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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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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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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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태어날 때 울지 않았다 난 첫울음 대신 종이와 연필을 갖고 싶었다 그게 이야기꾼의 위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난 온통 분홍이었다 다른 먼 세계에서 피를 가져오느라 내 몸은 멍들고 부풀어 있었다 그런 내 이야긴 널리 퍼져 뽀얗게 분을 바르고 생각 많은 달콤한 표정으로 소비자왕 앞으로 불려가기도 하였다 대지는 병들고 도시는 비만해져 왕관이 무거워진 그는 지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복숭아 나무는 미쳤어! 그래, 난 미친 복숭아나무에서 태어난 털 없는 짐승 거친 이야기는 바다를 건너 이제 막 물가에 도착한 아기 바구니 식탁 위에 놓여 있는 한 여름 밤의 꿈 . 복숭아/송찬호 .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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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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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전 지구를 떠난 보이저1호가 드디어 태양계와 외부 우주의 경계에 도달했다. 1977년 보이저 1호는 30cm 크기의 금으로 만든 원반에 55개 언어 인사말, 115개의 그림, 자연의 소리, 118장의 지구사진, 그리고 27곡의 음악이 담겨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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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며 33년을 달렸습니다 보이죠, 은빛 반짝이는 보이저 1호 은하는 이제 막 범람하기 시작하였고 마음 밖 문을 열던 바람 방향이 바뀌었는지 별의 빛들은 일제히 눈을 감았습니다 돌아오라,는 손짓 기다리며 여기까지 달렸습니다 종일 장대비가 내려 길은 아득하였고 유탄처럼 날리는 낙뢰를 피해 불 꺼진 행성 처마 밑이라도 잠시 서 있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싸준 가슴뼈 한 조각을 꺼내 편지를 썼지만 떠나온 별의 주소가 비에 번져 부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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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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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하루/이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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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꽃샘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창문에 끼어 울고 있다 . 발가벗고 지붕 위로 올라갈까요 경사지에 누워 아아 소리칠까요 저 바람을 훔쳐 내 심장에 가둘까요 . 하늘 끝까지 가 닿을 자유 구겨진 종이 검은 비닐 썩지 않은 이파리들 . 시곗바늘 떼어내 사다리 만든다 사다리 구부려 바퀴 만든다 거꾸로 가는 세발자전거 탄다 한 바퀴 되돌아오는 네 발자국 침묵하는 지붕 위로 던져 버린다 잘 가라 낡은 시계 . 꿈속에 본 그 마당에 첫 발자국 찍어야지 빨강색 운동화 신고 잎사귀 같은 풍선 같은 뜨거운 혓바닥 새겨야지 어서 와 처음 사랑해 처음 . 너의 목구멍을 보여줘 미끈거리는 갯벌 속 어둠의 경사지에 꽁꽁 숨겨 놓은 사나운 바람을 꺼내줘 . 둘 빼기 하나는 하나, 속삭이면 바람은 돌이라 하네 하나 더하기 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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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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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당신의 진심입니까?/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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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는 지붕과 함께 배운다 빗방울처럼 정교하게 오늘은 내가 누구입니까? 사망한 사람은 무엇으로 부릅니까? 비가 내리면 . 낯선 입모양으로 지낸다 당신은 언제 스스로일까요? 부디 당신의 영혼을 말해주십시오 지붕은 새와 구름과 의문문 그리고 소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 누구든 외롭다는 말은 나중에 배운다 시신으로서 사전도 없이 당신은 마침내 입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매우 반복합니다 . 지붕이 빗방울들을 하나하나 깨닫듯이 진심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지금 발음한다 모국어가 없이 태어난 사람의 타오르는 입술로 . 나는 시체의 진심에 몰두할 때가 있다 이상한 입모양을 하고 있다 . 오늘은 당신의 진심입니까?/이장욱 .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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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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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사랑의 자리/정은숙
그곳에 앉았을 때 갈색으로 바람을 채색하는 너의 머리카락이 보인다 까만 구름을 불러오는 너의 눈동자가 보인다 . 춤추는 것은 너의 마음 나는 그 끝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 마음 처마 밑에 앉았을 때 비보다 먼저 찾아와 몸을 적시는 검은 우울이 눈을 가린다 . 이제 보이지 않았으면 나 역시 가볍게 살고 싶어 눈썹 위로 뛰어오르는 투명한 물고기의 등에서 얼굴로 흐르는 물이 마르기 전에 다시 다른 자리에서 너를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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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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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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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시를 쓸 때/오규원
