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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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 재개업
영업난으로 지난 2022년 8월 갑작스레 문을 닫았던 홍콩 Central 지역의 딤섬 맛집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가 올해 4월 1일자로 재개업하여 데일리홍콩이 찾았다. 104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는 딤섬을 옛날식 수레로 실어 나르며 손님들이 보면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인기를 끌었다.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 입구의 연향차(蓮香茶, Lin Heung Tea) 2024년 11월 4일 방문한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는 기존처럼 차와 딤섬을 제공하면서 밀크티 같은 쉐이크 종류의 음료와 다양한 종류의 차를 입구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연향루(蓮香樓, Lin Heung Lau)의 분위기는 이전과 다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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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경기아스콘 생산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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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명 주소 TEL (주)협신 경기도 가평군 상면 물골길 84-50 031-585-5511 삼덕산업㈜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오포로 730 031-766-2217 ㈜공영사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산수로 311-32 031-798-9070 방태산업㈜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산수로 311-32 031-798-9075 ㈜산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레로 733 031-576-0576 (주)청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금강로 1281 031-573-1983 ㈜드림아스콘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오정로 12(삼성동) 032-678-0081 ㈜금광특수아스콘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금광오산로 139 031-672-6214 안성산업㈜ 경기도 안성시 보개면 보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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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공중의 화원에서 수확한 빛
그 빛을 몰래 당신의 침대 머리맡에 놓아주었지
남은 빛으로 빚은 새를 공중에 날려보내며 무료를 달랬지
당신은 내내 잠에 빠져 있었지
매우 상냥한 것이 당신의 장점이지만
잠자는 모습은 좀 마녀 같아도 ���지 않을까 싶지
흐린 날이라면 비둘기를 불러 놀았겠지
비둘기는 자기들이 사람족이 다 된 줄 알지
친절하지만 너무 흔해서 새 같지가 않지
비둘기가 아니라면 어느 새가 스스럼없이 내 곁에 올까
하루는 길지 당신은 늘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하지만
그건 잠자는 시간이 길어서 그래
가령 아침의 창가에서 요정이 빛으로 뜨개질을 하는 소리
당신은 한 번도 듣지 못하지 그게 불행까진 아니지만 불운인 셈이지
노파들이 작은 수레로 주워모은 파지들이
오래지 않아 새 종이로 탄생하고 그 종이에
새로운 문장들이 인쇄되는 일은 참 즐겁지
파지 줍는 노파들에게 훈장을 하나씩!
당신도 그리 잠을 오래 잔다면
노파가 될 때 파지를 줍게 될 거야
라고 악담했지만 그런 당신의 모습도 나쁘진 않지
잠이 참 많은 당신이지 마부가 석탄 같은 어둠을 마차에 싣고
뚜벅뚜벅 서쪽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지 못하지만
꼭 봐야 할 건 아니지
잠자면서 잠꼬대를 종달새처럼 지저귈 때
바람 매운 날 이파리가 서로 입술을 부비듯
한껏 내 입술도 부풀지
더 깊은 잠을 자도 돼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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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미리 준비하기!
마태엘- 아니 여긴 너무 이상해! 다른데에 걸어!
소피엘- 그래도 이 크리스마스 리스는 여기 거는게 나아!
마태엘- 날아다니다가 부딛히기라도 하면 장식이 망가진다고!
소피엘- 그럼 네가 조심해서 날아다니면 되겠네!
마태엘- 아냐! 걍 내가 다시 적당한 곳에다 걸게! 차라리 여기에다 겨우살이 풀 뭉치를 달아!
소피엘- 이거? (겨우살이 뭉치를 들어보인다) 나 이거 현관문에 달려고 했어!
마태엘- 아. 그럼 이렇게 가자. 크리스마스 리스를 현관문 밖에 달고 겨우살이 풀 뭉치의 일부를 현관문 안에다 다는거야!
소피엘- 말이 되긴 하네! 그럼 이제 트리 차례야!
마태엘- 우리 집에 트리를 넣을데가 어디있다고 그래? 중앙현관방은 세로로 길게 늘어나긴 하지만 목 매단 시체가 내려오다가 나무에 걸리기라도 하면 줄 푸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거야.
소피엘- 그래서 반지하 무도회장이 있지!
마태엘- 허. 그래서 지금 거기로 내려가서 꾸미게?
소피엘- 아니. 아침이 되면, 내가 워낙.... 큰 소나무를 뽑아서 수레로 끌고왔거든! 수인들이 도와줬지!
마태엘- 오.... 그럼 뭐... 됐다고 치자.
(두 소년들은 계속해서 저택을 돌아다니며 현관, 복도 각방 다락방, 지하실 반지하 무도회장, 왼쪽 복도까지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달기 시작한다. 아직 잠이 오지 않은 인간 소년은 자신의 친구와 함께 장식들의 위치를 결정하고 장식을 달거나 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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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7 장
이사야 47 장
(사47:1-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국가들을 다 통치한다. 바벨론은 한 때 도구로 선택되어 하나님이 범죄한 국가들을 징계할 때 사용되었다. 처음 신생국가일 때는 ‘처녀 딸’처럼 순수한 면이 있었다. 바벨론은 국가가 확장되고 국력이 강해지자 처녀다운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타락했다. 범죄국가들을 징벌할 때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마치 다윗이 법궤를 옮길 때 하나님이 정한대로 하지 않고(고핫 자손의 어깨에 메어야 한다) 블레셋 사람들의 방법대로 소 수레로 옮긴 것과 같다. 하나님이 법궤 이동을 멈춰 세웠고, 허락 없이 법궤를 만진 웃사(청년)를 죽였다. 아무리 좋은 일, 급한 일도 정해진 법대로 행해야 한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법(자연법)을 버렸다(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 바벨론은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다. 이 일을 자신이 행했다는 것이다(8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하나님은 결코 영광을 다른 존재와 나누지 않는다.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사 42:8).
바벨론에 대한 심판
하나님은 제국을 건설한 바벨론을 성공의 자리에서 땅에 떨어뜨렸다(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한 때는 여왕의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는 노예의 신세가 되었다(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 하나님께서 이들을 무섭게 징벌하실 것이다(3 내가 보���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바벨론은 국가들을 징벌하고 구원한 일이 자신들이 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하나님이 바벨론이 범한 범죄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하나님의 도구로 일할 때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뜻대로 행했다는 것이다(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 두 번째 징벌의 도구로 쓰임 받은 후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 챘다는 것이다(8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 이들은 하나님의 개입 없이도 스스로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8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 하나님은 이들의 교만을 한 순간에 꺽어 버리겠다고 말했다(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바벨론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가 감춰졌다고 생각했다(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 하나님은 이들의 죄에 대해서 낱낱이 알고 있었고, 예상치 못한 때에 갑짝스런 파멸로 징벌할 것이다(11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 하나님은 바벨론이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별들)과 점치는 자들(우상숭배자)을 의지해서 파멸에서 구원 받으려 하겠지만 결단코 구원할 수 없다고 말했다(13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바벨론은 신(神)들 이외에도 이웃 나라들의 도움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
1 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와서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일컬음을 받지 못할 것임이라 2 맷돌을 가지고 가루를 갈고 너울을 벗으며 치마를 걷어 다리를 드러내고 강을 건너라 3 네 속살이 드러나고 네 부끄러운 것이 보일 것이라 내가 보복하되 사람을 아끼지 아니하리라 4 우리의 구원자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니라 5 딸 갈대아여 잠잠히 앉으라 흑암으로 들어가라 네가 다시는 여러 왕국의 여주인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하리라 6 전에 내가 내 백성에게 노하여 내 기업을 욕되게 하여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주었거늘 네가 그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늙은이에게 네 멍에를 심히 무겁게 메우며 7 말하기를 내가 영영히 여주인이 되리라 하고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지도 아니하며 그들의 종말도 생각하지 아니하였도다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갑자기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주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11 재앙이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1)그 근원을 알지 못할 것이며 손해가 네게 이르리라 그러나 이를 물리칠 능력이 없을 것이며 파멸이 홀연히 네게 임하리라 그러나 네가 알지 못할 것이니라 12 이제 너는 젊어서부터 힘쓰던 주문과 많은 주술을 가지고 맞서 보라 혹시 유익을 얻을 수 있을는지, 혹시 놀라게 할 수 있을는지, 13 네가 많은 계략으로 말��암아 피곤하게 되었도다 하늘을 살피는 자와 별을 보는 자와 초하룻날에 예고하는 자들에게 일어나 네게 임할 그 일에서 너를 구원하게 하여 보라 14 보라 그들은 초개 같아서 불에 타리니 그 불꽃의 세력에서 스스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 이 불은 덥게 할 숯불이 아니요 그 앞에 앉을 만한 불도 아니니라 15 네가 같이 힘쓰던 자들이 네게 이같이 되리니 어려서부터 너와 함께 장사하던 자들이 각기 제 길로 흩어지고 너를 구원할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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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 3. 큰 장
번뇌의 화살을 뽑아버리고 거리낌없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평안에 돌아간 자가 될 것이다
01) 출가
