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kimkayeon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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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도 사실은 매일 다른 도전을 하는 중이다. 매일 새로운 논문을 읽고, 과제를 하고, 공부하며 이해하고, 외우고, 시험을 보다보면 일주일이 금방 간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밥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고나서, 공부를 하다보면 오후가 되어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고, 또 밥을 짓고, 함께 책도 읽고, 놀다가 씻기고 재우고 나서, 다시 공부를 하다 잠에 드는 일과. 종종 이것보다 더 단조롭고, 조금은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있는데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또 나는 이 모든 일과가 너무 좋다. 내가 가장 마음 편안해하고, 가장 즐겁고, 가장 스스로 뿌듯하다고 느끼는 일과들로 꽉꽉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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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완벽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전해질 때,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설렌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은 늘 감동을 준다. 그 결과물에 담긴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겹겹이 촘촘하게 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결과물들일수록 굉장이 단순하고, 심플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고도의 정신력의 끝은 단순함이라고 생각한다. 그 단순함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간결하고, 명확하고, 날카롭다. 그래서 더 잘 전달된다. 내 논문도 그 경지에 가까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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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하는 이유는? 왜 연구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는가? 왜 임상 과정을 다시 시작했는가? 그 과정이 연구자로서의 아이덴티티에 기여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연구자가 되려고 하는가? 이 모든 것의 답은 하나. 내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것. 더 나아가서는 전문가로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 주고 싶다는 것. 전문가이기에 전할 수 있는, 보탤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는 얼마나 귀한 응원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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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하는 이유는 내가 연구자가 되기로 한 그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내 자신에게 매일 묻고, 매일 되새기는 말들이고, 언젠가는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 종종 하는 말이 있는데- 연구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들은 석사 과정에서 90% 이상 배운 것 같고, 연구자로서의 positionality와 philosophy를 제대로 다듬기 시작한 것은 박사 과정에 들어와서인 것 같다는 것. 박사 학위가 the Doctor of Philosophy degree 인 것은 그냥 생각 없이 붙인 이름이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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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과정 들어와서 배운 여러 가지 중 하나.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 중 하나. 연구자로서의 positionality, pers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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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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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kas Graham 인터뷰 (2019) 중에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면 마음에 평화를 얻죠. 그건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진리예요."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만 의미 있는 '팝콘', '패스트푸드' 같은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는 잠깐 한 번씩 멈춰 생각해야해요. 나 다움이 무엇인지…. 살지 않은 삶에 대해 곡을 쓸 수는 없어요."
"요즘은 풀밭에서 딸과 완벽하게 쪼그려 앉는 법을 같이 배우죠. 작은 것에 행복해하는 법을 새롭게 느끼고 있어요. 딸은 제 곡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줘요."
 "딸을 통해 어린 시절을 재현해 사는 것 같다"는 그는 '젊게 산다는 것'의 의미도 분명히 했다. "자기 기준으로 비판하고 판단하는 '꼰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거예요. 나이가 들어도 젊게 산다는 건 젊은 사람들과 젊은 척 하며 어울리는 그런 게 아녜요." 
아버지는 그에게 젊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몸소 보여준 분이다. 일이 끝나면 집에 와 깔끔하게 샤워하고, 면도하고, 멋진 셔츠와 재킷을 입고 루카스와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눈물을 흘리다 휴지를 찾아 일어선 그가 말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그렇게 하는 거라고 하셨어요.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 애쓰지 않고 세상을 쉽게 바라보듯, 어려운 걸 쉽게 하셨던 분이었어요."
“제가 곡 쓰는 방법이 바뀌진 않을겁니다. 내 곡은 일단 나를 먼저 감동시켜야 하거든요. 삶의 목표는 다른 무언가가 아닌, '살아있는 나' 자체여야 해요. 그때도 저는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그거에 집중할거예요."
