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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셔널 45분간 하기 vs 프사 5분간 찍기"
F45(프사오)를 보고 친구한테 한 뻘소리다. F45는 매일 다른 기능성운동을 45분간 진행하는 트레이닝 '브랜드'다. 적금 대신 몇 개월째 구독 중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서 운동도 집에서 혼자 요가소년 보며 독학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게 특이점이 왔다. 아무리 스토리에 크로스핏 단체샷이 줄줄이 등장해도 근육 감상만 슬쩍 했을 뿐, 집단주의의 부담감에 못이겨 패스했던 내게 특이점이 온 것이다. 도대체 F45에서 나는 어떤 푼크툼을 느꼈던 걸까?
컨셉이었다. 나는 컨셉충인가 보다. 운동이 좋아서보다 컨셉이 좋아서 토하기 직전까지 몸을 굴리는 아이러니란. 앞서 F45를 소개할 때, 트레이닝 뒤에 굳이 브랜드를 붙인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단 로고가 섹시하다. 스포츠센터치고는 짧고도 명쾌한 이름, F, 4, 5. 딱 봐도 서양에서 넘어온 듯한 코스트코 재질에 큼지막하고 정갈하게 세 글자만 박혀있는 게, 마치 '45분간 F**k'인 거 같기도 하고, 뭐 그렇다. 오늘 운동할 동작들이 설명되는 TV 화면 레이아웃도 괜히 두근거리게 한다. 수행해야 할 미션들을 하나씩 클리어 해나가는 게임적 요소가 통쾌함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에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도전한다는 컨셉도 섹시했다. 온 지구인들이 같은 움직임으로 고통과 구원을 받고, 헉헉거리며 땀을 내다니. 그 땀들로 호수 하나는 거뜬히 만들지 않을까? 괜히 더 땀을 쥐어짤 때면 우주적 기운 마저 느껴진다. 역대급으로 고된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 카타르시스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든든하다. 마지막엔 다 같이 모여서 단체샷을 찍는데, 그때 "팀 트레이닝- 라이프 체인지-"를 외치면서 트레이닝은 끝이 난다.
한 친구는 작금의 집단주의 운동 형태가 마치 종교 같아서 다소 징그럽다고 했다. 집단에 너무 빠져있다고. 실제로 사람 많을 때 가면, 교회에서 예배 드리기 전 서로 안부를 묻는 신도들 같아 보이기도 한다. "오랜만에 나오셨네요.", "자주 오셔야죠." 언어학자 아만다 몬텔 또한 책 <컬티시: 광신의 언어학>에서 피트니스 클럽을 컬트 공동체로 봤다. 그녀는 “피트니스는 새로운 종교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강사들이 새로운 성직자인 것만은 확실하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1-2번만 가서 그런가? 아직 그 집단에 징그러우리만큼 깊숙이 침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미친 듯이 빠져들고 싶다. 그래야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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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bee, WILD LOVE SUMMER, 2024 shoot, 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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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클래식
08:00가 되면 아이폰 자동화 기능을 통해 '아침을 여는 클래식'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된다. 아무리 차분하고 조화로운 선율일지라도, 그것이 기상나팔이 되는 순간 끔찍한 불협화음이 된다. 심지어 애플 뮤직에서 엄선한 몇몇 클래식들은 다소 구슬픈 구석이 있다. '포근한 이불 속을 벗어나야 하는 시간. 방 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덥혀주는 온화한 클래식 선율과 함께 하루를 시작해보세요.'라는 카피가 무색할 정도로 우울한 음악이 랜덤 재생되는 날은, 이불을 시체 덮는 하얀 천 마냥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슬픈 잠에 다시 빠져든다.
울적한 클래식으로 인한 기상 실패는 사실 핑계고, 요즘 부쩍 아침에 눈이 떠지질 않는다. 게으름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좀체 생기질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아무것도 설레지 않는다. 오늘은 어떤 설렘으로 살아가야 할까? 슬며시 눈을 뜨면 억지로 상상해본다. 그러다 스르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간다. 그 속에서 설렘을 찾아 헤맨다. 꿈이란 걸 알지만, 그곳이 현실보다 더 설레는 일들로 가득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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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들을 도대체 무슨 이유로 좋아할까 생각해봤다. 그의 영화 속 대사들은 왠지 모르게 나를 편안토록 만들고, 주변을 새롭게 발견하게 한다. 주인공은 욕망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찌질해지고 궤변을 토로하지만, 그 안에는 포옹력과 신비로움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구조의 재미 때문이다. 그의 모든 영화는 반복과 변주를 통해 관객들에게 구조의 발견을 요구한다. 구조적인 반복을 통해 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는 것이다. ‘홍상수’ 감독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의 영화가 매번 똑같고, 발전이 없다고 말한다. 항상 이야기가 주인공의 욕망에만 머물러있고, 되풀이되는 이야기만 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홍상수’ 감독이 구조를 어떻게 변형시키며 가지고 노는지 발견해야 한다.