405. 눈이 있는 사람은 어째서 출가를 했는지, 그는 무엇을 생각한 끝에 출가를 선택했는지, 그의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하리라. 406.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고 생각해 출가한 것이다. 407. 출가한 다음에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멈추었다. 말로 짓는 악행도 버리고 아주 깨끗한 생활을 하였다. 408. 눈 뜬 사람은 마가다국의 서울 산으로 둘러싸인 왕사성으로 갔다. 수려한 모습을 가진 그는 탁발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다. 註) 왕사성의 현재 이름은 라지기르Rajigir로, 산 위에는 아직도 돌로 쌓은 옛 성곽의 일부가 남아 있다. 409. 마가다 왕 빔비사라는, 높은 다락 위에서 그를 보았다. 수려한 모습을 가진 그를 보고 신하들에게 말했다. 410. “그대들은 저 사람을 보아라. 아름답고 건장하고 깨끗할 뿐 아니라 , 당당하게 앞만을 본다. 411. 그는 눈을 아래에 두고 정신을 모으고 있다. 저 사람은 천한 집 출신이 아닌 것 같다. 그대들이여 뛰어가 그를 따르라.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가.“ 412. 왕의 신하들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저 수행자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는 어디에 사는 것일까?’하면서. 413. 그는 모든 감각을 억제하고 잘 다스리고 바르게 깨닫고 조심하면서 집집마다 음식을 빌어 잠깐 동안에 바리때를 채웠다. 414. 거룩한 분은 탁발을 끝내고 그 도시 밖으로 나와 판다바 산으로 향했다. 아마 그는 그곳에 살고 있는 모양이다. 註) 판다바 산은 왕사성 둘레에 있는 다섯 산의 하나. 415. 고타마가 자기의 처소에 가까이 이른 것을 보자, 왕의 신하들은 그에게로 가까이 갔다. 그리고 한 신하는 왕궁으로 돌아가 왕에게 사뢰었다. 416. “대왕이시여, 그 수행자는 판다바 산 앞쪽에 있는 굴 속에 호랑이나 황소처럼, 그리고 사자처럼 앉아 있습니다.” 417. 신하의 말을 듣자 빔비사라 왕은 화려한 수레를 타고 판다바 산으로 길을 재촉했다. 418. 왕은 수레로 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간 뒤 수레에서 내려 걸어 올라가 그 곁에 앉았다. 419. 왕은 기뻐하면서 인사를 나눈 후 이렇게 말했다. 420. “당신은 젊음이 넘치는 인생의 봄입니다. 용모도 수려한 것으로 보아 귀한 왕족 태생인 것 같습니다. 421. 코끼리 떼를 앞세운 날쌘 군대를 당신께 선물로 드리겠으니 그것을 받아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태생을 알고 계십시오. 422. “왕이여, 저쪽 히말리야 기슭에 한 정직한 민족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코살라국의 주민으로 부와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423. 성은 ‘태양의 후예’라 하고, 종족은 ‘석가족’이라 합니다. 왕이여, 나는 그런 집에서 출가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가 위해서가 아닙니다. 424.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출가는 평화롭다는 것을 알아 힘써 정진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02) 정진
425. 네란자라 강 기슭에서 평안을 얻기 위해 힘써 수행하고 명상하는 나에게, 註) 네란자라 강은 한역으로는 니련선하尼蓮禪河, 보드가야 곁으로 흐른다. 426. 악마 나무치가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당신은 여위였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427.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은 천에 하나입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생명이 있어야만 착한 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428. 당신이 베다를 배우는 사람으로서 맑은 수행을 하고 성화에 재물을 올리는 공덕을 쌓는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29. 힘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같은 시를 읊으면서 악마는 눈 뜬 분 곁에 섰다. 430. 악마가 이렇게 말하자, 스승(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게으름뱅이 친구여. 악한 자여! 그대는 세속의 선업을 구해서 여기에 왔지만, 431. 내게는 세속의 선업을 찾아야 할 필요가 털끝만큼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자에게 가서 말하라. 432.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정진하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삶의 집착을 말하는가. 註) 내게는 믿음이 있다는 것은, 열광적이며 미신적인 신앙이 아니라 진리만이 진실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 것을 뜻한다. 433. 힘써 정진하는데서 일어나는 이 바람은 강물도 마르게 할 것이다. 그러니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註) 바람은 고행으로 인해서 생기는 격렬한 호흡을 말한다. 434. 몸의 피가 마르면 쓸개도 가래침도 마를 것이다.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더 밝아지리라. 내 생각과 지혜와 하나된 마음은 더욱더 편안하게 될 것이다. 435. 나는 이토록 큰 고통을 받으면서도 이토록 편안히 살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도 돌아보지 않는다. 보라, 이 마음과 몸의 깨끗함을! 註) ‘큰 고통’은 고행중이므로 큰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한 것. 436.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굶주림, 넷째 군대는 집착이다,. 437.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438.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439. 나무치여, 이것들이 바로 너의 군대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이다.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가 없지만, 용감한 사람은 너를 이겨서 즐거움을 얻는다, 440. 내가 문자풀을 입에 물 것 같은가? 나에게 목숨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굴욕적으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겠다, 註) 문자풀을 입에 문다는 것은 적에게 항복한다는 뜻. 441. 어떤 수행자나 바라문들은 너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덕 있는 사람들조차 갈 길을 알지 못한다. 442. 악마의 군대가 코끼리를 타고 사방을 포위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을 맞아 싸우리라. 나를 이곳에서 물러나게 하지는 못하리라. 443. 신들도 세상 사람도 너의 군대를 꺽을 수 없지만, 나는 지혜를 가지고 그것을 깨뜨린다. 마치 굽지 않은 흙단지를 돌로 깨뜨려 버리듯. 444. 자유롭게 생각하고 굳은 신념을 가지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두루 다닐 것이다. 여러 제자들을 거느리고. 445. 그들은 내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게으르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근심할 것이 없고 욕망이 없는 경지에 도달하리라.“ 446. 악마는 말했다. “우리는 칠년 동안이나 당신을 한걸음 한걸음 따라다녔다. 그러나 항상 조심하고 있는 정각자에게는 뛰어들 틈이 없었다. 447. 까마귀가 기름을 발라 놓은 바위 둘레를 맴돌며 ‘이곳에서 말랑말랑한 것을 얻을 수 없을까. 맛좋은 먹이가 없을까’하며 날아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448. 그곳에서 맛있는 것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까마귀는 날아가 버렸다. 바위에 가까이 가 본 그 까마귀처럼, 우리는 지쳐서 고타마를 떠나간다. 449. 근심에 잠긴 악마의 옆구리에서 비파가 뚝 떨어졌다. 그만 그 야차는 기운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03) 훌륭하게 말해진 것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스승은 여러 사문들을 불렀다. “사문들이여.” “거룩한 스승이시여.” 사문들은 스승께 대답했다. “사문들이여, 네 가지의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져 조금도 잘못되지 않았다.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보아도 결점이 없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그 네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자가 훌륭하게 설한 것만을 말하고 잘못 설해진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리만을 말하고 진리 아닌 것은 말하지 않으며, 좋은 것만 말하고 좋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으며, 진실만을 말하고 거짓된 것은 말하지 않는다고 하자. 이 네 가지 특징을 갖춘 말은 훌륭하게 설해진 말이다. 모든 지혜로운 이들이 보아도 결점이 없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말씀하신 후, 행복한 사람인 스승께서는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450. “훌륭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옳은 말을 하라. 이것이 첫째다. 진리를 말하고 진리 아닌 것은 말하지 말라. 이것이 둘째다. 좋은 말을 하고 좋지 않은 말은 하지 말라. 이것이 셋째다.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말하지 말라. 이것이 넷째다.” 이때 방기사 장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왼쪽 어께에 걸치고 스승이 계신 곳을 향해 합장하고 말했다.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행복한 분이시여.” “어디 말해 보라, 방기사여.” 스승은 말씀하셨다. 방기사 장로는 스승 앞에서 알맞은 시로써 스승을 찬양했다. 451. “‘자기를 괴롭히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는 말만을 하여라.’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잘 설해진 말씀입니다. 452. ‘좋은 말만 하여라.’ 이것은 기꺼이 환영받을 말입니다. 느낌이 나쁜 말을 쓰지 않고 기분 좋은 말만을 하는 것입니다. 453. 진실은 참으로 불멸의 말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법칙입니다. 착한 사람들은 진실에, 사물에, 또는 이치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454. 절대 평화에 이르기 위해서, 고통을 끝내기 위해서, 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은 여러 말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것입니다.“
04) 불을 섬기는 사람 순다리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살라국 순다리카 강변에 살고 계셨다. 마침 그때 바라문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순다리카 강변에서 성스러운 불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라문인 그는 불 공양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두루 살피면서 말했다. “이 남은 음식을 누구에게 줄까?” 그는 멀지 않은 곳에 거룩한 스승이 나무 아래서 머리까지 가사를 둘러쓰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왼손에는 남은 음식을 들고, 바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스승에게 갔다. 스승은 그의 발소리를 듣고 머리에 둘렀던 것을 벗었다.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이 분은 머리를 깍은 분이다. 이 분은 삭발한 분이다’하며 되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설사 머리를 깎았다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바라문일 수도 있다. 가까이 가서 그의 출신을 물어 보리라.’ 그는 스승께 가까이 가서 물었다. “당신의 출신은 무엇입니까?” 스승은 바라문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에게 시로써 말씀하셨다. 註) 여기 이 표현에서처럼 부처님은 삭발을 한 승려의 모습이었다. 머리를 깎는 풍습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수행자들인 자유사상가Suramana, 사문沙門의 공통된 모습이었다.
