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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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ss9900 · 1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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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없는 사람 사회성 지수 테스트 활용법
사회성 지수 테스트는 개인의 사회적 능력, 감정 인식, 의사소통 기술 등을 평가하는 심리 도구입니다. 사회성 지수 테스트의 개념과 진행 방법, 이를 통한 결과 해석과 활용 방안, 사회성을 높이는 방법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비교 분석합니다. 사회성 없는 사람 사회성 지수 테스트 활용법 사회성 없는 사람 사회성 지수 테스트 활용법사회성 지수 테스트란 무엇인가요사회성 지수 테스트 결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사회성 지수를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사회성 지수 테스트를 활용한 인간관계 개선 방법주요 테스트 플랫폼 높은 사회성 vs 낮은 사회성의 특성 사회성 지수 테스트란 무엇인가요 사회성 지수 테스트는 개인의 사회적 능력을 평가하는 심리학적 도구입니다. 이 테스트는 다음과 같은 주요 목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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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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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개인성, 개인주의 (3/4)
Gesellschaftsstruktur und Semantik, Band 3. Niklas Luhmann
번역 – 조은하, 박상우
Ⅶ.
1800년경 주체성과 개인성의 개념적 전통을 결합할 때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든 간에, 개인적 주체는 사회성의 부족한 양식은 아니다. 그와는 달리 주체는 넉넉함과 풍부함을 발생하는 것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내적 세계와 향상 능력을 표현한다고 간주되었다. 게다가 취향의 판단에 관계된 문제에 대해서 사회의 상층에서의 언급 그룹으로서 타자를 향한 시선들은 반성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것은 마치 저절로 그런 것처럼, 그들이 스스로에게 초월적 확실성을 제공할 때 타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개인적 시선을 제공한다. 하나의 역사적 순간에서, 배제와 포섭이 ‘신성한’ 개인 안에서 함께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이런 이행을 해방으로 그리고 동시에 (자기-통치의) ‘국가’ 안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경험한다.[1] 고독을 인식하는 방식의 연속성은 없다. 그것은 오랜 동안 사회에 대한 반-개념으로 생각되었다. 만일 세계가 아니라면, 사회로부터 주체로서 ‘개인’을 떼어내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고독의 개념은 특별히 이런 목적에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절대성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고독은 사회적 접촉의 부재로서 이해되어 왔다. 사회와 사회성 사이에는 어떤 구별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개인은 어느 정도까지는 유쾌한 상호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또한 사회로부터 그럴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또한 궁정에서 금지되는 것으로 통해 쫓겨날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초기 견해에 따르면 이는 단지 잘못된 삶의 방식, 혹은 자연의 위반이었다. 고독한 삶은 불완전한 것으로 고려되고, 개인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2] 17세기는 여전히 고독을 다시 세계의 유혹에 대한 일종의 도덕적 방어로 생각했고, 또한 animal sociale의 진정한 본성에서의 일탈로 생각했다.[3] “La solitude nous imprime jene sais quoi de funeste” (고독은 우리를 희미한 절망의 개념으로 나타낸다)고 Saint-Evermonde는 쓰고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이것을 경험했었다.[4] 고독은 우울함과 연결되었다.[5] 그리고 다시 한번 평정심을 가지고 고독을 견디는 능력은, 누군가를 독립적으로 만드는 정치적 미덕의 하나다.[6] 종교적 금욕주의와의 연결 혹은 미덕의 옹호는 18세기로의 이행기 동안에 줄어들었고, 고독과 사회성 사이의 차이의 주제에 대한 격화도 그러했다. 그렇지만 우선적으로 이 주제는 여전히 도덕적 도식을 통해서 통제 하에 있을 수 있었다. 앞서의 전통을 여전히 따르는 Marquis d’Argens는, 고독이 인간 존재를 내적 공허에 노출시켜, 그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썼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쁜 동료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보다는 이 공허함을 견디는 것이 나은 일이다. 단지 좋은 동료들만이 고독을 넘어 선호될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단지 좋은 동료만이 그들로부터 개인에게 제공하는 사회성을 사용하기 때문이다.[7] 따라서 불안한, 자기-발생적 개인들의 새로운 인간학은, 도덕적 평가들 그리고 그것에 조응해서 인식되는 사회적 조건들을 쫓아내지 않는다. 단지 그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드러낸다. 18세기말까지도, 여전히 극적 과장을 통해서 사회에 맞서 고독의 균형을 유지하는 문학적 연속성을 발견할 수 있다.[8] Kant의 ‘ungesellige Geselligkeit’ (비사회적 사회성)은 가장 적은 어떤 것조차 바꾸지 않았다. 이런 관점을 전환하는 것(그러나 여전히 같은 도식 안에서)은 오직 Valéry다. ‘Un homme seul est toujours en mauvaise compagnie’ (고독한 남자는 언제나 나쁜 동료들과 함께 있다)[9] 그렇지만 이런 반전은, 단지 도덕적 도식이 더 이상 이 문제의 정식화를 이끌 수 없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그리고 그와 함께 고독이라는 주제가 사라진다. 주체 이론은, 그것이 개인성에 대한 관심을 떠맡고, 더 이상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의해 특성화 된다. 주제는 더 이상 고독과 사회성 사이의 차이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주체로서, ‘개인’은 고독하지 않다. 그리고 그와 나란히 현대 사회에서 이제 가시적이 되는 것은 사회성의 특성을 잃었다. 고독의, 혼자 살아간다는 현상은 이제 누군가의 전기적 내용으로 귀속되고 예를 들어 수줍음, 전형적인 특정 나이의 현상 혹은 억매이지 않는 라이프 스타일 등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 의존해서, 사람들은 사회정치적 개입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혹은 어떻게 ‘혼자 있는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가를 탐색한다.[10] 이런 상황에서 의미의 새로운 창조를 이끄는, 그리고 새로운 형식에서 ‘개인’ 개념을 통합하는 ‘주체’에 대한 고도의 시맨틱은 두 가지 사건의 발생, 즉 칸트주의 철학의 도래와 프랑스 혁명에서 발생한다. 의식의 초월성 가설을 통해, 즉 실증적 의미와 초월적 의미 사이에 차이를 가지고, 칸트주의 철학은 새로운 기반에 인식론과 실천 철학을 놓는다. 그래서 개인은 그들 자신의 내부의 보장을 통해 (그리고 더 이상 소유가 아니라), 즉 자신의 의식 속에 나타나는 세계를 통해 스스로를 성립하는 주체로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은 사회적 질서 (자유, 재산의 소유권, 억압으로부터의 안전)에 대한 일반적 가정의 인식을 이끌었고, 그것은 다시 ‘개인’을 사회가 무엇과 같이 보여야 하는 지를 위한 모델로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정치적으로 스스로를 주장하기 위한 투쟁에서의 모든 관심이 자유로워지고 동등한 무게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카오스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여기서 언급되는 개인이, 더 이상 타인과의 관계에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통해, 그들의 사회적 계층에 따라 규정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개인적 능력의 착취를 보장하는 사회는 더 이상 사회적인 상호작용의 총체로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한 가지에 대해서,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도덕주의가 이 지점에서 형성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모든 가능한 수단에 대한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서, (프랑스의) 왕정 복고기는 자유를 제도화할 수 있는, 혹은 개인성의 제도화라고 거의 말할 수 있는 것의 새로운 형식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실제적 의미는 정치적으로 비결정 상태로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 독일 관념론은 이에 조응하는 철학적 정식화를 제공한다. ‘개인’은, 자아를 통해서 자동적으로 의식하게 되고, 인간 존재로서 실현되는, 세계에 대한 ‘일회성’의 고유한 관계로 이해된다. 세계 (혹은 사회적 관점에서 인류)는 정확하게 ‘개인’ 안에서 ‘자동적으로’ 재현되는 것이다. 그 때부터 ‘개인’을 전체의 일부분, 사회의 일 부분으로 이해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만들건, 이 과정에서 사회가 하는 역할이 무엇이든, 그것의 위치는 자신 안에 그리고 사회의 밖에 위치한다. ‘주체’라는 정식은 이 ��상 어떤 것도 상징화 하지 않는다.
이것은 또한, ‘개인’이 모든 기능 시스템 밖에 ���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참여할 수도, 그것을 구성할 수도 없다. 그것은 더 이상 Kierkegaard가 Hegel에 맞서 주장하게 될 것처럼, ‘객관적 정신’이나, 혹은 정치체의 기능 기관 안에서 나타날 수 없고, 확실힌 재산 소유나 노동의 기반 위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기능 시스템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모든 포섭은, 사회적 시스템에 ‘개인’의 유기체적/심리적 환경에 대한 통합으로서, 기능 시스템의 구조 안에서 재배열되야만 한다. ‘대표’, ‘참여’, 민주주의’ 등등과 같은 낡은 개념들이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되야만 하면서부터, 그들은 전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개념은, 무엇보다 칸트주의 철학의 기초를 형성했던 복합성 배열의 새로운 형태에 그 참신함을 빚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정당화를 위한 철학적 수단이 부족함에도. ‘복합성’은 ‘다양성’의 통일체를 위해서 사용된다. 복합성은 ‘다양성의 통일’을 지시하는 개념이다. 칸트주의 철학은 다양성은 주어진 것이지만, 반대로 통일체는 창조될 필요가 있다고 가정한다.[11] 만일 이것이 모든 통일체에 적용되면, 즉 어떤 것도 그 스스로에 따라 통일체일 수 없다면, 어떤 것도 자연적으로 통일체이지 않다. 이런 가정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그래서 누군가 자연 부여된 동일성의 관념을 포기해야만 한다. 여기에는 인간 존재가 다른 실체들이 그렇듯, 본성상 육체와 영혼에 의해서 개인화 되어 있다는 관념을 포함한다.
