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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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기 청소하려는데 일자 드라이버가 없어서 가장 비슷한 칼날 가지고 힘줘서 돌리다가 왼손을 찌르고 말았다. 비명 지를새도 없었다. 욕실 바닥과 손바닥에 새빨갛게 번지는 피를 보고 서둘러 두루마리 휴지를 두툼히 끊어 왼손으로 쥐었다. 그리곤 바닥의 핏자국을 물로 씻어내고 한참동안 뭉근한 통증을 느끼고 서 있었다. 병원에 가야하나. 꼬매야 할 것 같은데. 통증이 꽤 심하네. 찌른걸까 옆으로 그은걸까. 피로 보면 찌른 것 같은데. 오른손이 아니어서 다행이네. 하던거나 마저하자. 왼손은 휴지뭉텅이를 쥐어잡고 오른손으로 풀다만 나사를 천천히 빼내 분리를 해내고 더러워진 부분을 칫솔과 샤워기로 꼼꼼히 씻어냈다. 왼손의 휴지가 빨갛게 변하는 걸 보니 이거말고 다른 일은 하지말고 일단 지혈부터 시켜야할 것 같아 햇볕잘드는 창가에 씻은 청소기 부품을 가져다 놓고 소파에 앉았다. 병원을 가야하나. 몇바늘 꼬매야할텐데. 파상풍? 에이 집에 있던 물건인데 그건 걱정안해도 되고. 영화보면 찔리고 베이고 해도 잘만 살던데 뭐 요까짓거 찔린걸로 병원엘. 난 내 혈소판과 백혈구들을 믿으니까. 삼십분쯤 지나 피가 안나는걸 보고 휴지를 떼어봤는데 상처의 모양을 보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찌르고 긋고를 다 했단 걸 알았다. 숨은 칼잡이가 나였다니. 꼬매야 붙을 상처였다. 아 귀찮은데. 오염되었을 상처부위부터 씻자 싶어 세면대에 손세정제를 붓고 물로 거품낸뒤 왼손을 담가 몇번 휘저었다. 통증이 다시 느껴진다. 흐르는 물에 비눗물을 씻고 다시 상처를 보니 피가 새어나온다. 깨끗한 거즈로 다시 쥐어잡고 지혈되면 아.. 이럴때는 분말형 마데카솔이 최곤데. 그냥 연고형으로 바르고 최대한 자주 소독하고 바르고 그래야겠다 생각했다. 손바닥이라 잘 안붙게 생겼다. 자꾸 움직이니 상처가 벌어져서 안될 것 같아 마지막 드레싱 후 잠자기 전 거즈손에 붕대까지 감아주었다. 밤새 새살이 많이 차 오르길 기도하며.. 지금 피는 멎었고 전체 상처부위는 자로 재 보니 2센티이고 한 2mm정도 빼고 나머진 다 붙었다. 구멍같기도 하고 동전지갑같기도 한 2mm의 상처도 곧 차오를 것 같아 보인다. 아싸 돈 굳었다. 근데 아침청소 후에 일어난 일이라 결국 어제 하루종일 씻을 수 없었고 그래서 결국 하루종일 집안에만 있어야 했고 그래서 결국 삼시세끼 다 챙겨먹고 영화만 보다 오늘 앉아있기 힘들정도의 뱃살을 느끼는 중이다. 아 오늘은 퇴근하고 뛰어야지 했는데 망할 비가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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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짓합니다
오세요, 나의 집으로
저기 저 산 보이나요
막혔던 벽에 창을 내고
당신을 위한 식탁을 차리고
창가엔 작은 꽃병을 놓아두었으니
우리 함께 산을 옮겨요
저렇게 큰 산을 어떻게 옮기냐고요
네, 산은 옮길 수 없으니 산이지요
하지만 내 안에서 당신이 솟아올랐으므로
나는 높습니다
산은 천천히 깎이겠지요
여름 장마엔 흙더미가 쓸려 내려오고
겨울 혹한엔 죽어가는 산짐승들 구하지 못할 거예요
그러면 우리
더러워진 식탁보를 탓하겠지요
창문이 산을 가두고 꽃병이 꽃을 가두었다고
시름시름 시들기도 할 겁니다
시간의 쇳물이 얼굴 위로 쏟아지겠지요
수수깡처럼 무릎이 꺾일 테고요
우리 예뻤던 산
언제 이렇게 보잘것없어졌지
깊은 밤 이마 위로 서늘한 파도가 덮쳐올 때
대문을 열면 또다른 아침
작은 개 한 마리로 도착해 있을지도요
품에 안아 창가에 앉으면
산은 언제나 거기 있습니다
오세요, 내 가장 찬란한 어둠
한 방울의 피가 흰 천에 스미는 속도로
이 산 이 식탁 이 개
우리의 슬픔을 지켜요
- ‘청혼’,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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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소설 '소나기'와 영화 '노팅힐'을 우라까이 + 짬뽕해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
"[꽁트] 써리얼 벗 나이스 Surreal but nice"
내가 초등학교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던 시절이다. 반에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교실 문이 열리고 담임 선생을 따라 들어오는데 외모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남자애들 시선이 한 곳에 몰리며 삼삼오오 잡담하느라 웅성대던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 조용해졌다.
"안녕, 내 이름은 L이라고 해."
운 좋게 짝꿍이 된 남자 놈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곁눈질조차 조심스레 하며 거의 대화를 못 했다.
여자애들 역시 시기 질투가 있었는지 또는 내가 모를 속사정이 있는지, 먼저 친하게 다가가는 애가 없는 것 같았다.
L 역시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전학온 지 서너 달이 지났지만 그녀는 늘 혼자였다.
방과 후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오징어 가이상'을 하며 놀았다. 상대를 붙잡으려다 바닥을 구르거나 단추가 뜯어지거나 심지어 옷이 찢어지는 사고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의외로 거친 놀이라 엄마들은 질색했지만 내 또래에겐 인기 최고였다.
그날도 여지없이 땀에 젖고 늘어진 옷차림에 힘 다 빠진 상태로 터덜터덜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집 앞에 도착해 들어가려는 때 같은 골목의 다른 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서 L이 나왔다. 이럴 수가,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건만 전혀 몰랐다. 어색하게 손을 들고 "안녕"하고 인사를 하자 L이 다가왔다.
