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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지역을 어떻게 왜곡하는가 : 내부식민지 이론으로 본 <효리네 민박>과 <리틀 포레스트>
지역은 종종 하나의 이미지로 재단된다. 자유로운 바캉스 도시 부산, 유서 깊은 역사 도시 경주와 전주, 민주화 성지로서의 광주와 마산 등이 대표적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역을 추어올리는 배려라 여기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지역에 존재하는 삶의 양태를 지워버리는 대상화라 생각한다. 지역이 지역다움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지역은 서울의 바쁜 삶에 지친 사람을 치유하는 공간도, 역사적 비극을 상기시켜 교훈을 주기 위한 공간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일상이 존재하는 공간에 부차적으로 입혀진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예능 <효리네 민박>과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지역을 순백의 공간으로 치환하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전자는 제주를, 후자는 미성리라는 가상의 공간을 (그러나 보편적인 한국의 농촌임을 유추할 수 있는) 희망찬 장소로 제시하며 관객과 시청자의 욕망을 자극했다. 물론 한국에서 지역 간 불균형은 해묵은 숙제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지역을 타자화하는 현상의 원인을 오롯이 이들 콘텐츠에서 찾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제는 해답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임에도, 이러한 욕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강화하는 제작진의 안일함에 문제의식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해답이라고 하여 뾰족한 수가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른바 수도권-지역 간 내부식민지 논의를 시작한 지도 어언 20년이 다 되었다. 대표적으로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저서 <지방은 식민지다>에서 대한민국이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두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중앙에 모든 권한과 혜택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성장한 한국 사회가, 그 과실을 고루 나누지 않음으로써 지역이 내부식민지로 영속화되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 표현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 주장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제는 어떠한 긴장도 주지 못하는 무딘 관용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식민지란 본디 산업 선진국의 상품시장으로 개척되어 체계적인 착취가 구조적으로 자리 잡은 지역이다. 이후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외형적 모순을 제거할 수는 있으나, 한번 뿌리내린 권력관계는 쉽사리 재편되지 않는다. 내부식민지 이론에 따르면 식민주의 아래 이식된 지배구조와 문화는 탈식민 이후에도 계층, 인종, 지역에 따른 차별을 이어간다. 장호순(2015)은 내부식민 구조에서 중심과 변방 간 경제적 격차가 지속되고, 경제적 이익이 중심에 집중되며, 그러한 격차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우열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변방이 스스로 중심에 비해 열등함을 인정하고 종속관계를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미디어콘텐츠 제작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컨대 중앙방송이 생산한 왜곡된 지역 이미지는 이에 대한 시청자의 지역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자연히 중앙방송의 상업적 의도는 지역방송에 전파되고, 지역은 중심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재생산한다. 지배구조나 제작환경 등 방송권력 측면에서 지역방송은 이미 구조적으로 중앙방송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역의 방송종사자 및 방송제작비 비율은 서울 대비 1/4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역의 자원은 내부식민지 탈피 과정에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종속된 지역의 정체성을 수용하고, 중앙방송이 만들어내는 미디어콘텐츠 문법을 답습한다. 그 결과 오늘날 지역방송이 제작하는 콘텐츠 다수가 대개 자신의 지역이 얼마나 서정적이고 목가적인지 강조하는 플롯으로 제작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내부식민지 이론을 토대로, 지역을 다루는 일부 미디어콘텐츠가 내부식민지 구조를 고착화하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비평 대상으로는 <효리네 민박>과 <리틀 포레스트>를 활용했다. 물론 두 콘텐츠를 마냥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다. 전자는 종편 예능으로 제작 동기부터 상업적 목적이 강하고, 이에 따라 지역의 이미지를 활용하려는 강한 욕망을 전제하고 있다. 반면 후자는 일본 원작을 재해석한 영화로 지역에 대한 접근이 그리 경박하지만은 않다. 독립된 권력과 자생적 경제를 바탕으로 성장해온 일본 각지의 역사성이 원작에 내재되었기 때문일 텐데, 그럼에도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듯 한국 사회가 이를 해석하는 방식과 맥락은 다를 수 있다고 보았다.
