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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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제례악에 쓰는 악기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에 쓰이는 악기는 모두 음양오행에 따라 구성된다. 그래서 이들 악기에는 뜻만 있을 뿐 별로 쓰이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악기가 많다. 심지어는 이름이나 형태만 남아 있을 뿐 어떻게 연주하는 악기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있다.제례악은 서양의 교향곡이나 4중주곡처럼 전적으로 감상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동양의 정신 세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격식이라 할 수 있으므로 제례악에는 악기라고 할 수 없는 것도 꽤 사용된다. 금과 슬 금(琴)과 슬(瑟)은 중국의 고대 악기로 모두 고려 때 들어왔다. 금은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앞뒤 판에 대고 일곱 줄을 걸어 7현금이라고도 한다. 순나라 때는 5현금이었으나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이 각각 문현(文絃)과 무현(武絃)을 보태 7현금이 되었다고 한다. 금은 안족이나 괘 등을 사용하지 않고 앞판 한쪽에 있는 열세 개의 지판(指板)을 짚어 음정을 낸다. 줄을 당겨 주는 장치가 없어서인지 소리가 아주 작다. 자개를 박아 만든 이 지판을 휘(徽)라고 하는데, 금이나 쟁류의 악기 가운데 휘를 가진 것은 이것뿐이어서 다른 말로 휘금(徽琴)이라고도 한다.금은 조선 시대 말까지 사대부가 간사함을 버리고 마음을 바로잡기 위한 수양으로 연주하곤 했다. 그래서 제례 의식 외에도 영산회상이나 가곡 반주에 금을 사용했다. 하지만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를 남긴 윤용구(尹用求)를 끝으로 연주법이 끊어져 지금도 문묘제례악의 등가에 쓰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연주되지 않고 있다.슬은 길이 일곱 자, 너비 여덟 치로 우리 나라 현악기 가운데 가장 크다. 앞면은 오동나무, 뒷면은 엄나무로 만든다. 줄은 스물다섯 줄인데, 가장 가운데에 있는 열세 번째 줄인 윤현(閏絃)은 실제로는 연주하지 않는다. 윤현을 중심으로 아래로 12율, 위로 12율 2옥타브를 소리 내며, 오른손과 왼손으로 동시에 뜯는다. 앞판에는 연두색 바탕에 주황���, 흰색, 검은색의 상서로운 구름과 날개를 펼친 쌍학(雙鶴) 등이 그려져 매우 호화롭다.금과 슬은 모두 아악에 사용하던 악기인데, 지금은 금만 문묘제례악에 편성될 뿐 슬은 쓰이지 않는다. 금과 슬은 항상 함께 편성되므로 사이좋은 부부를 가리키는 ‘금실이 좋다[琴瑟相和]’는 말을 낳기도 하였다.금 슬 훈과 지 훈(塤, 壎)은 점토를 구워 만든 아악기로 팔음(八音) 중 토부(土部)에 속한다. 대부분 손저울의 추(錘)처럼 생겼는데, 달걀 모양이나 공 모양 등 다른 형태도 있다. 둥근 모양에 구멍을 내고 바람을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데, 이런 종류의 악기는 중국ㆍ일본ㆍ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서 토기 시대의 원시 악기로 발견된다. 서양의 오카리나도 이 훈의 일종이다.우리 나라에는 고려 예종 11년(1116년)에 송나라에서 대성아악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왔다. 현재 전하는 훈은 세종 때에 모양과 형식이 만들어졌다. 작은 검은색 항아리 모양으로 음정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지공이 앞에 세 개, 뒤에 두 개가 있는데, 뒤쪽의 것은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막고, 앞쪽의 것은 양손 둘째손가락과 왼손 셋째손가락으로 막는다. 적은 수의 지공으로 열두 반음을 모두 내기 위해서 반만 구멍을 막는 지법을 사용한다. 취구는 위쪽에 있으며, 병을 부는 것처럼 부는데 음색이 낮고 부드럽다.훈의 음색과 음 높이는 진흙의 종류와 두께, 속의 넓이, 굽는 정도에 따라 달라 음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같은 크기로 만든다고 해도 음이 같지 않으므로 여러 개를 만들어 그 가운데 음이 맞는 것을 골라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문묘제례악에 쓰이는데, 땅 밑에서 울리는 것 같은 어두운 소리가 음악에 신비감을 더한다.지(篪)는 단소처럼 생겼으나 소금처럼 옆으로 분다. 피리와 다른 점은 취구인데, 대나무관 끝에 서를 꽂아 만든 것이 아니라 취구 부분이 단소 윗부분을 잘라 붙인 것처럼 생겼다. 나발ㆍ피리 등의 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을 뜻하는 취구의 ‘취’는 본래 새의 주둥이를 말하는데, 지의 경우에는 본래 제 것이 아니라 갖다 붙인 것이라서 의취적(義吹笛)이라고도 부른다.취구의 반대쪽 끝 대나무 마디 부분에 십자 모양의 구멍을 파서 음 높이를 조절하는 점이 독특하다. 이 구멍을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막아 음 높이를 조절하므로 황종부터 청협종까지 12율 4청성의 폭넓은 음역을 낼 수 있다. 『악학궤범』에서는 황죽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지금은 주로 오죽을 쓰고, 다섯 개의 지공 가운데 제1공은 관의 옆면에 뚫고 나머지 네 개는 대금처럼 관의 위쪽에 뚫는다.이 악기 역시 문묘제례악에서만 사용하나 악기의 역사는 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서인 『수서(隋書)』와 『북사(北史)』에는 백제에서 고(鼓)ㆍ각(角)ㆍ공후(箜篌)ㆍ쟁(箏)ㆍ우(竽)ㆍ적(笛) 등과 같이 지를 사용한 것이 기록되어 있고, 『통전(通典)』과 『신당서(新唐書)』에는 고구려에서 쓰인 의취적이라는 악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지는 훈과 더불어 편성되며, 음역은 높은 편이지만 음색이 부드럽고 음량이 약하다.『시경(詩經)』「소아(小雅)」편에 나오는 ‘하인기(何人欺)’라는 노래에 “형은 훈을 불고 아우는 지를 분다”고 한 말이 있으며, 지금도 훈과 지의 어울림을 형제의 우의에 비교한 ‘훈지상화(塤篪相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 전통 문화의 황금기를 이끈 정조는 훈과 지의 연주를 듣고 “형제 음악이라는 이름만 아름답다” 하며 탐탁해 하지 않았다고 한다.훈 지 약과 적 약(籥)은 원래 악기였지만 우리 나라에는 무용 도구로 전래되었다. 주나라 때부터 쓰인 악기인데, 원래 갈대로 만들어져서 ‘위약(葦籥)’, 우리말로는 ‘갈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고려 예종 때 대성아악이 들어오면서 함께 들어와 지금은 문묘제례악에서 문무를 출 때 왼손에 드는 무구로 쓰이는데 악기의 역할도 함께 한다. 황죽(黃竹)으로 만든 대에 지공이 세 개 있는데, 아악기이므로 음역은 황종에서 응종까지 12율을 내야 한다. 세 개의 손가락 구멍으로 12율을 내야 하므로 지공의 1/3만을 여는 강반규(强半竅), 지공의 1/2만을 여는 반규(半竅), 지공의 2/3만을 여는 약반규 등 운지법이 아주 어렵다. 악기보다는 무구로 쓰이게 된 데는 이런 복잡한 연주법도 한몫 했을 것이다.문묘제례악에만 쓰이는 적(翟)은 단소처럼 생겼지만 길이가 훨씬 길고 안지름도 크다. 단소는 길이 39cm, 안지름 2cm 정도인데, 적은 길이 54cm, 안지름 2.6cm 이상이다. 역시 고려 때 대성아악과 함께 들어왔다. 원래는 네 개의 지공이 있었지만 지금은 앞에 다섯 개, 뒤에 한 개로 모두 여섯 개이고, 아래 끝에 두 개의 빈 구멍이 있다. 