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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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훔쳐보는것을 좋아한다. 몰래 보는 것이라고 표현을 바꾸겠다.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찍히는 누구나 의식을 하기 마련인데, 그런 의식의 상태 말고 오롯이 사람이 스스로의 세계에 있을 때, 관찰하는 것이다.
그 무의식에서 나오는 행동들은 꽤나 소박하고 재밌다.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 사람이 특이해 도촬을 했다.
그는 검정색 작은 노트에 펜으로 뭔가를 열심히 적고있었는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토마토, 간장, 양파, 오이… 내가 좋아하는 것은 뭐지? 에디터라는 직업은 무엇일까…?‘
직업이 에디터 인가보다. 노트에 뭔가를 적는 이런 아날로그한 모습을 두눈으로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나는 재미�� 느꼈다.
핸드폰으로 적는게 아니라 펜으로 적는 행위를 보��, 에디터인게 이해가 갔다.
나는 어렸을 적 아빠의 등산용 망원경으로 산을 구경했다. 고라니는 귀여운 생김새와 달리 이빨이 밖으로 나와있고, 청설모는 굉장히 열심히 자기 꼬리를 만진다.
그러다 아파트 옥상에서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다가, 사진과 영상을 찍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작은 노트를 쓰던 에디터 직업의 사람은 곧이어 노트를 접고, 핸드폰을 꺼내들어 뭔가 열심히 찾기 시작한다. 음식 종류인데, 아무래도 뭘 먹을지 고민하다보다.
아날로그 필기를 선호하던 사람은 어떤 음식을 선택하려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계속 힐끔 힐끔 관찰했다. 타코다.
버스 안에서 매우 자기 할일에 분주했던 에디터는 곧 버스를 내렸다. 아마 애인과 타코를 먹으러 갔을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신의 활동이 분명하고, 누군가를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의 세계가 분명한 사람이 멋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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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사과를 샀다. 번듯하고 커다란 사과 무리의 귀퉁이에 자리한 그 사과들은 정말 작고 상처가 있거나 볼품이 없었는데, 매직으로 ‘아픈 사과 2000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라면 사지 않았겠지만 아픈 사과라는 말에 집으로 가져왔다.
가끔 독자가 인용한 내 글을 친구가 메시지로 링크해 보낸다. 그렇게 인터넷에서 사진 에세이를 봤다. 일하는 공장 그라인더에 남편의 발등이 잘리는 사고를 겪은 사람의 글이었다. 응급실의 오열과 고통의 세월을 통과한 후, 그의 발은 서서히 아물어 있었다. 그 에세이에는 내가 쓴 책의 문장을 인용해 ‘행복과 불행 그 사이에는 다행도 있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작가라고 자신이 쓴 글의 의미를 꿰뚫는 건 아니라, 되레 어렴풋했던 문장이 타인의 인용으로 더 선명해질 때도 많다. 1980년대 버스 운전석에는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의아한 기분에 빠지곤 했는데, 이젠 인생의 대부분이 행복도 불행도 아닌 다행으로 채워진다는 걸 간신히 알게 됐다. 수많은 아무 일 없음과 별일 없음으로 우리는 오늘도 간신히 행복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 아픈 사과를 베어 물며 시인 최정란의 시 ‘썩은 사과의 사람’을 읽었다.
가장 좋은 사과는 내일 먹겠다고 / 사과 상자 안에서 썩은 사과를 먼저 골라 먹는다 / 가장 좋은 내일은 오지 않고 / 어리석게도 / 날마다 가장 나쁜 사과를 먹는다 / 오, 제발 이미 다 나빴으니 더 나쁠 게 없기를 / 나도 안다 / 가장 좋은 사과를 먼저 먹기 시작해야 한다 / 가장 좋은 사과를 먹고 나면 / 그 다음 사과가 가장 좋은 사과가 된다
삶이 꽃이라면 매 순간 활짝 피어나고 또 훌쩍 지는 동백처럼 살 수는 없는 걸까. 친구의 SNS 상태 메시지는 Life is suddenly다. 이제 나는 인생의 일들이 계획한 대로 일어나지 않고, 사건은 무질서하게 벌어진다는 걸 알만한 나이에 이르렀다.
그렇게 제일 좋은 걸 아껴 먹던 시절의 나와 힘들게 결별하면서 말이다.
백영옥의 말과 글 / 173. 아픈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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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휘어지는 편을 택한 것처럼 느껴지는 날씨.
새벽이 어디서 부터 달랐을까. 별 것 아닌 것에도 이상하게 에너지가 쉽게 쓰이는 날. 뭔가 쓰지 않으면 날씨 만큼 고꾸라질 것 같아서 오는 버스 안에서 내내 일기를 썼다.
안경까지 끼고 다른 종류의 활자로 이 광활한 일기를 쓰고 보니 모양새가 귀엽다.
오늘 안에서 오던 불만과 불안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이유를 또렷이 알고 있으니 그것은 행동에 옮기면 될 것. 중심이 흔들린다고 느낄 땐 일단 현재에 집중하기.
너머엔 아무 일이 없고 아주 오래 무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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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지 못할 편지
C야, 잘 지내고 있어? 네가 르완다로 떠난다고 그랬었나. 지금 네가 있을 거 같은 곳 시간을 보니 다섯 시네. 거긴 아직도 4월 1일이겠구나. 이번 생일에 축하한다고 연락하려고 했었어. 3월 8일은 수요일이���고, 나는 서울에 가고 있었지. 버스 안에서 지금처럼 네가 있을 곳 시간을 검색해 보곤 생일 시간에 맞춰서 카톡을 보내려고 했었어. 하지만 결국 못 보냈고, 보내지 않았지...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넌 서운했을까? 겨울 이후로 나는 너한테 아무런 연락을 안 했으니까.
너는 내가 정말 진실성 있게 응원하고 믿었던 다섯 사람에 포함되던 사람이었는데. 네가 빠진 그 자리에는 J가 들어왔어. 널 자주 만났듯이 요즘은 J를 자주 만나서 밥 먹고, 커피를 마시고, 술을 마셔. 너와 만났을 때에는 술도 없었고, 담배도 없었는데. 평소에도 자주 마시지 않는데 요즘은 더욱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데 J가 속상해하던 날 술 마시자고 그러면 피해야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술 마시자 그랬을 때 기꺼이 마셨어.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내가 그런 행동을 한 것 보면 J를 정말로 내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싶더라.
