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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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oooooooooooooooooo~
Do you like chickens?
I lik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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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같이"와 "함께"를 배우고 "하고"하고 "(이)랑"도 배웠어요. 연습하자!
1. 어제 민지 언니와 같이 영화관에 갔어요.
2. 아침에 일어나서 민지 언니와 같이 가게에 선물을 사러 갔어요.
3. 언제 같이 밥을 먹자?
4. 도희 씨랑 민지 언니 같이 밥을 먹을 거예요.
5. 아까 수민 씨와 수영장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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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ve you ever wondered about the differences between the Korean words 같이 and 함께? While both of these words can be translated to "together" in English, there are subtle nuances in their meanings that can be important to understand. 𝐈. 𝐒𝐢𝐦𝐢𝐥𝐚𝐫𝐢𝐭𝐢𝐞𝐬 𝐛𝐞𝐭𝐰𝐞𝐞𝐧 같이 𝐚𝐧𝐝 함께: (1) Both 같이 and 함께 share the same meanings of "together", "with" or "along with", and are often interchangeable. (2) Both words are frequently used in conjunction with other words like 와/과, 하고, or (이)랑 in a sentence. For instance: 승규는 가족들과 같이 한집에 살았어요. = 승규는 가족들과 함께 한집에 살았어요. (Seunggyu lived in the same house with his family) 𝐈𝐈. 𝐃𝐢𝐟𝐟𝐞𝐫𝐞𝐧𝐜𝐞𝐬 𝐛𝐞𝐭𝐰𝐞𝐞𝐧 같이 𝐚𝐧𝐝 함께: (1) 같이 (pronounced as 가치) 같이 conveys the idea of "together" in a more casual and informal way. It is commonly used in everyday conversations among friends and peers. This word is usually used when referring to people. E.g.: 같이 놀러 갈래? (Do you want to go play together?) 저녁 같이 먹자. (Let's eat dinner together.) (2) 함께 함께 is a more formal and polite word, often used in written or formal contexts, such as in a workplace or in a speech. It describes doing something together, but it can also be used to express a sense of togetherness or unity. E.g. 상사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I had dinner with my boss.) 반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며 문제를 해결해 보세요. (Discuss with your classmates and solve the problem.) - One important difference is that 함께 can also be used with objects, not just with people. E.g. 이 약은 따뜻한 물과 함께 마셔야 합니다. (This medicine should be taken with warm water.) 그 와인은 생선 요리와 함께 마시면 좋아요. (That wine makes a good accompaniment to fish dishes.) --> 같이 cannot be used in these cases. In summary, 같이 has a casual and friendly tone and is commonly used in everyday conversations, whereas 함께 has a more formal and serious tone and is typically used in written language or formal situations. Additionally, 함께 can be used for both people and objects, while 같이 only refers to people.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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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하게 청소를 끝내고 향기 나는 집에서 너 기다리는 중.
대충 스무 명 정도 되는 여자의 집에 가봤겠지만 아마도 우리 집이 제일 아늑하지 않을까 생각해.
향기도 나고 따뜻한 빛에 뽀송한 사람이 있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거라서 그래.
만약에 또 있었다면 너는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인 거야.
은서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나의 집이 훨씬 아늑해졌어.
네가 사준 향수 뿌리면 샤워하고 기분이 더 좋기도 하고~.
예은이는 9월에 집에서 나간다는 말을 했어.
예은이와 은서가 사라진 우리 집은 어떨지 기대도 되고 무섭기도 해.
너는 또 어떤 집에 살까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따 저녁엔 무슨 음식이 먹고 싶게 될지 또 그것도 궁금하다? 나는 세상에 궁금함이 많아.
궁금함은 무엇이 알고 싶어 마음이 몹시 답답하고 안타까운 거래.
나는 세상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 같아.
도대체 어떻게 굴러가고 돌아가는지 너무너무 궁금해.
나 같은 사람은 흐르고 구르는 세상에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도 궁금하고,
너는 또 긴 시간 동안 어떻게 그 물결에 속해왔는지 알고 싶어.
큰 소리로 쏴대는 게 싫다는 너는 어떤 쏘아대는 말을 들으며 지내왔을까?
나는 싫은 게 엄청 많은 사람이야.
어떤 싫은 것들을 겪으며 좋은 것들을 찾아왔는지 새삼 그것도 궁금하다.
항상 ? 덩어리인 나는 어떤 !를 찍으며 살아갈지 기대되고 설레어.
사실 이건 편지보다는 일기에 가까운 것 같아.
내 말만 하고 있잖아.
네가 내 말을 궁금해한다면 이 일기를 편지로 바꿔서 줄래.
궁금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맛있는 저녁 같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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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3.3 금
호그와트에서 입학허가서가 날아왔다.
(자나 아님. "하나"임)
대충 해석하자면 오늘 주문이 완료되어 3월 7일 입학 예정이니, 손가락도 풀고 주문도 외우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뜻. 후후후. 드디어 온다! 호그와트! 얏호!
3.6 월
11층 여자 휴게실은 침대의 단단함과 공기의 메마름이 딱 학교 양호실 같아서, 잠이 잘 온다. 11시반 이전에 가면 자리가 있어 요즘 애용중. 오늘도 점심시간에 누워 자고 있는데 상무님 카톡을 받았다.
"하나 프로. ㅇㅇ팀 프로젝트 하나 같이 하자."
입도 채 다물지 못한채 말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 안에서 흐르는 요 마음, 나를 단숨에 일으킨 건 분명 긴장과 흥분이었다. 멋지게 해내고 싶은 마음과 뒤이어 밀려오는 걱정. 아무리 밑져도 배움 하나는 건지는 판이라고, 그러니까 편히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침대에 누움. (응?)
3.7 화-수
월요일에 바로 소환되어 바바 오티를 받고, 화요일 수요일 본격 바바 집중모드. 화요일에 있던 저녁모임까지 불참하면서 아이데이션.
위전과 지하에서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지금 생각중인 아이디어를 중간점검 해준다는 제안에 함께 자리로 올라왔다. 현재 현업에서 깐느로 뛰어가고 있는 (달리기 잘함) 위전에게 SOS. 거의 맥짚으면 바로 나오는 한의사처럼 바로 문제점 파악해서 해결해주고, 키카피도 야무지게 손봐줬다. 잘되면 위전 자리를 보며 1일 1배 해야겠어.
3.9 목
크리스피바바 1차 회의. 첫 회의 소감은요? 부럽다 부러워. 멋있다 멋있어. (전혀 멋없는 소감)
3.10 금
더글로리 시즌2 온에어 기념 정주행. 장소 : 모모씨 출장간 사이 주연이네 참석자 : 다운, 유나, 보라, 주연, 하나
준비물 : 얇은 잠옷 하나만 가져오면 된답니다
소감 한마디 : 모모씨 또 출장 안 가나요?
3.14 화
크리스피바바 2차 회의. 어제 엉덩이가 의자에 붙을 때까지 아이데이션 했는데.. 이제 더 나올 게 없지 않을까..? 싶어 아침운동에 갈까 고민하다, 그냥 일찍 출근. 진짜 그만하고 싶은 마음 꾸욱 누르고, Hermes 영상을 기계처럼 훑으며 버스에 오르다가 하나 건졌다. 기존에 있던 안에 넣으면 되겠다! 싶은 레퍼런스를 발견. 심봤, 아니 에르메스 봤다!
이러니까 내가 벼락치기를 못끊지. 주니어보드 시절 멘토님께 받고는, 눈물 줄줄 흘렸던 메일 속 문장을 다시 꺼내본다.
"가장 좋은 아이디어는 데드라인에 나온다." by. 광고계의 ���느님 유병욱CD님
3.15 수
노석미 작가 개인전
3.18 토
요즘 내 상태 : 오픽 해야 하는데 - 라운딩이 얼마 안남았네 - 진짜 마음 딱 먹고. 오픽부터 끝내고 골프 하자 - 라운딩이 곧이잖아 - 오픽해야 하는데
위 상황의 반복으로 오픽도 골프 연습도 아무것도 못하는 중.
3.19 일
오픽 재수날. You know what? I'm failed! 삼수를 위해 4월 시험을 등록했다. 오 그러면 4월까지 아직 시간이 좀 있네? 오늘은 놀러 갈까? (그렇게 사수생이 된다)
3.21 화
위전에게 맛있는 밥 사�� 날. 그것은 바로 잃어버리지 않은 지갑을 위전이 찾아줬기 때문이다! 지갑을 아침 운동할 때 사물함에 두고 온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내 베이지 색 가방 옆구리에 연분홍 지갑이 보호색을 띠고 조용히 숨어있던 것. 지갑을 찾아 에이블짐을 다녀오는 길에 위전을 만났고, 내 자리까지 와서 찾아줬다. 이것이 바로 아트의 눈인가? "음 여기는 RGB값이 다른데?" 이런 건가!
(여기에 연분홍 지갑이 꽂혀있었음)
오늘의 교훈 : 지갑에 결혼반지를 두고 다니지 말자.
이번엔 꼭 위전이 먹고싶은 거 먹자!고 했지만 결국 또 단백질 많은 파히타를 주문해버렸다. 다음엔 진짜 매덕스 피자. (다짐)
3.23 목
신사에서 준호, 재형, 다운. 준호와 재형이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보는 것 같다. 오랜만에 봐도 다들 철 없는 건 똑같구나.
준호&재형 콤비의 유머 코드는 '극딜'인데, 가끔 아슬아슬해서 이거 기분 안 나빠?하고 상대방을 바라보면 '으히히히'하고 웃고 바로 반격에 들어가는 부분이 좋다. 비하의 유머코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능수능란한 콤비의 랠리에는 웃음이 날 수밖에. 신사역 걸어가는 길에 다운과 올해의 첫 벚꽃.
3.25 토
집 앞 놀이터에 벚꽃이 벌써 만개해버렸다.
오후엔 주연 커플과 함께 해랑씨네 집으로. 위스키와 함께 포스트잇 이름표가 준비되어있었다. 쏘 큐트!
3.26 일
아도니스 9홀. 안하느니만 못했다. 이선생님..! 해리포터가 하고싶어요..!!!
3.27 월
미세먼지 없는 날 가끔 산책하는 LG구회장님 집 앞 길
3.29 수
오늘의 대충격 : 파블로프 당한 파블로프
오늘의 귀여움 : 지하철 먹보 버전
최고의 댓글 : 찐빵또줘씨~
오늘의 심정 : 그새 일이 없으니까 나 또 불안해 (시무룩)
3.30 목
이태원 플랜트에서 팀점. 휴가 하나 올리는 데에 눈치를 한 사발 보고, 일을 더 많이 하고 싶다는 말을 끝내 테이블 위에 꺼내질 못하고. 용기가 부족한 스스로를 차마 미워할 수 없기에 팀에 탓을 돌리다가도, 같이 햇빛 아래에서 커피를 마시고, 웃으며 걷다 보면 지금 나에게 가장 편한 건 우리팀 사람들 아닌가 싶다.