"혹시 OO이 어디에 있는지 아니?"
아마 심부름을 가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알았지만 말로 설명하기엔 좀 먼 거리였다. 게다가 괜히 긴장에서 어버버버 했더니 L은
"그러지 말고 같이 가줄래?"
라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오징어 가이상하느라 더러워진 옷차림이 무척 신경 쓰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함께 길가면서도 단답형 대화와 어색한 침묵이 반복됐다.
OO에 도착하자 L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난 그녀가 다시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L이 나왔고, 집을 향해 함께 걷는 중
"혹시 롤러스케이트 탈 줄 아니?"
라고 말했다. 나는 "어…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그녀는 내 손목을 잡더니 거의 가본 적 없는 낯선 동네 골목길을 이리저리 누볐다. 잠시 후 눈앞에 대형 쇼핑센터가 보였다. 이런 곳에 저런 큰 건물이 있었다니 조금 놀랐다. 그녀 말로는 건물 옥상에 롤러 스케이트장이 있다고 했다.
롤러장에선 런던보이즈, 모던토킹, 사브리나, 바카라, 사라 같은 유로 댄스 비트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문제는 내가 그다지 롤러스케이트를 잘 타지 못했다는 것. 어기적어기적 전진하다 멈추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반면에 그녀는 마치 피겨 스케이팅 선수처럼 잘 탔다. 앞으로 가기, 뒤로 가기, 한 발로 타기, 점프 등등을 모두 능숙하게 했다.
난 L 앞에서 멋있는 척 개폼잡기를 포기하고 "우어어어~" 소릴 지르며 열심히 그녀를 따라다녔고, 다행히 나의 몸개그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롤러장을 나와선 둘이 돈을 합해 떡볶이를 한 접시 나눠 먹었다. 인형같이 생긴 애가 나와 같이 떡볶이를 먹는다니 이것도 신기했다.
"롤러 진짜 잘 타더라"라고 하니, "응…"하고 짧게 대답했다. 왠지 뉘앙스가 혼자 여길 자주 오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잘 타게 됐다는 의미로 들렸다.
다음 날 학교에서 L을 봤지만, 갑자기 친한 척하기가 쑥스러워 다른 애들 모르게 눈인사만 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특별한 내색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학교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선 종종 함께 롤러장을 찾곤 했고, 덕분에 내 스케이트 실력도 늘었다.
시간이 흐르며 교실 안에서 남들은 눈치 못하도록 둘만이 주고받는 비밀 신호 같은 게 자연스레 생겨났다.
행운은 나에게 미녀 여자 사람 친구를 허락하지 않는 듯, 그녀는 한 달 후 갑자기 전학을 가버렸다. 작별 인사를 하는 게 싫었을까 나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마치 증발하듯 사라져 버린 탓에 조금 허탈감을 느꼈다. 어쩌면 곧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을 알아 일부러 친구를 여럿 안 사귀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십 수년 세월이 흐른 현재 나는 여느 때처럼 자칭 밀롱게로(=밀롱가 죽돌이)로서 어두침침한 지하 세계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땅고를 추고 있다.
밀롱가에 낯선 여성이 들어왔다. 남자들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나는 L이 처음 전학 온 첫날 남자애들 말문을 막히게 했던 순간을 데자뷔처럼 떠올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외모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그녀임을 바로 알았다.
그녀의 내면까지 알 도린 없지만, 외모만큼은 예상대로 아주 멋진 여성으로 성장했다. 굴곡진 라인이 드러나는 와인색 드레스가 무척 잘 어울렸다.
L은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확실히 못 알아봤다. 하지만 굳이 옆으로 가서 과거 얘기를 들먹이며 아는체 하는 건 내 성품과는 맞지 않는 짓, 그냥 맘속으로만 반가운 마음을 즐기고 있었다.
남자가 미녀를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라 너도나도 까베쎄오를 할 것이 뻔했다. 나는 경쟁이 치열하면 뒤로 물러서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녀와의 한 딴다를 바랐음에도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날은 왠지 흥이 나질 않아 앉아서 음악을 듣거나 간간이 L이 춤추는 모습을 곁눈질로 봤다.
곧 문 닫을 시간이 될 때까지도 L은 남아 있었다. 목을 축이려고 바에 비치한 와인을 따라 마시러 갔다 오는 길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까베쎄오를 했고, L 또한 응했다. 알고 보니 그녀도 처음엔 못 알아보다 내 인상이 낯익어 계속 신경을 썼던 것 같았다.
때마침 분위기가 바뀌어 땅고 대신 AM(Alternative Music) 딴다가 이어졌다. 총 세 곡 중 마지막 곡은 기막히게도 엘비스 코스텔로가 부른 '쉬(She)'였다. 우연치곤 너무나도 절묘하게 들어맞는 상황에서 나는 정말 오감 + 육감을 총동원해 L과 함께 음악에 맞춰 걸었다.
음악이 끝나고 춤이 멈추자 L은 어릴 때 같은 반 다른 애들이 눈치 못 채도록 둘만이 주고받았던 특별한 눈짓을 한 뒤 미소를 머금은 채 뒤돌아갔다.
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던 영화 '노팅힐'에서 남자가 실수로 옷에 커피를 쏟는 바람에 자기 집을 방문한 여배우에게 무심코 내뱉은 "써리얼 벗 나이스"란 대사를 떠올렸다.
영화에선 이 대사 후 여배우가 집을 나갔다가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다시 찾아와선 다짜고짜 남자에게 키스를 한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 밤은 말 그대로 초현실적 두근거림이 있던 한때였음엔 들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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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매화
1.
근래 인준은 저택 별관에 붙어 있는 온실 정원으로 나오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다. 민형은 온실 정원 근처에서 한참을 서성였지만, 얻은 소득이라곤 바지춤에 찔러 넣은 양손이 꽁꽁 얼어붙은 것 뿐이었다.
민형은 한껏 서늘해진 입김을 후, 하고 길게 내뿜었다. 그의 입김이 공중에서 얼음 결정이 되어 바닥으로 슬그머니 떨어졌다. 그런 날씨였다. 야구점퍼 하나만 입고 밖을 돌아다닌다는 게 말이 안 되는 날이었다. 민형을 제외하고.
