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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不請客」
2021/08/08
一吝者家有禱事, 命道士請神, 乃通陳請兩京神道. 主人曰, 如何請這遠的? 答曰, 近者都曉得你的,說請他他也不信.
[번역] 한 인색한 자가 집안에 신령에게 빌어�� 할 일이 생기자 도사에게 신령을 청하도록 명했다. 그러자 [도사는] 축도하여 멀리 兩京의 神道를 청했다. 주인이 “어찌하여 이리 먼곳에서 부르는가”라고 물었다. [도사는] “근처의 신령들은 너에 대해 잘 알아서 청해봐야 안믿는다”고 답했다.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마흔세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笑林廣記』貪吝部.
通陳은 판본에 따라서는 通誠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禱告, 禱祝의 의미.
兩京은 명대의 경우는 남경과 북경을 말한다. 양경제도는 시대에 따라 다른데 예를 들어 한당의 경우는 장안과 낙양을 말하며, 송대에는 개봉과 하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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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실한 번역의 조건 (20)
2021/08/08
F. Scott Fitzgerald, The Great Gatsby
한애경 옮김, 위대한 개츠비, 열린책들, 2011
村上春樹訳, グレート・ギャツビー, 中央公論新社, 2006
몇년동안 미뤄두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번역본 <위대한 개츠비> 읽기’가 드디어 끝났다.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 소설의 문투보다는 약간 일본어력이 더 필요한 수준이다.
이번에 무라카미 역 <위대한 개츠비>를 읽다가 ���음과 같은 문장이 눈에 띄었다.
軍服という魔法のマントはいつその肩からすべり落ちてしまうかもしれないのだ。(제8장) (군복이라는 마법의 망토는 언제 그의 어깨에서 미끌어져 떨어질지 모르는 일이다.)
가난한 노동자 계층 출신인 James “Jimmy” Gatz가 1차대전에 참전하여 군인으로서 여러차례 무공을 세우고 소령으로까지 진급하는데, 장교들과 어울리다 생전 처음으로 양가집 처녀 데이지를 만나는 그 운명적 장면에 대한 회고적 묘사 중 한 문장이다. 하층민 출신의 그가 전쟁이 없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양가집에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1차대전 중 군인으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신속하게 진급한 덕에 장교들과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 군복이 사회경제적 신분적 차별을 일시적으로 감추는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적 균질성은 전쟁이 끝나고 전역하여 제복을 벗게되는 순간 원래의 사회적 자리로 회귀한다. 그래서 저자 피츠제럴드는 이를 자신의 신분을 감추어주던 망토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표현한 것이리라. 그런 회귀를 받아들일 수 없는 주인공이 선택한 것이 과거의 자신을 버리고 Jay Gatsby라는 백지의 인물로의 재탄생이다. 피츠제럴드의 소설가적 통찰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적확하다.
나는 1차대전이 유럽의 귀족제를 붕괴시킨 이유에 대해서 단지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해 왔었다. 개츠비를 읽고서야 비로서 근대적 보편 군대 제도가 탄생시킨 근대적 제복 또한 이런 신분적 격리와 차별을 사리지게 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리버럴한 인간이라 어릴적부터 획일적인 제복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런데 이런 획일적인 제복이야말로 리버럴한 인간이 꿈꾸는 나이브한 평등성을 담보하는데 제일 유용한 수단이었다는 점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아! 참을 수 없는 어리석음이여.
이번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은 건 어릴 적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기억을 포함하면 세번째다. 두번째는 내 독서 기록을 보자면 2014년 11월 3일에 한글판으로 독파했다. 그런데 궁금증이 든다. 왜 그때는 이 문장이 ���리에 들어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래서 찾아보았다. 참고로 원문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and at any moment the invisible cloak of his uniform might slip from his shoulders.
그가 입고 있는 투명 외투는 언제 어깨에서 흘러내릴지 몰랐다.
그렇다. 제복(uniform)이란 단어가 번역에서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 이 문장이 머리에 남을 리가 없다. 역자는 아마도 저자의 원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복(군복)이 갖는 중요성를 생각할 때 이 단어를 생략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도 번역을 때때로 준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지만 내 기준에서 제일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는 한 단어라도 자의적으로 생략하지 않는 것이다. 생략이 발생하는 이유는 문장이 매끄럽지 않기 때문이며 또 오역에 의해 의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 쉽게 받는 유혹 중의 하나가 단어를 적당히 생략하여 자신이 의도한 문장으로 변경하는 일이다. 이 경우는 문장 자체는 매끄러워질지 모르지만 저자의 원래의 의도는 십중팔구 사라져버리거나 변질된다. 내가 직역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장이 논리적으로 전후가 맞지 않는다면 우선은 자신의 어학력과 문해력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어설푼 어학력을 상상력에 의존한 문장력으로 덮으려고 할 때 번역작품은 馱作이 된다. 섯부른 의역은 번역을 휴지조작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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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不留客」
2018/07/27
客遠來久坐, 主家鷄鴨滿庭, 乃辭以家中乏物, 不敢留飯. 客卽借刀, 欲殺己所乘馬治餐. 主曰, 公如何回去呢? 客曰, 憑公於雞鴨中借一隻, 我騎去便了.
[번역] 멀리서 온 손님이 오래 기다렸다. 정원에는 닭이며 오리며 넘쳐났지만 주인은 “집에 아무것도 없어서 감히 손님께 남아서 식사하시라고 말못하겠습니다”라는 핑게로 음식 대접을 거절했다. 손님은 곧 칼을 빌려 타고온 말을 잡아 요리하려는 시늉을 하였다. 주인이 “어떻게 돌아가시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물으니 손님은 “주인장에게 닭이나 오리중 한마리 빌려서 타고가면 그만이지요”라고 답하였다.
���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마흔두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시골에서 올라온 친척이 몇년씩 집에 기식하기도 하였고, 아무튼 좁은 집에 사람이 넘쳐났었다. 그런데 어린 내 눈에 비친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의 하나는 집에 오면 꼭 밥을 얻어 먹고 간다는 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과 같이 밥을 먹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모르는 사람과 침 섞어가며 먹는 생각만으로도 식욕을 완전히 잃곤 했다. 아무튼 할머니는 늘 손님 치루느랴 고생하셨는데 심지어 단벌 신사인 친척의 와이셔츠를 매일 밤 빨아서 아침에 다려서 입혀 보내곤 한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털없는 짐승은 은혜를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먹고 자고 심지어 빨래까지 해 받은 사실을 감사하기는 커녕 당연한 일로 여겼고, 나아가 어쩌다 홀대받은 기억만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할머니가 헛고생하신 것이 억울해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난 한마디로 이런 위선적 문화를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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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叟無欺
2018/06/30
중국공산당의 창시자의 한 사람인 陳獨秀(1879–1942)의 자서전 實庵自傳에는 그가 젊은날 과거 시험에 참가한 이야기가 나온다. 光緖23년(1897) 여름의 일이다. 진독수는 안휘 사람으로 향시를 남경에서 치루었는데, 본인 말에 의하면 자신은 과거 시험에 관심이 없었지만 주변의 권유로 일단 참가해 보고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여정의 기록이 가관이다.
많은 수험생들이 聖旨를 받들어 강남 향시에 참가한다는 뜻으로 “奉旨江南鄕試”라는 깃발을 걸고 배로 운하를 이용해 남경에 입성하는데 이 때 다량의 물품을 밀수하여 큰 돈을 벌곤하였다. 수험생에 대한 국가적 예우로 짐수색을 하지 않는 점을 이용한 행위다.
임시 숙소를 구하는데 속이고 속는 일이 다반사였다.
숙소에 머무는 동안 명색이 독서인인 이들 수험생들은 거처의 물건을 훔치는 일은 물론이고 집안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숙소의 주인이 이를 문제시하면 장사치 주제에 독서인을 모독했다고 패거리를 이�� 난장판을 만들기 때문에 더 손해이고 관에 고발해봐야 독서인을 상대로 승산이 없으니 지래 없던 일로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향시로 1만인 이상의 수험생이 남경에 몰려드니 시험 특수를 무시할 수 없었다.
남경의 명물로는 시험장인 貢院 이외에 秦淮라고 불리는 지역의 유곽이 유명하다. 입만 열면 “공자왈, 맹자왈”하는 이들 독서인들은 寒士를 자처하여 점잖게 그러나 뻔뻔하게 유곽의 입구에서 嫖娼 가격을 흥정하였다.
이것이 진독수가 기록한 청말의 중국 독서인의 진면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이른바 시험에서의 부정행위다. 중국의 과거시험에서 부정행위는 중죄로 만약 발각되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관련자 전원이 사형에 처해졌다. 시험을 속이는 행위는 결국 황제를 속이는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얻을 수 있는 부귀영화에 대한 유혹을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었다. 관의 수험관을 회유·결탁·매수하여 시험문제를 유출하는 것, 채점자와 결탁하여 누가 쓴 답안지인지를 알 수 있도록 자기들만의 표시를 해 두는 것, 온갓 시험과 관련된 정보를 시험장에 몰래 가지고 들어가는 것(시험장은 좁지만 독실이기 때문에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내의에 작은 글씨로 사서삼경을 빽빽하게 써놓고 입고 들어간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대리 시험자(이를 중국어로 神槍手라고 한다)를 보내는 것 등등 말 그대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국도 과거 시험 제도를 일찍 받아들인 나라답게 시험과 관련된 부정행위의 역사가 역시 길다. 따라서 여러가지 제도적 장치가 발달했다. 예를 들면 수능의 경우 시험 출제자를 한달정도 가둬두고 군인이 보초를 선다. 출제자는 보상으로 약 천만원 전후의 거금을 손에 쥐니 나쁘지 않은 대우다. 하지만 이 제도에도 허점이 없지는 않다. 대학 사회에서 보자면 누군가가 특정 시기에 한달간 사라지면 출제 위원으로 들어간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출제 위원이 누군지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고 결국 출제 위원의 전공이나 선호 분야를 추적하여 시험 문제의 범위를 역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나 자신 오래전에, 이런 전문 지식(?)을 가지고 현직 대학 교수가 쪽집개 과외 선생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은 이런 제도에 익숙하다. 내가 접한 대부분(사실은 전부)의 교수들은 이 제도를 당연시했다. 교수들도 교수들의 양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속일 수 있는데 속이지 않는 것이 바보라는 문화를 가진 탓이다. 한국이 유난히 진짜임을 강조하는 말이 많은 사회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짜 참기름, 순 태양초, 하다 못해 공산품인 밥솥에도 real stainless steel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통 시대 중국 상인들의 표어 중에 ‘童叟無欺’라는 말이 있다. 어린이와 노인같은 어리숙한 이들도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속고 속이는 사회(중국식으로 말하면 문명사회)에서나 있을 법한 표어다.
서양은 필기 시험이란 제도를 근세에 선교사를 통해 중국에서 차용하였다. 원래 서양의 시험은 말 그대로 구술 시험뿐이었다. 따라서 필기 시험의 역사가 아시아에 비해 월등히 짧다. 이점에서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중국의 문물을 거의 다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과거제도(필기 시험 제도)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본의 대학 입시는 센터 시험 이외에도 여전히 대학별 본고사가 존재하는데 지금도 출제자가 시험 문제를 개별적으로 제출하면 그만이다. 이들을 어디에 가둬두고 그러지 않는다. 아마 가둔다고 하면 펄펄 뛸께다. 교수의 양식을 뭘로 생각하느냐고…. 난 한국이 이런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좀 못살더라도 말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의 수능 시험장에 휴대폰을 휴대하면 그 사실 만으로도 바로 퇴장당한다. 몇년전에 수험생 어머니가 실수로 자녀 가방에 자신의 휴대폰을 넣었다가 그 탓에 자녀가 실격처리된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소지 자체를 부정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알았는데 중국의 경우 휴대폰 소지를 금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험장 주위 전역에 걸쳐 전파 차단을 실시한단다. 과연 과거 제도의 나라 중국다운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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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好客」
2018/06/28
或誇某人好客, 不減孟嘗門下三千, 聞者慕其高義, 往拜之, 見門下寂無一人. 問諸客何往, 鄰家對曰, 此際皆回家喫飯去了.
[번역] 어떤이가 떠벌이길 모 아무개가 객을 좋아하여 식객 수가 맹상군 문하 3천인에 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듣는이가 그 높은 뜻을 기려 찾아가 인사하려고 하니 집안에 아무도 없이 고요하였다. 식객들이 다 어디갔는가 물으니 옆집 사람이 이렇게 답하였다. “지금은 모두 밥먹으러 집으로 돌아갔지요.”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마흔한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원제는 「名好客」.
호객이란 ‘객을 좋아하다’라는 動賓 술어로 원제 名好客은 이 동빈 술어가 명사화하여 ‘이름�� 객을 좋아하는 이’라는 의미.
