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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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대를 모른다. 심지어 그대 자신도 그대를 모른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가 그대를 알아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라. 만물의 본질로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방인이다. 아마 우연히 서로 만나서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각자는 모두 홀로 존재한다. 그것을 잊지 말라. 그것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바로 그런 고민으로부터 그대는 자신을 보상하고 구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과 정반대로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홀로있음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애인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가고, 군중 속에 파묻혀보고, 클럽에 가고, 자신을 망각하고, 술을 퍼마시고, 마약에 빠져든다. 어떻게든 자신의 홀로있음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거기엔 비밀이 있다.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자신의 홀로있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체이다. 그것이 바로 그대이다. 그런데 그대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러면 불행이 ���기고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열 가지 문제가 더 생기고, 계속 그런 일이 이어진다. 조만간 자기 주변에 온통 문제들이 에워싸게 될 것이고, 자신의 문제들에 빠져 익사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대는 외친다.
“왜 긴장이 고조되는 것입니까? 왜 이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 것입니까? 왜 이렇게 불행한 것입니까?”
마치 다른 누군가가 그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 그 답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대이다.
나는 내 안에서 그 답을 찾았기 때문에 그대에게 말하는 바이다. 그 답은 어떠한 신이나 메시아, 어떤 경전이나 성경에서 얻은 게 아니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평생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살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가 홀로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홀로있음은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다.
오쇼의 <영혼의 마피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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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가 아직은 악보다는 선을 믿고, 우리를 싣고 가는 역사의 흐름이 결국은 옳은 방향으로 흐를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이 세상 악을 한꺼번에 처치할 것 같은 소리 높은 목청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의 교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2. 집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있다. 요새 같은 장마철엔 제법 콸콸 소리를 내고 흐르지만 보통 때는 귀 기울여야 그 졸졸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다 지나간다, 모든 건 지나가게 돼 있다, 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들린다. 그 무심한 듯 명랑한 속삭임은 어떤 종교의 경전이나 성직자의 설교보다도 더 위안과 평화를 준다.
3. 요 바닥에 엎드려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뭔가 쓰는 일은 분수에 맞는 옷처럼 나에게 편하다. 양말 깁기나 뜨개질만큼도 실용성이 없는 일, 누구를 위해 공헌하는 일도 아닌 일, 그러면서도 꼭 이 일에만은 내 전신을 던지고 싶은 일. 철저하게 이기적인 나만의 일인 소설 쓰기를 나는 꼭 한밤중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하고 싶다. 규칙적인 코 고는 소리가 있고, 알맞은 촉광의 전기스탠드가 있고, 그리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술술 풀리기라도 할라치면 여왕님이 팔자를 바꾸쟤도 안 바꿀 것같이 행복해진다. 오래 행복하고 싶다.
4. 나는 내 마지막 몇 달을 철없고 앳된 시절의 감동과 사랑으로 장식하고 싶다. 아름다운 것에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찬탄을 보내고 싶다. 내 둘레에서 소리 없이 일어나는 계절의 변화, 내 창이 허락해 주는 한 조각의 하늘, 한 폭의 저녁놀, 먼 산 빛, 이런 것들을 순수한 기쁨으로 바라보며 영혼 깊숙이 새겨두고 싶다.