뉴���에선 종일 역대급 한파로 외출 자제를 권고했지만 집에 가전제품이라고는 집주인이 버려두고 간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정도가 전부인 민형이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민형의 뺨이 체온을 유지해보겠답시고 빨갛게 열을 올렸다. 얼마 없어 잔류하던 체온도 식으면, 민형의 뺨은 어디서 한 대 맞은 것마냥 검붉게 멍을 올렸다. 민형이 바지춤에 넣었던 손 한 쪽을 꺼내 추위에 열상이 오른 제 광대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얼얼하니 느낌이 없었다.
이대로 정원에서 얼어죽으면 인준이 한 달 정도는 날 생각해줄지도 모르지. 별 볼 일 없는 민형의 목숨에 비하면 꽤 값진 성과일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민형이 기침하듯 웃음을 뱉었다.
하지만 민형은, 아직 살고 싶었다. 죽음은 간단하지만 죽음 이후에 찾아올 영원한 고독에 인준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민형이 살얼음이 촘촘하게 깔린 정원 바닥을 신발코로 툭 쳤다. 흙이 묻어 더러워진 얼음 결정이 사방으로 튀었다. 민형이 고개를 돌려 제 옆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온실 정원을 올려다봤다. 족히 제 키의 세 배는 될 것 같았다. 저 안에 있는 흙은 고급이라 추위에 목을 움츠리거나 잎이 빳빳하게 얼어붙지 않을 것이다. 저택 안에 사는 인준도 마찬가지였다.
민형이 뻑뻑하게 굳어버린 손으로 제 뒷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토해내듯 목을 긁으며 두어 번 웃은 민형이 정원에서 등을 돌렸다. 정원에서 멀어지는 발소리는 물을 머금은 듯 묵직했다.
2.
민형은 하루가 멀다하고 인준의 정원을 들락거렸지만, 그게 하루종일 정원에서 죽치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민형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공사판에서 자재를 나르느라 인준이고 나발이고, 보통 다른 걸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건축용 자재는 하나같이 고철 덩어리라 이 근방에서 제일 힘 좋다는 민형에게도 퍽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장점도 있었다. 공사판 일이 워낙 험해서 민형은 한겨울에도 땀이 흠뻑 올라서 티셔츠 하나로도 생활이 가능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민형에게 인준이 입고 다니는 결 좋은 코트 같은 건 분명한 사치의 영역이었다.
단점은 철덩어리에 몸이 눌리기라도 하면 병원비로 몇백이 깨진다는 거였다. 민형은 오늘만 해도 기다란 원통 같은 것에 발등이 찍힐 뻔한 걸 특유의 민첩함으로 겨우 피했다.
씨발! 민형이 저도 모르게 욕설을 뱉었다. 자재를 놓친 신입은 민형의 걸쭉한 탄성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민형은 정신을 어디다 파는 거냐며 신입에게 욕을 쏟으며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혹여 저 단단한 고철 덩어리 한 군데가 찌그러지기라도 했을까 싶어서다. 민형이 지금 차출된 공사의 예비 건물주께서는 지독한 짠돌이에 강박쟁이였다. 부자재에 기스 하나 나는 꼴을 못 봤다.
다행히 고철 덩어리는 흠집 하나 없이 멀쩡했다. 민형은 신입에게 자재를 들고 옮기라고 윽박질러 놓고는 철근으로 대충 틀만 잡아 놓은 가건물 밖으로 나왔다. 짬 좀 찼다는 아저씨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고 있었다.
민형은 그들을 지나쳐 건물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기저기 쏟아져 있는 쓰레기 더미에 비해 악취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민형이 신발 밑창으로 쓰레기를 옆으로 대충 밀었다. 듬성듬성 드러난 아스팔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민형이 바지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도로록, 민형의 치열 위를 단단한 설탕 덩어리가 굴러갔다. 인준이 제일 좋아하는 레몬 맛이었다.
'첫 키스는 진짜 레몬 맛이 날까요?'
민형의 머릿속에 인준의 목소리가 울렸다. 언젠가 온실 안에 있는 원목 그네에 나란히 앉아서 나눴던 대화였다. 인준의 볼엔 민형이 물려 준 싸구려 막대사탕이 볼록하니 물려 있었다.
민형이 저보다 머리통 하나만큼 작은 인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인준이 광대 언저리를 발갛게 물들이고 민형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인준이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제 구레나룻을 양손으로 슥슥 쓸어내렸다. 민형의 시선이 가지런히 정리된 인준의 손끝에 닿았다 떨어졌다.
'나도 모르지.'
한참만에 떨어진 대답에 인준이 고개를 휙 돌려 민형을 바라봤다. 인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한참이나 꿈뻑거렸다.
'정말요?'
'이봐, 나라고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야.'
민형의 타박에 인준이 죄책감 서린 웃음을 흘렸다. 인준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인준은 제가 불리해지면 사고를 치고 용서를 구하는 고양이마냥 행동했다. 민형이 머리카락에 덮수룩하게 덮인 제 뒷목을 손바닥으로 주물렀다.
민형이 뒷목을 주무르던 손을 내려 인준의 손등을 조심스레 포갰다. 오랜 막노동에 마디가 툭 불거진 민형의 손바닥은 인준의 손에 비해 배는 컸다. 밖으로 삐져나온 손가락이 인준의 벚꽃빛 정장 바지에 가지런히 안착했다. 민형의 손끝에 인준의 허벅지를 감싸고 있는 부드러운 실크가 걸렸다.
'저는 왜 민형 씨가 뭐든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을까요?'
인준이 순진한 호기심을 붙여왔다. 민형이 퍼석하게 갈라진 제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맞붙여 좌우로 슬쩍 문질렀다.
'그냥, 네가 볼 일 없는 곳이라서 그래.'
인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반달같이 동그란 인준의 얼굴에 주인을 꼭 닮은 둥그런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민형은 인준이 제게 부연 설명을 요구하는 걸 알았지만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가볼 일 없는 세계라는 건, 그런 의미였다. 굳이 들을 필요도 없는 것들.
