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Text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설교함에 있어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을 설교함에 있어 그저 특정 인물들의 삶이나 행동에 주목하면서 우리가 그 인물을 본 받자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하지 말자거나 하는 형식의 모범적인 표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의 원 대한 흐름 속에서 한 기능을 담당하며,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본 논문의 중심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제 1장은 서론적 논의로서, 본 논문이 다루는 성경인물설교에 대한 논의의 정당 성을 성경인물설교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4가지 문제를 근거로 하여 제시하고, 이 연구를 수행하는 목적과 이 논문이 취하고 있는 연구방법 및 범위를 진술한다.제 2장에서는, 현재 한국 교회의 강단에서 시행되고 있는 성경인물설교의 현실 과 문제점들을 시중의 설교집들을 중심으로 발췌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 연구의 방법으로서는 ‘이론’으로부터 프락시스(praxis), 즉 ‘이론의 응용’으로 서 ‘비평적 성찰에 기초한 행동’(critically reflected action)으로 전환하는 딩거만 (Gijsbert Dingemans)의 실천 신학 연구 방법론12을 활용하여 진행하겠다. 즉, 프락시스를 위한 실천신학 연구 방법론을 따라 현재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로써 성경인물설교가 현재 한국교회 강단에서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를 기존 의 출판된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집에 실린 성경인물설교 중 임의로 몇 개를 소개하 도록 하겠고, 그 설교의 본문을 성경학자들과 주석가들의 본문 주해 및 주석을 통 해 먼저 본문 해석 및 바람직한 성경인물설교의 방향을 위한 규범적 논거를 확보하 며, 이를 근거로 이미 소개한 성경인물설교 사례를 다시 심층적으로 분석 및 평가 하면서 같은 본문을 가지고 성경인물설교가 어떻게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설교로 되는지, 인과율적, 혹은 실용주의적 설교로 되는지, 어떤 설교가 과도한 알레고리 해석에 기초한 설교, 과도한 심리학적인 해석에 기초한 설교가 되는지를 분석하고, 해석학적으로, 성경신학적으로, 설교학적으로 그 문제점에 따른 원인을 진단해 보도 록 하겠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재 상황 속에서의 실행 가능한 성경인물설 교의 실천적인 전략을 제시하는 형태를 취하도록 하겠다.
0 notes
Text
믿음에 두 종류가 있는데
믿음에 두 종류가 있는데 1)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믿음과 이렇게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2)관계 속에서 너를 축복하겠다. 는 축복의 언약을 믿는 것이다. 복음도 두 가지이다. 1)예수를 믿어라. 2)예수님이 말씀해 주신대로 살아라. 대나무의 마디처럼 믿음의 1단계, 2단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복음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아무리 믿고 교회를 다녔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복음을 누리지 못하면 앞에 받은 복음은 헛것이 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였어도, 스 사랑 안에서 감격과 기쁨과 감사를 따라 말씀 안에 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믿음이 약해지지 않고 살았다. 이 믿음대로 사는 사람은 이땅에 살면서도 복을 주시고 의롭다 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게 하신다. 예수 믿는다고 말만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을 의롭다 하시고 천국에 들어가기 합당한 사람이라고 하신다. 믿음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의지하지 않고,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세상과 더불어 다른 것을 사랑하며 살면, 하나님은 간음이라고 하신다. ‘주 예수보다 귀한 것은 없네’ 라고 말하고서 예수보다 세상 즐거움이 더 좋다고 하면 이혼 사유가 된다. 성경에서는 부부간 이혼을 허락하지 않으시는데, 한쪽이 간음한 경우는 이혼을 허락하신다. 구약에서는 간음하면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 모세는 이혼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라고 했다. 돈이 없고 가난하고 배고프고, 그 어떤 것도 이혼 사유가 안 되지만 다른 남자와 간음한 여자는 이혼 사유가 된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의미한다. 성도가 예수님보다 세상 일이 더 즐거우면 예수님과 이혼 사유가 된다. 신앙생활은 들러리일 뿐이고,세상 중심으로 살고,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살면서, 그래도 안가면 불안하고 하나님께 혼날까봐 교회는 갔다 와야지 하는 사람이 간음한 여자다.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생각 즉 막연한 두려움은 사실이라고 말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가 난민과 무슬림들을 좀 더 냉정하 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대한다면, 이들은 난민으로서 우리와 는 다른 삶의 자리에 처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국제적인 이해가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0 notes