노래할 땐 '애쓰지 않는 자유를 느낀다(Effortless freedom)'는 그가 마이크에 입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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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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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맺음 되는 여러 갈래의 내 고민들, 생각들. 결론은 나는 완벽할 수 없고, 내가 늘 좋은 사람일 수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거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내 스스로의 진심을 뚜렷하게 알고 있으면 된다. 난 생각해보면 그 옛날 열일곱, 열여덟 때도 그랬던 것 같다. 누가 꼭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 잘 알고 있으면 된다고. 내가 나를 잘 모르겠을 때가 가장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내 성격 상, 다른 이의 시선이 정말 신경 쓰이고, 신경 쓰지만, 결국에는 내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내가 인간관계 갈등에 정말 취약한 사람인지라, 최대한 갈등의 상황을 만들려하지 않고, 있으면 회피하는 성향이 있는데- 오랜만에 마주한 갈등 상황이 은은하게 오래가서 은은하게 힘들다. 그렇지 뭐. 인간 관계의 갈등은 아주 깔끔하게 끝날 수가 없는 문제인거였지. 오랜만이라, 몰랐던 것 같네. 끝난 줄 알았던 문제가 아직 진행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 아직은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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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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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후면 학기가 끝난다. 코스웍 마지막 학기가 마무리된다. 지난 2년 남짓한 시간을 포함해 지금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괜찮아, 이 길만 있는 건 아니야. 언제든 관둬도 돼.'라는 마인드셋 덕분이다. 지금 하는 공부와 일을 애정하고 아끼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 내가 온 힘을 다 쏟아도 될까 말까 한 일을 두고, 이게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으로 달려들면 택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예전에는 그렇게 열의 하나면 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이게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으로 덤벼들 때, 더 즐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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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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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것. 내 마음 속,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무언가를 분명하게 아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말로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 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말로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
그런데 늘 원하는 것만을 하고 살 수는 없는 것이 현실. 적절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은 늘 어렵고, 힘들다. 그래도 원하는 것이 분명한 만큼 쉽게 포기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많이 힘들었네. 적절한 선을 찾아서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늘 포기해야 했다. 끝내는 내 마음이 다치고, 아팠다. 생채기가 나서 아픈 마음을 마주하는 순간, 그제서야 이건 아니라고 인정했다. 
용기 내어 나아가야 할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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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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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옮겨 두어야 할 일기만 약 5년 치 일기다. 이 공간이 그리웠고, 이 공간이 좋다는 글을 마지막으로 5년 동안 들어와보지 못했네. 그 사이 아이 둘 엄마가 되었고, 미국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는 연구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내 짝궁이 늘 내 옆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나와 늘 함께해주는 덕분이고.
시간 날 때마다 들어와 조금씩 옮겨두어야지. 
0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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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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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사람의 특징은 그에게 주어진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수용했다는 너그러움이다. 그들은 현실로부터 도망치지도, 몸을 숨기지도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만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무거운 짐의 차이가 개성으로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개성에 의해 키워진 성격과 재능이 아니라면 참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게 진실이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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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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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텀블러를 열었는데 여전히 좋네, 나는 이 공간이. 내 종이 일기장과 가장 비슷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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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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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이 좋다/헨리 나우웬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세련된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기 부모 형제를 끔찍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노래를 썩 잘 하지 못해도 즐겁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린 아이와 노인들에게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책을 가까이 하여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고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좋고 철따라 자연을 벗삼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손수 따뜻한 차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앞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 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새벽 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고 더울 땐 덥다고 추울 땐 춥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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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6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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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Ode to 가영 킴> 이라며
<세상에 예쁜 것>
1.
책장 앞에 서서 체홉의 단편 소설집 <벚꽃 동산>과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 중 어떤 걸 읽을까 고민하다 <세상에 예쁜 것>을 꺼내 들었다.
토플 시험도 끝났고, 주일 미사도 미리 다녀왔고, 내일은 하루 종일 집순이 해야지. 홀가분한 마음으로 레미소다 한 잔을 홀짝 거리며 흔들 의자에 등을 파 묻고 책을 펼쳤다. 산문집은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읽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책 중간을 펴고 휘리릭 읽기 시작하다가... 탄성 비스무리한 탄성을 뱉었다.
