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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빠른 흐름에 몸을 맡긴 늙은 버스와
그 안에 앉아서 슬픔을 흘리는 작은 돼지야
이럴려고, 내가 이럴려고, 내가
살아왔던 것은 아니지만
꾸역꾸역 슬픔을 쳐먹고 피둥피둥 살찐 돼지야
더 찌울 것도 없어 흘러 보내는 돼지야
네가 울 곳이라고는 그 늙은 버스
수없는 사람들을 실어다 준 낡아 빠진 의자 위
거기에 걸터앉아 슬픔을 흘리네
이럴려고, 내가 이럴려고, 내가
죽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고향 가는 표값으로 사천 칠백원 어치의 슬픔만을 샀네
고향도 갈 곳도 없는 돼지야
슬퍼할 명분도 돈주고 사야 겨우 울음인 돼지야
가여운 돼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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