옛날에는 지처럼 끝마디에 십자 모양의 구멍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없다. 빈 구멍이 그 흔적인 듯도 하다.약 적 축과 어 아악 연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축(柷)과 어(敔)는 모양이 아주 재미있다. 시작을 알리는 축은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네모진 나무 상자에 방망이 하나가 꽂혀 있고, 끝을 알리는 어는 호랑이가 엎드린 모양을 하고 있다. 연주법도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데, 축은 방망이를 잡고 아래로 쿵쿵쿵 세 번 두드리고, 어는 호랑이의 머리를 세 번 치고 톱니모양으로 생긴 등줄기를 세 번 훑어 내린다.전체적으로 푸른색을 띠는 축의 사면에는 산수화가, 윗면에는 구름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악학궤범』에는 음악을 연주할 때, 축을 ���저 시작하는 이유를 그것이 만물이 시작하는 봄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례악 연주 때 축을 동쪽에 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며, 푸른색인 이유도 음양오행에서 동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어는 많은 점에서 축과 반대다. 음악이 다 끝난 후에 연주하는 것도 그렇고, 악기를 서쪽에 놓는 것도 그렇다. 어는 등에 붙은 스물일곱 개 나무 톱니를 세 가닥씩 셋, 모두 아홉 갈래로 쪼갠 대나무 채로 훑어 내리는 식으로 연주한다. 전체적으로 흰색을 띠는 것은 음양오행에서 흰색이 서쪽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두 악기는 옛날에는 제례가 아닌 궁중의 다른 연주에도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만 사용된다.축 어 노고와 노도 노고(路鼓)와 노도(路鼗)는 둘 다 길쭉하게 생긴 북 두 개를 엇갈리게 포개 놓은 악기다. 사면고(四面鼓)의 일종으로 북의 양쪽 면을 모두 두드릴 수 있다.노고와 노도 두 악기는 모두 인신(人神), 즉 사람 신의 제향에 쓰였다. 인신 제향은 선농(先農), 선잠(先蠶), 문묘[文宣王 : 孔子] 등에 제사 드리는 것인데, 현재는 문묘제례악만 사용하고 있다.노도와 노고가 붉은빛을 띠는 것은 음양오행으로 봐서 사람의 계절인 여름, 방위로는 남쪽을 가리키기 때문이다.노고는 장대 없이 네모난 북틀에 매달며 보통 북을 치듯이 북채로 친다. 노도는 북이 작아 사람의 키에 맞춰 긴 장대에 꿰어 놓았다.노고는 제례악 헌가의 시작과 끝에 진고(晉鼓)를 따라 치며, 노도는 문묘제례악 헌가에 편성되어 음악을 시작하기 전 호랑이 모양의 받침대에서 장대째 뽑아 비스듬히 들고 세 번 흔든다. 도는 『대사의(大射儀)』라는 책에 의하면 원래 ‘손님이 도착하면 흔들어 연주한다(賓至搖以奏樂也)’고 하였다. 지금도 제사를 재낼 때 처음 흔드는 것은 제사에 모실 신이 온 것을 환영하는 의미가 있다.노고 노도 뇌고와 뇌도, 영고와 영도, 진고와 절고 제례악에 편성되는 악기 가운데는 짝을 이루는 것이 많다. 뇌고(雷鼓)와 뇌도(雷鼗), 영고(靈薣)와 영도(靈鼗), 진고(晉鼓)와 절고(節鼓) 등이 그것이다. 뇌고와 뇌도는 천신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것이고, 영고와 영도는 땅 신[社稷]에게 제사 지낼 때 쓰는 것이다. 모양도 거의 흡사해서 음양오행에 따라 색깔과 북 면의 수가 조금 다를 뿐이다.뇌고는 원뿔 모양으로 된 작은 북 여섯 개를 매달고, 색은 하늘과 남쪽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칠했다. 예전에는 환단, 풍운뇌우, 산천성황 등의 천신에게 제사 지낼 때 헌가에 쓰였지만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뇌도는 역시 검은색을 칠한 작은 북통 세 개를 십자 모양으로 서로 엇갈리게 겹쳐 긴 장대로 꿰어 놓았다.뇌고 뇌도 영고와 영도는 땅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칠한 북통을 매달아 만든 것이다. 영고는 원뿔 모양으로 된 북통 여덟 개를 원형으로 묶어 북틀에 매달고, 영도는 작은 북통 네 개를 엇갈리게 겹쳐 긴 장대에 꿰어 놓았다. 북 면이 여덟 개인 것은 지신 제사에서 강신악이 같은 곡을 여덟 번 반복하는 것과 같다.영고 영도 뇌도와 영도 등의 연주는 노도를 연주하는 방식과 같다. 음악을 시작하기 전에 세 번을 흔드는데, 북통 양쪽에 ���린 가죽 끈이 북 면을 두드려 소리를 낸다. 우리 ��식 음악의 대부분이 정리된 ���종 때에 제작되어 사용했으나, 해당하는 제례가 사라지자 문묘제례악에 쓰이는 노도와 노고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 이름과 형태만 전한다.북 종류 가운데 문묘제례악이나 종묘제례악에 지금까지 남아 쓰이는 것은 진고와 절고다. 북 가운데 가장 큰 진고는 고려 때부터 사용되어 지금까지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연주한다. 아헌 음악이 시작하기 전에 한 번씩 세 번, 종헌에 세 번 치고, 음악 중간에서는 절고와 같이 매 구절 끝마다 두 번씩 친다.절고는 네모난 북틀 위에 비스듬히 얹혀 있는 북으로 진고의 축소형처럼 생겼다. 주악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세 번씩 치며, 연주 중간에는 문묘제례악은 한 소절의 끝 박에 두 번씩 치고, 종묘제례악의 보태평과 풍안지악에서는 대개 매 악절의 첫 박에 한 번씩 친다. 절고라는 명칭은 바로 한 악절을 구분 짓는 데서 유래하였다.진고 절고 박과 부 서양 음악을 연주할 때는 지휘자가 지휘봉의 움직임으로 음악의 시작과 진행을 알리는데, 우리 음악에서 지휘봉 역할을 맡는 것은 바로 박(拍)이다.박이란 몇 개의 판자를 모아 윗부분을 끈으로 묶은 악기를 말한다. 박은 원래 중국에서 종이가 없던 시절에 글을 적어두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던 죽편(竹片)을 묶은 것이 기원이다. 이후 불교 사원에서 스님이 부처님 말씀을 전할 때 청중에게 주의를 환기하기 위하여 박을 치고, 박에 적어 두었던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 박을 쳤다.이것이 오늘날 악기로 전용되었고 당시의 기능이 박에 남아 있다. 음악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그리고 무용에서 장단이 바뀔 때 박을 친다.가로 7cm, 세로 35cm, 두께 1cm의 박달나무 여섯 조각을 사슴 가죽 끈으로 매고, 위쪽에 구멍을 뚫고, 나무와 나무 사이에 엽전을 대었다. 연주 방법은 여섯 조각을 부채처럼 폈다가 한꺼번에 서로 부딪치게 해서 ‘딱’ 소리를 낸다.박은 현재 종묘제례악에서는 한 곡에 네 번 정도씩 친다. 궁중 무용에서 장단이나 늘어선 모양, 춤사위가 변할 때도 한 번씩 친다. 상아나 짐승의 뼈로 조그맣게 만든 아박(牙拍)은 궁중 무용인 아박무(牙拍舞)에 쓰이는데, 아박무는 캐스터네츠를 치며 춤을 추는 스페인의 플라멩코처럼 아박을 손에 들고 ‘짝짝’ 치면서 춤을 춘다.박을 든 사람을 집박(執拍)이라고 부르는데, 다른 악사들과 같은 홍주의(紅周衣)를 입지 않고 녹색의 청삼(靑杉)을 입고 머리에 다른 관(冠)을 쓴다. 집박는 악단을 대표해 관중에게 인사하고 돌아서서 박을 펼침으로써 연주가 시작하는 것을 알린다. 박을 ‘딱’ 한 번 치면 비로소 음악을 시작하고, 박을 세 번 치면서 끝을 맺는다.집박의 역할은 그 두 번으로 끝이다. 서양 음악의 지휘자처럼 매순간 지시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연주자들의 마음과 자세를 묵묵히 지켜보며, 흐트러지지 않도록 독려하는 것��다. 특별한 움직임이나 역할 없이 연주자들 앞에 서서 긴 연주 시간을 견디기는 쉽지 않다. 아무나 집박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박 연주자는 악단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어른이 담당한다. 