일반적으로 인간 존재와 다른 개별체들이 최소한의 공통 특징만을 부여받았고, 그래서 비교 가능한 기반에 대한 개념적 지반은 없다. 그 장소에, 초월적 의식 안에서 개별화된 정체를 구성하는 과정이 들어선다. 초월적 의식에 접근 가능한 어떤 조건 아래서, 이것은 성취된 모든 종합들의 정체성을 보장한다. 만일 모든 인간에게 의식이 부여된다면, 인간 존재는 모든 정체성의 담보자, 그들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 개인성을 규정할 수 있는 유일한 개인이 될 것이다. 그들의 개인성은, Georg Simmel의 적절한 규정의 문장을 인용하자면, ‘자아를 통한 자아의 정상화’[12]이고, 이것에 의존하는 모든 명백한 정체성의 구성이다. 언제나 의미론적 혁신이 이뤄지면서, 이전의 의미론적 발전은 새롭게 재배열된다. Leibniz의 모나드 개념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개인성의 범주가 언제나 개인 자신 속에 내재했다는 사실을 스콜라학파로 거슬러 확인할 수도 있다. 18세기 소설에서 감정과 향유의 점차 개인화된 개념을 언급할 수도 있고, 특히 Nouvelle Héloïse이래로, 이런 경험의 내면으로 자연과 예술의 포섭을 말할 수도 있다.  거기에 더해 Bildung, 자기-도야, ‘내적 형식’에서 ‘세계에 대한 자기-창조된 관계’ 그리고 교육학에서 수반되는 발전의 재구성된 개념들을 가지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함께 묶이고 그래서 강화된다. ‘개인’은 언어, 자기-도야, 그리고 예술을 통해서 세계 안의 표상을 통한 현실을 획득하는 그 자신의 관념이다. 따라서 개인성의 특징은 매우 일반적인 어떤 것이 되어, 모두에게 접근가능하고 동시에 특별한 어떤 것, 즉 관점�� 고유성이 되어, (언제나 선택적이고 주관적으로) 전체로서의 세계를 흡수하고, 스스로 가능한 만큼 세계를 실현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필연적으로 영혼의 불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개인/개인성의 개념적 배치를 통해 이런 불멸성을 보장하려는 관심은 후퇴한다. 개인/개인성의 시맨틱은, 이 단어들의 엄격한 의미에 내재하지 않은 새로운, 강조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더 이상 필멸의 세계에서 불멸성을 약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대신 내적 무한성과 표현을 위한 그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런 ‘개인’은 다른 문제들을 가진다. Tristram Shandy처럼 스스로에 초점을 맞춰, 그것은 세계의 운동보다 느리고, 그래서 불완전하게 죽을 운명이다. 세계에 초점을 맞춰서는, 그것이 가장 복잡한 속성들, 즉 직관을 감당할 수 있지 않는 한, 그것은 스스로로부터 소외되고, 세계에 대해 자신을 잃어버린다. 이런 의미에서 여전이 그것은 1800 경의 ‘미학’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한 개인’의 개념은 이제 그 자체 통일체로 인식하는 ‘다양성’이다. 특정한 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안에서 실현된 세계이고 그래서 타인에게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 그것은, 그리고 이것이 이 관념의 본질적 조건인데, 자유의 영역 안에서만 스스로를 실현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자기-창조적일 수도, 고유할 수도 없다. 이것이 교육과 정치의 제도와 실천에 대한 요구 조건을 만든다. Wilhelm von Humboldt는, (휴머니즘과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결과가 예측하지 못한 현실로 전개될 때까지, 이런 특별한 방향에서 결과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이런 전환은 이론적 문제들에 의해 조건 규정될 수 있고, 그들이 어떤 식으로 일어나건, 그들은 어떤 새로운 것을 가져온다. ‘개인’은 이제 자신의 개인성을 언급함으로써 스스로를 규정할 것이 요구된다. 그것은 모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구별하는 것에 대한 언급에 의한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자기-관찰과 자기-기술은 이제 더 이상 혹은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위치, 소속 그리고 포섭에 기반하지 않는다. ‘개인’은 자기-관찰과 자기-기술에서 개인성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요구된다. 적어도 이것은, 복수의, 통합되지 않는 맥락 안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데 적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3] ‘개인’에게 남아 있는 정체성에 조응하는 유일한 짝은 세계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으로 인식된 ‘개인’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의 어려움에 조우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으로 자신과의 문제를 발생한다. 자아를 통한 세계와 세계를 통한 자아라는 순환적 정의 때문에, ‘개인’은 스스로를 불완전한 존재와 불완전한 과정으로만, 노력과 되어감의 내적 무한성으로서, 잘해야 통합된 조각들인 존재로서만 이해할 수 있다. 낭만주의의 맥락안에서, 이 모든 것이 어쨌건 적용되고, 그래서 더 이상의 관심을 끌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안정화의 맥락이 지적 매력을 상실하자마자, ,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낭만적 감정이 부드럽게 지나가자마자, ‘개인’은 스스로를 다뤄야만 한다. 그는 순환적 세계 관계 안의 자기-결정에 대해 부과되어진 반성의 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문제에 직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는 그에게 가르친다. “갈급을 결코 멈추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 그의 세금은 우리 것이다��
Ⅷ.
효용과 이윤이 서구의 이웃들에게 결정적 요인이었던 반면, 독일인은 미학, 조화로운 전체, 그리고 삶에 너무 많은 강조를 두었을까?[14] 한가지 전통은 역사적 형식의 고유성에 의존하고, 다른 전통은 진보에 대한 진화의 추상적 법칙에 의존하는가? 이것이 이런 다른 전통에 속하는 Max Weber와 Emile Durkheim이 서로에 대해 이해 불가능했던 이유였는가?
자연/문명과 보편/특수의 이항 구별의 지속적 효과를 고려할 때조차도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즉 사회는, 개인들의 구성이라 보여야 한다는 어떤 요구에도 맞서서 스스로를 방어한다.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회 이론, ‘정치 경제학’의 이론은 ‘개인’을 무시하거나 적어도 ‘개인’의 목적에 대한 정확한 결정에 관련한 어떤 지시를 제공하는데 실패했다.[15] 이 과학의 주제적 문제, 사회 자체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같은 일이 일어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자기-실현을 성취하려는 정당한 충동이라는 개념 안에서 ‘개인’에 의해 제공되는 해석은 사회 자체를 비껴 지나가고, 이데올로기로서 반성되어 시맨틱으로 돌아간다. 19세기는 시맨틱과 정치 사이의 접면이 특별히 어지러운 영역에 대해서, 특별한 ‘이데올로기적’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구별했다. 이 수준에서 관념과 원리들은, 자연 혹은 집합적으로 인정된 가치로 어떤 회귀를 적용하는 것 없이, 공격받고 방어되었다.[16] 이 커뮤니케이션의 이데올로기적 수준은 일반적으로 접미사 ‘-ism’으로 언어학적으로 지시되었다. (그것은 ‘ideologism’이 구성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개인주의’는 더 유명한 사례 중 하나를 구성한다.[17] 새롭게 만들어진 개념 ‘개인주의’는 1820년 이후 발생했고, 곧바로 적대적인 그리고 우호적인 평가를 모두 끌어내며, 새로운 조어로 계속해서 사용되었다.[18] 개인주의 자체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요구하고, 옹호하고 거부하는 정치적 참여와 태도로서 개인화 될 수 있다. 이런 층위에서, ‘개인’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문제들을 건드리는 일 없이도, 개인주의를 과도하게 취하는 것의 유용성(공리주의) 혹은 지구적 진화(다윈주의) 혹은 절망적 결과를 지적하는 것이 가능하다. ‘개인’에 대한 추상적 언급은 충분하고, 논쟁은 개인의 관심 자체가 아니라, 자기-이해와 기본적인 사회적(혹은 곧 사회주의적이 되는) 지향 사이의 차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 수준에 특정한 차이에 의해 이뤄진다.[19] ‘개인주의’ 자체는 단지 잘 포장된 집단주의, 즉 인간 존재에 대해 집단적 관념이 지니는 통제의 표현이다. 게다가 사실상 ‘사회주의’는 사회적 책임성로부터 모든 사람을 흡수한다. 이데올로기적 논쟁은 이것을 인식할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자들은 ‘개인’에 대한 불충분한 관심에 대해 개인주의자를 비난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개인주의자들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불충분한 관심에 대해 사회주의자를 비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학적 이론의 형성을 우선적으로 자극한 것은 이런 이데올로기적 투쟁 노선이었다. 이것이 그렇게 쉽게 가능했던 (그리고 그런 ‘고전적’ 형식을 바로 취하게 되었던) 이유를 이해하려면, 그 노선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증가되는 추상성을 전제로 하고, 일차적 문제가 이론 형성에서 다루는 이런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차이를 (그리고 이미 1절에서 암시했던 것처럼) 반영한다. 따라서 아마도 Simmel을 예외로 하고[20], 고전 사회학은, 개인을 언급할 때면 언제나, 사실은 개인이 아니라 개인주의를 생각하고 있다.[21] 이는 ‘개인’의 자기 자신에 대한 다양한 경험, 지난 삼백년 동안 문학에서 풍부하게 전달되었고, 실제로 사회학에도 역시 명백해야 할 그런 종류의 경험에서 이상한 맹목을 이끈다. 만일 문학적 증언에 머물러 있다면, 제시될 수 하고 사회적으로 진정성을 지닐 수 있는 ‘개인’에 대한 자기다움을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 가지 선택은 이 결점에서 영웅적인, 혹은 심지어 반 영웅적인 어떤 것을 추출하는 것이다.[22] 개인성과 문화에 대한 다시 살아난 관심이 오늘날 관찰될 수 있지만, 아마도 고전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이런 관심을 충족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23] ‘개인’이 하나의 기능성이자 기능성의 희생물이 되었던 시기, 탈 주제화 된 시기를 지나서, ‘개인’이라는 주제로의 회귀는 결정적 시기를 맞은 것으로 보인다.[24] 그렇지만 사회학적 고전은 부족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개인적/사회적 정체성의 분리된 패러다임, 초월 철학으로부터 피상적으로 끌어온 것, ‘주체’라는 개념으로 만들어졌고, 결코 개인성을 깊게 파고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개인’이, 개인성 안에서 자신을 규정하고 향상하면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는지 엄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철학은, 이런 자기-규정과 자기-향상의 가능성을 반성에 참여할 능력에 두었고, 반성에 대한 법적, 사회적, 지위 기반의 장애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전제조건과 이런 요청과 함께 철학은 어떻게 든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변화, 즉 일차적인 성층적 차이화에서 일차적인 기능적 차이화로의 변화에 동반하고, 지원하고 축복할 수 있었다. 어떤 경우이건, 이 변화는 심적 그리고 사회적 시스템 형성의, 사회화와 포섭의 더 큰 차이화를 요청했다. 그래서 ‘주체’의 위치에 놓인 ‘개인’이 준비되고 반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게 될 때 환영되었다. 그래서 사회적 조건은, 타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이런 주체의 위치를 채용해야만 한다는 사실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제한들의 형식 안에 던져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회학자로서, 이런 동반된 시맨틱 ‘개인’=’주체’에 의존해야 하는지, 한다면 얼마나 의존해야 하는지, 혹은 사회적 이행 과정에 대한 참여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에서 끌어낸 결론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심, 그리고 대립되는 입장들 사이로의 이어지는 동요 등이 의심에 대한 첫 번째 이유가 된다. 그리고 두 가지 추가적 징후를 더할 수 있다. 첫째는 복사를 통해서 개인성을 획득하는 경향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개인’에 대핸 복수의 자아들을 부여하는 19세기적 관념 (언어학적으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어떤 것!)과 그래서 정체성의 문제와 관계한다.
개인적 주체는 결코, 흉내, 잘못된 경건, 가장된 자연스러움의 분석 등등에서 등장한 경험과 관심을 한 쪽으로 단순하게 치워버릴 수는 없었다. 만일 타인에게서 이런 수작을 관찰하고, 이 관찰에서 자신에 대한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면, 어떻게 자기 자신의 개인성을 주체로서 주장하고 제시할 수 있을까? 경험적/초월적 차이는 그러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떨쳐버리기 위한 단지 의미론적 속임수는 아닐까? 그런 모든 것을 관통하는 반성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하나의 트릭이 의심스러운 동기를 수용하도록 하고, 이 때문에 찾고자 했던 굳건한 기반을 발견하는 대신에 바닥 없는 구덩이로 떨어질 운명은 아닐까?
타자를 모방함으로써, 즉 복제된 존재로 이끌려, 하나의 해법이 목표를, 열망하는 기준을 그리고 삶의 방식을 획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25] 이는 시작부터, 개인성의 프로그램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개인의 삶의 원리가 대립물에 의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이 강제적으로 반성적 위치가 되면 될 수록, 그래서 우발성으로 자신을 경험하면 할 수록, 더욱 더 타인과의 비교를 제시한다. 그래서 다를 수 있는 능력은, 다른 누군가와 같을 능력을 의미한다. 이 ‘모방’ 동기의 발전을 자세하게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거기서 ‘개인’의 등장과 몰락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명백히 인쇄술과 연결된다. 독서를 통해서 획득된 관념과 자신의 삶을 연결시키도록 독서가 야기한다는 것은 Don Quixote이후 최근까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처음에는 단순히 잘못된 길 혹은 위험으로 생각되었다. 따라서 17세기 숙녀들은 소설을 읽을 때 주의하고 과묵해야 한다고 훈계를 들었다.[26] 다음 단계는 그런 실용적, 경험적 관심과 충고의 이야기 (특히 고백자에 의한)를 넘어서 진행된다. 이 단계는, 이어지는 판단을 이끄는 의미론적 차이, 즉 자연의 모방과 저자의 모방 사이의 차이의 형성을 구성한다.[27] 자연의 모방은 독창적이지만, 작가의 모방은 단지 복제다. 따라서 개인성은 독창성(Edward Young이 ‘천재성’의 유지라고 생각했던 것)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복제자(copyist)들은 충분하게 개인화된 존재에 이를 수 없다.
