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Explore tagged Tumblr posts
livlovlun119 · 2 years ago
Text
불완전한 인간의 운명과 성찰의 기록
알베르 카뮈 이방인 1942 / 뫼르소
헤르만 헤세 데미안 1919 / 싱클레어 크로머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 아브락사스abraxas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1925 / 개츠비 데이지 닉 캐러웨이 뷰캐넌 정비공 / 상실의 시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1915 / 그레고르 잠자 / 몸 해체 가족 해체 공간 집 해체 / 산업사회가 잉태한 현대성에 의문 제시 /
조지 오웰 동물농장 1945 / 메이저(마르크스 레닌) 나폴레옹(스탈린) 스노우볼(트로츠키) 존스(농장주인) / 오웰 사회주의자 소련식(스탈린식) 사회주의는 혐오함 /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880 /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탐욕 방탕) 큰아들 드미트리(음탕 순수) 둘째아들 이반(무신론자 허무주의자) 셋째아들 알렉세이(수도원 신앙 종교적)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간질 분노) / 그루센카(표도르 vs 드미트리) 스메르자코프가 표도르 살해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 스메르자코프 자살 드미트리 20년형 선고받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62 / 수용소 군도 노벨상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 대공황 배경 / 조드 가족 케이시 큰아들 톰 조드 딸 로저샨 / 에덴의 동쪽 / 근대 자본주의의 어둠 / 그래도 역시 사람만이 희망 / 1962 노벨 문학상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 레오폴드 블룸 매리온 부인 / 18시간 / 의식의 흐름 내면의 독백 기법 / 버지니아 울프 읠리엄 포크너 등에 영향 / 더블린 6월 16일 블룸의 날 /
단테 신곡 1321 / 지옥 연옥 천국 베아트리체 / 지옥 서곡 1 각 33 100곡 / 원제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 /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해피엔딩 / 유래 보카치오 신적인 희극 이를 일본학자가 신곡이라 번역 / 중세의 모든 학문 종합 / 이탈리아어가 피렌체어 중심으로 ��일 / 국가 개념 민족주의에 눈뜨기 시작 / 중세의 사상이 괴테 헤겔 쇼펜하우어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전승되는 다리 역할 / 이탈리아 문학 발달에 결정적 영향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1923 / 릴케 루 살로메 니체 프로이트 / 전 10편 / 일치와 대립의 결합 / 연작시 서정시 / 근현대 시문학의 거대한 원형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1938 / 드골 사르트르 / 실존주의 / 로캉탱 / 존재existence 본질essence /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
스탕달 적과 흑 1830 / 쥘리엥 소렐 시장 부인 레날 부인 후작 집 딸 마틸드 / 계급 메커니즘에 도전한 뛰어난 사회소설 + 섬세한 심리묘사로 만들어낸 리얼리즘 연애소설 / 적 나폴레옹 군대 군복의 이미지 자유주의 흑 왕정복고 시대의 사제복의 이미지 보수 왕당파 /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1933 / 상하이 폭동 테러리스트 / 기요(이상주의자 폭동주도 체포 자살) 첸(장제스 암살 시도) 카토프(체 게바라 순교자 연상시키는 인물)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 허무주의적 고독감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그림 /
월트 휘트먼(1819-) 풀잎 1855 / 죽은 시인의 사회 오 캡틴 마이 캡틴 1865 링컨 추모시 / 미국식 자유시의 창시자 /
제인 오스틴(1775-) 오만과 편견 1813 / 로코의 효시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 엘리자베스 다아시 / 제인 빙리 /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등대로 1927 / 의식의 흐름 기법 개척자 / 무학 블룸즈버리 그룹 존 케인스 e m 포스터 오빠 토비 남편 레너드 / 램지 가 / 내면의 갈등과 억압을 절묘하게 묘사 / 등대 영원한 진리나 이상을 의미 / 램지 부인 지혜의 상징 / 페미니즘 모더니즘 계몽주의 /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필체로 표현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 낭만주의 소설의 원조 / 베르테르 로테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1601? / 햄릿 아버지 클라디우스 거트루스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오빠와 아버지 / 영문학의 정전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869? / 안드레이 나타샤 피에르(나폴레옹 암살 시도) 카라타예프(농부) / ���명력 살아 있음의 위대함 / 1805년 1차 나폴레옹 전쟁에서 혁명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간 러시아 역사의 격변 배경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1952 / 산티아고(쿠바의 노인 어부) 마놀린(꼬마) 청새치 상어 /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투쟁 / 바다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삼켜버리는 무한의 공간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 샐 파라다이스(실패한 젊은 작가) 딘 모리아티(자유로운 영혼) / 뉴욕 la 멕시코 1.3만 km 히치하이크로 여행 / 작가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과 유랑 생활 그 기록이 바로 길 위에서 / 비트 세대의 상징적 인물 / 1960년대 히피 운동과 국제 히피족의 상징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1948 / 덧없는 아름다움 / 시마무라 게이샤 고마코 요코 / 허무한 세계관 / 유서도 단서도 없는 죽음 가스 자살 / 다카한 여관(소설 완성) / 스토리가 아니라 분위기의 소설 / 갈등 구조 없음 /
1 note · View note
0ocho · 8 days ago
Text
"당시 의식 있는 건축가들은 서구 건축의 수용과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모순 속에서 건축적 자의식을 표현해야 했다. 두 가지의 가능성이 존재했다. 하나는 모더니즘 건축의 보편성 위에서 전통을 차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 건축의 문법을 근대적 방법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김중업이나 김수근이 전자의 태도를 취했다면, 이희태는 후자에 가깝다. 김중업의 주한프랑스대사관은 한옥의 처마선을 추상화했으나 전반적으로 르코르뷔지에의 문법에 충실했다.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한국 전통의 인간적 스케일을 추상화한 모더니즘적 집합체였다. 반면 이희태의 절두산성당은 목조건축을 연상시키는 누각형 구성, 초가형 지붕, 열주와 서까래 등의 전통적 문법을 철근콘크리트로 추상화했다."