민형이 볼 안에서 굴리던 레몬 사탕을 와작 씹었다. 경도 낮은 설탕 덩어리가 민형의 압력에 힘없이 부서졌다. 민형이 입안에서 바스락거리는 파편들을 질겅질겅 씹다 플라스틱 막대를 툭 뱉어냈다. 민형이 자리에서 일어서 그새 먼지가 들러붙은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민형이 길게 내뿜은 숨이 허공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코끝에 맴도는 시큼한 레몬향에 민형이 킁, 약하게 코를 먹었다. 손가락의 마디로 코끝을 두어 번 문질렀다. 괜히 신발 뒷축으로 인준의 정원과 달리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퍽퍽 쩍었다. 다 닳아 없어진 신발 밑창 너머에서 아스팔트 위로 올라온 잔 기포들이 민형의 발꿈치를 이리저리 찔렀다.
그 고통을 신호탄 삼아 민형은 제 일터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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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도 무사히. 월요일이 오는 건 싫지만 계속 주말인 것도 싫은 상태.
요즘 줄곧 쓰는 글만 보면 내가 날 건드리는 사람들은 죄다 가만 안 있으려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요것도 오해하지 않게 미리 얘기하면, 전 오히려. 정말 오히려. 불필요한 사람들이랑 엮이는 걸 극도로 싫어합니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신 보지 말자' 주의.
복수 같은 에너지 소비도 극도로 싫어하고, 뒤끝 생기는 것도 찝찝하고. 처음엔 좋았다가 더러워진 인연이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식으로, '그때는 진심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마음이 변한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는 편이고요.
근데 몇 번이나 주의를 줬는데도 내 인생 자체를 뒤흔들려는 사람들을 못 두고보는 거다. 내가 왜?! 와이? 그리고 복수할 필요도 없이 내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무너뜨릴 수 있는데?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참아? 어후, 피곤��.
욕하는 건 너�� 자유야. 그걸 내가 왜 막겠니? 근데 욕하려면 소설 쓰지 말고 있는 사실만 가지고 너희끼리 까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조용히 쑥덕대라.
이것도 힘 자랑하는 거 아니고요. 허세도 아니고요. 진심으로 조용히 존재감 없이 살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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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의 근황 세장 요약
1. 저따구로 엎어졌는데도 예쁜 거 같다고 사진 찍는 김도형
2. 덕지덕지 마구 더러워진 김도형
3. 생각해 보니 뭐 같아 화가 난 김도형
그리곤, 다 카포.
너무 날것의 사진이긴 하지만...나의 혼란한 작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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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가능합니다.
형사록 시즌2 7화 8화 ott 사이트 <
넷플릭스 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는법 알려줬어요.
Cayden의 아버지이자 소송의 증인인 Conlan Armour는 지난 5년 동안 Cayden을 돌보기 위해 Medicaid에서 비용을 지불한 플로리다 주 Plantation에 있는 시설인 Kidz Korner에서 아들을 옮기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와 재판 증언에 따르면 Cayden이 처음 장애인이 되었을 때 병원 직원은 가족의 유일한 선택은 그를 시설 보호에 배치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rmor는 거의 매일 Cayden을 방문했으며 일부 방문이 끝날 때 Cayden은 울었습니다. Cayden은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는 Kidz Korner에 들어왔지만 시설에 있는 동안 폐렴으로 입원한 후 오늘은 인공 호흡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39세의 Armour가 지금은 약혼자인 36세의 Dorothy Newton을 만났을 때 그녀는 문제를 조사했고 가족이 Cayden을 집으로 데려오고 Medicaid 자금 지원 홈 케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옵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Armor는 부부가 Cayden을 집으로 데려가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했지만 Kidz Korner 직원은 집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Armor는 또한 Kidz Korner로부터 Cayden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교육을 완료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시설 직원이 교육에 나타나지 않거나 일정을 변경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판결에서 판사는 시설이 이러한 장벽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머는 인터뷰에서 "그들은 당신이 아이를 집에 형사록 시즌2 7화 8화 ott 넷플릭스 데려오는 것을 거의 단념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Kidz Korner는 반복되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Conlan은 그를 내려다 보면서 Cayden을 느슨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Cayden은 휠체어를 타고 있습니다. Conlan Armor는 소송에서 증인이 되기 전까지는 간호 시설에서 마침내 그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그의 아들 Cayden Armor가 집에 가도록 승인했다고 말했습니다. (시드니 월시/워싱턴 포스트) Armor는 그가 소송에서 증인이 되기 전까지는 요양 시설이 마침내 그에게 교육을 제공하고 Cayden이 집에 가도록 승인했다고 말했습니다. 6월에 Cayden은 아버지 Newton과 18개월 된 여동생 Devi와 함께 플로리다 주 미라마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머는 집에 돌아온 후 더 활동적이 되었고 미소를 지으며 더 많은 말을 하려 형사록 시즌2 7화 8화 토렌트 7회 8회 E07 E08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번 판결이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Cayden Armor는 플로리다 양로원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장애가 있는 9세 아이가 종종 자신의 방에 홀로 남겨져 더러워진 기저귀를 차고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유아기에 익사할 뻔한 후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앓은 Cayden은 가족과 분리되어 주에서 제공하는 재택 치료를 받기보다 시설에 수용된 플로리다의 많은 어린이 중 한 명입니다. 이제 연방 판사는 플로리다가 복잡한 의학적 필요가 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있는 아동을 불법적으로 분리하고 다른 장애 아동을 불필요한 시설에 수용할 위험에 처하게 했다고 판결했습니다. 금요일 판결을 내린 판사는 민간 간호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들이 가정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메디케이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주가 미국 장애인법을 위반했다고 말했습니다.
법원 기록과 The Washington Post와의 인터뷰에서 장애 아동의 부모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홈 케어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종종 자녀를 양로원에 보내야 한다고 느끼는 망가진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일단 제도화되면 아이들은 방치되었습니다. 감염으로 자주 입원; 그들의 가족은 The Post에 더러워진 기저귀를 몇 시간 동안 울고 우울하게 남겨 두었습니다.
