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예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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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venus – Whatcha Talk Ab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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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의 갈무리- ’먹고 일하고 출장가고 쉬고 놀고‘
솔직히 부산에서 전포나 서면쪽은 노포 아니고서는
커피든 음식이든 어딜가도 만족해본 적이 없어서
가긴 가지만 그닥 선호하지 않고 기대를 하진않아
이틀전 오랜만에 찾은 곳에 감복해 후기를 남겨본다
수도권엔 이런데가 많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카페는
두군데 정도인데 수영 헤이채즈랑 장전동 호밀
진짜 호밀은 늦어도 11시쯤엔 가서 갓구운 하드한 빵에
특히나 고소한 맛이 일품인 커피 따숩게 한잔 마셔주면
정말 그 행복감이 일주일은 간다.
특히 난 올리브빵을 좋아하는데 이틀 전 갔을땐
새로나온 단호박빵이 진짜 맛있었다.
아 그 무화과 , 오렌지 초코스틱 그것도 꼭 먹어야해
잠봉뵈르도 진심 심플이즈더베스트..너무 맛있다.
아무튼 5년째 가고 있는 카페인데 여사장님 제빵기술이
정말 좋으시다. 그냥 가는 거 자체가 행복이다.
빵냄새가 예술이야.
아 이사가면 더 멀어지는데
남천동에도 분점 내주시면 너무 행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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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D】 ' I'm ill (난 예술이야) ' - HELLOVENUS (헬로비너스) 【V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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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VENUS 헬로비너스 - 난 예술이야(I'm ill) M/V(Performance Ver.) July 21, 2015 at 10:02PM via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OtSS4xcdX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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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www.amazon.de/Musik-kommt-aus-Stille-Gespr%C3%A4che/dp/3894879491 )
[1부 마르틴 마이어와 나눈 대화들]
근본적인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고. 자네에게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나? 본질적으로 음악이란 뭐지? -처음엔 고요가 있어. 음악은 고요에서 나와. 여러 가지 소리와 구조로 빚어진 참으로 다양한 진행의 기적이 일어나지. 그런 다음 다시 고요가 찾아와. 결국 고요가 음악의 전제조건인 거야. 하지만 그런 걸 넘어서 나한테 음악은 훨씬 더 많은 걸 의미해. 음악은 내 인생이니까. 음악은 그 어떤 경우에도 단순히 물질적 관점으로 축소될 수 없어. 비록 이런 시도가 되풀이되었고 계속될지라도 말이야. 음악은 아주 본질적으로 정신의 문제, 정신적인 것의 문제야. (p11)
자네가 음악을 만들어낼 때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어떤 모색들이 (연주에) 효력을 발휘하나? -난 아주 주의 깊게 경청하려 해. 이는 내가 울려내는 음들을 제3의 귀로 추적하는 문제야. 이 제3의 귀가 잘 계발되었을수록 더 나은 음악가이기도 하지. 나는 이 '재능'을 이미 대학시절에 계발했고, 스승들은 내적으로 귀 기울이도록 지도해주셨어. 따라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동시에 큰 소리로 노래하는 건 위험해, 혹은 몹시 해로워. 그렇게 해도 잘 들을 수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착각이야. 피아노가 노래해야 돼, 피아니스트가 아니라. (p12)
음악은 그 어떤 예술보다도 시간 속에서 형체가 빚어지는 예술이야, 나타남과 사라짐 사이에 펼쳐지지. 아울러 자주 높은 수준의 추상성을 보여주면서 모든 예술 가운데 가장 비대상적인 예술이기도 하고. 그건 해석연주가에게도 어마어마한 도전인데. -음악은 게다가ᅳ문학과 달리 대부분 다성적이기까지 해, 그레고리안 성가라든가 그와 유사한 모노디를 논외로 하면, 그리고 특히 피아노를 보면, 음악은 거의 다성적이지. 여러 성부가 연주되거든. 흡사 연극에서 사람들이 각자의 대사를 동시에 말하고 연기하듯 말일세. 무대에서 그런 일은 사실상 없지. 그렇기 때문에 음악에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돼. 바흐 음악에서는 어차피 그렇고. 이를테면 4성 푸가가 그렇지. 여기서 모든 성부는 대등하거든. (p13)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상당히 다른 양상일 테지. -맞아. 음악은 그 점에서 꽤나 외톨이야. 거꾸로 하이든과 모차르트 그리고 베토벤의 시대 또한 대단찮은 재능의 작곡가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돼. 하지만 구조원리에 관해 아울러 왜 내가 이 시대를 그토록 사랑하는가에 대한 설명 삼아-한마디 하겠네. 빈 고전주의는 소나타 형식으로 된 하나의 '언어'야.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 거기에다가 으뜸음, 딸림음, 버금딸림음, 가온음 등등. 다르게 말하면, 우린 때마다 우리가 있는 위치가 어딘지 안다는거지. 오늘날 동시대의 음악과 관련해서는 진공상태에 있는 느낌을 받곤 해. (p14)
모든 건 대비와 적절한 정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소름이 예외상황인걸 테니. -음악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진행되는 드라마야. 그런 만큼 감정성이라는 문제에서도 복합적인 무늬의 진행굴곡을 보여주지. 예를 들어 한 친구가 와서 내게 말하는 거야,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25번 변주곡을 연주해주게. 나는 그에게 말해. "자네가 원한다면. 하지만 자네는 뭔가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어. 물론 25번 변주곡은 절대적으로 경이로운 무엇이긴 해. 하지만 그걸 맥락에서 분리해도 될까?" 결정적인 건, 이 변주가 놓인 위치야. 이 변주는 연주회에서 한 시간 안팎의 '앞선 진행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다르게 말하면 이래. 그런 정점은 선행하는 전제들을 발판으로 하는 거야. 이 정점은 차곡차곡 구축되어야 하는 거고. 1초 내에 '소환'될 수 없어. 모름지기 그러지도 않아야 할 테고.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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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들과 음악사적 발전에 관해 한 번 더 이야기해볼까. 정신의 객관화였던 바흐로부터 자기자신의 표현 방식 및 등장 방식의 주관화인 베토벤까지. 즉 이런 뜻이기도 하겠네, 종교적이며 신학적으로 기초된 질서 및 신 안에서의 좌표로부터 인간이 일군 체험의 공간으로, 이건 자네에게 뭘 의미하나? -바흐에서 내게 가장 심금을 울리는 건 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경건성이야. 그 어떤 자아중심성과도 동떨어진 완벽한 자아부재 말일세. 바흐는 신앙에 뿌리내리고 있는 사람이지. 신과 자기 교구를 위해 작곡했어. 이는 동시에 그의 의무이기도 했고, 바흐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며 자신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는 후세라든가 길이 남을 역사적 명성을 염두에 두고 작곡하지 않았어. 그는 단지 자기 의무를 행한 거야. 2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새 칸타타를 마련해놓는 일을 한 거지. 그런 헌신의 자세는 피렌체의 르네상스를 혹은 중세의 거대한 성당들을 떠오르게 만들어. 누가 이들 성당의 건축가들을 아나? 이들 성당의 석공들과 조각가들을? 하이든과 모차르트만 해도, 베토벤은 더더군다나, 자기 자신 및 자기 소명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양상이 달랐어. 이들에서는 주관성을 드러내보이는 변화가 시작되지. 이 변화는 물론 여러 가지 획기적인 사회적 변화와도 궤를 함께하는 거고. (p31)
젊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무엇보다도 바흐에 천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쇼팽이나, 슈만, 리스트와 함께하는 '질풍노도' 시기를 상당히 의식적으로 건너뛰었다. 이는 이례적인 편이었지 않나? -난 언제나 바흐가 해방감을 준다고 느꼈어. 그의 엄격함이란 건 곳곳에서 착시로 밝혀져. 바흐는 지시가 극히 드물다는 사실-템포 지시는 거의 없고, 다이내믹 관련 명령도, 프레이징도 아티큘레이션도 없어-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 아주 흥미로워. 바흐 안에서 그리고 바흐를 통하여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거든! 내 스승 조지 말콤은 이 자유에 날개를 달아주었지. 과장해서 말 해본다면 이래, 바흐의 푸가는 열 가지 다양한 템포로 연주할 수 있고 그 결과물은 대부분 감명 깊어. 자네가 쇼팽을 언급하니 말인데, 쇼팽이 허용하는 자유는 훨씬 덜해. 쇼팽이 낭만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 무슨 착각인가! 사소하기 그지없는 과장만으로도 촌스러움으로 추락해버릴 수 있다고. 바흐를 연주할 때면 난 물 만난 고기가 된 기분이었어. 지금도 그래. (p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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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음이 울리기도 전에 이미 난 연주회를 하고 있는 거야. 음악은 고요로부터, 평온으로부터 나와야 해.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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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자네에게 어떤 의미를 갖나?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야. 현재 나는 베토벤을 모차르트보다 더 앞에 세워. 베토벤이 실존적인 것에 더 닿아 있기 때문이지. 그가 쓴 위대한 작품들에서 나는 바흐에서와 유사하게 형이상학적인 것, 우주적인 것을 느껴. 후기 소나타들, <디아벨리 변주곡>, 현악 사중주들, <장엄 미사>, 이들 작품에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광활한 지평이 열려. (p43)
