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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당신은 끝없는 길에 끝이다 꽉 찬 허공이기도 하여서 별이라고 적었다가 벌이라고 고쳤다 하늘아래서 노을아래서 너를 그리다가 하얗게 그립다가 까맣게 그을다가 여기까지 왔다 하릴없이 하염없이 벌이라고 고쳤다가 별이라고 다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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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글을 다 써놓고 엎었다 성에 차지 않아서다. 성에 찰 일도 앞으로 없을 것인데 이런 점이 삶과 글의 공통점이다

그러나 글은 엎어도 삶은 엎을 수 없는것이 삶의 비극인 동시에 글의 치명적 매력이다 나는 다시 살지 못해도 글을 통해서 몇번이고 다시 살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죽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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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휴대폰 천지인 자판에서 텍스트를 작성할 때

열심히 할게 에서

8번 버튼 한번의 터치가 덜하면

열심히 살게 가 된다

그 한번의 터치의 간극이 그녀의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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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걸

63빌딩을 처음 올라 갔던 90년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일명 엘리베이터걸이 있었던 시절 높은 곳에 처음 올라가는 내게 햇볕처럼 환한 얼굴로 귀가 먹먹하거든 눈을 감고 코를 막고 침을 꾹 삼키라고 했다 그 후로부터 나는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 마다 눈을 감고 코를 막고 침을 수없이 삼길 일이 많았다.

그 후

사회인이 된 내가 인력공급업을 시작한 뒤로 콜센터 도급직에 '절박한 마음으로 지원합니다'는 제목으로 지원한 이력서에는 '90년대 **빌딩 엘리베이터걸'이 이력으로 적혀 있었다.

무지개 같던 미소로 날 비춰주던 63빌딩 누나를 오랜만에 떠올렸던 순간 누나의 남편과 자식,빠듯한 통장 잔고와 보험 납입 기간과 은행 대출 이자 납입 같은 것들이 어렸던 나와 곧 다가올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귀와 코속에 묵직한 무언가가 사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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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의 오후

 멜론에서 언니네 이발관의 앨범 '꿈의 팝송'의 청자 리뷰를 보았다 시애틀의 오후라는 닉네임을 가진 네티즌이 '와미친 2번트랙 듣자마자 미친미친 소리지르면서 들었어요 여��까지 제가들은 인트로중 제일 좋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아쩐다'

라는 리뷰를 작성했는데, 문특 시애틀의 오후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생각했다. 말투를 보아하니 친구들과 달리 독특한 인디음악을 사랑하는 여고생이 떠 올랐다. 아니면 정말 의외로 느긋하게 시애틀의 오후라는 이름의 커피를 마시며 손뼉을 치고 소녀같이 소리지르는 앞머리가 훤한 어느 회사 부장님의 모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익명의 누군가가 글을 쓸 때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은 텍스트를 새롭게 읽는데 좋다. 가령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는 사실 무좀으로 발가락을 벅벅 긁는 온몸에 털이 잔뜩 붙은 아저씨라던지, 무신론에 대해 열을 올리며 신성모독의 극에 달한 글을 쓴 사람이 알고보니 얼굴에서 빛이 나도록 성스러운 얼굴의 목사님이나 신부라던지. 야설을 쓰는 작가 알고보니 비구니라던지. 뭐 그런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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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마을

내가 태어난 마을은 광주시 실촌면에 있는 구성마을이란 곳인데, 나는 여태 우리 마을이 구씨 집성촌이라 구성마을인 줄 알았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상 중에 아홉개의 성을 다스리던 사람이 살았다고해서 구성말이라 불렀다고도 했고, 구석에 있어서 구석말이라 불렸다는 말도 있었다.  구석에 있는 마을에 아홉개의 성을 다스린 사람이 살았고 하필이면 구씨가 모여사는 동네라니. 구석 구성九城  구성 具姓 말장난인지 일종의 라임인지 모를 내 고향의 이름엔 막걸리에 불콰하게 취한, 초록 새마을 모자를 쓴 청년회 할아버지들의 구성진 트롯트 가락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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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꽃 같아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 또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낸 것을 좋아해 주는 사람

이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얼마 전 관람한 김경호 콘서트와 곧 다가올 줄리아하트 콘서트는 물론 전자에 해당될 것이고 후자는 글세, 어버이날 쓴 애틋한 일기장을 훔쳐본 엄마의 표정 정도랄까.

아무튼 내가 말 한 두 가지가 서로 상응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고 생각한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물었다 "어때 나 꽃 같지?" "아니 꽃이 당신 같아" "무슨 말이야?" "당신이 꽃 보다 예쁜데 당연히 꽃이 당신을 닮는 거지"

통상적인 커플의 대화를 나누었다가 나도 모르게 주절인 말 -꽃은 나에게 향기를 주어도 꽃이 나의 향기를 알아 주지 않아 나에게도 향기가 난다는 것을 알게 해 줘서 고맙고 사랑해-

그 순간 지었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어느 때 보다 만개해 있었고 나는 그 만개한 얼굴을 활짝 비추는 이세상 모든 빛이 되었음 좋겠단 생각을 했다

내가 존경하는 누군가가 나를 똑같이 존경할리 만무하나,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사랑한 만큼 나를 사랑해 줄 테니까.

다다음 주에 가게 될 줄리아하트 콘서트를 기다리며 줄하의 '안아줘' 노래 한 구절로 마무리 짓고 싶다

서로 사랑을 할 땐 긴 말은 필요치 않아 안아 달라는 말이 안고 싶단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