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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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했던 말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3월 19일 KBS 대선후보 경선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이라는 코너에서 특전사 시절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문 후보는 낙하산을 메고 있는 사진을 설명하면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공수부대 때 제 주특기는 폭파병이었습니다. 그래서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 막다가 총 맞은 참군인 초상이 됐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최우수 표창을 받기도 했고요. 나중에 제1공수 여단의 여단장이 아까 말씀하셨던 전두환 장군, 그때 그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는데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도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민주당 대선경선 후보자는 물론이고 국민의당과 극우언론까지도 문 후보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문 후보를 향한 비판은 항상 가능합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을 말했다고 비난을 받아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기까지, 그리고 왜 전두환을 가리켜 ‘반란군 우두머리’라고 했는지 그 배경을 통해 비판의 근거가 합당한지 알아보겠습니다.
‘문재인은 왜 특전사로 강제 차출당했나?’
이 논란의 시작은 ‘문재인 후보는 왜 특전사를 갔는가?’에서 시작합니다. 재수 끝에 1972년 경희대 법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문재인 후보는 1975년 유신독재 반대 시위로 구속됩니다.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된 문재인은 석방된 지 얼마 안 돼 입영 통지서를 받습니다. 신체검사도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문재인은 입영 전날 신체검사를 받고 다음날 입영하는 강제징집을 당했습니다.
문재인은 39사단에서 훈련을 받았지만, 특전사로 차출됐습니다. 강제징집자는 ‘신원특이자’로 특별 관리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 1982년부터 시작된 녹화사업은 학생운동 전력자를 프락치로 활용했지만, 이전에는 전방부대와 기갑, 포병, 특전사처럼 힘든 곳으로 보내 고생을 시켰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자랑하는 특전사 경력의 시작은 박정희 유신 독재 반대 시위로 인한 ‘강제 징집’이었습니다. (관련기사:문재인은 왜 ‘특전사’에 가야만 했는가?)
‘특전사령관 정병주, 1공수여단장 전두환, 3대대장 장세동’
문재인 후보가 특전사에 입대해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여단 3대대였습니다. 당시 특전사령관은 정병주, 공수여단장은 전두환, 대대장은 장세동이었습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했던 문재인 후보는 특수부대 부대원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수부대원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는 생각을 하고 훈련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직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을 일으키기 전이었던 1975년 무렵이었기에 문재인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받은 표창을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특전 사령관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는 사실은 특수부대원 중에서 최고라는 증명이었습니다.
문재인은 왜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았을까요? 보통 군대 표창은 사령관으로부터 받으면 여단장, 대대장도 함께 줍니다. 자대의 위상을 높였다거나 관련 훈련을 잘 받았으니 사령관 표창까지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대하고 나왔더니 여단장이 반란군 우두머리로 자대 출신 병사를 체포’
제대 후 문재인은 사법고시를 치릅니다. 2차 시험을 본 문재인은 합격 소식을 유치장에서 듣습니다. 왜냐하면,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 5.17 비상계엄령으로 문재인을 체포해 유치장에 가뒀기 때문입니다.
1980년 6월 5일 경향신문에는 ���법시험 합격자 명단이 발표됩니다. 문재인이라는 이름 옆에는 5.18 광주항쟁 때 신군부에 의해 사망한 사망자들의 명단도 나옵니다.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들은 문재인은 나중에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하지만 시위 전력으로 판사.검사 임용이 좌절됩니다.
문재인 후보는 전두환을 가리켜 ‘반란군 우두머리’라고 지칭했습니다. 유치장에서 광주학살과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함께 들었던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당연한 표현이라고 봐야 합니다.
‘특전사 동기에는 거수경례를 대대장 장세동에겐 악수만’
2012년 특전사전우회가 주최하는 ‘6.25상기 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34년 만에 특전사 동기들을 만나자 거수경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대대장 장세동에게는 악수만 하였습니다.
아무리 대선 주자라고 해도 군대 시절 직속 상관을 만나면 악수만 건네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는 거수경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짜 문재인 후보가 전두환이 준 표창을 자랑스러워 했다면 ‘반란군 우두머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며, 대대장이었던 장세동에게 거수경례를 했을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를 향한 비난 중에는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표창이 5.18 광주 진압 작전을 잘했기 때문이다’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문 후보의 특전사 복무는 1975년~1978년으로 5.18광주 민주화운동 전입니다. 또한 광주학살이 벌어졌던 1980년에는 체포돼 유치장에 있었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얘기입니다.