455. “나는 바라문도 아니고 왕족도 아니오. 나는 바이샤족 사람도 아니고 다른 아무것도 아니오. 나는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깊은 생각을 하며 세상을 두루 다니오. 註) 바이샤족은 인도의 서민. 456. 나는 가사를 걸치고 집이 없으며, 수염과 머리를 깎고 마음을 편안히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다니고 있소. 바라문이여, 당신이 내게 출신을 묻는 것은 당치 않소.“ 457. “바라문이 바라문을 만났을 때는 ‘당신은 바라문이 아닙니까’라고 묻는 법입니다.” “만일 당신이 자신이 바라문이거든 바라문이 아닌 내게 대답하시오. 나는 당신에게 세 구절 스물 넉자로 된 저 사비트리 찬가를 묻겠소.” 註) 사비트리는 ‘리그 베다’에 나오는 시로, 태양신 사비트리에 대한 찬탄의 노래다. 수도승들 사이에는 이 노래가 신성시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침마다 읊어진다. 458. “이 세상에서 성자나 왕족, 바라문이나 일반인들은 무엇 때문에 신에게 여러 가지 공물을 바치는 것입니까?” 스승께서는 대답하셨다. “베다에 통달한 궁극에 이른 사람이 제사 때 어떤 세속인의 공물을 받는다면, 그 제사는 의미있는 것이오.” 459. 바라문이 말했다. “나는 베다에 뛰어난 사람을 이렇게 보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공물은 성취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당신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해 다른 사람이 남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460.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며 의를 구해 왔으니 가까이 와서 물으시오. 아마도 이곳에서 평안하고 성냄이 없고,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지혜로운 사람을 만날 것이오.” 461. “고타마시여, 저는 제사를 즐기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내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대로 알지를 못합니다.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어디에 바치는 공물이 효과가 있는가를.” “그럼 바라문이여, 귀를 기울이시오. 나는 당신에게 진리를 설하리라. 462.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으시오. 불은 온갖 섶에서 일어나는 것. 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믿음이 깊고 부끄러워할 줄 알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행동을 삼가면 고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요. 463. 진실을 가지고 자제하고 모든 감각을 절제하며 베다의 뜻에 통달하고 깨끗이 수행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4.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살아가며, 자기 분수��� 잘 알아 절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곧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5. 탐욕을 떠나 모든 감각을 조용히 다스리고, 달이 라후의 손길에서 벗어나듯이 걸림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註) 라후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귀신의 이름으로, 이 귀신이 달과 해를 삼키기 때문에 월식과 일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466. 집착하는 일 없이 항상 마음을 다스려 내 것이라고 고집했던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을 거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시오.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해야 합니다. 467. 모든 욕망을 버리고 욕심을 이겨 생사의 끝을 알고 평안에 돌아가, 맑고 시원하기가 호수처럼 완전한 사람(如來)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68. 완전한 사람은 평등한 자(과거에 눈이 열린 사람들, 여러 부처님들)와 같고, 평등하지 않은 사람과는 멀리 떨어져 있소. 그는 끝없는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도 저 세상에서도 때가 묻지 않소.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69. 거짓과 교만과 탐욕을 떠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거나 욕망과 성냄이 없고, 마음이 고요하여 근심의 때를 버린 바라문인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0. 마음의 집착을 끊고 아무 것에도 붙들리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걸림이 없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1. 마음을 한결같이 안정시켜 거센 흐름을 건너고 가장 뛰어난 지혜로써 진리를 알고 번뇌의 때를 소멸해 최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2. 생존의 더러움과 거친 말씨도 모두 버렸소. 그는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고, 모든 일에 해탈하였소.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3. 집착을 뛰어넘어 집착함이 없고, 교만한 마음이 가득한 사람들 가운데 있으면서 교만한 마음이 없으며, 밭이나 땅과 함께 괴로움을 잘 알고 있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註) 밭이나 땅은 고통이 생기는 인연, 다시 말해 업과 번뇌를 가리킨다. 474. 욕망에 끌리지 않고 진리를 찾아 멀리 떠나고 남들이 가르치는 다른 견해를 초월하여 아무 것에도 걸리지 않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5. 모든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이미 그것으로 인한 고통이 존재하지 않소. 평안에 돌아가 집착을 버리고 해탈한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6. 번뇌의 속박과 이 세상에 태어남이 멸해 버린 궁극의 경지를 보고 육체의 욕망을 남김없이 끊고, 맑고 고요해서 티가 없이 투명하고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7. 자기 자신을 깊이 관찰하고 마음이 안정되고 신체가 곧아 스스로 편히 머물러 동요되지 않으며, 마음이 거칠지 않고 의혹이 없는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 합니다. 478.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장애가 아무 것도 없고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있으며 마지막 인간의 몸을 가지고 더 없이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 이것만으로도 사람은 깨끗해진다 ― 완전한 사람은 공양을 받을 만합니다. 479. “당신과 같은 베다에 뛰어난 사람을 만났으니, 저의 공양은 참 공양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신께서 증인이 되어 살펴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원컨데 저의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의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480.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법이 아닙니다. 시를 읊어 얻은 것을 눈 뜬 사람들은 받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눈 뜬 사람들의 생활 태도입니다. 481. 완전에 이른 사람, 위대한 성자, 번뇌의 더러움을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시킨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바치시오. 그것이야말로 공덕을 바라는 이의 복밭이오.“ 482. “스승이시여! 보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제사 때 찾아가 공양을 드릴 사람을, 당신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싶습니다.” 483. “격정을 떠나 마음에 흐림이 없고,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 근심을 없앤 사람, 484. 한계의 끝(번뇌)을 눌러 생사를 다 알고 성인의 덕을 몸에 갖춘 그러한 성인이 제사 때 찾아오면 485. 찌푸리지 말고 그에게 합장하여 인사하시오. 음식을 가지고 그를 공양하시오. 이러한 보시는 뜻을 이루게 하고 많은 보답을 가져올 것이오.“ 486. “눈을 뜬 당신을 공양을 받기에 마땅합니다. 당신은 으뜸가는 복밭이고 온 세상의 보시를 받으실 분입니다. 당신께 드린 공양은 많은 보답을 가져올 것입니다.”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하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가려진 것을 벗겨 주듯이,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켜 주듯이, 그리고 ‘눈 있는 이는 빛을 보리라’하면서 암흑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듯이,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그리하여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러더니 얼마 후에 이 장로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홀로 멀리 떠나 게으르지 않고 힘써 정진한 끝에 더 없이 맑고 깨끗한 행의 궁극을 ―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이 생에서 스스로 깨달아 이를 증명하고 실천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맑고 깨끗한 수행은 이미 완성 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두 번 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순다리카 바라드바자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05) 젊은 마가의 물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스승께서는 왕사성의 수리봉에 계셨다. 그때 마가 청년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곁에 앉아 스승께 말했다. “고타마시여, 저는 보시를 실행하는 시주이며 누구에게나 구하는 대로 베풉니다. 법에 따라 재물을 벌어들이고 법에 의해서 얻은 재물을 한 사람에게도 주고 두 사람에게도 주고 세 사람, 네 사람, 다섯 사람, 여섯 사람, 일곱, 아홉, 열 사람, 스무 사람, 서른, 마흔, 쉰 사람에게도 주고 백 사람에게도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도 나누어줍니다. 고타마시여, 내가 이렇게 주고 이와 같이 바친다면 얼마나 많은 복과 덕을 얻겠습니까?” “젊은이여 그대가 참으로 주고 그와 같이 바친다면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진정으로 나누어주는 시주이거나, 관대하여 구하는 대로 베풀며, 정당하게 재산을 얻고 그 재산을 한 사람 내지는 백 사람에게 나누어 주며, 더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은 많은 복과 덕을 얻게 될 것이다.” 마가 청년은 시로서 물었다,
487. 마가 청년이 말했다. “가사를 입고 집없이 다니는 너그러우신 스승 고타마께 저는 묻겠습니다. 보시를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누구에게 바치는 재물이 가장 깨끗합니까?” 488.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보시를 구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그것을 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어야 한다.” 489. 마가 청년이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마땅히 보시받을 사람이 누구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490. “참으로 집착 없이 세상을 걸어가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자기를 다스리는 완전한 사람,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1. 모든 속박을 끊고 자재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2.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하고 해탈하여 괴로움과 욕심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3. 탐욕과 혐오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번뇌의 더러움에서 벗어나 깨끗한 수행을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4. 거짓도 없고 교만도 없고 탐욕을 떠나 내 것이라고 집착하지도 않고 욕망을 가지지도 않은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5. 참으로 온갖 집착에 붙잡히지 않고 이미 거센 흐름을 건너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이 다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6.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떠한 세상에 있어서도 갖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7. 모든 욕망을 버리고 집 없이 다니며 자신을 절제하고 베틀의 북처럼 똑바른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8. 탐욕을 떠나 모든 감각기관을 안정시켜 달이 월식에서 벗어나듯이 붙들리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499. 마음이 평화롭고 탐욕을 떠나 성내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생존의 모든 요소를 버리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0. 생과 사를 남김없이 버리고 모든 의혹을 넘어선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1. 자기를 의지처로 하여 세상을 다니고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탈한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2. ‘이것이 마지막 생존이고 다시는 생을 받지 않는다’라고 이 세상에서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3. 베다를 잘 알고 고요한 마음을 즐기며 생각이 깊고 깨달음을 얻어 많은 사람을 귀의시킨 사람들. 그들에게 때때로 공양을 바치라. 복과 덕을 구하는 바라문은 그들을 공양하라. 504. “참으로 제 질문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보시받을 사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 모든 일들을 이 세상에서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당신께서는 이 이치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505. 마가 청년이 다시 말했다. “보시를 구하는 이에게 보시하는 사람, 복과 덕을 구하고 복과 덕을 위해 공양을 바치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 때 완전한 제사가 어떤 것인지를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506. 거룩한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마음을 깨끗이 하라. 제사 지낼 사람이 전념할 일은 오로지 제사뿐이다. 그는 편안히 머물러 사악함을 버린다. 507. 그는 탐욕에서 떠나 사악함을 누르고 한없는 자비심을 일으켜 밤낮으로 게으르지 않아서 그 마음이 사방에 가득 차게 한다.“ 508. “누가 깨끗해지고 해탈하는 것입니까. 누가 붙들려 얽매이는 것입니까, 무엇으로 인해 사람은 스스로 범천계이 이릅니까? 성인이시여, 몰라서 묻는 것이니 일러 주십시오. 스승이시여, 저는 지금 범천을 눈앞에 보았습니다. 진실로 당신은 범천과 같은 분이십니다. 밝은 빛을 지니신 분이여, 어떻게 하면 범천계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509. 스승은 대답하셨다. “마가여,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완전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사람은 보시받는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보시를 베푸는 사람이 이처럼 바르게 제사를 지낸다면 범천계에 태어날 것이다.” 註) 세 가지 조건이란 보시하기 전에 기뻐하고, 보시할 때 마음을 맑게 하고, 보시하고 나서 만족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마가 청년은 스승께 아뢰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06)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왕사성 죽림원에 있는 다람쥐 사육장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에게 한 신이 말했다. “사비야여, 사문이건 바라문이건 그대가 질문을 했을 때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든 그대는 그 밑에서 깨끗한 수행을 닦아라.”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그 신에게 그와 같은 말을 듣고 다음의 여섯 스승을 찾아가 물었다. 즉 푸라나 캇사파, 막카리 고사라, 아지타 케사캄바리, 파쿠다 캇차야나, 베랏티족의 아들인 산자야, 나타족의 아들 니간타 등인데, 그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많은 무리들을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었다.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이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고 숭배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에게 질문을 받았지만, 만족스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도리어 사비야에게 ���문을 했다. 그래서 사비야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사문과 바라문들은 많은 무리를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며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서 질문을 받고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못했다. 뿐만 아니라 화를 내고 혐오와 근심의 빛을 감추지 못했으며, 내게 도리어 반문을 했다.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 세속적인 욕망이나 누릴까 보다.’ 그러다가 사비야는 다시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 계신 사문 고타마도 많은 무리를 이끄는 단체의 스승이며 명성이 있는 교파의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인이라 숭배받고 있다. 고타마를 찾아가 물어봐야겠다.’ 그러면서 사비야는 이런 생각도 했다. ‘여기 있는 사문과 바라문들은 모두 장로이고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출가한 지도 퍽 오래되었다. 그런데도 내게 해답을 주지 못했는데, 어찌 사문 고타마가 내 물음에 똑똑히 답해 줄 수 있을까. 사문 고타마는 아직 젊고 출가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사비야는 또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이 젊다고 해서 그를 우습게 보거나 경멸해서는 안 된다. 그는 젊지만 사문이다. 그에게는 큰 신통과 위력이 있다. 나는 고타마에게 가서 물어보리라,’ 그리하여 사비야는 왕사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죽림원 다람쥐 사육장에 계시는 거룩한 스승을 뵈었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아 스승께 시로써 물었다. 註) 죽림원은 왕사성에 있던 최초의 불교 사원.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께 기증했다.