문학 이론에서 처음 성립되어[28], 원본과 복제 사이의 구별은 곧 넓은 의의를 얻었다. Young의 다소간 일관성 없는 구절 ‘원본으로 태어났는데, 왜 우리는 복제품으로 죽어야 하는가?’[29]는 독립적 존재를 취하지만, 문명에 대한 비판적 색조를 담고 있다.[30] 개인성의 구성 ���은 획득에 대한 주도적 이론은, 부분적으로는 교육적이고 부분적으로는 공리주의적인데, 이는 여기서 거꾸로 뒤집어진다. 사람들이 문학과, 즉 문명과 접촉하면 자신의 개인성을 잃어버린다. 단지 천재만이 독창적인 감정 상태(이는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복제의 원형으로 역할을 한다)를 유지할 수 있다.
내적 그리고 외적 모두 자연이 그 의미의 확실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따라서, 자연에 기반한 개인성의 프로그램은 정착지를 잃어버린다. 그 주제에 대해서, 모든 것이 주관적이 된다. 자연을 포함하고 특별한 자연안에서.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가능성들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복제하고, 모두가 유행을 따른다. 이미 예술가에 대한 예외를 요청하는 절망적 용기가 필요하다. 예술가들은 자기 힘으로 절대적인 것을 손대야 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근대성의 흔들리는, 우발적인, 유행에 이끌리는 기반 위에 남아 있다.[31] 이는 얼마 안 있어 표준적인 ‘과학적’ (심리적, 사회-심리학적, 사회학적) 정식이 될 것, 즉 사회적 환경과 차이화 된 요구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자신을 복수의 자아, 복수의 정체성, 복수의 인격으로 나누는 것의 전조가 된다. ‘In-dividual’은 가분성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오페라를 위해서는 음악적 자아를, 직업적 삶을 위해서는 야심 있는 자아를, 가족을 위해서는 참을성 있는 자아를 요구한다. 스스로를 위해서 남아 있는 것은 그 동일성의 문제다.
자아의 내적 복수성 문제 역시 전통을 가진다. 이 전통은 여기서 시도되는 사회학적 해석에 의해 확인된다. 이런 이유로 짧은 회고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내적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 정식화, 자아의 자신과의 대화는 오랜 전통을 가진다. 자아를 다루는 것에 관해서는, 말하자면 자신 안에 두 인격을 말하는 것이고, 동기의 주제에 관할 때는 두가지 영혼을 말하는 것이다. 18세기 후반에, 이 정식화는, 죄를 짓기 쉬운 필멸자의 일탈적 경향에 대한 합리적인 도덕적 자기-통제의 설정 안에서 전개된다. 이런 해석은 여전히 Shaftesbury의 유명한 혼잣말의 에세이에서 중단 없이 유지된다.[32] 혼잣말은 스스로 문제가 되는 자아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소외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것의 목적은 개인성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히 개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차적 상태(I와 me)가 아니고,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어려운 조작으로 기능하다.[33] 그것은 자기 자신의 진정한 관심, 전체를 향한 부분들의 조화로운 범주화에 놓여 잇는 자연적 ‘감정’을 찾는데 역할을 한다. 즉 그것은 자아의 도덕적 경제를 절합한다. 새로운 것은 동일성 문제의 개인화에 있는 것이 (아직은) 아니라, 종교적-교리적 규칙으로부터의 거리에 놓여 있다.[34] 자아는, 열정을 규제하고, 그것들을 자연적 감정의 형식으로 가져오기 위해 스스로에게, 그리고 오직 스스로에게 의존하는 실현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한다. 더 나은 자아가 더 나쁜 자아에 맞서 스스로를 주장하는 내부적 구조는 위계적으로 남아 있다. 이를 위한 모델은 가정이다.[35] 위험은 통치 불가능성에 놓여 잇다. 적어도 이 문제는 이미 자아-동일성의 문제를 매우 정확하게 언급한다. “공상과 나는 하나가 아니다. 불일치가 나를 나 ���신으로 만든다.”[36] 자신의 자아가 된다는 것은 오직, 규정하고 어떤 범주에 기반하지 않은 자기-언급��� 자의성을 거부하는 것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 그것은 확실히 더 이상 이런 자기-언급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성은 그 자신의 가능성과 비조응 속에 기반한다.
이런 견해가 폐기되고, 자기-동일시의 내적 복수성에 대한 다른 종류로의 관념으로 이행이 발생한 역사적 시점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마도 18세기 후반이나 낭만주의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19세기 말, James와 Mead가 그 문제를 지금 일반적인 형식으로 가져왔던 시점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37] 어느 정도건, 가능한 자기-동일화의 복수성의 통일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 풀어야만 하고, 단순히 도덕과 의식에 순응하거나 혹은 더 나쁜 자아를 억압함으로써 고쳐질 수 없는 가장 긴급한 개인적 문제가 되었다. 이 통일의 반성 문제는, 그들 자아의 일관성 혹은 통합의 문제로, 정체성을 다시 획득하는 문제로 정식화 되었다. ‘자아’의 통일성 주제는 구성적 차이를 통해서 절합되고, 동시에 숨겨졌다. 사회는 더 이상 해법의 방향을 지시하지 않고, 단지 문제만을 지시할 뿐이다. 그것은 더 이상 도덕적 삶의 방식에 대한 요구로서 인류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개인적 방식, 우연적이고 선택적인 방식 안에서, 행동이 향해지는 복합성으로서 마주한다.
이런 주제들이 18세기 후반 등장해서 이데올로기적 불확실성을 따라서 19세기 후반에 증가해서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학적 시맨틱으로서, ‘개인’의 이런 해체와 재조합은, 각각의 개인에게 다른 전기, 다른 규칙의 집합, 우연성, 기회, 그리고 공적의 차이화 된 분배를 나누는 고도의 복합적 사회의 경험에 조응한다. 더 이상 고백자나 신학적인 삶의 카운셀러가 아니라, 처음에는 소설의 éducation sentimentale에서 이후에 심리학자나 심리치료사와 같은 다른 직업이 이제 ‘개인’의 배려에 관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는 이론과 주도 차이에서 변화를 필요로 한다. 더 이상 구원/저주와 진짜/거짓 경건함이 아니라, 의식/무의식과 사적/사회적 정체성이다. 따라서 이런 시맨틱과 이런 카운셀링에 노출된 심적 시스템은 그들 자신에 대해 다른 관념을 발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일반 이론으로 남아 있고, 개인성이나 개인성에 대한 이론으로 이끌지는 않는다. 단지 ‘개인’이 그 자신의 통일성에 대한 반성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더 이상 구원의 성취나 완벽을 향한 향상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결과로서 개별 인격에 대해 등장한 문제의 해법에 관한 것임을 알게 된다.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을 동시에 제공하는 것, 개인의 개인성을 제공하는 것으로부터 사회를 배제하는 것이 정확히 이것이다.
Ⅸ.
만일 개인성에 대한 이런 경험이, 사실의 경험이고 (문학적 과대포장이 아니라면), 근대사회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것들이, 모든 반성은 실패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할까? 그것들은, ‘개인’이 주어진다면, 동일성과 반성의 인식을 통해서 스스로를 도울 자유는 단지 부르주아지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작업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는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거기에 자연으로 돌아갈 길 혹은 천국으로 갈 뒷문은 존재하는가?
이런 형식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은 훨씬 멀리, 우리의 발견들이 지탱해주는 것보다도 훨씬 멀리 가는 것일 것이다. 자기-반성의 원리와 관계된 기대를 단순하게 수정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반성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로 자아를 발생한다. 그것은 자아를 필수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어떤 것으로 발생한다. 이것들은, 하나의 시스템이 말하자면 그 자신 안에서 스스로를 재현하려 시도할 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논리적 비용이다.[38] 자기-언급의 논리적 문제가 이런 결과를 강제할 지, 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할 지는 여기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39]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반성의 도정에 ‘개인’을 설정하고, 그것의 효과 없는 노력들 속에서 그것을 관찰하려 수행했던 시도가 이런 견해를 제시한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만약 여기서 옹호되는 이론을 수용한다면, 앞에서 논의되었던 ‘주체’의 두 가지 ‘잘못된 경로’, 타자를 복제하고 자아를 다른 자아들로 쪼개는 것은 자기-반성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에 대해 반성하기 위한 모든 노력은, 그것이 무언가를 더할 수 있다면, 노력할 가치가 있다. 사실 그것들은 시스템의 조작들 중 하나로서 조작의 정상적 수행으로부터 나온다. 조작은, 그것이 구현하고, 그것에 대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더하는 시스템을 전제로 한다. 의미 있는 어떤 것은, 다른 어떤 것, 그래서 다른 어떤 것과 관련해서 다르게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단지 이런 반식으로만 시스템은 자기-반성을 통해 그 자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즉 차이의 도식 안에서 우발적 선택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식별할 수 있는 것을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단점은, 그래서 더 이상 필수적 통일체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정체성으로 기능하는 모든 것은 인공적이고, 우발적인 자기-단순화에 기반한다. 다른 모든 사람과 동일하기를 원하거나 다르기를 원하거나 상관없이. 그래서 반성 시스템의 통일성에 대한 모든 진술, 즉 그것의 개인성에 대한 모든 진술은 반성의 대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기본적 조작과 관계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심적 시스템 역시 오토포이에시스적 시스템, 즉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통해서 그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재생산하는 시스템[40]으로 특징 규정할 수 있다. 개인성은 오토포이에시스 자체, 즉 시스템의 ‘자기-재생산’의 닫힌 순환에 다름아니다. 시스템의 요소들은, 그것을 통해 존재하게 되고, 조작이 완료되자마자 존재하기를 멈추면서, 오토포이에시스적 재생산에 기여함으로써 시스템의 개인성에 참여한다. 사회 시스템의 경우에는, 이것은 각각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어나지만, 심적 시스템의 경우에 그것은 각각의 의식 행위에서 일어난다. 사회 시스템과 의식 시스템 모두, 자기-반성은 오토피에이스의 구현으로서, 즉 커뮤니케이션을 재생산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사용 혹은 의식을 재생산하기 위한 의식의 사용에서만 가능하다.
