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백예순네번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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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01. 메리크리스마스.
02. 스노우볼을 하나 샀어.
버튼을 누르면 불빛도 들어오고 눈발 같은 것도 흩날리고 반짝거리며 조금 서투른 캐롤이 흘러나오는 걸로.
이 정도면 꽤 즐거운 성탄절이잖아.
03. 네가 없이 보내는 두번째 크리스마스야.
케이크는 혹시 몰라 사 둔거야.
저 문을 언제든지 열고 들어올 것만 같아서 나는 늘 뭔가 해두어야 할 것만 같아.
늘 크리스마스는 조금 특별하게 우울해.
04. 그리운 것은 모두 널 향해 있는데,
매듭짓지 못한 일들만 남기고 그렇게 또 해가 저문다.
애꿎은 노을을 담은 사진만이 올 해의 끝이라고 말한다.
아무렴 나는 널 내일도 모레도 좋아할 뿐이니, 새해에도 건강해줘.
-Ram
*크리스마스
1. 더운 여름만 가득한 날들 사이에서 괜시리 따뜻해보이기만 하는 반짝이는 조명들과 빨간색과 초록색, 그리고 하얀색 솜뭉치와 털들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트리는 사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산타에게 선물 받은 것처럼 거실에 트리를 두니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구나 싶었다. 언젠가 천장이 높은 집에 내 키보다 높은 트리를 꾸미고 싶다.
2. 어렴풋이 떠오르는 19살 크리스마스는 파인애플을 안주삼아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키고 친구 자취방에서 밤새 토한 기억 뿐인데. 10년도 더 지난 올해 말레이시아의 크리스마스는 막걸리, 소주, 라거, IPA, 백세주 등 온갖 술을 다 마시고 목청이 터져라 깔깔대고 웃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 지난 몇달간 파티(?)같은 약속했다가 번번히 실패했던 기억이 가득해서 파티라면 질색할 뻔했는데 이제야 파티다운 파티를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3. 하지만 타국에서 만난 인연이라는 끈은 거미줄처럼 너무나도 얇아서 당장 내일부터 영원히 보지 않아도 아쉽지 않은 사람들이 많���, 당장 내일 사라져도 아무렇지도 않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꽤 씁쓸해. 그래서 내일만 보지 말자고해도 아쉽고, 당장 사라지면 눈물만 줄줄 흐를 것 같고, 쌓아둔 추억들이 소중해서 자꾸 꺼내보고 싶은 내 친구들이 보고싶어.
4. 피크닉을 갈까하다 결국 변화를 주자는 생각이 더 커서 머리색을 바꾼 크리스마스. 노란끼는 커녕 갈색의 'ㄱ'자도 보이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정말 까맣게 변한 내 머리가 마음에 든다. 당분간 거울보는 재미와 화장하고 옷입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5. 누군가 마카롱 사진을 올렸는데, 1박스에 10개가 들었대. 2개씩 5개만 먹으면 내년이래. 그렇네. 벌써 5일 밖에 남지 않은 2020년이네.
-Hee
*크리스마스
도착한 기념 물건들을 풀고 전구를 둘둘 둘러주고 캐롤 음악을 잔잔히 틀어두고 분주히 요리를 해두고 향을 피우고
덤덤히 하나 하나 완성해가는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모두에게
-Cheol
*크리스마스
미니멀을 운운하며 가진 짐을 내다 버린 게 고작 한 달 전 일인데 도매시장에 들러 마음에 들지도 않는 조잡한 퀄리티의 크리스마스 장식품들을 억지로 사려니까,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이보다 더한 고역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도 잘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한 일이었지만 이왕 사게 된다면 적어도 십 년은 두고두고 사용해야만 한다는 생각과 다짐으로 꾸역꾸역집어 들었다. 크리스마스 테마에 맞는 테이블 매트, 트리 오너먼트, 꽃, 목화, 심지어는 길에서 얼마든지 주울 수 있는 솔방울까지도. 사실 이것들 모두 코로나 때문에 집 안에만 머물러야 했던 탓이라고 엮으면 그리 못할 짓도 아니긴 했지만 아무래도 스스로당당해질 수 없었던 일인 것만은 분명했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고, 핼러윈이니 크리스마스니 내가 아무런 의미를 두지 못하는 일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일을 좋아하지않으며, 그 때문에 나 자신을 놓쳐버리는 일은 극히 경계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러니 스스로 당당할 수 없었던 크리스마스 준비가아무리 공을 들인다고 해도 잘 될 리 있나. 싸구려 조명이 아무렇게나 칭칭 감긴 크리스마스트리, 작은 장식품 무게조차 견디지못하고 축 처져버린 앙상한 가지가 나를 대변했다. 재미는 합리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지만 살면서 처음 스스로 준비하고 맞이한 크리스마스가 재미와 합리 그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끝나버렸다. 우습게도 그게 코로나로 망쳐진 올해의 전반적인 (그리고 이제는 익숙해진) 분위기와 꼭 닮아서 오히려 안정을 느끼긴 했다.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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