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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야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싸움……. 이러한 싸움 없이는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어렸을 적에 텔레비전에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영화화한 것을 보았다. ‘리어왕'이었을까? 거기서 왕에게 알듯 모를 듯한 헛소리를 하는 궁정 광대의 모습에서 뭔지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꼈다. 그의 행동은 버릇이 없고, 그의 말은 처음부터 뜻을 알 수 없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으나, 왠지 거기에는 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 듯했다. 그리스의 비극에서는 코러스가 세계의 덮개를 뚫고 신적인 지혜의 말을 던져주었다. 코러스가 사라진 시대에는 실성한 광대가 그 신성한 역을 하는 게 아닐까? “오늘밤은 음녀(淫女)의 불 같은 정욕도 식을 좋은 밤. 가기 전에 예언을 하겠습니다. 신부(神父)의 말이 행동보다 앞서면 술장사가 누룩에 물을 섞으면 귀족이 재봉사의 스승이 되면 이교도는 태우지 않고 기생서방 태우면…….” (셰익스피어 ‘리어왕’) ‘광대’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이미 고대의 왕국에도 ‘광대’들이 있었다고 한다. 마치 무당에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 것처럼 광대에도 타고난 ‘바보’와 아비한테 직업으로 물려받은 ‘바보’가 있었다고 한다. 광대들은 왕의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앉아 무례한 언동을 하도록 허락되었다. 궁정에서 왕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광대였다. 광대의 전통은 중세까지도 이어졌다. 근대에 들어와 ‘광대’들은 서서히 궁정 밖으로 쫓겨난다. 아마도 합리주의의 사고방식이 발달했기 때문일 게다. 이때부터 ‘광대’들은 헛소리를 통해 신성한 진리의 단편을 계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야말로 모자란 ‘바보’ 혹은 정신 나간 ‘광인’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궁정에서 쫓겨난 광대는 어디로 갔을까? 카드 속으로 들어갔다. 카드로 들어간 광대는 수백 년이 지나서야 ‘배트맨’ 영화 속의 ‘조우커’의 모습을 하고 카드 밖으로 튀어나온다. 우연과의 놀이. 작년에 베를린에 갔을 때의 일. 마침 ‘우연’, ‘놀이’, ‘광대’와 같은 개념에 푹 빠져 있던 차. 우연히 들른 벼룩시장에서 ‘놀이’에 관한 책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벤야민이 '역사철학테제'에서 말한 인형, 즉 터키 복장을 하고 장기를 두는 자동인형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이 그림을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횡재를 한 셈이다. 며칠 후 폴란드의 슈테틴이라는 곳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베를린에��� 기차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국경 지대의 조그만 항구도시인데, 기대한 것보다 별로 볼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 볼 것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역 근처에서 아담한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그런데 그 카페의 이름이 마침 ‘조커’가 아닌가. 들어가 보니 카페의 벽에는 몇백 년 전부터 최근의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커’의 카드가 벽에 도배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커는 과거로 갈수록 르네상스 시대의 ‘광우(狂愚)’의 원형에 가까웠다. 조커의 철학. 흔히 흔히 서양 철학사란 흔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의 역사라고 하지만, 철학사에서 진정한 대립이라 할 만한 것은 따로 있었다. 당시에 이미 주류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아웃사이더였던 디오게네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점잖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면, 통 속에 살면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질펀하게 정액을 사출했던 디오게네스는 “미친 소크라테스”라 불리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하는 데 로고스를 사용했다면, 디오게네스는 철학을 위해 똥과 오줌과 정액을 사용했다. 다른 철학자들이 입으로 논증을 할 때, 디오게네스는 몸으로 퍼포먼스를 했다. 서양 철학의 반쪽은 바로 이 광기의 지혜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사에서 또 다른 조커를 보려면 2천 년의 세월을 격해 니체에까지 내려와야 한다. 이 철학의 광대들은 철학과 씨름한 게 아니라 철학을 갖고 즐겁게 놀았다. 철학은 이렇게 놀 수도 있다. 놀이하는 광대는 하나의 모티브가 주어지면 그것으로 수십, 수백의 변주를 만들어내면서 논다. 이 모든 놀이,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의 바탕에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의 한 패러그래프가 깔려 있음을 눈치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철학으로써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을 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든 것이 너무 “고상하고 정신적”이어서 역겨운 시대에 철학은 광대가 되어 지저분한 장바닥에서 질펀하게 쌈박질을 하며 노는 게 낫다. 가끔 글을 쓰면서 이성의 스위치를 내리고 머리를 스치는 헛소리들을 떠오르�� 대로 받아적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미친 것이 정상적인 곳에서 정상적이려면 미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 이 범상함의 시대에 위대해지려는 자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말 게다. 이것이 파시스트들이 연출하는 ‘숭고한 희극’이다. 이 평범함의 시대에 숭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희극적 숭고’, 즉 스스로 바보-광대가 되는 것뿐이리라. 시대의 아이러니…….
폭력과 상스러움, 진중권
/ 이 범상함의 시대에 위대해지려는 자는 우스꽝스러운 꼴이 되고 말 게다. 이것이 파시스트들이 연출하는 ‘숭고한 희극’이다. 이 평범함의 시대에 숭고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아마도 ‘희극적 숭고’, 즉 스스로 바보-광대가 되는 것뿐이리라. 시대의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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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의 합법,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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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의 합법, 그 뒤에 이어지는 것은 무엇일까요?
● 무지개빛 깃발이 미국 전역에 휘날리다.
