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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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나는 걸어가는 밥풀이오
함께 걷는 지역활동가동지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모자란 부분이 있더라도 널리 혜량하여 주시길. 한겨레신문 / 6411의목소리 / 나는 걸어가는 밥풀이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87657.html?fbclid=IwAR1JLgJMz6jBVQW8nA4j5XmDONp8FZSLoOLEZwcjPzAaZrCvlBIYV4phc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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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텔스바흐 합의와 민주시민교육, 심성보 외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했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한국은 ‘국민’은 있으되 ‘시민’을 찾아보기는 힘든 사회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이다.
국민은 피동적 존재다. 국가가, 정부가, 권력자가 정해준 정체성을 내면화한 존재다. 반대로 시민은 능동적 존재다. 시민은 정체성을 스스로 찾는다. 국가나 민족보다 더 보편적이고 중요한 가치, 민주주의가 그들의 나침반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을 겨우 정상으로 돌려놓은 이 나라의 미래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어가는 존재가 필요하다. 자기 삶에서 민주적 원칙을 스스로 구현하는 사람, 지배 받는 국민이 아니라 스스로 지배하는 시민이 필요하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시민이 될 수는 없다. 시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시민은 ‘형성’되고 ‘교육’되어야 한다. p14.
국민이 만들어지듯 시민도 만들어진다. 대충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공정에 맞춰 대량으로 찍어내는 게 국민이라면, 시민은 조각을 빚듯 정성을 담아 만들어져야 한다. 단 거기에 강압이나 강제가 있으면 안 된다. 민주주의에 맞는 삶의 양식과 사고방식이 몸에 배인 사람이 되도록 스스로 클 수 있게 교육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정치적 견해나 입장의 다양성, 또 그에 따른 ‘갈등’이나 ‘논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아무런 갈등이 없는 정치체제가 아니라 갈등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킨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갈등과 논쟁의 여지가 없는 원칙은 오직 ‘갈등과 논쟁이 그 본질을 이룬다.’는 원칙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P26.
다양한 입장이 공존하고 때때로 충돌하는 것. 그러한 충돌을 위험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가를 보여주는 지표로 여길 수 있는 사회. 논쟁과 갈등이 항상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줄 아는 사람. 갈등을 억지로 없애려 하는 게 아니라 갈등 상황을 성숙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내 입장과 상대 입장을 넉넉하게 품는 품성을 키우려 노력하는 사고방식.
민주 시민을 키우려면 교육부터 민주적으로 해야 한다. 교육 목표를 주입이나 교화가 아니라 학생의 자발적 ‘성숙’에 두어야 한다. 학생을 주어진 가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객체가 아니라 자기 가치와 입장을 만들어갈 주체로 봐야한다. 독일에서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 ‘정치교육’을 발전시켜왔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났다. 연합국은 독일 나치즘이 되살아나지 못하게 막으려고 패전국 독일에 미국식 시민 교육 체계를 이식했다. 독일의 정치교육(즉, 민주시민교육)은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구 민주주의 정치, 사회 제도를 잘 전달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68혁명의 열기가 독일을 휩쓸면서 정치교육의 흐름도 바뀐다. 사회 비판과 변혁을 강조하는 좌파의 입장과 체제 유지를 원하는 우파의 입장이 정치교육의 역할과 위상을 두고 심하게 충돌하게 된 것이다. 정치교육에서 어떤 것을 다루고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두고 갈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독일 교육학자들은 작은 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양쪽 입장을 절충하는 회의를 열어 크게 세 가지 합의사항을 만들었다.
1. 강압(교화)금지: 학생들에게 특정 견해를 주입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의견을 독립적으로 만들고 스스로 성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2. 논쟁성 원칙: 학문과 정치의 논쟁점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뤄져야 한다. 저마다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여러 관점이 다양하게 드러나는 수업이 되어야 한다.
3. 행동지향: 학생들이 특정 정치 상황과 자기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핵심은 두 번째 원칙이다. 정해진 입장을 전달하지 않고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고 학생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것. 좌파든 우파든 특정 이념을 학생에게 주입하거나 교화하지 않는다는 것. 교사는 첫 번째 원칙처럼 특정 입장을 학생에게 주입해서는 안 되고 학생은 세 번째 원칙처럼 판단한 바를 갖고 스스로와 사회를 위해서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수동적인 국민이 아니라 능동적인 ���민 한 명으로 성숙할 수 있게 학교가 기회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보이텔스바흐에서 독일의 교육 전문가들이 합의한 기본 정신이었다.
