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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Crack>
공간 가변크기(서울시 성북구 소재),
2020년 4월 16일~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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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들의 고독에 ���하여
| 안성은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이경민의 작업을 처음 보았던 것은 2014년의 겨울이다. 20여 미터에 달하는 롤지, 컷컷을 그린 영상, 움직임에 따라 이어지는 풍경, 사물의 움직임을 담은 일력 형태의 작품까지. 이경민은 종이의 재생/플레이 방식을 달리해가며, 시간 그 자체를 종이라는 지지체에 옮기는 작업을 오랫동안 이어왔다. 손끝에 닿으면 까맣게 묻어날 것 같았던 진하기가 다른 연필 색들이 오래 기억에 난다.
그는 자주, 긴 산책을 하는 듯했다. 이경민의 산책은 종종 기록되었고, 작업으로 남았다. 오래 걷고, 버스에 올라 창밖을 기록하거나 눈을 감아야 보이는 것에 눈길을 뒀고 검정으로 그렸다. 발걸음의 속도나 그날의 바람 세기, 버스의 내달림에 따라 사물의 인상은 나부끼거나 흩날린 상태 그대로 그려졌다.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을 통해 이어지는 연속의 풍경이 종이에 담겼다. 종이로 재생되는 비디오 같았다. 지나가는 시간 속에선 통으로 인식되어 하나의 풍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존재를 드러내며 종이에 남겨졌다.
나무, 달, 눈을 감아야 보이는 풍경, 빛을 그리던 작가는 공사 중인 도로와 도시 속 땅의 움직임을 담았다. 현실에서는 실제보다 환영에 가까운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이경민의 두 번째 개인전 《Crack》에서는 움직이는 땅과 사물의 인상에 대한 장면과 상상을 소개한다. 전시된 작품 속 사물들은 오랜 기간을 거쳐 수집된 이미지들이다. 목격자이면서 동시에 산책자에 가까운 작가는 사물들의 고독[1]에 집중했다. 이경민이 기록한 개개의 사물은 고유의 무게를 갖고 자신의 침묵을 지킨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지만, 너무 흔해서 주목하지 않은 것들. 죽은 새, 길고양이, 의자, 차에 가득 실려 가던 공사의 파편 무더기 같은 것이 그렇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아주 얇고 두꺼운 것> 시리즈(2020)를 만날 수 있다. 전혀 다른 주제를 가진 이미지들을 중첩하듯 촬영한 사진작가 비비안 사센(Viviane Sassen)의 이미지 방법론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아주 얇고 두꺼운 것>은 그동안 ���집한 이미지들로 이질적인 풍경을 연출하여 기존 작업과 다른 방법적 시도를 보인다. 이경민이 포착한 도시 속 버려진 풍경들은 ‘아주 얇고도 두꺼운’ 풍경과도 같아, 그 속에 담긴 여러 인상을 들여다보게 한다. 편집된 파편들을 땅 위로, 손 위로 불러왔다. 대상을 눈앞으로 바싹 당겨온 듯한 <누운 새>(2019)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도처에 널려있는 풍경 중 하나로서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인상에 대해서 말이다.
작가가 2018년도 안산으로 출근하던 당시 주변은 아파트 공사로 많은 개발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세월호 분향 텐트가 철거되는 과정을 목격하기도 했다. 깨진 도로를 징검다리 건너듯 지나다녔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공사 현장과 끊임없이 행해지는 도로 공사 풍경에 작가는 자신을 빗대어보며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탄생한 작업이 <Ground>(2018)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추진은 기존의 것을 뒤집고 부수는 작업�� 되고, 그것은 작가 개인에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양면적 의미를 담은 <추진력>(2020) 역시, 결국 과거의 전복이고 미래를 향한 애도이자 격려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공사판에서 넘실거리는 푸른 방수포를 보고 <파도치는 땅>(2020)을 투명한 블루로 표현하거나, 빛에 의해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창문 속 166장의 ‘나’를 종이-비디오로 기록하는 것은(<Crack>, 2020) 사물이 가진 인상의 무게를 담아낸 작가의 다정한 인사로 느껴진다. 이번 전시와 동명의 작업인 <Crack>은 주변의 사물/풍경에서 놓치기 쉬운 작은 틈을 비추고 보여주는 이경민의 작업적 주제-성향을 대변한다. 그리기의 다양한 방법 중 하나로 기존의 작업과 달리 수집/실존하는 이미지가 아닌, 심상이나 기억의 이미지 표현에 대한 시도와 ‘불’이라는 물성 자체에 관한 관심을 담은 작업도 있다. 수성 흑연으로 그린 ‘검은 불’을 물로 지워낸 드로잉, <소용없는 일>(2020)이 그렇다. ‘소용없는 일’이라 말하며 물로 지운 그림을 그렸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길 바라며 전시장 입구에 배치하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도 연유하지 않으며, 대상이 가지는 침묵을 드러내는 뿌리 깊은 고독은 존경과 사랑의 표시” [2]이기에 작품 속 이미지는 이처럼 저마다의 의미화 과정을 거친다.
