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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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Llewyn Davis> Soundtrack
조엘 코엔(Joel Coen) 감독이 학업을 위해 뉴욕으로 갔을 때는 1970년대 초반이었다. 영화에 다루어진 60년대의 흔적들이 젊은 그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1960년대 미국은 포크 음악의 부흥기, 즉 ‘리바이벌(Revival)’ 시기를 맞았다.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 지역을 중심으로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 리드 벨리(Lead Belly), 데이브 반 롱크(Dave Van Ronk)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포크 신을 장악하고 있었다. ‘리바이벌’ 운동은 1970년대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가 중요했던 것은 혜성 같은 밥 딜런(Bob Dylan)의 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포크 신이 비트 무브먼트–Beat Generation–나 히피 문화와 접점이 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영화에서도 그런 디테일들이 코엔 형제만의 과묵한 화법으로 필터링 되어 잘 전달되고 있었던 것 같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2013>은 포크 뮤지션 중에서도 데이브 반 롱크의 생애를 모티프로 삼았다. 정확히는, 포크 뮤지션의 사후에 출간된 회고록 <The Mayor of MacDougal Street (2005)>를 흥미롭게 읽은 두 감독이 그의 에피소드들을 각색하여 허구적 인물 ‘르윈’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데이브 반 롱크는 낮에는 선원으로 일하고 퇴근 후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고 한다. 원래는 딕시랜드(Dixieland) 재즈 연주자였는데 포크로 전향을 했다. 당시에 수요는 딕시랜드 재즈 쪽이 훨씬 많았는데 그는 돈도 되지 않는 포크 음악에 열정을 쏟았던 것이다. 어째서 그토록 무모했던 걸까? 단지 그가 포크 음악 속에서 진정성에 닿는 가치를 발견했고 그것을 좇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이 코엔 형제에게는 그들의 작업에서 종종 질문하거나 풀어보고자 하는 생의 모순에 맞닿아 있는 것으로 여겨져 특별히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르윈은 결코 실력 없는 뮤지션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단지 인기가 없거나 메이저가 되기엔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을 뿐이다. 그가 너무 진지하고 어두워 보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반면 짐은 음악 실력도 출중한데 유쾌한 끼를 방출하는 풍자적 뉘앙스의 ‘프로테스트’ 송도 멋지게 소화할 줄 안다. Please Mr. Kennedy는 The Goldcoast Singers의 64년 작 Please Mr. Kennedy Don’t Send Me Off to Vietnam이라는 원곡에서 베트남을 ‘우주’로 장소 전환하여 개사해 새로 쓴 곡이라 한다. 영화 음악을 담당한 티 본 버넷(T. Bone Burnett)과 짐 버클리 역을 맡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가 함께 진귀한 중고품들을 취급하는 기타 상점을 뒤져 빈티지 기타를 고르기도 했다. 왠지 60년대 포크 음악이라 하면 데이브 반 롱크를 모델로 한 르윈의 곡처럼 침울한 것들이 주를 이룰 것 같은데, 짐이 들려주는 음악들을 통해 포크 장르 안에서도 다양성에 접근하도록 자연스럽게 음악의 바운더리를 확장하고 있는 점이 보기 좋았다. Please Mr. Kennedy를 통해 유쾌함���, 500 Miles를 통해 하모니와 선율의 부드러움을 경험하게 만든다. 대타로 고용된 르윈이 콜롬비아의 녹음실로 달려가는 장면을 되새겨 보자. 그가 짐과 알 코디와 호흡을 맞추는 장면을 보면 르윈은 불과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짐과 마주 앉아 그의 지시에 따르며 노래를 보조한다. 만화 ���제가를 방불케 하는 이 곡은 혼을 쏙 빼놓을 만한 업비트의 코믹한 저항정신으로 무장을 했다. ‘플리즈’라고 하면 될 것을 ‘프, 프, 프 플리즈’라고 과장해야 하는 것이 르윈에게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지만 궁핍한 처지에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씁쓸한 현실도 이 장면 속에 담겨 있었다.