안드라스 쉬프, 마르틴 마이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과 그 해석] (p44)
-나아가, 얕은 수로 청중을 기만하려 드는 것 또한 그릇된 일일 걸세. 오히려 청중은 대개 아주 예민하고 교양 있어. 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연주 기획은) 모든 청중이 아는 얼마 안 되는 레퍼토리를 기준 삼아선 안 돼. 훌륭한 청자를 기준으로 해야지.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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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는 베토벤보다 훨씬 투명하게 작곡해. 다른 한편, 슈베르트 소리의 형상은 매우 예민해 상처받기 쉬운 모습을 하고 있어. 그 면에서 모차르트 소리의 형상과 닮았고, 기묘한 건, 내가 생각하기엔 베토벤의 작품들은 망가뜨리기가 훨씬 어렵다는 거야. 형식이 작품을 어차피 결합해주니까. 반면 슈베르트의 작품들은 와해되거나 긴장을 잃어버릴 수 있어.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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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과제를 위해 피아니스트에게는 어떤 자질이 요구되지? -피아니스트는 다른 사람들뿐 아니라 본인의 소리도 아주 잘 들을 수 있어야 해. 소리에 대한 강한 감각을 소유하거나 발달시켜야만 하고, 필요할 경우엔 현악기나 관악기와도 아니 심지어 인간의 음성과도 잘 어우러질 수 있는 피아노 소리를 찾아야 해. 그리고 가곡, 가곡 작업 또한 성악가와 피아니스트 사이의 동등한 파트너십에 기반하고 있지. 여기서도 우리는 실내악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네. 예전의 관행들을 기억해보자고. 당시에 피아니스트는 자주 피아노 뚜껑을 닫고 혹은 반쯤만 열어놓고 연주했어. “너무 큰 소리는 금물!"이 슬로건이었지. 그러나 자기 직업을 정말로 이해하는 피아니스트에게라면, 활짝 열어놓은 피아노는―예술적 형상화에 있어 결정적인-다양하고 풍성한 소리와 색조를 그에게 제공해줄 거야. 하지만 그가 예민하게 '레기스터'를 쓸 줄 모른다면, 음향과 터치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그러면 그는 피아노 뚜껑이 설령 완전히 덮인 채여도 심히 시끄럽고 우악스러운 소리를 낼 거야. (p6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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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원칙 혹은 그렇게 부를 만한 건 뭐가 있을까? -아휴, 그건 어떤 사람이 피아노에 앉아 있는 자세에서부터 벌써 시작해.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자세를 가졌어. 들어보기도 전에 벌써 보여. 그래서는 절대로 좋은 음이 나올 수가 없어. 모든 게 지나치게 뻣뻣해. 또는 어떤 사람이 호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재빨리 알아차릴 수 있지. 그런데 그건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거거든. 나는 학생들에게 연주에 앞서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해. 학생들은 쭈뼛쭈뼛하지. 그래도 괜찮아. 하지만 그들은 느끼는 거야. 호흡을 하는 것, 프레이징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구나 하고. 그러면 그게 피아노로 옮겨져 기술적인 것과 기계적인 사안들은 절대로 주안점이 아니야. 비록 등한히 할 것은 아니라 해도.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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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누가 봐도 분명 가지런하고 정돈된 사람이지. -그래, 그러길 바라. 그건 내면의 안뜰과 관계되거든. 하지만 연주여행 도중에 내가 전혀 혹은 거의 개입할 수 없는 '주변'에서 아주 많은 일이 벌어져. 쇼-효과 이야기를 해볼까. 오늘날 ��든 건 멀티미디어를 통해 시각화되어야만 하지. 결과는 아우라의 상실이야. 예전엔 무대로 난 문이 열리고 루빈슈타인이나 리흐테르가 홀 안으로 걸어 들어올 때면 공간에 아우라가 감돌았어. 무슨 수를 쓴 것도 아닌데 세상이 달라지곤 했어. 한번 봐봐, 예전에 오이스트라흐가, 메뉴인이나 하이페츠가 바이올린을 턱 아래 갖다 대고 그저 '거기' 서서는 즉시 환상적으로 연주하던 모습을. 그건 스네이크 차밍을 방불케 하는 오늘날의 관행들과는 뭔가 다른 거였다고. 또는 지휘자들을 볼까. 맙소사! 나의 위대한 모범인 오토 클렘페러는 아무것도 안 '했어'. 그의 위엄과 존재감은 표피적인 것들이 필요치 않은 왕과도 같았지. 오늘날 많은 젊은 지휘자들이 처음 몇 마디부터 벌써 천장에 닿을 지경으로 풀쩍 뛰어. 왜지?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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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에서 '계급의 적'이었던 거네. -그래. 그래서 노스탤지어는 위험한 면이 없지 않아. 반대로 위에서 말한 헝가리인의 엉성함은 위트의 문화를 허락했지. 좀 과장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군. 우리는 이 시기를 위트 덕분에 살아낼 수 있었다고. 헝가리인은 아주 유머 넘치는 민족이기도 하거든. 항상 멋진 위트를 선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어. 하지만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정치적 위트를 이야기하는지 엄청 주의해야 했지. (p9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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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말콤, 오토 클램페러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EMI 녹음 (p140)
도흐나니가 당시에도 여전히 대단한 영웅이었다고?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카도사의 말은 겸손의 기록인 거야... 도흐나니는 굉장했고, 음악원의 전설이었으니까. 카도사는 항상 커다란 전체를 가르쳤어. 세부사항으로 들어가지 않았지. 학생들은 한 시간 수업에 여러 작품을 준비해 와야 했어. 이 수업은 정확히 한 시간이었어, 1분도 길거나 짧지 않았네. 이렇게 집중도 대단한 수업에서 모든 것을 다루었지. 카도사는 말수가 적었지만, 그가 하는 말은 아주 미적 품위가 있고, 명석했어. 예를 들어서 쇼팽을 연주할 때는 “이 부분을 그렇게 감상적으로 연주하지 마라”라고 말했지. 또는 "좀 더 명확하게, 좀 더 아티큘레이션 선명��게" 또는 "좀 더 레가토로" 베토벤 소나타들에서는 연결부와 요약부가 중요했어. "기계적으로 하지 말게나.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지 말게. 표현력 있게, 다감하게 연주하게.” 이와 병행해서 쿠르탁과의 교습도 이루어졌어. 1969년에 쿠르탁이 조교를 그만두자, 페렌츠 라도스가 후임이 되었어. 우리는 쿠르탁과는 실내악을, 라도스와는 피아노를 공부했네. 라도스는 쿠르탁만큼이나 요구 수준이 높은 철저한 사람이었고, 거기에다 피아노의 테크닉 측면에도 아주 중점을 두었어. 그는 피아노에 앉은 내 자세를 신랄하게 비판했네. 맞는 지적이기도 했고, 자세는 소리, 음정, 그리고 다른 것들에 있어 결정적이야. 제대로 앉는 것은 중요해. 많은 젊은 피아니스트가 잘못된 자세로 앉고, 너무 많이 움직여. 훌륭한 피아노 연주 또는 바이올린 연주는 미적으로도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해. 호로비츠를 보게! 루빈스타인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도. 리흐테르는 예외에 속하는 편이었지. 글렌 굴드는 나쁜 예시야. 굴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이따금 큰 소리로 노래하는 나쁜 습관이 있었고 지금도 있어. 그러느라 본래의 것은 아예 못 들어! 통제력을 놓치는 거라고. (p143-144)
150
안드라스 쉬프 차이콥스키 콩쿠르 리스트 연습곡 <경쾌함> (p166)
170
쿠르탁 <한국 칸타타> (p172)
(182)
버르토크의 아들 페테르가 쓴 <나의 아버지> (p190)
안드라스 쉬프 모차르트 소나타 데카 녹음 (p193)
안드라스 쉬프, 조지 말콤이 지휘하는 잉글리쉬 챔버 오케스트라와 런던에서 녹음한 세 개의 바흐 협주곡 (p195)
안드라스 쉬프, 안탈 도라티 슈만 협주곡 쇼팽 협주곡 녹음 (p197)
안드라스 쉬프, 게오르그 솔티 도흐나니 <동요를 주제로 한 변주곡> 녹음 (p197)
(199)
안드라스 쉬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ECM 녹음 (p206)
어느덧 자네도 가르치는 일을 해. 이 일을 오랫동안 거부하더니 시작하게 된 동기는 뭔가? -열아홉 살의 나이로 가르치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네. 정확히 말해 대학에서 실내악을 가르치는 거였지. 하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 이제 난 알아, 내가 스스로 터득한 것을 전해주고자 한다는 걸. 거기에다 오늘날 음악하는 방식과 양상에 대한 내 불만도 있고. 그래서 나누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고, 이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걸세. 참고로 이것은 매너에서 이미 시작돼. 에티켓 말이야! 매너 있게 행동하는 법을 아는가 모르는 가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야.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그것을 전 세계에게 말하기까지 해. 유감스럽게도 피아노 콩쿠르 산업은 스포츠와 같은 방식을 부추기고 있어. 그것은 음악과는 별 상관이 없다네. (212)
