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예순여섯번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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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2)”
*편지
엊그제 여긴 눈이 펑펑 내렸어.
빙판길 위에 사람도 차도 공기도 멈춘 것처럼
그렇게 하루가 멈췄어.
거기는 좀 어때.
늘 걱정하고 있지만 먼저 얘기하지 못해서 미안해.
늘 사랑을 받기만 해서 물어볼 줄 모르는 어눌한 사람이라 미안해.
나는 언제나 부족하고 또 미련한 사람이지만, 상관없이 날 사랑해줘서 고마워.
눈이 흩날리는 걸 보니 보고싶어. 뽀득한 눈밟는 소리에도 그리움이 새어나와.
가로등 불빛 사이로 눈송이 그림자를 쫓아도 잡을 수 없는 만큼 그리워.
겨울에도, 시린 만큼 덮을 수 없는 보고픔이 쌓여.
보고싶어.
-Ram
*편지
1. 사실 지난 내 생일에는 황당한 편지를 받았다. 친한 회사 동료이자 나의 첫 말레이시아 친구 Y가 나한테 선물과 편지를 줬는데, 편지를 열어보니 구구절절 좋은 말들이 가득 했었지. 물론 영어였지만 'brave', 'genuine', 'adventure', 'dear'등 빼곡하게 깨알같이 꾹꾹 눌러 쓴 느낌의 편지를 보고 감동했었는데... 읽어보니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지 뭐람. 주어가 Y and I 로 되어있는 거야. 응? Y가 쓴건데 왜 자꾸 Y랑 I라고 되어있지? 싶었는데, 알고보니 Y의 남자친구가 내게 쓴 편지였다. 물론 Y의 남자친구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 Y의 남자친구 시점에서 쓰여 있는 편지였다. 그래서 Y에게 그대로 말했다. '이거 주어가 이상해! 난 네가 쓴 줄 알았는데 S(Y남자친구)가 쓴거였네?' 했더니 돌아온 Y의 말. '아, 원래 나랑 남자친구랑 같이 써서 주려고 했는데, 내 편지보다 S가 편지를 훨씬 더 길게 잘 썼더라고! 그래서 그냥 그 편지만 넣었어!' ... 응? 난 사실 Y의 편지를 받고 싶었는데.. 문화차이라고 생각하기엔 조금은 이상한 사건이였지.. (난 사실 여기서 내 상식선에서 이해가 안가면, 싫어하고 이상하게 생각이 들기 전에 일단 문화차이라고 먼저 생각하는 자기방어습관이 있다) 아무튼 이상한 내 생일기념 편지였다. 내 생애 가장 웃긴 편지였을지도. 심지어 Y와 S는 그 뒤 얼마 안되어 헤어져버렸지 뭐람. 난 헤어진 커플의 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2. 마음속으론 수십 번이고 하고싶은 말들을 되뇌어보지만 막상 글을 적어 내려갈 엄두가 나진 않아.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지.
-Hee
*편지
장난끼가 가득했던 편지. 아주 사소한 것 같았던 편지. 보낸이의 소식에 반가웠던 그 편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각사각 연필로 써내려갔던 속마음은 쓰는이와 열어보는이만 알 수 있었기에 소중했던 그 편지. 조금 더 많은 마음을 담아 보낼걸 하다가도 막상 연필대를 잡으면 어떤 이야기부터 꺼낼까 막막했던 그 편지.
우리 사이를 바삐 오가며 서로의 이야기를 전해주던 편지. 우리 사이의 비밀을 품고 있던 그 편지.
진솔한 마음을 담담히 담아본다.
-Cheol
*편지
( )에게,
서울에 한바탕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수원까지 가야 하는 먼 퇴근길이 어렵지는 않았을까, 하찮은 걱정을 했어. 아직까지도 이번 겨울의 눈을 한차례도 보지 못한 나는 공감할 수 없을 고통인데도. 왜 있잖아, 이미 익숙해진 고통들이 때로 지나치게 아릴 때, 괜히 스스로가 비참해지는 순간들이 있잖아. 어쩌면 길고 긴퇴근길이 잔혹하게 느껴졌을까. 괜찮겠지, 괜찮겠지. 네가 건조한 목소리로 지하철을 타고 가니까 별일도 아니라 말하는 표정을 그려본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지 한참 고민하고 만났는데도 별 시답잖은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지. 행궁동이 어떻게 변했는지, 수원에 새로 생긴 열기구를 타본 적 있냐라든지, 새로 알게 된 아인슈페너 맛집이 어디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멍하니 고개만 끄덕였잖아. 그 허탈한 기억들이오늘 유난히 머릿속을 맴돈다. 가능하다면 그 뒤에 어긋났던 약속을 다시 한 번 잡고 싶어. 내가 그토록 쓸쓸하고 고독하게 만들었던 겨울을 어떻게 났는지. 멀고 먼 거리를 달려와 만나려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까닭도 없이 눈물이 난다며 돌아갔던 길에 내가 밉지는 않았던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1월이 가기 전에, 괜찮은 시간을 알려주면 이번에는 내가 수원으로 갈게.
추운 겨울 부디 따뜻하게 지내길 바라며,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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