Text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16절: 구원받은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복을 주고 영생에 이르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고,아브라함 후손들에게도 이어지게 하겠다고 하셨다. 나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17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분이시기에 반드시 약속을 이루신다고 믿었다. 18절: 이런 하나님이기 때문에, 도저히 바라고 기대할 수 없는 형편과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바라고 믿은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의 몸에서 나오는 씨를 통하여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후손이 번성하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셨다. 19절: 아브라함이 100세나 되었고, 아내가 늙어서 임신할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0 notes
Text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하여 하나의 신적 가족에 대한 영지주의적 표상이라고 거부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대하여 하나의 신적 가족에 대한 영지주의적 표상이라고 거부하였다. 창세기의 해석에서 ‘우리의 모상에 따라’창조되었다는 것은‘한 분 하느님이신’성삼위의 모상에 따라 창조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따라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단 한 분이시며 참된 하느님이시다.인간은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느님의 단 하나의 본질에 상응하는 것이다.좀 더구체적으로 삼위일체는 ‘사랑하는 이,사랑받는 이,이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사랑자체’라고 제시하였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란,“너는 죄 없다. 저주는 끝났다.망하기는 틀려 버렸다. 잘 될 일만 남았다. 망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품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다. 하나님을 이길자, 대적할 자가 그 누구도 없고, 모든 저주도 들어올 수 없다. 출애굽 할 때 양을 잡아 고기는 먹고 피는 문설주에 바르라고 했는데, 애굽에 덮쳤던 저주가 임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이게 유월절이다. 주님 품에 안긴 사람은 저주가 임하지 못하고 지나가 버린다. 예수님이 화목제물로서 나와 하나님 관계를 다시 접착제처럼 붙여 주셨다.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으신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의인이 된 것이다. 성경에서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인데,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복음,믿음,의,구원이다. 이 네가지가 함께 버무려져서 설명된다. 누가 뭐래도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 품에 안긴 사람이다. 예수님 때문에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엄청난 사건이다. 하나님 품에 안긴 후, 남남이던 처녀와 총각이 결혼하여 한 몸이 된 후, 관계가 회복되고 시작되었으면, 이 맺어진 아름다움을 지속해야 한다. 이 관계가 깨진다는 것은 지금까지 쌓아온 관계가 다 물거품이 되고 과거 저주의 상태로 돌아가 버리는 것을 말한다. 행복과 기쁨, 즐거움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아픔과 상처만 남게 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구원 받았으니 이제는 구원 안에서 이 관계를 누리고 지속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 온 것이 구원이고 축복의 시작이다. 결혼은 그 자체도 축복이지만 축복의 시작이다. 이 축복이 이어져야 한다. 구원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축복이다. 아름다운 관계, 기쁨의 관계, 사랑의 관계, 약속을 맺은 관계가 지속 되어야 하는데 지속되는 내용이 복음이다. 예수님이 복음이고 예수님이 이렇게 이렇게 살라고 말씀 해 주신 내용도 복음이다. 복음은, 1)예수님의 희생, 십자가 사건이고 2)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믿어 순종하며 살 때 하나님과 복된 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복을 누리게 된다.(로마서 4:13, 16-24)