문재인 후보는 자신에게 쏟아졌던 전두환 표창 의혹을 해명하기 위해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광주학살 전두환으로부터 표창을 받은 나쁜 놈’으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문재인 후보의 공약 중에 있던 노동이나 경제 정책 등을 비판한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제 징집으로 특전사에 끌려가고 전두환의 계엄령으로 체포돼 판사 임용까지 좌절됐던 문재인을 가리켜 ‘전두환의 표창을 자랑스러워 한다’는 비난은 억지에 불과합니다.
민주당 대선 경선이 치열해지면서 각 후보 진영마다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공약이나 정책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뻔히 드러날 사실을 가지고 말꼬리를 잡는 비판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그런 비난은 극우 세력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고,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적폐 중의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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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한국사
12·12군사반란
十二十二軍事叛亂
12·12사태, 十二十二事態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군사 반란 사건.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하고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했다.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은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날짜 1979년 12월 12일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 참모 총장 등을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하고 군권을 장악하면서 시작된 군사 반란 사건이다. 신군부는 12월 13일 군본부와 국방부, 중앙청, 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를 협박해 사후 승인을 받은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확대를 계기로 정권을 장악하는 한편, 이에 항거한 5·18 광주 사태을 강경 진압했다. 전두환은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으며, 1981년 개헌으로 제5공화국이 시작됐다.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은 권력에 의해 오랫동안 은폐돼 있었으며, 김영삼 정부에서야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다. 이를 계기로 계엄사령관에 취임한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은 군 내부개혁을 진행했다. 정승화 계엄사령관은 수도권 지역의 주요 군 지휘관을 교체했으며 이에 따라 정치군인을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부각됐다.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하나회(신군부)는 이에 불만을 품고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를 감행해 불법적으로 군권을 장악했다.
12월 12일 저녁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이 합수부 소속의 허삼수, 우경윤 대령에게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의 강제연행을 지시했다. 한국정치사에서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또 한 번의 군사쿠데타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부 인사처장 겸 계엄사령부 소속 합동수사본부 조정통제국장이던 허삼수 대령은 합동수사본부 수사 제2국장 우경윤 등과 함께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저녁 6시 50분 경 무장한 제33헌병대 병력을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 주변에 배치했다.
약 20분이 지난 7시 10분경 참모총장 공관으로 들어가 총으로 위협하며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을 체포했다. 이후 저녁 7시 30분경 정승화 총장을 강제로 끌고 나와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참모총장 부관이 전화로 외부와의 연락을 시도하자 합수부측 보안사 수사관들이 권총을 발사해 양측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신군부는 큰 저항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해 군사쿠데타에 성공했다. 같은 시간,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은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저녁 9시 30분경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등과 함께 집단적으로 대통령을 찾아가 재차 정승화 참모총장의 체포 및 연행에 대한 재가를 강압적으로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2. 12사태 12·12 사태를 일으킨 지휘부와 행동대장들이 국군보안사령부 건물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한편, 이 부분에 대해 추후 대법원은 12월 13일 새벽 5시 10분경 신군부세력의 주장대로 재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정승화 참모총장이 이미 체포되었고 또 신군부 세력이 군권을 장악한 이후 이루어진 것으로서 '사후승낙'에 불과하기 때문에 반란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12·12 군사반란 다음날 아침 노재현 국방부장관은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여했던 것이 판명되었기 때문”이라는 짤막한 배경설명을 발표했으나, 그 역시 신군부에 의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은 12월 13일 0시부터 새벽 6시 20분 사이 육군본부와 국방부, 중앙청, 경복궁 등 핵심 거점을 차��로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 하에 두었다. 또한, 정병주 특전사령관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을 체포했으며 수도경비사령부에 모여있던 윤성민 참모차장과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 문홍구 합동참모본부장 등 육군본부측 장성들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12·12 군사반란 이후>
이듬해인 1980년 1월 20일자 신군부 세력은 정승화 참모총장의 추종세력인 이건영 3군사령관과 정병주, 장태완 등을 모두 예편시키고 정승화 참모총장에게 징역 10년형을 선고했다. 이와 달리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신군부 세력은 대부분 승승장구하며 권력의 요직을 차지했다.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이희성 중장이 임명되었고 수도경비사령관에 노태우 소장, 특전사령관에 정호용 소장이 임명되었다. 그 외에도 황영시, 김복동, 유학성, 유병현, 박준병 등 신군부 세력은 군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신군부 세력은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계기로 국가권력을 탈취하며 긴 쿠데타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등장한 제5공화국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12·12 군사반란의 진상은 그후 십여년간 밝혀지지 못한 채 권력에 의해 은폐되어 있다가 김영삼 정부 아래서 쿠데타의 주역인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이 구속되어 사법적 심판을 받는 과정에서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한국사 #정치 #광주사태 #12·12군사반란(十二十二軍事叛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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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전라도를 아느냐 ③ 박지원은 전라도 사람의 한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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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전라도를 아느냐 ③ 박지원은 전라도 사람의 한을 어떻게 이용했는가?