자네는 종교적 인간인가? -답하기 어렵군. 어쨌든 무신론자는 아니야. 불가지론자에 가까워. 신을 믿는다고 주장할 순 없어. 나의 종교, 나의 종교성을 체험하는 건 예술에서야. 예술은 나에게 무언가 더 높은 것에 대한, 정신에 대한, 영혼에 대한 증거야. 죽음 후의 삶? 누가 알겠나? 그건 배제할 수도 없고, 그 반대 역시 증명할 수도 없어. 세상에 있는 모든 생각이 나중에 융해되어서 무로 화한다고는 믿지 못하겠군. 모든 음, 모든 생각에는 계속되는 삶이 깃들어 있어. 아마 우주에서 아닐지. 하지만 한 가지는 꼭 강조하고자 해. 나는 모든 형태의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 원죄론은 터무니없어. 물론 누구나 살면서 오류를 범하고 죄를 지었다고 느끼기도 해, 오류를 시정하려 시도��지도 모르고. 하지만 벌에 대한 공포? 경악스러워. 고해와 그 뒤에 따르는 사함은 이를 너무 간단히 처리해. 용서할 수는 있지. 하지만 어떤 일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며 절대로 잊히지 않아. (p213)
214
[2부 에세이들]
235 238
리처드 타루스킨의 탁월한 에세이 <진정성과 고음악> (p239)
템포, 다이내믹, 프레이징, 아우트라인 및 꾸밈음과 같은 해석의 여러 관점에 대해 자필악보는 극히 미미한 정보를 제공할 뿐이다. 당시에는 모든 디테일을 표기로 확정해두는 걸 필수적이라고 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좋은 취향을 가진 음악가들은 무슨 말이 없이도 양식과 성격을 이해했기에 연주하는 이들은 기보의 틈이 나오면 자신의 음악적 이해와 취향에 따라 채워넣었다. 바흐 자신은 그 어떤 작품도 같은 방식으로 두 번을 연주한 적이 없다고 한다. 가령 <반음계적 환상곡>과 <프랑스 모음곡>의 무수한 버전이 이를 증거한다. 이 영광스럽던 시대는 오늘날 우리에게서 한참 멀어졌고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그 시대의 관행과 조건을 복제할 처지에 있지 않으며 그러려고 시도할 수도 없다. 아니 그러려고 시도해서도 안 된다. 필멸의 존재인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오로지 우리가 가진 본능과 상상력에 대한 믿음뿐이다. 그래도 어쨌거나 이는, 위협적으로 검지를 들어올리며 "너 그건 하면 안돼!" 하고 경고하는 음악적 경찰국가의 법 앞에 굽히는 것보다는 더 유용하고 생산적으로 보인다. 피아니스트는 저주스런 평결의 노예로 추락해버려서는 안 되며 음악의 매체이자 재창조자로 기능해야 마땅하다, 말하자면 제2의 작곡가로서. 바흐의 텍스트는 신성불가침이지만 한편으론 우리로 하여금 선택하고 모종의 결정을 스스로 내릴 자유를 부여한다. 체르니&Co.의 판본들은 우리에게 이 자유를 박탈하므로 아무 쓸모가 없다. 이 판본들은 편찬자의 개인적 해석을 전달하며, 이는 다만 상상 가능한 모든 해석 중 하나를 재현할 뿐이다. 인쇄된 상상력은 다른 연주자들에게 터무니없이 아무 생각 없는 로봇의 옷을 억지로 입히며, 이 로봇 곁에서 고유의 상상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p246-247)
248-9
이상적 해석은 개별 음만이 아니라, 개개의 음악적 '음절' 또는 '단어'뿐 아니라, 전체 '문장들'과 단락들까지 완벽한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것이다. (p250)
252 256-7
내게 바흐의 음악은 그저 흑백인 게 아니라 오색찬란히 영롱하게 빛난다. 내 상상 속에서 저마다의 조성은 하나의 다른 색상에 대응된다. 각기 24개의 프렐류드와 푸가가 들어 있는 <평균율 클라비어> 두 권은 그런 공상에 적합하다. 상상해보자. 처음에는 C장조로 눈처럼 새하얀 무구함 ('하얀' 건반들만). 마지막에는 6단조, 죽음의 조성. 첫 권의 b단조 푸가를 b단조 미사의 키리에와 비교해 보자. 그건 칠흑처럼 새카만 음악이다. 이들 양극단 사이에 중간색조들이 자리한다. 맨 먼저 노랑, 오렌지 그리고 황갈색(C단조에서 d단조까지), 그러고 나면 파랑(E플랫장조부터 e단조까지), 녹색(F장조부터 g단조까지), 핑크와 빨강(A플랫장조부터 a단조까지), 두 개의 갈색(B플랫장조에서 b플랫단조까지) 그리고 회색(B장조). 두말할 나위 없이 이는 매우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해석을 우습고 유치하다고 볼 것이다. 하지만 음악이 의미하는 바가 일련의 음표와 음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나의 이 작은 공상이라는 죄를 용서하실 것이다. (p258)
바흐는 백과사전적 포부를 가진 작곡가였다. 종교음악과 세속음악의 어떤 장르를 갖고 작업하건 그는 경지를 이루었다. 이 경지에 필적한다는 것-혹은 심지어 뛰어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으리라. 삶의 여건이 달랐더라면, 그리고 그가 드레스덴의 궁정 작곡가가 되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또한 두말의 나위 없이 가장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가 되었을 것이다. 1731년 이 백과전서적 인물은 <클라비어 연습곡Clavier-Übung>이라는 웅대한 시도에 착수했다. 상이한 여러 양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건반악기를 위해 쓰인 모음곡집이다. 제1부 (1731)에는 6개의 파르티타가 들어 있다. 바로크 춤곡 모음집의 예술을 지극한 완성의 경지로 제시한다. 2부(1735)에서는 <이탈리아 협주곡>이 <프랑스 서곡> b단조 옆에 놓여 있다(한 번도 독일 바깥에 나가 본 바 없던 작곡가치곤 놀라운 일이다). 3부는 오르간곡들의 모음으로 프렐류드와 E플랫장조 푸가, 네 개의 듀엣곡, 여러 곡의 코랄전주곡이 들어 있다. 마지막인 4부에서 바흐는 찬란한 정점으로 마치고자 했다. 그리하여 변주곡들은 그에게 하나의 진정한 도전이 되었다. 어쩌면 그는 이 형식에 대해 모종의 선입견을 갖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유명한 동시대인 중 다수가 이 형식에서 대단한 사례를 일구었고 그 대가로 많은 인정을 얻었다. 바흐는 쉽게 얻는 성공에 관심 둔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통상 외면적인 효과를 노려온 변주곡들을 그때까지 없던 예술적 정신적-내적 경지로 이끌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던 것이다. (p261)
바흐는 연주자에게 각각의 단계를 반복할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연주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완벽한 대칭도 비율도 파괴된 모양새가 될 것이다. 위대한 음악이 너무 긴 법이란 없다. 기껏해야 인내심이 충분히 오래 못 가는 청자가 있을 뿐. (p262-263)
271 272
종지의 여운이 귓전에 울리는 동안 우리는 잠시 조용히 멈춰있다. 그리고 여기서 바흐는 아리아를 처음 그대로 반복한다. 그렇지만 이제 이 아리아를 지난 70분의 사건들로 인해 다른 귀로 듣게 된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왔다. 원은 완성되었고, 처음과 시작은 합쳐졌다. 귀향의 순간 깊은 감사를 느낀다. 포르켈의 이야기에서 카이저링크 백작이 골드베르크에게 자신의 변주곡 중 하나를 연주해달라고 할 때, 우리는 그가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어느 누구도 감히 이 작품에서 부분과 조각을 분리해 연주하려들지 않으리라. 그건 신성모독으로 간주되리라. 바흐가 이 작품을 하나의 기념비적 전체로서 작곡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가 꿈을 아무리 대담하게 꿀 때가 있었더라도 그는 이 작품이 온전하게 전곡 연주되리라고 상상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150년 동안 이들 변주곡은 사실상 잊힌 처지였다. 음악가들은 이 작품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연주하지 않았으며, 청중 앞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에테아 호프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에서 카펠마이스터 크라이슬러가 이 작품을 연주한다. 속물적 청자들로선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그들은 도망가 버리거나 깊은 잠에 빠진다. 오늘날 우리는 반대편 극단을 체험하고 있다. 작품은 굉장하게 대중적이 되었고 자주 연주된다. 우리가 우리의 '여행'에서 보았듯, 바흐는 이 곡을 2단 손건반의 쳄발로용으로 썼다. 이 곡을 현대의 피아노로 연주하는 건 몹쓸 죄라는 견해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게 두자. 그들에게 그 반대를 설득시키는 건, 채식주의자를 육식하게 만들려는 것과 똑같이 부질없는 짓이다. 많은 사람들은 피아노 소리를 쳄발로 소리보다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75분짜리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라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솔직한 심정으로, 당신이라면 그렇게 오래 쳄발로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겠는가? 이 길이는 모든 반복이 존중되어야만 함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이렇게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구조에서 방법은 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반복을 다 연주하든가 하나도 안 하든가. 첫 번째 해결책을 선호할 수 있다. 음악의 복잡성을 감안하면, 청중은 이를 통하여 더 나은 이해를 위한 제2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그리고 해석자 입장에서는 더 잘할 기회를). 물론 반복은 절대로 기계적이지 않아야 할 것이다. 다양성은 장식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상이한 아티큘레이션, 프레이징, 다이내믹을 주도면밀히 사용함으로써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반복은 연주하고 어떤 반복은 생략하는 것, 그건 물론 납득할 수 없다. 피아니스트들은 이 작품을 음표 하나 안 바꾸고 연주할 수 있다. 다만 '교통상황'의 문제를, 즉 건반이 2단이 아니다 보니 빈번히 발생하는 양손충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따름이다. (p273-274)