음악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적을지 몰라도 연주자에게 박 연주자의 위치는 정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부(缶) 역시 타악기다. 전통적으로 팔음에 따라 분류하자면 토부에 드는 악기인데, 항아리 모양으로 지름 32cm, 높이 23cm 정도이다. 조그만 받침대 위에 올려놓고 반 정도가 아홉 가닥으로 갈라진 대나무 채로 부의 가장자리를 친다. 부는 음정이 없고 리듬도 화려하지 않다. 송나라에서 들어온 대성아악에는 들어 있지 않고 조선 세종 때 문묘제례악의 헌가에 처음 편성되었다.당시에는 열 명의 연주원이 각각 하나씩 연주했는데, 세종 때 박연이 “······전혀 음악적인 소리가 없으며 헌가에 공연히 갖추기만” 한다고 상소하기도 했다. 기와를 굽는 흙으로 만드는 부는 그 두께와 구워진 정도, 높이에 따라 소리의 높고 낮음이 결정된다. 부는 현재 문묘제례악에만 쓰이는데, 등가와 헌가에 모두 편성되어 있다.중국 진양 『악서』의 박 박 부 특종과 특경 특종(特鐘)은 길이 50cm 정도의 큰 종 하나를 매달아 놓은 것으로 음악을 시작할 때 사용한다. 아악을 정비할 당시인 세종 때는 행사가 열리는 달[月]에 따라 12율에 맞는 열두 개의 특종을 갖춰 놓았다가 골고루 썼다. 그러나 성종 이후에는 황종음의 특종 하나만을 제례악 등가에 편성해 사용한다. 각퇴라고 하는 뿔망치로 두드려 연주한다. 특종 한 번, 축 세 번, 절고 한 번 치는 것을 세 차례 반복하는데, 절고의 끝소리와 함께 특종을 다시 한 번 치면 비로소 모든 악기가 합주를 시작한다.특경(特磬)은 돌을 깎아 만든 한 개의 경을 나무틀에 매단 것으로 가경(歌磬)이라고도 한다. 특종처럼 각퇴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음색이 맑고 청아하다. 모양은 편경을 확대한 것처럼 생겼다. 특경은 음악이 끝날 때 친다. 옛날에는 이것도 열두 개가 있어 달에 따라 사용했으나 지금은 황종음 하나만 문묘제례악과 종묘제례악에 사용한다. 주악이 끝날 때 치는 절고의 첫소리와 끝소리에 특경을 각각 한 번씩 치면 합주가 끝난다.특종 특경 킬킬거렸다. 「거기 왜 사람을 갖다대요? 의사를 낫게 하기 위해서 그러지만 지금 태하씨는 미끼로 쓰는 거잖아. 죽일려고.」 현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항의했다. 「아이구. 착하기도 하셔라. 그럼 칼이라고는 손도 못대는 아가씬 손하나 까닥하지 말고 낚시대나 잡고 있으세요 」 태하는 현진이 귀여웠다. 조금씩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매력덩어리였다. 이제 그녀가 더 이상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어떻게 외과의가 될려나 몰라.」 「치. 」 현진은 태하의 놀림에 입을 비쭉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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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nch Defence 3nc3 - Psakhis, Lev Since the publication of 'The Complete French in 1992, the amount of theory has increased so that it now encompasses three entire volumes. This, the second installment of the series, discusses the consequences of 1 e4 e6 2 d4 d5 3 Nc3 and the various Black replies one might expect. They include the Winawer variation 3...Bb4, leading to sharp play on both flanks; the Rubinstein/Burn lines, which result in active center play; or the Classical 3...Nf6. Featuring a wealth of example games, this volume is not to be missed by anyone seeking a thorough understanding of this classic defense. 슬 사부(絲部) 또는 현명악기(絃鳴樂器, chordophone)에 드는 25현의 이 현악기는 금(琴)과 함께 중국 고대 현악기의 하나이다.① 고대 현악기의 하나.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권30 위지 「동이전」(東夷傳)에 전하는 변진(弁辰)의 현악기를 '슬'이라고 했는데, 이 '슬'은 가야금의 전신인 고대 현악기로 추정된다.② 1116년(예종 11) 송나라의 휘종(徽宗 1101~1125)이 대성아악을 고려조정에 보냈을 때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文公美)가 가지고 귀국한 등가악기로 2면(面)의 '슬' 및 헌가악기(軒架樂器)로 42면의 '슬'이 들어왔다. 임금이 친히 참석하는 제향(祭享) 때 '슬'이 연주됐다. 공민왕(1351~1374) 때 문신 성준득(成准得)이 1370년(공민왕 19) 명나라 태조(1368~1398)가 보낸 금(琴)·배소(排簫)·생(笙)·소(簫)·슬·편경(編磬)·편종(編鍾) 이상의 아악기를 가지고 귀국했다.조선초기에 이르러 1406년(태종 6) 차내사(差內使) 박린(朴麟)이 가지고 귀국한 명나라 영락황제(永樂皇帝)의 보낸 악기 중에 '슬'이 포함됐다. 『세종실록』 권132 및 『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권6의 그림에 나오듯이 '슬'은 금과 함께 편성되어 회례연(會禮宴)의 등가와 헌가에서 특종(特鍾)·생(笙)·우(竽)·약(籥)·지(篪)·훈(塤) 등과 함께 연주됐지만, 현재 슬은 금(琴)과 함께 연주장에 진열될 뿐이고 연주되지 않는다. 조선초기 '슬'은 오례의(五禮儀) 등가에, 세종(1418~1450) 때 회례연(會禮宴)의 등가에, 성종(1469~1494) 때 등가에, 그리고 문소전(文昭殿) 섭행(攝行)·친행(親行) 전상악(文昭殿攝行殿上樂)에 배열된 악기의 하나이다.『악학궤범』 권6 소재 슬의 앞면과 뒷면 및 주 '슬' 몸통의 전면은 오동나무로, 그리고 후면은 아목(牙木)으로 제조된 슬의 전면에는 두 마리의 학(鶴)과 구름의 그림으로 장식됐고, 좌고(坐固)와 미단(尾端)은 비단무늬로 장식됐다. 25현 중 붉게 물들여져 있는 제13현은 연주 때 사용되지 않으므로 윤현(閏絃)이라 하고, 윤현을 제외한 24현은 윤현을 중심으로 상하(上下)로 12율씩 나뉘어 본음(本音) 12음과 청율(淸律) 12음 이렇게 24율로 조율됐다.편종(編鍾)이나 편경(編磬)의 12율에 맞추어 슬의 본음 12음이 조율된다. 그 다음에는 청율 12음을 본음 12율과 한 옥타브 높게 조율한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연주자는 오른손 식지(食指)로 아래쪽 12현을, 그리고 왼손 식지로 위쪽 12현을 한 옥타브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뜯어야 하고, 어느 악곡의 4청성을 연주할 때에는 아래쪽 줄은 연주되지 않고 위쪽 줄만이 사용된다.슬을 연주하는 국립국악원의 악사(『한국악기』) ③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나오는 슬은 중국의 송나라식 악기명이고, 고정된 주(柱)가 있다고 했으므로, 거문고로 해석됐다.④ 영조(1724~1776) 때 문사(文士) 홍대용(洪大容)과 슬(瑟) 관련 이야기가 박지원(朴趾源)의 「하야연기」(夏夜讌記)에 이렇게 전한다."22일 국옹(麴翁)과 함께 걸어서 담헌(湛軒: 홍대용)을 찾아갔다. 풍무(風舞: 김억)도 밤에 왔다. 담헌이 슬(瑟)을 타자 풍무는 금(琴)으로 화답했다. 국옹은 갓까지 벗어던지고 노래했다. 밤이 깊어지자 구름장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더위도 조금 가시고, 줄풍류 소리가 더욱 맑아졌다. ··· 지난해 여름에 내가 담헌에게 갔더니, 담헌은 마침 악사 연익성(延益成)과 더불어 거문고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은 비를 잔뜩 머금어, 동녘 하늘가엔 구름장이 먹빛이었다. 