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열한번째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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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링"
*스케일링
우리집 연말 행사는 치과에 가는 일이다.
2년 전부터 막내를 끌고 치과에 데리고 가서 스케일링을 받게 했다.
작년에는 둘째도 같이.
그리고 올해엔 엄마도 같이 갈 예정이다.
그냥 문득 내가 엄마의 건강을 서서히 하나씩 강제로라도 관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나도 흰머리를 뽑아주며 5원인지 50원인지를 흥정하는 시간이 괜스레 짧게 느껴질까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30대에 들어서야 엄마도 환갑을 바라보고 끝없는 줄타기를 시작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서.
조바심이 난다.
별스럽지 않게 스케일링 받고 투닥거리며 집으로 걸어갈 연말을 기대하며.
-Ram
*스케일링
언제부턴가 일 년에 한 번씩 내가 교정했던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치 피부과 시술(해본 적도 없으면서)을 하고 나온 것처럼 마음이 후련하면서 더욱 나의 몸의 일부가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들었다. 기분 좋음은 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 온 이후로 치과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일단 말레이시아엔 기본적으로 치과 치료 비용이 한국보다 비싸고(병원도 마찬가지. 현지 보험이 없다면 더더욱 비싸짐), 여기서 오래 살던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충치가 있어도 이곳에서 완벽하게 치료하지 않고 대충 급한 대로 수습만 한 후 한국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역시 병원 진료도 마찬가지!) 아무튼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선 작년에 편도염 때문에 두어 번 병원에 간 것과, 재밌게도 난생처음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의원(의사선생님은 한국인)에서 침을 맞은 것 빼곤 치과엔 발도 들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충치로 인한 통증은 없지만, 나도 모르는 새에 치아가 썩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케일링도 받지 않았으니 치석은 쌓여만 가겠지.. 언젠가 한국에 가면(아마 내년이 유력�� 것도 같은데) 나도 (여기서 오래 산 교민들의 말을 빌려) 싹 한 번 병원을 돌아야 할 것 같다.
-Hee
*스케일링
1. 치석이 붙어있다가 떨어져 나간 자리의 굴곡을 계속 혀로 훑어본다. 치석마저도 한동안은 몸의 일부였었다고 사라진 뒤의 난자리가 서운하기라도 했을까, 전선을 자꾸만 물어뜯는 고양이를 타일르듯 스스로를 말리는데도 혀는 어느새 굴곡에 닿아있다. 꽤가지런한 줄 알았던 치열의 무질서를 마주하며 나도 모르게 충격을 받았던 걸까. 생니가 뽑혀나간 것도 아닌데 상실감에 빠진 혀를 통제하는 일이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뭐든 다 된다는 말은 이제부터 할 수 없겠다.
2. 해가 지날수록 자의식이 점점 더 쇠약해지고 있는데 이걸 성장의 한 갈래로 봐야 할지, 병원에 가봐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Ho
*스케일링
나는 치과를 가는 것을 즐긴다. 큰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커다란 의자가 움직이는 각도, 고주파음이 어딘지 모르게 편안하다. 그렇지만 치과를 커피샵 가듯이 할 순 없다. 스케일링은 내가 주기적으로 치과를 갈 수 있는 빌미다.
"어서오세요." "스케일링 하러 왔어요."
위이잉.
나는 레코드 샵을 찾듯 치과를 찾아다녔다. 기계에서 샘물처럼 물이 솟아오르고, 고주파 음악을 즐기다가 가글을 하고 붉게 물든 입가를 닦는 경험은 어딘가 모르게 중독적인 면이 있다. 옆 체어에 아기라도 있으면 이 쾌감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때문에 예약은 오전 10시나 오후 세 시 같은 학생들이 잘 오지 않는 시각이 좋다.
스케일링 주기가 돌아왔다. 일을 하는데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음악회 티켓을 고르듯 후기가 좋은 병원 하나를 미리 찾아놨다. 이 병원은 테이블 간격도 넓고, 최신 기계를 들여왔단다. 예약 시간까지 기다리느라 혼났다.
