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자끄엘륄
theholystory-blog · 1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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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xah
많이 가졌던 적게 가졌던 돈은 내면의 세계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면 세계로 들어 온 돈의 영향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해로운 영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므로 인간관계에 미치는 돈의 효력을 불신해야 한다.
-자끄엘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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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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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보살핌과 공동의 관심 (Individual Care and Corporate Concern)
01.14.2019
누가복음 8:43-48
43 이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44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4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하시니 다 아니라 할 때에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무리가 밀려들어 미나이다 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 하신대 47 여자가 스스로 숨기지 못할 줄 알고 떨며 나아와 엎드리어 그 손 댄 이유와 곧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말하니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 라
개인적 보살핌과 공동의 관심 (Individual Care and Corporate Concern)
우리의 여러 복지 기관들을 설립할 때, 우리는 이 기관들이 섬겨야 할 대상보다 우리들 자신에 더 신경쓰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과 보살핌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는 제도적 반응에 특별한 관심을 쏟았다. 고대 사회의 호스피스나 아동 보호 시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실버타운 등이 그 예들이다. 다수의 관련 기관들이 좋은 일을 할지 몰라도, 이러한 기관들은 보살핌을 소수의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대부분의 우리들은 손을 떼도 괜찮다고 믿겠금 유혹할 수 있다.엘륄은 전문적 솔루션과 제도적 반응에 회의적이다. 그는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연대하여 이 사회를 지상 낙원으로 만들라 제안하시지 않았다, (반대로) 매우 구체적인 사역에 부르심 받은 개인들이 그분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지정된 소수가 아닌 대부분의 우리들이 환대와 보살핌을 실천한다면, 여러 기관들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Action: 당신의 직종과 전문성에 상관 없이, 타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당신의 진정한 소명을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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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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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는 자 (The Beguiler)
01.13.2019
창세기 3:1-5
Gen. 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속이는 자 (The Beguiler)
만약 악이 항상 노골적인 형태로 알아볼 수 있다면, 대부분의 남녀는 그것을 쉽게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악이 주로 교묘한 형태로 접근하기에, 미처 알아 차리기도 전에 수용하게 된다.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좋아지리란 순진한 확신을 유지하는 건 고결한 것과 전혀 무관하다. 진전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은, 진전이란 주로 큰 댓가를 통해 얻게 되는 어떤 결실이란 사실을 보지 못한다. 더 성경적인 관점에서 진정한 진전이란 모두를 향한 정의이며, 그것은 오직 악을 극복했을 때에 일어날 수 있다. 악의 축출이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제도적인 형태의 악을 극복하는 것을 포함한다. 문제는 이 제도적인 현실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유지한다는 것에 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에 질서를 구성하는 시스템에 대해서 비판적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많은 부분들을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악마가 그의 얼굴을 베일에 가렸다”는 엘륄의 관찰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삶의 영역들이야 말로 속이는 자가 아무런 제지없이 그의 일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Reflection: 악마의 가장 교묘한 행동은 주로 우리가 비판적으로 질문하지 않는 삶의 영역들에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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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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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믿음 (Practical Faith)
01.12.2019
야고보서 1:27a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실천적 믿음 (Practical Faith)
영성은 믿음과 행위, 기도와 실천적 보살핌, 예배와 우리 세상을 향한 관심과 함께 한다.
자끄 엘륄은 “기독교는 점점 육체를 이탈한 유심론 (a disembodied spiritualism)이 되어 버렸다”고 지적한다. 현대 기독교 상당 부분은 내향적이고 자기 성찰적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자기 성찰은 정적인 자리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는 열정보다는 자기 계발과 더 관련 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부당한 우리 세상의 구조들을 변혁시키고 복음을 통해 소금과 효모가 되어 사회의 구조를 돌파하길 바라는 참여 보다는 악한 세상에서 후퇴하는 것으로 특징 지어진다. 경제, 정치, 예술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문화를 고려하는 실천적 믿음은 믿음, 기도 그리고 예배에 깊게 뿌리내린 믿음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정의 그리고 은혜를 맛본 믿음이 아니고서는, 우리 시대를 향해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Reflection: 고독의 자리로 향하는 내적 여행은 후퇴가 아니라 우리의 망가진 세상에 참여하기 위한 추진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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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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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이란 없다 (Ther Is No Terminus)
01.11.2019
마가복음 9:2-8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종착역이란 없다 (There Is No Terminus)
우리가 가장 심오한 영적인 체험을 경험한 뒤에, 그 체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전진하라 손짓하신다.
우리는 우리들의 성지를 세우고, 영적인 체험들을 전략과 프로그램으로 만드는데 재빠르다. 우리는 우리들의 종교적 제도들에서 안전을 느끼고 우리의 예측 가능한 의식 속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이에 엘륄은 “게으름 또는 열광으로 우리는 똑같은 영적 체험에 머물러 있으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그분의 신실함과 사랑에 한결 같으시지만, 우리의 종교적 제도들 안에 갇혀 계실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종종 그것들을 전복시키시며 우리들에게 새로운 믿음의 섬김의 모험으로 전진하라 부르신다. 하나님은 성전 속에 안주하는 분이라기 보다 성막과 함께 이동하시는 분이시다. 그에 따라 안정과 확실성을 가져오는 의식들을 뻔하게 준수하는 것보다 창의적인 들썩임(creative restlessness)이,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을 따라가는) 우리 믿음의 행보를 특징 지어야 한다.