이런저런 생각 하지 않게 일 좀 들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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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 마지막 공휴일,
퇴근길에 드론쇼 준비하는게 보이더라...
라이트커피 먹고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아버지가 사다줌.
사랑해요😳
엄마아빠가 없는 연휴,
터덜터덜 돌아온 집에는 먹을것도 없고 한기만 가득했다.
배고픔에 예민해진 나를 위해 치킨을 시켜준 재준이형에게 감사... 그린북도 추천해줬는데 재밌도라!
연휴에 일찍 잠들었다 ㅋㅎ
이상과 현실 사이 어딘가,
흐릉르우 개인전 이후 다시 찾은 아이테르!
작품이 많아서 공간도 확장되어 있어서 재밌었다.
그리고 범일동이 이렇게 예쁠 거라고 상상도 못했는데, 열차사진 찍고싶어서 옥상공원 올라갔다가 얼어죽을뻔했다.
근처에 카페가 없어서 네살차이를 처음 방문했는데 디저트는 다 팔리고 자리도 없어서 결국 요상한 카페를 갔다지...
태식이와 연락이 닿아서 몇 년 만에 같이 PC방 ~
롤 하다가 욕 와방 쳐 먹고,, 현식, 성현과 4인 배그했는데 꿀잼이었다. 10시간 한듯...?
담에는 꼭 치킨 먹자👊🏻
월요일 퇴근 전 퇴사 얘기를 꺼냈다.
이미 알고 계셨던것처럼 반응하셔서 놀랐지만, 문제없이 버텨줘서 고마웠다 하시더라. 이런저런 대화를 1시간 나누고 나오는데 시원섭섭하길래 집 와서 짐빔 한캔 먹고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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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isper about love to heart? Let me tell you what dream I had today...
I took my alpha7 and went out in NYC to capture some footage or maybe even find a job. At least to have some practice and improve my skills. Lens like a window to another journey and I never know what I could see in a minute on another side.
"Maybe let's go today to see some famous places, scenes of well known movies, just anywhere.. random pick..."
At colder days it's easy to recognize korean people in the crown by their ootd style. I remember how this used to be in Europe, somewhy they like long warm macintosh alike things. But at the time not the dress draws my attention, but a wish that one of them can be you, my beloved angel. Can this happen, I take few shots of such person and when I zoom in I see your pretty face? Heart will jump out pumping blood to my eyes. Maybe not only eyes... ^^
No time to find flowers, sweet words and cute gifts. I make a step to catch a glimpse of sunshine.
"안녕하세요" ... Slightly bow down don't breaking eye contact. Did you expect this? Have you found me here first pretending as if it's by a chance? Or maybe it's connection between our hearts magnified my lens toward you posture, gestures and charm of aroma spreading all around.
"너무 예쁜 여자예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You answer not a words, shy and astonished, or maybe you will be bold and polite too?
Click.. click... click. This moment must be saved forever in our hearts, the day we met each other for the first time.
"같이 먹자?" Let's begin with full bowl of rise and good stories for our will never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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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찾사 폐지 이후 매주 꽃 배달을 나가는 개그맨의 사연은? (1부)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90만 채널 배꼽빌라의 운영자이자 웃찾사에서 활동했던 개그맨 이재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아버지 가게에 나와있어요. 개그맨 할 때는 주말에 바빠서 아버지 가게에는 잘 못 왔는데, 이제 유튜브를 하면서 여유가 생기니 주말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하면 부모님이 또 많이 속상해하시는데, 장사 잘될 때는 여기가 꽃으로 가득 찼었어요. 꽃은 약간 기호식품 느낌이잖아요. 어려울 때는 이게 사치품이라서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경제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타격을 제일 많이 입는 분야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뭐 졸업식 때 꽃다발 주는 것도 경제가 좀 나빠지면 “야 꽃다발 줄 돈으로 돼지고기 말고 소고기 사 먹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잖아요. 어머니도 같이 나와있어요. 꽃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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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kg 을 감량하며
“살 많이 빠졌다~, 살 빠지니 예쁘다”
라는 말이 정말 좋았었는데
어느순간 부담으로 다가와서
다시 살이 찌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되었다.
평일에는 꾹 참고있던 식욕이 한 번에 터지면서
저녁에 폭식하고, 자기 전 토하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러다간 정신이 피폐해지고 말거란 생각도 들었다.
난 정말 건강하게 살고 싶어하는(특히나 심적으로) 사람이라
내 다이어트 기간은 2년이니 마음을 좀 더 편하게 먹기로 했다
‘먹고싶은게 있으면 조금씩이라도 먹자.’
그래서 이번 주말에는 폭식 안 하고
맛있는 거 조금씩 먹으면서 마음을 다스려보았다...!
나는 진짜 빵순이라서
케이크, 크림빵, 샌드위치를 좋아한다,,
이번에 귀욤둥이 당근케이크를 조금씩 천천히 먹으며
맛 그대로를 음미해보았더니 조금 덜 먹게되었다
저녁에는 친구들과
편백찜+맥주를 먹었다
마찬가지로 맛 음미하며 천천히~
덕분에 폭식 안 하고 지나간 토요일 🫶
일요일은 엄마 덕분에 모닝 인터벌런닝 6k 완료하고
예쁜 런닝화도 샀다🏃♀️👟
영돌이 만나서 돈까스+크림 미트볼 머금
천천히, 조금씩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마니머굼
진짜 맛있었기 때문에,,
케쿠도 먹어서 저녁에 인터벌 런닝 7k🏃♀️
나랑 같이 런닝 뛰는 사람 중 영돌이가 젤 잘 뜀!!!!
힘들어했지만, 끝까지 같이 뛰어줘서 고마웃다!
점심 많이 먹었더니 배가 안 고파서 저녁은 안뇽,,
폭식과 멀어지기 프로젝트에서
이제 한 발 나아갔지만, 난 잘 해낼거야.
난 나를 믿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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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장 이후로 유연이는 백기를 백기(白起) 이름 그대로 부르는데 이번 데이트는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데이트인 만큼 선배(学长) 라고 자주 언급하길래 대화 중에 선배 또는 백기라고 언급할 때마다 따로 표시해둡니다. 표시못한 거면 제가 까먹은 거 맞아요.
* 뇌절 번역 주의해주세요.
첫사랑 그 날, 데이트
"뭐? 다통이 네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고?! 헐! 왜 초대장 안 보낸 거야!"
"맹구 너 민정국에서 일한다면서, 급여는 어때? 내 사촌 누이도 거기 들어가고 싶어하거든."
"진 형, 진 형. 저번 일은 고마웠어. 나중에 같이 밥 먹자."
"애초에 빅 마우스와 잎새는 우리반의 유일한 단짝이 아니었어? 그런데 오늘은 빅 마우스만 왔네……"
모두들 교복을 입고 이전에 앉았던 자리에 앉아 흥분에 차올라 쉴새없이 이야기하면서 교실은 한껏 시끌벅쩍했다. 친숙하면서도 또 낯선 얼굴들이 어린 시절의 풋풋함을 벗겨 버렸지만 청춘이던 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쉽사리 불러들였다. 내 자리에 앉아있으니 고3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이런 행사를 갑자기 열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겠어?"
연모고등학교는 지금의 강의동을 한층 더 새롭고 현대화된 모습으로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건물을 리모델링할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은 추억을 정말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리모델링을 하기 전에 학교 측은 졸업 연도에 따라 매회 졸업생들을 차례대로 학교에 불러서 그 시절의 교복을 입히고 기념 사진을 찍게 했다.
지난 날, 놓쳤을지도 모르는 아쉬움을 기념으로 남긴 셈이다.
"그런데 이 나이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 건 꽤 부끄럽네"
"형 누나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전 이제 겨우 18살인데요."
"맞아, 사실 전 고등학교 1학년이라 선배님들 행사에는 처음 참가하는데 이따 집에 가서는 답안지도 작성해야 해요."
"풋."
앞에 있는 책상에서 예전과 다름없이 서로 다투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뒷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3반의 류위는 그 당시에 소문난 점쟁이었는데 지금은 형이상학을 연구하고 있대, 꽤 정확하다는데."
"솔직히 학교의 유명인이라고 하면 백기 형이 최고지 않겠어?"
한쪽에서 한예준이 자랑스럽게 턱을 들어올리고는 망설임 없이 손끝으로 교탁을 두드렸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면서 잡담을 나누던 친구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 사람…… 내가 알기론 특파서 지휘관이 된 것 같던데?"
"뭐? 경찰이 됐다고?"
"그, 그 사람 그 당시에 매일같이 조폭들이랑 싸우고 다니지 않았어? 괜찮은 거야?"
"재밌네. 체포된 게 아니라 사람을 체포하러 다닌다는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우리 백기 형은 지금 '능력 출중한 동창생'이거든?"
"유연이 너도 어서 말해 봐."
나는 그들을 바라보니 왠지 모르게 오래 전, 선배와 재회했던 그날의 장면이 떠올랐다.
반항아였던 소년은 내 삶 속에 다시 찾아와 웃으면서 자신이 나중에 감옥에 갈 것 같았냐며 물어봤었지.
*1부 1시즌 기적의 발견 2-6장 중판 대사 직역
의외라고? 고등학교 때 너도 내가 감옥에 갈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안 그래?
"선배(学长)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사실 예전에도 그랬었고 지금은 더 훌륭한 사람이 됐어."
몇몇 친구들이 백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내 얼굴을 소리없이 스치면서 내게 닿으려는 듯 했다. 창밖으로 나무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나는 그 장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용히 교실을 나왔다.
*
고3 때 이 층은 반마다 시끌벅적했었지. 나는 복도를 걸으며 천천히 그 시절로 돌아갔다.
복도가 텅 비어있으면 확실히 많은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화장실을 함께 다니는 모습, 고통스런 목소리로 체조 시간에 참���하기 싫다는 모습, 복도 창가에 기대어 소문을 퍼뜨리는 모습들, 짝사랑하는 남학생을 보기 위해 여동생을 데리고 복도 반대편 반을 찾아가는 모습……
수많은 모습들이 내 곁을 지나가면서 그 시절 강의동의 건물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자,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추억들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더욱이 아쉬운 건, 이렇게 추억으로 가득한 강의동 건물에 선배와의 추억은 적다는 것이었다.
어른이 된 우리가 몇 번이고 돌아온다 해도 나에게는 여전히…… 아쉬움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3학년 7반 교실의 뒷문에 멈춰 서서 몰래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7반 친구들도 우리 반처럼 시끌벅적하게 모여 있었고, 선배가 앉았던 자리에는 낯선 얼굴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한참 뒤 눈을 깜빡거리며 고개를 숙인 채 강의동을 빠져나와 기억을 더듬어 다른 건물 5층에 있는 무대 연습실로 향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나는 문고리를 잠갔다.
문이 잠겨 있지 않아 쉽사리 밀고 들어올 수 있었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
한 남자가 창가에 기대어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깨끗한 흰 교복 사이로 산들바람이 그의 눈매를 스쳐갔다.