어떤 음악가든 이 황홀한 작품을 기꺼이 연주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해가 가는 일 아닌가? 이 작품의 깊은 인간성과 영성, 낙관주의, 지성의 힘은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에게 바로 ���닿게 말을 걸어온다. 이것은 우리가 거듭거듭 되풀이해볼 수 있는 몇 안되는 여행 가운데 하나다. (p275)
위대한 작품들은 이 작품의 해석자들보다 훨씬 더 위대하다. 우리는 이 작품들의 신비를 발견하고자, 이 작품들의 둘도 없는 전언을 전달하고자 평생을 노력한다. 이 상상의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는 일은 결코 없을지라도 수많은 공연을 통하여 수년 전에만 해도 알지 못했던 경험과 지식을 얻는다. 구조를, 연관 맥락을 갈수록 잘 이해하게 되며, 더 광대한 지평을 보게 된다. 이 말은 2003년 바젤의 연주회 실황을 담은 내 두 번째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에 적용되며, 노이마르크트의 히스토리셔 라이트슈타델 -황홀한 음향을 지닌 아주 아름답고 작은 홀에서 가진 연주회에서 녹음된 파르티타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p276)
하이든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E플랫장조 Hob.XVI/52 (p281)
(282)
하이든 유머의 가장 중요한 특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볼 수 있다. 기대와 의외성의, 관습적인 것과 비관습적인 것의, 대칭과 비대칭의 맞세움이라고. 여기에 더하여 특이한 음향효과, 정적상태 및 시간과의 유희 그리고 대담한 다이내믹적 대비도 있다. 유머는 물론 하이든의 위대한 예술에 있어 단지 일부일 뿐이다. 어떤 장르에서나, 어떤 분야에서나 그는 흠 없이 걸출한 바를 이루었다. 그의 수공 기술자적 기량은 유례가 없다. 그는 단 하나의 조그마한 원자를 갖고서 악장 전체를, 심지어 여러 악장짜리 형상을 짓는다. 그의 취향은 기품 있고, 그의 비율 감각은 틀림없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서는 기이한 극적 위력으로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교회음악, 후기 미사곡들 및 <구원자의 마지막 일곱 말씀>은 대가스럽고 뭉클하며 깊은 감동을 준다. 현악 사중주, 교향곡, 피아노 소나타에서는 신세계의 발견자다. 우리는 그를 더 잘 이해해야 하며 그와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주 위대한 작곡가들 가운데 그는 예나 지금이나 가장 과소평가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p283)
287 288
E플랫장조 오중주 KV452에서 모차르트는 피아노와 관악기의 어우러짐이 빚는 마법음향을 찾아냈다. 열광한 그는 1784년 4월 10일에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쓴다. "저 자신은 이것을 여태 살면서 제가 작곡한 것 중 최고라 여깁니다." 1784년의 피아노 협주곡 여섯 작품(KV449, 450, 451, 453,456,459)은 천재적인 관악기 파트 음향을 통하여 색다른 차원을 획득한다. 2년 뒤 1786년, <피가로>에서 모차르트는 몇 걸음 더 나아간다. (p292)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는 음악의 구약,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들은 신약이라는 한스 폰 뷜로의 유명한 메타포는 핵심을 관통한다. 그 말은 전적으로 맞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48개의 프렐류드와 푸가는 이들의 완결성과 엄정함 때문에 우리 안에 성서적 연상을 깨운다. 그리고 베토벤 소나타들은 어떤가? 내게 이 곡들은 우람한 대���맥처럼 우뚝 권좌에 솟아 있다, 장대한 히말라야 산맥과도 같이. 이 산들은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산, 막강한 산, 크지 않은 산 할 것 없이 하나의 논리적 통일체, 하나의 포괄적 전체를 이룬다. 한계를 모르는 모험적 등반가에게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란 없으리라. 이 도전은 우리 피아니스트들이 베토벤 소나타를 익히고 무대에서 전곡 연주를 하고자 할 때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도전과 유사하다. 이때 요체는 스포츠적 기량 수행이 전혀 아니다. 순전히 물리적인 난관과 강인한 지구력은 의심의 여지없이 과소평가할 일은 아님에도 말이다. 요체는 지적이고 감정적이고 무엇보다도 정신적인 과제다. (p295)
열다섯 번의 전곡 연주회(이 연주는 곧 계속된다)를 가졌던 사람으로서 이 장대한 음악여정의 체험을 소략하게나마 정리해볼까 한다. 베토벤의 발달을 개괄하게 해주는 두 개의 작품 그룹이 있다. 현악 사중주와 피아노 소나타다. 두 가닥의 붉은 실을 따라가듯 이 작품들을 따라가면 그의 작곡의 전기와 본질 전체가 정연하게 추적된다. Op.2와 Op.111 소나타들 사이에서, 내지는 Op.18과 Op.135 사중주들 사이에서, 우리는 유례없는 발달사를 인식하게 되면서 외경심을 느낀다. 진정한 진화를. 베토벤은 신동이 아니었다. 조숙한 천재가 아니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에 비해 길었던 생애에서 그는 새로운 작품마다 매번 미답지를 정복하기 위해 글자 그대로 힘겹게 싸워 쟁취해야만 했다.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에서 그는 그야말로 끝없는 다채로움으로 우리를 아연하게 한다. 이보다 더 다종하고 다양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다. 반면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는 놀라우리만치 균질한 느낌을 준다. 베토벤식의 다양한 성격변종은 해석 문제들을 정복하기가 어려운 여러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각각의 소나타는 고유의 얼굴을, 혼동할 수 없는 고유의 성격을 지녔다. 물론 공통된 속성과 면모도 있다. 하지만 차이들이 훨씬 중요하다. 각각의 소나타에서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하고 특수한 것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연주공연의 본래적 과제다. 연주공연이 유의미한 것이기 위해서 말이다. (p296)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애니 피셔, 루돌프 제르킨 (p297-298)
25년 동안 (1978~2003) 나는 주로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작품에 몰두했다. 그것은 베토벤을 위한 준비에 아주 좋은 배움이었다. 4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소나타들에 대한 나의 체계적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품의 대략 절반은 이미 내 레퍼토리를 구성하고 있었고 여타의 절반은 이제 차근차근 새로 작업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것이었다. 매년 나는 혼자서 조용히 소나타 두세 곡을 새로 익혔다. 마지막으로 <발트슈타인 소나타> 그리고 Op.110과 Op.111을 익혔다. 10년이 지난 2003년이 되자 준비를 마친 상태가 되었다. 나는 소나타 전곡을 철저히 습득했고 무대에서 연주했다. '원숙하다 할 만한' 나이에 들어선 자로서 나는, 이제는 전곡 사이클 공연을 계획할 때가 왔다고 느꼈다. 이 장대한 프로젝트는 ���양한 문제의 면밀한 해결을,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요한다. 어떤 방식으로 나는 이 걸작들을 형상화할 것인가, 대관절 왜 나는 이런 시도에 뛰어드는가? 아주 많은 피아니스트가 이 소나타들을 연주했고 녹음했다. 이렇게 많은 마당에 세상은 또 하나를 더 필요로 하는가? 남다른, 본질적인 기여를 할 능력이 내게 있는가? 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질문들이다. 정직하고 자기비판적으로 답해야 할 질문들이다. 이 음악은 한없이 위대하며 초시간적이고 영원히 현재적이어서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허락한다. 아니 심지어 요구하고 영감을 준다. 신학자들이 성서에 대해 끝도 없이 논쟁하듯, 베토벤 소나타들은 거듭하여 새로운 독해방식과 해석단초로 가는 문을 열어준다. 답은 그러므로 분명하다, "그렇다." 베토벤을 빌려 말하면, "그래야만 한다!" (p299-300)
우선은 물론 전곡 사이클 공연이 허락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내 구상대로 프로젝트를 실현하도록 나를 초대해준 많은 연주회 주최자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고 싶다. 이 '여행'의 경험은, 덜 알려진 소나타들이 이들의 유명한 형제자매들 그늘에 부당하게 가려져 있다는 걸 보여준다. 청중들의 '오랜' 사랑을 받아 온 이 곡들은 흥미롭게도, 덜 알려진 곡들과 바로 연이어져 연주될 때면 한층 더 감명 깊게 작용한다. 청중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바라건대 청중은 저렴한 여흥 때문에 연주회에 앉아 있는 게 아니요, 배움의 과정과 공동의 체험을 위한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상적 청중은―포커스는 그들을 향한 것이다-전체 사이클 투어를 해석자와 동행하는 이들이다. 우연히 인근에 머물던 참이어서 연주회 시작 5분 전에 재빨리 입장권을 구입한 사람은 베토벤을 듣고 반추하기에 이상적인 영혼의 상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으리라. 베토벤은 청중에게 해석자에게와 별 차이 없이 많은 걸 요구한다. (p301)
많은 베토벤 소나타들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들과 유사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슈베르트는 자기보다 연배가 많은 이 거장을 추장했다. 아류스럽게 모방하려 들지는 않으면서. 베토벤은 그에게 모범이었고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소나타의 절반을 뵈젠도르퍼로 다른 절반은 스타인웨이로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어떤 작품을 어떤 피아노로 연주한 건지는 비밀로 하겠다. (p303-305)