실제로 보이텔스바흐에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합의사항이나 완결된 학문적 결론을 정해서 발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정치교육에서 꼭 지켜야만 하는 최소한의 원칙을 논의했을 뿐이다. 다만 포괄적 수준에서 전체적 흐름만을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세 가지 합의 사항에 대한 비판과 논쟁이 ‘합의’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교사는 완벽히 중립적이어야만 하는가?’, ‘어디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다룰 수 있는가? 또는 어디까지 논쟁의 대상으로 허용해야 하는가?’, ‘학생�� 정치적 판단과 행동을 사회적 차원과 개인적 차원 가운데 어느 쪽 비중을 더 두어야 하는가?’와 같은 문제제기가 대표적이다. 글쓴이들이 이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구절을 몇 가지 소개한다.
보이텔스바흐가 진정으로 지향하는 정치교육의 목적은 ‘정치적 판단 교육’이다. 이런 교육이 가능하려면 교사들 스스로 충분한 논거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판단을 공개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 무엇보다 교사들은 정치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하고, 투쟁하는 성인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은 대화, 책임 있는 실천, 그리고 현재 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잘 논의된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p147.
즉, “어떤 방식으로든 보편성을 거부하는 문화 입장들, 예컨대 자기 세계관이 우월하다고 맹신해 다른 신념이나 문화 특징을 지닌 사람들을 순전히 그 신념이나 특징 때문에 탄압하거나 심지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문화 입장들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논쟁성의 경계는 “타자의 신념과 문화 특징을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고 정당하다고 인정할 의지가 있는 그런 문화 입장들만을 교육 대상에서 정당한 것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p99.
한국의 시민 교육은 기형적이다. 헌법에 적힌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교육 금지’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시민을 기른다면서 정치적 쟁점을 다루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가르친다면서 그저 정치 제도의 ��편만을 전달하고 있다. 이는 실체를 감추어두고 그림자만 보게 하는 것이다.
학생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려면 교실에서도 정치를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이라 교사가 교실에서 ‘정치’라는 단어를 꺼내는 일조차 금기시한다. 그저 시민교육에서 어떤 내용까지 가르치는 게 ‘위험하지 않은지’에 대해 소모적이고 낡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가르칠 내용이 아니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규범을 합의하고 마련하려 한 독일의 사례를 소개하는 이 책이 반갑다. 어떤 내용을 가르칠 것인가를 두고 싸울 게 아니라 학생들이 ‘어떻게 배울 것인가’의 원칙을 먼저 이야기해보는 것. 그런 자리를 만들고 ��론화해보는 것. 정답을 바로 정하기보다 의견 차이를 드러낼 수 있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광장을 먼저 만들어보는 것. 아직 민주주의를 꽃피워보지도 못했으면서 민주주의라는 말을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처방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 과정, 내용, 미래까지 무척 자세하고 충실하게 다루어놓았다. 읽는 내내 먼저 내 수업 시간에 ‘합의’의 발상을 어떻게 적용해볼까를 생각하느라 가슴이 뛰었다. 교사의 위상과 역할을 민주주의 교육과 민주 시민 양성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과 결론이 무척 와 닿는다.
다만, 독일과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시민교육의 발전 과정이 어땠는지 자세히 비교하는 글이 하나 들어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군대의 점호를 떠올리게 하는 아침 운동장 조회를 아직도 여러 학교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계속하고 있는 한국이다. 이미 나치즘을 극복하면서 ‘정상을 지향’하던 독일의 20세기 후반과,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극복하지 못해 사회 전체와 학교마저 ‘비정상을 지향’하던 한국의 20세기 후반은 출발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독일과 한국의 현대사를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고, 독일과 같은 ‘합의’와 ‘논의 과정’이 한국에서도 어떻게 해야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를 전망해보는 꼭지가 하나 들어간다면 좀 더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조금 위험한 책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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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왜 행복한가” 섬마을인생학교 글로벌포럼
“덴마크는 왜 행복한가” 섬마을인생학교 글로벌포럼
지난 12월 6일부터 8일까지 전남 신안 도초도에서 섬마을 인생학교 18기 글로벌 교육포럼이 진행됐다.
2박 3일 간 진행된 이번 인생학교에서는 덴마크 교사 6명과 참가자 48명이 함께 덴마크 자유교육의 실제를 경험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노래가 있는 첫만남, 도초 주민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민주시민교육, 영어교육, 덴마크 교사들과의 만남 등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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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광주의 ‘민주시민교육’…역시 광주! #민주주의 #평화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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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그림책 & 아동도서] 초등사회교과서 개념 길라잡이 웅진주니어 똑똑똑 사회그림책 [가족관계] 가족은 꼬옥 안아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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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그림책 & 아동도서] 초등사회교과서 개념 길라잡이 웅진주니어 똑똑똑 사회그림책 [가족관계] 가족은 꼬옥 안아 주는 거야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알게 해 주는 따뜻한 그림책
나와 주변 세상을 이해하는 사회생활 03 가족은 꼬옥 안아주는거야
“가족은요, 사랑으로 보살펴 주는 거예요. 가족은요,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거예요.