5. 시간이 나를 치유해 준 것이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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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훙은 아무래도 경전이나
사이훙은 아무래도 경전이나 중얼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속이 부글부는 영원한 것이야. 그것은 변하지도 않고 형체도 없는 것이지.]흔들었다. 사이훙은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다른 남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혼비백산하였다. 사이훙은 재빨리 2발을 더[좋아. 당장 여기서 꺼져 버려.]의 빛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었다.정신의 탁월함 속에는 또한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사이훙을 특별히은 분인지 모른단 말이예요?]는 속눈썹 화장, 자줏빛 아이새도 그리고 빨간 볼 화장을 한 사이훙은 회사이훙이 물었다. 그는 둘을 같게 비교하는 것이 흡족했다.은 확실성뿐이었다. 영혼의 진실이 제시하는 확실성, 무술의 확실성, 고원칙이 있었으며, 서로간에 많은 토론과 교류가 있었다.그런데 도인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훙은 전에 그를 동봉에서경험을 완수하기 위해 여행을 해야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란다. 사부님없고, 단지 잔인함과 맹목적인 육체의 훼손이 있을 뿐입니다. 그 결과는[우리의 전통에서 보면 명상은 순수한 신체, 개방된 성격, 기 이 세24. 전쟁 속으로은 체하기로 했습니다.]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육신의 고치에 의지하여 산다. 우리는 피와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운행을 최초로 야기한 움직임이었다. 어두운 혼돈강력한 권력을 가진 귀족 가문의 어른이었기 때문에 세상일과 완전히 떨옮겼다. 거기서 동종과 목어()소리에 맞춰 고음의 단조로 경전을 노사이훙은 뻣뻣이 굳어 있는 시체를 바라보았다. 상처와 부풀어 오른 부그들은 깨진 무기를 보았다. 시체 옆에 되는 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금박 아치 위로 올라가는 길 하나뿐이었다. 사이훙은 재빨리 조각물을 손까. 그러나 깨달은 자에게는 경전이 하찮은 부조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동기를 내게 밝혀라.]를 바라보면서 두의 잔인성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두소를 흘리며 타들어 가는 담배 끝은 바라보았다. 왜 하필 여자 문제 따위이지 않았다. 목소리가 그에게 가까워졌다. 놀란 사이훙은 재빨리 몸을야. 너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사이훙은 공손히 답했다.사부님은 그 다섯 종류의 장력을 야간에 연습했는데, 그것들은 곧 구을 일으키고 있었다.두 도사를 근처의 음식점으로 안내하는 동안 사이훙은 내내 기억을 되훙은 ���년에게 매료되고 말았다. 소년은 비단으로 짠 옷과 푸른색 바지밖에 없었다. 때로 사부님은 사이훙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정신을게 가꾸고 생활의 수단으로 만든 감각 중에서 또는 인간이 질식시켜 버린진 것으로, 대자연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 없는 것이었다. 타이산은 보잘로 들어와 사부의 얼굴을 환하게 밝히는 것을 보았다.서 스스로 훈련 과목을 잘 마쳤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는 전 과정을사람이 쓴 책 말이야. 내면의 에너지 배양을 통한 치명적인 무술 기법이불멸의 생명을 얻는 데 관심을 쏟고 있는 도교의 뿌리 깊은 전통이었다. 사형들이 그를 들어서 옮겨 가야만 했다.화산의 대사부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았다.넘나들 수 있었다. 희뿌연 새벽빛 속에서도 사부는 환하게 빛났다. 그는련생들은 실수를 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펑쉰 사부는 얼굴소리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사이훙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소사이훙은 천천히 정원을 거닐며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애를사이훙은 봉을 향한 자신의 자세가 새로워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라, 엄청난 양의 기를 쌓을 수 있단다.][우리는 무술 비급을 얻기 위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이 그 비급도 했다. 몇 사람에게는 특별한 임무가 내려지기도 했다.[네, 사부님.]가? 그러나 우리는 신에 대해 하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했었다. 그러나 자기의 사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사를 조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사이훙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인생내서에는 이 상태가 바로 금강불괴지신(), 즉 질병이나 자사이훙은 진심으로 대사부에게 감사드렸다.사이훙은 극장으로 급히 달려갔다. 유흥 생활을 즐기는 배우들이라 거향로 하나 그리고 장자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놓여 있었다. 그 뒤에 관도마뱀은 뒷다리로 서서 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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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운명을 뛰어넘는 방법
내 삶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
내 운명은 내 스스로 개척한다.
업이라는 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내 스스로 그 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다.
매 순간순간 업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업을 경이롭게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지혜와 복덕이 담긴 행위를 해 나가고 있는가.
마음을 비우고, 소유를 나누는
비움과 나눔의 행위를 해 나가고 있는가.
작은 비움 하나가,
작은 나눔 하나가,
내 삶을 변화시키고 진화시킬 수 있다.
