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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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1 "Torbjørn Rødland"의 작업 및 전시 사진
Torbjørn Rødland, IN A NORWEGIAN LANDSCAPE 2, 1993, 50x50 cm
Torbjørn Rødland, Frost n°4, 2001, c-print /aluminium, framed, 45 x 57 cm, edition 5
Alfred Stieglitz (American, 1864–1946), Winter on Fifth Avenue, 1897.
Richard Prince, Untitled (Cowboy), 1994
Torbjørn Rødland, Hands and Eyes. Portrait no.1, 2008 - 2010, chromogenic print, 22 1/2 x 17 3/4 inches
Torbjørn Rødland, Avocado, 2013, chromogenic print, 23 5/8 x 30 inches, Hair, 2010, Chromogenic print on Kodak Endura paper, 57 x 45 cm
Torbjørn Rødland, Tatoo, 2006, c-print ,40x50 cm. Ed.3
Denis Villeneuve, Dune, Film still
Torbjørn Rødland, The Curve, 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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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인간의 운명과 성찰의 기록
알베르 카뮈 이방인 1942 / 뫼르소
헤르만 헤세 데미안 1919 / 싱클레어 크로머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 아브락사스abraxas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1925 / 개츠비 데이지 닉 캐러웨이 뷰캐넌 정비공 / 상실의 시대 /
프란츠 카프카 변신 1915 / 그레고르 잠자 / 몸 해체 가족 해체 공간 집 해체 / 산업사회가 잉태한 현대성에 의문 제시 /
조지 오웰 동물농장 1945 / 메이저(마르크스 레닌) 나폴레옹(스탈린) 스노우볼(트로츠키) 존스(농장주인) / 오웰 사회주의자 소련식(스탈린식) 사회주의는 혐오함 /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1880 / 아버지 표도르 카라마조프(탐욕 방탕) 큰아들 드미트리(음탕 순수) 둘째아들 이반(무신론자 허무주의자) 셋째아들 알렉세이(수도원 신앙 종교적)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간질 분노) / 그루센카(표도르 vs 드미트리) 스메르자코프가 표도르 살해 드미트리가 살인범으로 체포/ 스메르자코프 자살 드미트리 20년형 선고받음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962 / 수용소 군도 노벨상 /
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 1939 / 대공황 배경 / 조드 가족 케이시 큰아들 톰 조드 딸 로저샨 / 에덴의 동쪽 / 근대 자본주의의 어둠 / 그래도 역시 사람만이 희망 / 1962 노벨 문학상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1922 / 레오폴드 블룸 매리온 부인 / 18시간 / 의식의 흐름 내면의 독백 기법 / 버지니아 울프 읠리엄 포크너 등에 영향 / 더블린 6월 16일 블룸의 날 /
단테 신곡 1321 / 지옥 연옥 천국 베아트리체 / 지옥 서곡 1 각 33 100곡 / 원제 알리기에리 단테의 희극 /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해피엔딩 / 유래 보카치오 신적인 희극 이를 일본학자가 신곡이라 번역 / 중세의 모든 학문 종합 / 이탈리아어가 피렌체어 중심으로 통일 / 국가 개념 민족주의에 눈뜨기 시작 / 중세의 사상이 괴테 헤�� 쇼펜하우어 같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전승되는 다리 역할 / 이탈리아 문학 발달에 결정적 영향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1923 / 릴케 루 살로메 니체 프로이트 / 전 10편 / 일치와 대립의 결합 / 연작시 서정시 / 근현대 시문학의 거대한 원형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1938 / 드골 사르트르 / 실존주의 / 로캉탱 / 존재existence 본질essence /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
스탕달 적과 흑 1830 / 쥘리엥 소렐 시장 부인 레날 부인 후작 집 딸 마틸드 / 계급 메커니즘에 도전한 뛰어난 사회소설 + 섬세한 심리묘사로 만들어낸 리얼리즘 연애소설 / 적 나폴레옹 군대 군복의 이미지 자유주의 흑 왕정복고 시대의 사제복의 이미지 보수 왕당파 /
앙드레 말로 인간의 조건 1933 / 상하이 폭동 테러리스트 / 기요(이상주의자 폭동주도 체포 자살) 첸(장제스 암살 시도) 카토프(체 게바라 순교자 연상시키는 인물) /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앙드레 말로 / 허무주의적 고독감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을 그림 /
월트 휘트먼(1819-) 풀잎 1855 / 죽은 시인의 사회 오 캡틴 마이 캡틴 1865 링컨 추모시 / 미국식 자유시의 창시자 /
제인 오스틴(1775-) 오만과 편견 1813 / 로코의 효시 영문학의 기념비적 작품 / 엘리자베스 다아시 / 제인 빙리 /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
버지니아 울프(1882-1941) 등대로 1927 / 의식의 흐름 기법 개척자 / 무학 블룸즈버리 그룹 존 케인스 e m 포스터 오빠 토비 남편 레너드 / 램지 가 / 내면의 갈등과 억압을 절묘하게 묘사 / 등대 영원한 진리나 이상을 의미 / 램지 부인 지혜의 상징 / 페미니즘 모더니즘 계몽주의 / 사라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인 필체로 표현 /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774 / 낭만주의 소설의 원조 / 베르테르 로테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1601? / 햄릿 아버지 클라디우스 거트루스 오필리아 오필리아의 오빠와 아버지 / 영문학의 정전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1869? / 안드레이 나타샤 피에르(나폴레옹 암살 시도) 카라타예프(농부) / 생명력 살아 있음의 위대함 / 1805년 1차 나폴레옹 전쟁에서 혁명의 기운이 일기 시작한 1820년까지 15년간 러시아 역사의 격변 배경 /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1952 / 산티아고(쿠바의 노인 어부) 마놀린(꼬마) 청새치 상어 / 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한 투쟁 / 바다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삼켜버리는 무한의 공간 /
잭 케루악 길 위에서 1957 / 샐 파라다이스(실패한 젊은 작가) 딘 모리아티(자유로운 영혼) / 뉴욕 la 멕시코 1.3만 km 히치하이크로 여행 / 작가 앨런 긴즈버그 닐 캐서디 등과 유랑 생활 그 기록이 바로 길 위에서 / 비트 세대의 상징적 인물 / 1960년대 히피 운동과 국제 히피족의 상징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1948 / 덧없는 아름다움 / 시마무라 게이샤 고마코 요코 / 허무한 세계관 / 유서도 단서도 없는 죽음 가스 자살 / 다카한 여관(소설 완성) / 스토리가 아니라 분위기의 소설 / 갈등 구조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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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Sergei-Rachmaninoff-Critical-Rebecca-Mitchell/dp/1789145767 )
1943년 라흐마니노프의 사망 직후에 칼럼니스트 레너드 리블링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알았던 러시아의 비극을 결코 넘어서지 못했다. 그의 내면에는 깊은 우수가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그의 얼굴, 특히 두 눈에 잘 드러났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시대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자, "감미로운 낭만주의의 과거와 단단한 현대의 리얼리즘 사이"를 잇는 드문 연결 고리였다. (p11)
동료 작곡가이자 동포였던 이고리 스트라빈스키는 라흐마니노프를 "6피트 반(약 198센티미터)짜리 우거지상"이라고 불��다. 아닌 게 아니라, 라흐마니노프가 미국에 이주한 직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미소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근엄하고 엄숙한 얼굴 일색이다. 그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말쑥하게 차려입고 손에는 모자를 든 채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속한 시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사진들에 나타난 우수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은 서로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똑같다. 숨을 거두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낯설어진 세계를 떠도는 유령이 된 것만 같다. 낡은 작곡 방식을 떨칠 수도 없고, 새로운 작곡 방식을 습득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음악 양식을 느껴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였지만 이는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알고 있다. 나비부인은 남편을 위해 순순히 개종하였지만, 나는 내가 믿어오던 음악의 신들을 냉큼 버리고 새로운 신들 앞에 무릎 꿇을 수 없다. 