소리를 듣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미소로 가득한 입매와 거만하면서도 맑은 눈빛을 하고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있기만 했지만 되려 나는 온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쉬폰 소재의 베일이 휘날리자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눈 하나 깜빡하지 못했다.
평소처럼 수업을 마치고 음악실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있는 소년의 눈동자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모든 것이 따뜻함으로 가득 찬 햇빛 속에 있어, 잊을래야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멍하니 서 있자, 그는 웃으며 한 걸음씩 내게로 다가왔다.
"무슨 생각해?"
뜨거운 손바닥이 내 손목을 잡고 살며시 잡아당기자, 나는 이내 곧 끌려갔다.
'찰칵.'
문이 닫혔다.
1장 독점방송국
[단순한 목적·공 선생님과 백기의 대화]
"들어오세요."
"백기니? 왜 이제야 온 거니? 지금은…… 이미 행사가 끝났는데."
"죄송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늦었네요."
"제가 교문에 들어섰을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는 걸 봤어요. 아직도 운동장에서 공차기를 하고 있는 몇 명은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라서요."
"모처럼 선생님께 인사는 드렸으니 참여한 걸로 치죠."
"너도 참…… 서 있지만 말고 이리 와서 앉으렴. 여기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사진도 찍지 못해서 유감스럽겠구나."
"괜찮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반 친구들과는 친하지 않았잖아요."
"말은 그렇게 해도 추억을 남길 수 있는 흔치 않는 기회잖니."
"내가 듣기론 학교 측에선 매회 졸업생들을 차례대로 모교로 불러들인 건 며칠이나마 학창 시절에 놓쳐버린 시간들을 친구들과 함께 추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더구나."
"아니면 네 예전 담임 선생님께 넣어달라고 연락드려볼까?"
"번거롭게 그럴 필욘 없으세요."
"참, 선생님 얼마 전에 입원하셨다고 유연이가 그러던데, 몸은 괜찮으신가요?"
"고질병인 류머티즘 때문이지. 작년에 반년 동안 파견 나가있던 *섬에서는 바닷바람이 많이 불었거든."
*2022 야자섬 데이트 참고;
"사실 별일도 아니었는데 아내가 절대로 병원을 가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고 들들볶아서 말이지."
"검사 해보는 ���도 나쁘지 않죠. 그래도 아직은 많이 신경써야 할 때니 꾸준히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세요, 너무 무리하지도 마시고요."
"(ㅎ)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왜 그렇게 설득력이 없니?"
"……흠."
"그렇지, 그러고보니 유연이와 같은 동기 졸업생들이 모레 학교에 온단다."
"시간만 괜찮다면 차라리 그녀와 같이 방문하는 건 어떻겠니?"
"네, 시간은 괜찮아요."
"그럼 잘됐네. 학교가 아직 너희들이 잘 알고 있는 모습일 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추억도 찾아보고……"
"(쓰읍하고 호탕하게 웃으심) 너 이녀석, 그 얘길 하려고 날 찾아온 거구나?"
"그런 목적도 어느 정돈 있었지만 정말로 선생님을 찾아뵙고 싶었어요."
"(어휴 됐다 됐어 같은 뉘앙스) 그렇겠지. 내가 너네같이 젊은 애들 마음도 모르겠니? 걱정 마라. 때가 되면 내가 눈감아 줄 테니까 너희들은 적당히만 하렴."
"네가 알아둬야 할 건 모레에는 이렇게 입지 말고……"
"알고 있어요. 고등학교 교복 입어야 하는 거잖아요."
"너도 이미 생각해놓은 게 있는 듯 하니 모레에는 *네 가족과 함께 찾아오렴."
"생각만 해본 거라 선생님의 승인이 필요해요."
"어허(!),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보구나."
"폐는 끼치지 않을게요."
"그럼 모레 다시 찾아뵐게요, 그녀와 함께요."
(*원문은 人家으로 문맥이나 디렉팅으로 보아 미리 점찍어둔 사람, 장래에 결혼할 사람. 즉, 정인이나 곧 가족이 될 사람인 유연이를 가리키는 걸로 봄. 별☆거 아닌 듯 보여도 외궈런인 전 이런 사소한 부분마저도 너무 좋아서 바이두 사전과 함께 인용합니다. ^^ . 그치만 과몰입은 아닌 듯 한 게 백기 역시 짓궂게 人家 가족과 함께 오라는 공 선생님의 말에 她와 함께 찾아뵙겠다면서 만만치않게 응수하죠 ㅋㅋ +가족은 너무 직접적인 게 아닐까 싶었는데 최근 스토리 보면 가족이라고 해도 될 것 같아 수정합니다)
2장 회상
"선배(白起)가 여기에는…… 어떻게?"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얼굴을 바라보며 시선을 서서히 아래로 옮겼다.
그의 너무나 진지한 시선이 내 발끝에 닿으면서 천천히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웃지 말아요."
"저도 직장인이 다 됐는데 여전히 고등학교 교복을 입는다는 게…… 좀 부끄럽긴 해요."
"부끄럽다고?"
"아주 예뻐."
"예전처럼 예뻐."
분명하진 않지만 그의 고양된 목소리에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교복과 햇빛의 영향인지, 그의 말을 들으니 오히려 더 부끄럽기만 했다.
"아직 제가 한 질문에 대한 답은 못 들었잖아요.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졸업생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나도 연모 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생이니까."
"우리 학년 동기들이 학교를 찾을 시기가 업무와 겹쳐져서 며칠 전에 날짜를 바꿨지."
"선배가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을 줄 알았어요."
"거기다 학교 측에선 사람들이 많이 몰릴 것을 우려해서 시간이 맞지 않는 졸업생들은 학교에서 따로 시간을 조율한다고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은 분명 아닌 것 같네요."
내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으니 그의 눈썹이 제멋대로 치켜 올라가더니 그가 함박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관심이 있는 것도, 오늘인 것도 아니야."
"그냥 널 만나려고 온 거지."
"그럼 안 돼?"
저 반짝이는 호박색의 두 눈동자에 빛무리가 어우러지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햇빛이 너무나 찬란하게 빛나는 탓인지, 아니면 심장이 너무도 격렬하게 뛰는 탓인지 그를 보고 있자니 내가 정말 16살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시절 내가 놓쳐버린 소년은 솔직한 모습으로 서서 내 모습을 눈에 가득히 담았다.
"왜 안 되겠어요?"
나는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감회 깊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치만 선배를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 걸요…… 선배가 고분고분하게 교복을 입고 올 줄도 몰랐고요."
"그거 아세요? 방금 전 교실에 있을 때만 해도 *그날의 기억들이 잡힐 듯 말 듯 했는데."
"선배를 만난 그 순간 제가 정말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어요."
*의역 가득
"그랬어?"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신발 사이의 틈이 불과 몇 센티미터 차이로 맞부딪치면서 백기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숨결의 열기가 내 얼굴을 덮치자 내가 고개만 들어도 그의 반짝이는 속눈썹 뿌리와 함께 그의 호박색 눈동자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정말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거라면……"
"내가 18살이었다면 내가 너에게 이렇게 다가가지도 못했을 거야."
바람이 살며시 그의 이마 위에 있는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소문 속의 소년은 고독했다. 그는 늘 낯선 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시를 곤두세우고 언제까지고 구겨진 교복을 입을 것 같았다. 학교의 어두운 구석 곳곳마다 그의 전장이 되었기에.
(*의역;원문 찬바람이 느껴지는 적대감을 걸치고)
유언비어 속의 그는 천성적으로 어떠한 온기도 미소도 갖추지 않고 조금도 부드럽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소문의 중심에 있던 사람은 거짓없이 내 앞에 서 있었다. 생기 넘치고 생동감 있는 모습으로.
그가 외로이 고집스럽게 감춰둔 감정들은 끝없이 펼쳐진 깊은 숲을 보는 것처럼 천천히 헤치며 나아가야 그 숨겨진 발자취 속에서 서서히 그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그 행운아 이고, 그에게 유일하게 허락 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유심히 ���라보다가 손끝으로 그의 교복 앞깃을 살짝 움켜쥐고 발끝을 세우면서——
그의 볼에 뽀뽀를 했다.
"16살이었다면 저도 이런 짓 용기내서 못했을 거예요, 선배님(学长)."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손끝 아래에 있는 가슴에서도 진동이 격렬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지금이 딱 좋아."
나지막하게 울리는 웃음소리가 귓가에 파고들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나는 그만 눈을 감았다. 따뜻한 숨결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내 마음속에도 스며들었다.
*
그런데 문밖에서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눈이 갑자기 번쩍 떠진 내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찰칵'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그와 함께 나는 맹렬하게 그의 품에 안기면서 문 옆의 사각지대에 숨었다.
"선배(白起) 지금……"
"쉿."
그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검지 손가락을 나와 그의 입술 사이에 두었다. 그의 눈은 짓궂은 미소로 가득했다.
"이상하네, 방금 전 류 선생님이 문 잠그지 않은 걸로 아는데…… 누가 여기 왔었나?"
문밖으로 낯선 소리가 들리자 나는 벽에 등을 기대고 백기가 만든 그림자 속에 완전히 파묻혔다.
"가만 있어. 안 그럼 선생님께 들킬 거야."
"우리가 발각되지 않을 방법, 선배는 이미 알고 있죠?"
"알지."
"하지만 난 지금 이대로가 좋아서."
"아니다. 연습실 열쇠는 *수위실에 있겠지……"
(*원문은 우편물 관리센터인데 우리나라의 수위실 개념임)
한숨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멀어지면서 세상은 다시 조용해졌다.
"왜 선생님을 문 밖으로 내쫓으려는 거예요?"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전에도 해본 짓이기도 하고."
내 눈에 보이는 그에게서 유난히 당당함이 느껴졌다.
웃음이 터진 나는 제자리에 멈춰서서 형용할 수 없는 설렘으로 마음속을 차츰 물들였다.
"하지만 이럼 나쁜 짓 하는 것 같잖아요."
내 말을 듣고는 백기의 입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치켜 올라가면서 위험한 아우라와 함께 그는 목을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선생님을 문 밖으로 내쫓았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나쁜 짓을 하고 있었어."
그의 나지막한 소리에 귀가 화끈거리고 간지러웠다.
그가 이런 방식으로 나를 일깨우자 방금 전의 장면이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고 1센티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서 했던 키스가 내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그의 두 팔이 힘으로 나를 비좁은 사각지대에 가두면서 그의 눈동자가 내 시선을 고정시키는 바람에 나는 숨을 곳이 조금도 없었다.
"그게…… 나쁜 짓이었던 건가요?"
"왜 아닐 것 같아?"
"지금 넌 이름난 문제아와 함께 있어."
"땡땡이에 치고 박고 싸우고, 낙제에……"
"그렇지만 내가 한 나쁜 짓은 이거 하나밖에 없었어."
기나긴 시간 속에서 진심을 다해 갈망*해온 듯한 그의 그윽한 눈빛은 그의 웃음 섞인 목소리와 함께 내 숨결에 닿았다.