지난 2018년, 안산의 세월호 분향소가 철거되는 과정 중에 생긴 못 자국을 작업으로 그리고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때에도, 작가에게도 오랜만인 이번 개인전을 4월 16일에 연다고 했을 때도 같은 생각 하나를 했다. 그가 세상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방법 앞에 작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마음. 이러한 애도는 대상의 가장 고유한 고독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너무 흔한 나머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나 인상들이 제멋대로 숨으려고 할 때, 작품을 통해 작품 너머의 진동을 인지하고 현재 서 있는 지형을 확인하게 되길 바란다.”[3]
미주_
[1] [2]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 윤정임 옮김, 열화당, 2007, pp. 6, 7, 31, 48 [사물들의 고독에 대하여]라는 이름으로 장주네가 기록한 자코메티의 짧은 담화를 옮기며 설명을 대신한다. “언젠가 방 한구석에 놓인 의자 위에 걸쳐진 수건을 바라보고 있었지요. 순간, 개개의 사물이 홀로 있다는 느낌, 그리고 그 사물이 다른 사물을 짓누를 수 없도록 하는 무게-차라리 무게의 부재-를 갖고 있다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소. 홀로 있는 그 수건은 너무도 혼자인 듯해서 의자를 슬며시 치워도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았어요. 수건은 자기 고유의 자리, 무게 그리고 자기만의 침묵까지도 가지고 있었던 거요. 세상은 가볍고도 가벼워 보였어요.
[3] 이경민 작가 노트에서 발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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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예술가 길드-표본창고
2017 SeMA 예술가 길드 - 표본창고에 <눈을 감는 방법>을 가지고 참여했습니다.
관심가져주시고 많은 이야기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17 SeMA 예술가 길드 / 2017년 9월 15일 ~ 9월 17일 / 불광동 서울혁신센터 내 SeMA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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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눈을 감는 방법> ,
스튜디오MRGG(서울시 영등포구 소재),
2016년 7월 7일~7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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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는 방법
(눈을 감는 방법, thermal paper, 25.0×20.0 cm, 2016)
눈앞에 떠다니는 먼지의 형상을 잡아내기 위해 계속 눈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관찰하지만, 녀석은 날쌘 물고기처럼 내 시야를 벗어난다.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는 존재의 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나는 매일매일 눈을 굴려댄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것. 제어되지 않는 하루하루는 겹겹이 쌓여 자신의 존 재를 드러낸다. 매일 나를 방해하는 존재의 실체를 잡아내기 위해 매일 그를 좇는 궤적을 만든다. 그것 을 쫓으면서도 벗어나기 위해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눈을 감아도 어른대는 그것. 나는 제대로 눈을 감 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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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Seek 0~6 (7pieces)
Pencil on Paper
76 × 106 cm e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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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 52분의 1, One over fiftytwo) part
3min 45sec(loop ani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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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e & Seek Series (7pieces)
26 Feb - 15 Mar 2015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또 어찌 이리 격렬한가
상상마당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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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 heavy stroll / installation view.
2014.9 DV-VA. 문화아카이브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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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그저 묵묵히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때가 많다. 주변에서 말하는 나는 흐트러짐이 없고 절제되어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태풍의 눈'일 뿐, 내 머릿속에서는 자주 거센 바람이 일곤 한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걷고, 버스를 타며 주위를 둘러본다. 손으로 만져질 만큼 가까운 것에서부터 아득히 먼 것까지 응시한다. 그리고 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종이 위에 검은 선으로 내가 마주한 장면들을 새긴다. 마른 연필을 종이 위에 그어대면 마치 거센 바람이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 같고 어둠은 어두워지는 듯, 흐려지는 듯 형태를 잃어간다. 나는 산에서 나는 울음과 나의 불안이 마주한 정경을 쌓아 올리면서 태풍의 소강을 기다린다. 불안의 얼룩을 남기다 보면 어느 순간 바람은 사그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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