내가 지금 무얼 하다가 네 생각이 났을까... 내가 지금 무얼 하다가 너한테 편지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네가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에 너희 가족들이 매장에 왔었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너와 너희 집, 너희 식구들은 나한테 긍정적인 기운과 영향을 끼친다고 말했지. 아무렇지 않게. 나는 이제 너와 만날 일이 없을 건데... 너네 집에 가는 일도 없을 건데. 너한테서 받는 긍정적인 기운도, 영향도 없을 건데.
네가 그랬잖아 나는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확실한 것 같다고. 근데 넌 변함없더라 너는 너를 잘 감추며 살고 있었어. 이기적인 거,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거. 정말 끝까지 네 생각만 고집하고 남을 이해하지 않는 거. 너는 이런 나라가 있구나만 봤을 뿐이더라, 나는 그 나라에 작은 마을까지 섬세하게 보고 생각을 했을 뿐인데... 그래서 우리가 그날도 부딪혔나 싶더라.
그냥, 너는 너답게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
나는 앞으로 더 나아갈래. 네가 나 많이 달라졌다고 그랬잖아 근데 나는 내가 느끼기에도 많이 달라졌거든. 나는 늘 내면을 뜯어고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데... 노력에 대한 결과물이 있으니 다행인 거지. 더 뜯어 고쳐서, 널 다시 볼 날이 있겠냐마는 그때는 노력하지 않고 일정한 사람이 되어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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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런 눈물도 안나네요
헤어지는 준비가 된건가?
��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생각 뿐.
매를 맞을 순서를 기다리다 내 차례가 됐을 뿐.
마지막 모습은 뭐일거라 생각했을까요?
이게 아닌건 확실한데.
나의 존엄성 때문인지 상대에 대한 배려인지
헤어짐이 너무 밋밋하네요
한동안 행복했고,
한번도 못 느낀 감정에 신나고,
그랬었는데…
후회되는 건
“I fall in Love too easily”
작고 귀엽고 당찬 사람!
버스는 달리고
그 뒤로 그 뒤로
풍경은 흘러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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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린의 입장) 그들의 첫인상
[3학년]
시미즈 키요코 / 음...키요코씨와 같은 반이죠. 키요코씨는 엄청 이쁘셔서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죠. 그래서...가끔 다가가는 게 힘들지만, 그걸 아시는 건지 키요코씨는 항상 일부러 옥상에 찾아오셔서 대화를 먼저 해주셔요. 정말 친절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가끔 같이 공부하는 것도 재밌어요. 잘 가르쳐 주시기도 하구요. 저에게 용기를 주시기도 하고, 제 피아노 연주도 들어주시고 칭찬도 해주셔요. 여러모로 항상 고마운 분이죠. 꼭 키요코씨와 야치씨와 같이 바닷가에 가고 싶네요.
쿠로오 테츠로 / 쿠로오씨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만났어요. 그 때는 헤드셋을 놔두고 왔었거든요. 그 날은 이상하게 버스 안에 사람이 많더라구요. 보통 제가 타는 시간에는 별로 없었는데...그래서 머리도 어지러웠기도 하고 버스가 흔들려서 넘어지려고 할 때 쿠로오씨가 붙잡아 주셨어요. 그 때 쿠로오씨가 붙잡아 주시지 않았으면 전 한 달동안 병원에서 같혀 지내야 했을거에요. 그래서 쿠로오씨에게는 항상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이카와 토오루 / 오이카와씨는,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만나게 된...음...일단 노코멘트 할게요. 어쩌면 악연일 수도 있겠죠. 저는 솔직히 오이카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야 오이카와씨 주변은 항상 시끄럽거든요. 그래서 항상 헤드셋을 가지고 다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죠. 그리고 항상 팬분들이 있으니 더 시끄러운 건 당연하기도 하구요. 과거의 제가 오이카와씨를 봤다면 당장 테이저건을 쏘겠지요. 과거의 저는 특히 소음에 민감 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민감하긴 했지만 참을 수는 있었거든요. 일단 최대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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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미하루 린나(서태린) / 음...일단 '린나씨'라고 부를게요. 린나씨는 중학교 때 알게 된 사이에요. 15살이라는 나이에 국가대표라니...저와 다른 길을 걷고 계시는 분이에요. 그리고 제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공항에서 다시 보게 됐죠. 공항에는 기자가 많더라구요. 처음에는 공항에 있던 사람이 누군지 몰라서 무시하고 지나치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린나씨가 초조해 보여서 바로 도와줬죠. 저를 보고 들떠하는 게 보기 좋았어요. 지금은 같이 살고 있어요. 전 같이 아침밥을 먹고 학교 가는 시간을 좋아해요. 그 시간에는 린나씨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린나씨의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재밌거든요. 설령 그게 같은 말을 반복해도 말이죠.
아카아시 케이지 / ...아카아시씨는 처음에 린나씨 때문에 잠깐 스쳐본 사람이였죠. 그 이후로 큰 접점이 없을 줄 알았는데...제가 방과후에 음악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때, 창문 쪽에서 약간 부딫힌 소리가 들렸어요. 그래서 연주를 멈추고 창문으로 가봤죠. 창문을 열어보니 그쪽에는 아카아시씨가 계셨구요.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소리가 좋아서 누가 연주하는 지 궁금해서 와봤다고 하더라구요. 일단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서 번호 교환이라도 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얌전해 보이셨어요. 분명 언젠가 접점이 있겠죠.