내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낸 러시아에 닥친 재앙과도 같은 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음악이, 그리고 모든 음악에 대한 나의 반응이 정신적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늘 느껴왔고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명을 향한 끊임없는 순종이었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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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훤칠하고 근엄하며, 몸가짐은 귀족적이고, 콘서트 무대에서는 냉정한 위엄을 발산한다. 저 강철 같은 손가락과 탄탄한 이두박근을 보면 거대한 불협화음을 앞세운 모더니스트의 음악을 기대하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섬세하고 커다란 감정,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노래하는 음색이 들려온다. 라흐마니노프는 "음악은 마음속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렇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퍽 효과적이었다. 1942년 발간된 <타임>지에 따르면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에서 활동한 동안 누적으로 250만 달러 넘는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의 음악은 콘서트 프로그램과 음악원 담장 안, 그리고 시중에 발매된 음반에 단골처럼 등장하고 있고, 이는 곧 가슴이 미어질 듯 감정적인 그의 음악 양식이 관객에게 호소하는 능력을 여전히 갖추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비록 20세기 중반에 음악적 '현대성'을 표방한 대표 주자들은 반음계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선율이 전면에 부각되며 화음이 복잡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혐오하였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그의 팬들은 정신없이 변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 던져진 자신들의 고생과 비애, 실패를 메아리처럼 표현하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8)
라흐마니노프는 철학적 토론에 직접 가담하길 꺼렸지만 철학적 논의가 그의 창조적 소산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이다. 1919년 인터뷰에서 그는 독일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를 거론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음악의 세계에서 가장 지엄한 지배자는 바로 선율이다. 선율이 곧 음악이며, 선율은 또한 모든 음악의 필요불가결한 토대이다. 완벽하게 배태된 선율 속에는 그것에 고유한 자연스러운 화성과 그 화성의 발전 양식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는 은 시대 작가들이 쓴 수많은 텍스트에 음악을 붙였으며, 러시아정교회 음악이 부흥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빌라 세나르에 보존된 그의 서재에는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와 러시아 종교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를 포함하여 은 시대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이 남긴 문헌의 러시아어 번역판이 간직되어 있다. (p20)
라흐마니노프를 그가 속한 시대의 맥락 안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발히 활동했던 시대와 '모더니즘'이라는 용어로 표상되는 미적 견지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은 혁신과 실험을 가치있는 것으로 보는(아울러 대중적 인기를 수상쩍게 여기는) 현상을 "모더니스트 담론"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바 있다. 라흐마니노프를 '진보' 혹은 '보수'의 프레임에 가두는 일은 그의 생애 내내 음악적 가치를 갑론을박하는 데 적용한 가치 기준을 그대로 빌려 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라흐마니노프와 그의 음악을 근본적으로 현대적인 것이되 반드시 모더니스트적이지는 않다고 규정한다. "모더니즘"을 "현대화의 객체뿐만 아니라 주체가 되기 위한 현대 남녀의 모든 시도"로 이해한 문화사학자 마셜 버먼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주장을 펼쳤다.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모험과 권력, 기쁨과 성장,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약속하는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가 아는 모든 것, 우리의 모든 정체성을 파괴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환경 속에 우리가 놓여 있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 현대적이 된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말처럼 "단단한 것들이 모두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는 뜻이다." (p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흐마니노프는 현대의 끊임없는 영고성쇠 속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심지어 현대의 어떤 측면들은 적극적으로 껴안으며 융성하였다. 동시에 그가 창조한 가공의 러시아성에 뿌리박은 자아는 그의 음악을 접하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라흐마니노프는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분투했다는 면에서 전형적인 현대의 산물이었다. (p22)
"새로운 종류의 음악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음악의 작곡가들은 느끼기보다는 생각합니다. 그들은 - 한스 폰 뷜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 음악을 '환희하게' 할 줄 모릅니다. 그들은 묵상하고 주장하고 분석하고 사고하고 계산하고 곱씹을 뿐, 절대 환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대의 정신에 입각해 곡을 쓰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대의 정신은 음악에서 표현을 요구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작곡가들로서는 사고는 가능하되 느낄 순 없는 음악을 엮어내느니 차라리 입을 다무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대가 요구하는 표현은 사실과 문자의 장인인 작가와 극작가에게 맡겨두고 영혼의 권역에는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것에 관한 나의 견해를 물은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경우도 현대적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요? 현대음악은 태어나자마자 늙어버리는 음악입니다. 고사병에 걸린 채로 태어나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p23-24)
라흐마니노프의 젊은 시절 행보는 당대 문화계의 움직임과 발맞추었고 현대성에 의해 초래된 격동과 긴밀히 조응했다. 1917년 이후 그는 두 차례의 소외를 경험해야 했다. 한 번은 자신의 조국을 등져야 했던 정치적 망명이었고, 또 다른 한 번은 전문 음악가 동아리 내에서 세를 굳히던 현대주의자들의 '미래파' 담론에서의 배제였다. 마음속 깊이 현대적이었던 그는 현대주의자들이 표방하는 미학을 삼갔으며, 그럼으로써 자신이 속한 시대의 모순을 표상하는 화신이 되었다. (p25)
"스승님께서는 리듬이 없고 문법과 구두점이 빠진 연주를 결단코 허용하지 않으셨다. 그것만으로도 가장 거대한 예술적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는 커다란 음악적 토대가 되어주었다." 라흐마니노프 역시 제자가 어릴 때부터 “테크닉뿐만 아니라 해석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늘 강조하곤 했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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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의 근엄하고 엄격한 몸가짐과 표정은 무대 위에서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음악 예술에 헌신하는 자세-즈베레프의 문하에서 기숙하며 배양한 것이다-를 앞세운 그는 모든 공연에 진지하게 임했고, 불필요한 제스처나 극적 몸동작을 삼갔다. 훗날 라흐마니노프는 스스로 "85퍼센트는 음악가이고 고작 15퍼센트만 인간"이라고 했는데, 그런 자세가 이미 음악원 시절부터 체화되어 있었던 셈이다. (p67)
지극히 유명세를 치른 음악인 만큼 많은 이가 작곡가에게 음악 외적인 작곡 동기는 없었는지 묻곤 했다. 라흐마니노프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시종일관 부정적인 뜻을 밝혔고, 1910년에는 "나의 유일한 동기는 -얼마간이라도 돈을 벌어야 했던 다급한 필요를 제외하��- 그저 아름답고 예술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욕구뿐이었다"라고 확실히 매조졌다.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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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 자신은 이렇게 받아들였다. "이 교향곡은 사람들이 쓰고 이해하는 의미대로 퇴폐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고, 다만 확실히 약간 '새롭긴' 하다." 글라주노프의 지휘가 수준 이하였던 때문도 있었겠으나, 그로서는 곡이 새로워 초연이 실패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초연으로부터 18년이란 세월이 흐른 1915년에 그는 마리에타 샤기냔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스스로 음악가라 칭하고 음악 속에 담긴 불편함을 직시하길 꺼리지 않는 이들에게는 혁신가의 월계관을 씌워줘야 마땅하겠지. 그런 이들은 선진적이며 독창적이라 불리겠지만, [나의] 혁신은 태내에서 목 졸리고 말았어." 샤기냔의 결론은 이랬다. "[라흐마니노프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앓게 된 건 교향곡 초연의 실패나 그에 따른 실망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병에 빠진 이유는 음악가로서의 미래가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즉, 더 이상 혁신가로서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훗날 라흐마니노프가 '현대주의자들'의 음악적 실험을 적대시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p86-87)