Cayden은 빨간색 셔츠를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의 뒤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짓고 있다. 아버지가 얼굴을 향해 손을 뻗고 있다. 유아기에 거의 익사할 뻔한 후 여러 가지 합병증을 앓고 있는 Cayden 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Armour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재택 치료를 받는 대신 시설에 수용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Conlan Armor는 5년 동안 아들을 시설에서 내보내려고 노력했고 마침내 Cayden을 집으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시드니 월시/워싱턴 포스트) 한 쌍의 손에 두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한 사진은 미소를 지으며 Cayden을 아기로 안고 있는 Conlan의 젊은 버전을 보여줍니다. 다른 사진은 침대에 배를 깔고 누워있는 아기의 케이든을 보여줍니다. Conlan Armor는 7월 17일 플로리다 Pembroke Pines에서 아들 Cayden Armour의 아기 사진을 보여줍니다. (Sydney Walsh/for The Washington Post) 판사의 판결에 따르면 어떤 아이들은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것 외에는 할 일 없이 혼자 남겨지거나 아기 침대에 갇혀 있었습니다. 자녀를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던 부모들은 그들이 돌보고 있는 각 자녀에 대해 국가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요양원에 좌절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판결에서 미국 지방법원 판사 Donald M. Middlebrooks는 자녀와 부모가 직면한 어려움을 "가슴이 쓰라리다"고 말하면서 "집에서 자녀를 돌보고자 하는 모든 가족은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라고 썼습니다. 장애 아동은 일반적으로 가정이나 기관에서 제공될 수 있는 Medicaid 서비스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주정부는 누가 자격이 있고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가정 건강 관리 비용은 시설 치료보다 저렴할 수 있지만 플로리다는 가정 및 지역 사회 기반 서비스에 대한 자금을 줄이면서 요양 시설 서비스에 대한 자금을 늘린 것으로 법원 문서에 나와 있습니다. "비극은 플로리다 주에 이러한 가족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전용 리소스가 형���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Middlebrooks는 썼습니다. 가족은 큰 건물 앞에 앉아 있습니다. Conlan은 Cayden의 손을 잡고 그와 Cayden이 모두 보고 있는 가족 위의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Cayden은 의료 장비로 가득 찬 휠체어에 묶여 있고 양쪽 다리에 버팀대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Dorothy는 무릎에 아기 Devi를 안고 있습니다. Cayden Armour(9세)는 현재 그의 아버지 Conlan Armour(39세)와 그의 약혼자 Dorothy Newton(36세) 및 그들의 딸 Devi Armour(1세)와 함께 7월 17일 플로리다주 Pembroke Pines에 있습니다. (Sydney Walsh/for The 워싱턴 포스트) Cayden의 작은 손가락을 잡고 있는 Conlan의 사진이 책에 있습니다. 사진 옆에는 “우리 가족의 첫 도전. 믿음이 승리할 것입니다. Cayden은 태어날 때부터 전투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괜찮을 것입니다 Cayden. 엄마와 아빠는 매일 밤 널 위해 기도할 거야. 우리 꼬맹이 파이터.'” Conlan Armor는 이 사진에서 그의 아들 Cayden Armour의 손가락을 들고 있습니다.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Conlan Armor는 사진과 함께 메모를 썼습니다. (시드니 월시/워싱턴 포스트) 2013년 법무부가 제기한 소송으로 촉발된 이 판결은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이러한 메디케이드 서비스가 필요한 전국의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장애 아동 및 그 가족과 함께.
플로리다는 전문가들이 장애 아동이 가정 환경에서 지원을 받기보다 불필요하게 제도화되고 형사록 시즌2 7화 8화 보러가기 있다고 말하는 전국의 많은 주 중 하나일 뿐입니다. 최근 부서는 알래스카, 메인, 네바다를 포함한 다른 주들도 이런 식으로 ADA를 위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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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지쳤다. 사랑이란 건 지겹도록 지겹고. 아주 별 거 아닌 것들에 잔뜩 오염되어 더러워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둡다. 새로움을 잃었고, 진심은 영원히 묻었다. 다만 한때 마음을 뒤흔들고 일상을 꿰뚫던 감각들을 날세우려 수시로 문장으로, 침묵으로, 더 깊은 어둠으로 들어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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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뼈 룬 받으려고 굳이 타로카드 찾아서 피 내는 다우드도 웃긴데 속물적이고... 일단 목표 하나 생기면 그걸 끝까지 파는 걸 좋아하는 인간일 것 같음 그게 일하다가 갑자기 꽂힌 더러워진 무기 청소 및 책 색깔별 정리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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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문학동네
드디어 나도 읽었다. 프랑켄슈타인. 읽기 전과 읽으면서, 읽고 난 후의 느낌이 다 달랐던 책.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왜 이렇게나 유명한 건지 궁금했고, 읽으면서는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까지 책이 재미있을 수가 있나 싶어서 놀랐고, 다 읽고 나서는 메리 셸리가 열아홉 살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는 점에서 놀랐다. (심지어 데뷔작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나는 놀라움을 느끼는 걸 넘어서 일종의 경의의 감정까지 들었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말할 거리가 넘쳐흐른다. 책을 다 읽고 책에 대해서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나는 이 책이 더 궁금해졌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모든 독자가 이 과정을 거치게 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나사가 머리에 박힌 괴물의 모습은 영화에서 각색돼서 묘사된 것일 뿐 책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실제로 책을 읽다 보면 초록 괴물의 모습보다 더 짐승에 가까운 그러니깐 흉측한 인간의 모습과 더 가깝게 묘사된다. 이미지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아마 우리는 우리 세대가 멸종하고 잊힐 때까지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을 초록 괴물에 나사가 박힌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이 끔찍한 살인 괴물이 선량하고 똑똑한 인간에 의해서 창조되었다는 걸 부정하고 싶었던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였을 뿐, 새로운 존재 앞에서 인간은 이토록이나 나약하고 겁쟁이다.
한번 더러워진 양심은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고 살아가는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이 책의 제목이 프랑켄슈타인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건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책을 읽어본 독자는 알 것이다. 진짜 괴물이 누구인지.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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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활동 기간이 지남에 따라 느껴지는 건 채용 시장의 한계따위가 아닌 발가벗겨진 내 민낯이었다.