1 note · View note
lemon2sang · 1 year ago
Text
Tumblr media
(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Sergei-Rachmaninoff-Critical-Rebecca-Mitchell/dp/1789145767 )
1943년 라흐마니노프의 사망 직후에 칼럼니스트 레너드 리블링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알았던 러시아의 비극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는 깊은 우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그의 얼굴, 특히 두 눈에 잘 드러났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시대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자, "감미로운 낭만주의의 과거와 단단한 현대의 리얼리즘 사이"를 잇는 드문 연결 고리였다. (p11)
동료 작곡가이자 동포였던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라흐마니노프를 "6피트 반(약 198센티미터)짜리 우거지상"이라고 불렀다. 아닌 게 아니라,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 이주한 직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미소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근엄하고 엄숙한 얼굴 일색이다. 그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손에는 모자를 든 채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사진들에 나타난 우수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은 서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만 같다. 낡은 작곡 방식을 떨칠 수도 없고, 새로운 작곡 방식을 습득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음악 양식을 느껴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지만 이는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알고 있다. 나비부인은 남편을 위해 순순히 개종하였지만, 나는 내가 믿어오던 음악의 신들을 냉큼 버리고 새로운 신들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러시아에 닥친 재앙과도 같은 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음악이, 그리고 모든 음악에 대한 나의 반응이 정신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늘 느껴왔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명을 향한 끊임없는 순종이었다.' (p12)
14
'키가 훤칠하고 근엄하며, 몸가짐은 귀족적이고, 콘서트 무대에서는 냉정한 위엄을 발산한다. 저 강철 같은 손가락과 탄탄한 이두박근을 보면 거대한 불협화음을 앞세운 모더니스트의 음악을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섬세하고 커다란 감정,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노래하는 음색이 들려온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은 마음속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퍽 효과적이었다. 1942년 발간된 <타임>지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활동한 동안 누적으로 250만 달러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의 음악은 콘서트 프로그램과 음악원 담장 안, 그리고 시중에 발매된 음반에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고, 이는 곧 가슴이 미어질 듯 감정적인 그의 음악 양식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비록 20세기 중반에 음악적 '현대성'을 표방한 대표 주자들은 반음계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선율이 전면에 부각되며 화음이 복잡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혐오하였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의 팬들은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 던져진 자신들의 고생과 비애, 실패를 메아리처럼 표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8)
라흐마니노프는 철학적 토론에 직접 가담하길 꺼렸지만 철학적 논의가 그의 창조적 소산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다. 1919년 인터뷰에서 그는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음악의 세계에서 가장 지엄한 지배자는 바로 선율이다. 선율이 곧 음악이며, 선율은 또한 모든 음악의 필요불가결한 토대이다. 완벽하게 배태된 선율 속에는 그것에 고유한 자연스러운 화성과 그 화성의 발전 양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는 은 시대 작가들이 쓴 수많은 텍스트에 음악을 붙였으며, 러시아정교회 음악이 부흥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빌라 세나르에 보존된 그의 서재에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러시아 종교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를 포함하여 은 시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이 남긴 문헌의 러시아어 번역판이 간직되어 있다. (p20)
라흐마니노프를 그가 속한 시대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발히 활동했던 시대와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표상되는 미적 견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혁신과 실험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는(아울러 대중적 인기를 수상쩍게 여기는) 현상을 "모더니스트 담론"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라흐마니노프를 '진��' 혹은 '보수'의 프레임에 가두는 일은 그의 생애 내내 음악적 가치를 갑론을박하는 데 적용한 가치 기준을 그대로 빌려 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음악을 근본적으로 현대적인 것이되 반드시 모더니스트적이지는 않다고 규정한다. "모더니즘"을 "현대화의 객체뿐만 아니라 주체가 되기 위한 현대 남녀의 모든 시도"로 이해한 문화사학자 마셜 버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주장을 펼쳤다.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모험과 권력, 기쁨과 성장,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약속하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우리의 모든 정체성을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환경 속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단한 것들이 모두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p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는 현대의 끊임없는 영고성쇠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현대의 어떤 측면들은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융성하였다. 동시에 그가 창조한 가공의 러시아성에 뿌리박은 자아는 그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분투했다는 면에서 전형적인 현대의 산물이었다. (p22)
"새로운 종류의 음악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음악의 작곡가들은 느끼기보다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 한스 폰 뷜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음악을 '환희하게'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묵상하고 주장하고 분석하고 사고하고 계산하고 곱씹을 뿐, 절대 환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정신에 입각해 곡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대의 정신은 음악에서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곡가들로서는 사고는 가능하되 느낄 순 없는 음악을 엮어내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가 요구하는 표현은 사실과 문자의 장인인 작가와 극작가에게 맡겨두고 영혼의 권역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나의 견해를 물은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경우도 현대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현대음악은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는 음악입니다. 고사병에 걸린 채로 태어나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p23-24)
라흐마니노프의 젊은 시절 행보는 당대 문화계의 움직임과 발맞추었고 현대성에 의해 초래된 격동과 긴밀히 조응했다. 1917년 이후 그는 두 차례의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한 번은 자신의 조국을 등져야 했던 정치적 망명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전문 음악가 동아리 내에서 세를 굳히던 현대주의자들의 '미래파' 담론에서의 배제였다. 마음속 깊이 현대적이었던 그는 현대주의자들이 표방하는 미학을 삼갔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이 속한 시대의 모순을 표상하는 화신이 되었다. (p25)
"스승님께서는 리듬이 없고 문법과 구두점이 빠진 연주를 결단코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도 가장 거대한 예술적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커다란 음악적 토대가 되어주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제자가 어릴 때부터 “테크닉뿐만 아니라 해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곤 했다. (p44)
49
라흐마니노프의 근엄하고 엄격한 몸가짐과 표정은 무대 위에서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음악 예술에 헌신하는 자세-즈베레프의 문하에서 기숙하며 배양한 것이다-를 앞세운 그는 모든 공연에 진지하게 임했고, 불필요한 제스처나 극적 몸동작을 삼갔다. 훗날 라흐마니노프는 스스로 "85퍼센트는 음악가이고 고작 15퍼센트만 인간"이라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이미 음악원 시절부터 체화되어 있었던 셈이다. (p67)
지극히 유명세를 치른 음악인 만큼 많은 이가 작곡가에게 음악 외적인 작곡 동기는 없었는지 묻곤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종일관 부정적인 뜻을 밝혔고, 1910년에는 "나의 유일한 동기는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던 다급한 필요를 제외하면- 그저 아름답고 예술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뿐이었다"라고 확실히 매조졌다. (p77)
82 85
라흐마니노프 자신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이 교향곡은 사람들이 쓰고 이해하는 의미대로 퇴폐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고, 다만 확실히 약간 '새롭긴' 하다." 글라주노프의 지휘가 수준 이하였던 때문도 있었겠으나, 그로서는 곡이 새로워 초연이 실패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초연으로부터 18년이란 세월이 흐른 1915년에 그는 마리에타 샤기냔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스스로 음악가라 칭하고 음악 속에 담긴 불편함을 직시하길 꺼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혁신가의 월계관을 씌워줘야 마땅하겠지. 그런 이들은 선진적이며 독창적이라 불리겠지만, [나의] 혁신은 태내에서 목 졸리고 말았어." 샤기냔의 결론은 이랬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앓게 된 건 교향곡 초연의 실패나 그에 따른 실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병에 빠진 이유는 음악가로서의 미래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즉, 더 이상 혁신가로서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훗날 라흐마니노프가 '현대주의자들'의 음악적 실험을 적대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p86-87)
97 101 102-3 115-6 118-9 122-3
128, 9
이러한 움직임을 뒷받침한 인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는 아마도 러시아 사상가 겸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일 것이다. 예술이 이��는 기적에 관한 솔로비요프의 생각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성육신과 예수가 산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 변용같은 기독교적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인간의 예술적 창조성은 아름다움의 현현을 통해 물질세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그는 음악이 아름다움의 가장 "직접적이거나 마법적인" 표현이라면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내부적 상태가 사물의 진정한 본질 그리고 내세와 (혹은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연의 존재'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음악만이 가진 신비로운 힘에 대한 의견은 러시아에서 발간되던 문학·철학·미술 잡지에 자주 등장했다. 모스크바 출신의 음악가 콘스탄틴 에이게스는 솔로비요프의 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관객에게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까지 했다. 20세기 초반을 살던 솔로비요프의 추종자들에게 예술가-그리고 특히 작곡가-는 저들의 예술을 통해 물질적 세계를 영화하는 기적을 수행하는 이들로 비춰졌다. (p130-131)