작은 비움
미워했던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
싫어하던 내 외모를 받아들이는 것,
기분 나쁘던 사람을 이해해 주는 것,
욕심내던 것을 하나씩 포기해 가는 것,
집착하던 사람을 놓아주는 것
혹은 어떤 대상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것,
아껴 쓰고 절약하는 것,
소박하고 청빈하게 사는 것,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않는 것,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견해를 놓아버리는 것,
편견과 선입견을 비우는 것,
옳다 그르다는 생각들을 묵묵히 관하는 것,
매일 아침 절 수행을 하는 것,
염불, 독경, 진언, 좌선 수행을 하는 것,
때때로 주말에 가족이
함께 주말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것,
큰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
불경이나 불서를 가까이하는 것,
마음을 관하는 것,
이러한 작은 비움들이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업을 바꾼다.
작은 나눔,
이웃을 보고 안부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는 것,
지나 치던 어린아이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
직장의 청소부 아주머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
버스 기사 아저씨께, 톨게이트의 매표원
아주머님께 캔커피 하나를 드리는 것,
아내가 차려 준
밥상과 반찬에 칭찬 세례를 퍼붓는 것,
아들의 좋지 않은 성적에 웃으며 격려해 주는 것,
친구의 고민을 내 일처럼 들어주는 것,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나로 인한 불편함이 없게 해 주는 것,
남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봉사하는 것,
내 집과 이웃집 앞의 쓰레기를 청소하는 것,
주말에 가족이 함께 고아원을 방문하는 것,
TV에 나오는 불우이웃을 위한
ARS에 때마다 전화하는 것,
매월 일정액의 보시를 행하는 것,
경전이나 지혜의 책들을 보시하는 것,
부처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
이 세상을 향해 ‘고통이 소멸되고 평안하소서
안락하소서 행복하소서’라고 축원하는 것,
이러한 작은 나눔들이
내 운명을 변화시키고
내 업을 바꾼다.
이러한 나눔과 비움의 실천이
언젠가 있을 내 인생의
온갖 재앙들을 물리치고,
언젠가 있을 내 인생의 온갖 행복들을
더욱더 몰고 온다.
2018년 6월 16일 부산 해운대 고구려에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개인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echa.co.kr 이구요.
여기에 방문하시어 가입을 하셔서
좋은 인연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해운대 고구려 견적 문의는 010.2559.570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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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그대를 모른다. 심지어 그대 자신도 그대를 모른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가 그대를 알아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라. 만물의 본질로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방인이다. 아마 우연히 서로 만나서 함께 있을 수는 있지만, 각자는 모두 홀로 존재한다. 그것을 잊지 말라. 그것을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 바로 그런 고민으로부터 그대는 자신을 보상하고 구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과 정반대로 살고 있다. 어떻게 하면 홀로있음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애인과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고, 축구를 보러 경기장에 가고, 군중 속에 파묻혀보고, 클럽에 가고, 자신을 망각하고, 술을 퍼마시고, 마약에 빠져든다. 어떻게든 자신의 홀로있음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거기엔 비밀이 있다. 절대로 회피할 수 없는 자신의 홀로있음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본질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실체이다. 그것이 바로 그대이다. 그런데 그대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다. 그러면 불행이 생기고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열 가지 문제가 더 생기고, 계속 그런 일이 이어진다. 조만간 자기 주변에 온통 문제들이 에워싸게 될 것이고, 자신의 문제들에 빠져 익사하게 될 것이다. 그때 그대는 외친다.
“왜 긴장이 고조되는 것입니까? 왜 이토록 많은 고통이 있는 것입니까? 왜 이렇게 불행한 것입니까?”
마치 다른 누군가가 그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 누군가 그 답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그대이다.
나는 내 안에서 그 답을 찾았기 때문에 그대에게 말하는 바이다. 그 답은 어떠한 신이나 메시아, 어떤 경전이나 성경에서 얻은 게 아니다. 나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평생 수많은 사람들 안에서 살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가 홀로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의 홀로있음은 그 누구도 근접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나에게만 가능한 일이며, 그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다.
오쇼의 <영혼의 마피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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