(*립스피에도 언급된 단어 渴慕, 이후에도 언급됩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착한 후배님을."
(*好学生 원문은 착한 학생이지만 제 취향대로 의역함)
오토바이가 쏜살같이 지나가면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멈추자, 백기가 헬멧을 벗고 단번에 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어폰에선 여전히 고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백기는 참다못해 고진의 말을 잘라버리고 그와 동시에 바로 집으로 달려가 욕실에 들어갔다.
"이제 그만 좀 하시지, 이런 건 너희들이 처리할 수 있잖아?"
"야, 너야말로 데이트 가려고 서두르는 거잖아? 급하다고 서둘러 가길래 만두 두 개 포장해줬더니."
"가져가서 너 혼자 먹던지."
"아이고, 여자 때문에 친구는 뒷전이시네."
"알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만두로 네 주둥이나 막지 그래?
"끊어, 정말로 바쁘다고."
백기가 말을 마치자 전화기 너머에서 나는 비명소리가 재빨리 끊어졌다.
마침내 조용해졌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수증기에 안개가 자욱해지자 그는 옷을 두 세벌 벗어 제끼더니 재빨리 샤워를 했다. 촉촉해진 머리를 닦고 침실로 돌아오니 시간은 마침 아침 9시였다.
늦지 않았네. 백기는 이렇게 생각하며 한쪽에 있는 스탠드형 옷걸이에 시선을 옮겼다.
흰 교복이 조용히 걸려 있었고 쏟아지는 햇살이 잘 다려진 소매의 칼라에 걸려 있고 싱그러운 세제 냄새가 은은하게 향을 풍겼다.
학교 측의 초대를 받은 백기는 상자 바닥에 깔려 있던 고등학교 교복을 들춰내면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다리미까지 찾았다.
이 다리미 역시 여자아이가 사온 거였지, 평소에 자신은 귀찮아서 잘 쓰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자리에 가는 것이니 그는 인내심을 들여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자기 관리를 했다.
그녀와 함께 연모 고등학교를 다시 찾는,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
*
머리카락이 그럭저럭 말라서 백기는 샤워 타월을 아무렇게나 침대 위로 내던졌다. 그러고선 교복으로 갈아입고 열심히 교복 단추를 하나하나 채웠다.
심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두 번째 단추 자리는 실밥만 미세하게 보일 뿐, 단추는 보이지 않았다.
그가 힐끗 보니 9시 15분, 나갈 시간이었다.
평상시의 그는 외출할 때 거울을 보는 습관이 없었지만 오늘의 백기는 자기 자신을 두어번 더 쳐다보고 머리도 더 만져봤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웃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은 그가 자전거 페달을 밟고 연모 고등학교 교문 앞까지 다다를 때까지 계속됐다.
*
학교에서 준비한 행사 절차에 따르면 지금은 다들 이미 각자의 교실에 있을 시간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백기는 능숙하게 옆 측면 계단을 따라 여자아이의 반까지 걸어갔다.
하지만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
문득, 그는 이건 틀림없이 교복 탓이라고 생각��다.
그가 몸을 돌려 위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여자아이가 있는 교실로 가서 몸을 살짝 기울여 뒷문에 있는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 각도에서는 교실 안의 사람들이 자신을 절대 발견하지 못하겠지.
*후의 내용 복선
이건 백기가 17살이 되던 해부터 아주 확실한 일이었다.
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봤다.
이전에도 수없이 그래왔듯이 그는 지금 같은 순간에, 사람들 속에서 그녀를 한눈에 찾았다.
올라가는 그녀의 입꼬리, 햇빛 아래 그녀의 교복에 번지는 그림자, 그리고 반짝이는 그녀의 두 눈동자.
자신의 기억 속에 깊이 박혀 있던 그 시절의 장면들이 모두 빛을 밝히는 것 같았다.
백기 자신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 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던 감정들도 모두 서서히 타올랐다.
웃음꽃을 피우는 가운데 한예준이 자신의 이름을 언급하고 잠시동안 상당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을 예리하게 캐치해냈다.
한예준 이 자식은 필터링 없이 말하는 버릇을 고칠 때도 됐는데.
백기는 눈썹을 치켜올렸지만 무의식적으로 진지하게 듣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그들의 논쟁과 평가에 연연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할지 듣고 싶었다.
"선배는……"
"사실은 예전에도……"
여자아이의 목소리는 주변에서 여기저기 떠드는 이야기 소리에 삼켜진데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서 더욱 제대로 듣기 힘들었다.
분명 다들 졸업해서 사회생활 하고 있을텐데도 왜 아직도 고등학교 때처럼 시끄러운 거지?
그러다 백기는 여자아이가 갑자기 일어서는 것을 발견하고 급히 모퉁이로 몸을 숨겨 천천히 7반 뒷문에 멈춰서서 그녀가 교실을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보니 아쉬움은 아쉬움이 아니라 그냥 조금 늦었던 것일 뿐이었다.
여자아이의 그림자가 계단 입구에서 사라지자 백기는 문득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알 것 같았다.
*
그는 지름길로 가기 위해 옥상으로 달려가 열려져 있는 창문으로 다른 건물의 5층에 있는 음악 연습실로 뛰어 들어갔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떨리면서 기대되기 시작했다. 18살 때처럼 셀렘을 멈출 수 없었다.
3장 회상
결국 우리는 선생님이 열쇠를 가지고 연습실로 돌아오시기 전에 몰래 빠져나왔다.
가슴 한가운데에 설렘과 떨림이 한데 모이면서 낭만을 가진 붓 하나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서 우리가 햇살 속에서 함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는 것 같았다.
"선배(学长), 이렇게 선배와 학교 안을 걷는 건 처음이네요."
백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눈을 내리깔면서 나와 맞닿고 있는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었다.
"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냐."
"그냥 갑자기……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내가 기뻐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안에는 무척이나 강렬한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한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 그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는 반 단톡방 메세지를 한번 쓱 보고 고개를 들어 백기를 바라보았다.
"10분 뒤에 교실 안에서 사진 촬영을 한대서 교실에 다녀올게요."
"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계단 입구로 향하기 위해 돌린 발걸음은 확실히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 나는 그의 옆을 걸으면서 조용히 발걸음을 늦췄다. 강의동 안의 먼 곳으로부터 시끌벅적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와 백기는 느릿느릿 걸으면서 시간이 슬그머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었다. 분명 잠시 뒤면 다시 만날 텐데도 분명 괜찮을 거라는 말은 없었다.
문득 이게 한 번에 15분 걸리는 사진 촬영인지 아니면 45분짜리 수업인지 구분이 안 갔다.
교실 입구에 거의 다다르자 딱 10분이 되었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의 손을 놓았다.
"촬영이 다 끝나면 메세지 보낼게요!"
"응."
*
"계속 너 찾았어! 어디 갔었어?"
(*입맛대로 의역)
"또 누가 안 왔는지 볼까……"
"왜 이렇게 고등학생인 것처럼……"
"우리 지금 고등학생 아니었어?"
내 곁에 선 곱디 고운 소녀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단 한 순간만에 나는 분명 평범했지만 반짝이던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좋아하는 친구가 옆에 있고 좋아하는 소년은 방금 전 내 손을 잡았었다.
"자! 다들 이쪽 봐——"
"3——2——1——"
"치즈——!"
과연 내 청춘은 언제 막을 내렸을까?
어쩌면 그건 졸업식이였을 수도 있고, 바쁜 업무를 처리하며 분주하게 뛰어다니던 때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여지껏 막을 내린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눈부시게 피어오르면서.
"이따가 내가 찍은 사진들 반 단톡으로 보낼게. 다들 알아서 저장해!"
"지금부터는 자유 시간이니까 강의동의 다른 곳을 찾아서 사진을 찍거나 다른 반 친구를 찾아가도 돼."
"시간 되면 다들 곧장 운동장으로 모이고!"
단체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수업 시간이 끝날 때 나오는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다들 삼삼오오 모여 이따가 어디로 가서 사진을 찍을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른 반들도 같은 일정이라 교실 밖 복도는 서서히 떠들썩해졌다. 방과 후 쉬는 시간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교실 밖에서 뭔가 관심을 끄는 일이 있는지 복도를 지나던 사람들은 의아해하며 발걸음을 늦추고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교실 뒷문에도 몇 명이 모여서 무슨 소리를 속닥이고 있었다.
"유연아, 이따가 같이 사진 찍을래?"
"나는 볼일이 있어서, 너희들 먼저 가봐."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켜서 백기에게 메세지를 보내려는데 복도 밖으로 유난히 우렁찬 한예준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백기 형?! 어쩐 일이에요!"
"오고 싶어서 왔어."
나는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교실 뒷문 너머로 한 사람이 조그맣게 보였다.
*
내가 휴대폰을 쥐고 얼떨떨하게 문 쪽을 향해 걸어가니 백기가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복도 창가에 비스듬히 ��대어 있었다.
그는 한 손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으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금색의 빛이 그의 몸을 비추면서 무관심해 보이는 두 눈동자는 역광에 숨겨져 완전히 차가워보였다. 백기의 얼굴에선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잇따라 쏟아지는 놀라움과 궁금증 가득한 시선들 또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한예준은 흥분해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지만 그의 마음은 딴 데 가 있는 듯 그는 한예준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선 갑자기 뭔가를 알아차린 듯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의 시선과 마주치면서 무관심해 보이던 그의 호박색 눈동자는 순식간에 밝아졌다.
그는 주머니에 휴대폰을 아무렇게나 쑤셔놓고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촬영은 끝났어?"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왜…… 안 불렀어요?"
"널 기다리는 거야, 별일도 아닌 걸."
"갈까? 함께 돌아다니자."
그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당기면서 아무렇지 않게 사람들 속을 누볐다.
"백기 형, 여자 때문에 우정을 버리는 거예요?"
"알겠으면 방해하지 마."
백기는 한예준의 외침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귀찮다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기억 속의 풋풋하고 반항적인 얼굴이 이 순간과 겹쳐 보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조용히 요동치는 것 같았다.
그는 그저 내 손을 잡고 복도를 거닐었을 뿐인데도 나는 웃음이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그렇게 입을 다물어보려고 했는데도.
"이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에요?"
"나는 전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
"오랫동안 생각해 왔어. 아주 오랫동안."
그는 만족스럽게 턱을 살짝 치켜들고 덩치 큰 남자아이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히 지어보였다.
"모든 사람들에게 너는 내 거라고 말하고 싶어."
"사람들이 너에게 눈독 들이지 못하도록."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거리와 아직 하지 못한 말들이 지금 이 순간 서로 마주잡은 손바닥 안에 한데 모였다.
나는 이때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억누르려고 노력하면서 손을 입가로 가져가 선배에게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그의 귓가에 흘러내리며 피어싱이 빛을 반사해 햇빛 아래에서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내가 그의 귓가로 다가가자 그림자가 겹쳐지면서 청춘 속의 비밀을 간직한 속삭임이 되었다.