‘홍상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억’과 ‘우연’에 대한 테마를 대구(對句)를 통해 드러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하하하> 이후로 그는 그 대구를 점차 희석시키면서 영화의 구조적 시공간이 조금씩 해체되기 시작한다. 특히 <자유의 언덕>은 시공간적 개념을 뒤엎는 실험이 두드러진 영화이다. 북촌과 서촌에서의 시간은 비선형적인 구조로 진행되고, 편지가 뒤섞임으로써 시간 감각을 배제한 세계를 보여준다. 시제를 알 수 없는 모호한 내레이션은 지금과 그때라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다. <자유의 언덕>은 이러한 모호한 시간 속에서 주인공 ‘모리’의 애틋한 정서를 신비롭게 묘사한다. 또한 ‘모리’를 찾아가는 ‘권’이라는 또 하나의 서사의 축이 형성되면서 구조적으로는 더 확장되고, 정서는 더 깊어지게 된다.
<자유의 언덕>은 ‘홍상수’ 감독이 자주 보여줬던 ‘시간’이라는 테마에 대한 사색을 전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리’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 또한 <시간>이다. 그는 책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관념의 틀이 과연 절대적인 것인가 의문을 제기한다. 이 논리는 영화적 서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전적인 영화 서사에서 중요시 된 ‘인과성’은 철저히 무시되어 있고, 이를 뒤틂으로써 현재, 과거, 미래를 잇는 연결점 보다는 화면에서 보이는 그 때 그 순간에 더 집중하게끔 만든다. 전에 무슨 일이 있었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건 간에, 지금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는 삶을 지향하는 감독의 바람이 담겨있는 것 같다. 개연성, 필연성, 인과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간의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은 왜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나는 그것을 ‘순간’의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감독의 실존주의적인 태도와 연관시켜 볼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내레이션이 주는 모호함과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함으로써 나타나는 소통의 간극에 대해서도 분석해 볼 것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바로 ‘모리’와 ‘권’이 만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 다음에 나오는 장면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이상한 꿈을 꿨다고 말하고 방에서 나오는 장면인데, 이는 인과성의 개념 자체를 온전히 해체시켜버린다.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도 감독의 철학과 관련지어 이야기 해 볼 것이다.
‘홍상수’ 감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아졌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그의 스캔들에 대한 비판이 더 많다. 그의 선택은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하고, 매년 기다리는 관객으로서 그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보고 감독님과 관객과의 대화를 한 경험이 있는데, 그의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편안해지고 위로가 된다. 종교처럼 말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선입견 없이 세상을 있는 그 자체로 보는 순간, 그 어떤 위로보다 위대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머릿속으로 규정짓는 순간, 우리는 축소된 삶을 사는 거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자유의 언덕>에서 내가 느꼈던 정서와 그것을 만들어낸 구조를 통해 솔직하게 이야기 해보고 싶다.
201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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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 간만의 차
란타 섬의 거대한 파도가 내 몸을 철썩 때렸을 때, 입에서 절로 신음 섞인 함성이 나왔다. 아직도 그 아찔한 쾌감을 잊을 수 없다. 파도를 타는 것보다 더 재밌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파도에 제압당하는 것. 나를 집어 삼킬 듯이 달려드는 파도가 무서우면서도 사뭇 든든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파도 또한 딱 한 번 뿐이다. “영원한 건 없어”라고 속삭이며 사라지는 파도가 괜히 위안이 됐다. 내가 파도에 매혹당한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내 육신이 지구 속에 품어져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파도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조석 간만의 차다. 달의 인력이 지구에 미쳐 바닷물을 세게 끌어당기면서 생기는 현상. 나의 말초신경을 자극한 건 결국 달의 에너지였다. 파도는 해가 떠있을 때도 달의 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그녀의 무기. 우주의 흐름이 파도 속의 나를 호통치며 세상의 경계 안팎으로 밀고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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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과 재현
환영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너는 더 이상 일인칭이 아니야. 유령이 된 그녀의 인사는 투명하면서도 차가웠다. 세이렌의 노래에 빠져드는 것처럼 나는 서서히 홀리기 시작했고, 비로소 내 눈은 전지적으로 진화했다.