97 101 102-3 115-6 118-9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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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움직임을 뒷받침한 인물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는 아마도 러시아 사상가 겸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일 것이다. 예술이 이루는 기적에 관한 솔로비요프의 생각은 하느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다는 성육신과 예수가 산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꾼 변용같은 기독교적 관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인간의 예술적 창조성은 아름다움의 현현을 통해 물질세계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영화한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그는 음악이 아름다움의 가장 "직접적이거나 마법적인" 표현이라면서, 음악이라는 예술 형태 속에서 "우리는 가장 깊은 내부적 상태가 사물의 진정한 본질 그리고 내세와 (혹은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의 '본연의 존재'와) 연결되는 것을 경험한다"고 주장했다. 오로지 음악만이 가진 신비로운 힘에 대한 의견은 러시아에서 발간되던 문학·철학·미술 잡지에 자주 등장했다. 모스크바 출신의 음악가 콘스탄틴 에이게스는 솔로비요프의 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음악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관객에게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까지 했다. 20세기 초반을 살던 솔로비요프의 추종자들에게 예술가-그리고 특히 작곡가-는 저들의 예술을 통해 물질적 세계를 영화하는 기적을 수행하는 이들로 비춰졌다. (p130-131)
러시아 상징주의 미술의 초기 사례인 미하일 브루벨의 <앉아 있는 악마>(1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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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는 사회와 정치판이 ��적으로 요동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1905년 2월 3일에 발표된 결의안에는 모스크바의 여러 음악가와 함께 그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오로지 자유로운 예술만이 삶에 진실한 예술이며, 오로지 자유로운 창작 행위만이 기쁨을 줄 수 있다." 우리 음악가들은 우리의 예술가 동무들이 발표한 이 멋진 문장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바이다. 만일 예술이 진실로 강력해지고 진정으로 거룩해지며 정녕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요구에 응답하고자 한다면 예술가 내면의 자기 인식과 인간 사회의 기본적 요구 말고는 예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인생의 손발이 묶인 경우라면 예술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왜냐하면 감정이란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도 없고 발언과 언론의 자유도 없는 국가라면, 그리하여 사람들이 생동하는 예술적 사업에 투신하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이 존재하는 국가라면, 예술의 소산 역시 빈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유 예술가'라는 칭호 역시 쓰디쓴 농담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우리는 자유 예술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모든 국민과 마찬가지로 권리라고는 없는, 현대의 부자연스러운 사회적·법적 환경의 희생자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여건으로부터 탈출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뿐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그 길은 러시아가 근본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올 것이다." (p142-143)
145-6
154-5 167
"진정한 영감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면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면 외부에서 그 어떤 자극이 주어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술가 내면에 창조적 능력의 거룩한 불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가장 훌륭한 시, 가장 위대한 그림, 가장 숭고한 자연이 아무리 법석을 떨어도 아무런 쓸 만한 결과를 낳지 못한다." (p168)
169-171 (170)
175-7 179-180, 1
만년에 들어서는 소규모 피아노곡을 쓰는 일만의 어려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털어놓았다. "피아노를 위한 소품을 쓸 때는 장황하게 흐르지 않고 간결하게 응축해내야만 하는 주제 악상에 따라 곡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협주곡과 교향곡을 작곡할 때는 곡이 술술 써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모든 소품은 세심하게 살피고 근면히 노력한 산물입니다. 아무튼 하고 싶은 말을 하되 간결하고 알기 쉽게, 그리고 에두르지 않고 말하는 건 창조적 예술가가 당면한 가장 어려운 과제입니다. 복잡해지기보다 단순해지기가 더 어렵다는 걸 예술가는 오랜 경험 끝에 깨닫게 됩니다." (p192)
철학적 언어를 동원해 자신의 미적 가치 체계를 설명하는 일을 꺼린 라흐마니노프였지만, 그의 작곡 양식이 아폴로적 균형 감각의 지배를 받았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는 음악의 긴장을 끌어올리는 데에 대조와 부조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음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어야 한다. 부조화는 아름다움을 강조하지만, 인정사정없이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부단한 불협화음은 결코 예술이 아니며 절대 예술이 될 수도 없다" 하고 단언했다. (p193)
"내 유일한 영감은 -다소간의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는 별도로 하고- 뭔가 아름답고 예술적인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망 뿐이었다. 전주곡이란 그 본질상 절대음악이며, 아무리 작곡가의 팔을 비틀어도 전주곡을 교향시나 음악적 인상주의용 작품으로 탈바꿈시킬 순 없는 법이다 ... 절대음악은 듣는 이들이 어떤 분위기를 느끼도록 유도하거나 암시할 순 있다. 그러나 절대음악의 주요 기능은 음악의 아름다움과 그 형태의 다양함을 통해 듣는 이에게 지적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바흐의 전주곡에서 작곡가가 느꼈던 분위기를 발견하려 애쓴다면 정작 음악에 담긴 가장 두드러진 아름다움은 놓치는 꼴이 되고 말 터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신비로운 존재이자 음악의 목적은 음악 그 자체이다. 음악의 의미는 구체적 삶속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바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했던 모스크바의 음악 철학자 콘스탄틴 예이게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p194)
이제는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스타일이 된 음악의 일면들은 음악 외적 요소와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고르지 않은 박자는 정교회 성가 선율을 떠오르게 하고, 종소리를 모방한 소리도 자주 들려온다. <죽음의 섬> 이후로 라흐마니노프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다시피 한 '진노의 날' 모티프 역시 여러 대목에서 식별된다. 이처럼 여러 작품을 통해 공통으로 되풀이되는 음악적 단서들은 물리적 현실이나 특정한 경험을 가리킨다기 보다는, 1906년 모스크바의 문예지 <황금 양모> 창간호에 나온 "예술은 상징적이다. 예술은 이미 그 안에 상징-유한한 것에 무한한 영원을 담은 것-을 품고 있다"라는 문장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온당할 것이다. (p195)