먼저 <효리네 민박>은 제주를 환상의 섬으로 만드는 과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효리, 이상순 부부가 직접 지은 집을 민박으로 삼고, 전국에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모여든다. 방송은 제주의 자연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이내 모닥불 앞에 정답게 모여 앉은 출연자를 비춘다. 이효리 부부가 저마다의 사연을 들으며 공감의 말을 건네고, 시청자는 간접적으로 일종의 '힐링' 효과를 얻는다. 사회생활에 지친 현대인이 톱스타 부부와 대화하며 일상으로 돌아갈 용기를 얻는 이미지는 곧 제주라는 지역 자체에 투영된다.
문제는 플롯뿐만이 아니다. 방송은 끊임없이 부부가 기르는 반려견과 반려묘, 제주 곳곳의 자연풍광, 출연자가 만든 맛깔난 요리 등의 이미지를 선보인다. 자연에서 고요히 살아가는 이효리 부부의 일상은 시청자로 하여금 무엇이 행복한 삶인가 고민하게 만들고, 일정 부분 정답을 유도한다. 일례로 <효리네 민박>이 방영된 시기를 전후하여 제주도 한 달 살기가 유행한 바 있다. 이는 이효리 부부가 살아가는 공간 자체가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고, 지역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시 제주는 다양한 방향으로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먼저 '오버투어리즘' 이야기가 나왔다. 제주에 지나치게 많은 관광객이 몰리며 한라산과 오름 등 자연경관이 급속도로 파괴되었고, 불가피하게 관광객 수를 제한하거나 입도세를 징수하는 대안이 모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관광객이 급격히 증가해 지역경제가 부활하고 있으므로 더 많은 관광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제주도는 관광지, 휴양지 정도로 소비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우리는 서울과 제주, 나아가 중심과 지역을 호혜적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진다. 지역 간 불균형, 나아가 지역소멸이라는 조류 속에서 중심부의 관심과 선택만이 유일한 생존법이 되는 것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어떤가. 이 또한 결국 판타지일 뿐이다. 제주도에서 모두가 이효리처럼 살 수 없듯, 농촌에 산다고 누구나 혜원(김태리)이 될 수 없다. 시골은 마냥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 농촌의 하루는 노동으로 시작해 노동으로 끝난다. 그 또한 여느 곳과 다르지 않은 삶의 현장이라는 말이다. 삶터에 영화와 같은 낭만이 비집어올 틈은 그리 넓지 않다. 한 장소를 단일한 이미지로 재단하는 것은 그래서 위험하다.
영화의 배경 미성리는 철저히 만들어진 공간이다. 수년간의 방치에도 잔금 하나 없는 주택, 시대를 앞서간 한국식-북유럽풍 인테리어, 경험을 무기삼지 않는 친절한 이웃까지. "고모는 고모다, 이모가 아니다"고 툴툴대며 고모가 차려준 밥상을 쓱싹 비우는 혜원이 어찌나 복에 겨워 보이던지. 혜원에게 고향은 오롯이 힐링을 위한 장소다. 삶에 지친 관객을 위로하고 싶다는 임순례 감독의 의도에 따라 체계적으로 꾸며진 곳이다.
화룡점정은 혜원의 요리다. 그녀는 엄마(문소리)의 레시피에 개성을 더해 사계절 다른 음식을 뚝딱 만들어낸다. 때깔도 참 고운데, 특히 꽃잎을 튀겨먹는 장면에서는 숨이 멎는 듯했다. 꽃잎 색깔이며, 베어 물 때의 소리며, 그저 모든 것이 아름답다 할 밖에.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과도한 이미지는 시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보다 일종의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미성리는 환상이구나, 시간과 의지가 있다고 누구나 이렇게 살 수는 없겠구나.'