맹상군은 전국시대 제나라의 인물로 사군자의 한사람, 본명은 田文. 식객이 많을 때는 삼천명을 넘었다고 하며 鷄鳴狗盜의 고사로 유명하다. 사기에 孟嘗君列傳이 있다. 요즘 개념으로 보자면 전형적인 호더(hoarder).
喫飯은 '밥을 먹다’는 뜻으로 吃飯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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苦茶庵笑話集序
2018/06/18
찾아보면 笑話는 예부터 있어왔지만 나중에 어쩐 일인지 돌연 사대부들에게 무시당하여 다시는 著錄되지 않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 시기가 도학과 팔고문이 흥기한 때일 것이다. 어린 시절 경전을 읽을 때 <맹자>에 송나라 사람이 자라는 것을 돕는답시고 묘를 뽑아놓고(揠苗助長) 아무것도 모른채 돌아오는 정경을 서술한 것을 보고 미소를 금하지 못했다. 공자가 말한 아버지가 양을 훔치니 아들이 이를 고발하는 이야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유사한 우스갯거리가 있고, <한비자>에 기록된 송나라 사람의 여러 고사들로 치자면 후대의 덜떨어진 사위가 곧바로 그 아류에 해당한다. <隋書·經籍志> 중에는 魏 邯鄲淳의 <笑林> 3권이 저록되어 있다. 당에 이르르면 侯白의 <啓顔錄> 등이 있어 송초에 편찬된 유서 중에 다수 인용되어 있다. 그러나 송조의 이 부류의 저작은 대단히 적어서 다른 분야의 속문학이 점차 성장하는 바로 그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笑話는 그 문학 상의 지위를 상실해 갔다. 한편 명 중엽에 왕학과 선종이 득세한 이후 사상 해방의 영향이 문예로 미치자 馮夢龍이 <笑府> 13권을 편찬하였다. 이로써 소화는 다시금 소설 희곡의 말좌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3월 19일[1] 天地가 飜覆하여 胡人이 즉위하자 聖道[2]가 다시 부흥하고 이탁오와 공안파, 경릉파는 모두 금서가 되었다. 墨憨齋[3]의 이름도 역시 먼지속에 매몰되고 <笑府>는 죽어서 <笑林廣記>로 부활하였지만 오랫동안 하등한 서적으로 인식되었고 독서인이 입에 담지 않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사실 이는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笑話는 원래 자기 역할이 있고 간단히 이를 열거할 수 있다. 첫째, 이치를 말하고 일을 ��하는 경우 空言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예로 들어 분명히 하고 웃음을 골라 부드럽게 하면 저절로 解頤[4]하여 마음도 기쁘고 뜻도 승복하게 된다. 많은 옛사람들이 이를 취하여 우언에 빗대곤 하였다. 둘째, 무리로 모여 마실 때면 늘상 귀신을 말하고 하늘을 이야기한다. 詼諧 소설 또한 같은 이치로 마음의 답답함과 우울함을 풀어준다. 오늘날에도 우스개소리를 잘하는 자는 능히 비파를 뜯고 노래하는 자와 마찬가지로 벌주를 면할 수 있다. 셋째, 문학 작품으로 간주해 볼 경우 이를 故事(서사)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滑稽 소설의 뿌리나 싹으로 볼 수도 있고 혹은 줄기나 잎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연구자나 감상자들이 모두 여기서 얻을 것이 있으니 단지 중국의 골계 소설이 유독 발달하지 않았기에 소화가 결국 홀로 외로운(孤苦伶仃) 감이 있을 따름이다. 넷째, 가요나 故事, 속어(諺語)와 마찬가지로 소화는 민중들이 느끼는 바를 드러낸다. 무릇 생활의 정경, 풍토나 습관, 성정의 호악은 모두 자연히 드러나는 것로 더군다나 直截적이고 철저하다. 이는 바로 민속학의 제3류로서 절호의 재료이다. 예를 들어 전족에 대한 嗜好는 물론 사회적으로 명백한 사실로, 시문이나 가요에서 이를 노래하고 무대에 세우면서 도처에서 찬미하였다. 그런데 소화 중의 <脚像觀音>이나 <逐段烘> 등을 보면 아름다움과 가시돋힘이 모두 드러나고 남자들의 전족에 대한 감정이 비로소 명확해진다. 또 예를 들어 <換灰>(본편 미수록), <賣糞>은 중국 남방의 민간 풍속의 한 정경을 구현하였지만 이런 작은 일들은 종래 문인이나 학사들이 기록하기를 꺼리는 일이었다. 賈思勰[5]이나 郝懿行[6] 같은 몇몇만은 예외지만 다만 이들은 모두 북방 학자이다. 소화를 편찬한 인물은 대다수가 남방사람들로 대체로 북방인의 樸實한 학풍을 결여하였지만 이를 통해 무의식중에 풍속에 관련한 잡다한 작은 일들을 남겼다. 기뻐할만한 일이다. 石天基[7]가 기록한 소화 중에는 내용인즉 자식이 남의 넓적다리를 잘라 효도한 이야기가 있다. 이는 <二十四孝>를 떠받들어 온 역사의 하나의 반영이자 동시에 중국 사회를 담은 한편의 사진과도 같아서 충실히 묘사하면서 동시에 이를 약간 골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우리들이 국난[8] 이래 2년간 보고 겪은 것들을 생각하면 이 <割股>같은 일은 너무도 많다. 이런 소화는 옛 사람들의 脈案[9]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현재에도 쓰임새가 있다. 가죽채찍을 내쳤는데 채찍이 금방 되돌아와 자기의 등줄기를 때린다면 우스개감이다. 그러나 쓰고 매운 풍자 소설의 풍미가 있다. 이 또한 별도로 의미를 갖는 쓰임새의 하나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바는 마땅히 민속학적 자료로 보아야 한다는데 중점이 있다. 여기서는 우선 명청의 문인들이 편찬한 것을 1집으로 초록하고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민간의 민중들의 구술을 녹취하여 현대에 통용되는 소화를 모아 제2집으로 할 생각이다. 된다면 이쪽의 가치가 더 클 것이다. 소화의 내용은 <笑林廣記>의 분류에 따르자면 12종류로 나뉜다. 즉 (1) 古艶 (官職科名等) (2) 腐流 (3) 術業 (4) 形體 (5) 殊稟 (癡呆善忘等) (6) 閨風 (7) 世諱 (幫閒娼優等) (8) 僧道 (9) 貪吝 (10) 貧窶 (11) 譏刺 (12) 謬誤이다. 종합해 보면 간단하게 빈정·조롱(挖苦)과 외설의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양자간에는 물론 항시 뒤섞이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외설의 힘은 대단히 크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연유도 다른 것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예를 들어 덜떨어진 사위를 조롱하는 이야기는 兩性 관계를 재료로 삼은 즉, 듣는이의 웃음은 덜떨어짐에 있지 않고 외설에 있다. 또한 <戮破肚皮>(笑府를 보라. 본편 미수록) 등의 예를 보더라도 모두 이 부류에 속한다. 고로 외설적 소화가 그 수가 훨씬 더 많다. 이른바 빈정·조롱이란 어리석고, 신체에 결함이 있고, 잘못하고, 실패하는 것을 재료로 삼는 것은 모두 해당하는데 이 부류는 그 성격이 단일하지 않아 극히 유치하고 단순한 이야기로부터 비교적 복잡다단한 내용까지 다양하다. 무릇 사람들의 마음은 일상적인 것을 싫어하고 변화를 즐기며, 습속에 반하고 常態를 변화시킨 사물이나 언동에 흥미가 많은데, 이는 특히 어린이에게 잘 드러난다. 고로 ‘얼굴을 펴면(張貌)’ 바로 웃고, 할아버지가 아기 모자를 쓴다거나 아기가 할아버지의 모자를 써도 죄다 웃는다. 찰리 채플린(賈波林)은 영화에서 이런 예술로 일세를 풍미했는데 위대하다고 할 만하다. 그 다음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즐기는(幸災樂禍) 내용인데, 비록 인간의 큰 병폐이지만 이런 機微한 표현은 凡人이라면 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실수를 들으면 자신은 능히 변별할 줄 아니 스스로의 지력의 뛰어남을 드러내고, 남의 신체에 결함이 있어 실수한 것을 보면서 자신의 오체만족을 행운으로 여긴다. 이것이 대체로 사람들의 喜樂의 원인으로, 혹은 정신 체조에 일조한다고 할 수도 있다. 10년전에 나는 <徐文長的故事> 몇 가지를 기록하였는데 해설 중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도덕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이야기에는 틀림없이 교훈으로 삼을 수 없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민중의 생각이란 어떤 면에서는 야만인과 많이 닯았다. 그들은 힘이야말로 이치라고 믿으며 체력이든 지력이든 마력이든 어떻게든 이기기만하면 즉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어리석고 나약한(孱弱) 실패자에게는 어떤 동정도 하지 않는다. 이는 세계의 동화나 전설을 읽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이 말을 빌어와 여타 부분에 대한 설명으로 삼겠다. 한편 외설적인 내용은 소화에서 그 자체로 특수한 의의를 갖으며 위에서 말한 것과 상당히 다르다.——확실히 외설적인 것은 어떤 사회에서고 금기거나 제약이 따른다. 외설이 돌연 출현하는 것은 원래 습속에 반하고 常態를 바꾸는 일로, 큰 신발을 거꾸로 신는 것 혹은 딸기코(酒渣鼻)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외설에는 다른 면에서 대항할 수 없는 자극적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곧바로 인생에서 가장 강대한 욕구를 이끌고 그것이 나아감을 촉진한다. 다만 현실에 저촉되지 않기에 웃고 끝나는 일에 불과한 점에서 우스개가 되고 다른 것들과 구별되는 所以이다. 이 현상은 가려움을 긁는(呵癢) 행위와 유사하다. 엘리스(Henry Havelock Ellis, 1859~1939)씨에 따르면 긁는 행위는 원래 성적이 悅樂에 가깝기 때문에 쉽게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생활상의 종종의 장애 탓에 성은 아무때고 발현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한편으로는 멀리하게 되니 거부감(牴牾)이 사라진 이후에야 이런 멀리함도 사라지고 남은 힘이 발산되어 笑樂이 된다. 사실 悅樂이 웃음보다 앞선다면 웃음은 더이상 즐거움이 아닐 것이다. 영국의 그리그(J. Y. T. Greig, 1891~1963)씨는 저서 『웃음과 희극의 심리 The Psychology of Laughter and Comedy』제5장 성적인 것, 외설적인 것(남녀관계) 고상하지 않은 것(똥오줌) The sexual, the obscene, and the indecent)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야만 민족이나 혹은 각국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민중간에 외설적인 笑話는 대단히 널리 퍼져 있다. 그 첫번째 이유는 간단히 말할 수 있다. 단지 한두 마디 암시적인 자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내뱉으면 저 밭가는 소년이나 소 젖짜는 여자들을 화들짝 웃게 만들고 일종의 외설적인 자세만으로도 공연장 안을 웃음소리로 가득하게 만들 수 있다. 두번째 보다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역량 즉 힘이 있다는 점이다. 외설적인 소화는 다른 어떤 것들에 비해 성욕에 대한 강력한 자극력을 갖는다.” 이로써 우리들은 이렇듯 소화가 횡행하는 것을 양해할 수 있게 되지만 그 본질 또한 명료하게 되고 장단점도 알 수 있게 된다. 