오늘 치 글질 궁리를 하고 있는 동안, 꽤 심각하게 다가온 의문이 있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에 대한 매우 부당한 편견을 일종의 숙명으로 참아내는 능력은 탁월해도 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문입니다.
풀어 적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이를테면 어제 글에서 적어둔 <특질고>나 <소위 하와이 근성 시비>를 읽고 피가 역류하는 듯한 모욕감을 느끼면서도(그런 느낌, 없으세요?), 그대로 주저 앉아, 그러니 어쩌란 말이냐고, 체념하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글을 읽고, 그런 현실을 알고도 분노, 그런 게 느껴지지 않을까? 합당한 분노 없이 극복될 수 없는데? 최초의 촛불 몇개가 촛불혁명이 된 것은 바로 포기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분노 때문인데? 그렇다면 전라도 사람들은 자자손손 영원히 전라도에 대한 참 부당한 편견에 시달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의문이 잇달았습니다.
곧 합당한 문제의식 부재이고, 문제의식없이 문제풀이는 불가능하죠.
*
저의 이런 의문이 사실이라면. 제가 아무리 문제 제기를 한다 해도 그것은 담벼락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거나 마찬가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제목을 <박지원의 전라도>에서, 다분히 도발적인 <너희가 전라도를 아느냐>로 바꿨습니다.
바꾼 이 제목에서 <너희>는 전라도 사람입니다. 곧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를 모르고, 따라서 전라도 사람이 전라도에 대한 문제 의식이 없는 것 같다는 의구심의 표현이 되겠습니다.
저의 이 의구심이 터무니없이 틀린 것일 수도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광장에는 틀린 소리, 바른 소리, 무슨 소리든지 제출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저의 이번 글 요지는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질문이 되겠습니다.
– 당신들의 이런 현실, 분노가 느껴지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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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을 떠올리면 제게 우선 다가오는 것은 웬만한 여자 손보다 더 보드랍고, 더 작은 그의 손입니다. 저는 이때까지 박지원의 손보다 더 작고, 더 보드라운 남자 손을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
사람에 대한 저의 평가는 이를테면 눈빛이나 입매나 웃음이나 목소리나 앉는 자세나 등뼈의 수직도나 걸음걸이 같은 것으로 판단하는 인상학(人相學 physiognomy)적인 경우가 많고, 스스로 그 적중 퍼센티지가 높다고 생각하여,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면접자 역할을 할 때, 대개 그런 쪽에서 피면접자를 평가했고, 그 결과는 꽤 좋은 편이었습니다.
손도 저의 인상학적 평가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어보자면 악수할 때, 그 손의 느낌과 그 손에 들어가 있는 힘,입니다. 그 느낌은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생애를 짐작해볼 수 있고, 그 힘을 통해 상대를 향한 그 사람의 성심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심’이란 ‘타인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뜻합니다.
제 손을 잡을 때, 박지원의 손에는 힘이 거의 제로 상태였습니다. 제 손을 쥐는(握) 게 아니라 단지 제 손 안에 자신의 손을 살짝 밀어넣는, 그런 거요. 그래서 그의 손은 더 보드랍게 느껴졌을 듯합니다. 제 식으로 분석하면, 그것은 곧 타인에 대한 겸손 부재를 뜻합니다.
그리고 그 손과, 그 시간, 그의 관자놀이 선을 분명하게 드러내주던 그 참 얇은 웃음기는 그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 같은 게 되었고, 그에 대한 이런 고정관념은 그의 정치적, 인간적 이력에 대한 제 ‘느낌’과 매우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오늘 그에 대한 결코 쉬운 것이 아닐 글질을 시작하려다 보니(타인에 대한 폄평이 쉬운 것일 수 없죠), 역시 가장 먼저 다가오는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겸손이 도무지 느껴지지 않던 그의 그런 손입니다.(그의 손에 대한 저의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억’은 ‘느낌’의 잔상이기 때문입니다.)