어렵게 도착한 시카고의 클럽 “뿔의 문”에서 르윈은 오디션 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루거나 빈틈없이 진지하며 비극적이다. 끝없이 대상을 만나며 일대일의 대화를 이어온 르윈이었지만 정작 속내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조차도. 그래서 그는 노래로 자신의 비극을 전달한다. 그에게 노래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삶에 대한 위로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가만히 그의 노래를 들은 뿔의 문 주인은 대놓고 ‘돈이 안되는 노래(I don’t see a lot of money here)’라고 독설을 한 뒤, 그래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며 팀을 이루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한다. 그의 조언은 객관성 있고 실리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르윈이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의 실현, 혹은 꿈 꿀 권리를 보다 타당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이에게 타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난 현실이 제안하는 카드는 ‘타협’이다. ‘당신은 이 어려운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은 달라진다. 코엔 형제는 르윈의 내면적 갈등을 ‘성공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해석해 그려냈다. 그래서 르윈은 자기 삶에 드리워진 비극의 쳇바퀴 속을 돌고 돌기만 한다.
음악 프로듀싱을 맡은 티 본 버넷(T. Bone Burnett)은 텍사스 출신의 뮤지션이자 프로듀서다. 그래서 텍사스를 배경으로 한 코엔 형제의 초기 작품 <블러드 심플(Blood Simple) 1984>을 보고 무척 공감을 했고, <아리조나 유괴 사건(Raising Arizona) 1987>을 보고는 영화 속에 그려진 디테일들이 너무도 친밀하게 느껴져 결국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자신도 놀랄 만큼 충동적이었던 그의 전화는 두 감독들과 영화를 매개로 한 우정을 이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티 본 버넷은 솔로 작업도 있지만 프로듀서나 영화 음악 활동으로 더 이름이 알려진 측면이 있다.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 로이 오비슨(Roy Orbison), 커샌드라 윌슨(Cassandra Wilson), 윌리 넬슨(Willie Nelson) 등 그의 프로듀싱 작업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대중음악뿐 아니라 영화 음악 작업도 많이 해오고 있는데, 코엔 형제의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O Brother, Where Art Thou?) 2000>의 사운드트랙 작업도 그가 맡았다. 미국 포크 음악의 근원에 맞닿아 있는 블루스, 블루그래스, 가스펠, ��트리 등의 트랙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인사이드 르윈>이 한 허구적 인물의 불행한 일주일에 초점을 맞춘 개인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이라 해도 전체적으로는 포크 음악 리바이벌 시기를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인사이드 르윈> 사운드트랙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의 연장 선상에 놓인 앨범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악 영화’인 만큼 인물들이 실제로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장면들이 포함되어 있다. 가스등 카페에서 르윈이 Hang Me, Oh Hang Me를 부르는 것이 오프닝이었는데 그의 동료들이 같은 무대에 차례로 오른다. 휴가 나온 군인 트로이가 부르는 곡은 톰 팩스턴(Tom Paxton)의 구슬픈 포크송 The Last Thing on My Mind이다. 이후 짐과 진이 무대에 올라 트로이와 함께 3인조가 되어 노래 부르는 장면은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를 재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500 Miles의 원곡은 헤디 웨스트(Hedy West)라는 여성 포크 뮤지션으로부터 왔다. 헤디 웨스트는 조안 바에즈(Joan Baez),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와 함께 포크 리바이벌 신을 이끌던 여성 뮤지션 중 한 사람이었다. 밴조 연주와 함께 시원하면서도 리듬감 있는 그녀의 노래를 들어 보니 피터 폴 앤 메리조차 가공된 음악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녀는 르윈처럼, 혹은 데이브 반 롱크처럼 대중이나 기성적 가치를 덜 의식하는 것 같다고 할까. 따지고 보면 포크 음악은 어디선가 교육받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이웃이나 부모, 조부모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처럼 후손들을 통해 물 흐르듯 내려온 것이 주요한 특징 아니던가. 그러니 그 원천에는 필연적으로 삶이 녹아 있고, 자연스러움이 깃들게 된다. 그런 느낌을 더 강조하는 트랙이 바로 이 사운드트랙에서 두 가지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는 Fare Thee Well(Dink’s Song)이다. 