러시아 상징주의 미술의 초기 사례인 미하일 브루벨의 <앉아 있는 악마>(1890)
140
라흐마니노프는 사회와 정치판이 극적으로 요동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1905년 2월 3일에 발표된 결의안에는 모스크바의 여러 음악가와 함께 그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오로지 자유로운 예술만이 삶에 진실한 예술이며, 오로지 자유로운 창작 행위만이 기쁨을 줄 수 있다." 우리 음악가들은 우리의 예술가 동무들이 발표한 이 멋진 문장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바이다. 만일 예술이 진실로 강력해지고 진정으로 거룩해지며 정녕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면 예술가 내면의 자기 인식과 인간 사회의 기본적 요구 말고는 예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인생의 손발이 묶인 경우라면 예술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없고 발언과 언론의 자유도 없는 국가라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생동하는 예술적 사업에 투신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국가라면, 예술의 소산 역시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 예술가'라는 칭호 역시 쓰디쓴 농담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우리는 ��유 예술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권리라고는 없는, 현대의 부자연스러운 사회적·법적 환경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여건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그 길은 러시아가 근본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다." (p142-143)
145-6
154-5 167
"진정한 영감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면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면 외부에서 그 어떤 자극이 주어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술가 내면에 창조적 능력의 거룩한 불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장 훌륭한 시, 가장 위대한 그림, 가장 숭고한 자연이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아무런 쓸 만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 (p168)
169-171 (170)
175-7 179-180, 1
만년에 들어서는 소규모 피아노곡을 쓰는 일만의 어려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털어놓았다. "피아노를 위한 소품을 쓸 때는 장황하게 흐르지 않고 간결하게 응축해내야만 하는 주제 악상에 따라 곡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협주곡과 교향곡을 작곡할 때는 곡이 술술 써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모든 소품은 세심하게 살피고 근면히 노력한 산물입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을 하되 간결하고 알기 쉽게, 그리고 에두르지 않고 말하는 건 창조적 예술가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입니다. 복잡해지기보다 단순해지기가 더 어렵다는 걸 예술가는 오랜 경험 끝에 깨닫게 됩니다." (p192)
철학적 언어를 동원해 자신의 미적 가치 체계를 설명하는 일을 꺼린 라흐마니노프였지만, 그의 작곡 양식이 아폴로적 균형 감각의 지배를 받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음악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에 대조와 부조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음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부조화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인정사정없이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부단한 불협화음은 결코 예술이 아니며 절대 예술이 될 수도 없다" 하고 단언했다. (p193)
"내 유일한 영감은 -다소간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는 별도로 하고- 뭔가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 뿐이었다. 전주곡이란 그 본질상 절대음악이며, 아무리 작곡가의 팔을 비틀어도 전주곡을 교향시나 음악적 인상주의용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순 없는 법이다 ... 절대음악은 듣는 이들이 어떤 분위기를 느끼도록 유도하거나 암시할 순 있다. 그러나 절대음악의 주요 기능은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 형태의 다양함을 통해 듣는 이에게 지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바흐의 전주곡에서 작곡가가 느꼈던 분위기를 발견하려 애쓴다면 정작 음악에 담긴 가장 두드러진 아름다움은 놓치는 꼴이 되고 말 터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이자 음악의 목적은 음악 그 자체이다. 음악의 의미는 구체적 삶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바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던 모스크바의 음악 철학자 콘스탄틴 예이게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p194)
이제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스타일이 된 음악의 일면들은 음악 외적 요소와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고르지 않은 박자는 정교회 성가 선율을 떠오르게 하고, 종소리를 모방한 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죽음의 섬> 이후로 라흐마니노프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가 되다시피 한 '진노의 날' 모티프 역시 여러 대목에서 식별된다. 이처럼 여러 작품을 통해 공통으로 되풀이되는 음악적 단서들은 물리적 현실이나 특정한 경험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1906년 모스크바의 문예지 <황금 양모> 창간호에 나온 "예술은 상징적이다. 예술은 이미 그 안에 상징-유한한 것에 무한한 영원을 담은 것-을 품고 있다"라는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온당할 것이다. (p195)
라흐마니노프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선율과 풍성한 화음을 그만의 방법으로 배합한 음악에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 경험한 바를 긍정받는 감정의 분출을 경험했다. 집시들이 부르는 노래, 오페레타, 그리고 문화 엘리트층이 멸시하는 '대중적'인 여흥과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가 쓴 음악은 듣는 즉시 감정이 움직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은 그저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런 음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지로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호소했다. M. L. 첼리시체바의 회고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모든 이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고 다른 그 어떤 음악가도 건드릴 수 없는 심금을 건드려 소리나게 했다." (p197)
라흐마니노프의 열혈 팬이자 친구요, 뮤즈였던 마리예타 샤기냔. "나는 모든 게 무섭소. 생쥐, 쥐, 딱정벌레, 황소, 도둑이 무섭고, 강풍이 불 때마다 굴뚝이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도 무섭소.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것도 무섭고, 어두운 것도 무섭고, 기타 등등 무서운 것이 한둘이 아니오. 나는 퀴퀴한 다락을 좋아하지 않소. 다락에는 집의 정령이 기거하는 것 같소(그대는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지 않소!). 그렇지 않다면 낮에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을 텐데 말이요."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에게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조성 음악을 내팽개친 모더니스트들을 보고 내린 철학적 결론에 경악했으며, 반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성을 빼앗는 현대의 힘에 맞서 개인의 영역을 지켜낼 저지선을 발견했다. 철학에 대해 논한 장황한 글에서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단지 음악적 상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음악의 덮개를 벗겨 그 아래 숨은 상징을 찾아낸다"고 썼는데, 이는 음악(그리고 더 넓게는 예술 전반)을 초월적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로 여기는 은 시대에 널리 유행한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스스로의 예술성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하는 인간 자체를 들었다." 그녀는 "비단 예술(특히 회화와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상생활 역시 리듬을 잃고 있다면서, 그런 만큼 리듬이 뚜렷한 음악에 헌신한 라흐마니노프의 자세를 더욱 무겁게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99-200)
201
시인 콘스탄틴 발몬트 <불타는 건물들>, <우리가 태양처럼 되게 하소서> (p205)
207
220
'매우 감동적이고 불안정한 어조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레', 죽음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 예전의 나는 도둑, 강도, 전염병 등 모든 게 조금씩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것들은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죽음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삶이 끝난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저 썩어 사라지는 편이, 존재하길 멈추는 편이 좋을 텐데요. 하지만 무덤에 묻히고 난 뒤에도 끝이 아니라면 그건 무섭습니다. 내가 겁이 나는 이유는 불확실성이라는 미지수 때문입니다!" ' 이렇게 걱정하는 그에게 샤기냔은 기독교 신앙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안심시키려고 하자(참고로 샤기냔은 훗날 스탈린주의를 추종하는 운동가가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멸하기를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못쓰게 되고 늙어진 다음에는 스스로가 지긋지긋해집니다. 물론 나는 늙지 않았는데도 벌써 내가 지긋지긋하지만요. 그렇지만 만약 죽음 뒤에도 뭔가가 있다면 그건 정말 무섭습니다." (p226-227)
로베르트 슈테를 <크렘린 상공의 불꽃놀이> (p242)
253-4 255-6 (258) (260)
"대중을 상대하는 연주자 가운데 라흐마니노프만큼 연주 매너나 해석 면에서 의도적인 노림수를 두지 않는 이도 없을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때로는 유장한 해석의 기조에는 그 어떤 종류의 불필요한 장식이나 사족도 제거되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씨는 낭만적이고 매끈한 색채를 입힌 연주를 경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연주는 낭만파 시대의 화려한 캔버스보다는 조각품과 유사하다." (p261)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1929년 데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암피코 피아노 롤 녹음을 발매한 적이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2번> 음반. (p263)
265 268 274-5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제는 어깨를 누르는 짐의 무게를 느낍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그 짐이 이제는 그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 짐이란 바로 내게 조국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 젊은 시절 몸부림치며 모든 슬픔을 삼켰던 그곳,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손에 쥔 그곳을 나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내 앞에는 온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모두 열려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 조국, 러시아입니다." (p280)
