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구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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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아 개인전 <떼구르르르>
오선아 개인전 <떼구르르르>
2017. 06. 15 - 06. 29
| wed-sun | 13:00-19:00 |
별도의 오프닝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선아는 사물과 구조의 인상을 목도하고 분해와 재조합, 그리고 나열의 방식을 통해 이를 시각적 형태로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온 작가이다. 이번 전시 《떼구르르르》에서는 작가가 오랜 시간 관찰해온 대상을 주제로 한 신작 4점을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팔각형의 거울로 짠 테이블 <팔각정>(2017)과 크고 작은 자갈이 바닥 면에 깔린 두 개의 의자 <가시방석>(2017), 각목에 꽂혀있는 빨대로 분수의 형상을 나타내는 <분수대>(2017), 그리고 자수가 놓인 캔버스 세 점 <노동과 놀이>(2017)와 오브제 드로잉 일부를 만날 수 있다.
<팔각정>은 작가가 자주 찾는 집 앞의 휴식공간을 모티브로 하여 실제 팔각정과 동일한 47cm의 높이로 만들어졌다. 본래 휴식을 위해 만들어진 마루 부분은 거울로 표현되었다. <팔각정> 앞에 선 관객은 자신이 선 자리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게 된다. 거울 위에는 원본은 없고 잘린 그림자로만 남은, 흙으로 빚은 바위가 놓여있을 뿐이다. 작가는 이곳에서 늘 같은 고민을 이어왔다고 했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어떤 상태에 대해서, 그러나 그럴 수 없는 마음에 대해 몇 번이고 물었을 것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바위 그림자는 어쩌면 그곳을 맴도는 작가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방식으로 작업을 경험하게 하는 형태는 거울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각기 처한 상태는 다르지만 ‘현재 자신이 위치한 곳’을 묻는 동일한 질문으로 작동한다.
책상 형태로 제작된 <팔각정> 앞에는 관객이 ���접 앉을 수 있는 두 개의 스툴형 의자가 놓여있다. 먼저 바닥 면이 원형으로 제작된 의자에는 화분이나 어항장식에 사용되는 하얀 자갈이 깔려있다. 또 다른 의자는 엠보싱이 솟아있는 줄과 오목하게 파여있는 줄이 교차하는 형태의 회색 야외용 사각방석을 이용하여 제작했다. 작가는 방석의 비어있는 구멍 치수와 꼭 맞는 조경용 인도네시아산 돌멩이를 발견하게 되었고, 빈 구멍을 채우는 데 사용했다. 처음 앉았을 때는 일반 의자와 큰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바닥 면의 자갈의 냉기와 질감으로 은근한 불편함을 제공하는 <가시방석>은 불편한 관계 혹은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지속적인, 지지부진한 어떤 상황 자체로 느껴진다.
시선을 돌리면, 빨대의 끝부분을 동그랗게 말아 분수에서 솟구치는 물을 형상화하고 이를 각목에 설치한 <분수대>를 마주하게 된다. 분수는 넘치지도 흐르지도 않는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분수는 그저 제 몫의 자리를 확보하고 있을 따름이다. <분수대>를 이루는 4개의 각목은 바닥에 고정되어있지 않아, 관객의 손길이 닿으면 사각틀이 가변적으로 움직이도록 놓여있다. 짜인 틀에 매여있지 않고, 유동적인 상태로 움직임을 취한다는 면에서 수행적이다.
이어 벽면에는 세 점의 자수 작업 <노동과 놀이>가 전시된다. 자수는 ‘노동’이자 ‘놀이’로써의 작업 행위로 기능한다. <노동과 놀이>에는 서로 다른 ‘구르기’를 수행 중인 대상이 등장한다. 하나는 놀이로써 굴렁쇠를 굴리는 사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생존을 위해 제 몸보다 더 큰 쇠똥을 굴리는 쇠똥구리, 그리고 형벌로 인해 언덕 끝까지 큰 바윗돌을 굴려야 했던 시시포스(Sisyphos)의 모습이다. 시시포스의 돌은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다시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때문에 이 형벌은 영원히 되풀이된다. 또 다른 캔버스에 수 놓인 ‘계란’과 ‘거미줄’은 형태에서부터 의미로 나아가길 시도한다. 작가는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살색의 계란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예쁘게 느껴졌다고. 이윽고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경이와 신비의 대상으로써 계란을 독해했고, 이는 곧 6개의 계란 자수로 남았다. 연결과 포착에 대한 생각으로 만들어진 ‘거미줄’ 역시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형식적으로는 설치와 자수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주제적 측면으로는 작가로서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작가 개인의 환경적, 심리적 상황을 다루고 있다. 각각의 상황에는 작가 특유의 위트가 묻어��다. <팔각정> 앞에서 <가시방석>에 앉아 불편한 휴식의 순간을 견디며 자신이 어찌할 수 ���는 상황을 인내하다가도,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 이는 생존 그 자체이면서 동시에 고통과 유희적 행위로서의 작업 행위와 이를 수행하는 작가 자신을 지시한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은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매 순간을 증명하는 듯하다. 일상의 것에서 동시대를 감각하고 담아내는 작가의 이러한 시도들은 작가 개인의 서사에서 시작되었으나, 정도의 차이일 뿐 같은 고민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이처럼 작가는 일상에서 발견된,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사물의 인상을 기록했고, 사물의 인상들은 작업이 되었다. 이는 해변을 걷다가 우연히 발견되는 마모된 유리 조각이나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조개껍데기를 줍는 비치코밍(Beach Combing)의 행위와 닮아있기도 하다. 이러한 방식은 작가 자신의 조형행위를 유발하는 동력으로 말해온 ‘오브제 트루베(objet trouve; 발견된 사물)적 시도로, 예술을 일상의 발견으로 보는 오선아의 기존 작품들과 일정 부분 맥을 함께 한다. 전시장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형태의 기둥에 대한 생각은, 붉은 다이모 테이프에 사랑과 자유를 노래하는 팝송 가사들을 빼곡히 새겨 속이 텅 빈 기둥으로 제작한 <사랑과 자유를 위한 기둥>(2014)이 됐고, 플라타너스 나무를 통해 가을의 부분을 담고자 했던 생각은, 낙엽을 석고로 캐스팅하고 날짜와 날씨와 함께 책으로 만들어져 <가을일기>(2014)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겐 오랜만의 개인전이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나 나는 작업실 안에서 깊이도 넓이도 알 수 없는, 은색 비가 내리는 푸른 바다를 상상하고(비 Rain, 2008), 불안을 진정시키려 먹던 약과 그 약봉지를 재료로 반짝이는 별을 만들어 띄우려 했던(별들 Stars, 2008) 그녀의 감각이 오롯이 그 자신을 이끌어갈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예술은 사실,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속이 헐거웠다. 그래서 속이 겉을 깨고 나오려 했다>(2009)는 작품명은 ‘어쩔 수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 수밖에 없어서, 그래서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 작가의 자기 고백적인 작업관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작고 허름하여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내 힘으로 노를 저어야 하는 ‘내일의 배’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오래도록, 자신의 새하얀 조각배를 저어가며 꿋꿋이 망망대해를 탐험해 나가기를 바란다. “떼구르르” 자신의 공을 굴려 가는 그 여정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 안성은(미디어 비평,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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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선아 개인전 <떼구르르르>
서문 : 안성은
진행 : 김하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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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가변크기_서울시 성북구 삼선교로2길 11
http://www.dimensionvaria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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