우레가 한바탕 치기만 하면 비가 쏟아질 판이었다. 잠시 뒤에 긴 우레가 하늘로 지나가자, 담헌이 연익성에게 말하기를, '이 우레 소리는 어느 성(聲)에 속할��?'라고 물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거문고를 당겨 소리를 맞춰보았다. 나도 그 자리에서 「천뢰조」(天雷操)를 지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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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인권 국제적 공론화’에 기여한 윤현 이사장 별세 http://bit.ly/2Z7S7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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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OhmyNews_Korea: 미국, 홍콩 보안법 추진 강력 비난... 중국 "내정 간섭" 반발 #중국 #미국 #홍콩 https://t.co/B6Vqfa9zH8 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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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게임 사람들 보수·진보에 일갈하는 老인권운동가|'디펜베이커 인권상' 시상식에 참석한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지난 3월 캐나다 정부가 주는 '디펜베이커 인권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에 참석한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2011.4.12 >[email protected]캐나다 카지노게임인권상 첫 수상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北인권에 보수는 자숙하고 진보는 이중잣대 버려야"(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보수단체가 언제부터 북한인권에 관심 있었습니까. 김정일 정권 타도가 목표죠. 보수는 자숙하고 진보는 이중잣대를 버려야 합니다."4월 임시국회에서 카지노게임북한인권법안 통과를 놓고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한인권시민연합 카지노게임윤현(82) 카지노게임 이사장은 12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보수와 진보 양쪽에 쓴소리를 했다.북한인권이 어느새 보수의 전유물이 된 상황에서 보수는 김정일 정권 타도라는 '불순한' 동기로 접근하고, 진보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내세워 뒷걸음질만 친다는 비판이다.윤 이사장은 "북한의 인권 개선과 'regime change(정권 교체)'는 별개의 문제이고 동기가 불순하면 주장이 먹히지 않는다"며 "인권 증진에 앞장서야 할 진보 역시 예외를 두며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그의 비판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지난해 8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연 국제회의에서 한 방청객은 "김정일 정권을 타도하는 게 정답"이라며 "이것(북한인권에 치중하는 것)은 비겁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고 한다. 윤 이사장은 "북한은 반드시 개혁돼야 한다"면서도 "어떤 체제에서도 인권은 개선돼야 한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정치적으로 엄정하게 중립을 지키면서 활동해왔다"고 소신을 피력했다.다음달이면 윤 이사장이 북한인권시민연합을 세워 활동한 지 꼭 15년이 된다. 1970년대부 카지노게임터 앰네스티 한국지부 설립을 주도하고 양심수 석방을 위해 애쓰던 그는 1996년 북한인권으로 눈을 돌렸다.초기엔 산도 언덕도 없는 광야에서 되돌아오 카지노게임는 메아리도 없이 홀로 북한인권을 외쳤다고 윤 이사장은 회고한다. '민주화 운동을 하겠다는 생각보다 양심수들을 놔두고는 잠자리가 편치 않아서' 앰네스티 활동을 시작했고, 북한동포들의 처참한 실상도 '쳐다만 보면 방관의 죄를 범하는 것 같아서' 그냥 놔둘 수 없었다.그간 윤 이사장은 국내보다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호소해왔다. 이념에 따라 '좌우'로 나뉘는 한국사회에서는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어 국제사회로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이다. 2003년 유엔 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대북인권결의안을 채택하면서 단체의 활동이 열매를 맺기 카지노게임 시작했고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월에는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캐나다 정부가 제정한 인권상인 '디펜베이커 인권상'의 첫 수상자가 됐다. 윤 이사장 개인적 카지노게임으로도 지난해 말 40년에 달하는 인권활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대한민국인권상'을 받는 경사를 누렸다. 그렇지만 윤 이사장은 지금도 두 평도 채 되지 않는 사무실의 작은 책상머리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묘안을 짜내는 데 몰두한다. "묘안이 떠오르질 않아…"라며 허공을 응시하는 80대 노인의 얼굴엔 40년 활동의 관록 대신 답답함과 간절함이 묻어났다[email protected][관련기사] ▶ 북한인권시민연합, 캐나다 정부 인권상 수상 ▶ 윤현 이사장 등 10명에 '대한민국 인권상' 단지 인체의 호흡뿐만 아니라 천지 간의 교류(交流)를 같은 현란함. 무시할 수 없는 기세와 변화! 카지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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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비대면 추석 ㅃ 『고려사』 목록 하●
『고려사』 목록 하 열전(列傳) 제 5, 고려사 92 홍유(洪儒)【배현경(裵玄慶), 신숭겸(申崇謙), 복지겸(卜智謙)】, 유금필(庾黔弼), 최응(崔凝), 최언위(崔彦撝), 왕유(王儒)【왕자지(王字之)】, 박술희(朴述熙), 최지몽(崔知夢), 왕식렴(王式廉), 박수경(朴守卿), 왕순식(王順式)【이총언(李忩言), 견금(堅金), 윤선(尹瑄), 흥달(興達), 선필(善弼), 태평(泰評)】, 공직(龔直), 박영규(朴英規).제 6, 고려사 93 서필(徐弼), 최승로(崔承老)【최제안(崔齊顔)】, 쌍기(雙冀), 최량(崔亮), 한언공(韓彦恭), 유방헌(柳邦憲), 김심언(金審言), 최항(崔沆), 채충순(蔡忠順).제 7, 고려사 94 서희(徐熙)【서눌(徐訥), 서공(徐恭)】, 유진(劉瑨), 강감찬(姜邯贊), 최사위(崔士威), 황보유의(皇甫兪義)【장연우(張延祐)】, 양규(楊規), 지채문(智蔡文)【지녹연(智祿延)】, 하공진(河拱辰), 김은부(金殷傅), 주저(周佇), 강민첨(姜民瞻), 곽원(郭元), 왕가도(王可道), 김맹(金猛), 류소(柳韶), 윤징고(尹徵古), 위수여(韋壽餘), 전공지(田拱之), 이주헌(李周憲), 이주좌(李周佐), 안소광(安紹光), 조지린(趙之遴).