510. “의문이 있어 질문하고자 이곳이 왔습니다. 저를 위해 그 의문을 풀어 주십시오, 제가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 분명하게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511. 스승은 대답하셨다. “당신은 질문을 하려고 멀리서 왔소. 당신을 위해 그것을 풀어 주리다. 당신이 물으면 차례대로 법에 따라 분명히 대답해 주겠소. 512. 사비야여, 무엇이든지 마음에 있는 것을 물어 보시오. 나는 낱낱이 물음에 대답해 드리리다.“ 이때 사비아는 생각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정말 희한안 일이다. 내가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에게서는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데, 사문 고타마께서는 그 기회를 주시는구나.’ 그는 기뻐하면서 스승께 물었다. 513.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수행자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온화한 사람이라 할 수 잇습니까? 어떤 사람을 자신을 절제한 사람이라 할 수 잇습니까? 어떤 사람을 눈뜬 사람이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이것을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514.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아여, 스스로 도를 닦아 완전한 평화에 이르고 의혹을 뛰어넘고 생과 사를 버리고 청정한 수행을 하며 이 세상에 거듭 태어나지 않는 사람. 그를 ‘수행자’라 합니다. 515. 모든 일에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혀 이 세상 아무 것에도 해를 끼치지 않으며 거센 흐름을 건너 세속의 때에 더렵혀지지 않고 육체적 욕망�� 일어나지 않는 사문. 그를 ‘온화한 사람’이라 합니다. 516.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감각을 잘 다스리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싫어 멀리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양하는 사람, 그는 자기를 ‘절제한 사람’입니다. 517. 모든 시간과 윤회와 목숨이 있는 것의 생과 사, 그 두 가지를 분별하고 티끌을 털어 버리고 깨끗하게 생을 멸한 사람, 그를 ‘눈 뜬 사람’이라 합니다.“ 그때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찬 마음으로 다시 스승께 물었다. 518.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사문이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목욕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용이라고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519. 스승은 말씀하셨다. “사비야여,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안정시키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520.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 선과 악을 버리고 때묻지 않으며,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알고 생과 사를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문’입니다. 521. 온 세상에서 안팎으로 모든 죄악을 씻어 버리고, 시간의 지배를 받는 신과 인간 속에 살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 그를 ‘목욕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522. 세속에 있으면서 어떠한 죄악도 짓지 않고 온갖 얽힘을 풀어 버리고 모든 것을 해탈한 사람, 이런 사람을 ‘용’이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23. 사비야는 물었다. “무엇 때문에 밭의 승리자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현자라 부릅니까. 무엇 때문에 성인이라 부릅니까? 스승이시여, 제 물음에 대답해 주십시오.” 524.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하늘의 밭, 사람의 밭, 범천의 밭 등 모든 밭을 분별하고 모든 밭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밭의 승리자’라고 불립니다. 525. 하늘의 곳간, 사람의 곳간, 범천의 곳간 등 모든 곳간을 분별하고 모든 곳간의 근본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이 바로 그 때문에 ‘뛰어난 사람’이라 불립니다. 526. 안팎으로 흰 것을 알고 맑고 깨끗한 지혜가 있고 흑과 백을 초월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현자’라 불립니다. 註) 흰 것은 선한 것을 말한다. 527. 안팎으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알고 인간과 신의 숭배를 받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성인’이라 불립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28.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달관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 부릅니까. 태생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이시여, 이것들을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529. 스승은 대답하셨다. “사비야여,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베다를 잘 이해해서 감수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그 감수마저 초월한 사람, 그를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0. 안팎으로 이름과 형태의 헛됨을 알아서 모든 병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런 사람을 바로 ‘달관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1. 이 세상에서 모든 죄악을 떠나 지옥의 고통을 초월하고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 힘을 다해 정진하는 현자, 그런 사람을 ‘힘써 노력하는 사람’이라 부릅니다. 532. 안팎으로 집착의 근원인 모든 속박을 잘라버리고 모든 집착의 근원인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그러한 사람을 바로 그 때문에 ‘태생이 좋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환희에 가득 차서 또다시 스승께 물었다. 533.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배움이 깊은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행行이 갖추어진 사람이라 부릅니까. 방랑하는 수행자란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이시여,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534. 스승은 말씀하셨다. “사비야여, 가르침을 듣고 나서는 세상의 옳고 그른 모든 이치를 잘 알고 모든 일을 정복하는 사람, 의혹이 없는 사람, 해탈한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을 ‘배움이 깊은 사람’이라 부릅니다. 535. 모든 더러움과 장애를 끊은 지혜로운 이는 사람의 모태에 들지 않습니다. 세 가지 생각과 더러움을 털어버리고 망상 분별을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을 ‘거룩한 사람’이라 부릅니다. 536.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할 일을 다하고 항상 이치를 알며 어떤 일에도 집착하지 않고 해탈하여 성냄이 없는 사람, 그를 ‘행이 갖추어진 사람’이라 부릅니다. 537. 위로나 아래로, 또는 옆으로나 가운데로 모름지기 괴로움이 생기는 행위를 피하고, 법을 잘 알아 그대로 행동하고, 거짓과 교만한 마음과 탐냄과 성냄과 이름과 형태를 없애버리고, 얻을 것을 얻은 사람, ‘그를 방랑하는 수행자‘라 부릅니다.
그때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스승의 말씀을 듣고 몹시 기뻐하며 환희에 가득 차서 자리에 일어나 옷을 왼쪽 어께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을 찬양하였다. 538. “사문들이 논쟁하고 있는 이름과 문자에 의해 생겨난 예순 세 가지 다른 생각을 이기고, 지혜 많은 분은 거센 흐름을 건너셨습니다.” 註) 예순 세 가지 다른 생각이란 부처님 당시 인도 수행자, 바라문, 사제, 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난 63종의 각기 다른 철학적인 주장들을 일컫는다. 539. 당신은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피안에 이른 분입니다. 당신은 참사람이고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번뇌의 때를 씻어 버린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빛이 있고 이해가 있고 지혜가 많이 있습니다. 괴로움을 없앤 분이시여, 당신은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540. 당신은 저에게 의혹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예배 드립니다. 성인이시여, 성인의 길을 다하신 분이여, 마음이 거칠지 않은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인자하십니다. 541. 제가 품었던 의문을 당신은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눈이 있는 이여, 성인이시여, 참으로 당신은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장애 되는 것이 없습니다. 542. 당신의 번민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당신은 시원스럽고 잘 절제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성실하게 사는 분입니다. 543. 코끼리 중에 왕이시며 위대한 영웅이신 당신께서 말씀하실 때 모든 신들은 나라다와 팝바타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544. 고귀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신들을 포함한 온 세상에서 당신에게 견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545. 당신은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거센 흐름을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네 주십니다. 546. 당신은 속박을 뛰어넘었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자입니다. 547. 아름다운 흰 연꽃이 더러운 물에 물들지 않듯이, 당신은 선과 악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습니다. 용감한 분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사비야는 스승께 예배드립니다.“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거룩한 스승의 두 발에 머리를 숙이고 절을 하며 말했다.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입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보리라’하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들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저는 고타마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사비야여, 과거에 이교도였던 이가 내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고자 한다면, 그는 넉 달 동안 따로 살아야 합니다. 넉 달이 지난 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여러 수행자는 그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해서 수행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사람에 따라 그 기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그러시다면 저는 넉 달이 아니라 네 해 동안이라도 따로 살겠습니다. 그래서 사년이 지나 이제는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 수행자들은 저를 출가시키고 완전한 계율을 받게 하여 수행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방랑하는 수행자 사비야는 그때 바로 스승 앞에서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이 장로 사비야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사비야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07) 바라문 세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스승께서는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앙굿타라파를 두루 다니시다가 아파나라고 하는 앙굿타라파의 한 마을에 들어가셨다.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는 생각했다.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의 큰 무리를 이끌고 다니다가 아파나에 이르렀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 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린다. 그는 스스로 진리를 깨닫고 증명하여 신, 악마, 범천을 포함한 이 세계와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그는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고, 말과 뜻이 잘 갖추어진 가르침과 원만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영광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머리를 닿은 수행자 케니야는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가서 인사를 드렸다.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후에 한쪽에 가 앉았다. 스승께서는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에게 법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용기를 주어 기쁘게 해주셨다. 케니야는 스승께 이같이 말씀드렸다.
“고타마께서는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듣고, 스승은 케니야���게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됩니다. 또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거듭 스승께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또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타마께서는 수행자들과 함께 내일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은 케니야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케니야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당신은 바라문들을 섬기고 있지 않습니까?” 케니야는 세번째로 스승께 여쭈었다. “고타마시여, 수행자의 무리는 많아서 천이백오십 인이나 되며, 또 저는 바라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타마께서는 그들과 함께 오셔서 제가 올리는 음식을 받아 주십시오.” 스승께서는 침묵으로써 승낙하셨다. 케니야는 스승께서 승낙하신 것을 알고 자리에서 떠나 자기의 암자로 갔다, 그리고는 친구와 친척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십시오. 나는 사문 고타마를 그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를 도와 주십시오.” 케니야의 친구와 친척들은 승낙하고, 어떤 이는 솥을 걸고 장작을 패며, 어떤 이는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케니야 자신은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들었다. 이때 세라 바라문이 아파나에 살고 있었는데, 그는 3베다의 깊은 뜻을 깨달아 어휘, 활용론, 음운론, 어원론과 제4의 아타르바 베다와 제5 고담(古譚)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하고, 순세론(順世論)과 위인의 관상에 통달했으며, 삼백 명의 소년에게 베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니야는 세라 바라문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그때 세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산책을 하다가 케니아의 암자에 가까이 가게 되었다.
세라 바라문은 케니야의 암자에 사는 머리를 땋은 친구와 친척들이 어떤 이는 솥을 걸고 장작을 패며, 그릇을 씻고 독에 물을 길어다 붓고 혹은 자리를 준비하며, 케니야는 몸소 천막을 쳐서 식당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여, 당신 아들이 장가라도 가는 것입니까. 또는 딸이 시집이라도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큰 제사가 있습니까. 또는 마가다 왕 세니야 빔비사라가 군대를 이끌고 내일 식사라도 하러 오게 돼 있습니까?” “세라여, 저는 아들을 장가 보내지도 않고 딸을 시집 보내지도 않으며, 또 마가다 왕 세니야 빔비사라를 초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름아니라 제게는 머지않아 큰 공양이 있습니다,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가 석가족의 집에서 출가하여 앙굿타라파를 두루 다니다가 그를 따르는 수행자 천이백오십 인과 함께 아파나에 오셨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이런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 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 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저는 그분을 수행자들과 함께 내일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 뜬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세라여, 나는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케니야여, 당신은 그를 눈 뜬 사람이라고 부릅니까?” “세라여, 나는 그를 눈 뜬 사람이라 부릅니다.”
그때 세라 바라문은 생각했다. ‘눈 뜬 사람이란 이 세상에서 그 목소리를 듣��조차 힘든 일이다. 그런데 우리들 성전 속에 위인의 상이 서른두가지 전해지고 있다. 그것을 갖추고 있는 위인에게는 단 두 가지 길이 있을 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만일 그가 세속의 생활을 한다면, 그는 전륜왕이 되어 정의를 지키는 법왕, 세상의 정복자로서 나라와 백성을 안정시키고 일곱 가지 보배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바퀴, 코끼리, 말, 구슬, 여자, 재산 그리고 지휘자라는 보배가 따를 것이다. 또 그에게는 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어 모두가 용감무쌍하며 적을 쳐부순다. 그는 이 대지를 사해의 끝에 이르기까지 무력을 쓰지 않고 정의로써 정복하고 지배한다. 그러나 그가 만일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면 참사람, 깨달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 온갖 번뇌를 없앨 것이다. 註) 전륜왕은 전세계를 통일한다는 이상적인 황제로, 인도인들 사이에서 예로부터 전해져 오고 있는 인물이다.