가족은요, 때때로 다투고 미워질 수도 있어요. 가족은요, 멀리 떨어져 지내면 금세 보고 싶어지는 거예요.”
똑똑똑 사회그림책 3권 <가족은 꼬옥 안아 주는 거야>
글 박윤경 │그림 김이랑│본문 36쪽│판형 255*215│색도 올칼라
우리는 가족이 있어요 !
아이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들, 나를 ��아 길러 주는 부모님,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형제자매……. 바로 가족이죠 ‘가족’은 아이가 가장 먼저 만나는 사회입니다. 가족 안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관계를 형성하고,
행복과 즐거움 또는 갈등을 경험하며 사회인으로 자라나가지요
아이들에게 가족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처음부터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지만, 가족의 의미와 역할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실로 가장 중요하며 큰 의미를 가집니다.
<가족은 꼬옥 안아 주는 거야>는 아이들에게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가족이 갖는 사회적 특징과 역할을 가족들의 일상을 통해 친근하게 보여 주는 사회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가족의 특징을 쉽고 간결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어 공감하기도 쉽고 가족의 개념을 저절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줄거리 소개
연준이의 엄마 아빠는 스무 살 여름에 만나 결혼하여 가족이 되었어요 두 식구가 알콩달콩 지내던 집에, 연준이가 태어나며 가족이 셋으로 늘었는데요 아기가 태어나자 엄마 아빠는 진정한 사랑과 희생으로 연준이를 돌보고, 아이의 성장에 뛸 듯이 기뻐하며 응원해 줍니다.
아빠와 엄마를 골고루 닮은 연준이는 엄마 아빠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커 가지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떤 여자아이가 집에 왔습니다. 엄마 아빠는 이제부터 연준이의 동생 연재라고 하는데요 엄마 아빠가 낳지는 않았지만, 이제부터 동생이 된 연재. 가족은 넷이 되었네요!
연재가 오면서 연준이는 가족 안에서 속상함과 갈등을 경험합니다. 동생에게 양보할 것도 많고, 나눠야 할 것도 많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연준이는 사회에서 겪어야 할 것들을 가족 안에서 미리 배우게 됩니다.
■ 사회교육 전문가가 집필한 ‘가족 개념 그림책
아이들에게 첫 사회 개념을 심어 주는 그림책으로서 정확한 개념과 내용을 전할 수 있는 사회과교육 전문가가 집필하였습니다.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지금은 청주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는 박윤경 교수가 사회과교육의 현장 경험과 딸아이를 키우는 엄마표 노하우를 담아 이 책을 작업했습니다.
■ 작가소개
– 글 박윤경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를 졸업하고 청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
<새로 쓰는 가족 이야기> <나는 누구일까요?> <약속은 즐거워!> <다문화교육 이해(공저)> <한국의 민주시민교육(공저)>
– 그림 김이랑 : 서울에서 태어나 목공예를 전공하고 어린이 책에 그림 작업 중
<준비된 1학년 생활 백과><세상에서 젤 꼬질꼬질한 과학책> <그래도 나는 누나가 좋아> <별똥별 아줌마 ��주로 날아가다>
영 역
제 목
주 제
사회생활
1. 나는 누구일까요?
나
2.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학교
3. 가족은 꼬옥 안아 주는 거야
가족
4. 신통방통 인터넷 세상
정보사회
5. 출동! 새싹반이 간다
사회문제
지리
6. 내가 사는 곳은 바로 여기!
위치
7. 지도를 따라가요
지도
8. 땅은 소중한 선물
땅
9. 우리 땅 방방곡곡
국토
10. 우리나라 별별 마을
마을
경제
11. 돈, 돈, 돈이 궁금해
돈
12. 엄마 아빠, 왜 일을 해요?
일과 소득
13. 딱 하나만 고라 봐!
합리적 선택
14. 알뜰쟁이의 돈 쓰는 법
현명한 소비
15. 아이스크림은 어디서 왔을까?
생산과 유통
문화
16. 텔레비전 보여 주세요
텔레비전
17. 책 읽기는 게임이야
책
18. 한글, 빛나는 발명품
한글
19. 놀이는 참 대단해
놀이
20. 까치설날은 보물 찾는 날
전통문화
정치
21. 약속은 즐거워!
약속과 규칙
22. 괴물 학교 회장 선거
선거
23. 좀 다르면 어때?
인권
24. 나도 까사모예요
공동체 운동
25. 마음대로가 자유는 아니야
민주 생활
세계
26. 침 뱉으며 인사하는 나라는?
문화 다양성
27. 내가 세계 최고!
세계 여러 나라
28. 지구 마을 친구들에게 천원이 있다면?