1934년 4월 10일 빌라 세나르 (p285)
291 294-5
뉴욕에서 발행되던 러시아��� 잡지 <뉴 러시안 워드>지에 게재된 요세프 야세르의 리뷰는 라흐마니노프의 이목을 끌었다. 야세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이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해온 '진노의 날' 모티프가 문득문득 나타난다고 썼다. 야세르와 만난 자리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보통 음악가들은 첫 두세 소절만 아는 [그건 라흐마니노프도 마찬가지였다] ... 이 유명한 중세 시대의 선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죽음을 상징하는 이 성가 선율에 평생토록 흥미를 보여온 라흐마니노프가 정작 그에 관련한 지식은 이전 낭만주의 작곡가들 (베를리오즈, 리스트, 생상스,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의 용례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 퍽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야세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라흐마니노프가 내린 결론은 더욱 놀랍다. "그처럼 자주 활용되는 성가 선율이, 게다가 한때 러시아정교회 성가집에 수록된 적도 있는 성가 선율이, 특징적이어서 쉽게 기억되는 레퀴엠 선율이 필요한 작곡가들 사이에서 그저 무언의 전통처럼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있음 직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관습이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머뭇거리며 "그래요, 관습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 하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라흐마니노프와 논의를 주고받은 야세르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선 '진노의 날' 선율은 라흐마니노프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특히 그의 만년을 괴롭히던 생각들에 대한 오랫동안의 해답 같은 존재였다. 둘째,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진노의 날' 선율 속에서 모종의 음악 외적 요소- 어쩌면 저 세상으로부터의 '호출' 같은-를 느끼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 이러한 무의식적인 감각을 오로지 자신의 내부에만 국한시키길 꺼리는 것 같아 보였다." (p296-297)
298-9 301-2 302-4
"연주회는 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내게서 연주회를 앗아가면 나는 시들고 말 겁니다. 통증이 있어도 연주할 때는 사라집니다. 종종 얼굴과 머리 왼쪽의 신경통이 스물네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연주회 전에는 마술처럼 없어집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요통 때문에 아주 고생했습니다. 무대 위의 피아노 앞에 앉은 상태에서 막이 올랐고, 연주를 할 때는 조금도 통증이 없었어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니 일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막을 내린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어요. 아뇨, 연주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일을 멈추면 시들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안 됩니다. ... 무대위에서 죽기를 바랄 수밖에요." (p306)
309
315 317-320 323-5 (324)
(328) 331 333-4
라흐마니노프는 현대 기술을 사랑했고, 색소폰 같은 현대 악기들을 탐구했다. 또한 여러 망명지를 겪은 것처럼 제정 러시아 말기의 시국도 경험하였다. 다시 말해, 사상과 혁신이 난무하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여건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같은 이유로 라흐마니노프는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의 음악과 정신은 1914년 부활절의 크렘린궁전을 담은 로베르트 슈테를의 그림, 즉 라흐마니노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옛 러시아'의 이상화된 박제이자 그의 벽에 걸린 뮤즈를 동경했다. 라흐마니노프 개인에게 보이는 이러한 모순은 현대성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셜 버먼은 현대 세계에 관한 글을 맺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서로 얽히는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자신 스스로가 영속적인 해체, 갱신, 곤란, 비통, 모호함, 모순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주의자라는 것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떻게든 익숙함과 편안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소용돌이의 리듬을 자신의 리듬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소용돌이의 격정적이고 위험한 급류가 허락하는 현실과 아름다움과 자유의 형태들을 찾아 헤매는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p336)
377-8=======
- 리베카 미첼 , ' 라흐마니노프 ' 중에서
1 note · View note
deodeumi · 2 years ago
Text
제 12-1 "Torbjørn Rødland"의 작업 및 전시 사진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orbjørn Rødland, IN A NORWEGIAN LANDSCAPE 2, 1993, 50x50 cm
Torbjørn Rødland, Frost n°4, 2001, c-print /aluminium, framed, 45 x 57 cm, edition 5
Alfred Stieglitz (American, 1864–1946), Winter on Fifth Avenue, 1897.
Richard Prince, Untitled (Cowboy), 1994
Torbjørn Rødland, Hands and Eyes. Portrait no.1, 2008 - 2010, chromogenic print, 22 1/2 x 17 3/4 inches
Torbjørn Rødland, Avocado, 2013, chromogenic print, 23 5/8 x 30 inches, Hair, 2010, Chromogenic print on Kodak Endura paper, 57 x 45 cm
Torbjørn Rødland, Tatoo, 2006, c-print ,40x50 cm. Ed.3
Denis Villeneuve, Dune, Film still
Torbjørn Rødland, The Curve, 2012-15
1 note · View note
calikellytv · 4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Fred Stodder with his Gorgeous Artwork! 그의 재능은 여러방면에서 탁월했다.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쏟는 정성과 시간이 느낌있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의 작품의 원재료가 흙인데 그의 손끝을 거치면 생명력이 덧붙어 완연히 다른 창조물로 태어난다. *Mother Earth:Stained glass mosaic tile over masonry and polystyrene substrate with steel and aluminum reinforcement. 48” high.@fred_stodder#modernceramics#glassmossaic#fredstodder#3Dart.#pottery#abstractart #ceramicworks#도자기예술#3d예술 #모던디자인#모더니즘#모자이크예술작품#미국예술가#라구나비치예술가 https://www.instagram.com/p/CE8KjOTnxcX/?igshid=14sexb21h737s
0 notes
Photo
Tumblr media
Y3 특가 9만원 (배송비 별도) 한정수량 실제품 사진 (4종) . 더 자세한 제품 사진 클라우드 앨범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필 링크) . 🔗 🙏문의는 ⚡️오픈카톡 “하이엔드갱” 🔑링크리스트 (프로필 링크) https://linktr.ee/hiend_gang . 🔗더 많은 제품들 “클라우드 앨범”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프로필 링크) https://highgang.x.yupoo.com/albums https://2chain.x.yupoo.com/albums https://kicksta.x.yupoo.com/albums 🔗 . #와이쓰리반팔 #와이쓰리티셔츠 #요지야마모토 #요지티 #요지야마모토티셔츠 #스포티즘 #닌자 #닌자룩 #닌자웨어 #다크웨어 #모더니즘 #심플리즘 #오버핏코디 #은근히 #플렉스 . https://www.instagram.com/p/CAb13hdAdZP/?igshid=q7jfjd2maq92
0 notes
iankilee · 3 years ago
Video
tumblr
Ian The COMET!, One of the Urban Rubbishes, prototype - Series, 2015
Origin of the webtoon “Louis & Jolgaedull”.
1 note · View note
livlovlun119 · 2 years ago
Text
혁명과 모더니즘 러시아의 시와 미학 이장욱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4 notes · View notes
vantablackroses · 4 years ago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여전히 소설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시의 연속적 충격과 달리 도화선처럼 타들어가는 플롯의 흐름에서 오는 무엇이 분명 있다. 소설에서의 윤리와 재현에 대한 고민이 잦아지는 시기다.
서사는 공동체라는 작은 세계에 귀속된 자들로 인해 공유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중심적인 세계에서, 사회를 부감하고 인간이 구성한 다양한 공동체를 초월화여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시점, 그 메타 차원의 시점이란 누구의 시점인가. 신의 시선에서 이야기되던 이전의 서사로부터 탈피한 후 캐피탈리즘과 국가의 시점을 통해 창조된 근데소설은 무엇을 향해 뻗어 나가는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조가 있던 과거에, 모더니스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도구들이 세계를 재현하는 데에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여기서 세계를 아예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발상이 나온다. 그것은 재현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자면 ‘사건’ 그 자체의 소재를 지시하는 게 아닐까. 재현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근대 예술 전반에 걸쳐져 있다. 그러나 재현의 속성이란 언어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불가능성의 한계로 인해 오히려 근대 예술이 생길 수 있던 역설적인 중요함과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일부 작가들이 재현의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침묵을 택하는 양상을 보아 왔다. 정체성이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성에 기반한 개념이며, 위치성은 개인이 서 있다는 장소의 중첩에 대한 개념이다. 이것들이 곧 ‘개인’ 단위의 개념이 된다. 개인은 존재를 사고하는 기초 단위가 된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별 가능하다는 감각과 구별해야 한다는 감각인 것이다.
오늘날 글쓰기의 이중구속(double-bind)적 상황에서, 타인의 삶을 침해하거나 절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미디어적 신체의 상황이 대립한다. 즉 저작권 관념의 강화와 초연결 시대의 대립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쓰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사건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사건을 통과해왔으며 이 사건이 중단됐을 때 어쩌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 벤야민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을 당시 ‘지금 여기’라는 말을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이 사건을 설명하는 개념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주체는 선언적이거나 진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각자만의 방법론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고의 기초단위로부터 달리 사유해 보면 어떨까. 주체, 나, 존재, 존재단위, 정동, 중동태 등. 막연하게 ‘나’를 나로만 알기보다 그 본질에 서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당사자성. 문단 내에서 꾸준히 야기되어오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을까. 이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에 당사자성과 관련된 윤리에서 이따금 강조되는 건, 나와 우리라는 존재가 그저 individual, 더 이상 나뉘지 않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철저한 남으로서 존재하고 작동할까. individual이라는 이 감각은 생성된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떠한 링크도 잔존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 실재계를 떠도는 망령 같은 언어들처럼.