세라는 케니야에게 물었다. “케니야여, 그럼 그 참사람, 깨달은 사람인 고타마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케니야는 바른팔을 들어 세라 바라문에게 말했다. “세라여, 저쪽으로 가면 푸른 숲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리하여 세라 바라문은 삼백 명의 소년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그때 세라 바라문은 같이 온 바라문 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천천히 걸어 소리를 내지 말고 따라오너라, 모든 스승은 사자처럼 홀로 거니는 분이며 가까이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사문 고타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너희들은 중간에 끼어 들어서는 안 된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세라 바라문은 거룩하신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다. 스승께 절을 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가 앉았다. 그리고 세라 바라문은 스승의 몸에 서른 두 가지 위인의 상이 있는지 살폈다. 그는 스승의 몸에서 단 두 가지 상을 빼고는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이 거의 갖추어져 있음을 보았다. 그는 그 두 가지 상이 과연 스승께 있는지 없는지 의심되어 ‘눈 뜬 사람’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두 가지란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와 광장설상이었다. 그때 스승은 생각하셨다. ‘이 세라 바라문은 내 몸에 있는 서른두 가지 위인의 상을 거의 보았지만, 단 두 가지는 보지 못했다.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와 광장설이라는 두 위인상이 과연 내게 있는지 없는지 의심하고, 눈 뜬 사람임을 믿지 않는구나.’ 그래서 스승께서는 세라 바라문이 몸의 막 속에 들어 있는 음부를 볼 수 있도록 신통력을 보이셨다. 그리고 혀를 내밀어 혓바닥으로 양쪽 귓속을 아래위로 핥으시고, 양쪽 콧구멍을 아래위로 핥으시며, 또 이마를 핥으셨다. 註) 바라문 세라가 몸의 안에 들어 있는 음부를 볼 수 있도록 신통력을 나타내셨다는 말은 서른두 가지 특징 가운데 제27번째의 특징을 말한 것으로, 부처님의 성기性器는 말의 성기처럼 보통 때는 성기가 몸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 혀로 양쪽 귓속을 아래위로 핥으시고, 양쪽 콧구멍을 아래위로 핥으시며, 또 이마를 핥으셨다는 말은, 서른두 가지 특징 가운데 제12번째의 특징인 ‘혀가 긴 것’을 말한다. 세라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했다. ‘사문 고타마는 서른두 가지 위인상을 완전히 갖추고 계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부처님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나는 늙고 나이가 많아, 스승이나 또는 그의 스승인 바라문들이, 모든 존경받는 사람과 깨친 사람은 자기가 칭찬 받았을 때는 자신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럼, 나는 적당한 시로써 사문 고타마를 그 앞에서 찬양하리라.’ 그래서 세라 바라문은 적당한 시로써 스승의 앞에서 찬양하였다.
548. “스승이시여, 힘이 넘치는 이여, 당신의 몸은 완전하고 빛이 나며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며 이는 아주 하얗습니다. 549. 그리고 훌륭한 사람의 특성은 모두 위인의 상으로서 당신 몸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550. 당신의 눈은 맑고 얼굴도 보기 좋으며 몸집은 크고 단정하며, 수행자들 속에서도 태양처럼 빛납니다. 551. 당신은 보기에도 아름다운 수행자로 피부는 황금빛입니다. 이렇듯 용모가 훌륭한데 어찌 수행자가 되었습니까? 552. 당신은 전륜왕이 되어 군대를 거느리고 천하를 정복하여 잠주부(인도)의 통치자가 되셔야 합니다. 553. 왕족이나 시골의 왕들은 당신께 충성을 맹세할 것입니다. 고타마시여, 왕 중의 왕으로서, 인류의 제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십시오.“ 554. 스승은 대답하셨다. “세라여, 나는 왕이로되 더없는 진리의 왕입니다. 진리로써 바퀴를 굴리는 것입니다. 거꾸로 돌 수 없는 바퀴를.” 555. 세라 바라문이 말했다. “당신은 정각자라고 스스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고타마시여, 당신은 ‘더없는 진리의 왕이고, 진리로써 바퀴를 굴린다’고 말씀하십니다. 556. 그렇다면 누가 당신의 장군입니까. 당신을 이어받을 제자는 누구입니까. 누가 당신의 뒤를 이어 이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까?“ 557. 스승은 대답하셨다. “세라여, 내가 굴린 더없는 진리의 바퀴를 사리풋타가 굴릴 것입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을 따라 나타난 사람입니다. 558. 나는 알아야 할 것을 이미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끊어야 할 것을 이미 끊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 559. 나에 대한 의혹을 푸십시오. 바라문이여. 그리고 나를 믿으십시오. 깨달은 사람들을 만나기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560. 그들(눈 뜬 사람)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들은 보기 어려운 일인데, 나는 바로 그 정각자입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번뇌의 화살을 꺽어 버린 더없이 완벽한 사람입니다. 561. 나는 신성한 사람이며, 비길 데가 없고, 악마의 군대를 물리쳤으며, 모든 적을 항복시켰고, 아무 것에도 두려움 없이 기뻐합니다.“ 562. 세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눈이 있는 이의 말씀을 들으라. 그는 번뇌의 사슬을 끊어 버린 사람이며 위대한 영웅이시다. 마차 사자가 숲 속에서 포효하는 것과 같다. 563. 신성한 분, 비길 데가 없고, 악마의 군대를 물리친 분을 보고 누가 믿지 않을 것인가. 피부가 검은 종족 출신이라도 믿으리라. 564. 따르고 싶은 자는 나를 따르라. 그리고 따르고 싶지 않은 자는 떠나가거라. 나는 뛰어난 지혜를 가진 분에게 출가하겠다. 565. 세라의 제자들이 말했다. “만일 스승님께서 깨달은 분의 가르침을 기뻐하신다면, 저희들도 또한 뛰어난 지혜를 가진 분에게 출가하겠습니다.” 566. 세라가 스승께 말했다. “저희들 삼백 명의 바라문은 합장하고 부탁합니다. 스승이시여, 저희들은 당신 곁에서 깨끗한 수행을 닦겠습니다.” 567. 스승이 말씀하셨다. “세라여, 깨끗한 수행은 잘 설해져 있습니다. 그것은 눈 앞에 당장 열매를 가져옵니다. 도를 닦는 사람이 게으르지 않고 출가하여 깨끗한 수행을 닦는 것은 헛된 일이 아닙니다.”
세라 바라문은 제자들과 함께 스승 곁에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한편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야는 그날 밤이 지나자 자기 암자에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스승께 시간이 된 것을 알렸다. “고타마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 준비가 되었습니다.” 스승은 오전 중에 속옷과 겉옷을 입고 바리때를 드시고 머리를 땋은 수행자 케니아의 암자로 가셨다. 그리고 수행자의 무리와 함께 미리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케니야는 부처님과 수행자들에게 손수 맛좋은 음식을 나르면서 마음껏 들도록 권했다. 그리고 케니야는 스승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바리때에서 손을 떼시자 스승의 발치에 앉았다. 스승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케니아에게 감사의 말씀을 하셨다. 568. “불에 대한 공양은 공양 중에도 가장 으뜸입니다. 사비트리는 베다의 시구 중에서 으뜸이고, 왕은 사람 중에서 으뜸이며, 큰 바다는 모든 강 중에도 으뜸입니다. 註) 불에 대한 공양이란 소마soma라 하여, 바라문 수행자들은 성스런 불을 피운 다음 그 불 속에 음식과 버터 등을 던져서 신에게 바쳤다. 569. 달은 별들 중에서 으뜸이며, 태양은 빛나는 것 중에서 으뜸이고, 수행자들은 복과 덕을 바라고 공양하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으뜸입니다.“
스승은 이러한 시를 읊어 케니야에게 감사의 뜻을 말씀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셨다. 세라 장로는 자기를 따르던 무리들을 떠나 홀로 부지런히 정진하여 마침내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를-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 것인데- 이 생에서 깨달아 증명하고 실천하며 살았다. ‘태어나는 일은 이제 끝났다. 수행은 이미 완성되었다. 할 일을 다 마쳤다. 이제 또 다시 이런 생사를 받지 않는다’라고 깨달았다. 그리하여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와 함께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와 함께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후 세라 장로는 그의 무리들과 함께 스승이 계신 곳으로 갔었다. 그리고 옷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스승께 합장하며 다음의 시로써 여쭈었다.
570. “스승이시여, 눈이 있는 분이시여, 오늘부터 여드레 전에 우리는 당신께 귀의했습니다. 그리고 일곱 밤을 지나 우리는 당신의 가르침 속에서 안정을 얻었습니다. 571. 당신은 깨달은 분이십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시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거센 흐름을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네 주십니다. 572. 당신은 속박을 뛰어넘었고 모든 번뇌의 더러움을 없앴습니다. 당신은 집착하지 않고 두려워 떨지 않는 사자입니다. 573. 이들 삼백 명의 수행자는 합장하고 서 있습니다. 용감한 분이시여, 두 발을 뻗으십시오. 여러 용들에게 스승께 예배 드리도록 하렵니다.“ 註) 용은 수행자를 말한다.