민속 음악을 연구하던 학자 존 로맥스(John Lomax)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한 흑인 여성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듣고 녹음을 한 것이 이 곡의 기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워낙 슬프고 아련한 이야기와 곡조로 이루어져 있어서 어떤 사람이라도 귓가에 이런 노래가 들려온다면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 기울였을 것 같다. 그 여성을 Dink라고 불러서 이 곡에 Dink’s song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오프닝과 닮았으면서도 약간은 다르게 연출된 엔딩은 곱씹어 볼수록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르윈은 공연을 마치고 가스등 주인으로부터 ‘친구’가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뒷문을 향해 걸어 나간다. 그의 다음 순서로 무대에 오른 신인 뮤지션을 슬쩍 곁눈질하면서. 무대에 오른 사람은 누가 봐도 밥 딜런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밥 딜런이 아니라 르윈을 따라간다. 르윈이 뒷골목에서 또 한 번 두들겨 맞고 비참한 순간을 겪는 동안 무대로부터 밥 딜런의 노래는 계속 이어진다.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까지. 이 장면은 마치 르윈에게 ‘(밥 딜런에 비하면) 역시 넌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고양이나 잘 데리고 다니렴!’ 하고 신랄하게 조롱하는 것만 같다. 코엔 형제는 밥 딜런의 음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그들의 우상을 영화에서 이렇게, 중심에 두지 않고 끄트머리에 빗금처럼 배치한 것도 참 독특한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생각해 본 것은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이 부여되면 영화를 보기 전에도 대강의 청사진이 쉽게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형식적인 면에서 말이다. 크게 보면 직접적으로 음악을 영화 내부에 도입하는 뮤지컬 형식이나 인물 중심으로 스토리에 녹여 풀어내는 방식, 아니면 사실적으로 인물을 조명하는 다큐 형식 등을 자주 경험했던 것 같다.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 영화’라는 타이틀을 붙이기보다 그냥 코엔 형제가 늘 해오던 방식의 작품의 배경이 특정 시기의 음악 신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거라고 생각된다. 위에서 내가 ‘음악 영화’에 대해 범주화를 했다면 <인사이드 르윈>은 그 안에 넣기가 꺼려진다는 이야기다. 워낙 감독의 색채가 분명하기 때문이겠지만, 그렇다고 작품의 음악적 가치가 영화보다 떨어진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다. 이건 너무도 풍미가 짙고 정갈한 포크 리바이벌 테마의 사운드트랙이다. 반복해 들으면 들을수록 오스카 아이작(Oscar Isaac)의 노래에 심취하게 된다. 그의 노래와 연주에 기교가 없는 것 같지 않은데 과시하지 않는다. 바로 그 점이 특별히 라이브를 부각시키지 않고 영화의 내러티브 속에 잘 녹아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오디션 보는 클럽 주인도 아닌 내가 무심코 레코드를 흘려듣다 보면 The Death of Queen Jane은 주제의 깊이가 남다른, 진정한 명곡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데 참조된 링크들
https://href.li/?https://www.uncut.co.uk/features/an-interview-with-the-coen-brothers-we-sold-out-long-ago-72768/2/
https://href.li/?https://slate.com/culture/2013/12/llewyn-davis-real-person-true-story-behind-coen-brothers-movie-with-oscar-isaac-justin-timberlake-video.html
https://href.li/?https://www.huffpost.com/entry/please-my-kennedy-inside-llewyn-davis_n_434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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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llewyn davis#coen brothers#movie#soundtrack#american folk music revival#포크음악#사운드트랙#영화음악#인사이드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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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Inside Llewyn Davis
Dir. Coen Brothers,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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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감과 함께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뭐 이런 힘빠지는 영화가 다 있담.. ‘인사이드 르윈'은 몇번이나 ���천을 받았지만 왠지 모르게 안끌리는 영화중 하나였다. 코엔 형제의 영화가 대거 그렇듯 느린 초입부와 찝찝한 코메디 그리고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끝나는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영화기도 하고 주인공이 포크싱어고 좀 지저분한 60년대 뉴욕이 배경이라는게 그렇게 크게 끌리지 않았다. 다음에 보자. 다음에 좀 더 심적으로 여유가 있을때 보자. 라는 말들로 미루고 미루다가 볼 영화가 없어진 쌀쌀한 일요일 밤에 결국 영화를 틀었다.
