 놀고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질투심이 병적으로 강하다. 김일성은 자기에게 충실한 부하에 대해서는 질투하지 않았다. 그는 건방진 사람은 미워했지만 자기에게 충실히 복무하는 사람은 대중의 신망이 높다고 하여 질투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충실한 부하도 대중의 신망이 높으면 질투한다. 또 다른 나라에서 일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나라 지도자가 인민들 속에서 신망이 높아도 질투한다. 물론 이러한 김정일의 성격상 특징은 결국 그의 철저한 이기주의적 사상관점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공개할 수 없는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기의 자질을 높이고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복무하는 원칙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권위를 높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과 모략의 방법으로 자기에 대한 환상을 조성해보려고 애쓴다. 그는 남한과의 경쟁에서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이기려고 하지 않고 테러와 모략의 방법으로, 그리고 무력 침공의 방법으로 이기려고 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무참히 죽였으며 공개할 수 없는 많은 비행을 저질렀다. 그는 이러한 비행이 폭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당생활에서 비밀을 지키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면서 신문에 공개된 것 이외는 모두 비밀이기 때문에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비밀이 새나간다고 하여 당중앙의 부부장 이상 간부들의 부인은 원칙상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김정일은 자기에 대한 우상화를 위하여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지만 사람들이 다른 간부들에 대하여 좋게 말하면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개인숭배를 반대한다고 한다. 자기는 인민의 영도자이기 때문에 이 아니지만 다른 간부들은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 개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도당 책임비서가 일을 잘하여 인민들 속에서 신망이 높게 되면 꼭 교체해버린다. 때로는 인민들 속에서 개인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였다고 하여 의 모자를 씌워 숙청해 버리기도 한다. 그는 자기를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 외의 인간관계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가족주의, 지방주의를 이라고 배격하며 동창회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친목회를 모두 반대한다. 심지어 그는 사제지간 관계나 선배후배관계를 따지는 것도 반대한다. 그의 요구는 "수령과 가까운 사람과는 가깝게 지내고 수령과 먼 관계에 있는 사람과는 먼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를 반대하도록 전당에 조직적으로 지시하여 김일성의 후처 아들들인 이복동생들을 대중과 절연시키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웠다. 김정일의 이복동생들로부터 사소한 선물을 받거나 편지를 받았다 하여 직위에서 파면되고 추방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반대중은 대상과는 인사도 하지 않고 만나서 악수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러나 반대로 김정일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응당한 호의를 표시하지 않을 때에는 크게 노한다. 그는 자기에게 기쁨을 주고있는 가무단을 매우 사랑한다. 원래 이 가무단들은 김정일을 위하여만 복무하게 되어 있지만 때로는 김정일이 당중앙 일군들에게 를 돌려주어 그 공연을 보여 줄 때가 있다. 이때 중앙당 간부들이 박수를 잘 치지 않았다 하여 김정일은 중앙당 일군들 속에서 사상투쟁을 벌이도록 지시한 일이 있다. 그 후부터는 김정일이 사랑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공연을 볼 때는 중앙당 간부들이 손이 아프고 팔이 저릴 정도로 오랫동안 박수를 쳤으며 공연이 끝난 다음에도 몇 번 막이 올랐다 내렸다 할 때까지 박수를 치고 더 이상 공연자들의 반응이 없어야 자리를 뜨게 되었다. 김정일은 자신을 무조건 따르는 추종분자들을 동원하여 자기를 세계가 공인하는 대정치원로로 21세기의 태양으로, 만능의 천재로 떠들게 하고 있다. 북한 통치자들이 떠드는 북한의 수령의 위대성과 북한의 비참한 현실은 천양지차의 대조를 이루고 있다. 확실히 김정일의 독재는 가혹하고 그의 독재 능력은 탁월하다. 그는 바로 이 독재능력으로 자기 아버지를 망치고 북한 사회를 망쳤으며 그를 추종하는 많은 순진한 사람들을 망치고 있다. 앞으로 그가 이 탁월한 독재능력에 의거하여 남한과 외국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망치고 7천만 우리 동포들에게 유례 없는 재난을 가져오지 않을 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상 끝. ~~ 이 내용,글이 혹시 내가 거짓이나 또는 내가 속은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수도 있지만 다시말하지만 난 그냥 사실그대로.. 그대로 글을 올렸습니다. 못믿으면 직접 알아보고 찾아보세요..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하도 부정적이고 삐닥하게 보고 내가 죽일놈이 되는것을 몇번 경험해봐서 그래요.. 난 북한과 아무 관련없고 하물며 제 외할아버지가 6.25때 공산군한테 장사한다는 이유로 총살 당했어요. 이런 내용까지 말하는건 하도 어이없는 말들이 많아서요.. 그리고 이건 실제로 황장엽 선생님의 말과 글이에요. 제가 알기론 황선생님의 가족들도 좋지 않게 된걸로 아는데.. 설마 황장엽 선생님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립니다.(끝) 2019-11-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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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왜 노인인구가 적고 젊은이는 많은가요?