*
‘기억’과 ‘사실’은 편차가 클 가능성이 크지만, 결국은 저의 독백 공간인 이 블로그 글질은 대개 기억에 의지합니다. 사실과 다를 위험성은 있지만, 제 기억은 저의 고유 생각일 것이므로, 이런 블로그 글질에는 그게 훨씬 더 어울릴 것 같고, 또 저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약간이나마 ‘사실’을 확보해두기 위해 편리한 검색 기능을 이용합니다. 오늘 글질을 위해 ‘박지원’을 검색해보니까 어떤 여자와 어떤 장소에서 어떻게 섹스를 했다는 것부터 박지원에 대한 온갖 풍문과 사실이 와르르 떠올라오네요. 그럴 만한 사람들에게는 그 악명이 꽤 높은 지만원은 <박지원은 입 닫고 조용히 떠나라>라는 그의 글 서두에서 이런 통계를 보여줍니다
– 박지원에는 주렁주렁 꼬리표들이 달려 있다. 엄청난 양이다. 구글에서 박지원을 검색하면, 그에 붙은 꼬리표들이 화물기차 수백 대를 채울 만큼 많다. 2016.6.19. 에 검색한 결과다. 검색어 ‘박지원’을 치면 557,000개가 뜬다.
사람들은 놀림 투로 지백원, 지천원, 지만원, 하지만, 지만원 노릇도 쉬운 게 아니구나 하고, 저는 하하하 웃습니다(그런데 그는 적어도 제 눈에는 도무지 터무니없어 보이는 짓을 왜 그토록 줄기차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 적지 않습니다).
*
저는 온라인에 떠도는 그 많은 ‘박지원’ 관련 자료들 가운데 우선 다음 문장을 인용하기로 합니다. 제가 인지하고 있는 박지원의 ‘social status’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정치 9단,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휴민트를 자랑하는 정치인, 사상 초유 원내대표 3선 기록, 영원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서실상으로 불리는 분입니다. 최근에는 국민의당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국민의당 당권을 장악하신 ���이죠. 여야를 넘나들며 특유의 정치력을 뽐내는 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정치력에 대해 보는 시각은 각각 다르지만, 뛰어난 정치감각의 소유자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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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박지원이 ‘공식적’ 이력에서 ‘전두환 찬양’과 함께 대개는 빠지는 듯한데, 그는 뉴욕에서 가발 장사를 하여 돈을 벌었는데, 지금은 한국자유총연맹 중앙회 회장으로서 지난번 촛불혁명 기간 동안 박근혜 결사 옹위를 위해 매우 인상적인 전투를 벌인 김경재가 어느 날 이런 권유를 합니다 – YS보다는 DJ에게 베팅하라. (‘베팅’이라는 이 표현에 잠깐 생각을 머물러 보세요^^)
그래서 박지원은 당시(80년대 초) 경제적 곤궁 상태에서 미국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김대중에게 ‘과감한 베팅’을 했고(그 무렵 김영삼에게 ‘베팅’한 사람은 김혁규이고, 그는 그 뒤 김영삼의 지원을 받아 경남 지사 등, 요직을 역임하게 됩니다^^), 그 은혜를 저버리지 않은 김대중의 각별한 배려로 한국 정치판에서 승승장구, 앞 인용문에 적어둔 바와 같은 현재의 박지원이 만들어집니다.
정말 수지맞는 ‘베팅’을 한 셈이죠.
상인으로서 그의 시장 감각은 역시 탁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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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9단이니 하는 표현은 아마 대한민국에밖에 없을 듯하고, 지저분하게 썪은 것으로 세계적 명성이 자자한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9단’이라면 결코 명예로운 것은 아닐 듯한데, 한국적 정치 현실에서 ‘강자’인 것은 사실일 듯합니다. 역시 ‘탁월한 시장 감각’ 덕분이라 생각되는데, 그는 사실 그가 한국 정치판에 발 들여놓은 이래 언제나 주역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탁월하지 않다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글질의 목적은 박지원의 정치적 이력 탐색이 아니므로 곧장 반문정서를 이용한 그의 호남 장사 쪽으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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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이나 그 부류의 인사들이 주장하는 ‘反文’ 요지와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反文 요지 1)참여정부에서 호남사람을 홀대했다
사실 – 그 어느 정권 때보다 호남 인재 기용이 더 많았다
정찬용등 참여정부 인사 “호남인사 홀대 거짓”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비롯한 참여정부 호남인사 10여명은 이날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참여정부의 지역홀대 및 인사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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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文 요지 2)문재인이 자서전에서 전라도 사람 때문에 망했다 했다
사실 – 자서전에 그런 구절 없다.