지구 문제
29. 우리는 아시아에 살아요
아시아
30. 온 세상 국기가 펄럭펄럭
세계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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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일본과 독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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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일본과 독일의 차이
⊙ 바이츠제커, “젊은이들이 과거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 2차대전 이후 이스라엘·나치 희생자들에게 890억 달러 지원 ⊙ 주변국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지정학적 상황과 분단 경험 작용 ⊙ 학교 및 민주시민교육 통해 나치 잘못 끊임없이 상기시켜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독일의 속죄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다.
#1. 아주 유명한 장면.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샤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慰靈碑) 앞에 헌화(獻花)하던 빌리 브란트 독일연방공화국(당시 서독) 총리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를 안내하던 폴란드 측 인사들과 독일인 수행원들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당황했다. 빗속에 무릎을 꿇은 브란트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이날의 행위에 대해 브란트는 후일 자서전(自敍傳)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나는 이 제스처로 무엇을 의도했느냐는 물음을 빈번히 받았다. 그 제스처는 계획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계획된 것이 아니다. (중략) 나는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내가 묵었던 빌라노프성(城)에서 게토기념물에 대한 회상의 특수함을 표현해야 한다는 감정이 생겼다. 독일 최근세사의 기억에 짓눌려, 나는 그저 사람들이 말로써 어찌할 수 없을 때 하는 짓을 했을 따름이다.> 다음 날 아침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치 시절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의 생존자이기도 한 폴란드 총리 요셉 키란키예비츠는 그를 포옹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많은 사람에게 가까이 가 닿았습니다. 내 아내는 어제 저녁 빈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두 사람은 아마 몹시 울었을 것입니다.” 브란트가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데 대해, 서독 내에서는 “지나친 행위였다”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기자는 그의 행위를 이렇게 표현했다. “무릎 꿇을 필요가 없는 그가 무릎 꿇을 필요가 있는, 그러나 무릎을 꿇지 않는 모든 사람들 대신 무릎을 꿇었다.” 이 기자의 말대로 빌리 브란트는 ‘무릎을 꿇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집권한 직후 노르웨이로 망명, 나치에 대한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자신이 저항했던 범죄적 정권의 희생자들을 위해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러한 빌리 브란트의 모습은 태평양전쟁 당시 A급 전범(戰犯)이었던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로, 법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도의적(道義的)으로는 과거 일제(日帝)의 과오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함에도 침략과 식민의 역사를 부정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대비된다. 영토와 미래를 바꾸다 바르샤바 유대인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은 ‘빌리 브란트’라는 정치인, 그리고 독일연방공화국의 양심(良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한 것은 그해 2월부터 시작된 양국 간의 관계정상화조약(바르샤바조약)에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이 조약의 전문(前文)은 “전쟁의 첫 희생자가 폴란드이며, 전쟁은 유럽 국가들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나치의 침략전쟁에 대한 사죄를 명시하고 있다. 이 조약은 “포츠담의정서 제4장에 명시된 방식에 따르는 현행 경계선이…폴란드인민공화국의 서쪽 경계선을 이룬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는 제2차세계대전 후 연합국이 폴란드에 할양(割讓)한 오데르-나이세강(江) 이동(以東)의 옛 독일영토를 포기��다는 의미이다. 이 지역은 근대 독일의 발상지라고 할 수 있는 동프로이센 지역을 포함해 수백 년 동안 독일인들이 거주해 왔던 곳이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지역에서 쫓겨나 서독으로 이주한 실향민(失鄕民)들은 서독 내에서 강력한 압력단체가 되어 있었다. 자기 민족의 고유한 영토로 여겨지는 땅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인에게는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다. 독일은 1990년 독일통일 과정에서 오데르-나이세강 이동 영토를 포기할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역사학을 공부한 신용철(申龍澈) 경희대 명예교수는 1990년 독일통일 당시 독일에 있었다. “당시 하숙집 주인이 폴란드령(領)이 된 옛 독일 땅에서 이주해 온 실향민이었어요. 독일 국회에서 오데르-나이세 이동 영토의 포기를 결의했다는 뉴스를 듣고, ‘국회의원들이 무슨 권리로 내 고향을 맘대로 포기하느냐’고 분개하던 생각이 납니다.”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후발(後發)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병탄(倂呑)한 오키나와열도와 센가쿠열도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고, 대한제국의 국권(國權)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자국(自國) 영토에 편입했던 독도(獨島)를 여전히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행태와 대조적이다. 