라흐마니노프의 인기 비결은 아름다운 선율과 풍성한 화음을 그만의 방법으로 배합한 음악에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저마다 경험한 바를 긍정받는 감정의 분출을 경험했다. 집시들이 부르는 노래, 오페레타, 그리고 문화 엘리트층이 멸시하는 '대중적'인 여흥과 마찬가지로 라흐마니노프가 쓴 음악은 듣는 즉시 감정이 움직인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음악은 그저 '비관적이고 우울하고 어두운' 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이런 음악은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처지로서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호소했다. M. L. 첼리시체바의 회고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는 "모든 이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고 다른 그 어떤 음악가도 건드릴 수 없는 심금을 건드려 소리나게 했다." (p197)
라흐마니노프의 열혈 팬이자 친구요, 뮤즈였던 마리���타 샤기냔. "나는 모든 게 무섭소. 생쥐, 쥐, 딱정벌레, 황소, 도둑이 무섭고, 강풍이 불 때마다 굴뚝이 휘파람 소리를 내는 것도 무섭소.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것도 무섭고, 어두운 것도 무섭고, 기타 등등 무서운 것이 한둘이 아니오. 나는 퀴퀴한 다락을 좋아하지 않소. 다락에는 집의 정령이 기거하는 것 같소(그대는 이런 이야기에 관심이 많지 않소!). 그렇지 않다면 낮에 집에 혼자 있어도 무섭지 않을 텐데 말이요."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에게 목적의식과 사명감을 심어 주려고 노력했다. 그녀는 조성 음악을 내팽개친 모더니스트들을 보고 내린 철학적 결론에 경악했으며, 반대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는 인간으로부터 인간성을 빼앗는 현대의 힘에 맞서 개인의 영역을 지켜낼 저지선을 발견했다. 철학에 대해 논한 장황한 글에서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 '단지 음악적 상징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음악의 덮개를 벗겨 그 아래 숨은 상징을 찾아낸다"고 썼는데, 이는 음악(그리고 더 넓게는 예술 전반)을 초월적 지식으로 나아가는 길로 여기는 은 시대에 널리 유행한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샤기냔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서 "스스로의 예술성을 고수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음악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본성을 지키기 위해 고투하는 인간 자체를 들었다." 그녀는 "비단 예술(특히 회화와 음악)만이 아니라 사회와 일상생활 역시 리듬을 잃고 있다면서, 그런 만큼 리듬이 뚜렷한 음악에 헌신한 라흐마니노프의 자세를 더욱 무겁게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p199-200)
201
시인 콘스탄틴 발몬트 <불타는 건물들>, <우리가 태양처럼 되게 하소서>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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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감동적이고 불안정한 어조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친애하는 '레', 죽음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 예전의 나는 도둑, 강도, 전염병 등 모든 게 조금씩 두려웠습니다. 그렇지만 최소한 이런 것들은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허나 죽음이 정말 무서운 이유는 삶이 끝난 이후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그저 썩어 사라지는 편이, 존재하길 멈추는 편이 좋을 텐데요. 하지만 무덤에 묻히고 난 뒤에도 끝이 아니라면 그건 무섭습니다. 내가 겁이 나는 이유는 불확실성이라는 미지수 때문입니다!" ' 이렇게 걱정하는 그에게 샤기냔은 기독교 신앙이 해답을 줄 수 있다고 안심시키려고 하자(참고로 샤기냔은 훗날 스탈린주의를 추종하는 운동가가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멸하기를 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못쓰게 되고 늙어진 다음에는 스스로가 지긋지긋해집니다. 물론 나는 늙지 않았는데도 벌써 내가 지긋지긋하지만요. 그렇지만 만약 죽음 뒤에도 뭔가가 있다면 그건 정말 무섭습니다." (p226-227)
로베르트 슈테를 <크렘린 상공의 불꽃놀이> (p242)
253-4 255-6 (258) (260)
"대중을 상대하는 연주자 가운데 라흐마니노프만큼 연주 매너나 해석 면에서 의도적인 노림수를 두지 않는 이도 없을 것이다. 단순하고 명쾌하며 때로는 유장한 해석의 기조에는 그 어떤 종류의 불필요한 장식이나 사족도 제거되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 씨는 낭만적이고 매끈한 색채를 입힌 연주를 경원시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연주는 낭만파 시대의 화려한 캔버스보다는 조각품과 유사하다." (p261)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1929년 데카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암피코 피아노 롤 녹음을 발매한 적이 있다.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2번> 음반. (p263)
265 268 274-5
"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제는 어깨를 누르는 짐의 무게를 느낍니다. 젊은 시절에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던 그 짐이 이제는 그 무엇보다 무겁게 다가옵니다. 그 짐이란 바로 내게 조국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 젊은 시절 몸부림치며 모든 슬픔을 삼켰던 그곳, 그리고 마침내 성공을 손에 쥔 그곳을 나는 떠나야만 했습니다. 내 앞에는 온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모두 열려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곳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 조국, 러시아입니다." (p280)
1934년 4월 10일 빌라 세나르 (p285)
291 294-5
뉴욕에서 발행되던 러시아어 잡지 <뉴 러시안 워드>지에 게재된 요세프 야세르의 리뷰는 라흐마니노프의 이목을 끌었다. 야세르는 라흐마니노프의 이전 작품에도 자주 등장해온 '진노의 날' 모티프가 문득문득 나타난다고 썼다. 야세르와 만난 자리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보통 음악가들은 첫 두세 소절만 아는 [그건 라흐마니노프도 마찬가지였다] ... 이 유명한 중세 시대의 선율"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죽음을 상징하는 이 성가 선율에 평생토록 흥미를 보여온 라흐마니노프가 정작 그에 관련한 지식은 이전 낭만주의 작곡가들 (베를리오즈, 리스트, 생상스, 차이콥스키, 무소륵스키)의 용례 정도에 그쳤다는 것이 퍽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야세르와 이야기를 나눈 다음 라흐마니노프가 내린 결론은 더욱 놀랍다. "그처럼 자주 활용되는 성가 선율이, 게다가 한때 러시아정교회 성가집에 수록된 적도 있는 성가 선율이, 특징적이어서 쉽게 기억되는 레퀴엠 선율이 필요한 작곡가들 사이에서 그저 무언의 전통처럼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이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있음 직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관습이지만-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머뭇거리며 "그래요, 관습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 하지만 그런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라흐마니노프와 논의를 주고받은 야세르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우선 '진노의 날' 선율은 라흐마니노프에게 깊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특히 그의 만년을 괴롭히던 생각들에 대한 오랫동안의 해답 같은 존재였다. 둘째,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진노의 날' 선율 속에서 모종의 음악 외적 요소- 어쩌면 저 세상으로부터의 '호출' 같은-를 느끼는 심리가 있는 것 같았고, 심지어 이러한 무의식적인 감각을 오로지 자신의 내부에만 국한시키길 꺼리는 것 같아 보였다." (p296-297)
298-9 301-2 302-4
"연주회는 내 유일한 기쁨입니다. 내게서 연주회를 앗아가면 나는 시들고 말 겁니다. 통증이 있어도 연주할 때는 사라집니다. 종종 얼굴과 머리 왼쪽의 신경통이 스물네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연주회 전에는 마술처럼 없어집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요통 때문에 아주 고생했습니다. 무대 위의 피아노 앞에 앉은 상태에서 막이 올랐고, 연주를 할 때는 조금도 통증이 없었어요. 하지만 연주가 끝나니 일어설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막을 내린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었어요. 아뇨, 연주를 줄일 수는 없습니다. 일을 멈추면 시들어버리고 말 테니까요. 안 됩니다. ... 무대위에서 죽기를 바랄 수밖에요." (p306)
309
315 317-320 323-5 (324)
(328) 331 333-4