"전통은 날림공사다."(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대들 극장인이 그대들의 전통이라 부르는 것, 그것은 그대들의 안일함이며 날림공사다")라고 구스타프 말러는 말했다. 전통이 비록 중요하고 값진 정보들을 전승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 인용은 진실의 알맹이를 담고 있다. 음악가는, 그림을 복원하는 사람과 유사하게, 묵은 때와 굳어버린 먼지 부스러기들을 긁어내야만 한다. 다시 말해 나쁜 관습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어떤 작품을 그 창조자의 의도에 최대한 근접하게끔 표현하기 위해서 말이다. 산의 정상에 도달한 등반가는 아무리 기진맥진한 상태여도 기쁨과 감사로 충만해진다. 그는 어차피 무진장한 산덩이 전체를 오를 수는 없다. 그는 단지 계속해서 그리고 더 높이 오를 뿐이다. 더 높이 도달할수록 그는 더욱더 광활하게, 점점 더 멀리 있는 지평선을 내다보게 된다. 이 체험이 있어서 인생은 살아갈 만한 것이다. (p306)
308 310-1
베토벤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알고 있었나요? -네, 그건 상당히 확실해요. 바흐의 음악이 당시의 빈에 거의 안 알려져 있었고 거의 연주되지 않았음에도요. 베토벤은-모차르트도 그랬듯-고트프리트 판 슈비텐 남작의 친밀한 교유범위에 속했어요. 이 남작이 소장한 장서들은 유명한데 여기엔 바흐와 헨델의 자필악보들과 간행된 여러 판본이 다수 보관되어 있었거든요. 바흐가 '주제와 변주'라는 형식으로 쓴 곡은 몇 안 돼요. 그중에 제일 중요한 게 <30개 변주가 있는 아리아>지요. 베토벤은 언제나 이 장르의 대가였어요. 무엇보다도 요제프 하이든에게서 배웠기 때문에요. 소나타에서의 변주 악장들 그리고 다양한 변주 사이클은 그의 즉흥기교에 대한 빛나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디아벨리 변주곡>으로 그는 획기적 진보를 이루었어요. 그에게 모범이 되어준 건 바흐였고, 그에게 도전이 되어준 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어요. 디아벨리의 왈츠와 바흐의 아리아 사이는 광년의 거리처럼 멀지요. 그러나 그들의 구조는 동일해요. 16마디씩으로 된 두 부분이 있고, 두 부분 모두 반복이 있고 4분의 3박자입니다. 바흐의 작품은 3이라는 숫자와 많은 관련이 있어요. 30개 변주가 있고, 세 번째마다 한 번씩 카논이 나오지요. 그렇게 하여 우리는 각각 3곡씩을 가진 10개의 단락을 갖게 됩니다. (p313)
316
베토벤의 자필(흔적)은 그의 작품만큼이나 다양하다. 어떤 것들은 내적인 안정과 조화를 발산하며 깨끗하고 수정한 데가 거의 없다. 어떤 것들은 격정적이고, 드라마틱하며 격렬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친 흔적을 담고 있다. 그의 필체는 극도로 표현력있고 살아 있다. J. S. 바흐를 생각하게 된다. 선들의 물결침과 굽이침은 이 선들이 어떤 식으로 해석되어야만 할지를 우리에게 암시해준다(언제나 굽이치는 물결이지, 기하학적인 선인 법은 없다). 이 사중주의 자필악보 판본은 모든 베토벤 전문가와 숭배자에게 진정한 보물창고다. 그가 얼마나 힘차고 결연하게 펜을 놀리는지. 그의 악센트 기호들이 얼마나 역동적이며, 크레센도-데크레센도 기호들은 얼마나 격정적인지, 길다란 이음줄들은 얼마나 길고 동경에 차 있는지. 베토벤은 스타카토를 점으로 적는 법이 결코 없이 언제나 에너제틱한 줄로 적는다는 것은 다음에서 또렷이 알아볼 수 있다. (p318)
음악비평계는 지극히 몇 안 되는 녹음들 갖고 엄청나게 열광해 있었다. 역사적으로 '올바르게' 보이는 건 뭐든 무조건적으로 상찬하고 환호했다. 이전에 딜레탕티즘과 야바위는 경멸의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미덕으로 변해 있었다. (p321)
(323)
훌륭한 악보판본은 중요하다. 자필악보는 없어선 안 된다. 자필악보야말로 원전출처이며, 이 출처를 통해서만 우리는 작품의 창조자를 정말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여기 이 팩시밀리본이 바로 그런 경우다. (p326)
332
하지만 멘델스존의 이름이 언급될 때면 왜 그토록 많은 거절과 거부, 냉대 반응을 확인하게 되는 걸까? 여기서 문제는 정확히 어디에 있는 건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예술은 근심과 고통 가득한 경험을 바탕으로만 태어날 수 있다는 그릇된 가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대한 예시는 충분히 있다. 모차르트는 이른 나이에 비극적인 상황에서 죽었고, 매독으로 고통 받던 슈베르트는 그보다도 더 일찍 죽음을 맞았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었고, 슈만은 우울증에 그리고 마침내는 정신착란에 빠졌으며, 버르토크는 미국에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아사했다. 그런 운명들은 우리 '순진한 보통사람들' 사이에 공감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며 비극은 위대성의 전제조건이라고 믿게 만든다. 반면 멘델스존은 애처롭거나 딱하게 여길 수 없다. 그는 재능, 성공, 유복한 가정환경, 행운 때문에 기껏해야 시기심을 깨운다. (p336)
337-8
우리의 음악적 현재에 계시다면 당신은 별로 편안해하지 않으실 것 같군요. 연주회 방문객의 숫자는 전 세계적으로 막강하게 상승했지만, 그와 비례해 유감스럽게도 청중의 수준과 일반 교양도 손상을 입었거든요. 오늘날의 평균치 청자는 자기가 듣는 것을 거의 이해하지 못해요. 새로운 곡들에 대한 지식도 없고요. 뛰어난 공연, 평균 수준의 공연, 형편없는 공연을 구분할 줄도 모릅니다. 이 청자는 어쩌면 연주회가 있고 나서 이틀 후 지역신문에서 이른바 '전문가'의 견해를 읽고 이 견해를 자기 것으로 삼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공연비평들은 몇 안 되는 예외를 제하면 심각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요. (p341)
342-3
이 모든 작품들이 보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순진하고도 뭣 모르게 낙천적인 게 될 겁니다. 오늘까지도 당신의 작품 전체의 상당부분은 말하자면 알려지지 않은 채예요. 왜 그럴까요? 제 생각에는, 독일적인 것의 세계에, 그 언어와 포에지 Poesie와 문학에 제집처럼 익숙하지 않으면 당신의 음악은 그 음악의 사정거리 면에서 거의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런 정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당신 본인의 저술들에서 알게 됩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작가 장 파울의 작품들은 독일 바깥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고 번역도 거의 안 되었지요. 에테아 호프만은 더 유명하긴 하지만, 국제적으로 아주 인지도 높은 작가들 축에는 마찬가지로 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슈만-해석자들은 심각히 불리해요. 이건 아주 아까운 사태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작품들은 그 어떤 다른 작품들과도 비할 수 없이 특출한, 깊은 사유가 반영된 공연을 요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작품과 작곡가에 대하여 그릇된 상이 전달됩니다.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오판단이 형편없는 해석 때문이던가요! (p346-347)
이 지점에서 나는 피아니스트 버르토크��� 고찰하고 싶다. 그 어떤 피아노 연주자도-그의 이전에도 이후에도-내게 그처럼 대단하게 깊은 인상을 남기거나 영향을 미친 이는 없다. 애석하게도 나는 너무 늦게 태어나는 바람에 그의 연주를 직접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예술은 심지어 녹음 기록들에서도 숨을 멎게 한다. 다행히도 그는 녹음을 많이 남긴 편이고, 이 녹음들은 진정한 버르토크-양식을 최적으로 연구할 수 있게 해준다. 그가 피아노를 타악기처럼 다루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그리고 자주 반복된 클리셰다. 이는 맞지 않으며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그의 연주를 한 번만 귀 기울여 들어보라! 그의 리듬은 바위처럼 단단하다. 하지만 피아노를 결코 때리는 법이 없는 경이로운 타건과 짝을 이루고 있다. 어떤 순간에도 추함으로 변질되는 법이 없는 연주다. 그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서정적이게 그리고 다감하게 연주할 줄을 안다. 감상성의 낌새라고는 추호도 없이. 아주 독특하면서 특히 강조할만한 것은 그의 루바토 연주와 파를란도 연주다. 그는 음악이 말하게 둔다. 이런 의미에서 피아니스트 버르토크는 19세기의 자녀다. (p356)
359-360
쿠르탁은 설명했고, 분석했고, 노래했다. 그리고 끔찍한 에스토니아 피아노로 너무나 매혹적으로 아름답게 연주했다. 마치 이 피아노가 세상 최고의 피아노이기라도 한 듯. (p364)
Work in progress 그렇게 나는 이어지는 9년을 더 그의 제자로 있게 되는 행운을 누렸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온갖 다양한 악기편성으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작품들을 익혔다. 작업은 완결되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일종의 'work in progress'였다. 그는 엄청나게 요구 수준이 높았다. 어느 누구도 그 앞에서 브람스 G장조 소나타 Op.78의 도입부를 충분히 멋지게 연주할 수 없었다. 그는 제스처를 써가며 설명했고 이 도입부를 거듭해서 노래했다. 몇 시간이고, 때로 그가 한 음, 한 프레이즈에 만족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면 그는 너무나 행복해했다! 우리는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더 잘, 더 멋지게 연주하고자 했다. 그에게 약간의 기쁨이 되어주고자. (p366)
쿠르탁에게 음악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에게 음악은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것이었다. 삶 자체보다 더 중요했다. 그것을 위해 그가 활활 타올라야만 하는 하나의 특혜였다. 이 불을 느끼지 못하는 자는 차라리 뭔가 다른 걸 하는 게 좋겠다. 이 긴 학업의 시절 우리는, 우리의 스승이 현재의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라는 걸 사실상 몰랐다. 당시 그는 그의 작품들 중 단지 몇 개만 완성한 상태였고, 이 곡들은 간헐적으로만 무대에서 연주되었을 뿐이었다. 그 자신도 그것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었으나. 겸손한 그답다. 오늘날 쿠르탁 앞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할 경우, 그는 각각의 음이 어떤 소리가 나야 하는지에 대해 자신이 갖고 있는 분명한 상을 밝힌다. 이것은 살아 있는 작곡가들에서는 드문 경우다. 내가 훨씬 나중에 성악가 루시 쉘튼과 쿠르탁의 <피터 보르네미사의 격언>을 연주했을 때ᅳ소프라노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며 일찍이 내가 보았던 중 가장 어려운 작품 연주회가 끝난 후 그는 내게 함축적으로 말했다. “자네가 언젠가 음들의 나머지 절반도 해내게 되면, 우린 더 얘기를 나눠볼 수 있을 걸세." 나는 부지런히 이 작품을 작업했다. (p367)