권영민(權寧民) 전 주독대사는 “독일인들은 땅을 포기하는 대신 주변국들과의 화해와 미래를 선택하는 실리적이면서도 위대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나치 敗戰日은 ‘해방의 날’” #2. <우리에게 5월 8일은 광복(光復)의 날입니다. 그날은 우리 모두를 나치체제의 무자비한 탄압으로부터 해방시킨 날입니다. 해방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많은 인민들에게 그날을 기해 들이닥친 엄청난 수난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전(終戰) 때문에 자유의 박탈을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 원인은 전쟁을 불러온 독재가 시작된 것에서 찾아야 합니다. 1945년 5월 8일을 1933년 1월 30일(히틀러가 독일제국의 수상으로 취임한 날-기자 注)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5월 8일은 회상(回想)의 날입니다. 회상이라는 것은 일어났던 일을 정직하고 왜곡되지 않게 다시 마음속에 떠올리는 것입니다.… 눈과 귀를 열고 알아보려고만 했으면 유대인들이 유형(流刑)에 처해졌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있었겠습니까.… 홀로코스트의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진실이 알려졌을 때… 우리 모두 뭐라고 했습니까. 아무것도 몰랐고 의심 한 번 해본 적도 없다고 그러지 않았던가요. 나라가 온통 다 유죄(有罪)라거나 무죄(無罪)라거나 그런 건 세상에 없는 겁니다. 무고(無辜)하다는 것도 그렇지만, 유죄라는 건 집단적인 게 아니고 개인적인 겁니다.… 죄를 지었거나 혹은 그렇지 않거나 우리 모두는,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과거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시’(零時·Stunde Null-패전 후 모든 것이 파괴된 절망적인 독일의 상황을 표현한 말-기자 注)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새 출발의 기회는 가졌습니다. 우리는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 온 것입니다.… 독일 역사상 오늘날과 같이 개인의 자유가 잘 보장되었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 정치를 책임지게끔 되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40년 전에 일어난 일들에 무슨 책임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역사적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과거를 망각(忘却)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늘 5월 8일을 맞아 우리 모두 고개를 들어 진실을 바라봅시다.>(《도이치현대사3》 pp397~399, 데니스 L.바크-데이빗 R.그레스 공저, 서지원 옮김) 독일의 양심, 바이츠제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은 나치 만행에 대한 독일인의 책임을 끊임없이 환기시켰다.
위의 연설은 나치 독일이 연합국에 항복한 지 40주년이 되는 1985년 5월 8일을 맞아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독일 대통령이 한 연설이다.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를 비롯한 수많은 독일 정치인이 기회 있을 때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의지를 표명했고, 바이츠제커 역시 과거사와 관련된 많은 연설과 발언을 남겼지만, 이 연설은 특히 유명하다. 이 연설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치인들의 언동과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다. 아베 총리는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확실하지 않다”는 궤변으로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바이츠제커는 패전으로 독일인이 겪은 비극의 뿌리는 히틀러 독재체제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아베는 “현행 헌법은 미군 점령시대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개헌을 주장한다. 바이츠제커는 패전이 새 출발의 계기가 됐고 그 결과 번영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음을 감사한다. 일본 정치인들은 원폭(原爆)의 비극은 강조하면서 그 원인이 자신들이 저질렀던 침략전쟁에 있음은 부인하지만, 바이츠제커는 히틀러의 전쟁 책임을 상기시킨다. 일본 정치인들은 후대에게 자랑스런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며 과거사를 올바로 보는 것을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고 비난한다. 바이츠제커는 젊은이들이 과거를 망각하지 않도록 기성세대가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베의 연설문에는 억지와 위선이, 바이츠제커의 연설문에는 역사를 직시하는 양식(良識)과 양심이 담겨 있다. 계속되는 賠償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념한다.
독일은 독일연방공화국을 수립한 지 ��과 3년 후인 1952년 전쟁배상법을 제정해 나치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에 나섰다. 1986년까지 총 5700만명에게 총 35억 마르크를 배상했다. 이 법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에게도 적용됐다. 독일정부는 이스라엘정부와 협정을 맺고 1952~1966년 총 35억 마르크를 보상했다.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에는 별도의 배상을 했다. 독일의 사죄와 배상은 통일 이후에도 계속됐다. 로만 헤어초크 대통령은 1994년 바르샤바 봉기 50주년 기념식에서 “나는 독일인들이 폴란드인에게 행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2000년 2월 이스라엘을 방문, “과거 독일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빌며, 나와 내 세대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서 “용서와 화해를 통해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이 미래에 손잡고 나란히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00년 7월 독일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강제동원했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배상을 했다. 나치가 전쟁 중 동원한 노동자는 800만명에 달하는데, 법적 이유 등으로 오랫동안 배상을 받지 못해 왔다. 