사쿠사 키요오미 / 사쿠사씨...그러네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어쩌다가 친해졌죠. 그 날 축제 때 하필 헤드셋이 고장나서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사쿠사씨가 도와줬었거든요. 분명 사쿠사씨는...음 아니에요. 아무튼 다른 사람들은 사쿠사씨를 무서워 하시는 거 같은데요...아마 특이한 성격 때문일까요. 그래도 저는 편안해서 좋은 거 같아요. 조용하잖아요? 물론 요새는 연락이 없어서 어떻게 지내는 지 모르겠네요. 뭐, 언젠가는 다시 만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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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야치 히토카 / 히토카씨는 키요코씨 때문에 알게 됐어요. 그런데 항상 저를 보면 불안해 하더라구요. 그리고 주변을 엄청 자주 보는 거 같은데...혹시 제가 불편 했던 걸까요? 아무튼 히토카씨는 엄청 귀여우시고 친절하셔요. 정말 잘 챙겨주고 싶은데, 자꾸 괜찮다고 하면서 피했죠...그리고 히토카씨는 공부를 잘하시는 거 같아요. 정말 대단하신 분이에요. 그리고 보호 해주고 싶은 생각을 들게끔 하는 분이죠. 꼭 히토카씨와 키요코씨랑 같이 바닷가에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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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분실물 센터 / 에티오피아 메켈레 /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 에트라 에일 활화산 / 다나킬 화산 투어 / 에티오피아 아와사 / 내가 도착한 에티오피아 / 호스트 아쎄메나우 / 아내 우발렘 / 안젤라(신맛 에티오피아 전통음식) / 커피 / 에티오피아 샤샤마네 / 누구나 나만의 지도를 그릴 수 있다 / 지인 ; 예쁜 이름 ; 역사나 소설 관련 장소 ; 전혀 모르는 곳 / 애티오피아 모얄레 / 이 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 한국인 여행자 지환이 / 케냐 모얄레 / 케냐 나쿠루 / 여행자의 물욕 / 카우치서핑 고아원 / 호스트 윌미나 / 우갈리(케냐 전통음식) / 캘리그라피 펜 색연필 선물 / 우간다 캄팔라 / 슬럼가에서 / 호스트 스티븐 / 케냐 나이로비 / 르완다 키갈리 / 세계여행 중에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보내는 방법 / 대학살 후투족 투치족 / 오토바이 택시 보다보다 / 우간다의 스티븐이 부러워할 정도로 최근 발전 / 엄마 생일선물로 ���텔 1박 /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 경험치가 +10 되었습니다 / 르완다->탄자니아 32시간 버스 / 현지 교민 덩이 오빠 / 탄자니아 잔지바르 / 여행 중에도 휴가가 필요해 / 파라다이스 / 푸른 해변 / 나쿠펜다(스와힐리어 사랑해) 백사장 랍스타 / 호스트 애셔리 / 탄자니아 ; 탕가니카+잔지바르 / 스톤타운 / 프리즌 아일랜드 / 거북이 / 파제 / 타자라 열차 / 이틀간 멈춘 열차 안에서 /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 잠비아 카피리음포시 2일 연착 2박 3일에서 4박 5일만에 도착 / 잠비아 루사카 / 캣콜링 수난기 / 호스트 조나단 / 지환이 / 가방 분실 신고 경찰서에서 경찰이 희롱 / 짐바브웨 빅토리아폴스 / 순식간에 행복해지다 / 잠비아 빅토리아폭포에 약간 실망 / 짐바브웨 불라와요 / 아만다의 간이미용실 / 호스트 놀리지 / 남편 템비 / 레게머리 / 남아공 케이프타운 / 온 우주가 나를 돕는 날 / 한국인 민호 아저씨 / 희망봉 / 볼더스 비치 펭귄 서식지 / 플라밍고(홍학) / 브라이(남아공 바베큐) / 시그널힐 야경 / 테이블마운틴 방문은 실패 / 다음 기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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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duteurtre.com/category/romans/la-petite-fille-et-la-cigarette/ )
두 개의 원문 모두 재고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결론이 정반대라는 점만 빼고. 국가법에 따라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형집행 전에 형벌시행법 제47조항을 내세워 본인의 당연한 권리만을 주장했다. 그 옆에 있던 교도소장 쾀 라오 칭씨는 그에게 이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내부규정 제176조 b항을 엄격히 시행했다. 시민의 건강을 지키자는 협회의 압력에 의해 급하게 제정된 이 부칙 조항은 교도소 울타리 내에서의 흡연을 금지하고 있었다. 사형수의 건강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은 잔혹함의 정제된 형태로 보지 않는다면 확실히 난처해질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로운 이런 조치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았다. 이와는 다른 관점을 대변하는 제47조항은 비록 그 효력이 일시적으로 상실되었지만 죄수들에게 명백한 방식으로 최후의 의지를 내뿜을 수 있는 담배 몇 모금을 허락했다. (p7)
"요한슨 씨, 부탁드립니다만 이 교도소의 내부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 최후의 의지를 표명해주셨으면 합니다." (p8)
"딱 한 대만 피우면 됩니다. 전 그럴 권리가 있는 걸요, 소장님." (p10)
"저는 그저 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을 따름입니다." 점점 긴장되는 분위기 속에서, 간수와 원고 측 변호인 그리고 피고 측 변호인 사이에 있던 요한슨이 한번 더 말했다. (p12)
"교도소장 님, 우리는 지금 형 집행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법적 전례가 없는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대법원의 의견을 알아봐야 합니다." "헛소리는 집어치워요!" 그녀의 적수가 되받아쳤다. "항소는 기각되었어요. 대법관께서는 형을 감면해주지 않았소이다. 법적으로 저 남자는 이미 죽은 몸이에요!" 주름진 이마에 안경을 쓴 대머리 남자는 인텔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인문학 교수일 거라 쉽게 단정지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내겐 이 대기실 안에서 숨 죽�� 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 가족이 있습니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이 있다고요. 십 년 전부터 저 비열한 작자가 경련을 일으키며 죽음의 첫 테이프를 끊기를 기다려온 상처 투성이 가족이 있단 말이오!" "난 말입니다. 내가 요구하는 건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 전부입니다." (p16)
데지레 요한슨은 간수를 따라 죽음의 복도로 나갔다. 그 복도를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사람은 그가 최초였다. 그럼에도 그는 삶을 향해 뒤돌아선 그 순간, 타인이 일부러 그의 삶을 복잡하게 만들었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무튼 전 대단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p21)