언제나 그렇듯 초반부에 난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었고 침대에 누워 곁눈질로 영화를 반쯤 감상했다. 언제나 그렇듯 찌질하고 한심한 남자 주인공의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며 자기 인생을 부정하고 있었다. 아.. 코엔 양반들... 그러던 찰나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나는 슬며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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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은 개인 위생상태가 썩 좋아보이지 않는 몰골로 한겨울에 코트 하나 없이 여러지인들의 집에서 하룻밤씩 자며 하루 하루 견뎌내고 있었다. 본인이 홈리스라는걸 인지하지 못하는듯한 뻔뻔함과 이 모든것이 지나가는 순간이고 본인은 타고난 유목민이라고 굳게 믿는듯 하였다. 내가 아는 누군가와 굉장히 비슷했지만 목적은 달랐다. 르윈은 자기의 재능이 뛰어나다며 믿고 있고 머지 않아 뜰꺼라는 확신이 있는듯 했다. 그것은 애석하게도 르윈 본인만의 상상이었는듯 하다. 르윈과 함께 음악을 시작했던 친구들은 사람들이 좋아할법한 창법으로 바꾸어 노래를 하고 상업성이 짙은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르윈은 그들의 돈을 빌리고 그들의 집을 빌리고 그들을 통해 돈을 벌면서도 그들을 한심하게 생각하고 비웃는다. 본심을 감추고 그들이 주는 일을 대충 맞춰주기도 하지만 원색적으로 그들의 현실에 대한 타협심을 면전에 비난하기도 한다.
“너는 커리어리스트야!” 르윈이 진을 향해 경멸하듯 소리쳤다. 르윈은 진에게 낙태비용도 빚진상태고 심지어 진의 집에서 하룻밤 잠을 부탁해도 모자랄 형국이었는데도 말이다. 진은 크게 부정하지 않는다. 진은 현실과 타협했다. 육체적으로 르윈한테 끌렸어도 상업성을 잘 잡은 짐과 듀엣으로 노래하며 돈도 적당히 벌고 크진 않지만 적당한 ��파트에서 둘이 잘 살고 있다. 또한 진은 짐과의 미래를 위해 짐의 아이일지 르윈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아이를 낙태하고 싶어한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르윈, 본인이 떠나온 예술가의 길, 의 흔적을 모두 삭제하고 싶다.
르윈은 본인이 잘곳도 없으면서 부자친구들의 고양이를 찾아 헤멘다. 본인은 돈도 없고 코트도 없고 집도 없으면서 이름도 모르는 고양이가 창문만 열면 뛰쳐나가 사라지는게 신경쓰인다. 진에게 비난을 한 후 르윈은 부자친구의 고양이인지 뭔지 모를 길고양이를 앉고 다시 뻔뻔하게 부자친구집을 들어간다. 부자친구들에게 르윈은 악세사리 같은 존재다. 고학력자들의 무리에서 음악가 르윈을 안다는건 본인들이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다는걸 과시하기 좋은 장치이기때문에 그들의 업타운 아파트엔 도자기, 페인팅과 르윈이 잘수 있는 쪽방이 마련되있다.
“씨발 난 이걸로 밥벌이 하는 사람이라고!” 저녁식사자리에 친구들의 권유로 기타를 치던 르윈이 격분한다. 음악으로 돈벌이하는 친구들을 경멸하면서도 다른 업종의 중산층들 앞에선 태세를 바꾼다. 본인의 밥벌이를 한낮 유흥으로 낭비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원색적인 말들로 친구들을 비난하고 고양이를 들고 떠나버린다.
포크라는 장르는 더 이상 크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신나는 디스코나 락에 취해있고 본인의 소속사는 본인 앨범을 처분하기 시작했고 함께 음악했던 친구들은 창법을 바꾸거나 자살했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 자신의 목을 옥죄어오기 시작하지만 르윈은 고양이를 안고 시카고로 떠난다. 시카고라면. 그 소속사라면. 날 받아주고 날 인정해줄수 있을거야.