남들이 시를 쓸 때/오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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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리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門牌도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지친 잠은 내 옆에 쓰러지자마자 몸을 웅크리고 가느다랗게 코를 곤다. 나의 잠은 어디 있는가. 나의 잠은 방문까지 왔다가 되돌아가는지 방 밖에서는 가끔 모래알 허물어지는 소리만 보내온다. 남들이 詩를 쓸 때 나도 詩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詩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 잠이 오지 않는다. 오지 않는 나의 잠을 누가 대신 자는가. 남의 잠은 잠의 평화이고 나의 잠은 잠의 죽음이라고 남의 잠은 잠의 꿈이고 나의 잠은 잠의 현실이라고 나의 잠은 나를 위해 꺼이 꺼이 울면서 어디로 갔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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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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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의 발걸음/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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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무말 열두 마리를 끌고 가는 것이 삶이라면 나무말 열두 마리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은 죽음이다 . 낮과 밤의 발걸음/최승호 .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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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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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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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 내가 하는 말은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기도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기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참 들었어요 .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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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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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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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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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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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속의 여인/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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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n the Sun / Edward Hopper
  가끔씩 나는 그 방에 간다 밤 새 나를 지우고 비워 낸 뒤 날카로운 아침 햇살에 묶여 차마 일어날 용기가 없어 눈을 감는다마지막 그날까지 이 고장난 기계를 끌고 밥을 먹이고 머리를 감기고 지겨운 양치질을 몇 번 더 해야 하나? 이를 닦다가 길을 걷다가도, 문득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그 방을 그려 본다 끊어진 손목, 피멍 든 손으로 문을 두드린다 당신, 너무 빨리 왔군.
언제든지 원할 때 떠날 수 있다는 게 내 삶의 유일한 위안이었지
묘비명을 다시 고쳐쓰고 충분히 지루했던 40년 생애 동안 나를 속였던 수많은 방들을 건너가, 그 방에 간다 구겨진 몸을 담았던 껍질들을 벗으면 도시의 공허가 칼처럼 내리꽂히는 방.
자신의 그림자에 갇힌 여자의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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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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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그날 같았네/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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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나를 바라보았다지만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네 . 뒤에 두고 온 것들이 너무 많았네 해 지는 쪽을 등지고 않은 사람처럼 그 뒤에 아득한 빛들이 당신을 비추고 있었네 . 옛일을 회상하고 싶을 때에 당신은 입을 다물었고 옛일을 재생하고 싶을 때에 비로소 입을 열었네 . 비는 눈앞에서 내렸고 눈은 뒤편에서 내렸네 여느 날과 같이 해는 지고 그러나 노을은 지지 않았네 . 당신은 둥지를 튼 후 알을 낳아두고는 아가리를 막고 날아가 버린 참새벌 같았고 그러므로 나는 마개를 밀고 나오려 하는 애벌레와 같았네 . 나 또한 당신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당신의 뒤쪽을 음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 무엇을 해도 오래전에 해보았던 일이었네 당신의 야유조차도 귀에 익었네 검은 먹지를 댄 것처럼 오늘은 어제 같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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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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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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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등에 이고 사는 것들은 모두 달로 가야 한다 나뭇잎 위에 앉아 있는 달팽이를 본 적이 있는가 배경으로 언제나 달이 뜬다 집이 아니야 짐이야 그 짐 속에는 아버지가 주무시고 어머니가 손톱을 깎으신다 동생은 수학 문제를 풀고 아버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외출하셨으면 좋겠어요 꿈속에서 나는 자주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었다 제발 나타나지 마세요 아버지 자꾸 죽어요 내 집이 피로 붉어요 얘야 노을이 져야 달로 간다 나는 너에게 가르쳐주고 싶다 달이 창백한 건 일찍 나왔기 때문이 아니야 달은 출혈의 산물이야 . 내가 얼마나 피 흘리고서야 잔잔히 떠오르겠습니까 . 달팽이/진은영 .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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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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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밤/강소천
눈빛도 희고 달빛도 희고
마을도 그림 같고 집도 그림 같고
눈빛도 화안하고 달빛도 화안하고
누가 이런 그림 속에 나를 그려놓았나?