인솔교사들은 전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도리어 새로운 승객이 다른 사람들을 밀어붙이고 들어올 때마다 원을 그리듯 버스 안을 힐끗 돌아보며 아이들이 자기 자리에 안전하게 잘 앉아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다. 꼬마들을 보호하기에 안성맞춤인 그녀들은 버스 좌석에 대해 우선권이 있는 노인들을 특별 대우할 만한 이유를 도통 알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어른보다 존경받는 그런 머나먼 시대를 떠올리는 건 오직 나뿐인가? 아무튼 나는 이토록 버릇없는 태도의 피해자인 어른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소란스런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정말로 인정해야 한다. 몇몇은 아이들에게 호감을 보이려고 미소를 짓고 손짓을 보낸다. 또 제일 무모한 사람들은 학교에서 무얼 했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이름은 무언지, 어디 사는지를 묻는다. 그 밖의 사람들은 잊은 것처럼 보인다. 하루 업무에 지친 몸, 스트레스 받은 영혼. '성인들'은 이 유치한 군중을 다시 소생하는 종의 이미지이자 살아 남게 될 인류의 이미지, 세상의 미래라는 가슴 뭉클한 이미지라도 되는 듯 지켜본다. 그리고 이런 생각으로 자기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 앞에서 기운을 차리는 것 같다. 이처럼 솟구치는 사랑과 마주한 두 교사는 자기들의 거친 태도를 버리고 어른들 세계와 아이들 세계 사이의 중재자라도 된 듯 버스 한가운데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용감하게 고개를 치켜든다. (p26-27)
아이들의 등장이 대부분의 사람들을 부드럽게 만들지는 몰라도 타인의 신경을 날카롭게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걸 맞춰주면서 우리의 권리는 거부당한 일, 그리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자기들 집에 있는 거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이들이 드러낸 거만함,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는 영원한 굴욕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쳐다보는 일을 애써 피하고, 그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비웃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여러 명의 피해자를 냈던 보조교사들의 지���적인 감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절차는 매번 똑같다. 아이들을 향한 적대적인 태도는, 결국엔 어린아이들에게 위험한 모든 잠재적 요소란 요소는 전부 다 근절시키려고 눈에 불을 켠 인사과에 끌려가 주의를 받는 것으로 끝이났다! 지난 육 개월 동안 열 명가량의 용의자들이 예방 조치에 의해 사무실 바깥으로 전근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시 직원들은 자기들의 젊은 신도들을 보호��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상이 내가 매일 저녁 행정도시를 나와 귀가하면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지옥이다. 버스에서 일어났던 하찮은 사건을 참을 수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미 나의 하루를 망쳐버린 조무래기 애들 집단이 계속해서 계단에서, 길에서, 버스에서, 곳곳에서 나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만 같았다. 악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하게 된 상태까지 악이 퍼진 것처럼. 왜냐하면 이제부터 이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법을 대표하니까. (p35-36)
"우리가 보기에도 그 방법이 사형에 관한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 이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담배반대론자들이 공포를 퍼트리는 이런 청교도적인 세상에서 인간의 최후 의지란 너무나도 순진하게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강조하면서 만족했으면 합니다. 감동의 어록에 남을 멋진 메시지니까요." "좋아." 목소리 하나가 대답했다. “하지만 자네가 좋든 싫든 간에 이 모든 사태는 범죄자-담배-사형이라는 상징적인 삼각관계를 더 강력하게 만든다네. 그리고 그건 담배 시장을 놓고 볼 때 당연히 나쁜 일일세." (p53)
"그러니까 이 경우 사형수 데지레 요한슨은 자신의 최후의지를 행사할 권리가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선택대로 담배 한대를 피울 수 있으며, 담배는 교도소장이 제공하도록 한다. 또한 교도소장은 교도소 건물 내에 합법적으로 상주하고 있는 담배반대론자들과의 합의를 위반하지 않도록 할 것이며, 다른 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요한슨의 최후 의지 실행을 사전에 분명히 알리고 여기에 준하는 흡연 구역을 (교도소 울타리 안쪽이나 바깥에) 정비해야 한다. 최후의 담배가 다 타자마자 데지레 요한슨은 그에게 언도된 사형 선고에 의거해 죽음의 주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p62)
먼 훗날 내 실존에서 가장 험난한 시기인 삼십대가 되어서까지, 정확히 열세 살짜리 중학생이 하는 것과 똑같이 담배를 태우기 위해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찾아다니고, 현행범으로 잡히지 않으려고 빗장을 지른 대문 뒤 환기가 충분히 잘 되는 장소에 틀어박히게 될 거라고 내가 짐작이나 했을까? 어렵사리 쟁취한 이런 자유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조치란 명목 아래 혹독하게 억압받으면서 그토록 빨리 무너질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상대적으로 자��롭던 시절이 지나간 후, 요새 아이들은 언제나 자기들에게 더 많은 권리가 베풀어지는 걸 보는 데 반해, 내 사회생활은 금기와 함께하는 유년 시절로의 회귀로 풀이되리란 걸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p64)
난 정말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뭔지 말할 수가 없다. 어느 날부턴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싶어하기 시작했다. 별안간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고 그들을 따라다니며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욕구에 이상적으로 맞춰진 세상을 건설하여 마침내 자기 안에 숨겨진 어린아이를 되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란 없는 듯싶었다. 꿈은 뒤집혔고 어른들은 청춘을 두 번 다시 다다를 수 없는 이상적인 모델로 바라보았다. 이를테면 자발성, 순수함, 산뜻한 피부, 까딱없는 건강 등이 그랬다. 텔레비전에서 리얼리티 쇼가 처음으로 방송됐을 때 출연자들은 이미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성숙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반대로 이들은 노래하고 춤추고 기숙사의 공동 침실에서 잠들며 시시한 일로 싸우고 그런 다음 서로 입맞춤을 나누며 공개적으로 용서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같은 곳으로 자발적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어른들의 우스꽝스런 강박관념에서 해방된 이들은 대중을 향해 자신들의 단순함을 전시했는데, 그 대중이란 광고 시장의 주요 고객인 어린이들 이 주를 이루는 텔레비전 시청자였다. 아이들은 사회의 꿈이 되었으며 사회의 속박을 견뎌내도록 해주는 사람이 되었다. 마치 우리가 성년을 꿈꾸며 유년 시절을 견뎌냈던 것처럼.. (p65-66)