368
<페렌츠 라도스의 80세 생일을 맞이하여> 그의 비범한 지성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식인으로 칭하는 건 틀린 일일 테다. 그에게서는 정신과 이성과 감정이 이상적 균형을 이루면서 그리고 완벽하게 조화로운 비율로 어우러져 있다. 정신의 인도로, 좋은 취향 덕분에, 그는 싸구려 감상성의 덫에 빠져 더듬거리는 법이 결코 없다. 피아노 연주가 볼품없이 물리적인 무리행위가 되어버리는 일은 결코 없다. 혹은 자의적 행동이 되는 법이 결코 없다. 연주하기의 의미와 목적은 해석적인 구상을 최대한 잘 실행하는 것 그리고 음악적 판타지를 소리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라도스의 판타지는 얼마나 끝 모를 왕성함이었던가! 동급의 예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문화적 교양을 바탕으로 한 손 기술의 기량은 얼마나 대단했던가! 그리고 그는 이 모든 퀄리티를 환상적으로 전달하고 전수할 줄 안다. 하지만 고집불통이라거나 김빠진 식은 아니다. 그의 유머, 그의 재치, 그의 흉내 낼 수 없는 메피스토적 웃음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교수법의 중요한 요소다. (p370)
371
알베르트 시몬 하이든 교향곡 G장조 Hob.I:88(373)
<애니 피셔> 무대 위의 그녀는 연출된 포즈를 취하는 디바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예술의 사원에서 섬기는, 제식적 희생을 거행하는 여사제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었다, 우리에게 감명을 준 것은 그녀의 수수함과 담백함이었다. 잘 고른 그녀의 드레스들은 세련된 우아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나는 그녀가 무대에 같은 드레스를 두 번 입고 나온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깃털처럼 사뿐한 발걸음으로 피아노로 가서는, 친절한 박수를 보내는 열광한 청중에게 가벼운 미소와 겸허한 인사로 진심 어린 환영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그런 다음엔 기적이 일어났으니, 우리는 변용의 증인들이 되었던 것이다. 그녀라는 해석자는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만의 영혼이 나타났다. 영혼들은 이 경이로운 여인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청중은 음악을, 말하자면 들이마셨고 사람들-이 시절 순탄치 못한 운명을 겪어내야 했던-은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해진 듯했다. 당시에 나는 피아노 연주회가 얼마나 경이로울 수 있는가를 느꼈고, 이 점에 있어 그녀의 연주회는 35년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후로 이런 마법을 대부분의 다른 피아니스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수록 더욱 씁쓸했고, 심지어는 충격이기도 했다. (p376)
베토벤의 작품들은 애니 피셔의 생애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그녀는 위대한 모범들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빚어졌고, 영감을 받았다. 특히 그녀의 스승인 에르뇌(에른스트 폰) 도흐나니로부터. 그리고 벨러 버트로크의 근원적으로 힘찬 피아노 연주로부터. 그녀의 남편은 외젠 달베르를 가장 중요한 베토벤 해석자로 보았고, 애니는 달베르를 토트의 묘사를 통해서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이상들 곁에서 그녀는 독자적인 연주 스타일을 발달시킬 수 있었고, 그녀 고유의 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맥락에서 그녀의 여성적 본질은 과소평가할 게 아닌 요인으로 작동했다. 베토벤이 지닌 표현의지는 극적이며, 그런 동시에 다감하면서도 감상적이지 않고, 서정적이다. 이런 표현의지를 지닌 프로메테우스적 인물에게, 그러니까 어쩌면 작곡가들 중에 '가장 남성적일지' 모를 이에게 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가? 애니는 천재적 본능으로 이상적인 중심 잡기에 성공했다. 필요한 경우 그녀는 악기에서 어마어마한 울림을 끌어낼 수 있었다. 누구를 강압적으로 혹은 심지어 호통치며 죽여버리겠다고 으르는 법이 결코 없는 울림이었다. 이 울림은 가장 깊숙한 내면의 힘으로부터 퍼 올린 것처럼 들렸다. 동시에 그녀에게는 커다란 감수성과 영혼 충만한 연주 능력도 있었고, 이런 연주는 베토벤의 시정을 새롭게 조명해주었다. 그녀가 Op.13 <비창>의 첫 화음들을 타건할 때면, 그 화음들은 순식간에 이미 전체 사건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우람했고, 우렁찼다. 하지만 조야한 법은 절대 없었다. 그런가하면 이 여인은 F샵장조 소나타 Op.78을 심금을 울리는 애틋함과 탄력을 담아 연주했다. 베토벤의 소리는 엄청나게 다면적이다. 작품마다, 심지어는 한 소나타의 개별 악장마다 해석자는 무수한 성격과 음색계조를 폭넓고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애니는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참으로 잘 알고 있었고, 그리하여 청자는 다음과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 바로 그거야! 저래야만 해, 저건 다르게는 연주될 수 없어.” 그녀는 이 걸작들을 생애 내내 연주했다. 하지만 커리어의 최정상에서야 비로소, 1970년대 중반에, 그녀는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두 번의 연주회로-오후에는 청년들을 위해 그리고 저녁에는 '어른들'을 위해-32곡 소나타 전곡 사이클을 공연할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다. 훙가로톤사 의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LP녹음들 또한 이 시절의 것이다. (p379-380)
애니 예술의 본질적 공통점을 찾으려 시도한다면, 이 공통점은 아마도 본능과 지성의 결합에 있지 싶다. 문헌학은 그녀에겐 생소했다. 그녀로선 자신이 어떤 악보 에디션을 갖고 연주하든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이었다. 언젠가 나는 그녀에게 레오 바이너에게서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다(바이너는 잘 알려졌듯 부다페스트에서 실내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교수였다. 그는 거의 모든 훌륭한 음악가를 가르친 바 있다). “아니." 그녀는 말했다. “도흐나니가 그걸 내게 금했지. 그가 말하길, 바이너는 너무 머리를 쥐어짜고 골몰한다는 거야." 실제로 그녀는 디테일에 사로잡힌 분석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잘고 세세한 것들에 빠져 전체를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녀의 반대자들은-유감스럽게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다 -이 시원함을 칠칠치 못함으로 보았다. 이 베크메서들은 딱할 따름이다. 더구나 그들이, 훌륭한 피아노 연주는 뭐니뭐니해도 민첩한 빠르기와 거친 박력과 정확성을 통해 돋보이는 거라는 견해를 갖고 있으니, 그들은 테크닉과 메커닉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훌륭한 테크닉을 가진 피아니스트는, 약동하는 판타지를 지녔으며 이를 연주로 옮겨놓을 수단을 소유한 사람이다. 소리 만들기, 음색의 팔레트, 타건 방식, 이들 모두는 '테크닉'의 범위에 속한다. 이런 관점에서 애니는 비범했다. 그녀 이전에 알프레드 코르토나 에드빈 피셔가 그랬듯, 피아노와 하나로 어우러져 자라나는 그녀의 모습은 켄타우로스 형상을 연상케 했다. 이 맥락에서 피아노 톤의 아름다움에 대해 한마디 할까 한다. 우리는헝가리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흉측하고 난폭하고 타악기스러운 피아노 연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반면 애니의 소리는 이런 이데올로기에 대각을 이루고 있었고, 심지어 아름다운 것 이상이었다. 그녀는 악기를 갖고 그저 노래만 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말할 줄도 알았다. 그녀의 톤은 다채로웠고, 매 곡마다, 매 작곡가마다 달랐다. 그리고 언제나 미적이었으며, 흉하거나 희화하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그녀는 릴케가 말한 의미에서 그녀 '자신의 죽음'을 실현했다. 라디오가 중계해주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 연주회를 듣던 중에 숨을 거두었다. 아름다운 죽음. (p385-386)
안드라스 쉬프, 조지 말콤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생가에 있는 작곡가의 발터-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한 녹음 (p389)
<산도르 베그>
산도르 베그 베토벤의 c단조 소나타 Op.30/2의 스케르초나 바흐의 d단조 파르티타의 지그 (p392)
그의 연주와 소통의 비밀은 무엇이었던가? 그건 배울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완벽히 자연스럽고 장식 없게 연주하고 지휘했다. 이는 어쩌면 그의 태생과 관련 있지 않을까 싶다. 베그는 트란실바니아의 콜로즈바르 출신이었는데, 이곳은 토속적 문화의 뿌리가 유독 깊고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부다페스트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독특하게 채색된 헝가리어를 한다. 언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부연하면, 베그는 음악을 말하게 만들 줄 알았다. (p396)
산도르 베그, 파블로 카잘스, 벨라 바르토크 (p397)
<루돌프 제르킨>
루돌프 제르킨의 해석으로 들은 막스 레거의 <바흐 주제에 의한 변주곡> (p399)