세상에 예쁜 것! 박완서 작가님은 참 대책 없이 맑고 또 사랑스러움이 꿈틀대는 생명력을 지니셨구나! 아아, 이 책을 체홉 옆에 꽂아둔 건 신의 한 수였드아!
2.
이 책을 선물 받은 게 올 초인데 이제서야 작가에 경탄하는 것도 우습지만, 또 오늘 같이 홀가분한 날 박완서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 게 기쁘다.
“(전략) 나는 다시 역사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이 쏟아져 내려오는 계단 밑에 턱 쳐들고 서서 누가 나를 알아보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누군가가 박완서 씨 아니세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면 그렇다고 하고 나서 오백 원만 달라고 할 작정이었다.”
라니. 지하철 역에서 지갑 없이 길 잃은 할머니의 생각이라 믿기지가 않을 만큼 어여쁘고 사랑스럽다.
자연스레 생각은 선물을 준 사람을 향해 흘러간다. 내가 마음 울렁이게 좋아했던 사람.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로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 대학교 1학년, 영어 수업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
3.
한때,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뭐 사실 막 학기를 제외한 대학 시절 내내 그랬지만, 가장 절정이었던 건 1학년 때였다.
기숙사 고등학교에서 하루 24시간 답답한 공부만 하다가 처음 대학 정문 앞을 밟았을 때의 그 자유로움과 행복함은 상상 초월이었는데, 정말 지나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고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쇼생크 탈출>의 앤디보다 내가 더 행복했을 거다. 그 자유로움은 물리적인 자유로움도 컸지만, 사실 지적인 자유로움이 더 컸다. 이젠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어마어마한 기대와 에너지가 가득했으니까.
그런 첫 학기에 이 언니를 만났다. (김 씨니깐 편의상 K 언니라고 부르겠다.) 하필이면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마르고 이목구비 뚜렷한, 속눈썹이 진하고 눈이 깊은 3살 위의 언니였다.
4.
영화 보러 가자, 공연 보러 가자, 쿠키버블티 마시러 가자. 수업 전후로 쉬지 않고 언니에게 잔망을 떨었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생각만으로도 즐거웠지. 함께 듣는 영어 수업 시간 그 자체도 좋았다. 엄격한 듯 하면서도 눈에서 꿀 떨어지는 교수님도 좋았고, 수업을 같이 듣는 다른 언니, 오빠들도 좋았고, 뭐 그냥 다 좋았다. 2학점 짜리 절대평가 과목이라 학점 부담도 없었다. 몇 안 되는, 점심 공강이 예쁘게 만들어진 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수업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벚꽃, 설렘, 수다, 깊은 눈, 떨림, 이런 단어들이 연상 된다. 좋았다, 마냥. 수업도, 언니도.
5.
근데 보통 19살의 대책 없는 ‘여자애’가 사랑에 빠지면, 특히 상대가 어른스러운 사람이라면, 그만큼 자신의 대책 없고 서투른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나보다 3살 많던 K 언니는 나한테 정말 ‘어른’ 같았는데(지금 돌이켜봐도 그냥 어른이었다.), 뭘 어떻게 해도 저 깊이에 나는 발 끝도 못 미칠 것 같았달까(지금도 그렇다.).
설렘과 자괴감이 한 데 뒤섞인 풋내나는 감정으로 가득했던 한 학기가 다 끝나갈 때쯤, K 언니에게 뮤지컬 <노트르담드 파리>의 OST (무려 내한 공연 버전) CD를 받았다. 완전 취향저격이라, 리핑해서 통학하는 내내 듣고 다니고 심지어는 불어까지 배웠다. 당시 남자친구한테도 엄청 자랑했다. ‘넌 이런 거 주는 사람 없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점순이도 아니고..ㅎ..)
굳이 따지자면 K 언니의 색깔은 가을 단풍 느낌인데. 만났던 시절이 인생에서도, 또 진짜 계절적으로도 너무 봄이라, K 언니를 영상 속의 한 컷으로 만든다면... 흩날리는 벚꽃 속에서 홀로 정지한 단풍 정도가 되지 않을까.
이질적이다. 목에 턱 걸리는 그런.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다 멈칫하게 되는.