만일 이론의 정식화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자기-언급과 닫힌 순환성의 토톨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Husserl의 의식의 시간성에 대한 분석과 같은, 초월론으로 이어지는 분석을, 오토포이에시스적 시스템의 이론 언어, 즉 다른 어떤 것들 가운데서 물론 오직 한가지 경우인 의시기의 조작적 기초에 대한 경험적 시스템 이론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다른 출발점은 문제를 설정하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그러면 근본적 문제는, 어떻게 시스템이 세계 속에서 스스로를 탈-토톨로지화 하는지다. 시스템은 어떻게 재생산의 순환 안에서 비대칭성을 발생하는가? 이런 과점에서 ���간의 비가역성과 각 시스템이 의존하는 환경의 과잉 복합성과 같은 진화에 의해 강화되는 상황적 조건은 시스템의 자기-기술의 생산에 있어 이차적 기능을 가진다. 그들은 자기-언급 안에서 시스템이 탈-토톨로지화하고 비대칭성을 만드는 것을 돕는다. 결과는, 그것이 구별된 영역으로 구별을 ‘재-진입’하는 것이다.[41] 시스템은 언제나 오토포이에시스적이고, 이미 개인화 되었고, 항상 자율적으로 존재하면서, 시간 안에서, 환경과의 차이를 통해 구성된다. (그렇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문제는 단지, 처음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전/이후 그리고 환경/시스템의 이런 차이들이 어떻게 시스템에 재-진입하고, 그 안에서 자기-언급의 논리적 전개를 구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런 자기-반성의 논리적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해결되든, 심적 시스템 자체는 배제의 위치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그것은, 포섭-기반 개인성에 대한 점진적인 억압적 조건 안에서 발전되는 시맨틱을 계속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게 한다. 미학적 혹은 도덕적 ‘상태’에 대해, 혹은 자유롭게 구성되는 커뮤니케이션적 커뮤니티의 선험적 정당화에 대해, 포섭과 배제의 ‘신성한’ 동시성 주위에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향하는 것 역시 더 말이 안 될 것이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진짜 개인들은 그들의 개인성을 대단히 느슨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현대 시맨틱은, 불충분함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을 제거하는 이것들을 위해 발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인의 개인성이 그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개인성의 향상’이라는 지도적 관념은 폐기될 필요가 있다. 이런 관념은, 개인이 세계에 대해 비대칭적 관계를 생산할 수 있는 자기-기술은 어떤 형식인가의 질문에 의해 대치되야만 하고 대치될 수 있을 것이다. 심적 시스템의 관계에서 개인/개인성/개인주의 시맨틱의 진화는, 사회가 사용 가능하고 연결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형식의 전환으로 읽힐 필요가 있다. 그런 형식의 도움을 통해서만, ‘개인’은 자신의 개인성에 대해 다른 어떤 것보다 오토포이에시스적 절차에 위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고려될 수 있는 시맨틱은 사회적 진화에 따른다. (구체적 개인들이 스스로를 구체적 개념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 없이) 개인성의 자율성은 ‘개인’에 있어 당연할 수도 없고, 기대될 수도 없다. 그것은 존재의 형식이다. 그것을 구성하는 구별의 이 형식 안으로의 재-진입은 사회적 조건의 더한 대상이다. 왜냐하면 이런 재-진입이 의미, 언어, 그리고 연결성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사례가 이런 결과를 그리는데 기여한다. 시간 차원에 대해서, 경력 인식의 예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시스템/환경 관계에 대해서, 누군가가 요구를 하는 믿음의 예를 선택할 수 있다. 경력과 요구는, 개인이 비대칭성을 생산하는 구별적 형식이고 그렇게 남아 있다. 그것들을 결합하는 것은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는, 누군가가 어떤 것에 대한 요구를 할 수 있지만, 경력에 대해서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으로, 누군가 자신의 요구에 관련해 긍정적 그리고 부정적 경험의 연속은 경력을 구성하지 않는다. 요구와 경력을 구별된 형식으로 다루는 것을 통해서만, 복잡한 상호의존성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경력의 맥락 안에서 공정한 대우의 요구, 동등한 기회의 요구, 자의성의 배제에 대한 요구 그리고 역으로 경력이 전개되면서 실망을 줄이기 위한 태도와 제도의 발전 등.
경력과 주장의 예는, 어떤 것에서 체계적으로 도출될 필요 없이 그리고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상황에 대한 완벽한 기술을 제공하려 하지 않고도 선택��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단순히, 근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기-기술과 관련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공할 수 있는 형식과 결과적 주제들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포섭과 사회화의 사회적 문제로부터 나오는 결과들을 지적하고자 한다.
Ⅹ.
시간 차원으로 탈출함으로써 ‘사회적’ 정체성의 문제를 회피할 수 있을까? 타인의 기대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자신의 자아에 대한 연속성과 변화의 개념을 통해서 개인의 전기를 더 형상화 할 수 있을까? 연속성/불연속성은, 승인/일탈보다 개인성에 더 적합한 도식일까?
거의 그럴 것 같다. 어쨋건 ‘정체성’의 근대적 시맨틱과 전기에 대한 관심은, 개인성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시간 차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시간적 관점에서, 사회적 요구 조건에 초점을 맞추는 반성의 부적합성이 형성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개인’은 변화하는 방식을 통제하기 위해 개인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42] 그러나 어떻게 반성은 시간을 다룰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떤 허용된 시맨틱이 그렇게 하는 것을 도울 수 있을까? 근대적 ‘개인’이 시간성을 반성하고자 하는 첫 번째 시도는 익숙한 결과를 생산한다. Plaisir, 상상, 공상의 형식 안에서 순수한 자기-언급은 불안정한 것으로 보이고, 오직 현재를 차지하기 위해 새로운 만족의 형식을 찾는 데에만 관심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지속하는 관점으로서, 남아 있는 모든 것은 지루하고(ennui), 그것은 그래서 시간에 대해 견뎌야 할 경험을 차지한다. 오토포이에시스에 대한 역사적인 최초의 경험은, plaisir/ennui의 시맨틱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반성 된다.  그것은 ‘주체’의 주체성과 정확하게 관계한다. 성층화 된 사회에서 상위 계층의 멤버들에게, 시간적 차원은 어떤 인식 가능한 대안을 제공하지 않는다. 단지 사회적 차원에서만 그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탈출해, 주연, 우전, 사랑 등을 찾을 수 있다.[43] 자기-언급이 시간이 진행되면서 반복해서 경험을 위한 능력을 갱신하는 동안, 스스로 매달린 주제는 다른 곳으로부터 나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개인이 하는 모든 것은 이에 대해 수용성(sensibilité)을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다.[44] ‘부르조아지’ 해법은 이미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가장자리에 남아 있다.[45] 전체적으로 하나의 문제가 등장하고, 사회구조적 발전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능성들을 생산하기 이전에 ‘개인’의 자기-경험으로 통합되었다는 인상을 가질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 해법은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은 문제에 걸맞기는 할 것이다. 그것에 대해 ‘경력’이라는 일반적 개념을 가지고 언급해보자.
경력은 사회적 필요성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출생, 가정에서의 사회화, 사회적 위계 안에서의 위치 등은 더 이상 삶을 통한 정상적 성장을 예측 가능하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과 운명의 타격은 물론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회적 통제의 경계 너머에 놓여 있다. 이는 성층적 차이화에서 기능적 차이화로 이행하는 것과 함께 변화한다. 누군가의 운명은 더 이상, 사회적 위험을 포함한 외적 위험에서의 자기-보호 문제가 아니다. 사유의 변화���, 자기-선택과 외부 선택 (그러나 다른 무게를 가진) 양자를 결합시키면서, 선택적 사건의 연쇄와 관계되어 요구된다. 이런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시간적 모델을 경력으로 언급한다.
이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읽혀야 할 것이다.[46] 그리고 조직 내에서 지위 사이의 변화를 언급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학교/대학 시스템을 통한 성장을 포함한다. 그러나 또한 평판이나 악평의 경력을 생각할 수 있고[47], 마찬가지로 물론 범죄 경력도 생각할 수 있다.[48] 결정적인 사실은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일종의 오토포이에시스적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경력은 경력의 단지 부분만을 형성하는 사건들로 구성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경력에 긍정적이거나 혹은 부정적인 충격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이런 종류의 다른 사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경력은 스스로 경력-관계의 가치를 부여하는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시 이는 사건과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이 사건들이 같은 것을 적용하는 더 많은 사건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더 나은 직업적 위치의 전제조건인 직업적 위치의 획득이나, 신용을 위한 전제조건인 수입, 매스 미디어에 더 많이 언급되기 위한 전제조건인 유명세, 더 많은 범죄의 전제조건인 이전의 유죄 등등. 그래서 경력은 기본적으로 사건들의 전제조건-부재, 자기-활성화 순서로 경험된다. 이는 정확하게 시간 안에서 개인성이 절합될 수 있는 이유다.
활성화 되거나 혹은 활성화 하거나, 경력에서의 모든 사건은 더 많은 선택에서의 우발적 선택이다. 각 사건의 관점에서는, 이전에 발생한 것은 사건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되고, 뒤에 오는 미래는 그것의 결과가 된다. 따라서 전체성 속에서 경력은 전체적으로 우발적 구조다. 이는 그 자신 경력이 결코 자신의 연속성을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에도 적용된다. 거기에는 더 많은 외부적 그리고 내부적 요소들, 무엇보다 운(사건에 적절한 패턴의 형식 안에서)과 성취를 필요로 한다.[49] 그렇지만 운과 성취 사이의 연계는 경력 자체에 의해 이뤄진다. 이런 면에서, 경력 역시, 경력 안에서 계산될 수 없고, 어떤 확실성을 낳을 수 없는 것, 즉 좋은 운과 나쁜 운을 위한 본질적 전제조건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모든 기회는 언제나 경력 자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50]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 운과 노력, 외부적 선택과 자기 선택의 결합에 대한 의존성은, 경력이 대단히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절한 조건들은 결코 성취에 의해 완전하게 대체될 수 없고, 기대되는 경력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더욱 덜 그렇다.[51] 이런 불확실성은 물론 무엇보다 먼저 미래와 관계한다. 그러나 또한 과거에도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경력의 과정 전반에서, 누군가가 만들어 낸 과거보다 다른 과거가 더 유용했을 것이라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고, 혹은 경력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했던 많은 노력들이 불필요한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현재의 불확실성이다. 그것은 현재의 의의를 강조한다. 현재가 plaisir/ennui의 순간으로서 자신과 관련했을 뿐만 아니라, 현재적 미래의 과거로서 경력의 맥락 안에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나중에 보상될 수 없는 무언가를 놓칠 수 있다. 우연한 기회를 위해 준비하는 것을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특히 교육과 훈련 (물론, 다른 예를 선택하자면, 여전히 ��강한 육체의 건강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서 출발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이 거대한 불확실성 아래서, 시간을 자본화 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노력을 끌어내고자 한다.[52] 무엇이 의미 있는 노력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객관적 한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더 많은, 혹은 다른 종류의 준비가 궁극적으로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밝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노적적 노력과 연결된다. 성공은 성공을 생산하고, 실패는 실패를 생산한다. 처음에 작았던 차이가 경력에 의해 증폭된다. 그래서 경력 자체는 자기-선택의 일부가 된다. 경력에 적절한 전기를 가지고, 자신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실망���러운 전기를 가지고는, 스스로 능력이 더 없다고 믿게 된다. 비록 불평등의 불변적 재생산에 대한 다른 이유가 없음에도, 경력은 불평등을 발생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력은 단지 성층화 몰락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또한 기회의 동일한, 그러나 불안정한 불평등을 발생한다.