시의성이 있는 소재로 글을 쓸 때 소재와 거리두기를 얼마나 해야 할까. 이것도 요즘의 고민거리다. 그걸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미완결 상태인 재난이나 사건에 대해 글을 써도 될까. 사건의 소용돌이, 한복판 안에 있을 때는 글을 쓰기 어려웠다. 세월호 사건 당시 모든 작가들이 글쓰기를 중단했다고 한다. 글은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저 마음 안으로 슬퍼할 뿐이다. 그 사태에서 한 발이 빗겨나가고 시간이 확보된 이후, 생각의 뿌리가 어떤 맥락인지 검토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로소 쓸 수 있다. 이원 시인의 「검은 모래」 를 읽을 때 나는 얼마나 어깨를 들썩였��가.
이런 시의성 있는 소재를 언어로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몸이 튀어나가는 건 시다. 시의 이런 특성이 나와 닮아 있어서 나는 시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겠지. 전쟁이라든가 518, 세월호 사건에서도 시가 먼저 반응을 했고 그 다음이 르포르타주였다. 마지막이 소설이었다. 소설의 장르 특성 상 재현이라는 것에 첨예하게 봉착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르포 같은 경우는 당사자들과 직접 검수하고 같이 읽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소설은 아니다. 어쩌면 소설에서의 재현이 가장 까다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 이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일까. 시에서는 더욱 더 확장되고 솟구치던 재현의 연구와 실험들이, 어째서 소설에서는 침묵을 택하는 양상을 보일 때가 있을까. 질문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가진 글쓰기 윤리의 난제와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쓰고 싶은 것과 당장은 쓸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윤리는 도덕과 다르다. 도덕은 ‘나’ 바깥에서 어떤 공동체나 집단이 나의 동의여부과 무관하게 강요하는, 이전부터 있던 법규 같은 것이다. 윤리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과 다르게 나의 성찰로부터 발현된다.
모든 글쓰기는 결국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외부와 접촉이 생긴다. 즉 ‘누가’ 상처 입느냐가 관건인 문제다. 당장 나만 해도 무해한 글을 욕망한다. 무섭고 절박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촉면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쓴다. 글쓰기 이전에 사고방식이나 세계관 자체의 근거를 달리 사유하고자 한다. 이건 비단 글쓰기에서만 중요시되는 게 아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달라져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미디어, 법과도 이어진다. 지금 이 세계를 직시하지 않으면 같은 자리를 공회전하게 된다.
윤리냐 표현의 자유냐. 그 기로에 서 있다.
당사자가 당사자를 커밍아웃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상황이 있다. 인권뿐만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만물의 존재들이 있다. 당사자만이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착오가 자리잡을 때, 누군가가 대신 해 줘야 하거나 함께 해 줘야 하는 필요성이 지워지게 된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말해 줘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스피박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언급했던 사티 풍습은 어떠한가. 결국 언어를 가진 자가 재현해야 한다.
재현의 문제의식은 협소한 게 아니라 곳곳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공유된다. 재현과 관련해서 자꾸 둘 중에 하나를 선택��야 하는 것처럼, 당사자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다뤄지면 비극이 된다. 연대를 해야 하는 순간들, 불가피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같이 얘기해 줘야 하는 상황에서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입을 열 수 없는 이들은 영영 언어를 상실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시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이지만, 늘상 소설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서만 재현될 수 있는 것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시는 우리가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사유하느라 지나쳤던 대상의 실재와 실재에서마저 배제되어 버려진 감각들을 재현해낸다면, 소설은 과연 무엇을 재현해내려고 하는 것일까. 명료한 답을 내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읽고 쓰고 사유한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갔고, 좋아하는 책의 중판 1쇄를 발견했다. 앞 페이지에 쓰여 있던 누군가의 짧은 염원을 보았고, 그 당시 어떤 사건이 이들을 읽게끔 만들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28년에 걸려 내게로 오게 된 이 안부는 여전히 건강한지. 자주 웃는지. 궁금했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갔고, 좋아하는 책의 중판 1쇄를 발견했다. 맨앞에 쓰여져 있던 누군가의 짧은 염원을 보았고, 그 당시 어떤 사건이 이들을 읽게끔 만들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28년에 걸려 내게로 오게 된 이 안부는 여전히 건강한지. 자주 웃는지. 궁금했다.
36 notes · View notes
yozwm · 3 years ago
Text
21년 결산 4
7월
Tumblr media
Weissenhofmuseum(바이센 호프주거단지, 슈트트가르트)
근,현대 초기 혁명적 모던 건축의 대가들이 총집합하여 모더니즘 생활 및 주거 공간을 실험했던 역사적 산물
Tumblr media
Killesbergpark(슈트트가르트 주립공원에서
Tumblr media
Biblioteca pública(세계적인 한국 건축가 이은영 교수가 설계한 환상적인 슈트트가르트 시립도서관)
Tumblr media Tumblr media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시대별 명화들이 즐비한 슈트트가르트 국립 미술관에서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락다운 해제 후 공원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지던 슈트트가르트 주말
Tumblr media
Deißlingen(다이슬링엔)
11 notes · View notes
pollonegro666 · 3 years ago
Text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2022/04/30 Encontramos a Papa Noel y a unos renos. Uno de ellos está en la puerta del Museo de Ciencia. Es un edificio modernista que es muy bonito.
We found Santa and some reindeer. One of them is at the door of the Science Museum. It is a modernist building that is very beautiful.
Google Translation into Portuguese: Encontramos o Papai Noel e algumas renas. Um deles está na porta do Museu da Ciência. É um edifício modernista que é muito bonito.
Google translation into Italian: Abbiamo trovato Babbo Natale e alcune renne. Uno di questi è alle porte del Museo della Scienza. È un edificio modernista molto bello.
Google Translation into French: Nous avons trouvé le Père Noël et des rennes. L'un d'eux est à la porte du Musée des sciences. C'est un bâtiment moderniste qui est très beau.
Google Translation into Arabic: وجدنا سانتا كلوز والرنة. واحد منهم عند باب متحف العلوم. إنه مبنى حديث وهو جميل جدا.
Google Translation into German: Wir haben den Weihnachtsmann und Rentiere gefunden. Einer von ihnen befindet sich an der Tür des Wissenschaftsmuseums. Es ist ein modernistisches Gebäude, das sehr schön ist.
Google Translation into Albanisch: Ne gjetëm Santa Claus dhe renë. Njëra prej tyre është në derën e Muzeut të Shkencës. Është një ndërtesë moderniste e cila është shumë e bukur.
Google Translation into Czech: Našli jsme Santa Clause a soby. Jeden z nich je u dveří vědeckého muzea. Je to modernistická budova, která je velmi krásná.
Google Translation into Greek: Βρήκαμε τον Άγιο Βασίλη και τους τάρανδους. Ένα από αυτά βρίσκεται στην πόρτα του Μουσείου Επιστημών. Είναι ένα μοντερνιστικό κτίριο που είναι πολύ όμορφο.
Google Translation into Suomi: Löysimme joulupukin ja porot. Yksi niistä on Tiedemuseon ovella. Se on modernistinen rakennus, joka on erittäin kaunis.
Google Translation into Polish: Znaleźliśmy Świętego Mikołaja i renifera. Jeden z nich znajduje się przy drzwiach Muzeum Nauki. Jest to bardzo piękny budynek modernistyczny.
Google Translation into Turkish: Noel Baba ve ren geyiği bulduk. Bunlardan biri Bilim Müzesi'nin kapısında. Çok güzel olan modernist bir yapıdır.
Google Translation into Hebrew: מצאנו את סנטה קלאוס ואיילים. אחד מהם בפתח מוזיאון המדע. זה בניין מודרניסטי שהוא מאוד יפה.