아무리 좋아해도, 여전히 그녀를 잘 모를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무리 옅어져도, 마주하면 다시 마음이 덜컥거릴 것 같은 느낌.
6.
첫 학기가 끝나고, 이내 다른 학기들이 여러 번 더 끝나고, 흐려진 기억과 감정 속에서 졸업을 하고, 인생이 권태스러워지고, K 언니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모바일 청첩장에 삐져서 결혼식을 빼먹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K 언니의 아가를 카카오 프로필 사진으로 만나게 되고. 여기까지는 흔한 이야기.
...그때 예상치 못하게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아가를 보고, K 언니를 처음 만났던 때와 같이 심장이 덜컥한 거다.
안녕. 세상에 태어난 걸 축하해.
네가 살아갈 세상은 조금 더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되도록 내가 더 노력할게. 넌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환경에서 자라났으면.
나조차도 당혹스러운 감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란 건, 백화점의 영유아 코너에 가서, 아가 신발들을 정신 없이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가 이내 몇 켤레는 다시 내려 놓고, 끝끝내 포기하지 못한 두 켤레를 택배로 부치는 거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 대한 답신으로 박완서의 산문집을 보내왔다.
7.
여전히 K 언니는 내게 어른이고, 경탄이다.
그리고 난 나의 유치함과 풋내남이 여전히 부끄럽다.
이런 나의 부끄러움은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동경의 감정으로 바뀌고, 문득, ‘나도 이렇게 늙어 가고 싶다.’, ‘이렇게 살아가고 싶다.’ 생각하게 된다. 살아가고 싶게 하는, 사는 게 아름답다는 걸 알려주는 문장들이다.
<세상에 예쁜 것>.
꼭꼭, 아껴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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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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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보다.
오늘 밤 민지가 잠투정을 하다가 이마를 책꽂이에 부딪혔다. 방이 꽤 어두워 민지 바로 옆에 누워있었는데 순간 민지가 일어선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챘을 때에는 이미 민지가 누워있는 내 위에 온 몸을 던진 직후였고, 민지를 붙잡았을 때에는 그 너머에 있는 책꽂이에 이마를 부딪힌 직후였거나 부딪히고 있는 순간이었다.
깜짝 놀라 바로 민지를 안고 불을 켜 보니 그 짧은 순간에 이마에 혹이 생기고 상처가 나 있었다. 너무 놀라 민지를 그대로 안고 다른 방에서 공부하고 있던 오빠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얼른 응급실에 가자고 했다. 사실 응급실에 가도 딱히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내가 절로 응급실에 가야겠다 싶었다. 너무 속이 상하고 너무 놀라서 그랬다. 응급실에 가야겠다는 말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될 것 같았나 싶다.
무작정 다급하기만 한 나와는 달리 오빠는 괜찮다고 차분한 목소리로 나를 다독였다. 응급실 가자는 말에 몇 초만에 옷을 다 갖춰입고서 말이다. 누구보다도 마음이 다급했을 오빠인데 차분히 놀란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냉전 아닌 냉전 상태로 서로에게 눈길도 제대로 주지 못했던 우리인데 민지 앞에서는 그런 사랑 싸움은 사치가 되고 말았다.
차차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더더욱 정말이지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한 시간 더 놀고 재울 것을. 빛이 들어오게 문을 좀 열어 놓을 것을. 내가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못한 모든 가능성이 머릿속을 스쳤다. 후회와 아쉬움과 슬픔과 속상함이 한데 뒤섞인 채로.
꽤 아플 텐데 평소에도 울음이 길지 않은 민지는 이번에도 짧게 울고 말았다. 이내 곧 놀기 시작해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마음은 콩닥콩닥였다.