삶의 과정에서 사회구조적 결정요소가 감소하는 한에서, 즉 경력에 대한 조건이 줄어드는 한에서, 경력은 삶의 보편적 방식이 된다. 그것은 게으르고, 관심이 부족하고, 조용한 삶을 위한 틈새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밝혀질 가능성을 제공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은 경력에 대한 그 자신의 자기-선택에 기여할 것을 거부할 수 있다. ‘무 경력’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여전히 하나의 경력이다. 왜냐하면 이 선택 역시 같은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경력-관계의 기회를 규정한다. 그것 역시 불확실성에 직면해서 개인사를 규정한다. 또한 그것은, 그것이 우발적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이런 무 경력을 후회할 순간이 발생할 가능성을 쫓아낼 수 없다. 경력은 plaisir와 ennui를 대치한다.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적 차원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그것들보다 뛰어나다. 그것은 ‘개인’에게, 개인성을 잃지도 않고, 더 높은 전체로 ‘흡수되는 것’도 없이, (비록 경력 자체는 그것과 관련한 모든 사건에 대한 재귀적 연결을 허용하지만) 시간의 비대칭적 비가역성 속에 자신을 위치 지을 수 있는 형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 형식은 사회의 사회적 구조로서 이미 나타난 것에 맞춰 재단되어 있다.
경력은 성공/실패의 구별 도식을 통해 그리고 내부적, 외부적 원인들에 조응하는 부여 과정을 통해 성취 시맨틱을 생산한다.[53]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경력 신드롭의 보편성은 수행과 수행의 거부 사이의 대립적 차이에 조응한다. 후자는 예를 들면 ‘스트레스’, ‘사회적 이탈’ 그리고 무경력이 유용하고, 긍정적인 삶의 형태라고 믿고자 하는 삶의 ‘대안적’ 방식의 시맨틱 형식 속에 있다. 이런 식으로 ‘개인’은 수행의 압력을 회피한다. (비록 이 선택 역시 선택으로 남아 있지만!) 그러나 시간 혹은 불확실성을 회피할 수는 없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plaisir/ennui의 재활성화에 이르지 않는 것인지 의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은 모든 계층에게 가능한 제안인 시간이다.
[1] 그래서 이는 Schiller의 편지 ‘인간의 미학적 문화에 대해서’, Klaus Disselbeck, Geschmack und Kunst: Eine systemtheoretische Untersuchung zu Schillers Briefen ‘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 Opladen 1987.
[2] ‘Non vero huomo quegli ehe la Compagnia de gli altri huomini fugge ... chiunque a se solo vive, ingrato alla Natura se dichiara’ (다른 사람들의 무리에서 도망치는 사람은 진짜 남자가 아니다. ……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스스로가 자연에 대해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 선언한다.) Ciro Spontone, Dodici libri del Governo di Stato, Verona 1599, S. 175, 또한 S. 204. 마찬가지로 Paolo Paruta, Della perfettione della vita politica, Venetia 1579, S. 49 f. 마찬가지로 더 많은 예를 들 수 있다.
[3] 예를 들면 고독 vs. compagnie의 무게 재기에 대해서는 François de Grenaille, Les plaisirs des dames, Paris 1641, S. 185 ff. Thomas Fuller, The Holy State and the Profane State, Cambridge 1642, New York 1938 재출판, S. 161 ff.이 전형적이다. (“고독에 호소하고 안고 있는 것은 자연적이지 않다. 그러나 사막이 타락한 동료보다는 낫다)
[4] Sur les plaisirs, Œuvres, Bd. I, Paris 1927, S. 9-15 (9)에서 인용.
[5] 18세기까지 지속된 이 전통에 대해서는 Wolf Lepenies, Melancholie und Gesellschaft, Frankfurt 1969; Hans-Jürgen Schings, Melancholie und Aufklärung, Stuttgart 1977.
[6] Remond des Cours, a. a. 0. (1692), S. 119 ff.
[7] Marquis d'Argens, La philosophie du bon-sens, 신판 Haag 1768, insb. Bd. II, S. 298 ff., 327; Bd. III, S. 29 ff. 다른 예를 들자면, 고독은 그 자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것은 사회로부터 스스로의 거리를 두는 도덕적 배치에 의존한다. 그래서 John Gilbert Cooper, On Solitude and Society, in: Letters Concerning Taste, and Essays on Similar and Other Subjects, 3. Aufl., London 1757, S. 204 ff. 마찬가지로 loisir, ennui 그리고 oisivité의 구별에 대해서는, Antoine Pecquet, Discours sur l'emploi du loisir, Paris 1739.
[8] Christian Garve, Ueber Gesellschaft und Einsamkeit, 3 Bde., Breslau 1797-1801, insb. Bd. II, S. 257 ff. 특히 고독이 관심과 애정의 부족으로 해석된다면 그것은 억압적이다. 그래서 큰 도시에서, 동료를 위한 기회가 분명하다. (291) Countess Dowager of Carlisle, Thoughts in the Form of Maxims, Addressed to Young Ladies on Their First Establishment in the World, London 1789, S. 119 ff. 우연한 ‘사회로부터의 이탈’을 통해서 필연적이지 않은 고독의 시간으로 이��할 수 있을 것이다.  
[9] Paul Valery, L'idée fixe ou deux hommes à la mer, Œuvres, Bd. II에서 인용, Paris (ed. de la Pleiade) 1960, S. 195-275 (275).
[10] 그들이 일반적으로 가정되는 것보다 덜 문제를 경험한다는 것이, Michael Hughes/Walter R. Grove, Living Alone, Social Integration, and Mental Health,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87 (1981), S. 48-77의 결론이다.
[11] Richard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rinceton, NJ 1979, pp. 154-155. 이 가정은 종합적 지식을 가지는 능력을 위한 선험적인 초월적 기반을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만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이 가정의 정당화는 그래서, 문제의 그런 개념의 기초 위에서 구성될 수 있는 이론에 기반한다. 이 자기-언급이 받아들여지자 마자, 더 많은 자기-언급은 제거될 수 있다.
[12] Grundfragen der Soziologie (Individuum und Gesellschaft), Berlin-Leipzig 1917, S. 88. Dort S. 71 ff. 짐멜은 18세기의 네오휴머니즘으로의 전환을 훌륭하게 특징화 하였다.
[13] Loredana Sciolla, Differenziazione simbolica e identità, Rassegna Italiana di Sociologia 24 (1983), S. 41-77.
[14] 이런 대조에 대해서는 Louis Dumont, Religion, Politics, and Society in the Individualistic Universe, Proceedings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1970, S. 31-41.
[15] ‘초기 사회주의자’의 비판적 관점에 대해서는, Thomas Hodgskin, Popular Political Economy, London 1827, New York 1966 재출판, S. 39 f
[16] 반면에 Reinhart Koselleck은 1800년경 설정된 역사-정치적 시맨틱의 재구성의 한 특징으로, 많은 개념들의 ‘이념화 가능성(ideologizability)’을 고려한다. 이에 대해서는 Geschichtliche Grundbegriffe: Historisches Lexikon zur politisch-sozialen Sprache in Deutschland, Bd. 1, Stuttgart 1972, S. XVII f.
[17] 단어의 어원학적 개념적 역사에 대해서는, Richard Koebner, Zur Begriffsbildung der Kiµturgeschichte II: Zur Geschichte des Begriffs ‘Individualismus’, Historische Zeitschrift 149 (1934), S. 253-293; Stephen Lukes, Individualism, Oxford 1973. 어느 정도 사회주의에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명시적이고 마찬가지로 반응적인 새로운 조어가 1830년경 만들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Gabriel Deville, Origine des mots ‘socialisme’ et ‘socialiste’ et certains autres, La Revolution Française 54 (1906), S. 385-401.
[18] 적대적 평가는 정확하게 ‘개인’의 이름에서 발생했다. Alexandre Vinet, Individualité, Individualisme, Semeur of 13. 4. 1836, Philosophie morale et sociale, Bd. 1, Lausanne-Paris 1913에 재수록, S. 319-335. 개인주의는 단지 추상적 관념이고 그래서 단일자의 구체적 개인성에 대한 이해를 평평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L'individualisme est sur le trône et l'individualité est proscrite” (개인주의가 즉위하고, 개인성은 금지된다, p. 329)
[19] Richard Hofstadter, Social Darwinism in American Thought, 1860-1915, Philadelphia 1945는 개인주의적/집단주의적 관념을 대조하여 이 논쟁에서의 동기에 대한 훌륭한 설명을 제공한다. 개인주의/집단주의에 대해서는 Karl Pribram, Die Entstehung der individualistischen Sozialphilosophie, Leipzig 1912.
[20]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파편적으로 보인다는 개인에 대한 Simmel의 가정은, 직접적으로 낭만주의를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타자의 시선이 이 조각들을 영원한 총체로 녹이는데 필수적이라는 그의 가정(‘개인’은 통일성 속에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지니지 않는다?!)은, 반성 과정이 사회적 관계에 의존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초월적 철학과 사회 심리학은 ‘스타일’의 문제가 된다. 그래서 ‘Wie ist Gesellschaft möglich?’, in: Soziologie: Untersuchungen über die Formen der Vergesellschaftung, 2. Aufl., München-Leipzig 1922, S. 21-30. 그렇지만 이런 가정은 사회 이론에서 충분하게 자리잡지 못한 채 발전했다.
[21] 이에 대해서는 Emile Durkheim, L'individualisme et !es intellectuels; Revue Bleu, série 4, 10 (1898), S. 7-13.
[22] Wylie Sypher, Loss of the Seif in Modern Literature, New York 1962에서는 이런 관점에서의 소재들을 모으고 있다.
[23] Roland Robertson, Meaning and Change: Explorations in the Cultural Sociology of Modern Societies, Oxford 1978, S. 4 f. 에서 제시되는 것처럼. 또한 Aspects of Identity and Authority in Sociological Theory, in: Roland Robertson/Burkart Holzner (Hrsg.), Identity and Authority: Explorations in the Theory of Society, Oxford 1980, S. 218-265.
[24] 예를 들면 Ulrich Beck, Jenseits von Stand und Klasse? Soziale Ungleichheiten, gesellschaftliche Individualisierungsprozesse und die Entstehung neuer Formationen und Identitäten, in: Reinhard Kreckel (Hrsg.), Soziale Ungleichheiten, Sonderband 2 der Sozialen Welt, Göttingen 1983, S. 35-74; Die Risikogesellschaft: Auf dem Weg in eine andere Moderne, Frankfurt 1986; Alois Hahn/Volker Kapp (Hrsg.), Selbstthematisierung und Selbstzeugnis: Bekenntnis und Geständnis, Frankfurt 1987.
[25] Stendhal에게 homme-copie는 처음에는 거의 존중할 수 없는 존재 형식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Standhal이 처음으로 이 개념을 사용했다) De l'amour (1822), Paris 1959에서 인용, S. 276. 그것은 다른 가능성들을 배제하고자 의도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소설은 곧 이런 존재 형식(그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모든 것�� 포함하면서)을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전달하였다. 한참 지나 Martin Heidegger, Sein und Zeit, 6. Aufl. Tübingen 1949, insb. S. 126 ff.가 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제공했다. 또 다른 예로는 특히 René Girard, Mensonge romantique et vérite romanesque, Paris 1961.
[26] Jacques du Bosq; L'honneste femme, Rouen 1639, 재출판, S. 17 ff.; Pierre Daniel Huet, Traité de l'origine des romans, Paris 1670, Stuttgart 1966 재출판, insb. S. 92 ff.
[27] 그래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은 Edward Young, Conjectures on Original Composition (I759), The Complete Works, London 1854, Hildesheim 1968 재출판, Bd. 2, S. 547-586.