'내일 하지 뭐'라는 날들이 하루 이틀 더해져 결국 접수 마감 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입사지원서가 두 곳이 됐다. 서류를 쓰기 위해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 그리고 합격 후 직장인이 된 허황된 상상은 다 엎어져 놔뒹굴고 나는 그 더러워진 바닥을 다시 닦아 내고 있다.
병신같이 마감 기한 조차 지키지 못하는 건 무슨 심상인지
나날이 줄어가는 통장 잔액을 보며 깨닫는 건 없는건지 내가 나에게 되묻고 싶다. 그러면서도 친구에게 경쟁심과 질투를 꾹 눌러 담으면서도 자존심은 지키고 싶어 아무말도 하지 않는 거지같은 모습.
어쨌든 다시 털고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내가 했던 짓들을 보면 사실 희망이나 강점 따위는 발견하고 싶지 않고, 찾아봐도 없을 것 같다.
원래 내가 거지같은 건지. 여기와서 거지 같아진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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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영화 <스물 Twenty, Húsz (2018)>
망자의 여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만나는 지난 날의 진실과 과오들.
안개 낀 눈 밭을 맨 발로 걷는 한 늙은 남자의 걸음과 스치는 과거 씬 들이 혼재되어 보여질 때 3초 정도 고민한다. '헝가리 버젼의 <신과 함께>'인가? 망자가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 놓은 다리를 맨발로 건너는 그 순간에 신비한 눈동자를 지닌 어린 소녀가 나타난다. <나니아 연대기>에 등장해도 낯설지 않을 만큼 설 숲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어울리게 요정같이 등장해 남자에게 말을 건다. '맨발이네요?', '신발을 잃어버렸어.', '거짓말', '돌아가요!'
어디로 돌아가라는 걸까? 맨발(Bare foot)과 신발이 상징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발이 더러워졌어요.', '벗으렴.'
내 또래의 취준생들이 매일 '이력서' 쓰고 있다. 履歷書 (밟을 리, 지날 력, 글 서). 지난 날 밟아 온 길을 보여주는 글이라는 의미다. 발자취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사용한다. 우리는 生의 시간을 종종 이렇게 발걸음에 비유하곤 하는데, 헝가리 영화 <스물 Twenty, Húsz (2018)>는 이러한 메타포 (Metaphor)를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카메라가 시종일관 더러워진 구두를 신은 발과 맨 발을 비추며 보여준다. 신발이 지난 날 걸어온 인생이라면 얼룩은 Sin(죄)이다. 남자의 꿈 속 장면으로 등장하는 젊은 날의 장난같은 섹스와 임신한 여자를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던 일이 파노라마 처럼 스쳐 지나간다. 꿈 속에서 남자는 만삭인 그녀의 배를 쇠막대기로 마구 친다. 꿈이 깨자 남자는 두려움에 그 곳에서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자 늙은 여자가 말을 건다. '맨 발인데? (그러고 어딜가?)' 남자는 신발이 없어서 죽음의 강을 건널 수 없다.
Abortion. 옛 시대의 낙태에 대하여. . . 히스토리 속에 감추어졌던 자기고백적 허스토리
남자가 도망치고, 홀로 남겨졌던 여자의 자기 고백적 이야기. 여자는 그가 모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직하게 읊조린다. 배가 자꾸 불러오자 양잿물을 마시고, 끔찍한 양의 식초를 들이켜고, 어떤 여자는 화약을 먹으라고 했다. 산파는 바늘로 여자의 배를 찔렀다. 이야기를 마친 노파가 그에게 소리친다.
'어서 나를 찍어! 뭘 주저하는 거니?' 청년의 모습을 한 '나'가 셔터를 누르자 마침내 남자는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도 죽음의 땅도 아닌 그 중간 어느 세계(연옥)에서 지난 날의 죄를 마주하고 '신발'을 찾아 죽음의 강을 건넌다. 아니, 정확히는 '신발(sin, 죄, 진실)'을 찾고, 그 신발을 품에 안은 그녀를 뒤에 그림자처럼 데리고 어린 소녀를 따라 그 강을 건넌다.
메세지와 상징이 강한 영화는 기록으로서의 영화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작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상은 '당신들 영화가 받았어야 한다며' 겸손히 스포트라이트를 돌린 영화 <불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극장에서 봤을 때 옛 유럽세계에서 여성들을 낙태하던 방식이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을 보고 눈을 감았던 적이 있었다. 물론 다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같은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태어난 나의 내면이 그 고통스러운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시뮬레이션 하는 데 1/10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문학 시간에 글로 배운 여성문학과 영화로 보는 역사는 시신경에 파고드는 자극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요즘은 낙태를 하네 마네, 개인의 자유와 신념을 놓고, 법 폐지 문제로 싸우는데... 그 시절에는 목숨이 달린 문제 였다. 잘 몰랐다. 그래서 이렇게 현대에 와서라도 편집되어 재현되는 '그 이야기들이' 오감으로 듣고 보는 역사의 한 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아니면 우리는 그 시절 허스토리를 알 수 없다. 혹자는 '영화는 오락물인데 왜 여가시간에 마저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봐야하나'하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소리다. 팝콘 먹으면서 볼 영화는 아니니까. 하지만... 마지막 컷, 그 눈동자를 마주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나이든 어느 여자가 한 많은 눈으로 앞을 응시하면서 20을 세자, 죽음의 강을 지키는 정령같은 소녀가 손을 그녀의 입에 댄다. 그러자 그녀가 조용히 눈을 감으며 숨을 거둔다. Húsz 호운스. 소녀가 속삭이듯이, 마지막으로 (그녀를 대신해) 20 을 말한다. 눈 감고 20을 세고 있어봐! 하고 도망갔던 남자를 기다리던 젊은 날, 그녀의 시간이 그제서야 멈춘다. 우리는 이런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침묵속에 묻혀있던 허스토리를 마주하고, 들어야 한다.이런 영화들도 세상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억하기 위한 기록으로서.
남자의 죄의식의 구현인가? vs 침묵속에 감춰진 한중록인가?