내가 나를 관음할 수 있는 곳. 솜털의 떨림까지, 숨결의 부피까지, 영혼의 무게까지. 너의 그림자가 빠진 액체 속으로 꿈틀거리며 침투했지만, 함께 섞이고 싶었던 간절한 바람은 이루지 못했다.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닌 존재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더 숨을 머금고, 너의 체온을 향해, 더 깊숙이, 유영해본다. 검은 물을 뿜어내는 구멍 속으로 손을 뻗는 순간, 잠에서 깼다. 나는 다시 일인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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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그래피
졸업하고 5년 동안 내 영화를 찍지 ‘못’했고, 영화를 찍지 ‘않’았다. 그 ��인즉슨, 필모그래피가 단절된 원인에는 내 의지가 담겨있기도 하고,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 시답잖은 이유(우리는 이것을 ‘핑계’라 부르기로 했어요.)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제작비 조달 실패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작지원사업 광탈'. (도대체 난 언제쯤 지원 받을 수 있을까?)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카메라 장비대여비, 소품비, 출연료 등 프레임 속을 메꾸기 위한 물리적인 비용은 물론. 거기에 프레임 바깥에서 천신만고하는 스탭들의 인건비와 식비, 교통비까지. 영화는 단백질쉐이크 마시듯 돈을 아주 빠르고 쉽게 섭취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초당 제작비가 2억 3천이라지?) 메모리카드 속으로 순식간에 승화돼버리는 그 돈이 너무 무섭다. 그래서 내가 쓴 시나리오가 무작정 영화화되는 것에 다소 회의적이다. 제3자에게 나름의 가치를 검증받은 후,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고 싶은 쪼다 같은 마음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검증도 받고, 돈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제작지원사업이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당선되지 못했다.
품앗이라는 환상
그렇게 찍고 싶으면 본인이 돈 벌어서 본인 영화에 투자하면 되잖아? 하지만, 난 내돈내찍은 하고 싶지 않다. 앞서 말했던 ‘검증’에 대한 이유도 있지만, 내돈내찍으로는 스탭들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많지 않다.)
영화는 혼자 할 수 있는 예술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피땀눈물이 담긴 공동체 작업이자 노동이다. 소중한 숨결을 내어준 사람들한테, 그에 걸맞은 보수를 줘야 하는 건 응당한 도리이자 의무이다.
내돈내찍을 하려면 현실적으로 품앗이 형태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난 품앗이가 정말 싫다. 노동을 노동으로 갚는다고? 풉! 나는 이 정겨운 으샤으샤 정신이 한낱 판타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강도와 수위는 무시된 채, 그저 의리라는 명목으로 쌤쌤치는 기괴하고 요상한 방식이다.
의무감
영화를 재미로 찍기 싫다. 의무감으로 찍고 싶다.
영화는 작가나 감독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그 무언가가 없다면, 영화를 찍을 이유도 없다. 내가 가진 욕구가 충분하지 않았기에, 의무감이 들지 않았기에, 나는 영화를 찍지 않았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뭐든 할 수는 있어요. 정말 어설프고 끔찍하더라도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혼자만 하세요. 남한테 보이지 말고요. 세상에 뭔가 보이려고 한다면 의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남보다 나은 것을 보여야 한단 의무감요. 요즘엔 다 보여주죠, 아무거나요. - 프랜 레보위츠, 넷플릭스 <도시인처럼> 중
영화와 돈은 '뫼비우스 띠' 같은 거다.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돈을 구하려면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하다 보니 시나리오를 쓸 시간이 없다.
시나리오를 쓰려고 일을 그만둔다.
일을 그만두니 돈이 없다.
영화를 찍으려면 돈이 필요하다.
반은 농담이고, 반은 현실이다. 하지만, 난 조급해지지 않기로 했다. 또다시 기다림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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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vs 바다
선희: 넌 육지가 좋아 바다가 좋아?
경남: 난 바다. 바다는 변하지 않잖아. 언제든 다시 찾아와도 바다는 그대-로 있을 테니깐. 육지는 뭐가 너무 많이 바껴. 맨날 재개발이나 하구 말야. 바다는 그럴 리가 없잖아.
선희: 바다도 개척 같은 거 해. 새만금.
경남: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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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잘알
경남: 홍상수 영화 뭐 좋아하세요?
선희: '잘 알지도 못하면서'요.
경남: (헛웃음) 잘 모르니깐 물어본 건데요?
선희: 아, 그러니깐 '잘 알지도 못하면서'요.
경남: 아놔- 저 그래도 나름 '소설가의 영화'도 봤거든요? 라이카시네마에서?
선희: (답답)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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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존재의 무게는 너무나 가벼워서 투신을 해도 중력을 거스르며 둥둥 떠다닐 것만 같다. 가벼운 관계들 속에서의 유영은 순조롭고, 편하지만, 공허하다. 세상의 끝에서 내 옆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 무거운 관계를 갈구하진 않는다. 책임은 무겁고, 자유를 나눠갖긴 배 아프니까. 회���형 중에서도 이기적 회피형. 그러면서 기댈 수 있는 기둥을 찾는다. 묵직한 기둥. 그거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아, 묵직한데 가벼운. 티타늄 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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