작년까지는 그래도 흡연실 몇 군데가 행정도시 울타리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 '일찍 죽을' 사람들은 직장동료들의 멸시의 시선에 과감히 맞서 싸우고 나서 마치 범법자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났다. 하지만 놀이방이 빌딩 구석구석까지 확대된 후부터는, 그리고 그 어린이들이 이 집에서 최고의 특별 대우를 받는 손님이 된 후부터는 독한 담배를 조금이라도 허용하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많이 해칠 수 있는 존재였다. 우리는 그저 문학교수 자격을 갖춘 사람, 법학사, 한 가정의 가장, 양심적인 공무원 따위에 불과한 가련한 패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무래기들이 니코틴 중독에 단일 초라도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때엔 질문 사절! 전면 금지! 우겨봤자 소용없다! 흡연자들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자기들의 악습을 고치고 중독을 치료할밖에. (p67)
정확히 바로 그때, 화장실 문의 손잡이가 구십 도 돌아간다. 난 우월감에 휩싸인 채, 내가 볼일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불청객을 거만하게 경멸해본다. 그리고 강력한 도전의 의미로 새 담배를 꺼낸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문이 반쯤 열리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소심한지, 내가 빗장을 불완전하게 당겨서 걸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허를 찔린 나는 그 순간 조막 만한 손 하나가 나타나는 걸 본다. 이어 안경을 쓰고 구름같이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다섯 살짜리 소녀의 어리벙벙한 표정과 맞닥뜨린다. 현행범으로 딱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된 나는 고작 어린애일 뿐이니까 겁먹을 필요 없다고 판단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쳐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기서 당장 나가! 사람이 있는 걸 보고도 그래!" (p81-82)
괴물은 도처에 깔려 있다. 문 밑으로 슬그머니 비집고 들어오더니 지금은 라티파의 머릿속에까지 들어가 있다니! 신경질이 난 나는 도통 잠을 청할 수가 없어 침대 옆 머리맡 스탠드를 켜고는 오늘 아침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자유주의 전신]을 집어든다. '제일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이번 주 특종은 대법원이 결국 사형집행 전 데지레 요한슨에게 최후의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고 판결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 뉴스가 도리어 날 기쁘게 해준다. 불법 흡연자라서 조마조마했던 내 불안한 마음에 희망의 서광이 비치면서 긍정적인 전망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p85)
진정한 위험은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고 확신하는 순간에 찾아든다. 소심하고 자신 없는 성격인 나는 겸허한 승리를 향해 신중하게 전진한다. 그러다가 내가 자랑스럽게 고개를 드는 충만의 순간에 꼭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우스꽝스러운 일이 나를 덮치고야 만다. 이미 수도 없이 경험한 일이다. 처음에는 불쑥불쑥 솟아나는 자신감과 승리감을 경계하며, 더 이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쩨쩨하게 겸손하게 소심하게 처신하지 말라고 귓가에 속삭이는 간사한 목소리를 뿌리친다. 그러나 결국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꼬드기는 그 목소리에 넘어가 독 오른 향기에 취하고 만다. 나는 영광의 길로 의기양양하게 나아간다. 하잘 것 없는 걱정거리는 잊기로 마음먹고. 바로 그 순간 쓰레기통이 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이다. (p86)
난 점잖은 제스처로 동료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귀가했다. 철저하게 사전 준비를 했는데도 이렇게 낭패를 보게 되어 속상하고 분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몇 년 전부터 난 주위의 광기와 시대의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써왔다. 난 차도 없고 자식도 없고 텔레비전도 거의 보지 않으며, 내 의사에 반해 나를 보호해주려는 사람들의 말도 못 들은 척해왔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내일, 내 사랑, 그리고 감미롭게 지켜온 우리의 인생에 헌신하기 위해 이런 속박 들을 잊고자 발버둥쳤다. 그런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주위의 광기는 기어코 나를 ���라잡는 데 성공했다. 어쩌다 내가 인력개발부 부장에게 발목이 잡혀 가면이 벗겨졌는지, 어쩌다 안 좋은 일에 말려들어 내 커리어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워졌는지, 어쩌다 내 얼굴이 납빛으로 물들게 되었는지를 라티파에게 이야기하자니 정말이지 너무나 망신스러웠다. 나를 불신하는 시장이 공개 회의가 한창 진행되는 동안 나를 반박할 좋은 패를 얻은 셈이었다. 이렇게 말이다. "도시의 오염과 국민들의 폐를 걱정하기 전에 화장실에서 흡연하는 것부터 당장 중단하세요!" (p94-95)
"오늘날 요한슨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로 인해 야기된 논쟁 가운데 특히 미묘한 사안 중 하나는 바로 한 인간의 삶에서 그 마지막 순간을 공개적으로 방송할 권리가 있냐는 겁니다. 우리는 마렌 파타키 변호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사형수는 승낙했다는 걸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렇기는 하나 교도소의 행정권이 이번 미디어 플레이에 반기를 들 수도 있었을 겁니다. 담배반대연맹 측에서는 법원의 결정이 결국 금지된 담배 광고의 편을 들면서 디스플레이 광고의 구실을 제공한 격이라며 애석해하고 있습니다……" (p115)
이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미샤는 마치 스펙터클이 시작되었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요한슨이 죄수복을 입은 채 호송차량에서 내려온다. 죄수복은 달랑 천 한 장을 가지고 재단한 오렌지색 헝겊처럼 보인다. 전 시청자들이 요한슨의 넓은 어깨와 레게 스타일로 땋은 머리, 그리고 커다란 초록빛 눈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만족스런 표정이 역력한 그의 자신만만한 얼굴은 카메라 렌즈를 찾는 것 같더니 이내 카메라 앞에 멈춰 선다. 이제 요한슨에게서 어리둥절한 사형수의 모습은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관객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승리의 제스처로 무겁게 수갑이 채워진 양손을 번쩍 쳐 든다. 사형 집행 시각이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원했던 것을 얻었다는 만족감이 사형에 대한 두려움을 이긴 것처럼 보인다. (p116-117)