[28] Jean de La Bruyères, Les Caractères: Des ouvrages de l'esprit Nr. 62, 64, Œuvres complètes, ed. De la Pléiade, Paris 1951, S. 88 f.; Anthony, Earl of Shaftesbury, Characteristicks of Men, Manners, Opinions, Times, o. 0., 1714, Farnborough 1968 재출판, Bd. 3, S. 4 f.; oder Abbe de Villars, De Ia délicatesse, Paris 1671, S. 179: “Le siècle est délicat, il n'aime pas les copies, il faut estre original en tout ce qu'on écrit” (어려운 시대, 복제품을 좋아하지 않고, 자신이 쓰는 모든 것에서 독창적일 필요가 있다) 복제에 대한 이런 가치 절하는 인쇄술의 반응이라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
[29] A. a. 0., S. 561.
[30] Vinet는 언급하지 않았고, 아마도 원전을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Quelqu'un a dit que 'nous naissons originaux et que nous mourons copies” (누군가는 ‘우리는 원본으로 태어나서 복제품으로 죽는다’고 말한다) (a. a. 0., 1913, S. 326).
[31] “La modernité, c'est le transitoire, le fugitif, le contingent, la moitié de l'art, dont l'autre moitié est l'éternel et l'immuable” (‘근대성’에 의해, 순간의, 사라지는, 우발적인, 예술의 반쪽을 의미한다. 그것의 다른 반쪽은 영원하고 불변한다) Charles Baudelaire, Le peintre de a vie moderne, Œuvres complètes, ed. de la Pléiade, Paris 1954, S. 881-920 (892)
[32] Anthony, Earl of Shaftesbury, Soliloquy: or Advice to an Author, 1710, Characteristicks of Men, Manners, Opinions, Times, a. a. 0., S. 151-364 에서 인용.
[33] “누가 이렇게 자신을 두 인격으로 나누고, 자신의 주체가 될 수 있을까?”라고 Lord Anthony는 묻고, 이어서 답한다. “자기-분해의 작업. 이 혼잣말의 덕분에, 그는 두 개의 다른 인격이 된다. 그는 학생이자 교육자이고, 가르치고 배운다.” (a. a. 0., S. 157 그리고 158) 이것과 유사한 문장들을 읽을 때, 그 당시의 ‘person’이 개인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고, 그 보다는 더 일반적인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래서 Shaftesbury는 개인을 ‘분해한다’는 이상한 관념을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34] “종교의 진정한 효과나 조작이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를 동일 인격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철학의 영역이다.” a. a. 0., S. 283.
[35] 명시적으로는 a. a. 0. S. 323 f.
[36] A. a. 0., S. 325.
[37] 이 두가지 시기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비교는 Jan Hendrick van den Berg, Divided Existence and Complex Society: An Historical Approach, English trans. Pittsburgh 1974.
[38] 여기서 자신을 제시하는 문학적 캐릭터는 (Paul Valéry, Œuvres, Bd. II, éd. de la Pléiade, Paris 1960, S. 9-75에서 인용하는) Monsieur Teste다. 이는 자기-인식 시스템의 닫힌 성격, 가능성/불가능성의 차이에 대한 방향 지시, 모든 자기-기술과 꾸밈은 잘못된, 자아의 깊이에서 자아의 상실 그리고 일종의 오토포이에시스가 된다는 것을 포함한다. consommation des possibles et recharge (64)
[39]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Yves Barel, Le paradoxe et le système: Essai sur le fantastique social, Grenoble 1979.
[40] Humberto R. Maturana, Erkennen: Die Organisation und Verkörperung von Wirklichkeit: Ausgewählte Arbeiten zur biologischen Epistemologie, Braunschweig 1982. 심적 시스템에 이 개념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Soziale Systeme, a. a. O. (1984), S. 346 ff.; die Autopoiesis des Bewußtseins, a. a. O.
[41] George Spencer Brown, Laws of Fonn, 2. Aufl., New York 1972, S. 69 ff.에 기반한다.
[42] 특히 Louis A. Zurcher, Jr., The Mutable Seif: A Self Concept for Social Change, Beverly Hills, Cal. 1972,의 ‘해양 자아 (oceanic self)’의 부적절한 개념에서 정점에 이른다.
[43] 그렇지만 정확하게 이런 출발점이 진정한 우정과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Madeleine de Scuderi, Conversation de l'ennuy sans sujets, in Conversations nouvelles sur divers sujets, Paris 1684, Bd. II, S. 457-502. Ennui에 대해서는 Friedrich Mehnert, Schlüsselwörter des psychologisehen Wortschatzes der zweiten Hälfte des 18. Jahrhunderts, untersucht an den Briefen zweier Salondamen (Mme. du Deffand und Mlle. de Lespinasse), Diss. Berlin 1956, S. 15 1 ff.; Wolf Lepenies, Melancholie und Gesellschaft, Frankfurt 1969.
[44] M. Deslandes; L'art de ne point s'ennuyer, Amsterdam 1715, insb. S. 31 f., 132 ff.
[45] (물적 재화나 의견! 모두에 연결된) 소유에 대한 갈급에 대해서는 Georges-Louis Le Sage, Le Mecanisme de l'esprit, Cours abregé de Philosophie par Aphorismes, Genf 1718, S. 345 ff. 에서 인용.
[46] 조직 사회학에서 문헌의 과다함은 제외��더라도, Howard S. Becker/Anselm L. Strauss, Careers, Personality, and Adult Socialization, The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62 (1956), S. 253-263; David V. Tiedeman/Robert P. O'Hara, Career Development: Choice and Adjustment: Differentiation and Integration in Career Development, New York 1963; Niklas Luhmann/Karl Eberhard Schorr, Reflexionsprobleme im Erziehungssystem, 2. Aufl. Frankfurt 1988, S. 277 ff
[47] 후자에 대해서는 Julius A. Roth, Timetables: Structuring the Passage of Time in the Hospital Treatment and Other Careers, New York 1963.
[48] 일반적인 범죄 경력에 대해서는 Howard S. Becker, Outsiders: Studies in the Sociology of Deviance, New York 1963. 또한 Günther Machura/Hans Stirn, Eine kriminelle Karriere, Wiesbaden 1978. 이런 방식으로, 한 사람의 범죄가 그들 자신의 잘못인지 아니면 사회의 잘못인지에 대한 현대적 논쟁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것은 그 사람에 대한 불리한 조건을 결정한다. 그것은 경력의 잘못이다.
[49] 이런 이유 때문에 경력 기대에 대해서는 언제나 이중적 귀속 문제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Niklas Luhmann, Zurechnung von Beförderungen im öffentlichen Dienst, Zeitschrift für Soziologie 2 (1973), S. 326-351.
[50] 이런 점에 대해서는 K. Robert, The Entry into Emp1oyment: An Approach Towards a General Theory, Sociological Review 16 (1968), S. 165-184는 ‘기회-구조 모델’을 말한다.
[51] 이와 관련한 실증 연구에 의한 설명으로서는 Luhmann, a. a. 0. (1973).
[52] Jean René Treanton, Le concept de carrière, Revue Française de Sociologie 1 (1960), S. 73-80 (76).
[53] 예를 들자면 Talcott Parsons, Pattern Variables Revisited, American Sociological Review 25 (1960), S. 467-483; Sociological Theory and Modern Society, New York 1967, S. 192-219에서 의 ‘질(quality)/수행(performance)’ (원래는 ‘귀속된/획득된’)의 패턴 변수. 귀속의 문제에 대한 설명에 대해서는 Heinz Heckhausen, Leistung und Chancengleichheit, Göttinge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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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maker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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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 가족센터 다문화가족 여름방학 프로그램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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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comon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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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pd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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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바꾸는 100가지 혁신들
타임즈의 "우리 삶을 바꾸는 100가지 혁신들" 미친척하고 하나하나 어떤건지 적어가며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가장 맘에 드는거 하나 뽑으라면, 머신러닝을 이용한 3톤짜리 잡초 제거로봇 "FarmWise Titan FT-35" 인듯 합니다. ~~ ACCESSIBILITY → Logitech Adaptive Gaming Kit : 장애가 있는 게이머를 위한 컨트롤러 → LUCI : 안전경로를 찾아서 충돌을 방지하는 전�� 휠체어 → Earlens Contact Hearing Solution : 고막에 음파를 직접 전달하는 보청기 → Martin Bionics Socket-Less Socket : 편안한 의족/의수 장착을 위한 소켓없는 소켓 ARTIFICIAL INTELLIGENCE → Embodied Moxie : 어린이용 사회성/정서적 기술 향상 로봇 → Beewise Beehome : 2백만마리 꿀벌이 살 수 있는 AI기반 미래형 꿀벌집 → TrialJectory : 암 진단 가이드 앱 → BrainBox AI : AI 날씨예보로 기상조건을 예측하여 건물 난방을 제어하는 기기 → Krisp : 원격회의용 잡음 제거 앱 AUGMENTED AND VIRTUAL REALITY → Pico Interactive Neo 2 Eye VR Headset : 기업용 시선 추적 기술 내장 VR 헤드셋 → Augmedics xvision : CT스캔을 3D시각화해서 환자 몸위에 보여주는 외과용 증강현실 헤드셋 → Virti : 교육하기 어려운 상황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주는 증강/가상 현실 기반 교육 플랫폼 BEAUTY → Dyson Corrale : 머리가 상하지 않게 1초에 100번씩 온도를 조절하는 무선 고데기 → Pour Moi Climate-Smart 3-Step Rotating System : 기후에 따라 조절하는 스킨케어 → ManiMe : 3D 모델링으로 손톱사진을 올리면 주문 제작해주는 젤네일 스티커 → L’Oréal Perso : 셀카를 업로드 하면 자신의 피부와 현재 습도/햇빛 노출정도에 맞게 커스터마이징 해서 나오는 스마트 화장품병 CONNECTIVITY → Owl Labs Meeting Owl Pro : 온/오프 하이브리드 미팅시, 회의실에서 말하는 사람에게 렌즈/마이크의 초점을 이동해주는 360도 카메라 → Roland GO:LIVECAST : 마이크 조절/입력 선택/카메라 전환기능 등을 가지고 있는 라이브 스트리밍 전용 기기 → Vocera Smartbadge : 의사들이 목에 걸고 음성 명령을 통해서 쉽게 서로간에 의견을 나눌수 있게 도와주는 기기 CONSUMER ELECTRONICS → Insta360 One R : 카메라 모듈을 교체해서 커스터 마이즈 가능한 차세대 액션 캠 → Microsoft Surface Duo : 듀얼 화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 Miller Engineering Dark Skys DS-1 Planetarium : 침실 천장에 4백만개의 별을 보여주는 프로젝터 → MOON UltraLight : 스마트폰 카메라에 붙여서 적당한 빛을 쏴주는 클립형 라이트 → Sony a7C : 소형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 → Lexon Oblio : ���전하면서 UVC 라이트를 쏴서 폰의 박테리아를 소독해주는 충전장치 → KEEP : 온도 및 습도제어 기능과 생체인식 락을 통해서 대마초와 처방약을 안전하게 저장하는 장치. 