비로소 이미지 바깥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 혜원의 엄마, 미성리를 벗어나기 위해 일하는 은숙(진기주),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했던 과거의 혜원과 재하(류준열)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에게 미성리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마을이었을까. 그럴 리 없다. 오히려 이들에게 미성리는 너무나 익숙하고 지루했을 것이다. 실제 지역의 많은 청년이 고향을 아름답게 여기기보다 되려 자신에게 주어진 패널티라 여긴다.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지역과 중심이 서로를 동경하고 욕망하며 각자가 동등한 삶의 현장임을 망각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지역 간 격차는 단지 특정 지역에 명품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가 없고, 학군이 형편없고, 대형마트나 영화관이 없다는 식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나 불균형이 이러한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여겨왔고, 그러한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 곧 균형발전의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해왔다. 진단이 잘못되었으니 치료가 가능할 리 없다. 지역은 그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낮은 위계를 인정하고 관광지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은 2등 시민으로 전락했고, 청년은 상경을 꿈꾸며 자신의 삶을 개선해야 할 과제로 여긴다. 주변 지역이 자신의 언어나 문화가 중심에 비해 열등함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차별을 수용하는 내부식민지의 전형이다.
지역만 문제인가. 전선을 이렇게 그어버리면 반대항에 있는 서울은 지나치게 악마화된다. 부동산 투기의 현장, 소비자본주의의 핵심현장, 지역을 식민화하는 중심부 따위의 이미지가 부여된다. 지역과 마찬가지로 도시가 지닌 역사성과 그 속의 삶은 소거되어버린 채 (혹은 그마저 소비의 대상이 되어버린 채) 미디어가 규정한 이미지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서울에서의 삶이 지역에 사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 다름이 어떠한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다. 그 결과 온 국민이 경제적 성공을 꿈꾸며 상경하고, 일상에서 얻은 피로를 다시 지역에서 회복하는 이상한 서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한편 <효리네 민박>과 <리틀 포레스트>가 일부 차이를 보이는 지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전자는 시리즈 내내 제주라는 지역을 일종의 도피처로 상정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게스트 대다수가 일상에서 얻은 고민이나 상처를 지녔고, 이효리 부부와 제주라는 공간이 이를 치유하는 구성이 주된 플롯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프로그램 종영 직후 이효리는 제주에서의 일상이 지루할 때가 있다며 화려하게 방송에 복귀한 바 있는데, 이는 프로그램이 쌓아 올린 이미지가 환상이자 허구였음을 호스트가 의도치 않게 증명해버린 사례라 할 것이다.
반면 <리틀 포레스트>는 영화 말미에서나마 지역이 마냥 편안한 공간이 아님을 고백한다. 혜원은 버거운 현실을 벗어나 잠시 고향에 내려왔으나, 이내 자기 삶의 무게중심이 다른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혜원의 어머니가 집을 떠난 동기도 그���가 다른 곳에서 더 행복할 수 있음을 확신해서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재하는 떠나온 고향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아 정착한 듯 보인다. 즉 임순례 감독은 한국 사회가 농촌의 목가적 풍경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소비하면서도, 최소한 중심과 주변 간 위계질서를 부여하지 않고자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본다면 <리틀 포레스트>가 말하려 한 바는 시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가 아닐 것이다. 자기만의 작은 숲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다는 메���지일 테다. 그 숲은 농촌일 수도, 도시일 수도 있다. 숲을 규정하는 것은 멋진 풍광이 아니다. 일상과 기억 속에서 함께하는 사람이다. 혜원은 홀로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지 않았다. 그녀가 때깔고운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었다. 도시에서는 어땠을까. 마냥 불행하기만 했을까. 그건 너무 섣부른 단정인 것 같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 속 글귀다. 그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나무다. 혼자서는 숲을 이룰 수 없다. 나의 작은 숲에는 타인이라는 나무가 산다. 그로 인해 나는 숲을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혜원의 작은 숲은 미성리가 아니라 엄마와 고모, 은숙과 재하다. 물론 그들의 숲에도 혜원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의 숲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훌륭한 위로가 된다. 미디어는 이처럼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허물고, 힐링이 가능한 지역이 존재한다는 착각을 해체하는 과정에 복무해야 한다. 그것이 곧 나와 타인을 동등하게 인식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 사회에서 지역이란 중심부에 의해 대상화, 우상화됨으로써 끊임없이 왜곡되는 존재다. 한국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앙집권적 정책이 보편적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한 부채의식으로 말미암아 꽤 오래전 균형발전 의제가 대두했지만, 지역을 서울처럼 만들겠다는 인식의 오류가 외려 지역 간 위계를 부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 속에서 여행이나 귀농, 귀촌을 소재로 하는 미디어콘텐츠는 지역을 대상화하며 손쉽게 상업적 성공을 거두곤 한다. 제작진은 선의나 배려임을 말할 수 있겠으나, 이는 한국 사회 중심부가 지역에 대해 관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월감 혹은 시혜의식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게으른 주장이다. 덧붙여 최근에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지역에 대한 대상화가 세계적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경제적으로 열위에 있는 국가를 다분히 제국주의적 시각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어, 어느덧 유사제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이율배반적 면모를 되돌아보게 한다.