제 8, 고려사 95 최충(崔沖)【최유선(崔惟善), 최사제(崔思齊), 최약(崔瀹), 최윤의(崔允儀)】, 이자연(李子淵)【이자량(李資諒), 이자인(李資仁), 이혁유(李奕), 이자현(李資玄), 이자덕(李資德), 이예(李預), 이공수(李公壽), 이지저(李之氐), 이오(李), 이광진(李光縉)】, 박인량(朴寅亮)【박경인(朴景仁), 박경백(朴景伯), 박경산(朴景山)】, 황주량(黃周亮), 유신(柳伸), 왕총지(王寵之), 위계정(魏繼廷), 소태보(邵台輔)【왕국모(王國髦), 고의화(高義和)】, 문정(文正), 정문(鄭文), 김원정(金元鼎), 손관(孫冠), 최사량(崔思諒), 김선석(金先錫), 임의(任懿)【임원후(任元厚), 임극충(任克忠), 임극정(任克正), 임보(任溥), 임유(任濡), 임익(任翊), 임항(任沆)】, 김한충(金漢忠).제 9, 고려사 96 최사추(崔思諏), 김인존(金仁存), 윤관(尹瓘)【윤언이(尹彦頤), 윤인첨(尹鱗瞻), 윤세유(尹世儒), 윤상계(尹商季)】, 오연총(吳延寵).제 10, 고려사 97 김부일(金富佾)【김부의(金富儀)】, 고령신(高令臣), 김황원(金黃元)【이궤(李軌)】, 곽상(郭尙)【곽여(郭輿)】, 유재(劉載)【호종단(胡宗旦), 신안지(愼安之)】, 김경용(金景庸)【김인규(金仁揆)】, 최홍사(崔弘嗣), 한안인(韓安仁), 이영(李永), 한충(韓沖), 임개(林槩)【유록숭(庾祿崇)】, 김준(金晙), 류인저(柳仁著), 강증(康拯), 허경(許慶), 문관(文冠), 정항(鄭沆)【정서(鄭叙)】, 김극검(金克儉), 김약온(金若溫).제 11, 고려사 98 김부식(金富軾)【김돈중(金敦中), 김군유(金君綏)】, 정습명(鄭襲明), 고조기(高兆基), 김정순(金正純), 정극영(鄭克永), 박정유(朴挺), 최사전(崔思全), 김향(金珦), 최사성(崔滋盛), 김진(金縝), 임완(林完), 최기우(崔奇遇), 김수자(金守雌), 최유(崔濡), 이숙(李璹)【이위(李瑋)】, 허재(許載).제 12, 고려사 99 양원준(梁元俊), 최유청(崔惟淸)【최당(崔讜), 최린(崔璘), 최선(崔詵), 최종준(崔宗峻), 최문본(崔文本), 최평(崔坪), 최옹(崔雍)】, 이공승(李公升), 신숙(申淑), 한문준(韓文俊), 문극겸(文克謙), 류공권(柳公權)【류택(柳澤)】, 조영인(趙永仁), 왕세경(王世慶), 이순우(李純佑), 임민비(林民庇), 최척경(崔陟卿), 함유일(咸有一), 염신약(廉信若), 이지명(李知命), 유응규(庾應圭)【유자량(庾資諒)】, 현덕수(玄德秀), 최균(崔均)【최보순(崔甫淳), 최윤개(崔允愷)】, 김거공(金巨公), 한유한(韓惟漢).제 13, 고려사 100 두경승(杜景升), 우학유(于學儒), 노영순(盧永淳), 조위���(趙位寵), 방서란(房瑞鸞), 박제검(朴齊儉), 기탁성(奇卓誠), 홍중방(洪仲方), 경대승(慶大升), 진준(陳俊), 최세보(崔世輔), 박순필(朴純弼), 이영진(李英搢), 백임지(白任至), 이준창(李俊昌), 최충렬(崔忠烈), 정세유(鄭世裕)【정숙첨(鄭叔瞻), 정안(鄭晏)】, 정국검(鄭國儉)【이유성(李維城)】, 정방우(鄭邦佑), 정언진(丁彦眞).제 14, 고려사 101 민영모(閔令謀)【민식(閔湜)】, 송저(宋詝), 김광중(金光中)【김체(金蔕)】, 안유발(安劉勃), 최여해(崔汝諧), 최우청(崔遇淸), 왕규(王珪), 차약송(車若松)【기홍수(奇洪壽)】, 정극온(鄭克溫), 유광식(柳光植), 권경중(權敬中), 김태서(金台瑞)【김약선(金若先), 김미(金敉)】, 문한경(文漢卿)【권세후(權世侯), 백돈명(白敦明)】, 노인유(盧仁綏), 김의원(金義元).제 15, 고려사 102 금의(琴儀), 이규보(李奎報)【이익배(李益培)】, 유승단(兪升旦), 김인경(金仁鏡)【김승무(金承茂)】, 이공로(李公老), 이인로(李仁老)【오세재(吳世才), 조통(趙通), 임춘(林椿)】, 조문발(趙文拔), 이순목(李淳牧)【이수(李需)】, 김창(金敞), 송국첨(宋國瞻), 최자(崔滋)【하천단(河千旦)】, 채송년(蔡松年)【채정(蔡楨)】, 손변(孫抃), 권수평(權守平), 이순효(李純孝)【장순량(張純亮)】, 송언기(宋彦琦), 김수강(金守剛), 김지대(金之岱), 이장용(李藏用).제 16, 고려사 103 조충(趙沖)【조변(趙抃)】, 김취려(金就礪)【김문연(金文衍), 김변(金賆)】, 이적(李勣), 채정(蔡靖), 박서(朴犀)【송문주(宋文冑)】, 김경손(金慶孫)【김혼(金琿)】, 최춘명(崔椿命), 김희제(金希磾), 이자성(李子晟), 김윤후(金允侯), 김응덕(金應德).제 17, 고려사 104 김방경(金方慶)【김구용(金九容), 김제안(金齊顔), 김흔(金忻), 김순(金恂), 김영돈(金永旽), 김영후(金永煦), 박구(朴球)】, 한희유(韓希愈), 나유(羅裕)【나익희(羅益禧)】, 원충갑(元沖甲), 김주정(金周鼎)【김심(金深), 김종연(金宗衍), 김석견(金石堅)】.제 18, 고려사 105 류경(柳璥)【류승(柳陞), 류돈(柳墩), 류만수(柳曼殊)】, 허공(許珙)【허종(許悰), 허관(許冠), 허금(許錦), 허부(許富), 허유(許猷)】, 홍자번(洪子藩)【홍승서(洪承緖), 홍영통(洪永通)】, 정가신(鄭可臣), 안향(安珦)【안우기(安于器), 안목(安牧)】, 설공검(薛公儉), 유��우(兪千遇), 조인규(趙仁規)【조서(趙瑞), 조련(趙璉), 조린(趙璘), 조연수(趙延壽), 조위(趙瑋)】.제 19, 고려사 106 백문절(白文節)【백이정(白頤正)】, 박항(朴恒), 곽예(郭預), 주열(朱悅), 이주(李湊)【이행검(李行儉)】, 장일(張鎰), 김구(金坵), 이승휴(李承休)【이연종(李衍宗)】, 김훤(金晅)【김개물(金開物)】, 정해(鄭瑎)【정오(鄭), 정포(鄭誧), 정공권(鄭公權)】, 조간(趙簡), 심양(沈諹), 추적(秋適)【이인정(李仁挺), 채우(蔡禑)】, 김유성(金有成)【곽린(郭麟)】, 윤해(尹諧)【윤택(尹澤)】, 이영(李穎), 엄수안(嚴守安), 안전(安戩), 최수황(崔守璜), 박유(朴褕), 홍규(洪奎)【홍융(洪戎)】.제 20, 고려사 107 한강(韓康)【한악(韓渥), 한수(韓脩), 한방신(韓方信)】, 원부(元傅)【원충(元忠), 원호(元顥), 원선지(元善之), 원송수(元松壽)】, 김련(金連), 김부윤(金富允), 정인경(鄭仁卿), 권단(權)【권보(權溥), 권준(權準), 권염(權廉), 권용(權鏞), 권적(權適), 권화(權和), 권근(權近)】, 민지(閔漬)【민상정(閔祥正)】.제 21, 고려사 108 민종유(閔宗儒)【민적(閔頔), 민사평(閔思平), 민변(閔抃), 민제(閔霽)】, 김지숙(金之淑)【김인연(金仁沇)】, 정선(鄭僐), 이혼(李混), 최성지(崔誠之)【정문도(鄭文度)】, 채홍철(蔡洪哲), 김이(金怡), 이인기(李仁琪), 홍빈(洪彬), 조익청(曹益淸), 배정지(裵廷芝), 손수경(孫守卿).제 22, 고려사 109 박전지(朴全之), 오형(吳詗), 이진(李瑱), 윤신걸(尹莘傑)【박효수(朴孝修)】, 허유전(許有全), 박충좌(朴忠佐), 윤선좌(尹宣佐), 이조년(李兆年)【이승경(李承慶)】, 이곡(李穀), 우탁(禹倬), 안축(安軸)【안종원(安宗源), 안보(安輔)】, 최해(崔瀣), 장항(張沆), 이성(李晟), 조렴(趙廉)【왕백(王伯)】, 이백겸(李伯謙), 신군평(申君平).제 23, 고려사 110 최유엄(崔有渰), 김태현(金台鉉)【김광재(金光載)】, 김륜(金倫)【김경직(金敬直), 김희조(金希祖), 김승구(金承矩)】, 왕후(王煦)【왕중귀(王重貴)】, 한종유(韓宗愈), 이제현(李齊賢)【이달존(李達尊), 이보림(李寶林)】, 이능간(李凌幹).제 24, 고려사 111 염제신(廉悌臣), 이암(李嵒)【이강(李岡)】, 홍언박(洪彦博)【홍사우(洪師禹), 류연(柳淵)】, 류탁(柳濯), 경복흥(慶復興), 김속명(金續命), 이자송(李子松), 조돈(趙暾)【조인옥(趙仁沃)】, 최재(崔宰), 송천봉(宋天逢), 홍중선(洪仲宣), 김도(金濤), 임박(林樸), 문익점(文益漸).제 25, 고려사 112 이공수(李公遂), 류숙(柳淑)【류실(柳實)】, 이인복(李仁復), 백문보(白文寶), 전록생(田祿生), 이존오(李存吾), 이달충(李達衷), 설손(偰遜)【설장수(偰長壽)】, 한복(韓復), 이무방(李茂方), 정습인(鄭習仁), 하윤원(河允源), 박상충(朴尙衷), 박의중(朴宜中), 조운흘(趙云仡).제 26, 고려사 113 안우(安祐)【김득배(金得培), 이방실(李芳實)】, 정세운(鄭世雲), 안우경(安遇慶), 최영(崔塋), 정지(鄭地), 윤가관(尹可觀), 김장수(金長壽).제 27, 고려사 114 윤환(尹桓), 이성서(李成瑞), 이수산(李壽山)【이염(李恬)】, 이승로(李承老)【이운목(李云牧)】, 황상(黃裳), 지용수(池龍壽), 나세(羅世), 김선치(金先致), 전이도(全以道), 구영검(具榮儉), 오인택(吳仁澤), 김보(金普), 변광수(邊光秀)【이선(李善)】, 정지상(鄭之祥), 임군보(任君輔), 나흥유(羅興儒), 목인길(睦仁吉), 김유(金庾), 양백연(楊伯淵), 지용기(池湧奇), 하을지(河乙沚), 우인열(��仁烈), 문달한(文達漢), 김주(金湊), 최운해(崔雲海).제 28, 고려사 115 이색(李穡), 우현보(禹玄寶), 이숭인(李崇仁).제 29, 고려사 116 심덕부(沈德符), 이림(李琳), 왕강(王康), 박위(朴葳), 이두란(李豆蘭), 남은(南誾).제 30, 고려사 117 정몽주(鄭夢周), 김진양(金震陽), 강회백(姜淮伯), 이첨(李詹), 성석린(成石璘).