음악가 루돌프 제르킨을 한 단어로 특징짓는다면, 나라면 '반듯함'을 고르겠다. 거의 모든 해석자들이 그들은 작곡가의 충실한 하인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극소수만이 그들이 설파하는 바대로 한다. 제르킨은 그 소수 중의 한 사람이었다, 작품 충실성에 사로잡힌 자. 그의 장서에는 자필원고와 초판본이 가득했다. 그의 연구 정신에는 원전이 곁에 있어야만 했던 것이다. (p400)
<왜 우리는 자필악보를 필요로 하는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추념하며>
이 질문은 디지털과 인터넷의 시대인 오늘날 특히나 시의적절하다. 냉소주의자들은 경솔하게 이 질문을 끝난 얘기로 치부할지도 모른다. 자필악보란 낡은 종이일 뿐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해독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박물관과 도서관에 갈 물건이라는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가치가 없다는, 아니 심지어는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걸작들의 무수한 원전 텍스트 판본들, 최고의 음악학자들에 의하여 면밀히 작업된 에디션들이 연주자와 음악학자에게 충분히 탄탄한 바탕이 되어준다고 말하면서. 정말 그러한가? 아니면 학술적 에디션들에는 실은 뭔가가 빠져 있는 건 아닌가? 물론 회의론자들을 설득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잘해봤자 그들의 보잘것없는 옹색함을 유감스러워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들 견지를 고집하시라 하고 우리는 이 복합적인 질문에 생산적이고도 논리적으로 접근해보자. 오스트리아의 훌륭한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1881~1942)는 당시 자필원고 수집가 중 가장 중요한 한 인물이었다. 그의 유명한 컬렉션은 세계문학과 음악사의 귀중한 원고들 1000여 편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영구적으로 이정표이자 척도로 남아 있다. 더 나은 조언자는 상상키 어렵다. "자필원고의 세계는 직접 볼 수 있거나 감각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이 세계는 오로지 상상을 통해서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며, 교양을 통해야 비로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이 세계를 향하여 이해의 의지를 ��리고 외경심 품기라는 흔치 않은 재능을 바치는 이들만을 확대한다." 이 구절을 츠바이크는 1923년에 「자필원고의 세계」라는 논고에 적고 있다. 훗날의 어느 에세이 (「자필 원고의 의미와 아름다움」, 1935)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을 적어 내려간다. "그러니까 이 신비에 찬 제국에 누구나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해를 열어주는 열쇠가 그에게 쥐여져 있어야만 한다. 영혼의 위력이 그를 움직여야만 한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지상에 존재하는 힘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힘이자 가장 막강한 힘이. 다시 말해 외경심이. 자필원고를 이해하면서 사랑하기 위해서, 이것들을 경탄하기 위해서, 이것들에 의해 자극받고 충격적으로 동요되기 위해서, 우리는 맨 먼저 그 원고 속에 자기 인생의 모습을 새겨놓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야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가 시인, 음악가, 정신과 행위의 다른 영웅들을 이미 일종의 종교적 감정을 품고 느낄 때, 그러고 나서라 야만 그들 손에서 나온 글자의 자취들은 우리에게 그 의미와 아름 다움을 계시해줄 수 있다.”라고 썼다. (p402-403)
디지털화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로 환영할 일이다. 참으로 소중한 컬렉션들, 가령 (한때 프로이센 문화재단이던) 베를린 주립도서관,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라이프치히 바흐 아카이브,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본 베토벤하우스의 컬렉션은 그들의 보물을 인터넷에 제공하고 있어 전문가든 애호가든 누구나 만나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마디 보태자면, 인터넷은 경이로운 발명이지만 수단일 뿐 목표는 아니다. 탁월한 디지털 대체물이라 해도 자필 필적이나 희귀 초판본의 신비를 적절히 재현할 수 없다. 인터넷 사용은 어디까지나 실질적 필요에 의한 것으로 마법은 없는 일일 뿐이다. 우리는 <마태 수난곡>이나 <평균율 클라비어>의 자필악보를 모니터 상에서 보는 것을 자명한 일로 받아들이며, 그럴 때는 감흥도 없다. 추호의 감흥도 없다. '성스러운' 전율 같은 건 아예 말할 것도 없고. 절품들 음악에서든 문학에서든 조형예술에서든을 심원한 영혼으로 ���험한다는 건 함께 참여하며 전율에 사로잡힌다는 것을, 겸허와 외경심과 감사를 느낀다는 것을 뜻 한다. 우리의 문화적 유산, '어제의 세계'가 테크놀로지의 냉기로 얼어붙거나 멸종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p412-413)
<음악 콩쿠르>
음악적 성취의 판정은 객관적-사실적 및 주관적 - 개인적 평가 기준들로 구성된다. 이는 스포츠에서라고 다르지 않다. 객관적 요인들은 측정 가능하다. 가장 빨리 달리는 자가, 가장 높이 뛰는 자가, 가장 멀리 던지는 자가 승자다. 음악은-다행히도-스포츠가 아니다. 음악도 쉽게 측정 가능하리라. 누가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빠르게 치는가, 누가 실수 없이 끝까지 잘 마치는가. 이런 것들이 베크메서들에게 평가 기준일 테다. 힘들이지 않고 정확히 알아볼 수 있고 메모장에 빨간펜으로 표시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곡예와 무오류성은 예술에서 최고로 찬탄할 만한 덕목에는 거의 들지 않는다. 독자적 가치로서 우리의 영혼에 울림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가 하면 해석 기술의 다른 요소들, 즉 주관적 요소들을 평가하는 것은 월등히 어렵다. 여기에 속하는 것들로는 인토네이션, 소리의 퀄리티, 리듬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이미 생각들이 갈라진다. 즉 심사위원마다 이 변수들을 다르게 해석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들은 사실 통일성이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작품의 파악, 템포 선택, 곡의 분위기와 성격, 이런 개념들에서 견해들은 서로 너무나 멀리 갈라져서 일반적인 가치나 평가 기준을 운운한다는 게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공정한 절차과정을 대체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선입견과 개인적 취향이 지배적이다. 해석자와 그들의 해석을 평가한다는 것이 그 정도로 애매모호하고 주관적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콩쿠르를 개최하는가? 콩쿠르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가? 이는 정당한 질문이며, 용감한 "아니오."로 대답될 수 있다. 음악에는, 아니 예술에는 적수라는 게 없다. 음악을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에 '맞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연주회는 청중을 위한 행사다. 청중을 위해서 음악 작품이 연주된다. 피아노 리사이틀의 해석자는 주최측과의 협의하에 들려줄 작품들을 선택한다. 자신이 뭘 무대에서 연주하고 싶은지는 아마도 해석자 본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콩쿠르의 프로그램은 대체로 음악사 레퍼토리 전체를 두서없이 종횡무진한다. 참가자는 독주로, 실내악 연주로,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든 가능한 장르와 양식 면에서 자신을 선보여야만 한다. 이는 콘셉트를 이루는 아이디어로서는 멋지고 좋지만 결코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다. (p418-419)
좋은 음악가는 좋은 와인과 유사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우수해진다. 아르투르 루빈슈타인은 그의 마지막 연주회를 1976년에 가졌다. 90세에 가까운 나이였다. 미예치슬라브 호르초프스키는 99세의 고령으로 1991년에 마지막 피아노 연주회를 가졌다. 이 두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시간과 기력을 평생토록 최선으로 안배했고, 그들의 예술은 풍성한 경험을 통해 부단히 발전할 수 있었다. 루빈슈타인도 ���르초프스키도 피아노 콩쿠르 승자였던 적은 없다. 음악 경연에 맞서는 투쟁은 <돈키호테>에서 풍차에 맞서는 투쟁과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러나 이는 부질없는 시도다. 음악 경연은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니. 우리의 음악문화 안에 너무나 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한 콩쿠르에서 다음 콩쿠르로, 이 심사위원단에서 저 심사위원단으로 다니기 바쁜 큰 무리의 교육자들이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다. 더 높은 지식을 얻고자 해서가 혹은 더 나은 연주를 원해서가 아니라 거장으로부터 얻는 다음 콩쿠르를 위한 추천장이 필요해서다. 이는 음악 및 예술과는 하등의 관련도 없다. 예술과 스포츠의 획일화라는 이런 시스템을 그냥 비판만 하는 걸로는 족하지 않다. 그럴 게 아니라 젊은 인재들의 발굴과 후원을 위한 더 나은 대안들을 찾아내야 한다. 나의 생각은 국제적 포럼 같은 쪽으로 흐르는데, 여기서는 전공자와 전문가와 애호가로 구성된 초대받은 청중 앞에서 재능 있는 해석자들이 자유로이 고른 짤막한 연주프로그램으로 자신을 소개할 수 있다. 이런 플랫폼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으리라. (p423)
<독일 연극계는 어찌된 일인가?>
426-7 428
여기에 뭐 덧붙일 말은 없다. 갖은 유형의 해석자들 -연출자, 드라마투르그, 지휘자, 악기연주자ᅳ은 재창조자이다. 다시 말해 창조적 활동을 하는 창의적 작가들과 작곡가들에 봉사하여 재창조하는 예술가들인 거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옛 걸작들에 새로이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것은 내적 필연성이며 칭찬받을 만한 노력이다. 하지만 이때 해석자는 열의에 찬 나머지 도를 넘지는 말아야 한다. 그는 언제나 작품의 틀을 지키며 작품의 매개변수들을 인식하고 존중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것은 몇몇 연극인들이 주장하듯 전적으로 주관적인 과정인 게 전혀 아니다. 사무엘 베케트에게 동의할 수 있으며 그가 옳다. 저자와 텍스트는 없어서는 안 될 요소 그리고 고유하고 독특한 요소로서 연출자와 배우들보다 월등히 중요하다. (p429)