"선배님(学长), 걱정마세요."
"저는 선배밖에 없는 걸요."
*
한가로이 교정을 걷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도서관 근처에 와있었다.
지금의 도서관은 기존보다 두 배나 증축되면서 교정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옮겨 도서관 안으로 들어갔다.
*
커다란 통유리창이 햇빛을 로비 전체로 끌어 들였고 울창한 녹색 식물의 향이 책 향기에 섞여 공기 중엔 편안한 향기로 가득했다. 지금의 도서관은 이미 기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여전히 추억이 어른거려 나는 백기의 손을 잡고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갔다.
분명 방학인데도 도서관에는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천천히 하면서 조용히 그들 옆을 지나갔다. 다행히도 도서관 내부는 원래 상태 그대로 유지된 것 같았다.
모든 책상과 책장이 최신 스타일로 바뀌었지만 나는 예전 기억을 더듬어 그 시절 내가 가장 즐겨앉던 곳을 찾았다.
문득 과거의 내가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나는 고개를 돌려 멀리 떨어진 구석 쪽을 바라보았다.
"선배(学长)는 그 때 저쪽에 앉아있었죠?"
"알고 있었어?"
"우연히 마주쳤던 적이 많아서요."
"그 시절 제가 고개를 들면 항상 많은 책을 앞에 쌓아놓고 계속 잠을 자던 선배가 보였어요."
"그 당시에는 선배가 왜 굳이 도서관까지 와서 잠을 자는 걸까, 여기가 조용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햇빛 사이로 먼지가 천천히 흩날리던 시간은 어쩌면 우리가 가진 몇 안 되는 과거일 것이다.
"그럼 지금은 그 답을 알겠어?"
"그럼요. 사실…… 선밴 더 가까이 와도 됐었어요."
나는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도서관 깊숙이 들어갔다.
"그때 우리가 빌렸던 책이 아직 남아있다고 했죠?"
"보면 알 거야."
우리는 책장 하나하나를 지나 빛과 그림자 속을 누비다가 마침내 해외 서적 구역에 멈추었다.
백기는 책장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심코 잠깐 어느 위치에 머물렀다.
그는 손을 들어 높은 곳에서 책 한 권을 꺼내 천천히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그는 한동안 그 페이지를 보더니 끝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웃었다.
"찾았어요?"
내가 궁금해하며 묻자 백기는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면서 책 뒤에서 얇고 긴 종잇조각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도서 대출증이었다.
수많은 낯선 이름들이 작은 네모칸 안에 적혀져 있었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고 위쪽을 바라보았다.
유연, 백기.
4장 회상
"선배가 베개로 삼던 책이 알고보니 제가 빌렸던 책과 같은 거였네요."
"어쩔 수 없었어. 노력은 해봤지만 이해가 잘 안 됐으니까."
"보기만 해도 졸렸어."
그는 어깨를 약간 으쓱하고 자연스럽게 《바이런 시집》을 펼쳤다.
"선배(学长)는 저보다 두 살 선배긴 해도 그 당시 저와 함께 공부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몰라요."
"공부하고 쉬는 시간에 제가 책을 몇 권 추천하면서 선배에게 독서하는 취미를 길러줬을지도 모르겠네요."
(*원문은 복습인데 공부로 적당히 맞췄습니다.)
나는 이 말과 함께 책장에서 낯선 시집 한 권을 꺼냈다.
"독서하는 취미?"
"네 말이니까 아마 시도는 해봤을 거야."
"취미가 안 맞았으면요?"
"잤겠지."
"자는 척을 했거나."
그는 우쭐대며 짓궂게 웃더니 몸을 돌려 다른 줄에 있는 해외 문학 책장을 바라보았다.
"어쩔 수 없어. 책 보면 정말 졸리다니까."
"완전 수면제야."
"일단 해보자니깐요."
나는 몸을 살짝 숙여 책장에 질서있게 놓여져 있는 책들을 보면서 손가락으로 책등 위의 이름을 빠르게 지나쳤다.
"책을 읽을 땐 선배가 좋아하고 관심있는 것부터 읽기 시작해야 해요."
"예를 들어 좋아하는 장르나 선배의 마음을 움직이는 제목, 혹은 머리말 같은 거요."
"아무거나 보면 당연히 눈에 안 들어오죠."
"그런가?"
백기는 무심코 책 한 권의 이름을 얼핏 ���고는 왜인진 몰라도 그 책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는 손을 뻗어 책장에서 그 책을 집어 들고는 즉흥적으로 몇 페이지를 넘겼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는 눈부시고 강한 햇살에 배어 있었고, 뻗친 머리카락은 유연하게 늘어진 금테를 그렸다.
아래를 보는 그의 가늘고 긴 속눈썹은 햇빛에 물들었다.
나는 조용히 청춘의 시간에 만났더라면 절대로 잊지 못했을 백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가만히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꽃들이 언제나 활짝 피어나는 것 같았어."
"마침내 여름이 오듯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얼떨떨하게 그가 나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보았다.
심장소리가 귓가에도 들릴 것처럼 가슴이 계속해서 뛰기 시작했고 얼굴도 빠르게 달아올랐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자 백기는 아무말 없이 내 쪽으로 한걸음 다가와 나를 완전히 그의 그림자에 가려버렸다.
"왜 그래요?"
"다른 사람에게 지금 네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지금…… 제가 무슨 표정인데요?"
"안 가르쳐줘."
"이건 오직 내 거니까."
그는 만족스럽게 입가를 치켜올렸다.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내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우린 내가 그의 눈동자 속에서 희미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잘 생각해봤는데 처음부터 너와 함께 공부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마 귀찮더라도 하는 수 없이 교과서와 해설지를 괴로워하며 봐야 했을테니까."
"하지만 네가 옆에 있었더라면……"
"학교든 공부든 분명 모두 기대됐을 거야."
"물론 네가 그 모든 것들을 기대하게 만들었겠지."
"선배(白起)."
나는 진지하게 그의 눈을 바라보며 손끝으로 살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제가 정말 선배를 기쁘게 한 건가요?"
"쭉 그랬어."
"너를 만난 그 순간부터 너는 쭉 나를 기쁘게 했어."
"학교를 가려고 준비하던 일들이나, 복도에서 모퉁이를 돌 때에도. 학교가 끝나면 내일이 빨리 오길 기대했고, 라디오 체조 시간에는 너의 반을 지나가기도 하면서……"
"매일매일이 즐거웠어."
그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을 움켜쥔 것처럼 부드럽게 내 손목을 잡았다.
애정이 깊은 산속의 낙엽처럼 묵직하게 내 가슴 속에 쌓이면서, 입을 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후회 돼."
"……네?"
"지금 그 표정도 내 거야."
그의 불타는 눈빛에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책을 끌어당겨 화끈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고는, 몸을 웅크리며 앉았다. 내 마음을 모두 그에게 간파당한 것 같았다.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뭐가 불공평해?"
"저 혼자만 이상한 표정 짓고 그걸 선배가 죄다 봤잖아요."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예쁘기만 한데."
선배도 같이 내 앞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살짝 힘을 줘서 내 왼손을 잡아당겼다. 그 손끝에서 조금 뜨겁지만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져 왔다. 나도 모르게 시집을 내려놓자 그가 나에게로 곧장 보내는 시선에 마음이 하나로 통했다.
(*원문이 融在一起 인데 적당히 마음의 통함이라고 봤습니다~)
그의 눈빛은 뜨거웠지만 소년 시절의 풋풋함도 얼핏 묻어있었다.
"너무 예뻐서 나 혼자서만 볼 거야."
태양도 백기의 마음을 짐작한 듯 살며시 연한 색채의 홍조를 볼 양쪽에 더했다.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야릇한 분위기에 흔들거리고 있고 나는 그 봄날의 호박색 바다에 거의 녹아들 것만 같았다.
백기는 방금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머리 위에 대고 밝은 태양빛을 반쯤 가려줬다.
그리고 믿기기 힘들 정도로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내 손끝에 닿았다.
"유연."
"지금 네 눈엔 내가 어떤 표정이야?"
그는 조금 긴장하고 쭈뼛쭈뼛한 모습이었지만 한결같이 진실되게 나를 바라보며 한 치의 시선도 떼지 않았다.
내 청춘에 휙 스쳐지나갔던 바람이 이순간 이렇게 조용히 내 곁에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는 그에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이 표정은 오직 제 거니까요."
"……"
그는 내가 이렇게 말할 줄 몰랐는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꼬리를 치켜올리면서 머리 위에 대고 있던 책을 아래로 조금 내렸다.
"그럼 태양에게도 안 보여줄거야."
*
이후에 우리는 또다시 손을 잡고 학교 식당, 운동장, 체육관……등 여러 곳을 다녔다. 그리고선 강의동 건물로 돌아와 한 층 한 층 올라갔다.우리들의 흔적들이 실질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강의동 건물이 사라지기 전에 실험실, 컴퓨터실, 강당, 심지어 계단 모퉁이까지 찾았다.이 순간 우리가 16살인지, 아니면 지금의 우리인지는 이미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
백기가 나를 데리고 고3 교실로 들어갔는데 교실에는 아무도 없어 무척이나 조용했다.자리에 앉아 내 책상 앞에 기대어 선 그를 보는데 갑자기 그의 스웨터 조끼 아래에 있는 셔츠에 작은 실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이면서 넥타이를 들어올리다가 잠시 멈칫했다——백기의 고등학교 셔츠에는 두 번째 단추가 없었다.
"선배의 단추가——"
"다른 사람에게 준 거 아니야!"
그는 내가 무슨 오해라도 할까 봐 겁이 났는지 눈을 부릅뜨면서 내 말을 뚝 끊었다. 그러다 잠시 아무말 없이 어색하게 손��로 뒷목을 쓰다듬다가 한참 뒤에야 부끄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졸업식 때 너에게 주려 했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았네."
(*원문은 놓쳐버려서)
"단추는 지금도 내 서랍 속에 있어."
"풋."
"전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긴장하는 거예요."
내가 실실 웃으면서 그를 힐끗 쳐다보자 시선이 비어있는 단추 자리에 닿았다.
"그럼 우리 집에 돌아가면 저한테 주는 거예요."
"응."
"그래도……"
나는 잠깐 조용히 눈여겨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바로 몸을 일으켰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돌아올게요."
말을 끝내자마자 뛰어나가 복도 쪽 생활 용품 코너에서 반짇고리를 운좋게 찾아 다시 교실로 되돌아갔다.
"선배(白起), 조끼 좀 벗어봐요."
"……왜?"
그는 궁금증에 차 있었지만 그럼에도 스웨터를 선뜻 벗어줬다.그의 시선을 받으며 나는 내 옷깃에 있는 나비넥타이를 들어 올리고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두 번째 단추를 잡아뜯었다.
"제 단추 선배에게 줄게요."
"거절은 안 받아요."
"……"
백기는 아무말 없이 그저 나��� 바라보았다.