Google Translation into Hindi: हमें सांता क्लॉज़ और हिरन मिले। उनमें से एक विज्ञान संग्रहालय के द्वार पर है। यह एक आधुनिकतावादी इमारत है जो बेहद खूबसूरत है।
Google Translation into Indonesian: Kami menemukan Santa Claus dan rusa. Salah satunya adalah di pintu Museum Sains. Ini adalah bangunan modernis yang sangat indah.
Google Translation into Russian: Мы нашли Деда М��роза и северного оленя. Один из них находится у дверей Музея науки. Это модернистское здание, очень красивое.
Google Translation into Japanese: サンタクロースとトナカイを見つけました。 そのうちの1つは科学博物館のドアにあります。 とても美しいモダニズムの建物です。
Google Translation into Korean: 우리는 산타 클로스와 순록을 찾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과학 박물관의 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더니즘 건물입니다.
Google Translation into Chinese: 我们找到了圣诞老人和驯鹿。 其中之一在科学馆门口。 这是一座非常漂亮的现代主义建筑。
Google Translation into Persian: بابا نوئل و گوزن شمالی را پیدا کردیم. یکی از آنها درب موزه علوم است. این یک ساختمان مدرنیستی است که بسیار زیبا است.
Google Translation into Thai: เราพบซานตาคลอสและกวางเรนเดียร์ หนึ่งในนั้นอยู่ที่ประตูพิพิธภัณฑ์วิทยาศาสตร์ เป็นอาคารสมัยใหม่ที่สวยงามมาก
Google Translation into Ukrainian: Ми знайшли Діда Мороза та північних оленів. Одна з них – біля дверей Музею науки. Це дуже красива будівля в стилі модерн.
4 notes · View notes
livlovlun · 4 years ago
Text
안현배의 예술수업 안현배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
오르세 미술관 이야기이다
그림들이 많아서 고른 책이었다
6 notes · View notes
nawgnuskrap · 4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columbus, 2017. dir. kogonada
소통으로 축조한 생의 모뉴먼트와 관계의 형이하학. 절대적 모던의 당위성과 그 무한한 온연함에 대하여.
i. “현대 건축의 상징물들이 조용히 자리 잡은 도시 콜럼버스. 그곳에서 만난 남녀가 하염없이 건물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교회와 병원, 도서관은 둘의 대화를 경청하는 중요한 청자이자 위안을 주는 화자로 모더니즘 건축의 교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비디오 에세이스트 출신의 코고나다 감독이 콜럼버스의 건축물로 쓴 시 안에서 모더니즘은 온기를 담는 그릇과도 같다. 사람들의 체온과 이야기가 스며들 수 있게 남겨둔 모더니즘 건축물의 간결한 여백은 영화의 미덕과 닮아있다.”
ii. 장소는 자신의 가장 높고 가장 먼 곳으로 무언가를 모은다. 장소, 즉 모으는 것은 이렇듯 자신에게로 무언가를 들여와서 그것을 보존한다. 하지만 상자가 내용물을 그 안에 잠가두고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여진 것을 관통하여 빛을 비춰줌으로써 비로소 그것의 본질이 발휘되도록 해주는 방식으로 보존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사물들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연장을 가진 실체로서의 물리적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하나의 장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구역들은 눈앞에 있음의 방식으로 함께 존재하는 사물들에 의해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이미 각각의 자리들에 손안에 있음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거리 없앰을 통해 얻어지는 공간적 관계는 손안에 있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현존재가 세계 내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언제나 손안에 있는 존재자들 곁에 있음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가 손안에 있는 존재자들처럼 구역으로부터 직접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현존재는 미리 발견한 구역 안으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손안에 있는 존재자를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그것과의 거리를 없앤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자신도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존재자는 단순히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세계 내부적 존재자들과의 의미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은폐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재와 현전 가운데서, 변화의 나타남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현전하는 정적과 안식.”
- 김동훈, 「공간-마련과 깃들임의 사유: 하이데거 사유를 통해 본 도시 공간의 의미」 中.
1 note · View note
ooyanono · 4 years ago
Text
건축가로서의 시작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마주친 한 시골의 정원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뒤 그곳에서 생겨난 영감을 실현시키기 위해 루누강가(Lunuganga)의 버려진 부지를 사서 자신만의 정원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 가문에서 태어나 그 뒤를 잇던 이에게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움트게 했던 날갯짓은, 그의 최초이자 대표 작품이 된 루누강가 정원 안에 있는 나비 모양의 연못으로 남겨진 듯합니다.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2003)는 스리랑카와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스리랑카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그에게 처음 부여된 정체성은 ‘경계인(people in-between)’이었습니다. 식민 본국과 자국민 모두 그에게 배타적이었지만, 경계 위에서 그가 세운 건물은 허물어진 벽이었습니다. 작품 중 대부분은 열대 우림, 강, 바다와 같은 스리랑카 본연의 지형과 이어지듯 세워져 있고, 창과 문을 커다랗게 내어서 내부를 가득 채우듯이 들어오는 빛과 바람과 풍경이 안팎의 경계를 흐리게 합니다.
바와가 활동하던 당시,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이 열대 지방의 식민지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일률성이 스리랑카의 기후와 지형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여기서도 그만의 부드러운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열대의 습한 열기로 자라난 식물들이 우거진 뜰, 그들을 품은 베란다, 높은 지붕과 같은 스리랑카 전통의 건축 요소들을 이용합니다. 정원의 초록들은 그대로 건물의 외벽을 감싸고, 지붕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처마가 만든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감각적으로 실내를 장식합니다. 모더니즘의 곧은 선과 단순한 색은, 전통적인 진흙 타일과 벽돌, 바위, 나무 등 현지 고유의 재료들이 가진 불규칙성으로 인해 어그러집니다. 열대 자연과 모더니즘의 사이가 어그러지듯 어우러지고, 바와는 ‘트로피컬 모더니즘’의 선구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습니다.
그렇게 바와가 짓는 현대의 공간은 과거와 연결되고, 건축물과 풍경 사이에는 문맥이 생겨납니다. 벽을 세워 경계를 허무는 사람. 바와는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마다 그러한 자의식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특히 최초의 날갯짓이 박제된 정원이자, 30년 넘도록 자신만의 미학적 실험을 이어가던 루누강가의 별장은 그곳을 거니는 사람에게 연속적인 장면을 보여주듯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작업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박물관이 된 생가와 갤러리 카페로 쓰이고 있는 건축사무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갈레 요새(Gallet fort)를 비롯하여 대학과 사원, 호텔 등 그 의식의 산물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고 있습니다. 바와가 공고히 무너뜨린 벽과 그 안팎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의식에 날아들어 새로운 날갯짓으로 박제됩니다.  
<Mr. Bawa, I presume>은 사진가이자 여행사진집 출판사의 설립자인 지오바나 실바(Giovanna Silva)가 스리랑카에서 바와의 작품들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실바는 대상을 집요하게 ���니다. 그녀에게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선이 머무는 것 이상의 탐색과 경청의 작업입니다. 공간과 입체 사이의 얇은 막을 따라가는 것, 경계를 파고들어서 그곳에 소거되어 있던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작품과 경치, 작품과 작가 사이의 내러티브를 듣고, 또 그 사이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전날의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흔적이 없다면 그들은 버려진 것과 같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흔적들로 더럽혀진 디테일을 찍고 그들의 말없는 요란함을 듣습니다.
거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바와를 기리는 프로젝트에 실바만큼의 적임자는 없었을 겁니다. 바와가 공간과 입체를 통해 보여주는 시퀀스를 다시 그녀의 프레임에 집요히 담아내고, 그녀만의 해석과 이야기를 겹쳐 쓴 사진집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현대적인 간결함, 스리랑카 고유의 색과 지형, 명암의 대조로 나타나는 바와의 개성. 이 모든 것의 조화 속에서 읽어지는 이야기를 보고 듣습니다.
1 note · View note
iankilee · 3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Ian H (The COMET!), Urban Rubbish, prototype - Series, 2015
Origin of the webtoon “Louis & Jolgaedull”.