제 31, 고려사 118 조준(趙浚).제 32, 고려사 119 정도전(鄭道傳).제 33 고려사 120 윤소종(尹紹宗)【윤회종(尹會宗)】, 오사충(吳思忠), 김자수(金子粹).제 34, 고려사 121, 양리(良吏) 유석(庾碩), 왕해(王諧), 김지석(金之碩), 최석(崔碩), 정운경(鄭云敬).제 34, 고려사 121, 충의(忠義) 홍관(洪灌), 고보준(高甫俊), 정의(鄭顗), 문대(文大), 조효립(曹孝立), 정문감(鄭文鑑).제 34, 고려사 121, 효우(孝友) 문충(文忠), 석주(釋珠), 최루백(崔婁伯), 위초(尉貂), 서릉(徐稜), 김천(金遷), 황수(黃守), 정유(鄭愈), 조희참(曹希參), 정신우의 딸(鄭臣祐女), 손유(孫宥), 권거의(權居義)【노준공(盧俊恭)】, 신사천의 딸(辛斯蕆女), 윤구생(尹龜生), 반전(潘腆), 군만(君萬).제 34, 고려사 121, 열녀(烈女) 호수의 처 유씨(胡壽妻兪氏), 현문혁의 처(玄文奕妻), 홍의의 처(洪義妻), 안천검의 처(安天儉妻), 강화 세 여자(江華三女), 정만의 처 최씨(鄭滿妻崔氏), 이동교의 처 배씨(李東郊妻裵氏), 강호문의 처 문씨(姜好文妻文氏), 김언경의 처 김씨(金彦卿金氏), 경덕의의 처 안���(景德宜妻安氏), 이득인의 처 이씨(李得仁妻李氏), 권금의 처(權金妻).제 35, 고려사 122, 방기(方技) 김위제(金謂磾), 이녕(李寧), 이상로(李商老), 오윤부(伍允孚), 설경성(薛景成).제 35, 고려사 122, 환자(宦者) 정함(鄭諴), 백선연(白善淵), 최세연(崔世延), 이숙(李淑), 임바얀투그스[任伯顔禿古思], 방신우(方臣祐), 이대순(李大順), 우산절(禹山節), 고용보(高龍普), 김현(金玄), 안도적(安都赤), 신소봉(申小鳳), 이득분(李得芬), 김사행(金師幸).제 35, 고려사 122, 혹리(酷吏) 송길유(宋吉儒), 심우경(沈于慶)제 36, 고려사 123, 폐행(嬖幸) 1 유행간(兪行簡), 영의(榮儀), 김존중(金存中), 정세신(鄭世臣), 백승현(白勝賢), 강윤소(康允紹), 염승익(廉承益), 이분희(李汾禧)【이습(李槢)】, 권의(權宜)【채모(蔡謨), 이덕손(李德孫)】, 임정기(林貞杞)【민훤(閔萱)】, 주인원(朱印遠), 이영주(李英柱), 이지저(李之氐)【고종수(高宗秀), 김유(金儒)】, 인후(印候)【인승단(印承旦)】, 장순룡(張舜龍)【차신(車信), 노영(盧英)】, 조윤통(曹允通).제 37, 고려사 124, 폐행 2 윤수(尹秀)【윤길보(尹吉甫)】, 이정(李貞)【김문비(金文庇), 이병(李)】, 원경(元卿), 박의(朴義), 박경량(朴景亮), 전영보(全英甫), 강윤충(康允忠), 배전(裵佺), 민환(閔渙), 윤석(尹碩), 손기(孫琦), 정방길(鄭方吉)【임중연(林仲沇), 강융(姜融)】, 신청(申靑)【박청(朴靑)】, 왕삼석(王三錫)【양재(梁載), 조신경(曹辛卿), 최노성(崔老星), 윤현(尹賢), 안규(安珪)】, 최안도(崔安道)【이의풍(李宜風), 김지경(金之鏡), 이인길(李仁吉)】, 노영서(盧英瑞)【박양연(朴良衍), 송명리(宋明理)】, 김흥경(金興慶), 반복해(潘福海), 신원필(申元弼).제 38, 고려사 125, 간신(姦臣) 1 문공인(文公仁), 박승중(朴昇中), 최홍재(崔弘宰), 최유칭(崔褎稱), 박훤(朴暄), 송분(宋玢), 왕유소(王惟紹), 송방영(宋邦英), 오잠(吳潛)【석주(石冑)】, 김원상(金元祥), 류청신(柳淸臣), 권한공(權漢功), 채하중(蔡河中), 신예(辛裔)【전숙몽(田淑蒙)】, 이춘부(李春富), 김원명(金元命), 김횡(金鋐), 지윤(池奫).제 39, 고려사 126, 간신 2 이인임(李仁任), 임견미(林堅味), 염흥방(廉興邦), 조민수(曹敏修), 변안렬(邊安烈), 왕안덕(王安德).제 40, 고려사 127, 반역(叛逆) 1 환선길(桓宣吉), 이흔암(伊昕巖), 왕규(王規), 김치양(金致陽), 강조(康兆), 이자의(李資義), 이자겸(李資謙), 척준경(拓俊京), 묘청(妙淸).제 41, 고려사 128, 반역 2 정중부(鄭仲夫)【이광정(李光挺), 송유인(宋有仁)】, 이의방(李義方), 이의민(李義旼), 정방의(鄭方義), 조원정(曹元正)【석린(石隣)】.제 42, 고려사 129, 반역 3 최충헌(崔忠獻)【최이(崔怡), 최항(崔沆), 최의(崔竩)】제 43, 고려사 130, 반역 4 한순(韓恂)【다지(多智)】, 홍복원(洪福源), 이현(李峴), 조숙창(趙淑昌), 조휘(趙暉), 김준(金俊), 임연(林衍)【임유무(林惟茂)】, 조이(趙彝)【김유(金裕), 이추(李樞)】, 한홍보(韓洪甫), 우정(于琔), 최탄(崔坦), 배중손(裵仲孫).제 44, 고려사 131, 반역 5 조적(曹頔), 조일신(趙日新), 김용(金鏞), 기철(奇轍), 노책(盧頙), 권겸(權謙), 최유(崔濡), 홍륜(洪倫), 김문현(金文鉉), 김의(金義).제 45, 고려사 132, 반역 6 신돈(辛旽).제 46, 고려사 133, 신우(辛禑) 1제 47, 고려사 134, 신우 2제 48, 고려사 135, 신우 3제 49, 고려사 136, 신우 4제 50, 고려사 137, 신우 5【창(昌)】 列傳 第五, 高麗史 九十二 洪儒【裵玄慶·申崇謙·卜智謙】, 庾黔弼, 崔凝, 崔彦撝, 王儒【王字之】, 朴述熙, 崔知夢, 王式廉, 朴守卿, 王順式【李忩言·堅金·尹瑄·興達·善弼·泰評】, 龔直, 朴英規.第六, 高麗史 九十三 徐弼, 崔承老【崔齊顔】, 雙冀, 崔亮, 韓彦恭, 柳邦憲, 金審言, 崔沆, 蔡忠順.第七, 高麗史 九十四 徐熙【徐訥·徐恭】, 劉瑨, 姜邯贊, 崔士威, 皇甫兪義【張延祐】, 楊規, 智蔡文【智祿延】, 河拱辰, 金殷傅, 周佇, 姜民瞻, 郭元, 王可道, 金猛, 柳韶, 尹徵古, 韋壽餘, 田拱之, 李周憲, 李周佐, 安紹光, 趙之遴第八, 高麗史 九十五 崔冲【崔惟善·崔思齊·崔瀹·崔允儀】, 李子淵【李資諒·李資仁·李奕·李資玄·李資德·李預·李公壽·李之氐·李·李光縉】, 朴寅亮【朴景仁·朴景伯·朴景山】, 黃周亮, 柳伸, 王寵之, 魏繼廷, 邵台輔【王國髦·高義和】, 文正, 鄭文, 金元鼎, 孫冠, 崔思諒, 金先錫, 任懿【任元厚·任克忠·任克正·任溥·任濡·任翊·任沆】, 金漢忠.第九, 高麗史 九十六 崔思諏, 金仁存, 尹瓘【尹彦頤·尹鱗瞻·尹世儒·尹商季】, 吳延寵.第十, 高麗史 九十七 金富佾【金富儀】, 高令臣, 金黃元【李軌】, 郭尙【郭輿】, 劉載【胡宗旦·愼安之】, 金景庸【金仁揆】, 崔弘嗣, 韓安仁, 李永, 韓沖, 林槩【庾祿崇】, 金晙, 柳仁著, 康拯, 許慶, 文冠, 鄭沆【鄭叙】, 金克儉, 金若溫.第十一, 高麗史 九十八 金富軾【金敦中·金君綏】, 鄭襲明, 高兆基, 金正純, 鄭克永, 朴挺, 崔思全, 金珦, 崔滋盛, 金縝, 林完, 崔奇遇, 金守雌, 崔濡, 李璹【李瑋】, 許載.第十二, 高麗史 九十九 梁元俊, 崔惟淸【崔讜·崔璘·崔詵·崔宗峻·崔文本·崔坪·崔壅】, 李公升, 申淑, 韓文俊, 文克謙, 柳公權【柳澤】, 趙永仁, 王世慶, 李純佑, 林民庇, 崔陟卿, 咸有一, 廉信若, 李知命, 庾應圭【庾資諒】, 玄德秀, 崔均【崔甫淳·崔允愷】, 金巨公, 韓惟漢.第十三, 高麗史 一百 杜景升, 于學儒, 盧永淳, 趙位寵, 房瑞鸞, 朴齊儉, 奇卓誠, 洪仲方, 慶大升, 陳俊, 崔世輔, 朴純弼, 李英搢, 白任至, 李俊昌, 崔忠烈, 鄭世裕【鄭叔瞻·鄭晏】, 鄭國儉【李維城】, 鄭邦佑, 丁彦眞.第十四, 高麗史 一百一 閔令謨【閔湜】, 宋詝, 金光中【金蔕】, 安劉勃, 崔汝諧, 崔遇淸, 王珪, 車若松【奇洪壽】, 鄭克溫, 柳光植, 權敬中, 金台瑞【金若先·金敉】, 文漢卿【權世侯·白敦明】, 盧仁綏, 金義元.第十五, 高麗史 一百二 琴儀, 李奎報【李益培】, 兪升旦, 金仁鏡【金承茂】, 李公老, 李仁老【吳世才·趙通·林椿】, 趙文拔, 李淳牧【李需】, 金敞, 宋國瞻, 崔滋【河千旦】, 蔡松年【蔡楨】, 孫抃, 權守平, 李純孝【張純亮】, 宋彦琦, 金守剛, 金之岱, 李藏用.第十六, 高麗史 一百三 趙冲【趙抃】, 金就礪【金文衍·金賆】, 李勣, 蔡靖, 朴犀【宋文胄】, 金慶孫【金琿】, 崔椿命, 金希磾, 李子晟, 金允侯, 金應德.第十七, 高麗史 一百四 金方慶【金九容·金齊顔·金忻·金恂·金永旽·金永煦·金士衡·朴球】, 韓希愈, 羅裕【羅益禧】, 元冲甲, 金周鼎【金深·金宗衍·金石堅】.第十八, 高麗史 一百五 柳璥【柳陞·柳墩·柳曼殊】, 許珙【許悰·許冠·許錦·許富·許猷】, 洪子藩【洪承緖·洪永通】, 鄭可臣, 安珦【安于器·安牧】, 薛公儉, 兪千遇, 趙仁規【趙瑞·趙璉·趙德裕·趙璘·趙延壽·趙瑋】.第十九, 高麗史 一百六 白文節【白頤正】, 朴恒, 郭預, 朱悅, 李湊【李行儉】, 張鎰, 金坵, 李承休【李衍宗】, 金晅【金開物】, 鄭瑎【鄭·鄭誧·鄭公權】, 趙簡, 沈諹, 秋適【李仁挺·蔡禑】, 金有成【郭麟】, 尹諧【尹澤】, 李穎, 嚴守安, 安戩, 崔守璜, 朴褕, 洪奎【洪戎】第二十, 高麗史 一百七 韓康【韓渥·韓脩·韓方信】, 元傅【元忠·元顥·元善之·元松壽】, 金連, 金富允, 鄭仁卿, 權【權溥·權準·權廉·權鏞·權適·權和·權近】, 閔漬【閔祥正】.