나는 그의 앞에 가서 그의 첫 번째 단추를 풀고는 내 단추를 그 빈자리에 대고 조심스럽게 바느질을 했다.나는 고개도 들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 단추만 꿰매면서 손등으로 이따금씩 뜨거운 온기를 느꼈다.
"오늘 고마웠어요, 선배."
"제 앞에 나타나줘서 고마워요, 제 손을 잡아줘서 고마워요."
"이 강의동 건물, 이 학교…… 그리고 선배에 대한 기억을 완전하게 만들어주셔서 고마워요."
과거의 아쉬움이 끊임없이 새롭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덧칠되면서 청춘의 조각들 하나하나가 언제 돌아봐도 아름다운 장이 되었다. 나는 마지막 바늘을 마저 꿰매면서 흰 실을 살짝 잡아당겨 작은 매듭을 지었다.내 두 번째 단추가 백기의 셔츠 두 번째 단추 자리에 조용히 누워있었다. 나는 한참 동안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단추를 달았다.
"연아."
살랑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고개를 들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그의 시선을 맞았다.
"난……"
(*문 소리)
"거기……"
교실 문이 갑자기 열리자 나는 무언가에 찔린 것처럼 몸을 홱 돌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공 선생님이셨다. 그는 우리를 보고 멍하니 있으시더니 끝내 웃음을 터뜨리며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셨다.
"늬들 둘이 거기서 뭐하니?"
"……"
왠지 모르게 학생 때 연애가 들킨 것처럼 나는 난처하게 입을 오므리고 말을 하지 못했다.
(*본토에는 早恋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학창시절 연애는 금지하나봄.)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그렇니. 유연아 너는 잠깐 나랑 같이 교무실로 가자."
"왜요?"
백기는 눈살을 찌푸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선생님 저희 학생 아니거든요? 무슨 일 있는 거면 제가 그녀와 함께 갈게요."
(*원문은 早恋 아니거든요? 학생 때 연애하는 거 아니거든요? 하면서 빼액함.)
"이것 좀 보게? 급한 일이야."
"유연이에겐 교무실에 가서 이따가 모두에게 나눠줄 자료 좀 가져다 달라고 부르는 거야."
"너는 말썽이나 피우지 마렴."
놀리면서 말하는 담임 선생님의 말투가 나를 쥐구멍으로 숨어들게 해 나는 서둘러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선생님 저 곧 갈게요."
내 대답을 듣고 공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고개를 젓더니 먼저 교실을 빠져나가셨고 나도 서둘러 따라나섰다.
"금방 올게요."
끊임없이 울리는 심장 소리가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채로 나는 성큼성큼 교실 문 앞까지 걸어갔다.
"연아."
"난 널 좋아해."
"연아, 난 네가 좋아."
4장 기억의 실루엣
나는 백기와 손을 잡고 탁 트인 운동장을 걸었다.
태양도 새 벽돌과 타일이 과거를 대체할 거라는 걸 아는지, 햇빛을 강하게 비추며 교정 구석구석을 찬란한 광채로 덮었다.
눈앞의 한 장면은 시공간이 슬그머니 *접혀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예전과 같았지만 한편으론 내게 수많은 시간의 흔적을 더해주었다——
지금처럼 *서로 맞잡은 손바닥, 가까이에 있는 얼굴, 그의 이름을 부르면 되돌아오는 웃음 섞인 대답들은……
과거에 사람들 속에서 멀리서만 또 무의식적으로 힐끗 쳐다보거나, 스쳐 지나갔지만 알지 못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아니었다.
"왜 웃는 거야?"
나는 놀라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나도 모르게 입꼬리는 계속 올라가기만 했다.
"제가 그렇게 티나게 웃고 있었어요?"
"응, 방금도 계속 널 보고 있었는데."
"웃기도 했지만 나 몰래 손바닥을 꽉 잡기도 했잖아."
그의 진실한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반쯤 가늘게 떴다.
"백 형사님께서 그렇게 절 예리하게 관찰하셨다면 제가 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맞춰 보시겠어요?"
"맞히면 오늘 '방과 후'의 시간은 모두 내 거인 거야?"
"그건 맞히면 다시 얘기해요~"
"그럼 힌트 좀 줘. 정말 이기고 싶단 말이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람이 그의 이마를 스치면서 제멋대로인 모습의 그를 반짝 보여줬고 나는 그의 이런 모습이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언제든지 볼 수 있었던 익숙한 모습이었지만 그게 낯설게 느껴졌던 이유는——
한 순간에 잠깐,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18살의 그 소년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만 까치발을 들고 살며시 그의 볼에 뽀뽀했다.
백기는 좀 어리둥절해 했지만 그의 호박색 눈동자는 더욱 빛이 났다.
"이건 힌트인 거야, 아니면 무심결에 한 행동인 거야?"
"둘 다요, 나머지는 선배가 맞춰보세요, 저한테 또 묻지 말고요!"
어렴풋이 웃는 그의 미소와 함께 햇빛이 우리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면서 빨간색의 육상 트랙에까지 닿았다.
다음 순간 백기는 내 손바닥을 꽉 잡았다.
"솔직히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론 알 수 없지만."
"우린 아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또다시 과거를 회상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내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운동장을 정처 없이 함께 돌아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는데 산책만 하는 게 아니었네."
"어떻게 야자하는 저녁 때마다 운동장에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있을까 했는데."
(*데이트한다는 의미로도 간혹 쓰임.)
"선배 의외로 야자 시간까지 남아있었나봐요?"
"너무하잖아."
"내가 깨어나면 늘 저녁 시간이었어."
"그건 야자한다고 볼 수 없잖아요!"
"계속 궁금했던 건데요. 그러면 밤에 잠이 잘 안 오지 않아요?"
"잠이 안 오면 공 가지고 놀았지."
"뛰고 나면 금방 피곤해져."
"안 그러면 아침이 될 때까지 뭐라도 좀 했어. 어차피 학교 가면 잘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가 이렇게 말하자 나는 그만 웃어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마주 잡고 있는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살포시 눈을 깜박였다.
"그럼 싸울 때 집중 못하지 않아요?"
"그런대로 괜찮았어."
"그럴 때는 보통 정신이 또렷했어. 게다가 시비 거는 사람들 중엔 주먹보다 말이 앞선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싸우러 온 건지 만담 개그를 하러 온 건지 모르겠지만."
"그럼 계속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줬단 말이에요?"
"누가 듣고 있겠어?"
"가끔은 싸움이 끝날 때까지도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왜 나를 찾아온 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었어."
우리 둘은 말을 주고받으며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바람은 서로를 휘감아 내 치맛자락을 가볍게 휘날렸고 살며시 그의 넥타이도 흩날렸다.
저 멀리 강의동 안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멀고도 가까이서 두런두런 들려왔다.
마치 청춘이었던(年少时光) 우리의 시간들을 금방이라도 포용할 것처럼.
"내가 맞췄어?"
걸음을 멈추고 밝고 아름다운 햇살을 맞고 있는 그는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는 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면서 두 손으로 뒷짐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췄습니다—— 나의 선배님(我的学长)."
"'방과 후'엔 뭘 하실 건가요?"
순간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바람이 맹렬하게 불기 시작했다. 흩날리는 낙엽 아래에서 내 입술은 촉촉해졌다.
*풋풋하면서 앙큼한 모먼트
내가 어떻게 교무실에 갔는지, 또 어떻게 자료를 가지고 갔는지, 공 선생님께서 또 무어라 말씀하셨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나는 사무실 입구에 서서 얼빠진 상태로 두툼한 자료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심장 뛰는 소리로 가득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꾸물대면서 교실 쪽을 향했다.
그를 만나면 무슨 말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어떤 표정으로 그를 바라봐야 할까?
나는 16살에 고백을 처음 들은 것처럼 몹시 기뻐했고, 머릿속은 온통 그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계단을 지나갈 때 문득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내가 직감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백기가 옥상으로 통하는 계단에 서서 한 손으로는 난간에 기대 턱을 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뒤로 맑고 깨끗한 하늘이 나타나면서 그는 눈꺼풀을 드리우며 조용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처음이야."
"뭐가요?"
바람이 살랑거리며 그의 옷깃을 휘날리자 *맑은 하늘이 과거에 그가 품었던 모든 *갈망을 소년의 얼굴에 은밀히 감추었다.
(*원문 바람이 가볍고 구름이 얇다, 즉 날씨가 좋다는 뜻.
*립스피에서도, 앞에서도 쭈욱 언급된 갈망이란 단어; 무언가를 굉장히 욕망하거나 동경한다는 의미로도 많이 쓰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계단을 밟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그 때 바람이 일순간 불기 시작하면서 빠르게 내 품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
내가 무의식적으로 눈을 가늘게 뜨자 손에 들고 있는 자료 맨 윗 페이지 몇 장이 공중에서 호선을 그리며 느릿느릿 내 발 옆으로 떨어졌다. 이뿐만이 아니라 어디선가 불어온 이 바람은 마치 다른 속셈이 있는 것처럼 자신들이 바라는 목적지로 나를 안내했다.
쭈그려 앉아 날아가는 종이를 주우려고 손을 내미는데 한 손이 나보다 더 빨랐다. 그의 손가락은 날아가는 자료들을 주워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보다 더 빠르게 그것들을 집어 고의적으로 내가 그것들을 잡지 못하게 했다.
내가 고개를 들자 백기의 다른 손이 내 뒤에 있는 난간에 닿아 있었고 그는 나를 사각지대에 가둔 상태였다.
"선배 일부러 그런 거죠?"
"일부러 그랬지."
그는 조금도 부인하지 않고 매우 시원스럽게 인정했다.
"네 대답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그가 무엇을 묻는 건지 깨닫자마자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방금 전에 한 말인데, 지금 바로 대답해야 해요?"
"난 네가 선생님 찾아뵙고 오기를 계속 기다렸는걸."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백기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당연한 답변을 한 것처럼.
내가 유심히 그를 바라보니 내가 그를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자 그의 그윽한 두 눈동자가 미묘하게 수축되어 있고 목젖 역시 위아래로 미끄러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배 지금…… 긴장한 거예요?"
"당연하지."
"그토록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온 여자아이인데."
"어떻게 긴장하지 않겠어?"
"그럼 답을 확실히 알고 있겠네요?"
"알고 있지만."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어."
"얼른 대답해줘."
그는 살며시 손가락을 꽈악 쥐었다. 뜨거운 숨결은 나와 겨우 몇 센티미터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서로가 멀리 떨어져 있던 세월동안 이곳에서 우린 이정도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었다.
내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은 그의 교실까지 몇 걸음 더 가야했을까?
피아노 실의 피아노에서 그가 앉아 있던 나뭇가지 끝까지는 몇 미터였을까?
그리고 길었던 7년이라는 세월은 또 얼마나 큰 단위여야 가늠이 가능할까?
수많은 장면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최후에는 나를 향해 힘차게 다가오는 소년의 모습으로 수렴되었다.
그는 청춘의 시간을 모두 뛰어넘어 내 앞으로 왔다.