"어서오세요." "스케일링 하러 왔어요."
"네 잠시만요." 그때였다.
"으아아아앙"
간호사 어깨 너머, 그러니까 복도 너머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는 아가다. 이 시간에 있어선 안 되는데.
"괜찮아요, 괜찮아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음악 감상에 방해되는데. 안되는데. 그래도 이 병원은 환자 의자와 의자 사이가 넓고, 칸막이가 되어 있으니까. 내 스케일링에는 방해가 덜 될 거야.
"스케일링이시죠? 안내해드릴게요."
간호사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나무 원목이 질감을 드러내며 모자이크처럼 배열되어있었다. 복도를 걸으며 아이의 울음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지만 문제 될 건 없다. 다른 방으로 들어갈테니까. 복도 질감이 고급스럽다. 이 촉감�� 티크 원목인가? 스케일링을 즐기기에 딱 좋은 클래식한 복도다. 이 정도 소음 쯤이야. 공연장에서도 복도가 불편한 곳들이 있지. 본 공연만 만족스러우면 다 용서할 수 있다. 마음을 안정하며 내 공연에만 집중하자.
낮고 은은한 조명이 끝나갈 즈음. 드디어 내가 진료 받을 테이블이 보였다. 그런데 웬걸. 진료 체어의 간격이 옆 아기와 닿을 것 처럼 가까웠다. 아이 울음이 우렁차다. 벌써 한쪽 귀가 얼얼한 것 같다.
"진료실이..." 나는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간호사는 나를 돌아보며, "아, 인테리어 중이라서 이렇게 모셨어요. 조금 불편하시죠?"
그는 멋쩍게 웃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옆에는 내가 원치 않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옆자리 음악은 발까지 구르고 있었다. 나는 어딘지 모르는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눌렀다. 그래. 스케일링만 잘 받으면 돼. 내가 좋아하는 고주파음. 물소리, 내 이 구석구석을 뽀득뽀득 미는 듯한 기분. 이것을 위해 6개월이나 기다리지 않았나.
의사 선생님이 앉았다. 선생님은 인사치례처럼 내 상태를 보고는 간호사님께 기계를 넘길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아니, 공연 시작이다.
"안녕하세요. 잠깐 이 상태 좀 보겠습니다."
'얼른 대충 보시고 스케일링 시작해주세요. 가능하면 옆자리 관람객좀 내보내주시고요. 제 자리에도 문제가 있어요. 저는 분명 칸막이 있는 R석으로 예약했는데 여긴 B등급 좌석이라고요/' 나는 건너로만 들을 수 있었던 진상 고객 멘트가 목 끝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입은 이미 벌어져있었고, 나는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스케일링이 간절해 보이고 싶지 않다. 무릇 교양 있는 시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은연중에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리라.
"어라. 잠시만요." 그의 목소리가 심상찮다. 그는 몇 군데를 톡톡 두드리더니 쓰읍 쓰읍 입소리를 냈다.
"이 하나 상태가 좋지 않아서요. 오늘은 발치를 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아니다. 이가 생각보다 심각해요. 발치 해야 할 것 같아요."
옆 체어의 우렁찬 울음 소리가 점점 클라이막스를 향하고 있었다. 이 소리는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있음을 천명하듯 크고 굵어졌다.
따끔한 바늘이 잇몸을 찌르고 들어왔다. 둥글고 두꺼운 쇳덩이가 내 이와 잇몸 사이를 묵직하게 죄었다.
"잠깐 아픕니다." "우드득"
진료가 끝났다. 나는 스케일링 대신 두꺼운 솜과 진통제, 다음주 재방문을 처방받았다. 귀 한쪽이 아직도 먹먹하다. 나는 치과가 싫다. 스케일링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치과 기계는 소음 그 자체이며 위험한 곳이다. 치과는 돈만 밝히는 의사가 득시글 모여 어떻게하면 회전율을 높일 수 있을까 탐욕스럽게 손을 비비는 곳이다. 치과를 생각하면 아직도 뽑은 이가 아리는 듯 하다. 나는 치과가 싫다. 너무. 많이.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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