독일은 미국, 이스라엘, 폴란드, 러시아, 체코, 우크라이나 등과 국제협정을 체결해 나치에 의해 강제노동에 동원됐던 유대인, 폴란드인 등 150만명에게 100억 마르크의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이 100억 마르크는 국가와 전시(戰時)에 외국인 강제노동자들을 부렸던 기업들이 각각 50억 마르크씩 출연(出捐)해 조성했다. 이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재단의 이름이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Erinnerung, Verantwortung und Zukunft)’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일본 정부와 기업, 법원이 태평양전쟁 시기 강제징용(徵用)했던 한국인들에 대한 보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2005년 5월에는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문(門) 인근에 ‘홀로코스트메모리얼(Memorial to the murdered Jews of Europe)’을 조성했다. 과거 베를린장벽이 가로질렀던 1만9000m2의 광장에 2711개의 콘크리트비(碑)를 세웠고, 지하에는 박물관을 만들었다. 독일은 최근에도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대인들을 위한 추가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5월 28일 유대인 희생자를 지원하는 기금 마련 단체인 ‘독일에 대한 유대인 보상청구권 모임’ 대변인은 “독일정부가 생존 유대인들을 위해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지원하기로 했다”면서 “46개국 5만6000여 명의 유대인이 혜택을 입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돈은 대부분 생존자들의 요양비용에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을 전한 외신(外信)들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정부가 이스라엘과 나치 희생자들에게 지원한 돈은 890억 달러(약 100조원) 규모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순탄치 않았던 독일의 과거사 청산
나치 수뇌부를 단���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진정한 과거사 청산으로 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 이후 일관되게 과거사 청산과 사죄, 보상에 열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으로 나치의 수뇌급 12명이 교수형, 3명이 종신형, 4명이 10~20년의 징역형에 처해졌다. 18세 이상의 모든 독일인은 나치 시대 자신의 행적에 대한 진술서를 제출해야 했다. 연합국 점령당국은 이 진술서를 바탕으로 죄질에 따라 수용소 수감(收監), 직장에서의 추방, 재산 몰수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를 ‘탈(脫)나치화(化)’라고 한다. 하지만 독일연방공화국이 수립되고 경제부흥의 시대가 오면서 탈나치화는 점차 완화됐다. 사면법이 제정되었고, 나치 시대의 관료나 군인들이 공직이나 연방군에 복귀했다. 나치 과거사 청산 문제가 다시 제기된 것은 1956년부터였다. 전후(戰後) 용케 단죄를 피하고 숨어 살던 나치 전력자들이 체포되면서 유대인 학살 등 나치 범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 루트비히스부르크에 ‘나치범죄 진상규명 사법조사・연구본부’가 설치됐다. 1961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도 유대인 학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조시켰다. 1963년에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계자 20명이 기소되어 17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아우슈비츠 재판’은 독일인들에게 충격이었다. 유대인 학살에 참여한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이 ‘머리에 뿔이 난 괴물’이 아니라, 자기 이웃, 아니 자기 자신과 다름없는 ‘보통 독일인’이었기 때문이다. 1968년,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었다. 이른바 68혁명이다. 68혁명세대의 독일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에게 “나치 시절에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고 따졌다. 과거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역사적·철학적 논란들이 이어졌다. 1979년 방영된 TV드라마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다시 환기시켰다. 이러한 성찰들이 계속되면서, 전후에도 한동안 남아 있던 나치즘에 대한 일말의 동조 분위기, 즉 “나치즘은 이념은 옳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이라는 식의 사고(思考)방식이 사라졌다. 地政學的 이유
권영민 전 주독대사.
이처럼 독일인들이 철저하게 과거사를 청산하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일까? 왜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인과 일본인의 태도는 그렇게 판이한 것일까? 권영민 전 주독대사는 지정학(地政學)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유럽의 중앙에 위치한 독일에는 같이 살아야 할 주변국이 너무 많습니다.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폴란드, 덴마크, 체코…. 이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과거를 반성하고 화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기본적으로 같이 살아야 할 이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때문에 일본인들은 반성과 사죄에 둔감(鈍感)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도 “9개 나라에 둘러싸여 사는 독일인과 섬나라 일본인의 의식의 차이”를 강조하면서, ‘분단의 경험’이 독일인들의 반성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흔히 전후에 독일이 4개국에 분할점령됐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11개로 조각났습니다. 4개국이 독일 전역과 베를린을 분할점령하면서 8조각이 났습니다. 여기에 구(舊)동프로이센 지역을 소련과 폴란드가 분할하면서 두 조각 났습니다. 폴란드에 할양된 오데르-나이세강 이동 지역까지 합치면 11조각 난 것이지요. 2차대전 후 모든 것이 파괴된 절망적인 상황을 독일에서는 ‘영시’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 더해 11조각으로 나라가 쪼개지는 처절한 상황을 경험하면서 독일인들은 ‘다시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독일의 반성은 ‘문화의 힘’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교수.