Reflection: 우리가 우리의 영적 행보에 대해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걸음을 멈춘 것일 뿐더러 더 이상 영적이길 그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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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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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십 (Partnership)
01.10.2019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파트너십 (Partnership)
하나님은 종종 그분의 통치와 능력을 우리의 책임과 순종에 연결 지으신다.
화해, 정의, 평화를 위한 세상 속에서 우리 사역은 절대 하나님의 참여를 떠나 완성될 수 없다. 우리들만으론 절대 이런 일들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역은, 결코 우리의 참여로 한정 지을 수 없긴 하지만, 종종 우리의 협력을 요청한다. 엘륄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행동과 사역을 집행하는데 있어서 인간을 참여시키신다”는 것을 주목한다.하나님과 우리들 사이의 이 파트너십은 전혀 예측 가능한 연합이 아니다. 때로 하나님께서는 가장 예상 밖의 사람을 선택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 가장 작고 의도하지 않은 행동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정확히 들어 맞기도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분과의 파트너십으로 초대하시긴 하나, 우리의 역할은 항상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우리의 영리함과 성숙함의 결과이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증거일 가능성이 높다.
Reflection: 하나님과의 파트너십은 언제나 특권이다. 우리가 조정하거나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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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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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안에서 (In the Arena)
01.15.2019
고린도전서 4:9-10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경기장 안에서 (In the Arena)
우리의 개인적 행동과 공동의 책임 모두에서, 우리는 내적 경건이 사회적 무책임을 야기할 수 없다고 상기시켜주시는 인자의 가치를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우리를 주시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을 살아야 한다. 엘륄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기만해서는 안된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고정되어 있다.”고 상기시킨다. 사람들이 항상 자명한 것을 찾는 건 아니다. 그들은 ‘메시아'를 찾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은 우리의 말과 행동 사이에 일관성을 찾는다. 따라서 우리가 경기장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사람들이 빛을 찾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빛 안에 거한다고 주장하는 우리가 종종 형편없이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억울해 하기보다 우리���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세밀한 조사가 우리에게 더 나은 일관성을 요청하고, 그 평가 과정에서 그들이 자기 존재에 공명하는 희미한 빛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더한 멸시로부터 구하려는 우리의 시도 속에, 우리는 의도치 않게 다른 이의 삶에서 어둠을 제거할 수 있다.
Reflection: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행동과 섬김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할지언정, 우리는 우리의 제자도의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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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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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함 (Faithfulness)
01.08.2019
마가복음 3:35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신실함 (Faithfulness)
많은 순종의 행위들이 당장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더라도, 분명 우리 자신을 바꾸고 우리의 영향권 안에 있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줄 것이다.
나사렛 예수에게는 짜증나도록 무력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분은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비전을 주시면서 작은 사역들에 신실하라 부르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지만 우리를 종으로 부르신다. 그분은 국제적인 책임을 주시지만, 지역 사회에 헌신하도록 격려하신다. 따라서 크고 거창한 사역이 계속 눈앞에 아른거리는 한편, 개인적인 보살핌, 베품 그리고 사랑이 요청된다. 엘륄은 “역사의 진행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되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 속에 어떤 영향이라도 남길 수 있다면, 그것은 먼저 그분의 뜻에 대한 우리의 신실함을 통해서이다.” 지적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기독교 사역을 행하고, 우리의 기독교 구조를 세우고, 세상의 문제에 우리의 기독교 해결책을 적용하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을 제시한다. 우리의 기독교 구조와 해결책은 좀처럼 질고를 아는 자의 삶을 묘사하는 급진적인 긍휼과 진정한 섬김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Action: 주인의 뜻을 행하기 위해 순종의 작은 발걸음을 딛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들은 세상을 구하고 영향 미치기 위한 우리의 계획들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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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winus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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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란 선물 (The Gift of Faith)
01.07.2019
에베소서 2:8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은 큰 잠재력과 큰 위험을 함께 갖고 있다. 그 장점과 능력은 하나님을 기대한다는 것에 있다면, 그 위험은 하나님께서 자유로이 주시는 것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 한다는 것에 있다.
세상을 바꾸기 원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 또한 바꿔야 할 지속된 도전을 마주한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어려운 일이지 판단하지 쉽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자기 자신을 바꾸려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세상을 바꾸려 시도할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통찰, 자아 의식, 겸손 그리고 타인의 복지에 관한 진정한 섬김의 마음이 부족한 “구세주”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무언가 시도하기 전에 완벽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만약 그래야 한다면 아주 드물게 진실된 믿음과 사랑을 동기로 행하는 우리는 부동에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엘륄은 “순수한 믿음이란 없다는 걸 당신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한편,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시는 분이시다."라고 우리를 희망의 원천으로 인도한다. 또한 만약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의 진실된 믿음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정결케 하신다면,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할 위험도 최소화될 것이다. 큰 믿음의 사역이 아니라, 인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승리를 이룬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Reflection: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중심이시자, 우리 믿음을 정결케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 믿음이 갈망하는 것들을 제공하시는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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