며칠 동안 변호사를 유명인사와 공유한다는 생각이 나의 사기를 다시 북돋아주었다. 게다가 파타키 변호사의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가진 우리의 첫 면담 때 그녀는 내 운명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 사건은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심각한 결과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난 그녀가 엄마 같은 미소로 절박한 나의 질문을 잘라먹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흥분하지 마세요. 아무 소용 없습니다!" 그녀는 라티파를 쳐다보며 여자들끼리만 공감할 수 있다는 말투로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의 남자친구를 보니 꼭 열두 살 난 제 아들 같군요. 그 앤 언제나 초초해하고 늘 답을 알고 ���어 안달이 나 있죠!" 그녀들이 주고받은 웃음이 불쾌한 소음처럼 ��� 신경을 건드렸다. (p130)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만이 날 포기하지 않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 상황은 끔찍했다. 고위급 신분에다 잘 나가던 백인 지식인, 그리고 이동이 자유로운 한 성인 남성에서 단번에 법에 따라 투옥된 한 명의 죄수 신분으로 추락한 것이다. 일정표와 규율에 따라 나의 기본권은 갑자기 박탈되고, 일상의 햇살도 빼앗겼으며 동료 수감자들로부터 가혹 행위의 위협을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겉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 비용과 피해자 보상으로 인해 파산한거나 마찬가지인 내 모습도 그려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이성을 잃거나 자살하기도 한다. 특히 예심에서 가장 악질인 아동 범죄가 언급됐다는 사실만으로 범죄자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등급으로 분류되면 당신은 어떤 형태의 동정이나 연대감도 얻지 못할 것이다. (p139)
이런 덫에 걸려들면서 나는 내 자신이 불쌍하다고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또 다른 긴박함에 몽땅 다 소진되었다. 나는 내가 왜 그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음으로써 무법자들의 힘으로부터 달아나야만 했다. 바깥에서 이력서를 보여주는 것과 똑같이 자신의 범죄를 과시하는 이곳에서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머뭇거리는 걸 알아챈 간수들이 나 대신 모든 죄수들에게 얘기를 하고 말았다. 아무튼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후 내가 교도소 마당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대여섯 명의 수감자들이 모여서 나를 걱정스럽다는 듯이 힐끔거렸고 난 완전히 혼자가 되어 화단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호각 소리에 그들은 흩어졌지만 내 곁을 차례로 지나가며 마치 차디찬 칼로 자르듯이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고 안부의 인사말을 귀에다 속삭였다. “널 죽여버릴 테야, 더러운 아동 성추행범!" (p140)
이런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난 내가 아무런 향수도 없이 이 동네로 돌아오고 있단 걸 깨닫는다. 처음 이 도시에 왔을 때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오늘 보니 다 사라진 것 같다. 대신에 각종 브랜드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유제품 장수, 생선 장수 그리고 장인의 아틀리에, 야간 술집과 새벽 레스토랑, 어두운 길거리와 먼지 쌓인 골동품 가게, 동네 극장………… 그런 것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옷 가게와 옷 가게, 그리고 또 옷 가게만 보이고 그 외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시는 지구 끝에서 끝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해빠진 특산물을 자랑스럽게 진열해놓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과 그들보다 형편이 조금 더 나은 사람들을 위한 패스트푸드점 (그렇게 패스트푸드가 전통 요리로 둔갑한다), 전적으로 주말과 업무스케줄에 따라 조정된 ���활 리듬, 자정 이후에 문 닫는 술집, 장소를 불문하고 금연이며, 장소를 불문하고 확대되어가는 아이들의 권리 집 근처에 있는 한 초등학교 앞 작은 교차로에는 차가 한 대도 없는데도 빨간 신호등을 무려 여덟 개나 세워놓았다). 한마디로 세상의 여왕 같은 도시 중 하나라도 된다��� 생각하는 이 지방 도시에 버려진 세심한 편의시설이다. 난 이런 것들을 내가 타고 있는 죄인 호송차 안에서 깨닫는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사태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내가 대단한 걸 잃은 건 아니라고, 단지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p172-173)
"아뇨, 그건 가혹함의 문제입니다. 내가 볼 땐 아이들은 아주 기본적인 반응만 보이는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먹고 울고 자고 거의 기계적인 방식으로만 행동할 뿐 다른 건 생각하지 않죠. 노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들은 이미 죽음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로부터 휴식을 기대합니다. 여자들에 대해선 말할 필요도 없죠. 그들은 평등을 얻었습니다. 난 우리가 왜 그들에게 특권을 더 부여해야 되는지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건 아니죠. 내 생각엔 제일 지지가 필요한 사람은 마흔 살이나 쉰 살의 남자, 그러니까 성인 남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경멸하기 때문에요. 성인 남자들은 여전히 인생을 사랑하지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적 능력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상사들은 벌써부터 이들을 갈아치울 생각을 하죠.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젊은 사람들이 도처에 줄을 섰습니다. 전처들은 이들을 별거 수당을 지불할 때에만 쓸모 있는, 아주 성가신 존재로 여깁니다. 자식들마저 이들을 완전히 구닥다리로 여기죠. 비서로 말할 것 같으면, '성희롱'으로 고소해서 돈이나 뜯어내려고 되도 않은 미소를 흘릴 날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죠…… 일생 동안 모든 게 절정에 달했다가 무너집니다. 난 이보다 더 나약한 인간 조건의 상징을 보지 못했어요." (p175-176)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과 관심이 너무 많은 사람 사이에는 분명히 연결되는 어떤 부분이 있습니다. 또 우리로부터 달아나고자 하는 사람과 우리에게 거부할 수 없는, 가끔은 순리에 어긋나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 사이에도 어떤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p188)
"할머님! 내가 어렸을 땐 아이들이 나이 많은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일어났어요!" "피고, 당신은 발언권이 없습니다." 의장이 퉁명스럽게 말을 잘랐다. 의장 옆에 있던 검사 레덕이 사람들을 보며 비꼬는 듯한 말을 한마디 던진다. "저는 피고가 어떤 시대를 언급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런 대단한 시대에 행해졌던 교육이 이루어낸 폐해의 사례를 보고 계십니다!" (p190)