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앞이 점점 뿌옇게 변했다.
가슴 속에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애쓰면서 나는 그를 향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저도 물론 선배를 좋아하죠."
이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다.
세상의 모든 빛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그의 눈동자에 나는 시선을 전혀 뗄 수가 없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18살의 백기(白起)일까, 아니면 24살의 백기(白起)일까?
어쩌면 둘다일 수도 있고, 둘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나와 백기(白起).
그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년과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나일 뿐이다.
*
그가 고개를 숙이자 가벼운 키스가 내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턱을 들어올려 그에게 대답했지만 사그라들지 않는 뜨거운 열기가 입술에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
"선배(你)……"
그가 또다시 내게 키스를 하면서 내 말은 채 끝나기도 전에 틀어막혔다.
살며시 부드럽게 키스했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거칠게 휘몰아치면서 온몸이 불타올라 눈동자마저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그의 숨결에 모조리 압도당해 나는 저항할 수 없이 그 키스에 사로잡혔다.
눈을 감기조차 아쉬워 나는 호박색의 그 두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동자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들끓고 있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같이 끓어올랐다.
"눈 정말 안 감을 거야?"
(*의역)
타당한 소리를 한다는 듯이 당당한 그의 말에 나는 그만 참을 수가 없어, 그의 입술을 가볍게 깨물어 방금 전 일부러 나를 놀렸던 그에게 벌을 주었다.
내게 되돌아온 건 거부할 수 없는 침략이었다. 날렵한 혀끝이 능수능란하게 내 치열을 비집고 벌리면서, 구석 곳곳에 그의 흔적을 남기려는 것 같았다.
호흡과 심장의 두근거림은 리듬이 모두 흐트러진 상태였고 깊은 애정이 열렬하게 느껴지는 숨결이 입술과 치아 사이에 뒤섞이면서 간절히 상대방에게 내 모든 것을 맡기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모든 마음이 입술과 치아 사이에서 교차되면서 나뒹굴었고 그것들이 호흡과 함께 온몸에 스며들면서 영혼 속 깊이 가라앉았다. 그가 숨가쁨과 동시에 열기로 인해 바싹 말라오는 세상을 가득 채워주었다. 뒤얽힌 숨결은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기를 반복하면서 *끝까지 다다를 수 없도록 계속해서 괴롭혔다.
좀더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좋아하는 마음이 좀더 커지면서 영원토록 만족하지 못할 것 같았다.
(*원문은 만족할 수 없도록, 충만을 느끼지 못하도록…… 인데요. 어휘력이 부족해서 적정 수위의 표현을 찾지 못해 그냥 마음대로 질렀습니다. 하지만 다들 민증에 잉크 마르신 분들이니 아시겠죠? 제 마음……? 원래는 저기다 '**에' 란 말까지 넣을려다 참았습니다.)
"선배(白起)……"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지면서 흐릿해졌다. 그에게 모든 힘을 빼앗긴 나는 그만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면서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 그윽한 두 눈동자는 강렬한 감정을 내뿜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크게 했지만 되려 입술에 바싹 대고 쉴 뿐이었다.
"아주 오래 전, 네가 나에게 꿈을 주었어."
"그 꿈은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줄곧 잊을 수가 없었어."
그는 손가락 끝으로 천천히 내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살며시 애무하기 시작했다.
(*사실 어루만지다 랑 애무나 그게 그 뜻인데 그냥 제가 좋아서 넣었어요. 자극적인 걸 너무 좋아해서 큰일났네요.)
"내가 이룰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꿈은 언제나 내 곁에서 함께 했어. 그 꿈 덕분에……"
"나는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
"지금 네가 내 꿈을 실현시켜 준 거야."
"그럼 선배는 만족하시나요?"
"아니, 난 더 많은 것을 원해."
그는 애정을 가득 담고 입술 위를 촘촘히 핥았다. 영역 표식을 새기는 것처럼.
복도에서 청량한 벨소리가 울리면서 바닥에 흐트러진 종이는 바람 위를 살랑살랑 타면서 나부꼈다.
"맞다, 이 자료들 반 친구들에게 나눠줘야 하는데……"
"꼭 지금 해야 돼?"
그는 나를 유혹하듯 나른하게 내 입술을 틀어막고는 과격하고 또 야릇하게 내 입술을 휘감았다.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나는 조금도 발버둥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와 함께 이 기울어진 시간 속에 가라앉고 싶을 뿐이었기에.
"그럼 내가 너를 좀더 차지하게 해줘."
*오류 있으면 따로 말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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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하면 물곰탕이죠~ 물곰탕=물메기탕=곰치국 ⠀⠀⠀⠀⠀⠀⠀⠀⠀⠀⠀⠀⠀⠀⠀⠀ 20년 전 저도 젊었을 시절부터, 마산 시내 오동동에도 물곰탕집이 있어 한번 먹어보고 싶었어요.. ⠀⠀⠀⠀⠀⠀⠀⠀⠀⠀⠀⠀⠀⠀⠀⠀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강원도 여행을 여러번 왔어도 이게 호불호가 있을 법한 메뉴라 일행들도 있고 기회가 안 닿아 곰치국은 먹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 그런데 얼마 전, 미사리에서 야심차게 오픈한 컨셉츄얼 포차 브랜드의 메인 메뉴를 동해 바다를 배경삼아 촬영할 날이 있었지요.. ⠀⠀⠀⠀⠀⠀⠀⠀⠀⠀⠀⠀⠀⠀⠀⠀ 우리 크루들과 속초까지 일하러 온 김에 맛있는 점심을 먹자 했습니다. ⠀⠀⠀⠀⠀⠀⠀⠀⠀⠀⠀⠀⠀⠀⠀⠀ 유명한 어느 생선찜집을 갔더니 너무 많이 불친절 해서 앉기도 전에 쫓겨나다시피 가게를 나와서 근처 느낌 닿는 집이 있어 갔더니 속초에서도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한 집이네요.. ⠀⠀⠀⠀⠀⠀⠀⠀⠀⠀⠀⠀⠀⠀⠀⠀ 물곰탕은 역시 소문으로 듣듯이, 생선이 뭔가 몬스터 같은 식감 입니다. 하지만 매우 담백하고 같이 딸린 곰치알도 매우 좋았어요. 동해 전통식으로 신김치를 넣어 끓여낸 식은 아니고 담백한 매운탕 맛입니다. ⠀⠀⠀⠀⠀⠀⠀⠀⠀⠀⠀⠀⠀⠀⠀⠀ 테이블들을 둘러보니 이 집, 가자미조림이 인기가 좋습니다. 안 시킬 수 없죠.. 물곰탕과 가자미조림을 적절히 주문하여 시켰습니다. ⠀⠀⠀⠀⠀⠀⠀⠀⠀⠀⠀⠀⠀⠀⠀⠀ 기본으로 나오는 조림과 반찬도 맛있고, 먹어보고 싶었던 물곰탕 소원도 풀고… ⠀⠀⠀⠀⠀⠀⠀⠀⠀⠀⠀⠀⠀⠀⠀⠀ 크루들도 조림과 함께 모두 맛있게 먹었다니 맛난 기억도 공유하고, ⠀⠀⠀⠀⠀⠀⠀⠀⠀⠀⠀⠀⠀⠀⠀⠀ 암튼 맛집 인정!👍🏼👍🏼 ⠀⠀⠀⠀⠀⠀⠀⠀⠀⠀⠀⠀⠀⠀⠀⠀ Life is too short for bad Food. ⠀⠀⠀⠀⠀⠀⠀⠀⠀⠀⠀⠀⠀⠀⠀⠀ #토라이의식탐일기_속초 ‘#사돈집’ ⠀⠀⠀⠀⠀⠀⠀⠀⠀⠀⠀⠀⠀⠀⠀⠀ ⠀⠀⠀⠀⠀⠀⠀⠀⠀⠀⠀⠀⠀⠀⠀⠀ #맛스타그램 #koreanfood #kfood #맛집탐방 #toraiirepublic #토라이리퍼블릭 #록엠씨 #음식사진토라이 #맛집리뷰어 #맛집일기 #록엠씨의식탐일기 #토라이맛집_속초 #물메기탕 #물곰탕 #곰치국 #속초맛집 #속초가자미조림 #속초물곰탕 (사돈집에서) https://www.instagram.com/p/CpO6vhSvz5L/?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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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친구와 보낸 목요일
이 여름이 끝나면 가을 전어 겨울 방어 같이 먹자 그러니까 아프지 말기 오래오래 건강하기
내가 할 수 있는 애정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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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어세이, 비록 여섯 송이의 화양연화는 아닐지 몰라도, 다시 우리가 만난다면 미역국을 끓여 먹자 그날을 내 생일로 정할게.
안녕하세요.
저희는 돌아가신 분들을 대신해 마지막 한 마디를 전해주는 ‘원모어세이’입니다.
우리 회사는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오는 문자 한 통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고객님들을 위하여 의뢰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들을 극비사항으로 취급하여 의뢰가 끝난 후 모든 정보를 폐기 처리합니다.
고객님께서 준비하실 물품은 고인께서 살아생전에 사용하셨던 휴대전화 하나면 충분합니다.
고인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원모어세이’로 연락 주세요.
어쩌면 살아생전에도 듣지 못한 말들을 들으실 수 있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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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대철, 47, 익사
나는 그래도 당신이 바닷가를 보면서 원망하지 않았으면 하오. 파도가 강하게 솟아오르는 날에도 바다를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하오. 당신이 바다를 떠나 이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바다를 보고 너무 많이 울지 않았으면 좋겠소. 끼룩- 끼룩- 갈매기 놈들이 우는 소리를 피해 귀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소. 여전히 바다를 사랑하는 당신이었으면 하오. 여전히 당신은 주말 낮에 조용한 모래 해변에 누워, 조금은 짠 바다 냄새가 나는 햇볕을 맞으며 따스한 낮잠을 자는 사람이었으면 하오. 당신이 나 때��에 많이 아플 것을 생각하면, 나는 애초에 세상에 없던 사람이 되고 싶소. 고향에 대한 기억이 없는 나에게는 바다와 당신이 나의 고향이었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삶이었지만, 나 그래도 운이 좋은 어부라 바다와 당신에게 몸 담그고 웃다가 갑니다. 내 인생이 비릿한 적도 많았고 너무 짠 적도 많았소! 그래도 당신을 만나 웃고 행복했던 날이 더 많았소! 그러니 당신이 바닷가를 보면서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러니 내가, 당신이, 우리가 사랑했던 바다 곁에서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오! 참 사랑했습니다. 여보.
02. 유대열, 28, 약물중독
환각에 풀린 눈으로 달을 바라본 일은, 지는 달도, 뜨는 달도, 어떤 것도 아닌 별과 별 사이의 또 어떤 별임에 나는 광활한 우주의 한 곳에서 누군가의 밤을 훔쳤다. 그리고 술 없이도 몽롱한 시간들임에 감탄했으며, 잠들지 않으며 잠들 수 있었다.