라흐마니노프는 현대 기술을 사랑했고, 색소폰 같은 현대 악기들을 탐구했다. 또한 여러 망명지를 겪은 것처럼 제정 러시아 말기의 시국도 경험하였다. 다시 말해, 사상과 혁신이 난무하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않고 살아내야 할 여건으로 여기고 받아들였다. 같은 이유로 라흐마니노프는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의 음악과 정신은 1914년 부활절의 크렘린궁전을 담은 로베르트 슈테를의 그림, 즉 라흐마니노프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옛 러시아'의 이상화된 박제이자 그의 벽에 걸린 뮤즈를 동경했다. 라흐마니노프 개인에게 보이는 이러한 모순은 현대성의 본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셜 버먼은 현대 세계에 관한 글을 맺으며 이렇게 주장했다. "현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이 서로 얽히는 소용돌이를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자신 스스로가 영속적인 해체, 갱신, 곤란, 비통, 모호함, 모순을 겪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주의자라는 것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어떻게든 익숙함과 편안함을 발견하는 것을 의미하고, 또한 소용돌이의 리듬을 자신의 리듬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울러 소용돌이의 격정적이고 위험한 급류가 허락하는 현실과 아름다움과 자유의 형태들을 찾아 헤매는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p336)
377-8=======
- 리베카 미첼 , ' 라흐마니노프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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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집 막내아들 11화 11회 E11 다시 보기
재벌집 막내아들 11화 11회 E11 다시 보기 보는방법 소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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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로 볼수 있으니, 이번기회는 놓치지 마세요.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 집의 대부분은 지구에 좋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그것들을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자재에서부터 그것들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연료 및 그것들에 의해 생성되는 폐기물에 이르기까지 소비 패턴에 의해 정의됩니다. 건물 에너지 효율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는 건물 및 건설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집이 내부에 사는 사람들과 외부 세계를 키울 수 있다면 어떨까요? 집이 거주자를 먹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힘 그 자체? 생물다양성 증진? 커뮤니티 결속? 수명이 다하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한 집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야심찬 일입니다. 재벌집 막내아들 11화 11회 E11 다시 보기 그러나 최근에 출판된 책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들이 보다 공평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을 촉진하도록 설계되고 있습니다. Courtney Smith와 Sean Topham이 저술한 "Houses That Can Save the World"는 전 세계에서 150개 이상의 프로젝트(일부는 일부 개념, 대부분은 건설됨)를 다루고 있습니다. 스페인 메노르카에 있는 Ensamble Studio의 독립형 동굴 거주지와 같은 일부 기존 공간의 용도를 변경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란 호르무즈에 있는 ZAV Architects의 어도비 건축 커뮤니티와 같은 고대 건설 방법을 부활시키고 업데이트합니다. 그런 다음 북미에서 이미 건설된 ICON의 3D 인쇄 주택을 포함하여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월에 ICON은 달 표면 건설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NASA로부터 5,7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2020년 ZAV Architects 프로젝트인 Presence in Hormuz 2는 이란 호르무즈에서 SuperAdobe라는 기술을 사용하여 200개의 건물을 건설했습니다. 모래주머니는 축축한 흙으로 채워져 있으며, 코일 형태로 배열되어 있고 철조망으로 강화되며 때로는 층 사이에 시멘트, 석회 또는 아스팔트가 있습니다. 외부는 석고로 마감되어 침식으로부터 구조물을 보호합니다. 2020년 ZAV Architects 프로젝트인 Presence in Hormuz 2는 이란 호르무즈에서 SuperAdobe라는 기술을 사용하여 200개의 건물을 건설했습니다. 모래주머니는 축축한 흙으로 채워져 있으며, 코일 형태로 배열되어 있고 철조망으로 강화되며 때로는 층 사이에 시멘트, 석회 또는 아스팔트가 있습니다. 외부는 석고로 마감되어 침식으로부터 구조물을 보호합니다. 크레딧: Thames & Hudson 제공 "Breathe", "Dig" 및 "Float"를 포함하여 19개의 테마로 그룹화된 프로젝트의 다양성과 범위는 21세기의 도전 과제에 대해 만능 집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Topham은 "우리는 정말 혁신적인 일을 많이 하고 지역 차원에서 다르게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Smith는 건축 자재에서 건축 기술에 이르기까지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며 재벌집 막내아들 11화 11회 E11 다시 보기 건설 업계의 일반적인 태도에 대한 대위법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20세기 모더니즘 디자인이 확산되었고, 사람들이 점점 더 풍요로워짐에 따라 "구체적인 청결 속에서 살기"를 기대하거나 열망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1930년대 이후 세계적인 국제 스타일이 된 이런 종류의 모더니스트 방식으로 집을 짓는 것이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주장합니다. Smith는 "기본적으로 장소를 재료에 맞게 성형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결과는 긍정적이기보다는 해로웠습니다. "라고 Smith는 덧붙입니다. 최근 UN 환경 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콘크리트 및 시멘트 산업은 지난 65년 동안 10배, 철강 생산은 3배 성장한 반면 1인당 저탄소 목재 생산은 거의 정체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같은 보고서는 2021년에 주요 건축 자재인 콘크리트, 강철 및 알루미늄의 제조로 인해 "전 세계 에너지 사용의 4%, 전 세계 배출량의 6%가 추가"되었다고 계산했습니다. 스위스의 빌라 발스(Villa Vals)는 언덕에 지어진 집으로 인근 헛간에서 터널을 통해 접근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집들"에는 조형 재료가 장소에 올 수 있는 좋은 예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간다 Mpigi에서 Upcycle Africa의 공동 설립자인 Johnmary Kavuma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배수로를 막아 홍수로 인해 집이 무너져 할머니를 잃었다고 Topham은 말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이제 플라스틱 병을 수집하여 원형 집의 건축 자재로 사용하여 새로운 주택을 제공하면서 오염 문제를 완화합니다. 그들의 긍정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그들의 책에 있는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음을 재벌집 막내아들 11화 11회 E11 토렌트 인정합니다. Topham은 "(일반적인 건설 방법)에서 벗어나자마자 이를 수행할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지거나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들거나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라고 말합니다. "평범한 집주인의 경우 책에 나오는 예와 같이 원격으로 무엇��든 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장벽을 많이 허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그들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하기를 열망합니다. Smith는 그녀의 텍사스 집에서 난방을 점검하고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장착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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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d Stodder with his Gorgeous Artwork! 그의 재능은 여러방면에서 탁월했다. 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쏟는 정성과 시간이 느낌있는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의 작품의 원재료가 흙인데 그의 손끝을 거치면 생명력이 덧붙어 완연히 다른 창조물로 태어난다. *Mother Earth:Stained glass mosaic tile over masonry and polystyrene substrate with steel and aluminum reinforcement. 48” high.@fred_stodder#modernceramics#glassmossaic#fredstodder#3Dart.#pottery#abstractart #ceramicworks#도자기예술#3d예술 #모던디자인#모더니즘#모자이크예술작품#미국예술가#라구나비치예술가 https://www.instagram.com/p/CE8KjOTnxcX/?igshid=14sexb21h73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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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The COMET!, One of the Urban Rubbishes, prototype - Series, 2015
Origin of the webtoon “Louis & Jolgaedull”.