"내가 한 일은 담배를 피운 게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계속해서 정적이 감돈다. 어떻게든 날 쓰러뜨리고 싶어하는 내 변호사가 지켜보다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튼 그��도 아이들의 건강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지 않는 거잖아요!" "하지만 왜 너희들은 내가 아이들을 존중해주길 원하지? 아이들이야말로 나를 존중해야지!" (p199)
"선생님, 우리는 당신의 유죄 여부에 대해서는 성인 법정에 넘길 겁니다. 그게 그들의 소관이니까요. 우리는 담배 문제 역시 그들에게 넘길 생각입니다. 당신은 어쩌면 가장 타락한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당신이 사람으로서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란 법은 없을 테지요. 더구나 당신은 적어도 한번쯤은 어린이에 대한 존중심과 싹트기 시작하는 생명에 대한 지지를 천명함으로써 당신의 죄를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왜 당신은 데지레 요한슨의 너그러운 태도에서 영감을 받지 않나요? 모두가 그 사람을 범죄자라고 생각했지만 데지레는 '인생 만세'란 말을 할 줄 알았잖아요? 그런 행동으로 인해 그는 자유를 얻을 만했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유를 가질 만한 자격을 얻고자 무엇을 할 겁니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나는 요한슨과 내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생각엔 그건 바로 논리적 오류로 이어지는 순수함에 대한 숭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를 가지고는 내가 점점 내 무덤을 파는 꼴이 될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오직 침묵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p200)
그래, 그녀를 돕는 건 나에게 달렸다. 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도 나에게 달렸다. 그녀의 제일 유명한 의뢰인이 그랬던 것처럼. (p202)
수갑을 벗은 죄수는 추기경을 따라 주교와 대주교들의 초상화를 걸어놓은 천장 높은 방으로 들어갔다. 두 남자는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한 수녀가 쟁반을 들고 들어와 차를 대접했다. 이어 성직자가 자기 주머니에서 필터 없는 골루아즈를 한 갑 꺼내더니 죄수에게 한 개비 건넨다. "나는 이런 유의 사건에서 터무니없는 거짓말과 불쾌하게 과장된 수많은 사실들이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수 있단 걸 잘 알고 있어요. 그건 우리처럼 교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고통스러운 경험이지요." (p212)
"요즘 부강한 나라의 어린이들은 제가 보기에 참 감수성이 예민한 것 같습니다!" (p213)
"우리도 윤리란 게 있어!" 비록 죄수의 의지와는 반대였지만, 이런 테러리스트의 행동을 여론은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배신에 놀란 사람은 오직 죄수의 여자친구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전해받은 유언장 원문을 신문에 발표했다. 유언장에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까닭과, 인질 중 "마흔에서 예순 사이의 남성"을 선택한 이유들이 적혀 있었다. 그런 신념이 천명되자 그의 평판은 더욱 나빠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도발로 여겼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동범죄 용의자인데다 중형이 거의 확실시되는 주제에 구��낼 인질을 선택하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굉장히 격분했다. 그를 영웅으로 변신시키려 했던 사람들은 틀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이 타락한 와중에도 새 인질에게는 없는 것처럼 보이는 도덕심을 보여줬다는 것에 대해 자축까지 하고 나섰다. (p220-221)
[옮긴이의 글폭력도 쇼가 되는 현대문명의 잔혹한 죽음의 무도한지선]
『고객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소녀와 담배』의 주인공 '나' 역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횡포와 싸워보지만 끝내 패배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무참히 짓밟힌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담배를 피우려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여 차마 웃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지만 작품은 차츰 이상하게 흘러가 종국에는 끔찍하기만 하다.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듯한 작가의 간결하고 명료한 문체가 더욱 그러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앞서 자리한 유머보다는 충격과 공포가 더 크게 와 닿을지도 모르겠다. 대체 뒤퇴르트르가 이처럼 커다란 절망만 보여주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는 '아이들'에 대한 무조건적 숭배와 청정하고 건전한 삶을 외치는 현대의 구호 이면에서 현대인의 심각한 자기기만과 위선을 보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야 없겠지만 그가 이 소설을 통해 이른바 우리가 현대문명이라고 일컫는 것의 음산한 그늘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 해보인다. (p234-235)
브누아 뒤퇴르트르 , ' 소녀와 담배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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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버스 터즈 오싹한 뉴욕 한글 자막 장면 1: 무더운 여름의 뉴욕
여름이 시작되고 뉴욕은 타는 듯한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은 땀을 흘리며 길을 걷고, 차 안에서 에어컨을 틀어놓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장면 2: 고대 유물의 깨어남
한 고아로운 밤, 뉴욕 박물관에서 전설 속의 고대 유물이 깨어난다. 그 유물은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데스칠’이라는 유령을 불러내는 키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유령의 힘이 너무 강력하여 제어할 수 없게 되고, 뉴욕에 끔찍한 얼음의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
장면 3: 얼어붙은 도시
유령의 힘에 의해 뉴욕은 얼어붙게 되고, 사람들은 춥고 모든 것이 얼어붙어 버린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거리는 적막에 잠기고, 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에 대비해 무서운 얼굴을 한 유령들이 도심을 뒤집어 엎으며 사람들을 위협한다.
장면 4: 그루버슨의 등장
이 위기 상황에서 나타난 것은 전설적인 ‘그루버슨’과 라이즈 버스터즈의 멤버들이다. 그루버슨은 유령을 퇴치하는 데 특화된 능력을 가진 전설적인 인물로, 얼어붙은 도시를 구하기 위해 도전적인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장면 5: 유령 사냥
그루버슨과 라이즈 버스터즈 멤버들은 미친 듯이 유령을 추격하고, 얼어붙은 뉴욕의 골목과 건물 사이를 눈쌓이는 듯이 달려다니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에 나선다.