*
우리가 함께 논의해야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이 되겠습니다.
명백한 허위인데도 불구하고 박지원이나 그 부류 인사들의 반문 선동은 무서운 기세로 먹혀들어갔고, 그 결과가 지난해 총선에서 박지원당이 이룩해낸 기적 같은 ‘승리’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유 1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반박하려 할 때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괴벨스의 말이라 알려져 있는 이것이 사실은 괴벨스의 것이 아니라는 설이 있지만, 그 누구의 것이든, 이 말은 무서운 사실입니다. 대중은 본질적으로 우중(愚衆)입니다. 선동자는 대중의 이런 속성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김대중정부에서 선동 담당 문화부장관을 지낸 바 있기도 한 박지원은 괴벨스의 이 선동술에 매우 능합니다. 선동용 한 문장을 띄워, 선동을 완성한 뒤에는 넉넉하게 얇은 웃음이나 웃으며 자신이 이룩해낸 그 선동 결과를 즐깁니다. 지난해 총선 승리는 그 절정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박지원의 뛰어난 이 매상은 괴벨스 원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유2가 필요합니다.
이유 2
앞에서 누누히 이야기해둔 전라도 사람들의 갓 생긴 듯한 민감한 상처입니다. 길을 가다가 바람결에 실려온 ‘전라도’라는 말만 스쳐 들어도 상처를 느낀다는 이야기, 기억하고 계세요.
바로 그런 그들에게 문재인이 자서전에서 그랬다더라, 문재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 참여정부에서 전라도 사람들 물 먹였다더라, 단지 그런 소리 하나만으로도,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이니 하는 이성적 절차없이, 전라도 사람들의 감정은 시퍼러둥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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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기억하고 있는 분, 계신가 모르겠는데요, 지난 해 총선에서 문재인의 <호남 진입>을 내내 생중계하던 오마이티브에 이런 장면이 비쳤습니다. 시장에서 좌판을 펴놓고 있는 아마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자기에게 들이밀어진 마이크를 밀쳐내며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 이거 치워버리라고. 나도 다 들은 게 있응게.
그때, 꼬옥 다물려진 그 안노인의 굳은 입매에서 제가 읽어낸 것은 서리서리 맺힌 전라도 사람의 한(恨)이었습니다. 아, 저것은 쉽사리 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저는 탄식했고, 그 뒤 그 비슷한 입매를 직접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유 3이 필요하겠습니다.
이유 3
‘사람좋은’, 또는 ‘사람은 좋은’, 그런 평판을 받고 있는 문재인은 박지원의 선동을 바라보면서도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오해들이 풀리리라, 그렇게 기대하고 있기나 했던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괴벨스 원리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태평한 마음의 무서운 결과라고나 할까요? 혹독한 것이었죠.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에게 중요한 학습이 되었으리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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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 블로그에서만 해도 여러 차례 이야기한 것이지만, 박지원이나 김종인 부류 인사들이 강조, 강조하는 ‘반문정서’는 사실은 ‘반가워요, 문재인’이라는 것을 <문재인 마침내 호남 진입> 뒤에 되풀이하여 경험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직접, 그리고 오마이티브이 생중계 화���을 통해 확인한 것인데, 우리 정치사에서 대중으로부터 그토록 열광적인 환영을 받은 경우는 없었다고, 단언해도 좋을 듯합니다.
더구나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온 것인데요?
그 장면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격했습니다.
저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 총선 뒤가 되는 6월에 블로그 창업한 주요 이유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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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미 선동당한, 대중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문재인의 호남 진입>이 너무 늦었습니다. <문재인의 호남 진입>부터 민주당에 대한 지지 퍼센티지는 급격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지만, 문재인이 뛸 수 있는 시간은너무 짧았습니다.
박지원이나 그 부류들로 보아서는 기적적 행운이었죠. 문재인에게 어떻게든 족쇄를 채워, 문재인이 호남에 가지 못하도록 한 김종인의 적극적 부역 행위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전라도 사람들의 대종이 사실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그게 두려울 수밖에 없는 박지원당에게는 이번 <전두환 표창> 건은 놓쳐서는 안 되는 호재였겠죠. 잽싸게 잡아, 물어뜯었습니다 – 문재인이 전두환 표창 받은 것을 자랑까지했다.