#contemporary art#post modernism#artworks#webtoon#origin of the webtoon#anime#citypop#cyberpunk#vaporwave#rubbish#urban rubbish#video#3D#웹툰#루이와 졸개들#만화#시티팝#현대 미술#컨템포러리#포스트 모더니즘#manwha#manga#manga p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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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ERNICON exhibition again. #예쁘다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그림 #미술관 #박물과 #모더니즘 #modernism #russia #krasnodar #museum #cool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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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3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노시산방에서 수향산방으로 / 수화 김환기의 백자사랑 / 김향안 또는 변동림 여사 / 대사관로와 꿩의 바다의 대저택들 / 우리옛돌박물관과 한국가구박물관 / 김자야와 백석의 사랑 /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 조지훈의 방우산장 / 조지훈 시 윤이상 작곡 고풍의 상 / 최순우 옛집 / 박태원의 고현학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김용준의 수형산방 전경 수화 소노인 가부좌상 / 김환기 결혼식 주례 춘곡 고희동 사회 정지용 길진섭 / 김환기의 항아리와 매화 / 백자 김환기 혜곡 최순우 / 니혼대학 미술과 백만회(백의민족 + 야수파fauvism의 야만의 만) 아방가르드 모더니즘 1948 신사실파전 / 김환기의 16-IV-70#166 점화 부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따옴 / 변동림 김향안 / 김향안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1989 / 수필집 파리1962 / 북악스카이웨이 건설과 삼청터널 개통식1970 / 김영한 진향 자야 /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자야 법명 길상화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 백석의 영향 윤동주 신경림 안도현 / 조지훈의 승무 고풍의상 윤이상 작곡 가곡 / 고대 교가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 / 최순우 옛집 수연산방과 쌍벽 / 혜곡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 2002 시민문화유산 제1호 사후 타인에게 넘어간 것을 사들여 보수 /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개성출신 우현 고유섭 선생 스승 / 최순우 김환기 / 산정 서세옥의 무송재 / 당호 무송재 도연명의 귀거래사 무고송이반환에서 따온 것 / 무송재의 정원에 있는 괴석은 은사��� 근원 김용준의 노지산방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 / 부인 정민자 여사 한옥연구가 재단법인 아름지기 고문 / 산정 묵림회 창립 / 백계 정탁영 이석 임송희 남계 이규선 / 박태원의 고현학 / 구보 박태원 천변풍경 / 류수연 뷰파인더 위의 경성 박태원과 고현학 2013 / 고현학modern-ology 고고학의 방법론을 현대 생활사에 적용하는 민속학적 방법론 / 1925 곤 와지로 관동대지진1923 이후 ’도쿄 긴자 풍속 기록’ 에서 제창 박태원은 유학 당시 여기서 영감을 받음 / 예이젠시테인 전함 포템킨 몽타주 기법 / 외손자 봉준호 / 월북 이태준 만나러 간다고 하고 나감 / 남로당계열 숙청 4년간 강제 노동 / 1960 교수로 복귀 1965 갑오농민전쟁 계명산천은 박아오느냐 1965 망막염 1975 전신불수 1977 갑오농민전쟁 3부 새로 결혼한 부인 권영희에게 구술로 완성 1986 사망 / 북한의 역사소설 중 최고 걸작 갑오농민전쟁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 심우 진리 또는 자기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것을 동자가 소를 찾아가는 것에 비유한 데서 나온 것 / 1933 54세 때 지음 / 1944 사망 11년간 거처 / 36세의 간호사 유숙원과 새 장가를 듬 / 13세때 전정숙과 결혼 / 17세 때 가정을 버리고 설악산 오세암으로 / 1905(27세) 백담사로 출가 승려 / 29세 때 반년간 일본 견학 / 북촌 셋방 시절1926 님의 침묵 / 1927 신간회 결성 중앙집행위원 / 1931 일제 탄압으로 해체 / 1933 불교비밀결사 만당도 해체 / 일제 탄압이 극심해져 심신 피로 재혼 심우장으로
한용운과 김동삼 / 서대문형무소 시신 수습 / 만해는 1944 사망
북정마을 비둘기 쉼터에서 / 북정마을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 젠트리피케이션 중 / 2015 서울시 미래유산 지정 / 김광섭의 성북동비둘기 / 북정마을 비둘기 공원 / 김광섭과 그의 옛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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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소설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시의 연속적 충격과 달리 도화선처럼 타들어가는 플롯의 흐름에서 오는 무엇이 분명 있다. 소설에서의 윤리와 재현에 대한 고민이 잦아지는 시기다.
서사는 공동체라는 작은 세계에 귀속된 ���들로 인해 공유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인간중심적인 세계에서, 사회를 부감하고 인간이 구성한 다양한 공동체를 초월화여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시점, 그 메타 차원의 시점이란 누구의 시점인가. 신의 시선에서 이야기되던 이전의 서사로부터 탈피한 후 캐피탈리즘과 국가의 시점을 통해 창조된 근데소설은 무엇을 향해 뻗어 나가는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사조가 있던 과거에, 모더니스트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표현의 도구들이 세계를 재현하는 데에 미약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여기서 세계를 아예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는 발상이 나온다. 그것은 재현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자면 ‘사건’ 그 자체의 소재를 지시하는 게 아닐까. 재현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근대 예술 전반에 걸쳐져 있다. 그러나 재현의 속성이란 언어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불가능성의 한계로 인해 오히려 근대 예술이 생길 수 있던 역설적인 중요함과 아이러니는 무엇일까.
일부 작가들이 재현의 불가능성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침묵을 택하는 양상을 보아 왔다. 정체성이란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특성에 기반한 개념이며, 위치성은 개인이 서 있다는 장소의 중첩에 대한 개념이다. 이것들이 곧 ‘개인’ 단위의 개념이 된다. 개인은 존재를 사고하는 기초 단위가 된다. 내 것과 네 것이 구별 가능하다는 감각과 구별해야 한다는 감각인 것이다.
오늘날 글쓰기의 이중구속(double-bind)적 상황에서, 타인의 삶을 침해하거나 절취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미디어적 신체의 상황이 대립한다. 즉 저작권 관념의 강화와 초연결 시대의 대립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쓰여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사건이란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과 이후가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사건을 통과해왔으며 이 사건이 중단됐을 때 어쩌면 죽음과 가까워지는 것 아닐까. 벤야민이 사건에 대해 언급했을 당시 ‘지금 여기’라는 말을 강조한 바 있다. 이것이 사건을 설명하는 개념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주체는 선언적이거나 진공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사건을 통해 만들어진다.
고민을 거듭하다 보면 각자만의 방법론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고의 기초단위로부터 달리 사유해 보면 어떨까. 주체, 나, 존재, 존재단위, 정동, 중동태 등. 막연하게 ‘나’를 나로만 알기보다 그 본질에 서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면.
당사자성. 문단 내에서 꾸준히 야기되어오고 있다. 당사자가 아니면 이야기할 수 없고 재현할 수 없을까. 이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현대에 당사자성과 관련된 윤리에서 이따금 강조되는 건, 나와 우리라는 존재가 그저 individual, 더 이상 나뉘지 않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우리가 철저한 남으로서 존재하고 작동할까. individual이라는 이 감각은 생성된 지 1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어떠한 링크도 잔존하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 실재계를 떠도는 망령 같은 언어들처럼.
시의성이 있는 소재로 글을 쓸 때 소재와 거리두기를 얼마나 해야 할까. 이것도 요즘의 고민거리다. 그걸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미완결 상태인 재난이나 사건에 대해 글을 써도 될까. 사건의 소용돌이, 한복판 안에 있을 때는 글을 쓰기 어려웠다. 세월호 사건 당시 모든 작가들이 글쓰기를 중단했다고 한다. 글은 현실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저 마음 안으로 슬퍼할 뿐이다. 그 사태에서 한 발이 빗겨나가고 시간이 확보된 이후, 생각의 뿌리가 어떤 맥락인지 검토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로소 쓸 수 있다. 이원 시인의 「검은 모래」 를 읽을 때 나는 얼마나 어깨를 들썩였던가.
이런 시의성 있는 소재를 언어로 표현할 때, 가장 먼저 몸이 튀어나가는 건 시다. 시의 이런 특성이 나와 닮아 있어서 나는 시인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겠지. 전쟁이라든가 518, 세월호 사건에서도 시가 먼저 반응을 했고 그 다음이 르포르타주였다. 마지막이 소설이었다. 소설의 장르 특성 상 재현이라는 것에 첨예하게 봉착하는 문제들이 있는 것 같다. 르포 같은 경우는 당사자들과 직접 검수하고 같이 읽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지만 소설은 아니다. 어쩌면 소설에서의 재현이 가장 까다롭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 이 소설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일까. 시에서는 더욱 더 확장되고 솟구치던 재현의 연구와 실험들이, 어째서 소설에서는 침묵을 택하는 양상을 보일 때가 있을까. 질문이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내가 가진 글쓰기 윤리의 난제와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쓰고 싶은 것과 당장은 쓸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 윤리는 도덕과 다르다. 도덕은 ‘나’ 바깥에서 어떤 공동체나 집단이 나의 동의여부과 무관하게 강요하는, 이전부터 있던 법규 같은 것이다. 윤리는 외부로부터 강요된 것과 다르게 나의 성찰로부터 발현된다.