누군가 열려고 하면 폰으로 알림도 전송 → Nuheara IQbuds2 MAX : 음악을 들으면서도 앞에 사람과의 대화는 가능한 능동형 소음제거 기능을 가진 무선 이어폰. DESIGN → Ammunition x Gantri 3-D Printed Lights : 3D 프린팅을 통해서 가격을 낮춘 고급 디자인의 조명기기 → Cuzen Matcha : 자동으로 찻잎을 갈아서 자기 믹서로 적당히 휘저어 최적의 거품 말차를 만들어 주는 기기 → Allbirds Tree Dasher : 유칼립투스,피마자 기름, 사탕수수 등의 자연재료로 만들어서 탄소배출량을 1/3로 줄인 런닝화 EDUCATION → Van Robotics ABii : 초등학생들의 수학 및 읽기능력 교육을 위한 로봇 교사 → Duolingo ABC : 어린어 언어 교육용 앱 → Outlier.org : MasterClass 개발팀이 만든 저가격 고품질의 교육 과정 → Kiri Toys : RFID가 내장된 블록을 통해서 단어를 가르치는 놀이형 교육도구 ENTERTAINMENT → Microsoft Xbox Series S : 게임패스와 함께 즐기는 차세대 콘솔 (근데 왜 S 를 ??) → Nvidia GeForce Now : 비싼 장비 없이 즐기는 클라우드 게이밍 → Sony Playstation 5 : 햅틱 피드백센서가 내장된 컨트롤러, 훌륭한 차세대 콘솔 → Nintendo Animal Crossing New Horizons : 간단함을 내세운 게임임에도, 2600만명이 즐기고, 조 바이든이 대통령 선거 캠페인까지 진행한 동물의 숲 → LG 65-in. GX OLED 4K TV (65GX) : 밝고 선명하고 얇은 하이엔드 TV. 알렉사 & 구글어시스턴트 호환 → Samsung Sero : 바퀴달린 43인치 버티컬 TV. 폰에서 보던 소셜미디어/스트리밍/게이밍 콘텐츠를 세로로 즐기는 TV EXPERIMENTAL → Climate TRACE : 머신러닝, 적위선 위성 사진 등을 이용해서 환경 오염원을 실시간 추적 → Vollebak Full Metal Jacket :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구리 섬유로 만든 풀 메탈 재킷 → ZeroAvia : 무공해 수소 전기 비행기 → MIT Media Lab AlterEgo : 머리속으로 생각한 것을 컴퓨터에 입력해주는 인터페이스 FINANCE → Remitly Passbook : 이민자들을 위해서 사회보장번호 없이 여권이나 외국인등록증 등으로 은행계좌 개설을 할수 있는 앱 → Upsolve : 복잡한 서류작업엇이 개인 파산 신청을 도와주는 앱 → FairShake : 기업에 대한 클레임 제기 프로세스를 자동화 해주는 무료 서비스. 10~20%의 성공수수료를 받음 FITNESS → Nike Air Zoom Alphafly Next% : 마라톤 2시간 돌파를 가능하게 했던 런닝화 → Hydrow : 로잉머신계의 펠로톤. 실제 강들 위에서 인터랙티브하게 조정운동 가능. → Supernatural by Within : 오큘러스를 사용하는 VR기반 피트니스 앱 FOOD AND DRINK → The Greater Good Fresh Brewing Co Pinter : 다양한 팩을 꼽아서 1주일내에 맥주를 만들어 주는 간단한 가정용 홈 브루잉 키트 → Air Vodka : 곡물 발효가 아닌 이산화탄소를 에틸알코올로 변환하는 과정을 통해 증류하는 방법을 찾은 보드카. 한병 만들때마다 이산화탄소 1파운드를 제거하는 탄소네거티브 → Impossible Pork : 콩으로 만든 돼지 고기 대체품 HOME HEALTH → Oura Ring : 심박수,활동수준,수면,체온을 추적하는 웨어러블 반지. NBA가 선수들에 도입. → Willo : 실리콘 트레이를 입에 물면 손을 쓰지않고 자동으로 양치를 해주는 기기 → FEND by Sensory Cloud, Inc. : 약물없이 소금/칼슘 기반의 미스트를 코로 흡입해서 질병예방을 도와주는 기기 HOUSEHOLD → Narwal T10 : 자동 충전 및 세척 스테이션을 가진 로봇 청소기. 대걸레를 자동으로 세척하고 건조. → CHEF iQ Smart Cooker : 200가지 레시피와 내부의 압력을 가변으로 조정 및 발효 모드 등의 기능을 가진 멀티 쿠커 → Gardyn : AI로 거실에서 과일/채소/허브등을 수직형태로 키우는 실내형 정원 → Sepura : 음식물 쓰레기를 냄새 안나게 처리해주는 기기 MEDICAL CARE → Nella NuSpec Reusable Vaginal Speculum by Ceek Women's Health : 여성 골반검사를 위한 더 나은 검경도구 → mRNA Vaccines : 유전 물질 기반 백신 → Provizio SEM Scanner by Bruin Biometrics : 욕창이 생기기 전에 알아내서 예방하도록 도와주는 스캐너 → Under the Weather IntubationPod : 의료 종사자를 보호하기 위한 투명 덮개 → OraSure OMNIgene Oral : 가정용 COVID-19 샘플 수집키트 → Carrier OptiClean : 이동식 고효율 HEPA 필터 공기청정기 OUTDOORS → Bontrager WaveCel : 더 안전한 헬멧 → CasusGrill : 골판지,대나무,용암석 등으로 만든 1회용 BBQ 그릴. 불꽃없이도 섭씨 315도까지 가열 → YETI V Series : 진공 단열 패널로 되어 몇일동안 차갑게 온도유지가 가능한 스테인리스 아이스 박스 → CrazyCap : UVC 광선을 사용해서 60초만에 물을 살균하는 충전식 병 뚜껑 → Yakima CBX Solar : 태양열 패널을 내장해서 USB포트가 달린 자동차 루프 캐리어 PARENTING → Yoto Player : 오디오 카드를 꼽으면 음악과 책을 재생하는 스피커 → Cradlewise Smart Crib : 아기가 울때, 아기의 수면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서 더 재울지, 깨울지를 결정하는 AI기반 스마트 침대 및 요람 → Mifold Hifold Fit-and-Fold Highback Booster Seat : 쉽게 휴대가 가능한 어린이용 자동차 부스터 시트. → Cybex e-PRIAM : 전기 모터가 내장된 유모차. 내리막을 감지하고 브레이크를 적용하거나, 오르막에서 자동으로 힘을 줘서 부모를 도와줌 PRODUCTIVITY → reMarkable 2 : 종이에 쓰는 느낌을 가진 e잉크 태블릿 → Sarcos Robotics Guardian XO Full-Body Powered Exoskeleton : 90키로그램을 쉽게 들어올릴수 있게 하는 웨어러블 로봇 쉘 → Guardhat HC1 Communicator : 착용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여 위험물질 근접을 감지하고, 핸즈프리 음성통화를 제공하는 산업노동자용 안전모 → 3M Post-it Flex Write Surface : 어디서든 마커펜으로 필기가 가능한 대형 화이트 보드 스티커. 유성매직으로 써도 물로 잘 지워짐. SOCIAL GOOD → Flare : 911같은 의료시스템이 없는 케냐에서 500대 이상의 구급차에 연중무휴 24시간 액세스할수 있는 앱 → Fairphone 3+ :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부품을 쉽게 교체해 오래 쓸수 있게 만든 폰 → Skysource WEDEW : 신선한 식수를 생산하는 이동식 발전기. 나무/땅콩껍질 같은 버려진 식물/동물성 재료를 넣으면 가열하면서 발생되는 수증기를 식수로 응축 → LIXIL Sato Tap : 비누홀더가 달린, 들고 다닐수 있는 손씻기 스테이션 → Loon : 풍선을 띄워서 인터넷을 제공하는 구글의 문샷프로젝트 STYLE → B2, Pli, RunMask : 세척가능한 B2 마스크,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서 만든 Pli 마스크, 운동중에 사용가능한 RunMask → Renewcell Circulose : 버려진 옷에서 면을 회수해서 만든 원료로 다시 섬유를 만들어 옷을 만들어 냄 → CuteCircuit SoundShirt : 30개의 소형 햅틱모터로 청각장애인이 촉각으로 노래를 경험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의상 SUSTAINABILITY → Heliogen HelioHeat : 40만개 거울이 햇빛을 거대한 돋보기 타워로 반사하여 한점에서 섭씨 1천도까지 열을 발생시켜, 태양열로 강철을 녹이고, 시멘트, 전기를 만들어 내는 기술 → FarmWise Titan FT-35 : 제초제 대신 기계학습과 컴퓨터비전을 사용하는 무게 3톤짜리 잡초 제거 로봇.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1cm 정확도로 잡초만 뽑아냄. → Pivot Bio PROVEN : 공기에서 질소를 포착해서 식물이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해주는 미생물 생물 비료 → Tom’s of Maine Recyclable Tube : 고밀도 폴리에틸렌으로 된 재활용 가능 튜브를 사용하는 치약 TRANSPORTATION → Gocycle GXi : 작게 접어지지만, 시속 30km로 최대 80km까지 갈수 있는 전기 자전거. 탈착식 소형배터리로 쉽게 재충전 → Hunter Board : 서스펜션을 내장하고, 시속 54km 까지 속도를 낼수 있는 전동 스케이트 보드. 배터리 교체 가능 → NASA Ingenuity Helicopter : 내넌 화성에 착륙할 Perseverance 탐사선에 들어가 있는 헬리콥터. 분당 2400회 회전하는 2개의 역회전 블레이드를 내장. 빠르고 무거운 물건이동에 적합. → Dimer GermFalcon : 음료수 카트 크기의 항공기 내부를 소독장치. SARS 및 MERS에 효과적이었음. (코로나는 아직 미 테스트) → CLIP : 기존 자전거 앞바퀴에 부착하는 모터로 시속24km 까지 가속해주는 4.5kg짜리 기기. 탈착식으로 자리에 가져가 충전 가능 WELLNESS → Callaly Tampliner : 불편함을 해소한 차세대 탐폰 → Johns Hopkins Corona­virus Resource Center : 존스 홉킨스 코로나 바이러스 정보 센터 → Hatch Restore : 침대용 전등이면서 백색 소음 및 명상 가이드를 통해 수면을 도와주는 기기 → Tombot Jennie : 실제 강아지와 비슷하게 생기고 느끼고 행동하는 정서 지원 로봇 SPECIAL MENTIONS → Solar Water Solutions Adaptive Nozzle Valve System : 태양열을 이용하여 물을 정수하는 기술 → Truepic Foresight : 딥페이크 같은 위조된 사진인지 여부를 판단해주는 소프트웨어 → Perfect Day Milk Protein :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진균류(fungi)를 이용한 비건용 유제품 → City Transformer Electric Vehicle : 매우 작은 2인승 전기 자동차 → Samsung The Terrace TV : 비,눈,폭염을 견딜수 있고 아주 밝아서 화창한 날에도 시청 가능한 실외용 TV → Ethique Concentrates : 샴푸/컨디셔너/로션의 95%는 물이기 때문에 작은 고형물체에 뜨거운 물만 넣으면 사용가능한 환경 친화적인 제품 → Nite Ize TRU Zip : 이빨없는 지퍼로 만들어진 밀봉 방수/방진 팩 → Solar Foods Solein : 재생에너지로 공기에서 추출한 수소와 이산화 탄소 거품을 미생물에게 공급해서 생산한 단백질 분말. → Zauben Model Z : 울과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8피트 높이의 벽에 공기를 자연적으로 정화하는 열대식물을 넣은 공기청정기 → Perfect Corp. YouCam Makeup : 셀카를 찍은 뒤 메이크업 및 머리색,액세서리를 가상으로 시착해 보게 만들어주는 앱 → Yap Lab Outlinx QR Smart Stickers : 제품에 대한 기록을 할수 있는 가상 메모장으로 연결되는 QR 스마트 스티커 → Rocean One : 향이 첨가된 탄산수를 만들어주는 기기 ( SodaStream 과 Keurig 커피머신의 중간 쯤) → Flare Safety Jewelry : 위험 알림 기능이 있는 블루투스 팔찌. 불편한 상황일때 전화오는것 처럼 꾸며주는 기능 제공 → Infinite Objects Video Prints : 최대 24시간 길이의 동영상을 영구 재생하는 사진 액자 → TiVo Stream 4K : HDMI에 연결하는 스마트 TV 기기 → Yale Smart Delivery Box : 안전하게 택배 배달을 받을수 있게 해주는 스마트 박스. WiFi로 잠기는 보안장치가 있고, 배송이 도착하는 시간에 자동으로 열리도록 설정가능. 물건이 도착하면 스마트폰으로 알려줌 → Matatalab Pro Set : 5세 어린이에게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는 세트. 로봇을 프로그래밍해서 움직이게 지시하는 방식. → DouxMatok Incredo Sugar : 설탕과 동일한 단맛을 유지하면서 설탕함량을 30~50% 줄인 감미료 → LG Wing : T자 모양으로 열리는 두번째 화면을 가진 스마트폰 → Lenovo Flex 5G : 세계 최초의 5G 내장 PC 노트북. 최대 24시간의 배터리 수명
- 권정혁 (www.facebook.com/xgu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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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t24-blog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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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꿈꾸는 직업 탐험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
행복을 꿈꾸는 직업 탐험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
행복을 꿈꾸는 직업 탐험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 | Translate
[한국뉴스=양다겸 기자] 인천 동구는 아동의 발달과정에 바람직한 가치관 및 자아의 형성에 도움이 되는 독서프로그램을 통해 구체적인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해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인성을 키워주는 진로독서 프로그램을 지난 29일 만석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오는 12월까지 관내 7개 초등학교에서 운영한다고 말했다. 구에 따르면 진로독서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1~2학년에게는 자아 존중감 향상을 위해 나의 스토리북 만들기 프로그램을, 3~4학년에게는 대인관계 및 사회성 향상 프로그램을 고학년인 5~6학년에게는 우리 마을 직업지도 그리기 프로그램을 제
2019-08-30 16:54:23
행복을 꿈꾸는 직업 탐험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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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UME
El Rey Juan Carlos, tras salir del hospital: "Estoy fenomenal, con cañerías y tuberías nuevas" | Translate
El Rey emérito Juan Carlos ha abandonado el Hospital Quirónsalud Madrid de Pozuelo de Alarcón (Madrid) sobre las 12.30 horas de este sábado tras recibir el alta justo cuando se cumple una semana de la operación cardíaca a la se sometió el pasado 24 de agosto.