고스트 버스 터즈 오싹한 뉴욕 한글 자막 장면 6: 끝없는 전투
그들은 끊임없는 전투 속에서 유령들과 맞서 싸우며, 그들의 냉혹한 힘과 잔혹한 전략에 맞서 싸운다. 얼어붙은 뉴욕의 풍경은 유령과의 전투로 인해 더욱 무서워지고, 그루버슨과 그의 팀은 점점 더 극적인 결투로 치닫게 된다.
장면 7: 최종 결전
마침내, 그루버슨과 라이즈 버스터즈는 데스칠의 약점을 찾아내고, 결정적인 공격을 펼치며 유령을 물리치고 얼어붙은 뉴욕을 되찾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영웅으로 환영하며, 얼음이 녹는 소리와 함께 뉴욕의 봄이 돌아온다.
고스트 버스 터즈 오싹한 뉴욕 한글 자막 장면 8: 결론
고스트 버스터즈는 뉴욕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게 한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으로 얼어붙은 도시를 녹여내며, 다시 한 번 뉴욕을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 낸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도시의 전설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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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요코하마 센타미나미 쪽 사는 그이를 좋아하는 건 허상이었고, 진또배기는 나고야 혼고에 사는 그였다. 지독한 사랑을 했다. 여름방학의 끝과 2학기의 시작에 함께했다. 중간고사 시즌 즈음 끝났다. 부끄러운 내용은 별로 안 적고 싶다. 중간고사 직전 나고야까지 갔다. 안 적고 싶다면서 왜 적는 거지.. 나고야 가서 결국 못 만났다. 응 짝사랑이었을 걸까. 그의 사고 과정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했어서 지금은 내게 남은 감정이 없다. 그냥.. 좀 스스로가 안타까울 뿐.. 또 어린 스스로를 발견했고, 창피하고, 통제할 수 없는 걸 갈망했고.. 뭐 그렇다. 게이색기들 모임과 친한 아저씨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가는 버스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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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ING SEVENTEEN
[Korean:]
잘 지냈어요 모두
보고 싶었어 우리도
어쩜 이ㄹ렇게 시간이 안 간는지 정아 알
버스 안에서 going
이 불 속에서 going
고잉은 언제나 너에게 going going
[Romanized:]
Jaljinaesseoyo modu
Bogosipeoseo urido
Eojjeom ireohke
Sigani anganeunji jeongmal
Beoseu aneseo going
Ibulsokeseo going
Goingeun eonjena neoge going going
[English translation:]
How was your day everyone?
We've missed you too
It feels like time moves so slowly
In the bus, going
Under the blanket, going
Remember "going" is to you, we're going go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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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얼굴이지만 이쪽 길로 접어든 걸 보니 길 끝에 위치한 한 동짜리 아파트에 사는 듯한 할머니도 우경의 헤드랜턴 불빛을 따라 같이 눈을 맞으며 걸었다. 우리집이 먼저 나올 텐데 어쩌지. 아파트 근처에 가면 밝으니까 괜찮을 거야. 우리는 랜턴 불빛 근처에 할머니가 있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걸었다.
아까 어둑해지는 하늘을 보면서 페달을 밟았더니 문득 그 날이 조금 떠올랐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많이는 아니고 조금. 조금만 떠올랐습니다. 조금. 그러니까 조금이었고 또 짧았고요. 이런 기억은 자꾸 짧아지고 이렇게 다시 한번 말하지 않으면 흐릿해지고 그래요. 영화처럼 길게는 불가능하고 사진같이 한 장면뿐인...... 그렇게 한 장면으로 남아버렸어요.
해인씨 사실은 며칠 전에 해인씨를 봤거든요. 저를요. 네, 해인씨를요. 해가 질 무렵 벚꽃잎이 흩날리는 길가에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는데 그게 너무 좋아 보였어요. 좋아보였고, 또 저도 좋았고요. 장미씨도요. 네, 지금이 아니면 그런 장면은 볼 수가 없잖아요. 매년 봄이면 늘...... 내년은 내년이잖아요.
누가 제발 손수건 좀 주세요. 성규가 비 오듯 땀을 흘리고 거의 울면서 오늘이 인생 첫 사회라고 말하자 우경 역시 울면서 나도 첫 결혼이라고 말하던 것, 어쩐 일인지 물리 담당이었던 담임선생님마저 울먹거리며 이놈들아, 나도 첫 주례다, 라고 말하며 울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후로 우경과 나를 포함한 우리는 담임선생님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와, 선생님이 울기도 한다. 초중고 다 통틀어서 선생님 우는 거 처음 봐. 나도, 나도! 울기도 하신다. 선생님도 우신다는 게 왠지 좋아. 학교 다닐 때보다 지금이 더 좋아요, 선생님. 몇몇이 그렇게 말하면 선생님은 또 우는 시늉을 해주셨고 그러면 모두가 웃을 수 있었다.
그리운 것은 어쩌면 고마운 것과 닮아 있구나 생각했다.
피가 난 뒤에 굳은 작은 딱지를 떼어내고 나면 또 파고 또 떼어내고 또 파고. 이 년 정도 그랬던 것 같아요. 이 년이나요? 네. 그걸 건드리지 않으면 안 아픈데 왜 자꾸 건드렸을까, 그게 궁금해요. 떼어낼 땐 시원하지만 금세 다시 아플 거란 걸 아는데요. 알지만 그게 잘. 네, 잘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되지 않았어요.
그 얘길 전해들으면서 어쩐지 시시하다 생각했고 참 슬펐습니다. 저는 시시한 것들을 사랑하고 시시한 것은 대체로 슬프니까요.
집을 향해 걷는 동안엔 할머니 한 분이 계속해서 내 뒤를 따라 걸었다. 뒤에서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가볍고 조용한 발소리와 간혹 멈춰 서서 숨을 고르는 소리를 들으며 집까지 걸었는데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발걸음이 느려지곤 했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지금 내게 남은 마음은 그것뿐이라고, 구도심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주란, 『수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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