08) 화살
574.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 얼마를 살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삶은 애처롭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575.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찾아 온다.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실로 이런 것이다. 576.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그와 같이 한번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움이 있다. 577. 이를테면 옹기장이가 만든 질그릇이 마침내는 모두 깨어지고 말 듯이 사람의 목숨도 또한 그러하다. 578.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는 굴복하고 만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579.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580. 보라, 친척들이 애타는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사람들은 하나씩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사라져 간다. 581. 이렇듯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이것의 참 모습을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582.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쪽 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583. 어리석음에 붙들려 자기 몸을 해치는 사람이 슬피 울어서 무슨 이익이라도 생긴다면, 지혜로운 사람도 이미 그렇게 했을 것이다. 584. 슬피 우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는 없다. 다만 괴로움만 깊어지고 몸만 여윌 따름이다. 585. 괴로워할수록 몸은 여위고 추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므로 슬피 우는 것은 아무 이득도 없는 일이다. 586. 슬픔을 버리지 않는 사람은 점점 더 괴로워질 뿐이다. 죽은 사람 때문에 우는 것은 슬픔에 사로잡힌 것이다. 587.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또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은가. 588. 사람들이 어떤 것을 희망할지라도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다. 기대에 어긋나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보라, 세상의 저 모습을! 589.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결국은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590.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씀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는 ‘그에게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마라. 591. 집에 불이 난 것을 물로 꺼버리듯, 지혜로운 사람들은 걱정이 생기면 이내 지워 버린다. 마치 바람이 솜털을 날려 버리듯이. 592. 진정한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593.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09) 젊은이 바셋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계셨다. 그때 재산이 많고 유명한 바라문들이 그곳에 많이 살고 있었다. 즉 찬킨 바라문, 타루카 바라문, 폭카라사티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토데야 바라문, 이밖에 저명한 바라문들이었다. 그때 바셋타와 바라드바자라고 하는 두 젊은이가 오랫동안 앉아 있었기 때문에 생긴 피로를 풀기 위해 여기저기 거닐면서 논쟁을 벌였다. “도대체 바라문이란 어떤 것인가?” 바라드바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양쪽이 다 칠 대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혈통에 대해서 지탄이나 비난을 받은 일이 없는 순수한 모태에서 태어난 사람, 이런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다.” 바셋타는 말했다. “계율을 지키며 덕행을 갖추고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이 바라문입니다.” 바라드바자는 바셋타를 설득할 수 없었고, 바셋타도 바라드바자를 설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셋타는 바라드바자에게 말했다. “바라드바자여, 석가족의 아들인 사문 고타마는 출가하여 이곳 잇차낭갈라 숲에 살고 있습니다. 그 고타마에게는 다음과 같은 좋은 평판이 있습니다. 즉 그는 참사람, 깨달은 사람, 지혜와 덕행을 갖춘 사람, 행복한 사람, 세상을 알아 버린 사람, 더없이 완벽한 사람, 사람들을 길들이는 이, 신과 인간의 스승, 눈 뜬 사람, 거룩한 스승이라고 불립니다. 사문 고타마에게 가 봅시다. 거기 가서 그분에게 이것을 물어 봅시다. 그의 대답에 따라 그것을 믿읍시다.” 그들은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절하고 나서, 기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사를 나눈 뒤 한쪽에 앉았다. 바셋타 바라문은 다음과 같은 시로써 스승께 여쭈었다. 594. “우리 두 사람은 3베다의 학자라고 스승도 인정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저는 폭카라삿티의 제자이고 이 사람은 타루카의 제자입니다. 註) 폭카라사티, 타루카 이 두 사람은 모두 잇차낭갈라 마을에 살던 부유한 바라문 사제들이다. 595. 3베다에 씌여 있는 모든 것을 우리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다의 어구와 문법에 통달했고 독송도 스승에게 견줄 만 합니다. 596. 고타마시여 그러한 우리가 태생에 대한 논쟁을 했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고 바라드바자는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눈이 있는 분이시여, 이런 사정임을 알아 주십시오. 597.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눈 뜬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스승께 물으러 온 것입니다. 598. 사람들이 보름달을 향해 합장하고 절하듯이, 세상 사람들은 고타마를 향해 절합니다. 599. 세상의 눈으로 출현하신 고타마께 우리는 묻습니다. 태생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행위에 따라 바라문이 됩니까?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바라문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600. 스승은 대답하셨다. “바셋타여, 그대들을 위해 모든 생물에 대한 구별을 설명해 주리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 것은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1. 풀이나 나무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는 풀이다’라든가 ‘우리는 나무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의 특징은 태생에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2. 또 구더기나 귀뚜라미로부터 개미에 이르는 것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3.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네 발 달린 짐승에게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4. 배로 기어다니는 길이가 긴 것들에도 종류와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5.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사는 물고기들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6. 그리고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새들에도 종류의 구별이 있음을 알아라. 그들의 특징은 태생을 따르고 있는데, 그들의 태생이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이다. 607. 이와 같이 생물에 있어서는 태생에 다른 특징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사람에게는 그 특징이 다를 수 없다. 608. 머리카락이나 머리, 귀, 눈, 코, 입술이나 눈썹에 대해서도. 609. 목이나 어깨, 배, 등, 엉덩이, 가슴, 음부에 대해서도, 610. 손이나 발, 손가락, 손톱, 종아리, 허벅지, 피부색이나 음성에 대해서도, 다른 생물처럼 태생에 따른 특징의 구별이 사람에게는 결코 없다. 611. 몸을 가지고 태어난 생물 사이에는 각기 구별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구별이 없다. 인간 사이에서 구별이 있는 것은 다만 그 이름뿐이다. 612. 인간 가운데서 소 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농부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3. 인간 가운데서 여러 가지 기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기술자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4. 인간 가운데서 사고 파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상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5. 인간 가운데서 남의 일을 해주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고용인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6. 인간 가운데서 훔친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도둑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註)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이란 ‘도둑’과 ‘통치자’를 동시에 말하고 있다. 둘 다 선량한 사람들에게 폭력을 써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617. 인간 가운데서 무술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무사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8. 인간 가운데서 제사 지내는 것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제관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19. 인간 가운데서 마을이나 나라를 차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왕이라 부르지 바라문이라 부르지 않음을 알아라. 바셋타여. 620. 나는 바라문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를 바라문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는 ‘그대여, 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무엇인가 소유물에 걸려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집착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바라문들은 서로 ‘그대여bho'라는 말로 부른다. 초기 불교에서도 이상적인 수행자를 바라문이라고 불렀다. 621. 모든 속박을 끊고 두려움이 없으며, 집착을 초월하고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2. 고삐와 함께 가죽끈과 가죽줄을 끊어 버리고 어리석음을 없애 눈을 뜬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3. 죄 없이 욕을 먹고 구타나 구속을 참고 견디며, 인내력이 있고 마음이 굳센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4. 성내지 않고 도덕을 지키며 계율에 따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몸을 잘 다스려 ‘최후의 몸’에 이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5. 연꽃 위의 이슬처럼, 송곳 끝의 겨자씨처럼, 온갖 욕정에 더럽혀지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송곳 끝의 겨자씨’란, 집착하는 마음이 없음을 말한다. 송곳 끝에 아무리 작은 겨자씨를 올려놓아도 곧 떨어지는 것처럼. 626. 이 세상에서 이미 자기의 고뇌가 소멸된 것을 알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7. 지혜가 깊고 현명하며 온갖 길에 통달해 최고의 목적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8. 재가자나 출가자 누구하고도 섞이지 않고, 집 없이 두루 다니며 욕심이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29. 힘세거나 약한 어느 생물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또 죽이거나 죽이도록 하지도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0. 적의를 품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적의를 품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자와 함께 있으면서도 마음이 온화��며, 집착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1. 겨자씨가 송곳 끝에서 떨어지듯이, 집착과 증오와 오만과 거짓을 털어 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2. 거칠지 않고 사연을 전하는 데 진실한 말을 하며 말로써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3. 이 세상에서 길거나 짧거나, 가늘거나 굵거나,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막론하고 주지 않은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갖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4. 현세도 내세도 바라지 않고, 욕심도 걸림도 없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5. 집착이 없고 완전히 깨달아 의혹이 없고 불사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6. 이 세상의 재앙이나 복과 덕,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근심과 티가 없이 깨끗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7. 구름에 가리지 않은 달처럼, 깨끗하고 맑아 환락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8. 이 힘들고 어려운 길, 윤회와 헤맴을 넘어 피안에 이르고, 깊이 명상하여 욕망도 집착도 없이 마음이 고요한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39. 이 세상에 대한 욕망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0.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을 끊고 집을 떠나 두루 다니며 집착의 생활을 끝낸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1. 인간의 인연을 끊고 천상의 인연도 끊어 모든 굴레를 벗어 던진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註) ‘모든 굴레’는 시간의 지배를 벗어나지 못한 것을 말한다. 642. 쾌락도 쾌락 아닌 것도 버리고, 맑고 께끗해져 얽매임 없이 세상을 이겨낸 영웅,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3. 모든 살아 있는 생물의 생사를 알고 집착 없이 행복한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4. 신도 귀신(간다르바)도 인간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 번뇌의 더러움을 씻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5.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단 하나의 물건도 갖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6. 황소처럼 늠름하고 기품 있는 영웅, 위대한 성자, 도의 승리자, 욕망 없는 사람, 목욕하는 사람, 깨달은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7. 삶의 모든 일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보며 생존을 멸해버린 사람,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부른다. 648. 세상에서 쓰는 이름이나 성은 부르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이 태어나는 그때마다 임시로 붙여지는 것이다. 649. 이름이나 성이 임시로 붙여진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그릇된 선입견을 오래 가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은 말한다, ‘태생에 의해서 바라문이 된다’고 650.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되기도 하고, 행위로 인해 바라문이 안 되기도 하는 것이다. 651. 행위에 의해 농부가 되고, 행위에 의해 기술자가 되며, 행위에 의해 상인이 되고, 또한 행위에 의해 고용인이 된다. 652.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행위에 의해 무사가 되며, 행위에 의해 제관이 되고, 행위에 의해 왕이 된다. 653. 현자는 이와 같이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緣起)’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 654. 세상은 행위에 의해 존재하며, 사람들도 행위에 의해서 존재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행위에 매여 있다. 마치 달리는 수레바퀴가 축에 매여 있듯이. 655. 고행과 청정한 수행과 감각의 절제와 자제, 이것으로 바라문이 된다. 이것이 으뜸가는 바라문이다. 656. 지식인들이 볼 때 3베다를 갖추고 마음이 편안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사람이 범천이며 제석천이다. 바셋타여, 이러한 줄을 알아라.“
이와 같은 말씀을 듣고 바셋타와 바라드바자 청년은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덮인 것을 벗겨 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또는 ’눈이 있는 사람은 빛을 볼 것이다’ 하고 어둠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당신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희는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당신 고타마께서는 저희들을 재가 수행자로서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이 다할 때까지 귀의하겠습니다.”
10)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야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수행자 코칼리야는 스승께 가가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쪽으로 가서 앉아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註)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운데 그 중추 역할을 하던 두 제자를 가리킨다. 이말을 들은 스승은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일렀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거듭 말씀드렸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은 다시 수행자 코칼리야에게 말씀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를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코칼리야는 세 번째로 말씀드렸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저는 스승을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사리풋타와 목갈라나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나쁜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세 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코칼리야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그들을 믿고 사랑하여라. 그들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러자 수행자 코칼리야는 자리에서 일어나 스승께 절하고 바른쪽으로 돌아 나가버렸다. 그는 나가자마자 온몸에 겨자씨만한 종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겨자싸만하던 것이 차차 팥알만해졌다. 팥알만하던 것이 또 콩알만해졌다. 그러더니 대추씨만해지고 대추알만해졌다. 이와같이 감자만해지고 덜 익은 모과 열매만해지고 익은 모과만하던 것이 마침내 터져서 고름과 피가 되어 흘렀다. 코칼리아는 마침내 그 병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지게 되었다. 그때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한밤중이 지났을 무렵, 아름다운 얼굴로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스승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린 뒤, 한쪽에 서서 말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죽었습니다. 거룩하신 스승이시여, 수행자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죽어서 홍련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의 주인인 범천은 이렇게 말하며 스승께 절하고 바른편으로 돌아 사라졌다. 날이 밝자 스승은 여러 수행자에게, 어젯밤에 범천이 왔던 일을 말씀하셨다. 그때 한 수행자가 이렇게 말했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얼마나 됩니까?” “수행자여, 홍련지옥의 수명은 길다, 그것을 몇 년이라든가, 몇백 년, 몇천 년, 몇만 년이라고 헤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룩한 스승이시여, 그렇지만 비유로써 설명하실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다.” 하시면서 스승께서는 말씀하셨다. “수행자여, 이를 테면 코살라국의 말로 되어서 스무 카리카(한 수레분)의 깨가 있는데, 그것을 꺼낸다고 하자. 한 사람이 백 년마다 한 알씩 꺼내는 방법으로 스무 카리카의 깨를 다 꺼낸다하면 그것이 한 압부다지옥이다. 그리고 스무 압부다지옥은 한 니랍부다지옥과 같다. 또 스무 니랍부다지옥은 한 아바바지옥이며, 스무 아바바지옥은 한 아하하지옥, 스무 아하하지옥은 한 아타타지옥이며, 스무 아타타지옥은 한 황련지옥과 같으며, 스무 황련지옥은 한 백수련지옥과 같으며, 스무 백수련지옥은 한 청련지옥, 스무 청련지옥은 한 백련지옥, 스무 백련지옥은 한 홍련지옥에 해당된다. 수행자들이여, 그런데 코칼리야는 사리풋타와 목갈라나에게 적의를 품었기 때문에 홍련지옥에 떨어진 것이다. 행복한 사람인 스승은 다시 말씀을 이으셨다.