종속이론에서 파��된 내부식민지 개념은 확산이론과 대척점에 있다. 두 이론은 중심과 변방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공히 인정하지만, 그 차이의 영속성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한다. 전자는 일련의 불평등이 견고한 사회구조에 의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본다. 후자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중앙의 자본이 지역으로 퍼지며 경제적, 문화적 양동화가 발생한다고 인식한다. 내부식민지가 된 지역의 현실을 생각하면 확산이론에 마음이 기울지만, 한편으로 확산이라는 것은 경제적 낙수효과만큼이나 실현불가능하고 시혜적으로 보인다.
미디어가 지역을 왜곡하는 행위는 분명 중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중심부가 변화하기만 기다릴 수는 없다. 지역에는 이미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지켜나가려는 여러 미디어가 존재한다. 예컨대 <옥천신문>은 5년 전부터 옥천 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며 전국 각지 청년에게 지역을 직접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다. 많은 청년이 직접 보고 듣고 제작한 지역밀착형 콘텐츠가 꾸준히 홈페이지에 게재되고 있다. 최근에는 군내 격오지인 청산면 소식만 별도로 다루는 <청산별곡>을 창간하여 풀뿌리 지자체에서도 반복, 재생산되는 중심-변방 구조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변화는 변방에서 진행되고 있다. 필요한 것은 양껏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 정책적 뒷받침이다. 결국 지역 미디어를 살리는 것이 내부식민지 문제를 푸는 근본적 해결책 중 하나인 까닭이다. 중심부에 의해 소유, 운영되는 미디어는 태생적으로 지역을 타자화하고 왜곡할 수밖에 없다. 중심은 과장된 상징자본이고, 이곳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 그 본질을 넘어서 과다대표된다. 그렇기에 여러 경쟁에서 지역 미디어를 우대하고 가산점을 주는 것은 불공정이 아니라 겨우 균형을 맞추는 행위일 것이다. 물론 순수한 마음으로 지역을 홍보해주려 한 일부 미디어는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겠다. 그러나 본디 식민지가 독립하려면 제국은 패배해야 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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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선화... .......................- 윌리엄 에즈워스 -... 산골짜기 넘어서 떠도는 구름처럼... 지향 없이 거닐다... 나는 보았네... 호숫가 나무 아래... 미풍에 너울거리는... 한 떼의 황금빛 수선화를... . 은하에 빛나며... 반짝거리는 별처럼... 물가를 따라... 끝없이 줄지어 피어있는 수선화... 무수한 꽃송이가... 흥겹게 고개 설레는 것을... . 주위의 물결도 춤추었으나... 기쁨의 춤은 수선화를 따르지 못했으니!... 이렇게 흥겨운 꽃밭을 벗하여... 어찌 시인이 흔쾌치 않으랴... 나는 지켜보고 또 지켜보았지만... 그 정경의 보배로움은 미처 몰랐으니... . 무연(憮然)히 홀로 생각에 잠겨... 내 자리에 누우면... 고독의 축복인 속눈으로... 홀연 번뜩이는 수선화... 그때 내 가슴은 기쁨에 차고... 수선화와 더불어 춤추노니... ... 자연풍광을 지켜보는 즐거움... 시는 그런 멋진 모습을... 서정적으로 표현했달까... ... 가끔 이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 바로 그런게 나의 마음을 힐링해준다... ... 그나저나 수선화 이후에... 곧... 벗꽃이겠네... ... 😂😂😂... ... . . . #윌리엄 #워즈워스 #수선화 #자연풍광 #일상의즐거움 #곧 #벗꽃의겨절!!!(caffe bene 카페베네에서) https://www.instagram.com/p/BvhAdHBnbkS/?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l7u7ofk089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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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일기
민음사 최민석 지음
나는 지금 이 글을 달리는 기차 위에서 시작했다. 물론 컴퓨터를 이용해 다시 글을 쓰겠지만 일단은 그렇다. 의도치 않게(아니 제목부터 ‘일기’가 들어갔으니 이것은 의도 된 것이 맞다.) 일기를 읽었으니 나도 일기처럼 써보려고 시작했지만 감상 글을 일기처럼 쓴다는 것이 쉽지 만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기로 한다.
