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라이터 좀 빌립시다
kissmeorca-blog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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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왕
금수만도 못한 인간이란 말 들어봤다면
그렇게 말한 건 자기 배로 날 낳은 한 암컷이었지 내 하나뿐인 언청이 친구만 평생 욕하다 내장까지 썩어버렸지만
그년이야말로 태어나서 가장 잘못 사귄 사람
발 달린 것들 모두 한 마리 미친개를 피해 다닌 사건들의 시간
달아나기 전에 저게 왜 미쳤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날카로운 것들이 정점을 가진 것들이 눈부셔
세상이 끝날 것처럼 끝난 것처럼
나는 길거리를 날뛰었고 그런 날만큼은
우연의 자식이 아니었지
그러다 이야기가 되려니 개 같은 사랑이…
불안을 먹이고 불안은 사랑을 먹이며
다음엔 안개로 태어나고 싶다는
널 보는 동안만이 이 지상의 삶에서 손 뗄 수 있었지
너 없이도 세상이 지속된다고 믿는 것들에겐 함부로 칼을 꽂았고
다음엔 불빛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술집 창가에 비친 널 똑바로 볼 수 없어 나는 눈을 도려내고 말았지
그토록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요
희열에 찬 살인자의 얼굴이 아니고는
단지 마음이라는 죄를 안고 태어나
그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가두었네
귀뚜라미 붉은 달 끈 떨어진 운동화 훔친 사진기 부러진 칼날 추락하는 고양이 네 머리카락…
나의 배심원들
일평생 누굴 도운 일 없는 인간이지만
그래도 단 한 번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풀어준 적 있다 해도
금수 같은 놈이라는 말 들어봤다면
필연을 완성한 금수의 왕은 불에 달궈진 쇠 구두를 신은 듯 춤추었네
순수한 죄의 숲을 가로지르며
먹이에게 달음박질하는 그 맹목의 식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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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meorca-blog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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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사랑
가슴 한복판에서 연기가 솟아오른다 가시덤불에 숨은 그림자가 발바닥에서 흐르는 피를 받아먹는다 타들어가는 살 냄새 피해 구름들이 떠난 자리엔 코발트색 하늘 에로스가 잠든 정오 나는 빛의 구두를 신는다 당신이 깜깜하다 이 갸륵한 연애의 끝은 붉은 달이 뜬 나의 밀실에서 시작되었다
배추벌레, 나는 새로 태어난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의 껍질을 먹어버리고 너라는 연한 배춧잎을 갉아먹는다 나는 통통하고 푸르게 익어가는 초록색
달팽이, 암수한몸이 될래 진액을 짜며 너에게로 갈래 네 손길이 머무는 곳마다 다른 색을 낳을래 소금에 닿은 듯 녹아내릴래 순교자처럼 흰 피를 쏟을래
모기, 어둠의 발치에서 네 주위를 맴돌아 식지 않는 네 피를 자궁에 담아 낱낱의 땀구멍들 폐 깊숙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네 숨결 무심결에 죽어도 좋아
빈대, 넌 하루하루 말라갔는데 난 밤마다 빨갛게 부풀어 달아올랐는데 널 보는 내 맘 얼마나 가려웠는데 너에게만은 그토록 불결했는데
도마뱀, 칼침을 견디는 도마의 말과 배로 기어다니는 뱀의 말 갈라진 혀 남겨진 초록 꼬리와 푸른 독
배추벌레 알
달팽이 더듬이
모기 눈알
빈대 주둥이
도마뱀 꼬리
뱀독, 땅벌 침, 고슴도치 가시, 박쥐 발톱, 거미 다리, 두꺼비 배도 빠뜨리지 말 것
끓인다, 속 끓인다, 애 끓인다, 펄펄 끓인다
그리고 별꽃과 장미 꽃잎
마지막엔 새벽 첫 이슬
붉은 달이 질 때까지 솥을 저었네 내 사랑만은 흔치 않으리 몇 세기 전의 세레나데를 흥얼거리며 사랑이란 불탄 십자가 밑에 남겨진 까마귀 깃털이라는 언니의 말을 잊었네 안개와 달빛으로 짠 드레스를 입고 당신의 창가를 넘을 때 내 맘은 솥단지처럼 느껍게 끓고 있었네 작고 투명한 유리병 속에서 잠든 당신의 귓속으로 끈끈한 분홍빛 미래가 흘러내리네 끔벅이는 올빼미 눈과 귀뚜라미 울음, 길게 드리운 고양이 그림자가 그 밤 으밀아밀한 주문의 증인이었네
가는 손가락으로 몰래 커튼을 열고 틈입한 달빛
나도 모르게 떨어진 노란 땀방울
혹은 기쁨의 눈물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너는 내 목덜미를 움켜쥐고 나를 정오의 광장에 패대기쳤다
내 속살이 그렇게 하얀 것을 그때 한낮의 태양 아래 검은 치마가 찢어지고야 알았다
오직 두 눈이 없는 한 남자만이 내게 침을 뱉지 않았다 아니 어디에 돌을 던져야 할지 알 수 없었을까
의인義人들아, 나를 마녀라고 부르는 건 쉬우나, 마녀의 사랑엔 다른 이름을 다오
오래 삭은 뼈같이 불타버린 십자가 아래
맹인 사내 하나 재를 그러모으고 있다
상형문자 닮은 발자국 새기며 까마귀 한 마리 그 모습 지켜본다
그래, 마녀의 언니에게도 마법같은 사랑이 있었다
너의 가늘고 섬세한 손가락만은 나를 더러운 여자라고 손가락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너의 그 벨벳처럼 보드라운 눈길은 처음부터 나와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다
복수, 그것이 마녀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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