한창 긴장과 흥분 상태였을 때 오빠의 다독거림에 정신을 차리자마자 엄마에게 곧장 연락했다. 엄마는 내게 어릴 적부터 만병통치 약을 주는 존재이니까. (그리고 지금 나에게 또 만병통치 약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오빠이다.) 연락하자마자 엄마 아빠와 막내 동생이 집으로 와 주었고, 민지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품에 안기며 웃고 애교를 부렸다, 여느 때처럼. 다같이 괜찮다는 결론을 내렸고 아빠 엄마도 의료인이다보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가, 아빠가 한걸음에 달려와주신 덕분에 그냥 모든 것이 더 괜찮아졌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오빠는 다시 공부하던 방으로, 나는 민지와 민지 방에서 다시 놀이를 했다. 그러다 스르르 잠든 민지 옆에 누워 가만히 기도를 했다. 아프지 않게 얼른 낫게 해달라며. 그리고 곤히 자고 있는 민지에게 속삭이고 또 속삭였다. 너무나 너무나 사랑한다고.
민지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분명 알고 있었는데, 민지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며 속상해하는 마음을 가늠해보니 나는 그동안 손톱만큼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민지를 사랑하는지, 그리고 덧붙여 사실은 사소한 다툼으로 잠시나마 서운함을 느꼈던 오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렇게 아파하며 깊게 깨달았다.
민지와 오빠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이렇게 깨닫는 나는 참 미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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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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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가 낮잠을 자니, 생각 생각 잡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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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는 대로 지내오다보니 지금 여기, 이렇게. 지난 언젠가는 이걸 해야지, 저걸 해야지 하며 타임라인을 세우곤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아니하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계획을 세울 틈이 없다기 보다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이 어제와 비슷하고, 내일은 아마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자그만 변화들과 성장이 자칫 단조롭기만 했을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있다. (그러나 단조롭다고 하여 바쁘지 않은 것은 또 아님. 바쁘기는 계속 바쁘다. 단조롭게 바쁘다.) 학생일 적은 물론이고, 병원에서 일을 할 때에도 그 생기를 크게 알아채지 못했던 같은데- 그래, 감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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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 포지션은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상태라 매우 불안정하다면 불안정한데, 그 와중에 변함 없는 내 포지션은 아내, 엄마, 언니, 누나, 딸, 그리고 친구 정도. 지금의 시간들이 지나 가까운 미래에 나의 아이덴티티는 어떤 모습으로 더 구체화되어갈지. 궁금하여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막연하여 걱정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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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다시 쓰고 싶은 걸 보니, 엄마 포지션에 꽤 적응하긴 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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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가 뒤척인다. 나는 고백투 엄마 포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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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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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다 쓰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 오빠와 민지와 정말 마음 편히 노는 것 - 오빠와 민지와 여행 가는 것 (편히 노는 거랑 같은 얘기인가.) - 읽고 싶었던 책을 몰아 읽는 것 - 어느 전시이든 미술관을 가는 것 - 일기를 다시 쓰는 것 - 해야 할 일이나 약속이 없는 주말을 충분히 보내는 것 (의무와 숙제라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일상에 묶여있는 듯한 느낌을 떨쳐내기 힘든 지 좀 되었다. 일상이 일상 답지 못하고 숙제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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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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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민지가 막 세상에 태어났을 때 어떻게든 나 혼자 힘으로 잘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더랬다. 