방금 전까지 그룹콜을 하며 친구 두명과 이 영화의 해석에 대한 열띈 토론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흘렀더라. 이미 전화하기 전에도 둘이서 한 시간을 토론중이었다더라. 확실히 이런 류의 영화를 놓고, 남성과 여성의 시선과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영화 속 여러 장치들을 해석해 내려고 머리를 쥐어짜느라 한 번 보면 스크롤로 두 번, 세 번, 네 번 보게되는 영화다. 한 번 보시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시도해 보시길! 원한다면 그 해석을 <독자와의 대화>나 <독자의 질문> 형식으로 메일링 하셔도 좋습니다. (당분간은 영화 리뷰 ���럼을 꾸준히 써서 업로드할 예정이니 여러 씨네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P.S. 조만간 영어로도 올리겠습니다. 오늘 몰아서 쓰려고 했는데 너무 긴 하루였네요...:) 다들 설 연휴 잘 보내세요~!
February 10, 2021 (1:00am)
양혜린 Hyerin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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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으로 가는 자기관리 방법 10가지 1. 최고의 셀프케어(self care)를 한다. 가장 손쉬운 것은 철저하게 자신을 돌보는 것이다. 지쳐 있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보살펴줄 수 없다. 먼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셀프케어의 본보기가 되자. . 2. 매일을 즐기는 습관 리스트를 만든다. 이것이 '최고의 셀프케어'에 도움이 된다. 음악을 듣거나 일기를 쓰는 등 즐거운 습관 리스트를 만들어 매일 실행하자. 3. 쓰지 않는 물건을 처분한다. 물건이 넘쳐 어질러져 있으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알수 없게 된다. 버리거나 재활용을 하거나 기부를 해서, 쓰지 않는 물건은 최대한 처분하자. . 4. 하고 싶지 않은 약속은 하지 않는다. 받아들인 순간 진절머리가 날 것 같은 약속은 기회를 봐서 그만두고, 그 시간을 무언가 보람 있는 일에 사용하자. 5. 인생에서 얻고 싶은 것을 명확히 한다. 이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 얻고 싶은 것이 물건(집,자동차등)이라면 그것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안락함,명성 등)을 생각해본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개인코치를 고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6. 정리 정돈을 한다. 쓰지 않는 물건을 처분하면 정리 정돈이 훨씬 간단해진다. 매번 물건을 찾지 않아도 되며,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자신에게 맞는 정리 방법을 궁리해보자. 방법을 알수 없다면 프로의 손을 빌리자. 7. 욕구를 채운다. 의식주라는 보편적인 욕구는 물론이고 존경, 안심, 명성 등과 같은 개인적인 욕구도 있다.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자! 8. 참지 않는다. 먼저 참고 있는 것 (더러워진 차,삐걱거리는 문 등) 25가지 항목의 리스트를 작성한다. 그런 다음에 그중에서 가장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을 10가지 선택해서 곧장 해치우자. 9. 성공을 축하한다.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자신을 칭찬하거나 포상하는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성공을 축하하자. 10. 자주 웃는다. 웃으면 기분이 밝아지고 건강에 좋으며 희망이 솟아난다. 이것만 있으면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리스트를 작성해두고 필요할 때 사용하자. -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지혜 - . . #명언 #시 #행복 #사랑 #친구 #힐링 #좋은글 #지혜 #자기개발 #자기계발 #건강 #세상의좋은글 #동기부여 ♥ 좋은글을 주변 분들께 나누어 보세요. 안부와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고 쉬운 방법입니다 ♥ http://bit.ly/2LSMiwI https://www.instagram.com/p/B3w3ZRilFJM/?igshid=74ya531rfp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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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앞에서 아내의 주인님인 네토리 돔의 명령으로 무릎 꿇고 아내의 더러워진 팬티의 분비물을 무릎을 꿇고 핥는 당신, 수치스럽기보단 미친 듯 흥분되는 그 와중에도 쿠퍼액은 계속 질질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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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주제
첫 문장: 다음 문제입니다.
마지막 문장: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빅브라더'를 다른 단어로 대체 가능)
[다음 문제입니다.] "..뭐라고?" "예?" "방금 무슨 문제라고... 아니, 아니다." "참호에 너무 오래 있었던게 아님까? 산책이라도 하고 오지 그래요." 오렌은 낄낄거리는 콘스탄틴의 뒷통수를 후려쳤다. 악! 오렌은 그의 입을 막고 습관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밖에서 나는 총과 폭탄 소리는 그들의 소리를 가리기 충분했다. 콘스탄틴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 정도로 총 맞을거면 진작에 맞았을검다. 대장은 너무 소심해서 탈이지." "그 소심함때문에 살아있는 사람이 누군데, 콘스탄틴." 콘스탄틴의 눈길이 순간적으로 오렌의 복부로 향했다. 수류탄의 파편이 깊게 박힌 복부에 피로 젖은 천이 감겨있었다. 콘스탄틴의 얼굴에 죄책감이 스쳤다. 오렌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한 척 했다. 그들의 주변은 시체가 가득했는데, 며칠 전만 해도 오렌의 부대원이던 사람들이었다. 오렌은 다친 이후 몇 번이고 콘스탄틴에게 혼자 도망가라고 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큰 소리에 오렌은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멀리서 폭탄이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오렌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어쩐지 이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라도 들었던 것 같았다. 오렌은 힘겹게 허리를 들며 말했다. "콘스탄틴, 어서. 도망치는 시늉이라도 해봐." 하지만 콘스탄틴은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던것처럼, 어두운 참호에는 오렌 뿐이었다. "콘스탄틴..?" 그리고 폭탄이 떨어졌다. [다음 문제입니다. 콘스탄틴은..] 마차가 빠르게 달리며 물을 튀겼다. 콘스탄틴이 피하려 했을땐, 이미 치마 밑단이 흙탕물로 잔뜩 물들어있었다. 콘스탄틴은 멀어지는 마차를 향해 잔뜩 짜증을 냈다. 오렌은 안절부절하며 콘스탄틴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좋게 하려 노력했다. 제 아가씨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으니, 잔뜩 경을 치게 될 지도 모른다. "새로 산 옷이었는데, 정말.." "아-아가씨, 제가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깨끗하게 빨아둘게요." 