1 note · View note
ttrashblurr · 5 years ago
Text
미적 가상과 '미메시스'
  아도르노의 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적 가상'과 '미메시스'의 연관성을 올바로 파악해야 한다. 미적 가상이란 예술작품이 불러일으키는 환영이기보다는 예술작품 그 자체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미적 가상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미적 가상이 사라지면 예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미적 가상이라는 용어는 아도르노 미학의 핵심적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아도르노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미메시스'적 경험을 실현해내는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미메시스는 '현실'에서 사라져 버렸으며 이제 예술의 '가상'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예술이 '가상'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은 '현실'에서 미메시스가 금기사항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메시스'란 주체와 대상(객체) 간의 비억압적이고 화합적인 교감을 말한다. 화해의 암호로서 자연 상태에서의 모든 존재의 소통 방식은 미메시스적이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신화 시대 이전의 주술 단계의 반응방식은 미메시스적이었다. 그러나 합리적 이성(그리고 계몽)이 나타나고 개념화된 사고가 시작되면서부터 미메시스는 점차로 사라지게 된다. 이성이나 개념적 사고는 타자(자연이나 또 다른 인간주체)를 지배하는 억압적 힘을 포함하고 있다. 아도르노는『계몽의 변증법』에서 미메시스가 소멸되고 계몽(그리고 합리적 이성)이 시작되면서 빚어진 서양 역사의 비극을 고발하고 있다.
 물론 인간의 문화가 발달한 이후에도 미메시스가 아주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주객(주체-객체) 간의 교감의 방식을 모색하는 동양사상 속에는 미메시스적 요소가 훨씬 더 많이 잔존해 있다. 그와 달리 주객분리와 주체중심적 이성이 발달한 서양에서도 '주체의 내면'에는 미메시스적 충동이 그대로 남아 있다. 주체 내면에 남아 있는 미메시스의 갈망, 즉 자연에의 충동을 기억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술의 목표의 하나이다.
그러나 주체의 내면 속에서 미메시스(혹은 자연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현실적 실천을 매개로는 불가능하며 예술의 '가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또한 객체와 분리된 주체의 내면적 경험으로만 드러나므로 그것은 '정신적'이고 '주관적'이다. 아울러 미메시스적 충동이 예술작품 속에 객관화되려면 (합리화된) 현실의 재료와 기법(기술)을 통해 생산되어야 하므로 예술 속의 미메시스는 '합리적 계기'를 지닌다.
 이처럼 예술작품을 '미적 가상'으로 이해함으로써 아도르노는 예술을 정신적이고 '주관적'인 것으로 보며 '합리적 계기'와 '미메시스적 계기'가 결합한 것으로 파악한다. 미적 가상을 예술의 정신적 본질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는 점에서 아도르노는 가상의 감각적 계기를 말하는 헤겔과 구분된다.* (아도르노, 『미학이론』, 앞의 책, 175면. 아도르노에 의하면 가상에 대한 헤겔의 이런 견해는 감각의 세계는 가상이고 본질이나 순수한 정신이 진정한 존재라고 보는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헤겔은 순수한 정신이 담긴 이념을 감각적 가상(형상)을 통해 드러낸 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는 진정한 것은 정신이고 감각적 가상은 정신의 표현 방식이라고 보는 관념론이 내재해 있다. 반면에 아도르노는 예술의 정신적 본질 자체를 이미 가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가상을 이념의 감각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정신적 본질 자체가 이미 감각적 가상의 특성을 지님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미적 가상이 단지 내용의 표현형식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예술의 내용이 된다.) 왜냐하면 미메시스는 이제 '실제' 대상과의 소통이 아닌 정신적인 경험으로만 가능하며, 그 주체 내면에서의 미메시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예술작품의 '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 속에서의 '합리적 계기'와 '미메시스적 계기'의 결합은 예술작품의 생산 과정에서의 복합적 매개과정을 암시한다. 합리화된 세계를 넘어서려는 예술은 일방적으로 합리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합리성을 매개로 미메시스에 이르려 시도한다. 만일 예술이 합리성을 부정한다면 합리화된 세계에서 모든 현실적 연관을 상실한 비합리적 경험으로 도피하는 셈이 될 것이다. 합리화된 세계에서 미메시스를 경험하려는 예술은 합리성을 매개로 해야만 그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예술은 합리성을 통해 합리성을 넘어서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총체성과 '미메시스'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기 이전의 화해의 경험을 말하는 점에서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설의 이론』에서 총체성이 있는 시대는 자아와 세계, 그리고 영혼과 별빛이 통합된 시기로 설명된다. 여기서 총체성이란 삶이 본질로 가득차 있는 상태를 말한다. 본질이란 삶의 원래적인 것으로 플라톤의 이데아와도 같은 것이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말한 것은 삶과 본질이 이미 분리되어 총체성을 상실한 시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와 달리 총체성이 있는 시대는 삶 속에서 본질을 경험할 수 있는 주객화해된 진정한 삶의 상태일 것이다.
 물론 루카치의 '총체성의 시대'와 아도르노의 '미메시스의 시대'가 아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는 그리스의 서사시를 총체성으로 가득찬 시기에 총체성의 삶을 옮겨 담음으로써 만들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아도르노는 그리스의 서사시에 이미 계몽의 변증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즉, 서사시에는 주체의 자기보존의 원리에 의해 객체를 지배하는 이성적 계몽의 작용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화를 서사시의 이전 단계로 보면서 아도르노는 신화에서 이미 계몽이 수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계몽이란 주체의 이성적 사고를 뜻하며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지배의 힘을 행사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양에서 인간의 문화는 계몽이 수행된 산물이며 인간주체가 타자를 지배해온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와 달리 주체가 객체에 (지배/ 예속을 넘어선 상태로) 동화되는 미메시스는 가부장적 신화 이전의 '주술'의 시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도르노의 미메시스는 계몽 이전의 자연적 삶의 상태를 말한다. 반면에 루카치의 총체성은 계몽이 시작된 이후에도 진정한 삶의 상태가 가능했음을 전제로 한다. 즉, 아도르노의 견해대로 (그리스) 서사시의 시대에 이미 계몽이 시작되었더라도, 루카치는 그 시대가 삶의 본질로 가득찬 총체성의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서사시의 시대인 총체성의 시대는 삶과 본질이 분리되기 시작한 그 이후의 시기와 구분된다.  
 이처럼 루카치와 아도르노의 차이는 두 사람의 사상적 기반의 차이를 암시한다. 그러나 그런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루카치와 아도르노는 서양 예술의 역사에 대한 설명에서 유사한 접근방식을 보여준다. 루카치는 총체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상실한 총체성을 '형식(형상화)'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 서정시와 소설이라고 설명한다. 이와 유사하게 아도르노는 미메시스가 불가능해진 세계에서 미적 '가상'을 통해 미메시스를 경함하게 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똑같이 예술작품을 잃어버린 주객화해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매개항으로 설명한다. 또한 그것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내용(현실, 진리내용)과 형식(형상화, 가상) 간의 변증법을 논의한다.
...