마음 먹었다기 보단 그냥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조리원에 있을 때에도 일부러 모자동실 시간을 길게 가지려고 했고 집에 와서는 산후조리 도우미아주머니랑 이틀 있어보곤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취소했었다. 그렇게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민지랑 시간을 보내면서 오히려 시간이 흐를 수록 엄마가 되었다는 것에 더 적응이 안 되는 것만 같았다. 몸도 회복이 덜 된 데다가 졸업 논문 쓰며 육아를 하려니 힘에 부쳐 눈물이 울컥하곤 했다. 내 인생을 뒤흔든 건 임신보다도 출산이었고 출산보다도 지금의 육아이다. 그래도 민지가 크는 모습을 보며 지금이 너무 행복하여 얼른 민지 동생을 가져야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기분 좋은 웃음이 난다. 오랜만에 비가 내리는 하루, 창문을 열면서 좀 쌀쌀하다 싶은 그 공기가 참 좋았다. 민지를 한 쪽 팔에 안고 다른 손으로 창문을 열며 민지에게 바깥에 들리는 소리는 빗소리라며 나중에 조금 더 크면 엄마랑 아빠랑 같이 우산도 쓰고 장화 신고 걸어보자 하였다. 오늘로 민지는 태어난지 90일이 되었고 32년 전 오빠는 오늘 태어났다. 이 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문득 신기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아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걸까. 사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민지야 엄마가"로 시작하는 말로 민지에게 수도 없이 이야기를 건네고 있으면서도, 오빠 앞에서 엉엉 울며 나는 엄마가 되어서 정말 아주 많이 행복하지만 아직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기도 하고 이건 내 인생의 처음 느끼는 느낌이고 경험이라 아직 어렵고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어루만져주고 가슴팍에 안겨있게 해주는 오빠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오빠가 다 괜찮다고 해주면 금방 또 괜찮아지니까. 나는 아주아주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싶고, 논문만 하루 종일 쓰고 싶기도 하고(ㅋㅋ?), 마음 편히 친구들을 만나 하루 종일 카페에 늘어져있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민지와 하루 종일 있으면서 이 장난감 저 장난감으로 매번 다른 이야기 만들어내어 들려주는 것도 행복하고,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알아 듣는 건지 뭔지 내 이야기 들으며 웃는 민지 얼굴 보는 것도 신나고, 민지가 낮잠 자는 동안 빨래 돌리고 널고 청소기 돌리는 시간도 이제 제법 즐겁기까지 하다.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오빠가 퇴근해 번호키를 띠띠띠띠 누르는 순간이 가장 반가운 것은 절대 민지와의 시간이 지루해서는 아니고 동지가 나타난 것 같은 반가움이랄까. 그 반가운 느낌도 참 달콤하다. 이 기억들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수는 없을테니까. 어렴풋이 남은 기억으로 사진을 보면서 영상을 보면서 오늘을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그저 지금 순간을 살고 있고, 나중에 시간이 흘러 네가 기억하지 못할 이 시간을 아주 작은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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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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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의 속마음 [펌]
3주6주3개월6개월 때 급성장을 해요. 전 앞으로 태어날때보다 100일까지 키가10~15센치는커야하고 몸무게는 두 배 이상 늘어야 살아갈 수 있어요. 그래서 무지하게 먹고 자고 해요 온종일 누워만 있다보니 성장통이 오면 오징어 굽듯이 온몸을 비틀면 좀 살것같아요. 엄마 ! 저보고 왜케 밤에 잠을 안자냐고 하지말아요 밤에는 성장호르몬이 나와서 제 뼈가 늘어나 무지하게 아프고 신경질이나요 그래서 힘들다고 투정부리는건데 엄마는 저보고 안잔다고 자꾸자라고만 하세요 잠이들려면 절 눕혀놓지만말고 안아주세요 한자세로 누워만있으니까 힘들어요 살살 몸을 만져주세요 그럼 한결살것같아요 엄마! 저보고 왜 오늘 똥을 안 누냐고 뭐라 하지마세요 몸에서 필요한 영양분이 많아서 흡수하는게 더 많아서그래요 제가 잘알아서할테니 제발 성급히 병원가서 관장하지마세요 아프단말이예요.. 엄마! 저보고 왜 품에서 내려놓기만 하면 깨냐고 뭐라하지마세요 엄마냄새는 세상에 태어나 가장 익숙한냄새예요 엄마냄새는 잠이 솔솔와요 그리고 어떤 잠자리보다 가장 포근해요 딱딱한바닥과 침대만 누워있으면 온몸이 더쑤셔요 엄마! 저는 지금 먹고또먹어도 배가고파요 배가불러서 잠들수있게 쭈쭈좀 많이 자주주세요 뒤돌아서면 배가고파요 포만감이 느껴지면 전 기분이좋아져요 그러면 잠도잘와요 엄마! 전 엄마만 믿고 세상에나왔어요 제가 찡찡거리는건 이유가있는거예요 절 나무라지 마세요 엄마뱃속처럼 편해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100일의 기적을 선물할테니 기다려주세요 아님 100일의 기절을 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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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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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kayeong · 8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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