657. 사람이 태어날 때는 그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자는 욕설을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신을 찍고 만다. 658. 비난받을 사람을 칭찬하고 또 칭찬해야 할 사람을 비난하는 사람, 그는 입으로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 659. 도박으로 재산을 잃은 자는,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잃는다 하더라도 그 불행이 오히려 적다. 그러나 완전한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의 죄는 아주 무겁다. 註) 자기 자신까지 포함한다는 말은, 노름꾼들은 노름판에 걸 돈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걸어 놓고 노름을 하는 경우가 있음을 뜻한다. 660. 나쁜 말 또는 나쁜 뜻을 가지고 성인을 비방하는 사람은, 십만삼십육 니랍부다지옥과 압부다지옥��� 떨어진다. 661. 거짓말하는 자는 지옥에 떨어진다. 또 했으면서 안 했다고 하는 자도 마찬가지다. 둘 다 똑같이 행동이 비열한 사람들이라, 죽은 후에는 똑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662. 남을 해칠 마음이 없고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사람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그러한 나쁜 과보가 되돌아온다. 바람을 거슬러서 먼지가 날아오는 것처럼. 663. 여러 가지 탐욕에 빠져 믿음도 없고 인색하며 불친절하고 이기적이며 이간질을 하는 사람은 말로써 남을 때리는 것과 같다. 664. 입이 더럽고 불성실하며 천한 자여, 산 것을 죽이고 사악한 행위를 하는 자여, 야비하고 불량하며 덜된 자여,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라. 그대는 지옥에 떨어지리라. 665. 그대는 먼지를 뿌려서 세상을 더럽히고 착한 사람들을 비난하여 죄를 지으며 온갖 나쁜 일을 하여 오랫동안 깊은 구렁(지옥)에 빠진다. 666. 그 어떤 업도 그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반드시 그 임자에게 되돌아온다. 어리석은 자는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저 세상에서 그 괴로운 죄가를 받는다. 667. 지옥에 떨어진 자는 쇠꼬쟁이에 꿰이고, 날카로운 철창에 찔린다. 또한 불에 달군 쇳덩이를 속세에서 지은 업만큼 먹어야 한다. 668. 지옥의 옥졸들은 ‘잡아라!’ ‘때려라!’ 소리칠 뿐 부드러운 말을 하지 않으며 상냥한 얼굴로 대해 주지 않고 의지가 되어 주지 않는다. 지옥에 떨어진 자는 숯불 위에 앉아야 하며 뜨거운 불길 속에 들어가야 한다. 669. 또한 지옥의 옥졸들은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을 철망에 몰아넣은 후 쇠망치로 내려친다. 그리고 새까만 암흑 속에 가두는데, 그 어둠은 안개처럼 끝없이 퍼져 있다. 670. 또 다음에는 펄펄 끓어오르는 가마솥에 들어가야 한다. 오랫동안 그 끓는 가마솥 안에서 삶기면서 몸은 떴다 가라앉았다 한다. 671. 피고름이 가득 찬 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속에서 삶긴다. 그는 어디로 가든지 피고름 때문에 더렵혀진다. 672. 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가마솥이 있어, 죄를 지은 자는 그 안에서 삶긴다. 나오려 해도 붙잡을 것이 없다, 그 솥은 안으로 굽고 둘레가 모두 한결같기 때문이다. 673. 날카로운 칼날로 된 숲이 있어, 지옥에 떨어진 자는 그 속에서 팔다리가 잘린다. 지옥의 옥졸들은 꼬쟁이로 혀를 꿰어 잡아당기면서 괴롭힌다. 674. 또 지옥에 떨어진 자는 예리한 면도칼이 흐르는 베다라니 강에 이른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나쁜 일을 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그곳에 떨어진다. 註) 베다라니 강은 사자死者들이 건너는 강으로, 이 강을 건너서 염라국, 저승에 이르게 된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이 강은 지상 세계와 지하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강으로, 심한 악취를 풍긴다고 한다. 675. 그곳에는 검은 개와 늑대와 여우들이 있어 울부짖는 사람들을 뜯어먹는다. 또 독수리와 까마귀들도 살을 쪼아먹는다. 676. 죄를 지은 자가 살아야 하는 지옥에서의 삶은 실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하고 헛되이 지내지 말아야 한다, 677. 홍련지옥에 떨어진 자의 수명은 수레에 실은 깨알의 수만큼 된다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헤아렸다. 즉 그 햇수는 오조 년과 오천만 년이다. 678. 그 기간 동안은 여기서 말한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 지옥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맑고 깨끗하고 어질고 착한 미덕을 위해 항상 말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11)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679. 아시타 현자는 한낮의 휴식 때에, 깨끗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서른 명이나 되는 신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옷을 벗어 흔들며 제석천을 극구 찬양하는 것을 보았다. 680. 기뻐서 뛰노는 신들을 보고 현자는 조심스레 물었다. “신들이 기뻐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왜 당신들은 옷을 벗어 흔들고 있습니까? 681. 만일 아수라와의 싸움에서 신들이 이기고 아수라가 졌다 할지라도 몸의 털을 곤두세울 만큼 그토록 기뻐할 수는 없을 터인데, 어떤 희귀한 일이 있기에 그처럼 기뻐하고 있습니까? 註) 아수라란 신과 인간의 중간적 존재로, 언제나 신들을 상대로 싸움을 하는 무리를 말한다. 682. 당신들은 소리 높여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을 치면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나는 수미산 꼭대기에 살고 있는 당신들께 묻습니다. 존경하는 분들이여, 제 궁금증을 어서 풀어 주십시오.“ 註) 수미산은 인도의 우주 신화에 나오는 산으로, 이 세계의 중앙에 있다는 가상의 산이다. 683. 신들은 대답했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보배인 저 보살이 모든 사람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 인간 세계에 태어났습니다. 석가족 마을 룸비니 동산에.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註) 여기서 보살이란 미래의 부처를 말한다. 684. 무릇 살아 있는 자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사람, 가장 높은 사람, 황소 같은 사람이, 머지않아 성인들이 모이는 숲에서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용맹스런 사자가 다른 모든 짐승들을 제압하고 포효하듯이.“ 註) 진리의 바퀴를 굴리는 것은 설법을 가리킨다. 685. 현자는 그 말을 듣고 급히 안간 세계로 내려왔다. 그리고 숫도나다 왕의 궁전에 가서 석가족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도 한 번 뵙고 싶습니다.” 註) 숫도나다는 부처님의 아버지이다. 686. 그리하여 석가족의 사람들은 솜씨 좋은 금세공이 만든 황금처럼 반짝이며 행복에 빛나는 거룩한 아기의 얼굴을 아시타 현자에게 보였다. 687. 불꽃처럼 빛나고 하늘의 달처럼 밝으며 구름을 헤치고 비치는 가을 태양처럼 환한 아기를 보고 아시타 현자는 환희에 넘쳐 몹시 기뻐했다. 688. 신들은 천 개의 둥근 고리가 달린 양산을 공중에 펼쳤다. 또 황금자루가 달린 불자를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註) 양산은 왕자의 증표 689. 아시타 현자는 얼굴을 흰 양산으로 가리고 빨간 담요에 싸여 있는 황금 보물 같은 아기를 보고 기뻐서 가슴에 안았다. 690. 관상과 베다에 통달한 그는, 황소같이 훌륭한 석가족의 아기를 안고 그 남다른 상을 살피더니 환호성을 질렀다. “이 아기는 최고로 뛰어난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합니다!” 691. 그러더니 현자는 자기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생각하고,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현자가 우는 것을 보고 석가족의 사람들은 물었다. 692. 석가족의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을 보고 현자는 말했다. “왕자에게 어떤 불길한 상이 있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분은 평범한 상이 아닙니다. 정성껏 길러 주십시오. 693. 이 왕자는 깨달음의 최고 경지에 이를 것입니다. 이 아기는 가장 으뜸가는 맑고 순수함을 볼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그들을 불쌍히 여긴 나머지 진리의 바퀴를 굴릴 것입니다. 그의 청정한 덕행은 널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註) ‘가장 으뜸가는 맑고 순수함’이란, 열반을 의미한다. 694.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내 삶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내게는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는 비할 데 없이 큰 힘을 가진 이분의 가르침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슬퍼하는 것입니다.“ 695. 청정한 수행자 아시타 현자는 석가족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 주고 궁전을 떠나갔다. 696. “네가 나중에 ‘눈 뜬 사람이 깨달음을 펴고 진리의 길을 간다.’는 말을 듣거든, 그때 그곳으로 가서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그 밑에서 청정한 수행을 닦아라.” 697. 미래에 으뜸가는 순수함을 지닌 분이 온다는 것을 예견한 그 현자의 가르침을 받고 나라카는 온갖 선업을 쌓고 자신의 감각을 다스리며 승리자를 기다렸다. 698. 훌륭한 승리자가 진리의 바퀴를 굴린다는 소문을 듣고, 아시타 현자가 일러 준 대로 가장 지혜로운 분을 보고 기뻐하며 거룩한 성인에게 수행의 길을 물었다.(이상으로 서문의 시구는 끝났���) 699. 나라카가 말했다. “아시타가 들려 준 말이 진실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니 고타마시여, 모든 것에 통달하신 당신께 묻겠습니다. 700. 저는 출가하여 탁발의 수행을 쌓으려 하오니, 성자의 경지와 최상의 경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701. 스승은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성자의 경지를 일러 주리라. 이것은 행하기 어렵고 이루기 힘들다. 이제 그대에게 그것을 알려 줄 것이니 마음을 굳게 가지도록 하라. 702.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던지 절을 받던지 한결같은 태도로 대하라 욕을 먹더라도 성내지 말며 절을 받더라도 우쭐대지 말고 무심하라. 703. 동산의 숲 속에 있더라도 불꽃처럼 여러 가지 유혹이 나타난다. 부녀자는 수행자를 유혹한다. 부녀자로 하여금 유혹하지 못하도록 하라. 704. 모든 육체적 즐거움을 버리라. 모든 욕망을 버리라. 약한 것이든 강한 것이든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미워하지 말고 좋아하지도 말라. 705. 그들은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하여, 살아 있는 것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또한 남들에게 죽이게 해서도 안 된다. 706. 보통 사람은 욕망과 탐욕에 집착하지만 눈 있는 사람은 그것을 버리고 진리의 길을 가라. 그리하여 이 세상의 지옥을 벗어나라. 註) ‘이 세상의 지옥’이란 이 세상에서 잘못된 삶을 살면서 모든 것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707. 배를 비우고 음식을 절제하여 욕심을 없애고 탐내지 말라. 욕망을 버리면 욕심이 없어 평안하다. 708. 수행자는 탁발을 끝내고 숲에 돌아와 나무 아래 앉아야 한다. 709. 그리고 정신을 안정시키고 나무 아래에서 명상함으로써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710.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누구에게 식사 초대를 받거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가져올지라도 결코 반겨서 안 된다. 711. 그리고 마을에 이르러서는 이집 저집 조급하게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입을 다물고, 음식을 구하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712. ‘음식을 얻어서 잘 됐다’ ‘얻지 못해서 잘됐다’ 생각하고, 어떤 경우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마치 과일을 주우려고 나무 밑에 간 사람이 과일을 줍거나 줍지 못하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오듯이. 713. 바리때를 손에 들고 돌아다니는 그는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일 것이다. 시주 받은 것이 적다고 가볍게 여기지 말고, 시주한 사람을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 714. 스승은 피안에 이르는 여러 가지 수행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거듭 피안에 이르는 일은 없으나 단번에 이르는 일도 없다.” 715. 윤회의 흐름을 끊은 수행자에게는 집착이 없다. 해야 할 선도, 하지 말아야 할 악도 버렸기 때문에 번뇌가 없다.“ 716. 스승은 다시 말씀 하셨다. “그대에게 최상의 경지를 말하리라. 음식을 얻을 때에는 칼날의 비유를 생각하라.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스스로 배를 비우라. 註) 음식을 얻을 때는 면도날의 비유를 생각하라는 것은, 면도날에 묻은 꿀을 핥을 때는 혀가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시주 물건을 사용할 때 번뇌의 더럽힘이 없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717. 마음이 어두어서는 안 된다.또한 쓸데없이 많은 것을 생각해서도 안 된다. 비린내가 없이, 걸림이 없이, 청정한 수행을 궁극의 의지처로 삼으라. 718. 홀로 있는 일을 배우라. 으뜸가는 수행은 홀로 있는 것이다. 홀로 있어야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다. 719. 그렇게 하면 그는 온 세상에 빛나리라. 욕망을 버리고 명상하고 있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내 제자는 더욱더 겸손해지고 믿음이 깊어질 것이다. 720. 이것을 갚은 강물과 앝은 개울물의 비유로 알라. 바닥이 얕은 개울물은 소리내어 흐르지만, 깊은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르는 법이다. 721. 모자라는 것은 소리를 내지만, 가득 찬 것은 아주 조용하다. 어리석은 자는 물이 반쯤 찬 항아리 같고, 지혜로운 이는 물이 가득 찬 연못과 같다. 722. 사문이 의미 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스스로 알고 법을 설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알고서 많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註) 여기서 사문은 부처님을 가르킨다. 723. 그러나 스스로 알면서도 자제하여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인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성인으로서 성인의 행동을 보인 것이다.“