시카고로 떠나는 차 안에 반은 약에 취해 기절해 있고 기절에서 깨어나면 자기가 얼마나 잘난 예술가인지 떠들어대는 한물간 재즈 피아니스트가 있다. 르윈도 본인 무리 사이에서 예술가 허세로는 상당히 입지가 있는편인데 이 망할 영감탱은 자기가 엄청난 예술가인거 처럼 떠들고 있다. 허세배틀에서 기권한 르윈은 차라리 운전수 처럼 침묵을 자처한다. 약에 취해 일어나지도 못하는 영감탱을 버리고 혼자 시카고로 가기로 결정한 르윈은 고양이를 영감탱과 함께 차에두고 떠난다. 기고만장하고 자유로운 예술가 영혼의 분신이었던 고양이를 한물간 영감탱이와 두고 떠났다는건 아마 르윈이 슬슬 현실을 직시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카고에 도착에 겨우겨우 본인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레이블 사장은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돈이 안된다는 말만 한다. 그리고 누구도 바라지 않았던 조언을 준다: 파트너와 함께해. 내 파트너는 죽었는데 그와 함께하라니. 르윈은 크게 절망하진 않고 바로 뉴욕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돌아가는길에 르윈은 분명히 고양이를 친거 같은데 그 시체는 육안으로도 볼 수 없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양이의 인생에 ���이 난걸까.
뉴욕에 도착한 르윈은 차라리 돈이라도 벌자라는 생각으로 군에 재입대 하려고 하지만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다. 꿈을 포기하지말라는 진의 따듯한말에 의심하면서도 다시 기타를 잡는다. 하지만 본인의 음악을 좋아했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본인의 노래중에 배설을 하고 본인의 아지트인 그리니치 클럽에서 공연을 하고 나서는 정체모를 사람한테 얻어터진다.
영화는 르윈이 성공적인 아티스트로 대박난다는 친절한 결말따위 주지 않는다. 르윈은 아마 포크라는 장르가 잊혀지듯 모두의 기억속에서 사라졌을것이다. 그게 대부분의 예술가에게 현실이기 때문에.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불쾌했던것도 난 내가 진이라는 사실을 알아서일거다. 일찍이 가능성이 없음을 눈치채고 적당히 현실과 타협했다. 나는 르윈처럼 살기엔 나에대한 믿음도 크지 않았고 그만큼의 열정도 없었다. 그리고 가난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는 지인들을 한심한 눈빛으로 처다보며 말했겠지 “everything you touch turns into sh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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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을 보고 2014년 여름에 쓴 글
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2013.코엔 형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들 한다
포크송은 계속 불려 질 것이고 소파를 전전하던 르윈 데이비스의 삶은 오래 기억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기억되는 것만이 생명력을 가진것이냐 하면 그렇진 않다.
르윈은 누구보다 인생을 '살았다'. 그것은 기억되든 잊혀지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구나 고양이 한 마리 쯤은 마음 속에 품고 다니기 마련이다.
언제, 어떻게 비집고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졸졸 따라다니는 게 싫지만은 않다.
그러나 때론 성가시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버리기도 하고 아니면 스스로 떠나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찾게 되고 보고싶어 진다.
한조각 마음속의 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이다.
각자의 인생을 재단하거나 비판할 수는 없다. 다만 코엔 형제는 끝까지 고양이를 지키려한 르윈에게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
르윈은 자신을 재워주고, 먹여주고 따뜻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한 곡 청할 때는 이상한 모욕감을
느끼고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 자신을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한 껏 기분 좋게 노래를
부른다. 정말 노래를 부르고 싶을 때 부르는 르윈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진실하게 보였다.
코엔 형제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테크닉의 천재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천재이다.
정공법의 평범한 화면들로 만들어내는 비범한 씬들이 놀랍다.
(이 영화는 르윈이 시종일관 'Gaslight'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듯이 조명을 쓰고 있다.
진부하기는 하지만 내 인생이란 무대의 주인공은 나라는 듯이!)
그리고 무엇보다 단단하게 짜여진 느낌이 영화처음부터 끝까지 신뢰할 수 있게 만든다.
꼭 한 두명씩 등장하는 기괴하면서도 비틀린 위트가있는 캐릭터들이 양념처럼 영화에 생기를 더해준다.
<파고>에서 제리의 장인이나, 마지의 옛 남자친구가 그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모스의 아내나,. 토미 리 존스의 조수가 그랬다.