일단 나는 여행 에세이를 읽지 않는다. ‘여행은 떠나야 제맛’주의 이기 때문에 여행관련 글은 블로그 명소 리뷰나 맛집, 역사 관련 글만 읽고 교통이나 관광지 요금 같은 것만 책에서 읽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베를린 일기’를 집은 것은 첫날(10/15일)의 일기를 읽고 나서였다. 도시 이름이 제목에 박혀 있으니 당연히 여행에세이인줄만 알았다. 여기까지 볼펜으로 휘갈기다 가방에서 꺼내 표지를 다시 보았다. ‘여행’ 에세이라고 적혀있지 않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하다. 어쨌든 작가의 일기는 첫 페이지부터 갑작스레 터진다. 풉, 하고.
왜인지 베를린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베를린의 웅장한 성들이나 오래된 역사, 자연풍광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 같은 생각이 들었단 말이다. 최민석 작가는 90일동안 베를린에서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것은 日記니까. 독일어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이야기, 물보다 싼 맥주, 빼놓을 수 없는 소시지 이야기, 소소한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작가가 겪은 상황들이 재치 있는 문장들로 표현되어 있어서 그에 공감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단순한 이야기에 빠져 사백 몇 십여 쪽이 순식간에 흘러버린다. 단숨에 베를린의 마지막 날이다.
그렇게 마지막 즈음인 1/10일의 일기가 참 좋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라는 문장에서 작가가 갖고 있었을 마음이 조금 이해되기 때문이다. 첫 배낭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아쉬운 마음이 아닌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찔끔 흘린 적이 한 번 있었다. 800km를 걷는 여정인 스페인 ‘순례자의 길’을 걸었을 때의 일인데 목적지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 일이었다. 목적지 도착 일주일 전 정도에 네덜란드 중년 여성을 한 숙소에서 만났었다. 그리고 가벼운 인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었고 한 두 번 더 마주쳤었나? 싶을 정도의 가벼운 인연이었었는데 목적지에서 우연히 같은 숙소에서 묵고 있다가 떠나는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새벽기차를 타야한다며 길을 나서는 그녀는 내게 ‘멀리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 길을 걷겠다고 이렇게 어린 여자아이가 온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너는 정말 멋진 아이고 자랑스러운 사람이야. 정말 대단해.’ 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눈물을 훌쩍이는 내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떠났다. 그녀의 따뜻한 인사말은 아직까지도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여행지는 사진뿐만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고 인연이 쌓였을 때 더 두텁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작가 역시 베를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애정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물리적 울음’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나도 그곳에서 지나쳐간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가 느낀 백림(베를린)의 우중충한 날씨가 백림을 떠날 즈음 익숙해지며 그립게 느껴졌던 것처럼 오늘 기차를 타러 집을 나섰을 때 새벽공기가 그렇게 만들었다. 짐 싸들고 길을 떠나기 시작했던 어느 날의 새벽처럼.
친구와 다시 그 길을 걷자고 약속을 했고 적금을 들기로 했다. 달력에 표시도 해두었다. 그러고 나니 당장 내일 떠날 것처럼 벌써 설레기 시작한다. 아무튼 그때는 나도 이 책처럼 일기를 꼼꼼히 써보려 한다. 그럼 제목은 뭐로 해야 할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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