이런 주장에 대한 사실은 어떤 것일까요?
조국 교수가 이렇게 정리해 두었네요.
조국
A. 문재인 발언 원문
“저는 특전사 공수부대 시절 주특기가 폭파병이었다. 12·12 군사반란 때 반란군을 막다가 총을 맞아서 참 군인의 초상이 된 정병주 특전사령관으로부터 폭파 최우수상을 받았다.”(1) “나중에 제1공수여단 여단장인 전두환 장군, (12·12 쿠데타 때)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였던 전두환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2)
B. 반대파의 공격 방법
(1)을 뺀다. (2)에서 “반란군의 가장 우두머리”란 단어 뺀다. 그런 후 “문재인이 전두환으로부터 표창 받았다고 자랑했다”고 비판한다.
C. 조금 있으면 “문재인이 5.18 이후 전두환으로 표창받았다”는 가짜 뉴스가 돌겠다. 앞으로 과거 각 영역에서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등 이름이 찍힌 대통령 표창 받은 분들 고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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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 :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나무람을 이르는 말 – 네이버사전) 격입니다.
왜 그런가요?
문재인은 전두환 체제에 저항한 5.18 유공자인 반면, 박지원은 전두환의 적극적 찬양자로서 그 체제에서 훈장까지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5.18국가유공자 자격이 있으나 감히 신청할 수 없었다”
문재인 “5.18국가유공자 자격이 있으나 감히 신청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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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박지원은 이런 전력 때문에 전라도 사람들에게 두들겨맞기까지 했다는 증언까지 있습니다.
입당 거부된 장성민 “박지원, 전두환 찬양하다 의자로 머리 가격당해” 폭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장성민 전 의원이 22일 국민의당 입당이 거부된 데 대해 “나의 평당원 입당을 막은 것은 전두환의 12.12. 5.18 부역자 노릇을…
m.bluetoda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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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표창’ 건 선동 효과는 지난 해 총선 때만은 못한 듯합니다. ‘역효과’, 그런 기사가 많이 뜨는 것으로 보아 그렇습니다. 지난 총선 때와는 달리 문재인 측에서 재빨리 대응했기 때문일 듯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학습효과 덕분에 ‘사람좋은’ 문재인도 좀 재빨라진 셈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스운 아류가 생겨났습니다.
민주당의 주요 인적 자산이라 생각해온 안희정, 이재명, 두 후보입니다.
안희정, ‘전두환 표창’ 논란 “적절치않다고 하는 당원들도 있다”
[머니투데이 이건희 기자] [[the300]”문재인 애국심 기초한 발언으로 생각”] 안희정 충남지사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
v.media.daum.net
이재명,”文, 전두환표창 폐기하고 광주땅 밟아라”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19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문재인. 안희정 후보에게 촛불민심과 당 정체성에 맞는 입장을 천명하고 이에 걸맞는 행보…
v.media.daum.net
안희정은 자신이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볼멘 불만을 표명하지만, 박영선을 비롯한 안희정 캠프의 주요 구성원들이 발사한 그 마구잡이 공격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면 그거야 말로 박근혜 아류죠.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을 부추겨 놓고, 그런 당원들을 문재인은 이해해야 한다, 라뇨? 지난 밤 썰전에서 유시민이 이렇게 안희정을 나무랐다네요 – 안희정, 문재인 전두환 표창 비난은 수준 이하..의도적 오독의 결과. 의도적 오독이라구요? 안희정은 왜 의도적으로 오독했을까요? 유시민이 안희정을 ‘오독’한 게 아니라면, 안희정은 요즘 자기 무덤을 그토록 열심히 파고 있는 셈이 되겠네요.
이재명은 또 어떤가요?
광주 땅을 밟기 위해 전두환 표창을 폐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요?
도대체 그 표창이 어떤 것인데요?
아류는 아류입니다.
안희정,이재명, 두 후보는 불행한 전철을 밟았습니다.
그들의 정치적 생애에 치명적 실수가 되리라 예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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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치 제 글에서, 저의 결론을 적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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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전라도를 아느냐 ① DoMingo 아저씨가 처음 만난 전라도
두서너 차례 나눠 쓰게 될 듯한 이 글은 ‘호남의 이른바 반문정서’를 두고 다시 야비한 장난질을 시작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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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전라도를 아느냐 ② 전라도 사람들의 역사적 트라우마
영남에 대하여 호남, 경상도에 대하여 전라도, 쌍도에 대하여 라도, 경상디언에 대하여 전라디언, 문둥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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