0 notes
Text
“전에 말한 것이 이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성령의 증언을 통해 확증되지 않으면,
“전에 말한 것이 이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성령의 증언을 통해 확증되지 않으면, 말씀 그 자 체는 우리에게 확실해지지 않는다.”22 성경의 자체가신성을 우리 안에서 증 언하는 성령은, 불건전한 신비주의의 주장을 허문다. 성령은 성경을 증언 20 “Quare tum vere demum ad salvificam Dei cognitionem scriptura satisfaciet, ubi interiori spiritus sancti persuasione fundata fuerit eius certitudo.” Calvin, Inst. 1.8.13. 21 “Sed inepte faciunt qui probari volunt infidelibus, scripturam esse verbum Dei; quod, nisi fide, cognosci nequit.” Calvin, Inst. 1.8.13. 22 “Nec his repugnat quod nuper dictum est: verbum ipsum non valde certum nobis esse nisi spiritus testimonio confirmetur.” Calvin, Inst. 1.9.3. 종교개혁과 성경:성경의 자체가신적(αὐτόπιστος) 권위를 중심으로 ● 69 하고, 우리로 성경에서 쉬게 하기 때문이다. 불건전한 신비주의가 직접받는 계시로 성경을 넘어서거나 성경과 부딪 힌다면, 로마교회는 교회가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는 이유로 성경을 넘어서 거나 성경과 부딪히면서 교리를 제정한다. 로마는 왜 교회에 성령이 머문 다는 것을 강조하는가? 성경에 없는 이상한 교리를 말하기 위해서 성령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다.23 말씀과 성령이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여기서도 해당된다. 교회가 성령을 인정한다는 것은 성경과 별개로 다른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회는 오히려 말씀이 인도하는 길로 갈 때에 성령이 함 께 계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0 notes
Text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는 성경의 권위는 객관적으로 자체가신적이다.
인간에게 의지하지 않는 성경의 권위는 객관적으로 자체가신적이다. 그러나 이제 우 리로 권위를 인정하게 하고 우리에게 확실성으로 다가오는 것은 성령의 내 적 증언이다. 성경의 자체가신적인 객관적 권위가 사람의 마음에서 확실성 으로 열매 맺는 것은 성령의 증언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자체가신적인 성경의 권위를 설명하는 기독교 강요 1권 7 장 5절의 첫 문장은 의미심장하다. 구조만 본다면 성령이 성경의 내적인 사역이 자체가신성을 감싸고 있는 구도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 있는 확 실성은 성경의 자체가신성이 성령의 역사로 우리 안에 맺힌 열매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칼빈은 성경 안에 머물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먼 저 소개하고, 성경이 가진 자체가신성을 보여준 후, 다시 성령의 증언으로 우리 안에 이 자체가신성이 확실성이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구조를 보여주 는 것이다. 성경의 자체가신성과 성령의 증언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성 령의 증언을 통해 성경의 자체가신성이 우리 안에 확실성이란 결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인간의 판단을 초월하여서(supra humanum iudicium) 확실성을 갖는 것이며, 인간을 초월한 하나님께 우리의 판단과 지혜를 복종시키는 것이다. 칼빈은 8장에서 성경의 신뢰성을 가져오는 인간 이성을 위한 충분하고 견고한 증거(probationes)들을 가져온다. 칼빈은 내용, 고대성, 예언,이런 이유들이 성경의 위엄과 권위를 경건한 자들의 마음만이 아니라 불신자들에게도 보여준다. 그러나 이것들로는 견고한 믿음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칼빈의 생각이다. 구원하는 지식을 위해 성경이 충분한 때는 바로 성령의 내적 설 득으로 확실성이 섰을 때이다.20 따라서 인간들의 증거는 부차적인 것으로 가장 높은 증거를 따르는 것일 때 무익하지 않다. 또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거하길 원하는 것은 바보스런 일을 하 는 것인데, 왜냐하면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21 칼빈의 성경의 권위를 자체가신성과 성령의 증언을 통해 우리에게 새겨 지는 확실성과 연결시킨 것은 이제 당대의 두 흐름의 오류를 배격하는 근 거가 된다. 먼저 성경을 죽은 문자로 취급하면서 직접계시에 들어가는 불 건전한 광신자들을 거절한다. 성경은 성령의 말씀인데, 성령께서는 새로 운 교리를 만들어내지 않고 바로 성경과 동일한 교리를 말씀하는 분이며, 성령은 성경과 다른 것을 말씀하시거나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칼빈은 말씀과 성령이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성경의 자체가 신성과 성
1 note · View no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