각종 소화에 관한 서적을 펼쳐보면 이런 류는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맞게 절제되어 저작의 숲에 넣을 만한 것을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묘사가 노골적인 것은 민속자료로서의 가치가 아무리 높더라도 수록하지 않았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爾雅[10]한 것만을 취하였다. 외설적인 가요, 고사 그리고 외설어의 수집 작업 또한 대단히 중요하지만 오늘날의 국풍이 부박하고 가혹한 양 극단으로 가는 추세이니 이를 어찌 언급하리오. 단지 장래를 기다릴 뿐이지만 이 ’장래’가 언제일지 과연 도래할런지는 잘 모르겠다. 한가한 소리는 거두고, 不佞[11]한 내가 지금 세 종류의 소화를 집록하니 세 종류 모두 명말청초의 저작으로 하나는 <笑府>, 둘은 <山中一夕話>[12]본의 <笑倒>, 셋은 <傳家寶> 一二集본 <笑得好>이다. 내 의도는 문예 및 민속학상에서의 소화의 미미한 지위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업 계획을 갖고 있다. 첫째, 고서에서 소화를 집록하는 것, 둘째, 민간의 소화를 수집하는 것, 셋째, 현존하는 소화서에서 발췌하는 것이다. 단 첫번째 고고학적 작업은 내 능력 범위 밖이고, 두번째 사업은 비록 아무리 번중하더라도 내가 자원봉사할 의지도 있지만 그 사업이 성과를 내는 것은 필경 장래의 일일테니 때가 되면 다시 언급하겠다. 목하에 행한 작업은 곧 세번째 종류의 장난질[13]이다. 현존하는 소화서를 말하자면 그 범위는 대단히 넓고 분량도 마땅히 적지 않다. 이를 완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외에도 또 하나의 제약이 있다. 즉 가능한 한 편자의 이름을 알 수 있는 저작을 우선적으로 취급한다는 원칙이다. 결과로 위의 세 저작이 선정되었고 <笑林廣記> 이하 <一見哈哈笑> 같은 부류는 부득이 탈락시켰다. <笑府>는 원본이 13권으로 墨憨齋主人撰이라고 題한다. 묵감재는 풍몽룡이 공개적으로 사용한 필명인데 그가 이 별호로 편찬한 것은 희곡과 소설이 대부분이다. 그 지위는 대체로 이탁오와 김성탄의 중간 정도로 명말의 순문학계의 대표 주자의 한 사람이다. 그가 편찬한 <古今談槪>는 史傳의 笑��을 집대성한 것으로 청초의 刪改를 거쳐 <古今笑> 혹은 <古笑史>라고 이름지어졌고 李笠翁[14]의 서문이 붙어있다. 이에 반해 <笑府>는 순수한 허구로 조소를 목적으로 한다. 양자의 차이는 바로 전설과 동화의 차이와 유사하다. <소부>는 후일 <소림광기>로 개편되었고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지금 알려진 바로는 대련의 滿鐵圖書館이 한 부 소장한다고 하는데 보지못했다. 현재는 일본 화각본 두 종류를 근거로 삼았다. 하나는 2권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단권본이다. 風來山人刪譯이라고 題하였는데 풍래산인[15]이란 18세기 일본의 천재적인 작가로 번역의 진위는 알 수 없지만 그 명성이 풍몽룡에 비견하는 존재인즉 書坊에서 멋대로 붙인 것인지도 모른다. 두 종류의 내용은 다른 것이 많아 참작하여 초록하였다. 외설류는 너무 심한 것은 부득이 할애하였다. 원래 서문이 붙어있는데 다음과 같다. 문장이 또한 妙文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뿐이고 이야기는 곧 웃음이다. 양의(천지)의 혼돈개벽, 열성의 읍양정주[16]를 본 자가 어디 있는가? 무릇 이를 이야기할 뿐이다. 훗날의 사람들이 지금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마도 지금의 사람들이 옛날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야기하는 바를 의심하는 것은 우습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것을 믿는 것도 역시 우습다. 경서와 자서 사서는 귀신의 이야기로, 후대에 전함을 다툰다. 시부와 문장은 한가한 이야기로, 빼어남을 다툰다. 포기신억[17]함은 어지러운 이야기로, 나아가고 물러남을 다툰다. 혹자는 남을 비웃고 혹자는 남에게 비웃음당한다. 남을 비웃는 자도 또 역시 비웃음당하게 되고 남에게 비웃음당하는 자도 또 역시 남을 비웃게 된다. 사람들의 서로 비웃는 일이 언제 그칠날이 있으랴. 소부는 소화를 모은 것으로 13편이 적다고 할 지경이다. 혹자는 이를 읽고 웃을지니 웃지 말지어다. 혹자는 이를 읽고 화를 낼지니 화내지 말지어다. 고금의 세상은 커다란 웃음 곳간(소부)이다. 나와 너는 모두 그 속에서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이야기가 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고 웃지 않으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웃지않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세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포대화상[18], 내 스승이여, 내 스승이여[19]. 묵감재주인 제하다. 古今來莫非話也. 話莫非笑也. 兩儀之混沌開闢, 列聖之揖譲征誅, 見者其誰耶? 夫亦話之而已耳. 後之話今, 亦猶今之話昔, 話之而疑之, 可笑也. 話之而信之, 尤可笑也. 經書子史, 鬼話也. 而爭傳焉. 詩賦文章, 淡話也. 而爭工焉. 褒譏伸抑, 亂話也. 而爭趨避焉. 或笑人, 或笑於人, 笑人者亦復笑於人, 笑於人者亦復笑人. 人之相笑寧有已時? 笑府, 集笑話也, 十三篇猶曰簿乎云爾, 或閱之而喜, 請勿喜, 或閱之而嗔, 請勿嗔. 古今世界一大笑府, 我與若皆在其中供話柄, 不話不成人, 不笑不成話, 不笑不話不成世界. 布袋和尚, 吾師乎, 吾師乎. 墨憨齋主人題.
이야기가 여기에 이르면 <開巻一笑> 권7의 한편으로 포대화상이 지었다는 <呵呵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繁冗함을 무릅쓰고 전문을 여기에 실는다.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원문을 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나보고 종일 웃는데 누굴보고 웃냐고 말했지. 난 저 지난날의 해골을 보고 웃지 않아. 난 저 눈앞의 땅강아지를 보고 웃지 않아. 제일로 소머리의 복희씨를 보고 웃지. 당신은 무슨 괘를 그려서 시비거리를 만들고 완전�� 태극을 망쳐서 조각조각 내버렸지.[20] 난 풀을 먹는 신농씨를 보고 웃지. 당신이 무슨 약을 먹었다면서? 할일이 없으니 일을 만들어 수많은 병의 뿌리를 죄다 끄집어냈지.[21] 난 요임금과 순임금을 보고 웃지. 당신이 천자를 선양했다며. 난 탕왕과 무왕을 보고 웃지. 당신이 천자를 빼앗았다며. 그래도 아무도 옆에서 보는 사람이 없으니 그래봐야 십자로의 조그만 가게주인에 불과한 것을 잘 알지. 거기에 용봉이니 비간이니 이윤과 여상[22]이 있고, 또 소보와 허유[23] 그리고 백이 숙제가 있지만 기껏해야 조잘거리는 정도여서 내가 무슨 여유가 있다고 그런 자들을 보고 웃겠는가. 나는 저 노자의 오천언 도덕경을 보고 웃지. 나는 저 부처의 오천권 불경을 보고 웃지. 공연히 저들 도사들로 하여금 운라를 치게하고, 저들 중들로 하여금 목어를 치게하여 헛짓을 하였지. 거기에 무슨 푸른 소의 도리가 있으며 흰 소의 맛이 있었겠어? 나중에 또 저 달마라는 외국인 탓에 이 간시궐[24](마른 똥막대기)의 찌꺼기를 씹고 또 씹고, 씻고 또 씻었지. 또 공자를 신봉하는 완고한 자들을 보고 웃지. 당신들 지겹도록 도학의 문장을 떠들어대는 바람에 멀쩡히 잘 사는 사람들을 이유없이 다 죽게 만들었지. 또 장도릉과 허정양[25]을 보고 웃지. 당신들 대낮에 승천한들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시나? 단지 이런 되다만 것들은 결국 되봐야 원통한 귀신뿐. 머물러라. 머물러라. 머물러라. 한번 더 웃자. 나는 저 천상의 옥황상제와 지하의 염라대왕을 보고 웃는다. 저 고금의 황제와 같이 당신들 평천관[26]을 쓰고 곤룡포[27]를 입으니 이런 속된 복장이 무슨 체면이라도 치뤄준다녀냐? 당신도 생각을 좀 해 보시게. 힘들면 힘들고 어리석으면 어리석은거지 뭐하자고 쓸데없이 모두 시끌법석 쉬지도 못하게 만들어. 물럿거라. 물럿거라. 물럿거라. 이 웃음은 웃으니 하늘도 근심하고 땅도 근심하고 사람도 근심하고 귀신도 근심하고 삼세불[28]도 근심한다. 저 등롱의 반쪽 주둥이가 없건 말건 상관할 일인가. 아! 아! 아! 이 웃음, 너 필경 누군가를 비웃지? 관두자. 관두자. 관두자. 설명했지만 난 저 보통사람들을 보고 웃지 않아. 난 또 저 일상적인 일을 보고 웃지 않아. 아! 그네들을 보고 크게 웃으려 했더니 알고보니 나의 당신이였구려. 你道我終日裏笑呵呵, 笑着的是誰? 我也不笑那过去過去的枯髏, 我也不笑那眼前的螻蟻. 第一笑那牛頭的伏羲, 你畵什麼卦, 惹是招非, 把一個囫圇圇的太極兒弄得粉花碎. 我笑那吃草的神農, 你嘗什麼藥? 無事尋事, 把那千萬般病根兒都提起. 我笑那堯與舜, 你讓天子. 我笑那湯與武, 你奪天子. 他道是没有個傍人兒覷, 覷破了這意思兒也不過是個十字街頭小經紀. 還有什麼龍逢比干伊和呂, 也有什麼巢父許由夷與齊. 只這般唧唧噥噥的, 我也哪里有工夫笑着你. 我笑那李老聃五千言的道德. 我笑那釋迦佛五千卷的文字. 乾惹得那些道士們去打雲鑼, 和尚們去打木魚, 弄些兒窮活計. 那曾有什麼青牛的道理, 白牛的滋味, 怪的又惹出那達摩老臊胡來, 把這些乾屎橛的渣兒, 嚼了又嚼, 洗了又洗. 又笑那孔子的老頭兒, 你絮叨叨說什麼道學文章, 也平白地把好些活人都弄死. 又笑那張道陵許旌陽, 你便白日昇天也成何濟, 只這些未了精精兒到底來也只是一個冤苦的鬼. 住住住! 還有一笑, 我笑那天上的玉皇, 地下的閻王, 與那古往今來的萬萬歲, 你戴着平天冠, 穿着袞龍袍, 這俗套兒生出什麽好意思? 你且去想一想, 苦也麽苦, 癡也麼癡, 著什麽來由乾碌碌大家喧喧嚷嚷的無休息. 去去去! 這一笑笑得那天也愁, 地也愁, 人也愁, 鬼也愁, 三世佛也愁, 那管他燈籠兒缺了半邊的嘴. 呵呵呵! 這一笑, 你道是畢竟的笑着誰? 罷罷罷! 說明了, 我也不笑那張三李四, 我也不笑那七東八西, 呀! 笑殺了他的咱, 卻原來就是我的你.
이 마지막 몇마디야말로 바로 풍몽룡이 배운 곳일 것이다. 위에서 보이는 양의와 열성에 대한 불경도 사실은 여기서 출발한 것이다. 어디 이것뿐이랴. 즉 저 歸玄恭 혹은 熊魚山[29]이 지은 유명한 <萬古愁>曲도 그 격조와 의미가 <呵呵令>과 아주 흡사하다. 우리가 그렇다고 포대화상을 곧바로 이들의 스승이라고 단정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이 시기의 문단에 이와 같은 풍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는 있다. 게다가 <萬古愁>의 이런 작법도 작가가 혼자 창시한 것이 아니다. 이점은 매우 분명한 사실이다. <개권일소>에는 일본 寶曆 5년(1755)에 번각된 2권본이 있다. 巢菴主人小序에는 “<개권일소>는 명의 李卓吾가 편집한 것으로 屠赤水[30]도 참여하였다. 후인의 刪補를 거쳐 <산중일석화>로 개명되었다. 상집·하집 각각 7권으로 되어 있다. 상집은 詞賦傳記를 모았고 하집은 笑言嘲詠이 많이 나온다”고 나와 있다. 북경대학이 한부 소장하고 있는데 老田海內씨의 家藏圖書印이 찍혀 있다. 이 또한 해외에서 전래한 것이리라. 원각본 상집 7권은 序目이 모두 <일석화>로 개칭되어 있지만 판심은 모두 여전히 <개권일소>로 되어 있다. 卷首에는 “卓吾先生編次”라고 서명이 있고 제3권에는 아직 “一衲道人屠隆參閱”이라는 한 행의 문자가 남아있다. 나머지는 모두 목판을 칼로 파내 고쳤다. 하집의 원각본은 아직 보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산중일석화>는 즉 개각본으로 그 중에 소화만을 모은 <소도> 1권이 들어 있다. 여기서는 이를 근거로 하여 選錄하였다. 全書에는 咄咄夫의 서문이 달려있는데 문장이 이 또한 佳妙하다. 아래에 옮겨 적는다.