Sat, 31 Aug 2019 11:21:55 GMT
El Rey Juan Carlos, tras salir del hospital: "Estoy fenomenal, con cañerías y tuberías nuevas"
Sheet Music s l b l 2 q 1 f 2 | Sheet Music 6
COSMETICS
Crolla mercato operatori telefonici: persi 11 miliardi in 9 anni | Translate
Tumblr media
La guerra alle promozioni da parte degli operatori ha ridotto di oltre un quarto la torta dei ricavi. Il tentativo di attenuare lo smottamento con la fatturazione a 28 giorni che però si è trasformato in un autogol. Il rischio di investimenti ridotti per portare la banda ultralarga nel Paese
Sat, 31 Aug 2019 12:26:25 +0200
Crolla mercato operatori telefonici: persi 11 miliardi in 9 a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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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UP
e-Commerce: Network Performance for e-Commerce and Connectivity in a Digitized Economy
BEAUTY
Social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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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tomeetgirlxyz-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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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온 학부모 이벤트 - [학점은행] [국가공인자격증] [전문자격증] 위크온 할인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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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온 학부모 이벤트 - [학점은행] [국가공인자격증] [전문자격증] 위크온 할인 이벤트
    엄마들을 위한 희소식
위크온과 전주대학교 산하 이러닝 전문기관 비전원격 평생 교육원과 
함께 하는 
학부모님의 꿈 찾기 프로젝트 응원 이벤트를 시작합니다. 
[YOUR VISION, YOUR DREAM]
이제는 당신입니다. 위크온이 당신을 응원합니다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평생교육사 
다문화가정복지상담사
방과 후 아동지도사
자기주도 학습지도사 
30대 이후 학부모님들이 제 2의 인생기회를 삼는 주요한 자격증들이죠
갈수록 
고령화 시대, 자녀 교육복지가 증대되는 요즘 
물가 상승과 경기의 어려움으로 가계소득보다 가계지출이 늘어나는 요즘 
가정을 이룬 여성들이 
제2의 꿈을 쫓아 
필수 자격증으로 도전하고 있는 !!
그래서 
위크온도 응원하고자, 우리 학부모님들의 제2의 기회를 응원하고자
준비했습니다. 
위크온과 전주대학교 재단산하의 비전원격평생교육원과
함께 하는 그 꿈의 실현 한번 살펴볼까요? 
01. 학점은행 학위 취득에서 부터 국가공인 자격증까지 
      보육교사는 영유아의 보육, 건강관리 및 보호자와의 상담 그 밖에 보육시설의 관리운영 등의 업무를 담당합니다. (2005. 1.30 개정 영유아보육법 제2조제5항) 
  고등교육법에 의한 전문대학 또는 이와 동등 이상의 학교에서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보육관련 교과목 및 학점을 이수하고 졸업한 경우 보육교사 2급 자격증을 신청하여 발급받은 후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란 현대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노인, 여성, 가족, 장애인 등 다양한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겪는 사람들에게 사회복지학 및 사회과학의 전문지식을 이용하여 문제를 진단ㆍ평가함으로써 문제해결을 돕고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자를 말한다.
  인간존중 및 사회정의에 대한 사명의식, 봉사정신이 필요하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협동심,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이 요구된다.
      평생교육사는 대졸이상 학력을 가지고 관련과목을 이수한 자 또는 관련업무에 종사한 경력을 가지고 평생교육사 양성과정 이수한 자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교육부장관이 수여하는 자격증을 받은 자이다. 평생교육사는 학력 또는 경력에 따라 1·2·3급으로 구분된다.
  평생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요구 분석 , 기획등을 담당합니다. 
          02. 전문 자격증을 통해 전문직업까지 생각한다면 
      요즘 가장 뜨고 있는 3가지 
날로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상담과 교육을 위한 다문화 가정 복지 상담사 
– “다문화가정 학생 100명 당 1명…인식개선 시급………….. 한국일보 2013. 3. 12”
– “다문화 가정 아내들의 절규 “여보, 제발 때리지 말아요”……서울신문 2012. 10. 10”
– “다문화가정 절반은 경제불안상태-별거 중”
– “다문화가정 이혼상담 건수…2010년 비교 37.3% 증가”
그리고 방과후 학교 전문 적종인 방과후 아동 지도사 
방과후학교 뿐만 아니라 지역아동센터에서의 활동도 가능하며,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지, 학원 강사 경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방과 후 지도교사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매우 광범위하다.
현재 방과후시장이 확대되고 동시에 다양화되어짐에 따라 방과후지도사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며, 
보육교사 및 사회복지사 자격 보유자가 
방과후 아동지도사 자격증 취득시 취업에 용이 하다. 
입학 사정관제 안성맞춤인 자기주도 학습지도사 2급 
– 각 초 ·중 ·고교 및 기관 방과후 교사 취업 
– 도서관, 복지관, 종교기관, 청소년기관 교육관련 업무 취업
– 자기주도학습관 개설 : 자기주도학습방, 학원, 교습소 등 
– 자기주도학습 홈스쿨, 자녀에게 자기주도학습 지도 
<br style=”clear:both;” />
  03. 자기개발과 자녀교육을 동시에 잡고 싶은 학부모님
            아이들과 함꼐 하는 동화놀이 
보육교사의 필수 실무 자격증 
[동화표현놀이 지도사]
  동화표현놀이란 아동에게 들려줄 동화를 재미있게 표현하는 교육활동으로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구연동화활동’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짧고 리듬 있는 신체 및 게임을 위한 
동화, 사자성어동화, 속담동화, 극 놀이 동화에 중점을 두어 
개발한 흥미적 요소들이 주요한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동화표현놀이를 통해 
아동의 주의집중 및 학습의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 지도사를 양성하기 위한 자격과정입니다.
  – 도서관 및 아동관련기관 ‘스토리텔링’ 자원봉사 
– 아동교육기관 언어수업 활용 
– 지역문화센터, 평생교육기관, 학원 등 관련분야 강의 
– 다문화 가정, 장애아동, 노인, 주일학교 등 다양한 현장에서 활용
    아이들의 표현놀이를 통한
표현력, 감각능력 향상시키는
[손 유희 지도사] 
손유희 지도란? 손동작이나 몸동작으로 짧은 이야기를 리듬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표현놀이 지도방법이다. 
소극적인 아이들, 자연현상의 이해, 과학, 숫자놀이,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로 키우기, 음식, 이야기, 창의성 기르는 상호작용 손유희 등 
다양한 ‘주제별 손유희’로 
감각능력 및 표현력 증진, 자존감 향상, 사회성 발달, 어휘력 향상 등을 꾀할 수 있다. 
  – 유치원, 어린이집 파트타임 강사 
– 유아교육기관 교사(주의집중 및 수업시 활용) 
– 초등 교육기관 방과후 특기적성 및 특별활동 교육강사 
– 문화센터, 도서관, 지역아동센터 등 아동 관련기관 교육강사, 고아원, 재활원, 양로원 등 자원봉사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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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ss9900 · 11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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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이 부족한 이유와 이를 개선하는 방법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대화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회성 부족의 주요 특징을 요약하고, 원인과 해결 방법을 비교분석하며, 도움이 될 수 있는 팁도 제공합니다. 사회성이 부족한 이유와 이를 개선하는 방법 대인관계 형성의 어려움사회적 상황 대처 미숙사회성 부족의 원인과 극복 방법주요 원인극복 방법사회성 부족이 삶에 미치는 영향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의사소통에서 여러 문제를 겪습니다. 대화 시작과 유지의 어려움: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어가거나 적절히 반응하지 못함 비언어적 표현 이해 부족: 표정, 몸짓 같은 비언어적 신호를 잘 해석하지 못함 문제설명대화 유지 문제단답형 대답이나 주제 전환의 어려움비언어적 신호 해석 부족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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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ss9900 · 14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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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부족 원인과 해결책 효과적인 극복 방법
사회성 부족은 대인관계와 일상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하고, 상황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팁과 전략을 비교 분석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사회성 부족 원인과 해결책 효과적인 극복 방법 사회성 부족 원인과 해결책 효과적인 극복 방법사회성 부족의 원인과 특징사회성 향상을 위한 실생활 적용 팁사회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 방법비교 분석: 사회성 향상을 위한 실생활 팁 vs 훈련 방법결론 사회성 부족의 원인과 특징 사회성 부족은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상태로, 다양한 원인에 의해 발생합니다. 원인특징심리적 요인낮은 자존감, 불안감으로 인한 대인관계 회피발달적 요인자폐스펙트럼장애, ADHD, 언어 발달 지연 등환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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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ss9900 · 1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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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낮은 말투가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
사회성 낮은 말투가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 사회성 낮은 말투가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과 개선사회성이 낮은 사람의 말투 특징과 대화 패턴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말투자기중심적인 대화 방식부정적인 말투와 비판적인 태도불명확한 의사 전달과 대화 문제사회성 높은 말투로 개선하기 위한 방법 사회성이 낮은 사람의 말투 특징과 대화 패턴 사회성이 낮은 사람들의 말투는 공감 능력 부족, 자기중심적 대화, 부정적인 태도, 그리고 불명확한 의사 전달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대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갈등과 오해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의 말투 공감 능력 부족은 사회성이 낮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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