모든 글쓰기는 결국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외부와 접촉이 생긴다. 즉 ‘누가’ 상처 입느냐가 관건인 문제다. 당장 나만 해도 무해한 글을 욕망한다. 무섭고 절박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촉면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쓴다. 글쓰기 이전에 사고방식이나 세계관 자체의 근거를 달리 사유하고자 한다. 이건 비단 글쓰기에서만 중요시되는 게 아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달라져야 하는 문제일 수도 있다. 미디어, 법과도 이어진다. 지금 이 세계를 직시하지 않으면 같은 ���리를 공회전하게 된다.
윤리냐 표현의 자유냐. 그 기로에 서 있다.
당사자가 당사자를 커밍아웃하거나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상황이 있다. 인권뿐만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한 만물의 존재들이 있다. 당사자만이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착오가 자리잡을 때, 누군가가 대신 해 줘야 하거나 함께 해 줘야 하는 필요성이 지워지게 된다. 죽은 사람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대신해서 말해 줘야 할 때도 분명 있다. 스피박이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언급했던 사티 풍습은 어떠한가. 결국 언어를 가진 자가 재현해야 한다.
재현의 문제의식은 협소한 게 아니라 곳곳에서 태어나고 만들어지고 공유된다. 재현과 관련해서 자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당사자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다뤄지면 비극이 된다. 연대를 해야 하는 순간들, 불가피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같이 얘기해 줘야 하는 상황에서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입을 열 수 없는 이들은 영영 언어를 상실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시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사람이지만, 늘상 소설이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통해서만 재현될 수 있는 것들에 큰 매력을 느낀다. 시는 우리가 프로그래밍된 대로만 사유하느라 지나쳤던 대상의 실재와 실재에서마저 배제되어 버려진 감각들을 재현해낸다면, 소설은 과연 무엇을 재현해내려고 하는 것일까. 명료한 답을 내릴 수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읽고 쓰고 사유한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갔고, 좋아하는 책의 중판 1쇄를 발견했다. 앞 페이지에 쓰여 있던 누군가의 짧은 염원을 보았고, 그 당시 어떤 사건이 이들을 읽게끔 만들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28년에 걸려 내게로 오게 된 이 안부는 여전히 건강한지. 자주 웃는지. 궁금했다.
오늘은 중고서점에 갔고, 좋아하는 책의 중판 1쇄를 발견했다. 맨앞에 쓰여져 있던 누군가의 짧은 염원을 보았고, 그 당시 어떤 사건이 이들을 읽게끔 만들었는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28년에 걸려 내게로 오게 된 이 안부는 여전히 건강한지. 자주 웃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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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결산 4
7월
Weissenhofmuseum(바이센 호프주거단지, 슈트트가르트)
근,현대 초기 혁명적 모던 건축의 대가들이 총집합하여 모더니즘 생활 및 주거 공간을 실험했던 역사적 산물
Killesbergpark(슈트트가르트 주립공원에서
Biblioteca pública(세계적인 한국 건축가 이은영 교수가 설계한 환상적인 슈트트가르트 시립도서관)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시대별 명화들이 즐비한 슈트트가르트 국립 미술관에서
락다운 해제 후 공원으로 거리로 광장으로 쏟아지던 슈트트가르트 주말
Deißlingen(다이슬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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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Encontramos a Papa Noel y a unos renos. Uno de ellos está en la puerta del Museo de Ciencia. Es un edificio modernista que es muy bonito.
We found Santa and some reindeer. One of them is at the door of the Science Museum. It is a modernist building that is very beautiful.
Google Translation into Portuguese: Encontramos o Papai Noel e algumas renas. Um deles está na porta do Museu da Ciência. É um edifício modernista que é muito bonito.
Google translation into Italian: Abbiamo trovato Babbo Natale e alcune renne. Uno di questi è alle porte del Museo della Scienza. È un edificio modernista molto bello.
Google Translation into French: Nous avons trouvé le Père Noël et des rennes. L'un d'eux est à la porte du Musée des sciences. C'est un bâtiment moderniste qui est très beau.
Google Translation into Arabic: وجدنا سانتا كلوز والرنة. واحد منهم عند باب متحف العلوم. إنه مبنى حديث وهو جميل جدا.
Google Translation into German: Wir haben den Weihnachtsmann und Rentiere gefunden. Einer von ihnen befindet sich an der Tür des Wissenschaftsmuseums. Es ist ein modernistisches Gebäude, das sehr schön ist.
Google Translation into Albanisch: Ne gjetëm Santa Claus dhe renë. Njëra prej tyre është në derën e Muzeut të Shkencës. Është një ndërtesë moderniste e cila është shumë e bukur.
Google Translation into Czech: Našli jsme Santa Clause a soby. Jeden z nich je u dveří vědeckého muzea. Je to modernistická budova, která je velmi krásná.
Google Translation into Greek: Βρήκαμε τον Άγιο Βασίλη και τους τάρανδους. Ένα από αυτά βρίσκεται στην πόρτα του Μουσείου Επιστημών. Είναι ένα μοντερνιστικό κτίριο που είναι πολύ όμορφο.
Google Translation into Suomi: Löysimme joulupukin ja porot. Yksi niistä on Tiedemuseon ovella. Se on modernistinen rakennus, joka on erittäin kaunis.
Google Translation into Polish: Znaleźliśmy Świętego Mikołaja i renifera. Jeden z nich znajduje się przy drzwiach Muzeum Nauki. Jest to bardzo piękny budynek modernistyczny.
Google Translation into Turkish: Noel Baba ve ren geyiği bulduk. Bunlardan biri Bilim Müzesi'nin kapısında. Çok güzel olan modernist bir yapıdır.
Google Translation into Hebrew: מצאנו את סנטה קלאוס ואיילים. אחד מהם בפתח מוזיאון המדע. זה בניין מודרניסטי שהוא מאוד יפה.
Google Translation into Hindi: हमें सांता क्लॉज़ ���र हिरन मिले। उनमें से एक विज्ञान संग्रहालय के द्वार पर है। यह एक आधुनिकतावादी इमारत है जो बेहद खूबसूरत है।
Google Translation into Indonesian: Kami menemukan Santa Claus dan rusa. Salah satunya adalah di pintu Museum Sains. Ini adalah bangunan modernis yang sangat indah.
Google Translation into Russian: Мы нашли Деда Мороза и северного оленя. Один из них находится у дверей Музея науки. Это модернистское здание, очень красивое.
Google Translation into Japanese: サンタクロースとトナカイを見つけました。 そのうちの1つは科学博物館のドアにあります。 とても美しいモダニズムの建物です。
Google Translation into Korean: 우리는 산타 클로스와 순록을 찾았습니다. 그 중 하나는 과학 박물관의 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더니즘 건물입니다.
Google Translation into Chinese: 我们找到了圣诞老人和驯鹿。 其中之一在科学馆门口。 这是一座非常漂亮的现代主义建筑。
Google Translation into Persian: بابا نوئل و گوزن شمالی را پیدا کردیم. یکی از آنها درب موزه علوم است. این یک ساختمان مدرنیستی است که بسیار زیبا است.