 먼저 루카치는 서정시에 대해 더 이상 삶에서는 자아와 세계가 화합될 수 없는 시대에 자아가 영혼의 내면성을 통해 총체성의 순간을 경험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내면을 통한 총체성의 순간의 형상화는 현실의 삶에서는 이제 총체성(자아와 세계의 화합)이 불가능해졌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형식을 통해 총체성을 얻기 위해 서정시는 삶보다는 내면을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서정시와는 달리 삶을 그리면서 형식을 통해 총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설이다. 소설은 자아(영혼)와 세계의 화합이 깨진 시대에 그 분열된 자아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형상화해 총체성을 얻는다. 물론 이 때의 총체성은 현존의 실체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총체성일 것이다. 즉, 총체성(자아와 세계의 화합)의 삶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자아와 세계의 상호작용)을 형상화함으로써 내포적으로 총체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루카치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이후 총체성은 사회학적 개념으로 바뀌게 된다. 즉, 총체성이란 사회현실의 발전과정을 나타내는 주체와 객체의 본질적 연관관계를 뜻한다. 여기서 본질이란 사회발전의 역사적 합법칙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문학(예술)이 총체성을 얻는다는 것은 사회현실을 그리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역사적 발전의 핵심적인 관계들을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총체성의 개념이 사회학적 의미로 전환되었지만, 여기서도 현존의 실체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총체성의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 즉, 문학은 총체성이 실현된 사회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실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총체성을 드러낸다. 루카치의 입장에서는 총체성이 실현된 사회는 아마도 사회주의 사회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서조차 총체성은 실현된 현존(주객화합의 사회)이 아니라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서 나타난다. 또한 현실의 '본질적 연관관계'로서의 총체성은 본질 그 자체를 드러내지 않고 수많은 삶의 현상들에 매개시켜 형상화한다. 이는 생생한 삶의 모습(현상)을 그리는 동시에 그 속에서 현실의 본질적 연관관계(총체성)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리얼리즘의 '현상과 본질의 변증법'이다. 이렇게 해서 형식을 통해 과정으로서의 총체성을 그린다는 루카치의 이론은 현실내용을 형상화하는 '반영론적 미학'이 된다.
 이에 반해 미적 가상을 통해 미메시스를 경험하게 하려는 아도르노의 미학은 현실반영을 일차적인 목표로 삼지 않는다. 아도르노의 미학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내용보다는 '진리내용'이다. 미메시스가 불가능한 현실을 가상을 통해 미메시스하는 순간, 주체는 일단 화해의 경험을 갖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실제 현실에서는 화해가 불가능함을 인식하게 된다. 이것이 가상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얻게 되는 예술의 진리내용이다. 여기서 진리내용은 미메시스적 화해(유토피아)에 대한 주체의 갈망의 객관화와, 그것을 통한 분열된 현실과의 가상(형식)을 통한 미메시스(화해), 그리고 실제 현실과는 화해할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포함한다. 가상을 통한 분열된 현실과의 미메시스는 주체 내면의 미메시스적 충동이 객관화됨으로써 가능해지며, 또한 실제 현실과는 화해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혹은 그 반대로 실제 현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형식(가상)을 통해 분열된 현실을 받아들임(미메시스 혹은 화해)으로써 가능해진다. 이처럼 화해(유토피아)의 열망과 가상을 통한 분열된 현실과의 화해(미메시스), 그리고 실제 현실과 화해할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이 동시적으로 작용하여 예술의 진리내용을 이루게 된다. 이는 현실의 본질적 연관관계라는 현실내용의 반영에서 진리(총체성)를 찾는 루카치의 반영론과는 다른 방식의 미학이다.  
...
 미적 가상을 통해 내면적으로 미메시스를 시도하는 아도르노의 미학은 루카치의 리얼리즘론(반영론)보다는 총체성의 순간을 내면적으로 포작하는 서정시론에 훨씬 더 가깝다. 이는 루카치의 리얼리즘론이 '현실인식적 계기'를 우위에 두는 반면 서정시론은 서정시의 장르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자기인식적 계기'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자기인식'이란 주체 내면의 이상(유토피아)과의 연관 속에서 대상(현실)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식민지 시대에 지주ㅡ마름이 농민(소작인)들을 수탈하는(그리고 내쫓는) 것을 그린 소설(『고향』등)에는 농촌 현실에 대한 '인식'이 나타나 있다. 반면에 농토를 잃은 농민들의 삶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고 토로하는 것(「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은 식민지 농촌현실에 대한 '자기인식'이다. 왜냐하면 후자(자기인식)는 농민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주체 내면의 이상('봄')과의 연관 속에서 의식하기 때문이다.
 모든 예술의 아름다움은 '이상과 현실의 연관' 속에서 나타나므로 근본적으로 예술미는 자기인식적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런 자기인식에 근거한 예술미에 이르는 과정은 방법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드러난다. 하나는 앞의 소설의 예처럼 현실에 대한 인식의 과정을 그림으로써 자기 인식에 이르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뒤의 시의 예처럼 현실에 대한 자기인식을 직접 드러내는 또 다른 방법이다.
 이 인식적 예술과 자기인식적 예술이라는 두 가지 방법은 루카치(총체성)와 아도르노(미메시스) 미학의 차이에 상당 부분 상응한다. 먼저 현실의 발전법칙과 본질적 연관관계를 드러내는 과정으로서의 총체성(루카치 미학)은 인식적 예술의 특성을 적절하게 설명해준다. 즉, 농촌현실의 모순관계(지주·마름ㅡ소작인)와 그 모순을 극복하려는 행동을 그린 소설은 현실의 본질적 연관관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총체성을 드러낸다. 여기서는 현실에 대한 '인식적 계기'가 예술적 형상화 속에 중요하게 내포된다. 물론 이 인식적 예술 역시 총체성이 실현된 사회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상과의 연관 속에서) 그려지므로 예술적 자기인식으로 귀결된다.
 또한 총체성의 미학은 당연히 현실적 삶의 '내용'의 형상화를 중시하게 된다. 물론 그 현실적 삶의 내용은 또한 예술적으로 형식화된 것이기도 하다. 즉, 그것은 선택과 구성 원리로서의 '전망'에 의거한 미학적 '형식'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전망 - perspective 이란 현실을 올바로 투시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암시하는 원리를 말한다. 전망은 내용적으로는 세계관에 상응하며 형식적으로는 (현실에서) 본질적인 것을 선택해서 구성하는 원리에 해당된다. 선택원리로서의 전망은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핵심적인 것과 주변적인 것을 선별하면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정리해 주고 인물들의 발전 방향을 결정한다. 즉 전망은 현실의 반영(내용)이나 예술형식 양자에 있어 방향성을 결정함으로써 예술작품의 내용에 인과감과 형식적 질서를 부여한다.) 현실적 삶의 내용을 세계관적으로 투시하는 전망은 형식적 방법으로는 선택과 배열의 원리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내적 형식으로 불려진다. (내적 형식이란 현실내용이 예술적으로 질서화된 것으로의 형식을 말한다. 내적 형식은 예술매체ㅡ혹은 재료의 형식화로서의 외적 형식(기법)과 구분될 수 있다.)
 반면에 미적 가상을 통해 미메시스를 실현한다는 설명(아도르노 미학)은 자기인식적 예술의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즉, 모순된 농촌현실('빼앗긴 들')에 대면해 있는 미적 주체는 미메시스적 충동('봄')을 객관화함으로써 가상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받아들인다(미메시스적 자기인식). 그러나 그 순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자기인식 속에 봄의 화해가 실제로는 실현될 수 없다는 부정적 인식이 포함된다. 이처럼 가상을 통해 모순된 현실과 미메시스(그리고 자기인식)하는 동시에 그 현실과 대립하는 것(부정적 인식)이 아도르노 미학의 핵심이다. 여기서 가상은 단순히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미메시스적 열망에 근거해 현실내용을 특수하게 구성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 구성이나 그것을 위한 기법으로서의 형식은 반영론 미학의 내적 형식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반영론 미학(루카치)은 '현실내용의 선별(전망)' 자체를 중요한 형식원리로 여기지만, 아도르노는 내용(현실내용 혹은 소재)의 선택보다는 그것을 '예술적으로 다루는 방법(구성 혹은 기법)'을 더 중시한다.
총체성의 미학(루카치)과 미메시스의 미학(아도르노)이 인식적 예술과 자기인식적 예술에 연관됨은 루카치와 아도르노가 유념한 예술의 유형에서도 드러난다. 루카치는 리얼리즘(인식적 예술)을 옹호한 반면 아도르노는 모더니즘(자기인식적 예술)을 열렬히 변호했다. 또한 루카치는 소설(인식적 예술)을 훨씬 많이 다루었지만, 아도르노는 서정시나 음악(자기인식적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리얼리즘 소설에는 총체성의 미학이 더 잘 적용되는 반면 서정시나 모더니즘은 미메시스의 미학으로 더 잘 설명된다.
...
나병철,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어서
3 notes · View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