새하얀 밤/강소천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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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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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는 열매/김상혁
다만 종려나무 숲은 우리가 기억하게 될 풍경이었고 나는 맨발로 나무를 차며 내 발등을 내버려 두었다
집에 돌아간다는 건 그냥 집으로 걸어가는 것이라고 이런 말은 오십 년 후에도 숲을 한 그루씩 흔들 것이다
아무도 하찮은 높이에다 자기를 망치는 슬픔을 달지 않는다 폭우에 창을 열어 둔 검은 방 같은 것을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았던 너를 사랑하던 내 젊음이 하루씩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를
자루 속 다뇨증의 여름이 비틀고 있다 감희 꺼내 보지 못한 많은 잎사귀였을 것
더러운 물이 하르는 자루를 꼭대기에 걸어 둔다 도시에서 열매를 보러온 노인을 슬프게 하려고
올라가는 열매/김상혁
#시를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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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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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汽車/정지용
우리들의 汽車는아지랑이 남실거리는 섬나라 봄날 왼 하로를 익살스런 마드로스 파이프로 피우며 간 단 다. 우리들의 汽車는느으릿 느으릿 유월소 걸어가듯 걸어 간 단 다. . 우리들의 汽車는 노오란 배추꽃 비탈길 새로 헐레벌덕어리며 지나 간 단 다. . 나는 언제든지 슬프기는 슬프다마마음만은 가벼워 나는 車窓에 기댄 대로 회파람이나 날리쟈. . 먼 데 산이 軍馬처럼 뛰여오고가까운 데 수풀이 바람처럼 불려가고 유리판을 펼친 듯, 瀨戶內海 퍼언한 물. 물. 물. 물. 손가락을 담그면 葡萄빛이 들으렸다. . 입술을 적시면 炭山水처럼 끓으렸다. 복스런 돛폭에 바람을 안고 뭇배가 팽이 처럼 밀려가 다간, 나비가 되여 날러간다. . 나는 車窓에 기댄 대로 옥토끼처럼 고마운 잠이나 드쟈. 靑만틀 깃자락에 마담 R의 고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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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y-mediacus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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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정란
귓속에서 소리가 새어나온다 전혀 들어보지 못한 소리들이다 들리지 않는 의미는 무슨 빛깔일까 만지작거리는데 소리 속에서 귀가 쏟아져나온다; 들리지 않는 의미는 의미가 아니다 . 오렌지색 그림자를 새로 샀다 입을 때마다 그림자가 벗겨지는 원피스를 입으면서 그림자를 솎아 낸다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그림자의 보관법에 대해 연구한다 부스러기 그림자는 애완견이 깨끗이 핥아 먹는다; 입어보지 못한 그림자는 그림자가 아니다 . 습관적으로 물의 입에 식물을 넣어준다 식물은 습관적으로 몸을 키우면서 꽃으로 물의 권태를 수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물에게 꽃을 빼앗기는 시간은 시간이 아니다 . 피와 공기 사이를 갈라놓는다 거기까지만, 거기까지만 살색으로 규정된 습관엔 영혼이 없다; 영혼엔 모양이 없다, 사상이 없다 . 높은 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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