이 영화에서도 시카고로의 짧은 여행의 동반자인 롤랜드 터너나 조니 파이브가 영화를 더 깊고 넓게 만
들어 준 것 같다. 그리고 르윈이 합주에서 만나 하룻밤 신세지는 알 코디가 나오는 부분은 끅끅대고 볼
수 밖에 없었다. (알 코디의 거실 탁자 밑에 르윈이 자신의 엘피 박스를 넣다가 역시 알이 자체 처분한 엘피 박스가 나오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애정하는 장면이다. 십 초 안에 담긴 영화의 정수!)
잡다한 설명 없이 말그대로 형식 스스로가 '인생은 반복되며 계속된다'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좋았다.
어찌보면 비루하고 감정적으로 빠질 수 있는 '이름없는 뮤지션의 생애'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담백한 영화를 만들어내다니!
'More , more, More' cried the bed,
'talk to me more'
oh bed that taked the weight of the world
All the last dreams laid on you
oh bed that grows no hair
that cannot be fucked
or can be fucked
oh, bed crumbs of all ages spilled on you
oh, bed
-the valet , Jhoony Five
(지금,여기)
그 후로 두세 번 더 봤고. 가장 최근에는 엄마랑 이틀에 걸쳐서 봤다.
조만간 조금 덧붙여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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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년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 부문에서 수상한 코엔 형제의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음악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인 ‘르윈 데이비스’는 실존인물인 포크 가수 ‘데이브 밴롱크’의 자서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장서우’가 2016년에 만든 프로젝트 ‘르윈(LEWYN)’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르윈 데이비스 (Llewyn Davis)의 이름에서 L 하나를 탈락시키고 차용한 것이다.
르윈(LEWYN)은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서 아이리쉬계 이름을 가진 주인공과 성격적인 연관성은 없다. 영화 개봉 당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영화 <인사이드 르윈>을 ‘삶의 폐곡선에 물처럼 고인 우수’라고 평한 바 있는데, 시작과 끝이 맞닿는 영화적 구조에 착안하여 장서우는 ‘폐곡선’이라는 의미의 조어로 ‘LEWYN’을 정의한다. 아울러 닫혀있는 곡선 속에 정체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에 따라 외적으로 변모하고 음악적으로도 끊임없이 진보하는 변화의 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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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 me, oh hang me
And i'll be dead and gone
I wouldn't mind the hanging
But the layin' in a grave so long
날 매달아 줘, 오 날 매달아 줘
그리고 난 죽어 사라질게
목매다는건 상관 없지만
무덤에서 누워보낼 세월이 너무 길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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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의 오스카 아이삭
Name in movie: 르윈 데이비스
대사로 임팩트를 주는 연기를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대사는 모든 캐릭터에게 주어진 공통요소이지만
오스카 아이삭은 대사가 나오는 부분의 액션이 유달리 강하다.
물론, 그 외의 연기들이 무기력한 장면만을 보여주기에 더욱 그래보이지만
이 배우는 대사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높고 표현력이 좋다고 느껴진다.
기본에 충실함을 보여주는 너무 좋은 연기였다. 너무 좋았다 정말.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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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사랑 초코에몽
2 척 테일러 답지 않게 푹신푹신한 쿠셔닝
근데 그래봤자 척 테일러
발아프다 이러다가 평생 뉴발만 신게 생겼다
3 인사이드 르윈은 재미없더라
사람들이 왜 빠는지 잘 모르겠다
말 장난 유머가 맘에들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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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내가 좋아하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그래서 더 여운이 남는..
오늘 다시 한번 내 인생은 개떡같음을 느꼈다. 르윈 데이비스 인생도 그렇더라. 참 근데 누구의 삶이든 마냥 행복할 순 없겠지.
내 맘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운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도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게 평소에 열심히 해야겠지.
주인공이 자살 안 해서 다행이야.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란 고양이가 나올 땐 하트 눈이 되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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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메가박스 VIP가 되었는데 2월 20일이 넘어서야 극장에 가서 2014년 첫 영화를 보고 왔다. 인사이드 르윈, 단순한 음악영화가 아닌 것, 포스터에 안고 있던 고양이는 주인공이 원래 키우던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이 좋았다. 한낱 고양이와 음악의 감수성으로 색칠을 한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 이 영화가 멋있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포크송이라는 게 그놈이 그놈이다” ? 우리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르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삶과 같은 고양이, 어디가 될까 진짜 내 삶의 고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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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Inside Llewyn Davis), 2013
참 어렵다. 현실과 이상의 조화란 것이 진정 가능한 일일까.