하루밤 사이에 너무 말이 많다고 탓하지 마시라. 고금이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고 아이가 꿈을 꾸다 깨는 것과 같다. 내가 듣기에 요순의 중천은 정오에 속한다는데 오늘 저녁은 언제쯤인지 모르겠다. 未申[31]의 시각은 지났을가? 아아! 창창한 것은 하늘이요, 망망한 것은 땅이다. 무수한 사람이 그저 헛되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니 또 큰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윤회에 집착해 정신을 빼앗고 사람을 생사의 사이에 있게 하여, 나아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닌 지경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 있는가? 천지에 홀로 크게 적막한 사람이란 없음을 깨달으니 이 만억의 陪堂이 없을 수 없어 여기에 일대 戲文을 풀어내는 바다. 咄咄夫는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또한 생단정추[32] 중 어떤 배역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이 극의 어느 막까지 역할이 있을지 알겠는가. 하룻밤 고민하다 홀연히 천지를 책상에 불러내 문답하고 싶어졌지만 쓴 소리고 냄새고 전혀 없다. 이해할 수 없어서 크게 소리쳤다. “하늘이여 무슨 말이라도 해봐라. 저녁에 죽어도 좋다[33]” 고. 그리하여 심심풀이가 아닌 것에서 심심풀이하는 법을 찾았는데, 단지 快士와 快談을 나누고 천지를 대신하여 선전 담당을 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입과 먼저 약속하였으니 오늘 저녁 크게 답답하니 네 덕에 이를 풀어볼까 한다. 원래 천지를 위해 윤회하지만 지금은 천지를 윤회하고 싶다. 이야기는 반드시 북두와 견우성을 찔러 부술터니 부디 俗儒의 재잘거림을 배우지 말지어다. 사람으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며, 사람으로 하여금 책상을 치게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며, 사람으로 하여금 웃다 울게 만들지 않고, 사람으로 하여금 돌연 손발이 춤추게 만들지 않는다면 말하지 말라. 만약 듣고서 눕고 싶어지는 자가 있다면 네 죄니,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단지 화만 낼지니 답답함이 여기서 발설될 수 있다. 이에 십종의 이야기를 모았으니 잠시나마 하룻밤 웃게할지어다. 그렇다고 10년의 독서보다 더 낫다고 어찌 감히 말하랴. 때는 무술년[34] 춘정월 보름. 咄咄夫 半庵에서 제하다. 莫怪一夕間有許多饒���也. 古今一旦暮爾, 孩髦一夢覺爾, 竊聞堯舜中天方屬正午, 不知今夕何夕, 曾交未申時不? 嗟乎哉, 蒼蒼者天, 茫茫者地, 卽不幻出無數皮囊, 亦覺饒有別趣, 何苦板板捏住輪廻, 奪頭誘人於生生死死之中, 復誘人於不生不死之地哉. 因悟天地無人殊大寂寞, 定不可少此萬億陪堂, 演此一本大戲文來也. 咄咄夫不知何許人, 亦不知生旦淨丑中那脚色, 更知演到第幾齣將半本未? 一夕思煩神躁, 忽欲邀天地於几案而問答之, 而又苦聲臭都無, 不可理會, 因大呼曰, 天何言哉, 夕死可矣。於是從無可消遣中覓一消遣法, 唯有對快士作快談, 代爲天地設一傳宣官而已. 因與口先鋒約曰, 今夕大悶, 賴爾能頤我, 原爲天地輪回, 今且欲輪回天地也。話須沖破斗牛, 慎勿效俗儒喋喋, 不令人點首勿話, 不令人拍案勿話, 不令人忽笑忽哭, 不令人忽欲手舞足蹈勿話, 如有聽之欲臥者皆汝罪, 若不話寧但作咄咄聲, 悶氣猶得從此處發洩也. 爰集十種話, 聊破一夕顏, 若以爲勝十年讀書也則吾豈敢. 時戊戌春正月望日, 咄咄夫題於半庵.
<소도>는 10종 중 네번째다. 위에 小引이 한편 실려있는데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대지는 하나의 웃음장이다. 귀신의 얼굴을 하고, 원숭이처럼 공중재비를 돌고, 목소리로 이런저런 흉내를 내고, 추한 몰골이 유난하다. 내가 크게 슬플 때에 비단 쓸데없는 눈물도 흘리기 싫고 근심을 완전히 덮어버리고 싶지만, 또 그렇다고 파리한 미간을 괴롭히는 것도 견딜 수가 없다. 객이 “듣기에 웃음을 사고 근심을 이기는 법이 있다고 하는데 당신은 왜 이를 배우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니 나는 그냥 “녜녜” 하고 답한다. 그런데 크게 웃는 것은크게 통곡하는 것이다. 笑倒를 모았다. 大地一笑場也, 裝鬼臉, 跳猴圈, 喬腔種種, 醜狀般般. 我欲大慟一番, 既不欲浪擲此閒眼淚, 我欲埋愁到底, 又不忍鎖殺此瘦眉尖. 客曰, 聞有買笑征愁法, 子曷效之? 予曰, 唯唯. 然則笑倒乎, 哭倒也. 集笑倒.
<소도>와 <소부>의 서문은 그 태도가 서로 가깝다. 모두 불평을 늘어놓고 소화를 빌어 세간을 조롱한다. 그런데 <笑得好>는 꽤 다르다. 소화는 소화이지만 이를 통해 권선징악으로 귀결한다. 이점에서 보면 우언에 가깝다. <소득호> 1권은 二集을 한권으로 모았으며 머리에 自序가 있어 用意를 설명한다. 문장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일단 밑에 실어둔다.
인성은 모두 선량하다.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나쁜 것은 물욕에 어두워지고 가려지고, 세속의 습관에 길들어져 물들어 고질병이 된 것으로 의약으로 낫기 어려우니, 묵자의 슬픔이 깊고 아플따름이다. 현자가 있어 좋은 말과 올바른 말로 큰 소리로 질책한다하더라도 어찌하겠는가 미망하여 깨닫지못하고 마음에 경계로 삼지도 않고 귀에 들어오지도 않으니 이쪽은 말하나 마나고 저쪽은 들으나 마나다. 진실로 크게 탄식할 만하다. 바른 말은 들으면 졸리고 우스개소리는 들음에 뒤쳐질까 두려워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다. 이미 바른 말로 가르쳐도 듣지않는 지경이니 어찌 소화로 겁을 먹도록 하는 것이 득이 아니겠는가. 내가 소화서를 한 부 저술하고 놀라서 깨어나도록 평을 열거하였다. 지금의 독자는 무릇 과건, 편사, 몽매, 탐치의 문제를 안고 있으니 내 우스개를 듣고 모두 참회하고 회개하여 모두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지어다. 笑得好 석자를 책 제목으로 삼았으니 혹자가 내 뜻은 가상하나 말이 너무 각박하고 독하여 듣는자로 하여금 견디기 어렵게 한다고 비난한다면 웃음이 노여움이 되어 성스러운 말의 함축의 비유를 부정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이 어찌 아름다운 뜻으로 원한을 사는 요인이 아니란 말인가. 내 생각에 오래된 고질병이라 독한 약을 쓰지 않으면 기사회생하기 어렵다. 만약 내 우스개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노하고 원망하는 자라면 이미 병이 위독하여 의사가 양약을 권해도 의심하여 먹지 않고 오히려 약성이 독함을 탓하니 건강하고자 한들 어찌 이를 얻을 수 있으랴. 단지 우스개를 듣는 자가 경계의 마음을 귀담아 듣기를 바랄 따름이니 인성의 천부의 선량함이 바로 회복되어 천지에 어디고 좋지 않은 인간이 없어진다면 그제서야 각독한 말이 세상에 공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전적으로 우스개를 듣고 즉시 참회하고 즉시 회개하는 것이 곧 잘 배우는 사람이다. 석천기 찬하다. 人性皆善, 要知世無不好之人, 其人之不好者總由物欲昏蔽, 俗習熏陶, 染成痼疾, 醫藥難痊, 墨子之悲深可痛也. 卽有賢者, 雖以嘉言法語, 大聲疾呼, 奈何迷而不悟, 豈獨不警於心, 更且不入於耳, 此則言如不言, 彼則聽如不聽, 真堪浩嘆哉. 正言聞之欲睡, 笑話聽之恐後, 今人之恆情, 夫既以正言訓之而不聽, 曷若以���話怵之之爲得乎. 予乃著笑話書一部, 評列警醒, 今讀者凡有過愆偏私蒙昧貪痴之種種, 聞予之笑, 悉皆慚愧悔改, 俱得成良善之好人矣, 因以笑得好三字名其書. 或有怪予立意雖佳但語甚刻毒, 令聞者難當, 未免破笑成怒, 大非聖言含蘊之比, 豈不以美意而種恨因乎?予謂沈痾痼疾非用猛藥何能起死回生, 若聽予之笑, 不自悔改而反生怒恨者, 是病已垂危, 醫進良藥, 尚遲疑不服, 轉咎藥性之猛烈, 思欲體健身安, 何可得哉? 但願聽笑者入耳警心, 則人性之天良頓復, 遍地無不好之人, 方知刻毒語言有功於世者不小, 全要聞笑卽愧即悔, 是卽學好之人也. 石成金天基撰.
소화를 가지고 교훈으로 삼는 것은 거슬러올라가자면 이것이 바로 공맹의 전통이다. 단지 사물은 드물면 귀하듯 옛사람들이 어쩌다 한번 하면 후세에는 또 이를 오래되고 뛰어난 소화의 吉光片羽[35]로 삼는다. 따라서 의미가 있다. 만일 맨날 이런 짓만 한다면 그야말로 바보멍텅구리일 것이다. 게다가 대단히 기이한 것은 이 도학파의 소화집에 특히나 극히 견디기 힘든 이야기가 많다는 점이다. 어떤 것은 외설적인 내용을 제하면 남는 것이 전혀 없으니 이에 덧붙인 교훈은 자연히 전부 허당이다. 이에 내 생각에는 저 편자의 태도는 실은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훈은 일종의 꾸며낸 속임새에 불과하다. 언제나 名敎를 표방하면서 음란한 책을 쓰는 인간들은 다 이와 같다. <野叟曝言>의 저자 夏二銘은 이런 인간의 일례이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보면 석천기의 <전가보> 4집의 宗旨는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난세에 목숨을 부지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를 보위하는 기운이 충분치 않다. 소화를 편집함에 비록 그 내용이 잡스럽고 지저분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진짜 이름을 걸고 하였다는 점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취할 바가 있는 정도다. 중국은 현재 ‘유머’가 대단히 유행하는 듯 싶지만 이는 절대로 길조가 아니다. 러시아가 아직 제국일 때 어떤 문인이 말했다. 풍자는 노예의 언어라고. 이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시골사람이 서로 만나서 어떤 이를 ‘伽藍菩薩’이라고 말한다면 전당포의 점원이 술취하고 배가 불러서 머리로 궁둥이를 겨루는 놀이를 하는 것을 방불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어두운 배경을 갖는다. 민중들로 하여금 담론하게 만들어 그로써 그들의 쓸데 없는 기운을 발설하게 한다. 진정한 고통이든 아니면 거짓된 불평이든 ���는 바로 태평한 기상일 따름이다. 이러한 시기에 소화를 편집하는 것이 이런 유머의 유행에 올라타는 것 같고 추세에 근접한 느낌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유머가 없고 우스개소리도 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하는 소화를 들을 뿐이다. 비록 소화를 듣는 것도 소화 속에서는 조소되지만…. 나는 현재 몇 종류의 편자 서명이 있는 것을 모아 이에 내 서명을 붙여 하나의 선집을 편찬하였는데 속문학과 민속학 자료의 일종으로 삼기 위해서이다. 장래에 능히 원본 <소부>와 <개권일소>의 하집을 발굴하여 이에 補訂을 덧붙일 수 있다면 이는 더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중화민국 22년(1933) 7월 27일 周作人 북평[36]에서 쓰다.