Google Translation into Thai: เราพบซานตาคลอสและกวางเรนเดียร์ หนึ่งในนั้นอยู่ที่ประตูพิพิธภัณฑ์วิทยาศาสตร์ เป็นอาคารสมัยใหม่ที่สวยงามมาก
Google Translation into Ukrainian: Ми знайшли Діда Мороза та північних оленів. Одна з них – біля дверей Музею науки. Це дуже красива будівля в стилі модерн.
#Helsinki#Finland#Santa#Rudolph#Reindeer#Science#Museum#Architecture#Nature#Travel#Beauty#CoupleGoals#PositiveVibes#PlushiesOfInstagram#Maharashtra#ペンギ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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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배의 예술수업 안현배
오르세미술관과 프랑스 모더니즘
오르세 미술관 이야기이다
그림들이 많아서 고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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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us, 2017. dir. kogonada
소통으로 축조한 생의 모뉴먼트와 관계의 형이하학. 절대적 모던의 당위성과 그 무한한 온연함에 대하여.
i. “현대 건축의 상징물들이 조용히 자리 잡은 도시 콜럼버스. 그곳에서 만난 남녀가 하염없이 건물을 바라보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교회와 병원, 도서관은 둘의 대화를 경청하는 중요한 청자이자 위안을 주는 화자로 모더니즘 건축의 교본 이상의 역할을 한다. 비디오 에세이스트 출신의 코고나다 감독이 콜럼버스의 건축물로 쓴 시 안에서 모더니즘은 온기를 담는 그릇과도 같다. 사람들의 체온과 이야기가 스며들 수 있게 남겨둔 모더니즘 건축물의 간결한 여백은 영화의 미덕과 닮아있다.”
ii. 장소는 자신의 가장 높고 가장 먼 곳으로 무언가를 모은다. 장소, 즉 모으는 것은 이렇듯 자신에게로 무언가를 들여와서 그것을 보존한다. 하지만 상자가 내용물을 그 안에 잠가두고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여진 것을 관통하여 빛을 비춰줌으로써 비로소 그것의 본질이 발휘되도록 해주는 방식으로 보존한다. 그러므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사물들은 데카르트의 말처럼 연장을 가진 실체로서의 물리적 대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하나의 장소를 구성하는 것이다.
“구역들은 눈앞에 있음의 방식으로 함께 존재하는 사물들에 의해서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마다 이미 각각의 자리들에 손안에 있음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거리 없앰을 통해 얻어지는 공간적 관계는 손안에 있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존재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현존재가 세계 내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언제나 손안에 있는 존재자들 곁에 있음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차지하는 자리가 손안에 있는 존재자들처럼 구역으로부터 직접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현존재는 미리 발견한 구역 안으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손안에 있는 존재자를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그것과의 거리를 없앤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자신도 하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존재자는 단순히 물리적, 생물학적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우리와 함께 만들어내는 세계 내부적 존재자들과의 의미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은폐되지 않고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재와 현전 가운데서, 변화의 나타남 속에서 드러나지 않은 채 현전하는 정적과 안식.”
- 김동훈, 「공간-마련과 깃들임의 사유: 하이데거 사유를 통해 본 도시 공간의 의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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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로서의 시작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마주친 한 시골의 정원이었습니다. 여행을 마친 뒤 그곳에서 생겨난 영감을 실현시키기 위해 루누강가(Lunuganga)의 버려진 부지를 사서 자신만의 정원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변호사 가문에서 태어나 그 뒤를 잇던 이에게 새로운 정체성에 대한 의식을 움트게 했던 날갯짓은, 그의 최초이자 대표 작품이 된 루누강가 정원 안에 있는 나비 모양의 연못으로 남겨진 듯합니다.
제프리 바와(Geoffrey Bawa, 1919-2003)는 스리랑카와 20세기 건축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던 스리랑카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그에게 처음 부여된 정체성은 ‘경계인(people in-between)’이었습니다. 식민 본국과 자국민 모두 그에게 배타적이었지만, 경계 위에서 그가 세운 건물은 허물어진 벽이었습니다. 작품 중 대부분은 열대 우림, 강, 바다와 같은 스리랑카 본연의 지형과 이어지듯 세워져 있고, 창과 문을 커다랗게 내어서 내부를 가득 채우듯이 들어오는 빛과 바람과 풍경이 안팎의 경계를 흐리게 합니다.
바와가 활동하던 당시, 서구의 모더니즘 건축이 열대 지방의 식민지로 번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더니즘의 일률성이 스리랑카의 기후와 지형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여기서도 그만의 부드러운 파괴력을 발휘합니다. 열대의 습한 열기로 자라난 식물들이 우거진 뜰, 그들을 품은 베란다, 높은 지붕과 같은 스리랑카 전통의 건축 요소들을 이용합니다. 정원의 초록들은 그대로 건물의 외벽을 감싸고, 지붕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처마가 만든 빛과 그림자의 대비가 감각적으로 실내를 장식합니다. 모더니즘의 곧은 선과 단순한 색은, 전통적인 진흙 타일과 벽돌, 바위, 나무 등 현지 고유의 재료들이 가진 불규칙성으로 인해 어그러집니다. 열대 자연과 모더니즘의 사이가 어그러지듯 어우러지고, 바와는 ‘트로피컬 모더니즘’의 선구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습니다.
그렇게 바와가 짓는 현대의 공간은 과거와 연결되고, 건축물과 풍경 사이에는 문맥이 생겨납니다. 벽을 세워 경계를 허무는 사람. 바와는 하나의 건물을 지을 때마다 그러한 자의식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특히 최초의 날갯짓이 박제된 정원이자, 30년 넘도록 자신만의 미학적 실험을 이어가던 루누강가의 별장은 그곳을 거니는 사람에게 연속적인 장면을 보여주듯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작업했다고 합니다. 또한 현재 박물관이 된 생가와 갤러리 카페로 쓰이고 있는 건축사무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갈레 요새(Gallet fort)를 비롯하여 대��과 사원, 호텔 등 그 의식의 산물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고 있습니다. 바와가 공고히 무너뜨린 벽과 그 안팎을 자유롭게 부유하는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의식에 날아들어 새로운 날갯짓으로 박제됩니다.
<Mr. Bawa, I presume>은 사진가이자 여행사진집 출판사의 설립자인 지오바나 실바(Giovanna Silva)가 스리랑카에서 바와의 작품들을 여행한 기록입니다. 실바는 대상을 집요하게 봅니다. 그녀에게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선이 머무는 것 이상의 탐색과 경청의 작업입니다. 공간과 입체 사이의 얇은 막을 따라가는 것, 경계를 파고들어서 그곳에 소거되어 있던 내러티브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작품과 경치, 작품과 작가 사이의 내러티브를 듣고, 또 그 사이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전날의 누군가에 의해 남겨진 흔적이 없다면 그들은 버려진 것과 같이 보인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흔적들로 더럽혀진 디테일을 찍고 그들의 말없는 요란함을 듣습니다.
거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바와를 기리는 프로젝트에 실바만큼의 적임자는 없었을 겁니다. 바와가 공간과 입체를 통해 보여주는 시퀀스를 다시 그녀의 프레임에 집요히 담아내고, 그녀만의 해석과 이야기를 겹쳐 쓴 사진집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현대적인 간결함, 스리랑카 고유의 색과 지형, 명암의 대조로 나타나는 바와의 개성. 이 모든 것의 조화 속에서 읽어지는 이야기를 보고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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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H (The COMET!), Urban Rubbish, prototype - Series, 2015
Origin of the webtoon “Louis & Jolgaed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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