第二十一, 高麗史 一百八 閔宗儒【閔頔·閔思平·閔抃·閔霽】, 金之淑【金仁沇】, 鄭僐, 李混, 崔誠之【崔文度】, 蔡洪哲, 金怡, 李仁琪, 洪彬, 曹益淸, 裴廷芝, 孫守卿.第二十二, 高麗史 一百九 朴全之, 吳詗, 李瑱, 尹莘傑【朴孝修】, 許有全, 朴忠佐, 尹宣佐, 李兆年【李承慶】, 李穀, 禹倬, 安軸【安宗源·安輔】, 崔瀣, 張沆, 李晟, 趙廉【王伯】, 李伯謙, 申君平.第二十三, 高麗史 一百十 崔有渰, 金台鉉【金光載】, 金倫【金敬直·金希祖·金承矩】, 王煦【王重貴】, 韓宗愈, 李齊賢【李達尊·李寶林】, 李凌幹.第二十四, 高麗史 一百十一 廉悌臣, 李嵒【李岡】, 洪彦博【洪師禹·柳淵】, 柳濯, 慶復興, 金續命, 李子松, 趙暾【趙仁沃】, 崔宰, 宋天逢, 洪仲宣, 金濤, 林撲, 文益漸.第二十五, 高麗史 一百十二 李公遂, 柳淑【柳實】, 李仁復, 白文寶, 田祿生, 李存吾, 李達衷, 偰遜【偰長壽】, 韓復, 李茂方, 鄭習仁, 河允源, 朴尙衷, 朴宜中, 趙云仡.第二十六, 高麗史 一百十三 安祐【金得培·李芳實】, 鄭世雲, 安遇慶, 崔瑩, 鄭地, 尹可觀, 金長壽.第二十七, 高麗史 一百十四 尹桓, 李成瑞, 李壽山【李恬】, 李承老【李云牧】, 黃裳, 池龍壽, 羅世, 金先致, 全以道, 具榮儉, 吳仁澤, 金普, 邊光秀【李善】, 鄭之祥, 任君輔, 羅興儒, 睦仁吉, 金庾, 楊伯淵, 池湧奇, 河乙沚, 禹仁烈, 文達漢, 金湊, 崔雲海第二十八, 高麗史 一百十五 李穡, 禹玄寶, 李崇仁第二十九, 高麗史 一百十六 沈德符, 李琳, 王康, 朴葳, 李豆蘭, 南誾.第三十, 高麗史 一百十七 鄭夢周, 金震陽, 姜淮伯, 李詹, 成石璘.第三十一, 高麗史 一百十八 趙浚第三十二, 高麗史 一百十九 鄭道傳第三十三, 高麗史 一百二十 尹紹宗【尹會宗】, 吳思忠, 金子粹.第三十四, 高麗史 一百二十一, 良吏 庾碩, 王諧, 金之碩, 崔碩, 鄭云敬.第三十四, 高麗史 一百二十一, 忠義 洪灌, 高甫俊, 鄭顗, 文大, 曹孝立, 鄭文鑑.第三十四, 高麗史 一百二十一, 孝友 文忠, 釋珠, 崔婁伯, 尉貂, 徐稜, 金遷, 黃守, 鄭愈, 曹希參, 鄭臣祐女, 孫宥, 權居義【盧俊恭】, 辛斯蕆女, 尹龜生, 潘腆, 君萬.第三十四, 高麗史 一百二十一, 烈女 胡壽妻兪氏, 玄文奕妻, 洪義妻, 安天儉妻, 江華三女, 鄭滿妻崔氏, 李東郊妻裴氏, 康好文妻文氏, 金彦卿妻金氏, 景德宜妻安氏, 李得仁妻李氏, 權金妻.第三十五, 高麗史 一百二十二, 方技 金謂磾, 李寧, 李商老, 伍允孚, 薛景成.第三十五, 高麗史 一百二十二, 宦者 鄭諴, 白善淵, 崔世延, 李淑, 任伯顔禿古思, 方臣祐, 李大順, 禹山節, 高龍普, 金玄, 安都赤, 申小鳳, 李得芬, 金師幸.第三十五, 高麗史 一百二十二, 酷吏 宋吉儒, 沈于慶.第三十六, 高麗史 一百二十三, 嬖幸 一 庾行簡, 榮儀, 金存中, 鄭世臣, 白勝賢, 康允紹, 廉承益, 李汾禧【李槢】, 權宜【蔡謨·李德孫】, 林貞杞, 朱印遠, 李英柱, 李之氐【高宗秀·金儒】, 印侯【印承旦】, 張舜龍【車信·盧英】, 曹允通.第三十七, 高麗史 一百二十四, 嬖幸 二 尹秀【尹吉甫】, 李貞【金文庇·李】, 元卿, 朴義, 朴景亮, 全英甫, 康允忠, 裴佺, 閔渙, 尹碩, 孫琦, 鄭方吉【林仲沇·姜融】, 申靑【朴靑】, 王三錫【梁載·曹莘卿·崔老星·尹賢·安珪】, 崔安道【李宜風·金之鏡·李仁吉】, 盧英瑞【朴良衍·宋明理】, 金興慶, 潘福海, 申元弼.第三十八, 高麗史 一百二十五, 姦臣 一 文公仁, 朴昇中, 崔弘宰, 崔褎偁, 朴暄, 宋玢, 王惟紹, 宋邦英, 吳潜【石胄】, 金元祥, 柳淸臣, 權漢功, 蔡河中, 辛裔【田淑蒙】, 李春富, 金元命, 金鋐, 池奫.第三十九, 高麗史 一百二十六, 姦臣 二 李仁任, 林堅味, 廉興邦, 曹敏修, 邊安烈, 王安德.第四十, 高麗史 一百二十七, 叛逆 一 桓宣吉, 伊昕巖, 王規, 金致陽, 康兆, 李資義, 李資謙, 拓俊京, 妙淸.第四十一, 高麗史 一百二十八, 叛逆 二 鄭仲夫【李光挺·宋有仁】, 李義方, 李義旼, 鄭方義, 曹元正【石隣】.第四十二, 高麗史 一百二十九, 叛逆 三 崔忠獻【崔怡·崔沆·崔竩】第四十三, 高麗史 一百三十, 叛逆 四 韓恂【多智】, 洪福源, 李峴, 趙叔昌, 趙暉, 金俊, 林衍【林惟茂】, 趙彝【金裕·李樞】, 韓洪甫, 于琔, 崔坦, 裴仲.第四十四, 高麗史 一百三十一, 叛逆 五 曹頔, 趙日新, 金鏞, 奇轍, 盧頙, 權謙, 崔濡, 洪倫, 金文鉉, 金義.第四十五, 高麗史 一百三十二, 叛逆 六 辛旽第四十六, 高麗史 一百三十三, 辛禑 一第四十七, 高麗史 一百三十四, 辛禑 二第四十八, 高麗史 一百三十五, 辛禑 三第四十九, 高麗史 一百三十六, 辛禑 四第五十, 高麗史 一百三十七, 辛禑 五【昌】 추석을 맞아 인천가족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성��를 하고 있다./경향신문 자료사진 올 추석 나기가 코로나19로 골치 아픈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여전한 확산세로 3주 후 추석 연휴 때 방역 안전을 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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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na be Singers [선공개/3회] 비음 교정 마법의 주문★ '안녕하세요, 장성규입니다~' 200306 EP.3
Wanna be Singers [선공개/3회] 비음 교정 마법의 주문★ ‘안녕하세요, 장성규입니다~’ 200306 EP.3
[선공개/3회] 비음 교정 마법의 주문★ ‘안녕하세요, 장성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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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윤현 기자] ▲ 미국 스타벅스 전체 매장의 인종차별 방지 교육 실시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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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OhmyNews_Korea: 중국, 홍콩 국가보안법 직접 제정 '초강수'... 범민주 '강력 반발' #중국 #홍콩_국가보안법 #전국인민대표대회 https://t.co/MJli7iXeMR 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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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an't for the living life outta me fathom why these people used the heart sign with that ridiculous meaning hahaha
— ✰Precious✰ 윤현 ♡SEOLO (@theCoolestShit) November 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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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문화 통신: 가창창작스튜디오(이은재), 범어아트스트리트(이소정), 방천시장(정세용), 대구경북 대학가(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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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문화 통신: 가창창작스튜디오(이은재), 범어아트스트리트(이소정), 방천시장(정세용), 대구경북 대학가(김애란)
우리 지역 문화 통신
근래 대구 문화계의 특징을 짚으라면 ‘다양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인들의 활동이 과거에는 규모가 있는 문예회관, 미술관 위주로 ���쳐지던 것에서, 근래에는 특색을 가진 ‘문화거리’와 ‘지구’ 혹은 ‘작업현장’ 등 다양한 무대로 확장된 것이다. 『대구문화』도 올해부터 크고 작은 문화 공간 위주의 정보 전달에서 변화를 주었다. 대구예술발전소, 방천시장, 봉산문화거리, 범어아트스트리트, 가창창작스튜디오, 대명공연문화거리 그리고 대학가 문화 통신 등으로 구역을 나눠 각 구역의 통신원을 통해 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달한다.