3월 19일이란 李自成이 이끈 반란군이 북경을 포위, 마침내 북경성이 함락되자 명의 마지막 황제 崇禎帝가 紫禁城 북쪽의 景山에서 목을 매 縊死한 날이다. 양력으로는 1644년 4월 25일. ↩
주자학을 가리킨다. ↩
풍몽룡을 말한다. ↩
턱이 떨어지는 것, 즉 웃음을 비유. ↩
齊民要術의 저자로 北魏시대의 인물. ↩
청 乾嘉년간의 학자로 수필집 曬書堂筆録은 周作人의 애독서의 하나였다고 한다. ↩
본명은 石成金으로 자가 天基. 江蘇 揚州人. ↩
만주사변을 가리킨다. ↩
중의가 진맥후 환자의 증상을 기록한 것. ↩
爾는 가까울 邇의 의미로 우아한 것에 가깝다는 뜻. ↩
불녕이란 말재주가 없음을 의미하는 말로, 자신을 뜻하는 謙辭다. 출전은 『논어』공야장, “雍也, 仁而不佞”. ↩
『산중일석화』는 명말의 李卓吾가 편찬한『開巻一笑』라는 笑話集을 청의 笑笑先生이라고 칭하는 인물이 増訂한 책이다. ↩
원문은 玩意兒로 장난감, 놀이, 하찮은 물건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자신의 작업을 낮춘 말이다. ↩
본명은 李漁(1611~1680)로 笠翁은 호. 명말청초의 문학자. 저서로 <閑情偶寄>가 유명하다. ↩
본명은 平賀源内(1728~1780). ↩
揖譲은 요순·순우의 선양을 말하고 征誅는 商湯과 周武의 역성혁명을 가리킨다. ↩
褒譏伸抑은 칭찬하고 비꼬며 펼치고 억누른다는 의미다. ↩
포대화상은 당말에 실재한 것으로 알려진 승려로 본명은 釈契此라고 한다. 늘 포대를 둘러매고 다닌 탓에 포대화상이라고 불렸다. 풍만한 육체의 소유자로 넓은 도량, 원만한 인격, 다복을 상징하며 笑佛이라고도 한다. ↩
吾師乎, 吾師乎는 莊子·大宗師에 보이는 말이다. ↩
복희씨는 중국 전설상의 삼황의 한 사람. 전설적 인물들은 반인반수의 異形의 외모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삼황 중 복희씨와 女媧氏는 뱀의 몸통에 ���람의 머리를 한 것(蛇身人首)으로 묘사되며, 神農氏는 몸은 사람인데 머리가 소의 모습(牛頭人身)을 하였다고 하였다. 따라서 소머리를 복희씨와 연결시킨 것은 아마도 착각인듯하다. 복희씨는 팔괘를 만들고 악기와 문자를 발명하였다고 말해진다. ↩
신농씨는 농경과 의료를 관장하는 신으로 몸소 약초의 성질을 확인하고자 百草를 핥아 맛을 보았다는 전설이 있다. 신농본초와 같이 의약서의 이름에 자주 쓰인다. ↩
용봉은 하나라 폭군 걸왕의 신하로 간언 탓에 살해당했다. 비간은 상나라 폭군 주왕의 신하로 역시 간언으로 인해 살해당했다. 두사람은 충신의 상징. 伊尹은 탕왕을 보좌하였고 呂尙은 무왕을 보좌하였다. 두사람은 왕을 보필한 중신의 상징. ↩
소보는 요임금 시절의 은자. 허유는 소보와 동시대 인물로 요임금이 선양하려고 하자 이를 거절하고 箕山 밑자락으로 피한 은자. ↩
간시궐은 말그대로 마른 똥막대기로 선종의 선문답에서 부처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 ↩
장도릉은 후한의 五斗米道의 창시자. 허정양은 위진 시기의 도사. ↩
冕冠의 속칭. ↩
곤룡포는 황제를 비롯해 황족 및 제후국의 수장이 입는 평상복을 가리킨다. 위의 면관과 함께 袞冕이라고 합칭한다. ↩
삼세불이란 대승불교의 속칭 三寶佛을 말한다. 즉 중앙의 석가모니불, 동방의 약사여래, 서방의 아미타불. ↩
귀현공은 본명이 歸莊으로 명말청초의 문인. 귀유광의 증손이다. 웅어산은 명말청초의 불교 거사. ↩
屠隆을 말한다. ↩
미시는 오후 1시에서 3시사이, 신시는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
중국 경극 용어로 生은 남자 역, 旦은 여자 역, 浄은 악역,丑(추)는 삐에로 역. ↩
논어·이인의 朝聞道, 夕死可矣의 패러디. ↩
1658년의 가능성이 크다. ↩
길광은 전설상의 神獸의 이름이다. 편우는 깃털 한조각을 말한다. 따라서 길광편우는 매우 진귀한 것을 상징한다. ↩
북평은 중화민국 시기의 북경의 이름이다. 중화민국은 공식적으로 남경이 수도였기 때문에 북경의 옛 이름인 북평으로 변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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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取笑」
2018/06/17
一怕婆者, 婆旣死, 見婆像懸於柩前, 因理舊恨, 以拳擬之. 忽風吹軸動, 大驚, 忙縮手曰, 我是取笑.
[번역] 한 공처가가 부인이 막 죽고 나서 관 앞에 부인의 초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과거에 당한 한을 풀고자 주먹을 쥐고 때릴 시늉을 하였다. 마침 그 때 바람이 불어 초상이 흔들리자 크게 놀라 급히 손을 움추리며 말했다. “난 그냥 웃기려고 그런거야.”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마흔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원제는 「婆像」.
유사한 내용이 『笑林廣記』 殊稟部에 「理舊恨」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후반부가 “忙縮手大驚曰, 我是取笑作耍”로 되어 있어, 약간의 자구 이동과 추가가 ��인다.
理는 치료하다는 의미로 한을 달래다, 한을 풀다의 뜻.
擬는 손으로 어떤 동작의 시늉을 하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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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 Numerals
2018/06/14
I II III IV V VI VII VIII IX X 1 2 3 4 5 6 7 8 9 10
XX XXX XL L LX LXX LXXX XC C 20 30 40 50 60 70 80 90 100
CC CCC CD D DC DCC DCCC CM M 200 300 400 500 600 700 800 900 1000
MM MMM 2000 3000
페이스북이 2018년 들어 3개월안에 5억8천3백만 개의 페이크 어카운트를 폐쇄했다는 기사를 Daring Fireball에서 봤다.Daring Fireball: Facebook Closed 583 Million Fake Accounts in First Three Months of 2018 그런데 선뜻 믿기에 수자가 너무 크다. 원문 링크를 따라가 보았다. 원 기사는 더가디언의 기사(Facebook closed 583m fake accounts in first three months of 2018 | Technology | The Guardian)다. 그런데 원 기사에서는 583million이라고 하지 않고 583m이라고 했다. 존 그루버는 이 때 m을 million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 때 m은 로마수자인듯 하다. 즉 1000을 의미한다. 백만을 나타내려면 MM으로 보통 표기한다. 참고로 1000을 가리키는 또다른 약어인 K 즉 Kilo는 그리스어 khilioi에서 왔다고 하는데 프랑스가 도량형의 근대화를 주도한 19세기부터 쓰였다고 한다. 로마수자는 시계판에서는 무척 매력적이지만 시스템 자체로는 결함도 적지 않다. 십진법이기는 하지만 地位制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아라비아수자처럼 자리에 의해 수자의 값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고정된 수치를 갖는다. 게다가 일단 표기할 수 있는 수의 한도가 4000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3999를 넘어서는 수자는 표기할 수 없다. 로마인들이 대단히 실용적이라 사실상 쓸일이 없는 수자를 만들지도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위제가 아닌 기수법의 특성 자체에도 원인��� 있기는 하다. 그에 비하면 인도인들은 허황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자를 좋아한다. 이 어마어마한 수자는 꼭 큰 수자만이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작은 수자도 있다. 이 수자가 불경을 통해 중국에 전해졌다. 중국의 큰 수는 대략 억→조→경→해→자→양→구→정→재→극→항하사→아승기→나유타→불가사의→무량수로 진행하는데 극 이후의 수자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이다. 작은 수의 경우는 분→리→호→사→홀→미→사→진→애→묘→막→모호→준순→수유→순식→탄지→찰나→육덕→허→공→청→정[1]으로 나아가는데 이중 模糊니 逡巡이니 須臾니 刹那니 瞬息間 등은 한자문화권에서 파생어로 널리 쓰인다. 한편, 도서관에서 19세기 이전 서양 고서적(혹은 그 영인본)을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책의 출판년도가 로마수자로 적혀 있어 곤혹스러운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학도서관은 서양 고적의 장서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외로 검색하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장서 데이터베이스의 출판년도는 절대로 그대로 믿으면 안된다. 대체로 도서관 직원들이 로마수자 표기법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일테지만 어째든 제대로된 연도가 아닐 확률이 높다. 서양의 1718세기의 서적들은 의외로 판을 새로할 때마다 내용을 대폭적으로 고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출간년도를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원하는 내용을 찾지 못할 확률도 높고, 또 페이지 이동도 심해서 뒤적거리는데 꽤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나 자신 귀한 판본을 구하던 중 모 대학 도서관 장서 데이터베이스에서 이를 찾아내고 즐거운 마음으로 쏜살같이 달려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베이스의 연도는 그야말로 상상의 연도였다. 그런데 더 황당했던 것은 이 사실을 도서관 직원에게 알려줘도 고마워하긴 커녕 귀찮은 티를 풀풀 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도서관 직원들은 대체로 어느나라에서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듯싶지만 한국은 유독 심하다. 그나마 직업윤리라도 철저하면 좋으련만 그것도 없다. 그러면서 방학도 필요하단다. 세상에서 참 좋은 직업중의 하나로 진정한 숨은 ‘신의 직장’이다. 진심이다.
이 수자는 후일 송대의 산서를 통해서 동아시아에 널리 퍼졌다. 대표적인 것으로 朱世傑의 算學啓蒙 등을 들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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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警死」
2018/06/01
衆怕婆者相聚, 欲議一不怕之法以正夫綱. 或恐之曰, 列位尊嫂聞知, 已相約卽刻一齊打至矣. 衆駭然奔散, 惟一人坐定. 疑此人獨不怕者也, 察之, 則已驚死矣.
[번역] 다중의 공처가들이 서로 모여서 처를 두려워하지 않을 방법을 논의하고 사내으로서의 위엄을 바로잡으려하였다. 어떤 이가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여러분들의 부인께서 이를 듣고서 이미 서로 약정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일제히 처들어올 겁니다.”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는데 유일하게 한 사람만은 좌정하고 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인가보다 하고 살펴본 즉 이미 놀래서 죽어있었다.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서른아홉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원제는 「正夫綱」.
夫綱은 사내로서의 근본, 도리를 의미한다. 이른바 夫婦有別은 三綱 중의 하나이다.
尊嫂란 상대방의 부인을 높인 말이다.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추는 전통적 예법은 물론 권력 혹은 신분적 역학관계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 시대에도 꽤 좋은 예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세태는 예법의 상하관계가 권력의 상하관계로부터 즉자적으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 없지않다.
駭然은 허둥지둥 놀라는 모양을 말한다.
비교적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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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 有感
2018/05/27
며칠전 몇몇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서 식사하고 차마실 기회가 있었다. 길치인 나에 대한 배려로 인사동 오설록이라는 장소에서 만나서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한 인사동 나들이라 그런지 인사동의 모습도 조금은 변했다. 오설록의 존재도 그 변화의 하나다. 예전에는 없었던 듯한데….
난 설록차를 좋아하지 않는다. 난 한국의 음식 문화 속에 차 문화가 존재했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한국차는 멋도 맛도 죄다 馬馬虎虎하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오설록의 설록차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설록의 접객 태도가 주제다. 그렇다. 오설록이란 기업이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대해서이다.
오랫만에 만난 사람들과 헤어질 때 ���쉬움이 남아서 오설록에서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가자고 했다. 점포에 들어서니 녹차 아이스크림을 판다. 다른 아이스크림도 있지만 난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니 그냥 녹차 아이스크림으로 정했다. 참고로 가격은 녹차 아이스크림이 5000원이고 나머지는 8000원 정도다. 몇 숫가락 정도의 양의 아이스크림 치고는 꽤 비싸다.
1층에서 주문하고 2층에서 받는 구조다. 이것도 좀 어설프다. 아무튼 잠깐이나마 앉아서 먹고 헤어질 요량으로 올라가서 테이블에 앉았다. 그런데 점원이 다른 일행에게 뭐라고 한다. 처음에는 잘 듣지 못했는데 대충 이런 이야기였다.
여기는 그런 싼 음식을 먹을 수 없는 자리니 들고 나가주세요.
5000원짜리 아이스크림이 싼 건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내가 다른 집에서 아이스크림 사온 것도 아닌데 앉아서 먹지도 못한단다. 일행은 금방 가니까 먹고 가겠습니다 라고 정중하게 요구를 거절했다. 종업원은 더 이상 우기지는 않고 그냥 사라졌다. 저 인간 자기 회사 망하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2018년 한국의 대기업의 접객 태도가 이렇게 무례하다. 오설록이 종업원의 교육을 이렇게 한 셈이니 오설록은 적어도 나와 내 가족이라는 잠재적 고객을 영원히 상실했다. 소심한 복수이지만 내가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는 그날까지 오설록에 발을 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기록해 둔다.
인간의 격이란 아무리 발버둥쳐도 높아질 수 없는 것일까. 인류에 대한 공헌도가 정확히 0% 이하인 인간들…. 일본 에도시대에는 사무라이들에게 살인 면허가 인정되었다. 참을 수 없는 무례를 당했을 때 사무라이라면 칼을 뽑아 그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었다. 이를 기리스테고멘(切り捨て御免)이라고 한다. 미국 생활을 한 어떤 이는 이런 경우에 총으로 쏴죽여야 그런 인간들이 준다고 했다. 서구의 결투 문화를 염두에 둔 말이다. 아무튼 이런 유형의 笨蛋들이 줄지 않는 건 중국 문명과 그 아류인 한국 문명이 文弱한 탓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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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Markdown Composer 4 리뷰
2018/05/27
MultiMarkdown Composer 4의 개요
MultiMarkdown Composer 버전 4는 2017년 9월에 공개된 MultiMarkdown을 지원하는 플레인 텍스트 에디터이다. 개발자인 Fletcher T. Penney씨는 John Gruber씨의 마크업 언어인 Markdown을 확장한 MultiMarkdown 프로젝트의 개발자 겸 관리자이기도 하다. 멀티마크다운은 현재 버전 6이 최신 버전인데 MMD Composer 4는 최신 버전인 멀티마크다운 6을 엔진으로 사용한다. 마크다운은 배우기 쉽고 편리한 혁신적인 툴이지만 전문적인 글쓰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멀티마크다운은 마크다운을 확장하여 출판용 따옴표, 수식, 도표, 각주를 작성할 수 있으며 공동 원고작성에 필수불가결한 원고 교정용 툴인 CriticMarkup도 지원한다. 간단한 웹페이지 작성은 물론이고 학술 논문 정도의 복잡한 출판물의 경우도 LaTeX형식으로 변환하면 매우 정교한 페이지 레이아웃도 가능하다.