★베트남은 왜 노인인구가 적고 젊은이는 많은가요?
한반도도 그렇게 될까 매우 걱정스런 이 아침에 아래 글도 읽어 보실까요?
베트남은
공산통일 되어서 지금 잘 살고 있다"고 좌빨들이 암암리에 선전하고 있어서, 통일 직후
베트남의 실상을 되돌아 보았습니다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월남)이 무조건 항복한 후
20년동안 베트남은 국경을 폐쇄하고
공산화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숙청작업을 했던 거지요.
"인간개조"를 위한
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군인,경찰,공무원,
교사,정치인 등
사회의 지도층을 모두 잡아 들였지요.
특이한 것은
성직자들은 잡아 들이지 않았어요.
인간개조가 안된다고 판단해서
모두 처형하였던 것입니다.
베트남에는
성당은 있어도 베트남신부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약 100만명을 잡아들여서
장교, 경찰간부, 6급이상 공무원,보직교사,
여당정치인,자본가등은 개조가 아닌
처형을 했다고 합니다.
주목할 일은
베트남 공산통일의 1등 공신인
'베트콩'지도자들을 “모두 숙청”했지요.
6.25 후
김일성이 남로당 "박헌영"을
제일 먼저 죽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처형을 하자
국외로 탈출한 인구가 보트피풀 106만명,
육상 탈출이 50만명 이라고 하며
탈출 중 사망자가 11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인접국 호수에는 탈출 베트남인들이
만든 수상 마을이 수없이 많습니다.
이런 학살로
경제는 완전히 무너져서
“어쩔수 없이” 1995년 이후 개방 경제를 택하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숙청했는지
지금 베트남에는 노인이 없고
평균 연령이 27세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암약하는 좌파와 종북세력은
공산 통일이 되면 득세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유일 주체사상
공화국"의 불순분자로
제일 먼저 처형될 사람들입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빨갱이 밑에서도
살수 있을거다!"는 말을 뿌리는데
그런 자들이 제일 먼저 처형 당한다는 걸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사실 현재 대한민국에 상황은
공산화 될 때 베트남 상황보다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베트남 정권은
민주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좌경화된 지금에 우리와는 다릅니다.
단지 들끓는 좌익의 소행을 통제못해 무능 딱지가 붙었지만, 현재 한국은 친북정권이 들어서 있고
친북 정권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지지층이 있고, 또 어릿거리는
젊은 애들이 다 좌경화 되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
대한민국은 스스로 공산화 하는데 아주 쉬운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저항세력 이라곤 오로지 태극기 부대 등등
미국이
월맹과 평화협정을 맺을 때는 이미 월남전 패전을 생각하고있었답니다.
그런데 왜 손을 들고 나왔는가!
"전략적인 패전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공산화된 월남을
친미 국가로 만드는 게 오히려 더 쉽겠다 이렇게 분석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입장이 굉장히 복잡합니다.
차라리 한반도를 공산화 시켜놓고
김정은과 길을 틀 것인가 아니면
남쪽에 민주국가를 잘 세워놓고 북한을 밀어 제칠 것인가
그걸 지금 고민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알아야 되는 점이 여기 있습니다.
아마 태극기 세력이라도 없었다면 미국은 진작에 결심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자유대한 국민 여러분!
공산당이 얼마나 잔혹하고 무서운 지를 격어봐야 아실겁니까?
이제라도 모두들 깨어나십시오!
우리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미국도 헛되이 피를 흘리지 않겠다 했습니다.
온국민이 내 조국을 지키려 할때 동맹국인 미국도
힘이 되어 줄겁니다.
지금은 한미동맹이 더욱 더 굳건히
해야할 때 입니다.
베트남에는 노인이 없고 평균 연령이 27세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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