오렌은 빠른 걸음으로 차도와 콘스탄틴 사이에 섰다. 어차하면 몸으로라도 막으려 한 것이다. 콘스탄틴은 오렌을 빤히 내려다보고는, 인도 안쪽으로 오렌을 살짝 밀어냈다. 오렌은 놀라 콘스탄틴을 올려다보았다. 콘스탄틴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됐어, 어차피 더러워진 옷인데. 네 예쁜 옷까지 망칠 필요는 없지." 얼굴이 붉게 물든채, 오렌은 반대쪽을 보며 진정하려 노력했다. 아가씨는 친절한 사람이니까. 나한테만 특별한게 아냐. 스스로의 생각에 상처받으며 오렌은 슬쩍 콘스탄틴을 훔쳐보았다. 아는 사람과 마주쳤는지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오렌은 문득, 저런 표정을 보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옷 정도는 더러워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오렌은 콘스탄틴보다 앞서 모퉁이를 돌았다. 바로 앞에 사람이 서 있자 오렌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그 사람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고, 왼 손에 녹슨 칼을 들고 있었다. 그는 풀린 눈을 하고 콘스탄틴을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오렌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와 콘스탄틴 사이에 끼어들었다. 배에서 섬뜩한 통증이 느껴졌다. 콘스탄틴, 콘스탄틴.. 눈 앞이 흐릿해지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앞의 사람이 칼을 떨어트리고 도망가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콘스탄틴은 안전할 것이란 생각이 스쳤다. 그것이면 됐다고 생각하지만, 문득 그의 표정이 보고싶었다. 놀랐을까? 울었을까? 나를 기억해줄까? 오렌은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다. 뒤는 텅 비어있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렌의 기침소리가 크게 울렸다. 마지막 소원이 너무 주제넘은 것이었을까? 오렌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채 죽을것이다. 칼에 찔린 배가 지끈거렸다. 오렌은 혼자였다. [다음 문제입니다.] 레이저가 오렌의 팔을 스쳤다. 날 생포할 이유가 없어졌나본데, 오렌은 스친 팔을 잡으며 헐떡거렸다. "콘스탄틴, 좀 괜찮아?" "76.9% 손상. 62시간 안에 부품을 교체하지 않을 시, 메인 프로그램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그래, 걱정 마. 좋은 부품을 찾아줄게." "저보다 오렌의 상태가 더 좋지 않습니다. 출혈량이 높은데다 감염 가능성이.." "괜찮아, 괜찮아. 이동하자." 오렌과 콘스탄틴은 서로를 부축하며 격납고 아래 하수구로 내려갔다. 우주 전함의 증기가 코 끝을 달궜다. 통로는 화성 생물체 뽀삐-21이 들끓고 있었다. 날 잡을 시간에 기지 소독이나 할 것이지, 오렌이 생각했다. 콘스탄틴의 부서진 파츠에서 누전되는 전기에 뽀삐들이 도망쳤다. "콘스탄틴." "네." "날 사랑한다고 말해봐." "오렌, 사랑합니다." "..." 하지만 오렌은 그것이 프로그래밍에 의한 말인지, 감정을 가지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오렌은 입을 달싹���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닥에 깔린 폐수에선 고약한 냄새가 났고,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오렌의 턱을 따라 땀이 흘러내렸다. 오렌이 힘들어 하는 것을 본 콘스탄틴이 입을 열었다. "제 부품이 온전했더라면 당신을 업을 수 있었을텐데요." 오렌은 키득거렸다. 이럴 때면 콘스탄틴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렌이 입을 여는 순간, 앞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콘스탄틴은 오렌을 감싸고 엎드렸다. 연기가 걷히고, 오렌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하수구 앞 쪽이 완전히 막혀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군인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오렌은 콘스탄틴을 내려다보았다. 등과 두 다리가 완전히 박살나있었다. 콘스탄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렌. 자폭 기능으로 막힌 벽을 뚫어볼게요. 물러나있어요." "뭐?! 아니, 절대 그럴 수 없어. 난 이미 사살 명령이 떨어진거같지만, 너까지 부수진 않을거야. 그러니까-" "제 첫 번째 목적은 당신의 생존입니다. 명령이라 해도 듣지 않을거에요." 오렌의 속에서 무언가 울컥 끓어올랐다. 콘스탄틴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그토록 바라던 순간이었음에도 기쁘지 않았다. 뒤에서 발걸음소리가 크게 들렸지만 오렌은 신경쓰지 않았다. 제 죽음 따위가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저 콘스탄틴에게 한 마디, 그 말만 듣는다면.. 군인들이 총을 난사했다. 오렌은 콘스탄틴과 함께 부서진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언제 맞았는지 복부에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오렌, 지금이라도 나를 저들에게 던져요." "닥쳐." 오렌이 후두둑 눈물을 쏟았다. 저도 이 일이 얼마나 의미없는 짓인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단 말이야. 철컥, 오렌의 머리 뒤로 총이 겨눠졌다. "콘스탄틴, 날 사랑한다고 말해." "사랑합니다, 오렌." "그 기계 내려놔." "아니, 날- 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해."
"내려놔!" 탕, 오렌의 어께에서 피가 튀었다. 눈물 때문에 콘스탄틴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오렌은 실패했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라고!!!" 타앙. 콘스탄틴이 사라졌다. 군인도, 하수구도, 아무것도. 오렌은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공허뿐이었다. 오렌조차 실재하지 않았다. "콘스탄틴..." 오렌은 콘스탄틴을 위해 죽었다. 콘스탄틴의 목숨이 달려 있었고, 오렌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렌은 즉사했다. 물론 콘스탄틴을 위해 죽은 것은 단 한 순간도 후회되지 않았다. 오렌은 그저 공허 속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콘스탄틴 역시 나를 사랑했을까? 콘스탄틴은 나 대신 죽어줬을까? 내가 대신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지만 아무리 다양한 상황을 생각해봐도, 콘스탄틴이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때문에 죽는 모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오렌은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문제입니다.] 어쩔 수 없었다. 먼저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오렌은 다시 눈을 감았다. 콘스탄틴이 제 자식이라면 어떨까? 이번엔 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거야. 아니면 처음 만나는 것부터 시작���보자. 조금 더 상상하기 쉬울테니까. [콘스탄틴은 오렌을 사랑했을까?] 그는 콘스탄틴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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