과거사에 대한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문화적 측면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일찍이 《국화와 칼》로 유명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니딕트는 문화적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은 바 있다. 기독교적 전통의 세례를 받은 서양인들은 신(神)에 ‘잘못을 고백하는’ 의식에 익숙해 있는 반면, ‘수치심의 문화’ 속에 사는 일본인들은 잘못을 자꾸 감추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박성조(朴聖祚) 베를린자유대 교수는 지리적 이유와 함께 종교적·정신적 측면을 강조했다. “독일 기독교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할 것 없이 ‘사티스팍티오 오페리스(Satisfactio operis)’를 강조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우리 말로 하면 ‘행동으로 속죄하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잘못에 대해서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한때의 사과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지속적인 행동으로 자기가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차대전 이후 독일 기독교계(가톨릭, 개신교)가 중심이 되어 끊임없이 ‘사티스팍티오 오페리스’를 강조했습니다.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 ‘사티스팍티오 오페리스’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박성조 교수는 “오늘날 독일에서는 좌우(左右)를 막론하고 과거사 속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인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적당히 얘기하거나 인종주의적 발언을 했다가는 완전히 매장된다”고 말했다. 유대인 파워?
박재선 전 주모로코대사.
혹시 세계 경제와 문화예술계를 움직이는 유대인 파워가 독일의 과거사 반성을 강제한 측면은 없을까? 이에 대해 박성조 교수는 유대인 파워의 영향력을 인정한다. “미국의 학문이나 문화예술이 세계적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은 2차대전을 전후해 유럽에서 망명한 유대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부터였습니다. 게다가 골드만 삭스, 리먼 브러더스, 소로스 등이 미국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막강한 로비망을 구축하면서 언제든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여론화가 가능해졌죠.”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의 저자인 박재선(朴宰善) 전 주모로코 대사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냉전(冷戰) 시절 유대인들이 원폭(原爆)과 수폭(水爆) 개발 등 미국 국방에 크게 기여하게 되면서 그 힘이 점차 축적되어 유대인들의 영향력이 커집니다. 그게 축적되어 미국에서 유대인들 파워가 두드러지게 세진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였습니다. 반면에 독일은 이미 1952년부터 이스라엘에 대한 배상을 시작했습니다. 또 이스라엘뿐 아니라 러시아, 폴란드 등에 대한 배상도 함께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독일의 과거사 사죄는 유대인 파워의 압력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성찰할 줄 아는 독일인들의 문화적 깊이의 소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랜 세월 축적된 문화적·정신적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1・2차 대전 때 한때 ‘야만의 길’로 가기는 했지만 다시 ‘문명의 길’로 돌아오는 복원력이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교과서의 힘’
독일 교과서에 실려 있는 유대인 학살 관련 사진. 1943년 5월 바르샤바 게토에서의 유대인 봉기가 진압된 후에 찍은 사진이다.
신용철 교수는 “독일인들이 전후 6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게 된 데에는 ‘교과서의 힘’이 크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는 학교교육을 통해 끊임없이 나치 독일의 잘못을 상기시키고,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한 교과서는 ‘독일 안에서 나치의 지배’라는 제목의 단원에서 ‘독일에서 나치가 어떠한 세계관을 가졌으며, 그것을 어떠한 독재적 방식으로 수행하려 했는가’, ‘이 독재 성립의 과정을 이해하고 테러적 지배가 어떠한 위험을 가져왔는가를 인식하자’는 학습목표를 제시합니다.” 신용철 교수는 “독일의 교과서는 강제수용소의 참상에 대해서도 직시한다”면서, 독일 역사교과서들을 보여주었다. 이 책들에는 ‘바르샤바의 처형장 앞에서 총을 겨눈 나치 독일군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유대인 어린아이와 여성들의 모습, 가스실로 들어가는 유대인의 행렬’ 등을 담은 사진들이 실려 있었다.
신용철 경희대 명예교수.
신 교수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시민교육인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의 역할도 강조했다. “통일 전 ‘정치교육’에서 발간한 한 잡지에는 5세쯤 된 유대인 아이가 나치 독일군의 총구 앞에서 두 손을 쳐들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같은 나이의 히틀러유겐트가 당당하게 행진하고 있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잡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아래에는 ‘이 모든 책임은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어요. ‘우리 독일인들의 피 속에는 원래 히틀러처럼 잔인한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가? 히틀러는 우연한 사건이었는가? 아니면 역사의 연속선상에 존재하는가? 만일 다시 히틀러 시대처럼 독일의 상황이 암울해진다면, 히틀러는 또다시 우리 곁으로 다가올 수 있는가?’ 히틀러는 과거에 일어났던 우연한 사건이 아니며, 과거의 잘못에 대한 경계를 늦추면 그런 일은 다시 재현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독일에서 과거사를 왜곡하려는 정치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 아직까지도 사죄와 배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학교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을 통해 이런 뼈아픈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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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은 숨을 곳이 없다
아이들을 만나다보면 전반적으로 죄책감이 뿌리깊게 퍼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오늘 4학년 미디어수업에서 새로 바뀐 유튜브 스트리밍 정책을 말하며, 왜 14세 미만 어린이들은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만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을까? 물었다.
아이들은
“애들이라 뭘 모르니까요.”
“쓸데없는 거 하니까요.” 라고 대답했다.