12) 두 가지 관찰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밧티의 동산에 있는 미가라 장자네 어머니의 누각 안에 계셨다. 그때 거룩한 스승은 달 밝은 보름밤에 수행자의 무리에 둘러싸여 집 밖에 계셨다. 거룩한 스승께서는 묵묵히 앉아있는 수행자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가 있다. 그대들이 거룩하게 출가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여러 가지 진리를 듣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하고 누가 묻거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라고. 그렇다면 그대들이 말하는 두 가지란 무엇이냐고 한다면,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원인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고 ‘이것은 괴로움의 그침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이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수행자들이여,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24. “괴로움을 모르고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며, 괴로움의 그침을 모르고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도 모르는 사람들. 725.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지 못하고, 지혜의 해탈도 얻지 못한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없다. 그들은 생과 사를 계속 받는다. 726. 그러나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괴로움의 그침을 알고 또 괴로움을 그치게 하는 길을 아는 사람들. 727. 그들은 마음의 해탈을 얻고, 지혜의 해탈도 얻는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 버릴 수가 있다. 그들은 생과 사를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업에 따라 생기는 ��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업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거룩한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행복한 스승은 또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728.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은 생존��� 업에 따라 생긴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그 생존의 업을 짓는 어리석은 자는 계속해서 괴로움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것을 분명히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관찰해 업을 짓지 말라.”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무지로 인해서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무지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업業이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선악善惡의 소행을 말하며, 이것이 미래에 선악의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즉 전세前世의 소행에 의하여 현세現世에서 받는 선악의 응보應報를 말한다. 729. “이 삶에서 다른 삶으로 되풀이하여 윤회를 받는 사람들은 그 원인이 무지에 있다. 730. 무지란 기나긴 헤멤인데, 이로 말미암아 오랜 윤회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밝은 지혜에 이른 사람들은 다시는 생존을 받는 일이 없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1. “모든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 물질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732. 괴로움은 물질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욕망을 끊는다면, 괴로움은 없어지고 만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알라. 733.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있는 그대로를 아는 현자나 베다에 통달한 사람들은, 악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식별작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식별 작용을 남김없이 없애 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4. “모든 괴로움은 식별 작용으로 인해 일어난다. 식별 작용이 없어지면 괴로움은 생길 수 없다.” 735. 괴로움은 식별 작용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식별 작용을 고요히 가라앉힌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접촉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접촉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6. “접촉에 얽매이고, 생존의 물결에 휩쓸리며, 그릇된 길에 들어선 사람은 속박을 끊기 어렵다. 737. 그러나 접촉을 잘 알아 평안을 즐기는 사람은, 실로 접촉을 없애 버렸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느낌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느낌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38. “즐겁든, 괴롭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느낀 것은 모두 739. 괴로움인 것을 알고, 없어지고 말 허망한 것을 느낄 때마다 그것의 소멸을 인정하고서야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다. 느낌에 대한 집착을 버렸기 때문에 수행자는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이르게 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망상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0. “망상을 벗 삼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41. 괴로움은 망상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망상을 버리고 망상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집착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2. “집착으로 인해 생존이 생긴다. 생존하는 자는 괴로움을 받는다.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따른다. 이것이 괴로움이 생가는 원인이다. 743. 그러므로 현자��은 집착을 끊고 태어남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잘 알아 다시는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움직임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움직임aramgha은 활동이지만, 여기서는 주로 나쁜 방향 쪽으로 활동하는 것을 일컫는다. 744. “모든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 모든 움직임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745. 괴로움은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움직임을 버리고, 움직임이 없는 상태로 해탈하라. 746. 생존에 대한 집착을 끊고 마음이 고요한 수행자는 윤회를 벗어난다. 그는 다시 생존을 받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47. “모든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서 생긴다. 음식에 대한 집착이 소멸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얺는다. 748. 괴로움은 음식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모든 음식을 잘 알고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749. 모든 번뇌의 때를 없애 버리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바르게 알고, 반성하며 법에 따라 사는 베다의 달인은 어리석은 생존의 고리에 들어가지 않는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서 생긴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마음의 동요를 남김없이 없애버리면, 괴로움은 생기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註) 병이 생기지 않음은 열반, 다시 말해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750. “모든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 모든 마음의 동요가 그치게 되면 괴로움도 생기지 않는다. 註) 집착, 교만, 망견, 번뇌의 동요에서 세속적인 모든 동요가 일어난다. 751. 괴로움은 마음의 동요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마음의 동요를 버리고 모든 물질에 대한 집착을 버려서, 무동요 무집착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구속이 있는 사람은 주저한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그러나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2. “구속이 없는 사람은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이 있는 사람은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전전하며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753. 여러 가지 구속 속에 커다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 수행자는 구속 없고 집착 없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물질적 영역보다도 비물질적 영역이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첫째 관찰이다. ‘비물질적 영역보다 소멸의 영역이 더욱 더 고요하다’ 하는 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4. “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과 비물질적 영역에 사는 모든 생물들은 소멸을 모르기 때문에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 755. 그러나 물질적 영역을 잘 알고 비물질적 영역에 안주하며 소멸의 영역에 이른 사람들은 죽음에서 벗어난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진리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허망하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진리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6. “보라, 신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그 이름과 형태에 집착해 있으면서 ‘이것이야말로 진리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757 어떤 것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자의 생각은 허망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리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758. 그러나 해탈은 허망한 것이 아니다. 성자들은 이것을 진리로 알고 있다. 그들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쾌락에서 벗어나 평안에 들어간 것이다.“ “수행자들이여, 또 다른 방법에 의해서도 두 가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가 하고 누가 묻거든 ‘있다’고 대답하라.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첫째 관찰이다. 신과 악마가 공존하는 세계에서, 사문, 바라문, 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존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생각한 것을, 성자들은 ‘이것은 안락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지혜를 가지고 본다. 이것이 둘째 관찰이다. 이렇게 두 가지를 바르게 관찰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는 수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열매 중 어느 하나를 기대할 수 있다. 즉 이 세상에서 지혜를 얻든가, 또는 번뇌가 남아 있는 이 윤회의 생존에 다시 돌아오지 않든가 하는 것이다.” 스승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759. “존재한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형상, 소리, 향기, 맛, 감촉,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한결같이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것. 760. 이런 것들을 신이나 세상 사람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것이 사라질 때 그들은 그것을 ‘괴로움’이라고 생각한다. 761. 그러나 성인들은 자기 몸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을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바르게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상의 사람들과는 정반대다. 762. 세상 사람들이 ‘기쁨’이라 하는 것을 성자들은 ‘괴로움’이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괴로움’이라고 하는 것을 성자들은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알기 어려운 진리를 보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헤메게 된다. 763 덮여있는 사람에게는 어둠이 있다. 바르게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암흑이 있다. 그러나 선량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펼쳐 보여진다. 마치 볼 수 있는 사람에게 빛이 있는 것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짐승 같은 바보는 진리가 옆에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다. 764. 생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고 생존의 흐름에 떠내려가, 악마의 영토에 들어간 사람은 이 진리를 깨닫기 함들다. 765. 성자들 말고 누가 이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지를 바르게 알면, 번뇌의 때가 묻지 않는 이가 되어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가리라.“ 스승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은 기뻐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이 설법이 있을 때 육십 명의 수행자들은 집착을 없애, 마음이 더러움에서 해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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