03. 김소영, 25,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내 장���식에 올 용기가 생겼다면, 내가 좋아했던 네 그 옷과 향수를 뿌리고, 내가 좋아했던 레몬 사탕을 먹으면서 와준다면 당신을 용서할게요.
추신_ 나에게 머물렀던 이유가 외로워서라도 괜찮아요, 그때 당장은 내 손 잡고 있으면, 거짓말일지도 몰라도 사랑한다며 안아주는 게 행복이었어요. 그런데도 곧 네가 떠날 때면 다 알고 있었어도 꽤나 많이 슬펐어. 그런데도 너를 증오는 못 해, 다음에 또 외로워 지면 나를 또 이용하라고 말했어. 사랑을 거짓말 해줬으면 했어, 나는 또 아무 의심 없이 또 네가 떠날 때까지 그 말을 믿었지, 나에게 잠시 올 때까지, 인간을 기다리는 개 마냥 아무것도 모르고 기다렸어, 네가 오면 꼬리를 흔들었어. 그러니, 내 장례식에 올 용기가 생겼다면, 내가 좋아했던 네 그 옷과 향수를 뿌리고, 내가 좋아했던 레몬 사탕을 먹으면서 와준다면 당신을 용서할게요.
04. 콩이, 7, 만성 신부전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기억나요. 길에 있는 나에게 소시지 같은 것을 주면서 당신이 다가왔어요. 춥디추운 겨울이었고, 아스팔트 위는 너무 춥고 오갈 데가 없어 자동차 밑에서 몸을 숨기고, 배가 고파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는데, 당신이 다가왔죠, 참 정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자기도 슬리퍼 차림이었으면서,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따뜻한 당신 집에 데려갔죠. 참,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내가 휴지를 뜯어놔도, 당신을 할퀴어도 언제나 당신은 다정하게 내 배를 쓰다듬어 주었죠. 쓰레기봉투를 뜯어 먹을 것을 찾다가 항상 원룸 건물 주인 할아버지들에게 쫓겨나곤 했는데, 당신의 집에 들어간 이후로는 따뜻한 우유, 사료, 간식들로 배를 채웠죠. 당신과 함께 몇 년을 지내며 서운했던 적도 있어요. 고양이는 외로움이 덜하다며 사료를 가득 채워놓고,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술에 가득 취해 밤늦게 들어와 내 이름을 불러주지도 않고 한번도 쓰다듬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던 날은 조금 슬펐어요. 그래도 당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더 커요. 그리고 모든 순간이 기억나요. 혹시 그때가 기억나시나요? 당신이 나에게 채운 가슴 줄은 조금 답답했지만, 당신이 나를 안고 그 하얀 목련 나무 밑에서 사진 찍은 날, 그 목련 공원을 산책했던 날 말이에요. 저는 그날이 유독 기억에 남네요. 참 따뜻한 세상을 선물 해줘서 고마웠습니다.
05. 오성택, 22, 파병 전투 중 전사
친구야. 군인이 된 걸 후회하냐고 그때 나에게 물었었지, 후회한다고 하고 싶어. 물론, 밀양을 떠나 타지에 와서 낯선 이들과 헤네시를 마시고, 시가를 태우고, 낯선 여자들과 섹스하고 그런 것들이 나쁘지만은 않았지만, 사람을 향한 방아쇠가 더는 머뭇거리지 않게 되었을 때, 죄의식이 만들어낸 내가 죽인 이들의 유령이 이제는 꿈에도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도 도축하는 것 마냥 쉽게 쏠 수 있게 되었을 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떨어져서 한 가정집을 당연하게 약탈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윤리적 행동들을 군인이라는 보람과 명분으로 정당화를 시켰을 때, 죄책감보다는 자부심이 더 커졌을 때, 더 이상 전투에 나가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때 있지? 그런 것에 익숙 해졌을 때가 처음 누군가를 죄책감을 느꼈을 때보다 더 후회됐어. 뭐 가끔 정 견디기 힘들 때는 여기 봉사하러 온 목사들 신부들한테서 성경책 좀 뭐 대충 읽고, 십자가 좀 대충 보고 세례명 같은 거 뭐더라 뭔놈의 요셉이였나 요한이었나 대충 지으면 신 같은 게 있어서 내가 한 일들을 다 용서해 준다며? 그 병신들은 내가 교회 십자가를 부수어 적군들 눈알과 항문에 박아 버리고 그순간에 희열을 느꼈던 거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내가 다 용서받았대. 마지막 죽어가는 그들 눈에는 평생 용서가 없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가끔 믿지도 않는 종교를 이용했지 뭐. 내 몸에 총알이 들어왔을 때는, 수류탄의 파편들이 몸에 박히고 나를 쏜 적군들을 보면서 숨이 끊어질 때는 그 사람들을 봐도 전혀 원망스럽지 않았어. 뭐 그 군인들도 자기 전에 내 마지막 눈빛이 생각이 난다면 뭔놈의 성경이니, 뭔 놈의 요한이니 요셉이니 하면서 버티겠지 뭐. 나를 쏜 그들을 내가 용서하지 않아도, 씨발 신이 그들을 용서 해주겠지 뭐.
06. 강수호, 25, 후천성 면역 결핍증
"우리 이 여름을 아끼지 말자.", "아끼고 아껴 닳아 버릴 바에는, 우리 그냥 이 계절을 낭비하자" 당신이 자작나무 숲에서 햇볕을 받으며 고백처럼 나에게 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강의실에서 책을 읽는 당신의 모습을 사랑했다.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도, 다른 이들이 떠드는 쉬는 시간에도, 점심을 먹고 포만감이 가득해 눈이 졸리는 점심시간에도 책을 읽는 당신을 훔쳐봤다. 내 이성이 툭툭 끊어지는 게 느껴졌는지, 우리는 그날에 당신이 찍은 굉장히 낡은 필름 사진들을 함께 봤고, 밤새도록 광안대교를 함께 봤다. 술을 평상시 한잔도 안 하는 나지만 그날은 어찌나 맥주가 그렇게 달던지. 나만 아는 당신의 잠자리 습관을 아는 것도, 조금 흥분하면 애매한 높낮이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까지도 여름을 하나도 낭비하지 않은 것처럼 그해 여름을 꽉꽉 채워서 행복했다.
유행하는 것은 다 해봐야 하는 나와는 달리 그런 것들은 시시하게 여기는 당신은 달라도 너무 달라 서서히 이별했지만, 나의 생일을 핑계로 당신에게 연락이 왔으면 기다렸던 날이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많은 남자들과 밤을 보냈지만, 당신과 느꼇던 몽글함과 몸이 꽉찼던 느낌은 전혀 없었고, 쾌락과 더러운 기분, 공허함 같은 것만 남았는데, 나는 멈추지는 않았다. 내가 찾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당신이 직장을 다니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당신을 쏙 닮은 아이도 생긴 것을 들었어요. 당신의 낡은 카메라로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들은 이제는 추억보다는 숨겨야 하고, 지워야 할 사진들이 더 많겠죠? 혹은 누군가 물어본다면 사랑이 아니라 실수였다고 대답하겠죠?
혹여 당신에게 피해가 갈까. 연락 한번 못했지만 사진 필름은 전부 태워주세요. 여름을 아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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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이번 주, 6통 작업했습니다.
-수고했어요. 추주임.
-네, 그러면 지금 의뢰인들게 전송하겠습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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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 ATEEZofficial: [#SEONGHWA] San-ah .. sorry ..let's eat together💚...
[#성화] 산아.. 미안…. 같이 먹자💚…
#ATEEZ #에이티즈
Translation: Heidy @ ATEEZ data • Please take out with full credit | Source: ATEEZ Official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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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수 끊겠다며 메스테마허 통곡물빵 단백질빵을 먹기 시작했었는데 어느순간 다른것들을 먹고있다. 먹어보고 괜찮아서 한팩을 사놨지만 그다음부터 아침으로 다른걸 먹고 점심도 저녁도 그냥 내키는대로 먹는다. 아이가 매 끼니의 메뉴를 고민할 때 “그냥 먹자. 일주일 21끼를 원하는걸로 다 채울필욘 없고 배를 채울만한 때와 맛있는걸 먹을 때를 구분하면 된다”며 집에 있는 대로 같이 먹을 때가 있었는데. 혼자인 지금은 매 끼니를 뭘로 채울까 고민하게 된다. 한가하군
20210509-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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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파도 같이 한강은 넘실 넘실 거렸다. 세상 모든 상처 다 집어 삼킬 기세였다.
친구 K의 소개팅(내가 주선한) 결과보고를 하고자 한다.
내친구 K 우리 회사 직원 K의 프로필 사진에 반해서 토요일 저녁에 카톡하고 화요일 저녁에 만났다고 한다. 그때가 2.5단계여서 9시면 식당, 카페 다 닫는데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너무 너무 좋아서 성수동의 스테이크 집을 갔단다. 나름 고가의 식당이고 분위기도 즐거웠고 어두컴컴한 조명에 분위기는 좋았단다.
식사를 잘 대접받은 우리 회사 K씨는 내친구 K에게 오마카세집을 대접한다고 해서 내친구는 혼쾌히 좋다고 했다는데...
여기서 부터 수가 꼬인다. 이 놈이 사실 날 것(회종류)을 못 먹는다. 어지간히 K씨가 좋았나보다. 나라면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나는 날 것을 못 먹으니 다른 걸 먹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되었을터.
처음 가는 오마카세 집에 압도 당하고 스테이크 집과 다른 환한 조명에 두 남녀는 발가 벗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친구도 그녀도 서로의 실체가 벗어지는 기분? 왜냐면 스테이크집은 상당히 어두웠다고...
더욱이 리드까지는 아니더라고 농담도 하고 맞장구도 쳐줘야 하는데, 친구는 저건 삼킬 수 있을까. 먹을 수 있을까. 요리사가 뭘 어떻게 할까. 등등 긴장을 해서 얼어 있었다고 하고, 그 흔한 아재개그도 못쳤다고 하니.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녀 K도 상당히 얼어 붙어 있었단다. 그렇게 두 남녀는 오마카세를 먹고 나와서 뒤도 안 보고 헤어졌다고 한다.
여기서 교훈은 처음 만나는 사이에 부담될 가격의 식사는 하지말자. 그리고 아는 거 먹자.
내친구 K 왜 나에게는 소개팅 안 해주는거냐. sunny하고 잘 해보라고 하는데, 그 사람하고 내가 잘해볼 군번이 아닌데. 앞으로는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소개시켜주지 말아야겠다. 일찍 맞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뿐이다.
지금 출근 전철인데, 이게 실화인지, 5일이 그렇게 흘러 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아침에 뉴스 자막으로 디자이너 겐조가 죽었다는 뉴스를 봤다. 코로나로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단다. 오늘 아침에도 난 겐조 향수를 뿌리고 나왔는데, 아뜰리에 코롱이나 러쉬로 향수를 바꿔야 하나 생각했었는데 겐조 향수를 계속 써야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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