430-1
<연주회장을 찾는 이들을 위한 십계명>
공연장에서의 생생한 연주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일회적 사건이다. 동일한 연주회를 최고의 품질로 녹음한 CD조차도 그 체험을 복제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시각적 관점 그리고 공동 체험의 감정이 빠져 있는 것이다. 연주회 방문객은 모두 제각기 재창조 과정의 적극적 파트너로서 함께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예민한 연주자는 객석에 있는 청중의 집중도를 필연적으로 느끼게 되어 있다. 이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진동이 그의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 고요가 모든 음악의 알파이고 오메가이기에, 다시 말해 시작이자 끝이기에, 음악은 절대적 제스처로 명한다. 청자 또한 고요히 처신해줄 것을. (p436-437
<앙코르>
443-4
청중은 사건 현장의 수동적 일부가 아니라 매우 능동적인 일부다. 청중은 해석자에게 최고의 연주를 하도록 영감을 줄 수 있는가 하면 엄청나게 거슬릴 수도 있다. 공개 연주회들은-스튜디오 녹음과는 반대로- 일회적이며 반복 불가능하다. 음악가와 청자 사이의 활력적인 접촉을 동력으로 한다. 다른 사람들과 훌륭한 음악을 함께 나누는 것은 나의 내적인 욕구다. 이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연주되는 것을 주의깊게 수용하며 이에 예민한 감수성으로 반응하는 청자 공동체 또한 있어야 한다. 앙코르도 이런 대화의 결과다. 언급했듯-페렌치크가 옳았 다-너무 일찍 그리고 너무 많이 연주하지 않는 게 낫다. 몇몇 피아니스트는 자기 연주회의 공식 프로그램을 마치고서 다시 무대로 나와서는 곧장 이어서 앙코르 여섯 곡을 연주한다. 누가 그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무엇으로써 이런 성공을 누릴 자격을 얻은 것인가? (p444)
베토벤은 평생토록 바흐에 몰두했고 푸가 작곡의 기법과 씨름했다. 그 찬란한 예 하나가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에 나오는 '얼마간 자유로운 con alcune licenze'이라는 부제가 붙은 푸가다. 모범이 될 만한 푸가 '그 어떤 자유도 없이'senza alcune licenze'가 어떤 모습이어야만 하는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서 가장 잘 확인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앙코르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1권에 나오는 프렐류드와 푸가 b단조를 연주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소나타는 어떠한가? 벤델 크레치마르 교수는 토마스 만의 장편소설 「파우스투스 박사』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왜 베토벤이 소나타 Op.111의 아리에타 다음에 더 이상의 악장들을 작곡하지 않았는지를. 이 악장으로써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라는 장르에게 작별을 고한다. "다 이루었다. Consummatum est.” 더 이상의 악장들이나 앙코르는 여기에 맞지 않으며 완전히 불필요한 잉여다. 오직 고요만이 남는다. (p446)
<역자 후기>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의 강연이나 마스터클래스, 인터뷰 영상 등을 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는 느릿느릿, 또박또박 말한다. 거기 쓰인 영어나 독일어 모두 그의 모국어가 아니다. 그렇지만 짐작건대 그것이 이 느림의 이유는 아니다. 말의 느림은, 알찬 내용과 확신 묻어나는 톤을 볼 때, 그가 어디까지나 필요해서 고른 속도인 동시에 찬찬한 성품을 담는 그릇이 아닐까 짐작한다. 쉬프의 언어가 담긴 이 책을 읽고 우리말로 옮겨놓는 과정이 어느 순간 보니 느릿느릿 진행되고 있었다. 마치 그가 말하는 걸 듣고 받아 적기라도 하듯. 물리적으로 오래 걸렸다는 소리일 뿐 아니라 천천히 읽게 만드는 글이었음을 불현듯 알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긴 문장은 가독성도 전달력도 떨어지므로 읽기 좋은 호홉으로 끊어야 한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짧은 문장만 계속된다면 그 또한 ��기에 숨이 찬다. 어떤 문장을 즐기기도 전에 끊임없이 새로운 문장이 밀고 들어오는 듯해서 가��씩 문장을 이어 붙여 늘이고 싶어진다. 쉬프의 문장이 그랬다.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읽는 동안 미묘하게 힘이 들었다. 대신 그가 말하는 속도로 천천히 읽으면 그 문장들은 적절한 길이로 다가왔다. 담백하고도 무게감이 잘 전해졌다. 독일어 원문을 대할 때의 느낌이 번역문에서 동일하리란 법은 없다. 그런데도 독자들께서 쉬프의 음성을 상상하며 이왕이면 천천히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447)
- 안드라시 쉬프 - ' 음악은 고요로부터, 마르틴 마이어와 나눈 대화, 그리고 에세이들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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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f] 160528 U클린 콘서트 헬로비너스 (HELLOVENUS) 나라 직캠 난 예술이야 by Spi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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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VENUS 헬로비너스 - 난 예술이야 (I'm ill)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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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HELLOVENUS(헬로비너스) _ I'm ill(난 예술이야)
what a remember, on this legendary song and girls here right now, the Golden Kpop times live in our hearts far, so have a look on it, yeahhhhhhhhhhh !!!!!!!! @alainlavoie @mauriciosc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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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쉬(GirlCrush) 보미(BoMi) 직캠 - 난 예술이야 [Halloween Party] 211031 fanc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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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Ill by HELLOVENU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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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 HELLOVENUS(헬로비너스) _ I'm ill(난 예술이야) https://youtu.be/vUS_hVdZNCs [MV] HELLOVENUS(헬로비너스) _ I'm ill(난 예술이야) [공지] 1theK YouTube는 MV를 유통하는 공식 채널로, 해당 영상의 권리가 1theK로 이관됨에 따라 재업로드 되었습니다. [Notice] 1theK YouTube is an official channel that distributes music videos. This video has been uploaded again as the right of this video was transferred to 1theK. 1theK (원더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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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ejrzyj film „HELLOVENUS 헬로비너스 - 난 예술이야(I'm ill) M/V(Performance Ver.)” w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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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VENUS - I'm Ill (난 예술이야) (Club Remix) Lyrics
HELLOVENUS - 'I'm Ill (난 예술이야) (Club Remix)' Korean, Romanization, and English Lyrics Check out who produced 'I'm Ill (난 예술이야) (Club Remix)' in the link below! https://hallyumusic.com/lyrics/hellovenus-im-ill-club-remix/ Read the full art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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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예술이야 Im Ill - HELLOVENUS | K-Pop |1021849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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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VENUS [ 헬로비너스 ] - 난 예술이야 ( I'm 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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