이런 반응은 작년 출간한 <포기하지 않아, 지구>를 쓰기 위해 취재를 했을 때도 느낀 거다. 새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차단당하자 아이들은 ‘자기들이 쓰레기를 버리고 남의 아파트를 더럽혀서’ 응분의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하고 ‘쓰레기 버리지 말기’ 캠페인을 벌였다.
내가 만난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이런 식이었다.
매년 500명에서 1천명의 어린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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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교육포럼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민주시민교육포럼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민주시민교육포럼경기도 민주시민교육 톺아보기 #못다한_이야기 작년부터 현장이 많이 힘듭니다. 혐오와 차별이 정치로부터 권력을 이양받아 골목과 교실 곳곳으로 스며들어 폭발하고 있습니다.강사와 활동가들이 계속 다치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들이 쓰러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전해야 하는 종교는 혐오를 팔아 돈을 벌고 힘을 모아 덩치를 키워갑니다. 십자가 아래 무한증식하는 악마의 현현을 보고 있습니다.기이하게 폭발한 자유주의가 악성민원으로 둔갑했습니다. 행정은 이들의 공격에 계속 얻어터지며 차별과 투쟁하지 못합니다.계속되는 갈라치기로 괴물을 키워낸 것은 정치와 미디어입니다. 괴물들의 발언을 착취하고 그 뒤에 숨어서 자신들의 이득만 취하고 있습니다. 동료애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급진적 운동가들은 지역의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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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민주시민의 미디어리터러시
군포민주시민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2022 민주시민 활동가 + 코디네이터 양성과정의 기본교육 마지막 특강을 맡았습니다. 학교에서의 미디어리터러시와 현재 미디어 지형과 시민의 역할, 정치지형과 커뮤니티의 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3시간을 꽉 채운 강의 시간동안 집중해주신 참가자들의 열의가 놀랍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미디어 환경에서 올바른 시민의 역할을 되새길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시민교육활동가 양성과정의 순항을 기대합니다. 쉬지 않고 달리는 군포민주시민교육센터에도 응원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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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문화다양성 - 고등학교
[특강]문화다양성 –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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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문화다양성 멘토단 특강
경기도 안양의 만안청소년수련관에서는 매년 무지개학교를 운영합니다. 무지개학교는 관내 이주민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습도움 프로그램인데요. 경인교대 학생들이 멘토로 활동합니다. 히응에서는 대표자가 문화다양성과 지역교육네트워크, 민주시민교육의 전체적인 개괄을 살피며 멘토역량강화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멘토단으로 활동하는 경인교대 청년들의 아름다운 활동에 응원을 보냅니다. 언젠가는 이주민이라는 말도 사라지는 날이 오길 기대합니다. 202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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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교육 공동학술회의 참석
대전 한남대학교에서 열린 민주시민교육 공동학술회의 풀뿌리 민주시민교육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학회에 참석했습니다. 이룸은 학교/청소년 교육세��에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토론문은 추후 업데이트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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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넘나들기 시민교육 시작
2021년 넘나들기 시민교육 시작
2021년에도 안양과천교육지원청과 함께 하는 “찾아가는 넘나들기 시민교육” 학교 신청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팬데믹에도 불구하고 344개학급이 신청하였으며, 그 중 다섯 개 학교가 2+4 프로젝트를 신청해, 시민단체가 2회 4차시 수업을 진행하고 담당교사가 1회 2차시를 진행하는 연계활동을 시범적으로 시작합니다. 인권, 노동인권, 공정무역에 관한 수업을 준비하게되었습니다. 이룸의 올해 출강분야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권 – 90여개 학급 공정무역과 사회적경제 – 80여개 학급 평화감수성과 평화통일 – 80여개 학급 다양성, 젠더 – 60여개 학급 미디어 – 30여개 노동인권 – 10여개로 여섯 개 팀이 2021년 1년에 걸쳐 안양과 과천 지역의 초중고등학교에 출강합니다. 2015년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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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깨닫는것들, 중의 하나
1. 2020년 민주시민교육 학교 출강 문제로 이번주에 교사들과 이룸 각 팀장들이 전화통화를 했다. 개학이 연기된 마당에, 어제부터는 재 연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서 학교현장은 당황을 넘어서 이제 지친 상태. 언제 개학을 할 지 모르겠는, 또는 개학을 해서도 뭐가 제대로 진행이 될지, 걱정밖에 없다.
일정을 변경해야 하는 곳도 있어서 통화를 하며 수업내용에 대해 의논도 하고 있다. 우리가 진행하는 민주시민교육의 수업은 대부분 모둠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활동을 최대한 줄이고 협동과 토론, 활동으로 이어지는 교육안들인데, 코로나로 교실 내에서 이게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이 강사들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교사들에게도 의견을 묻고 있다.
어떤 학교는 모둠활동 최소화, 물건 공유도 줄이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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