지난 6월 26일, 미국 대법원에서는 동성간 결혼이 합법이라 판시하였습니다. 동성결혼은 2001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합법화 한 뒤, 벨기에, 스페인, 캐나다, 남아공, 노르웨이, 스웨덴 등을 거쳐 미국까지 17개 국가에서 법률상 정식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결혼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권리가 있는 시민결합을 인정하는 나라까지 하면 그 숫자는 35개국으로 늘어납니다.
동성애자는 소수일지언정, 그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소수가 아닙니다. 6월, 미국 대법원 판결이 있은 이후로 SNS를 달구었던 무지개 물결뿐만이 아닙니다. ‘남이 이성을 좋아하든, 동성을 좋아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임?’ 이라며, 불간섭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동성 결혼이 더 많은 나라에서 합법화 될 것이라는 예상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하나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제 동성 결혼 다음 단계는 어떤 제도가 우리에게 찾아올까요?
이 뭐 뚱딴지같은 소리냐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상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는 때로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반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300여년전만 해도, 신분에 구애됨 없이 사람들이 자유로운 연애를 통해 결혼에 이를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쉬이 상상하지 못할 현상이, 앞으로 수십년 뒤에는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인정해 줘야 할 일’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요?. 뭐가 있을까? 음, 동거? 동거는 서양권에서는 일상화된지 오래라, 새로울 것도 없군요. 계약결혼? 에이 그건 너무 뻔히 보이는 미래이군요. 아, 이거는 어떨까요? 중혼 말입니다.
● 동성결혼, 다음은 중혼의 합법화?
일부 사람들은 왜 결혼은 꼭 두 사람간에만 벌어지는지. 그러니까 일대 일로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집니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일대 다가 될 수도 있고 (일부 다처나 일처 다부제도) 혹은 다대 다(다부 다처제도)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는 말입니다.
사실, 요 근래 이런 의문을 제기했던 분들은 동성애 결혼 합법화에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미 연방 대법원 판결 때 반대 의견을 제기했던 대법관 존 로버츠가 있죠. 존 로버츠 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록 과반의 사람들이 ‘두 사람간의’라는 단어를 여기저기에 임의로 삽입하기는 했지만, 결혼을 정의하는 데 있어 남녀간의 결혼이라는 요소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두 사람간의 결혼이라는 요소 또한 지켜져야 할 이유를 ��시하지 못합니다. 사실, 역사와 전통의 시각으로 보면,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것이 일부다처를 인정하는 것보다 더 큰 변화입니다. 일부다처는 세계적으로 몇몇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드릭 데 보어라는 작가는 “이제는 일부다처제를 합법화 할 때”라고 주장하면서, “결혼 평등에 관한 운동은 이상하게 일부다처제에 적대적이었는데, 이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 분의 말에 상당한 불편함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일부다처제가 용인되는 사회에서 여성이나 어린이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존 로버츠 판사가 다중혼을 언급한 것도, 실은 다중혼을 찬성하기 위함이 아니라 동성결혼을 반대하기 위해서였죠. (즉 그는 동성결혼을 반대하듯, 다중혼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의 중혼인 다부다처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남자 여자 성별에 관계없이 각각 여러 상대방과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제가 (뒤에 이름은 모두 실제인물과 관계 없습니다.) 효성이, 보라, 초아와 결혼하고, 효성이는 주형이, 광우, 현준이랑 결혼하며, 보라는 광우, 건아, 한솔이랑 결혼하게 되는 식입니다.
일부다처나 일처다부와는 달리 당사자간 힘의 무게추가 한쪽으로 쏠리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일부다처제에서 보여지는 여성 인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막상, 중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아야 할 당위성도 약해지게 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지금 현재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불편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편함이 당위성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규제하기 위해서는 규제해야 마땅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규제가 부당하다면, 그 규제는 철폐되는 것이 당연하죠.
이번 동성애 합법화에 관한 논리도 같은 방식이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대법관 앤써니 케네디는 동성애자에게 호의적인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엄격히 구분하였습니다.
그에게 동성애는 불편한 개념이었지만, 그들이 사회적으로 차별 받고 규제를 받는 것은 편견에 기초한 것이므로,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만인은 평등하고, 고유의 권리를 누린다는 미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케네디는 동성결혼의 합법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불편함과 부당함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몸소 보여준 셈이죠.
● 결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그 이름
전술한바와 같이, 300여년전만 해도, 결혼이란 같은 신분의 사람들이 일정한 절차에 맞춰 결합을 하는 것을 뜻했습니다. 수십년전만 해도, 결혼이란 기본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미래를 약속하는 것이었죠. 지금은 사람과 사람이 둘이서 서로 평생을 언약하는 행위가 결혼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한 사람이 다수와 결혼을 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 듯이, 과거은 동성간의 결혼을, 더 과거에는 신분을 넘는 결혼이나 자유 연애를 통한 결혼을 떠올리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던 사건이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되듯이, 우리가 지금 이상하게 생각하는 모습도, 그 때에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영원한 만고불변의 가치가 아니라, 세월이 흐르면서, 그 모습이 변해가는 제도일 뿐입니다. 앞으로 결혼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갈지는,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정말 그때는 중혼이 허용될지도 모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결혼과 100년뒤, 어쩌면 몇십년 뒤에 보여지는 결혼은 상당히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죠.
아, 그렇다면, 저는 동성결혼과 중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구요? 아 그 답을 하기 위해 그러나 저러나, 한 가지 만고불변의 진리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하나는 그 어떤 제도가 시행되더라도 모든 것은 사람이 먼저이며, 결국 사람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또 하나는, 일대일이 되었든 다대다가 되었든 간에 저는 그래도 안생긴다는 점입니다.
뭐 이런 상황에서 세상이 어떻게 되든 제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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