가창창작스튜디오
중국미술학원국가대학기술원 레지던스 프로그램 교류
가창창작스튜디오는 중국 항주의 중국미술학원 국가대학과학기술원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협약 체결하고 교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역의 젊은 미술작가를 선발하여 해외 레지던스 프로그램 파견을 통해 국제적인 시대감각을 체험하여 창작활동의 새로운 밑거름을 마련하고, 해외 교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공모를 통해 지원작가들이 지난 3월 19일 인터뷰 심사를 거쳐 가창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3명(김성재, 신주원, 이안나), 대구작가 3명(방정호, 이성경, 최현실)이 2014년 파견작가로 선발되었다. 4월부터 회차 별로 두 작가씩 3개월간 중국에 파견되어 창작활동을 할 예정이다. 또한 중국에서 선발된 작가는 4월부터 가창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현재 가창에 입주한 작가들과 함께 창작활동을 펼쳐나간다. 선발된 작가에게는 창작공간과 숙소, 항공료와 지원금 그리고 개인전시가 지원된다. 중국미술학원국가대학과학기술원은 7개의 창작단지로 구성되어있다. 영상, 디자인, 판화,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 공간 및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며 판화실, 도예실, 영상미디어실 등의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가창창작스튜디오는 2009년부터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5년간 지속적으로 운영해왔다. 해외작가초청 레지던스 형식에서 타국가와의 해외작가 교류 파견 형식으로 전환된 이번 국제문화교류사업은 가창창작스튜디오를 국제적인 교류공간으로 새롭게 변모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연말에는 1년간 입주하였던 8명의 해외작가와 10명의 국내 입주작가가 함께 입주기간 동안 작업해왔던 결과물을 발표하는 국제 레지던스전이 있을 예정이다.
글|이은재 가창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매니저
범어아트스트리트
아트길 한번 걸어보시죠?
범어아트스트리트에서는 시민과 함께하는 더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시각 및 다원분야 등 지역예술단체를 대상으로 실험적인 창작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한 기획전시공모에서 6개 지역예술단체가 선정되어, 판화, 사진, 평면, 입체, 한지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이다. 지역의 원로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구원로미술인회와 민족의 얼이 담긴 한지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사)한지나라공예문화협회가 마련한 전시가 이달부터 진행된다.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40세 이하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커브 2410 공모에서 7명의 청년작가들이 선정되었다. 4월부터 내년 1월까지 전시가 열린다. 선정 작가는 이병진, 이소진, 이성경, 임장미, 신강호, 김안나, 윤현경이다. 매주 금요일 6시30분부터 범어아트스트리트 문화예술정보센터 앞에서 진행되는 금요 퇴근길 콘서트 공모에서는 6개 분야 32개 단체가 지원하여 22개 단체가 선정되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악, 타악, 기악, 중창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다. 5월과 9월에는 ‘가정의 달 맞이’과 ‘가을소풍’이라는 주제로 범어아트스트리트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기획전시, 기획공연, 오픈스튜디오, 아트마켓, 체험프로그램 등 다양하게 준비해 시민과 소통을 유도한다. 또한 연 2회 진행되는 자체기획전시는 상반기 전시 ‘Dynamic Place(다이내믹 플레이스)展’(2.17~3.29)을 마치고 하반기 10월 중 ‘쉼의 미학(부제 : 길, 아트를 품다)’이라는 제목으로 공공디자인 조형작품 설치 프로젝트가 선보인다.
글|이소정 범어아트스트리트 담당
방천시장
방천아트마켓,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진행
방천시장은 2014년 새 봄을 맞이하여 다채로운 프로젝트로 시민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이곳은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시장으로서 현재까지 벼룩시장과 아트마켓 등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있었으며 올해에는 방천문화예술협회 주관으로 방천아트마켓을 기획하였다. 3월 29일부터 시작된 방천아트마켓은 매주 토요일 진행된다. 느낌 좋은 주말 봄날, 방천시장에 오면 오래된 시장문화와 예술가가 직접 제작한 그림들과 수공예 작품들을 구매하고 예술가가 직접 그리는 캐리커쳐와 팝아트 초상화 그리고 즐거운 공연까지 다양하게 체험하고 즐길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지금까지 국내에 있었던 프리마켓과는 다른 예술가와 시민들의 소통과 교류에 중점을 두어 방천시장이 예술가와 청년들의 꿈을 활성화하고 시민들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을 줄 것이다.(문의: 방천문화예술협회 사무국 최윤경 010-4420-9399) 한편 대구문화재단의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원으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가 아트스페이스 방천에서 운영된다. 방천시장 내 갤러리 토마 프로젝트 9-21에서 ‘꿈꾸는 디지털 아트’란 타이틀로 연간 총 30회, 매주 토요일 교육을 한다. LED조명과 광섬유를 활용한 미술교육과 디지털 사진미디어교육, 그리고 디지털 음악특강이 진행되며 프로그램들은 모두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 융합형 장르이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이며 ��� 3기수를 모집하여 기수별로 30명씩 선착���으로 교육한다. 미술현장학습과 결과물 전시까지 진행한다. 현재 아트스페이스 방천은 경동초등학교와 교육협력관계(MOU)를 맺고 봉산문화회관과 공동기획으로 스페이스 라온에서 정기공연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문의: 아트스페이스 방천 기획자 유지숙 010-8244-1119)
글|정세용 조각가, B 커뮤니케이션 대표
대구경북 대학가
벚꽃 피는 봄날, 버스킹 소리가 들린다
케이팝스타, 슈퍼스타K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화제를 모으고, 버스커버스커, 10cm와 같은 밴드들의 인기 역시 여전하다. 이런 흐름에는 ‘버스킹’이라는 새로운 공연 문화가 있다. 버스킹(Busking)의 ‘Busk’는 ‘통행인에게 돈을 얻으며 길거리에서 연주하다’란 뜻이다. 요즘은 폭넓게 ‘거리에서 자유롭게 연주하는 행위’를 모두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가도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정통 록, 메탈 등의 하드한 음악을 다루는 동아리의 인기는 시들해지고, 동성로나 대학가 등지에서 스스로 밴드를 만들어 버스킹을 즐기는 친구들이 등장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를 통해 더욱 이름을 알린 팀 가로등 라디오는 대표적인 지역의 버스킹 밴드였다. 대학가에는 경북대학교를 근거지로 밴드 활동했던 엄태현이 키보드 정유진과 함께 ‘오늘도 무사히’ 오무히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이 모여 키보드, 퍼커션, 기타 등 다양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6인조 밴드 마쌀리나 역시 지역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밴드다. 지역 인디밴드의 ‘버스킹’은 그들의 실력을 갈고 닦는 기회로, 쉽게 대중과 만나는 장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버스킹을 통해 입지를 다지고, 지역 문화행사의 구심점 혹은 빠지지 않는 감초 역할로 성장한다. 새로운 얼굴이 드문 지역 문화계에서 이러한 통로는 참 반가운 일이다. 이들의 행보를 더욱 지지하고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디밴드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의외로 가깝다. 거리 공연에서도 물론이지만, 공연 공간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경북대학교 북문 앞 뮤직트리, 대명동 계명대 근처 민트고래, 클럽 헤비, 중앙로 소셜마켓 등은 정기적으로 인디밴드의 공연을 개최한다. 한 주에 한 번꼴로 공연이 열리며, 공연 관련 소식은 각 공간의 홈페이지나 인터넷 카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인디밴드가 직접 운영하는 페이스북에서도 그들의 공연소식을 확인할 수 있다.
글|김애란 대학생 문화잡지 「모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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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OhmyNews_Korea: 미국, 연일 '중국 때리기'... 홍콩·티베트 이어 대만까지 내세워 #코로나19 #마이크_폼페이오 #중국 https://t.co/BX3AsSKVJP 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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