MMS Composer 4의 특징 중의 하나는 라이브 프리뷰를 충실히 지원한다는 점이다. 입력과정을 100% 실시간 라이브로 프리뷰하면서도 지연을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처리속도가 빠르다. 또한 HTML, EPUB 3, OPML(Open Document), LaTeX 등의 형식으로도 익스포트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마크다운 에디터보다 훨씬 다양한 세부적인 설정이 가능하면서도 동시에 최대한 디스트렉션 프리한 에디팅 환경을 구현하였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효율적인 문서 작성에 기능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숏컷에 대한 지원이 충실하고 목차(TOC)를 전개한 패널이 준비되어 있고 레퍼런스 관리에 편리한 레퍼런스 패널도 별도로 열수 있다. 한마디로 (멀티)마크다운 글쓰기에 특화한 에디터라고 할 수 있다.
Markdown에 대해서
웹이 글쓰기와 읽기의 주요한 소비시장이 된 오늘날, 글쓰기와 관련한 워크 플로우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과거의 컴퓨터를 이용한 글쓰기 도구는 워드프로세서가 주류였다. WYSIWYG를 표방하는 워드프로세서는 글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직관적으로 손쉽게 레이아웃을 작성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이 있지만,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쓴다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행간 조정, 폰트 지정, 글자 크기 설정, 페이지 레이아웃의 지정과 같은 편집자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함을 의미했다. 전통적인 글쓰기에서 저자는 단지 원고지에 글의 내용만을 충실히 채우면 그만이었던 점을 상기할 때 컴퓨터의 등장과 워드프로세서의 보편화는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진보한 방식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워드프로세서의 장점은 적은 비용으로 상당히 세련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점에 있지만 한편에서는 사용하는 워드프로세서의 특별한 파일 포맷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내 경우라면 매��토시의 나이서스 라이터, 워드퍼펙, 클라리스 웍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 등 적지않은 워드프로세서를 거쳤지만 시장에서 퇴출되어 호환성을 상실한 탓에 작성해둔 문서를 사실상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를 몇번이고 경험했다. 내가 일찍부터 LaTeX를 선호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LaTeX는 기본적으로 플레인 텍스트로 저장하기 때문이다.
웹 시대의 글쓰기의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글쓰기와 출력의 형식을 분리한 점이다. 전자출판의 특성상 다양한 형식의 포맷이 필요한데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고정형 포맷으로는 이러한 다양한 출력이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구현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글을 구조화하고 그 위에 세만틱스를 부가하는 것이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이 마크업 언어다. 사실 LaTeX 자체가 바로 이러한 마크업 언어의 하나(게다가 Turing complete다)지만 워낙 복잡한 신택스 탓에 수식을 다루는 수리과학과 물리학 전공자 정도가 사용하는데 그쳤다.(그래서 not suitable for mortals라는 악평에 시달렸다)
이러한 마크업 언어중에서 존 그루버씨가 발명한 마크다운이 저널리스트를 중심으로 평판을 쌓아 언제부터인지 디팩토 스탠더드가 되었다. 물론 출력은 HTML이 중심이고 CSS를 이용해 간단한 치장을 덧붙이는 정도다. 이 방식의 글쓰기 행위에 적합한 에디터가 바로 마크다운 에디터이다. 마크다운 에디터는 우선 마크다운 신택스를 지원해야 하고 또 다양한 출력 테마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워드프로세서의 속박에서 벗어나 에디터의 본래의 목적인 글쓰기에 모든 초점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많은 마크다운 에디터들이 디스트랙션 프리를 선전문구로 내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MMD Composer는 이러한 마크다운 에디터의 하나이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발자 본인이 확장한 멀티마크다운에 기반한 이상 훨씬 복잡한 글쓰기를 지원한다. 물론 글쓰기 환경과 관련해 보자면 Scrivener와 같은 규모가 큰 종합적 환경과는 이념과 목적에서 일선을 긋는다. MMD Composer는 말그대로 멀티마크다운 환경에 최적화한 텍스트 에디터를 지향한다. 또한 같은 마크다운 에디터라도 라이브러리 형태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Ulysses와도 많이 다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긴 분량의 책을 저술하는 목적에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물론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보통의 마크다운 에디터와는 달리 제법 분량이 나가는 문장을 다루기에도 편리한 기능들을 보기보다 많이 갖추었다.[1]
MMD Composer 4의 인터페이스
디폴트로 새로운 윈도우를 열면 왼편은 텍스트 에디터 패널, 오른편은 프리뷰 패널인 2-페인 윈도우가 나타난다. 물론 프레퍼런스에서 이런 저런 조절이 가능하지만 이 기본적인 형식이 MMD Composer의 철학을 잘 드러낸다. 에디터 패널은 그야말로 글쓰기 영역이다. 근래의 대부분�� 마크다운 에디터가 Sans Serif 폰트를 기본으로 하는 것에 반해 MMD Composer는 Serif 폰트인 팰러티노를 기본으로 한다(신 버전에서는 디폴트를 시스템 폰트로 바꾼 모양이다).
멀티마크다운의 신택스의 시인성을 높인 테마가 7종 기본 탑재되어 있고 이제는 흔한 기능이지만 볼드와 이탤릭과 같은 장식은 에디터에서도 폰트에 반영된다(물론 선택한 기본 폰트가 이탤릭과 볼드체를 갖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어 폰트를 기본 폰트로 설정할 경우는 이탤릭이 반영되지 않는다). 테마는 무료 버전을 제외하면 임의로 수정하거나 새로운 테마를 추가할 수 있다.
입력창의 구현은 기본적으로는 오에스 번들 앱인 TextEdit과 마찬가지로 NTText class를 이용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시스템의 여러가지 입력과 관련한 설정(Smart Quotes, Smart Dashes 등등)이 그대로 적용가능하며 CJK와 같은 언어를 다루는데도 별다른 문제가 없다(버전 4.3.x에서는 한자 변환과 관련해 약간의 버그가 있었는데 4.4에서 수정되었다). 예를 들어 BBEdit과 같은 유명한 텍스트 에디터의 경우는 독자적인 텍스트 렌더링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전히 일본어와 중국어 같이 띄어쓰기가 없는 언어의 경우 제대로 줄바꾸기가 되지않는다. 또 행간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알파벳에 맞추어진 행간을 그대로 쓸 경우 CJK 언어가 너무 빽빽하게 보이는 문제도 회피할 수 있다. 마크다운 에디터의 추세이지만 따옴표 등의 스마트 페어링을 원할 경우 설정할 수 있으며 페어링할 기호를 추가/제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에디팅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은 프레퍼런스의 Editing 탭에서 대부분 조절할 수 있다. 한편 각 원도우의 설정을 개별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메뉴바의 View 또는 Window메뉴를 통해서 할 수 있다. 테마도 마찬가지다(이 때문에 프레퍼런스에서 디폴트 테마를 변경해도 즉각 각 윈도우에 반영되지 않는다).
반면 프리뷰 패널은 멀티마크다운 엔진이 전적으로 관리하는 영역이다. 멀티마크다운이 아니라 순순한 마크다운으로 엔진을 제한할 수도 있고 또 멀티마크다운의 여러가지 변수를 조절할 수 있다. 이 설정은 주로 프레퍼런스의 MMD 탭에서 행해진다. 주의해야 할 사항은 MMD 탭에서의 설정은 전적으로 멀티마크다운 엔진을 제어하는 것에만 관여한다는 점이다. 에디팅과 MMD의 영역이 갖는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MMD 탭에서 출판용 따옴표를 취소했는데 왜 에디팅 패널에 여전히 출판용 따옴표가 나오냐고 버그 빨리 고치라고 메일로 항의하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프리뷰 패널은 라이브 표시가 디폴트이지만 파일을 저장할 때만 렌더링을 새로이 하게 할 수도 있고 아예 렌더링 패널을 닫을 수도 있다. 또 원한다면 Marked 2 앱을 이용하여 렌더링하도록 선택할 수도 있다. 또한 디폴트를 변경하지 않고도 개별적인 윈도우마다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프리뷰 또한 에디팅과 같이 별도의 테마가 준비되어 있다. 프리뷰 CSS인데 3종류밖에 제공되지 않는 점은 약간 불만이다. 더 많은 테마를 원한다면 Marked 2 앱을 쓰는 편이 속편할 듯하다.
프리뷰 패널은 에디팅 패널과 동기화시킬 수도 있고 비동기화할 수도 있다. 버전 4.3.x에서는 이른바 프리뷰 점핑 버그라고 하여 스페이스키를 누를 때마다 화면이 널뛰는 오에스의 버그에 기인�� 이슈가 있었다. 이 버그는 특히나 CJK 언어의 경우 프리뷰 패널이 훨씬 자주 위아래로 널뛰는 문제를 초래했는데 다행히 4.4에서 해결되었다. 오에스의 버그를 회피하는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마크다운 에디터는 보기에는 단순한 에디터처럼 보여도 실은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많은 일을 해야한다. 데이터 파싱을 통해 신택스를 연속적으로 검출해내야 하고 에디터 패널의 변화에 즉응하여 지속적으로 렌더링 엔진을 기동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도한 장식을 걸면 그다지 길지 않은 문장이라도 컴퓨터의 성능에 따라서는 현저하게 입력 속도가 늦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현상은 왜그런지 몰라도 일반적으로 CJK 언어에서 유독 심하게 나타난다. 다행히도 MMD Composer 4는 버젼 2와 비교하여 현격하게 신택스 하이라이팅 엔진과 프리뷰의 렌더링 엔진의 최적화가 이루어졌다고 평해진다. 멀티마크다운과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있는 엔진을 쾌적하게 운용할 수 있다면 버전 3 베타 시절부터 버전 4가 등장하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발자의 성실한 대응
사실 2014년부터 Ulysses를 애용했다. 텍스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하여 라이브러리로 다루는 방식은 비록 본질적으로는 텍스트 파일이긴 하지만 icloud의 어딘가에 xml 형식으로 저장되고, 또 내 컴퓨터에도 로컬 파일이 어딘가에 있기는 한데 막상 찾으려면 암호처럼 된 파일명을 뒤적거려야 한다. 이는 Everything buckets 방식이 갖는 장점이자 한계인데 내가 Devonthink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점 때문에 율리시스를 선뜻 구매하지 않고 망설였는데 인터페이스의 수려함에 그만 구매하고 말았다. 내가 써본 에디터 중에서는 한마디로 제일 멋진 인터페이스다. 물론 소소한 버그도 좀 있었고 iCloud가 갖는 싱크가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발자의 태도가 나로하여금 율리시스를 버리도록 만들었다.
나는 SaaS를 믿지 않는다. 특히나 율리시스처럼 라이브러리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에디터는 텍스트가 일종의 인질이 되기 쉽다(텍스트파일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는 인질이 될 수 없다. 다만 일반적인 유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것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구독제 이행에 즈음하여 개발자와 유저의 불모한 논쟁도 별로 유쾌하지 않았다. 한편 얼마전의 일이지만 새로 도입된 기능에서 CJK 관련 버그 리포트를 한 적이 있는데 고쳐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그 기능을 끄고 쓰라는 답이 왔다. 그 기능은 로마자 사용자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비주류 고객인 CJK 언어 사용자를 위해서 굳이 급하게 고칠 생각이 없다는 표시다.
MMD Composer 4를 처음 사용했을 때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런데 CJK와 관련한 외관상의 문제점이 있었다. 그냥 쓰는 것을 포기할까 하다가 좀 아쉬워서 일단 개발자에게 메일로 버그 리포트를 했다. 그런데 의외로 바로 연락이 온다. 고쳐��테니 한글을 입력하는 방법을 알려달란다. 그뒤로 1차 수정본, 2차 수정본, 3차 수정본이 연속적으로 보내져 왔다. ���심이 생겨서 내친김에 이런저런 문제도 고칠수 있냐고 문의했다. 비록 한글을 모르는 미국인이니 금방 문제의 원인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심지어는 Toy app을 만들어서 StackOverflow에 문의해서 유식자의 도움을 청하기까지 한다. 보다보다 내가 안쓰러워서 안고쳐도 되니 그만두라고 권했다. 왈,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방법이 반드시 있을테니 자기로서는 그 방법을 찾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내가 경험한 서구인 프로그래머가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CJK 관련 문의는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오에스 관련 문제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둥, 언어를 몰라서 도움을 줄 수 없다 미안하다는둥, 아니면 질질 끌고 한 이야기 자꾸 반복하게 만든는둥, 그야말로 성의없는 태도가 일반적이다. 이런 개발자는 정말로 처음이다. 중국의 고사에 오기라는 장군이 있는데 싸움에 임하여 병졸과 고생을 함께하는 미덕의 소유자로 한 병사가 다쳐서 상처에서 고름이 나오자 손수 그 고름을 입을 빨아서 짜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그 병사의 모친이 통곡하였는데 그 이유를 묻자 내 남편이 전장터에서 다쳤을 때도 오기 장군이 상처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어서 결국 남편은 그 은혜를 갚고자 용감히 싸우다 전사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같은 경우를 당했으니 어디서든 죽을 게 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 말이 이해가 간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아무튼 대단히 부지런한 사람이고 책임감 또한 강하다. 자기 소프트웨어를 최고의 제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욕도 남다르다. 이런 사람이라면 믿어볼만하다고 확신한다.