단순히 음악영화라 하기엔 많은 것들을 던져준다. 무조건 배에서 내려 생활하라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배만 타는 생활을 하기엔 우리 인생은 한번만 사는 건데... 이건 단숨에 답을 내릴 수도 없고, 아마 살아가면서 평생 고민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두 생활의 간격을 조절해가는 것이 삶일지도.
시작과 끝이 신선했다. 그렇게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양복입은 사내의 "내 아내는 노래하기 위해 그 무대에 섰다"는 말이 여운이 남는다. 감히 니가 뭔데 그녀를 조롱하는가? 감히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꿈에 대해 돈이 안된다고 혹은 재능이 부족하다고 함부로 말을 뱉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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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르윈
르윈은 어떻게 될까?
이건 틀린 질문이 될 것 같다.
캐릭터의 시작과 끝이 모두 담겨 있는 영화나 소설을 좋아한다. 아마 무언가 교훈을 얻기 좋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일면만 보여줘 버리는 영화도 괜찮았다. 하긴 어떻게 그렇게 답이 딱 떨어지는 생활만 있으랴
개고생 끝에 본 오디션(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길동무를 설정해 놓은 것 같다...보기가 힘들 정도). 물러설 곳 없는 상황에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것 같다.
르윈은 떨지 않는다. 그렇다고 눈에 자신감이 넘쳐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평소에 하던 것 그대로, 담담하게 노래해 나간다. 그러나 변한 건 없다.
항해자격증을 마저 잃어버리는 장면에서는 연민보다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답 없는 이놈은 어떻게 될까?
10년 후면 어찌됐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그러나 내일, 그리고 일주일 후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거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그렇다.
어른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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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e thee well my honey fare thee well 노래할땐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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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Llewyn Davis
인사이드 르윈
이동진 평론가의 리뷰에서 만점을 받은 인사이드 르윈을 보았다.
평소엔 리뷰에 별로 신경은 쓰지 않고 보고 싶은 영화만 봤었는데.
이 영화는 영화평과 감독에 대한 기대감에 망설임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코엔 형제 감독들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라는 영화를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긴장감과 영상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다.
영화는 큰 사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발버둥을 쳐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
한 개인(나일지도 모르는)이 담담하게 노래하는 모습에 나를 투영하며 몰입하며 보았다.
영화 속의 포크송 멜로디들처럼 잔잔하게 가슴 속까지 여운을 남겨준다.
그리고 생각이 많은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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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llewyn davis
허무한 여정이다. 하지만 여정의 허무함 자체가 마음의 공허함이나 무력함을 남기지는 않는다. 르윈 데이비스는 어찌 보면 비참한 상황이지만, 그는 특유의 빤질거림과 재기로 상황들을 넘겨버린다. 물론 시카고로 이동하는 노력을 펼치지만, 그는 크게 이 상황을 타개해 볼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인사이드 르윈 데이비스는 코언 형제 특유의 건조함과 실소가 빛을 발하는 지점들이 뚜렷하다. 건조하면서도 유쾌하다는 느낌이 가능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는 뉴욕, 고양이, 음악 등의 코드를 통해 굉장히 감성적으로 이 영화를 접근하지만 나는 아주 삭막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의 여정은 때로는 어이없고, 때로는 냉정하다. 약간 답답함을 느낄만하면 헛웃음이 새어 나온다. 다분히 평면적인 등장 인물들 속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만이 그나마 조금 더 입체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그에게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물론 그의 연기력이나 카메라가 한 사람에게 선보이는 집중력 덕분에 빠져드는 것도 크지만, 영화에서는 르윈 데이비스 자체가 가지는 매력이 크게 부각된다. 우리 아버지도 포크 음악을 좋아하신다. “포크 음악이 다 거기서 거기죠 뭐”라는 대사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몇 차례 하셨는데, 예전에 몰랐던 매력을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착한 듯 착하지 않은 가사가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 부른 노래는 정말 시간이 지난 뒤에도 곱씹어보게끔 만든다. 스코어 자체가 좋은 만큼 OST도 참 좋다. 티본버넷 만세. 그러고보니 나도 Folklore 전공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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