MMD Composer 4의 장단점
구체적으로 장단점을 들어보겠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이 중복될 수도 있다.
Pros
테마를 추가하거나 자작하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윈도우 단위로 테마를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개별설정이 보존된다. 테마는 JSON 포맷으로 되어 있어 비교적 손쉽게 내용을 고칠 수 있다. 위의 첫번째 스크린샷은 내가 디폴트 테마를 약간 손본 것이다. 정말로 아무나 할 수 있다.
에디팅 설정과 프리뷰(MMD) 설정이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에디팅에서는 앞뒤 구별이 없는 중성 따옴표로 입력하고 프리뷰에서는 열고 닫는 출판용 따옴표가 표시되도록 설정할 수 있다. 의외로 주어진 템플리트 이외에 출력을 제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라이브 프리뷰 기능이 충실하다.
키보드 숏컷에 대한 지원이 풍부하다. 키보드 숏컷이 충실하다는 점은 빈번한 마우스 사용으로 글쓰기의 흐름을 방해받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또한 오에스 차원의 키바인딩(개인적으로는 Brett Terpstra씨의 Keybindings that everyone should have에서 배운 바가 많다)도 문제없이 작동한다. 예를 들어 문장 중간에 커서가 있더라도 ⌘↩로 다음 행으로 건너 뛰는 숏컷은 어느덧 내 필수품이 되었다. 이 오에스 차원의 키바인딩은 현재 많은 소프트웨어가 지원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나 맥용 한컴 한글 2014 등은 지원하지 않는다.
오에스 태그와 MMD 태그를 동기화할 수 있다.
스마트 페어링을 지원한다.
“Type over” periods라는 설정이 있어 마침표 바로 앞에 커서가 있을 경우 마침표를 다시 찍으면 그냥 마침표 뒤로 커서가 넘어간다. 퇴고推敲 과정에서 종종 마침표를 두번 찍는 버릇이 있는 내겐 무척 반가운 기능이다.
같은 문서를 동시에 복수로 열 수 있다. Transclusion기능을 이용하여 파일의 내용을 다른 파일로 손쉽게 옮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New View into File 기능으로 같은 파일을 두개 이상의 윈도우로 열 수 있다.
목차(TOC)를 지원한다. 위계조직화된 긴 문장이라면 꽤 편리하다. 게다가 목차를 드랙앤드롭함으로써 문장의 위계구조와 순서를 손쉽게 변경할 수 있다. 앞으로 아웃라인 기능을 추가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웃라인 기능이 없더라도 목차 패널에서 어느 정도 이를 대신할 수 있다.
개발자가 바로 MultiMarkdown을 개발한 사람이다.
유저의 요구에 진정성을 갖고 대한다.
스탠더드 버전의 경우 기능에 비하면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다. 또한 수시로 버전업하여 신규 구매를 강요하거나 구독제로 전환할 개연성도 높지 않다. 참고로 멀티마크다운은 오픈 소스로 개발되었다. 당연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
워드 카운터 뿐만 아니라 문자수 카운터도 제공되어 CJK와 같이 글자수로 분량을 측정하는 경우에도 문제없이 정량화할 수 있다.
Cons
전업 프로그래머가 아니기 때문에 개발 과정이 길어질 수 있다.[2] 실제로 버전 3은 베타 기간이 예상보다 상당히 길었고 사실상 버전 4로 건너뛴 셈이다.
인디 프로그래머들의 공통적인 문제점이지만 인력 부족으로 매뉴얼이 충실하지 않고 내용 업데이트도 늦다.
유저 인터페이스가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매력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
regex 검색 기능이 없다.
iOS 앱이 없다. 단 몇년전부터 개발이 진행중이고 조만간 베타 테스트를 한다고 한다. (2018/05/29 이미 진행중)
가격과 판매방식
MMD Composer 4는 Mac App Store에서만 판매한다. 최근의 추세에 따라 기본 기능은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기능을 사용하려면 In-App Purchase로 구매해야 한다.
무료 버전은 단지 한번에 하나의 문서만을 편집할 수 있고, 목차의 일부만이 표시되며, 커스텀 테마가 이용불가하고, 프린트 기능이 없고, 다른 포맷으로 출력할 수 없다. 유료 버전은 두 종류로, 스탠더드 버전과 프로 버전으로 나뉜다. 스탠더드 버전은 무료 버전의 제약을 모두 해제할 수 있고 프로 버전은 거기에 고급 기능이 추가된다. 텍스트 익스펜션 기능, 커스텀 키보드 숏컷과 마크로 기능, 컨피규레이션 설정을 다른 컴퓨터와 공유하는 기능, 언두 기능에 히스토리 모드 추가, 목차의 깊이를 조절하는 기능 등이 있고 각주 1)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버전에서 폴더에 대해 라이브러리 검색 및 열람을 지원하는 기능이 추가되었다.
스탠더드 버전으로의 업그레이드 비용은 $16.49, 프로 버전으로 직접 업그레이드 비용은 $32.99, 스탠더드에서 프로로 업그레이드 비용은 역시 $16.49로 우선은 스탠더드로 업그레이드하고 나중에 필요에 따라 프로로 업그레이드하더라도 비용상의 손실은 없는 셈이다. 개발자 역시 단계적 업그레이드를 권한다.
결론
매킨토시에서 쓸 수 있는 마크다운 에디터는 생각보다 많다. 작년 7월에 TidBITS에서 맥에서 쓸 수 있는 마크다운 에디터에 대해 선호도 설문 조사[3]를 한 적이 있다. MacVim이나 BBEdit과 같이 마크다운 에디터라고 볼 수 없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만 무려 42종의 텍스트 에디터가 리스트에 올라 있다. MMD Composer는 이 시점에 아직 버전 4가 출시되기 전이지만 전체 42종 중에서 5위를 차지하였다. 지명도가 높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충성스런 사용자 층이 많다는 증거다. 나 자신 오래된 유저는 아니지만 내 최고의 마크다운 에디터를 고르라면 주저없이 MMD Composer 4를 선택할 것이다. 버그가 있더라도 고쳐달라고 하면 고쳐줄테니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대중교통을 타는 느낌은 절대 아니다.
이글을 쓰는 시점에 MultiMarkdown Composer의 버전은 4.4.2인데 물론 Pro버전에 한하기는 하지만 폴더를 라이브러리 형태로 관리하는 프로토타입이 공개되었다.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시사한다. ↩
day time job은 의사다. ‘본업’이 의사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절대로 개발자로서의 직업을 부업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Your Favorite Mac Markdown Editors - TidBI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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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不出來」
2018/05/23
一人被妻打, 無奈鑽在床下. 妻呼曰, 快快出來! 答曰, 男子漢大丈夫, 說不出來定不出來. [1]
[번역] 한 사람이 처에게 얻어맞자 어쩔수 없이 침대 밑으로 깊이 들어갔다. 처가 외쳤다. “빨리 빨리 나오지 못해.” 답하기를, “사내 대장부가 한번 안나간다고 하면 진짜로 안나가.”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서른여덟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원제는 「避打」. 단 원문에는 끝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첨부되어 있다. “如今爲男子大丈夫者, 大半皆此輩也. 可嘆可嘆”(요즘 사내 대장부라고 하는 자들은 대부분 이런 부류다. 안타까운 일이다.)
無奈는 無可奈何와 같은 의미로 어쩔 도리가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鑽은 파고 뚫는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깊숙이 들어간다는 의미.
定은 반드시~~, 꼭~~의 의미로 강조의 語氣를 나타내는 부사.
중국인은 유럽인을 제외하고 거의 유일하게 침대생활을 영위하던 민족이었다. 16세기말에 중국에 온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이 자신들과 유사하게 침대를 사용하는 것에 내심 놀라 이에 ���한 기록을 남겼다.
원주: 笑贊에도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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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掇桶」
2018/05/08
甲乙俱懼內, 乙往訴甲曰, 房下近來作事更狠, 至晚馬桶亦要我掇. 甲攘臂言曰,這個忒難, 若是我—-, 言未畢, 甲妻背後大喝曰, 若是你便怎麼! 甲不覺下跪曰, 若是我—-就掇了!
[번역] 갑을 두 사람은 모두 공처가인데 을이 갑에게 호소하길 처가 근래에 들어 하는 일이 더 모질어져 밤에 변통까지 나보고 나르게 한다고 말했다. 갑이 팔을 걷어부치면서 말했다. “이건 너무 심하군. 만약 나였다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갑의 부인이 등뒤에서 버럭 호통치며 말했다. “그래 당신이었으면 어쩌려고!” 갑은 어느새 무릅을 꿇고 말했다. “나였다면… 바로 날랐지.”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서른일곱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府』刺俗部. 원제는 「掇馬桶」.
掇은 두손으로 드는 것을 말한다. 馬桶은 밤에 방에서 볼일을 보는 변통을 말한다. 한국의 요강과는 모양이 다르다.
攘臂의 攘은 여기서는 팔을 걷어부친다는 의미지만 이외에도 훔치다, 물리치다는 의미가 있다. 많이 쓰는 단어로는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攘夷를 들 수 있다.
忒는 동사로는 바꾸다, 달라지다의 의미를 갖지만 부사로는 같은 발음의 特과 통한다. 정도가 심한 것을 가리킨다.
不覺은 不知不覺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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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搥碎夜壺」
2018/05/03
有病其妻之喫醋而相訴於友, 謂凡買一婢卽不能容, 必至別賣而後已. 一友曰, 賤荊更甚, 豈但婢不能容, 並不許置一美僕, 必至逐去而後已. 傍又一友曰, 兩位老兄, 勸你罷, 像你老嫂還算賢慧. 只看我房下, 不但不容婢僕, 且不許擅買夜壺, 必至搥碎而後已.
[번역] 처의 병적인 질투심에 고생하는 사람이 벗에게 호소하여 말하길 무릇 하녀라면 한 명을 사들이더라도 이를 용납하지 않고 반드시 따로 팔아버려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였다. 한 벗이 말하길 자기 처는 더하다고 했다. 단지 하녀를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남자 하인도 잘생겼으면 반드시 쫓아내야 한다고 하였다. 옆에 있던 벗이 또 이렇게 말하였다. “두분의 친구분들, 권하건데 자네 부인들은 그래도 현명하고 지혜롭다네. 내 처을 한번 보시게. 하녀 하인을 용납못할 뿐만 아니라 내맘대로 야호조차 못사게한다네. 사면 반드시 깨버리고 말지.”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서른여섯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林廣記』殊稟部. 원제는 「捶碎夜壺」. 搥나 捶는 모두 내던지다의 의미.
喫醋는 말 그대로는 식초를 마신다는 뜻으로 질투하다는 의미가 있다.
賤荊은 과거에 자신의 부인을 남에게 낮추어 부른말로 荊人, 荊室, 荊婦, 拙荊, 山荊이라고도 한다.
豈但~, 並不~~는 단지 ~할 뿐만 아니라 ~~하기도 하다는 관용구.
房下도 역시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夜壺는 밤에 소변을 보는 남성용 도구. 주둥이가 남성 성기에 맞게 좁게 튀어나와 있다.
질투의 단계는 먼저 여성에게 향하고 다음으로 동성애를 경계하고 최종적으로는 야호로 상징하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겨냥한다. 중국인 중 특히 남방인들은 역사적으로 남색을 그다지 터부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 사회에서 형편이 어려워 몸을 팔던지 기타 여러 이유로 노비로 전락하는 일은 일상적으로 극히 최근세까지 존재하였다. (심청전을 상상해 보라) 조선의 경우는 심하여 인구의 상당수가 노비(사노비와 공노비)였을 뿐만 아니라 노비 제도가 최종적으로 폐지된 것이 때늦은 갑오경장(1894) 때의 일이다. 이 때문�� 작고한 미국의 한국학자 제임스 팔레(James Palais) 교수는 한국을 노예제 사회로 규정하기도 했다. 물론 많은 한국의 학자들이 이 견해를 불편해 했고 한국의 노비는 서양의 노예와 달리 학대받지 않고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노예제로 볼 수 없다고 항변했다. 팔레교수는 이 견해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나 자신 강아지를 매우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강아지가 강아지가 아닌 것은 아니다. 똑똑한 대응이다. 한국인의 갑질 문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많던 노비의 후손이 어디에도 없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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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蒲菊架倒」
2018/05/01
有一吏懼內, 一日被妻撾碎面皮. 明日上堂, 太守見而問之, 吏權詞以對曰, 晚上乘涼, 被蒲萄架倒下, 故此刮破了. 太守不信曰, 這一定是你妻子撾碎的, 快差皂隸拿來! 不意��奶在後堂潛聽, 大怒, 搶出堂外. 太守慌忙謂吏曰, 你且暫退, 我內衙蒲萄架也要倒了!
[번역] 공처가인 어떤 서리(아전)가 어느날 처에게 얼굴 할큄을 당했다. 다음날 출근하자 태수가 이를 보고 물으니 서리는 적당히 둘러대어 밤에 바람쐬다 그만 포도넝쿨 지지대가 무너지는 바람에 긁혔다고 답했다. 태수가 이를 믿지못해 말하였다. “분명히 네 처가 할퀸 것이리라. 당장 조례를 시켜 잡아오도록 하여라.” 마침 태수의 부인이 우연히 밖에서 이를 몰래 듣다가 크게 노하여 서둘러 나왔다. 태수가 황급히 서리에게 말했다. “너는 잠시 물러나거라. 우리 내아에 있는 포도넝쿨 지지대도 넘어지려고 한다.”
周作人編 『苦茶庵笑話選』(1933)에 실린 서른다섯 번째 笑話다.
출전은 『笑林廣記』殊稟部. 원제는 같다.
蒲萄는 표준 한자로는 葡萄라고 쓴다. 즉 포도를 말한다. 포도는 두글자로 표기되는 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외래종이고 위키피디어 葡萄 항목에 따르면 과거에는 이외에도 蒲陶, 蒲桃, 葡桃 등으로 표기되었다고 한다.
撾는 할퀴다는 의미로 중국어로는 抓자와 동음(zhua)이지만 한국 독음은 전자는 과, 후자는 조이다.
權詞의 權은 여기서는 經에 반대되는 의미로 방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皂隸는 관리에 딸린 호위와 사역을 담당하던 하급 관원이다.
奶奶는 원래는 할머니나 연로한 여성을 가르키지만 또한 여주인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
搶은 원래 빼았다의 의미지만 여기서는 급하게 …하다는 뜻.
중국은 전통적으로 남성우위의 사회였다는 점에서는 여타 지역의 문명권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유독 공처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팔루스 숭배, 즉 남성적 힘과 근육질을 태생적으로 결여한 유약한 중국 문인상을 반영한 현상이겠지만 아무튼 밖에서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멋대로 鷹揚하는 인물이 집에 들어가면 기를 못펴고 사는 경우가 많다. 공처가라는 말은 그런데 중국어에는 없다. 이 말은 일본에서 造語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怕太太, 怕老婆 등으로 불린다. 한국도 중국만큼 심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크게 보면 중화권의 공처가 문화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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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ing Up, Rounding Down, Halves Rounding UP?
2018/04/27
얼마전 ソフトアンテナブログ의 기사를 통해 Progress Bar OSX에 대해 알게 되었다. Progress Bar OSX.app란 지금 이순간이 (1) 그해의, (2) 그달의, (3) 그날의 각각 몇 %를 경과한 시점인지를 알려주는 매킨토시용 어플리케이션이다. 메뉴바 앱으로 세가지 중 한가지를 메뉴바에 표시할 수 있고, 막대 그래프로도 보여준다. 또한 메뉴바를 클릭하면 풀다운 메뉴가 열리며 위의 세가지를 모두 표시한다.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우선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예쁜 기믹gimmick한 유틸리티다. 가격이 5 달러라 기능에 비하면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량적인 수치화를 좋아하는 나같은 인간에게는 꽤나 소유욕을 자극하는 그런 부류다. 당장 구입할까 하다가 일단 shell script로 짜보았다. 우선은 단순히 오늘이 올해의 몇 %가 지난 날인지를 표시하는 것이 목표다. shell script의 결과로 얻고자 하는 결과 수치가 나오면 그다음은 메뉴바에 원하는 텍스트를 표시해주는 BitBar.app을 써서 메뉴바에 표시하면 일단락이다[1].
shell script의 플로우차트는 간단하다.
올해의 연도를 확인해 year 변수에 넣은 후
올해 1월 1일부터 세서 오늘이 몇 일째인지 계산하고 그 결과를 days 변수에 넣는다. 이 계산은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경우는 Dr. Drang씨의 ago[2]라는 python script를 이용했다. 날짜 계산은 물론 서양식이다. 따라서 1월 1일은 하루가 지난 것이 아니라 0일로 처리된다.
날수를 1년 365(윤년의 경우는 366)일로 나누어 정수 부분만을 취하고 %로 출력한다. 범용성을 위해 윤년 여부를 확인하는 루틴을 추가했다.
그런데 나눗셈의 몫에서 소수점 이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따라 결과가 약간 달라질 것이 예상된다. 소수점 이하를 무조건 버리는 것은 계산이 간단하지만 새해가 3일이 지나도록 경과율이 0%로 표시되는 결함이 있다. 무조건 올리면 한해가 아직 며칠 남았는데도 이미 100%로 표시될 것이다. 양자는 모두 적합지 않다. 결국 절충적으로 반올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bash shell의 $((...)) syntax는 손쉽게 정수 부분을 구할 수 있지만 이 연산 방법은 소수점 이하를 무조건 버린다(Rounding down). 따라서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電腦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이럴 때 하는 일은 구글링이다.
결과로 간단한 해결법을 발견했다.[3] 임의의 두 수자 x, y에 대해 x / y의 연산을 대신하여 아래의 두번째 식을 쓰면 된다. 첫번째 식은 참고로 적었지만 이경우는 무조건 올린다.
Rounding Up
(x + y - 1) / y
Halves Rounding Up
(x + (y / 2)) / y
컬럼부스의 달걀이라는 말도 있지만 위의 두 식을 보면서 세상만사 많은 일이 알면 쉽게 이해되지만 막상 스스로 구현하려면 至難의 業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아무튼 내가 창작자와 평론가의 사이에서 창작자에 대해서 무한한 존경을 보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론이 필요한 영역도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글쎄다. 게다가 제대로된 평론이 있기는 한가? 이도 또한 글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란 늘 고고한 자의 시선으로 남을 깔보고 남의 창작물을 犯한다. 오늘은 왠지 마르틴 발쩌의 『어느 비평가의 죽음』이 읽고 싶어졌다.
완성된 shell script는 다음과 같다. 예상보다 간결하게 끝났다.
year=`date +%Y` days=`/your/path/to/ago $year/1/1` (( !(year % 4) && ( year % 100 || !(year % 400) ) )) && echo "$(((days * 100 + (366 / 2)) / 366))%" || echo "$(((days * 100 + (365 / 2)) / 365))%"
마지막으로 BitBar 어플리케이션에 script를 등록해 두면 끝이다. 참고로 오늘은 1년 중 32%가 지났다. 벌써.
[참고]
그레고리우스력에서 윤년을 정하는 규칙은 다음과 같다.
4의 배수
100의 배수가 아닐 것
400의 배수일 것
이를 bash shell script로 간결하�� 구현하면 다음과 같다.[4]
(( !(year % 4) && ( year % 100 || !(year % 400) ) )) &&
나중의 나 자신을 위해 설명해두자면 % modulus operator는 나누어 떨어지면 0을 리턴하기 때문에 4와 400의 경우 윤년의 경우가 논리거짓이 된다. 따라서 각각 한번 否定(!)할 필요가 있다.
대신 TextBar.app을 써도 좋다. 단 $2.99짜리 유료 어플리케이션이다. ↩
Dr. Drang씨의 블로그 And now it’s all this 의 Little date commands redux에서. ↩
Stack Overflow의 linux - Round a divided number in Bash에서. ↩
같은 곳의 bash - My shell script for checking leap year is showing error - Stack Overflow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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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ent Items List on the Dock
2018/04/28
최근 오에스를 Yosemite에서 Sierra로 업그레이드하고 이��저런 문제를 겪었다.[1] (1) Spotlight의 인덱싱 기능의 거동이 수상적은 현상, (2) Karabiner의 신버전 Karabiner Element가 기능적으로 전자의 부분집합인 탓에 내 Muscle memory가 느끼는 심리적 불편감, (3) iOS의 Text Replacement 내용이 돌연 사라져버린 현상, (4) Dock에서 어플리케이션의 Recent Items List가 어플리케이션에 따라 사라지거나 업데이트되지 않는 현상 (5) 언어 변환시의 Command-Option-Space 단축키의 빈번한 오동작 등(이 현상은 Yosemite 때도 가끔은 있었지만 빈도는 비교가 안된다.)이다. 그렇다면 얻은 것은? 이런저런 Must-Have 어플리케이션들의 버전 업그레이드에 따른 누적된 지불영수증들과 잘 쓰지도 않을 Siri뿐… 1년마다 새로운 오에스로 업그레이드하는 애플의 정책은 베타 버전의 상시화다. 정말로 그만두면 좋겠다.
Dock에서의 어플리케이션 Recent Items List 팝업 메뉴는 아마도 Mac OS X Lion에서부터 추가된 기능인 듯하다. 오에스의 > Recent Items 메뉴에 대해서 평소에 볼 때마다 미적으로 자신의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는 느낌이라 지우곤 했던 사람으로서 Dock에 이 기능이 추가된 것이 반드시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실용적으로 대단히 편리한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아무튼 업그레이드 이후 TaskPaper.app에서 리스트가 사라진 사실을 발견했고 확인해본 결과 BBEdit의 경우는 리스트는 남아있지만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이 리스트는 보통 어플리케이션의 File > Open Recent 메뉴, > Recent Items 메뉴와 연동되는데 BBEdit의 경우는 유독 Dock의 리스트만이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구글링해보니 BBEdit 12.0.2 Release Notes에서 원인을 발견했다. 결과적으로 업데이트되지 않고 남아있던 리스트는 BBEdit 11이 과거에 남겨둔 잔재였다.
In order to work around a crash in the OS (Radar 35052088), BBEdit will no longer submit recently opened items to the system-wide “Recent Items” list that appears on the Apple and Dock menus.
아무튼 세상에는 Dock의 Recent Items 리스트를 미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고 이들중 일부는 적극적으로 이 리스트를 삭제하는 방법을 찾는다. 찾은 김에 일단 나 자신을 위해 방법을 기록해 둔다. 출전은 Clear and Disable Recent Items in Lion’s Dock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스템을 건드리는 작업이니 항시 백업을 먼저 해두어야 한다.
작업은 Terminal.app에서 defaults 명령어로 행하며 여기서는 BBEdit을 예로 든다(현재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BBEdit은 물론 좋은 예가 아니지만…).
우선 리스트를 관리하는 파일을 삭제한다.
defaults delete com.barebones.bbedit.LSSharedFileList RecentDocuments
둘째, 추후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도록 만��다.
defaults write org.videolan.vlc NSRecentDocumentsLimit 0 defaults write org.videolan.vlc.LSSharedFileList RecentDocuments -dict-add MaxAmount 0
마지막으로 Dock을 재기동하여 변경사항을 즉각 반영시킨다.
killall Dock
여기서 com.barebones.bbedit는 Bundle Identifier이다. 위의 명령어를 다른 어플리케이션에 대해 행하고 싶으면 해당 어플리케이션의 그것을 알아야 한다. 위의 경우라면
defaults read /Applications/BBEdit.app/Contents/Info CFBundleIdentifier
명령으로 알 수 있다.
물론 원상 복구하고 싶을 경우,
defaults delete com.barebones.bbedit NSRecentDocumentsLimit defaults delete com.barebones.bbedit.LSSharedFileList RecentDocuments killall Dock
명령을 순차적으로 실행하면 된다.
내가 오에스 업그레이드를 미룬 이유는 단순하다. El Capitan이 나오고 바로 업그레이드한 결과 내가 자주 사용하는 BBEdit.app이나 Jedit X.app에서 한글-한자 변환이 작동하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그날로 다시 Yosemite로 되돌아 갔다. 잘은 모르지만 BBEdit이나 Jedit X에서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면 이 두 에플리케이션이 대단히 오랜 역사(BBEdit은 1992년, Jedit은 1995년에 등장)를 갖는 여전히 Carbon 베이스의 32bit 어플리케이션인 탓인 듯하다. 이 사정은 Sierra가 나온 후에도 개선되지 않았고, High Sierra가 나온 후에는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BBEdit는 버전 12.1에서 마침내 64bit로 전환하였고, Jedit X는 Jedit Ω로 재탄생하였다. 애플이 High Sierra가 32bit 어플리케이션이 작동하는 마지막 오에스라고 선언한 덕이다. 하지만 내가 업그레이드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Yosemite에서 마침내 커널 패닉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High Sierra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은 이유는 첫째, High Sierra의 평판이 상당히 좋지 않고 둘째, Microsoft Office 2011이 동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MathType.app을 필요로하는데 아직 Office 2016에서는 MathType가 작동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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